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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시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기대/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기대/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됐다. 선거 결과가 지구상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라는 중국과 미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선과정에서 민주·공화 양당 후보들의 태도와 발언은 중요한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있겠다. 중국 문제는 미국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경선 과정 중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과거와 같은 의식형태 및 이념보다 경제무역관계와 국가경쟁에 강조점을 둔 것이었다. 중국의 인민폐 환율조정, 불공정 무역, 시장 진입 장벽, 지식재산권 침해 등이 초점을 이뤘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여러 측면에서 차별성을 보였지만 미국의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난관의 책임을 중국에 덮어씌웠고, 중국을 속죄양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오바마나 밋 롬니나 중국문제를 대외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내문제로 봤다. 롬니는 오바마의 대중국 정책이 지나치게 온건하다면서 압박했다. 그는 더 나아가 “중국은 문제를 일으키는 자”라며 중국에 대해 강경하고 전면적인 억제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공화당의 공세에 대해 오바마 역시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외교정책 방향 연설에서 오바마는 21차례 중국에 대해 언급했지만 단 한 차례도 긍정적인 입장을 말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처음으로 중국을 적이라고 언급했다. “중국은 잠재적인 적에서 현실의 적이 됐다.”고 말했다. “만약 중국이 국제 규칙을 따른다면 협력 파트너도 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다. 집권 초기 오바마는 중·미관계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와 태도를 취했지만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2011년 11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으로의 귀환, 아·태 중시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을 억제하려는 의도는 명확해졌다. 오바마 정부는 대중 억제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공식적으로 중국을 적으로 여긴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오바마는 중국에 대해 견제와 접촉이라는 정책을 유지해 왔다. 중국에 ‘환율 조작국’이라는 모자를 씌우려는 여론과 의회의 압력을 버텨냈다. 이번 미 대선 경선에서 중국 문제가 별도 의제로 독립될 정도로 중국의 위상과 중요성은 상승했다. 미국 선거 중에 중국 문제는 대중들의 표를 얻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필요에 따라 중국 때리기의 패를 들었다 놨다 한다. 미국의 전략중심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이 지역에서의 균형 복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동맹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 억제정책을 확대하고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패권국가로서의 지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발전과 팽창에 따라 패권국의 지위 유지에 더 많은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미국의 경제적 상황과 사회 문제가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 국내정치에서 속죄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국제 질서와 규칙에 도전하려는 국가는 아니다. 국내적 취약성과 불균등한 경제발전 상황을 볼 때 진정한 강대국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 중국 국내에서 이런 사실을 쉽게 망각할 수도 있다. 자기 힘을 과대평가하는 모험주의적 태도는 우리 모두를 어려움과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한꺼번에 바뀐다고 두 나라 관계의 틀과 입장, 지향점과 구조가 한순간에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주 기조는 경쟁과 협력이며, 중국의 발전을 가능한 한 억제하는 것이다. 의식형태와 제도의 차이는 두 나라 갈등과 불신의 주요한 원인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자신의 사고방식과 제도를 한꺼번에 버리고 전면적인 미국화로 나갈 수 있겠는가. 상대방의 이해와 관심에 대한 보다 진지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 각 분야에서 이해관계와 입장의 조율·조정이 이뤄져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대국관계의 가능성을 열어 나갈 것이다.
  • “진실 규명에 시한 없다” 역사 심판 나선 벨기에

    벨기에 정부가 1950년 8월 발생한 공산당 지도자 줄리앙 라오 암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60여년 만에 벨기에판 ‘과거사조사위원회’를 구성, 역사심판 작업에 나선다고 AP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진실 규명에는 만료 시한이 없다’는 제목으로 벨기에 측 움직임을 전했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 62년간 묻혀 있던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기금 출연을 승인했으며 이에 따라 이른바 ‘기억할 의무’를 다하고 도덕적 파급 효과를 내기 위해 조사위를 구성, 활동에 나섰다고 AP통신은 덧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벨기에에서는 논쟁 끝에 왕자인 보두앵이 왕위를 넘겨받는 조건의 입헌군주제가 이뤄졌다. 보두앵의 왕위 승계를 승복할 수 없었던 공산당 당수 라오는 승계식 날 “공화국이여 영원하라.”고 국민들에게 외쳤다. 그 다음 주 라오는 자택 앞에서 2명의 괴한이 쏜 총탄을 맞고 숨졌다. 정치적 암살이 분명했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당시에 막 터진 한국전쟁이 냉전체제를 더욱 심화시킨 상황이어서 범인들은 잡히지 않았고, 배후에 대한 의혹은 ‘냉전의 안개’ 속에 파묻혔다고 통신은 설명했다. 조사위 가동이 이뤄진 배경에는 당시 라오 암살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문건이 최근 발견된 것도 한몫을 했다. 당시 한 정보원이 내무장관에게 보낸 라오 암살 관련 보고서가 드러난 것. 이 정보원은 보고서에서 “라오가 결국 소련 첩보원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을 덮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책임을 맡은 역사학자 에마뉘엘 제라드는 “조사위는 정치적 당파와 무관하며 진실 규명에 주력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눈두덩이까지 움푹 파이고 굴곡진 노인들 얼굴에 살아 온 세상을 담다

    눈두덩이까지 움푹 파이고 굴곡진 노인들 얼굴에 살아 온 세상을 담다

    바짝 붙어 그림을 뜯어보면 험준한 산악 지형이다. 물감들이 들러붙어 있는 모양새부터 그렇다. 궁둥이가 펑퍼짐해지게 눌러 퍼져 앉아 있다기보다 날을 세운 채 결에 따라 일렬로 쭉쭉 엉겨붙어있다. 멀찌감치서 보면 탁한 느낌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빨강, 노랑처럼 화려한 원색도 아낌없이 쓰여있다. 전체적으로 단단한 덩어리감, 그러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삐죽빼죽 날선 느낌, 부분적으로 화려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탁한 느낌이 영락없이 화강암 덩어리 분위기다. ●“‘큰 바위 얼굴’ 우리 식으로 그려보고 싶었죠” 그러니까 장비 제대로 안 갖추고 함부로 걸어다니다 도가니가 거덜날 수 있다는, ‘악!’ 소리난다는 우리나라 악산(嶽山)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더구나 그림 사이즈는 200호를 넘나드는 대작들. 벽에다 걸어놓지 않고 바닥에 깔아놨다면 산악지대 축소 모형, 요즘으로 치자면 구글어스 캡처 사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갤러리를 한 바퀴 다 돌고나면 왠지 산을 오르내린 뒤 숨이 가빠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봤다면 잘 본 겁니다. 얼굴을 그리되 우리 식으로 해석한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 같은 걸 그려보고 싶었어요.” 11월 13일까지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 갤러리에서 개인전 ‘넋, 뼈와 살’을 여는 권순철(68) 작가. 작가가 그리는 얼굴의 주인공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니 약간 부족한 사람들이라 해야 할른지 모르겠다. 편안한 노후 생활을 위해 은퇴 이후 몇년 살 것인가 계획 세워 재테크와 연금저축에 힘쓴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서 강남에 집 한 채 있는 게 전부인데 웬 세금 폭탄이냐고 치를 떠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다. 실버타운 광고에 나오는 아들, 손주, 며느리에게 존경받는 윤기 나는 노인도 아니다. 조국 근대화의 길에 나서 한 평생 뼈빠지게 일했건만 여전히 돈 필요하면 직접 일해 벌어 쓰라 내몰리는 얼굴들, 그래서 국가 재정을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의심받는 얼굴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복지라며 생색내면서 쥐어주다가도 그마저도 떼먹는 게 아니냐고 의심받아가며 살아가는 얼굴들이다. ●서울역전·탑골공원·시골장터 찾아 다니며 그려 작가는 왜 이런 얼굴들을 골랐을까. 답은 간단했다. “우리가 살아온 게 그렇잖아요.” 해방, 분단, 전쟁, 냉전, 이념, 개발, 독재 같은 단어들이 줄지어 머릿속을 지나간다. 작가가 저런 얼굴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곳도 그렇다. “서울역전이나, 탑골공원, 시골장터 같은 곳을 많이 찾았지요. 물론 기분 나빠 하실 수 있어서 좀 멀찌감치서 그렸지요.” 작가는 그런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들에서 “어떤 신성성”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추상적인 느낌 강한 ‘넋’ 시리즈도 눈길 그래서 배경은 가끔 회색이나 짙은 푸른색이 비칠 뿐 거의 대부분이 검은색이다. “조금 밝은 색이나 하얀 캔버스 바탕을 고스란히 남겨도 보고 싶었지만 그건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이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그린 얼굴들 가운데 눈을 제대로 뜨고 있는 인물도 없다. 눈두덩이까지 움푹 패어버렸으니 이미 세상과의 끈조차 놓아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런 얼굴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누군가는 세상 흐름에 운때가 맞아떨어져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는 사람들을 일러 ‘세계사적 개인’이란 멋드러진 표현을 썼다. 그러나 세계사의 변방에서, 중심부에서 미친 듯 밀려드는 격랑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야 했던 이들 노인들에게 ‘세계사적 개인’이라는 말은 너무도 낭만적인 사치일 뿐이다. 작가가 정치인, 재벌 회장님이 아니라 이 노인들의 얼굴로 한국의 큰 바위 얼굴을 만들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훨씬 추상적인 느낌이 강한 ‘넋’ 시리즈와 오랜 유럽 체류 경험을 살려 그린 ‘홀로코스트’ 작품들도 눈에 띈다. (02)743-1643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론] ‘중견국가’ 외교전략 적극 개발해야 한다/김흥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중견국가’ 외교전략 적극 개발해야 한다/김흥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선거는 가열되고 있지만, 주 논점은 국내문제에 함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의 승패는 대내문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각 진영에는 대외관계에 대한 정책발표는 최소화하여 약점을 안 잡히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대외관계는 국가의 명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내총생산(GDP)의 90%가 대외무역과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적 대치상황에 있으며, 북한은 핵 개발을 지속하면서 역내 갈등과 핵 확산을 부추긴다. 동아시아는 세계 세력 전이의 여파로 대규모 무력충돌의 발화점이 될 개연성이 가장 높다. 급변하는 국제 세력 전이와 불안정한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어느 후보 진영에서도 정작 한국의 명운에 중요한 대외정책에 대한 청사진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나마 제시된 대외·안보정책의 단편들도 남북관계와 한반도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다. 상상력과 비전이 부족하다. 선거 때마다 각 진영의 대외정책은 마치 우리가 강대국인 양 커다란 이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집권하면 공간적으로 한반도에 매몰되면서 전형적인 약소국 외교나 편승외교로 귀결되었던 전례를 놓고 볼 때, 이번 선거도 더 나은 상황은 아닐 듯싶다. 적어도 2010년대에는 미·중 간에 세력전의 양상이 지속될 전망이다. 전면대결은 어렵지만 미·중 관계는 갈등, 힘겨루기 및 협력의 국면이 복합적으로 엉키면서 전개될 것이다. 역내 중·일 간의 갈등도 더 고조되고 있다. 국제지위의 하강국면에 진입한 일본은 지역의 안정과 협력에 대해 배려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중국 지도부의 응집력은 불안정하고, 정책결정은 혼란스럽고, 대외문제에 관한 사회부문의 영향력은 국가주의적 양상과 더불어 강화되고 있다. 러시아도 동북아로 돌아오고 있다.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는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 노력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 북한은 당분간 핵을 포기하지 않은 채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한국과 갈등을 지속할 것이다. 한·중 및 미·중 간에도 끊임없이 갈등을 야기하려 할 것이다. 향후 5년의 대외문제는 복잡하고, 불안정하며,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중견국가 외교’의 비전과 전략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세계 15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강대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의 지리적 시야를 남북관계와 한반도에만 고정시키지 말고 동아시아 및 세계를 향한 새로운 외교의 축들로 재구성해야 한다. 전략적인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경제·문화·과학적 공간을 적극 확대해 활용하는 유연성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지정학적·외교안보적 사유로써 풀 수 없는 한반도 문제 역시 역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지나치게 과도한 변화, 목표, 이상은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일방적 편승외교나 중국에 대한 급속한 접근전략은 당사국들도 이제는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외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편승외교로는 복합성을 전제한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가 어렵다. 한국은 세력 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대국이 아니기 때문에 균형자 외교를 할 수도 없다. 중견국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켜내야 할 최소한의 원칙을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 미·중·일·러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공통분모를 이끌어 내고, 지역안정과 협력의 공간을 창출해 내는 가교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향후 한국의 명운은 이 거칠고 변덕스러운 국제관계라는 망망대해를 잘 다룰 줄 아는 지혜롭고 유능한 선장을 뽑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 같다. 각 진영에 조속히 외교안보통일 분야에 대한 공식 입장을 천명하고 검증받도록 촉구해야 한다. 이에 조응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운명을 담당해야 할 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준비는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 ‘푸틴 3기’ 보수·우경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밤 11시 이후에 고함을 치거나 발을 구르는 행동을 하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개가 짖어도 개 주인이 처벌받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의회가 주민들의 숙면을 위해 제정한 ‘야간소음단속법’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아동에 대한 유해 정보 관리법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지난주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의 공연 관객을 16세 이상으로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3일(현지시간) 오랫동안 ‘유럽을 향해 열린 러시아의 창’으로 불렸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3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보수·우경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유주의자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아래서 목소리를 낮추고 있던 보수주의, 애국주의 성향의 관료들이 푸틴 재집권과 동시에 냉전 시대의 레토릭을 구사하며 옛 영광 재현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의회는 지난 3월엔 미성년자에 대한 동성애 선전 금지 조례를 채택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푸틴은 지난 12년간 정치 엘리트와 관료 사회에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도록 균형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지난 12월 반정부 시위 열풍이 불어닥쳤을 때 자유주의자 관료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상황을 겪으면서 보수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변화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극우주의 언론인인 알렉산더 프로크하노프는 “푸틴은 자유주의 세력이 확산되면서 자신이 리비아 독재자인 무아마르 카다피 같은 운명에 처해질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푸틴 3기 러시아의 보수·우경화 회귀는 러시아정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크렘린은 최근 러시아정교회 사제를 국립원자력대학의 신학대 학장으로 임명했고 모스크바 기차역에 러시아정교회 신자들을 위한 교회를 세웠다. 푸틴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은 신성모독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 ‘스카이폴’ UP&DOWN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 ‘스카이폴’ UP&DOWN

    1954년 영국 해군 첩보부 정보분석가 출신 이언 플레밍(1908~1962)의 소설 ‘카지노로얄’은 전 세계적으로 6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1960년대 미·소 냉전 구도와 맞물려 플레밍이 심장마비로 숨지고 나서 출간된 ‘옥토퍼스와 리빙데이라잇’까지 14권의 소설 모두 예외 없는 성공을 거뒀다. 007의 폭발력을 간파한 영화제작자 앨버트 R 브로콜리가 첫 영화 ‘007 살인번호’를 공개한 건 1962년 10월 5일. 영화 역사상 최장 시리즈로 군림하며 22편이 만들어져 50억 달러(약 5조 6000억원)를 벌었다. 시리즈가 시작한 지 50주년을 맞는 2012년, 23번째 영화 ‘스카이폴’이 26일 전 세계 동시 개봉된다.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는 운동 능력은 떨어지고, 두뇌 회전도 무뎌진 퇴물 요원이다. 하지만 조직에 배신당한 전직 요원의 공격에 MI6(영국 정보부) 본부가 파괴되고, 우두머리 M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믿을 건 역시 본드뿐. ‘아메리칸 뷰티’(1999)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샘 멘데스가 드라마의 색깔을 한껏 강화해 연출한 ‘007 스카이폴’의 장단점을 분석해 봤다. [UP] 스파이 하면 본드, 이름값 어디로 가나요 명불허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꽤 많았다. 007 시리즈의 23번째 영화인 ‘007 스카이폴’은 영국 첩보 시리즈로서의 고전미와 현대적 세련미가 균형을 잘 이뤘다. 영화는 시작부터 촘촘한 주택가의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현란한 오토바이 액션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곧이어 이어지는 오프닝 크레디트는 영국의 팝스타 아델이 부르는 주제곡 ‘스카이폴’이 웅장하게 흐르는 가운데 전위적이고 고급스러운 영상으로 올해 탄생 50주년을 맞는 007 시리즈의 오랜 역사와 품격을 담았다. ‘스카이폴’은 판에 박힌 듯한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달리 첩보영화의 고전으로서 자기만의 색깔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극 초반 눈길을 끄는 제임스 본드와 적의 격투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로 시속 50㎞로 달리는 기차 위에서 촬영돼 사실감을 더했다. 몸에 꼭 맞는 슈트를 입고 대부분의 액션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 않고 열연한 ‘영국 신사’ 다니엘 크레이그는 여전히 섹시하고 매력적이다. 영화는 적과 싸우다 임무 실패로 실종됐던 본드가 죽음의 위기를 딛고 다시 첩보원으로 활약하는 과정을 통해 영웅의 인간적인 고뇌와 지치지 않는 열정을 전달한다. 또한 MI6의 수장인 M의 과거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MI6 조직을 구하려는 본드의 활약이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멘데스 감독은 신구의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연령의 관객층을 공략했다. 감독은 본드카로 1960년대 007 시리즈에 나왔던 ‘애스턴 마틴’을 등장시켜 헌정 작품의 성격을 드러내는 한편 젊은 컴퓨터 천재 Q를 통해 최첨단 무기들을 선보이는 등 관객의 향수와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는 영화의 큰 버팀목이다. 주디 덴치는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M 역을 맡아 연기 관록을 뽐냈고, 본드와 숙명적인 대결을 펼치는 실바 역의 연기파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은 ‘제2의 조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악랄한 악당 역을 존재감 있게 표현했다. [DOWN] 쇠약해진 본드, 50년 골수팬들 실망할걸요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했던 007시리즈의 21편 ‘카지노 로얄’(원작소설의 1권에 해당)과 22편 ‘퀀텀 오브 솔라스’는 본드의 첫사랑 베스퍼 린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비밀조직 ‘퀀텀’과 본드의 대결을 그렸다. 말끔하면서도 바람둥이 이미지가 그득했던 1~5대 본드와 달리 크레이그는 ‘순정 마초’ 이미지로 시리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역대 본드 중 가장 거친 액션은 물론 처음으로 진지한 연애감정을 내보인 것. 23편의 메가폰을 잡은 멘데스와 제작진은 고민(혹은 욕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21~22편과 연결고리를 모두 끊어버린 독립된 이야기로 ‘스카이폴’을 풀어냈다. 본드가 악당과 마지막 대결을 펼치는 장소로 본드의 스코틀랜드 고향집을 택했다. 본드 부모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고, 이를 계기로 본드가 진짜 남자가 됐다고 슬쩍 흘린다. 시리즈의 또 다른 아이콘인 M 역의 주디 덴치도 과감하게 은퇴시킨다.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시리즈처럼 정색하고 ‘리부터’(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를 표방한 건 아니지만, 50주년을 맞아 ‘시즌 2’를 만들고 싶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육체적·정신적으로 쇠약해진 본드에 대한 연민, 조직과 인간관계 사이에서 고민하는 M의 모습, 동기 부여가 확실한 악당 실바(하비에르 바르뎀) 등 입체적인 캐릭터와 풍성해진 드라마는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산토끼’들을 포섭할 여지는 커졌지만, 50년 동안 단단하게 형성된 ‘집토끼’들에게는 실망스럽다. ‘본 시리즈’ 못지않은 크레이그의 맨몸 액션과 Q(영국정보부의 과학자)가 만들어낸 각종 신무기의 도움을 받는 첨단 액션을 되레 반감시킨 것은 분명하다. 상영시간이 2시간 23분이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드라마와 액션의 강약 조절이 더 아쉽다. 1대 본드걸 우슬라 안드레스를 시작으로 킴 베이싱어, 핼리 베리, 소피 마르소, 에바 그린 등 매혹적인 역대 본드걸과 달리 존재감이 없는 두 명의 본드걸(나오미 해리스, 베레니스 말로)이 구색 맞추기로 등장한 것 역시 실망스럽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씨줄날줄] 007 본드걸 50년사/최광숙 논설위원

    “딩디리딩딩 딩딩딩~” 빠른 기타 선율의 테마곡이 흐르면서 한 남자가 총구의 한가운데서 걸어나와 총을 쏜다. 영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다. 스파이 영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의 사나이다. 007 시리즈가 올해로 50년이 됐다. 1962년 영국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닥터 노’ 이후 이달 말 개봉되는 ‘스카이폴’까지 23편이 제작됐다. 그동안 숀 코너리 등 6명의 제임스 본드가 등장했지만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단연 본드 걸이다. 본드 걸을 보면 여성사(史)가 보인다. 본드 걸에 ‘섹시의 아이콘’ 이미지를 입힌 이는 제1탄 ‘닥터 노’의 우르슬라 안드레스가다. 바닷가에서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젖은 몸으로 걸어나오는 본드 걸을 보고 본드는 물론 남성 관객들이 자지러졌다. 초창기 본드 걸은 본드의 놀이 상대로 국한되었기에 예쁘고 섹시하기만 하면 됐다. 미인대회 출신들과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의 킴 베이싱어처럼 섹시 스타들이 본드 걸을 맡았다. 하지만 “본드 걸이 창녀냐.”는 페미니스트들의 반기에 1990년대 들어 섹시 일변도에서 벗어나 지성을 갖추거나 근육질의 단단한 몸매로 과감한 액션을 마다 않는 여전사로 방향을 틀었다. 본드처럼 공작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본드 걸의 관능적인 면모는 결코 잃지 않았다. 1997년 ‘투모로 네버 다이즈’에서 중국 특수 정보요원으로 등장한 양자경과 2002년 ‘어나더 데이’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 특수요원 역할을 맡은 핼리 베리가 바로 지적이며 관능적인 신세대 본드 걸로 탄생했다. 백인의 금발미녀에서 흑인과 동양 여성이 본드 걸을 맡으며 인종 차별적 미(美) 인식에서도 벗어났다. 본드 걸의 역할도 본드의 여자친구에서 탈피해 본드의 임무수행에 동기를 부여하거나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등 영역이 한층 넓어졌다. 본드 걸은 단순한 ‘섹스 인형’에서 총칼을 든 여전사로 진화하며 점차 강한 여성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장 큰 변화는 본드 걸은 아니지만 본드의 상관이자 영국정보국(M16)의 수장인 ‘M’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본드 영화’에서 여성의 사회적 의미는 한층 고양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의 다양한 여성상을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다. ‘골든 아이’에 나오는 본드의 상관 M은 본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본드 자넨 성차별주의자야, 여자를 혐오하는 괴물. 구시대적 냉전의 유물이기도 하지.” 이 말에 본드의 가슴만 뜨끔한 게 아닐 것 같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기고] EU가 동북아에 주는 희망메시지/김창범 주벨기에·EU 대사

    [기고] EU가 동북아에 주는 희망메시지/김창범 주벨기에·EU 대사

    10월 12일 유럽연합(EU)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 한편에 전쟁의 대륙에서 평화의 대륙으로 바뀐 유럽과, 아직도 분단상태인 한반도라는 서로 다른 사진이 교차했다. 60여년이 지났지만 한쪽에는 냉전의 유산이, 유럽에는 평화의 유산이 있다는 게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은 공포와 분열의 후유증으로 더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폐허 속 유럽에서는 또 다른 전쟁을 막고 평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뭉쳐야 한다는 절박감이 커졌다. 수십개의 나라로 나누어진 현실에서 통합만이 살 길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지만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다행히 모네, 슈망, 아데나워 같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창한 구호나 원대한 이상 대신 실현 가능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에서 평화의 묘목을 심고자 했다. 그 노력은 1951년 유럽 석탄철강공동체 결성으로 나타났다. 세계대전 당시 전쟁 물자였던 석탄과 철강을 공동 관리해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바꿨다. 이후 자유무역지대와 관세동맹, 단일시장으로 나아가는 점진적인 진화의 과정을 거쳐 세계 최대의 경제공동체로 성장했다. 오늘날 EU는 27개 회원국으로 뭉쳐 있다. 다른 민족, 문화와 언어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자유,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그물망보다 더 촘촘히 엮여 있다. 이제 전쟁은 상상하기도 어렵고 희미한 기억 속에 잊혀진 단어가 됐다. 전쟁의 대륙에서 평화의 대륙으로 거듭난 EU가 노벨평화상의 영광을 누린 이유다. 잠시 시선을 지구 반대편의 한반도로 돌려보자. 분단되고 갈라진 틈 사이로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군사력이 대치하고 있다. 1000만명의 이산가족들이 헤어짐의 아픔을 다독거리면서 통일의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고대하고 있다. 한반도는 마지막 남은 냉전의 유산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도 희망의 씨앗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근세기 역사상 처음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모했다.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한국이 거쳐 온 과정과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세기 초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운을 잃어야 했던 우리나라는 이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 북한이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른다면, 우리나라는 전쟁과 대립의 한반도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로 바꿀 수 있는 힘과 의지를 갖게 됐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서에서 동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중·일 3개국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더 밝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EU 못지않은 동북아연합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EU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이후 국제사회 일각에서 논란도 일고 있다. 하지만 노벨평화상은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꿈을 현실로 이루고 지난 수년간 재정위기 극복과 더 강도 높은 통합을 위해 진통을 겪고 있는 EU와 시민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고 고통을 이겨낸 변화는 더욱 아름답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 지역도 더욱 살기 좋고 꿈이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기를 소망해 본다.
  • [열린세상] 대통령의 외교언어/장철균 서희외교포럼대표·전 스위스 대사

    [열린세상] 대통령의 외교언어/장철균 서희외교포럼대표·전 스위스 대사

    신라 선덕여왕이 즉위하자 당(唐) 태종이 모란 그림을 보내왔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여왕은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이는 당제(唐帝)가 과인이 짝이 없음을 놀리는 것이다.’라 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이는 당과 신라의 정상외교를 묘사한 것으로, 여기에서 모란 그림을 오늘날 넓은 의미의 외교언어(diplomatic parlance)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외교언어란 말과 글(문서)뿐만 아니라 그림과 같은 상징물, 독특한 몸짓이나 태도, 스타일과 같은 비언어로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외교 의사소통 방식이다.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여사가 외국방문 시에 색깔이 다른 브로치를 사용해 의사표시를 한 것도 외교언어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 시에는 중국이 판다 곰을 선물해 ‘판다 외교’도 그 이름을 남겼다. 때로는 침묵도 외교언어가 될 수 있다. 은둔으로 일관하다가 필요할 때 잠시 등장해 세상의 주목을 유도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행태를 ‘침묵 외교’라고도 한다. 2008년 2월 뉴욕 필이 평양에서 공연을 했다. 미국의 ‘콘서트 외교’는 1956년 미·소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튼 이래 1973년에는 미·중관계의 해빙을 조성해서 공산권과의 외교에 단골메뉴가 되었다. 1946년 3월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야당 당수일 때 미국을 방문해 미주리 주의 웨스트민스터 대학 연설에서 언급한 ‘철의 장막’은 냉전 반세기 동안 외교언어의 대명사가 되었다. 1992년 5월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바로 이 대학을 찾아 ‘냉전의 종식’을 선언했다. 외교언어는 국가관계와 국제정치에 영향을 주고받는 외교의 중요한 소통수단이다. 그래서 국가정상의 외교언어는 언제나 주목을 받지만, 외교언어에 힘과 행동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진실성이 결여된 ‘구두선’(lip service)으로 또는 ‘그저 한번 해본 소리’(rhetoric)로 평가 절하되어 정상 개인뿐 아니라 나라의 신뢰에도 손상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큰 대포는 잘 쏘지 않는다.’고 한다. 세치 혀는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천 냥의 빚을 질 수도 있다. 한국 대통령의 외교언어는 실패한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 버르장머리 고치기’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 핵 개발 일리 있다’는 발언이다. 정제되지 않은 외교언어였다.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도 방한하고 싶으면 먼저 사과하라.’는 발언도 신중하게, 의도된 외교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독도문제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메시지는 약화되고 대일외교에 혼란을 초래했다. 학생과의 대화 중에 우연히 나온 실수라는 해명은 또 하나의 실패한 외교언어가 될 수 있다. 옛말에도 ‘왕의 말씀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한국 대통령의 외교언어로서 성공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52년 1월 국제사회에서는 ‘리-라인’으로 회자된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이다. 6·25전쟁 중이었고 미국과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화선을 통해 우리의 영해를 넓히고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가능하게 했다. 외교언어를 잘 구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도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결과를 잘 생각하라.’는 로마 속담도 있다. 결과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결과가 불확실하면 아니함만 못하다. 그리고 행동할 때는 힘이 수반되어야 효과가 있다. ‘큰 몽둥이를 갖고 다니되 말은 부드럽게 하라.’ 외교의 정곡을 간파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말이다.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있다. 대통령의 외교언어는 곧 외교력이다. 세 후보의 외교언어 능력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아직 후보들은 인기가 없는 외교, 안보 이슈에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와 동북아의 영토분쟁, 민족주의, 정치 우경화, 군비경쟁 등 한국에 주어진 외교적 도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준엄하다. 한국의 미래는 외교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지도자는 교체되었고, 중국과 미국·일본의 정상은 곧 선출된다. 이들과 상대하게 될 새로운 한국 대통령의 외교력을 기대해 본다.
  • 1950년대 美공군 진짜 ‘비행접시’ 개발 착수했다

    1950년대 美공군 진짜 ‘비행접시’ 개발 착수했다

    1950년 대 미국 공군에서 초음속으로 나는 ‘비행접시’ 개발을 실제로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기밀 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1950년대 당시 미 공군은 ‘프로젝트 1794’(Project 1794)로 알려진 비밀 계획을 수립했으며 실제로 캐나다의 한 항공회사가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56년 작성된 마지막 보고서에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비행접시의 자세한 일러스트레이션도 포함돼 있다. 미 공군이 기획한 이 비행접시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기종으로 최고 비행 고도는 30km다. 또한 최고 속도는 마하 4로 당시 기술로는 파격적인 목표를 잡았다.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316만 달러(현재 환율로 2660만 달러·한화 295억원)가 투입된 이 제작 계획은 그러나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1961년 폐기됐다. 시험비행시 수직이착륙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 1950년 대 미국이 이같은 비행접시 개발에 나선 것은 당시 소련과 치열한 냉전상태였기 때문이다. 소련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미 공군의 활주로를 파괴할 것을 우려해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비행접시가 필요했으며 이를 정찰용으로 활용할 계획을 수립한 것. 현지언론은 “소문으로만 나돌던 비행접시 개발 자료가 2박스 분량 속에 담겨있다.” 면서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비행접시와 너무나도 유사하다.”고 전했다. 인터넷뉴스팀
  • 김장훈·싸이 불화… 공연 기법·스태프 빼가기 탓?

    김장훈·싸이 불화… 공연 기법·스태프 빼가기 탓?

    가요계의 ‘절친’으로 소문난 가수 김장훈과 싸이의 불화설이 연예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둘의 갈등은 김장훈이 지난 6일 돌연 “사랑하는 내 나라를 몇 년간 떠나겠다.”고 밝히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둘의 불화설은 김장훈이 지난해를 끝으로 더 이상 합동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흘러나왔다. 불화설의 핵심은 김장훈이 싸이가 자신의 공연 아이디어를 모방하고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공연 스태프들을 빼간 것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데 있다. 이들이 처음 공연 호흡을 맞춘 것은 2003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김장훈이 싸이의 단독 콘서트 연출을 맡으면서부터다. 하지만 이들은 2004~2006년 각자 연말 공연을 열면서 경쟁자 관계로 변했고 잠시 ‘냉전’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다 싸이가 군 재입대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 김장훈이 자주 면회를 가 힘을 실어줬고 그 기간 동안 싸이의 회사 식구들을 거둬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싸이는 자작곡 ‘소나기’를 김장훈에게 선물했고 제대 이후 함께 공연 기획사를 설립해 ‘완타치’라는 합동 공연에 나서 연 매출 100억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합동 공연 중단을 선언한 후 둘은 지난 5월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해 신경전을 벌였다. 당시 김장훈이 싸이가 자신의 공연 연출 기법을 응용한 것을 지적하자 싸이가 “후배가 선배한테 배우는 것이 무슨 문제냐.”며 맞섰던 것이다. 김장훈은 지난 9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예전에 이승환씨가 자신의 공연을 도용당했다고 불만을 토로한 입장이 이해가 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싸이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김장훈은 지난 4일 “믿는 이들의 배신에 더는 못 견디는 바보입니다. 미안해요.”라며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이어 5일 밤 싸이가 병원에 입원 중인 김장훈을 방문해 8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고 두 사람이 화해했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김장훈이 6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11일 앨범 발매일까지 미루고 당분간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데 왜 자꾸 상황을 언론 플레이로 몰고 갑니까. 이러려고 6개월 만에 찾아와 밀고 들어왔나. 결국 진흙탕이 되나.”라면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둘의 불화설이 알려지자 가요계 관계자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싸이의 소속사 관계자는 “문제가 된 공연 스태프들은 외주 업체 직원들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상황인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도 7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장훈이 형 병동에 와서 아침도 잘 먹었다. 점차 안정을 찾는 것 같아 다행”이라며 “(김)장훈이 형과 싸이 사이에 좀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잘 이겨내리라 생각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많은 네티즌들도 “사비까지 털어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광고를 해 온 김장훈을 섣불리 비난해서는 안 된다.”거나 “김씨가 그동안 훌륭한 활동을 한 것은 맞지만 공인이 SNS에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남겨 온갖 추측과 의혹이 난무하게 만든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니다.”라는 등의 엇갈린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이은주·유대근기자 erin@seoul.co.kr
  • [글로벌 시대] 혼란의 중동, 모순 속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혼란의 중동, 모순 속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독재자들을 쫓아낸 ‘아랍의 봄’은 이슬람 세계와 서구의 관계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는 더욱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고, 서방세계와의 대립과 긴장은 더 커졌다. 지난달 리비아 벵가지에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피살 당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50여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 이슬람 비하 영화에 대한 반발로 무장 공격과 시위 등이 이슬람 세계를 덮은 것이다. 사태는 잠잠해졌지만 갈등의 골과 충돌 위험성은 더 커졌다. 이슬람 비하 영화가 계기가 돼 촉발됐지만 그 원인과 연원은 깊고 오랜 역사를 가진 까닭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출범 이후 내걸었던 ‘새로운 중동정책’에도 회의가 높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6월 이집트 카이로 방문에서 미국과 이슬람 간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미군의 이라크 완전 철수, 아프간에서의 단계적 철군 등도 이뤄졌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여전히 이스라엘에 기울어져 있고, 분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이란 핵무기 개발 의혹을 둘러싸고 미국의 무력 공격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 이슬람권의 반미 감정은 오히려 커졌다. 오바마는 집권 초 국제연합 안보리 결정에 따른 팔레스타인 사태 해결, 이스라엘 정착촌의 추가 건설 중지 등 긍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중동 각국에 대한 정치·군사적 간섭은 그치지 않았다. 오바마의 정책도 부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바마는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와 전략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아랍의 봄을 지원하고 이끌었다. 이 지역 국민들도 자유와 안정,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높았었다. 그러나 아랍의 봄은 혼란과 갈등, 충돌과 불신을 더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일부 중동 맹방들에 대한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상호 지지도도 감소했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미국의 능력과 역할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오바마의 중동정책은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우선, 이집트와 리비아 등에서 독재자들이 쫓겨났지만, 대신 이슬람 세력의 영향력이 커졌다. 냉전 이후 미국 중동정책의 제1 교두보였던 이집트는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인 이슬람형제단이 권력을 잡았다. 지난 6월 말 취임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미국에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닌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과 이란을 방문해 친선을 다지는가 하면 16차 비동맹회의에 참석하는 등 전임자와는 전혀 다른 국제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상태다. 아랍의 봄은 나날이 커지는 이슬람 중산층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다. 또 이슬람 세계에 만연해 있는 빈곤과 부패, 빈부 격차와 경제·정치적 모순도 국민들의 기대를 어그러뜨리고 있다. 리비아의 경우 국가가 무장세력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장한 민병세력들이 각지에 난립해 중앙정부는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도 못하고 각 지역 세력도 통제하지도 못하고 있다. 아랍의 봄을 열었던 이슬람 세계의 평등과 민주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과 힘은 오히려 반미주의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이슬람과 서구세계와의 화해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오바마의 이상은 빛이 바래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생각과 지향점을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서구와, 서구식 민주주의 및 언론자유를 강조하는 서구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슬람 세계 사이에서 그 같은 이상이 좌초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슬람의 오랜 역사와 전통, 드높은 자존심과 평등의식을 미국과 서구세계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사태에서 보듯 문명의 충돌은 결코 빛바랜 명제가 아닌 듯하다. 서로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이해의 심화는 국제화된 세계 속에서 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최근 뜨겁게 벌어진 동북아시아의 영토 분쟁도 이슬람과 서구의 충돌처럼 역사와 가치관, 자존심과 문화가 막후에서 작용하고 있다.
  • ‘냉전 집착증’ 적나라하게 드러난 케네디

    존 F 케네디(1917~1963년) 전 미국 대통령은 우주 경쟁은 물론 하키 경기까지 러시아를 이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냉전 집착증’을 보였다. 자신의 성공은 가문의 이름에 빚진 것이라며 돈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케네디의 맨얼굴이 그가 재임 시절 최측근들도 모르게 백악관 집무실에 설치해 놓은 녹음기에 담긴 260시간 분량의 대화와 전화 통화, 구술 기록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가운데 주요 내용이 존 F 케네디도서관재단이 25일 펴낼 책 ‘존 F 케네디의 백악관 비밀 녹음을 엿듣다’로 공개된다. 1962년 케네디는 제임스 웹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과의 회의에서 인간의 달 착륙이 자신의 최우선 관심사라고 밀어붙였다. 웹 국장이 “우주 환경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득하자 대통령은 결국 직설적인 속내를 드러냈다. “나는 러시아를 때려눕히는 데만 관심 있지, 우주 따위엔 관심이 없다고!” 냉전에 대한 그의 집착은 러시아와의 하키 경기에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1963년 3월 미국 남자 하키팀이 스웨덴에 17대2로 패하자 그는 국가대표 하키 선수였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빌어먹을, 우리가 대체 누굴 (경기에) 보낸 거야? 여자애들?”이라며 불평했다. 화가 나면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는 전화통화도 서슴지 않았다. 같은 해 케네디 전 대통령은 군 측근들이 영부인 재클린 여사가 산기를 느낄 때에 대비해 케이프코드 공군기지 내 군 병원에 침실을 만들고 5000달러(약 558만원)짜리 가구를 사들였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들에게 반감을 살 뿐 아니라 의회에서 군 예산이 깎일 것을 우려한 탓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케네디는 언론 담당에게 전화해 “가구를 취소하고 내 사진을 침대 옆에 걸어 놓은 바보 같은 놈과 책임자들을 알래스카로 전근 보내라.”고 호통쳤다. 이후 공군 참모인 가드프리 맥휴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속 사진에 등장한 참모에 대해 “멍청한 개자식”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토머스 퍼트넘 케네디도서관장의 소개대로 “날것 그대로의 역사”인 셈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日 “中, 종전 후 센카쿠 영유권 침묵” 타이완 “美, 日에 넘길 권리 없었다”

    “우리는 미국이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열도를 일본에 넘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은 입으로는 중립을 말하면서 행동은 중립적으로 하지 않는다. ” 존 차오 타이완 정치국립대 국제법 교수는 20일 타이완 타이베이 중앙연구원에서 열린 이어도연구회·타이완중앙연구원의 ‘이어도 국제학술대회’에서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논평했다. 이날 이어도 분쟁 해결책보다 댜오위다오 문제가 더 뜨거운 소재로 떠올랐다. 차오 교수는 미국이 2차 대전 직후 냉전을 겨냥해 오키나와와 센카쿠 열도 일대에 군사기지를 짓는 등 행정권을 행사하다가, 1972년 오키나와에 댜오위다오까지 묶어 일본에 넘긴 행위를 비판했다. 이런 비판은 이날 일본의 마사히로 미요시 아이치대학 해양법 교수가 “역사적 문제 때문에 분쟁 중인 지역이 있는데 이들의 해법은 해양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탓이다. 그는 “2차대전 종전 후 일본은 오키나와와 함께 센카쿠를 넘겨 받았는데, 중국이 센카쿠에 대해 주권을 주장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유권에 침묵했다는 지적에 대해 가오 셩티 국립타이완 해양대 해양법 교수는 “1949년과 장제스(蔣介石)가 타이완으로 쫓겨오면서 새로운 국가를 세우느라 혼란스러워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1958년 중국과의 사이에 군사적 위기가 발생해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타이완으로서는 자신들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미요시 교수는 이날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다케시마가 과거부터 조선의 어부가 개인적으로 오갔다는 것만으로는 주권을 선언한 것으로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해, 최연홍 이어도연구소 연구위원와 차오 교수로부터 “독도와 댜오위다오가 역사적으로 각각 한국령·중국령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다.”는 반박을 받았다. 타이베이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美 대선후보 수락연설로 살펴본 오바마 -롬니 정책노선

    美 대선후보 수락연설로 살펴본 오바마 -롬니 정책노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에서 ‘민주당의 길’을 걷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는 공화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에서 ‘공화당의 길’을 강력하게 추구하겠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미 대선은 진보대 보수 이념과 노선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두 후보 모두 경제난으로 유권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의식해 경제 문제에 연설의 대부분을 할애한 것은 공통점이다. 하지만 해법에 있어서는 정반대를 지향했다. ‘앞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건 오바마는 중산층·서민의 세금은 깎아주되 부유층 감세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반면 ‘더 나은 미래’를 표방한 롬니는 모든 계층에 전반적인 감세를 실시함으로써 투자 의욕을 고무해야 한다고 밝혔다. 롬니는 정부 규모를 줄임으로써 재정적자를 감축해야 한다고 역설한 반면 오바마는 부유층 세금과 전쟁 종식에 따른 국방비 삭감으로 정부 빚을 줄여야 한다고 맞섰다. 가장 논란이 큰 정책인 건강보험개혁(오바마케어)에 대해 오바마는 결코 과거로 되돌리지 않겠다고 확언한 반면 롬니는 반드시 폐기해 버리겠다고 공언했다. 이 이슈를 두고 두 후보 모두 민심이 자기 편이라는 계산인 셈이어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주목된다. 득실 계산이 불분명한 지구온난화와 같은 이슈에서까지 두 후보가 극명한 가치관의 차이를 보인 것도 흥미롭다. 롬니는 “오바마는 해수면 상승을 낮추고 지구를 치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나의 약속은 당신과 당신 가족들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오바마는 “지구온난화는 농담이 아니며,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인류에 큰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적극 반론을 폈다. 롬니는 외교정책에 있어 ‘강한 미국’과 ‘미국 예외주의’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했고 대(對)중국 강경 입장을 밝혔다. 반면 오바마는 일방주의와 전쟁을 지양하겠다고 강조했다. 롬니가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유연성보다는 기개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오바마는 “지금은 냉전시대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들의 뚜렷한 외교구상 차이가 읽혀진다. 오바마는 또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기업들이 국내에 숙련 기술자가 없어 중국에서 근로자들을 찾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애초 원고 문장을 실제 연설에서는 ‘중국’ 대신 ‘해외’로 바꾸기도 했다. 특히 오바마는 롬니가 이라크 철군을 비판한 데 대해 “전쟁에 쓸 돈을 경제에 쏟겠다.”고 했는데, 이 언급이 시리아, 나아가 이란 문제 등에 대한 무력 해결을 지양하는 미국의 정책기조를 반영하는 것인지 주목된다. 두 후보 모두 북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동성애자와 여성의 낙태 권리 등을 언급한 반면 롬니는 언급을 피했다. 샬럿(노스캐롤라이나주)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기고] 독도 문제와 한국의 국익/유찬열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고] 독도 문제와 한국의 국익/유찬열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처음 찾고,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에 대한 진실된 사과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한·일 외교 관계에 커다란 파장이 일고 있다. 일본은 독도가 자기들 영토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동시에 신성한 일왕을 모독했다고 하면서 강경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독도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독도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이 걸린 현안인 동시에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역사적 사안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의 처신에 관한 간결한 입장 표명은 한국인으로서는 통쾌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심리적·현실적 이익을 안겨 주었고, 먼 미래의 한·일 관계에서도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하고 우리의 입장을 유추시키는 데 유용한 사료로 사용될 것이다.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0년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북방 4개섬을 방문하고 최근 러시아가 이 지역에 항만과 공항시설 개발을 본격화하는 것, 또 센카쿠 열도 문제나 난징 대학살 등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해 중국이 강력하게 항의하는 것은 모두 비슷한 이유에서 비롯됐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오늘날과 미래의 동아시아 안보 정세에 비추어 더 이상의 한·일 양국 관계 악화를 자제하는 것이다. 반인륜적 위안부 문제에 묵묵부답이고 걸핏하면 우리 영토를 탐내는 일본의 야욕에 대한 ‘강력한 경고’ 이후 필요한 것은 현실과 미래 공통 이익으로의 복귀이다. 냉전 이후 미·중 관계에서 나타나듯 국가 간 관계는 견제와 협력을 병행하게 돼 있고, 경직됐던 관계도 새로운 변수가 나타나고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정상화되는 것이 상례이다. 오늘날의 동아시아는 많은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북한의 핵무장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간과할 수 없는 우려의 대상이다. 중국은 국내총생산 7조 달러를 상회하고 급성장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토대로 전략무기 및 해·공군력 제고를 서두르면서, 자유주의를 거부하고 북한을 지원한다. 자원 부국인 러시아도 강화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 및 몇몇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상하이협력기구(SCO)를 구축하고 북한을 지원하면서 반미 강대국으로 동아시아에 개입한다. 반면 미국은 강력한 아·태 국가로 존재할 것이라는 원칙과 의지를 계속 표명하지만, 국제 질서는 다극화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동아시아의 균형자인 미국은 새로이 구성되는 북·중·러 안보 협력에 대응해 미·일 동맹과 한·미 양자 동맹을 강화하면서, 이것이 유기적인 한·미·일 안보협력으로 발전되기를 희망한다. 한국은 일본과의 안보협력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과거 역사 문제로 인해 양국 협력에 다소 소극적인 한편, 역사적 관계나 지정학적 이유로 인해 G2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의 관계 증진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아시아 안보의 미래, 한·미 관계, 또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한·일 갈등의 무제한적 확산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도 과거의 잘못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현명하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
  • [서울광장] 일본의 죄, 친일 윤 군수의 죄/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본의 죄, 친일 윤 군수의 죄/육철수 논설위원

    나치 비밀경찰 출신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교수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유대인이주국을 총괄했던 관료로서 600만명 학살 현장을 지휘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다가 이스라엘 요원에게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다. 그는 모든 행적을 순순히 자백했지만, “한 사람도 직접 죽여본 적이 없고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처형장으로 끌려갈 때까지도 반성이나 후회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나치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여성 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고 이를 바탕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유명한 책을 남겼다. 그는 저서에서 아이히만에겐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으며, 자신에게 떨어진 명령이 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무사유(無思惟)가 단순히 ‘생각이 없다’는 데서 더 나아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반성 불능이나 거부’이며, 이것이 악의 본질이라고 했다. 보름 전, 친일인사의 손자라고 밝힌 독자 윤석윤(55)씨가 사죄의 편지를 서울신문사에 보내와 관심있게 읽어보았다<서울신문 8월 15일 자 1면 보도>. 그는 친일인명사전에서 일제 강점기에 군수를 지낸 할아버지의 이름과 한 문단 분량의 행적을 확인하고 마음이 착잡했다고 한다. 윤씨는 “할아버지가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선각자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일제의 앞잡이였다니 실망이 컸다.”고 했다. 이어 “할아버지가 공직을 그만두지 못한 걸 궁금해하던 차에 아렌트의 ‘무사유’를 읽고 그 해답을 찾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다수 친일파들은 조직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무사유의 죄’를 지었고, 할아버지의 죄도 바로 그것”이라고 썼다. 그는 “독립유공자와 순국선열, 그리고 그 자녀들에게 친일파의 손자가 가슴 깊이 사죄한다.”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이런 가족사를 밝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양심적이라 가슴 뭉클하다. 윤씨는 “할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없어 할머니가 산파 일을 하면서 아버지 형제들을 어렵게 키웠다.”고 했다. “생전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인생을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솔직히 감정적으로는 (친일 사실이) 다가오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할아버지의 친일 기록은 민족적·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졌고, 독립운동가 후손에 대한 미안함이 오히려 나를 더 짓눌렀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참담한 고통을 안겼던 일제와 그 후손들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그제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까지 나서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다.”며 또 망언을 했다. 일본 정가에서는 이젠 아예 전직 총리들이 마지못해 표명한 사과까지 모조리 뒤집어 엎을 태세다. 아렌트의 지적처럼 저들은 여전히 ‘반성 불능’이요, ‘반성 거부’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작 ‘무사유의 죄’를 따진다면 마땅히 일본에 먼저 묻는 게 순서일 것이다. 친일 후손 윤씨의 사죄가 돋보이고 연민을 자아내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친일인사들을 감싸안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호구책으로 일제의 하수인이 됐거나, 항거할 용기가 없어 순종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게다. 일제 치하의 항일·반일은 총칼 앞에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내놓는 것이었다. 식민세대에게 깊은 사유와 성찰이 없었다는 지적은 너무 모진 질책일지도 모른다. 죄가 있다면 나라 잃은 죄와 시대를 잘못 태어난 죄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침 오늘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지 102년째 되는 날이다. 요즘 벌어지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망동과 동북아 신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렌트의 ‘사유의 책무’를 다시 떠올려 본다. ycs@seoul.co.kr
  • “맥아더는 한민족 은인도, 전쟁광도 아닌 승리추구 전형적 군인이었을 뿐”

    “맥아더는 한민족 은인도, 전쟁광도 아닌 승리추구 전형적 군인이었을 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 퇴역 연설에서.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유엔군사령관은 한국전쟁을 수행하던 1951년 4월 11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전격 해임당했다. 트루먼 대통령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태평양전쟁의 영웅이자 공화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맥아더가 전격 해임되자 온갖 소문이 떠돈 탓에 그해 5~6월 의회에서 ‘맥아더 청문회’도 열렸지만, 맥아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中부상 등 태평양 중심 세계 재편 예견 그 맥아더는 정치의 계절이 오면 한국에 망령처럼 떠돈다. 지난 21일 인천시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동상 앞에서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진보단체와 이를 저지하는 보수단체가 대치하며 또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진보단체에게 맥아더는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려 했던 전쟁광’이라면, 보수단체에게 맥아더는 ‘민족의 은인이자 반공의 보루이자 기독교의 전파자’인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인식의 차이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이상호 박사가 최근 펴낸 ‘맥아더와 한국전쟁’(푸른역사 펴냄)은 ‘한국인 시각에서 처음으로 분석해 본 맥아더’라고 한다. 박사 논문을 일반인이 읽기 쉽도록 풀어 써 낸 것으로, 각주가 448쪽짜리 책에서 무려 104쪽으로 4분의1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온갖 국내외 문헌을 총동원해 맥아더를 객관적으로 조명한 책이라는 의미다. 방대한 문서를 돌린 결과가 “맥아더는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한 전형적인 군인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343쪽)는 결론에 이르게 되니 상당히 맥이 빠진다. 이 책은 박사 논문답게 337~343쪽에 요약본을 결론으로 실었는데, 감히 조언한다면 결론은 각종 문서로 어수선해진 머리를 가다듬는 작업을 위해 읽어야지 결론부터 읽거나 결론만 읽으면 가장 중요한 디테일을 놓치게 된다. 특히 저자가 주장하는 ‘맥아더=전형적 군인’이란 결론에는 동조할 수가 없다. 맥아더는 50여년의 군인생활 중 20여년을 아시아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20대에 아버지 아더 2세의 부관으로 일본 도쿄에서 지낸 것을 시작으로 필리핀과 일본 등을 거치며 태평양전쟁을 치렀다. 그는 당대 미국에서 아시아의 정치·문화·군사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시아에 매료됐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였고, 미국 정계에서 ‘아시아주의자’ ‘태평양주의자’로 불리었다. 미국이 유럽을 중심에 놓고 세계 전략을 짜던 시기에 그는 “태평양을 지배하는 힘은 곧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라고 발언한 알버트 베버리지 연방 상원의원(인디애나주·1899~1911)에게 동의했다. 맥아더는 “미국의 존재 자체는 물론 장래까지도 아시아, 그 주변 섬들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60쪽). 이때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지역은 타이완과 일본이고, 한국은 일본의 이익이 걸린 지역으로 분류됐다.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일명 ‘애치슨 선언’이 나온 배경이다. 중국이 주요 국가 2위(G2)에 올라서는 등 21세기가 태평양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을 보면 맥아더는 너무 빨리 세상을 내다본 셈이다. ●‘한국에 우호적 태도’ 진정성 회의 아시아를 잘 알고 있다는 맥아더는 그러나 오판도 자주 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에 앞서 맥아더는 1939년 일본이 필리핀을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 보고에 대해 “일본인의 정서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오판해 경을 쳤다. 그런가 하면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38선 이북으로 진격을 결정할 때 중국이 참전을 공개적으로 천명했지만, 맥아더는 ‘중국의 허세’라고 오판했다. 중국 참전에 대한 오판은 뼈아픈 것으로, 결국 미국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확대돼 불명예 제대까지 하게 되니 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 점령군으로 간 맥아더는 기독교와 반공주의를 전파하고, 신도의 국교화를 허용하지 않는 등 일본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1947년 종료된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반공 전진기지로서 일본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략은 때때로 모순되기 짝이 없다. 일례로 한국이 해방된 뒤 친일·부일 세력을 기용하지 말라는 내용과 친일·부일 세력을 써도 된다는 내용, 한국을 점령지로 하라거나 해방지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한 문서(미 3부조정위원회(SWNCC)176/1~176/30) 안에 공존하는 식이다. 맥아더의 여러 가지 군사전략과 정책은 미국 국방부(군인)와 국무부(민간)의 갈등 사이에서 채택되기도 하고 배제되기도 한다. 맥아더가 38선을 뚫고 올라가려고 할 때 미국은 3차대전에 대한 우려로 소련의 참전에 엄청난 신경을 쓴다. 결국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만약 북한이 붕괴되고 중국과 소련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맥아더로 하여금 유엔의 후원을 받아 북한을 점령하게 한다.’라고 합의하게 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10월 12일 유엔은 맥아더에게 38선 이남에 머물 것을 명령한다. 미국 정부는 유엔의 명령에 따랐고, 맥아더도 따라가야만 했다. 민간의 통제에 따르는 군인의 모습이다. 이 박사는 결론에서 “맥아더가 한국전쟁 수행 전략에서 보여준 한국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과연 진정성이 있었던 것인지 회의하게 한다.”면서 “오히려 한국인들의 맥아더에 대한 선의의 일방적 해석은 맥아더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의 진보·보수는 쓸데없이 더 싸울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기고] 해외파병은 국가안보의 초석이다/윤영미 평택대 교수

    [기고] 해외파병은 국가안보의 초석이다/윤영미 평택대 교수

    탈냉전기 전 세계는 내전·테러·국가 간 분쟁·난민 발생·인권유린·자연재해 등 다양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런 국제사회의 분쟁해결과 인도적 지원을 위해 유엔은 유엔평화유지군(PKO) 활동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내년은 한국이 1991년 유엔에 가입한 이후 PKO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한국군은 1993년 소말리아 상록수부대 파병을 시작으로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평화와 재건, 군과 민간인과 협력해 수행하는 민사(民事)작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한국군의 우수성, 기강, 현지 활동 등 운용 측면에서 최고수준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어 유엔과 국제사회로부터 큰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62년 전 6·25전쟁 당시 한국에 5만 달러의 물자지원을 제공했던 레바논에서 동명부대가 활동하고 있다. 2007년 7월 파병됨에 따라 한국군 최장기 파병기록을 세우고 있다. 동명부대는 한국에서 8000㎞ 떨어진 이역만리 땅에서 현지인들로부터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칭송을 받으면서, 지역 재건과 민사작전 수행 등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정부합동평가단원으로 아프가니스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등을 파병부대의 현지 활동과 정세파악을 위해 방문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장병들이 한국군 특유의 성실성과 친화력으로 현지 문화를 존중하면서 활발한 민사활동을 전개, 국가 위상과 한국 붐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희망의 전도사’로 불리는 350여명의 오쉬노부대가 지난 2년 동안 지방재건지원팀(PRT)의 보건진료와 학교 건립 활동 등을 경호하고 지역 안정화에 힘쓰고 있었다. UAE의 아크부대는 UAE 특전부대의 교육훈련을 지원하고, 연합연습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UAE군의 정예화 및 작전수행능력 향상을 이끌었다. 더불어 사막 및 고온의 환경에서 한국군의 전투수행 능력도 높아졌다. UAE 총참모부는 한국군을 미국·영국·프랑스·호주보다 더 신뢰, ‘한 팀’(One Team)으로 간주했다. 심지어 ‘아크 열풍’은 한국어 배움과 K팝 등으로도 잘 표출되고 있었다. ‘아덴만의 영웅’인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해역과 주변에서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연합해군과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 그 명성 역시 자자했다. 비록 짧은 방문 기간이었지만 현지인들이 한국군의 활약에 대한 찬사와 높은 평가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혹독한 사막의 날씨와 테러위험 속에서도 강인한 군인정신으로 국익과 한국군의 국제적 명성을 드높이는 장병들의 헌신과 열정에 감사와 찬사를 다시 한 번 보낸다. 한국은 6·25전쟁 당시 유엔으로부터 16개국의 전투병 파병과 5개국의 의료지원, 42개국의 물자지원을 받았다. 현재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성장했으며, 세계 각국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모했다. PKO 활동의 참여는 군사외교이자 보은외교의 일환이며, 유사시 국제사회의 지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와 군은 더 활발하게 국가적 및 군사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며, 한국군의 선진화와 국제화에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가 필요하다.
  • [사설] 한·중 수교 20년, 동북아시대 출발점 돼야

    오늘 한·중 수교 20년을 맞으면서 A3, 즉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내다봐야 할 역사적 지평이 있다. 인류 문명사에서 처음으로 맞게 될 동북아 시대다. 지난 20년간 교역액이 35배 성장한 한·중 양국의 경제협력 규모나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G2(주요 2개국)로 부상한 중국의 성장세는 조만간 북미와 유럽연합(EU)을 제치고 동북아가 세계 최대의 경제권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비단 경제 부문만이 아니라 외교·안보 등 세계 정치질서와 기후변화 및 기아·질병 퇴치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있어서도 이들 세 나라를 빼놓고는 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동북아 3국의 위상은 막대해졌다. 그러나 최근 동북아에서 일고 있는 신냉전 기류는 중국과 일본이 정녕 한국과 함께 지구촌 인류를 견인해 나갈 만큼의 시대적 인식과 비전, 그에 따른 소명의식을 갖추고 있는지 곱씹어보게 만든다. 일본은 독도와 과거사에 대한 일그러진 미몽(迷夢)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 국가적 자존을 갉아먹는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얼토당토 않은 서한을 총리가 보내고, 이를 우리 정부가 곧바로 반송조치한 데 대해 “외교적 결례” 운운하며 제 얼굴에 연신 침을 뱉고 있다. 머리를 조아려도 모자랄 위안부 관련 박물관에다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적은 말뚝을 몰래 박고 달아난 일본 극우세력의 좀스러운 행태는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의 역사왜곡을 지금껏 멈추질 않고 있다.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에 집어넣는 것도 모자라 고구려와 발해 땅의 유적까지도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우기는 소아적 행태로 퇴행하고 있다.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에게 저지른 고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자들의 인권도 외면하고 있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한·미·일과 북한 사이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며 제 영향력 확대에만 부심하는 듯한 모습이다. 동북아 시대는 경제지표 몇 가지로 이룩되지 않는다. 상생의 경제협력 틀을 새롭게 하고 통일한국에 대비한 외교안보 협력 체제도 공고히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장 역사 왜곡을 끊고 공영발전의 미래를 향한 시대인식부터 갖춰 나가야 한다. 동북아 시대냐, 동북아 패권경쟁 시대냐는 그 여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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