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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군통신 단절 파장] 北 對美협상·내부단속용 빗장걸기

    ‘키 리졸브(Key Resolve)’ 한·미 연합군사훈련(9~20일) 첫날인 9일 북한이 던진 ‘군통신 차단’ 조치와 ‘전시준비 태세 명령’ 발동은 다목적 용도의 정치·군사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는 북한이 지난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을 통해 “남한 민항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발표한 데 이은 추가적 조치다. 대남·대미 압박 강도를 단계별로 높이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우발적 충돌 가능성 커져 일단 남북한 군당국간 직접적인 채널인 군 통신이 차단됨으로써 양측의 우발적 군사충돌 위험성이 커지게 됐다. 또 우리 국민의 개성공단 왕래가 차단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무력충돌 발생시 개성 체류 인력들의 억류 상황도 이론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남북관계가 말다툼에서 실질적인 단절 관계로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도 한층 커지고 있다. 이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발동한 ‘만반의 전투준비 명령’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0~80년대 팀스피리트 훈련 때 북한이 보인 전형적 대응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조치가 한·미 연합훈련 기간으로 한정된 점은 북한 역시 정치적 고려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당장 쓸 수 있는 카드 중 제한적이지만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수단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키 리졸브 훈련 후 해제될 것” 국방연구원(KIDA) 김태우 국방현안연구위원장은 “민항기 위협과 통신선 차단 등 일련의 북측 조치가 키 리졸브 훈련 기간으로 제한된 것은 훈련 종료 후에는 해제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입체적으로 부각시키되 훈련 이후에는 미국과의 대화 재개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같은 맥락이다. 북측은 남측 민항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를 할 때에도 키 리졸브 훈련기간으로 제한했다. 오히려 군 통신선 차단 조치보다 최고사령부가 내린 ‘전시준비태세 명령’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후계체제와 관련, 내부 위기감을 고조시키면서 체제 결속을 겨냥한 대내용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1993년 3월 북한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한 후 준 전시상태가 선포된 같은 해 4월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됐다. 한편에서는 ‘전시준비태세 명령’이 미국과 일본이 시사한 북한 광명성 2호의 요격 움직임에 대한 사전 차단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북한이 이날 요격 행위에 대해 “즉시 대응타격”을 공언하고 나선 것도 사전 조치적 성격이 짙다. ●美에 양자대화 요구 메시지 북한의 으름장은 대내적으론 체제 결속의 고삐를 죄는 수단으로, 대외적으론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촉구하는 정치적 메시지로 풀이된다. 국방대 김연수 교수는 “북한으로선 통미봉남 전술의 하나로 한반도 긴장 고조가 정점에 이르게 되면 북·미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시론] 전진? 후퇴? 한반도 새 기류 갈림길/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시론] 전진? 후퇴? 한반도 새 기류 갈림길/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2009년 3월 한반도 지형이 변하고 있다. 북한 내부의 변화에서부터 동북아시아 국제관계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새판 짜기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새로 출범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와 곧 구성될 북한의 김정일 3기 체제가 있다. 조만간 일본의 내각에도 변화가 예상되며 중국 역시 개방 이후 최대의 경제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 중에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2년차를 맞아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의 수장을 교체하면서 심기일전 새로운 한반도 질서 개편에 대비하고 있다. 북핵문제의 표류와 미사일 발사 움직임, 그리고 북쪽의 일방적인 기본합의서 파기와 남북관계 전면대결상태 선언 등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현 상황은 북한의 선택 여하에 따라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질서가 구축될 수도 있고,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다. 미국의 신임 대북정책 고위대표인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가 중국, 일본, 한국을 순방 중에 있다. 보즈워스 특사의 직함이 말해 주듯 오바마 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보다 큰 틀에서 과감하게 접근하려 하고 있다. 중단된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고 검증문제를 포함하여 3단계 북핵폐기를 위한 본격적인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다. 성 김 북핵특사가 새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로서 핵문제 해결에 전념하는 한편 보즈워스 특사는 미사일문제를 비롯해 미국관계 정상화와 함께 북한 인권문제의 전반적 개선을 위한 미국 정부의 대북한 정책을 총괄 조정하게 된다.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간 고위급회담도 예상되고 있으며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체결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등 포괄적인 해법이 제시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과의 긴밀한 협조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관련국들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스마트파워 외교’를 적극 전개하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채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인 위협을 지속하고 있지만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보즈워스 특사의 행보를 보더라도 북한의 강경 모험주의 정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모든 남북간 합의 이행을 존중하면서도 원칙을 고수하며 북한의 선(先)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8일로 예정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통해 김정일 3기체제를 출범시키고 김정일 이후 후계구도의 정지 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벼랑끝 전술을 즐겨 사용했지만 실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극적으로 정책 변화를 시도한 적이 많다. 만성적인 경제난과 민심의 이반현상을 선군정치나 대남 적대시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광명성 2호 인공위성 발사체로 선전하는 은하 2호 로켓 발사 역시 주변국의 우려만 고조시킬 뿐 내부결속이나 체제정당성 확보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2009년 봄 한반도에 새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한반도 지형 변화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 냉전시대식 반목과 대결로 회귀할 것인지는 북한 지도부 선택에 달려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민주노총은 내우외환에 빠져 있고 민주노동당은 ‘입법 전쟁’의 와중에 존재감이 엷다.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품었던 이들에게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왜 이렇게 됐을까..  국민승리 21부터 민주노동당 창당과 감격적인 원내 진입,그리고 그 뒤의 내리막길을 줄곧 지켜본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애초의 정당 설계가 잘못됐다고 단언한다.채 전 실장은 10여년 민주노동당의 부침을 지켜본 경험을 녹여내 지난 1월 심사를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을 통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중정당 모델을 따라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물적 기반으로 삼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화,탈이념화 상황에선 파편화된 노동자나 서민 대중을 대변하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짚었다.  ’진보에 길을 묻다’ 8회 주인공으로 3일 만난 채 전 실장은 “민주노총을 토대로 손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민주노동당 퇴조의 원인을 짚었다.2004년 원내 진입한 민주노동당은 이듬해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충격의 참패를 기록한 뒤 당내 헤게모니가 정파 대표에서 원내 의원에게로 옮겨졌는데 채 전 실장은 이런 흐름에서 원내정당 모델이 더욱 적실성 있는 대안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를 이번 논문에 담아낸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원내정당 모델은 “국민과 소통능력이 있고 정책개발 능력이 있는 원내 의원이 시민사회와 연계해 수평적이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축,생활정치적 요구들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이념과 계급,정파가 줄어드는 대신,서민들의 요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과 이 과정에서 드러난 욕구를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해진다.  민주노동당이 안팎에 과시했던 진성당원제가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정파 대표들에 의해 포획돼 사실 투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발언권이 폭넓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도 극복될 수 있다고 했다.그는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해 보수나 진보나 모두 ‘의회민주주의의 무덤’이라고 개탄했던 상황을 면밀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드러난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당 모델은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 모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물적 기반으로 삼는 조직된 노동자,정규직만을 더이상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비정규직이나 서민 대중을 위해 기득권을 버릴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진정한 환골탈태란 주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사학위 논문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녹여든 것 같다.  당 활동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했다.시민들을 설득하기가 힘들어졌다.어떤 정책과 이슈,쟁점 등에 대해 시민들을 설득할 만큼 잘 알지도 못했고, 전문성도 떨어졌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2004년 원내진출 이후 높아진 기대에 견줘 당내 정파싸움,민주노총의 권력 다툼과 부패 등을 보면서 당의 지지기반인 비정규직이 당에서 떠나는 것을 보면서 당의 전망과 집권 가능성을 회의하게 됐지만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했다.공부를 시작하고 여러 가지를 검토한 결과,지도부의 무능이나 이기심,오류 때문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른 변화를 당이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지구화 정보화 탈냉전이란 거대한 변화에 맞는 정당모델,정치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80년대식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당의 한계나 오류를 극복해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의정정책실장 등을 맡으면서 당내 갈등을 피부로 많이 느꼈을 것 같은데.  2004년 제1 정책위원회 정책국장,2005년 3월부터 의정실장을 맡으면서 정파 지도부와 원내 의원들의 갈등을 목격했다.갈등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당의 문제점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했다.  당시 당에선 대중정당 모델을 철저히 추종했고 원내정당화 모델을 철저히 반대했다.이를 견제하기 위해 오죽했으면 국회의원이 당 지도부가 될 수 없게 제도까지 만들었겠는가.중앙당 지도부는 의원들을 통제하려 했는데 현실은 국민들이나 일반 시민들은 의원들을 먼저 바라보았다.의원들이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선 자율권이 필요했는데 중앙당에선 통제하고 싶어했던 거다.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중앙당 지도부가 손을 들었다.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당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것은 이름도 모르는 정파 대표가 아니라 의원들이었던 것이다.따라서 당의 헤게모니 자체가 점차적으로 원내 의원들 중심으로 넘어갔고 당의 구조도 조금씩 바뀌게 됐다.    ●민주노동당 10년의 공과를 정리하면.  정당 사상 최초로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가 창당한 노동자계급정당,사회주의적 이념정당,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 독점적이고 편향적인 기득권층과 보수세력에 대항하여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다양하게 대변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 가능성을 2004년 원내진출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공이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또는 지구화,정보화,후기산업화,탈이념화 등의 달라진 시대상황은 과거 단일한 노동자 계급과 조직으로 뭉칠 수 있었던 정당에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화이트 칼라와 블루칼라,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조합원과 비노동조합원으로 파편화되고,노동자의 이익이 갈라지는 상황에서는 노동조합도 당도 유연한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그 변화의 시대에 하나의 이념과 단일한 위계조직을 강조하는 운동권 모델을 고집함으로써 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들의 복잡한 이익에 반응하지 못했다.결국 대기업 소속과 정규직,조합원으로 표현되는 상층노동계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되면서 다수의 비정규직과 약자들이 이탈하게 된 것은 그 한계라 할 수 있다.그 문제가 집약돼 나타난 것이 2005년 울산 북구 재선거 패배였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이 시대착오적인 계급환원주의 노선과 사회주의적 계급정당노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은 산업화시대에 유행했던 조직논리,이념논리,정당논리,이른바 대중정당모델에 집착했던 것이 오늘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울산 북구 패배 이후 2007년 대선을 앞두고도 같은 잘못이 되풀이된 이유는.  많은 불만과 문제 제기들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정당모델까지 검토하지 못한 것은 당이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모태로 출범한 한계라고 생각한다.민주노총을 토대로 상대적으로 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흔히 민주노동당의 두 가지 성역이 있다고 했는데 민주노총과 북한이란 성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정당모델을 원내정당 모델로 바꿨으면 오늘날의 위기가 없었을까,이런 역질문이 가능할 것 같은데.  원내정당화 모델을 생각한 것은 당의 헤게모니가 원내 의원 중심으로 넘어가는 국면과 맞물려서였다.울산 북구 패배 이후 당의 총체적 위기가 확인됐다.지지율이 18%에서 5% 이하로 바닥을 쳤다.울산은 노동자 밀집지역이어서 대중정당 모델이 가장 잘 발현될 수 있는 곳이었는데 패배를 했고 그 패배의 원인이 비정규직의 외면과 이탈 속에서 당이 망가진 것이었다.그 늪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이 그나마 국민들로부터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을 인정받은 의원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확인이 됐는데도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진 못했다.민주노동당은 대단히 위계적인 조직이다.그 조직에 아직까지도 민주노총의 헤게모니가 작용하고 있다.30%의 할당제가 관철되고 있다.국민적 차원에서 개방,분권적인 개혁,다양한 이념을 수용해야 한다는 전략 등이 철저히 가로막힌다.  2007년 대선 후보를 경선해야 한다는 안팎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다.개방형 경선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확인하고도 폐쇄적인 당원 직선제로 지분이 큰 정파들은 국민들이 원하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고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  민주노총의 한계이며 국민들의 지지를 확대하지 못한 자업자득이었다.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의 앞날은 어렵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다.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의 변화가 감지되나.  18대 총선 이후 많은 노력을 했다고 본다.하지만 미진한 것은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여전히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당을 개방화,분권화,네트워크화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의 기득권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4월 재보선에서 국민경선 대신 민중경선 으로 후보를 선출하려 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이탈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선거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논문의 문제의식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정당으로 대중정당 모델이냐 원내정당 모델이냐는 학계 논쟁이 있었다.최장집 교수 등이 얘기한 대중정당 모델이 시대적인 적실성이 있다고 보았다.원내진출 이후 당 생활을 해보니 한계가 많이 드러났다.사회 변화에 적응 못한 정당 모델을 추구한 결과라고 보았다.  대중정당 모델의 쇠퇴는 당지도부의 리더십과 운영상의 오류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배경 때문이었다.시대에 뒤처진 대중정당모델을 고집했을 때 이념과 정파의 편향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선 대중정당 모델을 포기하고 대안이 되는 모델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고 본다.  당의 위기가 닥쳤을 때 결국엔 의원들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의정 활동을 지켜보면서 이를 대중정당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것이 대안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 얘기들을 분당 이전부터 해온 것으로 아는데 반응들은 어땠는지.  비정규직을 더 많이 대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했지만 원인을 따질 때 그들은 사람의 문제,성품의 문제 이런 쪽으로 봤다.더 좋은 사람이 비정규직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정당모델을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론이다.    ●진보신당은 원내정당 모델에 부합한다고 보는지.  분당 이후 반작용으로 신규 당원이 입당하고 민주노총 같은 조직적 기반이 없이 출발했다는 점에서,노회찬과 심상정이란 두 전직 의원의 지지층이 흡수된 측면이 있어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역 의원이 없어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중정당모델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산업화 시대의 대중은 노동자 계급이라 할 수 있었다.후기 산업화 사회에선 대중이라 함은 비정규직,비노조원,화이트칼라처럼 어느 곳에 소속될 수 없는,유동성이 큰 사람들이다.비조직된 대중이 더 많다.위계적인 조직 구도가 아닌 네트워크화된 대중만이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유연성이 대중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동과 사회’ 지난해 12월호에 기고한 ‘노조원들은 시민적 다양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글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선진 노동자들이 왜 다양성을 잃고 기득권층으로 고착됐는지.  개인과 조직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위계적인 조직에 속하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없다.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개성이나 끼를 발산할 수 있다.계급환원적인 생각,집단을 궁극선(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전체주의적 사고로 고착화된다.특정한 사안에 대한 집단행동을 이끌어낼 땐 유리하지만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처음 창당 때는 진성당원제라는 당원들의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있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이념적으로 편향된 당내 정파 지도자들이 당을 포획해놓고 있었다.다수의 당원은 말을 사실상 제대로 못하고 기껏해야 투표하는 것이고 발언권이라든가 소통이 보장되지 않고 당내 민주주의에서 소외되고 자존감을 느끼지 못하니까 ‘페이퍼 당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참여민주주의란 이상이 당을 장악한 정파 엘리트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하니까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재미를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원들이 당에 묶여 있으면 정파가 시키는 대로 당의 눈치를 봐야 한다.소신있게 큰 이득을 위해 국민과 소통할 수 없고 당내 정파구도가 약화되고 의원들에 권력이 넘어가면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이 검증된 의원들이 국민들과 소통할 공간이 열렸다는 의미가 된다.    ●꿈꾸는 진보정당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진보라는 개념부터 시작하자.보수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 것이 진보의 논리지만 진보만이 진리라는 역편향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단성악(單聲樂)적인 구도가 있다.그러나 다양성과 복잡성 및 유동성이 커지는 시대에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진보가 필요하다고 본다.즉,진보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세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진보라는 시각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 중에 하나의 의견정도로,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잠정적인 결론 수준에서 존재하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저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공존방식으로서의 진보, 다양성 속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둘째.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할 수 있는 이상적 모델로서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 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모델이라고 믿는다.    ●그런 내용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보다 어떤 점에서 진전됐느냐 묻는다면.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된다고 본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지 않나.최장집 교수도 그런 점에서 지적당했다.촛불시위 때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에 반응하지 못했던 정당들의 한계를 봤다.이게 핵심이다.시민들의 생활정치에 대한 욕구에 반응하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념과 계급 정파가 줄어들더라도 서민들의 욕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이 있어야 한다.소통 속에서 발견된 욕구를 정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책 생산능력이 담보될 때 정당으로서 생존할 수 있다.원내정당 모델이 바로 그런 것이다.    ●두 당과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대중정당 모델에선 당의 이념과 게급,정파,조직이 강조되는데 이것이 약화될 것이다.당이 원내 의원 중심으로 가져가면서 유권자,시민사회와의 연계 부분이 강조된다.당원 중심을 벗어나 일반 유권자,지지자들도 당내 중요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시민사회의 요구가 전달되고 이것들이 의회에서 토의를 통해 합의되고 정책 결정이 되고 국민에게 성과물로 다가온다.    ●명칭은 원내정당 모델이지만 정당은 조그맣고도 시민사회를 향해 열려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 조직은 엘리트가 강조되는 게 당연하다.다만 행위자가 정파냐 아니면 국민들의 이익이나 선호에 접근할 수 있는 원내 의원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만큼 물적 기반이 없어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고정된 지지기반이 없어 불안정할 수있다.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잘 되고 있느냐 다시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민주노총이란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과거 지지기반으로 갈 수 있겠는가.간다면 상층 노동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금 더 좁아진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연성이 큰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데 느슨한 수준의 네트워크를 가능케하는 것은 정책능력과 소통능력 뿐이다.그때그때 이슈가 터지고 시민들의 요구가 터져나올 때 생활상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원내정당 모델이 대안이라고 본다.  원내정당 모델이 현실에서 나타날 때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날 것이다.하지만 대중정당 모델보다 낫다는 생각이다.원내정당 모델을 현실에서 구현할 때 당내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분산화하고 개방화할 것인가가 중요하다.진보신당의 지못미 당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새 이슈를 개발하고 정책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진보정당 통합이나 반(反)MB 전선에 참여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점증할 것이란 지적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을 수 있다.진보진영내에서 힘이 약하면, 함께 뭉쳐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의 의견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소수의 의견이 배제당할 가능성이 있다.진보정당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큰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채진원씨가 걸어온 길  늦깎이 초보 연구자라고 자신을 낮춘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국민승리 21에 1998년 입당해 지난해 진보신당과 분당하기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10년을 고스란히 지켜본 인물.단국대 사학과 88학번인 채 연구원은 민주노동당에서 경험한 희로애락과 한계를 바탕으로 2005년 경희대 정치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했고 지난 1월에야 어렵사리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됐다.  2004년 원내 진출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민생 법안인 ‘상가임대차보호법’과 ‘이자제한법’.정치개혁의 대표 법안으로 손꼽히는 ‘1인 2표 정당명부비례대표 도입’에 관여했던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창당 이후 정책위원회 제1정책조정위원회 정책국장으로 정치관계법을 담당했으며 이후 의정정책실장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과 정책 지원을 담당했다.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부인의 외조를 위해 중앙당을 사직한 뒤 평당원으로 남아있다가 지난해 3월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제안한 혁신안 ‘생활속의 진보’가 부결되자 탈당했다.현재 어느 당에도 몸담고 있지 않다.  전문연구자의 길을 걷는 한편 기회가 닿으면 의정활동이나 입법을 돕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국민은 ‘통제의 객체’가 아니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민은 ‘통제의 객체’가 아니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자연과 마주한 인간의 첫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공포’였다. 거대한 외부가 가하는 소멸과 질식의 공포였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음울한 책 ‘계몽의 변증법’에 따르면 인간의 본래적인 욕구는 오직 하나, ‘자기 유지’이다. 살아 있고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자연스럽고 강렬한 욕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소함이다. 생존이라는 원초의 본능을 충족시키기에도 너무나 모자란 인간의 힘이다. 생각해 보라. 생명을 걸고서야 품에 안는 노획물, 그럼에도 언제나 부족한 양식. 폭풍과 벼락과 풍랑 한가운데서의 삶, 기근과 추위와 질병 속에 스며드는 죽음. 삶의 매 순간, 자기유지의 인간이 절감한 것은 역설적으로 자기소멸의 숨 막히는 공포였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분(二分)을 배웠다. 대립적인 두 개의 항(項)으로 세계를 양분하였다. 해갈과 기갈, 포식과 기근, 인간과 자연, 친구와 적. 이 두 개의 항목은 정녕 상보(相補)적일 수 있다. ‘낮과 밤’처럼 서로 연결되어 순환을 계속하는 상사체(相似體)일 수 있다. 그러나 공포를 맛본 인간에게 이 둘은 상반의 맞섬말일 뿐이다. 한 쪽이 삶을 떠올린다면, 다른 한 쪽은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분적 사고가 태생적으로 가치편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디 원초적이고 생존과 연관된 것이기에 이분법은 가운데를 남겨두지 않는다. 오히려 양극(兩極)으로 그 칼날을 벼리는데, 자기 유지에 유익한 것은 밝은 것, 긍정적인 것, 선한 것으로 간주되며 유해한 것은 어두운 것, 부정적인 것, 악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렇기에 이분의 실제 도식은 ‘과’가 아니라 ‘대(對)’이다. 인간 대 자연, 친구 대 적, 우리 대 그들. “왜 날 죽이려 하는가, 난 비무장인데.” “넌 강 건너편에 살고 있지 않은가! 친구여, 만약 그대가 강 이쪽에 나와 같이 있다면, 그대를 죽임으로 난 살인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강 건너편에 살고 있기에, 그대를 살해하는 것은 정의이며 난 용사가 될 것이다.” 파스칼의 ‘팡세’ 한 구절. 자기 유지를 위해 인간은 ‘아(我)’ 이외의 것들을 강 건너의 ‘비아(非我)’로 못 박고, 타자절멸의 성스러운 전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결과는 무엇인가. 제노사이드(geno cide)로서의 역사, 곧 진보와 문명의 이름 하에 우리를 번성시키고 타자를 소멸시키는 역사. 오리엔탈리즘(oriental ism)으로서의 역사, 곧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자.”는 미명 하에 이른바 “합리적이고 정상적이며 성숙하고 도덕적인” 자들이 “비합리적이고 이상하며 유치하고 타락한” 자들을 짓밟는 역사. 제국주의와 전체주의, 나치즘과 파시즘이야말로 이러한 환멸의 디스토피아가 아니었던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의 상황이 극히 우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용산 참사’로 대변되는 작금의 모든 상황에서, 이분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흑 대 백, 선 대 악, 아군 대 적군의 저 서슬 퍼런 양분법이 펄펄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암울한 공멸(共滅)의 미래가 머리와 몸에 척척 감기기 때문이다. “리브 앤드 렛 다이(Live and let die)!” 이언 플레밍이 쓴 007 시리즈의 한 제목. 로저 무어가 동명의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로 열연했고, 폴 매카트니는 똑같은 제목의 주제가를 열창하였다. 그러나 “살아라, 그리고 죽여라.”라는 말, 나아가 제임스 본드 자체야말로 이분의 냉전시대, 그 싸늘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던가. 서글픔이, 두려움이, 분노가 치솟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대착오적인 ‘아와 비아’의 발상 하에, 제임스 본드 뺨치는 진압극이 여전히 활개 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할 뿐이다.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통제의 객체로, 지배의 타자로, 억압의 사물로 간주하는 위정자들의 행태가 위태로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허구의 007영화와는 달리, 실제의 붉은 피가 실제로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권력을 위임했으나 거꾸로 죽음을 맛본 ‘진정한 권력 주체’의 피가. 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 [열린세상] 미국의 이상주의와 한국외교/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미국의 이상주의와 한국외교/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미국 외교의 전통과 뿌리를 심도있게 논의하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북핵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 정책을 조율하고 국가이익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한·미관계가 장기적 관점에서 선진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상대 국가의 외교 전통을 서로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교 현안에 대한 특정 국가의 입장은 그 국가의 역사적 특수성과 오랜 기간 축적된 외교 전통을 무시할 경우 제대로 파악될 수 없다. 우리는 미국 외교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한·미 간 구체적 현안 조율에 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뼛속 깊이 이상주의의 나라이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이라는 국가를 건설해 유럽이라는 구세계의 먼지를 완전히 털어버리고 자유와 정의에 기초하여 신세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 건국의 이상이었다. 이러한 이상주의적 기조가 건국 이후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대외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주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미국의 경우는 힘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상주의라는 점에서 그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미국 외교가 시계추처럼 고립주의와 개입주의의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이상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국제연맹의 집단안보체제를 통해서 동맹과 세력균형을 무력화시키고 미국의 이미지에 맞게 국제정치현실을 개혁하려고 시도했던 윌슨주의는 이상주의의 전형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이상적 노력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은 완전히 고립주의의 길로 들어서서 세계와 문을 닫고 살게 된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의 고립주의는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인류에게 파탄을 몰고 왔다. 냉전을 거치면서 등장한 현실주의는 미국 외교가 고립과 개입의 양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현실주의의 등장으로 미국의 이상주의가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현실주의 외교노선을 대표하는 헨리 키신저는 저서 ‘외교론’에서 이상주의가 미국 외교전통의 거대한 저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미국인의 이상주의적 열망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좌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대외정책을 이상주의적 목표를 내세워 추진해 나갔다. 이라크 전쟁 이후 ‘이슬람세계의 민주화’라는 목표를 내건 부시독트린은 가장 좋은 예의 하나이다. 최근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소프트 파워론’도 이상주의 전통에 그 맥이 닿아 있다. 과거처럼 미국적 이상을 힘으로 강요하지 말고 미국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여타 국가들이 미국의 국익에 부응하도록 하는 정책을 취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상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외교전통은 우리에게는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고매한 이상 추구의 이면에는 마키아벨리적 국익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 외교정책에서 이상주의적 노선이 갖는 실질적 의미를 결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한·미 양국은 ‘동문서답’을 주고받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최근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파병처럼 한국의 국제적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집착함으로써 한·미 간에 엇박자가 나고 있다. 이번에 방한하는 클린턴 국무장관은 여러 가지 한·미 간 현안들을 이상주의적 보따리 안에 싸서 들고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상주의적 주장에 공감을 표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외교적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국방백서 “北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

    국방백서 “北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

    국방부는 ‘2008 국방백서’에 북한을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으로 표기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17일 “(이번 백서에)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증강, 군사력의 전방배치 등은 우리의 안보에 대한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고 표기했다고 전했다. ‘2008 국방백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뒤 발간되는 첫 국방백서다. 북한에 대한 ‘주적’ 표기는 다시 쓰지 않았다. 2004년 국방백서부터 삭제됐던 ‘주적’ 표현이 이명박 정부 와서 복원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있었다. 국방부는 주적개념 논란으로 2001~2003년 국방백서를 발간하지 않다가 2005년 ‘2004 국방백서’부터 격년제로 발간해 왔다. ●北 핵 실험 등 안보환경 급변 국방부측은 “북한이 지난 2006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는 등 안보환경이 급변했고,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여전히 위협이 되는 상황을 고려해 직접적인 군사위협으로 표기했다.”고 설명했다. ‘주적’ 표현이 삭제된 2004년 국방백서에는 북한을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표기했다. 2006년에 발간된 국방백서는 북한을 ‘심각한 위협’으로 표현했다. 국방부는 2008년 9월 교관용 정신교육 지도서로 발간한 ‘정신교육 기본교재’에서 북한을 “현시적이고 실체적인 위협”으로 표현했었다. 북한대학원대 류길재 교수는 “탈냉전 및 남북교류를 활성화해야 할 시대적 상황이나 현실적인 남북관계 관리 차원에서도 주적이란 표현은 불필요했다.”면서 “주적이란 표현을 복원시켜 북한을 자극하고 ‘남남갈등’ 등 논란거리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2008년 국방백서는 우리 영토인 독도수호 의지를 표현하도록 지난 2007년 취역한 아시아 최대수송함인 독도함(1만 4000t급)의 훈련모습을 표지사진으로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공생·공영 기조 확고”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통합방위 중앙회의에서 “국가의 으뜸가는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라며 “최근 북한이 국제사회에 긴장을 초래하고 있지만, 민·관·군·경은 합심해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소임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비록 분단 상황이지만 북한과 화합하고 더불어 공생·공영한다는 대한민국의 기조는 확고하다.”면서도 “정부는 국민 보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방위 통합방위 대비태세 확립’을 올해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국민 안보역량 확충 ▲적 침투 및 국지도발 태세확립 ▲초국가적, 비군사적 위협 대비 ▲민·관·군 통합방위태세 확립 등의 과제가 제시됐다. 이석우 선임기자 이종락기자 jun88@seoul.co.kr
  • 박정희 정부 전작권 환수 검토

    1970년대 후반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추진 움직임에 따라 당시 박정희 정부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환수를 고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주한미군 감축이 추진되자 정부가 최첨단 전투기인 F-16 구매를 추진, 미 행정부측에 요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이같은 사실은 외교통상부가 ‘외교문서 공개 규칙’에 따라 30년이 지난 1978년 문서를 중심으로 11일 공개한 외교문서를 통해 파악됐다. 공개된 문서는 총 1만 2000여권 16만여쪽 분량이다. 12일부터 외교안보연구원 내 외교사료관 문서열람실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열람할 수 있다.외교문서에 따르면 1976년 카터 당시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한국 인권문제와 연계해 주한미군 철수론을 제기하자 당시 외무부는 그에 대한 대책으로 전·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의견 등을 개진했다.정부는 또 카터측의 계획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일본 정부와 공조에 나섰으며 유럽과 미주, 아시아의 주요 공관장에게 주한미군 감축 반대를 위해 주재국 인사들과 은밀히 접촉할 것을 지시했다.주한미군 철수 추진에 따른 전투력 공백 등을 우려해 국방부가 당시 최첨단 전투기인 F-16을 구매하려 했으나 미국 의회의 반대로 무산된 사실도 드러났다. 미국측은 1977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원칙적으로 F-16 판매에 동의했지만 미 상·하원 양원에서 동북아 군비 경쟁을 우려,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무산됐다.또 냉전시대인 1978년 4월 파리에서 미국으로 향하다 소련 영공을 침범, 소련 공군기의 공격을 받고 강제 착륙한 대한항공 707 여객기 사건에 대한 당시 정부의 긴박하고도 신중한 대응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외무부는 전 재외공관장에 보낸 문서에서 소련이 승객과 승무원을 보내주기로 한 것을 알리면서 “강제 착륙에 대해서는 확인 중인 만큼 이에 대해 일체의 추측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한편 당시 KAL 707기 조종사는 기계 고장 등으로 항로를 이탈한 게 소련 영공을 침범하게 된 원인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종사 김창규 기장 등은 주한 덴마크 대사와의 면담에서 “항공기 방향을 알려주는 ‘자이로 나침반’이 고장나 소련 영공을 침범하게 됐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1978년 5월 강원도 거진 앞바다에서 생포된 북한인 8명의 북한 송환 과정에 미 정부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당시 해군에 의해 격침된 북한 무장 선박에서 무기를 발견했고 이들을 간첩으로 발표했지만 미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 대리 등이 잇따라 이들의 대북 송환을 요청, 결국 6월 이들을 송환한 것이 확인됐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뉴 그레이트 게임/박정현 논설위원

    영국의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잘 알려진 동화 정글북의 저자다. 그는 소설 ‘킴(KIM)’을 펴낸 지 6년 뒤인 1907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소설은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진 강대국간 세력경쟁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영국인 고아 소년 킴은 인도에 살다가 순례여행을 떠나지만 영국정부 비밀첩보원의 문서를 전달한다. 러시아 스파이 추적 임무도 맡는다. 킴의 활동무대인 중앙아시아는 19세기 초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남진정책을 폈던 곳. 러시아는 흑해 주변에 사는 슬라브 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튀르크와 발칸전쟁을 일으킨다. 초반에 러시아가 우세했으나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튀르크 편을 들면서 러시아는 패전국이 되고 만다. 전쟁 이후에도 영국 등 서방국가와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패권을 놓고 한판의 ‘그레이트(거대) 게임’을 벌였다. 군사 안보 측면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매장된 석유·가스 등의 천연자원을 둘러싼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영국 학자 매킨더의 말처럼 중앙아시아 지배권은 바뀌어 왔다. 냉전시대에는 옛 소련이 장악했고, 소련 연방 해체 이후에는 미국이 영향력을 차지했다. 미국은 키르기스스탄에 1000여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마나스 기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러시아는 ‘강력한 러시아 부활’을 기치로 내걸고 이 지역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벨라루스·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 연방의 7개국과 함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신속대응군을 창설하기로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응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다. 마나스 기지에는 미군 대신 CSTO 신속대응군이 주둔할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는 약 200년 전처럼 범슬라브 민족 통합을 내세워, 새로운 남진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뉴 그레이트 게임’이 본격화되면 긴장감이 높아질 테고, 국제적 관심도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박재규 통일산책] 통일교육은 균형있는 시각으로

    [박재규 통일산책] 통일교육은 균형있는 시각으로

    최근 정부는 남북 상호이해 증진과 평화교육에 중점을 두었던 통일교육을 통일·안보역사 교육 중심으로 개선해 실시하기로 하였다. 통일교육의 내용 변화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 통일교육 또한 변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과거 냉전시대의 통일교육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고조하는 반공교육에 초점을 맞추었다. 1980년대 탈냉전을 맞아 반공교육이 쇠퇴하고 통일 방안에 대한 내용이 보강된 통일·안보 교육으로 전환하였다. 김대중 정부 이후 지난 10년은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강조하는 통일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현 정부는 통일교육에 안보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지난 10년간의 통일교육은 통일교육의 양대축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교육과 안보교육이 균형을 잃고 안보교육을 지나치게 소홀히 함으로써 현존하는 안보 위협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였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의 통일교육에 문제가 있고 미진했던 부분이 있다면 이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보다 내실있고 균형감있는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정부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다른 분야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통일교육도 지나치게 현실 정치와 연관하여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10년의 통일교육이 비판을 받는 것도 지나치게 정치적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통일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내외적인 환경의 변화를 수용하더라도 장기적 전망 하에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조망하면서 균형있는 시각을 가지고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통일교육은 다른 교과목과 달리 정치적 환경변화에 좌우되기 쉽다는 점이다. 즉 남북관계의 변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의 변화, 북한체제의 내부변화와 같은 요인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통일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당장 군사적으로 대치하여 긴장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남북의 분단구조적 여건 속에서 통일교육이 생각만큼 현실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통일교육을 정치적 현안 다루듯이 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통일교육은 정부의 대북정책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공통점과 연속성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특정정권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들의 정책을 바탕으로 시대적 변화를 수용해온 결과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통일교육도 마치 김대중 정부 때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미 변화하고 또 축적되어 온 것이었다. 지난 10년의 통일교육이 지나치게 평화교육에 편향되어 현실의 안보위협을 무시하였다면 이를 수정하여 보완하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과거 안보교육이 무시되었던 것처럼 평화교육을 무시한다면 이 또한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평화는 민주와 더불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이번 통일·안보역사 교육 개편은 지난 정부의 통일교육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한 차원 더 성숙된 변증법적인 발전과정의 일환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동서독 통일에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된 서독의 통일교육은 오히려 통일을 지향하기보다는 상호공존을 교육하되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교육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게 하는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하였다. 무엇보다도 정권적 차원을 넘어 장기적 전망 하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일관성 있는 교육을 수행하였다는 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 “클린에너지국가 탈바꿈은 정치·경제적 의지에 달려”

    “클린에너지국가 탈바꿈은 정치·경제적 의지에 달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이도운특파원│2009년 1월23일 오후 1시 15분. 아이슬란드 대통령의 관저인 베사스타디르(Bessastadir)에 도착했다. 관저는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수도 레이캬비크의 중심가에서 20㎞쯤 떨어진 아름다운 해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기자를 집사 복장의 비서가 맞았다. 현관 방명록에 서명한 뒤 대기실로 쓰이는 응접실로 안내됐다. 북유럽 스타일의 클래식한 가구와 그림으로 깔끔하게 장식된 응접실에는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빌 클린턴·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장쩌민·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대통령 등 국가원수들, 유럽·아시아 각국의 로열 패밀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정확히 1시30분에 의전실로 안내됐다. “아이슬란드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림손 대통령이 환한 미소와 힘찬 악수로 기자를 반겼다. 그림손 대통령은 키가 190㎝나 되는 장신이었다. 세계에서 (위도가) 가장 높은 수도에서, 가장 (키가) 큰 지도자를 만난 셈이다. 인터뷰는 의전실 옆에 있는 그림손 대통령의 서재에서 1시간10분 동안 이뤄졌다. 인사말을 나누면서 최근 한국에서 그림손 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화제가 됐다는 말을 해줬다. 그것이 첫 질문이 됐다. →최근 경제위기의 정부 책임을 촉구하는 시위대를 관저 안으로 불러 커피를 대접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살짝 웃으며) 사실은 커피가 아니라 핫초콜릿이었다. 그날은 추운데다 비도 오고 바람도 많이 불었으니까… 도심에서 집회를 하던 시위대 10여명이 여기까지 왔다고 해서 한번 대화를 나눠보자고 한 것이다. 관저로 들어오라고 하자 시위대도 처음에는 조금 놀라워하긴 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시위는 국민의 중요한 의사표현 수단이다. 신문 기고나 TV 인터뷰를 통해서만 의사를 표출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 특히 선거로 선출된 정치 지도자는 대통령이든, 총리든, 시위대와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위대와 어떤 대화를 나눴나. -그날 우리는 매우 지적인(intellectual) 대화를 나눴다. 국제사회의 금융 위기, 아이슬란드 민주주의와 경제 시스템의 개혁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어떤 분은 매우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고, 어떤 분은 1970년대 학생운동 시절의 이슈들을 제기하기도 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다행히 그날의 대화를 국내외에서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해줬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것은 시위대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challenge)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사를 분명하고 공식적으로 정리해서 정치 지도자에게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출신으로서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열린 마음(openness)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정직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말을 돌리지 말고 직설적(straightforward)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국민은 똑똑하고, 모든 사안을 이해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국민과의 대화를 홍보(PR) 행위나 정치적 책략(trick)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정치인의 파트너다. 민주주의의 요체가 무엇인가? 권력이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있다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나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차이다. 따라서 국민을 진지한 동반자로 삼아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문제는 정치지도자의 행위가 PR매니저나 광고 에이전시, 책략가(spin doctors)의 조언에 따라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러면 국민과의 진정한 대화보다는 정치적 게임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가장 먼저 겪었다. -아이슬란드에 닥친 일은 마치 허리케인과 같았다. 금융위기라는 허리케인이 바다에서 시작돼 대륙으로 가기 전에 작은 섬인 아이슬란드를 덮친 것이다. 그것이 작년 10월의 일이다. 그러나 이제 허리케인은 대륙 전체로 확산됐다. 영국, 미국, 중국도 국제 금융위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제 아이슬란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현상이 된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언제쯤 위기에서 회복될 수 있을까. -전 세계의 경기 침체가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가에 달렸다. 아마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미래는 매우 밝다. 나는 낙관적이다. 아이슬란드는 21세기의 경제활동에 필요한 중요한 자원들이 많다. 지열과 수력 등 클린 에너지가 풍부하고, 어업을 통해 확보한 해양자원도 많다. 우리는 외국에서 에너지와 식량을 사는 데 외화를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봐라. 전 세계에서 갈수록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이밖에도 아이슬란드는 전 세계에서 청정수(clean water) 보유량이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청정수는 21세기에 가장 부족한 자원 중 하나다. 아이슬란드 동남쪽에 작은 어촌이 있다. 그 지역에서 한 해에 생산할 수 있는 청정수의 양이 전 세계 1년 생수(bottled water) 판매량의 두 배에 해당한다. 아이슬란드는 자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고 유연한 나라다. 위기를 남들보다 일찍 극복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 머물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낙관적이고, 위기 극복에 대한 자신감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잘 목격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클린 에너지 개발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많다. -내가 자랄 때는 아이슬란드 에너지의 80%가 석유와 석탄이었다. 그런데 불과 한 세대만에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화석연료 사용국가에서 전기와 난방을 100% 클린 에너지로 충족시키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자동차와 선박 연료만 해결하면 완전한 클린 에너지 국가로 가게 된다. 우리는 갈 것이다. 아마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화산지대인) 아이슬란드에서나 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가능하다. 그것이 태양광이든, 풍력이든, 지열이든, 수력이든, 테크놀로지는 이미 다 알려져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적, 경제적 의지뿐이다. 더 이상 변명은 필요없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창문을 열고 지내더라. 잉여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주로 외국의 알루미늄 공장을 유치하는 데 사용했다(알루미늄은 제련 과정에 많은 전기를 소모한다). 알루미늄을 통해 전기를 수출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년부터 세계 각국의 다른 산업분야에서 아이슬란드의 클린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미국 기업인들과 미팅을 가졌다. 이들은 아이슬란드에 정보통신(IT), 텔레콤, 헬스케어, 오일 분야의 데이터 센터를 만들고 싶어한다. 아이슬란드는 해저 케이블로 유럽, 미국과 연결돼 있다. 앞으로는 아이슬란드의 에너지를 놓고 알루미늄 회사들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과 경쟁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아이슬란드에 진출한다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여러 분야에서 아이슬란드 기업과 전략적인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에너지나 클린 테크놀로지 쪽에서 전망이 좋다고 본다. 청정수 마케팅도 가능하다. 또 관광 쪽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아시아에서 관광객을 아이슬란드로 유치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는 자원이 많고 맨파워도 있지만, 작은 나라여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능력을 최대화(maximize)할 수가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가진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한국 기업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아이슬란드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해왔다(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한국 제품이 들어와 있다). 또 한국 기업들에 대한 인식도 좋다. 한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의 기업들보다는 아이슬란드 진출에 강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그렇게 조성된 기회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전 세계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직접 만나 보니 어떤 인물이던가. -2007년 그가 대통령 선거운동을 막 시작하는 시점에 워싱턴에서 만났다. 미국과 아이슬란드의 관계, 특히 기후변화와 클린 에너지 분야의 협력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세대의 정치 지도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오바마는 매우 특별했다. 오바마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더라. 또 그 문제를 어떻게 정책으로 전환해서 미국 내에서 이행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생각을 깊이 하고 있더라. 매우 강인하면서도 통찰력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새로운 가능성과 해결방안을 찾고 있었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대통령과도 여러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의 정치 리더십은 어떻게 변하고 있다고 보나. -클린턴과 오바마 모두 맨손으로 출발했다. 아무런 배경없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성공을 일궈냈다. 바로 그것이 미국 정치의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미국은, 물론 비판받을 부분이 많지만, 클린턴이나 오바마같은 리더를 선출해낼 수 있는 역동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이나 다른 지역의 민주주의는 그런 다이내믹한 변화를 일궈내기에는 너무 정형적(formalized)이고, 제한된(restricted)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된다. 오바마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최고 인사들과 오바마측 신진인사들의 결합이다. 힐러리 클린턴처럼 유능한 인물들이 많이 포진돼 있다. 이들이 앞으로 미국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관심있게 지켜볼 만하다. →아이슬란드는 미국과 유럽, 러시아 등의 중간지점이다. 한국도 미·중·러·일과 같은 강대국 사이에 있다. 주변국들과 외교적 관계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고 있나. -냉전이 끝나기는 했지만,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아이슬란드는 유럽국가들, 러시아, 미국,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 인도와의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아마 좋은 의도(good faith)를 갖고 주변국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본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화해야 한다. 아이슬란드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에서 선의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상대국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을 반드시 협상 테이블에 내놓는다. →아이슬란드가 유럽연합에 합류하고, 크로나 대신 유로를 통화로 사용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곧 선거가 실시되면 그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매우 복잡한 문제다. 유럽연합은 어업을 농업에 포함시키는데, 아이슬란드는 이를 원치 않는다. 또 우리는 에너지 자원들을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싶어한다. 정당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해결 방안도 제시될 것이다. dawn@seoul.co.kr ■ 그림손 대통령은 누구 3차례 연임 성공… 13년째 집권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대통령은 1996년 임기 4년의 아이슬란드 대통령에 처음 당선된 뒤 세 차례나 연임에 성공, 13년째 임기를 이어오고 있다. 그림손은 1943년 5월14일 아이슬란드 북서쪽의 작은 어촌 이사표르더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아이슬란드 최초의 정치학 박사이다. 학위 취득 후 아이슬란드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를 지냈으며, 신문 편집인과 TV·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도 했다. 교수 재직 시절부터 진보적인 정당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그림손은 1978년 직접 선거에 나서 의회(Althingi) 에 진출했다. 이후 소속 정당인 국민동맹당의 의장에도 당선됐으며, 1988년부터 91년까지는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유럽 정치에도 참여해 1980~1984년, 1995년에 유럽의회(Coun cil of Europe) 의원을 맡았다. 아이슬란드의 대통령은 국가원수로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대한 거부권도 갖는다. 그림손은 지난 2004 년 미디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미디어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아이슬란드 헌정사상 유일한 거부권 행사였다.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24시티, 액션·화려한 세트는 없다, 그러나 감동은 있다

    작금의 중국은 근대와 현대의 거대한 시험장이다. 역사상 어떤 나라의 민중도 중국인만큼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적이 없다. 자장커는 중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세 가지 역사-저개발의 기억, 근대화의 영광과 상처, 초현대의 열망-를 영화에 담는 작가다. 그의 카메라 덕분에 중국은 숨가쁜 걸음 속에서 근대화의 기원과 문제, 그리고 정체성의 위기를 재고할 기회를 얻는다. 1950년대 말, 경제개발계획에 의해 쓰촨성 청두로 강제 이주된 수천명의 노동자와 가족은 군수공장인 ‘팩토리420’에서 삶의 터전을 닦는다. 냉전시대를 지나면서 군수산업의 가치가 점차 하락함에 따라 공장은 폐쇄되고, 결국 ‘24시티’라는 이름의 고층아파트단지에 터를 내주기에 이른다. ‘24시티’는 ‘팩토리420’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로부터 50여년의 역사를 듣는 영화다. 중국 현대화의 오늘을 상징하는 영화의 제목은 ‘24절기’와 ‘24시간’을 살아가는 역동적인 중국인의 의미를 포괄한다. 영화를 이끄는 것은 여덟 인물의 내레이션인데, 자장커는 흥미롭게도 네 명의 진짜 노동자의 말 사이로 노동자 역할을 맡은 네 배우의 이야기를 배치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교묘하게 섞음으로써 ‘24시티’는 향수로 가득한 추억담이나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거리를 둔다. 자장커가 역사와 기억을 영화로 표현하는 방식은 실재했다고 (말)하는 것과 작가의 상상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화자의 자의식과 포장이 덧입혀진 과거’와 ‘작가의 해석을 가미한 픽션’이 섞인 결과물은 거의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른다. 언어라는 단순한 장치를 통해 화자의 자기반성, 멜로드라마의 구축, 역사에 대한 비평 등을 자연스럽게 행하는 ‘24시티’는 역사에서 진실을 찾는 작업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거둔 성취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자장커는 디지털카메라가 창작자에게 부여하는 자유로움을 피사체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색한 순간과 경직된 연기에서 각각 해방된 비전문배우와 연기자들은 감독의 사인과 필름의 분량이라는 강박관념에서도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 배경이 어둑해지도록 배우 자오타오가 계속 연기하는 장면은 그러한 자유로움의 절정이다. 액션도 없고 화려한 세트도 없는 ‘24시티’에서 관객이 할 일이라고는 내레이션을 듣고 화자의 얼굴과 텅 빈 공간을 보는 것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관객은 마음속에서 수만 사람들이 통과한 역사가 살아 꿈틀대는 걸 느낀다. ‘24시티’의 감동은 형식과 내용과 주제에 깃든 진정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4시티’는 2009년에 만나는 첫 번째 걸작이다. 원제 ‘24 City’, 감독 자장커, 개봉 29일. 영화평론가
  • [만나고 싶었습니다]‘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만나고 싶었습니다]‘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을 기억하시나요. 1973년 9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 소속으로 전남 장흥·강진·영암·완도에서 당선된 황호동(73) 의원. 110㎏에 180㎝의 거구인 그는 이듬해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에 국회의원 신분으로 역도 선수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그해 서울신문은 9월 6일자 1면 기사에서 “역도 슈퍼 헤비급 黃鎬東선수(국회의원)가 132.5㎏으로…은메달을 보탰다.”고 보도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국제대회 선수로 뛰었던 일이나, 메달을 딴 것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황 전 의원을 전직 국회의원들의 사랑방인 서울 을지로 헌정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그를 만나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국회의원 역도선수가 된 배경부터 물었다.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김택수 당시 대한체육회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북한이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데, 아무래도 북한과 메달 한두 개를 놓고 순위경쟁을 할 것 같으니 선수로 뛰어달라는 얘기였지요.” 역기를 놓아버린지 10년이 넘었고, 아시안게임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도 김택수 회장에게 “진작에 말하지 그랬느냐.”고 말하는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출전 결심이 서 있었다. ●슈퍼헤비급 체중 통과하려 맹물 엄청 마셔 황 전 의원은 출전을 하려던 이유에 대해 “내 의지를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선수생활을 그만둔 10년의 세월과 젊음을 뛰어넘어 국제경기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삶의 도전이었던 것이다. 결심은 했지만 국회의원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고 하면 “미쳤나 보다.”는 말을 들을까 봐서 친한 대학 선배 한 명에게만 출전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는 38세의 노장 역도선수는 태릉 선수촌으로 들어갔다. 유신헌법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할 무렵 야당 의원이 정부 측의 요청에 덥석 응했다면 이상한 눈길을 받았을 터. 그는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다 TV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나오자 욕설을 하면서 “왜 또 나왔어?”라고 소리를 지르는 강한 야당성향을 보여줬다. 그리곤 그의 모습은 두 차례나 선수촌에서 며칠씩 사라졌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있는 남산에 끌려갔다 왔던 것이다. 짧은 기간에 가장 어려운 것은 훈련의 강도 보다 몸무게였다. 슈퍼헤비급에 출전했지만 훈련을 해도 몸무게는 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에서 몸무게를 재기 몇시간 전부터 맹물을 엄청나게 마시고 간신히 통과했다. 그리고 은메달을 땄다. 한국대표팀은 금메달 16개·은메달 26개로 4위, 북한은 금메달 15개·은메달 14개로 5위였다. 냉전이 한창일 당시였기에 남북 승부 결과는 국민적 관심사였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역도로 다져진 그는 당시로서는 거구였다. 그래서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중인 1956년에 ‘고려대 덩치’ 4명에 선발됐다. 4명은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호에 투입됐다. 하지만 신익희 후보가 선거를 불과 10일 남기고 유세 도중 돌연 숨지면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그의 큰 덩치는 국회의원이 돼서도 인기를 누렸다. 여야 대치가 있을 때면 전면에 나서달라는 요구는 그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1972년의 10월유신으로 8대 국회가 해산되고 실시된 총선에서 탄생한 9대 국회에서는 극심한 유신반대 투쟁이 벌어졌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개헌 추진을 위한 대여 강경투쟁 노선을 선택했다. 공화당은 국회(현 서울시의회) 건물 문을 걸어잠그고 운영위를 열어 야당이 발의했던 개헌특위구성결의안 폐기를 시도했다. 복도에 몰려 있던 신민당 의원들은 “황호동 의원 어디있어?”라고 찾았다. 불려나간 황 의원은 회의장 문짝 아래 위를 두 손으로 잡고 틀었다. 그가 문을 틀어놓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이가 틈 사이로 손을 넣어 문고리를 열었다. 문을 부수지 않고도 회의장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의안 폐기가 선언되고 난 뒤였다. 해머와 소화기가 등장한 35년 뒤의 18대 폭력국회 장면을 보면서 소감이 어땠을까. 그는 “요새 정치 싸움은 치열해요. 무슨 시장 깡패들도 아니고….”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에는 나를 김두한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나는 비폭력주의자였어요. 김영삼 총재 시절에 여야가 부딪치기는 했지만 의자에 앉아서 말로 싸웠지, 저런 폭력은 쓰지 않았어요. 지금 야당이 너무 지나치다고 봐요.”라고 혀를 찼다. 그리고는 “매우 저질 국회요. 대통령에 국회 해산권이 없으니까 국회가 자진해산해야 할 판이오.”라고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여야 대치때 선봉섰지만 난 비폭력주의자 개헌특위구성결의안이 폐기되자 김영삼 총재는 가두시위를 벌이고 청와대까지 쳐들어가자고 했다. 그때 황 의원이 나서 “바깥에 경찰이 쫙 깔려 광화문에도 못갈 판에 무슨 청와대를 가느냐.”고 반대했다. 주변에서 “기운 센 사람이 왜 반대하느냐.”는 핀잔이 쏟아졌지만 황 의원은 “기운이 세니까 반대한다.”고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에는 야당 내에서도 파벌 대립으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1975년 신민당 옥천·보은·영동지구당 개편대회에서 나선 이용희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중앙당에서 최형우 사무차장이 파견됐다. 최 사무차장은 현지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국회 내에서는 폭력이 없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이철승 계보였던 그는 호남출신이면서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을 지지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유세장에 갔더니 연설대 위에 김대중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달라는 메모가 올라와 있었다. 그는 메모 요구대로 하기는커녕 김대중 욕을 실컷 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1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황 전 의원은 인터뷰를 마친 뒤 헌정회 사무실을 나서면서 “지금 국회는 너무 사납다.”면서 “참을성을 키워서 국회와 국회의원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어떻게 지내시나요 1주에 3일 신장투석… 정부 지원금으로 생활 황호동 전 의원은 몇년째 투병 중이다. 신장기능에 문제가 생겨 1주일에 3일을 병원에 가서 투석치료를 받는다. 그래서 인터뷰 날짜도 병원에 가지 않는 날로 잡았다. “건강은 어떠시냐.”는 질문에 “한번에 피를 4㎏씩 투석하고 나면 어지러워서 계단에서도, 길에서도 넘어지기 일쑤요.”라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슈퍼헤비급 은메달리스트여서 장미란 선수를 연상하면서 인터뷰에 나갔지만 황 전 의원은 ‘키 큰 전직 의원’ 모습이었다. 한때 어른 허리만했다는 팔뚝은 여느 70대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병과 싸우느라 약간 지쳐보였지만 목소리는 정정했다. 요즘도 하루에 담배 한 갑 반을 핀다고 했다.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일반 병원에 다녔지만 요즘은 종교단체에서 투석을 하기 때문에 돈은 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돈 얘기가 나오자 황 전 의원은 “집이 워낙 좁아서…. 응접실이 없어서 손님을 집으로 오라고 하지를 못해요.”라고 했다. 나이 등을 감안해서 자택으로 인터뷰를 가겠다던 기자를 굳이 말리고 헌정회 사무실을 고집했던 데 대한 해명인 셈이다. 전남 강진 갑부였던 조부로부터 140여평의 불광동 주택 등 부동산 몇 채를 물려받았지만 남은 것은 30평짜리 아파트뿐이라고 했다. 정부 예산에서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100만원으로 생활을 한다. 이 가운데 자신의 용돈은 20만원, 나머지 80만원으로 부인과 함께 생활을 한다. 생활비가 적지 않으냐고 하자 “우리 사회와 경제가 어느 상황인데, 이 정도면 고마워해야지요.”라고 손사래를 친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생활하는 박영록 전 국회 부의장의 사정에 비하면 자신은 낫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가 10대 국회에서 낙선하고 나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 정치규제에 묶여버렸다. 그 뒤에 그는 정치계를 떠났다. 떠난 이유를 물으니 “돈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의 국회의원 시절에는 낭만과 멋이 있었던 듯했다. 국회의원 시절 월급을 타는 날이면 당시 국회의사당 부근의 무교동 다방에는 대학 후배들이 그득했다고 한다. 월급봉투를 들고 다방에 들어가서 후배들과 만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월급을 나눠주다 보면 월급 봉투는 금방 비어버렸다. 때로는 집으로 찾아오는 후배들을 빈 손으로 보내지 못해 용돈을 쥐어줬다고 했다.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 73세 ▲ 전남 강진 출생 ▲ 강진 농고 졸·고려대 경제학과 졸 ▲ 9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전남 강진·장흥·영암·완도) ▲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 발기위원 ▲ 신민당 중앙당 청년지도국장 ▲ 체육훈장 백마장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선씨 종부 ‘350년 간장’ 인터넷에 팔았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나 뉴타운이 애물단지가 된 이유 또 다른 철거민들…세운상가 떠난 이들의 겨울 29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 [우리말 여행] 체제와 체계

    ‘체계를 세운다’고 하지 ‘체제를 세운다’고는 하지 않는다. ‘체제’가 뜻하는 것은 어떤 원리나 이론, 양식이다. ‘자본주의 체제, 냉전 체제, 지도 체제.’ 체계는 이러한 원리나 이론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나 틀을 뜻한다. ‘지휘 체계’, ‘교통신호 체계’ ‘이론 체계’처럼 쓰인다. ‘체제’는 기본적인 원리나 사상, ‘체계’는 방법이나 조직 전체를 의미한다.
  • [사설] 통일교육 냉전시대 회귀 우려한다

    서울시교육청은 그제 통일교육의 방향을 남북화해에 기반을 둔 평화교육에서 안보관과 국가관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화도 전적지 견학 등 ‘안보체험교육’도 강화한다고 한다. 기왕의 통일교육 중 ‘평화’ 항목을 제외한 것이라든가, ‘좌편향’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지시, ‘우편향’ 현대사 특강 등과 맥을 같이한다. 정부의 통일교육이 냉전시대의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안보·반공 교육은 냉전시대 체제경쟁의 산물이었다. 60, 70년대 남북한은 통치기반 및 정권 안보 차원에서도 이데올로기 경쟁, 체제 경쟁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1992년 소련의 붕괴로 이데올로기 경쟁은 끝이 났다. DJ와 노무현 정권은 그런 기조 위에서 남북화해·협력 정책을 폈다. 그런 상황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작스럽게 안보 및 반공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가치관과 의식의 혼란을 부를 수 있다.DJ와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친북적이었으므로 상호주의 기조 위에서 수정·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전 정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무조건 거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곤란하다. 정부는 통일과 안보에 대해 균형 있게 교육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합의·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탈냉전시대를 맞아 승계할 것은 승계하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다만 우격다짐하듯이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쓸데없는 논란과 반감을 줄일 수 있다. 통일정책의 판단 기준은 한반도의 미래여야 한다.
  • 통일교육 안보중심으로 전환

    서울시교육청이 남북 상호이해를 강조해 왔던 통일교육을 안보교육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일부 교원단체와 학부모들은 “냉전시대 반공교육으로 돌아가자는 거냐.”며 강력 반발했다. 시교육청은 14일 “남북 상호이해에 중점을 뒀던 통일교육을 안보교육도 강화하는 ‘통일·안보역사교육’으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안보 교육 강화를 위해 통일안보자료를 올해 처음으로 초·중학교에 보급할 계획이다. 안보 교육 프로그램도 강화할 계획이다. 학생들이 금강산을 방문해 통일을 주제로 글짓기 등 행사를 벌이던 데서 벗어나 평화전망대 등의 견학을 늘리기로 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안보 분야에 소홀했던 측면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5080] “죽어도 좋아, 아직 설렌다”

    [5080] “죽어도 좋아, 아직 설렌다”

    노인은 ‘욕망에서 자유로운 존재’라는 편견이 있다. 과연 그럴까. 노인이라고 해서 성적 욕구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노인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 60, 70대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성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서울신문은 새해를 맞아 장·노년층의 삶을 조명해 보는 연재기획 ‘5080’ 을 신설, 주 1회 싣는다. ●“性에는 정년이 없다니까” 2002년 개봉된 영화 ‘죽어도 좋아’는 70대 노인들도 젊은이 못지않은 성욕을 갖고 있다는 내용을 사실적으로 전달해 화제가 됐다.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예스맨’에서도 나이 지긋한 집주인 할머니가 틀니까지 벗어가며 주인공 칼 알렌(짐 캐리 분)을 유혹한다. 영화 속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성적 욕구가 더 이상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2001년 2만 7915건이던 성병 발생 건수가 지난해에는 1만 2486건으로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50세 이상 남녀의 성병은 1198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비아그라’ 등 획기적인 발기부전 약물의 보급으로 노인들의 성생활이 활발해졌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사회정책팀 이소정 연구원은 “노인 문제는 가정문제에서 사회문제로 커질 수 있는 만큼 사회 전체가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몇 달 전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A(70·여)씨는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세 살 연상의 B씨와 ‘열애’ 중이다. 신장에 문제가 생겨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온 A씨는 바로 옆 침대를 쓰던 ‘병실 동기’ B씨를 알게 됐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했던 B씨는 바쁘다며 병실을 찾지 않던 자녀들을 대신해 A씨를 정성껏 돌봤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이들은 금실 좋은 ‘잉꼬커플’이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텔도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A씨가 남편과 사별한 ‘싱글’이지만 B씨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라는 점. 결국에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병원 구내에서 산책을 하다 B씨의 부인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래도 현재 A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계모임에서 B씨를 만난다. “만나면서도 늘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자상하게 챙겨줄 때마다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부녀 C(66)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구청 문화센터에서 동년배 유부남 D씨와 만나 ‘황혼의 로맨스’에 빠져 있다. 젊은 세대 같았으면 ‘금지된 장난’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겠지만 환갑을 넘은 C씨는 남편에게 별다른 죄책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이 10여년 전부터 이러저러한 이유로 잠자리를 피해 온 탓이다. 손자·손녀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평온한 삶을 살았다고 뿌듯해하던 C씨지만 성 문제에서만큼은 늘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한때 자신을 ‘여자’로 받아주는 D씨와 새출발할 생각도 해봤지만 자식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은 포기했다. “불륜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랫동안 남편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받으니 다시 태어난 기분이랄까…, 나한테 아직 그런 설렘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도 작업할 줄 안다고” 이성을 유혹하는 ‘작업’은 2030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5080 역시 약수터, 식당, 경로당, 계모임, 동호회 등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이성친구 사귀기를 시도한다. 작업 대상 역시 동년배 할머니에서부터 20대 아가씨까지 다양하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서울의 한 성형외과가 성형수술 연령대를 비교 조사한 결과 2006년 60대 이상 노년층 비율은 1.6%로 2001년(0.5%)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이종준 고령화대책사업본부장은 “과거에는 살기 위해 밥을 먹었지만 지금은 음식의 문화를 즐기듯 노인들도 이제는 양성평등과 사랑의 이름으로 이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3년 전 아내와 사별한 E(66)씨는 ‘콜라텍 입성’을 통해 6개월 만에 재혼에 성공했다. 자녀들을 모두 키운 E씨는 “아직도 ‘청춘’이니 더 늦기 전에 재혼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경험 삼아 서울 종로의 한 콜라텍을 찾았다. 10대 청소년들의 놀이터였던 콜라텍이 시니어들의 ‘작업의 전당’으로 변모한 사실을 E씨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콜라텍은 ‘초짜’들이 쉽게 이성친구를 만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번뜩이는 외모와 현란한 댄스, 상대를 압도하는 화술로 무장한 프로들로 가득한 ‘정글’이었다. 곧바로 E씨는 전략을 짰다. ‘실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집 주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3개월 간 사교댄스를 배웠다. 성형외과를 찾아가 얼굴에 가득하던 검버섯도 제거하고 몇몇 빠진 치아도 임플란트로 모두 채웠다. 이런 노력 끝에 E씨는 콜라텍 최고 미인 할머니 F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검버섯 가득한 ‘영감’ 스타일로는 환영받지 못해. 꽃등심, 냉면 등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에 돈도 아끼면 안 되고.작업엔 상당한 돈이 필요해.” 대기업 영업직 간부 출신인 G(63)씨는 지난해 만난 한 아가씨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회사 재직 시절 접대를 위해 자주 들렀던 서울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을 지인들과 다시 찾았을 때였다. 장난 삼아 웨이터에게 “20,30대 아가씨로 부킹해달라.”며 팁을 두둑히 챙겨줬다. 하지만 웨이터의 ‘피나는´ 노력에도 아가씨들은 G씨 일행이 모여 있는 방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라거나 화를 내며 나가 버리곤 했다. 그러다 뜻밖에도 한 예쁘장한 아가씨가 순순히 들어와 김씨 옆에 앉았다. 29살 학원 강사라고 했던 H씨는 G씨를 잘 따랐고, G씨는 작심하고 스킨십을 ‘감행’했지만 거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화장실에 다녀오다 듣게 된 H씨의 통화내용에 실망하고 말았다. “나 지금 무도회에 왔다가 웬 할아버지하고 있어…돈이나 타 써볼까 하는 거지 뭐.” 그러나 자신을 왜 만났는지 잘 알면서도 G씨는 자식 나이뻘인 H씨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G씨는 나이에 굴하지 않고 H씨에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쳐 몇달간 만남을 유지할 수 있었다. H씨가 결국 ‘더 연락하지 말라.’며 전화번호를 바꾸긴 했지만. ●“자식들아, 나 아직 ‘할 수’ 있거든…” 현대의학의 발달로 ‘노인의 성(性)’은 살아 꿈틀댄다. 실제 서울대병원의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노인(66∼71세) 가운데 ‘성욕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20% 미만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식들은 부모의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거나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홍미령 한국노인복지진흥재단회장은 “노인들은 성 욕구와 관련된 행위를 자녀들에게 간섭받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이 때문에 음성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자식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I(72)씨는 석달째 아들과 ‘냉전’ 중이다. 돈 때문에 재혼을 강하게 반대하는 아들이 서운하기만 하다. 젊어서부터 ‘고집불통’이라는 소리를 곧잘 듣던 I씨는 늘 외로웠다. 사별한 부인과도 관계가 순탄치 못했었다. 그럼에도 마을 노인정에서 만난 동년배 할머니 J씨는 그런 I씨를 잘 이해하고 감싸줬다. I씨에게 주름 가득한 J씨의 눈웃음은 ‘이효리보다도 섹시했고’, 통통해 보이는 몸매 또한 ‘아이비보다도 예뻤다’. 관계가 진전되자 J씨가 적극적으로 결혼을 요구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J씨로서는 I씨가 마지막 기댈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I씨도 이런 J씨의 계산을 잘 알았지만 그 역시 인생의 마지막 안식처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재혼이냐.”며 만류했다. 동거는 이해하겠지만 결혼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등 수억원대의 재산이 자칫 J씨에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을 두려워한 탓이다. I씨는 이런 아들의 생각이 미웠다. “내가 낳은 자식인데도 나에게 사랑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왜 이해하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할머니 K(69)씨는 요즘 함께 사는 손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얼마 전 손자가 학교에 간 사이 한씨는 손자의 컴퓨터로 온라인 고스톱 게임을 하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손자가 보고 지운 야동 파일을 찾아냈다. 야동은 남자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호기심에 한 번 보니 나쁘진 않았다. 한씨는 고스톱을 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야동을 보기 시작했다. 손자에게 들키지 않게 깔끔하게 지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퇴근한 아들이 컴퓨터에서 야동을 발견하면서 불똥이 손자에게로 튀었다. 손자는 “내가 본 게 아니다.”라며 울며 빌었지만 소용 없었다. 손자가 우는 모습에 이실직고하려던 김씨는 아들과 며느리의 대화를 엿듣고는 자백할 용기를 모두 잃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본 것 아니냐고? 울 엄마가 무슨 ‘야동 순재’냐? 그리고 다 늙은 노인네가 무슨 야동이냐. 그것도 여자가.” 류지영 박건형 정현용기자 superryu@seoul.co.kr
  • [기고]지구촌의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자/제타룡 전 서울시정 개발연구원장

    [기고]지구촌의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자/제타룡 전 서울시정 개발연구원장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사회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인간의 탐욕이 미국의 금융위기를 가져왔다는 비판이 있는 반면,기부문화와 받은 혜택을 되돌려 준다는 생각은 지구촌의 새로운 에너지가 되고 있다. 기부문화가 발달된 미국은 한 해 3000억달러가 기부되고,2500억달러 규모의 노력봉사가 이뤄지고 있다.이는 이웃돕기 차원을 넘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현재까지 대학의 기부금은 하버드대에 35억달러,예일대에 23억달러이고,그 밖에 10억달러 이상 기부받은 학교는 수없이 많다고 한다.인디애나주에선 초등학교 학생이 인터넷으로 단어 공부를 할 때 정답을 맞히면 쌀 20톨이 아프리카 우간다로 자동 지원된다. 특히 1년에 3000여명이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요세미티공원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절벽 등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청소한다.이 일을 25년여 동안 계속한 사람도 있다.또한 홍수시 미처 구조가 안 된 개나 고양이를 찾아 치료해주고 주인을 찾아주는 자선단체들도 있다.이러한 복지,사회활동 단체가 미국 내에 10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공동체의 인식이 진화돼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1일 1달러로 생활하는 세계 10억 인구에 대해 관심이 높다.이 어려운 지역의 시장규모는 자그마치 5조달러로 추산된다.이 지역 발전에 맞는 교육·기술·산업 등의 개발에 관심있는 세계 기업들이 참여해 기업 이미지 고양은 물론 빈곤과 질병퇴치에 앞장서고 있다.그 예로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문맹자가 최소의 훈련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그 외에 모기장 제조산업에 투자하고 초콜릿 현지공장 설립 등 다양한 분야에 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다. 전후 짧은 기간에 강국이 된 독일과 일본은 한 여론조사 결과,지구촌 각국의 긍정적 이미지 부문에서 각각 1,2위로 나타났다.그들의 발전모델에 세계인의 관심이 커가고 있다.일본은 소프트파워를 키워 오면서 자국의 문화와 혁신으로 지구촌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해외에 수십억달러를 원조하고 금융위기에도 기업의 인수 및 합병 등에 과감히 투자해 이미지를 개선해 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유세 때 “내 꿈의 실현은 돈과 명예보다는 의미에 있다.”고 말했다.테니스 선수 애거시는 “돈을 버는 것으로는 생활할 수 있으나,기부는 인생”이라고 했다.전후 여러 국가의 지원으로 폐허를 딛고 부강해진 독일과 일본은 이제 “그 혜택을 되돌려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과거보다 크게 진화됐다.지구촌은 산업혁명 후 공업화 과정에서 대량생산을 위해 자원을 확보하고,판매를 위해 군대를 육성해 강점한 식민문화가 유행이었으나,2차 대전과 냉전의 종식 이후 세계는 이제 어려운 지역을 배려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국내의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 해결과 더불어 지구촌의 가난한 이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광복 후 세계의 무상원조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룩한 유일한 국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우리가 수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세계에 기여하는 역할에 소홀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예컨대 인력자원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한국의 이공계 수재들이 의료분야에 집중되는 현실을 감안하자.그들의 잠재력을 활용해 의료 기술과 비용의 절감 방안을 연구해 의료 강국으로서 개발도상국의 질병치료를 분담한다면 우리의 세계적 역할은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원로에게 길을 묻다] 조순-한완상 신년 대담

    [원로에게 길을 묻다] 조순-한완상 신년 대담

    2009년 소의 해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기대와 설렘 속에 맞이한 기축년(己丑年)은 어느 때보다 거센 도전과 함께 시작됐다.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어떤 각오와 자세로 새해를 맞을까.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와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대화를 통해 새해 우리가 마주한 도전과 기회,가능성과 해법을 짚어보면서 한 해를 조망해봤다.서울시장,경제부총리 등을 지낸 조 명예교수와 한성대 총장,통일부총리 등을 지낸 한 전 총재의 대담은 30일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1. 도전과 과제는 -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희망과 설렘 속에 어느 때보다도 국내외적인 도전이 거셉니다.우리는 지금 어떤 도전과 마주서 있는 것입니까.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세계를 큰 틀에서 변화시키고 있다.패러다임 시프트(shift)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자본주의 자체가 큰 변화와 궤도 수정의 시기를 맞고 있다.경제는 물론 정치적 운영방식에도 큰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자유방임이 위기를 가져왔다.그동안 작은 정부에 대한 강조는 정부 능력을 약화시켰다.미국도,유럽도,우리도 그렇다.해결 방향이 잡히지 않고 있다.자유시장이란 메커니즘과 조정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조화를 이뤄나가야 할 텐데 모두 능력을 잃어버린 터다.미국도,유럽도 우왕좌왕하며 길을 못 찾고 있다.금융위기로 인한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의 잇단 제로 금리정책은 앞으로 유동성 과잉이라는 후유증을 가져올 수도 있다.세계적 인공 대지진으로 불리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잇단 여진이 우려된다.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우리가 마주 선 도전은 세계적이고 복합적이다.21세기 정보화 세상이 되면서 조종당해오던 대중은 주체가 되면서 정치사회적 참여의 폭을 넓혔다.또 국가와 거대조직에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하고 맞서기 시작했다.정보화는 21세기 선진국으로 앞서나가면서 개인과 사회의 행동양식을 바꾸어 놓았다.그런데도 한반도는 20세기 냉전 속에 갇혀 있다.이런 과도기적 모순 속에 월가의 금융위기가 닥쳐서 도전과 위기를 격화시켰다.위기가 겹친 것이다.시장을 신뢰할 수 없는 데다,문제투성이의 시장을 고쳐나가야 할 능력을 정부가 갖고 있는지에 대한 불신과 회의다.대중들의 늘어난 참여의 폭과 커진 목소리만큼 정부가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도 과제다. 2 어떻게 해결하나 -금융위기의 바탕에 도덕적 해이가 자리잡고 있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습니다.‘미국식 자본주의의 붕괴에 따른 세계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선 어떤 처방이 필요합니까. 조 명예교수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어떻게 나누고 조화시켜 나가야 할지를 새롭게 짜야 한다.정부 역할을 어떻게 향상시켜 나갈지도 문제다.부패는 꼭 부정한 돈을 받아서만이 부패가 아니다.새 금융기법을 이용해 금융 유동성을 늘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지나친 혜택을 누려온 금융엘리트들과 이를 눈감아온 워싱턴의 정치가와 관료들의 행태도 구조적인 부패다.일확천금을 꿈꾸는 한탕주의식 금융기법과 파생상품들,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굳어져가는 계층의 벽,투기적 요소가 높아지는 정글 자본주의.이런 속에서 가속화되는 중산층의 몰락과 빈곤계층의 확대.이런 요인들 속에 미국인들은 근검절약과 청교도 정신을 잊었다.이것이 금융위기의 저변에 있다. 한 전 총재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정적 구제금융이 아니라 윤리적인 구제금융”이라고 강조했다.시장과 윤리,정부의 규제 관리,이 3자간의 균형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동물적인 추동력(이윤을 향한 욕심)을 멈추게 하려는 게 아니라 그러한 동물적인 상황에 먹히고 싶지 않을 뿐”이라는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각종 금융 파생상품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다 도덕적·사회경제적인 파산,총체적 파산을 가져온 게 아닌가 싶다.‘슈퍼 캐피털리즘(capitalism)’이 탐욕의 늪에 빠지는 것을 국가가 정당한 제동을 못 걸고 방관해 온 것이다.우리나라도 그렇다.이런 속에서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국민들이 인정해주는 정당한 목표를 찾아야 한다.이를 위해 큰 정부,작은 정부를 넘어선 적극적인 정부란 개념을 강조하고 싶다. -‘2차 세계대전 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새해에 꼭 살아남자.’라는 말이 직장인 사이에 유행할 정도로 금융위기를 맞은 민초들의 위기의식은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조 명예교수 비전과 전략 없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위기가 커질수록 통치의 기본 방향을 예측가능하게 하고,그 속에서 국민들과 소통하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대학(大學)의 가르침대로 친민(親民)의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불안해하는 민초들을 어루만지고 그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정책의 계획과 집행에서 국민 위주,사람 위주의 인본주의 정책으로의 사고와 틀의 전환이 있어야겠다.우리는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다.따라잡을 대상이 없다.고통을 나누면서 창조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이제 누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인가.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지금은 막막하고 어렵겠지만 자신감을 잃지말고 서로 격려하면서 어려움을 넘어야 한다.국가나 개인이나 과거의 패러다임을 떠난 새로운 환경에서 존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다. 한 전 총재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적인 힘,군사적인 힘으로 세계를 이끌지 않겠다.이상과 꿈,민주주의와 정의,자유,기회 같은 가치를 통해서 미국을 이끌겠다.”고 강조해 왔다.그는 큰 틀의 변화에서 생기는 도전과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느 미국 대통령들하고도 역할과 무게가 다르다.오바마는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대안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초석을 놓기 위해 열성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성장 동력을 청정 에너지개발 등 녹색경제에서 찾고 있다.또 다른 성장기반으로 초인터넷 슈퍼 하이웨이 건설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미국에 비해 우리의 청정에너지 개발기술이 그렇게 뒤처져 있지 않다.경제적으로나,민주화 등 정치적으로 우리의 성취와 역량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위축되지 말고 우리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3 바람과 지향점은 -오바마는 한반도 및 북한 핵문제 등 대북한 정책에도 새로운 접근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전 총재 오바마는 대북 정책을 바꿀 것이다.전술적인 차원이 아닌 축의 차원에서 바꿀 가능성이 높다.그는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이 더 비핵화를 거스르고 북한의 핵무기 제조를 촉진시켰다고 지적해 왔다.이른 시일 안에 북한에 특사를 보낼 것이다.우리 정부도 더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평양과 워싱턴 사이가 좋아지도록 적극 외교를 펼쳐야 한다.북·미관계가 좋아지면 우리의 몫이 있다.남북관계 개선은 일자리 창출,경제적 실리 차원에서 봐야 한다.북한이 국제사회에 들어오면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져 상호 호혜적인 윈윈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명박 정부도 늦지 않았다.기회가 오고 있다. 조 명예교수 국제환경 전체가 충돌을 피하면서 공존과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북한에 강경정책을 취하던 부시 대통령도 집권 2기 때에는 앞선 클린턴 행정부의 유화정책과 유사한 정책을 추구,크게 변한 모습을 보여줬다.여유 없는 상대를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북한 입장에서는 남북간의 긴장을 필요로 하는 측면도 있다.저쪽에 그런 필요성이 있는데 여기서 조금만 모진 소리를 하면 더 거센 반응이 나올 수 있다.좀 더 유연한 대처를 기대한다. -2월이면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지 만 1년이 됩니다.실용주의와 시장친화정책을 표방해 온 이명박 정부는 국가경영 및 소통능력,정책적 전문성,도덕적 리더십 등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수 있을까요. 조 명예교수 정책적 일관성,책임지는 자세,국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친민 정신이 아쉽다.정부가 당장 무슨 정책을 시행할 것처럼 말하다가 없었던 일로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부처마다 이야기가 다르고 최고 책임자의 이야기가 다르면 혼란이 생기고 국민들의 불안을 부채질하게 된다.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책임은 내 앞에서 끝난다.’는 정책 당국자들의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지도자와 정부는 국민들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 한 전 총재 평가는 이르지만 1년만 갖고 평한다면 국민들과 더불어 생각하는 자세가 아쉬웠다.금융시장의 탐욕을 도덕적·윤리적으로 정부가 관리해야 하는데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민영화,탈규제 쪽에 방향을 잡고 밀어붙이려고 하는데 불안하다.목표 자체는 변경하지 않아도 수단은 융통성 있게 선택할 수 있게 열어나가야 한다.특히 지도자가 깨끗하고 진실되게 이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그럴 때 국민들이 지도자를 보고 그렇게 해야겠구나 하는 공감대,공명을 일으키게 된다.‘공포로부터의 자유’,이게 필요하다.이건 희망이다.국민들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국민 서로서로 불어넣어줘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국민에게 귀를 활짝 열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그런 지도자의 모습이다.지도자가,각료들이 국민의 아픔을 달래주고 도모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그 모습 보여주는 것 지난 1년은 성공하지 못했다.희망을 줄 수 있는 믿음을 우리 정부도 새해에는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정리 김지훈 김정은기자 kjh@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개혁개방 30년과 후진타오의 3不 정책

    [정종욱 월드포커스] 개혁개방 30년과 후진타오의 3不 정책

    얼마 전 중국 베이징에서는 근래에 보기 드문 큰 행사가 열렸다.인민대회당 1층에 있는 대강당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수천명의 지도급 인사들로 만원이었다. 전면의 주석단에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을 비롯하여 당과 국가의 최고지도자들로 채워졌다.현 지도부뿐이 아니었다.퇴역한 지도자들도 총동원되었다.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후진타오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주룽지(朱鎔基)와 리펑(李鵬)도 보였다.생존한 지도자들이 모두 총동원된 거국적 모임이었다.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는 당과 국가를 대표해서 장문의 연설을 했다.언론에서는 이를 ‘1218 기념사’라 명명했다.중국에서 개혁개방이 시작된 지 만 30년이 되는 2008년 12월18일에 행한 연설이라는 뜻이다. ‘1218 기념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3불(三不)원칙이었다.3불은 동요하지 말고(不動搖) 게으름 피우지 말고(不懈怠) 낭비하지 말라(不折膽)는 의미다.동요하지 말라는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 1992년 초에 행한 연설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이 추구하는 개혁개방의 성격이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를 두고 벌인 사상논쟁의 와중에서 천안문 사태가 터졌고 국제사회가 중국을 제재하는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덩의 말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개혁개방을 추진하라는 당부였다. 이 연설이 있은 이후 중국은 정말 열심히 개혁개방의 고삐를 조였고(不懈怠) 그 결과 세계 제3위의 경제 대국인 오늘의 중국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후진타오가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아 덩샤오핑의 연설(南方巡講)을 다시 강조한 것은 단지 과거의 일을 회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중국도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세계은행은 최근 중국의 경제 성장률을 7.5%로 낮추었다.골드만삭스는 6%로 전망했다. 실업문제는 중국의 최대 고민이다.연 성장률이 8%로 떨어지면 실업문제가 한계점에 달할 수 있다.이미 내년에 2400만명의 실업자가 생길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게다가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을 해온 수출마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금년 11월의 수출은 작년 동기에 비해 2.2%나 감소했다.낭비하지 말라(不折膽)는 후진타오의 말도 이런 경제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1218 기념사를 관통하는 화두는 중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다.어려움이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30년 전 개혁개방을 시작할 당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 있다. 공산당이 창당된 지 백년이 되는 2021년에는 전면적 소강(小康) 사회를 완성하고 건국 백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드디어 개혁개방의 최종 목표인 대동(大同) 사회를 달성한다는 쌍백년의 근대화 비전이 1218 기념사가 중국과 세계에 전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이다.이런 비전에 대한 확신에서 흔들리지 말고 이 비전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자는 것이 이번 베이징 모임의 진정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새뮤얼 헌팅턴이 타계했다.‘문명의 충돌’에서 그는 냉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문명권의 충돌로 이해했다. 유교문명은 그가 제시한 7개의 문명권 중의 하나이다.21세기 국제사회의 중요한 축이 중국이라는 뜻이다. 후진타오가 제시하는 중국의 개혁개방의 비전 역시 유교 중국이다.부국강병을 핵으로 하는 19세기적 근대화가 아니라 힘과 매력이 결합된 21세기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겠다는 꿈이다. 헌팅턴의 마지막 저서는 ‘우리는 누구인가’였다.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21세기 중국이 그리는 문명권에서 과연 한국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되씹어 본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부고]석학 새뮤얼 헌팅턴 前 하버드대 교수 타계

    저서 ‘문명의 충돌’로 서구와 이슬람 문명의 문화·종교 충돌을 예견한 세계적인 석학 새뮤얼 헌팅턴 전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가 지난 24일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81세. AP통신 등 외신들은 헌팅턴 교수가 심부전증과 당뇨합병증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고 전했다. 하버드대는 27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58년간 하버드대에서 강의해오다 지난해 강단을 떠난 헌팅턴 교수가 매사추세츠 휴양지인 마서즈 빈야드 노인 요양시설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이념은 가고 문명이 그 자리를 차지”고인은 지난 50년간 미국 정부와 민주주의,비교정치학,군사 정치학,민·군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17권의 저서와 9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미 정치학 분야에 새 지평을 열었다. 학자 인생의 정점을 찍은 것은 저서 ‘문명의 충돌’이었다.책을 통해 그는 냉전 이후 세계의 무력 충돌은 이념적 갈등이 아닌 주요 문명간 문화와 종교 차이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고인은 “이념은 가고 문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면서 “이념의 갈등이 문명의 갈등으로 부활되고 그 중심에 기독교 서구문명과 이슬람 및 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헌팅턴 교수는 이 견해를 1993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의 공동기고로 처음 발표한 뒤 이를 1996년 책으로 발간했다.‘문명의 충돌’은 39개 언어로 번역됐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중동의 이슬람교와 동아시아권의 유교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을 곳곳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후 고인은 로런스 E 해리슨과의 공동저서 ‘문화가 중요하다’(2000년)를 통해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또 한번 강조했다.이 밖에도 그의 이론은 ‘제3의 물결’‘문명의 충돌과 21세기 일본의 선택’‘미국’ 등의 저서로 압축됐다. ●23세에 하버드대 박사… 58년간 강의 1927년 뉴욕에서 태어난 고인은 18세에 예일대를 졸업한 뒤 시카고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51년인 23세에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1977~78년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하버드 경제학과 석좌교수인 헨리 로소브스키는 “샘(헌팅턴)은 하버드를 위대한 대학으로 만든 학자”라며 “그가 펴낸 모든 책이 우리에게 충격을 줬고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일부가 됐다.”고 고인의 업적을 평가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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