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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통화전쟁/함혜리 논설위원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탄생한 이후 지난 60년간 세계경제를 지탱해 온 달러 전성시대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몰락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의 헤게모니는 급속히 위축되고 달러화의 기축통화 체제 역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달러 흔들기’의 선봉에 선 나라는 중국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000억달러 국채를 직접 매입하기로 하자 원자바오 중국총리에 이어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저우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사용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 위안화를 기축통화의 반열에 올리겠다는 속셈이다. 달러화의 기축통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나라는 중국만이 아니다. 냉전체제 이후 미국의 부상을 고깝게 보아온 러시아도 IMF가 새로운 국제화폐를 찍어내 세계 중앙은행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다음달 열리는 G20정상회의에서 슈퍼통화 창설을 논의하자고 제의해 둔 상태다. 유럽의 정상들은 유럽연합(EU)이라는 강력한 연합을 통해 유로화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일본의 입장은 좀 미묘하다.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의 특혜가 심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중국의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하는 것은 절대로 원치 않는다. ‘세계의 통화전쟁’ 저자인 하마다 가즈유키는 “21세기는 필연적으로 힘이 빠지는 달러와 상승세인 위안의 대립을 축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권모술수에 능한 위안은 때로 유로와 제휴해 힘을 축적하고 차차 엔을 집어삼켜 아시아 공통 통화로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애초에 승자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힘든 싸움인 만큼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것은 통화전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모든 주도권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가 종속적인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번 국제금융시장 재편 과정에 보다 치밀하고 과감하게 대응해야 할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북한의 미래와 일본/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북한의 미래와 일본/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북한의 행태가 예사롭지 않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로켓 발사 강행을 공언하는가 하면 개성공단의 인적 왕래를 한때 차단하기도 했다. 또 북·중 국경 지역에서 취재하던 미국 여기자 둘을 감금하는 초강수를 두어 미 오바마 행정부의 경계심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유포된 뒤로 국제사회는 북한 권력의 후계구도 향배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 왔다. 북한은 경제난과 외교 고립이라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핵·미사일 개발이라는 위협 수단으로 생존전략을 추구하지만 머잖은 장래에 극적인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장기 과제는 피폐한 인프라를 재건하고 경제 개방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북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대규모 경제지원이 필요한데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일본이 될 것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조약 이래 대북관계를 사실상의 공백 상태로 인정하고 언젠가 기회가 오면 정상화하여 청구권자금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물론 현재 북·일 관계는 납치문제, 핵·미사일 개발 등 악재가 겹치면서 꽉 막혀 있다. 그러나 북한에 전격적인 변화가 도래한다면 50억달러를 상회하는 일본의 경제협력 자금이 가동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북한 체제가 크게 변화한다면 다음 두 시나리오 중 하나로 이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시나리오는 북한의 개방개혁 시나리오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김정일이나 그의 후계자들은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을 답습하여 점진적으로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 핵·미사일 문제에서도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해결을 이루고 북·미 관계도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일본이 요구하는 납치문제에도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다. 이렇게 된다면 북·일 수교교섭은 급진전되어 일본은 북한에 청구권 자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한국이 그러했듯이 만약 북한 당국이 이 자금을 현명하게 활용한다면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대일정책은 북한에 중대한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다. 둘째 시나리오는 북한 정권이 체제 붕괴에 직면하는 경우이다. 체제 붕괴가 곧바로 한국에 의한 흡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수습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에서 권력투쟁이 격화하고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면 한국 이외에도 미국·중국이 개입할 가능성은 크다. 북한이 관계국들의 공동관리 하에 놓인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지배권이 한국에 있다는 점을 어느 국가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북한의 대일청구권 문제가 미해결인 상태에서 한반도 통일이 도래한다면 북한 지역의 대일 청구권은 당연히 통일 한국이 계승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비록 1965년 한·일조약 체결 당시 북·일 수교 자체를 반대하였지만 이러한 입장은 동서냉전과 남북한 대결구조라는 특수상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7·7선언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6·15선언 등을 통해 북한을 합법정권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한국은 북한의 대일 청구권 요구를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통일 한국의 대일 청구권 주장은 국제법적으로 보더라도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만약 북한이 한국 정부에 의해 흡수통일된다면 북한이 보유하던 법적 권리와 의무가 통일 한국 정부에 의해 그대로 승계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통일 한국이 북한분의 미해결 청구권 자금을 일본으로부터 받게 된다면 자금의 일부는 식민지 피해자 보상에 쓰겠지만 상당 부분은 북한 경제를 재건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 佛 알제리 핵 실험 피해자 첫 보상

    프랑스 정부가 과거 식민지였던 알제리와 남태평양에서 단행한 핵실험 피해자들에게 최초로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AP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지난 2001년 이래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프랑스 내 핵실험 피해자 단체들은 이번 보상 발표로 작은 결실을 이뤘다.프랑스 정부는 60년대부터 96년까지 남태평양과 알제리 사하라 사막 등에서 210여번의 핵실험을 단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피해자들은 핵실험장 주변의 주민과 실험에 참여한 군인, 연구원 등을 포함해 15만여명에 이른다. 정부는 다음달 의회 승인과 함께 보상금으로 1000만유로가량을 지급할 예정이다. 보상은 사안별로 조사해 이뤄질 예정이다.에르베 모린 프랑스 국방부 장관은 보상 계획 초안을 발표하며 “모든 사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핵실험으로 건강상의 문제가 일어난 이들만 보상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이어 모린 장관은 “피해자가 사망했더라도 그 유족들은 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날 모린 장관은 “당시 핵실험은 냉전시대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다른 회원국들과 더불어 독자적인 전쟁 억지력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또 “당시 실험은 최대한 안전한 상황에서 진행됐다.”고 덧붙였다.안석기자 ccto@seoul.co.kr
  • [정윤수의 종횡무진] 세계야구 새 트렌드 코리안스타일

    우리 현대사는 ‘보편’에 대한 질투와 욕망의 역사였다. 물론 그 ‘보편’이란 건 서구의 양식과 방법이다. 그랬기 때문에 질투와 욕망이 동전의 양면이 됐다. 그것들은 정치와 사회의 측면에서 엄청난 혼란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 시대와 그 이후 오랜 냉전 질서 속에서 이 한반도의 오랜 삶의 양식과 문화는 무참하게 짓밟혔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울타리를 넘어 ‘보편’에 이르고자 했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는 그 질투와 욕망의 현대사가 도달한 고귀한 성취물이다. 물론 경제 발전과 민주화가 손쉽게 얻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최근 이 두 가지 요소가 위협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김수영의 시처럼 ‘자유를 위해 비상해 본 일이 있는’ 우리로서는 결코 역사의 수레바퀴가 후진하는 것을 지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현대사가 그토록 갈망했던 ‘보편’이 실은 진공 상태의 인류 보편,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오류가 없는 최고의, 유일의 ‘선’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가 함께 실천해야 할 ‘가치’는 너무나 고결한 ‘보편’의 지평에 있지만, 그에 도달하는 방식이 무조건 서구의 것일 필요는 없다는 성찰을 얻은 것이다. 오히려 서구 쪽에서 그들의 오랜 방식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흐름마저 일고 있는 지금이다. 야구 한 경기에 그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핀잔 때문에라도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연장 대혈투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어떤 점에서는 “까짓, 한 경기 졌을 뿐인데.” 라고 마음을 추스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경기 결과’를 떠나서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의 우리 감독과 선수들을 격려하고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저 “열심히 했다”, “매너에선 이겼다.”는 얘기로는 부족한 것이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서구’의 것이고 그것을 일찍 받아들여 내면화한 일본의 것이었다. 우리는 북중미 대륙의 여러 강호들이나 일본에 견줘 리그의 규모와 선수층, 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뒤처져 있다. 그런데 강호들을 꺾고 결승전까지 올랐다. 이를 단순히 ‘필승의 투지’나 ‘애국심’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베네수엘라 선수들이 우리 선수들보다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만한 그 어떤 근거도 없다. 김인식 감독과 선수들은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직수입한 야구가 아니라 우리 방식의 야구를 실천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다 할지라도 서구의 어떤 ‘보편’을 요령있게 베껴서 도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큰 것이다. 우리 대표팀은 ‘보편’을 지향하되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야구를 보여 줬다. 그것은 우리의 현대사가 치른 고결한 시련과 값진 성취와 너무나 닮아 있다. 그렇게 때문에 김인식 감독의 야구 철학을 이제부터라도 심도있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어느덧 한국 야구는 ‘보편’에 이르렀으며 이제 전인미답의 새로운 양식과 방법을 펼쳐 나가는 위치에 서게 됐다. 머지않아 세계야구는 ‘빅 볼’과 ‘스몰 볼’, 그리고 ‘코리안 스타일’이라는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
  • 국가브랜드 가치 하락 ‘네 탓’ 공방

    정치권에 국가 브랜드 논쟁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19일 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꿔야 저평가된 우리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우리의 브랜드가 저평가되고 있는 원인은 상당 부분 북한과의 대치 때문”이라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다시 냉전구조로 돌아가면 국가 브랜드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도 ‘존경받는 국가’를 얘기했지만, 우리가 세계적으로 존경받았던 인권에 대해 이 정부는 국가인권위를 축소하겠다면서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것이 정보기술(IT) 강국의 이미지”라면서 “현 정부가 정보통신부를 해체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밝혔다. 정세균 대표는 “이 대통령이 국가 브랜드위원회를 열어 존경받지 못하는 나라가 될까 걱정이라고 했는데, 공안탄압, 정치보복하는 나라를 누가 존경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에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국가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 것은 해머정당이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윤 대변인은 “여야가 한 목소리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 국가브랜드의 가치는 올라가지 않겠느냐.”면서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일침을 놓았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수십억 마리 모기 잡는 ‘레이저 총’ 개발

    수십억 마리 모기 잡는 ‘레이저 총’ 개발

    하룻밤 사이 수십억 마리의 모기를 잡을 수 있는 ‘레이저 총’(Laser Gun)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시애틀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연구진은 레이저로 모기를 쏘아 죽이는 모기박멸 무기(Weapon of Mosquito Destruction:WMD) 개발이 완성단계에 있다고 미국 언론은 보도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무기를 사용하면 하룻밤 사이 수십억 마리의 모기를 요격(?)할 수 있다. 모기의 날갯짓에서 발생하는 저주파를 감지하고 레이저 총을 발사해 태우는 원리로 모기를 대량 제거할 수 있는 것. 모기박멸 무기의 원리는 1980년대 소련과의 냉전시대에 미사일 공격을 레이저로 요격하는 ‘스타워즈’ 구상과 비슷하다. 실제로 당시 스타워즈 계획에 참여했던 로웰 우드 박사 등 천체물리학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더욱 눈길을 모으고 있다. 연구진은 한 해 100만 명의 사람들 생명을 앗아가는 말라리아를 억제하기 위해 모기들을 대량 제거할 수 있는 레이저 총을 수년간 개발했다고 밝혔다. 우드 박사는 “말라리아 등 심각한 질병을 초래하는 모기와의 냉전시대(?)를 성공리에 마무리 짓겠다.”고 재치 있게 포부를 전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초 수동발사 레이저로 모기를 잡는 데 성공했으며 현재 다른 곤충에도 해가 없도록 레이저 양을 조절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진=데일리메일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佛 나토복귀 선언… “핵억지력·軍파견 자율 유지”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간) 43년만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통합군 사령부에 복귀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날 파리 에콜 밀리테르에서 열린 전략연구재단 회의에 참석, “현재의 (나토 탈퇴)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나토 복귀는 프랑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며 “프랑스가 더 이상 다른 나라에 종속되기보다는 지도자 국가의 반열에 서야 한다.”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어 야당의 비판을 겨냥한 듯 “나토 복귀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핵 억지력과 군대 파견에 대한 자율성은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프랑스의 나토 복귀 여부는 17일 의회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재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의회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또 그 동안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프랑스인 응답자의 52~58%가 복귀를 지지했다. 나토 복귀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프랑스는 1966년 샤를 드골 전 대통령 당시 미국의 나토 주도에 반발해 탈퇴를 결정한 지 43년 만에 나토에 복귀하게 된다. 프랑스는 냉전 시절인 1949년 소련의 안보 위협에서 서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나토를 창설할 당시 창립 멤버였다. 그러나 드골 전 대통령이 독자적 외교·국방노선을 추구하면서 탈퇴했다.이후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프랑스는 나토 복귀 여부를 검토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나토 복귀를 놓고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또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나토 사령부에 100여명의 군인을 파견하고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등 나토군의 일원으로 병력 2000여명을 파견하면서 사실상 나토 활동에 참가했다. 그러다 2007년 5월 사르코지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나토 복귀론이 급물살을 탔다. 나토 복귀를 공론화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1세기 국방전략을 담은 국방백서를 공개하면서 “프랑스가 나토에 복귀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선언했다.이에 대해 야당은 물론 일부 우파 인사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제1 야당인 사회당의 마르틴 오브리 대표는 “나토 통합군 복귀를 정당화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비판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중도파 돌풍을 일으켰던 민주운동의 프랑수아 바이루 대표도 유럽1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가 누려온 독립과 자유가 종말을 고했다.”며 꼬집었다. 시라크 대통령 때 총리를 지낸 도미니크 드 빌팽 등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vielee@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1945년 해방은 현재진행형

    역사란 독자들에게 너무 어렵거나, 혹은 정 반대로 아주 통속적인 이야기들로 간주될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경우 역사란 나의 삶, 혹은 현재의 삶과는 참 거리가 먼 이야기로 느껴질 것이다. 나의 책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탈식민화와 재식민화의 경계’(책세상 펴냄)는 역사와 나의 삶, 역사와 현재 사이의 거리, 혹은 괴리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가능한 여러 방법 가운데서 나는 역사에 대해 고민함으로써 ‘어떻게 현재의 나 자신의 삶을 해방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그 방법으로 택했다. 다양한 사건들, 문화 생산들을 마주보고 겹쳐보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박해받고 차별받았던 사람들”의 경험과 자기 인식의 행로들에 주로 관심을 두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36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주권을 박탈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면서 외적으로는 ‘해방’을 얻었지만, 냉전 체제의 수립과 여러 요인으로 인해 진정한 주권의 수립은 유보되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주권의 ‘회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러한 주권의 회복이 단지 ‘일제 잔재 청산’이나 ‘과거사 청산’ 같은 문제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지 60년이 넘은 지금 시점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야구 한·일전을 보며 ‘한국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기꺼이 밤을 새운다. ‘역사’란, 그리고 식민화와 해방과 주권의 문제는 아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날 밤을 새우며 한국을 응원하는 우리의 핏발 선 눈 속에, 조바심치는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있다. 나의 책은 식민화와 해방과 주권과 관련된 복잡한 정치, 사회, 문화적 기제들 그리고 무엇보다 삶 정치적인 기제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왔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또 이러한 식민화와 해방, 그리고 주권의 수립이라는 문제는 단지 민족이나 국가 차원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이는 식민자와 피식민자라는 지배 구조 하에서 식민화로 인해 노예 상태에 빠진 비중앙, 여성, 변경에 놓인 사람들, 미성년 등 다양한 층위에서도 작동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민화와 해방, 주권의 문제는 나의 삶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주체와 경로들을 추적하면서 해방에 이르기 위한 힘겨운 과정과 실패담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실패담과 분투를 통해 ‘해방’에 이르는 길을 사유해보고자 하였다. “박해받고 차별받았던 사람들”의 삶의 경험과 역사, 그리고 그들이 손상된 자신의 지위를 복원하고자 하는 분투와 실패의 기록을 통해서 나는 ‘해방’이 1945년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문제라는 점을 제기하고자 하였다.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
  • 미네르바 옥중보고서…‘유동성 함정’이 걱정

    ‘미네르바’가 옥중에서 다시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서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활약하다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돼 17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는 박대성(31) 씨가 변호인을 통해 한국 경제를 전망하는 19쪽 짜리 글을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인터넷한겨레가 11일 보도했다.  박씨는 최근 며칠치 신문과 하루 1시간씩만 시청할 수 있는 텔레비전 방송을 참 고해 공책에 이 글을 썼으며 변호인이 타이핑해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한국경제 진단 글이 공개된 것은 지난 1월 검찰에 검거된 직후에 이어 두 번째.  박씨는 글에서 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전지구적 달러 강세 속에서 환율불안 피해를 계속 입을 가능성이 높고,기준금리를 낮춰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의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그는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구매 여력은 과연 정부가 어떤 식으로 상쇄시켜 주느냐에 따라 경기 회복속도가 2009년 연내일지 2011년으로 대폭 장기침체로 빠지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재정지출을 통한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는 2009년 3/4분기와 맞물려 국내 경기 리싸이클의 회복 속도가 결정된다.”며 “그에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경기방어전략이 달라진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박씨는 이 글과 함께 자신에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1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 신청서를 함께 제출했다.  다음은 ‘보고서’란 제목으로 법원에 제출된 글의 전문.    미네르바 ‘옥중 보고서’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걸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1997년 제 1차 IMF 사태가 왜 발생하게 되었는가 하는데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지금의 한국 경제 상황이라는 것은 1997년 제 1차 IMF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IMF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그 후의 한국에서의 IMF사태, 그리고 현재 동유럽 사태에 대한 상호 연관성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 IMF 탄생 배경  1997년 하반기 한국경제는 IMF 사태라는 특수한 경제 위기 상황을 겪게 된다. 그래서 한국 국내에서는 IMF사태라는 것이 일종의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상황의 뿌리와 그 근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IMF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약간 진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때는 1929년 미국 대공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에는 미국과 유럽간의 통제 받지 않는 무제한적인 자본의 상호 이동이 가능하였다. 그 당시에는 이런 상호 자본 이동에 제한이 없을 때에만 비로소 그에 따른 시장이윤 창출이 극대화 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적 신앙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브레튼우즈 체제의 모태가 되는 케인즈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초토화 된 유럽에 투하된 자본이 당시 무역 흑자국이던 미국에서 →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유럽에서 → 미국으로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실물경제 재건에 사용되어야 할 자본이 미국시장으로 역류하게 되는데 이를 케인즈는 투기자본이라고 불렀다.    이런 문제점들을 지켜보면서 1944년 미국 뉴햄프셔에서 소위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것이 만들어 지게 된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핵심은 모든 회원국들의 통화는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로 정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막대한 유동성 자본에 대한 족쇄로 제약과 통제가 따랐지만, 이것은 자본왕래에 따른 이윤 창출의 제한이 엄청난 성장률을 보이는 국제 상품 무역으로 보완이 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로 인하여 파생된 보완장치 성격의 기관이 IMF 국제통화기금이라는 것이다. 즉 케인스가 유도하고자 하였던 국제 자본 유동성에 따른 폐해를 고정 환율의 안정적인 통화시스템 하에서 상품교역으로 보완하고, 이 과정에서 IMF(국제통화기금)는 대규모 무역적자와 국제 수지적자를 겪는 나라에 다시 신용대출을 해 줌으로써 무역 당사자간 국제 무역 수지의 불균형 밸런스를 조정하는 완충기구로써 만들어진 기구였다.    이로써 이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25년간 G7내의 주요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 ~ 4%대를 육박하고 경제 규모는 3배 이상 확장하게 된다.    그래서 1953년 전후 한국경제가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파기 시점까지 폭발적인 수출 신장세와 고도의 경제 성장률을 구가할 수 있었던 뿌리가 시스템적 관점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로 인한 유동성 자본 규제에 따른 상품교역의 보완이라는 측면이 적용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GATT체제 하에서 이른바 개도국 특권에 따라서 한국, 대만과 같은 나라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구가하게 되는데, 이는 1995년 WTO 체제 이후 그 성격을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 모델에 기반한 아시아적 모델을 가리키는 말로 재포장되어 불리게 된다.    ▶ 체제의 붕괴  1969년 베트남 전쟁의 발발로 인한 막대한 전비지출의 필요성으로 미국 중앙은행은 결국 전비 지출을 위해서 대대적인 발권력을 동원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잉 통화 유동성으로 미국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킴과 동시에 달러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은행은 유럽 내 주요 기업에 싼 이자로 달러를 빌려주게 되었고, 기업은 고정환율로 달러 → 마르크를 교환했다. 그 결과 독일의 마르크, 프랑을 비롯한 유럽 내 주요국 통화는 달러 대비 통화 절상 압력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 당시 서독 연방은행은 계속 마르크로 달러를 사들여 달러 대비 마르크화의 통화 절상 압력을 상쇄시키려고 했으나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압박요인과 재정적 지원을 더 이상 충당하기 불가능해지게 되는 단계가 오자,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는 공식 파기 된다.    그 당시 서독 중앙은행 차원에서는 인플레이션 상승 부담 때문에도 파기가 불가피했다. 전통적으로 독일은 1920년에 살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피해를 당한 당사국이기 때문에 서독 중앙은행 차원에서의 제1차 정책목표가 물가 안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위기의 시작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그 전까지 제한을 받던 유동성 자본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된다. 기존 금융권 내에 있던 은행, 보험, 펀드를 포함한 최일선 기업들까지 총망라한 모든 경제 주체들에 대한 외환, 채권지대의 제약이 전면 해제되었다.    그로인하여 1998년 기준으로 채권거래는 1973년 대비 230배가 증가한 20조~24조 달러, 외환거래는 1일 기준 1조 2천억 달러의 유동성 자본으로, 금융산업 분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하에 1973년 ~ 1982년 사이에 총 1조 달러를 넘는 해외 대출이 발생하게 된다. 이중 전체 포지션의 50%가 남미로 가게 되는데 이를 기반으로 산업화 플랜을 단행하게 된다.    하지만 1982년 문제가 터지게 되는데 당시 1982년 미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20% 이상 올리게 된다. 그 이유는 제 ‘2차 오일쇼크’의 여파에 따른 비용증가, 인플레이션을 상쇄시키기 위한 조치로 이 조치로 인하여 해외 대출이 투입된 남미를 포함한 이머징마켓은 일대 타격을 받고 경기 후퇴를 하게 된다.    이러한 고이자율 정책은 주요 달러 채무국들의 이자비용을 3배 이상 증가 시켰는데 미국의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주요 유동성 화폐 자산이 투입된 곳은 기존 통화 포지션이 달러로 교체된다.    그 결과 1980년대 초반 미국 달러 통화는 G7내 주요국 통화대비 평균 35% 절상된다. 동일기간 멕시코 폐소화는 반년만에 -60% 폭락하게 된다.    결국 남미 부채위기의 핵심 원인은 80년대 초반 미국 통화정책의 고이자율로 3배 이상 커진 이자 부담과 달러포지션 변경에 따른 자본의 해외 도피 → 그로 인한 미국 통화의 급격한 환율 인하에 기인한다.    1982년 당시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미 재무부는 미국 국내은행의 남미 크레딧 라인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한 멕시코 사태 수습을 위한 즉각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산 집행에는 반드시 미 의회의 사전승인 없이는 불가능해지자 IMF를 간접 이용하여 브리지론(Bridge Loan)이라는 IMF 고유기능을 IMF 가맹국이 아닌 범위로 확장을 통해 지원 프로그램을 하게 된 배경이 이것이다.    원래 IMF의 기존 역할은 창설시 가맹국에 공여하는 브리지론 (Bridge Loan)을 중재하는 것이었으나, 고정 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바뀌면서 브리지론 중재 필요성은 상실 되었다. 그 후 멕시코 사태가 터지면서 브리지론의 필요성이 미국 FRB와 미 재무부의 필요에 따라 상황에 맞게 용도가 리모델링이 되어 변경된 것이다.    문제는 멕시코에 IMF 지원을 해주면서다. 멕시코의 자본시장 국유화, 국영기업 민영화, 국내시장 개방 → 국가 지출의 극단적인 삭감 → 변동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달러보다 폐소화에 투자하는 것이 이익이 될 정도로 폐소화의 이자율 상승, 결국 이러한 극단적인 이자율 상승은 국내 산업 붕괴와 은행 시스템 붕괴를 동반하면서 독자적인 자본시장 형성이 불가능해졌고, 고이자율에 따른 → 해외자본유입 = 해외 자본 종속으로, 결론적으로 경제 발전은 정체되고 부채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많은 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 IMF 지원 프로그램을 받게 되는데 미국은 IMF를 이용하여 자본의 접근 통로를 장악하고 IMF의 영향력 확대를 노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사회 간접 자본(SOC) 건설을 위해서는 해외 차관이나 개발원조금은 IMF 조건과 연계시키면서 승인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본 통제력으로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IMF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IMF 구제 금융을 통한 IMF 체제에 있을 경우 해외자본을 유지하려면 차관 제공자는 상대국가와의 계약체결에 앞서서 반드시 IMF나 세계은행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부 차관』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2008년 하반기 IMF 지원을 한국 먼저 받으라는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 국채 보유국의 달러 국채 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걸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FRB 달러 스왑 국가가 아닌 나라도 임시 달러 스왑 지정국으로 지정해서 각 보유 국가의 달러 국채 보유 물량 비용 대비로 인출을 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100억, 500억 달러도 아닌 300억 달러인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인 것이다.    ▶ 아시아 위기  한국이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이머징마켓들은 높은 수입 관세를 통해 국낸 산업을 보호 육성하고 외국과의 자본지대는 무역을 위한 결제에만 국한 시켰다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 조달한 차관을 배당하고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폭발적인 성장률을 구가하게 되었다.    1994년 한국은 OECD 가입을 통해서 유럽, 일본, 북미 시장에 쉽게 진입을 하려 했으나 일반 무역 통상 부분 이외에 금융시장 부분은 정부의 통제 하에 두려고 했다.    이는 국내 저축된 재원만으로도 산업개발을 위한 재원 도달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그 당시 대통령 본인이 OECD 가입을 기정사실처럼 떠들고 다녔다.    그 후에는 OECD내에서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금융시장 개방 부분의 문제는 미국의 의도대로 해외 차관 수용과 유가증권의 거래 등에 대한 국가 통제는 붕괴된다.    그로 인하여 1994년 3/4분기 이후부터 3개월 만기 달러차관 도입을 허용하게 되는데 한국의 높은 경제 성장률상 그로인해 수반되는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에 대해서 한국의 중앙은행은 통화 긴축 정책을 유지해서 인플레이션을 통제 하고자 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게 된다. 높은 이자율에 도달되고 통제 받던 원화 크레딧보다 그 당시 달러 크레딧이 역으로 더 싸지면서 (조달비용 = 원화 크레딧>달러 크레딧)인 상황에서 그 당시 유럽에서의 조달비용에 0.3% ~ 0.5%미만의 가산 금리로 계속 달러 크레딧을 기업에 제공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이 단기 차관을 기업들은 대규모 시설 투자가 동반되는 5년 ~ 10년 만기의 장기리스 산업에 단기차입금으로 동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1997년까지는 국내에 있는 단기 달러 차입금은 매달 규칙적으로 롤오버가 되면서 만기 연장도래가 있었고 이미 국내에 충분히 많은 달러가 돌고 있었던 상황에서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 때 태국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국,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이머징마켓들은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 확보하기 위해서 태국의 바트화 공격으로 인한 환율 폭락 즉시 주변국가의 자국 통화 절하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달러 채무에 대한 금융비용이 극단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한국을 포함한 신흥 국가들이 달러 크레딧 가운데 60%정도가 단기 채무였다. 이 경우 크레딧 라인(신용한도)철회시 달러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하여 정부 차원에서 IMF에서 달러 크레딧을 조달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IMF는 82년 멕시코 사태의 경우와 똑같은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그 중 하나가 고이자율 정책이었다. 결국 각국 중앙은행의 국내 이자율은 20% 이상 유지되었다.    이것은 IMF의 의도대로 신규달러 차입을 유도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기업과 은행 파산을 동반하면서 내수 시장 붕괴에 따른 대대적인 경기 침체를 불러오게 된다.    대량해고와 투자 설비, 소비재 판매가 수직하강하게 된다. IMF는 고이자율과 국영기업 민영화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 참여 제한 철폐,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포함한 모든 규제 철폐, 특히 자본투자자들에 대한 규제철폐가 핵심이었다.    이것이 현재 한국 시장이 이머징 마켓 중에서 가장 외국인 자본거래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다.    문제는 대외 시장 변수에 국내 경제가 연동된다는 것이다. 태국과 멕시코,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IMF지원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노출되던 상황에서 그 의심스런 처방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즉 한마디로 알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는 모두 알고 있는 IMF프로그램이라 불리는 고통스러운 진행과정이 진행되게 된다. 한국 국내의 만기 달러 차관의 상환은 미국 FRB와 미재무부의 중재를 통해서 3년 이상 상환이 연장되게 된다.    그 당시 IMF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에 지원프로그램이 발표될 당시 한국의 경우는 510억 달러의 크레딧 원조를 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이 금액을 모두 지원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은 표면상의 발표수치이고 일본+독일 중앙은행이 그 후 즉시 한국에 100억 달러의 유동성 자금을 공급하고 미국은 만기연장만 해 주면 자동으로 끝날 일이었다. 극히 간단한 일이였다.    그 후 환율에 따른 수출도 들어온 달러와 외국은행들이 신용 대출금 회수를 중단하면서 위기는 종식이 되었다. 이때 채권은행들은 만기 연장된 모든 신용 대출에 대해 국가 보증을 요구하면서 추가 이자 부담요구안이 나오게 된다.    3년 기한의 상환 연장의 경우는 리보 +2.7 ~ 3%가산 금리의 이자 부담을 지게 되면서 저렴하게 차입된 단기 달러 채무가 고금리의 3년 기한 미만으로 롤오버 되면서 연장된다. 이것은 매력적인 장사가 되었다.    그 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가 채무를 갚기 위해서는 달러나 엔화를 계속 차입해 와서 채무를 갚는 길 뿐이었다. 이를 위해서 남은 마지막 수단은 그 동안 수십년 동안 산업화 과정을 통해 조성한 국내 자본재를 해외 기업이나 투자자들한테 파는 길 뿐이었다. 그에 따른 세금 인하를 포함한 모든 특혜조치들이 이루어 졌다.    그로 인하여 산업계와 금융계를 포함한 은행, 보험 쪽을 비롯해서 외국인 투자 제한 철폐를 통한 싼 매물 수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결국 한국 국내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포장되고, 미국 상무부와 월스트리트에서는 10년 동안의 수익을 단 1년 안에 한국에서 뽑았다느니, 아시아 외환위기는 평생 한번 올까 말까한 포트폴리오 투자 기회라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S&P나 무디스나 한국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국가 신용등급에 맞추어 조정을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과거에 학습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IMF사태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정책적 실패로 합리화되고 잊혀 지면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와 똑같거나 유사한 일이 순환 반복이 된다.    결국 1997년 제1차 IMF 사태의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뿌리는 OECD가입 당시부터였다. 한창 민감한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 부분협상을 할 경우 마지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발언으로 OECD가입을 지정 사실화 시키는 바람에 최종 협상은 거기서 끝이 난 것이다. 그 후 과정을 거치면서 IMF단계를 거치게 되고 IMF는 82년 멕시코 사태부터 그 IMF 고유 기능의 변화와 확정을 거치면서 97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전이되면서 유동 자본에 따른 이윤 극대화라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 동유럽 사태의 발생  동유럽에 대해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동유럽의 전략적 중요성은 과거 냉전체체 하에서의 군사적 측면에서의 나토 군사 안보적 측면에서의 대립을 통한 동.서방간의 유럽지역내의 완충지역이라는 성격에서 이제는 석유, 가스송유관의 중간 경유지로써의 경제적 관점으로 그 포커스가 옮겨지게 된다.    현재 유럽 연합내 서유럽에서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가스의 90%가까이 소비가 되는 상황이며 2020년까지 50%이상 증가추세 속에서 유럽연합은 중동지역내의 에너지 의존도 축소와 북해에서 생산되는 원유.가스 생산량의 감소분을 메워줄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러시아다.    에너지 접근권에 대한 전략적 문제에서 동유럽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은 곧바로 서유럽의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속적인 EU 편입노력과 그에 따른 차관제공을 통해 동유럽의 경제적, 전략적 가치는 올라가게 된다.    2006년 현재 러시아는 유럽에서 소비하는 가스의 25%, 2020년까지 70% 가스를 공급해 주는 주요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총 조달 수요의 80% = 러시아 - 우크라이나 - 슬로바키아 - 체코 - EU공급라인(드 루바 라인), 20% = 러시아 - 벨로루시 - 폴란드- EU공급라인으로 통행료를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추가적인 복합적인 요소들과 맞물려 동유럽은 서유럽 자본의 대거 유입으로 연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3/4분기 이후 제 1차 금융위기가 진행이 된다. 2007년 4,010억 달러의 자본유입액이 2008년에 오면서 670억 달러로 축소되면서 유가 폭락이 겹치면서 동유럽 주주의 주요통화 가치는 50% 이상 폭락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일반외환자금으로 대출을 받았던, 가계의 부채로 직결되면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면서 IMF에 헝가리, 우크라이나, 라트비아가 구제 금융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폴란드와 체코가 검토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동유럽에 대출된 1조 5천억 달러가 서유럽 내 주요은행에서 대출이 된 구조가 최대 40배까지의 레버리지(Leverage: 대출금/자본금)를 높여서 대출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대규모 부도 리스크 압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에 대규모 구제자금을 쏟아 부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유로론 내의 독일내의 금융시장 안정화, 은행 국유화가 검토가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 은행의 총 부채 규모는 1조 5천억 달러 이상의 90%가 서유럽과 해외자본으로 구성된 상황에서 달러 대비 유로화 하락 압력은 유럽내 동시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선진국 증시를 거쳐 신흥시장으로 전이된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현재 2008년 9월 기준 한국의 총 외채의 60%가 유럽계 은행 포지션이다. 이 상황에서 동유럽에서 막대한 손실을 볼 경우 한국론이 만기연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추가 가산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대규모 선박 금융 제공을 하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이 자금압박을 받게 되면 자금 압박으로 인한 선박 주문 취소와 대금지급 지연에 따른 만기 환율 하락요인이 발생한다. 또한 동유럽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이 7~8% 내외인 상황에서 수출감소로 이어지는 상황이며 동유럽에 한국직접투자 FDI 비중이 90% 내외인 상황에서 동유럽내의 환율변동에 환차손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CDS 프리미엄의 상승과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단기 채권으로의 집중현상과 국내 미청산 엔케리 청산 압박으로 인한 자본유출로 환율의 추가 상승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달러는 대규모 재정지출을 위해서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찍어 내면 다른 준기축 통화인 엔화나, 유로화, 금 가격에 연동을 하여 달러 약세로 돌아서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정상적인 시장 작동 상황에서만 그렇다.    극히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계의 주요 경제 권역인 미주, 일본, 유럽연합의 통화 경제권에서 한쪽 경제권이 침체기거나 통화 정책 조정으로 통화 약세일 경우는 달러 약세 ↔ 엔화 강세가 성립이 되지만 미국, 일본, 유럽의 주요 경제란이 동시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는 상황에서는 기축 통화인 달러가 안전 자산으로 달러강세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2008년 3/4분기 이후 제1차 금융위기 당시 달러를 찍어 낼 때는 미국 경제에 대비해 일본 경제와 유로론은 상대적으로 경제 펀더맨탈이 견고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달러 발권력 동원에 따른 달러 약세는 당연하였으나, 2009년으로 바뀌면서 유로론의 동유럽 사태와 일본의 경제 성장률 하락과 1조엔에 달하는 무역수지 적자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금과 달러가 안전자산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은 인플레이션 방어성격의 자산이지만 현재 경제 성장률이 3대 경제권의 동시 다발적인 마이너스 성장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이 달러를 찍어내면서 달러 화폐 유동성이 증가함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상쇄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금값이 올라가면서 달러강세가 지속되는 원인 중 하나가 이것이다.    결국 시장불안으로 인하여 안전 자산인 금과 미 국채로 자금 수요가 집중이 되는 상황에서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지속적인 하락세로 돌아서게 된다.    현재의 엔화 변동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1995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995년 당시 엔화는 79엔의 달러 대비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 재무성 차관인 사카키 바라 에이스케는 미국에 가서 미국 달러 국채 매각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하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1달러=85엔대 밑으로 떨어질 경우 일본 은행들은 신용 대출 결손으로 타격을 받는 구조였다.    이 상황에서 시장에 미국 국채 매물이 나올 경우 미국 국채 가격은 떨어지면서 채권가격 하각은 이자율 상승을 동반하게 된다. 그러면 미국 전체 자본 시장의 이자율이 올라가면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일본, 유럽 중앙은행들의 공조하에 대규모의 달러 매입을 통한 환율 조정의 노력으로 1달러 = 100엔이 그해 4/4분기 이후 돌파되었고, 97년 까지 -60% 엔화가 평가 절하 되었다.    이는 2003년으로 넘어가면서 반전하게 된다. 장기간의 무역흑자에 따른 주적으로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2002년 130엔 → 2004년105엔 대로 급상승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35조~40조엔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달러 매수를 하여 엔화를 평가절하시킨다. 이때 매수한 달러가 미국 국채에 그대로 재투자 되었으며 2002년 - 2004년까지 매입한 미국 국채가 3,500억 ~ 4,000억 달러 수준으로 이때부터 일본에서 미국 국채를 사 모은다는 소리가 나오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현재 5,800억 달러 상당의 미 국채 보유량의 상당부분을 사 모은 이유가 이것이다.    현재 80엔대에 육박하는 엔화가 97엔대 후반으로 절하되는 이유중 하나가 일본 경제 자체에도 있지만 현재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물량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간 공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 주무장관인 힐러리가 일본 방문시 이 이야기부터 꺼낸 이유가 이것이다.    이는 향후 두가지 변수에 따라 작용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기간에 맞춘 추가 엔화 평가 절하와 미국 GM-크라이슬러의 자동차 구조조정에 따른 미국 국내 자동차 노조의 압력에 따른 추가 엔화 절하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그래서 티모시 가이트너 미재무장관이 취임전부터 ?강한달러?를 떠들고 다닌 이유가 이것이다. 그것은 1995년 당시 미 재무장관이 로버트 루빈이 취한 액션과 똑같은 것이다. 강한 달러의 달러 강세를 만드는 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봐야한다.    국제공조와 통제가 가능한 일본과는 다르게 달러 약세와 그로인한 달러대비 자산손실이라는 측면이 중국에서 심각하게 제기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총외환보유고는 1조 9천억 달러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닥치는대로 달러자산에서 실물자산으로 옮기는 이른바 자원외교도로 불리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자원확보 측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천연자원을 싼 값에 확보하고 글로벌경기회복에 따른 차익기대측면도 있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미 부채 등 달러자산에 편중된 외환보유고 투자의 다변화가 핵심이다.    현재의 천문학적인 미 국채발행의 압력으로 미 국채수익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달러약세로 달러표시 자산의 폭락은 중국입장에서는 재앙이다. 그래서 최소한 2009년도에 관해서는 자의든 타의든 달러강세기조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배경을 깔고 단기 달러강세가 기정사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도전으로 작용하게 된다. 달러강세에 따른 국제원자재가격의 하향안정세는 단기적으로는 물가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요인을 덜어준다. 그래서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2%대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던 핵심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하지만 달러강세 기조 속에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국채발행과 중국, 일본의 자국경기부양을 위한 추가 국채발행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 이미 이머징 마켓에 외환달러자금유동성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80%에 육박하는 무역의존도와 IMF로 인한 높은 대외 개방도로 인하여 외국인 투자감소와 자금이탈과 무역금융 감소에 따른 수출부진과 무역위축과 그에 따른 환율불안 등의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로 금리를 내려서 유동성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생각이다.    이 경우는 CP 매입을 통한 개입이나 회사채매입을 통해서 개입을 하는 선에서 조정이 되어야지, 이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하는 환율상승의 추가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 지금 상황은 통화정책으로는 소비와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무리인 부분적으로 유동성 함정의 리스크 징후들이 보이기 때이다.    금리를 내리면서 CP금리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우량회사채를 제외한 회사채 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와 더불어 금리인하에 따른 생산과 투자위축은 금리정책의 한계가 왔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일반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하게 되는데 국채를 발행해서 재원을 조달할 경우 금리를 내려 원화유동성을 늘린 화폐 유통량이 국채발행을 통해서 유동성이 다시 역으로 흡수가 돼버린다.    그러면 회사채발행에 따른 기업운영자금 조달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부가 대규모 국채들 발행하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회사채 불량은 시장에서 소화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래서 중앙은행의 국채직접매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부차적인 최소한 부작용을 최소화시켜준다.    우량회사채의 발행물량은 시장에서 소화가 되지만 비유량회사채의 경우는 매수세가 몰리지 않으면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을 통해서 자금조달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율급등에 따른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요구와 발주취소, 납품업체변경 등을 통한 피해 부분에 대해서도 소규모기업은 열외대상이며 고용보험료 연체에 따른 소액압류가 있어도 사실상 대출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결국 구조조정 지연을 통해서 2008넌 3/4분기 ~ 4/4분기에 걸린 3개월 ~ 6개월의 시간 소요를 통해서 선제대응 타이밍이 늦어짐에 따라 은행 자체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대손충당금과 경기하강에 따른 기업, 개인연체율 상승에 따른 BIS비율하락에 대비한 자본적립을 통해 자금시장이 사실상 경색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금리를 추가로 낮추어도 자금이 돌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빠질 공간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대외적으로는 미 국채발행과 그로 인한 미국경제 경기부양을 통한 달러강세는 최소 2009년 하반기 ~ 2010년 1/4분기까지는 재원도달을 마련하기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며 단기적으로 이와 연등하여 동유럽 리스크로 인한 달러 조달 금리 상승압력과 환율상승압력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금리는 동결, 금리 추가 하락시 환율상승압박요인에 따른 자산포트폴리오의 부분적 변경으로 방어하는 전략이 유효하며 현재 한국 경제는 미국,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 방어성격의 통화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이점은 각별히 주의해야한다.    미국, 일본, 중국은 디플레이션 초기 대응전략으로 기조가 가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디플레이션이 아닌 디스인플레이션이라는 상황적 인식하에 경기하강과 -2% ~ -4%이하의 성장률을 겪는 이색적인 체험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구매 여력은 과연 정부가 어떤 식으로 상쇄시켜 주느냐에 따라 경기 회복속도가 2009년 연내일지 2011년으로 대폭장기침체로 빠지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재정지출을 통한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는 2009년 3/4분기와 맞물려 국내 경기 리싸이클의 회복 속도가 결정된다. 그에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경기방어전략이 달라진다.    중국의 경우도 경기부양자금으로 800조원이 풀렸다. 그로 인하여 중국증시가 올라가는 이른 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유동성장세에 따른 증시부양이라는 착시현상이 벌어졌다. 중국 역시 수출이 총 GDP의 40%를 차지하고 상당기업의 60%가 영업이익 적자를 통한 적자기업이었음에도 2009년 1월 기준 수출(전년대비): -17%, 수입: -43%로 수입감소량 ≫ 수출감소량을 능가하면서 대규모 무역흑자구조가 나는 것은 한국과 동일하다. 이는 결국 수입감소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소비가 급감하면서 내수가 망가지고 있다는 징후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생존플랜이 나오면서 개개인이 준비를 해 나갈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인간 문선명을 만나다

    “하나님은 왜 나를 불렀을까요? 나는 고집불통에다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내게서 취하실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나는 지독하게 하나님의 사랑에만 목을 매고 사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지난 1월 구순(九旬)을 맞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김영사)를 펴냈다. 3년간의 기획을 거쳐 2년여의 집필과 탈고, 수정 끝에 나온 자서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전 등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를 관통하며 종교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온 문 총재의 역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 총재는 자서전을 통해 “16세 되던 해 부활절(4월17일) 아침, 기도 중 홀연히 인류 구원에 대한 천명을 자각하고 일평생 공의의 노정을 걷기로 다짐했다.”고 밝히고 있다. 평양과 부산에서 뜻을 펴다 서울 청파동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회)를 창립해 본격적으로 선교에 나선 게 1954년. 1957년 일본에서 해외선교를 시작해 197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세계 선교를 본격화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문 총재는 책에서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치렀던 여섯 번의 투옥, 평화 전도사로 활동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뒷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광복 이후 성경책 하나만 달랑 들고 평양에서 교회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렇게 회고한다. “평양에 가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나를 그렇게 반대하고 돌을 던지던 기성교회가 부산에서도 역시 나를 반대했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내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였습니다. 이단 사이비니 하는 접두사 없이 그냥 이름만으로 불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책에는 특히 대학가에서 이단으로 몰려 문 총재를 따르는 학생과 교수들이 퇴학·퇴직당하던 이야기며 초기 미국 선교 시절 ‘한국이라는 보잘것없는 나라에서 온 종교 지도자가 감히 미국을 상대로 회개하라는 소리를 하느냐.’며 멸시하던 일에 대한 고백이 솔직하게 담겨 눈길을 끈다. 384쪽 1만 45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北, 군통신 단절 파장] 北 對美협상·내부단속용 빗장걸기

    ‘키 리졸브(Key Resolve)’ 한·미 연합군사훈련(9~20일) 첫날인 9일 북한이 던진 ‘군통신 차단’ 조치와 ‘전시준비 태세 명령’ 발동은 다목적 용도의 정치·군사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는 북한이 지난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을 통해 “남한 민항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발표한 데 이은 추가적 조치다. 대남·대미 압박 강도를 단계별로 높이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우발적 충돌 가능성 커져 일단 남북한 군당국간 직접적인 채널인 군 통신이 차단됨으로써 양측의 우발적 군사충돌 위험성이 커지게 됐다. 또 우리 국민의 개성공단 왕래가 차단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무력충돌 발생시 개성 체류 인력들의 억류 상황도 이론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남북관계가 말다툼에서 실질적인 단절 관계로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도 한층 커지고 있다. 이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발동한 ‘만반의 전투준비 명령’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0~80년대 팀스피리트 훈련 때 북한이 보인 전형적 대응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조치가 한·미 연합훈련 기간으로 한정된 점은 북한 역시 정치적 고려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당장 쓸 수 있는 카드 중 제한적이지만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수단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키 리졸브 훈련 후 해제될 것” 국방연구원(KIDA) 김태우 국방현안연구위원장은 “민항기 위협과 통신선 차단 등 일련의 북측 조치가 키 리졸브 훈련 기간으로 제한된 것은 훈련 종료 후에는 해제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입체적으로 부각시키되 훈련 이후에는 미국과의 대화 재개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같은 맥락이다. 북측은 남측 민항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를 할 때에도 키 리졸브 훈련기간으로 제한했다. 오히려 군 통신선 차단 조치보다 최고사령부가 내린 ‘전시준비태세 명령’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후계체제와 관련, 내부 위기감을 고조시키면서 체제 결속을 겨냥한 대내용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1993년 3월 북한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한 후 준 전시상태가 선포된 같은 해 4월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됐다. 한편에서는 ‘전시준비태세 명령’이 미국과 일본이 시사한 북한 광명성 2호의 요격 움직임에 대한 사전 차단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북한이 이날 요격 행위에 대해 “즉시 대응타격”을 공언하고 나선 것도 사전 조치적 성격이 짙다. ●美에 양자대화 요구 메시지 북한의 으름장은 대내적으론 체제 결속의 고삐를 죄는 수단으로, 대외적으론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촉구하는 정치적 메시지로 풀이된다. 국방대 김연수 교수는 “북한으로선 통미봉남 전술의 하나로 한반도 긴장 고조가 정점에 이르게 되면 북·미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씨줄날줄] 리셋 버튼/이목희 논설위원

    국내 체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지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적대국과의 긴장관계를 높이거나, 아니면 화해하는 것이다. 냉전 시대 미국이 택한 세계전략은 전자였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미국의 적수가 못 되자 그런 외교기조가 약화되었다. 하지만 아들 부시 정권 시절 미사일방어망(MD) 계획이 적극 추진되면서 신냉전 논란이 다시 빚어졌다. 미국에 새로 들어선 오바마 행정부는 전임 부시 때와는 달리 러시아와 화해정책을 택했다. 처음에는 탈(脫)부시 정책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미국은 더욱 절박하게 선택의 기로에 섰다. 군사적 긴장을 높일 것인가, 화해의 길로 갈 것인가. 군비산업으로 승부를 볼 것인가, 군사비를 경제복구로 돌릴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은 계속 화해를 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가 두려워하는 MD 배치를 유보하는 선물을 준비했다. 대신 미국이 바라는 바는 두 가지. 이란의 핵개발을 막아 주고, 다른 국제테러 세력에 핵무기가 흘러가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하나는 올해 말 종료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대체하는 협정을 만들려 하고 있다. 막대한 전략핵무기 개발비를 경제위기 타개 쪽으로 돌려보자는 취지다. 국제유가 하락과 경기침체로 불황에 허덕이는 러시아로서도 미국과 군비경쟁을 벌일 여력이 없다. 미·러의 이해가 지금 딱 맞아떨어진다. 미국이 오바마-바이든 플랜을 발표하면서 양국간 봄바람이 불고 있다. 오바마는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화해의 비밀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엊그제는 미·러 외교장관 회담이 열려 양국관계를 ‘재설정(리셋)’하자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미·러 모두 내부의 강경 목소리가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정상적인 경제회복 노력이 여의치 않으면 가상의 적이라도 만들어 국민 관심을 돌려야 한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선물 소동이 시사하는 바가 걱정스럽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재설정 버튼’을 선물했는데 ‘리셋’을 러시아어로 잘못 옮기는 바람에 ‘과부하 버튼’이 되고 말았다. 양국 관계는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시론] 전진? 후퇴? 한반도 새 기류 갈림길/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시론] 전진? 후퇴? 한반도 새 기류 갈림길/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2009년 3월 한반도 지형이 변하고 있다. 북한 내부의 변화에서부터 동북아시아 국제관계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새판 짜기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새로 출범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와 곧 구성될 북한의 김정일 3기 체제가 있다. 조만간 일본의 내각에도 변화가 예상되며 중국 역시 개방 이후 최대의 경제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 중에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2년차를 맞아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의 수장을 교체하면서 심기일전 새로운 한반도 질서 개편에 대비하고 있다. 북핵문제의 표류와 미사일 발사 움직임, 그리고 북쪽의 일방적인 기본합의서 파기와 남북관계 전면대결상태 선언 등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현 상황은 북한의 선택 여하에 따라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질서가 구축될 수도 있고,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다. 미국의 신임 대북정책 고위대표인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가 중국, 일본, 한국을 순방 중에 있다. 보즈워스 특사의 직함이 말해 주듯 오바마 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보다 큰 틀에서 과감하게 접근하려 하고 있다. 중단된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고 검증문제를 포함하여 3단계 북핵폐기를 위한 본격적인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다. 성 김 북핵특사가 새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로서 핵문제 해결에 전념하는 한편 보즈워스 특사는 미사일문제를 비롯해 미국관계 정상화와 함께 북한 인권문제의 전반적 개선을 위한 미국 정부의 대북한 정책을 총괄 조정하게 된다.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간 고위급회담도 예상되고 있으며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체결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등 포괄적인 해법이 제시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과의 긴밀한 협조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관련국들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스마트파워 외교’를 적극 전개하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채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인 위협을 지속하고 있지만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보즈워스 특사의 행보를 보더라도 북한의 강경 모험주의 정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모든 남북간 합의 이행을 존중하면서도 원칙을 고수하며 북한의 선(先)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8일로 예정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통해 김정일 3기체제를 출범시키고 김정일 이후 후계구도의 정지 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벼랑끝 전술을 즐겨 사용했지만 실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극적으로 정책 변화를 시도한 적이 많다. 만성적인 경제난과 민심의 이반현상을 선군정치나 대남 적대시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광명성 2호 인공위성 발사체로 선전하는 은하 2호 로켓 발사 역시 주변국의 우려만 고조시킬 뿐 내부결속이나 체제정당성 확보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2009년 봄 한반도에 새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한반도 지형 변화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 냉전시대식 반목과 대결로 회귀할 것인지는 북한 지도부 선택에 달려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민주노총은 내우외환에 빠져 있고 민주노동당은 ‘입법 전쟁’의 와중에 존재감이 엷다.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품었던 이들에게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왜 이렇게 됐을까..  국민승리 21부터 민주노동당 창당과 감격적인 원내 진입,그리고 그 뒤의 내리막길을 줄곧 지켜본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애초의 정당 설계가 잘못됐다고 단언한다.채 전 실장은 10여년 민주노동당의 부침을 지켜본 경험을 녹여내 지난 1월 심사를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을 통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중정당 모델을 따라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물적 기반으로 삼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화,탈이념화 상황에선 파편화된 노동자나 서민 대중을 대변하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짚었다.  ’진보에 길을 묻다’ 8회 주인공으로 3일 만난 채 전 실장은 “민주노총을 토대로 손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민주노동당 퇴조의 원인을 짚었다.2004년 원내 진입한 민주노동당은 이듬해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충격의 참패를 기록한 뒤 당내 헤게모니가 정파 대표에서 원내 의원에게로 옮겨졌는데 채 전 실장은 이런 흐름에서 원내정당 모델이 더욱 적실성 있는 대안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를 이번 논문에 담아낸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원내정당 모델은 “국민과 소통능력이 있고 정책개발 능력이 있는 원내 의원이 시민사회와 연계해 수평적이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축,생활정치적 요구들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이념과 계급,정파가 줄어드는 대신,서민들의 요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과 이 과정에서 드러난 욕구를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해진다.  민주노동당이 안팎에 과시했던 진성당원제가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정파 대표들에 의해 포획돼 사실 투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발언권이 폭넓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도 극복될 수 있다고 했다.그는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해 보수나 진보나 모두 ‘의회민주주의의 무덤’이라고 개탄했던 상황을 면밀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드러난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당 모델은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 모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물적 기반으로 삼는 조직된 노동자,정규직만을 더이상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비정규직이나 서민 대중을 위해 기득권을 버릴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진정한 환골탈태란 주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사학위 논문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녹여든 것 같다.  당 활동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했다.시민들을 설득하기가 힘들어졌다.어떤 정책과 이슈,쟁점 등에 대해 시민들을 설득할 만큼 잘 알지도 못했고, 전문성도 떨어졌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2004년 원내진출 이후 높아진 기대에 견줘 당내 정파싸움,민주노총의 권력 다툼과 부패 등을 보면서 당의 지지기반인 비정규직이 당에서 떠나는 것을 보면서 당의 전망과 집권 가능성을 회의하게 됐지만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했다.공부를 시작하고 여러 가지를 검토한 결과,지도부의 무능이나 이기심,오류 때문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른 변화를 당이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지구화 정보화 탈냉전이란 거대한 변화에 맞는 정당모델,정치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80년대식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당의 한계나 오류를 극복해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의정정책실장 등을 맡으면서 당내 갈등을 피부로 많이 느꼈을 것 같은데.  2004년 제1 정책위원회 정책국장,2005년 3월부터 의정실장을 맡으면서 정파 지도부와 원내 의원들의 갈등을 목격했다.갈등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당의 문제점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했다.  당시 당에선 대중정당 모델을 철저히 추종했고 원내정당화 모델을 철저히 반대했다.이를 견제하기 위해 오죽했으면 국회의원이 당 지도부가 될 수 없게 제도까지 만들었겠는가.중앙당 지도부는 의원들을 통제하려 했는데 현실은 국민들이나 일반 시민들은 의원들을 먼저 바라보았다.의원들이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선 자율권이 필요했는데 중앙당에선 통제하고 싶어했던 거다.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중앙당 지도부가 손을 들었다.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당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것은 이름도 모르는 정파 대표가 아니라 의원들이었던 것이다.따라서 당의 헤게모니 자체가 점차적으로 원내 의원들 중심으로 넘어갔고 당의 구조도 조금씩 바뀌게 됐다.    ●민주노동당 10년의 공과를 정리하면.  정당 사상 최초로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가 창당한 노동자계급정당,사회주의적 이념정당,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 독점적이고 편향적인 기득권층과 보수세력에 대항하여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다양하게 대변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 가능성을 2004년 원내진출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공이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또는 지구화,정보화,후기산업화,탈이념화 등의 달라진 시대상황은 과거 단일한 노동자 계급과 조직으로 뭉칠 수 있었던 정당에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화이트 칼라와 블루칼라,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조합원과 비노동조합원으로 파편화되고,노동자의 이익이 갈라지는 상황에서는 노동조합도 당도 유연한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그 변화의 시대에 하나의 이념과 단일한 위계조직을 강조하는 운동권 모델을 고집함으로써 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들의 복잡한 이익에 반응하지 못했다.결국 대기업 소속과 정규직,조합원으로 표현되는 상층노동계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되면서 다수의 비정규직과 약자들이 이탈하게 된 것은 그 한계라 할 수 있다.그 문제가 집약돼 나타난 것이 2005년 울산 북구 재선거 패배였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이 시대착오적인 계급환원주의 노선과 사회주의적 계급정당노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은 산업화시대에 유행했던 조직논리,이념논리,정당논리,이른바 대중정당모델에 집착했던 것이 오늘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울산 북구 패배 이후 2007년 대선을 앞두고도 같은 잘못이 되풀이된 이유는.  많은 불만과 문제 제기들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정당모델까지 검토하지 못한 것은 당이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모태로 출범한 한계라고 생각한다.민주노총을 토대로 상대적으로 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흔히 민주노동당의 두 가지 성역이 있다고 했는데 민주노총과 북한이란 성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정당모델을 원내정당 모델로 바꿨으면 오늘날의 위기가 없었을까,이런 역질문이 가능할 것 같은데.  원내정당화 모델을 생각한 것은 당의 헤게모니가 원내 의원 중심으로 넘어가는 국면과 맞물려서였다.울산 북구 패배 이후 당의 총체적 위기가 확인됐다.지지율이 18%에서 5% 이하로 바닥을 쳤다.울산은 노동자 밀집지역이어서 대중정당 모델이 가장 잘 발현될 수 있는 곳이었는데 패배를 했고 그 패배의 원인이 비정규직의 외면과 이탈 속에서 당이 망가진 것이었다.그 늪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이 그나마 국민들로부터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을 인정받은 의원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확인이 됐는데도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진 못했다.민주노동당은 대단히 위계적인 조직이다.그 조직에 아직까지도 민주노총의 헤게모니가 작용하고 있다.30%의 할당제가 관철되고 있다.국민적 차원에서 개방,분권적인 개혁,다양한 이념을 수용해야 한다는 전략 등이 철저히 가로막힌다.  2007년 대선 후보를 경선해야 한다는 안팎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다.개방형 경선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확인하고도 폐쇄적인 당원 직선제로 지분이 큰 정파들은 국민들이 원하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고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  민주노총의 한계이며 국민들의 지지를 확대하지 못한 자업자득이었다.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의 앞날은 어렵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다.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의 변화가 감지되나.  18대 총선 이후 많은 노력을 했다고 본다.하지만 미진한 것은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여전히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당을 개방화,분권화,네트워크화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의 기득권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4월 재보선에서 국민경선 대신 민중경선 으로 후보를 선출하려 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이탈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선거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논문의 문제의식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정당으로 대중정당 모델이냐 원내정당 모델이냐는 학계 논쟁이 있었다.최장집 교수 등이 얘기한 대중정당 모델이 시대적인 적실성이 있다고 보았다.원내진출 이후 당 생활을 해보니 한계가 많이 드러났다.사회 변화에 적응 못한 정당 모델을 추구한 결과라고 보았다.  대중정당 모델의 쇠퇴는 당지도부의 리더십과 운영상의 오류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배경 때문이었다.시대에 뒤처진 대중정당모델을 고집했을 때 이념과 정파의 편향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선 대중정당 모델을 포기하고 대안이 되는 모델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고 본다.  당의 위기가 닥쳤을 때 결국엔 의원들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의정 활동을 지켜보면서 이를 대중정당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것이 대안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 얘기들을 분당 이전부터 해온 것으로 아는데 반응들은 어땠는지.  비정규직을 더 많이 대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했지만 원인을 따질 때 그들은 사람의 문제,성품의 문제 이런 쪽으로 봤다.더 좋은 사람이 비정규직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정당모델을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론이다.    ●진보신당은 원내정당 모델에 부합한다고 보는지.  분당 이후 반작용으로 신규 당원이 입당하고 민주노총 같은 조직적 기반이 없이 출발했다는 점에서,노회찬과 심상정이란 두 전직 의원의 지지층이 흡수된 측면이 있어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역 의원이 없어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중정당모델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산업화 시대의 대중은 노동자 계급이라 할 수 있었다.후기 산업화 사회에선 대중이라 함은 비정규직,비노조원,화이트칼라처럼 어느 곳에 소속될 수 없는,유동성이 큰 사람들이다.비조직된 대중이 더 많다.위계적인 조직 구도가 아닌 네트워크화된 대중만이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유연성이 대중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동과 사회’ 지난해 12월호에 기고한 ‘노조원들은 시민적 다양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글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선진 노동자들이 왜 다양성을 잃고 기득권층으로 고착됐는지.  개인과 조직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위계적인 조직에 속하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없다.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개성이나 끼를 발산할 수 있다.계급환원적인 생각,집단을 궁극선(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전체주의적 사고로 고착화된다.특정한 사안에 대한 집단행동을 이끌어낼 땐 유리하지만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처음 창당 때는 진성당원제라는 당원들의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있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이념적으로 편향된 당내 정파 지도자들이 당을 포획해놓고 있었다.다수의 당원은 말을 사실상 제대로 못하고 기껏해야 투표하는 것이고 발언권이라든가 소통이 보장되지 않고 당내 민주주의에서 소외되고 자존감을 느끼지 못하니까 ‘페이퍼 당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참여민주주의란 이상이 당을 장악한 정파 엘리트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하니까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재미를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원들이 당에 묶여 있으면 정파가 시키는 대로 당의 눈치를 봐야 한다.소신있게 큰 이득을 위해 국민과 소통할 수 없고 당내 정파구도가 약화되고 의원들에 권력이 넘어가면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이 검증된 의원들이 국민들과 소통할 공간이 열렸다는 의미가 된다.    ●꿈꾸는 진보정당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진보라는 개념부터 시작하자.보수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 것이 진보의 논리지만 진보만이 진리라는 역편향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단성악(單聲樂)적인 구도가 있다.그러나 다양성과 복잡성 및 유동성이 커지는 시대에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진보가 필요하다고 본다.즉,진보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세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진보라는 시각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 중에 하나의 의견정도로,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잠정적인 결론 수준에서 존재하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저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공존방식으로서의 진보, 다양성 속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둘째.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할 수 있는 이상적 모델로서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 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모델이라고 믿는다.    ●그런 내용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보다 어떤 점에서 진전됐느냐 묻는다면.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된다고 본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지 않나.최장집 교수도 그런 점에서 지적당했다.촛불시위 때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에 반응하지 못했던 정당들의 한계를 봤다.이게 핵심이다.시민들의 생활정치에 대한 욕구에 반응하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념과 계급 정파가 줄어들더라도 서민들의 욕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이 있어야 한다.소통 속에서 발견된 욕구를 정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책 생산능력이 담보될 때 정당으로서 생존할 수 있다.원내정당 모델이 바로 그런 것이다.    ●두 당과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대중정당 모델에선 당의 이념과 게급,정파,조직이 강조되는데 이것이 약화될 것이다.당이 원내 의원 중심으로 가져가면서 유권자,시민사회와의 연계 부분이 강조된다.당원 중심을 벗어나 일반 유권자,지지자들도 당내 중요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시민사회의 요구가 전달되고 이것들이 의회에서 토의를 통해 합의되고 정책 결정이 되고 국민에게 성과물로 다가온다.    ●명칭은 원내정당 모델이지만 정당은 조그맣고도 시민사회를 향해 열려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 조직은 엘리트가 강조되는 게 당연하다.다만 행위자가 정파냐 아니면 국민들의 이익이나 선호에 접근할 수 있는 원내 의원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만큼 물적 기반이 없어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고정된 지지기반이 없어 불안정할 수있다.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잘 되고 있느냐 다시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민주노총이란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과거 지지기반으로 갈 수 있겠는가.간다면 상층 노동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금 더 좁아진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연성이 큰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데 느슨한 수준의 네트워크를 가능케하는 것은 정책능력과 소통능력 뿐이다.그때그때 이슈가 터지고 시민들의 요구가 터져나올 때 생활상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원내정당 모델이 대안이라고 본다.  원내정당 모델이 현실에서 나타날 때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날 것이다.하지만 대중정당 모델보다 낫다는 생각이다.원내정당 모델을 현실에서 구현할 때 당내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분산화하고 개방화할 것인가가 중요하다.진보신당의 지못미 당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새 이슈를 개발하고 정책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진보정당 통합이나 반(反)MB 전선에 참여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점증할 것이란 지적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을 수 있다.진보진영내에서 힘이 약하면, 함께 뭉쳐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의 의견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소수의 의견이 배제당할 가능성이 있다.진보정당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큰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채진원씨가 걸어온 길  늦깎이 초보 연구자라고 자신을 낮춘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국민승리 21에 1998년 입당해 지난해 진보신당과 분당하기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10년을 고스란히 지켜본 인물.단국대 사학과 88학번인 채 연구원은 민주노동당에서 경험한 희로애락과 한계를 바탕으로 2005년 경희대 정치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했고 지난 1월에야 어렵사리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됐다.  2004년 원내 진출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민생 법안인 ‘상가임대차보호법’과 ‘이자제한법’.정치개혁의 대표 법안으로 손꼽히는 ‘1인 2표 정당명부비례대표 도입’에 관여했던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창당 이후 정책위원회 제1정책조정위원회 정책국장으로 정치관계법을 담당했으며 이후 의정정책실장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과 정책 지원을 담당했다.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부인의 외조를 위해 중앙당을 사직한 뒤 평당원으로 남아있다가 지난해 3월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제안한 혁신안 ‘생활속의 진보’가 부결되자 탈당했다.현재 어느 당에도 몸담고 있지 않다.  전문연구자의 길을 걷는 한편 기회가 닿으면 의정활동이나 입법을 돕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국민은 ‘통제의 객체’가 아니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민은 ‘통제의 객체’가 아니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자연과 마주한 인간의 첫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공포’였다. 거대한 외부가 가하는 소멸과 질식의 공포였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음울한 책 ‘계몽의 변증법’에 따르면 인간의 본래적인 욕구는 오직 하나, ‘자기 유지’이다. 살아 있고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자연스럽고 강렬한 욕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소함이다. 생존이라는 원초의 본능을 충족시키기에도 너무나 모자란 인간의 힘이다. 생각해 보라. 생명을 걸고서야 품에 안는 노획물, 그럼에도 언제나 부족한 양식. 폭풍과 벼락과 풍랑 한가운데서의 삶, 기근과 추위와 질병 속에 스며드는 죽음. 삶의 매 순간, 자기유지의 인간이 절감한 것은 역설적으로 자기소멸의 숨 막히는 공포였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분(二分)을 배웠다. 대립적인 두 개의 항(項)으로 세계를 양분하였다. 해갈과 기갈, 포식과 기근, 인간과 자연, 친구와 적. 이 두 개의 항목은 정녕 상보(相補)적일 수 있다. ‘낮과 밤’처럼 서로 연결되어 순환을 계속하는 상사체(相似體)일 수 있다. 그러나 공포를 맛본 인간에게 이 둘은 상반의 맞섬말일 뿐이다. 한 쪽이 삶을 떠올린다면, 다른 한 쪽은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분적 사고가 태생적으로 가치편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디 원초적이고 생존과 연관된 것이기에 이분법은 가운데를 남겨두지 않는다. 오히려 양극(兩極)으로 그 칼날을 벼리는데, 자기 유지에 유익한 것은 밝은 것, 긍정적인 것, 선한 것으로 간주되며 유해한 것은 어두운 것, 부정적인 것, 악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렇기에 이분의 실제 도식은 ‘과’가 아니라 ‘대(對)’이다. 인간 대 자연, 친구 대 적, 우리 대 그들. “왜 날 죽이려 하는가, 난 비무장인데.” “넌 강 건너편에 살고 있지 않은가! 친구여, 만약 그대가 강 이쪽에 나와 같이 있다면, 그대를 죽임으로 난 살인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강 건너편에 살고 있기에, 그대를 살해하는 것은 정의이며 난 용사가 될 것이다.” 파스칼의 ‘팡세’ 한 구절. 자기 유지를 위해 인간은 ‘아(我)’ 이외의 것들을 강 건너의 ‘비아(非我)’로 못 박고, 타자절멸의 성스러운 전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결과는 무엇인가. 제노사이드(geno cide)로서의 역사, 곧 진보와 문명의 이름 하에 우리를 번성시키고 타자를 소멸시키는 역사. 오리엔탈리즘(oriental ism)으로서의 역사, 곧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자.”는 미명 하에 이른바 “합리적이고 정상적이며 성숙하고 도덕적인” 자들이 “비합리적이고 이상하며 유치하고 타락한” 자들을 짓밟는 역사. 제국주의와 전체주의, 나치즘과 파시즘이야말로 이러한 환멸의 디스토피아가 아니었던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의 상황이 극히 우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용산 참사’로 대변되는 작금의 모든 상황에서, 이분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흑 대 백, 선 대 악, 아군 대 적군의 저 서슬 퍼런 양분법이 펄펄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암울한 공멸(共滅)의 미래가 머리와 몸에 척척 감기기 때문이다. “리브 앤드 렛 다이(Live and let die)!” 이언 플레밍이 쓴 007 시리즈의 한 제목. 로저 무어가 동명의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로 열연했고, 폴 매카트니는 똑같은 제목의 주제가를 열창하였다. 그러나 “살아라, 그리고 죽여라.”라는 말, 나아가 제임스 본드 자체야말로 이분의 냉전시대, 그 싸늘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던가. 서글픔이, 두려움이, 분노가 치솟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대착오적인 ‘아와 비아’의 발상 하에, 제임스 본드 뺨치는 진압극이 여전히 활개 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할 뿐이다.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통제의 객체로, 지배의 타자로, 억압의 사물로 간주하는 위정자들의 행태가 위태로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허구의 007영화와는 달리, 실제의 붉은 피가 실제로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권력을 위임했으나 거꾸로 죽음을 맛본 ‘진정한 권력 주체’의 피가. 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 [열린세상] 미국의 이상주의와 한국외교/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미국의 이상주의와 한국외교/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미국 외교의 전통과 뿌리를 심도있게 논의하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북핵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 정책을 조율하고 국가이익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한·미관계가 장기적 관점에서 선진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상대 국가의 외교 전통을 서로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교 현안에 대한 특정 국가의 입장은 그 국가의 역사적 특수성과 오랜 기간 축적된 외교 전통을 무시할 경우 제대로 파악될 수 없다. 우리는 미국 외교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한·미 간 구체적 현안 조율에 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뼛속 깊이 이상주의의 나라이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이라는 국가를 건설해 유럽이라는 구세계의 먼지를 완전히 털어버리고 자유와 정의에 기초하여 신세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 건국의 이상이었다. 이러한 이상주의적 기조가 건국 이후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대외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주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미국의 경우는 힘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상주의라는 점에서 그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미국 외교가 시계추처럼 고립주의와 개입주의의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이상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국제연맹의 집단안보체제를 통해서 동맹과 세력균형을 무력화시키고 미국의 이미지에 맞게 국제정치현실을 개혁하려고 시도했던 윌슨주의는 이상주의의 전형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이상적 노력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은 완전히 고립주의의 길로 들어서서 세계와 문을 닫고 살게 된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의 고립주의는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인류에게 파탄을 몰고 왔다. 냉전을 거치면서 등장한 현실주의는 미국 외교가 고립과 개입의 양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현실주의의 등장으로 미국의 이상주의가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현실주의 외교노선을 대표하는 헨리 키신저는 저서 ‘외교론’에서 이상주의가 미국 외교전통의 거대한 저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미국인의 이상주의적 열망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좌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대외정책을 이상주의적 목표를 내세워 추진해 나갔다. 이라크 전쟁 이후 ‘이슬람세계의 민주화’라는 목표를 내건 부시독트린은 가장 좋은 예의 하나이다. 최근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소프트 파워론’도 이상주의 전통에 그 맥이 닿아 있다. 과거처럼 미국적 이상을 힘으로 강요하지 말고 미국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여타 국가들이 미국의 국익에 부응하도록 하는 정책을 취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상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외교전통은 우리에게는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고매한 이상 추구의 이면에는 마키아벨리적 국익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 외교정책에서 이상주의적 노선이 갖는 실질적 의미를 결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한·미 양국은 ‘동문서답’을 주고받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최근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파병처럼 한국의 국제적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집착함으로써 한·미 간에 엇박자가 나고 있다. 이번에 방한하는 클린턴 국무장관은 여러 가지 한·미 간 현안들을 이상주의적 보따리 안에 싸서 들고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상주의적 주장에 공감을 표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외교적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국방백서 “北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

    국방백서 “北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

    국방부는 ‘2008 국방백서’에 북한을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으로 표기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17일 “(이번 백서에)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증강, 군사력의 전방배치 등은 우리의 안보에 대한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고 표기했다고 전했다. ‘2008 국방백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뒤 발간되는 첫 국방백서다. 북한에 대한 ‘주적’ 표기는 다시 쓰지 않았다. 2004년 국방백서부터 삭제됐던 ‘주적’ 표현이 이명박 정부 와서 복원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있었다. 국방부는 주적개념 논란으로 2001~2003년 국방백서를 발간하지 않다가 2005년 ‘2004 국방백서’부터 격년제로 발간해 왔다. ●北 핵 실험 등 안보환경 급변 국방부측은 “북한이 지난 2006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는 등 안보환경이 급변했고,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여전히 위협이 되는 상황을 고려해 직접적인 군사위협으로 표기했다.”고 설명했다. ‘주적’ 표현이 삭제된 2004년 국방백서에는 북한을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표기했다. 2006년에 발간된 국방백서는 북한을 ‘심각한 위협’으로 표현했다. 국방부는 2008년 9월 교관용 정신교육 지도서로 발간한 ‘정신교육 기본교재’에서 북한을 “현시적이고 실체적인 위협”으로 표현했었다. 북한대학원대 류길재 교수는 “탈냉전 및 남북교류를 활성화해야 할 시대적 상황이나 현실적인 남북관계 관리 차원에서도 주적이란 표현은 불필요했다.”면서 “주적이란 표현을 복원시켜 북한을 자극하고 ‘남남갈등’ 등 논란거리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2008년 국방백서는 우리 영토인 독도수호 의지를 표현하도록 지난 2007년 취역한 아시아 최대수송함인 독도함(1만 4000t급)의 훈련모습을 표지사진으로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공생·공영 기조 확고”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통합방위 중앙회의에서 “국가의 으뜸가는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라며 “최근 북한이 국제사회에 긴장을 초래하고 있지만, 민·관·군·경은 합심해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소임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비록 분단 상황이지만 북한과 화합하고 더불어 공생·공영한다는 대한민국의 기조는 확고하다.”면서도 “정부는 국민 보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방위 통합방위 대비태세 확립’을 올해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국민 안보역량 확충 ▲적 침투 및 국지도발 태세확립 ▲초국가적, 비군사적 위협 대비 ▲민·관·군 통합방위태세 확립 등의 과제가 제시됐다. 이석우 선임기자 이종락기자 jun88@seoul.co.kr
  • 박정희 정부 전작권 환수 검토

    1970년대 후반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추진 움직임에 따라 당시 박정희 정부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환수를 고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주한미군 감축이 추진되자 정부가 최첨단 전투기인 F-16 구매를 추진, 미 행정부측에 요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이같은 사실은 외교통상부가 ‘외교문서 공개 규칙’에 따라 30년이 지난 1978년 문서를 중심으로 11일 공개한 외교문서를 통해 파악됐다. 공개된 문서는 총 1만 2000여권 16만여쪽 분량이다. 12일부터 외교안보연구원 내 외교사료관 문서열람실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열람할 수 있다.외교문서에 따르면 1976년 카터 당시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한국 인권문제와 연계해 주한미군 철수론을 제기하자 당시 외무부는 그에 대한 대책으로 전·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의견 등을 개진했다.정부는 또 카터측의 계획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일본 정부와 공조에 나섰으며 유럽과 미주, 아시아의 주요 공관장에게 주한미군 감축 반대를 위해 주재국 인사들과 은밀히 접촉할 것을 지시했다.주한미군 철수 추진에 따른 전투력 공백 등을 우려해 국방부가 당시 최첨단 전투기인 F-16을 구매하려 했으나 미국 의회의 반대로 무산된 사실도 드러났다. 미국측은 1977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원칙적으로 F-16 판매에 동의했지만 미 상·하원 양원에서 동북아 군비 경쟁을 우려,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무산됐다.또 냉전시대인 1978년 4월 파리에서 미국으로 향하다 소련 영공을 침범, 소련 공군기의 공격을 받고 강제 착륙한 대한항공 707 여객기 사건에 대한 당시 정부의 긴박하고도 신중한 대응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외무부는 전 재외공관장에 보낸 문서에서 소련이 승객과 승무원을 보내주기로 한 것을 알리면서 “강제 착륙에 대해서는 확인 중인 만큼 이에 대해 일체의 추측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한편 당시 KAL 707기 조종사는 기계 고장 등으로 항로를 이탈한 게 소련 영공을 침범하게 된 원인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종사 김창규 기장 등은 주한 덴마크 대사와의 면담에서 “항공기 방향을 알려주는 ‘자이로 나침반’이 고장나 소련 영공을 침범하게 됐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1978년 5월 강원도 거진 앞바다에서 생포된 북한인 8명의 북한 송환 과정에 미 정부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당시 해군에 의해 격침된 북한 무장 선박에서 무기를 발견했고 이들을 간첩으로 발표했지만 미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 대리 등이 잇따라 이들의 대북 송환을 요청, 결국 6월 이들을 송환한 것이 확인됐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뉴 그레이트 게임/박정현 논설위원

    영국의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잘 알려진 동화 정글북의 저자다. 그는 소설 ‘킴(KIM)’을 펴낸 지 6년 뒤인 1907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소설은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진 강대국간 세력경쟁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영국인 고아 소년 킴은 인도에 살다가 순례여행을 떠나지만 영국정부 비밀첩보원의 문서를 전달한다. 러시아 스파이 추적 임무도 맡는다. 킴의 활동무대인 중앙아시아는 19세기 초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남진정책을 폈던 곳. 러시아는 흑해 주변에 사는 슬라브 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튀르크와 발칸전쟁을 일으킨다. 초반에 러시아가 우세했으나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튀르크 편을 들면서 러시아는 패전국이 되고 만다. 전쟁 이후에도 영국 등 서방국가와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패권을 놓고 한판의 ‘그레이트(거대) 게임’을 벌였다. 군사 안보 측면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매장된 석유·가스 등의 천연자원을 둘러싼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영국 학자 매킨더의 말처럼 중앙아시아 지배권은 바뀌어 왔다. 냉전시대에는 옛 소련이 장악했고, 소련 연방 해체 이후에는 미국이 영향력을 차지했다. 미국은 키르기스스탄에 1000여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마나스 기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러시아는 ‘강력한 러시아 부활’을 기치로 내걸고 이 지역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벨라루스·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 연방의 7개국과 함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신속대응군을 창설하기로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응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다. 마나스 기지에는 미군 대신 CSTO 신속대응군이 주둔할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는 약 200년 전처럼 범슬라브 민족 통합을 내세워, 새로운 남진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뉴 그레이트 게임’이 본격화되면 긴장감이 높아질 테고, 국제적 관심도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박재규 통일산책] 통일교육은 균형있는 시각으로

    [박재규 통일산책] 통일교육은 균형있는 시각으로

    최근 정부는 남북 상호이해 증진과 평화교육에 중점을 두었던 통일교육을 통일·안보역사 교육 중심으로 개선해 실시하기로 하였다. 통일교육의 내용 변화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 통일교육 또한 변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과거 냉전시대의 통일교육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고조하는 반공교육에 초점을 맞추었다. 1980년대 탈냉전을 맞아 반공교육이 쇠퇴하고 통일 방안에 대한 내용이 보강된 통일·안보 교육으로 전환하였다. 김대중 정부 이후 지난 10년은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강조하는 통일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현 정부는 통일교육에 안보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지난 10년간의 통일교육은 통일교육의 양대축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교육과 안보교육이 균형을 잃고 안보교육을 지나치게 소홀히 함으로써 현존하는 안보 위협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였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의 통일교육에 문제가 있고 미진했던 부분이 있다면 이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보다 내실있고 균형감있는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정부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다른 분야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통일교육도 지나치게 현실 정치와 연관하여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10년의 통일교육이 비판을 받는 것도 지나치게 정치적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통일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내외적인 환경의 변화를 수용하더라도 장기적 전망 하에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조망하면서 균형있는 시각을 가지고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통일교육은 다른 교과목과 달리 정치적 환경변화에 좌우되기 쉽다는 점이다. 즉 남북관계의 변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의 변화, 북한체제의 내부변화와 같은 요인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통일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당장 군사적으로 대치하여 긴장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남북의 분단구조적 여건 속에서 통일교육이 생각만큼 현실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통일교육을 정치적 현안 다루듯이 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통일교육은 정부의 대북정책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공통점과 연속성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특정정권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들의 정책을 바탕으로 시대적 변화를 수용해온 결과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통일교육도 마치 김대중 정부 때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미 변화하고 또 축적되어 온 것이었다. 지난 10년의 통일교육이 지나치게 평화교육에 편향되어 현실의 안보위협을 무시하였다면 이를 수정하여 보완하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과거 안보교육이 무시되었던 것처럼 평화교육을 무시한다면 이 또한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평화는 민주와 더불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이번 통일·안보역사 교육 개편은 지난 정부의 통일교육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한 차원 더 성숙된 변증법적인 발전과정의 일환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동서독 통일에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된 서독의 통일교육은 오히려 통일을 지향하기보다는 상호공존을 교육하되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교육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게 하는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하였다. 무엇보다도 정권적 차원을 넘어 장기적 전망 하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일관성 있는 교육을 수행하였다는 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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