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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네사 갈란테 새달19일 내한공연

    이네사 갈란테 새달19일 내한공연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그녀보다 더 잘 부를 수가 있을까.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가 새달 19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선다. 세계적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렇게 노래 잘하는 가수가 있다니!”라고 탄성을 질렀다는 바로 그 천상의 목소리.2001년 첫 내한무대를 가진 뒤 세번째로 서울을 찾는 그의 무대는 이번에도 열기가 예사롭지 않을 거란 기대들이다. 기획사측이 “갈란테에 가려 다른 기획공연들이 빛을 못 볼까봐 걱정된다.”며 행복한 고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부른 ‘아베 마리아’가 실린 음반은 성악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5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라트비아 출생인 갈란테는 어쩌면 성악가수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어머니와 테너가수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음악을 공기처럼 마시고 살았다. 예후디 메뉴인, 주빈 메타 같은 거장들이 일찍이 그의 ‘끼’를 발견하고 서방무대 진출을 독려했으나, 냉전상황으로 라트비아가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에야 세계무대에 늦깎이 데뷔할 수 있었다. 1992년 독일 만하임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파미나 공주를 맡으면서 평단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다. 정상에 올라선 결정적 계기는 1995년 제작한 앨범 ‘Debut’가 선풍적 인기를 누리면서부터였다. 연주는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김덕기). 대표곡 ‘아베 마리아’와 오페라의 유명 아리아들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노래 사이사이로 곡에 얽힌 사연들, 자신의 생활 이야기 등을 섞어 다감하고 따뜻한 무대를 만들어줄 예정이다.2만∼8만원.(02)599-5743.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소련 봉쇄정책’ 입안 美 사학자 케넌 사망

    냉전시절 소련의 팽창 정책에 맞서 미국의 ‘봉쇄(Containment) 정책’을 입안한 미국의 외교관 겸 외교사학자 조지 케넌이 17일 프린스턴의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가족이 발표했다.101세. 케넌은 모스크바에서 근무하던 1946년 본국에 보낸 미ㆍ소 대결 양상의 본질을 예견한 전문 ‘장문의 전보’(Long Telegram)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본부에 재직하던 이듬해 잡지 ‘포린 어페어스’에 X란 필명으로 기고한 글에서 봉쇄정책의 골자를 설명하는 한편 수십년 후에는 공산주의가 붕괴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당시 “소련에 대한 미국의 정책 주안점은 러시아의 팽창주의적 경향을 장기적으로, 인내심 있게, 그러나 단호하고도 방심하지 않는 자세로 봉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베를린에 대한 봉쇄와 마셜플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창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개입정책 등으로 이어졌다. 케넌은 한국전쟁 초기 북한 내 연합군이 진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휴전협상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1951년 유엔의 소련 대표들과의 접촉을 통해 휴전협상을 개시됐다. 독일 통일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상급자들과 마찰을 빚은 뒤 1950년 휴직하고 프린스턴대 연구원으로 들어갔다.1952년 모스크바 대사로 임명됐으나 1년만에 ‘기피인물’로 찍힌 뒤 1953년 외교관직을 떠났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시 외교직에 복귀, 유고슬라비아 대사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미국외교 50년 1900∼1950’,‘러시아 전쟁을 떠나다’‘레닌·스탈린 시대의 서방측과 소련‘,‘회고록 1925∼1950’등이 있으며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했다. 그는 1989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으며 1981년엔 아인슈타인 평화상,1981년엔 독일도서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ul.co.kr
  • 조작된 공포/폴 토드·조너선 블로흐 지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보기관들의 부정적 이미지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조작과 공포’다. 이들은 정보를 왜곡하고, 적대국의 경제적 위협이나 테러 같은 ‘표적’을 과장함으로써 공포심을 조장해왔다. 그러나 냉전이 사그러지면서 예산이 축소되고 권한도 크게 약화돼 쇠퇴의 길을 걷는가 하더니 다시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분기점은 9·11테러다.9·11 이후 정보기관들은 그야말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새로 제정된 테러리즘 관련 법안들을 토대로 정보기관들은 시민운동과 환경운동, 반세계화운동까지 감시하기에 이른다. ●시민운동·환경운동까지 감시 ‘조작된 공포’(폴 토드·조너선 블로흐 지음, 이주영 옮김, 창비 펴냄)는 냉전 종식, 그리고 9·11 이후 세계 정보기관들의 역할 모델에 주목하고,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정보활동의 변화양태를 날카롭게 분석한 책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각국 정보기관의 어두운 과거를 고발하면서 공포와 조작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이스라엘 등 전통적으로 강력한 정보기관을 갖고 있던 나라들은 물론, 아직까지 생소할 수도 있는 시리아·파키스탄·미얀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제3세계 국가의 정보기관까지 총망라해 정보기관들의 활동과 조직규모, 예산 등 객관적 사실들과 서로 협력과 경쟁, 반목해온 각국 정보기관들의 비사도 서술했다. 책에 따르면 9·11 이후 미국에선 국토안보부가 신설되고, 연방재난관리국이 확대 개편되었으며, 애국법·반테러법이 제정되었다. 유럽연합에선 ‘반테러 로드맵’이 한층 진전되었고, 이스라엘은 슬그머니 팔레스타인과 테러조직 사이의 연계설을 쟁점화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는 ‘테러와의 전쟁’을 체첸 분리주의자 탄압의 명분으로 삼았다. 결국 9·11은 냉전 종식으로 엄청난 감량을 감당해야 했던 이들 정보기관들에 돌파구를 마련해준 셈이었다. 미국 국가안보기록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한 폴 토드,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활동에 참여했으며 현재 영국 런던 지역의회 의원으로 있는 조너선 블로흐가 공동 집필했다. 저자들은 지금을 ‘감시의 시대’로 명명하면서, 전지구적 차원의 위성감시 시스템인 에셜론(Echelon)에서부터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최신 감시기법들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발달로 감시능력이 더욱 강화된 정보기관의 모습을 살펴본다. ●첨단 정보시스템 무기로 기업과 개인까지 표적 책에 따르면 미 국가안보국(NSA)이 기획·조정하는 전 지구적 감시시스템인 에셜론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주로 국제 전자통신네트워크상의 암호화되지 않는 이메일, 팩스, 전화를 감시·도청하는 데 이용된다. 개인 관련 키워드를 검색어로 해서 수백만개의 메시지를 검색하고, 다양한 분류단계를 거쳐 데이터베이스화한다. 에셜론이 이전의 첩보시스템과 다른 점은 비군사적 표적, 이를 테면 정부나 단체, 기업과 개인이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보를 토대로 미국 언론들은 에어버스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관리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폭로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에어버스사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그 계약은 이후 미국 기업 보잉사와 맥도널더글러스사의 차지가 됐다. 미국 항공기회사 레이시온이 톰슨-CSF 컨소시엄을 제치고 아마존 유역의 감시시스템 구축 사업체로 선정된 것도 역시 NSA의 작품이었다. 각국 정보기관은 국내의 사회운동, 반정부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악행을 마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정치와 경제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아프리카 지역의 끔찍한 학살전쟁 배후에는 아프리카의 광물과 석유자원 등 경제적 이권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꾀한 미국·프랑스 등 서방 강대국의 정보기관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훈련케 한 것도 미국 정보기관이었다. 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에 의한 표적 암살도 고발한다. 아울러 산업과 경제정보가 정보기관의 중요한 활동 영역으로 자리잡으면서 정보기관들이 거대기업들과 손을 잡고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추악한 모습도 폭로한다. 그리고 권력의 사유물이 되어버린 시리아·이라크·파키스탄·미얀마의 정보기관들의 음모 등도 상세히 파헤쳤다. ●정보 오용과 왜곡의 결과는 끔찍한 참극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는 거짓으로 판명된 정보 때문에 큰 전쟁이 개시되는 것을 목격했다.’며 정보기관의 왜곡된 정보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환기시킨다. 당시 문제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느냐였다. 하지만 공식주장은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에서 ‘무기개발 계획이 존재한다’로, 이어 ‘무기개발과 관련된 움직임이 있다’로 후퇴를 거듭했다. 정보기관은 단순한 말바꿈으로 끝날 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수십만명의 목숨이 희생되는 참극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정책결정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본래부터 애매모호한 절차가 오용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日 독도주권 침해] “경제난이 국가주의 부추겨”

    16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독도의 날’ 제정을 위한 조례안 가결을 계기로 일본의 극단적인 우경화 양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본의 대외 환경과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내부 변수가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일본 내 우익세력의 영향력이 점점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가운데 향후 동북아의 평화 질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이 자연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 2001년 미국의 9·11테러 이후 전세계적인 탈냉전 흐름이 군사·안보 중심으로 전환한 가운데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한 일본 입장으로서는 군사적 안보가치가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대외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평화헌법 개정과 유엔 안보리 이사국 진출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일본의 경제난과 맞물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민영 군산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일본 국내 경제가 지난 90년 이후 어려워지면서 일본형 모델과 영미 모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은 이같은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환경으로 인해 일본 내 양심세력과 시민사회 진영마저 ‘국가주의’ 테두리에 포위돼 급격한 세력약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길섶에서] 술래잡기/심재억 문화부 차장

    편은 갈랐지만 열서넛이 뒤섞이다 보니 한동안 피아식별이 어려웠다. 그래서 지푸라기를 머리에 동여보지만 이내 끊기거나 풀리곤 해서 머리 큰 몇 놈 빼고는 네오내오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쁜 숨 몰아 쉬며 실컷 한 놈을 쫓았는데, 힘 다 뺀 뒤에야 그 놈이 말했다.“야, 우리 같은 편이야.”“얌마, 그 말을 왜 이제 해?” 신작로로 초등학교를 다녔던 꼬맹이들, 방과후면 편을 짜 이런 술래잡기를 하곤 했다. 정신없이 뛰고 쫓다 보면 어느 새 집에 이르곤 해 하교 후면 삼삼오오 편짜기 바빴는데, 문제는 이 편, 저 편이 헷갈려 더러는 먼저 물은 뒤 쫓아야 했다.“야, 너 적군 맞지?”“얌마, 적군이 어딨어. 낼 같은 편 할걸.”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최근 “한국은 누가 적인지 분명히 말하라.”고 일갈했다.‘악의 축’을 규정할 만큼 수많은 적에 둘러싸인 미국의 조바심과 경직성을 드러낸 피아인식이 아닐 수 없다. 지상에는 적 없이 사는 나라도 많은데, 그들이 아직도 이런 냉전적 피아관을 갖고 있다면 우리 아이들에게서 배울 것을 권한다. 어제의 잣대로 오늘의 적을 판별하지 말아야 함을.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송두율 칼럼] 탈식민주의의 문화지평

    [송두율 칼럼] 탈식민주의의 문화지평

    올해 우리는 광복과 분단의 60주년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특별히 한·일간에 예민한 사안들이 연달아 제기되고 있다. 독도영유권 문제는 물론, 일본식민지지배의 공과(功過)를 둘러싼 뜨거운 공방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승조 교수의 기고문의 내용은 과거에 대한 분석을 넘어 오늘의 문제와 곧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의 사회적 파장 또한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자생적 발전론’의 대립처럼, 주로 학술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던 논쟁들이 이제는 “친북이 친일보다 나쁘다.”는 식의 직접적 표현을 빌려 오늘의 정치상황 평가에까지 연결되고 있다. 1945년의 광복은 냉전체제 속에 갇혀 일본식민지지배구조의 완전한 해체로 곧장 연결되지 못했다.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는 이러한 구조의 재생산을 직접 뒷받침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문화분야에서는 정치나 경제분야보다 더 늦게 재생산 구조가 복원되었다. 이의 주된 이유는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문화가 지니는 특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일간에 정치나 경제분야보다는 문화분야에서 아직도 상당한 저항과 거부감이 남아있다.‘교과서파동’이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욘사마 열풍’과 같은 현상도 나타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은 그간 경제대국-기술대국-정치대국-군사대국-문화대국이라는 국가경영철학의 변화를 보여왔다. 문화대국의 건설이 장기적 과제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강대국보다는 차라리 높은 문화를 지닌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하고 싶다는 김구선생의 바람은 이러한 일본의 국가경영철학에 대비될 수 있는, 그래서 분명히 값진 것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분단체제 속에서 실현될 수 없었다. 그동안 한·일간의 비대칭적 문화관계는 열등감과 우월감이 서로 교차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한·일간에만 특별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의 이론가 프란츠 파농(F Fanon)은 제3세계가 식민지시대와 단절하려고 하지만 이를 위해 동원하는 수단 역시 식민지시대의 유산이라는 자기모순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극일(克日)하기 위해서 먼저 지일(知日) 또는 친일(親日)해야 한다는 논리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문화가 본래적이고 순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식민주의의 문화와 뒤섞인 하나의 ‘잡종’이라는 사실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고 파농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피부색깔에다가, 과거에는 오히려 일본에 높은 문화를 전해주기까지 했다는 민족적 자부심 때문에 우리는 그와 같은 논리를 선뜻 받아 들일 수 없게 되어 있다. 결코 쉽게 부정될 수 없는 민족정체성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담론을 우회(迂廻)하면서 잘못 설정된 비교수준에 근거한 ‘친북이 친일보다 나쁘다.’거나 ‘친일이 친북보다는 낫다.’는 주장은 먼저 식민주의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또 이같은 주장은 식민주의의 자기반성의 근본인 ‘기억의 문화’마저도 철저하게 희화(戱畵)하고 잊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잘못 설정된 그러한 비교수준은 지금까지 식민주의자들에 의하여 재단된 ‘문명-야만’, 또는 ‘좌익-우익’이라는 경계를 넘어 ‘창조적 제3’을 지향하고 있는 탈식민주의의 진지한 노력과 귀중한 성과도 아예 없었던 것처럼 여기는 무지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탈식민주의적 문화공동체건설의 기본정신은 우선 여러 문화적 주체들이 자기 색깔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데에 있다.‘친일’과 ‘친북’이라는 잘못 설정된 양자택일의 막힌 사고체제로서는 남북이 탈식민주의의 노력 안에서 만날 수 없다. 또 이러한 만남을 기반으로 한 동북아의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여는 작업도 불가능하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월드 이슈] 태풍의 눈-中 반국가분열법

    중국의 타이완 독립에 대한 무력 저지를 정당화한 ‘반국가분열법’ 제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는 14일 제 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 폐막일에 통과가 확실시된다. 중국 지도부는 반국가분열법 제정을 통해 타이완 독립에 대해선 무력 동원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관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와 우려를 표시하며 법 제정의 재고를 촉구했다. 전후 60년을 맞아 새로운 냉전의 기운이 커가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반국가분열법은 새로운 ‘뇌관’으로 등장했다. ■ 동아시아에 미칠 파장 중국의 반국가분열법은 채택도 되기 전부터 주변국가들의 반발과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타이완에 대한 무력 공격의 법적 기반을 제공하는 근거법이란 점에서 최악의 경우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군이 타이완을 공격할 경우 미국, 일본의 개입 가능성도 있어 국제전으로 확대될 위험도 있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 호주도 병참지원, 기지사용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쟁에 끌려들어갈 수도 있다. 8일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경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류 대변인은 “호주가 타이완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 내용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제전’은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관련국가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만큼 개연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유사시 주한미군을 동북아지역에 투입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도 이같은 우려를 반영한다. 미국과 일본은 전략적으로나 명분상 중국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타이완의 존속을 원한다. 타이완마저 중국 손에 들어갈 경우 아·태지역의 세력균형의 추가 중국쪽으로 기울 것으로 우려한다. 미국은 중국과 수교 직후인 지난 1979년 4월 타이완의 안보가 위협받을 경우 자위수단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타이완 관계법을 제정, 타이완에 무기판매 등 사실상의 군사지원을 유지해오고 있다. 미·일 두 나라가 전쟁에 무력 개입을 않는다고 해도 경제제재 등 중국에 대한 강도높은 응징책을 채택할 가능성도 높다. 또 ‘세계의 공장’, 중국경제의 순항에 차질이 생기고 기우뚱댈 경우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파장은 불가피하다.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엔 경제적 태풍이 되어 밀어닥칠 수도 있다. 당사자 타이완의 반응은 격렬하다.8일 중국 전인대의 반국가분열법 심의가 시작되자 중국을 맹비난하며 강경대응책을 천명했다. 중국 의도와는 달리 독립의지를 꺾기는커녕 오히려 독립 열망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헌법조항에서 중국 대륙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는 내용을 삭제하자는 의견에서부터 반분열법에 대항하는 ‘반병탄법’ 제정 의견까지 다양하다. 타이완 정부는 화물전세기 운항 계획 연기 등 양안 개방정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류즈젠(劉志堅) 타이완 국방부 대변인도 “중국의 비평화적인 수단이나 경솔한 조치에는 적절한 대응조치로 맞설 것”이라고 결연한 대응 의지를 표시했다. 타이완군은 중국의 공격이 시작될 경우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를 공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당장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이 법이 미·중 및 중·일관계 악화 등 동북아지역의 긴장을 부추기고 중국 견제를 주장하는 중국위협론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요동치는 타이완 해협의 문제가 동북아평화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법안마련 경과와 中의 속셈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일 인민대회당에서 ‘타이완에 대한 4개항의 지침’을 제시했다. 이날 발표된 ▲‘하나의 중국’ 원칙 견지 ▲평화통일 노력 ▲독립·분열 활동 반대 등은 ‘반국가분열법안’의 예고탄이었다. 4일 후인 8일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에서 처음 공개된 이 법안은 타이완이 실질적으로 독립을 시도할 경우 즉각 전쟁에 돌입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담고 있다. 수년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시나리오로 논의돼 오다가 지난해 5월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 취임 이후 법제화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완 독립 움직임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중국 지도부가 무력 저지라는 ‘마지노선’을 택한 것이다. ‘전쟁불사’의 배수진을 통해 천수이볜 총통의 개헌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중·장기적으로 민진당 등 분리주의 세력의 고립과 친중국 세력으로의 정권교체를 겨냥했다. 초안은 입법 취지, 타이완 문제의 성격, 평화통일, 비평화적 방식 동원 등 4개 부분으로 구성됐다.▲타이완 독립세력에 의한 분열행위 ▲타이완 분열을 가져오는 중대사건 발생 ▲평화통일 조건의 완전한 소멸 시 국가주권과 영토 보전을 위해 비평화적 방식과 필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동안 중국이 제시해온 ‘평화통일, 일국양제’의 기본 방침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평화통일 8개항 원칙’이 망라돼 있어 향후 양안관계의 최종 나침반이 될 전망이다. 중국 언론들도 법안의 당위성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인 선전을 시작했다.CCTV 등 방송들도 긴급 대담을 편성, 내부 공감대 형성에 노력하고 있다. 중국 군부의 지지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인민해방군 전인대 대표들은 “타이완 독립 기도를 저지하고 외국의 중국내정 간섭을 방지하기 위한 방어용”이라고 주장했다. 총후근(군수)부 부부장 왕타이펑(王大風) 중장은 “타이완 분리주의자들의 독립기도와 외국세력의 간섭 때문에 군은 강군을 건설하고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며 반분열법 지지를 분명히했다.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가의 반대 목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 정법대학 법률연구센터 샤자쥔(夏家駿) 소장은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은 국제적 관례며 미국과 영국 등 모든 국가들도 분열을 반대하는 관련 법률이 있다.”고 일축했다. 법안에 ‘타이완 문제는 중국 내정으로 외국세력의 간섭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법안 통과가 중국 지도부의 주장처럼 ‘국가의 분열을 제지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인지 동아시아 냉전의 새로운 신호탄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oilman@seoul.co.kr ■ 美·日의 입장과 전략 |도쿄 이춘규특파원|미국과 일본은 ‘반국가분열법안’이 성립되어 타이완해협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최선은 평화적 해결이다. 그러면서도 가상 적인 중국에 대한 포위망 구축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월 두나라 안전보장협의회에서 “타이완해협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아·태지역 안보의 공동목표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타이완 문제와 관련, 미·일의 정책은 ‘현상유지’다. 미국은 정부 고위관리나 의원 등이 반국가분열법안 처리 움직임을 “양안 관계의 긴장 완화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스콧 매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 정부에 법안 통과의 ‘재고’를 촉구했을 정도다. 그러면서 타이완에 대해서도 중국을 더 이상 자극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독립을 겨냥한 주민투표나 신헌법 마련 움직임에도 냉정하게 반응하고 있다.‘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타이완 독립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중국에 의한 타이완 무력통일에 반대하고, 타이완에도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 ‘현상유지 정책’을 밝히고 있다. 이라크 부흥및 중동평화, 유럽과의 관계개선, 북한과 이란 핵문제 등 막중한 외교과제가 산적한 때 중·타이완 긴장은 피하겠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1년 4월엔 “타이완을 돕기 위해 필요한 어떤 일도 할 것”이라면서, 타이완해협에서의 군사개입도 “확실하게 하나의 선택수단”이라고 말해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라고 불렀던 클린턴 전 대통령과 대비되는 친타이완 정책을 취했다. 부시 2기에 들어서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취임 직전 의회 증언에서 “중국은 상당히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등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규정했던 부시정권의 본질이 다시 표면화되는 분위기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군비증강 정책을 우려하면서 ‘중국위협론’을 부각시키겠다는 생각이다. 호소다 관방장관은 반분열법안에 대해 “양안관계에 영향이 있다고 염려는 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외무성 간부들도 “타이완해협의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긴장하고 있다. 일본은 타이완 독립 저지를 명분으로 한 중국의 무력행사를 법률적으로 용인하는 반분열법이 성립되면 “동아시아의 안정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는 국제여론전을 펴고 있다. 즉, 타이완해협의 긴장 고조는 한반도 문제와 함께 일본과 미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최대의 불안요인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taein@seoul.co.kr
  • [열린세상] 식민지근대화론의 커밍아웃/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본 우익성향의 잡지에 “일제의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논지의 글을 기고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대부분의 네티즌, 언론, 시민단체가 그의 주장을 맹공하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그의 ‘식민지 미화론’은 소위 일본발 ‘망언’보다 훨씬 수위가 높고 표현과 논리도 거칠다. 각계의 대응도 거칠고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논란에 끼는 것은 유쾌하지 않지만, 파문이 일어난 뒤 오히려 “공론화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반응에서 보아 사회와 학계에 끼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돼 한마디 거들기로 한다. 식민지배 문제에 초점을 맞춘 여론의 질타와는 달리 한 교수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의 의미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적 발판을 붕괴시키고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을 무력화해 좌파세력의 장기집권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정치학자다운 판단이지만 동시에 그가 어떠한 정치적 입장에 서 있는지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구집권을 꾀한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론’으로 분식(粉飾)한 그에게, 노무현 정권의 탄생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었을 것이다. 극단적 수구냉전 사상에 젖어 있는 그는 노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을 좌파적·친북적인 것으로 보고, 일련의 민주개혁 입법을 좌파세력의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공격한다. 이처럼 그의 주장은 노무현 정권과 정책에 대한 증오감에서 기인한다. 노정권을 공격하고 박정희 독재권력을 옹호하는 연장선상에서, 일제 식민지배에 의한 근대화 찬양, 러시아가 아닌 일본에 의한 병합의 불가피성을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전도된 역사의식은 일본 극우 인사들에게서 자주 나오고,‘수탈을 위한 개발론’이라는 학술적 주장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한국사회의 이른바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이 일제치하에서 항일 독립운동보다도 크거나 작게 일본에 협력한 자들”이라는 점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친일행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옹호, 자랑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그의 경험적 인식은 아니겠지만 그가 옹호하는 집단을 대변한 효과는 충분하다. 민족을 억압하고 일본에 협력한 자들이 대한민국에서도 버젓이 기득권층으로서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면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닌가. 기득권층의 경제력 독점에 의해 심각해진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독점했던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야 최소한 박정희 개발독재의 경제적 효과만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역사와 사회를 보는 관점이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관점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옳은지 그른지는 개인의 주체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 교수의 역사관과 세계관은 인권과 평화를 추구하는 관점은 분명 아니다. 반공과 반북만이 모든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오늘의 상황을 자신이 자주 언급하는 국제정세의 측면에서 보지 않고 오직 냉전시대의 맹목적 반공주의에 매달리고 있다. 반공을 위해서는 민족의 희생도 감수한다. 나는 이번 파문을 보면서 그가 객관성·학문성을 들먹이면서도 주장 전체가 들뜬 적대적 감정에 충만해 있는 점이나, 그의 주장이 소위 망언의 종합판 같은 성격을 지닌 점보다도, 한국의 명망 있는 전문지식인이 친일행위 옹호의 금기를 과감하게 깼다는 점에 걱정이 앞선다. 사실 최근 학계에서는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이 신학설인 양 주목받아 왔다. 식민지 경험 내지 파시즘을 근대화의 길로 인정하는 근대화론의 해묵은 이론을 가지고 일제 식민지의 경제적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렇지만 식민지 민중에 대한 억압과 수탈이 없었다고 하지는 않았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식민지 미화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극구 발뺌해 왔다. 그러나 이번 한 교수의 식민지 미화론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커밍아웃’이 어떠한 모습일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술적 형식을 띤 보다 충격적인 식민지 미화론의 출현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8) 계룡산과 원불교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8) 계룡산과 원불교

    ●신종교의 개벽사상엔 정도령이 숨쉰다 이십일 쯤 전 나는 뜻밖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정감록 산책을 빠짐없이 읽고 있다는 원불교 교무 김정원(가명 53세)씨의 글이었다. 그 뒤 우리는 수십 차례 전자우편을 주고받았는데 그러는 사이 나는 김 교무가 계룡산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오늘은 김 교무와 주고받은 글을 대화체로 편집해 원불교와 계룡산의 관계를 정리해볼까 한다.‘교무’란 물론 원불교의 성직자다. 전자우편에서 나는 김 교무에게 이렇게 물었다.“원불교는 동학 및 증산교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신종교입니다. 그런데 제가 원불교의 경전 ‘대종경’을 읽어본 바로는 다른 신종교들에 비해 신비적, 주술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원불교의 그런 특성은 계룡산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나타나겠지요?” 김 교무의 답은 이랬다.“먼저 우리 원불교에 대해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은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 동학교조) 선생과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 증산교조) 선생과 한 가지로 구한말 일제하라는 그야말로 한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대에 민중을 이끄신 분입니다. 이 분들이 세운 민족종교는 개벽사상(開闢思想)을 공유합니다. 개벽의 주체는 한국이요, 장차 세계의 도덕적·문명적, 그리고 정치적 중심지가 될 나라도 한국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교대하는 시기입니다만 곧 묵은 시대 지나가고 새 세상이 돌아옵니다.‘정감록’에서 말한 정도령 시대가 옵니다. 우리 원불교의 소태산 대종사는 새 시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바야흐로 동방에 밝은 해가 솟으려 하는 때이니, 서양이 먼저 문명함은 동방에 해가 오를 때에 그 광명이 서쪽 하늘에 먼저 비침과 같은 것이며, 태양이 중천에 이르면 그 광명이 시방 세계에 고루 비치게 되나니 그 때야말로 큰 도덕 세계요 참 문명 세계니라.” 우리가 좀더 수련해야 될 이유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얼핏 보면 서양이 우리보다 나아 뵈지만 결국 동서양은 한가지입니다. 미국에 대해 기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백:교무님이 말씀하신 대로 개벽사상이란 것은 원불교 고유의 사상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예부터 전해온 미륵신앙 즉, 미륵불이 세상에 와 용화회상(龍華會上)을 연다는 그 신앙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미륵신앙은 ‘정감록’의 등장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도 같습니다. 정감록에선 정도령이 계룡산 아래 새 세상을 펼친다고 했는데, 정도령이 바로 미륵 아닌가요? 많은 신종교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미륵불 또는 정도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륵과 정도령은 구별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김:그건 옳은 판단이라고 봐요. 증산만 해도 후천개벽을 선언한 분인데 그 제자들은 증산을 미륵불로 보거든요. 그러나 우리 원불교의 입장은 다릅니다. 미륵불과 용화회상에 대해 소태산은 전혀 다르게 설명합니다.“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 용화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이니, 곧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의 대의가 널리 행하여지는 것이다.” 미륵불이란 특정한 인물이 아닙니다. 진리가 크게 밝혀져 곳곳에 부처가 가득 찬 세상이 용화세상입니다. 원불교의 2대 교조 정산종사는 ‘근실(勤實)한 세상’이 바로 용화세상이라고 했습니다. 백:착실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바로 용화회상이라고요? 그렇담 원불교에선 정감록에 나오는 진인왕을 무어라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원불교에선 정감록 자체를 엉터리라며 근원적으로 부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불교는 신비적·초월적인 존재를 모두 부정하는 것 같으니까요. 김:정감록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원불교의 해석은 독특합니다. 소태산은 정도령을 鄭씨 성을 가진 특정인물이 아니라 ‘바른 지도자’라고 보았어요. 정도령과 함께 전개될 이상세계란 것도 새 왕조는 아니고 ‘밝은 세상’이라고 했어요. 정감록의 예언은 장차 참되고 바른 사람들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움직이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백:교무님 말씀을 듣고 자료를 좀더 찾아봤습니다. 정산종사는 계룡산에 대해 아주 특이한 주장을 했더군요.“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정산이 말하는 ‘바른 법’은 무엇일까요? 종교를 가리킨 것 같지요. 정산의 주장대로라면 민중이 염원한 계룡산 정진인은 바른 종교의 등장이고, 바른 종교란 원불교란 말씀입니까? ●‘불종불박(佛宗佛朴)’의 예언 백:교무님이 답을 안 하시는군요. 전 사실 이렇게 짐작했습니다. 원불교에선 미신이나 이적 같은 것을 조금도 안 믿는 것 같으니까, 계룡산 같은 것은 원불교의 입장에서 무의미할 것이라고요. 원불교 교리에 따르면, 착실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밝은 세상이 바로 미륵의 용화회상, 개벽된 세상 아닙니까? 그렇담 계룡산이든 지리산이든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생각되는 거죠. 김:백 소장님은 이런 얘기 혹 들어보셨나요? 1936년 4월21일 소태산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계룡산을 찾으셨는데 그 때 각석(刻石) 하나가 화제가 됐습니다. 신도안 대궐 터에 있던 이상한 바위인데 기이하게도 ‘불종불박(佛宗佛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바위는 이태조가 신도안에 대궐 터를 닦으면서 운반해 놓은 것이라 하고, 거기 새겨진 글씨는 무학대사의 필적이란 전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글귀를 이렇게 해석합니다.“장차 불법이 주도하는 세상이 되는데, 그 때 주세불(主世佛)은 박씨”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신도안은 정치적 의미의 새 도읍이 아니라, 새 불국토의 중심이 될 곳입니다. 이런 이유로 원불교에선 계룡산 신도안을 특별하게 여깁니다. 백:소태산은 자신을 그 전설의 주인공으로 보았던 게 아닐까요? 그가 신도안에 수도 도량을 지으라고 명령했다면 그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네요. 김:소태산의 속성(俗姓)이 박씨여서 저희들은 그 바위를 신비롭게 여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계룡산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선배 교무는 이렇게 말했어요.“지구의 축이라는 계룡산, 일찍이 무학대사가 이곳에 도(道, 종교)의 도시(都市)가 열릴 것이라 예언했던 세계의 수도 계룡산, 그래서 그런지 지명조차 갑사(甲寺), 신원사(新元寺), 상도리(上道里)가 있는 계룡산. 그 곳에 원시반본(原始反本)하여 상원갑(上元甲)의 시대가 예고된 곳이 아닌가.” 계룡산은 세계의 수도, 지구의 축이 될 것입니다.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새 세상이 펼쳐질 곳, 세계종교의 중심으로 예정된 성지가 계룡산입니다. ●“어서어서 신도안으로 들어가라” 백:조사를 해봤더니 1959년 10월 정산종사의 주도로 당시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 64번지 신도안 대궐터의 불종불박 바위 뒤에 있던 초가 1동을 원불교 측이 매입했더군요. 거기서 2㎞ 떨어져 있던 원불교 남선교당도 아마 그 곳으로 옮겨졌지요. 김:그건 그랬어요. 정산종사가 신도안 ‘불종불박’ 땅을 매입하라고 하셔서 그리 된 것입니다. 사실 원불교의 어른들은 모두 신도안에 다녀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산종사는 직접 다녀오신 일이 없었지만 신도안의 역사를 환히 꿰뚫고 계셨습니다.1961년 10월 정산종사가 열반에 앞서 3대교조가 될 대산종사에게 “지체 말고 어서 어서 신도안에 들어가 터를 잡아라.” 하셔 대산종사는 신도안에 정양을 하며 삼동원의 터를 닦았습니다. 백:제자들에겐 신도안으로 들어가라, 명령했지만 정산종사는 신도안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는 교무님 말씀이 이상하게 들립니다. 정산은 신도안을 그저 하나의 상징으로만 생각했을 뿐 실지로는 마음에 두지 않았던 것일까요? 김:전혀 잘못된 추측입니다. 정산종사는 신도안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어요. 어느 땐가 풍수에 밝은 제자를 보내 신도안의 지세를 살펴보고 오라고도 했습니다. 신도안을 한 바퀴 돌며 살펴본 제자가 돌아와 보고했습니다.“제가 계룡산 상봉에 올라가 내려다 보니 신도안은 천하제일의 귀(貴)한 터였습니다. 정상에 올라 신도안을 굽어 보니 그 산세가 만조백관이 조공을 바치는 형국이었습니다. 다만 너무도 아쉽게 시루봉 하나가 휙 돌아서 있어 어떤 사람들은 역적봉이라 부릅니다. 시루봉을 싫어봉이라고도 합니다. 자세히 따져 보면 신도안은 농사도 잘 안 되고, 천하에 빈(貧) 터입니다.” 이 말을 정산은 몹시 못마땅해 했다고 합니다. 정산은 계룡산이 명산 중의 명산임을 굳게 믿으셨어요. 그래서 3대 교조 대산종사는 계룡산을 가리켜 정산의 높은 덕을 상징하는 산으로 보았습니다. 사실 정산은 구도 수행하던 시절 가야산에서 ‘격암유록’의 갑을가를 얻으셨다 해요. 그 가운데 “상도(上道)에 가야 큰 스승을 만난다.”는 구절이 있는데 그 상도란 지명이 계룡산에 있어요. 상도는 지명이자 진리의 시작이며 진리 그 자체가 아니겠습니까. 대산은 그런 내력을 다 알아 계룡산과 정산종사를 연계시킨 겁니다. 백:저도 글에서 읽었습니다만 대산의 계룡산 사랑도 대단했더군요.“싫어봉이니 역적봉이니 그런 소리 당최 하지 마라. 성인을 맞이하려고 돌아선 형국이 아니냐. 영성봉(迎聖峯)이라 하거라.”라고 했다고요? 김:1962년 7월 대산종사는 계룡산 상봉을 오르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억조창생개복처(億兆蒼生開福處) 천불만성발아지(千佛萬聖發芽地)” 즉, 계룡산은 억조창생의 복을 여는 땅이니 천명의 부처, 만명의 성인이 나올 곳이란 뜻입니다. 원불교에선 큰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신도안 경영에 힘쓴 결과 1970년대 원불교의 신도안 삼동수양원은 5만 8000평 정도로 규모가 확대됐습니다. ●불교부흥을 예언한 정감록 백:이쯤에서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소태산 대종사 이래 원불교의 지도자들은 계룡산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이유는 계룡산이 장차 불교 부흥의 성지가 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고요. 김:맞습니다. 불교부흥은 ‘정감록’ 예언의 핵심입니다. 정산종사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정감록에 이런 말이 있다. 왕씨는 나를 벗 삼고(王氏我友), 이씨는 나를 노예 삼고(李氏奴我), 정씨는 나를 스승 삼는다(鄭氏師我) 하였는데 이는 불교를 두고 한 말이다.” 아시다시피 고려는 친불, 조선은 억불이었는데 다가올 세상은 숭불(崇佛)이란 해석이 아니겠습니까? 정산종사는 정감록이 예언한 미래 세상을 불교 세상으로 보신 겁니다. 또 이런 말씀도 남기셨어요.“도교가 하늘이라면 불교는 땅이며 유교는 사람이다. 지금은 땅에서 올라오는 세상이다. 불교 세상이다.” 앞으론 불교가 세상 도덕의 중심입니다. 백:원불교에선 신도안에서 대규모 선교사업을 펼쳤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야학을 운영해 생활 개선, 문맹 퇴치, 미신 타파 운동을 했고, 그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응도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보기에 따라선 마치 원불교가 신도안을 접수하려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접수라뇨? 나쁜 뜻으로 볼 일이 아닙니다. 원불교는 신도안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새 운수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정감록 신자들을 깨우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미신이고, 그런 미신으론 밝은 세상을 절대 일으키지 못합니다. 생활이 우선 근실해야지요. 신도안 주민 가운데 무려 850명이 처음 7년 동안 원불교의 야학에서 올바른 가치를 배웠습니다. ●“계룡대 옮기면 우린 다시 들어간다” 백:그러나 원불교도 결국 신도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1983년 7월27일 제5공화국 정부는 신도안의 전주민에게 이 지역에서 철거하라는 통고를 했지요. 이른바 ‘6·20사업’이었습니다. 신도안 일대에 군사기지 ‘계룡대’가 들어서기로 확정됐습니다. 그렇다면 신도안이 세계종교의 중심이 될 거란 정감록의 해석은 완전히 빗나간 것 아니겠습니까? 김:매사를 그렇게 성급하게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1959년 정산종사가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앞으로 30년 후에는 신도안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과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89년,‘6·20사업’으로 신도안 주민들은 모두 철수했고 육·해·공군 참모본부가 들어섰습니다. 실제로 엄청 변한 거지요. 백:요컨대 원불교가 신도안에 건설한 삼동원의 꿈은 백일몽이 된 거죠. 김:성인의 말씀을 범부의 안목으로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계룡산 신도안에 원불교도들의 염원이 실현됩니다. 천하를 뒤흔드는 권력의 위세도, 지금 여기 살아 숨쉬는 육신도 수명에 한계가 있으나 소중한 꿈은 한계를 벗어납니다.5공 정부의 무모한 계획으로 삼동원을 포기할 당시 원불교는 조건부로 매매계약에 서명했습니다. 언젠가 군사시설이 철거될 때 최우선 순위로 원불교 측에 반환해 달라고 명시했습니다. 백:신도안 땅은 이를테면 특정한 공간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거기 너무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미신이 아닌가요? 김:서산에 해가 지면 동산에 달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미륵불의 용화 세상에 대한 염원을 포기하지 않는 한 신도안의 꿈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제 통일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냉전시대의 음해와 대립은 반드시 물러갑니다. 저 하늘에 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부처님의 원만한 정법이 이 세상을 평화로 이끌 것이고, 계룡대도 물러날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백:계룡산 신도안이 정법을 상징한다, 정말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한때는 그저 새 왕조의 도읍터로 인식됐고, 그러다가 대한독립의 상징, 나아가 세계 중심국가를 향한 염원, 후천개벽의 근원지로 풀이되던 신도안. 현실적으론 중요 군사시설이 위치한 곳인데 이곳을 원불교에서는 용화세계의 구심점으로 보는군요. 원불교에 이르러 정감록에 관한 해석은 그야말로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고 여겨집니다. 참, 요즘 계룡대를 이전하는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는군요. 부디 성불하십시오. (푸른역사연구소장)
  • [토요영화]

    [토요영화]

    ●본 아이덴티티(MBC 오후 11시40분) 맷 데이먼의 첫 액션영화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 이 작품에 이어 최근 속편 ‘본 슈프리머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탈리아 어부들에 의해 바다 위에서 구조된 한 남자. 눈을 떠 보니 배 안이었고, 그에게 남은 기억이라곤 없다. 엉덩이 속에는 비밀계좌가 숨겨져 있고, 은행으로 찾아가 보니 이름이 다 다르지만, 자신의 사진이 붙은 여권이 수십장이나 보관돼 있다. 게다가 누군가가 뒤를 쫓는다. 관객은 곧 주인공 제이슨 본이 미국 비밀조직의 스파이임을 알게 되지만, 극중 주인공은 계속 자신의 존재를 모른 채 무작정 쫓긴다. 하지만 그는 위기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비상한 능력을 발휘한다. 여러가지 외국어 구사는 기본이고, 총과 무술솜씨는 홍콩영화도 저리 가라 할 정도다. 기억을 잃은 스파이가 서서히 기억을 되찾으며 적에 맞선다는 내용은 ‘롱키스 굿나잇’‘성룡의 CIA’에서 흔히 보아온 줄거리. 하지만 영화는 적과의 대결보다는 정체성 찾기에 더 많은 비중을 뒀다. 적과 동지이라는 이분법적 설정이 없다는 점에서도 보통의 스파이 영화와 차별점을 찍는다. 원작소설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냉전이 무너진 지금 영화는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와 이에 맞서는 한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파리의 골목을 누비는 추격신, 프라하의 설경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본을 우연히 만나 돕다가 사랑에 빠지는 마리역은 ‘롤라 런’의 프랑카 포텐테가 맡았다.‘고’의 더그 라이먼이 메가폰을 잡은 2002년작.118분. ●돌스(EBS 오후 11시) 마쓰모토는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사장 딸과 정략결혼을 하려 한다. 이 바람에 마쓰모토와 오랜 연인인 사와코가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이 이상해지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마쓰모토는 결혼식장을 박차고 나온다. 마쓰모토는 실성한 사와코와 자신의 몸을 끈으로 연결한 뒤 길을 떠난다. 둘의 정처없는 여행길에는 그들과 처지가 비슷한 커플들이 스쳐 지나간다. 젊은 시절, 성공을 위해 사랑을 버린 야쿠자 보스는 40년이 지난 뒤 약속을 지키고, 교통사고로 재기 불능 상태에 놓인 아이들 스타 하루나는 팬으로서 자신을 연모해 스스로 장님이 된 남자 누쿠이를 받아들인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나의 첫 번째 멜로영화’라고 불렀던 작품.2002년작.113분.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열린세상] 北·中동맹 강화에 대비해야/정종욱 아주대 교수·前 주중대사

    평양을 방문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은 조건만 충족되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한 말을 놓고 해석이 혼란스럽다. 북한이 곧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는 낙관적 해석이 있는가 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비관적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은 어쩌면 현재 북한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를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간과하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된다. 필자는 금년에 들어와서 북한의 대미전략, 특히 체제보장의 기본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국제적 고립이 모두 자신을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부시의 재선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전략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금년 1월 부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폭정의 전초기지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북한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났던 것 같다. 부시가 선언한 폭정과의 전쟁은 북한이 추구해온 체제보장이 단순히 미국의 적대 정책 포기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가 보다 민주적인 체제로 전환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북한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 인사가 미국의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한의 체제전복이 아닌 체제전환이라고 했지만 북한에는 체제전복보다 체제전환이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이다. 작년 중순부터 6자회담의 재개를 미룬 채 대선 이후의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지켜보던 북한이 부시가 북한의 체제전환을 요구하자 이제 미국으로부터 어떤 보장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지금의 북한에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권력승계가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후계자 선정을 더 이상 미루기는 어렵다. 김정일의 경우라면 벌써 2년 전에 후계자가 옹립되었어야 한다. 감히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정일의 아들들은 20대 초반이다. 이들 중 누구를 내정해도 지금부터 권력기반을 다지고 최고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가까운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김정일의 경우는 32살 때 후계자가 되어 52살 때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20년 동안 기반을 다진 셈이다. 그동안 누가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 줄 수 있을지가 바로 김정일의 고민이다. 북한의 체제보장을 해줄 수 있는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 두 나라의 체제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은 적어도 체제문제를 거론하지는 않는다. 타국에 대한 내정불간섭은 중국의 오랜 외교원칙이다. 중국 자신이 미국의 인권정책으로 골치를 앓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은 동병상련의 처지라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은 북한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우방이다. 식량 등 생활필수품이 거의 중국에서 들어오고 있고 원유와 특수 물품 역시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교역량만 해도 작년의 경우 약 14억달러에 달했다. 전략적으로는 중국 의존도가 훨씬 더 높다. 그래서 중국과 동맹관계를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왕자루이 부장을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만나주고 중국의 입장을 배려하는 말을 한 것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금년 상반기 후진타오 주석의 북한 방문을 주목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금년 가을 APEC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는 후진타오 주석이 한국방문에 앞서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방문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양국 관계를 새로운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적어도 북한 측은 그렇게 원할 것이다. 또한 북한으로서는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까지도 자신의 동맹권에 포함시켜 한반도 북쪽에 새로운 삼각동맹체제를 만들어 그 속에서 자신의 체제에 대한 장기적 보장을 얻으려 할 것이다. 냉전으로의 회귀는 아니라 해도 이것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갖는 함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것이 하나의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종욱 아주대 교수·前 주중대사
  • 한국영토 불인정 ‘과시용’

    한국영토 불인정 ‘과시용’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왜 한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타이완 등 주변국 모두와 공세적 영토분쟁을 벌이는가. 일본 정부는 지난해 2005년도 예산안의 중점 시책을 ‘국민을 지키고, 주장하는 일본외교’라고 국익외교 강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최근 일본의 움직임은 이것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침략전쟁의 책임문제를 의식해 주변국과 영유권 갈등을 자제했던 지금까지의 입장에서 선회,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고, 패전 60주년도 된 만큼 패전국의 멍에를 떨쳐내고 대국의 행보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어업권·해양지하자원 등을 노렸음직도 하다. ●한국 점유권 시효 불인정 속셈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국제법에 눈을 뜨면서 주변 섬들을 일본 영토라고 선언, 오늘의 영토분쟁 씨앗을 잉태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독도 영유권 주장도 연례행사다. 일본측은 회계연도가 끝나는 매년 3월 말 정기적으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를 왜 한국이 불법점령했느냐.”며 우리정부에 공한을 보내, 환기시켰다. 이번에 시마네현이 나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국제법정 제소에 대비한 자료나 명분 축적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한국이 독도를 장기간 점유, 독도가 한국영토로 완전히 굳어지는 걸 막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한국의 점유권 시효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는 독도문제가 국제 쟁점으로 부상하고, 한국이 일순간 허점을 보일 경우 독도를 빼앗겠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아시아지역 패권·자원확보분쟁 중국·타이완과는 센카쿠제도(중국명 댜오위타이ㆍ釣魚島) 영유권 분쟁이 뜨겁다. 역시 동중국해의 춘샤오(春曉) 가스전 천연가스채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은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대륙붕 권익확보가 노림수다. 일본은 중국이 양국간 중간수역에 채굴시설을 건립하자 맞불작전으로 탐사활동을 시작했다. 최근 중국의 반일감정 고조에 대한 일본 여론의 반발 강도도 커져 일본의 대응은 점차 강화되고 있는 중이다. 도쿄도 남쪽 1700㎞의 이른바 오키노도리시마가 섬이냐, 암초(중국측)냐에 대한 논쟁도 자원확보 전쟁의 일환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 거액의 동중국해 자원탐사비를 책정하고 유엔 대륙붕 관련 위원회 위원들과 외국 학자들을 초청해 심포지엄도 개최할 계획이다. 다른 국제학술 행사도 개최하거나 지원, 일본에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중국과의 분쟁은 아시아지역 전체의 패권과도 연결돼 있어 서로 신경전도 치열하다. ●북방 4개 섬은 내부단결용? 일본과 러시아의 북방 4개 섬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풀릴 듯 하면서도 꼬여가는 양상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해 9월 4개 섬 시찰을 강행하면서 꼬여 버렸다. 미국의 개입 논란도 여전하다. 러시아측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4개 섬 가운데 2개를 돌려줄 수 있다고 밝혀, 타협점을 찾으려 했으나 일본측이 “2도 반환은 냉전시대의 타협 산물”이라며 반발하자 급변했다. 급기야 루시코프 모스크바 시장은 22일 “4개 섬을 일본에 반환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돌아섰다. 러시아측은 “일본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러시아명 쿠릴열도) 문제를 국민결속 등 내부정치에 이용하려 한다.”며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taein@seoul.co.kr
  • [데스크시각] 목란꽃이 피었습니다/구본영 정치부 부장

    수년전에 밀리언 셀러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었던 생각이 난다.‘국수주의냐, 세계화냐’ 등 당시의 숱한 논란도 기억에 새롭다. 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노벨상을 향한 꿈마저 버리고 자신의 무릎뼈 속에 설계도를 감춰 조국에 미사일 기술을 전수한 재미 천재 물리학자. 그를 보호하기 위해 60만 대군도 동원하겠다고 한 박정희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그들의 잇따른 죽음…. 줄거리야 어렴풋하지만, 소설의 주 모티브가 약소국 대통령이 핵개발을 하려다 미국의 눈밖에 나 비명에 간다는 내용이었음은 뇌리에 또렷하다. 기자는 박 전 대통령이 실제로 핵개발을 추진했다는 증거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적 정황으로 봐 소설적 상상력만이 아닐 개연성이 다분하다. 어느 나라든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손쉽게 빠져들게 되는 유혹이 핵보유다. 굳이 북한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스라엘과 인도·파키스탄을 보라. 전설인 양 아스라하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는 군사력·경제력 등을 종합한 국력에서 북한이 앞섰던 게 실상이었다. 특히 구 소련과 중국을 업은 당시 북한의 군사력만큼은 남한이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았던가. 머잖아 이 땅의 산야마다 함박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함박꽃은 5∼6월이면 삼천리 방방곡곡에 자생하는 목련과의 교목이지만, 생전의 김일성 주석이 좋아해 북한에선 목란으로 불린다. 평양 주체사상탑의 기단에도 새겨져 있고, 목란관이란 식당 이름에서도 짐작되듯이 북한의 국화(國花)다. 올해 한반도에는 목란이 때 아니게 만개한 느낌이다. 지난 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무기한 중단을 선언하면서 무궁화꽃이 피기도 전에 목란꽃이 먼저 피어버린 형국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놓고 남쪽에선 대책없는 갑론을박만 한창이다.6자회담에서 받을 판돈을 키우려는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이라느니, 핵사찰을 반대하는 군부를 의식한 김정일 위원장의 선택이라느니 하는 이런저런 추측만 난무한다. 일리야 있는 관측들이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어느새 북한의 핵무기 보유, 그 자체의 가공할 함의에 둔감해졌다는 사실이다. 핵보유 선언의 이면에는 북한 정권이 체제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배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칫 반(半)영구분단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통일되면 북한 핵무기는 어차피 우리 건데 뭐가 문젠가?”라는 발상이야말로 철없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북한의 핵개발 드라이브를 제어할 최소한의 지렛대는 확보해야 할 터이다. 북·미간의 각축전을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니란 뜻이다. 지난 수년간 정부는 대북 포용 일변도 정책을 펴왔지만 북핵 문제에 관한 한 별무효과였다.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도 북한이 핵카드만은 꼭 움켜쥐고 있었음이 분명해졌지 않은가. 그렇다고 냉전시대의 ‘목 조르기 정책’으로 북을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일은 더 큰 민족적 참화를 부르는 위험한 선택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북 봉쇄 일변도와 무조건 포용의 중용을 취하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이른바 ‘선별적 포용정책’으로, 남쪽 내부의 보혁 갈등을 최소화하며 점진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식량 등 인도적 지원은 퍼주기 시비를 무릅쓰더라도 지속해야 한다. 아무리 다급해도 동족의 굶주림마저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핵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현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북한이 핵협상이나 남북관계 개선에 임하는 자세와 반드시 대칭적이지는 않더라도 탄력적으로 연계, 속도조절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될 듯싶다. 과거 서독도 동독에 경제 지원을 했지만 인권 문제 등 동독 정권의 폭압성 완화를 강하게 요구했던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구본영 정치부 부장 kby7@seoul.co.kr
  • ‘亞문화심포지엄’ 광주서 개막

    ‘아시아적 가치’ ‘동아시아 연대’ 등 동양권의 부상이 21세기의 화두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화시대, 아시아를 다시 생각한다’란 주제의 ‘아시아문화심포지엄’이 23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개막했다. 대통령 직속의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가 기획하고 5·18기념재단이 주관하는 이번 심포지엄에선 종속이론의 주창자인 안드레이 군더 프랑크,‘치밀한 사유’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사카이 나오키 등 국내외 학자 59명이 참여해 3일 동안 심도있는 발표와 토론을 벌인다. 안드레이 군더 프랑크는 23일 기조연설에서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며, 아시아와 유럽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몰락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키신저가 신봉하는 세계화는 전 세계 및 국내 수입 분배에 있어서의 불평등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으로의 엄청난 수출과 그로 인해 얻는 이익이 중국 등 아시아 각국의 권력층과 부유층으로 옮겨짐으로써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기봉(경기대) 교수는 “냉전시대에는 이데올로기적 분단상태에 있었던 동아시아가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하기란 불가능했다.”며 “그러나 냉전 해체와 함께 동아시아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중국이 소련을 대신해 미국에 대항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동아시아가 정체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문화적 네트워크와 관련, 그는 “아시아 각국에서의 한류 현상은 과거의 중국-한국-일본(근대 이전), 일본-한국-중국(근대 이후)이란 문화적 위계를 벗어나는 대표적 사례”라며 “중국·일본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이유는 한국문화의 우수성 때문이라기보다는 한류를 통해 동아시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의 코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따라 한류를 하나의 문화상품이 아닌, 근대를 통해 상실된 문화적 동질감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것을 제시했다. 반면 사카이 나오키(코넬대) 교수는 “세계화에 저항하기 위해 민족적 연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세계화는 이미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있었다.”고 상반된 주장을 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미국 문화의 영향력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지만 세계화를 무조건 미국화로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논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화는 오히려 계속적으로 새로운 차이점을 만들어내고, 문화력 또한 분권 및 분산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북한核 해법 놓고 美·日 vs 韓·中 편갈리나

    북한核 해법 놓고 美·日 vs 韓·中 편갈리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이 지난 10일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중단을 선언한 이후 6자회담 참가국들은 열흘 동안의 초기 대응을 통해 크고 작은 입장 차이를 노출했다.‘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에는 모두가 공감했지만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특히 이같은 이견은 각 국의 기본적인 대북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해준다. ●‘냉전적’ 구도에서 출발 지난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첫 회의가 열릴 당시 6자회담은 한·미·일과 북·중·러가 마주보는 ‘냉전적’ 구도로 출발했다.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병행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한·미·일 3각 공조의 기본틀은 유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해 1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시점을 전후해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이 북한을 ‘포위’하는 ‘6-1’, 즉 5자회담 구도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자 5개국이 북한의 회담 복귀를 위해 강력한 압박을 가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양자회담 등 북한의 다른 요구에는 일절 응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19일 미국과의 외교·국방장관 합동회의를 통해 북핵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으며 공동 대응 방침도 재천명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인 한국 한국과 미국도 지난 14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장관간의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의 협력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비료지원 등 남북경협을 둘러싸고 입장차를 노출했다.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의 병행이란 원칙이 미국의 대북 압박 기류와 충돌한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또 북한에 얼마나 강한 압력을 행사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북한의 붕괴로 남한이 흡수통일을 하게 되면 미국 군 기지와 국경이 맞닿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북한 체제를 유지하려 하고, 그런 맥락에서 경제 제재나 강력한 외교적 압박을 가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도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미국보다는 북한 쪽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콘스탄틴 코사체프 두마(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18일 노보스티 통신과의 회견에서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은 아무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현재의 구도로는 6자회담의 표류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본다.”면서 “대척점에 서있는 미국과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국들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6자회담 재개 등 북핵문제 해결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dawn@seoul.co.kr
  • 本社후원 韓·日수교 40주년 세미나

    本社후원 韓·日수교 40주년 세미나

    지난 19일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는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을 기획테마로 토론회가 열렸다. 서울신문이 후원하고 한국일본학회가 주최한 제70회 학술대회의 역사문화 파트 가운데 하나였다. 그동안 어학·문학 위주의 연구를 진행해오던 한국일본학회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일본학회는 1600명을 넘는 규모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일본학 연구자 모임이다. 그러나 그동안 제대로 된 활동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일감정 탓에 일본을 연구한다는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기 어려운 분위기도 일부 작용했다. 이번 역사문화 토론회의 좌장이자 새 학회장에 선출된 성균관대 구태훈 교수는 “한국인으로서 일본학을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봐야 한다.”면서 “한·일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겠다.”고 밝혔다. 2001년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후쇼샤(扶桑社)교과서 파문은 여러 결과를 낳았다. 일본 우익에 대한 비판은 물론, 우리의 근현대사 연구성과와 역사교과서에 대한 자성론까지 낳았다. 그러나 올해 3∼4월로 예정된 일본 문부성의 역사교과서 검정 때 이런 파문은 또다시 재연될 조짐이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일본학회가 마련한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 토론회가 19일 오후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 앞선 주제 발표에서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는 0.039%의 채택률에 그친 후쇼샤 교과서 대신 50%이상의 채택률을 기록한 도쿄교과서를 분석, 도쿄교과서도 후쇼사 못지않다는 결론을 내려 눈길을 끌었다. 경기대 김기봉 교수는 미조구치 유조의 ‘인식의 공유’에 빗댄 ‘문맥의 공유’를 내세워 한국적인 대응을 비판, 참가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종대 오성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이외에도 고려대 최덕수 교수, 경복고 현명철 교사, 경기대 남상호 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김종식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영순 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이신철 연구원이 참가했다. 김기봉 역사교과서에 대해 수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일본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접근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운동’으로서가 아니라 ‘학술’로 접근해야 한다. 정재정 냉전 이후 유일하게 동아시아에서만 내셔널리즘이 강고하다. 더구나 관련 나라가 모두 연동되어 있어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교과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단, 문제를 볼 때는 일본 교과서 시장의 경쟁관계라는 자본의 논리와 납치·수교·미국의 압박으로 얽힌 대북관계문제 같은 정치적 문제도 함께 봐야 한다. 남상호 후쇼샤 교과서 처음에 나오는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이라는 글이 문제다. 역사상대주의를 천명하고 있는데 굉장히 기술(테크닉)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편의적으로 적용한다는 데 있다. 오성 개인적으로 보편주의를 내세워 일본을 비판했더니 일본학자들이 굉장히 냉소적이어서 놀란 적이 있다. 역사에서 보편적 인식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김기봉 사실과 해석을 나눠 생각해야 한다. 사실은 연구해서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해석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후쇼샤 서문은 랑케의 역사주의 입장과도 비슷한데 아주 훌륭한 문장이다. 우리 역사책은 그렇지 않다. 우리 역사책은 객관성을 전제로 두는, 신(神)의 사관을 내세우고 있다. 주입식 역사교육은 비판받아야 한다. 김종식 기본적으로 일본역사 해석은 문부성 편수관들이 맡고 있다. 신의 관점을 비판했는데 행정관료인 편수관이 일본에서는 신이다. 좋은 지적이지만 일본 역사교과서 역시 편수관이 짜준 틀 내에서만 움직인다는 게 문제다. 정영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필리핀에는 후쇼샤 내용이 그대로 실린 교과서를 쓴다. 인도네시아 학자들은 아예 ‘역사학 자체가 해석학’이라면서 ‘우리는 말할 권리가 없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일본연구자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지 않나 하는 고민이 앞선다. 이신철 운동과 학술의 병행을 얘기했는데 물론 학문적 접근도 중요하다. 그러나 홀로 서있는 학문은 없다. 강제동원의 경우 피해자는 해마다 죽어가고 일본은 자료를 숨긴 채 죽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뛰어넘어 인식을 공유하자는 것인가? 보편주의도 마찬가지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보편주의는 다르다. 이라크전을 보면 잘 드러난다. 그 대신 ‘평화공존’을 내세워야 한다. 지금 일본측과 접촉해보면 머리 좋은 청년들은 우익단체에 다 가고 진보단체에는 노인들밖에 없다. 진보진영이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해서다. 반면 피스보트 같은 평화단체에는 젊은이들이 넘친다. 이들은 동남아 각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 와중에 일제시대 피해자들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한다. 우리도 이런 걸 제시하지 못한 채 반일만 내세우다가는 자멸할 수 있다. 김기봉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민족주의는 포기해야 한다. 일본도 여러 측면이 있다. 일본 우익이면서도 욘사마에 열광하는, 그런 복합적인 존재다. 이런 사람들과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해야 한다. 오성 예전에 후쇼샤 서문을 보고 개인적으로 역사학 훈련이 덜 됐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하니 당혹스럽다. 최덕수 내세우는 명분·이론과 드러나는 사실·역사상을 구분해야 한다.2001년 후쇼샤 교과서를 보고 일본 우익이 굉장히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받아 안심한 적이 있는데 계속 그렇게 간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정재정 학자들이 흔히 접하는 일본인들은 일본사회의 비주류이고 별종이며 사회적 영향력은 거의 없다. 그걸 알아야 한다. 보통의 일본인은 내셔널리즘만 나오면 입을 다문다. 여기에다 천황제 얘기까지 나오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일역사공동연구회에 몸담고 있는데 이 모임의 일본 학자들은 그래도 중도쪽을 택한 ‘국제파’들인데도 대화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역지사지는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국제사회의 여건도 좋지 않다. 김종식 비관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일본은 지역운동이 굉장히 발전해 있다.2001년도 지역운동과의 연계가 상당히 힘을 발휘했다. 이들과 밀착해야 한다. 이신철 두 개의 칼을 떠올렸다. 시민·지역단체와는 ‘평화공존’으로 연대를 이끌어내야겠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달려들어야 한다. 어떤 장기적인 방향성으로 민족주의에서 탈피하자는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지만 현실 운동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근대화 이론가 후쿠자와 유키치 ‘동아시아와의 연대’ 사상가 아니다” 한국일본학회 비판 일찍이 근대를 향한 욕망에 경도된 춘원 이광수가 “하늘이 일본을 축복하셔서 이러한 위인을 내리셨다.”고 평가했던 일본 근대화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메이지시대 사상가임에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일본의 미래를 제시했던 계몽사상가이자, 게이오 대학을 설립한 교육가로서 이름 높다. 그러나 한국에서 후쿠자와는 ‘탈아론(脫亞論)’으로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고 비판받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 후쿠자와에 대한 이런 평가를 달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후쿠자와의 제국주의적 측면은 비판하되 그의 사상사에서 ‘동아시아와의 연대’ 부분을 부각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찬미했던 후쿠자와의 메이지의 중·후기 글들이 후쿠자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일본 우익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도 한몫했다. 이런 관점은 아시아주의 혹은 아시아연대 문제를 고민하는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한때’에 불과했더라도 후쿠자와는 정말 일본과 동아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했을까. 고려대 일본학 연구센터 박삼헌 연구원은 ‘근대 일본의 대외관과 위기론의 구조’라는 글을 통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후쿠자와 사상사에 대한 기존 연구가 아시아와의 ‘연대-개혁-탈출’로 변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정리한 뒤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서구열강의 압도적인 힘 앞에 노출된 상황에서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순차적으로 변해갈 수는 없다.”면서 “후쿠자와의 연대는 진정한 연대라기보다 불쌍하다는 연민과 우리도 저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후쿠자와 논의의 출발점은 강대한 서양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동아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하지만 내용은 중국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었고, 동아시아의 개혁 대상은 조선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의 조선개혁이 실패하자 터진 청·일전쟁을 후쿠자와가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규정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의 탈아론은 서구문명을 따라잡자는 것만이 아니라 아시아 침략을 당위로 삼는 논리인 셈이다. 박 연구원은 특히 “이미 메이지 초기 문헌에서 이런 논리가 등장했다.”고 말해 후쿠자와 저작의 진위논란과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서울대 최장근 교수 역시 “메이지유신 직후 일본은 홋카이도와 유구(오키나와)를 통합했고 이것이 제국주의 팽창으로 이어졌다.”면서 “후쿠자와의 논리는 팽창을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균관대 구태훈 교수는 “개항 직후 일본은 교린하는 아시아의 소국이냐, 아니면 대국지향이냐 하는 국가 진로를 두고 심각히 고심했다.”면서 “결국 일본은 대국지향을 선택했는데 이런 근대국가설계 논란과 함께 묶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중국의 미래를 읽는다/서울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19세기 영국,20세기 미국에 이어 21세기는 중국의 시대가 되리라는 예상은 넘쳐난다.‘팍스 시니카(Pax Sinica)’가 유행하는 배경에는 엄청난 경제성장이 있다. 인구 13억의 시장에다 10%대를 넘나드는 성장률을 기록하는 단위 경제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국가이념인 사회주의와 무관하게 ‘유물론적’인 중국인의 특성은 성장세에 무서운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 때문에 패권국을 자처하는 미국마저 중국을 제어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냉전 해체 뒤 중국이 소련을 대신할만도 한데 미국은 아랍권만 때리고 있다. 싼 노동력과 드넓은 시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제대로 된 시장경제주의적 사고가 먹혀 들어간 덕분이다. 개성공단의 맥박이 뛰기 시작한 지금까지도 국가보안법이 우리나라를 수호할 것이라는 우리네 자칭 시장경제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고 큰 흐름은 막을 수 없다. 팍스 시니카니 패권국가니 하는 어려운 소리를 집어치우고서라도 우리네 눈치 빠른 무역상들은 이미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중국으로 자녀들을 보낸 지 오래다. 영업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무역업자들은 이미 중국의 부상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염주영 수석부국장을 중심으로 10명으로 구성된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중국을 샅샅이 훑은 ‘중국의 미래를 읽는다.’(서울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일빛 펴냄)가 출간됐다. 자칫 고만고만한 중국관련 서적류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아주대 정종욱 석좌교수 등 중국통 한국 학자들이 참가했고 중국 국가 이데올로기 생산기지인 사회과학원도 함께 작업했다. 리빈(李濱) 주한 중국대사의 추천사처럼 “중국에서 손꼽히는 연구기관이 한국언론사와의 공동기획에 참가한 것은 한국언론사상 초유의 일”이기도 하다. 3부로 구성된 책의 1부 ‘신중국의 해부’에서 지금 중국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 데 이어 2부 ‘팍스 시니카의 시대 오는가.’,3부 ‘윈윈 전략을 찾아라.’에서는 미래의 중국, 그리고 한·중관계를 다루고 있다. 중간 중간 들어있는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이나 관·학계 인사들의 인터뷰와 기고문을 통해 중국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사회과학원은 그런 중국의 대표적 싱크 탱크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관변적인 냄새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지난해 우리 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동북공정도 사회과학원 주도로 이뤄진 작업이란 점만 비춰봐도 그렇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정책만 나왔다하면 좌우파 논쟁으로 치닫는 우리와 달리 국가발전이라는 이슈에 대해 관변적이든 어쨌든 역량을 한 데 모으려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부패와 빈부격차, 민주화 압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다.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기고] 프랑스식 국방개혁 연구해야/최명상 전 공군대학 총장·소르본대 정치학박사

    노무현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시, 마리(Alliot Marie) 국방장관으로부터 군 개혁에 대해 설명을 듣고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프랑스식 국방개혁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국방개혁을 지시한 것은 지난 1996년 2월이다. 주요 내용은 97년부터 2015년까지 (1)육군을 27만명에서 17만명으로,97개사단 129연대를 85개 연대로,927대의 탱크를 420대로,340대의 헬기를 180대로 줄이고,(2)해군은 7만명에서 5만 6000명으로,101척의 군함을 81척으로,6대의 핵잠수함과 7대의 재래식 잠수함을 6대의 핵잠수함으로 운영하고,33척의 해상초계기를 22대로 줄이며 (3)공군은 9만 4000명에서 7만명으로,405대의 전투기를 300대로 줄이는 대신, 공중급유기를 11대에서 16대로 늘리고,101대의 헬기를 84대로 감축하는 것 등이다. 프랑스 국방개혁의 특징은 국민합의에 의해 병력 규모에서 핵무기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래 계속돼 오던 징병제를 없애고,50여만명의 군병력을 35만명으로 직업군인화하며, 신속전개병력을 1만명에서 5만∼6만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병력의 3분의1과 국방 예산의 5분의1을 줄이면서 기동성있는 강군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드골주의자들의 오랜 목표인 무기체계에서 완전한 자주국방정책을 포기하고 프랑스 산업에서 미흡한 위성정보,C4I장비, 전략공수 분야는 유보시켰다. 정책 변화에 따른 방위산업 구조조정도 불가피했다. 이러한 결단은 좌·우파 간의 혼란을 부를 수도 있었으나 국민 70%의 찬성으로 가능했다. 프랑스 국방개혁은 유럽연합군 및 NATO군과의 조화도 고려하며 진행되고 있다. 걸프전과 코소보전 참전시 얻은 교훈을 지침으로 비효율적이던 장거리수송, 적방공망제압, 공중급유, 야간폭격능력을 강화시키고 신속장거리 전개군을 증강하고 있다.‘9·11테러사태’ 이후 아프카니스탄 전과 이라크 전을 관찰하면서 정밀공격능력과 대 테러전을 보강함으로써 21세기형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핵무기 운용에서도 알비옹 플라토(Albion Plateau)에 있는 18기의 지대지 전략핵미사일을 폐기하고 전략핵폭격기와 핵잠수함의 2개운영체제로 정책을 바꾸었으며 단거리 하데스 미사일 운영도 폐기시켰다. 또한 대 테러전에는 미국이 핵심역할을 하며,‘미국이 유럽 안보에 필요한 나라’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프랑스의 국방개혁은 국제안보환경과 국제정치질서의 변화에 따라 방위목적과 능력에 맞추어 전면적으로 재편해가고 있다.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세계냉전이 종식되면서 프랑스와 NATO에는 더 이상 적이나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연합이 탄생되면서 프랑스와 독일간 국경 위협은 사라졌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국방개혁의 제1단계로 ‘군사계획법 1997∼2002’를 만들어 징병제를 폐기했고 현역과 예비역을 재조직했다. 예비군도 작전예비병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작전예비군과 시민예비군의 형태로 바꿨다. 징병제를 지원제로 전환함에 따라 병력은 1996년 57만 3000명에서 2002년 44만명으로 감축되었지만 직업군인의 비율이 60%에서 92%로 증가되었다. 현재 프랑스는 ‘군사계획법 2003∼2008’에 의거 제2단계 개혁이 진행 중에 있다. 프랑스식 국방개혁을 우리 군 개혁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적과 정면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처럼 징병제를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기술집약적인 군 구조,3군의 균형발전 등은 좋은 연구 모델이 될 것이다. 프랑스와는 다른 적의 위협, 안보환경, 우리군의 취약점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전략전술 수립과 군사력을 건설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 핵, 주한미군 재배치, 한·미동맹관계, 국민적 공감대와 국방비 등을 고려하여 조화를 이루는 협력적 자주국방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와 통일, 한민족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강한 군대를 만드는 국방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명상 전 공군대학 총장·소르본대 정치학박사
  • [열린세상] ‘꼬붕’의식을 버리자/정세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장관

    1970년대 초 동서데탕트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먼저 적십자회담을 제의하여 남북간에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물론 ‘판문점의 봄’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매년 8·15경축사에서 남북관계 관련 대북제의를 했다. 그리고 이 전통은 5,6공과 문민정부까지 이어졌다. 이는 북한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보호하고 국민들이 전쟁공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도 방어적이었기 때문에 남북간 접점조차 찾기가 쉽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남북교류·협력이 활성화되면서 적어도 일반국민들은 안보불안감을 훨씬 덜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복무쌍지(福無雙至)인가? 그렇게 바라던 남북관계 개선이 막상 현실로 구현되면서 오히려 ‘남남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북한 편들고 퍼주는 친북정권이다.”,“미국에 대드는 반미정권이다.”,“남북관계 때문에 한·미관계가 나빠지고 있다.” 등등의 비난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냉전논리나 흑백논리, 또는 대미의존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의 건전한 통일논의와 민족자존 외교를 위해서 몇 가지는 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첫째, 대북압박을 하지 않고 기계적 상호주의를 적용하지 않으면 친북이고 퍼주기인가? 대화·교류·협력·왕래·지원이야말로 경쟁적·적대적 국가간 평화정착과 통합의 유력한 방법론이라는 것은 유럽연합(EU) 형성과정에서 입증되었다.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은 반북하자는 것이 아니지만 친북하자는 것도 아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토대위에서 현실을 고쳐나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 말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적으로 통일할 묘수가 있는가? 둘째, 미국에 대든다, 외교를 거칠게 한다고 비판하지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상대가 우리 주장을 귓등으로 듯는 것처럼 보이면 큰소리로 힘을 주어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핵참화만은 막으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하는 문제제기조차 오히려 우리 내부에서 ‘대들기’,‘반미’로 규정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미국이 우리를 많이 도와주었고 지금도 동맹국이지만, 미국과 우리의 국가이익이 똑같을 수는 없다. 미국의 정책이 우리에게 불리할 때는 불리하다고 말하고, 대미설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외교는 왜 하는가? 한·일관계에서는 친일·반일 구분없이 ‘할 말 하기’와 국익극대화를 주문하면서, 유독 한·미관계에서는 친미·반미의 선부터 긋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굴종주의다. 셋째, 남북관계 개선은 ‘평화만들기’를 위한 방법이다. 한·미관계는 경제적 의미도 크지만, 기본적으로 ‘평화지키기’를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평화지키기’만으로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나 통일을 기약할 수 없다. 따라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국가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는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활용해 나가야지 어느 한쪽으로 기울 일이 아니다. 요컨대 한·미관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이제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도 반북이 아니면 친북이고 반미라는 흑백논리는 버릴 때가 되었다. 지금이 냉전시대도 아니지만, 한반도문제는 아이들 같은 흑백논리나 이데올로기적 양단논법으로 접근해서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는 우리도 누구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꼬붕’의식을 버리고,2만달러 시대를 준비하는 나라의 국세(國勢)에 맞게 ‘내나라 입장에서’ 정세를 분석하고 상황을 주도해나가야 한다. 북한을 더 변화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해나가는 것도 우리 책임이고 주변국들이 우리의 통일에 협조하도록 만드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이런 일을 다른 나라에 맡길 수도 없지만, 다른 나라가 해 줄 리도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중요한 나라는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과는 긴밀한 공조를 하되, 숭미(崇美)가 아닌 용미(用美)차원에서 협력해 나가면서 그때그때 유관국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외교를 능소능대하게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의 변방의식(邊方意識)부터 걷어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스스로 평가하는 것보다 상당히 큰 나라다. 정세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장관
  • 한나라 각계파 “내 방식대로 변해야 산다”

    한나라 각계파 “내 방식대로 변해야 산다”

    “당명을 개정하되 전당대회를 열어 임기 1년의 대표를 뽑자.”“우리가 혁신적 중도보수로 입장을 정리해도 국민은 현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고 판단한다.” 한나라당이 3일 충북 제천에서 이틀 동안의 일정으로 의원연찬회를 열고 당의 진로와 노선 등을 놓고 ‘끝장토론’에 돌입했다.110여명의 의원들은 차기 집권을 위한 당의 노선·비전 등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전선(戰線)’은 박근혜 대표를 중간에 놓고 ‘친박(親朴)’과 ‘반박(反朴)’으로 나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발전연구회 소속 전재희·고진화·안상수 의원 등은 직간접적으로 ‘대표 퇴진론’까지 거론했다. 연찬회는 박형준 의원의 ‘나라 선진화의 비전과 전략’과 박세일 정책위의장의 ‘당의 이념과 노선’, 허태열 선진화추진위원장과 윤건영 여의도연구소장의 ‘당의 혁신 방안’ 등의 주제 발표를 들은 뒤 25명의 의원이 모임별·개인별 입장을 개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어 2월 임시국회 주요 쟁점법안과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당 정체성과 이념 노선 의원들은 ‘선진화 전략’엔 대체적으로 공감했지만 보수의 방향에 대해선 입장이 엇갈렸다. 박세일 정책위의장은 ‘공동체 자유주의’와 ‘혁신적 중도보수’를 키워드로 꼽으며 “역사적 성찰과 자기 변화, 끝없는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장파 주축의 새정치수요모임의 정병국 의원은 “영남에 기반한 냉전·강경 보수 등의 이미지를 벗자.”면서 “개혁적 중도 보수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도 성향인 국민생각의 박진 의원도 “부자를 위한 정당, 반(反)통일·부패 정당 이미지를 탈피, 교육·복지·여성 등 중도적 이슈를 선점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자유포럼 소속 김기춘 의원은 “총선과 대선 관련 ‘영남의원 책임론’에 반대한다.”고 반박했고, 이방호 의원도 “지지도 하락과 당 우경화는 관련이 없다.”면서 “정통보수라는 대전제 하에서 사안별로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당명 개정 시각차 대다수 의원들은 당명 개정 자체에는 찬성하면서도 시기와 방식을 놓고는 반대의 뜻을 명확히 했다. 수요모임의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당명개정엔 찬성하지만 그 전에 혁신적 중도보수를 달성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구체적 현안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 지도부의 개정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국민생각의 임태희 의원은 “식당 간판만 바꾸면 안 된다.”는 논리로,3선의 권철현 의원도 “새옷을 입기 전에 몸의 때를 씻자.”는 비유로 당명 개정에 반대 입장을 밝혔고, 이방호 의원도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박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들어 당명 개정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특히 박 대표는 “개정 시점과 관련 새 인물을 대거 영입하거나 합당을 추진하는 등 이벤트에 맞추자는 의견이 많지만, 국민이 지켜보고 있고 또 그런 계기라는 게 영영 안 올 수도 있으니 이번 기회에 당명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대권 후보군 거론 논란 대권 행보가 본격화되면서 계파간 견제와 신경전도 치열했다. 특히 최근 박 대표에 비판적 입장으로 돌아선 수요모임과 원래부터 비판 입장이던 발전연측은 박 대표를 겨냥해 “대권과 당권은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요모임은 “특정인을 염두에 둔 대선 경쟁은 안 된다.”면서 “누구나 뛰어들고 싶은 게임의 무대로 대선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최근 당 안팎에서 누가 대권후보로 좋겠느냐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면서 “먼저 당을 사랑받는 정당으로 바꿔서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고,2년 뒤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가장 경쟁력 있는 인물을 뽑으면 된다.”고 밝혔다. 한편 권철현·임태희 의원 등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박근혜 대표가 당당하게 맞서라.”고 주문했다. 임 의원은 “박 대표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功)은 자랑하고 역사에 빚진 부분은 갚으면서 정치적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제천 이종수 박지연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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