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냉전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주의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사단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유라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면담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798
  • [시론] G20 이후의 국제관계/김흥규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시론] G20 이후의 국제관계/김흥규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주요 20개국(G20) 서울회의가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우리는 이 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그간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이후 이 회의의 공과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겠지만, 그 평가보다 중요한 일은 회의에서 드러난 국제정치의 현실을 냉정하게 곱씹어 보는 일이다. 이는 향후 국제관계의 단면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으며, 현실은 우리의 외교에 간단치 않은 도전 요인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회의는 국제경제관계가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미국은 “미국의 경제가 강해야 세계에 이익이 된다.”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중국의 환율절상 및 미국의 무역적자 완화를 위한 참여국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실제는 최근 단행한 ‘양적 완화’ 정책으로 인하여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참여국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급급해야 했다. 중국의 양보를 받아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두 번째, 국제정치경제의 다원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경상수지 흑자국인 독일은 미국의 경상수지 관리 주장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중국이나 브라질 역시 미국의 약(弱) 달러 정책이 발전도상국과 저개발국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다. 상대적으로 전통 경제 강국인 일본은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이번 회의에서 국제관계의 규칙을 변화하는 각국의 경제능력과 국력의 실제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점차 개정해야 한다는 데 참여국들이 의견을 같이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세 번째, 최근 G2라 불릴 정도로 성장한 중국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중국은 경상수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개도국의 위상 확대라는 국제 금융기구 개혁 방향을 제시하면서 한국이 제기한 ‘개발’ 의제를 지원하고, 중국이 개도국과 저개발국의 적극적인 후원자임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이 과정에서 중국 스스로의 지분 확대를 챙긴 것은 물론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반도 안정을 위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라는 훈수도 과감히 내놓았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영국은 물론이고 서방 정상들도 ‘중국 위협론’을 부정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네 번째,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임이 분명하지만 미국의 주장이 더 이상 당연히 세계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각국은 의제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며, 타방의 이해를 반영하지 않는 일방적 주장은 미국이라도 지지를 획득하기 어렵게 되었다. 미국 역시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고도화된 대량살상무기, 상호의존,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는 국제관계시대에서 강대국 간의 영향력 수준은 점차 군사력보다는 경제적 생산력, 국가 운영 능력, 국가적 호감도 및 매력 수준이 오히려 주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안보 논리만으로 다른 영역의 이해들을 희석시킬 수 없다는 것이 탈냉전 시대 국제관계의 주요한 특징이고, 이번 회의는 이를 잘 드러내 주었다. 냉전 상황의 한반도, 그러나 보다 다원화되는 국제관계, 개별국가들의 복합적인 이합집산, 중국의 부상과 공세적인 대외정책, 그리고 새로운 국제관계를 반영하는 규칙 제정과 이에 따르는 국제적 갈등·분쟁이 강화되고 있는 현상이 우리 외교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는 성과를 자축하기보다는 다시 냉정하게 우리의 외교역량을 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일각에서 제시되는, 한·미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인하려는 태도는 중장기적인 대가를 고려해야 할 것이며 시대정신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기 전까지 얼마만큼의 시간과 여유가 우리에게 주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제관계의 현실이다.
  • [책꽂이]

    ●바른 통일로 가는 이야기(장청수 지음, 통일신문사 펴냄)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지낸 저자가 통일문제에 대해 쓴 1000회 이상의 사설과 칼럼을 모은 책. 냉전의식을 버리고 학자의 양심으로 경험했던 남북관계의 주요한 쟁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바른 통일’의 과제를 폭넓게 제시한다. 1만 2000원. ●안다는 것의 기술(하타무라 요타로 지음, 황소연 옮김, 가디언 펴냄)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인 저자가 앎이란 무엇인가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뤄지는지 살펴본다. 특히 현대사회는 암기형 수재가 아니라 알기 위해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만 2000원. ●뇌내폭풍(腦內暴風)(에릭 마이젤·앤 마이젤 지음, 한상연 옮김, 예문 펴냄) 특정한 목표나 일에 강박적으로 몰입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몰입의 심리학을 소개한다. 저자 부부는 “뇌의 힘은 생산적인 강박에 쫓기면서 머릿속의 구상을 원고지에 옮기려 하거나 남다른 성과를 올리기 위해 애쓰면서 회사를 운영해나갈 때 진정으로 발휘된다.”면서 몰입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알려준다. 1만 3000원. ●Y씨의 최후(스칼릿 토머스 지음, 이운경 옮김, 민음사 펴냄) 읽은 사람은 모두 죽거나 사라진다는 저주받은 책 ‘Y씨의 최후’를 발견한 여주인공이 의식의 세계를 모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 그녀는 책의 내용에 따라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의식 세계인 ‘트로포스피어’ 진입에 성공하고, 현실과 의식 세계를 오가며 미스터리한 사건을 헤쳐 간다. 1만 6000원.
  • [G20 D-3] 정상들 의전차를 보면 국력이 보인다?

    [G20 D-3] 정상들 의전차를 보면 국력이 보인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는 현대자동차의 에쿠스 리무진 방탄차가 의전 차량으로 제공된다. 배기량 5000㏄급에 가격은 1억 4600만원으로 명실공히 국내 최고급 세단이다. 이 차의 장점은 실내공간이 넓다는 것이다. 벤츠 S클래스 등 경쟁 차종보다 앞뒤 길이가 31㎝ 길다. 뒷좌석은 마사지 기능도 갖췄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에쿠스 리무진을 이용하지 않는다. 냉전시대 세계를 양분했던 두 나라는 대통령이 외국에 나갈 때 전용차를 공수해 가는 ‘관행’이 있다. 미국 대통령은 GM사의 ‘캐딜락 원’ 방탄 리무진을 가지고 다닌다. ‘야수’라는 별명을 가진 이 차의 가격은 6억 2000만원에 이른다. 미국은 똑같은 캐딜락 2대가 동시에 이동하는 식으로 어느 차량에 대통령이 탔는지 알 수 없도록 하는 기법을 쓴다. 미국 대통령은 외국에 갈 때 전용차뿐 아니라 전용 헬기인 ‘머린 원’도 공수해 가는 등 유난을 떠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련 제국 붕괴로 국력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러시아도 ‘꿋꿋이’ 전용차를 가지고 나간다. 차종은 메르세데스-벤츠 방탄차로 알려져 있다. 반면 ‘G2’로 급부상한 중국은 아직 전용차를 공수하지는 않는다. 특이한 나라는 일본이다. 전용차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 대신 언제나 예비 전용기가 총리를 따라붙는다. 외교 소식통은 7일 “총리가 타는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용하려는 목적인 것 같다.”면서 “타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항상 1대가 더 따라다닌다.”고 했다. 서울 G20에 참석하는 정상의 배우자들에게는 BMW의 최고급 시리즈인 BMW750Li가 의전차량으로 제공된다. 가격이 1억 8000만원에 이른다. 현대자동차 등 업체들은 G20 정상회의에서 사용된 의전차량들을 시가보다 저렴하게 일반에 판매할 계획이다. 정상급 VIP가 탔던 차로 희소성이 있는 데다 성능과 안전성이 인정된 만큼 인기가 높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원형대로 재탄생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원형대로 재탄생

    독립과 민주의 현장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새롭게 탄생했다. 서대문구는 3일 2008년부터 국비와 시비 등 121억 2700만원을 들여 역사관 종합정비 보수공사와 전시관 전시물을 대폭 교체해 오는 6일 재개관한다고 밝혔다. 우선 옛 보안과 청사로 사용됐던 주전시관을 원형대로 복원했다. 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 1398㎡(423평)로 1961년 5·16쿠데타 이후 군인출신 형무소장이 냉전 이데올로기에 따라 붉은 색을 꺼려 기존 외벽에 흰 타일을 덧붙였던 것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전시 아이템도 ‘독립과 민주’에 걸맞은 시설물로 꾸몄다. 전시관 1층 역사실에서는 폭압적인 식민권력의 상징이었던 형무소의 연혁과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과정에서의 역사적 의미를 조망하고 관련 영상을 상영한다. 지하1층 그림자 영상 체험실에서는 벽면에 설치된 특수카메라가 관람객의 얼굴을 그림자 형태로 촬영해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것처럼 합성한 특수영상을 올린다. 형무소를 감시·통제하는 건물인 중앙사에는 간수사무소 및 수감자 기록과 식사, 의복, 생활을 보여 주는 ‘형무소 의·식·주’를 만들었고 12옥사에는 독방과 독립운동가 사이의 암호통신이었던 타벽통보법을 보여준다. 1987년 서울구치소 이전 직후 철거된 취사장도 1930년대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398㎡(120평)의 취사장은 1936년 제작된 도면을 조사해 드러난 지층 구조물과 취사장 천장 증축 공사도면을 근거로 복원한 것이다. 이 밖에 옥사 지붕과 외벽보수, 보강, 지붕 채광장을 복원하고 경내 외래수종 수목을 심어 1930년대 경관을 재현했다. 문석진 구청장은 “시와 문화재청의 협의가 끝나는 대로 내년부터 유관순 지하감옥, 격벽장(수감자 운동장), 담장 등에 대한 원형복원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독립·민주화 열사들의 수난처인 서대문형무소가 역사문화의 명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재개관 기념으로 무료 개방하는 6일 형무소에 투옥됐던 독립지사 이병희·이병호 선생과 이돈명·이소선·박형규·리영희씨 등 민주인사 4명이 풋 프린팅을 하고 다중집합장소에 입식 조형물로 전시할 예정이다. 앞서 4일 경술국치 100년·형무소역사관 개관 12주년을 기념하는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7일에는 을사늑약 체결지인 경운궁 중명전~경교장~4·19혁명도서관~독립문~서대문형무소를 걷는 민주올레길 탐방 행사가 이어진다. 역사관 관람객은 연간 일본인 4만 2000여명 등 60만명에 이른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금융·정보산업 허상 좇기보단 제조업 집중해야”

    “금융·정보산업 허상 좇기보단 제조업 집중해야”

    ‘이명박 정권의 경제 정책은 스탈린주의, 그것도 이미 실패로 판명난 스탈린주의다?’ 자금을 큰손-예컨대 재벌-에게 몰아주고, 이들이 투자에 나서면 성장은 저절로 따라오며, 성장의 떡고물이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고수해서다. 수십년 전 박정희 정권 논리를 아직도 고집하는 것도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이 주장이 ‘샌드위치론’ 같은 것으로 얼굴 바꿔 등장하는 것을 보면 숨겨진 저력도 만만치 않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의 도발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기업집단(재벌)의 긍정적 측면을 설파하다 보니 ‘재벌옹호론자’라는 말도 나오고, 국가의 산업정책에 무게를 두다 보니 ‘제도학파’라는 평도 있고, 칼 마르크스까지 인용하면서 자유시장주의를 비판하다 보니 심지어 ‘좌파’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지만, 장 교수는 경제학으로 분리되기 이전의 정치경제학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발도상국의 발전 문제를 전공한 점이나, 성장의 목표를 모두가 잘 사는 사회로 잡는다는 점에서 ‘21세기판 국부론’을 꿈꾸는 쪽에 가깝다. 이번에 낸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명박 정권이 박정희 성장담론을 끄집어내는 것은 그 방법이 아직도 유효하고 좋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선 장 교수가 지적하듯 박정희 정권 성장전략의 원산지는 스탈린주의다. 장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러시아 혁명 뒤 경제개발을 해야 하는데, 농업국가라서 자본이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집단농장을 만들어 농업 부문에서 나온 이익을 국가가 독점한 뒤 이 독점이익을 산업개발에 투하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트로츠키의 참모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에게서 나왔고, 이 논리를 스탈린이 채택하면서 소련의 경제개발 논리가 됐다.” (13장-부자를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점진적으로 산업화로 나아간 선진국들과 달리 성장에 동원할 돈이 부족하니 어떻게든 끌어모아 종잣돈을 마련한 뒤 한곳에 ‘몰빵’하자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한·일협정으로 얻어낸 차관으로 포철을 지은 게 이런 전략의 한 사례다(12장-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이 처음부터 이런 전략을 택한 것은 아니다. 쿠데타 직후에는 박현채 같은 일군의 젊은 경제학자들이 제기한 자립경제와 균등발전론(나중에 정치인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으로 이어진다)을 검토했다. 그러나 성장 욕구에 비해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은 턱없이 부족했다. 불균등발전론으로 선회한 이유다. 어떻게 한곳에만 몰아주느냐는 불만에 대한 대답이 바로 ‘조금만 참아라. 성장이 이뤄지고 나면 분배해줄게.’라는,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유예되고 있는 약속이다. 장 교수는 이 정도 언급에서 끝냈지만, 사실 이론적 측면에서 스탈린주의의 영향력은 더 강했다. 소련의 급속한 성장에 영향을 받아 서구 학계는 ‘해로드-도마 모델’을 만들어냈다. 일정 정도의 자본량만 채운다면 성장은 급속하게 이뤄진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모델은 1950년대부터 장기적 성장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의 사례에 비춰봐도 대공황 탈출기에나 성립할 뿐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두 학자는 이 모델을 자진폐기하기도 했다. 실제 역사에서 이 모델의 성공사례도 없다. 스탈린체제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한국전쟁 뒤 김일성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숙청하면서 중화학공업에 집중투자해 한때 거들먹거렸으나 지금은 거의 망조가 났다. 미국이 지원했던 제3세계 국가 가운데서도 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국가는 거의 없다. 따라서 한국의 성공은 세계적으로 볼 때 대단히 예외적인 사례다. 더구나 한국의 성공 또한 순탄한 것만도 아니다. 유신정권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때문에 물가앙등과 생필품 부족 사태가 일어났고, 부마사태와 10·26사태 등 정권 말기의 정치적 혼란도 이 때문이라는 연구도 많다. 또 전두환 정권이 집권 내내 손댔던 작업이 박정희 정권이 판을 벌여놓은 중화학공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이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장기적 성장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말은 곧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나 먹혀들 전법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 모델이 여태껏 살아남은 이유는 백악관의 정치참모였던 월트 로스토의 발전단계론 덕분이다. 냉전의 공포를 등에 업은 로스토는 자본을 투하해 성장이 이뤄지면 민주주의도 공고화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악의 제국’ 소련에 맞서야 했던 미국은 이 논리를 그대로 채택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는 국제원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국내적으로는 마이크로크레딧(우리나라의 미소금융)이라 일컬어지는 방식이다. 옛 동구권에 대한 국제원조 문제를 연구했던 윌리엄 이스터리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를 “공산주의 국가가 제공한 잘못된 영감을 옛 공산권 지원을 위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다시 채택하는 아이러니의 순환”이라 불렀다. 장 교수의 결론은 지금 당장 대기업들이 거금을 투자한다고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또 설사 성장한다 해도 그게 바람직하진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박정희나 스탈린 때야 워낙 자본금이 부족한 사정이라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투자 안 한다고 볼멘소리를 낼 정도로 기업들이 돈을 쌓아두고 있다. 그럼에도 ‘투자가 우선’이라는 명제에 목을 매다 보니 세금 깎아주겠다고 선심쓰고, 법치주의를 내세우면서 기업인들은 줄줄이 사면복권해 주고, 환율 유지를 위해 물가를 포기해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서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만 남는다. 이러한 것들이 잘 풀리면 경제활성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장 교수는 대안으로 금융·정보기술산업 같은 허상을 좇기보다 제조업에 더 충실해야 하고, 더불어 증세를 통한 보편적 복지정책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뿌리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누구보다 청와대가 열심히 읽어야 할 책으로 보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글로벌 경제위기에 새 해법을 제시하다/오영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열린세상]글로벌 경제위기에 새 해법을 제시하다/오영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 축적의 총아인 기업이 힘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구 소련이 미국과 대립하던 냉전시대에도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햄버거가 러시아인에게 사랑받은 것처럼, 어떤 점에서는 기업이 국가의 힘을 능가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공상과학 영화에서 거대 기업이 사회, 국가, 나아가 세계를 지배하는 설정에 관객들이 수긍하기도 한다. 이런 거창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기업은 우리 실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오·폐수를 몰래 흘려보내 지역사회에 타격을 입히는가 하면, 대규모 공장을 지어 주민에게 새로운 소득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기업이 경제적 이윤 추구에 더해 비경제적 차원에서 사회에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기업은 국제사회의 요구와 기대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독립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동태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한 국가의 위기가 도미노 식으로 번져 이웃나라, 나아가 세계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면서 정부의 힘만으로는 위기극복과 그 이후 예상되는 경기 회복기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와 거의 동시에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하는 비즈니스 서밋이 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1차 세계 대공황으로 불리는 1873년과 2차인 1930년, 그리고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위기 극복은 정부가 주도했지만 정작 경기 부흥의 실질적 수혜자이자 주도세력은 기업이었다. 1873년 불황기에는 철도·전기·철강산업이 태동해 이후 호황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30년 대공황이 지나면서는 섬유 등 화학산업, 자동차 등 기계산업, 고속도로·댐 등 인프라 개발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한마디로 위기극복의 ‘키 플레이어’(Key Player)는 기업이었던 것이다. 이번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재단 회장을 필두로 로열더치셸·네슬레·뱅크 오브 아메리카·중국 공상은행 등은 물론 삼성·현대·LG·SK·포스코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총수들까지 모두 12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또 전 세계 중소기업을 대표해 국제상공회의소(ICC)의 전·현직 회장들도 초청됐다. 이들 기업은 2009년 총 매출액이 4조 달러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8배, 그리고 남미대륙 전체 GDP를 상회한다. 자산 총액은 30조 달러로, 전 세계 인구가 하루 세번씩 1년 1개월 동안 빅맥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전체 근로자 수는 917만명으로 스웨덴과 그리스의 근로자를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세계인들의 먹거리, 탈거리, 입을거리 등 생활 전반은 물론 생각까지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다.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은 현재와 향후 있을지 모를 경제위기에 ‘정부-기업 간 공조를 통한 위기극복’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이를 정례화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곧 ‘코리아 이니셔티브’(Korea Initiative)가 확립된다는 뜻으로, 국제 경제질서 논의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키울 좋은 기회다. 비즈니스 서밋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다보스 포럼이나 보아오 포럼 같은 이벤트 위주의 토론이나 사교의 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속 가능한 균형 성장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란 주제 하에 ‘무역투자’, ‘금융’, 그리고 G20 회의에서는 논하지 않는 미래 발전전략인 ‘녹색성장’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포함시켜 꾸준히 의견을 교환해 왔으며, 토론 결과를 보고서로 만들어 G20 정상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비즈니스 서밋을 포함한 G20 정상회의가 성공했을 때 우리가 거둘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수출 증대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31조원에 달하고, 16만 6000명의 고용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격이 상승하고 국가 브랜드와 기업 이미지가 높아져 230억 달러의 수출증대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오는 10일은 글로벌 민·관 공조체제 시대의 서막이 오르는 날이다.
  • [사설] 6·25 참전 정의롭다는 중국의 자가당착

    중국의 6·25 참전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미화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발언이 일파만파다. 중국 외교부는 그제 “이는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시 부주석을 옹호하고 나섰다. 한국 내 부정적 여론과 “6·25는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우리 측의 우회적 문제 제기에 대한 대응이었다. 양국 간 이런 무익한 논란이 종식되려면 중국 측이 한국전을 둘러싼 역사적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 부주석의 발언은 지난 25일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개전 60주년 좌담회에서 나왔다.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는다)’란 표현 자체가 마오쩌뚱 시대 중국의 한국전 참전을 아전인수로 합리화한 논리다. 6·25가 김일성이 마오와 옛소련 스탈린의 승인하에 감행한 남침임은 객관적 사료로 이미 입증됐다. 그런 엄연한 사실에 눈감은 채 참전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일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려는 꼴이다. “60년 전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가 중국 인민들에게 강제한 것”이라는 시 부주석의 언급도 자가당착이긴 마찬가지다. 남침 후 유엔의 개입으로 세가 불리해진 북한의 요청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이 한·만 국경을 넘었다는 진실을 외면했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한국전 발발 후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남침이라고 결의한 뒤 유엔군을 파견했다. 그럼에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된 중국이 새삼 남침을 정의의 전쟁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스스로를 냉전의 올무로 묶는 자승자박이다. 2년 뒤의 5세대 최고지도자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중국이 주요 2개국(G2)의 위상에 걸맞은 지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냉전적 혈맹 의식에 갇혀 북을 무조건 싸고돌 게 아니라 정확한 사실(史實)을 기반으로 남북 간 공정한 평화 중재역을 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베이징 어느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마오와 김일성의 대화록 등 외교문서부터 들여다보기 바란다. 정부도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진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물렁하게만 대응하다가는 훗날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외교노선에 대해 분명한 팩트를 토대로 당당한 목소리를 낼 때 양국 관계는 장기적으로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 “유엔도 ‘남침’인정… 中 냉전논리 못벗어”

    “유엔도 ‘남침’인정… 中 냉전논리 못벗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6·25 전쟁에 대한 발언을 두고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전한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인 황진하 의원은 29일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중국은 6·25 전쟁에 대한 분명한 인식으로 동북아 평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의원은 “국제사회가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6·25 전쟁은 발발 직후부터 북한의 남침이 인정돼서 국제연합(UN) 결의를 통해 국제사회가 동참한 전쟁”이라며 시진핑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할 중요한 국가인데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론에 대해서는 재판단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유기준 의원도 “역사인식에 상당히 큰 문제가 있고 발전하는 한·중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발언”이라면서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공식적인 대응이나 반박은 자제하려는 분위기다. 한 핵심관계자는 “중국 정부에서 잘못된 내용을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밝혀서 곤혹스럽다.”면서도 “하지만 집권 여당에서 공식적으로 반박이나 대응을 할 경우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이 빚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도 시진핑의 발언을 놓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고, 아직도 양극 냉전시대의 대결논리에 빠져있다.”면서 “중국은 대국주의의 논리로 겸손함을 잃어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당5역회의에서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국교 정상화 뒤 수교의 폭을 넓혀오면서 우호적 수교를 위해 전쟁 책임에 대한 거론을 피해왔다.”면서 “그런데 지금에 와서 중국이 6·25 전쟁을 미국의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나서는 이유는 한마디로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이 이제는 과거의 역사 언급을 자제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오만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중국은 한국과 국교 정상화 후 초기 수교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겸손한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특정세력, 개헌 안되는 줄 알면서도 정국 몰아가”

    “특정세력, 개헌 안되는 줄 알면서도 정국 몰아가”

    “연출은 아무리 잘해도 부자연스러워요.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합시다.” 28일 오후 2시45분,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의 인터뷰에 앞서 연출 사진을 제안했다. 국회의 민주당 대표실에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두 사진 사이에 손 대표가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손 대표는 손사래를 치며 회의용 책상에 앉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손 대표가 앉은 자리도 김·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한꺼번에 카메라에 담기 좋은 위치였다. 손 대표는 인터뷰에서 10·27 재·보선과 개헌, 정치권 사정 움직임 등 정치 현안 전반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는 이도운 정치부장이 1시간 10분 동안 진행했다. 대담 이도운 정치부 ●재·보선 평가 →정치부 기자들이나 교수, 최고경영자들이 뽑은 차기 대통령 1위로 여러 번 선정된 적이 있지만, 대중적인 지지도는 정치 엘리트들의 지지만 못한 것 같다. -가까이 아는 사람들은 능력이나 배경, 입장, 자세를 보고 나를 평가하지만, 일반 대중은 그럴 기회가 드물다. 외향적 이미지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럼 대중과의 소통을 늘리면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보나. -대중과의 접촉도 중요하지만 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 당의 신뢰를 높이는 게 우선이다. →10·27 재·보선을 어떻게 평가하나. 광주 서구청장 선거에서 패했는데. -글자 그대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이 무섭다. 광주 시민들이 민주당에 다시 채찍을 들었다. 지난번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표로 나를 뽑은 것과 같은 변화 요구이다. 으레 민주당을 찍어 줄 것이라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자세로는 민주당이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엄격한 교훈을 얻었다. →비록 손 대표가 공천은 안 했지만, 선거는 손 대표 지휘로 치렀다. 선거 패배에 책임감을 느끼나. -공천을 누가 했건 책임은 현 지도부가 져야 한다. 광주에서 ‘지금 우리가 어려우니 도와 달라.’는 게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큰 가르침을 준 것이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호남에 과도하게 의지해 온 방식에서 벗어난다는 뜻인가. -호남에 기대고 안 기대고의 문제가 아니다. 호남의 애정과 신망은 계속 이어가야 한다. 그 애정은 민주당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다만 호남이라고 당연히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안이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결국 전국적인 지지를 확장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나. -다른 거 없다. 진정성을 갖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걸 하나하나 챙겨 아픔 덜어주고 어려움을 도와주고, 그런 모습이 쌓일 때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실천 능력을 보여 줄 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대선 구도 →박근혜 전 대표가 호남 지역에서도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대선에서도 그 정도 득표를 할까. -지금 그걸 논할 때는 아니다. 다만 박 전 대표는 당이나 지역을 떠나 상당한 맹목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 현상을 좀 생각해 봐야 한다. →손 대표는 영남·호남·충청도 출신이 아니다. 이들 지역 외에서도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나. -지역은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본다. 영·호남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갖췄느냐가 중요하고, 당의 선택이 중요하다. 당의 선택과 후보가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문제인데, 그런 게 시대정신이다. 지역보다는 시대정신이다. 역대 대통령도 시대정신에 의해 뽑혔다. →한나라당이 이른바 부자감세 철회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가. -한나라당이 부자감세를 철회하면 박수치고 찬성할 일이다. 우리가 계속 부자감세를 철회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면 된다. 우리의 목표가 집권이지만, 최종목표는 국민이 잘사는 것이다. 국민이 잘사는 문제를 놓고 겨뤄서 한나라당이 이기면 우리가 깨끗하게 승복하면 된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설령 부자감세를 철폐한다고 해서 반서민적인 철학이 바뀌겠나. 두고 보자. ●사정 정국 →검찰이 천신일 회장의 세중나모여행을 압수수색했다. 어떻게 보나. -진정으로 공정하고 공평하게 이뤄지는 수사라면 환영할 일이다. 무늬만 하고 말 거면 이 정권 사정이 뭔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천신일 회장의 비리가 나와도 개인적인 것이고, 현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는데. -그렇게 얘기하겠지.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이들을 적극 보호할 것인가, 일단 법 집행을 지켜볼 것인가. -법 앞에는 누구나 평등하다. 그래서 정권과 권력에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라고 하는 것이다. 비리는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공정하게 집행될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 있다. 여태껏 편파적으로 법의 잣대가 적용돼 왔기 때문이다. 법의 집행이 공정하면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공정하게 집행될 것이라고 누구도 기대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법이 부당하게 운영되면 분명하게 맞서 싸울 것이다. 사정이란 이름 아래 전 정권에 대한 보복이나 야당 탄압이 이뤄지면 국민들이 먼저 알 것이다. 국민들과 함께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 →국민과 함께 싸운다면 장외로 나간다는 뜻인가. -장외라는 말 하지 말라. →손 대표 주변은 정치자금 문제에서 깨끗하다고 봐도 되나.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다짐한다. ●개헌 논란 →손 대표 취임 직후 이재오 특임장관이 예방했는데 그때 개헌 얘기는 안 했나. -나에게는 ‘개’자도 꺼내지 않았다. 떳떳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개헌과 관련해 많은 얘기를 한다고 하는데, 왜 내 앞에선 말 한마디 안 꺼내나.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개헌 논의 자체가 불순하고, 온당치 않기 때문이다. 이건 세상이 다 안다. 개헌해서 서민생활이 나아지나 물가가 안정되나. 세상이 아는 얘기를 놓고 언론은 제대로 말도 못한다. 정권 내 특정 세력이 권력을 연장하려는 것 아닌가. →특정 세력은 누구를 말하나. -다 아는 거 아니냐. 이제 좀 성숙하고 솔직하게 말하자.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에서 개헌과 관련된 통일된 안을 가져 오면 얘기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그건 (그냥) 하는 얘기다. 지금 개헌 논의가 일어나면 모든 정책논의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다. 민생, 대북 문제 다 덮자는 얘기인가.정권말기가 됐으니, 어떻게든 권력을 연장하자는 의도가 아닌가. 하다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정국을 그렇게 끌고 나가려고 한다. 지금의 헌법만 잘 지켜도 권력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럼 당내 개헌 논의를 중단시킬 의사는 없나. -우리는 민주정당이니까 강제로 논의를 억누를 수는 없다. 이 정도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최근 관훈토론에서 다음 정권 출범 초에는 개헌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만일 집권을 하면 개헌 절차를 밟은 것인가. -그렇다.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나 현 정권은 사실상 1년밖에 안 남았다. 1년 뒤면 개헌 논의를 할 여유가 없다. ●FTA ·4대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대한 당의 통일된 입장은 뭔가. -재협상 문제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게 지금 상황이다. 미국은 강력하게 쇠고기와 자동차 부문에서 추가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분명한 건 기존합의에서 우리가 더 불리한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우리당 내의 재협상 주장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라,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같은 독소조항을 폐지하자는 것이다. 현 정부가 미국에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면 우리도 단순하게 판단할 텐데, 정부의 태도가 모호하다. 우리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 정부의 재협상 태도를 보고 결정할 것이다. 독소조항 제거가 목적인 재협상 요구가 제기된 만큼 공청회, 특위를 통해 논의한 뒤 결정하겠다. →4대강 사업 문제는 충남·경남도와 공동 대응하고 있나. -당의 입장은 분명하다. 운하사업으로의 전환 반대, 대규모 보와 준설 반대다. 제발 더 이상 공사를 진전시키지 말고 검증특위를 만들어서 검증해 보자. 4대강 때문에 수 많은 복지, 교육, 지방사업도 못 하고 있다. →손 대표는 경부고속도로, 청계천 사업에 찬성했나. -경부고속도로는 1960년대 사업이다. 왜 50년 전 얘기를 하나. 그때는 반대했는데 지금 찬성했다고 하는 논리가 웃기는 것이다. 야당은 여당의 선거공약에 반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경부고속도로와 청계천을 누가 그렇게 심하게 반대했나. 내가 반대했나. 억지 논리다. 어떻게 청계천과 4대강이 같은가. →4대강 공사가 끝난 뒤 여론이 좋아지면 민주당도 좋다고 인정하지 않겠나. -당장 좋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100년 이상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도 좋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나. ‘다 파헤쳤으니 어쩔건데’ 하는 게 나쁜 거다. ●통일·외교 →이명박 정부는 한·미 관계가 역대 정부 최고라고 자평한다. -뭐가 최고인가. 정권과 정권과의 관계가 좋다는 것인지, 장기적인 국가 이익에서 최고인지 봐야 한다. 물론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대한민국이 성장할 때는 이미 지났다. 다변적 관계, 동북아의 새 질서, G2라는 새 경제 질서 속에 살고 있다. 대미일변도의 외교가 최고의 국익인가는 생각해 봐야 한다. 대미관계가 좋아야 하지만 다른 우방국과도 균형을 이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충돌할 때 우리는 어느 쪽에 가까이 가야 하나. -냉전시대라면 둘 중 하나를 택해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해관계가 전부 다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외 경제 의존도가 미국이 70~80% 정도였지만 지금은 미국보다 중국, EU가 더 커지는 상황이다. →북한이 권력 승계 과정에 있다. 통일방안을 가지고 통일에 대비하는 게 가능할까. 아니면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까. -3대 세습은 정상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상대를 안 할 것이냐. 이건 현실의 문제다. 상대가 있는데도 상대를 안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 개념으로 규정하는 게 맞다고 보나. -어떤 게 현명할까. 국방은 우리나라의 안전을 보호하는 게 최종 목적이다. 지금은 6·25 상황도, 1970년대 상황도 아니다. 과연 전쟁으로 승패를 판가름할 것인가. 가치의 문제다. 정부에 물어봐야 한다. ●당내 구도 →민주당 당원들이 손 대표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는데, 대선 국면에선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전략적 선택이란 게 그때그때 이용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당원들은 수권정당을 만드는 데 손학규가 적당하다고 본 것이다.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평가다. -내가 당권에 목표를 두고 있다면 기반을 강화하겠지만, 목표는 정권교체다. 어떻게 처신하는지 지켜보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롤 모델이라고 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섭섭하지 않겠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김 전 대통령을 다 존경한다. →한나라당이 공천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도 개혁안이 나오나. -바람직한 모습이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전당대회를 보고 자극 받았을 것이다. 서로 긴장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변하면 우리도 긴장해야 한다. 그게 선의의 정치다. →경기지사 시절 대표적 업적은 뭔가. -많다. 흔히 외자유치, LG필립스 유치 얘기를 많이 한다. 나는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지사직을 수행했다.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는 데 경기도가 앞장섰다.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데도 앞장섰다. ●정치인 손학규 →손 대표의 이념은 뭔가. -굳이 얘기하면 중도진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념으로 묶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가 보더라도 진보적인데, 그는 중도개혁을 말했다. 국민은 이념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병역을 마쳤다. 최근의 잇따른 병역기피 논란에 어떤 생각을 하나. -군대가 좋아서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35개월 육군 사병 생활을 하면서 특별 휴가도 가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복무했다. 내가 민심현장을 자주 찾는데, 그 바탕이 사병 생활에서 나왔다. 군에서 손학규 DNA가 만들어진 것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데, 두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나. -재평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도전과 모험에 대해 상대적으로 두려움이 없다. 고초를 겪고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싸우고 투쟁하면서 인생관을 단련해 왔다. 중요한 건 운동권 출신이라는 사실보다 그 정신을 제대로 지키느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에 이어 현 정부에서도 종교 문제가 불거진다. 손 대표도 기독교 신자인데 종교와 정치 문제를 어떻게 보나. -종교는 두 개의 가치가 있다. 믿음과 관용이다. 이창구·구혜영·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러, 21년만에 다시 아프간으로

    러시아가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인 아프가니스탄전에 개입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미군을 돕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27일 보도했다. 나토의 요청에 따른 조치다. 냉전 때인 1980년대에 미국의 지원을 받던 이슬람 반군에 맞서 싸운 러시아는 아프간 철군 20여년 만에 옛 적이었던 미군과 손을 잡게 된 셈이다. 러시아와 나토의 합의 결과는 다음 달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신문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현재 아프간 정부군 및 마약 소탕 부대의 군사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또 아프간군에 러시아산 헬리콥터 2대를 올해 말까지 제공하는 등 모두 5대를 인도, 현지 치안 유지에 사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러시아와 나토는 아프간 주둔 다국적군의 무기 및 탄약이 러시아 영토를 거쳐 반입될 수 있도록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사용 중인 파키스탄 보급로는 무장 세력이 공격의 표적으로 삼은 탓에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특히 나토는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계(MD)를 대신할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러시아와 논의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지금껏 MD 계획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 이날 영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토와 러시아 간 미사일 방어 협조는 유럽의 안보체제 구축에 강력한 기본틀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아프간전 참전을 계기로 나토와의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할 태세다. 단적인 예로 러시아 측은 자국군이 그루지야 영토에 주둔 중인 현실을 나토가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인 1979년 아프간의 친소(親蘇) 공산 정부를 밀어주기 위해 침공했다가 미국의 뒷받침을 받은 이슬람 반군의 저항에 눌려 1989년 완전히 철수했다. 당시 패배는 소련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을 가속화시켜 철군 2년 뒤 체제가 붕괴됐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故 김기영 감독 장편 데뷔작 美서 발견

    유실된 것으로 알려진 고(故) 김기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미국에서 발견됐다. 김한상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 방문연구원은 26일 김 감독의 데뷔작 ‘죽엄의 상자’(1955)를 미국 메릴랜드주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했다고 밝혔다. ‘죽엄의 상자’는 최무룡·강효실 주연의 반공영화로, 민심을 교란하기 위해 남에서 활동하는 빨치산 대원(노능걸)과 경관(최무룡)의 숨가쁜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근무하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 연구원은 “광복 뒤 국산영화로는 최초로 동시녹음을 시도한 작품이지만 사운드는 유실된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이미지는 남아 있어 김 감독의 영화적 실체를 확인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관련 문헌들을 보면 ‘죽음의 상자’ 혹은 ‘주검의 상자’로 표기돼 있는데 영화 오프닝 크레디트에는 ‘죽엄의 상자’로 돼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는 유골상자(주검의 상자)와 시한폭탄 상자(죽음의 상자)라는 중의적 의미를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다음 달 15일 하버드대학서 열리는 공개발표 행사에서 ‘냉전과 한국 내셔널시네마의 혼종적 기원:김기영 감독 데뷔작부터 발굴까지’라는 논문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밝힐 예정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英 복지예산 70억파운드 삭감 ‘초긴축’

    영국 연립정부가 재정적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복지 관련 예산을 연간 70억 파운드 삭감하고 앞으로 4년 동안 공무원을 10명 가운데 1명꼴로 감원하는 등 강도 높은 긴축재정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2014~2015 회계연도까지 정부 지출 감축 규모는 810억 파운드에 이른다. 공공부문 일자리도 적어도 49만개가 줄어든다.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20일 하원에 출석, 국제원조 및 의료보험(NHS), 학교 관련 예산을 제외한 각 부처 지출을 대폭 감축하는 내용의 ‘재정지출 전면 재검토 보고서’를 내놓았다. 오스본 장관은 “험한 길이지만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끌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긴축재정으로 꼽히는 이번 계획에 따르면 4년간 예산 감축 비율은 평균 19%이다. 부처별로는 재무부 33%, 내무부 23%, 외교부 24%, 국방부 8%이다. 2015년까지 구조적인 적자를 없애 현재 연간 440억 파운드에 이르는 국가 부채에 따른 이자를 2015년까지 50억 파운드로 낮출 방침이다. 복지 예산의 경우 전체 가구의 15%인 120만 가구에 대해 2013년부터 평균 300만~400만원가량의 육아수당 지급이 중단된다. 5만 가구에 대해 복지 급여 상한을 정해 평균 가구소득인 2만 6000파운드 이상을 받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연간 1931억 파운드의 복지 예산 가운데 삭감 규모는 70억 파운드에 달한다. 경찰관이 16% 줄어드는 것을 포함, 공공부문 일자리는 모두 49만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금 수급 연령은 당초 일정을 4년 앞당겨 2020년까지 현재 65세에서 66세로 늦춰진다. 한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의회에서 군 개혁과 국방예산 감축계획과 관련, “국방정책을 재검토했으며 ‘냉전의 잔재’인 독일 주둔 영국군 2만명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독일에 남아 있던 영국군이 65년 만에 철수하는 것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北 권력세습 보도의 아쉬움/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北 권력세습 보도의 아쉬움/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냉전이 끝난 때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으로 잡는다면 대략 20년이 넘은 셈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또는 자유주의)의 승리임에 큰 이견이 없는 이 냉전의 종식은 그러나 자본주의 진영에도 많은 폐해와 후유증을 남겼다. 냉전식 보도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적에 대한 정보를 봉쇄하고, 언론을 심리전의 수단으로 삼는 이 보도는 그만큼 진실을 가리고 적대심을 기르는 데 일조했다.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본 적이 있는 남북한 역시 이러한 냉전식 보도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특히 대를 이어 충성하는 북한의 세습 권력구조와 ‘기쁨조’로 상징되는 그들의 비윤리적 행태는 보도될 때마다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남북정상이 만난 지 또한 한참 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런 행태가 남아 있다면 이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핵문제와 천안함 사건 이후 해빙 무드가 급격히 엷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주간에는 마침내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 북한 권력의 3대 세습과 그 세습의 이론을 창시한 황장엽의 죽음이 같이 발생해 북한 보도가 봇물을 이루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막상 밝혀진 권력의 3대 세습은 큰 충격을 주었고, 5일장을 생중계하다시피 한 황장엽 역시 삶 자체가 드라마여서 타살가능성, 암살조 같은 가십까지 자연스럽게 보였다. 여기에 다른 언론의 일이기는 했지만, 북한에 대한 진보진영 사이의 해묵은 논쟁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서울신문 10월 11일 자의 권력 세습 기사는 이러한 냉전식 한계가 보기에 따라 여전함을 잘 드러내 준다. ‘대북 소식통’과 AP(연합뉴스)에 대부분 의존한 이 보도는 기존보다 고성능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사진까지 하나 곁들여 ‘봉건적 세습과 군사적 위협’을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CNN의 전 세계 생중계(조선중앙TV)가 없었다면 냉전 때의 행태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10월 12일 자 통일부 비판(9면)은 이러한 보도의 한계를 간접적으로 인정한다. 북한과 인적·물적 교류를 단절한 5·24 조치 이후, 통일부는 북의 후계자가 공식화된 이후에도 인물정보조차 확인이 안 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이는 언론의 대북 보도가 다양한 창구를 활용할 수 없고 일부 허용된 정보만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의 세습놀음에 마냥 입을 다문다면 맹목적 종북 노선이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민노당을 비판한 10월 13일 자의 관련 사설은 이 사설 자체보다 다른 언론의 입장을 더 떠오르게 한다. 이 언론은 이를 통해 사상 검증까지 하겠다고 나설 태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노당도 과거의 지하당이 아닌 국민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공당(公黨)이다. 만약 이견이 있다면 민노당에도 충분히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사설만을 본 사람이라면 민노당이 무슨 입장인지 자못 의아스러울지 모른다. 서울신문은 정작 이를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권력세습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보면, ‘그렇다면 우리는?’이라는 자문이 떠오르게 된다. 우리의 경우에도 정치권력에 못잖은 기업권력들이 이미 3대 세습을 마무리 짓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11일 자 서울신문의 칼럼 ‘열린 세상’은 이 점을 통렬히 지적한다. 때마침 벌어진 태광의 변칙상속 폭로도 이를 뒷받침한다. 만약 북한이 원활하게 세습을 끝낸다면 그들 또한 한반도의 반을 좌우하는 ‘권력’임에 틀림없다. 세습이든 봉건적이든 대화 상대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미국 역시 소련의 인권문제를 격렬히 비판했지만 언제든지 협상의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정부 또한 그럴 것이다. 비판이나 조롱만으로는 상대를 설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사설] 중국은 G2다운 국제적 행보 보여라

    그제 북한 노동당 창당 65주년을 맞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우호관계를 대대로 전해 내려가자.”는 요지의 친서를 보냈다.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을 주석단에 세운 인민군 열병식을 떠올린다면 북한의 시대착오적 3대세습을 추인한 꼴이다. 자국민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반발하고 있는 사실과 함께 중국이 세계문명사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여서 매우 실망스럽다. 북한은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등을 무대 장치로 삼아 김정은의 군권 인수를 공식화했다. 서방언론까지 불러들인, 계산된 세습 쇼였다. 하지만 김일성광장 무대 위에서 무표정한 ‘어린 왕자’ 김정은을 지켜보는 김 위원장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라. 봉건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런 희화적 장면이 전세계 문명국가의 여론에 어떻게 투영됐을지는 불문가지다. 이처럼 퇴행적 ‘세자 책봉식’에 저우융캉 공산당 상무위원 등 대표단이 참석하는 등 중국이 유일하게 들러리를 섰다. 중국은 올들어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에 올랐다. 우리는 지난번 김정일 방중시 개혁·개방을 권고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만 해도 중국의 달라진 국제적 위상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냉전 때 중국이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명분으로 한국전에 뛰어들었듯이 아직도 북의 맹목적 후견국을 고집한다면 딱한 일이다. 경제력으로는 G2 반열에 올랐는지 모르지만, 국제사회 지도국으로선 자격이 미달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중국이 G2 위상에 걸맞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보여줘 세계적으로 호평 받는 선린이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북의 3대세습에 맞장구를 칠 게 아니라 자국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말기적 증상일지도 모를 북의 세습 쇼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얼마 전 원자바오 총리가 공언한 중국의 정치개혁을 촉진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 [독일 통일 20주년 표정] 축제…무관심…시위… ‘미완의 통합’

    [독일 통일 20주년 표정] 축제…무관심…시위… ‘미완의 통합’

    독일 통일 20주년 기념식이 3일(현지시간) 북부도시 브레멘 중심가 성 페트리 성당에서 열렸다. 크리스티안 불프 독일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독일 정부 요인들은 오전 10시에 열린 기념식에서 냉전을 넘어 국민의 힘으로 베를린 장벽을 허문 역사를 자축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세계 각국 사절 수백명도 기념식에 참석해 한뜻으로 축하했다. 기념식은 통일 첫해인 1990년 수도 베를린에서 열린 뒤 연방제를 공고히 하는 의미에서 매년 각주를 순회하면서 열리고 있다. 1시간가량 진행된 기념식에서 불프 대통령은 통일이 “속박받지 않는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공개적인 헌신”을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통일 이후 과제 가운데 하나로 이슬람계 사회 통합 문제를 거론하며 “기독교가 독일의 일부이고, 유대교가 독일의 일부인 것처럼 이제 이슬람도 독일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비디오 메시지에서 “우리가 독일을 신속히 재건하고 세계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동독인들이 자유를 향해 싸우고 서독인들이 지원과 동조를 했던 단합된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공식 행사가 열린 브레멘을 비롯, 베를린 등지에서는 전날부터 축제의 장이 벌어졌다.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브레멘은 축제 열기로 뜨거웠다. 쌀쌀한 가을날씨에도 독일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20년전 그날의 감동을 되살리며 축배를 들었다. 시청앞 무대와 베저강변 유로파하펜 무대에서 3일에 걸친 초대형 음악축제가 계속됐다. 1980년대의 팝스타 니나, 데이비드 가렛 등 브레멘 출신 스타들의 공연이 50회 이상 마련됐다. 공식 행사가 끝난 후에는 행사가 열린 성 페트리 성당 앞부터 시청을 거쳐 베저강변을 따라 긴 가장행렬이 오후 내내 이어졌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거리로 나서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축제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설치된 대형 무대에서는 전세계에서 초청된 음악가들이 전날부터 공연을 이어가며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다만 올해 행사의 메인 스폰서가 미국기업 코카콜라라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지의 오페라 극장에서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일 도시는 비교적 차분하게 이날을 보냈다. 지난해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리면서 일반인들은 올해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베를린 유학생 박은영씨는 “독일인들 상당수가 브레멘에서 공식 행사가 열린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면서 “지난해가 20주년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통일 이후 독일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내부통합 문제도 곳곳에서 불거졌다. 브레멘 중앙역앞 광장에서는 수만명의 시위대가 모여 반민족주의를 외치며 경찰과 대립했다. 연단에 올라선 한 좌파운동가는 “독일은 점차 국수주의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자본주의를 무조건 우선시하고,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일삼는다면 독일은 또다시 역사의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 앞에서도 시위대의 행렬이 이어졌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올라온 수백명의 시위대는 “주정부가 지역 경제를 부흥시킨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경기장을 짓고 있다.”면서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한 경찰들을 고발하려고 통독 행사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베를린·브레멘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사설] 통독 20년… 분단 65년 한반도에 주는 교훈

    내일이면 독일 통일 20주년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범세계적 해빙의 물결을 타지 못한 채 냉전의 마지막 고도로 남아 있다. 분단 65주년을 맞았지만 남북간 대치와 이질화는 외려 심화되고 있다. 천안함 참사와 북한의 3대 권력세습 공식화가 그 징표다. 분단의 상흔을 성공적으로 극복 중인 독일이 우리에게 단순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한국의 나침판이 돼야 한다. 통일 독일도 막대한 통일비용을 치르면서도 여태껏 적잖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양독 간 경제적 격차와 주민들 간의 이질적 정체성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 간 격차와 이질화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37.3대1로 벌어진 남북 간 소득격차는 오히려 작은 문제일 게다. 북한사회가 60여년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폐쇄회로에 갇히는 바람에 심화된 남북의 이질성은 통일 후에도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을 게 뻔하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서야 되겠는가. 서독이 그랬듯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두 축으로 통일의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유무형의 통일비용을 다 합치더라도 통일로 인한 편익보다 적을 것이라는 적극적 사고가 긴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이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임은 분명하다. 북한은 그제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얼굴과 함께 당대표자회의 결정내용의 일부를 공개했다.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 서문에서 ‘혁명적 마르크스-레닌주의 당’이란 문구를 삭제, ‘김일성의 당’으로 못박고 ‘김일성 조선’이란 표현을 추가했다. ‘김씨 왕조’의 후계자가 김정은임을 선포한 꼴이다. 세계적 조롱거리인 이런 세습쇼는 북측으로선 인민 생활과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개방, 비핵화 등은 뒷전일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이런 북을 상대로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북한이 시대역행적인 길을 걷더라도 퇴로마저 막고 압박하는 것도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처럼 ‘묻지마 지원’ 또한 북한정권의 퇴행을 부추기고 주민의 고통을 연장·가중시키는 일일 수도 있다. 이런 딜레마에 직면한 우리에게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가 최근 유용한 조언을 했다. 그는 “서독은 동독이 응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협력을 제안했다.”고 강조했다. 그 대신 동독의 체제변화와 개혁을 반드시 요구했다는 부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인도적 지원이나 경협에는 적극적으로 임하되 상응하는 개혁·개방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 [독일통일 20년 박건형 특파원 현지르포] (1) 역사의 현장 베를린을 가다

    [독일통일 20년 박건형 특파원 현지르포] (1) 역사의 현장 베를린을 가다

    ‘벽화’된 장벽 의외로 조용 경제통합은 종착점 눈앞 동독인들 “우린 2등국민” 가슴속 장벽 현재진행형 폭이 20㎝ 조금 넘을까. ‘장벽’은 초라했다. 30년 넘게 한 민족을 갈라 놓았던 ‘냉전의 상징’은 망치 하나로도 깨부술 수 있을 정도로 얇았다. 자유를 갈망하며 담을 넘고, 그 뒤에서 총부리를 겨누던 얘기는 이제 흑백사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아련한 얘깃거리가 됐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 20년이라는 세월은 언뜻 ‘통일’이라는 감동조차 과거로 밀어내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비쳐졌다. 다음 달 3일, 독일 통일 20주년을 앞두고 찾은 베를린의 모습은 역사의 감격을 되새기기에는, 그렇게 너무나 조용했다. 어느덧 통일은 독일인들에게 일상의 하나로 체화된 듯했다. ●통일둥이 “아픈만큼 강해졌다” “분단은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었지만, 통일은 우리 힘으로 해냈다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지난 28일(현지시간) 베를린 시내 오스트역에서 바르샤바길로 이어지는 ‘베를린 장벽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만난 여대생 노라는 “통일은 어떤 의미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뮌헨에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왔다는 노라는 1990년 태어난 ‘통일둥이’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지만, 부모님 세대한테 얘기를 많이 들어 장벽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면서 “아픈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독일이 유럽에서 다시 강자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독 소득 서독의 70% 달해 동독 주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1961년 155㎞에 걸쳐 세워진 베를린 장벽은 통일과 함께 대부분 모습을 감췄다. 분단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 놓은 1.3㎞의 장벽은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라는 이름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남았다. 전세계 21개국에서 초청된 118명의 작가들이 그린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뒤편의 황량한 모습만이 이곳이 한때 ‘장벽’이었음을 일깨워 줄 뿐이다. 근처에서 조그마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터키인은 “장벽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들이고, 독일인은 열 명 중 한 명 정도”라고 전했다. 독일인들을 감격케 한 ‘통일’은 이제 관광객들에게 내다 파는 상품으로 남았을 뿐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베를린 한복판 코크 슈트라세에 있는 ‘찰리 검문소’가 이런 현실을 보여 줬다. 1990년 통일 때까지 유일하게 동서 베를린을 이어주던 이곳은 지난 2000년 복원과 함께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길 주변으로는 ‘베를린 장벽 1961~1989’라고 쓰인 블록 표지만이 장벽이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흔히 ‘장벽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 곳의 찰리검문소 박물관은 장벽투어의 필수코스로 꼽힌다. 장벽의 일부분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고, 수많은 문서와 동서독의 군사무기 등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정작 이를 지켜보는 독일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역사는 뒷전이고, 상혼만이 판치고 있다는 것이다. 동베를린에서 공장 기술자로 일했다는 니클라스 볼프(55)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검문소를 복원해서는 12유로가 넘는 비싼 입장료를 받고 가짜 스탬프를 찍어주거나 사진을 같이 찍고 돈이나 받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자유를 찾기 위해 탈출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진짜 역사에서 교훈을 찾기 위해서는 상업적인 부분은 배제하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독일의 통일은 지난 20년의 격랑을 헤쳐 오면서 이제 ‘현재완료형’의 마침표만 남겨놓은 듯 했다. 적어도 독일인들에겐 그랬다. 지난해 기준으로 독일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고 세계 3위의 무역대국으로 복귀했다. 통일 직후 서독인들의 42.9%에 불과했던 동독인들의 생활 수준은 이제 소득 기준으로 서독인들의 70% 중반 정도까지 올라섰다. 지역갈등의 핵심요인으로 작용했던 동독인들의 생산성도 서독인들의 80%까지 상승했다. 지역의 통합에 이어 경제의 통합이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지표상의 수치가 통일독일 20년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사회 통합이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동독인들의 소외감이다. 경제적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고는 하나 지난 20년간 동독인들이 겪어온 소외감과 상실감, 패배감은 쉽사리 치유되지 않고 있다. ‘오스탈기(Ostalgie)’라는 조어가 이를 웅변한다. 동독을 뜻하는 ‘오스트(Ost)’와 향수를 의미하는 ‘노스탈기(Nostalgie)’를 결합한 이 말은, 지금도 동독인들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지를 보여 준다. 2008년 독일의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사회과학연구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만 보아도 동독지역 주민 가운데 자신을 진정한 독일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반면 자신을 통일독일의 국민이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은 62%나 됐다. 과거 동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도 16%나 있었다. 찰리 박물관에서 만난 한 동독 출신 여성은 이런 정서를 보였다. “통일이 된 지 20년이라지만 여전히 우리를 2등 국민으로 여기는 서독인들이 적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정부가 사회 통합에만 매달리느라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동독 군인이었고, 장벽 바로 앞에서 시위대를 맞았다는 얀 좀머(50)는 “부모님들은 아직도 슈타지라면 치를 떤다.”면서 “동독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탄압하던 밀케가 고작 6년형을 받은 것을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거 동독 공산당 시스템의 핵심이었던 ‘슈타지(국가공안국) 박물관’ 관계자는 “슈타지 총수였던 밀케는 통일 전 수많은 동독인들을 체포하고 살해했지만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고 그나마 건강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병원도 아닌 요양원에서 편하게 죽었다.”면서 “통일 이후에 통합에 너무 급급한 나머지 과거에 대한 처벌이나 정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와 국경의 통일은 이제 20년 전의 역사가 됐다. 독일 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펼쳐 온 경제의 통일도 이제 종착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동·서독인들의 가슴 속 깊이 뿌리박힌 장벽은 아직껏 철거되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바라본 독일 사회의 통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글 사진 베를린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피아노 안에 조율기구가… 첫 수상하고도 아쉬웠던 임동혁

    피아노 안에 조율기구가… 첫 수상하고도 아쉬웠던 임동혁

    올해는 쇼팽 탄생 200주년이다. 세계적으로 기념행사가 풍성하다. 행사의 꽃은 단연 새달 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다. 상금이나 수상자들의 면면 등을 따져볼 때 그 위상은 세계 최고로 꼽힐 만하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뒤에는 탈도 적지 않았다. 74년 역사 만큼이나 숱한 비화를 품고 있는 것이 또 쇼팽 콩쿠르다. 대표적인 일화가 1955년 5회 때의 심사위원 사퇴 파동이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탈리아인 아르투로 미켈란젤리는 구 소련 출신의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2위에 그치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사임해버렸다. 우승은 폴란드 출신의 아담 하라셰비츠에게 돌아갔다. 이후 아슈케나지는 보란 듯이 20세기 최고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이 됐다. 5회 대회까지만 하더라도 냉전 영향으로 우승은 주로 구 소련과 폴란드 몫이었다. 실력보다 정치적 색채가 짙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풍토에 파란을 일으킨 이가 6회(1960년) 우승자 마우리치오 폴리니였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대회가 생긴 이래 처음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을 차지했다. “기술 면에서 그 어떤 심사위원보다 뛰어나다.”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당시 정치사회 분위기에서는 ‘이변’이었다. 이 때부터 쇼팽 콩쿠르는 다양한 국적의 우승자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이후 평화롭게 흘러가는가 싶더니 1980년(10회) 또 한번의 심사위원 사퇴 파동을 몰고 온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발단은 구 유고 출신의 이보 포고렐리치. 그의 연주를 두고 심사위원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렸다. 혹평을 퍼부었던 로이스 켄트너는 포고렐리치가 1차 예선을 통과하자 심사위원 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포고렐리치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3차 예선에서 떨어지고 만 것. 그러자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내가 심사위원이란 사실이 수치스럽다.”며 위원 직을 던졌다. 포고렐리치의 연주는 지금도 논란거리다. 끊어 쳐야 할 대목을 이어 치거나 작게 칠 부분을 강하게 연주하는 등 파격으로 가득차서다. 이 대회 우승자도 이변이었다. 내전으로 시름하던 베트남에서 불우한 유소년기를 보냈던 당 타이손이 우승을 거머쥔 것. 최초의 아시아인 우승이었다. 전쟁통에 나무판자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 연습했던 그의 이야기는 서구에 큰 감동을 줬다. 포고렐리치에게 무한 애정을 보였던 아르헤리치조차 “탁월한 연주”라며 당 타이손에게 칭찬 엽서를 보냈을 정도. 12, 13회는 우승자를 내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을 만족시킨 연주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4회(2000년)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이 우승을 거머쥔다. 바로 중국 출신의 18살 윤디 리다. 최연소 우승에 동양인 두 번째 우승이었다. 두 번째 만장일치 우승이기도 했다. 윤디는 랑랑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2005년(15회) 맺어졌다. 임동민·동혁 형제가 공동 3위에 입상하면서 한국인 첫 수상 기록을 세운 것. 그 때까지의 우리나라 최고 기록은 2000년 김정원의 본선 진출이었다. 임동혁의 수상은 안타까운 뒷얘기를 동반한다. 건반 앞에 앉아 연주를 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해 살펴보니 피아노 안에 조율 기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 기구를 치우고 나머지 연주를 마쳤지만 흐름이 끊긴 뒤였다. 만약 이 해프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공교롭게 2005년 대회는 2위가 없었다. 본인도 크게 아쉬움이 남았던지 임동혁은 대회 뒤 “다시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16회인 올해 콩쿠르는 88명이 참가 자격을 얻었다. 한국인은 안수정(23), 김다솔(21), 김성재(19), 서형민(20) 등 4명이다. 일본이 17명으로 가장 많고 러시아(12명), 중국(8명) 순이다. 우승자는 새달 20일 가려진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용어 클릭] ●쇼팽 콩쿠르 1927년 폴란드 작곡가 예르지 주라플레프가 창설한 국제 피아노 경연대회. 5년에 한 번씩 열리다가 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중단됐다. 1949년 재개돼 1955년 5회 대회 때부터 5년 주기로 개최되고 있다. 지원자격은 만 18~30세이며, 우승 상금은 3만유로(약 4600만원)다.
  • “6·25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전쟁”

    “6·25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전쟁”

    지난 1981년 ‘한국 전쟁의 기원’을 출간, 당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미국 역사학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다시 6·25전쟁 저서를 냈다. ‘한국전쟁(The Korean War)’이라는 제목을 단 288쪽의 책은 30년 남짓만에 6·25전쟁을 다시 다룬 저작으로, ‘한국전쟁의 기원’의 증보판 격이다. 이달 중순 출판됐다. 커밍스는 책 서두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헌정한다’ 라고 써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느냐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6·25전쟁을 1945년 이후 해방공간에서 형성된 한국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성격을 규정했다. 때문에 논쟁의 중심이 됐고 1980년대 금서 목록에 올랐다. 커밍스의 시각은 주로 1980년까지 공개된 미국 측 자료에 의존했고, 1990년대 옛 소련의 6·25전쟁 당시 외교문서가 빛을 보면서 김일성의 전쟁 책임론을 입증하는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 자료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한국전쟁’은 지금껏 제기된 비판들에 대한 커밍스의 답변이자 현재의 북한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정리한 책인 셈이다. 커밍스는 여전히 6·25전쟁을 ‘내전’으로 해석했다. 커밍스는 “지금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은 1950년 6월에 시작돼 1953년 7월에 끝났고, 미국인들이 주역이었다는, 불과 몇 마디로 요약된 이야기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저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결코 미국의 적(북한)을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면서 대다수 미국인들이 모르고, 또 아마 알기를 원치 않는 진실, 때때로 미국인의 자부심에 상처를 줄 만큼 충격적인 진실들을 밝히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책은 6·25전쟁의 전개과정과 미국인들의 의식, 냉전시대 미국의 세계 정책에 미친 영향 등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까지 분석했다. 커밍스는 결론에서 6·25전쟁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순수하게 한국인끼리의 내전이었다면 식민주의·민족분단·외세개입으로 잉태된 긴장을 해소할 수도 있었을 것인 만큼 진짜 비극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다.”라면서 “비극은 전쟁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전전(戰前) 상태가 그대로 복원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의 해외군사기지 구축을 구조화시키고, 미국을 세계의 경찰로 탈바꿈시킨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바로 한국전쟁”이라며 6·25가 미국의 향후 대외전략에 미친 영향도 지적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뉴스&분석] 동북아 노골적 패권경쟁…한국 갈 길은

    [뉴스&분석] 동북아 노골적 패권경쟁…한국 갈 길은

    오늘 우리는 강대국들이 노골적으로 얼굴을 붉히면서 멱살잡이 하는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동중국해의 작은 섬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세계 2위 경제대국(중국)과 3위 경제대국(일본) 간 정면충돌은 마치 험악했던 냉전시대 미·소 간 힘겨루기를 연상시킨다. 이번 사건을 두고 좀 성급하게 단정하면, 16세기 영국이 무적함대 스페인을 누르고 대영제국의 서막을 연 사건과 20세기 초 일본이 러일전쟁 승리를 계기로 동아시아의 강자로 부상한 역사의 재림일 수도 있다. 중국의 노골적인 강수(强手)는 스스로 커진 힘을 주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급부상하는 대국을 견제하려는 미·일의 압박에 대한 반발의 성격도 있다. 지난 7월 미국은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불쑥 끼어들어 반(反)중국 진영에 가담함으로써 중국을 자극했다. 이번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중국은 대외적으로 ‘뭔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법하다. 한편으로 지금 미국은 중국(그리고 일본)을 향해 환율전쟁을 선포한 상황이다. 1980년대 욱일승천하던 일본 경제가 하루아침에 고꾸라진 것은 미국 거대 자본의 개입 때문이었다는 음모론은 지금까지도 사위지 않고 있다. 불과 100여년 전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호된 상처를 입었던 우리는 이성적 판단 이전에 동물적 본능으로 지금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떠오르는 강자인 중국에 밀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래도 아직은 미국과 더 가까운 게 유리하다(고려대 국제학부 정서용 교수)는 논리가 엄연하다. 둘 중 어느 쪽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따라서 이 길도 가고 저 길도 갈 수는 없는지,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플러스섬게임을 할 수는 없는지 묘안이 필요하다. 한·중·일 3국 협력을 강화하는 것(외교통상부 당국자)도 방법이다. 상시적인 대화채널을 구축함으로써 충돌을 미연에 막자는 것이다. 마침 내년 서울에 3국 상설사무국이 설치되는 것은 우리가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물론 이런 것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영토, 무역처럼 국익과 직결된 문제에서 국가 간 양보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난투(鬪)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를 지켜내는 최선의 방법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우리의 힘을 키우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변심하기 쉬운 거인들을 꼼짝 못하게 할 지렛대(leverage)를 최소한 하나씩은 구비해 두는 용의주도함도 요구된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