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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독 내일 통일/41년 만에 공산동독 소멸

    【베를린 연합】 10월3일 0시(한국시간 상오 8시) 독일 방방곡곡의 교회탑마다에서 종소리가 울리면서 45년간에 걸친 독일 분단의 시대는 공식으로 막을 내린다.〈관련기사 5면〉 그리고 동독이라는 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히틀러의 제3제국이 무너진 뒤 미국과 소련·영국·프랑스 등 4대국이 누려왔던 베를린 점령권도 상실된다. 이날 베를린의 구제국의회 의사당 앞에서는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헬무트 콜 총리,발터 몸퍼 베를린 시장 등 국가요인 및 정치지도자는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독일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역사적인 통일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앞서 2일 하오에는 동독 인민의회와 로타르 드메지에르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해산식을 가지며 이로써 지난 49년 10월 소련에 의해 세워진 동독국가는 만 41년 만에 완전히 소멸,점차 망각 속에 파묻혀 버릴 것이다. 통일 기념 행사를 갖고 하나가 된 독일은 4일 제국의회 의사당에서 통합의회의 첫회의를 가지며 이 자리에서 콜 총리는 통독 정부의 새 출범을 공식 선언한다. 이로써 독일은 지난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사실상 최초의 통일을 이룬 이래 역사상 2번째로 민족통일을,그리고 1차대전 후의 바이마르공화국,1949년 냉전의 절정기에 수립된 동서독에 이어 금세기에 들어서 3번째의 새 국가를 성취하게 된다.
  • 통일촉진 기대/여야,한소 수교 환영

    여야는 1일 한소 외교관계 수립을 환영하는 논평을 각각 발표했다. ▲박희태 민자당 대변인=한소간 국교가 단절된 지 근 1백년 만에 다시 외교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는 일이다. 이번의 한소 관계정상화가 양국의 공동번영과 경제발전,나아가 남북 관계발전 및 통일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김태식 평민당 대변인=1세기 만의 한소 수교를 환영하며 이번 수교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에도 크게 이바지하길 기대한다. 한소·북일 수교 추진을 남북한 당국이 상대를 고립시키려는 방향으로 악용해서는 안될 것이며 남북은 미·일·중·소와 다같이 수교하되 오는 남북총리회담의 주의제로 상정해 진지하게 다루기를 바란다. ▲장석화 민주당 대변인=우리는 한소 수교가 불행했던 85년간의 한소 단절사를 청산하고 동북아의 냉전종식을 알리는 서곡으로서 양국간의 우호와 협력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역사적 출발이 된다는 뜻에서 크게 환영한다. 남북한 관계의 획기적인 변화 및 한중 수교를 촉진하는 새로운 계기가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문화 민중당(가칭) 대변인=지속되어온 동북아와 한반도의 냉전질서를 청산하고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를 환영한다. 한소 수교는 그러나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고 한반도의 군축과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분단고착이 아닌 평화통일에 이바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수교 이후 양국 관계 전망(한·소 새 출발:1)

    ◎서울­모스크바 아태 시대의 파트너로/「45년 적대 해소」의 법적 절차 마무리/4강 역학 변화… 동북아 안정에 기여 한소 양국은 「수교 고속도로」를 따라 쾌속 주행하게 됐다. 1일 새벽 유엔본부에서 양국 외무장관이 수교합의 공동코뮈니케에 서명하고 이날부터 즉시 발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전후 45년동안 국제정치적으로나 이념면에서나 적대관계에 있던 한국과 소련은 이날부터 우방으로서 선린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 것이다. 앞으로 한소 관계는 수교라는 기폭제로 인해 정치외교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급진전될 것으로 보이며 점차 가속력을 더해갈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정치외교적으로는 이달중 서울과 모스크바에 대사관을 교환설치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가 11월중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10월 대사관 상호개설→11월 노 대통령의 방소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뒤 이어 내년 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한소 관계는 질주할 것으로 보인다.노 대통령의 방소 정지작업을 위해 최호중 외무장관이 이달 말이나 11월초 모스크바 방문을 고려하고 있으며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앞서 연말이나 내년초 서울을 방문,양국 우호분위기를 더욱 성숙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협력면에서는 이달 26일로 예정된 한소 정부대표단의 2차 서울회담에서 그 대강이 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양국간의 최대 관심사항이었던 경협규모 확정을 비롯,경제교류·협력의 제도적 장치인 투자보장,2중과세방지협정도 체결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수교 발효시기가 당초 소련이 복안으로 가져왔던 「내년 1월1일부터」에서 「코뮈니케 서명 동시 발효」라는 우리의 희망에 부응하게 됨으로써 우리의 대소 경협도 자질구레한 유보없이 우리 능력범위안에서 깨끗하게 타결지을 것 같다. 따라서 한소 양국은 새로운 동반자관계를 구축,한국의 대소 투자·진출,자원공동개발,소비재를 중심으로 한 상품차관,연불수출 등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한소 수교를 양국 관계로서만파악해서는 동북아의 새 질서재편이라는 차원에서 조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갖고 있는 국제정치 역학적 측면을 간과하기 쉽다. 이런 의미에서 한소 수교는 첫째 동북아의 국제정치 구조를 진영체제에서 세력균형체제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는 전후 북한­중국­소련 대 한·미·일이라는 냉전구조 아래의 진영체제를 허물어뜨리는 한편 소련의 남북한 균형정책 구사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동시에 최근 일·북한 관계급진전과 관련시켜 볼 때 이같은 세력균형체제로의 전환은 더욱 뚜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둘째 남북한 관계에 있어 소련은 「각자의 제3국 관계에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공동코뮈니케)이라고 명시되어 있듯이 북한과의 기존동맹 관계는 계속 유지하면서도 한국과는 경제협력의 파트너로서의 관계에 중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이 우리와 수교함으로써 소·북한 관계는 내면적으로 상당히 냉각될 것이고 특히 북한의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남북대화에 있어 신경질적인 거부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물론 이는 단기적인 현상일 것으로 생각되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소 수교는 북한에 「두개의 조선」 반대라는 분단고착화 논리의 전면수정을 강요케 할 것이며 또한 남북대화에 진지하게 임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남북한 긴장완화,북한의 개방에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셋째 한중 관계개선과 관련,중국이 북한의 집요한 견제를 한소 수교의 현실화를 빌미로 상당수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대중국 관계개선의 행보가 상당히 빨라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났지만 북한은 한국의 대소 수교라는 북방정책의 최대결실을 상쇄시키기 위해 대일 관계개선을 매우 서둘러 진행시킬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한소 수교는 한반도주변 4강간의 새로운 역학관계 모색의 시발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세력의 일원으로 화려하게 등장하려고 하는 소련으로서는 한소 수교를 징검다리로 해서 내년엔 일본과 북방 영토문제를 타결,아태지역에서의 지분을 확실히 담보해 두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소 수교는 양국 협력관계 기밀화에서부터 동북아의 질서재편 한반도주변국간의 균형모색 등 많은 변화의 요소를 몰고 올 것이 틀림없다. 우리의 북방외교의 궁극목표가 북한의 개방,한반도 평화정착 및 통일조국의 달성에 있다고 할 때 한소 수교가 여기에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주도면밀한 후속조치는 물론 미일 등 기존 우방국과의 관계도 더욱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이경형 기자〉
  • 한반도 냉전탈피의 큰 걸음 내딛다

    ◎역사적 수교… 해외 시각/남북총리회담 때 평양반응 주목 일/한국의 유엔 단독가입에 큰 도움 미 ○일본 【도쿄=강수웅 특파원】 한국과 소련의 국교수립 합의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긴장완화를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일본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아시아의 신 질서」를 가속화시키는 것이며 앞으로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한국과 중국의 무역사무소 상호 설치,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 등과 함께 사실상의 남북한 교차승인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사히(조일)신문은 『한소 국교수립은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정상회담에서 원칙적으로 합의된 사항이기는 하나 급템포로 이루어진 국교정상화 합의는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빙시키는 확실한 일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양국 관계는 앞으로 경제를 중심으로 각 분야에서 한층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소간의 무역량은 지난해 약 6억달러에 달했으나 올해는 상반기중 3억6천만달러로 늘어났다. 양국의 무역·항공협정도 최근 가조인되었으며 다른 경제관계협정도 가까운 장래 체결될 전망이라고 지적하고 한국은 5∼10년 동안 약 20억달러의 차관 등을 소련에 제공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흐름은 이데올로기보다 실리우선으로 움직여온 소련 및 동구의 개혁의 물결이 확실히 한반도에 밀려들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는 평양에서 오는 16일 개최되는 제2회 남북총리회담이 그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동경)신문도 해설기사를 통해 『한·소 국교수립은 대일 국교정상화를 제의한 「평양충격」으로부터 불과 이틀 만에 나온 것이지만,이것도 또한차례 놀랄 만큼 빠른 템포로 실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이니치(매일)신문도 『이번 국교수립은 노·일전쟁에 의해 러시아와의 국교가 단절된 이래 85년 만의 일』 이라고 지적하고 『이것은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추진되어 온 북방외교의 최대의 성과』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김호준 특파원】 미국정부는 30일의 한·소 외교관계수립 공식발표는노태우 대통령이 그동안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북방외교가 가시적인 결실을 맺은 것이며 동북아 정세 개선에 유익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30일 뉴욕에서 한·소 수교합의에 관한 공식발표가 있은 후 미국이 그동안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한국이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증진 노력을 지원해온 점을 상기시키고 이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지는 1일 한소 국교수립은 북한에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동북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위기에 몰린 소련경제를 북돋우는 데 무역과 투자를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번 국교수립은 한국에 대해서도 한국이 북한과 별도로 유엔 정식회원국이 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또 한소 국교수립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북한의 제1외교부 부장 강석주는 지난주 『한소 국교수립은 남북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던 점을 지적,이틀전 일본과관계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개최키로 했던 북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유럽 【파리=김진천 특파원】 유럽에서도 한·소 수교는 「하나의 사건」으로 비춰지고 있다. 소련의 대한 접근과 이에 따른 샌프란시스코 양국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소 수교는 벌써부터 예상된 수순으로 유럽에서는 받아들여져 왔다. 다만 빠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로 내다봤던 유럽관계자들의 예상보다 다소 빨리 이뤄졌다는 것이 차이점일 뿐. 다분히 형식적이기는 하나 한·소 수교가 한반도의 평화,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안정에 기여할 것이며 아울러 남·북한 관계에도 모종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은 유럽에서도 보편적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유럽의 지배적인 시각은 한국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미약한 탓도 있지만 한·소 수교를 한국측의 노력보다는 소련의 방향전환으로 관측하는 것이다. 서유럽은 대체로 한·소 수교를 긍정적이며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국내 각계의 기대·전망/단절의 한세기 청산… 한중접근에 연동효과/전방위 외교의 계기… 경협엔 신중 대처 필요 ◇노진식〈무역협회 부회장〉=경제인의 입장에서 시장개척의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상품교역과 플랜트 수출,합작투자 등 여러가지 면에서 소련과의 경협이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대소경협이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소련경제나 시장이 우리나라와 수교했다고 해서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두복〈외교안보연구원 교수〉=한소 수교는 유럽에서의 냉전체제 붕괴가 이제 동북아에서도 시작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소 수교는 또 북한에 대해 대내개혁과 대외개방을 위한 큰 압력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도 앞으로 대서방 관계개선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처럼 남북한과 주변강대국간의 관계가 발전하면 결국 교차승인의 현실화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박영석〈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타의에 의해 단절됐던 한소 양국간의 국교관계가 8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의지로 다시 이어지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교관계를 성립시킨 것에서 끝나서는 안되고,앞으로의 정책수행에 있어서 한층 더 신중하고 완벽한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으로 본다. 학문적 입장에서 그동안 어려웠던 노영지역에서의 독립운동관계 현지답사 등 독립운동사 및 한소 관계사 연구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정수〈국회외무통일 위원장·민자〉=북방외교정책 추진 이후 최대의 성과로 평가한다. 한소 수교가 북한을 개방시키는 외부압력의 작용을 할 것으로 예상되며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촉진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운〈변호사〉=6·25전쟁 및 남북분단의 원인은 소련에게도 있었다. 그동안 남북 긴장관계의 배후에는 역시 소련과 중국이 북한의 종주국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 소련이 우리나라를 국가로 인정,국교를 맺은 것은 우리의 국제적 지위향상은 물론 북한의 대남전략을 바꾸게 하는 데도 큰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본다.
  • 「분단 41년의 벽」누가 허물었나(새 독일 탄생:2)

    ◎꾸준한 교류가 조기통일의 길 열어/동구변혁을 양독 재결합 호기로 이용/대소 경원등 통해 주변국의 우려 불식 불과 1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독일보다는 한반도의 통일이 먼저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을 했다. 독일이 통일되는 것을 원치않는 주변 국가들의 입장을 지나치게 염두에 둔 생각이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의 통일은 하루 아침에 누구도 거스릴 수 없는 대세가 돼 버렸다. 이렇게 거센 통일의 큰 흐름을 이루어낸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독일통일의 원동력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하나는 소련을 시발로 동유럽 전역을 휩쓴 개혁과 개방의 흐름이 통독의 외적 장애요인들을 제거함으로써 독일통일의 움직임들이 비로소 가능케됐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하나는 통독을 기본적으로 동서독 국민들의 계속된 통일노력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다. 물론 외적 환경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독 국민들의 공산정권에 대한 저항,그리고 서독경제력에 대한 매력,여기에 덧붙여 양쪽 국민들이 꾸준히유지해온 민족적인 동질의식 등이 통독을 가능케한 주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베를린장벽 개방을 단행한 에곤 크렌츠 전 동독 공산당서기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당시 소련이 자신의 장벽개방조치를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통독을 기본적으로 「유럽공동의 집」이란 큰 테두리안에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소련의 이러한 입장변화가 없었다면 통독은 사실 극히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독일국민들이 한 역할이야말로 통일을 이루어낸 결정적인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키 어려울 것 같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공로자들은 지난해 5월부터 반년여에 걸쳐 서방으로 탈출해나간 수십만의 동독시민들이다. 전재산과 생활기반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떠남으로써 이들은 가까이는 베를린 장벽을 허물어냈고 멀리는 흡수통합이라는 독일형 통일방식의 기틀을 잡은 셈이 됐다. 이들의 탈출은 동독의 사회주의 40년이 실패했음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준 드라마였다. 10월과 11월 동베를린,라이프치히 등 동독 전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또한 통독과정의 큰 분수령이었다. 수많은 반정부 단체들이 지하활동을 계속했고 동베를린의 알렉산더광장에서는 매주 월요일이면 공산당 타도집회가 개최됐었다. 반정부 집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통일을 외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길거리에서 공산당 타도와 통일을 외치는 국민들의 요구는 동독정부는 물론 주변국 누구도 대항키 힘든 큰 힘을 보여주었다. 역사는 소수의 지배층이 아니라 국민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동독국민들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동독국민들은 지난 3월 분단 이래 처음 실시된 자유총선에서 조기 통일을 슬로건으로 내건 우파연합에게 50%에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를 보냄으로써 통일과정을 다시 한번 앞당겨 주었다. 당시 우파연합의 압승에 대해 장벽개방 후 날로 악화되는 경제사정에 지친 동독국민들이 서독 마르크화를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들이 많이 나왔었다. 동독 마르크를 가능한한 1대1의 비율로 서독 마르크로 바꾸어 주고동독경제의 조속한 부흥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콜 서독총리의 지원유세가 크게 주효했다는 설명도 나왔다. 그러나 동독 유권자들이 공산정권을 몰아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재야세력까지 제치고 우파연합에게 표를 몰아준 데는 이러한 경제적인 고려뿐만 아니라 당시 국내외 정세의 호기를 놓치지 않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민족적인 공감대가 그들 사이에 널리 퍼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통독과정에서 동독국민들이 보여준 이러한 적극적인 역할을 근거로 어떤 학자들은 통독을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것이 아니라 「가입」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민족자결의 원칙에 입각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통일을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을 꾸준히 마련해온 서독정부의 노력도 크게 돋보인다. 서독은 독소 불가침조약,1975년 헬싱키 선언,그리고 동서독 기본조약 등에서 이 원칙을 관철,국경선이 민족자결 원칙에 입각해 평화적으로 변경(통일)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로 인해 통일은 서독 기본법 23조에 의거,동독이 서독으로의 편입을 선언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됐다. 인적ㆍ물적 교류를 통해 사회적인 통합을 이루고 그 다음 경제통합,마지막으로 정치ㆍ군사통합을 이룬다는 서독의 기능주의적 통일정책이 결실을 맺었다고도 할 수 있다. 초기 서독정부의 통일정책은 이산으로 인한 양쪽 국민들의 인간적인 고통을 줄이기 위한 인적 교류에 모든 역점을 두어 왔었다. 동방 정책입안자들은 일찍이 동독정부는 통일을 원치 않지만 동독 국민들은 통일을 원한다고 판단,이같은 인적교류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72년의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이러한 인적,물적교류는 꾸준히 증가돼 왔다. 물적교류는 사실상 서독의 동독에 대한 경제원조의 성격이 강했다. 서독은 주택,도로건설,환경보호 등 앞으로 동독의 재건에 소요될 수천억 달러 상당의 소위 통일비용도 선뜻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동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독의 튼튼한 경제력 또한 통독의 무시못할 공로자인 셈이다. 독일의 분단은 지난 40여년간 동서냉전의 상징같은 성격을 같고 있었다. 이 냉전이 와해돼가는 과정에서 서독은 끝까지 소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소련의 경제재건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고 동독 주둔 소련군의 철수비용까지 부담하겠다고 했다. 중부유럽에서 거대 독일의 등장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주변 국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도 돋보인다. 폴란드에 대해서는 현 독일­폴란드 국경을 준수키로 약속했다. 독일의 분단이 그랬듯이 독일통일도 넓게 보면 유럽 내지 세계질서의 큰 테두리 안에서 그 단서가 잡힌 것임을 부인키 어렵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역시 돋보이는 것은 이 주변 정세의 호기를 놓치지 않고 통일로 연결시켜낸 독일민족 내부의 힘이다. 이 힘을 바탕으로 앞으로 이루어낼 독일민족의 「제2의 도약」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역사속으로 사라진 동독 41년

    ◎국민소득 8천4백억불… 동구최강 공업국/73년 서독과 유엔가입,1백30여국과 수교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건국 41돌을 불과 나흘 앞둔 1990년 10월3일 0시를 기해 역사속으로 영원히 사라진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독일이 탄생함에 따라 동독은 지도상에서 다시는 찾아볼수 없게 된 것이다. 나치독일이 2차대전에서 패망한후 동독땅에 재빨리 진주한 소련군이 49년 10월7일 수립한 공산정권,동독은 40여년의 냉전시대를 살며 완고한 공산주의의 아성이었다. 정통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집착,사회 구석구석에 그림자를 드리운 비밀경찰 그리고 철저한 강압통치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 등은 그동안 동독을 대표해오던 표상이었다. 엄격한 계획경제와 국민의 복종을 대가로한 동독경제는 한때 1천6백50만 동독인들의 생활수준을 동구 최고로 끌어 올렸고 국제스포츠무대에서는 스포츠 강국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민총생산 1천7백49억달러,1인당 국민소득 8천4백달러로 생산성과 생활수준은 동유럽 제 1위. 동유럽에서 소련ㆍ체코와 더불어 가장발달된 공업국이며 세계 10대 강대국이기도 했던 동독은 86년 4월의 제11차 당대회에서 공업 22∼24%,실질임금 21∼22%등을 증가시키기 위한 경제 5개년계획(86∼90)을 채택하기로 했다. 마셜플랜의 원조로 자립기반을 닦은 서독과는 달리 프러시아적인 맹렬기질로 전쟁의 페허위에 공장을 짓고 아파트를 세웠던 동독은 59∼60년에는 다수의 숙련 노동자들이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61년 8월 베를린장벽을 구축했다. 소련과의 밀착을 외교의 기본으로 삼아 동유럽 공산국가 중에서도 가장 소련에 충실한 나라였던 동독은 50년에는 코메콘에,55년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맹하여 유력 멤버로서의 소임을 다해왔다. 그러나 대 서독관계가 호전되기전인 71년 이전까지 국제무대에서는 외교적으로 겉돌았었다. 그후 73년 서독과 더불어 유엔에 가맹하였으며 지금까지 1백30여개국과 국교를 수립,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동독의 뿌리는 45년 나치가 연합군에게 항복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에서 교육을 받은 일단의독일공산주의자들이 전쟁중 베를린으로 들어와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비롯된다. 울브리히트는 49년 독일땅에 세워진 최초의 「사회주의노동자ㆍ농민국가」의 지도자가 됐으며 그는 토지개척과 주요공업의 국유화를 통해 전후동독을 부흥시켰으나 71년 실각됐다. 그후 에리히 호네커가 후임자로 당서기장에 피선돼 18년동안 집권했다. 동독에 반체제세력이 자라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화주의경제의 취약점이 드러나고 서독과의 현격한 격차가 생기면서 부터 였다. 그러한 국민의 불만속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지난해 10월7일 동독건국 40주년에 즈음해 동독을 방문,호네커 서기장에게 「개혁」을 권고한것이 시민봉기의 도화선이 됐다. 시민봉기로 호네커가 실각하고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순간을 맞는다. 후임자인 에곤 크렌츠서기장은 이어 베를린장벽을 포함한 전국경의 개방을 선언,동독은 스스로 소멸의 길을 택했다.
  • 북방외교의 최대 결실/한·소 수교 공동성명 발표의 의미

    ◎한반도 긴장완화의 새 받침대/한·중 관계개선도 급진전될듯 한소 외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첫 공식회담에서 양국간 국교수립에 관한 공동코뮈니케 서명·발표 사실은 우리 외교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북방외교의 종착역이 대소 수교인 데다 양국간의 관계정상화는 앞으로 국제정세,특히 동북아 질서재편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소 수교는 우리 북방외교가 큼직한 결실을 거뒀음을 뜻한다. 또한 양국 수교는 화해와 협력이라는 탈냉전·신데탕트 사고를 동북아에서 다시한번 입증,실천하는 외교적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수교는 특히 지난 6월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간에 한소 수교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지 4개월여 만에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한소 수교는 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활발한 접촉을 벌이고 있는 한중간의 관계개선에도 매우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관계개선 문제에 있어 소련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왔던 중국으로서도 한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자체 내부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형상 「하나의 조선」 논리를 포기한 북한의 대일 수교협상 제의는 한중 관계개선과 맞물려 돌아간다는 측면에서 한중 관계가 지금보다는 빠른 행보로 급진전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중 양국이 오는 16일부터 영사기능을 부여하는 무역사무소를 교환설치키로 한 것도 양국 관계의 급진전을 예고하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한소 수교는 또한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의 비망록 공개에서도 드러났듯이 단기적으로는 소·북한 관계의 급속냉각으로 남북 관계에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남북 관계개선과 이에 따른 한반도 긴장완화 및 평화통일 분위기 조성에 상당부분 기여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도 주변상황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냉엄한 국제현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보이며 단적인 증거가 바로 일·북한 관계개선 움직임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따라서 한소 수교는 이같이 남북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과 함께 정치적 측면에서도 소련이 더이상 북한 편향적인 사고방식을 취하지 않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남북한을 공평하게 바라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소 수교로 양국은 이제 『상주대사관을 언제 설치하고 대사를 누구를 임명하는지』 등에 관한 실무문제만 남은 셈이며 양국 정상간의 교환방문 문제에도 아무런 걸림돌이 없게 되었다.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양국 정상 교환방문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으나 빠른 시일내 추진하는 데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아 노 대통령의 연내 소련 방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의 방한도 내년 봄으로 예정된 일본 방문을 전후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소 관계는 수교를 분기점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제협력분야는 소측에서 강력히 원하고 있는 만큼 수교에 곧이어 체결되는 투자보장협정·2중과세방지협정등 대소 투자에 따른 안전보장책이 마련되는 즉시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 같다. 때문에 오는 10월26일쯤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제2차 한소정부대표단회담에서는 이들 협정에 대한 마무리와 함께 우리측이 제공할 대소 차관규모를 최종 확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이 최근 들어 이처럼 대한 수교를 서두르고 있는 데는 소련 경제의 심각성,북한과의 일정한 거리유지,아·태지역 특히 동북아지역에 대한 영향력 행사 등이 주요 동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소련입장에서 이번 수교를 보면 꾸준하게 경협파트너로 의사를 타진해봤던 일본이 지나칠 정도의 이해타산만을 추구하자 이같은 일본의 태도에 실망감을 느낀 나머지 한국과 꾸준한 접촉을 한 결과 『그래도 한국은 경협파트너로서 믿을 만하다』는 최종 판단을 내리고 한국측의 「선수교 후경협」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소련은 외교적 무례를 일삼는 북한에 대해 식상한 데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그동안의 자세를 포기하고 대한 수교를 강행한 것으로도 생각된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대한 수교를 통보하기 위해 지난 2,3일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밝힌 북방 4개 도서에 대한 일본측 입장지지 및 소련내 15개 공화국의 분리자치독립과 이들 공화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의사 천명 등은 소측에서 볼 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소련이 최근 셰바르드나제 장관을 통해 오는 93년 아·태외상회담을 제의한 것이나 아·태지역의 경제협력체인 APEC(아·태각료회의)에의 가입의사를 계속 피력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태지역에서의 확실한 위상확보전략에서 연유한다. 결국 이번 한소 외무장관간의 뉴욕회담은 양국간 실질협력을 위한 「기반 다지기」를 충분히 달성했으며 북방외교의 또다른 목표인 중국과의 관계정상화 및 남북 관계개선,나아가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세계 거의 모든 외상들이 모여 있는 유엔본부에서 한소 수교를 공식 발표했다는 사실은 다른 유엔회원국들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음은 물론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한껏 과시한 것으로도 평가된다.〈유엔본부=한종태 특파원〉
  • 유럽중심부에 거듭난 「게르만」

    ◎1990년 10월3일 통일… 새독일의 위상/인구 8천만ㆍGNP 1조3천억불의 부국/향후 10년간 국부 두배로… 「제2기적」 기대 1990년 10월3일 0시. 동서로 갈리어 반세기를 살아온 게르만민족이 45년만에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통독은 전후 미소를 축으로 한 냉전체제의 종언이자 새로운 탈냉전시대를 출범시키는 출발이기도 하다. 이제 독일 민족은 지나간 분단의 세월속에 쌓인 한과 고통을 라인강물에 띄워보내고 흑적황 3색의 독일깃발을 다시 유럽 복판에 세우는 환희의 순간을 맞고 있는 것이다. 통독은 유럽,나아가 세계질서의 재편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동구와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당체제붕괴에 이어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와해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며 NATO의 기능도 군사조직에서 정치조직으로 변모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하나의 유럽」을향한 국제질서 재편작업이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렇다고 통일독일의 장래가 모두 장미빛으로 밝은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넘어야할 고비가 많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1년도 못돼,그것도 수십만명의 미국과 소련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통독을 실현시킨 패전 독일민족의 능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회는 실로 착잡하다. 이같은 역사적 순간을 맞아 서울신문은 김진천 파리특파원과 이기백 정치부기자를 역사의 현장에 특파,통독과정을 살펴보고 유럽의 새질서 태동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인구ㆍ영토◁ 통일독일의 인구는 서독의 6천1백만명과 동독의 1천6백60만명을 합해 총 7천7백60만명. 1억명 이상의 10개국과 8천3백만명의 멕시코에 이어 세계 12번째 인구대국. 영토는 서독의 24만8천7백6㎢와 동독의 10만8천3백33㎢를 더한 총 35만7천39㎢로 한반도(22만1천㎢)의 약 1.6배 크기. 2차대전 패전으로 폴란드영토가 된 오데르∼나이세강 동쪽의 실레지아 등 10만3천㎢의 옛독일땅에 대해서는 통일후에도 영토권을 주장하지 않기로 약속된 상태. 수도는 베를린으로 결정됐으나 현재 본에 위치한 행정부가 옮겨갈지 여부는 추후 논의대상이다. 국기ㆍ국가ㆍ국명 등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합되는 만큼 서독것을 그대고 쓰되 동독인들의 자존심을 고려한 추후변경여부는 미지수. ▷역사◁ 지난 4세기 발트해연안 및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살았던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독일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독일민족은 중세에 들어서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상태를 지속,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으며 철혈재상인 비스마르크가 등장,1871년 독일제국이 탄생됐다. 제1차대전의 패배로 제정은 무너졌으며 바이마르공화국시대(1919∼1933)로 들아갔으나 소당분립,정쟁격화 등으로 혼란이 계속되던중 1933년 히틀러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게르만 제1주의를 내걸며 사상최대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1945년 패전으로 독일은 동서독으로 분단의 길을 걷게 됐다. 서독은 동독과 수교한 국가들과는 외교관계를 맺지않는다는 냉전시대의 할슈타인원칙을 표방했었으나 브란트전총리는 지난 1969년 집권한 뒤 동방정책을 표방,상호교류를 확대시켜 오늘의 통일을 이룬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동서독은 72년 기본조약체결,73년 유엔동시가입,74년 상주대표부 설치를 거쳐 80년대에는 양국정상의 상호방문이 실현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동서 데탕트와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동구권의 민주화열기로 지난 61년 구축됐던 베를린장벽이 철폐됐고 지난 7월 통화통합으로 사실상 통독이 가시화됐다. ▷국내정치◁ 통일과 동시에 동독정부 및 의회는 소멸되며 오는 12월2일 전독총선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현서독정부가 계속 집권한다. 다만 총선전까지 동독지역의 대표성을 인정하기위해 메지에르 총리등 독독 지도자들이 서독 행정부에 무임소장관으로 기용되며 4백명의 동독인민의회의원중 인구비례에 따른 1백44명이 서독연방의회(하원)에 자동진출한다. 전독총선에서는 상원 56석(서독지역 41,동독지역 15)과 하원6백85석(서독지역 5백41,동독지역 1백44)의 임자를 가려 하원의 다수당이 통일독일의 명실상부한 초대 집권당이 된다. 동서독의 집귄기민당을 비롯,사민ㆍ자민당 등은 이미 전독총선에 대비해 정당통합절차를 마쳤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결과를 놓고 볼때 기민당을 주축으로 한 중도우파연정이사민당의 인기도를 훨씬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통독후 총선까지 2개월 사이에 극심한 경제혼란 등 이변이 없는 한 콜 서독총리의 초대 독일재상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 통독을 가능케 한 주요인이 서독의 경제력 때문이라는 분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막강한 서독의 경제력은 동독과의 통합으로 더욱 힘을 발휘하여 마르크화의 위력이 유럽을 강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독은 지난 89년 총GNP(국민총생산)에서 1조2천억달러를 기록,미국 소련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제대국으로 통일을 계기로 경제전망이 더욱 밝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독은 EC(유럽공동체) 총생산량 가운데 25% 정도를 점유하고 있으나 서독경제력의 10%수준인 동독을 흡수,30%선을 상회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통독은 단순합계로 현상태에서 유럽내 라이벌인 프랑스 영국보다 경제력에서 50∼80%를 능가하게 됐다. 서독은 EC의 대 동구 및 소련교역량 가운데 3분의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동구권내에서우수한 공업국인 동독을 흡수함으로써 이지역을 기반으로 하게될 경우 대 동구 교역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동구는 독일의 영향을 받아 위성국으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을 정도이다. 반면 서독은 통독으로 낙후된 동독을 희생시켜야 하는 책임을 맡게되어 통일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서독정부는 지난 5월 1천1백50억마르크(약 7백억달러)의 통일기금을 조성키로 했으나 동독을 서독의 수준으로 상향평준화시키기 위해서는 모두 1조∼2조마르크가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독정부가 앞으로 10년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동독의 철도 도로 전신 등 기간산업에 투자하고 동독의 실업자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려면 이와 같은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독의 8천여 국영기업 가운데 이미 20%가 서독과의 경쟁에서 도태됐으며 30%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서독은 동독의 1백50억달러에 이르는 외채를 청산해야 하며 올 하반기에만 3백30억마르크의 예산적자가 예상되는 등 열악한 동독재정을 떠맡아야 할 입장이며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비용 및 통일에 대한 보답으로 1백80억마르크를 지불키로 되어있다. 그러나 현 동독경제의 상태 및 막대한 투자재원부담이 통독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서독은 지난 88년 7백억달러의 국제수지흑자를 기록하는등 외환보유고 세계 2위의 부국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원은 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고 있으며 대 동독투자로 1백여만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독이 90년대를 통해 연평균 7∼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현재의 GNP보다 배로 확대돼 제2의 라인강의 기적이 동독에서 만개하게 될 것이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군사력◁ 서독의 48만8천7백명과 동독의 17만2천명을 합해 통일독일의 총병력은 66만명인 것으로 돼 있지만 민주화이후 동독군의 탈영이 속출해 실제병력수는 이보다 다소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통일독일은 군대를 37만명이하로 유지하고 화생방무기를 생산하거나 보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여서 통일후 절반 가까운 병력감축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 “희망과 경계의 통일”… 엇갈린 시각(새 독일 탄생:1)

    ◎「경제ㆍ군사대국」의 강풍이 분다/세계질서 재편의 축으로 부상/6번째 유엔상임국 확실… 영향력 신장/“제국출현” 우려속 “유럽통합 가속” 기대 10월3일 0시. 동서독이 공식 하나로 통일되는 이 시각,독일 전역에는 일제히 폭죽이 터질 것이다. 거리를 메울 시민들은 전통적인 뿔피리를 불어대며 밤이 새도록 게르만민족의 하나됨을 경축할 계획이다. 특히 냉전체제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에서는 브란덴부르크문 주변과 운텐 덴 린덴가를 중심으로 2일부터 4일까지 밤낮으로 이어질 통일축제가 벌어져 반세기 분단의 아픔을 씻어버린다. 독일은 지난 7월1일 경제ㆍ사회통합에 이어 동서독이 8월31일 체결한 「통일조약」에 따라 3일 0시에 독일민주공화국(GDRㆍ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FRGㆍ서독) 헌법 제23조에 의해 정치적으로 FRG에 흡수통합 됨으로써 내부적인 통일과정을 모두 마무리 짓게 된다. 이로써 지난 45년동안 사회주의를 추구해온 동독이라는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같은 기간동안 시장경제로 힘을 키워온 서독을 모태로 한 통일독일인 「독일연방공화국」이 유럽중심부의 새로운 국가로 등장,유럽의 새 질서를 추구하여 세계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이 발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분산되었던 독일의 국력은 통일을 계기로 동유럽을 포함한 유럽 경제권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2개국으로 구성된 EC내에서 서독은 지난해 총 수출의 30%,자동차 생산의 35%,철강생산량의 26%,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전체적으로 대략 25%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다 동독 편입으로 성장잠재력이 가세될 경우 통일독일의 EC내경제점유율은 33∼35%까지 올라가게돼 「경제패권주의」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독일경제력의 팽창은 EC국가들 뿐만 아니라 동구의 각국에도 기대감과 더불어 우려감을 동시에 갖게 하고 있다. EC국가들은 92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유럽단일시장화에 구동독이 합류함으로써 2차대전 후 지속되어온 동서의 냉전상태가 종식되었고 유럽내에서 동구라는 블록이 와해되었으므로 대유럽통합이라는 궁극의 목표를더욱 조속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은 경제초강국 독일로부터 그들의 피폐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80년대 중반이래 동구의 민주화물결 이후 이들 국가들은 사회ㆍ정치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해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더욱 피폐해져 독일의 경제적 지원을 고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동독국민들의 서독으로의 탈출을 계기로 독일통일이 가속력을 붙게 한 것도 미ㆍ영ㆍ불ㆍ소 등 승전 4개국중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소련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를 승인한 것이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소련은 그동안 콜 서독총리와의 독일통일협상 과정에서 38만여명에 이르는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비 명목으로 1백20억마르크(76억달러)를 받아내기로 한데 이어 지난주 30억마르크를 추가로 지원받기로 하는등 경제적인 실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분위기다. 소련은 최대의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당초 통일독일의 나토잔류를 반대하다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에의 동시가입으로 물러섰으며 결국은 나토가입만을 허용하기에 이르는등 협상과정에서 모든 것을 내주면서 최대한의 실리만을 추구해왔다. 물론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된 내부적 원동력은 서독의 민주주의의 실현과 경제적 성공,그리고 국민들의 잠재적인 통일열망 등을 기반으로 해 80년대 초반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에서 싹튼 동구권의 민주화운동이 동구제국에서 연속적으로 일당독재체제를 붕괴시키면서 결국 동독공산당의 몰락에 다다른 것이 큰 계기였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볼때 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측면이 많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비대한 관료조직과 더불어 비현실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에 의해 너무나 허약하게 무너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사회주의국가중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알려졌던 동독의 경우 그동안 생산관리나 품질향상 등 경제의 기초개념보다는 완전고용과 균등배분에만 주력,실업이 전무하다시피 했으나 결국 그것이 모양새만 그럴싸한 허수아비임이 드러났다. 한편 세계대전을 두차례나 저지른 독일의 재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의구심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독일은 이같은 주변국의 우려와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통일독일이 나토와 EC의 틀안에 남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진정한 EC의 정치적 통합에 기여하겠다는 점을 다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오는 3일의 통일에 이어 14일 동독지역에서의 주의회 선거를 실시해 사회주의 국가시절 폐지됐던 5개주 주의회를 다시 만들어 연방정부에 가입하는 한편 오는 12월2일 총선거를 실시해 연방의회(Bundestag)를 구성하는 등 정치일정을 차분히 추진해 나가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말까지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독지역 재건에 국력을 총집중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유력시 되는 헬무트 콜 서독총리가 전승 4개국 수뇌들과 주변국 수뇌들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통일독일이 평화와 자유의 나라가 될 것이며 제4제국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약속을 지켜 나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독일은 EC와 나토,그리고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등 국제협렵체제의 테두리 안에서활동할 것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6번째 상임이사국으로 가입돼 국제적인 중요한 문제의 결정에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상임이사국이 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소련은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위기를 조정하는데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통일독일의 국제적인 부상과 책임분담은 이제 마지막 냉전의 산물로 남아 있는 한반도문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 방향은 긍정적인 쪽일 것이라는 것이 전체적인 평가이다.
  • 북한­일본의 「수교행보」를 보며…(세평)

    ◎북방정책­남방정책의 접점 찾을 때/한반도 안정과 통일에 긍정적 변수로 이끌어야 일본과 수교협상을 제의한 북한의 갑작스런 태도변화는 놀라움과 충격을 넘어 당혹감마저 느끼게 한다. 북한이 그토록 오랫동안 성역처럼 외쳐대던 교차승인불가의 원칙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무너져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당혹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북이 일본에게 수교제의를 하면서도 「조선은 하나」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조선이 하나이기 때문에 교차승인을 반대해왔고 유엔에도 동시가입이 아니라 단일가입을 주장해왔었다. 그런데도 사실상 교차승인을 결과할 제의를 하면서 자가당착의 주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왜 이렇게 갑자기 앞뒤가 맞지 않는 방향선회를 결심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소수교가 박두한 지금에 와서 북한이 소련과의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는 이상 소련과 남북한은 교차승인의 상태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이 동구국가들과 수교했을 때 북한은 이들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격하시키는 방법으로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소련의 경우에는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북한이 아무리 주체성이 강한 국가라해도 소련과의 관계를 격하 또는 단절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북한의 입장을 충실하게 지지해온 중국마저 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한국과의 관계개선 의사를 굳히고 있다. 당장 정치관계로 발전되지는 않는다 해도 사실상 정치적 성격을 띤 연락사무소의 설치가 실현되면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완벽에 가까운 상황이 된다. 이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현실에의 점진적 적응이 아니라 현실을 대폭적으로 수용하는 과감한 정치적 변신일 수밖에 없다. 점진적 적응을 택하기에는 안팎의 정세변화가 너무나 급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일성만이 지금까지 북한이 고수해 온 기본입장을 뒤집는 극적인 방향전환을 결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일본을 수교의 대상으로 택한 데에는 경제적 이유와 정치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 북한의 경제는 한마디로 더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평양에 살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선택된 일부를 제외하면 북한주민의 대부분이 식생활의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대외채무가 60억달러에 가까워 이미 국제적으로 파산선고를 당했고 대외수지적자도 매년 1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어 더이상 견디기 힘든 실정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9월2일 평양에 온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상은 북한이 소련에서 수입하는 원유대금을 지금까지 해온 현물결제 대신 경화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국제시세보다 25%나 싸게 하던 것도 점차 인상하겠다고 통고했다. 북한이 위기타개를 위한 돌파구 마련이 필요했다는 점은 더이상의 논증을 요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미국보다 일본이 북한에게 부담이 적고 손쉬운 상대였다. 미국은 휴전 당사자이며 주한미군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수교제의를 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있어 남북 관계개선과 북한의 핵안전협정 서명 등 구체적 조건들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는 거북한 상대인 것이다. 물론 북한의 수교제의가반드시 북한의 대외정책 특히 대남정책의 중대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곤경을 타개하기 위한 일본의 돈이다. 배상금이든 청구자금이든 명목이야 어쨌든 일본에서 받아올 수 있는 돈이 40억달러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기 때문에 김일성으로서는 대단히 매력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교 이전에 배상문제가 타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김일성도 잘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조선은 하나라는 주장을 하면서도 사실상 교차승인의 원칙을 수용해 버린 것이다. 이제 한반도에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것이 갖는 구체적 의미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게임규칙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전개되는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는 한마디로 세력균형의 정치라 할 수 있다. 냉전시대를 통해 존재해온 진영정치가 퇴색하고 그대신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 실리에 따라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균형정치의 시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남북한 관계는 주변국가들과의 세력균형에 의해 그 구체적 전개양상이 영향받게 될 것이다. 남의 북방정책이 진영정치의 일각을 무너뜨린 것이라면 북의 남방정책이 진영정치의 나머지 부분을 깨뜨리고 있는 셈이다. 북방정책과 남방정책이 주변의 역학관계 속에서 경쟁함으로써 남북한관계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북방정책의 열기에 휩쓸려 남방정책에 다소 소홀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북방정책이 북의 남방정책을 유도했고 이것이 한반도 안정과 통일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긴 하지만 새로이 전개되는 세력균형정치의 시대에 대비하는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19세기말 우리가 경험했던 쓰라린 실패의 되풀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본사 논평위원 정종욱 서울대교수·정치학〉
  • 안보환경 변화와 국군의 위상/건군 42돌 세미나 중계

    ◎“군개방ㆍ민주화로 「국민의 군대」 발돋움”/사회갈등 해소로 정치개입 소지 없애야/국제정세 불확실,「공세적 방어전략」 필요/북한 핵무장 따른 대응수단 선택 신중히 한국국방연구원(원장 황관영)은 27일 건군 42주년을 맞아 「안보환경변화와 국군의 위상 및 과제」라는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가졌다. 한국사회과학원 원장 김경원박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학술토론회에서 연세대 김달중교수는 「안보환경의 변화와 국군의 과제」,유사 온창일 교수는 「군군의 자주화 및 정예화」,상명여대의 조성대교수는 「민군관계와 국군의 사회적 위상」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 세 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안보환경의 변화와 국군의 과제(김달중교수)=90년대의 국제정세는 냉전요소와 탈냉전요소,과거와 미래,순기능과 역기능,기회와 위협이 공존 혼재하는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특징적으로 부각되며 국제안보 측면에서도 동서진영의 군사적 대결보다는 협력,봉쇄보다는 개방,절대안보대신에 공동안보,군비경쟁대신에 군비통제로의 전환추세가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의 주변 안보환경의 변화내용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냉전질서의 변화와 그에 따른 미소의 전략적 이해관계의 조정국면으로서 소련은 「군축」과 「비핵화」라는 대 한반도전략적 접근방식을,미국은 전통적인 「전진기지 방위전략」의 수정국면에 따른 주한 미군 3단계 철수안을 가시화시키고 있다. 이에 따른 한국안보와 국군의 당면과제는 ▲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의 기초인 가상적설정에 대한 장기적 총체적인 접근 ▲포괄적 안보개념의 필요성 ▲대 북한 군사력 균형을 위한 이중적 접근의 필요성 ▲한미 안보협력체제의 변화에 따른 한국방어의 한국화 특히 주한 미군 규모 및 역할조정에 따른 작전지휘권의 환원문제,방위비 분담문제,휴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데 따른 제반정책의 수립,국방관리체제의 전환 등이다. ◇국군의 자주화와 민주화(온창일교수)=국군의 자주화 정예화를 민족의 생존을 위해 통일이 되기전이든 후이든간에 무형적 요소별로 진행되어야 한다. 개인의 체력ㆍ담력ㆍ의지ㆍ전투기술뿐만 아니라조직의 효율성ㆍ생동감ㆍ비경직성ㆍ융통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요소의 자주화,정예화는 실로 끝이 없다. 통일전의 군사전략개념은 공세적 방어가 적합하며 통일후에도 수세적 방어가 적합하다고 본다.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본보기는 스위스와 스웨덴,그리고 일본의 예를 들 수가 있다. 전쟁지도체제는 위협을 정확히 분석하고 이에 대처해야 할 수단을 적절하게 선정할 능력이 있어야하며 일단 군사적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면 군사지휘체제는 신속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화생무기를 가진 북한이 핵무장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현상태에서 이에 대한 독자적인 대응수단을 보유해야할지 미국에 의존해야할지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수세적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는 나라의 거의 대부분이 비핵수단에 주로 의지하고 있다. 자주화의 수준을 결정함에 있어 어떠한 종류,어떠한 수준의 위협을 우리 자위력으로 막고 그 이외의 것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정해야 한다. ◇민군관계와 국군의 사회적 위상(조성대교수)=한국의 민군관계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문민우위시대(1948∼61)와 군부우위시대(1961∼87)로 대별할 수 있다. 문민우위시대는 정부수립 이후부터 민주당정권까지로 문민이 군부우위에 존재했고 군은 문민의 통제 감독하에 직업주의에 따른 대외적인 국방업무만을 전담했고 군엘리트의 정치권 참여도 미미했다. 군부우위시대는 5ㆍ16 군사혁명 이후 제5공화국까지의 시기로 군부가 문민의 우위에 존재하며 민을 통제감독한 시기이다. 초기 군부우위체제는 성공적인 경제개발을 통해 긍정적 민군관계를 가졌으나 말기에는 유신체제에 의한 억압적인 장기집권과 10ㆍ26 이후 군부의 재등장으로 부정적 대군의식을 초래했다. 군의 사회발전기여는 순 기능적 역할로는 산업화의 성공적추진,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국가안보체제의 확립 등을 들수 있으며 역기능적 역할로는 민주화의 지체,군의 정치개입과 독재유산,민군간의 위화감 조성 등을 꼽을 수 있다. 바람직한 민군관계를 위해서는 민과 군이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하며 민은 군의정치참여요인을 배제하고 비판과 비난을 삼가 군을 궁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내에 증폭되는 갈등ㆍ불화ㆍ대립을 해소시키면서 국민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조성해야 한다. 군을 전문화해 전문직업집단으로 양성시키고 군의 정치적 중립화를 제도적인 장치로 보장하며 군을 국민에게 개방하여 군민화합을 꾀하고 군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기초한 민주화를 이룩하는 것이 필요하다.
  • 소 외무의 무력사용 경고(사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5일 이라크와 이라크 점령하의 쿠웨이트에 대한 공중봉쇄 결의안을 채택,인도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 두 나라를 왕래하는 모든 승객과 화물의 공중교통을 차단했다. 안보리 결의안은 지난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강점한 이후 8번째의 것이다. 앞서의 7개 결의안 가운데 그나마 효력을 발생한 것은 인질석방에 관한 대목으로 이라크는 일부 부녀자와 어린이를 풀어주었을 뿐이다. 해상봉쇄는 점진적으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는 되지만 당장 뚜렷한 성과는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따라서 공중봉쇄는 지금까지의 대이라크 제재를 한층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유엔의 6백70호 결의안인 공중봉쇄는 모든 회원국에 대한 그들의 영토로부터 이라크와 쿠웨이트로 향하는 항공기의 취항을 금지하고 이들 양국에서 오는 항공기의 착륙을 거부하는 것이 뼈대다. 이번 조치로 이라크는 유엔 결의안상으로는 지상ㆍ해상ㆍ공중을 통한 식량 등 물자수송을 전면 차단당하게 돼 완전 고립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공중봉쇄의 실효성이 의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기항로가 사실상 막혀 있기 때문에 이라크의 유일한 대외 정기항로인 바그다드∼암만 노선을 끊어놓는 의미가 있는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조치가 함축하고 있는 뜻보다는 미소 두 강국이 유엔총회를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사태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며칠전 대이라크 군사행동을 위해 유엔의 승인을 요청할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무력사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국제적인 공통인식을 찾게 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이를 뒷받침했다. 그런가 하면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25일의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유엔은 이라크에 대해 침략행위를 진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강점이 계속될 경우 무력이 사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발언은 과거 소련의 맹방이었던 이라크에 대한 전례없이 강력한 경고로 평가되고 있다. 대이라크 무력사용이 유엔헌장 테두리 안에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는 있지만 소련이 군사행동을 공공연히 거론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미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소의 공동대응이 헬싱키 정상회담 이후 흐트러지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은 유엔을 통한 군사행동에 관해 이견을 보여온 게 사실이다. 소련은 유엔기 아래의 다국적군 운영을 희망해온 데 반해 미국은 미군사령부 휘하의 단일명령계통을 주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베이커나 셰바르드나제의 유엔 승인하의 무력사용 구상에는 해결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두 강대국이 평화적인 해결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질서가 계속 위협을 받게 될 경우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장을 같이하는 것은 「공통의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냉전 이후 신세계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최근 여러 성명을 통해 쿠웨이트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미 공통인식을 구축한 국제여론의 새로운사태발전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 유럽은 통독을 필요로 하는가/유럽전문가 토론회

    ◎“통일독일은 유럽평화의 안전판이다”/동구 민족분쟁 해소의 본보기 제공/경제대국으로 「세계의 짐」분담 마땅 동서독의 통일을 앞두고 독일통일과 관련된 유럽전문가들의 대토론회가 유럽주요 언론사들의 공동주관으로 25일 파리에서 열렸다. 「유럽은 독일을 필요로 하는가」「독일 초강국」「외부위협」 등을 주제로 한 이번 토론회에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행한 것을 비롯,자크 들로르 EC 집행위원장,A 야코블레프 소련 대통령보좌관,독일의 대표적 작가 귄터 그라스 등 유럽의 정치ㆍ언론ㆍ문인들이 참석했다. 파리 라 데팡스 소재 커뮤니케이션 센터(CNIT)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독일통일의 긍정적 측면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은 과거에 대한 교훈,도덕적 사명감,그리고 경제대국으로서 세계문제에 대한 책임분담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기조연설=독일의 완전한 통일은 1년안에 이뤄질 것이며 통일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열망」이자 현실화 될 수 밖에 없는 합당성을 지니고 있다. 독일의 통일이 평화적이며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프랑스는 통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통일이 신속히 이뤄진다면 이는 독일 정치지도자들이 조기통일의 실현을 위해 부딪칠 수 있는 모든 어려움들을 미리 유념했기 때문이다. 통일에는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오데르­나이세강의 국경문제,독일주둔 4개국군의 철수방식,생화학 핵무기에 대한 독일의 포기,동독령의 나토 및 EC에 대한 편입 등이며 이들 문제는 논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또 4+2회담에 폴란드가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통일독일이 보다 강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자크 들로르 EC 집행위원장=나는 독일의 통일을 가장 먼저 지지하고 나선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경제적 팽창주의와 궁극적인 게르만 패권주의의 위험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게 사실이다. 독일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특히 유럽국들을 상대로 무역흑자의 7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독일 GNP의 4∼5%에 해당하는 만큼의 재정적자를 초래하는등 많은 어려움을 안겨줄 것이다. 독일의 경제 팽창주의는 다른 유럽국들도 보조를 맞출지 모르지만 계속될 것이며 유럽이 독일통일을 실기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통일독일은 대유럽의 안정요인이다. 또 독일은 더 이상 영토상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동구민족주의자들간의 분쟁을 해소하는 데 하나의 본보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 ▲발렌틴 팔리네(소련 공산당중앙위 서기)=독일통일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며 유럽과 독일에 대한 하나의 기회이기도 하다. 독일통일은 또 「선린」의 차원에서 우방 및 소련과의 관계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독일을 신뢰하고 있으며 이제 냉전은 사라졌다. 오늘날 소련은 종전의 입장을 수정,동구로부터 군사력을 철수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유럽 일가내에서의 모든 군사적 고려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소련의 이른바 신사고는 바로 이같은 상황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예전과 다르며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유럽에 새로운 질서가 점차적으로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하나의 경제대국이 출현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독일의 통일은 유럽의 통합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것이며 결과적으로 EC는 통합에 진전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M 클로소프스키(폴란드 상원의원)=독일의 유럽에의 통합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보장이다. 독일통일은 매우 중요하며 콜 서독 총리의 제의는 긍정적인 것들이다. 폴란드는 과거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만 했던 소련과 마찬가지로 통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새로운 상황에서의 보장을 위해 독일의 나토 잔류를 지지한다. 또 폴란드는 EC가 독일과 소련사이에 위치한 1억5천만 인구의 중구에도 동일한 정책을 시행해 주기를 희망한다. 이들 중구의 EC통합은 전유럽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보장이 될 것이다. ▲L 스파트(서독 바덴뷔스템베르크주 총리)=통독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광범위한 것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유럽의 장래적 측면에서 기업들에 대한 경기규칙과 재정기준들을 조화시키는게 필요하다. 이러한 규칙들을 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럽의회를 이용하는 것이다. 환경ㆍ운송ㆍ연구ㆍ정보분야 문제들은 바로 유럽 자신에 의해 해결돼야 하며 이 과정에서 유럽은 역동적(Dynamic)이 될 것이다. 유럽은 또 페만 사태와 같은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공동의 태도를 찾아야 할 것이며 이같은 공동보조는 막강한 것이 될 것이다.
  • 남북 경제교류 당분간은 제한적(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3)

    ◎대규모 교류 땐 김일성체제 불신증폭 우려 지난해말 이래로 사회주의 국가들은 급격하게 기존체제를 해체하고 시장경제체계로 이행하고 있으며,그 과정에서 민족주의 정신이 고조됨과 아울러 분단국들의 통일이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다민족­1연방국가인 소련과 유고슬라비아가 연방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는 반면,민족분단국인 남ㆍ북예멘은 금년 5월22일 통일을 선언하고 한 나라가 되었고,동ㆍ서독 역시 금년 7월2일에 경제 및 사회통합을 이루고 10월3일에는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게 되었다. 지금 북경아시아경기대회에서 화합을 다지고 있는 중국과 대만도 쌍방이 경제교류를 확대키로 함으로써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시기를 전후하여 경제통합을 이룰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제2차대전 후 굳어질 대로 굳어진 동서대립의 냉전구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로서 어느 누가 이런 일들이 현실화되리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사고의 틀을 완전히 깨뜨려버리는 이러한 놀라운 역사적 대변혁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지난 6월5일 한소정상회담을 보았고 그것이 수교로 이어지는 역사적 순간을 맞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의 전개와 더불어 최근 남북총리회담이 열리고 북경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북이 함께 어울려 태극기와 인공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서로간의 체육교류를 협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관심은 다시금 통일 문제로 쏠리고 있다. 우리도 남ㆍ북예멘이나 동ㆍ서독처럼 분단의 벽을 허물고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제1차적 대답은 과연 북한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역사의 흐름에 진정으로 순응할 것이냐 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체제 변화의 시나리오는 크게 ①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체제 아래서 부분적인 개혁ㆍ개방이 추진되는 경우 ②현 북한 집권층이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과감한 개혁노선을 취하는 경우 ③쿠데타나 민중봉기와 같은 돌발적 사건이 발생하여 김일성과 김정일이 실각되고 새로운 지도자가 집권하여 체제변혁의 길을 택하게 되는 세가지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단계에서 첫번째 시나리오를 제외한 나머지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약한 까닭은 김일성­김정일의 부자정권세습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주창해온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세워진 체제와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추진되어 온 기존의 정책노선을 일시에 바꾸는 개혁이 정치적 변혁없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세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금년 6ㆍ25에 관한 기사에서 김일성의 권력승계 후에 쿠데타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고,「뉴욕타임스」는 북한에 민주화운동 세력이 조직되어 있는 것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상황은 동유럽과 여러 면에서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세번째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 북한의 변화가 첫번째 시나리오와 같이 서서히 이루어진다고 할 때 그것을 통일의 단계에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이 아닌 남북 경제교류이다. 남북 경제교류의 의의는 그것이 갖는 경제적 이익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남ㆍ북한이 여러 형태의 물적 교류와 그를 위한 인적 교류의 확대를 통해서 상호이해를 증진시키고 상호불신에서 야기되는 긴장을 완화시킴으로써 궁극적인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특히 경제분야에서의 교류의 의의가 큰 것은 그것을 통해서 쌍방에 서로의 물적 이익의 거점이 마련됨으로써 교류의 영속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남ㆍ북예멘은 단일민족이기는 하지만 통일국가의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극적인 통일을 이루게 된 동기는 민족분단 극복의 욕구보다는 세계 최빈국으로부터의 탈피라는 경제적 필요성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ㆍ서독의 통일 역시 동독의 서독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의 심화가 동독을 서독에 흡수통합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남북한의 경제교류는 통일의 전제가 되는 북한의 체제변화를 가져다 줄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1985년에 한ㆍ미 팀스피리트훈련을 이유로 경제회담을 무기한 연기하여 사실상 중단시켰던 것과 같이 최근에는 현대그룹이 북한에 제공하겠다는 장비의 무상지원을 국가체면 손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한편 금강산개발 등 모든 공동 프로젝트의 추진까지 무효화한다고 발표하여 남북 경제교류의 길을 트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북경아시아경기대회중에 북경당국이 제공하는 차량이 한국산이라는 이유로 사용을 거부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현재 남북한 경제교류의 명맥은 우리 기업들이 홍콩,싱가포르,스위스 등의 무역상을 통해서 북한의 철강재,아연과,무연탄,전기동,한약재,생사 등을 반입하는 간접교역으로 유지되고 있다. 「7ㆍ7선언」으로 남북 경제교류가 허용된 뒤인 1988년 10월부터 금년 8월까지 북한상품의 반입 규모는 3천3백85만6천달러였으나 북한에 대한 우리 상품반출 규모는 반입액의 0.5%도 채 안되는 16만2천달러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의 한국제품 기피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북한 경제교류는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체제를 가지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한국이 아무리 북한에 대해서 문호를 개방하고 유연한 자세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단기적으로 성과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북한체제의 우월성과 남조선 해방을 북한 내부에 주입시켜 왔다. 그러한 상황에서 남북 경제교류가 이루어짐으로써 남한의 실상이 북한 내부에 알려지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북한 내부에 하나의 큰 충격이 될 것이며 김일성 체제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신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북한의 현 체제가 유지되는 단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남북한간의 경제교류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ㆍ북한이 동ㆍ서독과 같은 경제통합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북한체제의 변혁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북한의 경제통합을 위한 목표와 전략은 중ㆍ장기적 시각에서 모색되고 추진되어야 하며 경제통합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정부나 기업의 대내외적 과시나 선전효과를 지양하고 북한의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분위기 조성과 더불어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의 내적 충실을 다져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일ㆍ북한 관계진전과 우리 입장(사설)

    일본의 정당대표단이 공식자격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냉전구조가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속에서 한반도주변 4강의 하나인 일본이 북한과의 접근을 가속화하고 있는 데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는 작금의 세계적인 질서재편의 추세와 관련하여 동북아의 평화와 우호선린 외교관계가 확대 지향적으로 발전되는 것을 바란다. 따라서 일본과 북한간의 관계개선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주목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그 접근의 가속성에 대해서도 경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가 우방인 일본에 바라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개선과 우호협력의 추구는 어디까지나 남북한 관계개선의 토대 위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 그것은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노선의 포기라는 대전제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은 북한이 남북대화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고 핵안전협정에 가입하는 등 선결조건이 이뤄진 뒤에라야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바 있음을 일본측은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한반도 유관국으로서,또 아시아권의 경제대국으로서의 역할을 내세워 대북한 관계개선을 조급하게 서두르는 나머지 한일간의 우호관계를 그르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지금 일ㆍ북한 사이에는 현안들이 적지 않다. 우선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2명의 후지산호 선원의 석방문제가 있다. 우리는 일ㆍ북한간 해묵은 분쟁요인이 이번 기회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후지산호문제가 해결되면 일본은 북한에 대해서도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납득할 만한 보상과 사과를 해야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도 우리는 찬성하는 것이다. 그런 바탕위에서라야 일본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이며 궁극적으로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한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일본과 북한이 도쿄와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상호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고자 한다. 이를 계기로 북한이 동쪽의 창을 과감하게 열어 대일 뿐 아니라 대미 관계개선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리라고 본다. 그렇게 됨으로써 한반도를 중심으로한 동북아에서 냉전종식의 우호증진 상호협력 발전의 따뜻한 기류가 순환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도모하는 것은 국제정세 발전이나 독립국의 주권행사 측면에서 그 자체를 부인코자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본은 지난 65년 우리와 체결한 한일기본조약 3조에서 「한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서 확인한 근본정신을 현재로서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일본의 북한접근이 남북한 관계 발전속도보다 앞서가서는 곤란하다는 우리 입장을 이해해야 하리라고 본다. 일본은 언제 어디서나 한국과의 기본조약정신을 지킬 우방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 페만사태 이후 주변국 움직임을 보면(세계의 사회면)

    ◎중동지역 군비증강 경쟁 가속화/미서 첨단무기 2백억불 도입/이라크의 침공때도 왕정 사수/사우디/아랍세계 위협에 맞대응 준비/미서 미사일ㆍ전투기 등 곧 구입/이스라엘 페르시아만 사태를 계기로 중동지역의 군비증강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왕정을 지키기 위해 이라크의 공격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처지와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랍세계의 전력증강에 맞대응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입장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미소간의 무기감축을 이뤄낸 데탕트 분위기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에 대한 최대 무기공급국이 미국이라는 점에서 「국제경찰」과 「장사꾼」으로서의 미국의 두얼굴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으로부터 구입할 무기는 첨단 항공기와 장갑차ㆍ미사일 등 2백억달러어치로 미 역사상 최대무기 판매규모이다. F­15 전투기 48대와 M­1탱크 3백85대,브래들리 전차 4백대,패트리어트 미사일 20여기 등. 이 무기 판매계획은 이미 부시 미 대통령의 원칙적승인을 받아 의회승인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다. 이라크의 전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마저 군비증강을 서두름에 따라 이스라엘도 언제 총부리를 돌릴지 모를 아랍세계 전체에 대비,미국에 최신무기 공급을 요청하고 있다. 아랍세계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력우위 확보를 약속해 놓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F­16 전투기 60대와 H­53 헬리콥터 10대,아파치 헬리콥터 16대,스팅어 미사일 등의 대 이스라엘 판매에 합의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페르시아만 사태에 협력한 대가로 이집트에 대해 70억달러의 무기구입 외채를 탕감해 주려는 움직임을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해 주도록 촉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판매계획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미 의회내의 이스라엘 지지의원들은 페르시아만 사태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점을 감안,무기판매 자체를 중단시키려던 당초 목표를 수정,무기판매를 허용하되 장거리 공격용 무기를 판매대상에서 제외하고 항공기와 탱크의 사용에 제한을 가하는 방향으로이스라엘에 대한 후환을 줄이려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무기판매가 성사될 경우 탈냉전으로 속앓이를 해온 미 군수업체들은 미소를 짓게 되겠지만 중동지역의 불안은 가중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시장경제 압력에 「주체경제」 붕괴(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1)

    ◎「하나의 조선」­김일성 절대권력 포기 불가피 북한도 마침내 개방과 개혁의 변화로 나선 것인가. 남북총리회담,축구교류 합의,아시안게임에서의 개방적 자세,방북 소외무장관 냉내 등은 분단 45년 만에 처음 보는 북한의 변화다. 김일성주석이 중국을 방문하고 일본 자민당 중진 가네마루(김환신)의원이 이끄는 대표단이 도쿄ㆍ평화 직항편으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평양에서 전해지는 소식통도 그동안과는 같지 않은 변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북한은 정말 변하고 있는가,변하고 있다면 어떤 변화인가,결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외전문가들의 시각을 통해 진단해 본다. 북한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우선 깊은 인식이 필요하다. 북한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북의 권력 그 자체인 김일성이라는 정치인격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현재까지는 북한과 김일성과는 같은 실체이며 양자가 분리될때만이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독일의 통일은 소련이 변함으로써 가능하였다. 반면 대칭적으로 북한은 김일성이 변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역설적으로 북한의 과거 잔재적인 기독교문화를 기초하여 거의 「은혜」롭고 「자애」로운 기독교의 「아버지 하나님」에 가까운 「어버이 수령」의 나라라는 「신성국가」를 구축하여 왔다. 동독의 울브리히트는 처음부터 전 독일의 「공산주의화」 또는 「주체사상화」라는 생각은 없었다. 울브리히트 초기부터 「두개의 독일」정책으로 시발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분단」된 것이 아니라 두개의 독일이 「탄생」하였다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동독은 소련의 「인조」국가였기에 소련이 변하면서 독일의 통일은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대신하거나 극한적으로 대칭적인 것이 북한의 「하나의 조선」정책이었다. 「하나의 조선」정책을 「민족통일」이라는 개념과 대비하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계급을 기초로하는,민족국가의 개념을 초월하는,세계혁명의 이론에서 출발한 북한의 「민주기지」였으며 노동당규약에 규정한 「전 조선의 공산주의화」였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조선」정책은 실질상 권력적 의미에서는 김일성이 북한을 통치하는 「대내용」 정치권력의 논리였다. 북한에게 있어서 김일성이라는 권력적 인격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하나의 조선」정책에 치명적인 결함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폐쇄를 기초로 한 「주체경제」를 유지하기에는 북한의 주변 즉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나라들이 강력한 「개방경제」 체제를 형성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4원칙」을 유지하는 중국마저도 경제면에서는 철저하게 개방체제를 형성시키고 있다. 북한의 이념적이며 경제적인 동맹을 유지해온 소련이 이미 시장경제라는 개방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북한과 대칭적인 남한이 거의 완벽하게 개방체제를 형성하고 성공했다는 점이다. 과거에 있어서 동서진영의 체제적 이념의 차이는 실은 시장경제를 기초로 하는 「개방체제」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였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주변의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소련이 정치경제적인 「개방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 형성되는 개방체제는 자본과 기술 나아가서 인적인 교류라는 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생활양식은 북한의 「주체경제」라는 체제를 갖고서는 적응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은 포위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이 과거 사회주의권의 물물교환을 기초하는 바터제를 거부하고 시장경제주의 현금주의를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대외적인 개방체제의 형성은 불가피하게 북한의 사회체제를 「폐쇄」에서 「개방」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방체제로의 이행에는 북한이 피할 수 없이 넘어야 할 하나의 장벽이 있다. 이것이 「하나의 조선」이라는 기치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한을 해방해야 한다는 북한인민을 통치하던 권력적인 「논리」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오늘의 북한이 「권력적인 고립」을 맞고 있는 이유다. 둘째,이러한 북한을 개방체제로 재촉하는 시장경제를 기초로 하는 정치경제적인 동북아시아의 국제환경의 변화는 안전보장면에서도 깊이작용하고 있다. 한반도의 냉전을 구축하고 있었던 중국과 소련이 이 지역의 부의 생산에 참여하기 위해서 시장경제와 이에 따른 개방체제로의 길을 서툴기는 하나 꾸준히 구축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모델」대신 거꾸로 남한의 시장경제를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연히 군사적인 개방체제로의 길을 유도할 수밖에 없었으며 소련이 지난 셰바르드나제의 일본방문에서도 양국간의 문제를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이라는 측면에서부터 접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동북아시아 「시장경제」의 형성과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또 시장경제를 위해 소련과 중국이 북한과 같이해 온 「세계혁명」이라는 논리와 정책의 기치를 지금 내려놓고 있어서 이 지역의 안전보장의 조건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하나의 조선」(전조선의 공산화)을 실천해 보려 했었고 실패했던 한국전쟁 이래 최대의 시련기에 접어 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북한이 동독처럼 서독에 「흡수」되거나 루마니아처럼 「혁명」을 통해서 붕괴되리라는 전망은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다. 그 이유는 북한의 체제적인 측면에서 김일성이라는 권력적인 인격은 몰락할 수 있으나 그가 구축하여 놓은 북한이라는 정치체제는 간단하게 무너질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분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군사체제는 정치체제를 기초로 하는 중요한 체제적인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김일성 이후에도 지속될 북한의 「군사체제」는 북한사회를 다시 얼마간 지탱할 중요한 김일성 이후의 정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비교의 기준은 판이하나 1961년의 남한의 군사체제가 18년 이상 유지된 것과 비교하는 것이 북한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김일성 이후 북한의 변화는 군사적인 뒷받침이 이뤄질 때에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특히 김정일의 권력적인 한계는 이미 세계청년축전이라는 비생산적인 투자에 47억달러를 허무하게 낭비하고 김정일의 명령으로 보통강변에 1백5층으로 건설중인 시멘트 블록의 고층건물(유경호텔)의 건설이 중단된 데서 이미 그 한계는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의 변화」에서가 아니라 「북한의 변화」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김일성이 북한과 동일시 될수 없는 북한체제의 전환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한소 수교와 남북한(사설)

    한국과 소련간의 점진적인 관계개선이 정식수교로 발전하게 되자 소련ㆍ북한간 관계가 더욱 불편한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한소 수교가 임박한 마당에 그것이 한소 관계전개에 현실적인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반도 안정과 남북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주시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한번 지금까지 소련이 추구해온 대한 접근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소련은 전면적인 대아시아정책의 테두리속에서,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세계전략차원에서 동북아지역의 변화단계에 따라 한소 관계를 진전시켜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소련의 기본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한소 수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한소 수교에 대한 북한의 시각도 그러해야 한다. 소련으로서는 소ㆍ북한간 불편한 관계는 어디까지나 북한이 야기한 것으로 볼 것이다. 소련은 그들의 대북한정책이 남북한 대화확대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밝혀왔다. 우리 역시 그같은 소련의 입장을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한소관계를 추진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한소 수교가 북한을 곤경에 빠뜨리고 고립시키는 정책전개라고 봐서는 안된다. 한소 관계개선의 큰 의미는 주변국들과의 화해협력으로써 북한의 문을 열고 평화공존과 협력의 길을 모색해보자는 데 있는 것이다. 한국으로서도 한소 수교를 「대북우위」라는 정책적 측면으로만은 보지 않는다. 한소 및 한중 관계개선이라는 북방정책의 결실을 한반도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삼고자하는 것이다. 한소 수교는 냉전 이후시대 한국의 새로운 위상을 결정하는 출발점이라는 데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남북한간 통일논의도 한소 수교 이전과 이후가 다를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수교 이후 남북 관계의 설정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한 동반관계 설정이 굳어지면 우리 정치나 사회가 새로운 지평에 설 것이 기대됨은 물론 북한도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한소 수교가 기존의 한반도 질서를 재편하는 요인이 되는 소이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도 한소 수교는 우리 경제근대화 30년사에 새로운 장을 의미한다. 현재로서는 그 국제정치적 측면이나 우리 북방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대소 경제지원의 부담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궁극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영역 확대라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한때 소련이 일본을 움직이기 위해 한국에 접근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었으나 그 역도 성립되는 것이다. 한소 관계가 한일 관계의 불균형을 완화시켜줄 수도 있다는 국제적 역학관계도 생각할 수 있다. 한반도 정세변화에 주목하는 세계는 최근 북한의 개방가능성을 확신하는 듯하다. 북한당국이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전면 저항하는 대신 국면에 대처하면서 조금씩 문을 열어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한소 수교야말로 북한이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대처하는 발전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한소 수교를 계기로 이제 남북한이 현재의 입장에서 한발짝 나서서 구체적인 현안해결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한반도 긴장완화가 관련 강대국간의 이해와 일치하고 또 민족의 염원이 그러한 것이다. 한소 수교는 그런 측면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 중동 「외교 지도」가 바뀌고 있다/페만사태 장기화로 새판도 형성

    ◎국익따라 「합종연형」 가속화/미­시리아 후세인 응징 공동대응책 모색/소­사우디 국교재개… 중동평화 정착 기대/이란­이라크 반미 전선 형성,아랍맹주 노려 페르시아만 사태로 새로운 국제질서의 시험무대가 되고 있는 중동지역의 외교 지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 미소와 적대관계에 있던 아랍국가들이 이들과 국교를 재개하거나 외교관계를 개선하는가 하면 미국과 소련은 페만사태라는 지역분쟁에 공동보조를 취하는 등 국제정치의 새 기류가 중동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미 대통령은 특히 지난 9일 헬싱키 정상회담에서 소련이 중동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요청함으로써 대 중동정책에서 냉전외교의 틀을 벗어나 미소의 실질적인 협력과 공존의 시대를 열었다.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제의는 소련의 중동진출을 저지해온 미국의 전통적인 대 중동정책이 수정되는 것으로 전략적 가치를 놓고 늘 대립해왔던 미소의 외교정책이 바뀌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소련은 미국의 중동에서의 역할증대 요청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교를 재개하고 이스라엘 및 바레인과 외교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앞으로 과거의 외교패턴을 크게 바꾸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고 최첨단무기를 판매하는 등 대 중동 군사관계를 강화하고 적대관계에 있던 시리아와도 외교관계를 개선시키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이같은 중동지역에서의 새로운 외교관계 정립은 미소의 협력을 바탕으로 아랍국가들이 새로운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더 나아가 지역안보의 기본틀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가장 강력한 아랍국가인 이란과 이라크가 과거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손을 맞잡음으로써 안보가 취약한 다른 중동국가들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고 외세를 배격하는 아랍민족주의와 미소와의 대립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중동은 여전히 불안한 지역으로 남을 전망이라 각국간의 새로운 외교관계를 정리해 본다. ▷미국­시리아◁ 과거 적대관계에 있던 미국과 시리아가 외교관계를 극적으로 개선시키고 있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3일 전격적으로 시리아를방문,중동에서 가장 반미적이던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대 이라크 공동전선을 펴기로 합의했다. 아사드 대통령의 이같은 극적인 변신은 오랜 앙숙인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ㆍ합병시키며 아랍세계의 맹주가 되려는 야심을 노골화시킨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시리아는 이란ㆍ이라크전쟁에서도 리비아와 함께 이란을 지원했었다. 시리아는 따라서 후세인과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자인 아사드 대통령은 동서화해로 소련의 군사지원이 줄고 있는데다 고립은 위험하다고 판단,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전에 이미 이집트를 통해 대 서방 화해를 촉구했었다. 미국도 아사드 대통령이 국제 테러에 깊이 관여했으며 비난해 왔으나 아랍국가들의 대 이라크 공동보조를 위해 시리아와의 관계개선을 모색해 왔다. 시리아는 이집트와 함께 직접 군대를 파견하는등 적극적으로 대 이라크 공세에 참여하고 있다. 시리아는 페르시아만에 집결한 다국적군이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다면 이집트ㆍ사우디와 함께 아랍의 지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사우디아라비아◁ 소련과 사우디아라비아가 17일 반세기여만에 국교를 재개했다. 소련을 방문중인 사우드 알 파이살 사우디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평화공존ㆍ평등ㆍ상대방 국가의 주권ㆍ영토보존ㆍ내정불간섭 존중의 원칙을 바탕으로 외교관계를 회복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중동전문가들은 2차대전 이후 일관되게 반공노선을 견지해온 사우디가 소련과 국교를 회복한 것은 페만위기로 안보위협이 높아지자 이라크와 동맹국이며 군사대국인 소련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우디는 중동평화를 위해 소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소련도 중동진출을 위해 사우디와의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대규모 석유생산국인 소련과 사우디가 국교를 정상화 시킴으로써 석유시장에서의 이들의 영향력도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소련과 사우디 외교관계는 지난 38년 스탈린이 사우디주재 소련 대사관을 폐쇄한 이후 단절돼 왔었다. ▷소련­이스라엘◁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긴밀한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소련의 외교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지난 16일 방소중인 2명의 이스라엘 장관과 회담한 것은 양국관계 개선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만난 니만 이스라엘 에너지장관은 『이번 회담을 양국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소련과 이스라엘은 지난 67년 중동전쟁때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양국관계는 아직 경제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과 소련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특히 미국이 사우디에 최첨단 무기를 수출하고 기술지원을 강화하고 있어 아랍국가에 비해 무기체계와 군사기술의 질적 우위라는 전통적인 군사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과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안보와도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바레인도 소련과곧 국교를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이라크◁ 중동지역의 라이벌 관계이며 8년간이나 전쟁을 치렀던 이란과 이라크가 이번 중동사태를 계기로 가까워 지고 있다. 양국이 언제 공식 외교관계를 재개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공동으로 반미 전선을 형성하는등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 침공후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면서 점령 이란 영토로부터의 철수,이란군 포로석방 등 대 이란 화해조치를 취했으며 지난 10일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이 이란을 전격방문,국교재개를 합의했다. 이란ㆍ이라크의 외교관계 정상화는 이라크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어렵게하고 유엔의 대 이라크 경제봉쇄조치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 아ㆍ태에 「변화의 바람」 부는데… /정종욱 서울대교수(세평)

    제2차 아시아ㆍ태평양지역 대화ㆍ평화 및 협력회의는 지난 9월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었다. 아태지역의 23개 국가를 대표하는 2백50여명의 학계와 재계 및 정계인사들이 참석한 이 회의는 형식적으로는 소련과학아카데미가 주최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소련 외무부가 주관했었다. 1988년에 개최되었던 1차회의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르바초프가 추진하고 있는 소련의 아태지역에 대한 정치 경제적 진출을 외교정책차원에서 뒷받침하려는 것이 이 모임의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였다. 1차회의때에는 초청되지 않아 참석하지 않았던 한국에서는 남덕우 무역협회회장을 위시하여 10여명이 참석했고 북한에서도 오창림 군축평화연구소 부소장 등 7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소,아ㆍ태 진출 적극 모색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회의 첫날 행해진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의 기조연설이었다. 셰바르드나제의 연설이 주목을 끌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그가 9월2일부터 이틀 동안 평양을 방문하고 바로 블라디보스토크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한소 수교임박설 등 평양과 모스크바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셰바르드나제와 북한 고위층 사이에 심각하게 논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었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련 외무의 움직임과 발언이 크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셰바르드나제가 소련의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대한 중대한 외교정책을 발표할 것이라는 보도가 회의 전에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소련의 아태정책은 단순한 탈냉전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정치ㆍ겅제질서 형성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며 여기에 관한 기본구도가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행해질 셰바르드나제외무의 기조연설에서 제시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다자간협의 구성엔 냉담 실제로 셰바르드나제의 연설은 첫째 문제에 관해서는 원칙론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소련의 입장을 분명히했다. 소련은 한반도문제 해결에 있어 분단의 현실을 인정하고 나아가서 한반도에서 두개의 한국이 40년 이상의 오랜 시일에걸쳐 각기 배타적 주권을 행사해왔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한소 수교의 명분이기도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북한이 남한의 현 정부를 인정하고 정부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분단의 고통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평화공존에 입각한 통일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남북한간에 진정한 의미의 평화공존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주변국가들의 관계정상화는 물론 남북한간에도 정치적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소련의 주장은 물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북한과 소련의 관계는 한소 관계가 정상화될 경우에도 단절하기 힘들 만큼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특수한 측면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소 관계정상화가 강행될 경우 한반도에는 북한이 그토록 반대해온 분단고착이 현실화된다는 게 평양측의 주장이었다. 셰바르드나제의 평양방문에서는 이러한 북한의 반대에 대한 소련의 단호한 입장이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련은 한소 수교문제 이외에도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든 새로운 몇가지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유가의 현실화와 경화지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셰바르드나제를 맞는 북한의 태도가 대단히 비우호적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불라디보스토크회의에서 북한과 소련 참석자들간의 접촉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급적이면 서로 접촉을 피하려는 어색한 모습에서 셰바르드나제의 평양방문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둘째 문제는 93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태지역 외무장관회의를 개최하자는 셰바르드나제의 제안으로 구체화되었다. 유럽의 안보협력회의(CSCE)를 아시아에서도 실현시켜보겠다는 게 고르바초프의 일관된 정책이었으며 이것이 역내 외무장관회의라는 형태로 이번에 나타난 것이다. 아시아지역에서 전후의 냉전 유산을 청산하고 나아가서 새로운 역내의 정치 경제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다자간회의를 열자는 취지이다. 이 제안에 대한 회의참가국들의 반응은 일단 부정적인 것이었다. 새로운 아태 질서 형성에 있어 소련의 적극적인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미국의 태도도 그러했지만 일본이나 동남아국가들의 반응 역시 미지근했다. 소련을 아태지역국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냉전의 응어리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결국 블라디보스토크회의는 아태지역에서 냉전 청산과 새 질서 구축의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그 구체적 내용이나 절차에 관해서는 다양한 이견들이 노정된 채 92년에 열릴 제3차 블라디보스토크회의때까지 해결을 연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에서의 변화가 아시아에로 파급되어 구체적 성과로 자리잡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넘어야 할 장벽들이 적지 않음을 다시한번 시인한 것이다. ○남북관계 실질성과 시급 아태지역에서 새로운 국제질서가 창출되기 전에 한반도문제에 대한 실질적 성과를 이룩하는 것만이 한반도문제가 역내의 다른 문제들에 묻혀 예기하지 않은 방향으로 해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임을 확인하면서 아태지역에서 소련이 갖고 있는 막강한군사력을 상징하는 군항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다. 2년 후 다시 이 항구도시를 찾을 때쯤에는 한반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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