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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토 = 세계경찰, 域外분쟁 개입 ‘新전략개념’ 도입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24일 예상대로 나토권지역 이외에서 발생한 갈등이나 테러,대량파괴무기등에 대해서까지 군사행동을 가능토록 역할을 확대시킴으로써 이제 세계는 좋든 싫든 ‘세계의 경찰’탄생을 보게됐다.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나토창설 50주년 정상회담에서 새로 도입한 ‘신전략개념’(strategic concept)은 현재 진행중인 코소보지역과 같은 예전의 나토관할 이외 지역까지 명분만 가지면 언제든지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공표한 것이다. 나토의 새로운 전략개념은 냉전종식이후 커져가는 지역분쟁을 실질적으로해결할수 있는 강력한 제지력을 원해왔던 공감대를 기초로 한 것이다. 코소보 전쟁에서도 여실히 입증됐듯 나토의 행동력은 미국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은 나토를 주도,세계분쟁지역에서의 역할을 증대할 것이며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국제무대에서 우위를 다져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안이 미국의 주도로 이뤄진데다 2차대전이후 분쟁을 평화적으로해결한다는 대명제를 갖고 탄생했던 유엔의 존재가치와 맞물려 앞으로 논란의 여지도 없지 않다. 이 점은 영국이나 프랑스,그리고 유럽 각 나라들의 입지와 관련해 이견이노출될 경우 자칫 실행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 [외언내언] 나토 50주년

    미국 워싱턴에는 지금 주요 서방국 정상들이 모두 모여 있다.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쟁쟁한 지도자들이다.23일부터사흘간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 50주년 기념식과 특별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계가 동서 양진영으로 갈리자 미국과 캐나다및 유럽 자유진영 국가 등 12개국이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에 대응하기 위해 1949년 창설한 것이 나토다.그동안 나토는 유럽과 대서양지역의 집단안보를 위한 세계 최강의 군사동맹체로 공산권의 팽창을 막는 보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회원국도 19개국으로 늘었다. 창설 반세기를 맞은 나토는 새로운 역할과 위상의 재정립을 모색하고 있다.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주적(主敵)’이었던 구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바르샤바조약기구(WTO)도 해체됐다. 폴란드와 헝가리,체코가 지난 3월 나토에 가입한 것을 비롯,옛 바르샤바조약 가맹국들이 나토 가입을 희망하고 있는 형편이다.회원국들을 침략으로부터보호하기 위한 방어위주의 지역안보기구에서 공격 개념을 포함한 ‘국제경찰군’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해가고 있다.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도 나토와의 역할 분담을 꾀하고 있다.나토의 역할 확대와 위상 강화의 시험대가 바로 코소보사태라고 할 수 있다. 나토 창설 50주년 기념 특별정상회담도 당초 국제 정세의 변화와 21세기를맞아 나토의 변신과 장래 역할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모임이었다.거기에 뜻하지 않은 코소보사태까지 겹쳐 더욱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공교롭게도 나토 창설 50주년 기념식이 열린 23일은 나토군의 유고 공습 한달째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코소보사태는 한달에 걸친 나토군의 대대적인 공습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찾지 못한 채 점차 악화되고 있다.유고의 저항은 꺾이지 않고 계속된다.100만명에 이르는 알바니아계 난민들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도 늘어가고 있다.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을 굴복시키기 위해 나토의 지상군이 투입되면 전쟁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걱정되고 있다.나토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나토로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나토 정상회담이 코소보사태의 평화적 해결과 세계 평화유지군으로서 나토의 앞날을 기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林東源외교안보수석“한반도 냉전종식 北-美 北-日수교 긴요”

    임동원(林東源)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3일 “한반도 문제는 국제문제와 분리해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특히 미·북 관계개선 없이는 어렵다”며 북·미,북·일 관계개선 및 외교관계 수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수석은 이날 한국발전연구원이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주최한 ‘한반도 냉전 종식의 길’ 조찬강연회에서 “국제적 냉전이 종식된지 10년째가 되나 한반도만이 냉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한반도에도 유럽에서와 같은 데탕트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임수석은 특히 북한이 대북 포용정책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의 대응방안을묻자 “햇볕정책은 북한이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정책이 아닌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으로 실패시 보완과 수정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영기자
  • [대한광장]대북정책, 발전을 통한 변화

    국민의 정부는 과거 대북정책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북 포용정책을대북정책의 기본방향으로 제시,실천해 오고 있다.우리정부는 현 단계 대북정책의 목표를 평화정착을 통한 남북한 평화·화해·협력의 실현에 주목적을두고 있다. 우리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과거 서독의 신동방정책의 추진기조인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과 비견할 만하다.서독의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이란우선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는 현상유지정책을 추진하되(접근),중·장기적으로는 현상 유지를 타파하고 동독의 변화를 일구어낸다(체제변화)는 내용을담고 있다. 이러한 서독의 ‘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의 일환으로 서독 사민당정부는 소련 및 폴란드와 불가침협정 체결,동서독기본조약 체결 등 긴장을 완화하고평화를 정착시키는 신동방정책을 실시했다.이와 병행하여 민족 동질성회복및 분단고통 감소를 위해 동서독간 교류협력도 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의 일환으로 적극 추진되었다. 서독의 ‘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은 동서 양 진영간에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었고,양 진영간의 힘의 균형에 의한 동독의 흡수통일 가능성이 최소화됨에 따라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나토와 바르샤바조약군간의 힘의 균형,케네디 대통령의 평화전략,중소분쟁에 따른 소련의 대 서유럽 유화정책 등대내외적 여건이 어우러져 관계 정상화에 의한 동서독간 접근이 이루어졌고,이는 마침내 독일통일을 가져왔던 것이다. 우리 정부는 서독의 경우처럼 북한에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정부의 한반도 평화와 안정구축을 위해 한반도 냉전구조의 완전 해체를 목표로 하는 평화·안보정책은 긴장완화를 목적으로 하는서독의 신동방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보다 많은 접촉’,‘보다 많은대화’,‘보다 많은 협력’을 추진하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동서독간 교류협력 증진을 통해 분단고통의 감소와 더불어 체제우위 입증을 목적으로 하였던 서독의 대 동독정책과 일맥 상통한다. 그러나 정부의 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이 실효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 다자간 안보체제도 만들어지는 등 한반도의 냉전구조가 해체되어야 한다.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주변 강국 및 남북한의 이해가 일치되지 않고 있는 한,지난한 시간이 요하는 일이다. 설사 한반도 냉전구조가 해체된다고 할지라도 남한체제에 대한 우위 상실상황에 봉착한 북한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즉 자본주의 황색물결을 차단하기 위해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에 대남 분리차단정책으로 대응할 수도 있을것이다.우리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접근을 거부하는 북한이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책수순을 밟아야 한다. 북한은 남한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체제수호를 추구해야 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사회주의체제를 점차 시장경제체제로 변모시켜야 한다.이 점이 북한과 체제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없었던 동독과 다른 점이다. 따라서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은 접근을 통해 북한의 체제변화를 유도하기보다는 북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발전을 통한 변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발전을 통한 변화’ 전략이란 대북한 외적 압력과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유교적 스탈린주의를 변화시켜야 하는 북한 내적 요구가 자연적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주변여건을 조성해주는 전략이다. 남북한 안보를 보장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북한의 안보불안을 불식시키고,북한 산업화 지원을 통해 북한경제의 탈사회주의를 촉발시켜 북한스스로 체제변혁의 역사적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이 경우 우리정부는 ‘발전을 통한 변화’ 전략이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보다 오히려 북한변화를 빨리 가져오는 첩경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黃炳悳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제2공화국과 張勉](17)-봇물터진 통일론:上

    제2공화국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분단 이후 통일논의가 가장 활발한 시대였다는 점이다.‘반공으로 동이 트고 해가 저무는’이승만(李承晩)정권 때나 5·16후 한세대 동안 지속된 군부권위주의 정권 때는 물론이고,그후에도 2공(共)시기처럼 남북통일이 국가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활기찬 이슈로 떠오른 적은 없었다. 이승만정권이 무너지면서 ‘북진통일’로 대표되는 무력통일론은 자연히 도태된다.허정(許政)과도정부가 1960년 5월3일 국가의 근본방침을 밝히면서 “과거보다 더 견실하게 반공정책을 펴 나가겠지만 허장성세하는 물질적·정신적 낭비를 없애는 대신 유효하고 구체적인 대공(對共)방위태세를 확립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이로써 집단이건,개인이건 통일방안을 자유롭게 발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특히 내각책임제 개헌에 따라 민·참의원을 새로 뽑는 ‘7·29총선’이다가오자 통일론은 주요한 선거 이슈가 되었다. 통일론을 먼저 제기해 이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킨 정치세력은 혁신계였다.하지만 혁신계의 분열을 반영하듯 그 무렵의 주장은 다양했다.한국사회당(대표 錢鎭漢)은 “유엔 감시 아래 총선거를 실시하되 통일조국은 민주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했고,혁신동지연맹(張建相)은 “민주적인 모든 정당·사회단체가 통일위원회를 구성해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정치적 통일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회혁신당(高貞勳)은 “김일성(金日成)괴뢰가 타도돼 자유로운 정권으로 바뀌면 남북교류를 허용하고 그 다음에 남북 총선거로 평화통일을 기한다”는 일정을 발표했다.혁신계라고는 하지만 통일정책은 이처럼 ‘반공’의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보수·혁신 양 진영을 대표하는 민주당과 사회대중당도 총선 직전 통일정책 공약을 내놓는다.사회대중당(徐相日)은 7월22일 성명에서 ▲정당·학계를망라한 협의기구를 설립하고 ▲유엔이 선정해 우리가 승인한 국가로 감시단을 구성,자유총선거를 치러야 하며 ▲경제건설 및 대외정책이 국토통일의 성취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원칙을 공개했다. 민주당도 나흘뒤 ▲유엔 감시하의 남북 자유선거 ▲선거감시단은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회원국으로 구성할 것을 제의하면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선거전 남북연합위원회 구성’과 ‘통일 전 남북교류’는 반대함을 분명히 했다. 총선이 민주당 압승으로 끝난 뒤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은 8월13일 취임사에서 ‘유엔 감시하 남북한 총선거를 통한 통일’원칙을 다시 한번 천명하면서 “이보다 앞서 이루어야 할 근본문제는 남한이 혼란에서 벗어나 국력을 부강케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장면(張勉)총리도 민의원에서의 첫 시정연설에서 같은 통일방안을 밝힌다.‘선(先)건설,후(後)통일’이 장면정부의 기본정책으로 확립된 것이다. 장면정부가 ‘선건설 후통일’을 내세운 데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4월혁명 뒤처리를 맡은 정부로서 당면과제가 산적한 마당에 어차피 단기간에 해결하지 못하는 통일문제를 우선순위에 두기는 어려웠다.따라서 장면정부는통일논의에서 소극적·방어적일 수밖에 없었다. 장면 내각에서 내무부 정무차관을 지낸 김영구(金永求·고려대 법학과교수출신)는 “그때 시급한 과제는 헐벗고 굶주린 백성을 어떻게 먹여살리느냐와,4·19이후 쏟아진 각계의 욕구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였다”면서 “솔직히 통일에 신경 쓸 겨를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김 전차관은 “통일문제는 형식상 외무부에서 관장했지만 사실은 주무부처가 따로 없었던 셈”이라면서중요한 일이 발생하면 장총리가 그때그때 처리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7·29 총선’에서 참패해 원외 세력으로 남은 혁신계는 돌파구를 통일논의에서 찾는다.총선 당시의 애매모호하던 통일논리를 강화해 ‘선통일후건설’을 내세웠다.장면정부의 ‘선건설 후통일’이란 결국 통일을 하지않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하면서 통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통일지상주의를 강조했다. 혁신계 정당·단체들은 통일에 관한 이념과 행동을 통합하고자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民自統)’를 구성한다.9월15일 준비위원회를 발족한 민자통은 사회대중당·사회당 등 혁신정당,천도교·유도회 등 종교단체,민주민족청년동맹·4월학생혁명연합회 등 청년단체가 참여했다고 발표했다. 이 무렵 혁신계가 새로 가다듬은 ‘무기’가 남북교류운동,그리고중립화통일운동이었다.남북교류운동이란 사람·편지·문화예술·체육 교류를 가져민족의 동질성을 살리자는 것과,남는 경제재(經濟財)를 주고 필요한 것을 받아오는 물물교환을 하자는 두가지였다.이는 국민의 감성과 경제난에 호소하는 바가 커 큰 호응을 얻었다. 중립화운동은 더욱 관심을 끌었다.민자통은 9월 말 발표한 ‘통일문제에 관한 견해’에서 ▲즉각적인 남북협상 ▲남북대표들의 ‘민족통일 전국최고위원회’구성 ▲외세 배격 ▲통일을 협의하는 남북대표자 회담 개최를 주장했다.그리고는 “통일 후 오스트리아식 중립 또는 영세중립을 택할 것이냐,아니면 다른 형태를 택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중립화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한달쯤 뒤인 10월22일 미국에서 중립화론이 터져나왔다.마이크 맨스필드 상원의원이 ‘극동보고서’에서 “오스트리아를 중립화한 것처럼 미국이 여러강대국들과 협의,한국을 중립화해 통일시켜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맨스필드의 제안이 알려지자 혁신계는 크게 고무돼 혁신동지연맹·사회대중당·사회당 등이 잇따라 지지성명을 발표한다.이어 부산대 학생들이 11월5일 ‘통한(統韓)궐기대회’에서 ‘외세의존적인 통일을 배격한 중립적인 무혈(無血)통일’을 제의하고 나섰다.학생들은 또 “현 정부와 국회는 실천 가능성이 없는 통일방안을 주장하지 말고 국민투표로써 통일방안을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중립화 바람’은 통일논쟁이란 불씨를 거대한 들불처럼 번지게 했다.그불길은,남북대치의 냉전구조에 토대를 둔 장면정부의 통일정책을 뿌리까지태울 기세로 밀려왔다. 이용원기자 ywyi@*북한의 대남정책 제2공화국 시절 통일논의의 세 축은 장면(張勉)정부,혁신계와 일부 학생 등 급진주의자들,그리고 북한이었다.이 가운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던 쪽은당연히 북한이다. ‘3·15부정선거’로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두차례 발생하자 북한 당국은 이를 ‘인민봉기’로 규정했다.지난 97년 모 주간지가 공개한 푸자노프(당시 평양주재 소련대사)비망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비망록에 따르면 1960년 4월11일 김주열(金朱烈)의 시신이 발견돼 제2차 마산시위가 일어나자 조선노동당은 이를 ‘인민대중의 진정한 민주화운동’으로 평가한 데 이어 “시위가 인민봉기 유형을 띠고 서울 부산 대구 마산 등대도시를 휩쓸고 있다”고 판단했다. ‘4·19’이틀 뒤 노동당은 “파국에 처한 남조선의 현사태를 수습할 대책을 토의하기 위해 남북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의 연합회의를 긴급 소집하자”고 제의한다.아울러 “평화적 통일은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전체 조선인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남북조선 총선거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한이 ‘7·29총선’국면에 들어가자 북한은 혁신계 정당·단체의 창설을적극 지지하고 나선다.6월13일 푸자노프를 만난 김일성(金日成)은 “우리는단 하나의 (혁신계)대중정당이 아니라 여러 당을 지지하며 현재 그런 당으로는 한국사회당·대중사회당과 기타 정당이 있다”고 말한다. 북한은 ‘7·29총선’결과에 큰 기대를 걸어 “혁신계에서 35명 가량이 당선될 것같다“고 전망하지만 실제로 당선자는 민·참의원 합해 7명에 그쳤다.게다가 그들은 북한이 보수파로 분류한 인사들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듯 북한은 전략을 바꿔 ‘남북연방제’를 제안한다.김일성은 8월14일 열린 ‘해방 15주년 경축대회’에서 “남조선 당국이 아직 자유로운 북남(北南)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먼저 민족의 긴급한 문제를해결하는 과도적인 대책이라도 세워야 한다”면서 남북연방제를 처음 내놓는다. 김일성은 “우리가 말하는 연방제는 남북조선의 현 정치제도를 당분간 그대로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독자적인 활동을보존하면서,두 정부 대표들로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해 남북조선의 경제·문화 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을 실시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남북연방제’제의는 과도적이자 단기적인 성격을 가졌다.연방을형성하면 곧바로 남북한 총선거로 넘어가는 수순이었다.북한이 연방제를 제의하며 통일공세를 적극 강화한 이유는,혁신계의 평화통일 주장에 발맞춰 전략적으로 유연한 통일방안을 내놓기 위해서였다. 북한의 남북연방제 안은 50년대후반 북한학계가 전체적으로 동원돼 벌인‘과도기논쟁’을 이론적으로 수렴한 것이기도 했다. 북한은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를 반대하고 김일성의 남북연방제를 재확인하는 내용의 각서를 11월11일 유엔에 제출한다. 남북 총선거의 전단계 또는 대안으로 북한이 마련한 ‘과도적 연방제’안은7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다. 이용원기자
  • 金壽煥추기경 동북아 국제평화회의 강연

    金壽煥추기경은 20일 크리스천 아카데미 주최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동북아시아 국제평화회의’에 참석,‘한반도 평화와 협력을 위한 모색:남한의 관점에서’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김추기경의 이날 강연은 남북한 당국자 모두가 경청할만한 고뇌와 반성이 담겨있어 관심을 끌었다.다음은 김추기경의 강연요지. 최근 10여년간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수많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세계는 좀더 열린 정부를 지향하게 됐다.냉전을 지탱한 힘이 국가와 이데올로기라는권력이었다면 냉전을 허물어낸 힘은 시민의 의지와 행동인 것이다.따라서 아직도 분단의 벽이 단단한 한반도에서21세기 평화와 화해를 이끌어 가는 힘은 바로 시민사회인 것이다. 남한의 경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주도로 햇볕정책과 정경분리원칙을 제시,그동안 정부가 일괄적으로 주도했던 대북정책을 다원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과거 정권과 달리 북한의 대남침투 사건이나 인공위성 발사,금강산 관광에 대한 일시적인 제재 등에 초연하여 일관된 햇볕정책을 지켜온 것은 남북관계 변화에크게 기여하는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믿는다.민간교류의 협력과 교류에서도 가시적인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 중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의 주체가 아직도 정부와 일부기업,사회단체로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은 바로 남한주민들이 북한 주민들과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면서,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하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북한동포들은 남한사람들이 수전노와 같고,돈이 있다고 무시하고 괄시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들었다.북한사람들은 통일이 되면 남한사람들의 종노릇하듯이 살아갈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통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특히 연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한국은 없다’란 책을 보면 전쟁이 일어나면 총들고 쏘아 죽이고 싶은사람들이 바로 남한사람들이라고 말할 지경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한 관계의 원칙으로 ‘화해·협력·평화’의 세가지를제안한다.화해는 과거를 반성하고 참회하여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터전이다.화해의 첫걸음은 상호존중이다. 진정한 평화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한다.통일의 문제가 갈라져 사는 동포들의 마음을 어떻게 열고 서로 믿고 사랑하는 관계를 만들수 있는 문제,즉 평화의 문제로 바뀌었다고 본다.어느 체제가 우월하느냐는 이데올로기와 군사의 논리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중심으로 평화의 논의가 전개돼어야 한다. 북한동포들의 기아문제가 심각하다.죽어가는 동포들의 죽음과 기아의 고통을 우리가 외면한다면 총을 들고 싸우던 전쟁보다 더 비겁하고 민족과 역사앞에서 부끄러운 행동이 될 것이다.20세기에 북한의 기아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21세기 새로운 문이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는 각 국가와 사회의 시민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 소통할수 있도록 평화의 다리를 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남북한 국민들이 오히려 피해자의 특권으로 가해자를 용서하고 이들과 화해하고협력해 나갈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 林東源외교안보수석 編協 조찬강연 내용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편집인협회 초청 조찬대화에서 임동원(林東源)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의 어조는 퍽 조심스러웠다.평소 거침없이 ‘햇볕론’을 설파하던 자세와는 다소 달랐다. 대북 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다는 일부 보도가 나온 뒤끝이었기 때문인 듯했다.정부내에서 최근 뭔가 손발이 맞지 않는 느낌이 표출된 것도 사실이다.주한미군 지위 문제와 평양 화력발전소 건설지원건 등에 대해 부처별로 다른목소리들이 그 빌미가 됐다. 임수석도 이를 의식한듯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북한이조기붕괴가 아닌 변화의 과정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북한이 당장 무너질 가능성이 없는 마당에 대북 포용정책 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논리였다. 서방의 데탕트 정책으로 구소련과 동구권이 긍정적으로 변화했지않았느냐는반문이었다. 동시에 북한이 세불리로 인해 생존차원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유혹을 받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한반도 냉전체제의 종식을 통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강조했다. 그는 현정부의 북한에대한 기본입장을 ‘No-threat,No-war’로 요약했다. 북한으로 하여금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시키면서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기 위해선 북한에게 ‘퇴로’를 열어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그구체적 방안이 ‘대북 포괄적 접근’구상이었다. 북한의 핵개발 등을 중지시키려면 안보차원으로만 봐선 해결이 안된다는 시각이었다.다시말해 정치,군사,통상,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병행접근해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그러나 임수석은 주한미군 지위 문제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어조를 높였다.최근의 논란을 의식한듯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언론에도 불만을 표시했다.북한의 주한미군 지위변경 주장을 전한 것 뿐인데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처럼 잘못 투영됐다는 것이다. 그는 “주한미군 문제는 평화체제 구축의 마지막 단계에서 한반도내 모든군사력의 배치와 규모를 협의할 때나 논의할 수 있다는 게 한·미 양국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현단계에선 “4자회담에서도 의제로 삼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그는 특히 이날 그동안 사용해오던 ‘일괄타결’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협상은 그 속성상 주고받으면서 단계적으로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 듯하다. 구본영기자 kby7@
  • KBS ‘남북의 창’냉전사고 그대로

    현재 북한관련 프로그램으로는 유일한 KBS‘남북의 창’이 냉전 이데올로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10년이상 방송된 장수프로인 이프로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남북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이질감을 좁혀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언론위원회 모니터팀의 분석결과 제기됐다. 지난 2월과 3월,두 달에 걸쳐 ‘남북의 창’을 모니터한 KNCC모니터팀은 과도한 전쟁관련, 군사훈련 장면,군 고위층 동정관련 화면으로 오히려 남북간의 긴장감과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남북의 창’을 비판했다. 매주 아홉 건이 방송되는 뉴스 부분에서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과 폭격장면 등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는데 일례로 3월 26일의 경우 한미 공조와 국가 이익을 설명하면서 군사훈련 화면으로 일관,곧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위기 의식을 갖게 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보고서는 또 남북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좁히려는 방송사의 노력이부족하다고 지적했다.‘도라지꽃’‘보심록’등 북한영화를 소개한 것은 높이 살 만한 일이지만 북한영화와 우리 영화의 차이를 인식시키려는 노력이없었고 ‘중년층에서 즐기는 군중무용’을 소개할 때도 이를 이해시키려는해설이 한마디도 없어 오히려 이질감만 더했다는 것이다.그밖에 동질성을 저해한 뉴스의 예로 3월 12일의 ‘춤출 때는 치마’는 북한에선 사상성의 표현으로 여성에게 바지를 못 입게 한다고만 소개,우스꽝스러운 느낌이 들게 했으며 청바지 착용이 금지돼 발각되면 가장 심하게 처벌된다고 소개하면서도‘청바지=자본주의 문화’라는 상징적인 의미나 그 외 또다른 이유는 덧붙이지 않아 의아스런 느낌을 주었다. 보고서는 연말쯤이면 북한TV의 개방도 예상되고 있는 만큼 ‘남북의 창’은 남북의 차이점을 너그럽게 받아 들이려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허남주기자 yukyung@
  • 스크린에 ‘남북관계’ 새바람 분다

    영화 ‘쉬리’의 성공에 힙입은 것인가.최근 영화계에는 남북관계의 한 현상인 남파간첩을 다룬 ‘간첩 리철진’이 조만간 개봉될 예정인가 하면 군사력의 날카로운 대치현장인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을 소재로 한 새 영화가추진중이다. 이들 영화는 과거 냉전시대와는 달리 간첩이나 대치 현장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 ‘햇볕정책’에 따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풀이된다. 타이타닉이 세운 국내영화 최고흥행기록 197만명을 최근 돌파한 쉬리 역시종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북한요원을 나름대로 인간적인 고뇌를 안고 있는 청년으로 그렸다. 우선 오는 5월15일 개봉되는 간첩 리철진은 남파간첩의 ‘남반부생활 6박7일’을 그린 국내 최초의 휴먼코미디물.지난해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한장진 감독의 새 영화로,간첩을 ‘머리에 뿔이 돋은 붉은 괴물’이 아닌 ‘체제와 사상이 다른 곳에서 성장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MBC 미니시리즈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주연을 맡아 두각을 보인 유오성이 리철진으로 출연해 웃음을 준다.리철진은 북한식량난 해소를 위해 슈퍼돼지 유전자 샘플을 확보하는 게 맡은 임무.그러나 서울에 들어온 직후 택시강도를 당하는 등 ‘간첩’답지 않은 어수룩한 모습을 보인다.끝없이 이어지는 코믹한 사건을 통해 ‘간첩 리철진’이 ‘인간 리철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작사인 씨네월드의 한 관계자는 “남북한 관계의 변화 조짐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간첩의 눈을 통해 남북한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돼 영화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내 처음으로 JSA를 무대로 삼은 ‘JSA(가칭)’도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1월1일 개봉목표로 한창 시나리오 작업중이다.이 영화는 남북관계의 화해에 초점을 맞춘 미스터리물. 영화는 JSA의 남측 초소병이 극도의 긴장 속에 우발적으로 북측초소에 총격을 가해 북한군이 죽는 상황을 설정한다.이어 반공포로의 딸인 스위스이민 2세대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중립국감독위 조사관으로 파견된다. ‘접속’과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등을 히트시킨 명필름이 18억원을 들여 찍는 이영화는 박상원의 소설 ‘DMZ(군사분계선)’를 각색했으며 현재여자주연 연기자를 찾는 중이다. 관계당국에서도 쉬리 때와 마찬가지로 “잘해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것으로 전해졌다. 명필름의 한 관계자는 “분단은 전쟁세대와 전후세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면서 “이데올로기를 넘어 휴머니즘적인 시각에서 분단을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새천년을 맞아 화해와 공존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클린턴 평화硏서 연설-美 “中 포용정책 유지”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7일 중국에 대한 현재의 포용정책 기조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주롱지(朱鎔基) 중국 총리와의 회담을 앞두고 미 평화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미국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중국을 고립시키는 새로운 냉전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우리는 중국이 그들의 사회를 변화시키고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으면서 국제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남을 수 있는 정책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또 한반도 문제와 관련,“중국은 북한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납득시킨데 이어 이제는 북한이 더 이상 미사일을발사하지 않도록 자제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 중동2國에 한반도 평화역할 기대

    중동의 패권을 다투던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모종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이집트의 경우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북 ‘특수관계’가 주목을 받는다.부통령과 대통령 자격으로 북한을 4차례나 방문,94년 사망한 金日成주석과 돈독한 관계를 맺은 인물이다.폐쇄적인 金正日국방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와 대화가 가능한 세계 유일의 현역 국가지도자로 꼽힌다.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개선에 극적인 ‘돌파구’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이런 맥락이다. 외교 소식통들은 5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당초 남북한 동시 방문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며 “그러나 그의 연내 북한 방문 가능성이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라며 해결사로서의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오는 9일 한·이집트 정상회담에서 金大中대통령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대북 포용정책을 설명하고 이집트의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한걸음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을 포함,당국간 회담 주선을 요청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이스라엘에 대해선 ‘간접화법’을 기대하고 있다.한·미를곤혹스럽게 하는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막후 해결사’로서의 역할이다. 이스라엘은 90년대초 중동국가로의 미사일 수출금지를 대가로 북한에 5억∼10억달러 상당의 보상금을 제공하는 막후 협상을 추진했었다.현재 진행중인북·미 미사일 협상도 보상금 문제가 걸림돌이다.이스라엘이 대북 보상금 지원에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경우 협상은 예상보다 쉽게 풀릴 수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한반도 평화역할’ 타진은 지난해 가을 李鍾贊국정원장의 중동방문때 이미 기초가 닦였다는 후문이다.
  • 戰禍에 미소짓는 美 방산업체

    ‘세계 어느 곳에 전쟁이 터지면 미 CNN방송과 미 방위산업체들은 남몰래 미소를 짓는다’는 말이 있듯 이번 나토의 유고 공습으로 미 방산업체가 주가의 연일 상승과 함께 호황을 맞고 있다.냉전 종식이후 끊임없는 생산부문별및 업체별 인수합병으로 구조를 재편한 미 방산업체는 여전히 세계 방위산업을 선도하면서 소련이 무너진 직후에도 5년간 미 국방비의 무기구매조달액으로 3,000억달러,세계 무기시장에 대한 무기수출로 2,700억달러의 매출을 각각 올렸었다.유고사태 등 최근 속출하고 있는 국제분쟁으로 매출액 신장이한층 두드러지고 있는 미 방산업체의 현황과 유고 공습에서 큰 전과를 올리고 있는 주요 미사일을 살펴본다.[편집자주]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유고 공습을 주도하는 가운데 미 방산업체들은 유고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확신하면서 무기산업의 호황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미 방산업체들은 지금까지 해온 인수합병(M&A)을 통한 덩치 키우기에이어 감원을 통한 구조조정 작업도 병행하고 있어 유고 특수에 따른 매출증대를 합칠 경우 올해 수익성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7 회계년도에 방산부문에서 록히드 마틴(주부문 항공기),레이시언(미사일),노드롭 그루만(레이더),보잉(항공기 및 폭탄),제너럴 일렉트릭(엔진),등 13개사가 681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세계 최대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은 그룹 매출의 49%를 국방부 판매에 의존했다. 이들 업체들은 한 업체가 특정 무기 공급의 주계약자로 선정되면 엔진,레이더,전자장비,무장 등 부분품을 납품하는 계약을 서로 맺고 제작에 참여하는철저한 협업체제를 이루고 있다. 이번 유고 공습에서도 유고기를 제압하며 출중한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전폭기인 F-16 파이팅 팰컨의 경우 미 국방부 주 계약자는 록히드 마틴이지만레이더는 노드롭 그루만 제이고 엔진은 요구에 따라 제너널 일렉트릭이나 플랫 앤 휘트니 제를 장착하고 있다.그리고 각종 공대공 미사일은 레이시언이공급한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회사들이 철저히 전공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록히드 마틴의 경우 전자 및 미사일 발사시스템을,레이시언은 미사일,노드롭 그루만은 항공기용 레이더를각각 전문으로 생산한다.록웰 인터내셔널은 전투기의 통신 및 항법 시스템을 생산중이고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소나와 각종 전투함등 해군용 무기와 MIA1 에이브럼스 탱크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 공습은 이들 방산업체에게는 소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지난 91년걸프전 이후 심각한 일감부족 등으로 감원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록히드와 마틴 마리에타는 95년 합병,록히드 마틴을 탄생시켰고 보잉은 96년 말 맥도널 더글라스를 인수했다.록히드 마틴은 합병후인 97년 12개 공장을 폐쇄하고 3만명을 해고하는 등 대대적인 살빼기 작업을 감행했다. 작년 말 ‘사막의 여우작전’에 이어 3개월여 만에 발생한 유고공습은 이들방산업계의 숨통을 터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레이시언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없어 못팔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다.해군이 1억1,300만달러를 들여 기존 토마호크 미사일의 핵탄두를 재래식 탄두로 바꾸겠다고 밝혀 쾌재를 부르고 있다.향후 10년간 일감을 확보한 것으로전해진다.공습 후 주가가 크게 상승한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보잉도 공군이 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ALCM)을 재래식 탄두장착 미사일로 교체하기 위해 예산을 승인받자 희색을 띠고 있다.거금 5.100만달러가 곧 굴러들어오기 때문이다.전쟁의 자본주의 경제학이 작용하고 있는 대목이다.
  • [오늘의 눈]코소보의 미국 제일주의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군의 유고공격이 시작됐을 때 여론은 미국이 왜 코소보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가에 물음을 던졌다. 지금 코소보에서 박해받는 인구보다 훨씬 많은 수가 르완다에서 죽어갔을때도 꼼짝 않던 미국이었으니 그런 물음은 당연했다.코소보와 르완다는 무엇이 다른가.일부는 학살방지를 이유로 다른 주권국가를 공격해도 되는가 하는의문을 품었다. 유고공습 1주일이 넘은 지금 공격전략이 어떠니,지상군 투입이 어떠니 말이 많다.잘잘못을 논하는 자리가 늘어나고 미군 병사 3명이 인질이 된 1일에는 방송들에서도 토론이 하루종일 계속됐다.토론의 주제는 왜 우리 자녀들이코소보에 가서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개입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박해받는 코소보의 죄없는 시민들을 구하는 것은 미국의 당연한 임무라는 것이다.이런 논조를 리드하는 주요 세력들은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 등 내로라하는 보수적성향의 연구소들과 정가·언론의 보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주된 논조는 냉전 이후 표류하는 국제정세에서 미국이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미국 제일주의 정신이라고 할수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가운데서도 9년째 호황을 구가하는 막강한 경제력과 화성에 탐사선을 착륙시킨 첨단과학기술 등 미국이 세계 제일이라는 데 이의를제기할 사람은 사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국력이 과연 도덕적 우월성까지 보장해 주는가.자국상품가격보다 조금이라도 싼 값으로 미국에 물건을 파는 나라가 있으면 일단 덤핑판정부터 하는 나라,툭하면 슈퍼 301조 으름장을 놓는 나라,흑인에게만 보조금을 지불하지 않아 소송이 걸리는 나라,유색인종에 반대하는 집단이늘어만 가는 나라…. 미국 제일주의에 공감하기 힘든 이유는 이밖에도 얼마든지 있다.이러한 자격시비는 나토군의 공격이 계속되는 한 내내 따라다닐 게 틀림없다. 崔哲昊 워싱턴 특파원
  • [외언내언]미 防産업체

    발칸전쟁으로 미국 방위산업체들의 주식시세가 전반적인 큰폭의 오름세를보이는 것으로 외신은 전한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계속된 유고공습으로 각종 미국산 최첨단 무기들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기 때문이다.토마호크미사일을 생산하는 레이시언사(社),공격용 헬기의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F-15전투기 생산의 보잉사,초음속 B-1랜서 폭격기의 록웰 등 미국내 방위산업체들은 때아닌 호황을 즐기고 있다.물론 스텔스전투기 추락으로 노스롭그루먼사 같은 곳은 주가가 떨어 졌지만…. 여하튼 이번 발칸사태발생 및 주가상승과 관련,미국의 전통깊은 산·군(産·軍)연합구조가 또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지난 1929년 발생한 대공황이결국 2차대전 참전에 따른 군수산업부흥과 그 파급효과에 의해 완전히 막을내렸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미국 군사행동과 산업생산의 함수관계는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물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맹주로서 공산권에 맞서고 우방을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무기개발이 불가피했다.이를 위한 국방예산의 지출은보다 첨단화한 무기생산을 위한 민간기업들의 기술혁신과 산업발전의 자금원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또 미국내 대기업들의 갖가지 무기개발관련 첨단과학기술은 곧바로 미국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이러한산·군합동의 연결고리는 미국의 위상을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고착화하는 슈퍼파워로 작용한다. 냉전의 종식으로 미국 군대의 자국산 무기수요가 종전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듦에 따라 방위산업의 재고증가와 가동률저하,경기침체 등 경제적 마이너스파장을 우려하는 미정부는 해외에서의 무기판매를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때문에 미국산 무기의 세계시장점유율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평화의 수호자로 세계경찰의 역할을 자임하는 미국이 전쟁도구인 무기판매에 열성적인 아이러니는 팍스아메리카나(미국지배에 의한 지구평화)의 색다른단면이기도 하다.미국 전대통령 아이젠하워는 퇴임직전의 한 연설에서 “산·군연합의 부당한 영향력을 당연한 일로 방임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오늘의 상황이 부당하기까지야 하겠나마는 그는 보다 막강한 화력의 신병기(兵器)가 새로운 분쟁을 창출하는 악순환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경고한 것인지 모른다.냉전체제붕괴 이후 그동안 잠자던 새로운 인종·종교적 갈등이 노골화돼 국지적으로는 오히려 더욱 늘어난 지구촌의 분쟁이그러한 우려를 짙게 해준다. 우홍제 논설실장
  • 대한매일주최 1회 금강산 뱃길문화체험 김윤호시인 기고

    대한매일과 스포츠서울이 주최하고 백두산문학회(회장 김윤호)가 주관한 제1회 금강산 뱃길문화체험 행사가 전국에서 100여명의 시인과 화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24일부터 27일까지 금강산 비룡폭포와 만상전,금강호 선상에서 펼쳐졌다.다음은 백두산문학회장 김윤호 시인이 보내온 금강산 뱃길문화체험 참가기이다. 금강산 오십년 만에 트인 설레이는 뱃길 장전항 먼 바다 새벽 빛에 깨어나는 금강산 안개 걷히며 드러나는 일만이천 화엄의 세계 땅 속 풀씨들의 숨소리에서 나온 봄바람이 단호한 결빙을 녹이고 그리운 새 천 년을 소리없이 열어가고 있다 24일 오후 5시30분,전국에서 참가한 100여명의 시인과 화가들은 금강산을찾는다는 흥분과 설레임으로 금강호의 갑판에 나와 멀어져 가는 동해항을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갈매기 날아오르던 칠흑같은 어둠이 내린 동해바다의 검푸른 파도를 헤치고 북으로 항진하는동안 일행은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 6층귀빈식당에서 이번 행사의 개회식을 가졌다. 필자의 개회선언과 함께 행사의 운영위원장으로 동승한 정흥진서울 종로구청장,이번 행사의 주최측 대표로 참가한 대한매일 김삼웅주필의 인사말에 이어 한국문인협회 성춘복 이사장의 강연과 시낭송회가 진행됐다. ‘민족문학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성춘복시인은 “그동안 견고하기 그지없던 철의 담벼락을 트기 위해 우리 문학인들이 앞장 서기로 했다”며 “이 배는 그런 문제를 감동적으로 해결할 이 나라 문화예술인들이타고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장엄한 동해 해돋이로부터 시작된 금강산 문화체험의 첫 코스는 만물상 등산. 저마다 갖가지 전설을 간직한 기암절벽의 금강산에도 봄이 오는지 연초록산색이다.맑고 따뜻한 봄날씨에 파란 문주담 물빛이 여울지고 쌍촉대바위,삼형제바위,삼선암,절부암 등이 장엄하다. ‘만물상’ 관광을 마치고 다시 금강호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식사후 대한매일 김삼웅 주필의 강연과 시인들의 시낭송회를 들으며 모두 피로한 줄도 모르고 뜨거운 열기속에서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다.‘통일시대 민족언론의과제’란 주제로 강연한 김 주필은 “냉전사고,냉전논리에 젖어 있는 보수언론인들은 세계가 한 가족이 되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통일을 창출해야할 새시대에 각성해야 한다”며 “시인과 화가 등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한 이번 행사가 통일의 길라잡이가 되고 역사발전의 모티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셋째날은 구룡폭포 코스.버스를 타고 신계사 터와 술기고개를 지나 구룡폭포 등산로 주차장에 내려 연주담과 빙폭의 위용을 자랑하는 비봉폭포를 지나 금강문을 들어서니 옥류동 계곡이 눈앞에 나타난다.구룡폭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관폭정에서 시낭송회를 가지는 동안 화가들은 내리는 빗속에서 구룡폭포 스케치에 여념이 없다. 마지막 밤.장전항을 출항해 다시 동해시로 돌아오는 금강호 선상에서는 아쉬움속에 문협 부이사장인 신세훈 시인의 ‘해방공간으로 가는 문학’이란주제의 강연과 시낭송회가 이어졌다. 이번 제1회 금강산 뱃길문화체험 행사는 민족문학의 활성화,민족통일과 역사발전의 견인차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행사에 참가한 시인 화가 100여명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남북한 결식아동을 위한자선시화전 및 그림전을 갖는다.전시회는 5월14일부터 10일동안 광주 신세계백화점에서,5월25일부터 6월4일까지 목포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 江澤民주석 유럽3국순방 남긴것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인권시위로 얼룩진’ 10일간의 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친다. 인권단체 회원들이 가는 곳마다 ‘인권 개선’과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데다 방문국 정상들로부터 이례적으로 인권관련,‘훈계’를들어야 했다. 20일 베이징을 떠날 때 장 주석은 교역증대,세계무역기구(WTO)가입 협조확보등 보다 실질적인 방문결과를 기대했다.유럽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미국을견제하는 탈냉전기 중국외교의 틀을 다지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관계개선은 커녕 인권문제의 역풍속에 가는곳마다 수모를 당했다.기본적인 가치관에 대한 메워지기 어려운 견해차를 확인하고 서로 감정만 상한 역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27일 마지막 방문국 오스트리아에서도 장 주석은 이탈리아,스위스처럼 시위대에게 곤혹을 치렀다.인권 개선,티베트 독립,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라는 여론의 압력에 가는 곳마다 부딪쳐야 했다. 앞서 25일 스위스에서는 연방의회 주변에서의 시위대의 격렬한 시위에 화가 난 장 주석이 루스 드레이푸스 스위스대통령에게 “당신들은 시위대를 통제할 능력도 없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스위스측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게 민주주의”라며 반박해 화를 돋우기도 했다. 올해는 천안문사태 10주년과 중국의 티베트 점령 50주년 등이 겹쳐 세계 인권단체와 망명 중국 반체제 인사들의 활동이 고조되고 있다.인권 문제로 수모를 겪은 장 주석의 이번 방문 결과가 어떻게 중국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 [金三雄칼럼]-금강산의 엷은 햇살

    국가보안법상의 ‘적’이면서 남북기본합의서상의 ‘특수관계’인 북한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남북관계의 양면성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금강산 자락에도 엷은 햇살이 비치면서 잔설이 녹아흐르고 있었다. 장전항에서 ‘입국’절차를 밟고 들어간 온정리는 남한의 여느 시골마을과별로 다르지 않는 예전 우리 모습이었다. 산이 발가벗고 무표정한 어른들의모습이었지만 철부지 아이들은 손을 흔들고 금강산 곳곳에 배치된 안전원들역시 애써 지은 무표정 속에서도 한 핏줄이란 속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분단 이후 출생자가 남한 83%,북한 87%가 되는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돼야 한다. 군사비가 130억달러 대 40억달러의 비율로 우리쪽이 질과 양에서 훨씬 우세한 편이고,남측 우방인 미국이 세계유일 최강인 반면 북측 우방이었던 소련은 붕괴된 처지에서 그쪽의 입장을 이해하는아량도 보여야겠다. 모름지기 협상이나 거래는 역지사지(易之思之)의 자세가 필요하다. 남북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6,70년대 북쪽이 경제적으로 앞서고 소련과 중국이 지원하고,미국이 한국에서 1개사단을 철수하는 등 이른바 ‘닉슨 독트린’정책으로 안보가 위태로울때 박정희대통령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서둘러야했던 그 절박한 상황을 돌이켜보자. 지금 북한이 사면초가와 체제모순과 거듭되는 재해로 인한 굶주림 속에서 극단의 대처방법을 추구해온 ‘처지’를조금은 이해할 만도 하다. 결코 북한의 핵이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양해하고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서 협상하고 접근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침략전쟁을 잊지 못한다. 6·25와 냉전시대를 겪으면서 국민의 반공주의는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정서와 감정 공포 증오로 자리잡게 되었다. 역대 독재정권과 이에 기생한 언론·지식인들의 안보상업주의도한몫을 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민족문제이면서 국제문제의 이중성을 띠면서 남북문제는 이념대결과 열강들의 이해대립으로 굳어지게 되고 남북문제는 ‘골라디온의 매듭’처럼 되고말았다. 여러해 전 프랑스 몽블랑과 스위스 융프라우를 오르면서 우리 금강산에는언제쯤 가게 될까,기약없이 꿈꾸었는데 이처럼 실현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미 4만명 이상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연말까지 10만명 이상이 금강산 관광을 하게 된다. 큰 변화다. 1년 전에만 해도 금강산 뱃길이 열리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金大中정부의 햇볕정책이 마침내 동토의 문을 열었다. 분단사 또는 통일운동사의 쾌거라 하겠다. 시인·화백 100여명과 함께 오른 만물상과 구룡폭포는 우리가 느껴온 추상보다 훨씬 우람하고 기묘하고 신비하고 청결한 모습이었다. 북한이 금강산을 이렇게 ‘보존’한데 감사드려도 좋을 것이다. 비닐쪽지하나,빈병쪼각 하나도 널려 있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창조주의손길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금강산 뱃길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아니 묘향산과 백두산의 육로가 뚫리도록 참고 이해하면서 화해와 공존의 길을 넓혀야 한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이해가 꼭 일방적인 수혜는 아니다. 남북관계가 안전해야 외국의 투자가 가능하고 수출도 늘어난다. 그런 면에서 IMF체제 극복을위해 우리쪽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북한 역시 변화의 흐름을 수용해야 한다. 북한이 기아와 후진성 탈피를 위해서는 남한의 지원과 동포애보다 더 절실한 나라는 달리없다. 또한 지나친군사력 증강이 일본 재무장의 빌미를 주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3박4일의 짧은 금강산행을 마치고 귀로 버스에서 일행은 노래와 시낭송으로 감격과 통일의 꿈을 새겼다. ‘음치’인 탓도 있지만 한편의 즉흥시로 ‘음책(音責)’을 면하고자 했다. 그렇게 어렵던 길이던가 그처럼 사무치던 곳이던가 꿈에도 그립던 길이길래 파도치는 동해뱃길 달려갔거니 당신 의연히 거기 있더이다 만물상 구룡폭포 신비의 모습하며 천고의 나래펴며 거기 있더이다 당신 거기있어 금수강산 이름받고 그대 거기있어 통일조국 소망이네 금강산 당신 품에 안길 때 때묻은 분단의 세월 부끄럽고 속세 티끌 떨친 그대 순수에 인간사 이욕과 갈등 수치였네 당신 보고 가는 서울행 찻길에서 대관령 자락 남은 잔설같은 냉전의 장벽 분단의 빙설 허물며 육로길에 다시 만날날 기약하네./주필
  • 유고공습…나토 ‘힘’의 실체

    새달 4일로 창설 50주년을 앞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코소보 휴전 약속을 어긴 데 이어 평화중재안을 거부한 유고 연방에 대한 공습을 25일 감행했다.주권국가에 대한 나토의 첫 공격인 이번 공습을 계기로 나토의 역사와군사조직 등을 살펴본다. 나토가 탄생한 것은 지난 49년 4월.전후 동유럽에 주둔한 소련군과의 군사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체결된 북대서양 조약의 수행기구로 서유럽 국가들의집단방위체다. 2차대전후 서유럽은 경제적인 피폐에서 헤어나질 못했다.반면,소련은 중·동 유럽의 모든 국가를 군사적으로 점령했고 동유럽 전체에 철의 장막이 형성됐다.동유럽에 주둔한 대규모 소련군은 서유럽에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48년 3월 영국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가 집단방위동맹인 브뤼셀 조약을 체결했으나 미국의 원조없이는 유지가 힘들었다.여기에 소련에 대항,힘의 균형을 꾀하고 있던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마침내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미국은 나토에 막대한 원조를 함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해갔다.50년 나토회원국들에 1억달러씩을 원조한 것을 시작으로 20년간 25억 달러 이상의 원조액을 쏟아부었다.나토군사시설 구축도 3분의1을 미국이 부담했다.미국 등은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서독의 재무장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55년 서독을나토에 가입시켰다.55년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사이의 바르샤바 동맹조약이탄생한 배경이다. 80년대 말 시작된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동유럽 붕괴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한때 바르샤바 조약기구 동맹국이었던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3개국은 지난 12일 나토에 가입했다.포스트 냉전 시대 국제 군사질서를 규정짓는 결정타였다. 슬로바키아와 루마니아가 곧 편입하고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이 뒤를 이을 전망이다. 金秀貞 crystal@
  • [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 갈바드라흐 몽골대사

    몽골 정부는 金大中 대통령의 몽골 방문을 공식 초청했으며 올해내 방문 실현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로도이담바 갈바드라흐 주한 몽골 대사는 28일 대한매일과의 특별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몽골정부는 지난 2월 몽골대통령의 金대통령에 대한 공식방문 요청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몽골 정부는 한반도의 조속한 통일을 희망하고 있으며 金大中 정부의 포용정책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데 가장 현실적인 정책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대사는 강조했다. ▒한국과 몽골관계는 어떻습니까. 아시아국가와의 우호관계 강화는 몽골 외교의 중요한 축입니다.한국은 그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냉전으로 두 나라는 90년 3월에야 수교했지만 빠른 관계발전을 이뤄나가고 있습니다.양국은 중국,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정학적인 입장도 같습니다.경제 뿐아니라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의 협력관계 발전 가능성도 큽니다.몽골은 한국과 모든 분야에서 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를 희망합니다.몽골 대통령은 지난 91년 한국을방문한 적이 있으며 올해 내에 金大中 대통령의 몽골 방문이 실현되기를바라며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경제협력 관계의 현황과 전망은 어떻습니까. 양국의 무역관계는 90년에야 시작됐지만 이제 한국은 일본,러시아,중국에이어 미국과 함께 4번째 투자국이 됐습니다.무역액도 몽골 전체 무역액의 7% 선을 넘어선 상태입니다.투자액은 97년 11만6,000달러며 50만달러에 그쳤던 90년의 무역액도 지난해엔 5,170만달러를 기록,8년만에 100배 가량 성장했습니다. ▒몽골의 개혁·개방정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평입니다. 최근의진전 상황은 어떻습니까. 90년부터 시작된 민주화개혁으로 몽골은 일당 독재,계획경제에서 다당제,시장경제 체제로 전환을 이룩했습니다.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개혁이 진행됐습니다.지난 96년 75년만에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한 집권 민주연합도 개혁을 가속화하는 전면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공무원 조직과 국영기업 개혁도 그중 하나입니다.옛 동구권 일부 국가들에선 정치개혁과 경제개혁 사이의 속도차이 균열이 목격되지만 몽골은 이두 개혁이 보조를 맞추며 균형있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경제방면의 개혁정책은 어떤 것이며 어떤 효과를 거두고 있읍니까. 외국기업의 투자와 편의를 위해 공업개발구를 설치하고 각종 법규와 경영제도를 국제적 규율과 관례에 맞추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자유로운과실송금 및 권리양도 등도 그 중 하나입니다.지난해 5월부터 모든 수입 관세를 없애고 몽골 전역을 무관세 지역으로 만들었습니다.중고자동차,술,담배 등 몇몇 품목만이 제외됐을 뿐입니다.몽골은 아직 개발이 불충분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란 두 거대시장 사이에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습니다.한국기업의 몽골 투자 등 활발한 경제교류를 희망합니다.그러나 아직은 몇몇 중소기업의 진출단계에 불과합니다. ▒한국 기업이 어떤 부문에 투자를 하는 것이 유리하겠읍니까. 민영화 계획은 몽골 경제개혁의 중심입니다.은행과 금융기관의 외국인 투자도 권장하고 있습니다.풍부한 지하자원이 묻혀있는 광산분야의 투자는 유망한분야입니다.몽골은 한국 등 17개국과 투자보호협정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등 강대국 틈에 끼어 있습니다. 어떤 외교정책을갖고 있습니까. 90년까지 몽골은 옛 소련의 위성국가였습니다.이제는 러시아와 중국이란 두 인접 강대국과의 균형관계 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읍니다.최근 가까워지기시작한 미국과의 관계 긴밀화도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몽골과 한국은 문화적 유사점을 갖고 있습니다.문화교류 강화를 위한 계획은 어떠신지요. 내년 3월 두 나라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몽골 문화축전의 달’로 정해 유물 및 미술품 전시와 민속박람회 등을 개최하려 합니다.내년 서울에서 몽골과 관련한 각종 문화행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현재 몽골의 일부 대학과고등학교에선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언어교육과 유학생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몽고의 정치 일정은 어떻습니까. 내년 6월 총선거를 실시,국회를 새로 구성합니다. 李錫遇 swlee@
  • 美 월러스틴교수 ‘유토피스틱스’ ‘이행의∼’ 번역 출간

    ‘밀레니엄 담론시대’라고나 할까.새로운 세기와 새 천년을 앞두고 세계가 온통 떠들썩하다.부자나라는 중심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가난한 나라는 변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밀레니엄을 활용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새로운 세기는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줄까 디스토피아를 안겨줄까.‘실현되지 않은현재’인 미래를 전망하기엔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너무 짙은 요즘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교수(70·빙엄튼 뉴욕주립대)가 내리는 세계진단은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세계체제에 대한 선구적인 이론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월러스틴은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자유주의 이후’ 등의 책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그의 최근 저서 ‘유토피스틱스’(백영경 옮김)와 ‘이행의 시대’(백승욱·김영아 옮김)가 창작과비평사에서 잇따라 출간됐다. 월러스틴은 동일한 맥락의 이 두 책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궤적을 더듬는다.그에 의하면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생성과 발전의 단계를 거쳐 위기와 소멸의 단계에 봉착해 있다.그것은 더이상 정상적인 작동을 지속할수 없는 지점에 와있다.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다.이런 상황에 대한 하나의 돌파구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유토피스틱스다.유토피스틱스(utopistics)는 월러스틴의 조어(造語).토마스 모어가 고안해낸‘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의 유토피아에 학문활동을 뜻하는 영어 어미 ‘∼istics’를 결합한 것이다.이상향이 아닌,실제로 가능성이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한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해 뉴욕에서 처음 출간된 ‘유토피스틱스’는 500년 동안 지속돼온 현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월러스틴의 견해를 압축해 보여 준다.그런 점에서 그의 저서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에 견줄만하다.월러스틴은 자유주의에 대한 퇴출과 구(舊)좌파에 대한 환멸로 요약되는 1968년의 세계혁명을 전환점으로 세계경제 주기인 콘드라티예프의 하강국면과 미국 헤게모니 주기가 끝나는 2025년까지를 ‘세계체제의 이행기’로 규정한다.이 시기는그에 따르면 개인과 집단의 자유의지가 중요한 ‘구조적 결정력’을 행사하는 기회의 시기다.그러나 문제는 현 자본주의 체제의 끊임없는 ‘자본축적의 우선성’이다.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월러스틴은 탈집중화된 비영리적 생산단위의 역할을 강조한다.그 구체적 모델로 그는 비영리 병원과비영리 전력회사를 꼽는다. 이른바 세계체제론의 핵심은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다.하지만 20세기 자본주의의 역사를 세계체제론의 시각에서 다룬 책은 그리 많지 않다.‘이행의 시대(The Age of Transition)’는 그같은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체제가 겪어온 변천과정과 그 구조적 한계를 분석하는데 무게를 둔다.구체적으로 세계체제의 변화를 국가간체제,세계생산 구조,세계노동력의 구조,세계 인간복지의 향상,국가의 사회적 응집력,지식의 구조 등 여섯개의 하위영역으로 나눠 고찰한다.월러스틴은 이 영역들을 세계체제의 ‘벡터(vector)’라고 부른다.그는 세계체제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는않는다.다만 현재의 위기의 동학(動學)을 전지구적인 틀 속에서 근본적으로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월러스틴은 그의 저서에서 한국 사례를 직접 언급하진 않는다.그러나 그가다루는 시기가 냉전에 의해 뒷받침된 미국 헤게모니의 흥성기와 그 이후의쇠퇴기임을 감안하면,이 책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피는데 매우 유용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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