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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통일 국민의식조사

    ◎남북 정상회담은 빠를수록 좋다/북한의 개방과 변화 선행돼야/58%가 “독일식 흡수통일이 바람직”/“본격 교류이전 국내정치 안정부터” 45%/“10년내 통일온다” 국민 73% 확신/이산가족 상봉이 최우선 과제/4명중 3명이 “북한 핵개발 두렵다”/통일 장애 “김일성 유일사상·군사대결·북의 폐쇄성 순” ▷합의 실현기대◁ 지난번 남북총리회담에서 양측이 기본적인 문제에 극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이번 조사에서 이러한 남북합의내용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느냐고 질문한 결과,전체 대상자의 21.4%가 「크게 기대」한다는 반응이고,53.8%가 「비교적 기대」한다고 응답하였다.따라서 우리 국민 네명중 세명정도(75.2%)가 이번 남북합의 실현을 기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1.4%이고 「잘 모르겠다」는 대답도 3.4%였다.남북합의내용의 실현에 대한 기대감은 남녀별로나 지역별로는 차이가 거의 없으나,연령별로는 큰 차이를 보여 연령이 높을수록 기대감이 큰 반면,연령이 낮을수록 상대적으로 기대감이 줄어드는것으로 나타났다. ▷정상회담 찬성◁ 지난 번에 남북이 총리회담에서 기본적인 문제들에 합의함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의 실현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그러면 우리 국민들은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남북정상회담을 얼마나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까.이번 조사결과 응답자의 54.6%가 남북정상회담이 「아주 필요」하다는 인식이고 38.8%가 「필요한 편」이라고 응답해 대다수(93.4%)의 국민들이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4.8%에 불과했고 「잘 모르겠다」는 반응도 1.8%였다.여자보다는 남자가 「아주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연령이 적을수록 「아주 필요하다」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약간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그러나 이번 조사결과 남녀별이나 연령별,지역별로 응답 차이가 별로 발견되지 않아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급한 의제◁ 이처럼 우리 국민의 9할 이상이 남북정상회담이 절실하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으며,또한 일각에서는 그 가능성이 점쳐지기까지 하고 있다.그러면 남북정상이 만나 실제로 어떤 문제들을 토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이번 조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된다면 가장 시급히 다뤄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이산가족의 재회및 상호방문」이 44.7%로 가장 많이 지적되었고,그 다음으로 「북한 핵개발 문제」(20.5%),「경제교류및 협력」(18.8%),「군사력 감축」(9.5%),「통신·우편·방송의 교류」(6.2%)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역시 이산가족 문제가 가장 커다란 겨레의 상처임에 틀림없으며 최근의 국내외적인 조류에 비추어 북한의 핵개발,남북의 경제교류 등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특히 연령별로 의견 차가 분명히 나타나,연령이 많을수록 「이산가족문제」나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반면,연령이 적을수록 「경제교류」나 「군사력 감축」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치안정 도움◁ 한편 우리 국민들은 남북정상회담이 국내정치를 안정시키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할까.이번 조사결과 남북정상회담이 국내 정치안정에 「아주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22.7%,「비교적 도움」이 된다는 반응은 40.8%로 나타나 전체 국민의 63.5%가 국내 정치안정이라는 측면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응답은 26.3%에 달했으며 「오히려 해롭다」는 반응도 4.7%였다.(「잘 모르겠다」 5.5%) 이러한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남북정상회담이 절실한 것으로 인식하며 회담의제로는 「이산가족 문제」「북한의 핵 개발 문제」「경제교류및 협력문제」등을 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아울러 남북정상회담이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예상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우리 국민들이 지난번 남북총리회담의 합의를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커다란 기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통일은 언제쯤◁ 이번 조사에서 남북이 언제쯤 통일될 것인가를 질문한 결과,조사 대상자의 20.4%가 「5년내」,14.6%가 「7∼8년내」,37.6%가 「10년 내」라고 응답하고 있다.이를 합쳐 보면 우리 국민의 72.6%가 「앞으로 10년안에 통일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이러한 수치는 최근 남북합의를 배경으로 국민들의 통일 기대감이 크게 고무된 결과로 생각된다. 특히 「5년 내에 통일이 된다」는 전망은 남자(16%)보다는 여자(24.6%)에게 많으며 연령이 높을수록 많다(20대 10.6%,30대 15%,40대 20.2%,50대 이상 39.9%).이러한 결과를 보면 최근의 남북화해 분위기에 대해 젊은 층은 상대적으로 다소 냉정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수 있다. 한편 「15년 내에 통일이된다」는 응답은 11.5%였고 「그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응답도 6.5%였다.그러나 「통일 자체가 어렵다」는 비관적 의견도 8.8%로 우리 국민 열명중 거의 한명 정도는 통일 자체를 불투명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흡수통일 될까◁ 그러면 남북통일의 방법으로 독일처럼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물어본 결과,조사 대상자의 58.2%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이고 31.8%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이다(「잘 모르겠다」 10%).이처럼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연령이 낮은 층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다소 늘어나고 있다.지역별로는 도시보다는 읍면지역에서 「바람직하다」는 반응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그러한 흡수통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를 질문한 결과,응답 대상자의 38.9%가 「가능하다」는 응답이고 49.7%가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여 전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역시 연령이 많을수록 그리고 읍면지역에서 흡수통합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인식하는 반면,연령이 적을수록 그리고 도시지역에서 흡수통합 가능성을 낮게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우리 국민들은 남북통일이 독일과 같은 흡수통합이 바람직하지만 그 실현은 만만치 않다는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어떻게 대할까◁ 우리 국민의 통일관은 결국 우리 국민이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이번 조사에서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물어본 결과,조사 대상자의 43.5%가 「북한은 도와주어야 할 상대」로 인식한 반면,42.8%가 「대등하게 주고 받아야 할 상대」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러한 결과는 우리 국민들 가운데 대화와 교류의 상대로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현재 크게 양분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북한은 아직까지 우리가 싸워이겨야 할 상대」라는 냉전적 인식은 11.3%에 불과했다.이러한 결과는 바꾸어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86.3%)가 일단 북한을 대화와 교류의 상대로 인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다만 그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북한은 도와 주어야 할 상대」라는 인식과 「대등하게 주고 받아야 할 상대」라는 인식이 팽팽하게 공존하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령별로 응답의 차이가 커서 연령이 많을수록 「북한은 도와주어야 할 상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젊을수록 「대등한 상대」라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핵문제◁ 최근 국내외적으로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 북한의 핵 개발에대해 조사 대상자의 34.3%가 「아주 두렵다」는 응답이고 40.1%가 「두려운 편」이라는 반응이다.결국 우리 국민 4명 중 3명(74.4%)이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별 두려움이 없다」는 응답은 23.1%였다.성별로 보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두려움을 더 느끼며 연령이 많을수록 두려움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우리 국민이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한 한,이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남북관계 개선의 주요한 선행조건이며,따라서 이번 조사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의 주요한 의제로 지적되고 있다. ▷통일의 장애는◁ 현재 남북통일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불어본 결과,「유일사상및 세습체제」라는 응답이 30.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군사적 대결상황 및 상호불신」(24.4%),「북한의 폐쇄성」(18.8%),「우리 내부의 혼란」(13%),「남북간 경제력의 차이」(12.5%)등의 순이다.이처럼 우리 국민들은 유일사상·폐쇄성등 북한 사회의 문제점을 남북통일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편 남북 상호간의 대결과 불신도 만만치 않은 장애요소이며 아울러 우리사회의 내부혼란도 부분적으로 통일에 장애를 준다는 인식이다. ▷통일주요과제◁ 그리고 우리가 통일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조사대상자의 45%가 「정치안정」을 으뜸으로 꼽았으며,그 다음으로 「지역감정 해소등 사회적 화합」이라는 응답이 22.1%,「경제발전」이 18.7%,「각 분야의 민주화」가 14.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따라서 아직까지는 우리 국민들이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우리 정치의 후진성 극복을 가장 커다란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한편 남녀별로 약간의 인식 차이를 보여 여자는 통일을 위한 과제로 경제발전보다는 정치안정을 상대적으로 많이 꼽았고,남자는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을 많이 지적했다.그리고 남녀나 연령,지역에 상관없이 지역감정해소등 사회적 화합을 주요한 과제로 제기한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이러한 결과는 내부적 안정이나 화합이 없는 통일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국민적 합의가존재함을 분명히 보여 준다고 할수 있다. ▷설문조사 내용◁ 1·지난번 남북총리회담에서 양측은 남북관계의 기본적인 문제들에 합의하였습니다.이번의 남북합의 내용이 실현되리라고 기대하십니까? ①크게 기대를 한다 21.4% ②비교적 기대하는 편이다 53.8% ③별 기대하지 않는다 21.4% ④잘 모르겠다 3.4% 2·우리 현실에 비추어 남북정상회담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아주 필요하다 54.6% ②필요한 편이다 38.8% ③필요하지 않은 편이다 3.8% ④전혀 필요하지 않다 1.0% ⑤잘 모르겠다 1.8% 3·만약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된다면 어떤 문제를 가장 시급히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경제교류 및 협력 18.8% ②이산가족의 재회 및 상호방문 44.7% ③군사력 감축 9.5% ④통신·우편·방송의 교류 6.2% ⑤북한의 핵개발문제 20.5% ⑥무 응 답 0.3% 4·만약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된다면 그것이 우리나라 정치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①아주 도움이 될 것이다 22.7% ②비교적 도움이 될 것이다 40.8% ③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것이다 26.3% ④오히려 해로울 것이다 4.7% ⑤잘 모르겠다 5.5% 5·남북통일이 언제쯤 실현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①앞으로 5년이내 20.4% ②7∼8년 14.6% ③10년이내 37.6% ④15년이내 11.5% ⑤그 이후 6.5% ⑥통일 자체가 어렵다 8.8% ⑦무 응 답 0.6% 6·우리도 독일처럼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①바람직하다 58.2% ②바람직하지 않다 31.8% ③잘 모르겠다 10.0% 7·그러면 현실적으로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혹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①가능하다 38.9% ②불가능하다 49.7% ③잘 모르겠다 11.4% 8·전체적으로 보아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우리가 도와 주어야 할 상대이다 43.5% ②대등한 수준에서 주고 받아야 할 상대이다 42.8% ③아직까진 대결해서 이겨야 할 상대이다 11.3% ④잘 모르겠다 2.4% 9·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평소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계십니까? ①아주 두려운 느낌이다 34.3% ②조금 두려운 느낌이다 40.1% ③별 느낌이 없다 23.1% ④잘 모르겠다 2.5% 10·현재 남북통일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북한의 폐쇄성 18.8% ②유일사상 및 세습체제 30.3% ③군사적 대결상황 및 상호불신 24.4% ④남북간 경제력의 차이 12.5% ⑤우리 내부의 정치경제적 혼란 13.0% ⑥무 응 답 1.0% 11·그러면 통일을 위해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정치안정 45.0% ②경제발전 18.7% ③지역감정해소등 사회적 화합 22.1% ④각 분야의 민주화 14.1% ⑤무 응 답 0.1% ◎지역인구비례 할당 무작위 추출/20세 이상 남녀 1천명 전화조사/조사방법 서울신문은 92년 신년특집으로 현대리서치연구소와 공동으로 전국의 20세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2월18일부터 사흘동안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 정치의식」이란 주제로 전화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번조사는 우선 전국을 대도시·중소도시·읍면지역으로 층화한 다음,해당지역의 인구비례에 따라 표본수를 할당하고 표본수에 비례해 해당지역의 전화국번을 무작위로 뽑았다. 그리고 난수표의 네 자리수로 전화번호를 부여하여 조사원이 조사대상자와 통화하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조사된 대상자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성별로는 남자 49.1%,여자 50.9% ▲연령별로는 20대 34.7%,30대 24.1%,40대 17.2%,50대 이상 24.0%,▲시도별로는 서울 24.8%,경기 인천 17.1%,충청 대전 9.9%,전라 광주 14.5%,경상 부산 대구 29.0%,강원 제주 4.7%,▲지역 특성별로는 대도시 46.9%,중소도시 30.8%,읍면지역 22.3%이다. 이번 표본이 무작위 추출이 되었다고 볼때,이런 방식으로 표본을 100개 구성한다면 그중에 95경우(신뢰수준 95%)에서,전국민의 실제의견과 이번 조사결과의 차이가 플러스 마이너스 3.1%를 넘지않는다. 그밖의 실제조사 과정에서 오차가 개입될 가능성도 있으나 현대리서치연구소와 표준적인 전화실시규칙을 엄격히 적용하여 오차를 극소화하였다.
  • 세계질서 재편과 한반도/불석학 기 소르망 특별예진/신년인터뷰

    ◎새이념 대두… 민주주의·시장경제에 도전/북한 전체주의체제 돌발적 붕괴 가능성/한국은 통화통합등 「통일이후」 대비해야/소·중은 결국 3∼5공동체로 갈라지고/러시아,아주에 큰 관심… 영향력행사 시도/「팍스 아메리카나」 단극체제 상당기간 지속/일 「군국화발걸음」 생각보다 더딜것… 쿠바정권 3년내 종말 언론인이며 국제 정치학자인 프랑스의 소르망 박사(47)는 세계는 다시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분열되는 시대를 맞게될 것으로 점치면서 자유주의와 펀더민털리즘의 대립현상이 대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있는 소련과 중국이 궁극적으로는 각각 3∼5개의 조각으로 분열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소르망박사는 또 북한의 전체주의가 스스로 붕괴되기 전에는 체제변화는 없을 것이지만 한반도 통일은 돌발적으로 올 수도 있으므로 이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소르망 박사를 만나 새해에 전개될 국제정세의 흐름과 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의 앞날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본다. □약력 ▲국립행정학교졸업(정치학박사) ▲파리 정치대학 교수 ▲소르망 출판사 사장(현재) ▲일간지 르 피가로지(불),아사히 저널지(일),라 나시온지(아르헨티나) 고정칼럼니스트 □저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상가들」(1989년) 「새 국부론」(1987년) 「최소한의 국가」(1985년) 「자유주의적 해결책」(1984년) 「미국 보수주의 혁명」(1983년) 등 ­이제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들 얘기한다. 탈이데올로기의 21세기의 모습은 어떤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난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면 다른 새로운 이데올로기들이 등장한다. 자유주의·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 역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게 된다면 영원히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이데올로기를 가진다면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미래의 세계가 더 많은 이데올로기로 분열될 것이라고 본다. 많은 국가와 개인 또는 정부와 국민이 다른 유용한 반민주주의,반시장경제 이론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너무 힘들다든가,잘못 이해되었다든가,고유문화에 맞지 않는다든가 하는 이유로 말이다. 이리하여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대두하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도전하게 된다. ○인 힌두운동이 대표적 인도의 힌두운동,러시아의 강력한 슬라브 민족주의를 볼수 있다. 세계는 이데올로기로 다시 분열된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 아니라,자유주의와 펀더멘털리즘(원래는 기독교에서 성서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요즘은 전통이나 문화 또는 종교에 바탕을 둔 원칙주의적 입장을 뜻하고 있으며 민족주의나 종교적 통치이념 등이 포함됨)의 대립이 될 것이다. 펀더멘털리즘은 이데올로기이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반대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혼란이 오지만 그러나 펀더멘털리즘은 사회주의보다는 훨씬 덜 위험하다. 각자의 펀더멘털리즘은 과거 모스크바처럼 체제의 수출을 꾀하지 않는다. 힌두 펀더멘털리즘은 인도에 좋고 이슬람 펀더멘털리즘은 이슬람에 좋다. 미래의 분열된 세계는 종전의 분열된세계보다는 덜 위험하다』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의 양극체제를 누려왔던 소련이 오늘날 초강국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됐다. 소련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며 동아시아 질서 재편성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독립국가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얽어 묶었지만 궁극적으로는 3개로 분열될 것으로 본다. 하나는 남방의 터키계 제국인데 수도는 알마아타가 될 것이다. 키예프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부근에 수도를 둔 유러피언 소비에트 제국이 생길 것이고 나머지는 러시아 제국이다. 아시아에는 러시아가 현저하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고 남방 제국도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알마아타에서 중국·한국과 손잡기 위해 사람이 올 것이다. 한국은 이 나라들과 경쟁하게 될 것이나,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 예상된다. 냉전시대에 동과 서 사이에 끼였듯이 러시아와 일본의 한가운데 놓이게 되는 것이다』 ○체제수출 기도안해 ­미국은 현재 단극체제의 세계 지배,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해 가고 있다. 미국 독주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어떻게 보는가. 『우선 두 세력보다는 한 세력이 낫다. 내가 뜻하는 것은 오늘날 누구든지 미국·소련의 두 세력보다는 미국이 유일한 세력으로 되어있는 것이 낫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보더라도 1년이나 2년전보다 훨씬 나은 위치에 있다. 미국의 공격성,이른바 미국 제국주의라는 것을 소련의 제국주의와 비교해 보자. 소련 제국주의는 실제적 위협이었다. 미국 제국주의를 말할 때,할리우드 영화,시엔엔(CNN:케이블뉴스 보도망),맥도널드 햄버거 따위를 드는데 이것들의 침공은 소련 군대의 침공보다 덜 위험하다. 미국은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을 원하고 있으며 어떤 사상이나 종교나 제도를 강요하고 있지 않다.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지도적인 강국이 있었다. 미국은 어떤 지배적 강국보다 덜 위험하고 덜 공격적이다』 ­중국이 장래 어떤 모습으로 인접 아시아국에 어느정도 영향을 줄지 예측해 보았으면 좋겠다. 『중국은 전적으로 국내문제에 매달려 있다. 중국의 외교정책,무엇보다도 중국 군부는 더이상 공격적이지 않으며 어느나라도 침공할 의도가 없다. 50년대나 60년대 하고는 아주 다르다. 등소평 이후의 중국은 더욱 개방된 사회로 이행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도 소련처럼 몇개로 분열될 것이다. 3개에서 5개로 나누어질 듯 싶다. 북부 중국은 약간 전체주의적이고,남부 중국은 자유시장경제 지향적인 나라가 될 것이며,그리고 러시아 또는 새로 생길 소련내 터키족 제국과 긴밀해지는 동부 중국과 서부 중국이 나타날 것이다』 ○공산주의는 「시스템」 ­경제대국 일본이 이제 군사대국까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군국주의가 부활할 것인가. 『일본이 이른바 군국주의 또는 신군국주의로 나아가느냐의 여부는 서방세계의 태도에 달려있다. 일본이 세계의 각국과 통상할 수 있는 한,군국주의의 경향이 심각하게 표출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유럽이 일본의 통상을 봉쇄하려고 한다면 1930년대나 40년대의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 현재 일본인은 오직 통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과 유럽공동체가 알아야 한다. 한국인 그리고 미국인과 유럽인들은 일본의 이른바 군국주의화를 과대평가 하거나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여론은 군국화를 심하게 반대하고 있다. 일본 군대는 신병 모집에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 일본인은 군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국민이 군대를 지지하던 30년대나 40년대하고 다르다』 ­세계의 잔존 공산국가중 쿠바와 베트남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경우,공산주의 레짐(통치)을 말하는 것 같은데,나는 공산주의 레짐이 남아있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공산주의가 시스템이었다고 본다. 그 시스템의 중심은 모스크바였다. 이제 센터가 없어지자 공산주의 시스템도 없어졌다. 소련의 지원이 없이는 공산주의 시스템이 있을 수 없고 공산주의 레짐 또한 있을 수 없다. 북한이나 쿠바나 베트남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고립된 전체주의로서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러면 전체주의 통치가 장래 얼마나 버티냐가 문제다. 1년이나 2년 또는 3년이 채 안되어 쿠바의 전체주의는 끝장을 볼 것이다. 베트남은 쿠바와는 좀 다르다. 베트남에는 온전한 관료제도가 있다. 나는 베트남이 정치적 경제적 개방으로의 전이과정을 밟을 것으로 본다. 점진적인 개방을 이미 시작했다. 한국이 베트남 같은 나라의 모델이 되고 있음은 확실하다』 ­국제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북한도 상황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변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과연 변하고 있는 것인가. 『북한에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북한은 전체주의 체제이며 전체주의 체제라는 것은 개혁이 불가능하다. 전체주의 국가와 원만한 협상이나 계약같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환상이다. ○남북통일 역사가 결정 한국으로서는 외교적 관계에 의한 접촉을 북한과 갖는 것과 또한 이 외교적 관계를 통해서 진정한 평화 정착과 재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외교적 접촉에 의한 결과가 어찌될 것인가에 대해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 체제는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통일된다면 언제 될 것이라 보는가. 『내가 보기에 한국 국민의 여론은 정작 눈앞에 다가선 통일문제를 두고 약간 주저하는 것 같다. 돈이 많이 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독일 통일후의 결과를 보고 놀란 한국 사람들은 협정이나 연방(컨페더레이션) 같은 방식을 통한 점진적인 통합이 더 낫겠다고 말한다. 나는 한국 국민의 우려나 망설임 때문에 통일에의 전이과정이 고려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통일은 한국 국민이 아니라 역사가 결정할 것이다. 한국 국민은 북한의 전면적인 남침이나 전면적인 몰락에도 대비해야 한다. 전이과정 없이 바로 통일이 올 수도 있다. 스무스한 통일이 아닐 수도 있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전쟁이 나면 그들이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북한 체제의 자체 붕괴인데 나는 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한국 국민은 돌발적 통일에 당황해서는 안된다. 한국 국민들이 오히려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30년 넘게 북한 국민들이 억압적인 통치하에서 살아왔으며 이들에게도 자유사회에서 함께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30년 넘게 전체주의 체제에서 고생한 것만도 불공평한 것인데 게다가 더 기다리라고 전이과정까지 두는 것은 더욱 불공평한 것이다』 ­통일문제에 미국·일본·소련·중국 등 주변 4개 강대국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 4개국은 한반도의 분단에 크든 작든 모두 책임이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이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이 4개국이 한반도 재통일에 대체로 호의적이라고 본다. 각자 다른 이유에서지만. 중국은 북한을 도울 필요가 없게 됐고 그럴 생각도 없다. 중국은 이념보다 물질적 이익이 우선이다. 중국은 한국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외교적 이익 때문에 한국 통일에 관심이 많다. 미국이 외교적 군사적 이유에서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한국이 국민들 속에 반미감정이라도 번져 제2의 필리핀이 될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소련은 한국과의 경제적 관계와 한국으로부터의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북한에는 관심이 없다. ○북한투자 급속히 늘것 일본은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무장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한반도 통일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력한 한국의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재통일된 한국은 강국이 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일본이 기본적으로 한국의 통일을 지지하겠지만 통일에 도움이 될 결정적인 보조는 취하지 않을 것 같다』 ­통일이 되었다고 가정하자. 하나가 된 한국이 당면하게 될 일은 어떤 것인가. 『독일의 경험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선 과도기간 설정은 필요하지 않다. 가령 양측 사이의 국경을 어느 기간 유지한다든가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북에서 남으로의 엄청난 노동력 이동 현상이 일어날 것인데 이는 국경 봉쇄로 막을 수 없다. 독일은 통화 개혁을 함으로써 엄청난 인구 이동을 피할 수 있었다. 해결책은 화폐의 통일이다. 화폐통일의 또 다른 이점은 북에 대한 남쪽 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북의 노동력이 싸기 때문이다』
  • 노 대통령 신년사/전문

    ◎“우리 모두가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깨끗한 선거로 정치풍토 바로 세워야” 친애하는 국민여러분,해외동포 여러분, 1992년 희망의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올해가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과 보람에 찬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북녘의 2천만 동포 여러분에게도 이 해가 더 없는 축복의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세계에서 한민족으로 자랑스런 삶을 개척하고 있는 6백만 해외동포 여러분에게도 따뜻한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는 올해가 「민주·번영·통일」로 가는 겨레의 여정에 획기적인 도약이 이루어지는 해가 될 것이란 믿음을 나눕니다.전국 방방곡곡,사회 각 분야에서 국민 여러분이 땀흘려 일하고 참고 기다린 만큼 나라의 큰 발전을 이루고 그 알찬 결실을 함께 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새해는 7천만 한민족공동체 건설의 위업을 실현하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남북한은 지난달 「남북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대결과 분단의 어두운 시대를 마무리 짓고 화해와 협력의 밝은 시대를 열었습니다. 우리의 자주적인 노력으로 「핵의 공포가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려는 꿈에도 큰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저의 한반도 비핵화 제안과 그 선도적 실천에 북한이 적극 호응하여 핵무기제조시설을 갖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정녕 반가운 일입니다. 이제 남과 북은 통일을 향하여 함께 전진해야 합니다.남북합의서의 내용이 하나하나 성실하게 실천에 옮겨져야 합니다.끊어진 길을 다시 잇고 멈춰선 열차는 다시 달리도록 해야 합니다. 남과 북을 가르는 철조망을 걷고 사람과 물자와 정보가 자유롭게 오가도록하여 남북의 온 겨레가 한 울타리속에 사는 통일의 날을 앞당겨야 합니다. 냉전시대가 끝난뒤 나라와 지역사이에 번영을 다투는 경쟁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습니다.새해 우리가 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는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아 다시 한번 힘찬 도약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것은 근로자와 기업,국민과 정부…모든 경제주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더 열심히 일하고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정부는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새해에는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것입니다. 1992년은 또한 그동안 온 국민이 함께 참고 가꾸어 온 민주주의가 국민의 생활속에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해가 될것입니다.민주주의는 이제 나라의 발전을 이끄는 힘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하여 올해 있을 선거를 돈안쓰는 선거,깨끗한 선거로 치러야 합니다.선거 때문에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국민생활의 안정이 흔들려서는 결코 안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올해를 정치풍토를 바로 세우고 앞선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키는 해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안정과 질서를 지켜 나갈때 비로소 정치일정과 경제발전은 물론 남북관계의 진전도 순조롭게 이루어질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올 한해도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법과 질서를 지켜나가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국민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속에 사회전반에 일고있는 새로운 국민운동도 새해들어 더욱 활발히 전개되기를 기대합니다. 통일된 민주주의 나라,번영을 누리는선진국의 오랜 꿈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힘이 용솟음치는 새해 아침,온 국민의 뭉친 힘으로 이 시대적 과업을 이룰 것을 다집합시다. 다시는 분단과 전쟁의 비극이 없는 나라…다함께 풍요를 누리는 나라…국민 모두가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나라를 오늘의 우리가 실현해야 합니다. 우리 다함께 이를 위한 힘찬 전진의 대열에 나섭시다.
  • 북한 핵사찰 수락하라/조일신문(해외사설)

    판문점은 한반도의 대결과 대화가 응축돼있는 땅이다.최근 일련의 남북핵협상은 아시아냉전의 초점이 돼있는 한반도를 비핵지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대화의 장이기 때문에 비핵원칙을 지지하는 피폭국 이웃국가로서 일본은 양당사자의 결단에 의해 보다 건설적인 결론이 도출되기를 강력히 기대하고 있다. 남북양자간에는 이미 이달 중순 총리회담에서 조인된 「화해」「불가침」「교류협력」을 강조하는 남북관계사상 획기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문구상으로는 「불가침」을 서약하고 있지만 핵을 둘러싼 의혹이 한점의 가림도 없이 명쾌해져야만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26일의 남북한협의에서 이제까지와는 달리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국제여론이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있는 핵사찰 수락문제에 있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정에 서명의사를 표명했으며 「비준」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와는 보다 한발짝 다가선 태도를 보였다. 새로이 「핵연료재처리」와 「우라늄농축」 시설을 갖지 않겠다는 제안도 있었다.액면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핵무기의 개발포기선언이나 다름없다.한국측의 제안에 대폭 접근한 내용인 것이다. 이는 북한이 노태우대통령의 비핵화 제안과 「핵부재선언」에 의해 거세져가는 국제적 압력으로 막다른 골목에까지 몰린 결과로 볼 수있으며 동시에 스스로 외교노선을 현실중시로 방향전환하고 있는 징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비준의 시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점과 사찰의 구체적 방법등 아직 불투명한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에 앞으로 그 과정을 어떻게 설정해 나가느냐가 최후의 고비로 남아있다. 92년에는 남북한이 모두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정이 예정돼있으며 남북관계에도 중요한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민족의 이익이라는 입장에서 「탈냉전」이라는 외적환경뿐 아니라 한반도의 정세를 스스로 변화시켜나가겠다는 결단을 쌍방이 추구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일본은 내달 하순 북한과의 국교정상화교섭을 앞두고 있다.핵문제를 둘러싼 남북협의가 진전된다면 일·북한교섭 진척에 가로놓인 커다란 장애물의 대부분은 제거되는 것이다.
  • 미·일,북한핵 “공동저지”/새달 정상회담때 논의

    ◎군축원칙 도쿄선언에 명기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과 미국은 내년 1월7일부터 시작되는 부시 미대통령의 일본방문시 양국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개발저지와 소련의 새로운 체제로의 원활한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합의할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28일 보도했다.양국정상들은 또 냉전 이후 새로운 일미 협조관계를 확인하는 「도쿄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도쿄선언은 21세기를 향한 양국간의 기본 협력방향으로 ▲세계평화 ▲정치·안전보장 ▲경제·무역 ▲과학기술 ▲상호이해 등이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미국은 특히 군축협조를 위한 6개원칙을 도쿄선언에 명기하기로 합의했다.6개원칙은 ▲핵확산방지조약 체제의 충실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제도의 확립 ▲화학무기금지조약을 향한 협력 ▲미사일개발기술 수출규제 대상의 확대 ▲핵물질 및 제조플랜트 등의 확산방지 철저 ▲생·화학무기 확산방지 강화 ▲통상병기의 국제적 이전에 관한 투명성 확보 등이다.양국은 또 IAEA에 신고되지 않은 핵시설을 대상으로 특별사찰제도를 창설하는데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다. 일본은 미국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미국자동차 및 부품의 구입을 확대할 방침이며 내수주도의 경제운영 등에서 전향적인 대응을 표명할 예정이다.
  • 러시아,「조·소 우호조약」 개정 검토/소콜로프대사

    ◎냉전시대 문건… 체결주체 바뀌어야/“한반도 전쟁때 자동개입 규정/러공서 승계할 의무 없어”/“대한 통상협정 모색… 대소 차관 보증 이행” 소콜로프 주한러시아공화국대사는 28일 『소련과 북한간에 지난 61년 체결한 조­소상호우호조약은 냉전시대에 체결된 문건으로 금명간 러시아공 지도부와 의회에서 조약승계여부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콜로프대사는 이날 상오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과학연구원(이사장 허만기의원)이 주최한 정책세미나에 참석,「소련사회의 변화와 한소경제협력의 전망」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러시아공화국은 과거 소연방이 체결한 모든 국제적 의무를 준수 할 것이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소련의 자동개입을 규정하고 있는 조­소우호조약은 러시아공이 조약의 주체가 아니기때문에 조약개정문제를 검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콜로프대사는 또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공화국이 핵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핵단추는 옐친러시아공대통령에게 넘겨졌으나 결코 사용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독립국가공동체는 핵무기를 절대로 먼저 사용치 않을 것임을 이미 천명했고 핵무기에 대한 통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러시아공경제협력문제에 언급,『러시아공이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어 양국의 통상협정체결이 필요하다』면서 『러시아공은 기존의 협정·협약을 비롯한 차관보증문제 등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소­북한 「30년 군사동맹」 막내린다

    ◎러공의 “조소조약 개정시사”가 뜻하는 것/남북 등거리외교 탈피… 「친서울」로/북한의 국제적 고립 더욱 심화될듯 러시아 공화국은 구소연방과 북한이 체결한 조소상호우호협력조약 승계문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북한과 더이상 군사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지난 21일 알마아타 선언에 따라 구소연방정부가 체결한 모든 국제적 의무와 권리를 모두 승계했다.그럼에도 유독 북한과의 우호협력조약을 계승해야할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레그 소콜로프주한러시아 대사가 28일 조소우호협력조약의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이에앞서 구소연방 대외관계부 북한담당참사관인 발레리 예르몰로프도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개정의 이유는 지난 61년 체결한 북한과의 동맹조약에 따라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온 소련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냉전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소우호협력조약은 군사동맹조약이다.상호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즉각 군사적 지원을 하고 일방에반대되는 다른 군사동맹에 가입할수 없다는 것이 그 주요내용이다.따라서 이 조약의 개정은 곧 군사지원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소연방은 지난해 10월 우리나라와 수교이후 경제적으로는 한국과,군사적으로는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거리 외교를 전개해 왔다.또 이같은 등거리외교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 및 민주화를 향한 고르바초프소대통령의 노력으로 상대적으로 한국에 치우쳐 있다는 체감을 느끼게 했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협력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이제 러시아와 북한사이에 남은 것이 없게 되는 셈이다.또 그만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독립국공동체 가운데 그 위치나 비중에 따라 연방정부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 나라다.따라서 러시아의 이같은 방침은 곧 나머지 11개 독립공화국의 입장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결국 이같은 움직임은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러시아가 군사협력관계를 청산하더라도 북한과의 관계를 아주 단절시키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러시아­북한간 우호협력조약 파기는 곧 북한이 6·25와 같은 대남침략을 할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아무튼 북한은 이제 탈냉전이라는 시대사적 흐름을 직시하고 핵무기개발을 완전 포기하는등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될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소콜로프대사 강연내용 요지/“내년 옐친방한 계기 양국교류 크게 늘것” 소콜로프 주한러시아공화국대사가 28일 상오 서울 롯데호텔에서 발표한 「소련사회의 변화와 한소경제협력의 전망」이란 강연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공동체의 전망◁ 소련은 엄청난 변화의 와중에 있다.구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고 있다.소련사변의 원인은 사회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태도와 관련되어 있으며 태도의 변화는 자유경제를 도입하려는 경제개혁에서 확연히 알수 있다. 국가공동체의 새로운 탄생은 물론 옐친이 주도했지만 각 국가의 자주성을 기초로한 자의적인 요구에 의한 결과이다.「알마아타협정」선언에 따라 국가독립·자결권·자주권의 원칙에 의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상호협력을 강화할 것이다.공동체 선언국들은 그 자체가 국제적인 주체로서의 역할을 갖는 것이 아니므로 조정기구가 필요할 것이다.이들 선언국들은 기존의 모든 국제적 의무를 수행할 것이며 러시아공화국이 승계국으로 나설 것이다. ▷군사문제◁ 모든 군사문제를 비롯,특히 핵문제에 관한한 선언국들은 공동통제를 계속하고 통합군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공화국들은 핵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소련의 핵버튼은 옐친에게 넘어갔으나 핵버튼이 결코 사용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이들 공동체는 아울러 핵무기를 절대로 먼저 사용하지 않을 방침임을 천명,국제적인 공동체 인식에서 출발한 안정희구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제개혁◁ 경제문제는 오늘날 소련의 모든 어려움의 근본원인이 되어 있다.따라서 소련은 이제 급속한 시장경제로의 이행작업을 수행해야 된다.이에따라 새로운 경제법안들이 제정되었고 이는 주로 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재산의 사유화,소유권의 인정 등이 골자로 되어 있다.이미 러시아공에서는 토지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풀기 시작했고 이러한 토지를 각 개인들이 유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한·소경제협력◁ 양국의 통상협정체결은 매우 필요하다.시장경제로 전환하려는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협조는 원유·석탄자원 등의 교역에서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다.러시아는 현재 한국이 소련에 제공키로 한 경협자금을 계속해 집행키로 한데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우리는 기존의 한·소관계를 러시아·한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노력을 다할 것이다.기존의 협정·협약을 비롯,차관의 보증문제도 성실히 수행할 것이다.더욱이 내년으로 예정된 노태우대통령의 옐친대통령 공식 한국방문 요청도 양국발전의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
  • 일 내년도 방위예산/32년만에 최소 증가/총3백61억불 규모

    【도쿄 로이터 연합】 내년 4월1일 부터 시작되는 92∼93 회계연도 일본의 방위예산은 지난 32년간의 기간중 최소규모인 3.8% 증가,총 3백61억5천만 달러가 될것이라고 일본 방위청 관리들이 27일 밝혔다. 방위청의 예산담당 관리들은 지난 60년 이래 최저의 연간증가율을 기록하는 이같은 신회계연도 방위예산이 편성된 이유는 동서냉전 시대의 종식이라는 상황 보다는 일본경제의 성장둔화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말하고 내년도 예산은 24만 자위대 병력의 복지증진에 보다 많이 사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용기있는 결정 존경”/노 대통령,고르비에 위로 전문

    노태우대통령은 지난 26일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에게 위로전문을 보내고 고르바초프대통령으로부터 답신을 받았다. 노대통령은 전문에서 『최근 귀국의 정치변혁과 관련하여 취하신 용기있고 사려깊은 결정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면서 『각하께서는 귀국의 지도자로 등장한 이래 소련국민에게는 자유와 개혁을,전세계인에게는 냉전의 종식과 진정한 화합을 가져다 주었다』고 위로했다. 노대통령은 『각하께서 보여주신 불굴의 용기와 개혁에 대한 신념이 오늘의 독립국가연합의 각 공화국지도자와 국민에게 이어져 민주개혁으로 발전되어 나가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 소 소멸과 러시아공 부상/특별기고

    ◎유라시아에 「거대개발국」 출현/「공동체」는 이름 뿐인 국가연합될것 지구상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이 없어졌다. 소련은 1917년10월 볼셰비키혁명 다음해인 1918년에 형성된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즉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을 붕괴시킨 신흥혁명세력은 레닌과 스탈린을 주축으로 하는 「소비에트시대」를 개막했다.소비에트시대란 소련식 사회주의의 대명사였다.레닌은 무너진 차르러시아 제국의 자리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그리하여 민족적으로 유사한 러시아,우크라이나,백러시아 3개국을 통합하는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형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소련이라고 하는 연방정부가 없어지고 「독립국가 공동체」라는 동맹에 가까운 연계체만을 유지하는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다.국가연합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제국의 재건이 가능할 것인가는 2000년대의 과제일 수 있다.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도 73년전처럼 러시아공화국이 중심이 되어 이른바 동슬라브민족의 대결합이 있었다.이른바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로 하는 3개의 공화국의 결탁으로 고르바초프가 관장하는 소비에트 중앙정부를 해산시키고 여타 소수민족공화국을 끌어 들여 독립국가공동체구성에 합의를 얻어 낸 것이다.다시말해서 소비에트 연방정부를 탄생시킨 힘이 러시아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슬라브민족의 결합이었듯이,이번 독립국가공동체를 탄생시킨 핵심 세력도 러시아를 구심점으로 하는 슬라브계의 대동단결이었다. 새로 등장할 「러시아제국」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아직도 많은 미지의 변수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세가지 유형을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첫째,러시아공화국이 서서히 독자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소련을 계승한 유일한 제국으로 성장하는 길이다.이 길은 러시아 민족주의가 독주하는 상황을 의미한다.둘째,러시아공화국이 같은 슬라브계인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그리고 러시아인이 다수를 유지하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공화국 등을 포함함으로써 이른바 「슬라브연방」을 새롭게 구성하는 길이다.이 길은 러시아가 보다 많은 양보와 관용으로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셋째,러시아공화국이 여타 독립공화국과 명목상의 국가연합 또는 독립국가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협력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이 길은 앞으로 있을 영토분쟁과 소수민족분규,그리고 경제 및 재산관할권문제 등에서 러시아의 상당한 양보없이는 유지하기 힘든 협력관계 유형으로 보인다. 이러한 3가지 선택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것을 택한다면 그것은 물론 첫째번의 경우일 것이다.두번째의 선택은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가 러시아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불신이 가시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그렇다면 서방이 흔히 말하는 「슬라브민족연방」은 당분간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또한 세번째의 선택은 러시아가 수용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하겠다.말하자면 러시아는 자국의 영토를 보존하고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양보도 할 수 없을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러시아의 선택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현실적으로 스스로의 살 길을 택하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즉 러시아공화국은 제국의 계승을 위해 독주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그렇게 되는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즉 러시아가 우선 정치·경제·군사·외교적으로 안정되어야 여타 슬라브계와 한때 동지였던 여타 소수민족공화국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공화국이 주동이 되는 독립국가공동체는 날이 갈수록 무의미한 국가연합으로 나타나게 되는 반면,러시아공화국의 부상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국내외적으로 그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이는 옐친시대의 개막을 의미하여 미국은 옐친의 독주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탈냉전시대라고 하나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은 국방의 자위권이며 경제적 민족주의다.이러한 상황하에서 러시아공화국은 구소련의 방위력과 경제적·잠재력을 모두 독점적으로 물려 받은 것이다.과거의 소련은 국가관리가 매우 어려운 15개 공화국으로 분산되어 있었으나 이제 대략 같은 규모의 경제적 잠재력과 방위력을 러시아공화국 하나에 집중시키고 집약시킴으로써빠른 시일내에 옐친은 제국의 구조를 내실있게 재정비할 수 있어 보인다. 러시아공화국은 그 정체적 성격면에서 물론 강력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하면서도 국가주도적 발전모델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측된다.그렇게 되는 경우,한국의 경제성장 경험이 러시아에게 암시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따라서 러시아의 정치발전 모델도 국가주도형이 되는 경우,비교적 성공적인 제3세계 모델이 러시아에 매우 유용하게 적용될 것이다.결과적으로 러시아의 등장은 유라시아에 방대하고도 강력한 개발국가의 부상을 의미하며 이는 유럽과 아시아에 새로운 지역변수로 주목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러시아의 상호견제와 대립,그리고 경쟁 또는 협력관계는 계속되리라 믿어진다.1840년 프랑스 정치사학자 토크빌은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과 러시아간의 라이벌관계를 예견하고 있었다.그는 영토의 규모,인구의 크기·민족성·경제적 잠재력,그리고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보아 미국과 러시아는 향후 수세기동안 세계의 중심세력으로 서로가 경쟁하고 협력하는 「제국」으로 보았다.러시아 홀로만으로도 미국에 버금가는 잠재적 국력을 가지고 있다.러시아가 새로 태어나는 자본주의 국가로 급격히 발전하면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에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냉전종식·동구민주화 이룬 역사적 인물”/고르비 사임 각국 반응

    【워싱턴 외신 종합】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25일 사임을 발표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냉전을 종식시키고 동유럽의 민주주의 달성을 가능케한 금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중 하나였으며 역사에 기리 기억될 것이라고 그 업적을 치하했다. ▲미국=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25일 미국이 러시아공화국의 소련 승계를 승인할 준비를 갖춘 가운데 사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소련의 개혁을 위해 보여준 그의 개인적 용기와 지도력을 찬양 했다. ▲영국=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고르바초프의 사임이 임박한 가운데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역사의 방향을 변화시킨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나 고르바초프는 바로 그같은 일을 해냈다』면서 소련 대통령으로서 고르바초프가 이룩한 업적을 치하했다. ▲프랑스=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 옹호에 있어 고르바초프가 이룩한 업적에 개인적인 감사를 표명하며 그에 대한 우정과 행운을 비는 나의 간절한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고 말했다. ▲독일=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에 즈음하여 발표한 성명을 통해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70년 이상의 경직됨과 억압으로부터 구해냈다고 치하했다. ▲일본=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일본 외무장관은 고르바초프는 『그의 신사고외교정책 하에서 분출된 동유럽의 극적인 변화를 맞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위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유럽의 혁명적 변화를 가능케한 그의 업적을 치하했다. ▲북한=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26일 개혁정책으로 소­북한관계를 소원하게 한 장본인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사임을 아무런 논평없이 보도했다.
  • “「소련 74년」이 남긴건 굶주림 뿐”(특파원수첩)

    ◎주민들,이념의 공백속 불확실한 미래에 초조 『고르비가 물러가고 소련이 없어지고 옐친이 부상하고…,다음은 어떤 차례이지요』 25일 하오TV를 통해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사임연설을 지켜보던 블라디미르 쿨라긴씨(45·블라디보스토크지기자)는 마치 퀴즈게임하듯 기자에게 반문한다.담담한 그의 말씨가 나타내주듯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다. 『벌써 10일째 휘발유 판매가 중단돼 자동차들은 발이 묶였고 빵 한조각을 사려면 영하30도의 추위속에 새벽3시부터 빵가게 앞에 긴 줄을 서야하는 마당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떠나든 국민들의 큰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는 국민들은 오로지 어떻게 이 겨울을 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등의 불 이라고 얘기한다. 지난 86년 고르비가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발표했던 시영빈관은 하룻밤 1백20달러를 받고 외국인들을 재워주는 호텔로 둔갑해 소련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그때 고르비를 시중들던 여종업원들은 달러를 갖고와 거들먹거리는 자본주의나라 비즈니스맨들의 비위를 맞추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일반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지난 74년간 자국민들에게는 억압과 공포의 절대지배자였고 서방세계에는 막강한 핵무기로 무장한 「예측불능의」 위험한 상대였던 소련의 몰락이 갖는 의미는 크다. 소련의 소멸은 무엇보다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던 공산주의이념과 그에 입각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완전몰락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는 그 체제가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지난 한 세대 동안의 동서대결체제가 명실상부하게 종언을 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소련의 붕괴는 이데올로기면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체제의 우열을 확연하게 가려내준 역사적 이벤트임에 틀림없다.전통적 의미에서 이념대결시대는 이제 더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외도 빈부의 격차도 없고 그리고 눈물 없고 착취 없는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의 약속이 소련국민들에게 남긴 것은 기아와 눈물 뿐이었다』 이 대목을 얘기하는 쿨라긴씨의 목소리는 자못 흥분되었다.자본주의는 자체모순으로 인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카를마르크스의 「위대한 예언」은 빗나갔고 오히려 정반대로 사회주의가 내부의 힘에 의해 스스로 그 막을 내렸다고 그는 단정했다. 물론 앞으로 사회주의가 물러난 과거의 소련땅에서 자본주의가 쉽게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소련국민 대부분이 지난 70년동안 사회주의 외에 어떤 이념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사회주의가 사라진 이념의 공백상태가 무엇으로 채워질지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로 대표되는 슬라브민족주의가 당분간은 이들을 묶어주는 큰 유대역할을 할 것이고 여타 군소 공화국들도 나름대로 국가의 결속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그 테두리 안에서 민족간 갈등과 경제난이 어우려져 혼란도 가중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인류는 전혀 새로운 미지의 새로운 실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긴장된 양자대결상태에서 어느 한쪽의 소멸은 나머지 한쪽에도 필시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그 변화의 모티브는 「대결」 「완승」 「패배」「공멸」등과 같은 과거세대의 수식어가 아니라 공존을 전제로한 평화의 장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이 과거 냉전기간동안 소위 「공포의 균형」관계를 유지해왔던 소련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러시아를 소련의 상속자로 신속히 인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미국도 자신들의 일차적인 과제가 구소련땅에서 일어나는 불안정,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데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같다. 과거엔 소련의 강대화가 서방세계의 위협이었는데 이제 반대로 서방은 소련의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소련의 상속자가 된 러시아가 언제쯤 다시 기력을 회복하게 될지 또 어떤 성격의 국가로 등장할지 지금으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근대적인 산업국가로서의 국가경영기법을 도입해 재건에 나설 경우 그 장래가 크게 어둡다고만 볼 것은 아니다. 쿨라긴씨는 조국의 엄청난 변혁을 담담하게 맞으면서도 소련의 몰락은 한 세대동안 지속돼온 반목과 갈등의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인류에게 「공존의 장」을 만들어갈 호기를 마련해준 『역사적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기자의 견해에는 쉽게 동의를 표했다.
  • 고르비/「해빙」을 부르고 「개혁」에 지다

    ◎「영욕의 7년」 집권서 퇴장까지/「통독의 문」 여는등 냉전종식을 주도/냉전장악 실패·「빵」 해결못해 “몰락 길”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5년 3월11일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제8대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돼 6년9개월의 집권기간동안 철저한 현실노선에 입각한 정책으로 「제2의 소련혁명」이라 불릴만한 엄청난 변화를 소련과 국제사회에 몰고 왔었다. 그가 권좌에 오르면서 동토의 소련국민들은 볼셰비키혁명 68년만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았다. 이어 89년에는 사상최초로 복수정당후보를 상대로 한 선거가 치러졌다. 90년 2월 공산당은 일당독재를 포기했고 고르바초프는 헌법을 개정,대통령에 취임했다.서구민주주의 개념을 도입,당과 정부의 국가경영에 국민들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조치다. 이에 바탕을 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은 국제정치면에선 세계사의 변혁을 주도해 왔다.대외정책에 있어 그는 항상 군비축소와 주권존중이라는 「신사고 외교」를 원칙으로 삼았다. 고르바초프는 집권한지 8개월만인 85년11월 제네바에서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던 레이건 미국대통령을 만나 화해의 악수를 나눔으로써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87년 중거리핵전력(INF)협정체결을 비롯,88년 동유럽주둔군 50만 감축,91년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등 그의 혁신적인 군축정책은 『탱크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말을 유행시켰다. 이 과정에서 지난 45년 얄타협정으로 출발한 미소 양극체제의 동서냉전시대는 종언을 고하기 시작했다.이와함께 고르바초프시대의 최대업적인 독일통일과 동구권의 대변혁이 이루어졌다. 그는 또 88년5월 아프가니스탄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단행했다. 89년12월 몰타에서 열린 미소정당회담에서는 정식으로 냉전시대의 마감을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중국·이스라엘등 갈등관계 혹은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들과도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연 것도 다름아닌 그의 신사고 외교의 결과였다. 고르비는 셰계를 움직인 정치인답게 다양한 별명도 갖고있다. 「철의 이빨을 가진 사나이」「세계의 대도박사」 「기적의 마술사」등 경탄스런 수식어가 붙는가하면 「금세기들어 가장 탁월한 소련지도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그는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당시 『고르비가 상을 받은게 아니라 오히려 노벨상에 무게를 더해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은 「신사고 외교」의 바탕이 되어 탈냉전·군축등에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작 「빵」문제는 해결하지못해 그를 몰락의 길로 재촉했다.그 이유는 고르바초프 자신이 사회주의에의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으며 개혁의 속도를 끝내 스스로 통제하려고 했기때문이다.그는 사유화등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거부했다.그리고 경제적인 비상조치를 취할수 있는 포고령 발동권을 갖는등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다. 90년 여름 급진적인 내용의 경제개혁안인 「샤탈린의 5백일 개혁안」을 거부하면서 개혁파인사들과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보수파들이 득세했다.상황이 이렇게 바뀌게되자 그해 12월 그의 측근이었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독재출현과 쿠데타를 경고하며 사임했다. 급기야는 지난 8월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발생,고르바초프는 이들에 의해 연금을 당했다. 이 쿠데타는 3일천하로 끝나기는 했지만 고르바초프와 연방정부의 권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혔다.그는 쿠데타이후 공산당 활동도 정지시키고 보수적인 색채의 내각도 물갈이했다.원성의 대상이었던 국가보안위원회(KGB)도 숙정했다.그리고 발트해3국의 독립도 승인했고 각 공화국에 폭넓은 권능을 부여하는 내용의 신연방조약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연방정부의 권위는 회복될 수가 없었다.지난 1일 우크라이나의 독립선언으로 소련방과 고르바초프에게 결정타를 안겼다.그 뒤를 이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국 공동체 구성은 소련연방의 사망신고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환상적 꿈에서 깨트려 현실적 사회로 되돌리려 했으나 70여년간 경직될 때로 경직된 공산체제의 「현실」의 벽에 부딪쳐 끝내 실각을 자초하고 말았다. 1931년 3월2일 러시아 공화국 남쪽 스타브로폴지역의 프리폴노예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고르비는 학비 때문에 고등학교를 3개월이나 휴학하는등 어려운 청소년기를 경험했다. 그는 고교시절 집에서 16㎞ 떨어진 읍에서 방 한칸을 얻어 자취하면서 주말이면 고향집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는 모범학생이었다.이때만해도 그가 훗날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 법대에 입학,마르크스·레닌저작 외에도 로마법,로크의 정부론,루소의 사회계약론 등을 읽으며 사고의 폭을 넓혀 나갔다.심지어 법대에는 미국헌법까지도 열람이 허용됐는데,이같은 서구사상을 담은 「금서」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탈린 치하에선 하나의 큰 행운이었다.이때의 지식들이 현실정치와 접목되어 뒷날 페레스트로이카로 체계화 된다. 1954년 대학재학시절에 만난 라이사 티타렌코와 결혼한 고르비는35세의 나이에 고향인 프리폴노예 시당위원장이 됐고 4년후엔 보다 넓은 지역인 스타브로폴지구 위원장으로 승진했다. 이때 그는 다시 대학에서 농업경영학을 공부,학위를 얻고 농업문제전문가로 등장했다. 고르바초프는 1978년 농업담당 당서기가 되면서 중앙무대인 모스크바로 진출하게된다.그가 모스크바로 올라오게된 계기는 농정실패에 책임을 느낀 쿨라코프가 자살함으로써 농업담당 당서기가 공석이 됐기 때문이다.그에게는 확실히 소련 역대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관운이 따르고 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그러나 소련사회에 평화와 자유의 지평을 넓힌 위대한 개혁가 고르바초프의 몰락은 역사의 아이러니임에 틀림없다.동토의 땅에 개혁의 문을 열어젖힌 그는 결국 그 문으로 퇴장한 것이다.
  • 고르비의 퇴장(사설)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25일 마침내 사임을 발표했다.31일의 소련방공식소멸에 따르는 불가피한 퇴장이다.그가 영도하던 소련방과 함께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나는 것이다.85년 3월11일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지 6년 9개월만의 사임이요 퇴장이다. 공산종주국 소련의 개방과 개혁 그리고 신사고외교로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인 인물의 퇴장인 것이다.그는 74년간에 걸친 1당독재의 비이와 부정·부패 그리고 비능률의 한계에 이른 소련공산당과 공산체제에 과감하고도 혁명적인 개혁의 불을 지른 장본인이다.동구공산권을 해방하고 독일통일을 허용했다.미국과의 획기적인 군축으로 세계적인 화해·협력·공존의 탈냉전시대를 개척한 세계적 지도자였다.한·소수교의 문을 열고 제주도를 방문한 그는 한반도의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세계적인물의 한사람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물론 세계는 그의 퇴장을 보면서 아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가 시작한 개혁이 미처 성공의 결실을 거두지도 못한 상태에서아니 실패라는 평가의 혼돈 상태에서 바로 그 개혁의 결과에 강요당한 그의 퇴진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사회주의의 완전포기가 아니라 개혁을 통한 구제와 강화에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그의 이상이었다.사회당으로 개혁된 공산당이 민주화된 사회주의 소련의 집권당으로 남기를 그는 바란 것이 분명하다.소연방의 소멸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의 소망대로만 움직여 주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고르바초프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그의 희망은 바람직스러운 이상이었는지 모른다.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방법론상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오늘의 소련경제현실과 민족갈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방의 소멸과 그의 사임자체가 그것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물에게는 나름대로의 소임이 있는 법이라면 고르바초프의 그것은 누구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짐승의 얼굴을 한」1당독재의 공산주의체제 부정과 개혁의 과감한 시작에 있었는지 모른다.그런 시각에서 보면 그는 자신에 부여된 역사의 소임을 충분히 그리고 훌륭하게 완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을 수습하고 굳히고 발전시키는 것은 다음 지도자들의 소임임에 틀림없다.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지난 8월의 쿠데타 소동으로 한계를 드러낸바 있다.새출발의 전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그렇지 않으면 파국을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옐친의 독립국공동체는 그 전기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고르바초프가 공산당해체와 독립국공동체 인정및 연방해체와 자신의 사임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같은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의 퇴장은 그가 시작한 개혁의 성공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일지 모른다.고르바초프의 위대한 시작이 옐친등에 의한 훌륭한 결실로 이어지길 우리는 바란다.
  • 국제문제 영향력행사 희망/야인 고르비 어떻게 지낼까

    ◎「사회·정치연구재단」에 전념할 듯/정부선 아파트등 제공… 생활 보장 소연방의 소멸로 세계초강대국의 최고통치자에서 러시아공화국의 평범한 한 국민으로 전락한 고르바초프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그는 일단 전직 국가원수로서 물질적 생활기반은 보장받게 됐다.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24일 고르바초프의 퇴임이후 그에게 아파트와 별장,경호원 20명,전용차 2대를 제공하고 현직수행시의 급여수준인 월 4천루블을 연금으로 지급할 것이며 지급액은 향후 인플레를 감안,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장래계획과 관련,모스크바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사회­정치연구재단」이사장으로 일할 것이라고 24일 밝혔다.이른바 「고르바초프재단」으로 불리는 이 재단은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에 설립됐었다.그러나 그는 지난 22일 미CBS방송과의 회견에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정치의 세계를 떠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언급,새로운 체제에서도 정치적 활동을 계속할 뜻임을 비췄다. 한때 그는 새체제에서 상징적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다.그러나 그가능성은 희박하다.옐친은 최근 『새로운 체제하에서 고르바초프가 할일은 없으며 어떤 직책도 준비할 의사가 없다』고 못박았다.고르바초프도 새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과 거부감을 표시화면서 의례적인 역할을 맡을 의사는 없다고 밝혀왔다. 그는 우선은 재단의 일에 전념할 것으로 보이지만 해외에선 인기가 높기 때문에 틈틈이 국제무대에서의 활동도 펴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직도 정치에의 강한 의욕을 지니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쌓아온 민주화와 개혁 업적을 온존시키고 대중으로부터도 소외되지 않는 분야에서 자신의 진로를 조정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그 어떤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고르비어록 ▲핵전쟁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삼겠다(85.3.11 당서기장 취임연설). ▲지구를 핵의 파국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전인류적인 과제이다(86.8.18 일방적 핵실험동결연장발표). ▲국제적인 파급효과를 지닌 우리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국제사회에서 「소련위협」의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87.11 연설에서). ▲냉전체제의 와해가 시작됐다.냉전을 끝내고 평화시대를 여는데 전력을 모으자(88.12.31 신년TV메시지). ▲동서분단의 가장 강력한 상징물인 베를린장벽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89.6.18 연설에서). ▲냉전의 참호는 사라지고 있다.편견과 불신,적의의 안개는 걷히고 있다.전세계에 살고 있는 현세대는 문명사에서 확고부동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90.6.1 부시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나는 2년후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지도부는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90.7.5 제28차공산당대회). ▲이제 냉전은 종식되고 핵전쟁의 위험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평화의 지평선이 넓어진 것이다(91.1.1 90년 한해를 마감하며 미국에 보낸 메시지). ▲오늘날 모든 사회세력과의 단결을 위해,그리고 모든 갈등을 잊어버리기 위해 상호 함께 일해나가야 할것이다(91.4 연설에서). ▲우리가 시장경제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계경제의 일원이 될수없다.우리는 개혁이 필요하다(91.7.30 부시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의 생애에서 주요과업은 이루어졌다.나는 불과 물,바꾸어 말해 공산당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새로운 연방의 동료들에 의해 짓밟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연성을 보였다.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실책도 없지 않았다.다른 사람이 나의 위치에 있었다면 그들은 이미 떠나버렸을 것이다(91.12.13 기자회견). 고르비 발자취 ▲31년3월2일=러시아공 스타브로폴시 인근 프리폴노예서 출생 ▲50년=모스크바대 법학과입학 ▲52년=공산당 청년조직(콤소몰)에 가입 ▲60년=스타브로폴지구 콤소몰 제1서기 ▲66년=〃 당제1서기 ▲78년=공산당 농업담당서기 ▲79년=정치국 후보위원 ▲80년=정치국 정위원 ▲85년3월11일=소련공산당서기장취임 ▲87년1월=당간부 비밀·경선도입등 개혁정책 본격화 ▲87년12월=워싱턴 방문,INF폐기협정 서명 ▲88년9월=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89년10월=몰타정상회담,냉정종식선언 ▲90년3월15일=5년임기의 초대대통령 취임 ▲90년12월=노벨평화상 수상.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쿠데타 경고후 사임 ▲91년1월=리투아니아공 무력탄압 ▲91년4월=제주서 한소정상회담 ▲91년8월=쿠데타 발발,3일만에 분쇄 ▲91년9월=소련 국가평의회,발트3국 독립승인 ▲91년12월=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등 3공화국 「독립국 공동체」창설선언.소연방 공식해체 발표 ▲91년12월26일=소연방대통령사임
  • 남북의 빗장 풀릴까/남북 「화해시대」로 가는가:9(끝)

    ◎“「화해의 큰흐름」 북도 외면 못할것이다”/「주체틀」 고수속 새 정세 적응 고심/「12·13합의」 얼마나 실천할지… 일부선 회의적 「12·13합의서채택」은 남북관계의 흐름에 비쳐 하나의 「돌출사건」인가.그리고 이같은 합의서채택이 북한의 전략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전술적 차원의 트릭인가등의 물음이 남북합의서 서명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물음이 계속 제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남과 북이 합의서서명 정신에 걸맞게 화해와 평화,공생공존의 시대로 나아갈수 있느냐를 가늠해 볼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대해 신중론에 서있는 관계자들은 오는 26일 있을 핵관련 판문점대표접촉을 지켜보자며 핵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명쾌하게 확인되기 전까지는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이들은 북한의 국가적 전략목표인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해방」이라는 2대 정책은 쉽사리 바뀔수 없으며 그들의 대남전략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낙관론자들은 북한이 이미 변혁의 행보를 시작했으며 그 변혁의 속도는 예상보다 매우 빠르게 진전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냉전적 사고에 얽매여 북한이 최근에 취해온 변화조치들에 대해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3년동안 진행되어온 남북관계의 변화흐름을 감안해 볼때 합의서채택이 결코 돌출적인 사건이 아니며 북한이 이미 소련의 대변혁사태이후 탈냉전의 흐름에 편승,변신의 항해를 시작한만큼 그 행보를 되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같은 낙관적 전망은 현재로서 판단해볼때 나름대로의 상당한 객관적 근거를 갖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남과 북은 올 한햇동안만도 남북단일 탁구및 축구팀을 구성,세계대회에 공동 출전했으며 남북음악인들은 일본 후쿠이(복정)현에서 환일본해국제예술제에 함께 참가했었다.평양에서 개최된 IPU총회에 IPU규약과 관례보다 많은 수의 남한대표단의 파견및 판문점통과가 허용됐으며 9월17일에는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합의서 채택과 함께 올해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북한이 비록 가입후에도 「하나의 조선」정책이 바뀐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으나 궁극적으로 북한의 대외관계는 물론 대남 및 대내정책의 수정을 가져올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당시 대부분 북한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남북간의 화해무드는 이외에도 물자교역에서 두드러졌는데 남한 쌀 10만t과 북한 시멘트·무연탄과의 직교역 계약체결을 비롯,모두 3건의 직교역과 간접교역을 포함,올 1월부터 11월말까지 1억7천만달러의 남북물자교역이 이뤄졌다.이같은 수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배가 늘어난 양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지난해 9월이후 대일수교에 나서 최근까지 모두 5차례의 수교회담을 진행했으며 미국을 비롯,서구·동남아·호주·대만 등 서방권과의 관계개선 노력을 펼치는 등 탈이념적 다변외교를 추구해 왔다. 즉 북한은 고르비 등장이후,그리고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연방해체로 대변되는 소련사태의 급진전 이후 기존의 틀을 벗어난 대외정책을 펼쳐왔으며 남한쪽으로도 분단 40년 넘게 닫아 놓았던 문호를 제한적이나마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그 하나 하나가 지난 40년간 「주체의 울」안에 안주해온 북한의 특성과 연관지어 볼때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북한이 정권창출의 직접적인 지원자였으며 정신적·물질적 지주였던 소련이 연방해체라는 사태를 맞고 있는 급격한 국제정세 변화속에서 단순한 전술적 변화를 통해 체제생존을 도모하리라는 일반의 분석은 북한의 속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데서 나온 것일 수 있다.소련의 연방해체는 곧 북한과 소련 양국간에 과거에 지속되어 왔던 혈맹관계가 다시는 복원될 수 없음을 예단케 하는 동시에 북한으로 하여금 새시대에 맞는 새로운 활로를 찾도록 강요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핵사찰 압력에서 잘 드러나듯 2차세계대전후 45년간 계속돼온 양극화시대를 종말짓고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유일적 지도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북한의 최고지도자에게 새로운 선택을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소련이란 막강한 후원자를 잃어버린 북한이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의 압력을 외면하기에는 역부족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따라서 북한이 26일에 있을 판문점 대표접촉에서 그 어떠한 반사적 반응을 보일지라도 결국은 빠른 시일내에 핵사찰을 수용하는 등 보다 전향적인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시도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 “북,94년말 핵실험 가능”/소 북한문제 전문가

    ◎소­북 동맹 곧 개정” 【모스크바 연합】 북한은 내년 중반쯤 군사용 플루토늄 생산을 시작,94년말에는 핵구조물에 대한 실험을,95년에는 핵무기 운반수단의 자체 제조를 차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소련의 북한문제 전문가인 대외관계부 북한담당참사관 발레리 예르몰로프가 24일 밝혔다. 이와함께 예르몰로프는 지난 61년 체결된 소·북한간 군사동맹조약인 「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이 소련국내 정세의 전면적 변화로 멀지않아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보았다. 그는 북한이 현재 스커드미사일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계획이 완료되면 작전거리가 1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하고 북한의 이러한 위험한 핵개발계획을 지금 당장 중지시키지 않으면 이 지역의 전략적 힘의 균형이 실질적으로 파괴되고 한반도정세가 심각하게 악화,핵무기확산금지조약도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예르몰로프는 『30년에 걸친 기간에 북한과의 동맹조약에 따라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온 소련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체결된 소·북한 군사동맹조약의 개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연방대신 새로이 들어서는 독립국가공동체 특히 러시아는 과거 이데올로기의 족쇄에서 탈피할 것을 지적하면서 새 공동체가 모든 국제조약과 소련이 체결한 협정에 따른 권리의무를 계승했다고 공표했음에도 불구,『소·북한 동맹조약을 현상태 그대로 유지한다면 국제사회에서 한층 증오스럽게 보일것』이라고 말했다. 예르몰로프는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었다.
  • 일 내년 방위비/3.4% 증액

    【도쿄=이창순특파원】 내년도 일본 방위비가 금년보다 3.4% 늘어난다. 일본정부는 22일 임시 각의를 열고 금년보다 2.7% 가량 늘어난 총72조2천1백80억엔 규모의 내년도 일반회계예산안(대장성안)을 승인했다. 이 가운데 방위비는 국민총생산의 0.938%인 4조5천3백69억엔으로 금년보다 3.4% 늘어났다. 일본정부는 방위비의 경우 소연방의 소멸과 냉전구조의 붕괴에 따라서 금년도 신장률(5.45%)보다 줄어든 규모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 외언내언

    부시 미대통령이 내년초 한국·일본 등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다.당초 11월초 순방예정이었으나 국내 경제가 계속 침체상태를 헤매고 보궐선거에서 측근인 공화당 지사후보가 무명의 민주당후보에 어이없게 참패하는 등 국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이런 판국에 아시아순방이 뭐냐』『내년 재선에 적신호가 울렸다』는 등 비판이 일자 미국의 대통령 답지않게 순방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크렘린이 붉은기를 내린후 문자 그대로의 천하무적의 초강대국 대통령도 「재선」이라는 자신의 정치운명과 결부되면 내정과 유권자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로 이해할 수도 있다.그러나 탈냉전시대를 정리한다는 거창한 뜻을 갖고 계획된 순방이 국내의 약간의 잡음에 멈칫하는 부시의 모습을 보며 저래 가지고야 세계를 어떻게 리드해 나갈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수 없었던게 솔직한 심경이었다.◆결국은 안팎 사정에 따라 연초로 다시 계획된 순방에는 전예없이 아이아코카 크라이슬러 사장을 비롯,GM자동차 모터롤라등 22명의 재계거물을수행,마치 미국상품 세일즈단 처럼 모양새가 이상해졌다.부시 스스로 19일 회견에서 『이번 여행은 미국인의 직장창출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우방과의 안보유대나 우호다짐이라는 큰 명제가 뒷전으로 밀려난 듯한 분위기를 조성했다.◆재계거물을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수행하는 형태는 우리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대선배가 된다.우리 국내에서도 재계인사 수행에는 뒷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우리는 「수출입국」만이 살길이라는 절박한 현실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되나 대미국이 자동차나 쌀 등 「메이드인 USA」를 좀더 팔겠다고 그런 모양새를 갖춘다니 왠지 좀 보기 민망하다.◆60년대초 일본의 이케다(지전용인)수상이 유럽순방에서 일제상품 세일즈에만 열을 올려 프랑스의 한 정치인이 「트랜지스터 세일즈맨」이라고 비아냥거린 것이 그의 별명이 되고 말았던 일이 있다.그러나 가상적국마저 다 소멸된 상황속에서 「대미국」이 「미국」이 된데서야….
  • 냉전의 뒤끝… 엇갈린 화와 전(대변환 지구촌 ’91:2)

    올해는 지구촌 여러 곳에서 전쟁이 발발,평화를 깨뜨린 어수선한 한해였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해묵은 내전이 종식되면서 평온을 되찾은 지역도 있었다. 새해 벽두인 1월17일 미국의 전격적인 대공습과 함께 시작된 걸프전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최첨단 무기들을 동원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속전속결로 이라크를 제압했다.그 결과 미국없이는 세계평화를 운위할 수 없는 「팍스 아메리카나」시대가 도래했고 나아가 중동평화회담의 실현이라는 돌파구가 마련됐다.걸프전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중동의 패권을 겨냥해 지난해 8월2일 쿠웨이트를 기습 침공한 데서 발단됐었다.그러나 무모한 후세인은 국제정의와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33개국에서 동원된 68만명의 다국적군에 무릅을 꿇고 말았다. 걸프전이 무사히 해결되자 유고에 내전이 일어나 「유럽의 화약고」발칸지역이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공화국이 유고연방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하면서 한 국가를 이뤄왔던 민족간에 총칼을 들이대는 무자비한 상잔의 내전에 빠진 것이다.이 내전으로 유고는 사실상 해체된는 비극의 운명을 맞게됐다. 반면 전화의 검은 구름이 짙게 깔려있던 인도차이나에서 드디어 캄보디아 내전이 종식을 고했다.지난 10월23일 캄보디아 4대정파는 파리평화협정을 조인,「킬링필드」의 잔혹한 역사를 뒤로 하면서 13년간 끌어온 내전에 종지부를 찍었다.최고국가회의에 분쟁정파가 전원 참가한 캄보디아는 유엔의 감시와 협조아래 오는 93년의 국민총선거 실시를 향해 한발짝씩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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