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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정상회담, 초당적 참여를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여야 3당 대표가 참여하는 방안과 관련,논란이빚어지고 있다.대표단에 3당 대표를 포함시킬 것이라는 여권의 구상에 대해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사전 협의가 없었음을 들어 불쾌감을 나타냈기 때문이다.청와대나 정부로부터 어떠한 요청도 받은 바 없는 상황에서 대표 선정 문제까지 불거져 이총재의 불만을 산 것이다.지난달 24일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음에도 불구,여권이 자신을 외면하고 정보도 제공해 주지 않는 데 따른 불만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이총재의 불만 표출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며 여권의 정치적 배려가 다소간 미숙했다는 지적이다.특히 이총재는 야당 인사를 대표단에 포함시킬 경우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에 이용당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들어 정당 참여의 신중론을 제기했다.북한이 그동안 우리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남북정당·사회단체간 연석회의를 주장해 왔던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전략에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물론 북한의대남전략이 포기되지않은 것이 사실이다.정상회담에서 우리가 기대한 만큼 얻게 될지도 의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총재의 우려는 일단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회담의성공을 위해 신중한 대책을 주문한 것으로 이해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일도 아닌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초당적 참여와 지원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은 실현 자체가 갖는 상징적 성과뿐만 아니라 분단 이후 최초로 민족의 중대 현안을 협의하는 만큼 국민 모두의합의와 지원으로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지상과제다.정상회담은 정권차원의 일회용 행사가 아닌 민족통일의 대장정(大長征)으로 승화·발전시켜야 하는 민족적 과제라는 점에서 볼 때 정치권의 거시적 참여는 당연한 책무다. 더욱이 북한의 냉전적 대남전략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단합과 초당적 지원을 통해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최근 북한도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향적 외교를 강화하는 등 회담준비에 열린 모습을 보이고 있어회담성과에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따라서 우리는 정상회담의 정당 대표 참여를 야당에서 우려하듯 일회용 들러리 역할이나 대북정책 비판으로 자승자박하는 결과로는 보지 않는다.오히려 야당이 직접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 실상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국회와 정당차원에서 생산적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정치권은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화합 그리고 남북협력의길을 여는 통일의 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초당적 참여와 지원을 아끼지 말것을 기대한다.
  • [외언내언] 대북인식의 解氷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국민들의 대북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추세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최근 소프레스를 비롯,국내 여론조사 기관들이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대북 인식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과거에비해 매우 우호적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응답자 가운데 북한을‘공존 및 협력의 대상’이라고 답한 것이 54.8%로‘적대 및 경계의 대상’으로 보는 27.7%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다.또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경계해야 한다’는 27.7%의 견해도 지난 85년 82%, 90년 72.6%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것으로 특기할 만하다. 특히 6·25전쟁 50주년을 맞는 올해‘전쟁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철저한 규명부터 있어야 한다’는 응답이 21.5%에 그쳐 6·25전쟁에 대한 해법도 국민대다수가 미래지향적인 해결 방법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변화에 대해서도 69.6%가 개방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했다.정상회담 이후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보는 긍정적 시각이 73.7%로 집계돼 회담 성과에크게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나타난 이같은 우리 국민들의 의식 변화는 전반적으로 냉전 및 남북 대결이 급속히 완화되면서 북한에 우호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국민들의 대북 인식이‘긍정적 변화’로 전환된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일관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했다고 본다. 금강산 관광사업을비롯, 체육·문화교류 등 구체적인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은 북한에 대한 대결과 불신을 해소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정상회담 이후 경제협력과이산가족 만남 등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고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계층의 대북 시각에는 아직도 냉전적·대립적의식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6·25전쟁의 상흔 속에 남아있는 피해 의식으로 북한을 용서할 수 없는 정서를 갖고 살아가는 국민들이20%나 되는 현실은 쉽게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냉전적 적대 의식은 불식돼야 한다.북한이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통일을 성취해야 할숙명적 동반관계라면 북한을 이해하고포용하는 것이 역사적 순리다. 남북한 민족 구성원들의 동포애와 협력관계의 큰 틀이 마련될 때 비로소 민족 화해와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6월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봄을 가져올 뿐만아니라 겨례의 사랑과 화합을 다지는 성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장청수 논설위원.
  • [대한광장] 새로운 국민 통합의 길

    서울행 고속버스 안의 풍경이다.버스가 떠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젊은이들이 휴대폰을 들기 시작하더니 버스 안은 버스 밖 먼곳에 있는 사람들과의대화로 갑자기 시끄러워졌다.2시간이 채 못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전자음들의 교란이 이어졌고 드디어는 꺼지지 않는 음악벨이 모두를 괴롭혔다.누군가그것 좀 받으라고 할 만도 한데 모두들 참고 있었다. 당사자는 전화를 켜놓은 채 자고 있었다.거기엔 질서에 대한 무시와 타인에 대한 불간섭주의라는규칙이 공존하고 있을 뿐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적 광장(廣場)은 찾아볼 수없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세대간에 두 가지 위기를 동시에 경험하는 듯하다.하나는냉전세대의 이데올로기적 방황이고 또 하나는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 위기이다.반공을 위시로 하여 급속한 근대화를 목표로 삼았던 전전(戰前)세대들은획일주의,강경 드라이브,비관용주의,흑백논리,줄서기 등에 익숙하다.한마디로 말하면 군사문화가 사회 곳곳에 자본과 결합하여 규칙 없는 일탈된 자본주의 구조 속에 침투해 있다.이제 탈(脫)냉전의 시대적요청 속에서 전전세대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와 문화에 대한 조정 국면에 접어들고있는 것이다. 반면 탈냉전세대들은 세계적 시장질서의 소비자로서의 코스모폴리탄으로서존재한다.이들은 급속한 탈(脫)영토화를 경험하면서 집단적 기억이나 역사의식에서 이탈하려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분산적 경향을 띤다.이들은‘민족’보다 더 좋은‘하이테크’를 충성과 연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역사적 정체성이나 동질성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상반된 두 세대간에 공통점이 발견된다.하나는 획일주의요,또 하나는 급속한 확산주의 성향이다.대상과 목표가 다를 뿐 정향에 있어서는 모두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비민주적 정향을 갖고 있다.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전전세대는 탈냉전세대들에게 전수시켜야 할 내용은 전수하지 않고 고쳐야 할 행태만 답습시킨 채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남북간 화해와 협력은 정치적 의미를 넘어서서 사회구조적인 많은 문제를 동시에 극복하는 단초가 될 수있다는 생각이 든다. 냉전세대들에게 작금의 남북관계 변화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겠으나 그들의사고와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꿔줄 수 있는 대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잊혀져 가고 있는 민족적 뿌리를 찾아주고 동질성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전환의 기회를 실기(失機)하지 않기 위해서 수반되어야 할 것들이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사회 내부의 뿌리깊은 냉전구조를 과감히 해체하는 것이다.그것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제 부문에 걸쳐 중층적으로 심화되어 있어서 정책적인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각 부처간,여야간,그리고나아가서는 국가와 시민사회간에 협조체계를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구체적인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그리고 그 내용은 무엇보다 민주적 규칙과 질서를확립하고 문화를 습득시키는 작업이다.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며 관용의 정신을 함양시키고 올바른 시민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그리고 정치 엘리트층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간 우리 사회는 정치지도자들의 민주성이 국민들보다 현저히 처져 있었다.민주적 질서를 뿌리내려 사회 저변에 민주적 규칙에 대한 보이지 않는 합의를 이룩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국민 통합은 가능한 것이다.균열과 갈등과 경쟁만이 첨예한 사회로부터 민주적 공동체로 변화될 때 우리는 좀더 여유있는자세로 북한을 대할 수 있다. 우리의 사회 통합을 기반으로 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은 그야말로 아시아 중추 국가의 비전을 실현해 볼 수 있는 계기가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국헌으로 삼았으면서 제대로 실천해본 적이 없는 불행한 역사를 이제 실천적으로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실행에 착수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김명숙 상지대교수 정치학.
  • 남북정상회담 앞으로 한달/ 金대통령 준비 1개월·구상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다음달 12∼14일 열릴 남북정상회담을 한달 앞둔 11일 관계부처가 작성한 자료들을 검토하며 차분히 하루를 보냈다.지난주말지방 휴양시설인 청남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현대 북한의 지도자(金日成,金正日)’ 등 관련책자와 각종 관련자료들을 읽어본 뒤 2차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은 “김대통령은 관저에서 쉬시면서 차분하고담담한 마음으로 회담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김대통령은 특히 지난 9일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과의 만찬회동과 10일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끝으로 범국민적 지지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보고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착수해야 할 시점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한·미·일 3국간의 공조와 오는 29일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총리와의 한·일정상회담 등을 통해 주변 4강의 외교적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이다.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은 중국,반기문(潘基文) 외교부차관은미국을 각각 방문해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다.김대통령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박대변인은 “한·미·일간의 공조는 정상회담 합의 전이나 합의 후에도 빈틈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충분한 의견교환이 이뤄져 있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러시아와도 외교채널을 통해 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에 임하는 김대통령의 기본시각은 남북대화의 지속과 연속성에 있다. 황원탁(黃源卓) 외교안보수석도 “김대통령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평화정착의 초석을 놓겠다는 의지”라고 전했다.이번 정상회담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는 것보다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공동번영의 기틀을 다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을 실무접촉에서 못박지 않고 단독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이 직접 거론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승현기자 yangbak@. *준비접촉 현황·전망.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준비업무가 경호·통신 등 세부 실무사항의 논의단계로 사실상 넘어갔다. 남북한이 8일 4차 준비접촉에 이어 9·11일의 판문점 직통전화를 통해 준비절차의 전반적인 사항을 사실상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북측은 11일 판문점의 전화통지문을 통해 북측의 합의서 문안을 보내왔다. 지난 9일 남측이 보낸 수정제의를 검토한 뒤 보낸 것이다.기자단 숫자를 제외하면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간의 합의서나 다름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측이 보내온 문안과 관련,“기자단 규모를 제외하곤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고 밝혔다.따라서 기자단 숫자만 절충되면 합의서타결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한편 합의서 타결 없이 곧바로 세부 실무절차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남측이 기자단 수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기자단 수는 회담 개최 직전 결정되더라도 회담개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개최 전까지 양측의 줄다리기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쟁점이 됐던 의제문제는 지난 4월8일 베이징(北京) 남북 정상회담 합의서기본정신을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수준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즉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과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화라는 내용을 넣는 선에서 합의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9일 합의서의 공식타결 없이 그 다음과정인 경호·통신 등을논의하는 세부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늦어도 다음주쯤에는 합의서 타결이 없더라도 세부절차를 진행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합의서의 공식타결 또는 미타결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것은한마디로 절차에 대한 틀이 정리됐음을 뜻한다. 그러나 앞으로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논의할 의제가 어떻게 구체화될지도관심거리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정상회담 앞으로 한달/ 전문가 3人의 제언

    ●황태연(黃台淵) 동국대 교수. 남북 정상회담의 근본적 과제는 적대관계 완화 및 종식이다.6·25가 가져온민족의 아픔을 이번 기회에 치유할 경우 남북 화해와 협력은 순풍을 탈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이산가족문제를 반드시진전시켜 대내적으로 대북 협상력을 강화하고 추진력을 이어가는 것이 앞으로 남북대화 성공의 지름길이다. 북한은 생각보다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것 같다.북한이 관영매체를 총동원,“이번 기회를 잘 살리면 남북한 모두가 잘 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북한은 지금 경제적 측면에서 하부구조가 와해돼미국과의 벼랑끝 외교나 강성대국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다.정상회담을 계기로 활로를 찾으려는 북한의 의지가 감지된다.모처럼 찾아온 호기로 봐야한다. ●이장희(李長熙) 외국어대 교수 . 회담 전망은 국내외의 확고한 지지와 북한의 적극적 자세가 어우러져 무척 밝다.북한 지도부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있는 동안 생존권을 확보한 뒤 평화의 연결고리를만들려는 것 같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처음 만났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하고 김대통령에게 너무많은 짐을 주면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난다.민족 화해와 평화적 무드가 지속되도록 정상회담을 정례화·지속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분위기를깨지 않도록 초당적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언론도 갈등지향적 보도보다는화해지향적 보도에 치중,정상회담의 성공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정착 및 냉전종식,경제협력과 이산가족문제 해결 등 남북 사이의 주요 현안들을 폭넓게 제기하고 논의할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합의가 된 부분은 문서로 담아내고 견해차가 있는 부분은 차이를 확인해 격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첫번째 정상회담에서 많은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우선 경협과 이산가족문제에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또 최소한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도모할 수있는 계기도 마련됐으면 한다.평화정착과 냉전종식문제와 관련해선 적어도 인식의 공유가 이뤄지고 이후 이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화기구의 상설이 바람직하다.
  • 美”남북한 어떤 합의도 존중”

    미국은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합의하는 어떠한 사항에 대해서도 존중한다는 데 한국측과 합의한것으로 10일 알려졌다.미국은 또 정상회담 이후 합의사항 실천에서도 확고한지지와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측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논의되기를 희망하는 북한 핵·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WMD)의 개발 억제문제는 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이행을논의하면서 ‘포괄적’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정부 고위당국자가 전했다. 이같은 의견접근은 최근 반기문(潘基文)외교통상부차관의 방미와 지난 8일웬디 셔먼 미 국무부 자문관 및 우리측 장재룡(張在龍)차관보를 대표로 하는한·미 대북정책협의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한·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의제화하지 않을 방침이나 북측이 제기할 경우 “한반도 평화정착과 냉전구도 해체가 본격화,구체화되는 적절한 시점에서 한반도 내 모든 군사문제와 함께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칙을밝힌다는 데 견해를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일회로 그치지 않고 정례화되는 게 한반도평화정착을 위해 무엇보다 긴요하다”는 우리측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했으며 “남북 정상회담 성공이 한·미간 최우선 과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편 셔먼 자문관은 이날 김포공항 귀빈실에서 이한(離韓)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그동안 한·미 공조를 통해 협의해온 사항들이 적절히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이번 방한은 한·미·일 공조가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한국측에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일만기자 oilman@
  • 한국언론재단·기자협회 남북정상회담 보도 워크숍

    남북정상회담 이후 각계의 남북 교류가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에 관한 언론계의 입장과 자세를 점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한국언론재단(이사장 김용술)과 한국기자협회(회장 김영모)는 9일 한국언론재단 12층 연수센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언론교류’ 주제의 워크숍을 공동으로 개최했다. 손석춘 한겨레 여론매체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정일용(연합뉴스·북한부) 신준영(대한매일·특집기획팀) 서의동(문화일보·정치부)기자등 현직기자를 비롯해 유길재(경남대·북한대학원) 정해구(성공회대·정치학과)교수,김학성 통일연구원 연구위원,김창수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김택환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원 등 학계·통일·언론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주제발표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첫 발제자로 나선 유길재 교수는 ‘남북정상회담의 의의와 남북관계 전망’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목표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과 실천을 통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있다”면서 “남한이 북한의 경제난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이것이 남한에게도 유리하다는 점을 설득하여 합의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바람직한 목표”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여소야대 구도하에서 야당의 협조와 국민적인 합의 없이는 대규모 대북지원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대통령이 ‘반드시 …을하고 돌아오겠다’는 식의 발언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주문했다. 98년 이후 세 차례 방북취재를 한 신준영 기자는 ‘방북취재를 준비하는 언론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줬다.그는 “남한에서 보고듣고 알고 있는 개념으로 북한의 사물과 행태를 평가하면 뜻하지 않은 오해와 불신을 사기 쉽다”고 밝히고 “우리의 내면 깊숙이 뿌리박힌 대북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그는 또 “방북취재에 앞서 북한에대한 사전 연구 등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며 특히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이해하고 바르게 전달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학성 연구위원은 ‘독일통일 과정에서 서독국민과 언론(인)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다.김 위원은 “현정권의 대북포용정책은 독일의 동방정책과 유사한만큼 독일의 사례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우리언론(인)이 분단과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정확히 인식하고 통일교육적 기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일용 기자는 “북한·통일관련 보도에서 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간 회담에서 언론교류를 의제로 삼아야 한다”면서 “동서독이72년 기본조약 체결 이전에 양국 통신사의 특파원 파견에 동의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이어 “남북기본합의서에 언론교류를 명기해 놓고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남북한 당국 모두의 책임”이라며“언론교류는 상호이해,화해협력을 굳건히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남북정상회담 4차 준비접촉/ 실무합의뒤 의제논의…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문제는 실무접촉에서 줄곧 핵심 쟁점사안 중 하나였다. 남측은 1차 접촉때부터 정상회담 전에 실무선에서 구체적인 의제협의를 주장해 왔다.이를 위해 별도 실무접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북측에 제시했다. 반면 북측은 7·4공동성명 등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입장만을 강조해 왔을뿐이다.정상간에 나눌 내용은 정상간에 결정해야 한다는 자세를 보여왔다. 양측은 실무절차합의서에 의제를 명기하는 문제에 대해선 포괄적인 표현으로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그러나 “실무절차 합의서 타결 이후에도 실무진이 의제와 관련된 협의를 계속하자”는 남측 제의와 관련해선 쉽게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경협 등 남북의 현안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무진이 별도의 접촉을 계속 진행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남측의 기본입장이었다. 6월 정상회담에 앞서 두 정상이 만나 논의할 의제를 실무진에서 논의해 정하고 구체화해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파악해 나가자는 것이다. 남측은 지난달 22일 첫번째 접촉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 4대과제를 두 정상의 회담에서 중점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냉전해체,이산가족 상봉실현,경협,당국간 대화 등 4대 과제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제안이 그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재가동,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생사·서신교환·면회소설치,투자협정 및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연락사무소의 재개 등을 제기한 것도 의제의 구체화를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북측은 1∼3차 접촉때까지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결국 의제는 포괄적인 선에서 정한다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이석우기자 swlee@
  • [오늘의 눈] 한반도를 보는 美·中의 시각

    8일 광화문 중앙청사는 미국과 중국의 ‘외교 각축장’이 된 하루였다. 7일 방한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자문관 일행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청사 8층 회의실에서 장재룡(張在龍)차관보 등 외교부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댄 채한반도 현안을 숙의했다.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7층 공보관실에선 주방자오(朱邦造) 중국 외교부 대변인과 우리측 이남수(李南洙)대변인이 양국 현안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지도부들이 같은 시각,위 아래층에서 한반도 정세를 논의한것은 앞으로 몰아칠 ‘한반도 격류’를 예고라도 하는 듯 ‘의미심장’하게비쳤다. 미국과 중국은 6·25 이후 한반도에서 남북한을 상대로 가장 큰 영향력을행사해온 강대국들이다.연장선상에서 소련 붕괴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를이어가려는 미국과 새로운 세계강자를 꿈꾸는 중국이 동북아 패권을 놓고한판 대결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주 대변인은 방한 직전 북한을 찾아 그곳 기류를 탐색했고 셔먼 자문관은조만간 중국과 일본을 연쇄 순방할 계획이다.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중이 주변 정세에 어느 정도 민감한지를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반도를 교두보로 삼아 중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억제한다는 세계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 중국은 한반도 평화구축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최근 탕자쉬안(唐家璇)외교부장이 “한반도에서 미국은 조역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이처럼 미·중 양국은 자신들의 국익이 투영된 세계전략에서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다.당장 한반도 평화정착과 냉전해체라는 ‘총론’에 대해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틀어질 경우 언제 갈등과 반목의 사이로 돌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앞으로의 한반도 4강 외교에 대해 YS정권의 외교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 같다.허장성세와 무원칙한 외교정책으로 인해 한·미,한·일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던 과거를 잊지 말아야한다.실익과 명분의 균형 감각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최대의국익을 추구하는 ‘외교곡예’가 지금부터 본격화되는 느낌이다. [오 일 만 정치팀기자]oilman@
  • 남북정상회담 4차 준비접촉/ 朱邦造 中외교부 대변인

    주방자오(朱邦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당사자들의 문제인 만큼 정상회담 의제도 양측이 결정해야 한다”며 “중국은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이해와 화해의 증진,평화와 안정의 정착,통일지향의 방향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 전망은. 정상회담의 성패 여부는 남북 양측에 달려 있다.양측이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만큼 성공할 것으로 본다.하지만 정상회담이열리더라도 한번에 많은 것을 얻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50여년 만에 열리는 탓에 서로간에 이해도가 높지 않는 등 많은 차이점이있을 수 있다. 벽돌을 한장 한장 쌓는다는 기분으로 차근 차근 풀어나가야할 것으로 본다. ■북한 방문때 느낌은. 방북중 판문점을 방문했을 때 남북 3차 접촉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번 방한 때는 4차 접촉이 열리고 있다.통일 실현을 위한 남북한 주민들의 염원을 감명깊게 느꼈다.판문점에서는 “냉전종식 후에도 군사분계선이 남아 있는 것은 불행”이라는 내용의 ‘담화’도 발표했다.■평양에 대한 인상은. 평양은 도시계획이 잘된 곳처럼 보였다.하지만 에너지난과 전력난은 아직도 심각한 듯 여겨졌다.평양 거리에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밤이 돼도 전등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북한 방문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외무성의 박동춘 유럽담당 부상 등 북한 관리들은 남북정상회담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성과가있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중국이 탈북자를 좀더 인도주의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중국은 탈북자 문제를 국제·국내법,인도주의,한반도의 평화·안정이라는 3가지 원칙으로 처리하고 있다.남북대치 상황에서 이같은 민감한 문제를 국제법에 따라 처리하지 않는다면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길 것이다.인도주의적 문제도 고려하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 對北보도자세 문제없나/(상)부정적 시각의 ‘뻥튀기’역사

    다음달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언론의 통일·북한문제에 관한 보도태도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국내 언론은 그동안 대부분 북한을 부정적·편파적으로 보도해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이같은 태도는 언론사 간의 심한 경쟁으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언론의 편파적 보도가 남북한 상호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독일 통일 이전 서독 언론이 동독과 통일문제를 다루면서 기울인 노력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기에 충분하다. 북한 및 통일 문제를 둘러싼 향후 우리 언론의 바람직한 보도자세와 통독 과정에서 서독 언론의 태도가 어땠는지를 두 차례로 나눠 싣는다. 학계에 따르면,남한 언론은 88년 ‘7·7선언’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을 ‘괴뢰집단’으로 규정한 채 통일의 동반자는커녕 타도의 대상 일변도로 보도해왔다.이는 40여년 동안의 단절로 인한 상호불신이 컸던데다 정치적 제약,언론의 구태의연한 냉전적 시각,각종 반공관련 규제법 등이 원인인 것으로분석됐다. 남한 언론은 한동안 정치권력과 수직적·의존적관계를 이뤄왔다.이는 한국전쟁을 통해 남한 주민들이 반공·승공·멸공식의 공산주의 타도노선을 견지하게 된 탓이다.언론은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북한을 오직 비판·비난·격멸의 대상으로만 보도했다.다시말해 6공 이전까지만 해도 언론은역대 정권의 대북·통일정책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전령사’에 불과했던것이다. 언론이 이같은 보도태도를 갖게 된 것은 ‘취재와 보도의 제약’이 가장 큰이유이다.휴전협정 이후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북한에 관한 각종 정보와자료는 당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언론의 자유로운 접근과 열람을 금지해 왔다.또 이 시기 당국이 국가안보·이익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언론의 북한보도가 극도로 억제,위축돼 있었다.64년 11월 당국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제하의 기사가 국가의 안보를 저해했다며 이를 보도한 신문의 해당기자와 편집국장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하기조차 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북한 방송 청취나 북한 신문의 인용보도는 불가능하였으며오직 당국이 운영하던 내외통신의 관급기사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심지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이나 평양 등 북한지역의 사진,지도 게재조차도 당국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했으며,특히 김일성 주석의 경우 한동안사진 대신 머리 뒤의 혹을 강조한 캐리커처를 사용하기도 했다.또 적어도 5공때까지만 해도 언론이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전향적인 통일론을주장할 경우 친공·반국가행위로 사법적 조치를 받아야 했다.따라서 그동안의 북한관련 보도는 대남간첩 침투,귀순자 인터뷰,북한의 군비증강,휴전선무력마찰 등 남북한의 대결을 조장하거나 북한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기사가주종을 이루었다.대표적 왜곡보도로 꼽히는 소위 ‘가짜 김일성’은 6·29선언 이후 북한보도의 규제가 완화되면서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최근에는 당국이 펴낸 책자에서조차 김일성의 항일투쟁기록을 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한의 북한관련 보도에 이정표가 마련된 것은 88년 ‘7·7선언’이었다.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이 선언에서 북한을 종전의 ‘적대적’에서 ‘우호적’‘협력적’‘공존공영의동반자’로 규정하였다.이 무렵 미주판 신문 기자들의 방북기나 해외동포들의 북한 견문기가 남한 언론에 소개되면서 북한 보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언론사들은 앞다퉈 북한부를 신설하고 전문기자를 양성하면서 ‘북한바로알기’에 나섰다. 95년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3단체는 북한 호칭방법 등을 포함한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준칙’을 확정,발표하기에 이르렀다.‘북괴’‘괴뢰집단’이라는 용어는 이 때부터 완전히 자취를 감췄으며 김일성에 대해서도 ‘주석’이라는 직함을 공식적으로 붙여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균관대 방정배 교수(신문방송학)는 “그동안 우리 언론은 대북보도에 관한한 당국의 입장만을 대변해 왔다”면서 “이제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화해·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광장] 386세대 選良들을 향해

    이번 16대 총선에서는 ‘바꿔 바꿔’라는 선전구호의 덕분인지 세칭 386세대라고 불리는 13명의 청년정치인이 금배지를 획득했다.몇몇 언론은 386세대선량들이 기성 정치세력에 쉽게 동화되었던 부끄러운 선배 운동가들을 닮지말라고 주문한다.이것은 4·19세대와 6·3세대에 대한 실망의 반작용일 게다.한편에서는 구태의연한 선거행태에 식상하여 정치적 무관심이 고조된 국민정서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정책중심의 의정생활로 주권자인 국민에게 봉사하라는 요구도 있다.이는 낡은 정치의 개혁을 염원하는국민의 순정(純情)을 대변하는 것일 게다. 국민들은 그들 젊은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단순 거수기노릇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여야라는 현실정치의 경계선을 더 높은 정치적 신념으로 돌파하면서 학창시절에 그토록 간절하게 희망해왔던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을 십이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그들 소수의 지도자를 앞장세워 주며 이름없이 빛도 없이 자신들을 밀어주었던 수많은 학우와 선배들의 피와땀,그리고 후배들의 기대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들이 단지 30대의 연령층,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라는 세대적동질성만으로 똘똘 뭉쳐서 선배와 후배들 사이를 비전없이 돌진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우려하는 지역감정 이상으로 세대간 갈등을 증폭시켜 386세대 정신을 오염시킬 것이다.그렇게 되면 그들은 국민에 의해 일회용 정치상품으로 용도 폐기되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그들은 학창시절 너무나도순수했기에 투옥을 마다않고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으며 사심없는 봉사와 희생으로 민주화를 견인했거나,견디기 힘든 시대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며 고달픈 일들에 매달렸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대학에 다니던 80년대는 한국 현대사상 일찍이 없었던 격동과 변혁의 시대였다.그때 그들은 한국민주화의 걸림돌이 남북분단으로부터 빚어진민족내부의 갈등과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빈부갈등이라는 것을 명석한 두뇌로 간파하고 이 갈등들을 총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싸워왔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그들이 과연 초지일관(初志一貫)해 왔던가에 의심의눈초리를보내는 후배들 또한 적지 않다. 그들의 빛나는(?)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16대 총선을 맞아 한 정당으로부터는 주사파 4인방으로 몰리고 또 다른 한 정당으로부터는 당내 주사파를 잘 단속하라는 역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그들이 색깔을 뒤집어쓰지 않고 당당하게 여의도에 입성할수 있게 해주었다.그들은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투옥자나 80년대 계엄령 투옥자에 비하면 큰 행운아들이다.운동권 출신 급진 좌경 후보라는 빨간색 칠하기가 먹혀들지 않을 만큼 시민사회의식이성숙했기 때문에 그들은 30대에 국민의 대표로서 남녀노소 누구를 불문하고우리 공동체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엄한 호령을 할 수도 있고정부와 재계를 향해서도 자유와 정의를 지켜가도록 훈계할 수 있는 특권도얻었다.그렇지만 그들이 이 특권의 향유에만 집착한다면 이전투구를 되풀이하는 우리 정치세계에서 일개 의원직은 계속 가질지 모르지만 정치적 성장은보장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386세대라는 정체성(正體性)을 인정받으면서 시대의 미래를 이끌기에는 각 당에 흩어져 있더라도 13명이면 충분하다.이상한 비유라고 또 빨간칠을 하려는 페인트장사(?)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카스트로는 82명으로 혁명을 시작했던 과거를 후회하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진 10여명만으로 충분히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다던가. 13명의 30대 정치인에게 거는 우리들의 기대는 참으로 크다.국가보안법을비롯한 냉전법률은 물론이고 그들의 후배들이 이적행위자로 몰리지 않도록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할 수 있는 각종 악법들을 뜯어고치면서 입법부를개혁하고 정치권을 정화하는 일, 한발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키고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일에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모든 국민들은 세대를 초월하여 그들의 초지(初志)를 믿고 따를 것이다.젊은 그들의 정치생명도그들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용감한 실천에 의해 오래도록 푸르싱싱할 것이리라. 柳一相 건국대교수 언론홍보대학원장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 (5)브란트 슈토프 회담

    *70년 동·서독 정상회담. “직접 회담을 통해 양쪽의 심각한 견해차를 확인했다.에르푸르트는 시작일뿐이며 2차회담을 갖는 것 이상의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1970년 3월19일 동독의 접경도시 에르푸르트에서 역사적인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진 뒤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서독으로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던진 첫마디다.그는 이 자리에서 통일에 대한 환상없이 침착하게 긴장을 제거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겠다며 ‘거짓된 희망’을 경고했다. 1945년 종전이후 25년만에 열린 정상회담은 긴장완화를 위한 대외적 여건변화를 동서독이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1969년은 2차대전 종전후지속돼온 동서간 냉전구조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난 해였다.미국과 소련간전략무기감축조약(SALT I) 협상이 시작됐고 나토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상호균형감군협정을 제안했다.3월 동서화해를 추구해왔던 하이네만의 서독 대통령 취임,4월 서독의 ‘동독 국가승인’ 방침이 발표됐다.10월 ‘동방정책’을 제창한 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민당 연립정부가 출범했다.브란트 총리는취임연설에서 “서독 정부에 의한 동독의 국제법상 승인은 고려될 수 없지만독일에는 두개의 국가가 존재하며 둘은 외국이 아니라 특수한 관계에 있을뿐”이라고 밝혔다. ‘두개의 독일 인정 발언’은 동독을 소련의 위성국가로,‘비합법적’국가로 간주 동독을 승인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 단절까지 불사하는 ‘할슈타인원칙’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야당은 즉각 반(反)통일노선,분단고착화,심지어 ‘매국행위’라며 비난했다.반면 동독은 두달 뒤인 12월 서독에 무력사용·위협 포기,외교관계 수립 등을 요구,정상회담의 계기를 마련했다. 브란트는 동독이 국제법상 승인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어떤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직접 동독총리를 만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 70년 1월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 앞으로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서한을 전달했다.슈토프도 이에 즉각 합의했다.양측은 곧바로 실무접촉에 들어갔고 4차례의 실무접촉과정에서의제가 아닌 회담장소가 최대의 난제로 떠올랐다.서독은 브란트 총리가 서베를린을 거쳐 동베를린으로 가길 원했고 동독은 서독 정상의 베를린 장벽통과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결국 제3의 장소인 동독의 에르푸르트로합의했다. 3월19일 브란트가 탄 기차가 에르푸르트 역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동독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그를 환영했다.숙소인 ‘에르푸르트 호프 호텔’까지 몰려와 환호하는 군중앞에 나서 이들을 진정시키던 브란트의 모습을 지켜보는수행원들 눈엔 눈물이 고였다. 회담장 밖의 분위기와는 달리 회담장안은 냉랭했다.동독은 군비감축, 유엔동시가입,국제법상 동등한 관계수립 등 7개항을 요구했다.서독은 동·서독은서로 외국이 아니며 양측의 선린우호관계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한다등 6개항을 제시했다.양쪽은 각자의 입장만 확인한 뒤 5월21일 서독의 카셀에서 2차회담을 재개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만 발표하고 헤어졌다.두달뒤 카셀 2차회담도 양쪽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1차때처럼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했다.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쪽은 공존의 필요성을 공감했다.실무접촉은 계속 돼 기본조약이 체결된 72년 12월21일까지 70여차례나 열렸다.73년 9월 유엔동시가입,74년 3월 상호대표부개설로 이어졌다.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0년 10월 통일때까지 양독은 9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조금씩 가까워짐으로써 변화를 촉발한다’는 브란트의 접근이 결실을 맺었다. 김균미기자 kmkim@. . *브란트 당시 서독총리. 인류평화·공존 철학속에 동방정책을 싹틔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옛 동서독인을 막론하고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1913년 12월18일 북부 독일의 소도시 뤼베크의 노동자 가정에서 소비조합여점원의 사생아로 태어났다.사회당원인 외할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며 성장한 그는 17세때 독일사회민주당 당원이 돼 반나치 청년운동에 가담했다. 히틀러 집권후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노르웨이로 망명,종전때까지 그곳에서 활동했다. 49년 연방의회 베를린 시의원으로 독일 정계에 입문한 뒤 15년만인 64년 당수로 선출된다.69년 자민당과 제휴,전후 최초의 사민당 정권을 창출하고 총리에 올라 ‘동방정책’을 밀고 나갔다.동서독 정상회담 개최등 공로로 71년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보좌관이 동독 스파이로 밝혀지면서 74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87년 사민당 당수직 사임으로 정계에서 물러난 그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의장직을 6회 연임하면서 국제정의 실현과 인권신장에 앞장섰다.92년 10월8일 운명했다. *슈토프 당시 동독총리. 빌리 브란트의 상대였던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는 1989년 거세게 전개됐던반정부 시위에 밀려 사임할 때까지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 치하의 마지막 총리로 일했다. 1914년 7월9일 베를린 출생인 그는 벽돌공과 기술자,건축설계사 등으로 일했다.그는 동독의 내무·국방장관 등을 비롯해 공산당과 행정부에서 요직을두루 역임했다.70년 1차 정상회담직후 브란트 서독 총리로부터 ‘확고하고경직된 견해를 가진 정치가로 다루기 매우 어려운 회담 상대’로 불리웠다. 89년 10월18일 호네커 실각으로 함께 사임했다.사임하고 이틀 뒤 여행규제가 풀리면서 동독인들의 대탈출극이 벌어졌다.독일이 통일된지 1년만인 91년 60년대 베를린 장벽과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민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된 혐의로 구속됐다.92년 이와 관련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석방됐다. 독일 정부는 99년 4월19일 그의 사망소식을 발표했다.사망 원인은 공표되지 않았다. 김균미기자
  • 北 국제사회 복귀 포용정책이 촉진

    북한의 국제사회 복귀를 향한 외교적 행보에 속도가 붙고 있다.북한이 이렇듯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치는데는 우리 정부의 ‘포용정책’이 큰 배경이 되고 있다.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합의로 북한의 개방·개혁 물살이 더욱 급류를 탈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이 개방의 길로 들어서면서 한반도 주변정세도 급변하고 있다.지금의한반도 냉전해체 작업은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느낌이다.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과 유럽국가 등도 나름대로 국익을 위해 남북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북한은 5월 중 미국,일본,영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각각의 쌍무협의를 갖는다.호주와는 곧 15년 만에 국교정상화를 공식발표한다. 조심스럽게 주변상황을 관망하던 북한이 과감하게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고,해당국들이 전에 없이 호의적으로 북측이 내민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것은북한의 국제사회 복귀에 대한 국제적 분위기 성숙 때문이다.이같은 국제적분위기는 한국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이에 대해 미국,일본,중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민의정부’는 전 정권처럼 남북관계 정상화를 조건으로 내세우며 우방국들의 대북 관계정상화 노력을 방해하지 않았다.“미국 등 우방들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한반도 안정과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포용정책의 주요 전제며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개최결정은 북한의 경제실리외교와 국제사회 복귀노력에 힘을 더하고 있다.이같은 분위기는 미사일·핵 등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앞세우며 벼랑끝 외교를 펼치던 북한을 적극적으로 실리추구를 향한 대화의 장으로 나서게 하고 있다. 북한은 이 과정 속에서 대외적 안보위협을 줄이고 경제적 실익,대외적 위상제고라는 ‘대가’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과 함께 중국,러시아와의 ‘전통적인 관계’,‘전략적 동반자관계’의 회복을 통해 대외 관계의 균형을 찾고 주변 국가들을 경쟁시키려는 모습도 보인다.북한은 앞으로 한반도 냉전해체의 물결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국제사회를 향한 ‘전방위 외교’를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석우기자 swlee@. *北 개방외교 누가 이끄나. 북한 외교의 큰 틀은 김용순(金容淳)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백남순(白南淳)외무상,강석주(姜錫柱)외무성 제1부상에 의해 결정된다. 당이 주도하지만 최근 대외관계가 활발해지면서 외무성의 활동에 무게가 실리는 추세다.철저한 역할분담 속에 백남순 외무상이 공식외교활동의 전면에나서며 세계각국을 누비고 있다. 대일관계와 미수교국과의 막후 접촉은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는 김용순의 몫이다.정치적 중량급인 김비서는 전체적인 전략수립에 관여한다.‘조일우호 친선협회’고문직도 맡으면서 거물급답게 막후에서 일본 정치인들을 움직여 북·일관계개선을 진척시키고 있다.지난해 무라야마 전총리 등 일본정치인들의 방북도 그의 막후작품이다.개인적으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술자리도 함께 하는 최측근이다.한편 대미관계는 강석주(姜錫柱)외무성제1부상이 핵심역할을 한다. 93·94년 ‘핵위기’ 때부터 북·미고위급회담대표를 맡아왔다.다른 문제와 달리 대미관계를 직접 챙기는 김정일에게 주요사항은 직보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91년 9월 유엔총회에서 유엔가입 수락연설도 그가 했다. 실무자급으로는 김계관(金桂寬)부상이 대표적이다.찰스 카트먼 미국무성 한반도평화회담 특사와 소위 k-k라인을 형성하고 있다.대일관계는 정태화 북한외무성 순회대사가 지난 4월 초 평양서 열린 북·일국교정상화회담에 대표로 나서며 대리인역할을 하고 있다.정대사는 엘리트 외교관출신으로 92년에 차관급인 부상을 지내고 순회대사로 근무해왔다.지난해 인도에서 발생한 파키스탄행 선적의 북한제 미사일부품 선적 의혹사건 처리를 위해 인도에 파견되기도 했다. 이석우기자
  • 北, 濠와 이달중 국교정상화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대외개방이 급류를 타고 있다. 5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이달 안에 호주와 15년만에 국교정상화를발표한다.또 이달중 미국,일본,영국과 각각 양자 협의를 벌이는 등 대 서방관계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오는 2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북한 고위급인사의 미국 방문등 현안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또 일본과는 22일부터 도쿄에서 10차 수교회담을,영국과는 15일부터 런던에서 각각 관계정상화를 위한 당국간 접촉을 갖는다. 이와함께 이달 안에 리펑(李鵬)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초청,92년 한·중수교 이후 불편했던 두나라 관계를 전략적 협력관계로 복원할 계획이다. 백남순(白南淳) 외무상도 오는 7월 필리핀과 태국을 잇따라 방문,당국자들과 관계정상화문제를 논의하고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포럼(ARF)회담을 참관하고 그 기구에 가입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웬디 셔먼 미 국무부대사가 오는 8일부터 10일까지 한국을 방문,남북 정상회담 준비상황, 한반도냉전해체 진전상황 등에 대해 미국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방자오(朱邦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오는 2일부터 6일까지 북한을 다녀온뒤 곧바로 7일부터 11일까지 일본과 한국을 방문,외교부 관계자를 만나 현안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과 미·일 등 서방국가들의 관계개선이 한반도 안정과냉전해체 촉진 등 남북관계발전에 도움될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정책에 힘입어 북한의 국제사회로의 복귀 노력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주변의 남북한을 중심으로 한다각적인 외교적 대화채널이 가동되는 등 동북아 다자안보대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석우기자 swlee@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국가안보와 ‘노블리스 오블리제’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전 세계는 냉전종식과 함께 오직 평화만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그러나 그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국지적 분쟁은 오히려 증가했고 지금 이 시각에도 체첸 등 무려 77개 지역이 불타고 있다.더욱이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냉전지대로서 남북대치상황이 언제 해소될지 예측하기 어려우며 냉전 종식으로 통일이 된다 해도 주변 4강의틈바구니 속에서 안보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 안보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에게 절대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다.역사가들은 우리나라가 931회의 외침을 받았다고 말한다.따지고 보면 최근 100년 동안에만도 1894년 청일전쟁을 비롯해 러일,중일,태평양전쟁,6·25전쟁 등 다섯 차례의 참혹한 전쟁을 겪어야 했다.왜 우리 민족은이토록 엄청난 수난을 반복해서 겪어야만 했는가? 그것은 나라를 스스로의힘으로 지키겠다는 자위정신,상무정신(尙武精神)대신 주변 강대국에 의존하려는 사대정신(事大精神)에 젖어 스스로 지킬 힘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강자도 없고 국가이익 앞에 영원한 적도,우방도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결과이다.평화는 결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오로지 스스로 지킬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여기서 간과해서 안될 것은 물리적 힘의 원천은 정신력,곧 ‘국민정신’이라는 것이다.영국의 기사도 정신,미국의 프론티어 정신,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스라엘의시오니즘 등 강한 국민정신을 가진 나라는 영토의 크고 작음을 떠나 외침을막고 강한 나라로 발전하여 왔다.그리고 이들 국민정신의 바탕에는 예외 없이 지도층의 솔선수범,즉 ‘노블리스 오블리제’정신이 깔려있다.지도층의솔선수범 없는 국민정신의 결집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명망 있는 지도층 자제가 입학하는 이튼 칼리지 졸업생 중 무려 2,000여명이 1,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앤드루왕자는 포클랜드전쟁시 위험한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6·25전쟁 중 미국은 지도층 자제 140여명이 참전하여 30여명이 죽거나 부상당하였으며 특히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장군은 두 아들을 그가 지휘하던 6·25전쟁터에서 잃었고,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낙동강전투에 참전하였다.또한중국의 모택동도 아들을 6·25전쟁터에서 잃었는데 ‘내 아들의 시신은 제일 마지막에 찾아 오라’고 지시,결국 포기케 했다고 한다.이렇듯 참전국 지도자들의 숙연한 일화는 있어도 정작 우리 나라 지도층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통계에 의하면 아직도 우리나라 지도층의 병역 이행률은 국민 평균율에 훨씬 못미친다고 한다.‘노블리스’(명예)만 있고 ‘오블리제’(의무)가 없는국가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격동의 21세기를 맞이하면서,우리 나라는 우리의 힘으로 지킨다는 국민정신과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최근 병역을 면제받고도 재검을 신청하여 입대하는가 하면 병역을 필하고도 다시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국민적 본보기가 될 값지고 소중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趙成台 국방장관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2)7·4 남북공동성명

    지난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남과 북 당국이 분단 이후 만들어낸 첫 공식 합의문서였다.공동성명을 통해 천명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3개항은 이후 전개된 남북 대화와 합의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시대적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동서진영의 냉전은 1970년대에접어들며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해빙 분위기는 한반도에도 전해져남·북 당국은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당시 남한의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3선에 성공한 뒤였다.또북한의 김일성(金日成·당시 수상)주석은 김정일(金正日)로의 후계 구도를모색하고 있었다.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남북은 다시 대화를 중단하고 대결의 상태로돌아갔으며, 남북 양측 지도자의 내부 독재가 공고화되었다.의도적이든 아니든,7·4남북공동성명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김일성의김정일 후계 구도 확립에 이용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진 과정/ 1971년 11월20일 판문점에서 대한적십자사와 북한적십자사의 실무대표가 11차례에 걸쳐 비밀접촉을 했다.그 결과 이후락(李厚洛)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간 회담이 합의됐다.이어 72년 5월2일부터 3박4일간 이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주석,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각각 두차례 회담했다. 김영주를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5월29일부터 서울을 방문,박정희 대통령과 한 차례,이후락 부장과 두차례의 회담을 가졌다.그 결과 7월4일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남북조절위원회가 발족됐다. ◆내용/ 7·4남북공동성명은 모두 7개항으로 구성돼 있다.제1항에서는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원칙을,제2항에서는 긴장상태 완화와 신뢰 분위기 조성을,제3항에서는 제반교류 실시를 천명하고 있다.제4장에서는남북적십자회담 성사를 위한 협조,제5장에서는 상설직통전화 설치,제6장은남북조절위원회 구성,운영의 합의를 명시했고,제7장에서는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을 다짐했다. ◆이행/ 7·4남북공동성명은 남북한의 분단사를 통일사로 바꾸는 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됐으나,발표되는 순간부터 성명문안에 대한 해석상의 의견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양측은 통일 3원칙에 관한 해석상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11월30일 각 5인의 대표로 구성되는 남북조절위원회 본회의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이에 따라 세차례에 걸쳐 남북조절위 본회의가 개최됐으나 73년 8월28일 북한이 중단을 일방 선언함으로써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도운기자 dawn@.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당시 주역들 뭘하나.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당시 남북의 주역들은 저마다 굴곡많은 삶의 궤적을 그려가고 있다. 공동성명의 막후 연출자였던 당시 남북의 정상들은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은 지난 79년 김재규 전중정부장의 총탄세례로 서거했다.북한의 김일성(金日成) 주석(합의 당시는 수상)도 지난 94년 심장마비로 근 반세기에 걸친 장기집권에 마침표를 찍었다. 남측 조절위원장으로 스포라이트를 받았던 이후락(李厚洛) 당시 중정부장은일체의 언론접촉도 피한 채 경기 광주에서 도자기를 구우며 은둔생활중이다.73년 ‘DJ(현 김대중대통령) 도쿄 납치극’ 배후조종 혐의로 해임당한 뒤한때 재기하기도 했으나 80년 ‘서울의 봄’ 이후 다시 추락했다. 조절위 북측 공동위원장이었던 김영주(金英柱)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은 한때후계 반열에도 올랐으나, 끝내 친조카인 현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밀렸다.98년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공식 1인자에 등극하면서 2선으로 후퇴했다.최고인민회의 10기 제1차회의에서 신설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이라는명목상의 감투만 쓰고 있다.김영주를 대리해 서울에 왔던 박성철 제2부수상도 명예부위원장이다. 지지부진한 남북적십자회담의 와중에 북한 차석대표 김덕현의 소맷자락을끌어 “따로 조용히 얘기하자”며 당국간 비밀회담을 이끌어냈던 정홍진씨도일선에서 물러났다.현재 송원장학재단이사장으로 육영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또 다른 조절위 남측 대표의 일원이었던 강인덕(康仁德) 당시 중정9국장은현재 일본에 체류중이다.‘국민의 정부’ 초대 통일부장관으로 대북 포용정책의 안정화에 기여했으나,부인이 옷로비사건에 휘말리면서 물러나 일본세이가쿠인(聖學院)대학에서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공동성명 합의과정에 참여했던 북측의 대화 1세대들도 대부분 일선에서 퇴역한 상태다.이 중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류장식은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이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조절위 북측대변인이었던 전금철(全今哲)만이 지난 98년 베이징 남북차관급 비료회담의북측 대표로 건재를 과시했었다. 구본영기자 kby7@. *재조명 받는 '통일 3대원칙'.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앞두고 7·4공동성명에 발표된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 등 남북통일 3대원칙이 재조명받고 있다. 베이징 비공개 접촉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꼬리표를 달았기 때문이다.즉 남과 북이 ‘역사적인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재확인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에 앞서 91년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도 3대 원칙이 언급됐다.그러나 남북이 항상 그 정신에 따라 관계개선에탄력을 붙여온 것은 아니다.3원칙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사사건건 대립한적이 더 많았다. 이는 3원칙 자체가 대단히 포괄적 개념이라는 점에 기인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평화통일을 위한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체제경쟁의 대상이라는 남북관계의 이중성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3원칙 중 ‘자주’에 대해서는 북측은 외세배격 논리로 연결시켜왔다. 즉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말은 북측은 이미 자주를 이뤘으니,이제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하다는 식으로 논리를 비약시켜 왔다. 북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3대 원칙을 달리 해석,회담을 유리하게 이끄는 지렛대로 삼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그러나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그러한 의도조차 타고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영기자
  • 경실련 통일협회, 남·북한 정상에 건의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이사장 韓完相)는 4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정상에게 드리는 건의문’을 채택하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두 정상에게 이메일로 이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경실련 통일협회는 건의문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통일의 초석을 놓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회담을 통해 한반도문제의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건의문은 ▲인도주의적 문제와 정치·경제문제의 분리 ▲상호주의 원칙의 지양 ▲협력적 공생관계의 확립 ▲법률실무위원회 설립후 법률적 제도적 개정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에 대한 지원 ▲군사적 긴장완화 및 군축실행등 냉전구조및 제도의 해체를 위한 실질 실천 노력 등 6가지의 실천을 촉구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金대통령 “불자가 南北화해에 앞장서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4일 석가탄신일(11일)을 앞두고 ‘부처님 오신 날’ 봉축메시지를 발표,“불자 여러분이 앞장서서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이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크게 공헌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또 “불교는 남북 양쪽에 가장 광범위하고 튼튼한 기반을 갖고있다”면서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지역과 계층,세대를 초월해 대화합을 이룩하도록 부처님의 자비와 화해의 정신으로 선도적 역할을 해달라”고 기원했다. 김 대통령은 이와함께 국민화합과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봉축등을 조계사 등 전국 60여개 주요사찰에 헌등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언론개혁을 말한다](6)언론의 안보상업주의 청산해야

    *조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보수언론의 안보상업주의는 꼭 청산되어야 합니다” 통일연구원 조 민(45) 박사는 통일전문가이면서도 언론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조 박사는 “언론이 개혁되지 않고서는 다른 분야의 개혁은 있을 수없다”는 지론을 지니고 있다.그는 특히 냉전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수구언론이 보여온 행태는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사례라고 지적한다. 조 박사는 최근 펴낸 연구보고서 ‘한국사회 냉전문화 극복방안 연구’에서 냉전문화의 극복방안으로 언론개혁을 우선순위로 강조했다.“우리 언론은특정시기마다 반공·냉전의식을 조장하고 확대·재상산해왔습니다.이는 언론의 ‘권언유착’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권언유착의고리를 끊고 언론이 제자리를 찾아야만 통일·안보문제 등 국가적 현안을 제대로 보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 박사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언론이 때마다 되풀이하는 추론보도 및 ‘만들기’보도는 자제되어야한다”고 주문했다.언론의 부정확한 추론보도가 연구자나 교수에게 영향을 미쳐 결국 통일연구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지난 95년 한국기자협회 등이 만들었던 통일관련 보도준칙을 다시 한번 참고해야 할 것”라고 강조했다. 조 박사는 “진정한 신문개혁을 위해서는 제도의 개혁은 물론,정부차원의언론인 양심권제도와 국가지원금제도 도입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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