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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SCE/나토등과 관계설정이 과제로/헬싱키정상회담 무얼 남겼나

    ◎역내분쟁 적극 개입… 「소유엔」역할 모색/「경협포럼」 설치… 동구민주화등 지원/강제성 없어 실효엔 한계… 주도권경쟁 우려 10일 헬싱키에서 폐막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정상회담은 탈냉전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에 걸맞게 이 기구의 새로운 역할과 위상정립을 구체적으로 모색했다는데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또한 그동안 신유럽안보질서와 관련,미국이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나토(NATO)와 미국의 영향력아래에서 벗어나려는 서구연합(WEU)이 벌여온 주도권다툼을 지양하고 유럽안보협력회의를 중심으로 유럽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를 담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을 계기로 유럽안보협력회의의 구체적인 실행여부에 따라 그동안 유럽지역의 안보를 위해 공존해 왔던 나토와 지난달 군사적인 기구로의 탈바꿈을 선언한 서구연합도 중복되는 역할에 대해 다소간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75년 동서 양진영의 평화공존을 모색한다는 목표로 발족한 유럽안보협력회의는 냉전종식이후 새로운 역할을 찾기위해 노력해오다 지난 3월말부터 6월말까지 헬싱키에서 실무자회담을 여러차례 개최하면서 이 기구를 준상설기구로 전환시키는 돌파구를 마련했다.이를 기초로하여 이번 회담에서는 유럽지역의 평화유지장치를 마련하고 탈냉전이후 당면하고 있는 군축문제,민족문제를 비롯해 유럽전역에 걸친 정치·경제·군사부문등 현실적인 과제들을 폭넓게 규정한 「변화의 도전」이라는 선언문을 채택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사항은 유럽안보협력회의의 평화유지활동이다.이와관련해 이번 회담에서는 냉전시대 당시의 적대국들도 포괄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창설,회원국들의 병력지원을 받아 유럽대륙내 분쟁지역에서 평화유지활동을 벌여 나가는데 합의함과 동시에 이를 위해 나토나 서구연합의 병력을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이같은 평화유지활동의 역할확대는 유럽안보협력회의가 현재의 실권없는 상징적 기구에서 앞으로 유럽내 모든 사안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구체적 능력을 확보한 강력한 기구로 변모하는 기틀을 제공하는 계기로 볼수 있다.이번회담에서는 또 구소련및 동구권 18개 신규회원국들의 민주화와 시장경제적 개혁조치를 돕기위한 경제협력포럼을 설치해 역내의 경제적인 안정을 증진시키는 안도 포함됐다. 그러나 유럽전체를 통괄하는 작은 유엔으로서의 집단안보기능과 국가간 협력체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유럽안보협력회의의 이같은 실질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번 유럽안보협력의 회담내용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기까지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우선 유럽안보협력회의 자체가 조약에 의한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강제성과 집행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어 이번 회담의 합의를 실행에 옮기기에는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이와함께 유럽안보협력회의와 기존의 EC,나토,서구연합등 다양한 조직과의 관계설정이 또다른 주요변수로 등장하고 있다.특히 미국을 주축으로한 나토와 독일·프랑스 중심의 서구연합은 유럽안보협력회의회원국에도 함께 포함돼 있을뿐더러 지역적인 안보영역도 중복되고 있어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중요사안이 있을때마다 나타날 첨예한 대립의 해소문제도 앞으로의 과제다. 특히 탈냉전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각국들의 이기주의가 자국의 이해관계에 얽혀 이같은 주도권싸움에 말려들 경우 유럽안보협력회의는 자칫 유럽의 중복된 기구에 또다른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않다. □CSCE 「헬싱키선언」 요지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등 발트해 연안국에 주둔하고 있는 구소련군 10만여명의 조속,질서정연하고도 완전한 철수를 요구한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사상최초의 평화유지활동을 조직한다.평화유지군 파견은 분쟁지역에 휴전이 성립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이를위해 서구동맹(WEU),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독립국가연합등 다른 국가나 국제기구들에 대해 인력과 장비지원을 요청하며 유엔과도 협력한다. ▲소수민족 고등판무관실을 설치한다. 목적은 「문제의 원천을 살펴 분쟁을 평화적으로 방지,관리,타결짓기 위한」 일종의 「조기경보체제」를 구축하는데 있다. ▲CSCE 신규가입국들의 시장경제체제 전환작업과 산업발전을 지원,역내 안정을 증진시키기 위한 경제협력포럼을 신설한다. ▲지금까지 상설기구가 없는 느슨한 조직체였던 CSCE의 조직체계를 재편,효율성을 제고시킨다.복잡한 총의수렴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분쟁지역에 조사단을 파견하고 당사국간 중재활동을 펼칠수 있도록 회원국 고위관계자들로 구성,윤번제로 운영되는 위원회를 설치한다.
  • 다국적평화군 창설 합의/CSCE정상회담 오늘 개막

    【헬싱키 AFP 연합】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는 회원국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8일 냉전 시대의 적대국들도 포괄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창설키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회원국들은 이날 헬싱키에서 가진 실무 회동을 통해 또한 이에관한 역내 전체의 최종 합의가 이뤄지기 전이라도 분쟁 가능성이 있는 사안을 조사·중재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대표들은 실무 회동을 마치면서 채택한 「변화에 대한 도전」이란 제목의 보고서에 이같은 내요을 포함시켰다.합의 내용은 9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열리는 CSCE정상회담에서 선언으로 공식 채택된다.이들 대표는 또한 구유고 내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세르비아가 주도하는 신유고연방을 CSCE에서 잠정 축출키로 했다고 실무 회동에 참석한 오스트리아 인사가 전했다.
  • G­7 정상회담과 한국(사설)

    서방선진7개국 정상회담이 끝났다.18회째였던 이번 회담은 구소련붕괴와 고르바초프퇴진및 옐친등장후 처음이자 미국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의 정상회담이었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일수 있었다.우리입장에선 북한의 핵문제가 세계적현안인 시점이어서 특별한 관심의 선진국정상회담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세계경제및 정치현안에대한 선진 각국정상의 시각과 대응책의 개진을 통한 방향제시와 공동노력의 다짐에 주된 목적을 두어온 것이 그 동안의 관례였다.이번 회담도 예외일수는 없었다.어떻게 하면 혼미의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소련·동구등 공산주의 붕괴후의 민주화및 시장경제화 개혁진행의 구공산권지역을 괴롭히는 각종 민족분쟁 공동대응및지원의 효과적인 방안은 어떤 것인가.구소련의 대량 파괴무기와 그 기술의 제3세계 확산방지와 탈냉전시대의 남북문제에대한 대응 그리고 북한의 핵의혹 해소등도 오늘의 중요한 세계현안들이라 할수있을 것이다.이들 문제중심의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관례대로 정치·경제선언이 연이어발표되었다. 정치선언에서 당연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부수의 의장선언에 포함되었지만 역시 북한의 핵개발의혹에대한 우려표시와 남북한 상호사찰촉구가 아닐수 없다.구소련문제와 중동문제에 이어 5번째로 거론하면서 남북대화의 진전을 평가하고 더욱 진전시킬 것을 요구하며 그것이 한반도 추가긴장완화의 희망을 주고있다고도 지적했다.한반도와 북한핵이 세계적 탈냉전추세에 제동을 걸고있는 중요장애요인이며 세계가 해결해야할 현안의 하나라는 인식의 강조라 할수있을 것이다. G7의 가장 중요한 본래 관심분야인 경제분야에선 예상했던대로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임으로써 세계경제촉진의 이렇다할 처방의 마련에는 실패했다.대통령선거를앞두고 경기진작을 위해 금리를 29년만에 최저수준으로 낮춘 바있는 부시대통령은 일본과 유럽각국의 상응조치를 희망했으나 이렇다할 호응을 얻지못했다. 경제뿐아니라 정치분야에서도 각국리해가 상충하고 엇갈린 회의였다는 것이 이번회담의 특징이었다.구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졌으며 석유쇼크와같이공동대응을 시급히 요한 심각한 경제위협도 없는 상황의 불가피한 결과라 할수 있을 것이다.이런 와중에서 국제정치발언권 강화를 노린 일본은 선거를 앞둔 부시에의 협조를 통해 위상을 높이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러시아의 쿠릴4도 대일반환문제를 의제화하고 정치선언에 반영하기까지 했다.그러나 그것이 정말 바람직한 것이었을는지는 미지수다.궁지에 몰린 러시아의 정치·경제민주화개혁지원을 영토문제와 결부시키고있는 일본의 모습을 세계에 과시한 것이다.걸핏하면 국제공헌을 자청하는 아시아유일의 G7회원국 일본이다.영토문제와는 별도로 러시아를 지원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일본의 떳떳치못한 행동에대한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결국 세계경제나 일본의영토문제등에서 볼수있듯이 G7도 「강대국=선진국=부국」들의 정치와 국익경쟁장으로 전락하고말것인지 우려를 금할수 없다.그럴양이면 차라리 모든 문제를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우리와 온세계를 회원국으로 하는 유엔으로 가져가고 통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바람직할것이다.세계는 이미 선진국들만으론 아무것도 해결할수없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 G7정상,“「핵확산방지」 협력강화”/구소 핵 안전 최대한 지원

    ◎정치선언 채택/세르비아에 무력제재 경고/러공 외채지불유예 요청 승인할 듯 【뮌헨=이기백특파원】 서방 선진7개국(G­7)지도자들은 7일 핵무기및 기타대량살상 무기의 확산이 탈냉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히고 구소련으로부터의 핵물질 유출방지를 지원할 것을 역설했다. G­7 정상들은 회담 이틀째인 이날 발표한 정치선언에서 동서대치국면의 종식이 역사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핵무기와 기타 대량살상무기,그리고 이들 무기의 운반능력을 갖춘 미사일의 확산을 규제해야할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 「국제안보에 대한 위협을 줄이기 위해」 민감한 품목들의 수출을 통제하는데 따른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이 선언은 이어 『우크라이나 카자흐 벨로루시(백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공화국들이 비핵국가로서 빠른 시일내로 NPT에 가입,조약내용을 준수해 줄 것』으로 기대를 표명하면서 『우리는 구소련 핵물질·무기·기타 민감한 품목및 기술에 대한 효과적인 수출통제체제 확립에 최대의 중요성을 두고 있으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 실제적인 지원과 훈련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선언은 『전세계는 핵물질의 안전을 보장하고 핵무기의 비밀생산이나 불법적인 생산을 추적.방지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조치를 필요로 하고 있다』면서 이를위해 NPT나 이와 유사한 구속력을 갖는 협정과 「전면적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체제」의 채택이 핵협력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선언은 일본북방 4개 섬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규를 빚고 있는 일본­러시아관계에 대해 양국에 영유권분쟁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러시아측이 양보해야 한다는 인상을 비췄다. G­7지도자들은 이날 정치선언과 함께 유고슬라비아 내전사태에 관한 특별코뮈니케도 채택,세르비아 민병대에 내전으로 파괴된 보스니아에 긴급구호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유엔군사력이 사용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구소련내 핵무기의 안전을 지원할 것을 다짐했다. 한편 G­7정상들은 8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러시아의 경제개혁과 시장경제체제로의이행에 따른 서방측의 재정원조문제등을 중점 논의할 예정이다. 【뮌헨 로이터 연합】 서방선진공업7개국(G7)은 러시아의 외채상환을 전면 연기해 달라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 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미국의 한 관리가 7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G7측이 취할 이같은 조치가 「전면 지불유예」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옐친 대통령은 G7측이 총 7백40억달러로 추정되는 구소련의 외채상환 시기를 최소한 2년간 유예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옐친 대통령은 7일 G7정상들의 만찬모임에 참석한 뒤 8일 이들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 미국 관리는 또 옐친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 가운데는 국제통화기금(IMF)차관 10억달러와 채무경감 25억달러를 비롯,세계은행과 유럽재건·개발은행 차관 10억달러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 외언내언

    「G7(세븐)」이라고 부른다.그냥 「서미트」(SUMMIT=정상)라고도 한다.6일 열린 선진7개국그룹 정상회담을 이르는 말이다.미·영·불·독·이·일·가 등 선진7개국과 EC의 정상들이 1년에 한번씩 모여 세계의 정치·경제·안보문제등을 논의하는 회의다.◆세계문제일반에 관한 연례국제회의로는 1백75개회원국의 유엔총회가 있고 보다 구체적이며 책임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상설회의요 기구인 안전보장이사회도 있는데 무슨 옥상옥의 중복되는 국제회의인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오늘의 달라져버린 국제여건에서 보면 더욱 그런면이 없지않다는 생각도 든다.◆그러나 회의창설당시는 사정이 달랐다.금년이 18회째인 이 회의가 처음 열린 것은 75년 프랑스 랑뷔에에서였다.당시 슈미트 서독총리와 지스카르 불대통령의 제창에 의한 것이었다.주된 목적은 73년의 1차석유쇼크로 인한 세계경제위기타개책 모색에 있었으며 성과도 컸었다.◆그것이 회를 거듭하면서 변질되어 한때는 구소련등 공산권에 대응하는 서방정상들의 단합대회 같은 정치적 성격의 것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하나 소련의 붕괴와 탈냉전을 맞아 이번엔 구소련의 정치·경제민주화개혁 지원이 주된 관심사가 되는 금석지감의 변화속에 있다.작년의 런던회의땐 고르바초프 구소대통령이 초청되어 「G7+1」이 되더니 옐친이 참석하는 금년엔 러시아를 더한 「G8」을 만들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각국정상과 대표단 1천8백여명에 보도진 6천여명이 모인 뮌헨은 독일남부의 유서깊은 고도.2차대전 직전인 38년 독의 히틀러와 영의 체임벌린,불의 달라디에,이의 무솔리니에 의한 당시의 유럽G4회담이 열렸던 곳이기도.체코의 스테덴지방을 독에 양보한 영·불의 유화책이 히틀러의 침략을 고무시킨 역사적 교훈의 현장으로 유명하다.또다른 소국희생의 강대국이익추구를 경계하는 것은 공연한 노파심일까.한반도와 아시아이익의 대변을 자청하고 나선 일본의 속셈을 의심하는 것은 지나친 불신일까.
  • 에필로그/나윤도특파원 현지리포트(중남미를 다시본다:14·끝)

    ◎역내협력 강화… 경제·정치결속 움직임/남미공동시장등 본격적 블록화/미도 외채탕감으로 적극적 지원/“민주화·경제발전 동시 추구”… 한국을 「부러운 모델」로 1492년 8월 3일. 스페인을 출발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0주동안의 항해 끝에 카리브해의 한 섬에 도착한 날이다.그로부터 5백주년을 맞는 오늘의 아메리카대륙은 그 「역사적 발견」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은 유럽인에게는 인류에 대한 위대한 공헌으로 평가됐으며 콜럼버스 개인은 진보와 개명의 선구자로 추앙받았다.그리고 그같은 유럽의 견해는 그대로 전인류의 견해로 통용돼왔다. ○21세기 대륙으로 그러나 오늘날 아메리카대륙 특히 중남미에서의 해석은 사뭇 다르다.콜럼버스의 도래야말로 아메리카대륙에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지배,문화적 약탈,그리고 개인적·민족적 굴욕을 가져다준 최대의 재앙이었으며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대륙 파괴의 선구자라는 것이다. 즉 억압과 인종차별,노예제,민족절멸,환경황폐화등이루헤아릴수 없는 백인들의 만행 때문에 오늘날 중남미의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중남미는 종속이론의 시발지가 되었고 해방신학이 나왔으며 관료적 권위주의·민중주의·조합주의등 수많은 현대사회과학의 이론들을 탄생시켰다. 최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됐던 세계환경회의는 비록 그 주제가 환경분야로 한정되기는 했지만 그같은 중남미인들의 주장이 크게 부각된 장이기도 했다.국제질서가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한 냉전체제에서 환경·마약·에이즈문제등을 주의제로한 남북간의 대립관계로 전환되면서 중남미는 21세기의 대륙으로서의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받게된 것이다. ○상실시대 벗어나 「저개발의 정신상태­라틴아메리카 케이스」라는 책의 저자 로렌스 해리슨 교수는 『최근의 경제위기와 동구의 붕괴가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 자신들의 현재상태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 주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콜럼버스 이후 5백년을 지내오는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북아메리카는 엄청난 부와 발전을 이룩한데 반해 스페인·포르투갈의지배를 받았던 중남미는 빈곤과 저개발 상태로 처져있게된데 대한 자성의 소리가 높았던 것이다. 가공할만한 높은 인플레와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악성 외채로 인한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겪으며 80년대를 이른바 「상실의 시대」로 지내온 중남미 각국은 이같은 뼈아픈 자성을 바탕으로 90년대들어서는 자유시장경제·대외개방경제·자율경제등을 축으로한 재도약의 힘찬 몸짓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자성의 움직임은 특히 중남미인들의 강한 연대의식으로 나타나 역내 블록화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이에따라 가장 먼저 결실을 맺게된 것은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로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등 4개국이 95년 1월1일을 기해 공동시장을 출범시키기로 하는 「아순시온협정」을 체결해놓고 있다. ○단일관세제 창설 또 멕시코·콜롬비아·베네수엘라등 카리브연안3개국(G-3)도 오는 94년 중반부터 상호교역증진및 에너지분야 협력확대등을 겨냥하여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할 계획으로 있다.이와함께 볼리비아·에콰도르·콜롬비아·페루·베네수엘라등 5개 안데스조약국 역시 92년도부터 자유무역지대설치와 단일관세제도를 창설키로 하고 있다.카리브해국가들도 카리비안공동체(CARICOM)를 결성,오는 94년 공동시장 발족을 꾀하고 있다. 그밖에 2국간의 쌍무협력관계도 활발히 이뤄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칠레와 아르헨티나,멕시코와 칠레등 양국간 경제통합 또는 자유무역협정 체결등 관계강화가 증가하고 있다. 한편 중남미 경제의 블록화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조지 부시 대통령은 90년6월 아메리카대륙의 북쪽끝에서 남쪽끝까지를 뜻하는 『알래스카에서 디에라 델 후에고까지를 하나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범미주공동시장 형성을 촉구하는 이른바 「아메리카 이니셔티브」를 발표한뒤 중남미국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외채탕감을 실시해왔다.또한 캐나다·멕시코와 93년 발족을 목표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추진중에 있으며 지난 5월에는 남미진출의 첫케이스로 칠레와 자유무역협정 교섭을 시작했다. 이같이 활발한 각종 협력 움직임은 많은 공통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중남미를 경제적 결속 뿐아니라 장차 정치적 사회적 결속으로까지 이어갈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국영기업 민영화 중남미 각국은 군부독재정권의 경제정책실패로 경제파탄의 상황에까지 처했으나 80년대 말부터 각국이 정치민주화를 통한 인플레억제,국영기업 민영화를 통한 재정적자감소등으로 상당한 극복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또 안정성장의 기틀도 잡아가고 있다.회복된 정치력에 국민들의 신뢰가 쌓인다면 천연자원을 바탕으로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중남미의 재도약을 점치기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탈냉전시대의 중남미 각국을 돌아보면서 기자가 느낄수 있었던 것은 개도국 근대화에 있어서의 해묵은 질문인 「정치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동시 추구 가능성」이었으며 특히 이점에서 한국을 「부러운 모델」로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뜨거운 시선이었다.
  • 전술핵 미철수/한국·유럽 등 배치 2천4백기 본국회수 함축

    ◎“지구촌 핵추방” 첫 가시적 성과/한국 「핵부재 선언」 재확인 된셈/「제3세계 핵보유」 저지가 과제 미국이 2일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에 배치했던 전술핵무기의 철수가 완료됐다고 발표함으로써 인류는 「핵없는 세계」를 향해 다시한번 의미있는 일보를 내디뎠다. 이로써 지난해 9월말 부시 미대통령이 약속한대로 공군,즉 전폭기에 장착되는 전술핵무기를 제외한 2천4백기의 해외배치 지상 및 해상발사핵무기들이 모두 미국본토로 회수돼 곧 폐기되게 됐다. 이번 철수가 완료된 해외배치 미국전술핵무기는 ▲1천개의 포탄두 ▲7백개의 랜스미사일 탄두 ▲2백개의 B­57잠수함공격용 폭뢰 ▲선박에서 제거된 5백기의 전술핵무기 등이 포함돼 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부시대통령의 발표에 앞서 성명을 통해 미국이 지상에 배치한 핵포탄,단거리 미사일,해군수중핵폭탄등 수천기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했다고 발표함으로써 부시대통령의 발표를 뒷받침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18일 『우리나라 어디에도 하나의 핵무기도 없다』고 밝힌 노태우대통령의핵불재선언도 이번 부시대통령의 발표를 통해 재확인된 셈이됐다. 지난 87년 12월 미소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INF(중거리핵전력)폐기협상이 타결된 이래 미소양국은 핵없는 세계(제로 옵션)를 향해 꾸준한 진전을 이루어왔다.이번 부시대통령의 발표는 지금까지 나온 일련의 군축약속이 현실화된 최초의 성과라는 점에서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9월 소련의 쿠데타실패 직후 부시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소련측에 제시하며 소련에도 유사한 조치를 촉구했던 사항이다.1년이 채안되는 짧은 기간내 이같이 미국의 해외배치 핵무기 철수작업이 완료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동서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라 핵억지를 근간으로 한 두 핵강국 미국·러시아의 전략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술핵 폐기와 함께 10년 가까이 끌었던 전략핵무기제한협상(START)도 지난해 7월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각자 보유중인 핵탄두를 3분의 1씩(미소 각 6천4백기 수준으로)감축한다는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었다.지난 6월 워싱턴 미·러시아 정상회담에서는 오는 2003년까지 미국 3천5백기,러시아 3천기 수준으로 전략핵무기를 추가 감축키로 합의함으로써 핵감축에 관한한 이제 미·러시아는 거의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전략핵 부문에서 대규모 폐기작업이 시작될 경우 경제난에 허덕이는 러시아측에 핵폐기 작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경비를 미국이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딕 체니 미국방장관이 2일 미상원군사위 청문회에서 증언한바와 같이 이라크·북한등 제3국의 「무모한」핵무기개발을 어떻게 저지시킬 것이냐는 문제이다.동서 핵대결로 인한 인류전멸의 위협은 줄어들었지만 지역패권욕을 내세운 모험주의 세력들의 핵보유 위협이 보다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일,아시아 정치주도권 노린다/일 총리 「아태안보기구」제의 안팎

    ◎PKO 이은 역할증대가 목표/문화·경제 격차로 실현 여부는 미지수 미야자와(궁택)일본총리가 밝힌 새로운 아시아안보구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 증대는 물론이고 장차 일본이 「아시아 경찰」역을 담당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2일(현지시간)워싱턴 프레스센터 강연에서 「2원체제」의 아시아안보구상을 밝혔다. 일본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캄보디아분쟁해결등에 직접 참여함과 동시에 아시아안보를 위해 미국,러시아,중국등과 긴밀한 다국간 협의를 한다는 것이다. 미야자와총리의 구상은 일본이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같은 아시아의 새로운 집단안보체제를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미야자와총리는 지난달 22일에도 『미국,러시아,중국등이 참가하는 냉전이후의 새로운 아시아안보체제 구축이 일본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그는 아시아에도 CSCE와 같은 다국간 안전보장체제 구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집단안보체제구상은 일본이 처음 제의한 것은 아니다.지난 91년 4월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때 이미 일본,미국,소련,중국,인도등이 참여하는 5개국 협의를 제창했었다. 일본은 그러나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유럽에서와 같이 급격히 낮아지지 않았다고 판단,소련주도의 아시아 안보체제구축에 소극적이었다. 일본은 소련의 소멸등 상황이 바뀌자 새로운 아시아안보체제 구축의 주도적 역할을 위해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미야자와총리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전보장을 위해 우선은 한·미·일 등이 참가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확대외무장관회의등 기존의 외교무대를 활용하고 장차는 러시아·중국 등이 건설적인 파트너로 참여하는 안보체제를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유럽과 같은 집단안보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유럽은 경제적 「평등」과 함께 유럽인들이 공유하는 유럽문명이라는 강력한 구심력이 있다.그러나 아시아는 빈부의 격차및 문화적 다양성 뿐만아니라 분쟁지역등 안보적 불안정요인이 많다. 아시아에서는 이같이 집단안보체제의 장애요인이 적지않지만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은 냉전이후 새로운 아시아질서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안보체제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미야자와총리의 안보구도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미국의 정치·군사적 역할인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전제는 3가지 의미에서 일본의 국익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첫째는 현실적으로 아시아지역에서 중대한 사건이나 변화가 나타날 경우 미국외에는 적절히 대응할 국가가 없으며 미군의 아시아주둔은 아시아안보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두번째는 미국이 고립주의로 돌아가 보호무역을 강화할 경우 일본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세번째는 미군의 아시아 주둔은 일본의 군사적 팽창주의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경계감을 희석시킬 수 있다. 일본은 아시아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미일양국이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위한 PKO법안 제정과정에서 나타났듯이 본격적으로 안보문제에 참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 “북한 핵의혹 해소돼야”/상호사찰받게 압력 필요/부시­미야자와

    ◎아주안보기구 창설 제창/일 총리 【도쿄 연합】 미국을 방문중인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2일 워싱턴에서 행한 강연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치적인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시아에 중국·러시아등이 참여하는 다국간 안전보장 기구가 창설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거듭 밝혀 주목되고 있다. 미야자와 총리는 이날(한국시간 3일 상오)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가진 강연을 통해 냉전후 새로운 국제협력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안정이 긴요하다고 역설하고 『이 지역에서도 미·일 협조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정치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전역적인 정치대화의 테두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이같은 테두리에 「건설적인 동반자」로서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문민정치의 기반다졌다/하토리 다미오/「6·29」5주(해외특별기고)

    ◎노 대통령,다양한 이해의 조정자역 훌륭히 수행 노태우대통령이 87년 민정당대표위원 당시 발표한 「6·29선언」으로 부터 5년동안 한국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다른나라에서는 10년이 경과해도 나타나기 어려운 큰 변화들이 계속 되었다.민주화·서울올림픽·북방외교의 성공·남북회담과 유엔동시가입·급속한 경제발전등 외국인으로 볼때 당혹스러울 정도의 큰 변화였다. 이같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 한국인들의 놀라운 활력과 적응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이러한 큰 변화는 국제적으로 냉전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변혁기의 와중에서 나타났다.그러나 동·서화해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착되더라도 세계질서변화에 대응할만한 경제력의 축적이 없었다면 한국의 큰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한국의 경제력 축적은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노대통령의 민주화 선언은 한국정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노대통령은 지난 88년 권위주의 청산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취임했다.그는 급속한 자유와 개방의 물결속에 각계각층의 민주화 요구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많은 과제들을 처리해 가면서 한국의 정치를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 시켰다. 그 과정은 불안한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문민정치 실현의 기반을 마련해 냈다. 한국의 민주화는 경제의 대외개방과 민간부문의 자율화를 가져오고 경제적 평등화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근로자들의 임금면에서 평등화 현상은 뚜렷하다.통계로 볼때 학력별 또는 직종별 임금격차는 급속히 감소되고 있다.저학력 근로자의 실질임금 상승률과 지금까지 임금수준이 낮았던 제조업 분야의 임금상승률이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이같은 임금상승에는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과거에는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일본보다 적었으나 민주화이후에는 오히려 확대되는 조짐이 보인다. 민주화에 따른 경제자유화는 기업의 경영능력을 시험하고 있다.경제의 고성장하에서 나타나고 있는 적지않은 결손기업의 출현과 전반적인 이익률 감소는 앞으로 산업구조변동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근로자의 임금상승은 내수를 촉진하여국내시장을 확대시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경제성장의 상당부분을 내수가 차지한다는 것은 수출의존적인 한국경제가 한층 성숙화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소비자의 높아진 구매요구수준을 만족시킬만큼 산업기술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데 있다.또 임금이 상승,상품가격이 인상되었으나 제품의 품질은 그만큼 향상되지 않아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다.임금상승은 한국민주화의 가장 비싼 대가였다.국민들이 자유로이 말하고 권리를 주장하며 산업현장에서는 임금인상 요구가 분출됐다. 많은 한국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생활을 즐기려는 경향이 짙어졌으며 이같은 현상도 민주화의 대가이다.한국은 민주화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그 비용의 대부분은 국민들 스스로 부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행히 한국에는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커다란 무형의 자원이 있다.그것은 「보통사람들의 보통두뇌」이다.보통두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하다.기업의 경우 의사결정이 경영진에 의해 이루어진후 하부조직에 일방적으로 지시된다면 보통의두뇌활용은 불가능하다.권한을 하부조직에 위임함과 동시에 하부조직 의사가 경영진에 전달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업무의 분담은 산업민주화라 할수 있다. 한국기업중에는 우수한 두뇌를 소수만 확보하고 그밖의 생산현장이나 판매일선에는 단순노동자만 고용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우수한 두뇌를 어느정도 잘 활용해 왔다.그러나 산업이 다각화 되고 상품과 시장이 다양화 되는 상황아래서는 어떤 우수한 두뇌도 전체를 모두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다양한 현대의 경제구조하에서는 다수의 보통두뇌가 정보교환을 잘할 경우 소수의 우수한 두뇌를 능가할 수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 경우에 따라서는 공조할 수 없는 사상을 주장하는 단체도 등장할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다.한국사회는 6·29선언이후 언론의 자유가 크게 신장되고 다양화 되고 있다.민주화의 정도는 보통사람들의 보통두뇌의 활용과 정보의 공유정도,의사결정과정에 걸리는 시간등의 척도에 의해 측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선언한 노대통령의 임기는 내년초 끝난다.노대통령은 민주화 선언이후 공정한 선거과정을 통해 당선된 지도자로서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했다.외교면에서는 특히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그가 취임이후 펼쳐온 북방외교는 한국외교의 새지평을 열며 구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또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실현시켰으며 남북통일의 길목을 열었다. 노대통령은 외교면에서의 지도력 발휘와는 달리 내정면에서는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그러나 노대통령은 지도력이 부족하기 보다는 강력한 지도력의 발휘를 자제했다고 할 수 있다.노대통령은 민주화이후 「초대」대통령으로서 권위주의시대와 같은 지도력 발휘를 억제하고 다양한 이해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민주화시대에는 강력한 지도력이나 지배력의 발휘가 반드시 바람직 스러운 것은 아니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과 타협이 필요하다. 한국의 민주화는 얼마간의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성숙화의 방향으로 발전할것으로 보인다.노대통령은 한국의 정치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제도화로 발전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 미,해외 지·해상 전술핵 철수 완료/부시 「9월선언」완전이행 성명

    ◎회수무기전량 폐기준비 【워싱턴·브뤼셀 로이터 AP 연합 특약】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미국은 해외에 배치된 지상및 해상의 전술핵무기 전양을 철수하기로 한 약속을 완전이행했다』고 2일 선언했다. 소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냉전」이 종식될 조짐을 보였던 지난해 9월 부시대통령은 해외에 배치된 단거리 전술핵무기를 모두 국내로 철수하겠다고 공언했었으며 이어 올1월 미해군의 함정및 잠수함에 적재된 모든 전술핵무기의 철수를 명령했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오늘 나는 계획된 철수가 완전히 끝났음을 밝힌다』고 말했다. 미국내로 회수된 전술핵무기들은 모두 폐기처리될 예정이다. 이에앞서 미국은 유럽에 배치한 수천기에 달하는 모든 지상및 해상배치 전술핵무기에 대한 철수를 완료했다고 2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밝혔다. 나토는 그러나 이번 유럽배치 미전술핵무기의 철수규모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 이로써 나토는 유럽에서 공중 핵공격방식만을 보유하게 됐다. 미·영·독등 나토 16개국은 지난해 가을 유럽에 배치된 핵무기를 80% 감축하는데 합의,나토의 43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핵무기감축에 도달했었다.
  • 평화통일의 토대 닦았다/「6·29」 5주(해외 특별기고)

    ◎비탈리 이그나텐코·이타르타스 통신사장 전 소대통령 대변인/한­소수교로 동북아해빙 서막올려 한국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남은지 30년 되던 해부터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했다.뿐만아니라 세계평화수호에도 큰 기여를 하는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됐다. 냉전이 남긴 비극의 마지막 장인 한반도에서 동서의 운동선수들이 모두 참가해 치러진 지난 88년의 서울올림픽은 경제면에서는 물론 세계평화에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 좋은 예가 됐다. 1987년 6월 29일 지금의 노태우대통령이 주도한 『민주개혁에 관한 선언』은 경제발전수준에 걸맞는 민주화를 갈망하던 한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켰다.6·29선언으로 한국은 급속한 속도로 민주화를 이루어나갔다.한국사회는 과거의 권위주의체제를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지난 5년간의 민주화과정을 통해 자유와 자율의 기풍이 사회 모든 분야에 퍼져나갔고 새로운 민주질서가 확립됐다. 과도기간중 사회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돼 사회의 안정과 질서가 침해됐던 것도 사실이다.몇몇 과격단체들이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했던 사실은 이곳 모스크바에서도 잘알고 있다.우리는 TV화면을 통해 관공서와 경찰관서까지 대상으로 삼아 벌어지는 폭력적인 행동들을 자주 목격했다. 민주주의는 법질서 준수의 바탕위에서만 얻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있다. 전두환씨가 1988년 자신의 통치기간중 저질렀던 전횡을 시인함으로써 한국에서 박정희식 통치 체제는 사실상 끝났다.나는 그 시점이 바로 한국의 민주화에 중요한 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바로 이때 한국은 세계전역에서 전개되던 사회·정치의 진보적인 새 조류를 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앞으로 한국민은 다음의 3가지 과제를 우선적으로 완결시켜야 한다.첫째,노대통령이 시작한 자유민주주의를 모든 생활면에서 안정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둘째,계층간 격차를 점차적으로 해소해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일.세번째로는 한반도에서의 냉전해소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남북한간 대결을 끝내고 평화통일의 길을 닦아나가는 것이다. 이 일들은 매우힘겨운 과제임이 분명하지만 그 토대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노대통령이 대외정책부문에서 이룬 성과들은 물론 전세계적인 데탕트와 동유럽 및 구소련땅에서 스탈린주의체제가 붕괴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하지만 한국은 강대국들의 갈등이 빚은 자신들의 역사적 비극상황을 이 주변변화의 기회를 이용해 바꾸었다. 소련은 당시 한국이 급속한 속도로 변화를 해주었기 때문에 한국에 접근하게 됐다.물론 한국의 경제발전은 이때 소련이 접근하게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88올림픽 성공적 개최… 세계평화에 기여 구소련 공화국들은 한국의 경제적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국과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기 위해 힘쓰고 있다.소련에서 한국에 대한 접근필요성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주간 「노보예 브례미야(신시대)」를 통해서였다. 당시 「노보예 브례미야」는 사설에서 『1970년대 중국이 일본에 접근했던 것과 같이 한국은 소련의 중요한 경제파트너가 될수있다.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제통합 분위기로 말미암아 소련과 한국의 접근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이 됐다』고 썼다. 한국은 이제 자신들이 경제·정치면에서 어떤 나라와도 경쟁이 아니라 협력관계를 유지할수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특히 모스크바 당국자들을 감동시킨 것은 한국의 민주화였다.당시 소련언론들은 『한국은 1987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합헌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이제 두나라 관계발전에 정서적 장애는 모두 제거됐다. 한국은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적체제로 성공적으로 이행한 경험을 가진 나라다.행정정치면에서 중앙통제체제를 청산하고 다원화 사회를 이루어야 할 소련으로선 유사한 과제를 이루어낸 한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6공화국의 주요업적으로 「북방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북방정책은 소련­한국관계 발전을 가능케한 한국측 새 정치상황의 주요한 한 요인이다.북방정책의 덕분으로 한국과 소련은 1990년9월 30일 『양국간 우호관계와 전면적인 협조를 기대하면서』외교관계를 수립했다.이 역사적 결정은 9월30일 유엔본부에서 있은 양국외무장관 공식회담에서 결정됐다.1904년 당시 조선과 러시아제국이 외교관계를 단절한 지 꼭 86년만의 일이었다.당시 필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대변인으로서 이 뜻깊은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수 있었다. 한국으로서도 소련과의 외교관계수립은 큰 외교적 성공이었다.이는 40년 이상 전쟁상태에 놓여있던 양국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두나라의 관계정상화는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남아있는 냉전의 한 조각이 녹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동북아지역 안보상황의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는 한 사건이었다.다시말해 한소관계 정상화는 바로 동북아지역에서 대결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5년전 노대통령의 6·29선언은 바로 이 대단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국회의장 개회사 요지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기 위하여 엄청난 진통을 겪고 있읍니다.북한의 핵문제,일본의 PKO 참가문제,환경문제,남북문제등 큰 변수들이 빙산처럼 도사리고 있는가 하면 국내에서는 가치관의 혼란과 많은 경제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따라서 14대 국회의 임기는 과거 어느때보다도 할 일이 많은 어려운 시기가 될 것입니다.이러한 역사적 임무 앞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먼저 국회 자체의 총체적인 지도력을 일으켜 세워야합니다.권위주의적이거나 일방통행적인 명령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는 사라지고,국민적 합의를 찾아가는 선진형 질서가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국회야말로 다원화된 산업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욕구를 한데 모아 국민적 합의를 조율해 내기에 가장 적합한 기구일 것입니다.우리 국회의원들이 이미 결정된 당리당략에만 절대 복종 한다면 민의의 전당이란 공동화 될 것이며 의회제도의 종언을 가져올 것입니다.국민들은 충분한 토론과 민주적 절차,진솔한 대화와 지혜로운 타협이 있는 성숙한 의회정치를 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이제 국가운영은 행정부 중심에서 국회 중심으로 옮겨와야 할 시대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산업사회가 발달할수록 행정부의 기능과 권한이 커지는 것은 피할수 없는 추세이지만,발전해 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회의 위상과 기능은 결코 축소될 수는 없습니다.국회가 단순히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에 만족하지않고 정치·경제·민생·통일·국제문제등 모든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도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할 때,비로소 국회는 이러한 역사적 소명에 충실할 것입니다.거기에는 정상적인 의회운영이 전제되어야만 합니다.
  • 경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경제 자율화·국제화속 「제몫찾기」분출/민주화대가불구 한해평균 9%성장/1인당 국민소득 5년새 2배로 늘어/주택 2백만호 건설로 부동산투기 잠재워/근소세 부담 크게 줄여 서민생활 안정 도모 6·29선언이후 5년,경제분야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엄청나게 변했다.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이 당초 관주도로 추진돼왔기 때문에 경제의 모든 부문을 지배해 오다시피했던 정부의 입김이 6·29선언의 자유화정신에 의해 민간자율에 맡겨졌다.농·수·축협등 농어민단체의 장들을 직선으로 뽑고 거의 모든 산업에의 참여가 기업들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급격한 임금상승으로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이 다소 떨어지고 과소비가 생기는 등 많은 대가도 치렀지만 궁극적으로는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는 자유경제체제의 기반을 착실히 다졌다는 평가이다.경제분야의 변화를 경제부 기자들의 방담으로 정리해 본다. ▷경제부기자 방담◁ 정 신 모 차장(부장급) 염 주 영 기자 박 재 범 〃 권 혁 찬 〃 우 득 정 〃 박 선 화 〃 육 철 수 〃 오 풍 연 〃곽 태 헌 〃 ­6·29선언 이후 전반적인 민주화 추세 속에서 경제분야에도 개방화·자유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습니다.속도가 너무 빨라 경제적효율이 걱정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입니다. ­성장이나 국제수지 물가등 거시지표의 모습이 다소 나빠졌지만 실업률이 완전고용이랄 수 있는 2% 수준에 계속 머문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요즘 물가가 불안하다고 야단이지만 그동안 물가보다 소득이 훨씬 더 올랐기 때문에 국민생활이 윤택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완전고용에 육박 ­완전고용이라는게 경제정책의 최종목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업적이지요. ­개인이나 집단마다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국민적 동의없이 강압적으로는 아무일도 추진할수 없는 상황에서 지난 5년동안 GNP가 연평균 9%이상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배이상 늘어났다는 것은 모도 6·29선언의 경제민주화·자유화의 값진 결실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노조결성의 증가와 함께 급격한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며 고임금시대로 접어든 것도 중요한 변화입니다.87년 4·4분기 이후 89년 1·4분기까지 근로자의 명목임금이 62.5%나 올랐어요.노동계는 그동안 억눌렸던 임금상승요인이 현실화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업들은 가파른 임금상승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야단입니다.분명한 것은 그동안 저임금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우리 경제가 기술위주의 산업으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국면을 맞았다는 사실입니다. ­소득향상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데 비해 정부의 권한은 크게 약해져 물가관리가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권위주의 시절에 쓰이던 정부의 강압적 억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5공 이후 누적된 공공요금 인상요인과 정책대응이 불가능한 외식비 및 교양오락비등의 지출이 늘면서 정부의 물가관리 능력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그런데도 물가를 안정시키라는 국민들의 요구는 여전하기 때문에 정부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부동산투기가 수그러들면서 집값이 안정돼 서민들이 내집마련의 좋은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이는 택지소유상한제·토지초과이득세·개발부담금제등 선진국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고 다소 초법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는 토지공개념 관련법에 힘입은 것입니다.일본도 우리의 공개념법을 연구하고 있답니다. ­그렇습니다.주택 2백만호 건설및 토지공개념의 도입은 대단한 사건입니다.다소 무리한 계획을 단기간에 추진하느라 건자재파동,건설경기 과열,인력난등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만성적인 주택난과 주기적인 가격폭등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또 자력으로 내 집마련이 불가능한 법정영세민을 위해 재정에서 85%를 부담하는 영구임대주택을 19만호나 지은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요. ­소득세법을 여러차례 개정해 근로소득세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준 것은 월급쟁이에게 커다란 선물입니다.5인가족 기준으로 한달에 70만원을 받는 근로자의 경우 88년에는 월급에서 4만7백50원을 근로소득세로 뗐지만 89년에는 1만9천9백10원으로,91년에는 6천30원으로 줄어들었습니다.근로소득세 면세점 또한 89년에는 4백4만원이었으나 90년에는 5백13만원으로 1백9만원이 높아졌습니다.올해에도 연내 면세점을 인상하거나 세율을 내리는 방안 중 하나를 택해 세법을 또 고칠 예정이기 때문에 세부담은 앞으로 더 가벼워집니다. ○재벌탈세등 응징 ­권력과 재계와의 관계 변모도 특기할만하지요.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은 재벌과 협조관계를 유지해왔고 이를 통해 기업들은 확장을 해왔습니다.이런 밀월관계는 6·29선언에 따른 개방화·민주화로 상당부분 무너져버렸습니다.90년의 5·8조치와 대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여신관리 강화,현대그룹 탈세에 대한 거액의 추징 이후 누적된 재계의 불만은 재계의 대표주자였던 정주영씨의 국민당 창당에 이은 14대 총선참여로 집권여당에 대항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됐지요. ­6·29선언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경제민주화 여론을 배경으로 6공의 두번째 부총리겸경제기획원장관으로 등장한 조순씨는 재임 15개월 동안 토지공개념 관련제도를 도입한데 이어 금융실명제의 도입을 추진하는등 개혁에 힘을 쏟았습니다.금융실명제는 여러가지 이유로 실명되고 말았지만 개혁조치들은 사사건건 재계와의마찰을 초래했고 그 결과 기업인들의 투자의욕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탈냉전시대에 맞추어 북방경협이 활성화된 것도 커다란 변화입니다.88년 7·7선언(대사회주의국가 문호개방)이후 구 소련및 동구국가와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북방교역이 연평균 30%씩 증가해 지난해 81억달러에 달했습니다.북방투자도 지난해말까지 1백83건,2억1천7백만달러가 허가돼 국내산업의 구조조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북방국가와의 경협추진은 남북한간 경제교류를 우회적으로 촉진함으로써 장차 남북한 민족경제공동체의 기반조성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6·29이후의 경제를 증시와의 힘겨운 투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초기 한때 1천대를 돌파했던 종합주가지수가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며 5백선까지 떨어졌습니다.종합주가지수는 집권당 치적에 대한 종합평점이라는 인식 때문에 정부는 증시를 떠받치는데 안간힘을 쏟았습니다.이 결과 나온 89년의 12·12조치는 경제논리를 무시한 정치적 결정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개인이나 집단마다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국민적 동의없이 강압적으로는 아무일도 추진할수 없는 상황에서 지난 5년동안 GNP가 연평균 9%이상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배이상 늘어났다는 것은 모두 6·29선언의 경제민주화·자유화의 값진 결실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기계·전자·철강·석유화학등 8개 업종별 공업법이 모두 폐지돼 민간자율을 강조하는 공업발전법으로 통합되고 산업합리화 조치마저 풀리면서 업계를 좌지우지하던 상공부의 권한이 크게 축소됐습니다.이전까지는 이런 개별공업법에 따라 새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공발법에 따라 신고제로 바뀌며 신규 참여가 자유로워졌습니다.지금은 오히려 정부의 간섭이나 중재를 바라는 실정입니다.최근 삼성중공업의 특장차 생산참여가 대표적 예입니다.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기존 업체들이 정부에 삼성의 신규 참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석유화학업종에 진출하던 재작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한은지위 높아져 ­한때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로까지 불렸던 한은의 위상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88년 한은법 개정에 관한 재무부와 한은의 논쟁 이후부터 양측의 저울추가 대등한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특히 조순총재 취임을 계기로 양측의 업무협의가 보다 원활하고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조총재는 최근 『한은 독립을 명문화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관행상으로 실질적 독립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양측의 공조체제가 형성됐음을 시사했습니다. ­6개사가 과점하던 생명보험 시장이 대·내외적으로 개방돼 회사수가 33개로 늘어났고 동화·대동·동남·하나·보람은행등이 신설됐으며 외국 증권사의 진출이 허용되는등 금융시장이 폭넓게 개방됐습니다.금리자유화도 국제화·개방화에 따른 조치입니다. ­증권업계나 투신업계에도 민주화 바람이 불어 과거 당연한 관행으로 치부되던 재무부나 증권감독원의 말발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인천에 있는 한일투자신탁은 지난 23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재무부가 부사장으로 뽑아줄 것을 요청한 전덕순씨(전대한투자신탁부사장)의 선임을 부결했습니다.가히 혁명적인 변화이이지요. ­농어민의 권익도 크게 신장됐습니다.농·수·축협중앙회와 산림조합중앙회장및 각 단위조합장을 농어민이 직접 뽑게 되자 이들 단체들이 말 그대로 농어민을 위한 단체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조합원이 반대하거나 또는 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업은 하지 못하고 농어민의 소득증대로 연결되는 각종 유통·가공사업이 활발해졌습니다. ◎전문가 평가/김중수 국민경제교육연구소장/노사분규등 민주화초기 난관 극복/시장경제 창달위해 직업의식 확립 절실 먼훗날 우리 경제를 돌이켜 본다면,지난 수년간만큼 경제체제 및 정책운용의 변화가 컸던 시기도 없을 것같다.권위주의의 몰락과 민주화의 추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정부주도형 성장전략을 민간주도의 시장경제체제의 창달로 전환시키게 하였다.또한 지금까지 양적 성장을 목표로 하던 경제발전전략이 질적 내실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이는 60년대초 이후 지속되어온 고도성장정책이 계층간 불형평및 부문간 불균형이라는 경제구조의 모순을 낳았기 때문이다.그리하여 경제제도의 개선 및 경제가치관의 정립을 통하여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정책결정의 민주화란 정책입안부터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을 뜻한다.그러나 민주화의 관행이 정착되지 못한 여건에서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개인 및 집단의 이기주의적 행동을 불러일으킬 측면도 없지 않다.더구나 정부부처조차 정책조정 과정에서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부처간 할거주의가 나타나게 되었으며,실제로는 민주화된 사회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같은 일들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더욱이 민주화를 촉진하게 된 시점을 전후하여 우리 경제는 3저효과 등 대내외 요인에 힘입어 미증유의 국제수지 흑자를 시현하고 있었다.하지만 그후 흑자에서 적자로의 반전 역시 민주화의 대가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경제운용관행의 급격한 변화가 물적 생산측면에서의 효율성을 과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춘 결과를 초래하였다고는볼 수 있다.그러나 그 효과를 계량화할 수는 없으나 시장경제의 각 경제주체들로하여금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원리 및 정책선택의 현실적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이득은 아마도 우리 국민의 공동체의식함양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권위주의 시대에서는 경직된 조직운영으로 말미암아 구성원들의 대립의식이 형성되었으며 민주화 초기단계에서 일어난 집단이기주의,격심한 노사분규 등이 그 결과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에서의 각 경제주체의 역할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아울러 예전처럼 과격한 주장이나 행동으로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명시적으로 추구하려는 추세는 사라져가고 있다.작년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었을때 사회적으로 일어난 과소비억제 캠페인은 국민 각계각층으로하여금 건전한 경제가치관을 정립하게 하는데 기여하였던 것이다.우리 산업의 경쟁력제고를 위한 최근 언론주도의 캠페인 등도 실로 경제민주화의 긍정적 부산물인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자율화와 분권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이는 시장경제의 창달로써 이룰 수 있다.각 경제주체의 건전한 직업정신의 함양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실히 느껴야 하며,이러한 경제정의의 확립이야말로 선진경제로 가는 지름길이다.
  • 일,새 「아주안보기구」 검토/미야자와 총리

    ◎미­중­러등 참여,공동방위 구상 【도쿄=이창순특파원】 미야자와(궁택)일본총리는 22일 냉전종식에 따라 아시아에도 미국·중국·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다국간 안전보장기구가 창설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처음으로 밝혀 주목되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럽의 안전보장·경제·인권협력기구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동서냉전이 종결됨에 따라 미국·중국·러시아 등이 포함된 아시아전체의 새로운 안전보장체제를 구상하는 것이 일본외교의 중요과제』라고 밝혔다.
  • 외언내언

    1904년2월8일.일본은 만주 여순항에 있는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했다.선전포고도 없이 갑자기 감행된 이 공격으로 약1년반에 걸친 러·일전쟁이 시작된다.◆러·일 전쟁은 만주와 조선에 대한 지배권 싸움이었다.또 제국주의러시아와 이제 막 제국주의 대열에 끼어든 신흥 일본간의 힘겨룸이기도 했다.45년이후 소련은 미·중·일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에서 군사력을 신장해왔다.중·소 국경과 시베리아에 53개 사단과 2천여대의 전투기가 배치됐다.우랄산 동쪽에 배치된 약2백70기의 SS­20 중거리유도탄은 미·일·중을 겨냥했다.◆구소련의 극동함대는 그들 4개의 함대중 가장 큰 규모였다.80여대의 장거리 폭격기와 두 척의 항공모함(민스크호와 노보르시스크호)을 교대로 파견했다.그 유명한 발틱함대는 동서유럽의 경계해역을 장악하고 있었다.구소련이 베트남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동해에서 잠수함과 비행기를 왕래시킬 무렵인 80년대 초중반,한반도는 그들의 세계및 지역전략의 주요 대상지가 되었다.◆붕괴된 소련의 유산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러시아가 최근 6백여척에 달하는 해군군함 가운데 순양함과 항공모함을 비롯해 잠수함·미사일함및 함정수선용 수상도크등 1백여척의 「해상전력」을 매각대상에 올려놨다고 한다.냉전시대 미국과 쌍벽을 이루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던 구소련­러시아였다.민스크·노보르시스크의 위용은 어디있는가.◆매각 대상에 올려진 해상전력의 내용과 향방은 알려지지 않았다.그것들이 이 지구상의 어느곳으로 팔려가 지역전력의 기반으로 또다른 공격전력이 될지는 알지못한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구소련 세계전략의 발전수단이었던 「러시아함대」가 팔려간다는 사실이다.냉전붕괴,새질서의 세계는 지금 어디쯤에 와있는가.
  • 군수산업 민수전환/부시,새정책 발표

    【어빈(미캘리포니아주) UPI 연합】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19일 탈냉전시대를 맞아 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새로운 정책들을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오린지 카운티의 실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방부의 지원을 받는 연구들이 민간이 사용하는 상품생산으로 전환될 경우 정부에 지불하던 로열티를 면제해주는 군수산업의 민수산업 전환을 촉진하는 일련의 정책지침을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로열티 지불은 이제 정당한 근거가 없어졌다』면서 『로열티 폐지는 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을 돕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의 새로운 정책은 미국제품들의 일본이나 유럽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분석된다.
  • 중국,군사력현대화 추진/구소전투기 등 대량구매 계획/일지보도

    【도쿄 연합】 동서 냉전 구조 종결로 미·러시아 양국이 군비 감축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구소련의 최신예 전투기를 비롯,탱크·항공모함 등각종 무기의 대규모 구입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일본의 마이니치(매일)신문이 20일 홍콩발로 보도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날 ’중국 사정에 정통한’홍콩의 군사정보 소식통을 인용,이같은 사실을 밝히고 이미 중국은 구소련으로부터 수호이 27형 전투기 72대의 구입을 결정했으며 현재 T72M형 탱크 4백40대 등의 상담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홍콩의 군사 정보 소식통은 지난해부터 미공군의 F15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호이 27등의 구입 계획을 구 소련과 협의해 왔던 중국은 최근 72대의 수입을 정식으로 결정,8대는 이미 넘겨 받았으며 연내에 16대를 다시 인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 「탈미국」 유럽 독자방위선언/서구동맹 군사영역 확대 의미

    ◎유럽통합등 신질서 구축의 정지 작업/분쟁지역 파병 천명… 활동범위 넓혀 서유럽방위동맹체인 서구연합(WEU)이 창설된지 44년만에 유럽신질서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19일 열린 9개회원국 국방·외무장관회담에서 역외분쟁지역에 대한 병력파견등 군사적 개입을 확대하는 일명 「페테르스베르크」선언에 서명함으로써 서구연합은 이제 그동안의 유명무실한 방위기구에서 탈피,새로운 군사적역할을 자임할것을 선언했다. 서구연합의 이번 합의는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서구연합을 유럽동맹의 방위기구로 규정한데 따른 구체적인 행동선언이며 그동안 유럽독자안보체제의 구축을 추구해온 독일과 프랑스의 유럽합동군창설작업이 본궤도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럽공동체(EC)회원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회원국들로 구성된 서구연합이 이처럼 실천적 군사활동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는 배경은 1차적으로 냉전체제종식이후 유고내전,나고르노­카르바흐사태등 유럽지역분쟁이 국제전의 양상으로 비화돼 가고 있는상황에서 이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동기는 유럽의 오랜 꿈인 군사적 홀로서기구도를 성취시켜 보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통합유럽의 탄생을 앞두고 EC의 정치·경제통합작업과 아울러 군사통합작업의 원할한 수행을 위해 우선 WEU의 군사활동을 가시화,현실화 시킴으로써 사전정지작업을 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아울러 구소련의 붕괴로 인해 군사적으로 진공상태가 된 유럽지역의 안보를 더이상 미국주도하의 NATO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다목적용 포석이라고 풀이된다. 유럽의 안보체제는 냉전종식이후 지난 2년동안 북대서양협력기구의 창설,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NATO위상재정립등 숱한 곡절을 겪으며 재편되는 과도기에 놓여있다. 이같은 변화가운데 나온 「페테르스베르크」선언은 우선 지난 4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오슬로회담에서 NATO의 역외파병이 결정된데 이어 나왔고 또한 합의한 내용중 NATO가 역외파병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요청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못박고 있는점에 비추어 서구연합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구연합은 이선언에서 유사시 작전에 참여하는 군부대는 NATO동맹군과 합동참여가 가능하며 역외파병시 CSCE에 사전요청을 하겠다고 유연성을 보임으로써 NATO,CSCE와 갈등의 소지를 줄이고 공조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연합은 군사작전을 위해 각국이 보유한 재래식무기를 투입할 것을 시사하면서 평화유지활동을 포함해 분쟁방지및 위기관리에 있어서는 유엔헌장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의도를 내보임으로써 미국의 간섭을 미리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결국 이번 페테르스베르크선언은 구소련이 빠진 유럽내에서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안보적 자주선언의 의미가 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유럽의 「대형」으로 군림해온 미국세의 퇴조가 시작됐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있다.
  • “핵개발 포기” 평양에 국제적압력/미­러정상 「북핵」공동대응 안팎

    ◎“한반도서 냉전청산 마무리” 인식/「상호사찰」기피에 제재토대 마련/「KAL기 진상」 밝혀지기까진 시간 걸릴듯 조지 부시미대통령과 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이 17일 양국정상회담을 마무리하면서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대북핵포기의 「국제적 포위망」을 한층 더 좁힌 것이라고 할수있다. 양국정상은 이 성명에서 두가지의 중요한 메시지를 북한측에 전달하고 있다.하나는 남북한 상호핵사찰이 「신뢰할수있고 효과적」인 사찰방법이라고 명시한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핵문제에 대한 국제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남북한 상호핵사찰은 물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그리고 핵확산금지조약과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따른 의무를 전적으로 준수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북한이 아직도 남북상호핵사찰을 회피하고 있는데 대한 경종인 동시에 그들의 핵개발은폐기도가능성에 대해 사전에 쐐기를 박는것이라고 할수있다. 이번 공동성명은 그동안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북한의 핵무기개발저지노력에 러시아가 적극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해줌으로써 대북핵포기를 위한 국제적 공동전선을 확고히 구축했다.이러한 공동전선이 앞으로 북한에 대해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칠지 단정할수는 없지만 북한이 끝내 상호핵사찰을 거부할 경우 유엔등을 통한 제재조치를 강구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될것으로 보인다. 양국정상회담에 배석한 미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의 핵문제는 먼저 옐친대통령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두나라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해 전적으로 견해를 같이했다고 설명했다.미국과 러시아는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문제에 관한 연례안보협의회에서도 이미 북한핵문제를 논의했으며 당시 쿠나제 러시아외무차관은 솔로몬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에게 양국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이 문제를 포함시킬것을 제의했다는 것이다. 북한핵과 관련,러시아가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있는것은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파괴무기의 감축·확산금지가 미·러시아의 새로운 동반자시대를 여는 관건인만큼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강력한 입장을 취하는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한편으로는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키로 선언한 러시아로서는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를 포함하는 서방측의 경제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북한핵에 관해 서방측과 인식을 같이함으로써 협력적인 분위기를 유도할 수있다는 계산도 했음직하다. 이번 성명이 비록 IAEA의 핵사찰로 드러난 북한의 핵재처리시설의 폐기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핵개발문제가 결코 한반도등에 국한된 지역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의 안보와 직결되는 세계적인 관심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이번 미·러시아정상회담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 또 하나의 사안은 지난 83년 구소련에 의해 자행된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진상규명문제이다. 옐친대통령은 17일 상오 미상하양원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하는 가운데 KAL기 사건을 언급한데 이어 이날하오 양국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이를 부연하며 그 진상을 규명할것을 다짐했다. 그는 지난해 소련의 쿠데타발생직후 쿠데타주동세력들이KGB와 공산당중앙위원회 문서보관소에서 차량으로 문서를 옮겨 파괴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최근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실마리가 될 KGB가 공산당중앙위에 보낸 비망록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관련문서들이 너무나 깊숙히 숨겨져 찾기가 어려울지 모른다고 말했다. 옐친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미국여론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있는 소련억류 미군포로및 실종자의 추적조사와 함께 『러시아는 과거와는 달리 더이상 거짓말을 하지않을것』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따라서 진상규명작업은 진지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이나 그 결과가 가까운 시일안에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것으로 예상된다. 옐친대통령의 이번 방미로 북한의 핵문제와 KAL기 사건이 다시 한번 제기된것은 한반도문제가 냉전시대를 완전히 청산하는데 있어 관건의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린 것이라고 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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