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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헬싱키 접근/진경호 논설위원

    2002년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알려진 대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원조’다.20년 전인 1983년 대표적 보수단체인 ‘복음주의협회’를 상대로 한 연설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표현하고는 이후 대대적인 개방·인권 공세를 폈던 것이다. 연설을 기획했던 리처드 사이직 복음주의협회 부회장은 지난해 말 서울에서의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소련의 지도자에게 도전했다는 사실에 많은 소련인들이 기뻐했다. 독재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1991년 소련을 무너뜨린 건 빵과 인권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비효율성이 낳은 굶주림이 자생적 요인이었다면, 인권문제는 서방세계로부터 끊임없이 유입돼 소련체제를 흔드는 역할을 했다. 이 ‘인권공세’의 근원이 헬싱키 협정이다.1975년 미국, 소련 등 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CSCE)내 동·서방 35개국이 체결한 이 협정은 국경 등 체제 인정과 인권·자유 존중, 경제·과학부문 협력 등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소련은 이를 통해 내정불간섭과 체제유지를 다짐받으려 했고, 어느 정도 뜻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협정의 인권신장과 자유보장, 정보교류 조항이 화근이었다. 서방세계가 이를 근거로 끊임없이 소련에 체제 개방과 인권 신장을 요구하며 체제를 흔들었고, 끝내 소련 붕괴, 냉전 해체라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미 네오콘의 강경파인 마이클 호로위츠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대북정책에 있어서 헬싱키 방식을 택하는 쪽으로 국무부내 논란이 매듭됐다.”고 했다.“북한인권법에 따른 예산 2400만달러가 조만간 집행되고, 이를 바탕으로 올해 상당수의 탈북자를 미 정부가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인권’을 무기로 한 부시 행정부내 네오콘 진영의 대북 전략이 실행단계로 접어들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강경파인 딕 체니 부통령과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차관 등이 주장하는 ‘맞춤형 봉쇄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위폐논란과 관련한 금융봉쇄가 가시화되고, 인권문제 의제화 논란으로 6자회담이 표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인권을 무기화하는, 뿌리 깊은 네오콘의 전략이 정말 걱정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기억을 둘러 싼 투쟁으로서의 역사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E.H. 카)는 역사에게 너무 태평스런 정의일 지 모른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했다는 혐의로 역사학자를 처벌한 유럽이 정작 마호메트 풍자는 표현의 자유라 부른다. 멀리 갈 것 없이 중국은 동북공정에, 일본은 역사왜곡에 힘쏟더니 한국에는 뉴라이트 바람이 분다. 그래서 ‘대화’보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으로서의 역사가 더 설득력있을 법하다. 봄을 앞두고 출간되는 학술지들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가 낸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는 ‘해방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라는, 다소 포괄적인 기획을 내놨다. 식민지배와 해방, 냉전, 분단, 전쟁을 겪은 남북이 지난 60년간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형편이 낫다는 남이 어떻게 북을 껴안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살핀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권두논문을 비롯, 진보성향 학자가 쓴 20편의 논문이 실렸다. 계간지 ‘황해문화’ 역시 ‘대한민국의 상처와 희망’을 주제로 한국인 원폭피해, 친일파 문제, 군 의문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동성애와 황우석사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고 이기백 서울대 교수가 실증주의 사학을 내걸고 창간한 반년간지 ‘한국사시민강좌’는 반대편에 서 있다.8편의 관련 논문을 실은 38집의 특집주제는 ‘대한민국 건국사의 새로운 이해’.‘건국자’로서의 이승만을 조명해보겠다는, 뉴라이트적인 설정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월드 리포트] 대사관 신축 ‘도청 신경전’

    [월드 리포트] 대사관 신축 ‘도청 신경전’

    중국과 미국의 수도 한가운데서 한창 진행중인 두 나라의 대사관 신축 공사가 양국 언론간 묘한 ‘신경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청 문제 때문이다. 촉발은 지난 1월 워싱턴타임스의 기사에서 비롯됐다. 기사는 “워싱턴의 ‘데이스인’ 호텔에 어느날 갑자기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195개의 모든 객실과 식당, 술집 등을 점령했다. 이들은 앞으로 2년반을 이 곳에서 머물 계획이다.”로 시작한다. 이 기사는 “중국 정부가 신축 대사관 건물내에 미국 정보기관에 의한 도·감청 장비 설치를 막으려고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중국에서 보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보도는 “과거 보잉사가 중국에 팔았던 정부 고위관리 수송용 여객기에서 여러 개의 도청기가 발견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중국 언론이 발끈했다. 워싱턴보다 두달 앞선 2004년 2월 시작된 주중 미국대사관저 공사를 다룬 기사가 잇따랐다. 언론들은 관계자의 말을 인용,“비록 이 공사에 1500명의 중국 노동자가 투입돼 있지만, 도청 방지를 위해 주요 부분 공사에서는 기술자와 건자재를 모두 미국에서 들여왔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다소 감정 섞인 지적도 나왔다“중국 제품이 우수하고 값도 훨씬 싼데 미국 것을 쓸 이유가 없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간 첩보전 당시 미국의 도청 행위도 자세히 기술했다. 이에 대해 정작 정보 관계자들은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는 반응들이다.“베이징에서든 워싱턴에서든,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할 외교관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란 얘기다. 도청이야 당연한 것이고 언론간 신경전은 양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도덕적 자존심 싸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대사관 신축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한국과 중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베이징 뉘런제(女人街) 부근의 미 대사관 신축공사장 바로 옆에는 오는 10월 입주를 목표로 한국대사관 신축공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국내 유력 S건설이 짓고 있으나,“특정 부분은 중국 업체랑 함께 시공해야 한다.”는 요구 등 생각지도 못한 걸림돌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반면 중국측은 서울에서 주한 중국대사관을 증·개축하는 과정에서 한국 규정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정보 관계자는 “저마다 다른 국내법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같은 신경전에는 도·감청 등에 의한 정보 노출을 방지하려는 기본 인식이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도청은 국제사회에서는 ‘관례’가 된 지 오래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그 관례를 따르는 게 국제사회의 ‘미덕’일지 모른다. 다만 그 미덕에는 반드시 대상을 가리는 ‘절제’가 뒤따라야 할 일이다. 이지운 베이징특파원 jj@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아마추어 심판에 박수를

    지난 19일 새벽 토리노동계올림픽을 응원한 시청자들은 한국 선수단이 쇼트트랙에서 금, 은메달을 따내는 장면에 환호를 보내면서도 여자 1500m에서 3위로 들어온 변천사가 실격 판정을 받아 동메달을 놓친 데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 이뿐만 아니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 사건으로 분개한 사람들은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중국의 리예를 강하게 밀어버린 미국의 스미스에게 아무런 벌칙이 가해지지 않은 데 대해서도 결승에 미국 선수 두 명을 올리기 위해서라는 의혹의 시선을 던졌다. 해설자들의 흥분도 부채질을 했다. 한국이 어쨌든 금, 은을 딴 덕에 이후의 언론 보도는 4년 전에 비해 아주 차분한 태도로 취급했다. 거액의 돈이 판정 하나마다 영향을 받는 프로야구의 오심도 경기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듯 올림픽 심판의 판정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아마추어 스포츠의 심판은 더욱 배려를 받아야 한다. 프로 스포츠의 심판은 직업이지만 아마추어는 봉사다. 또 프로 심판은 자신의 판정에 대해 규칙의 적용이 잘못되지 않는 한 전적인 권한을 부여받는다. 야구 심판이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다고 해서 이를 번복시킬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다. 대법원이 하급심의 사실 판단에 대해 심리하지 않듯 프로 심판의 판정이 규칙 해석을 잘못한 것이 아니면 최종의 판단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아마추어 심판은 현장에서부터 기술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판정이 번복되기도 하고 고유의 판정에 대해서도 제소를 당할 수 있다. 물론 올림픽에서의 성적이 이후의 프로 진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피겨스케이팅이나 복싱에서는 매수 시도가 있을 가능성도 있고, 동서 냉전이 치열하던 시절에 올림픽 성적이 국력 과시의 수단이나 자국 정치에 이용되던 시절에는 강대국의 압력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것과 별 관계가 없는 스키점프나 쇼트트랙의 심판이 잘못된 판정을 내렸다면 그것은 심판 본인의 역량 부족이다. 프로 심판들은 직업인으로서 엄격한 시험과 훈련을 통해 선발된다. 그리고 이들은 은퇴할 때까지 시즌만 되면 심판만 본다. 당연히 신뢰도가 높은 판정을 내린다. 하지만 이들도 잘못된 판정이 자주 나오고, 그 때문에 혹독한 비난을 받는다. 잘하면 본전이고. 아마추어 심판, 특히 국제 심판은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이 열리는 해가 아니면 심판을 볼 기회조차 없다. 또 이들은 심판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직업인도 아니다. 이들에게 프로 심판보다 높은 역량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같은 나라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누구나 기쁘다. 그렇지만 부당하고 무리하게 심판이나 상대 선수를 비난하는 국수주의는 안 된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녹색공간] 전쟁없는 나라의 꿈,그 첫 번째/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전쟁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홉스나 루소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 개인들의 자유의 일부를 군주에게 양보하면서 전쟁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유지하고 있는 것보다는 리바이어던에게 조세를 제공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계약론의 본질인 셈이다. 이들보다 100년 후에 등장한 애덤 스미스와 다시 100년 후인 데이비드 리카도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거래인 무역이 전쟁을 없애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인 것 같다. 포도주의 대명사인 보르도를 영국이 만드는 바보 같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면화로 더 좋은 섬유를 만들어서 교환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것이 국부론의 주장이고, 이 당시의 경제학자들은 국가 간에 무역을 하게 되면 전쟁이 줄게 될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했던 것 같다. 16∼17세기에 자본주의를 지지한 학자들의 말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어쨌든 시장 사회와 자유무역을 추진하면 결과적으로 세상의 전쟁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가장 꽃피었던 20세기에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 벌어졌다는 점을 상기하면 좀 이상해 보기이기는 하지만, 유럽사에서 전쟁일수가 가장 적었던 시기가 사실은 20세기였다는 점을 환기할 때 아주 틀리다고는 하기 어렵다. 실제로 유럽에서의 자본주의는 15세기에 세계를 지배하던 해적들과의 전쟁과정에서 승리한 시스템이기는 하다. 한 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했던 국가인 스페인의 재경장관이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훨씬 빠르게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발언들을 근거로 유럽 사학자들은 때때로 15세기의 해적들에 대해서 스페인의 여왕이 비밀리에 지원을 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의 함대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쳐부순 사건을 ‘신사’들의 자본주의가 드디어 해적들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비로소 자신의 길을 세운 순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돌아보면 인류의 역사는 번영이라는 한 가지의 목표와 평화라는 또다른 목표를 일종의 이중 플롯처럼 구성하면서 지금까지 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한테 만약 잘 사는 사회와 재미있는 사회 그리고 전쟁 없는 사회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전쟁 없는 사회를 고를 것 같다. 좀 가난하거나 좀 재미 없더라도 전쟁이 없다면 그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작은 기여라도 하면서 살고 싶다. 냉전이 끝난 지금 과연 전 세계에서 전쟁이 앞으로 20년 내에 발발하지 않을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자. 누구나 스위스를 고를 것이고, 그 다음에는 프랑스와 독일 같은 곳을 고를 것이고, 미국이나 중국 혹은 일본이 앞으로 20년 후에도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고를 사람은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로마클럽 보고서의 연구팀장인 도넬라 메도 여사는 2년 전에 타계하면서 20년 후에 전 세계적인 자원전쟁이 발발할 위험성이 높다고 경고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연 어떨까? 현재와 같이 세계 10위의 경제규모에서 외국 자원의 의존도를 계속 늘려나가는 상황인 만큼 우리도 해외주둔군을 가지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한국 또한 수비형인 이지스함만이 아니라 훨씬 더 적극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원양작전 능력을 갖춘 항공모함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시장인 중국과 일본이 이웃한 동북아 경제의 팽창은 자원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20년 후에도 이 땅에 전쟁이 없을까? 가장 간단한 시뮬레이션 모델로도 빠르면 10년, 길면 20년 후에 한국도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우리한테 평화의 조건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이 한반도에 20년 후에도 전쟁이 없게 할 수 있는 평화의 조건이 달성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무척 궁금한데, 대한민국 학계나 그 어느 곳에도 여기에 대한 답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내 눈에는 한국은 열심히 전쟁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아 보인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 [시론] 아프리카는 미래의 선택이다/박정경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연구 교수

    [시론] 아프리카는 미래의 선택이다/박정경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연구 교수

    올들어 정부 고위 인사들의 아프리카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가나(1월28∼30일)와 콩고민주공화국(2월2∼3일)을 다녀온 데 이어, 이해찬 총리도 세네갈(2월8∼10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10∼13일)을 순방했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 국가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3월에 방한했고,10월에는 르완다 외교장관 찰스 무리간데가 한국을 찾았다. 1990년대 초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후 등한시되었던 한국의 대 아프리카 외교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최근에 와서야 대 아프리카 외교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반해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의 주변국들은 오래 전부터 아프리카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필자는 2000년대 초 4년간 동부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수학하면서 중국과 일본 정부 차원의 대 아프리카 지원 활동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은 케냐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도로 공사를 도맡아 했고, 일본은 자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케냐 최대의 수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은 국영 및 민영 기업의 아프리카 현지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외교부 통계에 따르면 2004년 말까지 700여개의 중국 기업이 아프리카에 진출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본격화된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은 과거 식민 통치의 경험을 기반으로 아프리카에서의 기득권을 주장해온 유럽의 서방 국가들이 견제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처럼 중국이 아프리카 진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중국이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곳곳에는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막대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석유를 비롯한 지하자원이 오랜 기간 동안의 내전을 거치면서 제대로 개발되지 못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은 미래의 자원 확보를 염두에 두고 아프리카와의 관계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9억명에 가까운 인구를 보유한 아프리카는 앞으로 거대한 소비 시장이 될 것이 틀림없다. 전자제품을 구매하지 못할 정도의 빈곤층이 아프리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현재는 국제 무역에서 아프리카 시장이 외면당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이 지금 추세대로 이어진다면 가까운 미래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가 될 것이다. 중국의 대 아프리카 투자 확대는 미래를 내다본 아프리카 시장 선점 노력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현재 시장규모나 경제 발전 정도로 볼 때 한국이 아프리카와의 교역을 통해 당장 큰 이익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아프리카를 소홀히 대한다면 미래의 자원 수급과 시장 확보에 있어 경쟁국들에 뒤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뒤늦게나마 한국 정부가 대 아프리카 외교에 눈길을 돌린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자원 수급과 시장 확보만을 목표로 아프리카에 접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는 과거 유럽 제국들이 식민 통치를 통해 아프리카를 피폐하게 만든 범죄를 되풀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프리카는 저개발과 빈곤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세계무대에서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위치에까지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의 입장에서 적절한 아프리카 접근법은 적극적인 현지 투자와 함께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박정경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연구 교수
  • [반기문외교 유엔총장 출사표] 당선가능성과 주요경쟁자 분석

    [반기문외교 유엔총장 출사표] 당선가능성과 주요경쟁자 분석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당선 가능성에 대해 정부 당국자의 대답은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5년 전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선출될 당시 비상임이사국인 한국 대표로서 한표를 행사한 박수길 전 유엔대사는 14일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그 자체로 엄청난 것이다.”고 말했다. 당선의 관건은 첫번째 열쇠를 쥔 미·중·영·프·러 등 5개 유엔상임이사국 즉 ‘P5(Permanent 5)´와의 관계다. 이어 다른 후보와의 역량 차이, 분단국과 한반도 안보 상황, 한·미동맹관계 등이다. 관례에 따라 아시아 출신에게 순번이 돌아오는 점에서 판은 1차로 좁혀진다. ●미국의 지지는 죽음의 키스? 일단 “미국이 지지한다.”고 알려지면 경쟁관계인 프랑스·중국 등의 거부권 행사로 이어지는 게 국제적 정서다. 주한 외교단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지지는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라고 표현했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국이어서 불리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냉전시대가 아니고, 한국이 P5와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어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란 게 정부 판단이다.“지역순번제로 할 이유가 없다.”(존 볼턴 미 유엔대사)거나 미국은 중유럽 국가를 지지한다는 등의 보도들은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중국·러시아의 경우 최근 비(非)아시아권 후보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개별 상임이사국으로부터 전폭적 지지도 받지 않으면서, 거부당하지도 않는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프랑스의 지지 확보가 관건인데, 현재로선 특별한 거부의사는 보이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분단국, 독(毒)인가 약(藥)인가 한반도 분단상황, 특히 북한 핵문제가 사무총장 후보의 걸림돌이 된다는 우려도 크다.50년의 분단상황을 평화적으로 잘 관리해 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유리한 상징성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 관계자가 특정국가 대사에게 “분단국이라 어떨지….”하고 떠봤을 때 “오히려 상징성이 될 수 있다.”는 격려도 얻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2001년부터 체납 중인 유엔 분담금 1억 3000만달러가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근본적인 걸림돌은 아니다. ●공식 출마선언 경쟁자는 2명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공동후보로 나온 태국의 수라끼앗 부총리와 유엔 군축담당 사무차장을 지낸 스리랑카의 자얀티 다나팔라 전 대통령 보좌관. 수라키앗 부총리는 “미국이 승인했다.”“110개국 지지를 얻었다.”고 지난해 초부터 떠들었고 이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태국이 남부 지역 이슬람 세력을 탄압, 말레이시아와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고 있어 이슬람권내 부정적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다나팔라 전 사무차장은 유엔개혁의 적임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유엔관료 출신인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다는 점에서 역풍 움직임도 엿보인다. 태국에선 수라끼앗 후보에 대해 ‘후보 철회’ 여론도 일고 있어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가 대타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라트비아의 바이라 비케프라이베르가 대통령의 경우 미국이 선호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의 호세 라모스 호르타 외교장관, 유엔개발계획(UNDP) 사무총장인 터키의 케말 데르비스, 폴란드의 알렉산드르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 등도 잠재적 후보로 분류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그 소녀와 친하려면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34)

    [사연] 그 소녀와 친하려면 고교를 갓졸업한 소년입니다. 냉전이라면 너무나 긴 냉전을 그와 지난 2월부터 아직도 계속 중입니다. 그동안 수십번 수백번 얼굴을 대하면서도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습니다. 그와는 어떤 일이 발단이 되어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저 자신도 자세히 알수가 없읍니다. 그가 저를 싫어할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저를 먼저 피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도 아니랍니다. 그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언니네 집에 와서 있는 16세의 소녀입니다. 키 크고 조숙한 소녀예요. 매일 매일 얼굴을 대하노라면 가슴만 괴로울 뿐입니다. 예전처럼 예사롭게 지내고 싶습니다.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2동283 선우 정> [의견] 좋은 구실 만드세요 소녀가 갑자기 소년에게 연정을 느껴서 당황한 끝에 피하고 외면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2월부터 일어난 모든 일이 이해됩니까. 그런데 소년은 그런 눈치도 모르고 흘끔 흘끔 쳐다만 보니까 소녀는 더욱 속이 상해지고 어쩔 줄을 모르게 된 것이 아니겠읍니까. 내성적인 성격이라니까 좀 힘은 들겠지만 예전과 조금도 다른 일이라곤 없었다는 듯이 행동해 보이세요. 한 두번 피하는 일을 당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옛날만큼 친근한 태도로 말을 걸어 보세요. 『단추가 떨어졌는데 바늘실 좀 빌려 줄래?』하는 따위 애교 있는 구실을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Q>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 러 “하마스 인정”… 美·EU 긴장

    러시아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맡게 될 무장단체 하마스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긴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일 마드리드에서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와 회동한 뒤 “하마스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으며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러시아는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며 “가까운 장래에 하마스 지도부를 모스크바에 초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하마스 승인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대화 상대로도 인정하지 않는 미국과 EU의 태도와 상반된 것이다. 알렉산더 칼우긴 러시아 중동 특사도 “다리를 태워 버리기는 쉬워도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며 “하마스에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주문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하마스 고위 관계자는 곧바로 “초청을 받으면 방문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미국은 푸틴의 발언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의 진의가 무엇이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그는 러시아 역시 하마스에 이스라엘 인정과 테러 중지 등을 촉구한 4자 중동 평화협상의 당사자였음을 상기시킨 뒤 “러시아가 이스라엘 인정과 무장 투쟁 포기의 메시지를 하마스에 전달하기 바란다.”고 압박했다. BBC는 푸틴이 냉전 종식 뒤 잃어버린 중동에 대한 영향력을 만회하기 위해 독자 행보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김근태·고건 전격회동 ‘주파수 조정’

    오는 18일 열린우리당 의장에 도전하는 김근태 후보는 8일 새벽, 대구에서 후보자 합동토론회 일정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인천을 향했다.‘범민주양심세력 대연합’의 핵심 인물로 꼽아온 고건 전 총리와의 회동이 전격 성사됐기 때문이다. 오전 7시쯤, 인천 새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명사 조찬모임에서 ‘통합의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정치에 나선 고 전 총리의 연설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조찬을 가졌다. “미리 동의를 구하지 않고 거론해 죄송스럽다. 세 차례에 걸친 내 제의에 찬성해줘서 고맙다.”(김 후보) “사전 양해없이 거명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괜찮다. 김 후보의 제안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건 전 총리) “압력을 넣으러 왔다. 전당대회 후 동맹군으로 참여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한다.”(김 후보) “우리는 코드가 아니라 주파수가 맞는다.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이다. 나는 공개방송을 좋아한다.”(고 전 총리) 김 후보와 고 전 총리는 경기고 선·후배 사이라는 것을 빼면 특별한 교집합이 없는 편이다. 이 때문에 김 후보가 고 전 총리를 동맹군이라고 하는 데 의문이 제기돼 왔다. 김 후보 측은 ‘위기론’의 범위가 다른 것부터 설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다른 후보자들은 당의 위기에만 머물러 있다. 김 후보는 당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의 위기라는 면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김 후보가 ‘범민주개혁세력 대통합’에서 ‘범양심세력 대연합’으로 수위를 조정한 것도 이를 의식한 전략으로 들린다. 김 후보측은 나아가 “이번 회동으로 김근태 후보가 냉전과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양심세력의 단결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자평했다. 통합론이 전당대회 주요 이슈로 부각된 상황에서 한발 앞서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는 자신감으로 읽힌다. 고 전 총리는 이에 대해 “코드는 폐쇄적이지만 주파수는 개방적인 표현이다. 늘 주파수를 열어 놓고 있다는 뜻이다.”며 특유의 ‘주파수론’을 강조하면서도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위해 김 장관의 범민주세력 통합론이 원론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 입장에서 동참을 거론하기는 적절하지 않다는 전제를 깔면서 “결단할 시점에 이 문제도 같이 연구하겠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통합론을 통해 정계개편까지 염두에 둔 김 후보와의 ‘회동’으로 일거수 일투족 조심스러운 자신의 신중한 행보가 흐트러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깔려 있는 듯하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열린세상] 부시 연설에 담긴 對北 신축성/정종욱 아주대 교수·전 주중 대사

    지난달 31일 부시 미국 대통령의 2006년 국정연설이 있었다. 미국 헌법 제2조 3항은 대통령이 국정 상황을 의회에 보고하고 필요한 조치를 건의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서 1790년 조지 워싱턴 때부터 대통령은 매년 의회에 국정보고를 해왔다. 서면보고로 대체한 경우도 있긴 했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대개 대통령이 직접 의회에 출석하여 국내외 정세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이 연례행사는 그해 세계정세와 미국의 대응을 파악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왔다. 특히 냉전체제 붕괴 후 미국이 유일 패권국가가 되면서는 이 국정연설에서 제시되는 비전과 전략들이 국제사회의 큰 흐름을 결정짓는 최대변수로 인식되어 전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부시의 2006년 국정연설에서 묘사된 미국의 자화상은 1970년대 중반 월남 패망 이래 최악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외교정책에 관한 세계적 석학인 스탠리 호프먼 교수가 월남전의 수렁에 빠져 허덕이던 1960년대의 미국을 ‘상처 받은 독수리’(wounded eagle) 또는 ‘절름발이 거인’(crippled giant)이라 부른 적이 있지만 그가 살아 있다면 2006년의 미국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부시의 국정연설에는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비전과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과거 5번이나 했던 국정연설에서 느껴졌던 신념과 열정도 찾아 보기는 힘들다. 물론 민주주의와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낯익은 약속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정치인의 수사학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재선에 성공한 후 첫 국정연설이었던 작년에 비교하면 올해의 연설은 공허하다는 인상마저 지울 수 없다. 정말 미국은 회복 불능의 상처 받은 초강대국일까? 부시의 고민은 이해할 만하다. 국내외 어느 곳을 보아도 낙관적인 구석이 별로 없다. 재정적자는 그의 감세정책 때문에 이미 4000억달러를 넘어섰다. 퇴임할 때까지 적자규모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별로 없다. 작년 국정연설에서 야심찬 사회보장제도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의회에 올리지도 못했다. 작년 여름 남부 지역을 폐허로 만든 태풍 카트리나에 분노한 민심은 부시 행정부의 핵심인물들이 연계된 도청사건으로 더욱 등을 돌리게 됐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시간이 갈수록 철군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국민의 반응은 역시 신통치 않다. 그래서 5년 전 9·11 참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에는 90%가 넘었던 그에 대한 지지도가 작년 말에는 30% 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추세로 가면 금년 11월의 중간선거에서 참패가 불가피하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공화당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 사태를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 그의 국정연설은 도덕적·이상주의적 가치를 강조했던 미국의 대외 정책을 오히려 현실적 바탕 위에 재정립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특히 한반도 정책이 그러하다.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 규정하고 대량무기비확산전략(PSI)을 통해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겨냥해 온 부시의 대북정책이 보다 세련되고 현실적인 궤도로 복원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위조달러 같은 문제는 예외가 되겠지만 부시의 대북정책은 선택된 방법과 수단이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를 정당화하지 못하는 비대칭적 측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6자 회담 속개를 고대하는 우리로서는 금년에 미국이 전략적 신축성을 발휘하고 북한 역시 이 호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정종욱 아주대 교수·전 주중 대사
  • 강정구교수 주장 “北전쟁위협론은 허구”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6일 저녁 경남 창원에서 미래준비노동사회교육원 초청으로 열린 한 공개강좌에 “북한 전쟁 위협론은 허구”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는 취지의 글 등을 언론매체 등에 게재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그는 이날 “반일, 반중 감정은 용인되면서도 반미 감정만은 허용되지 않는 ‘미국 예외주의’의 기반은 주한미군 주둔 불가피론”이라면서 “하지만 그 근거인 북한전쟁위협론 등은 재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냉전기 이후 한반도에 퍼진 11차례의 ‘전쟁위기론’ 중 미국 주도하에 이뤄진 것은 9건이지만 북한주도는 2002년 2차 서해교전 한 차례인 만큼 미국전쟁위협론이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 [기고] 한류와 문화수출정책/최현주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상임이사

    한류가 아시아의 대표문화로 살아 남는 길은 무엇일까. 우리는 대부분 몇백만명의 관객이 극장에 왔다는 식의 한류의 상품성과 그 가치에 매달려있으며, 최근 들어 콘텐츠의 중요성을 다소 인식한 정도다. 그러나 아시아가 공동으로 수긍할 수 있는, 콘텐츠를 뛰어넘는 한류의 대표적 정신계를 파악하는 길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20세기 이데올로기의 실체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의 서양화 이후, 마르크스의 존재감은 우리에게서 지워졌다. 즉 좌파라는 이데올로기의 실체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물론 분단 조국이라는 현실이 우리가 갖고 있는 특수 현상이기는 하지만 국제 관계라는 커다란 지도를 펴놓고 볼 때, 우리는 어쩌면 진정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과거의 습관적 정신계에 집착하며 좌파·우파를 거론하는지도 모른다. 즉 마르크스의 실체보다는 사라진 마르크스의 그림자에 시달리며, 집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라진 이데올로기의 부재감 속에서 문화가 대중의 정신계를 지배하며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실제적으로 우리보다 약 60년 전 문화 수출에 성공한 미국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실례가 잘 나타나 있다.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선언되자, 미국은 1950년대말과 60년대초, 문화 수출을 통해서 타국에 자신들의 정신계를 심는 전략을 쓰게 된다. 그들은 문화의 본질이 정신계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자유’라는 미국의 대표정신계를 정립시켰다. 그리고 이 정신계를 동부 유럽과 제3세계의 대중들에게 심기 위한 통로로 할리우드와 로큰롤 같은 대중문화를 창출해냈다. 이 과정에서 미정부는 대중문화를 통해 ‘자유사상’을 전파함으로써 공산화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유럽에 맞바람을 일으켰고, 자유사상을 20세기의 새로운 문화정신으로 수출하였다. 또한 뉴욕에 예술가들을 위한 미술시장을 형성함으로써 유럽의 예술가들을 뉴욕으로 이주 정착하게 만들었다. 세계예술의 중심지가 파리로부터 뉴욕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순수예술을 움직이는 것도 결국에는 자본의 힘이라는 결론으로 치닫게 하였다. 즉 ‘자유’와 ‘자본주의’라는 미국의 정신계를 세계에 심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은 문화 수출 전략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이유에는 그들만의 숨겨진 목적이 있었다. 즉 첫째, 유서 깊은 유럽문화와 비교할 때 그들이 갖고있는 문화적 자격지심을 극복한다. 둘째, 미국민의 정신적, 문화적 자존심을 세움으로써 정치적 위상을 부각시킨다. 셋째, 미국 문화의 세계화에 따른 시장을 확장한다. 넷째, 자유사상을 유럽의 대중에게 이식함으로써 유럽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20세기 문화수출 전략의 중심에는 1960년대 미국의 문화제국주의,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이 제3세계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도전하기 시작한 ‘후기식민지 문화 연구’가 있다. 이들은 자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화와 그 구성원들의 ‘정신계’를 파악하면서 그에 따른 문화적 전략을 모색해왔다. 이와 같이 문화 수출 전략이란 정신계의 장악을 노리는 헤게모니 전쟁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21세기,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정신계를 바탕으로 탄탄한 문화전략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문화는 내용과 형식이 함께하는 진정한 문화 수출 사례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강력한 문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현주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상임이사
  • 美, 적성국가 특수상황 발생시 정권교체 추구·핵공격 경고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다음달 발표될 미국 국방부의 4개년 국방보고서(QDR)는 분쟁지역과 개별 적성국가의 특수상황에 따라 정권교체를 추구하거나 핵 공격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각각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맞춤형 억지력(Tailored Deterrence)’을 핵심개념으로 하고 있다고 워싱턴의 군사소식통이 23일(현지시간) 전했다. 이같은 개념은 냉전시대부터 이어져온 ‘단일 전략(One Size Fits All)’을 전면 재조정한 것으로 2001년 9·11테러 이후 수정된 미 국방 정책을 반영한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다. 미 국방부와 의회 등으로부터 QDR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이 소식통은 QDR에 특정 국가의 경우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되겠지만 구체적으로 대상이 되는 나라를 지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QDR에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강력한 대응도 포함될 예정이지만 역시 특정 국가의 이름은 거명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군사전문지인 디펜스뉴스는 이날 QDR에 현재 진행중인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하기 위해 획기적인 개념과 전략이 담길 것이라고 보도했다. dawn@seoul.co.kr
  • [월드컵 인사이드] (2) 독일월드컵의 비밀

    [월드컵 인사이드] (2) 독일월드컵의 비밀

    독일월드컵은 개막전(뮌헨)과 개막식(베를린) 분리 방침으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베를린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인 대규모 개막행사를 “그라운드 상태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취소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당초 방침대로 개막전과 개막식은 분리하되 개막식은 베를린 인근 브란덴부르크에서 간소하게 치르는 것으로 잠정 결정됐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첫 대회부터 2002한·일월드컵까지 모두 17번의 대회가 열렸지만 개막식과 개막전이 분리돼 치러진 경우는 없었다. 사상 최초로 공동개최로 열린 한·일월드컵도 서울상암경기장에서 개막식과 함께 개막전이 열렸다. 다소 무리라고 여겨질 만큼 개막전과 개막식을 분리하려는 데는 복잡한 독일 내부의 정치적 기류가 자리잡고 있다. 당초 슈뢰더 전 총리가 총리직에 있을 때 강력한 라이벌인 에드문트 슈토이버 뮌헨 주지사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슈토이버 주지사가 올해 총선 출마가 확실시되는데 월드컵 개막전에 힘입어 초점이 그에게 맞춰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당초 자원봉사자 7000여명을 동원하는 등 대규모 개막행사가 기획된 점과 슈뢰더 전 총리가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 대규모 개막전 행사가 취소된 점도 이런 ‘음모설’를 뒷받침해 준다. 물론 뮌헨시측에서는 아직도 개막식 분리에 반발하고 있다. 뮌헨시는 “베를린은 결승전 장소이기 때문에 개막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남북으로 갈린 독일 축구의 지형도도 한몫했다. 클럽들은 팀 명칭에 도시나 지역이름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대립관계였던 남부의 바이에른과 북부의 보루시아(프로이센) 지방의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19세기 후반 프로이센 주도로 이뤄진 최초의 독일 통일 이후 남동부에 위치한 바이에른은 문화적 우위를 자랑하며 지금도 독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도 이런 대결 구도가 이어졌다.1969∼77년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MG)는 리그 우승을 각각 4회,5회 차지하면서 치열하게 싸웠다. 이것이 결국 독일 축구를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특히 슈토이버는 바이에른 뮌헨의 골수팬으로, 슈뢰더 전 총리는 북부지방의 ‘안티 바이에른 뮌헨’의 선봉장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광적인 팬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입김과 지역간의 라이벌 의식에도 불구하고 독일 전체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다. 개막식이 언제 열리는지도 확실하게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오로지 경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현지 한국응원단장인 선경석씨는 “일찍부터 독일정부가 대대적인 홍보를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개막전과 개막식 분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월드컵 음모론의 역사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월드컵에는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음모론’이 대회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강팀들이 예상 이하의 성적을 내거나 주요 게임에서 패했을 경우 음모론을 제기하며 변명거리를 찾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지난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대회에서부터 제기됐다. 프랑스는 잉글랜드에 패하자 잉글랜드의 승리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비난했다. 프랑스는 러시아 출신의 선심이 애매한 상황에서 터진 잉글랜드 제프 허스트의 골을 인정한 사실을 음모론의 근거로 들었다. 78년 아르헨티나대회 때도 홈팀인 아르헨티나가 조별리그에서 페루를 4골차로 이겨야 결승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 6골을 성공시킨 뒤 파죽지세로 우승까지 하자 일부에서 온갖 의혹을 제기했다. 82년 스페인대회 때는 같은 문화권의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음모론의 중심에 섰다. 두 나라간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서독은 반드시 이겨야 2차리그에 진출하고, 오스트리아는 대패하지만 않으면 2차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서독이 일찌감치 선제골을 넣은 뒤 줄곧 코미디 같은 플레이로 일관한 끝에 나란히 1차 리그를 통과해 논란이 일었다. 결국 이 대회 이후 1라운드 마지막 두 경기를 동시에 치르는 것으로 경기방식이 변경됐다. 94년 미국대회에서는 우승후보였던 콜롬비아가 미국에 패해 예선 탈락한 것을 두고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당시 콜롬비아 선수들은 이기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 결국 자살골을 넣은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귀국한 뒤 팬의 총에 맞아 죽는 불상사가 발생했다.98년 프랑스대회 결승전 때는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시합 전에 기절을 했는데도 출전한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나이키사가 마케팅 때문에 그의 출전을 고집해 사실상 10여명이 싸운 셈이 됐고, 결국 프랑스에 0-3으로 완패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부터는 이탈리아가 잇단 음모론을 제기해 빈축을 샀다. 이탈리아는 한국과의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패한데 이어 유로2004 때도 8강 진출에 실패하자 스웨덴 덴마크 등이 고의로 2-2로 비겨 이탈리아를 예선탈락시켰다는 북유럽 국가의 ‘바이킹 담합설’을 주장했다. 또 2006독일월드컵 조추첨에서는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가 항아리에 든 공의 온도 차이를 이용해 체코-가나-미국 등 강호들이 속해 있는 E조에 배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74년 서독 우승 ‘동독 덕분’ 통일전 서독-동독의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A매치(국가대표간 경기)는 단 한차례밖에 없었다.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냉전시대였던 만큼 양쪽 모두 만나는 것 자체를 껄끄러워했다. 특히 승패가 확실히 구별되는 스포츠경기에선 각자의 자존심을 우려해 맞대결을 기피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서독-동독의 맞대결은 묘하게도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이뤄졌다. 그해 1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조편성에서 동독과 서독이 호주 칠레와 함께 나란히 1조에 편성되자 행사장은 크게 술렁거렸다. 동독아나운서는 순간 얼어붙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이 경기 입장권은 이틀 만에 매진됐다.6월22일 함부르크 볼크스파크스타디움에 6만여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이미 서독과 동독이 이전 경기에서 각각 2승과 1승1무를 거둬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였다. 그러나 양측은 자존심이 걸린 만큼 양보는 없었다. 시합은 친선분위기로 시작됐지만 당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서독이 고전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고조됐다. 결과는 동독의 1-0 승리였다. 서독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서독 헬무트 쇤 감독은 선수들과 대책을 논의한 끝에 TV에 출연해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까지 마련했다. 또 서독 선수들이 감독에게 팀 라인업과 전술을 바꾸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물론 이날 패배로 서독 국민들은 크게 실망했지만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2차리그에서 강적 네덜란드를 피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이후 서독은 순항을 거듭하면서 동독전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났고 결국 우승컵마저 거머쥐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13억 대이동 중국춘제

    설인 ‘춘제(春節)’가 다음주로 다가옴에 따라 중국 대륙이 술렁이고 있다.‘13억의 대이동’으로 벌써부터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면 경제호황속 해외여행 붐으로 세계 여행업계를 설레게 하고 있다. 중국과 타이완 양측은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설 직항 전세기를 운영, 양안간 해빙을 기대케 하고 있다. ■ 1000만명 출국…고액 상품 불티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전세계 관광업계가 다가올 중국의 ‘춘제 특수’에 설레고 있다. 20일 현지 업계는 오는 29일 춘제를 전후해 1000만명가량의 중국인이 중국을 벗어나 해외여행에 나설 것으로 추산했다.1인당 경비를 500달러로 잡을 경우 50억달러의 여행경비가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해외관광지로는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지역과 한국, 일본 등 중국 인근 지역. 하지만 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몰디브 등 서남아권과 미국과 유럽 여행 등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올해의 경우 최근 경제호황을 반영하듯 가격이 비싼 관광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고, 대학생들도 단체 해외여행에 나서고 있다. 상하이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1인당 1만 5000위안(약 187만원)에 나온 몰디브 여행 프로그램이 출시 1주일만에 매진됐다.”면서 “미국이나 유럽 상품도 참가율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유럽 국가들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중국 관광객을 모집하는 다양한 행사를 중국에서 진행했다. jj@seoul.co.kr ■ 작년이어 직항 전세기 운항20일 오전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를 떠난 중화항공(CAL)소속 CI585 전세기를 시작으로 중국에 체류중인 타이완인들의 대규모 ‘설 귀성작전’이 시작됐다. 이날 CAL 전세기는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공항에 도착한 뒤 귀성객들을 싣고 타이베이로 돌아왔다. 중국·타이완 분단 56년만에 지난해 처음 시작된 춘제(설)기간 직항 전세기 운항은 올해도 운영된다. 양측에서 12개 항공사가 참여해 오는 2월7일까지 중국 4개와 타이완 2개 도시 사이에서 왕복 72편을 띄운다. 중국은 지난해 운항지인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廣州) 등 3개 도시에 샤먼(廈門)을 추가했다. 타이완은 지난해처럼 타이베이, 가오슝(高雄)에 전세기를 운항한다. 지금까지 중국에 거류하는 타이완인들은 홍콩 등에서 타이완행 비행기나 여객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중국과 타이완 사이의 정치적인 냉전으로 여전히 정기항로가 없기 때문이다. 타이완정부는 중국과의 직항로를 거부해 왔으나 중국에 장기거주하는 타이완인들이 늘면서 이들의 요구로 전세기를 허용하게 된 것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철도 운행 중단…수만명 발 묶여|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당국이 우려하던 춘제 교통대란이 현실로 나타날 조짐이다. 20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허난성(河南省) 일대에 폭설이 내려 이 일대 모든 고속도로, 항공 및 철도편 운행이 중단됐다. 정저우(鄭州) 기차역에선 6만여명이 발이 묶여있다. 이 지역은 지난 17일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해 19일까지 17㎝의 눈이 내렸을 뿐이다. 하지만 눈이 내린 면적이 넓은 데다 내린 눈이 얼기 시작하면서 부분적으로 열차편이 조금씩 연발·연착했고 마침내 그 파장이 전국으로 미치기 시작했다. 마침내는 ‘춘운(春運)’, 즉 춘제 특별이동기간 빽빽이 짜여진 모든 철도 운행에 영향을 끼치게 됐다. 특히 남북간 철도의 축인 베이징~광저우간 철도편도 차질이 빚어져 전날 베이징 서부역에서만도 3만여명이 밤을 새워야 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교통당국은 19일 밤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황색’ 교통경보를 내렸으며, 교통부 장관이 현장에 손수 나와 진두 지휘했다. jj@seoul.co.kr
  • 420대1 경쟁 뚫은 日모녀 한류스타 동경해 어학연수

    420대1 경쟁 뚫은 日모녀 한류스타 동경해 어학연수

    한국을 배우려고 한류스타의 나라에 유학 온 일본인 모녀가 있다. 구보타 가즈코(51)·아야노(17) 모녀. 히로시마에서 온 이들은 지난 9일부터 3개월 과정으로 고려대 한국어문화센터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은 이웃나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엄마는 최고령, 딸은 최연소 학생 이들을 특별한 경험으로 이끈 것은 지난해 일본내 한류전문 출판사가 주최한 한국어 모녀 어학연수 희망자 공모. 한쌍의 모녀에게 3개월간 학비와 체류비를 전액 지원하는 대신 한국 생활을 날마다 일기로 적어 사진과 함께 무선인터넷에 공개하라는 조건이었다. 평소 무선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을 자주 접해 온 ‘한류 마니아’ 아야노양이 공모에 참가하자고 엄마를 졸랐다.3차례 심사를 거쳐 420여쌍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발의 영예를 안았다. 딸은 지난해 2월부터 틈틈이 한국말을 공부해 왔고 엄마는 ‘가, 나, 다, 라’부터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반이 서로 다르다.“우리 딸이 제일 무서운 선생님이죠.‘이런 건 제때 제때 외웠어야지.’‘이건 활용법이 틀렸잖아.’라면서 어찌나 무섭게 혼내는지.” 아야노양은 가장 어린데다 성격이 활달해 반에서 인기가 좋다.“일본에서는 한국어 강좌를 들으러 가도 아줌마나 아저씨들뿐이었어요. 이번에 한국에서 나이 비슷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돌아가고 싶어요.” 가즈코씨는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워낙 한국어에 대한 기초가 없어 처음에는 “몰라요.”만 연발하며 당황해 했지만 지금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고 들은 단어들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게 마냥 뿌듯하다. 길거리를 걸을 때에도 간판들을 더듬더듬 읽으며 신기해 한다. ●딸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선생님 이들이 한국에 빠진 것은 2004년 한국 드라마를 접하면서부터였다. 드라마 ‘풀하우스’와 ‘아름다운 날들’에서 받았던 감동은 지금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류스타 중에 엄마는 강동원을, 딸은 류시원을 가장 좋아한다.‘욘사마’(배용준)는 자기들 취향이 아니란다. 이번 한국행에 앞서 가즈코씨는 가슴앓이가 컸다.3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기 위해 오랫동안 해온 간호사 일을 그만둬야 했다. 한국에 가는 것을 반대하는 남편과 한동안 냉전을 벌이기도 했다.“일은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지만, 딸에게는 이번 연수가 더없이 소중한 체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50대 들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고요. 결국 남편도 1주일 만에 화를 풀더군요.” 가즈코씨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어려워져 걱정”이라면서 “우리 모녀를 보고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야노양은 “대학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공부를 해서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모녀는 20일 아침 일찍 강릉에 현장 학습을 떠났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여섯개의 얼굴을 가진 31歲 女社長

    여섯개의 얼굴을 가진 31歲 女社長

    퍽 능동적이고 결단력 있는 또는 억센 여자라는 인상. 집에 들어앉아 남편에게 바가지나 긁고 앉아 있지 못하는, 흔히 말해지는 ‘똑똑한 여자’ 라는 인상. 게다가 청산유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능변이다. 충북 충주산. 창덕여중고때부터 梨大政外科를 졸업(60년)할 때까지 2년만 빼놓고 매 학기 상을 탔으니까 재원이란 말을 들었음직하다.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간 이유는, 『외교관이 되려고 했어요. 외교관이 되려는 막연한 꿈에 들떠 1학년때 외국인 상대로 영어를 배웠어요. 2학년때는 일년동안 행정과 3부 고시공부를 했는데, 준비를 너무 안해서 고배를 마셨어요. 한참 「서클」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4·19직후 고대 모의국회(제10회)에서 국무총리상 (「스피치」상)을 받았죠. 이걸 계기로 서울대 행정대학원 토론회, 육사토론회에도「두개의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참석했어요』 4학년 1학기때는 중부서 유치장에 4일간 구류, 『인생을 많이 살고』나온 일도 있다. 『제가 각 대학 대표들로 구성된 「汎民靑」의 최고 간부였어요. 그때 「민족일보」라는 신문이 있었죠. 거기 정치에 관한 글을 하나 투고했는데 무슨 문구가 하나 석연치 않다고 경찰에서 나를 수배했어요. 형사가 학교와 집으로 잡으러 왔는데, 이 원섭 교수님과 박 관숙 교수님이 피신해 있었어요. 후배 4명이 잡혔는데, 申아무개가 자수하면 모두 석방시킨다. 자수해라 이런 방송을 했대요. 5·16혁명후 5일만에 남대문경찰서로 자진 출두했어요』 『「汎民靑」은 순수한 연구단체였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잡혀왔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반말조로 묻는 거예요. 기분이 나빠서 서장 좀 만나자고 반항했죠. 그랬더니 「다이아 팔찌」좀 차라는 거예요.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죠. 할 수 없다고 잘라서 말했더니 「은숙이는 역시 배짱이 두둑하다」고 해요. 「말은 많은지 몰라도 배짱은 없다」고 말했어요』 차에 실려 간 곳이 중부경찰서 유치장. 『맨 위칸엔 민주당 거물들이 갇혀있고 가운데 칸에서 우리 동료들이 나를 보자 「브라보!」「빅토리!」하며 반기더군요. 가슴이 답답해지며 눈물이 나오더군요. 밤 열한시에 주먹밥이 나오는데 동료들은 머리 숙이며 피했어요. 나는 먹어봐야겠다 마음먹고 쪼갰더니 「다꾸왕」이 들어 있었어요. 입에다 탁 넣었더니 구역질이 콱 올라와요. 각종 범죄를 저지른 여자들과 아편장이들도 한방에 있었는데, 밤이 되니까 춤추는 여자에, 노래하는 여자…거기서 인생 많이 산 셈이지요』 외교관이 되려던 생각을 버리고 「서클」활동도 끊었다. 정치외교과 아닌 진짜 정치가 해보자는 배짱이 생겼다. 당한데 대한 분노가 지배적인 감정이었다. 5·16후 申씨의 가정은 기울기 시작. 4학년때 유학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빨리 졸업해서 취직을 해야만 집을 꾸려갈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딸 둘. 申銀淑씨는 둘째 딸. 4학년 2학기부터 취직준비로 「타이프라이터」를 배웠다. 졸업후 공보부 산하단체인 내외문제연구소 총무로 취직. 당시 공보차관 李元雨씨는 이대정외과에서 외교사를 가르친 은사였고, 李씨의 힘으로 내외문제연구소에 쉽게 취직. 62년2월1일부터 63년8월까지는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63년9월1일부터는 민주공화당 경기도지부 부녀간사가 되고 총선거때는 경기도 지구 유세위원으로 지명되어 李百日 후보를 위해 돌아다니며 연설도 했다. 63년 연말에 약혼했고 64년2월 지부를 그만두면서 결혼. 신랑은 당시 陸寅修의원의 비서관이었던 金鍾達(37·현재 培洋산업 상무이사). 그러니까 陸의원과 이백일의원이 중매를 선 셈. 『아빠는 李孝祥의장을 모시고 올라온 경상도 사나이였는데, 독특한 경상도 사투리에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웠어요. 저렇게 무뚝뚝하고 건방지고 돼먹지 않은 남자가 있나 생각했죠. 전화로도 건방지고 돼먹지 않았다고 막 싸웠어요. 총각으로 보이지도 않구요. 어머니가 大邱(신랑의 고향)까지 내려가서 신랑의 신상을 파악하느라고 답사했어요. 이효상의장이 보증을 섰고 주례를 서 주셨어요』 결혼하자 청량리에 5만원짜리 전세를 얻었다. 『결혼하니까 내 월급은 만원이 넘는데 아빠 월급은 7천7백원, 세금 빼고 뭐 빼고 나서 6천원 갖다주었어요.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생각에 숨 막히고 앞이 캄캄하더군요. 내 자신이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본 결과 바가지 긁는 게 소용 없다는 걸 알고 있었죠. 비서관 봉급이라는 게 뻔한 거고, 도대체 월급장이한테 바가지를 긁는다는 건 도둑질해오라는 거나 다름 없는 거예요. 때때로 친정 보조도 받았어요』어떻게 곤란을 타개하느냐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 『비서관들한테 전화를 놔주었는데, 그걸 놔서 팔았어요. 아빠는 비서관 생활 3년만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데로 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빠 직장 그만두기 전에 내가 뭘 해야겠다. 공백 메우기 위해 뒷받침하자고 생각했어요. 청량리의 새「빌딩」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계약했어요. 양장점, 미장원, 이것 저것 생각하다가 망해봤자 본전인 장사 하자 그래서 식품점을 차렸어요. 안되면 먹어서 없어지는 거니까요』 겟돈 40만원과 친구 돈 30만원을 빌어서 70만원. 67년 선거때 아빠는 옥천에 내려가고 가계는 크게 잘되지 않았으나 1할 장사는 되었다. 이자 꺼가면서 한 달 수입 4만여원. 셋째 아기를 배고 있었으므로, 6개월만에 가게를 90만원에 팔았다. 아빠는 대한통운으로 옮겨서 대구 지점으로 내려갔다. 『90만원을 어떻게 안까먹고 싹을 길러서 사느냐 생각하다가 이자를 놓았어요. 아빠는 수습사원으로 월급 7천원을 받았는데, 대구 하숙비가 9천원이었거든요. 내가 하숙비를 보태야 할 입장이었죠. 마음은 초조하고 이런 식으로 있다가는 2, 3개월안에 다 까먹겠다 싶더군요. 아기낳고 회복도 되기 전에 퉁퉁 부운 몸으로 친구를 찾아다녔어요』 무슨 장사를 할까? 「아케드」양품점, 충무로 양장점 등으로 친구를 찾아 알아보았다. 딸 둘 낳고 아들도 낳았으니 인제는 돈버는 문제만 남았다는 생각. 숙대를 나온 가까운 친구가 하는 다방을 찾아갔다. 신설동 「로터리」의 「명」다방. 처녀가 다방을 어떻게 하느냐?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직접 한다기보다 「마담」과 「레지」가 한다. 네가 주인인지 사람들이 모르느냐? 아무도 모른다. 완전히 기업화되어 있고 학부출신들이 많이 한다. 물론 돈도 상당히 벌린다 등등의 정보를 입수. 자주 찾아가면서 결심을 얻었고 마침내 태평로에 다방 「영진」을 차렸다. 『아빠는 없고 아이 낳은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몸이 퉁퉁 부워 있는 상태였어요. 이야기만 들어서는 납득이 안갔어요. 망설일 것 없이 부닥쳐 보자 결심하고 뭐 한다는 얘기 안하고 친구와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마련했죠』 아빠한테서는 수시로 장거리전화가 왔다. 다방을 하니까 주로 다방에 나와있는 시간이 많았고 밤에도 집을 비우는 형편. 아빠가 밤에 대구에서 집으로 장거리전화를 해보면 주로 없었다. 수상하다! 『전화로 좋은 사람 있으면 가라는 거예요. 밤마다 집에 없으니까 완전히 오해한 거지요. 올 날짜도 아닌데 뛰어 올라 왔더군요』 밤에 부부가 마주앉았다. 날카로운 긴장과 냉기. 아내 申씨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도장을 내 놓는 거예요. 이혼하자는 거죠. 나는 잘 살기 위해서 한거다, 하지만 당신이 그만 두라면 그만 두겠다고 말했어요. 어쨌든 잘못했다고 했죠. 남편 허락 없이 내 마음대로 한 거니까요. 밤새도록 냉전을 했습니다』 이튿날 申씨는 남편을 이끌고 전부터 아는 사이인 「초원」다방 주인을 찾아 갔다. 남편에게 다방을 재인식시키기 위해서. 마침내 남편 金씨는 꽃다발을 사들고 친구들과 함께 「영진」에 입장, 아내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다. 다방 1년. 자기 나름대로 비교적 마음에 드는 일을 해보자고 경양식집 「그라찌에」를 시작했다. 종업원 20명. 「호스테스」와 종업원들을 될 수 있는대로 학부 출신으로 확보할 예정. 『특히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자라고 해서 여자보다 돈 버는 재주가 더 뛰어나다거나 남편을 돈버는 기계로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집에서 바가지만 긁을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무얼 했으면 좋겠어요』 1남2녀. 5살 꼬마는『엄마는 왜 매일 나가?』라면서 불평. 그래서 엄마를 잊으라고 「피아노」를 사주었다. 한편 5시~7시까지 낮잠을 재우는 대신 밤에는 1시까지 놀아줌으로써 엄마와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없애주려고 한다. [ 선데이서울 69년 5/25 제2권 21호 통권 제35호 ]
  • “로마의 전철 밟는 미국의 폭주”

    “로마의 전철 밟는 미국의 폭주”

    제국의 흥망을 다룰 때 가장 흔히 등장하는 예가 로마다. 기원전 1세기부터 고대 서양 최대의 제국으로 500여년을 지탱해온 로마가 멸망하는 과정은 이후에도 여러 제국의 등장과 멸망에서 상당 부분 되풀이되었기 때문. 새뮤얼 헌팅턴을 비롯한 많은 세계적 지성들은 로마의 쇠퇴가 지나친 해외팽창에 의한 제국화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로마의 제국화가 결국 내부갈등을 낳고 이것이 로마 공화정의 붕괴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오늘날 로마의 전철을 밟고 있는 나라로 미국을 지목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점으로 50여년에 걸친 동·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 제국화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모래의 제국’(로버트 메리 지음, 최원기 옮김, 김영사 펴냄)은 서양 지성사의 두 흐름인 역사 진보론과 역사 순환론의 관점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문제점들을 파헤친 책이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외교정책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서구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를 외친 ‘역사의 종말’, 그리고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화’로 구체화된 역사 진보론이다. 인류가 원시-야만-계몽-문명시대를 거쳐 단계별로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진보를 계속할 것이라는 진보의 관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 진보론의 반대편에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로 대표되는 역사순환론이 있다. 각기 다른 문명이 흥망성쇄를 거듭한다는 이 관념은 20세기 슈펭글러와 토인비를 거쳐 오늘날 역사진보론의 폭주를 견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백악관을 출입했던 저자는 역사순환론의 시각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세계를 자기입맛에 맞게 재편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십자군 같은 등장이 위험천만한 자살행위라고 경고한다. 더욱이 내정간섭, 정권교체, 선제공격이라는 미국의 거침없는 행보는 역사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또 미국의 핵심 정치세력인 네오콘(신보수파)의 실체를 보여준다. 네오콘은 ‘미국은 특별하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신세계를 환영하며, 세계의 여타 국가들이 미국이 제시하는 이상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선 그들의 고유문화를 포기하게끔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냉전 종식 이후 이들이 주도하는 미국의 해외개입정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발칸반도에서 민족·종교간의 해묵은 증오를 인식하지 못하고 문명의 경계를 넘어 이슬람 편에 섰으나, 현재 보스니아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상대로 싸우는 이슬람부대를 양성하는 집결지가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진정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이 직면한 전쟁이 ‘문명의 충돌’시대라는 현실인식과 함께, 국제적 개입을 최소화하라는 것이 저자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1만79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경기 예비후보자 워크숍’ 강연대결

    “색깔론 박근혜 대표와 민주화 운동 김근태의 해볼 만한 싸움”(김근태 의원·GT) vs “패배의식에서 당을 건져내 지지율 1위를 탈환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정동영 상임고문·DY)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DY와 GT간 차별화 경쟁이 치열하다.13일 두 사람의 공식 발언과 동선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두 라이벌은 이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경기도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워크숍’에 시간차로 참여, 강연 경쟁을 벌였다. 오전 강사로 나선 김 의원은 “냉전적 특권세력에 반대하는 모든 양심적 세력이 모여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면서 “민주주의 발전이야말로 한류를 일으키는 문화의 힘”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로 규정하고,‘민주화=김근태’라는 상징성을 내세운 셈이다. 정 상임고문은 오후 강연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우리당 간판으로 되겠는가.’라는 패배의식이 만연해 있다.”면서 “패배의식에서 우리당을 건져내 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념경쟁 구도를 부각시키기보다 희망을 갖고 어려움을 같이 이겨나가자며 정서적 연대에 호소한 것이다. 앞서 정 상임고문은 오전 SBS라디오에 출연, 당·청 관계 복원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없는 여당은 여당이 아니고, 여당 없는 대통령은 불안정한 구조 위에 서게 된다.”며 대통령 탈당 시나리오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친노’와 ‘반노’식의 소모적 갈등에서 벗어나 당·청이 책임있는 자세로 힘을 합쳐야 지방선거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황우석 교수 파문과 관련,“황 교수가 머리 숙여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으니, 황 교수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회를 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이날 민주노동당과 한국노총을 잇따라 방문, 정체성 부각을 시도했다. 김 의원은 “영남과 수도권은 한나라당, 광주와 전남은 민주당, 충청은 국민중심당으로 돼 있는 것은 지역중심의 재난적 상황”이라며 반(反)한나라당 연대를 시사했다. 하지만 권영길 임시대표는 “광주 호남에서 그렇게 자신없어요.”라며 우회적으로 부정적인 의사를 피력했다. 비정규직 문제 등 구체적인 정책 사안에서 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 의원은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구혜영 박지연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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