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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多樂房] ‘차일드44’ 44명 아이들의 죽음, 그 진실을 파헤쳐라

    [영화 多樂房] ‘차일드44’ 44명 아이들의 죽음, 그 진실을 파헤쳐라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거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홍보성 문구가 엄청난 티켓 파워를 가지는 시대는 지났다. 여전히 유용한 정보로써 호기심을 유발하기는 하지만, 실상은 많은 영화들이 실제 사건이나 베스트셀러의 유명세에 기대어 만들어졌다가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어 왔다. 그래서 실시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현대의 관객들을 움직이는 것은 실화든 소설이든 오리지널 시나리오든 이야기 그 자체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희대의 연쇄 살인을 바탕으로 한 스테디셀러를 다시 스크린으로 옮긴 ‘차일드 44’에도 원론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과연 영화로 만들어야만 할 이유가 있었는가.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의 반복되는 대사처럼, 사람도 영화도 유전자와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랄까. 결론부터 말해 ‘차일드 44’는 탄탄한 각본과 기술, 꼼꼼한 미장센과 훌륭한 연기로 완성된 웰메이드 스릴러로서 그 의미가 충분하다. 그러나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냉전 시대 소비에트 연방의 억압과 감시하에서 진실을 좇는 사람들의 고단한 과정이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필요한 고통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로서 이 시대와 사회가 절실히 요하는 가치를 담고 있는 수작이다. ‘차일드 44’는 ‘완벽한 국가에 범죄란 없다’는 슬로건 아래 범죄를 은폐하려 했던 1950년대 소비에트 연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버려진 아이에서 전쟁영웅이 된 최고의 비밀요원 ‘레오’는 국가의 체제와 질서를 바로 세우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스파이로 지명당한 아내를 차마 고발하지 못해 민병대로 좌천되고, 기찻길 근처에서 일어난 아동들의 잇단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된다. 단순 사고로 포장된 살인 사건을 파헤치면서 레오는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신념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내적 갈등을 겪게 되고, 레오 부부는 점점 더 심한 감시와 협박을 당하며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된다.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은 종종 두 사람의 모습을 제3자가 훔쳐보는 듯한 핸드 헬드 시점 샷으로 담아냄으로써 개인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냉전시대 소비에트 연방의 불안함을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마흔 네 명의 아이들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당국의 냉정함과 그에 맞서 목숨을 걸고 살인범을 쫓는 레오 부부의 뜨거운 휴머니즘이 끊임없이 맞부딪치며 클라이맥스까지 관객들의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키는 스토리텔링도 흠잡을 데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압권은 이미 씻을 수 없는 과오(過誤)를 적어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예를 보여준 부분일 것이다. 진흙탕 속에서 싸움을 벌이며 범인과 분간을 못하게 된 레오의 모습은 그의 과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최선의 방법을 찾아 속죄한다. 이것은 단순히 죄책감을 덜어보려는 얄팍한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절제할수록 더 폭발적이고, 처절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작품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28일 개봉. 윤성은 영화평론가
  • [씨줄날줄] 시진핑의 외교술/오일만 논설위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6월 첫 미·중 정상회담에서 놀랄 만한 발언을 한다. 회의 도중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이 나눠 써도 될 만큼 충분히 넓다”며 넌지시 운을 뗐다. 세계 1, 2위 국가인 미·중 양국이 싸우지 말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공존하자는 메시지다. 이른바 시진핑 외교 전략의 핵심인 ‘신형대국 관계론’을 설파한 것이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아시아 회귀전략, 즉 중국 포위전략에 대한 중국의 반론이기도 하다. 포장은 그럴듯하지만 기득권을 쥔 미국의 입장에서는 태평양 지역의 절반을 달라는 중국의 요구를 들어줄 리 만무하다. 미·일 정상회담 이후 2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 시기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중국의 모든 외교 전략은 신형대국 관계론으로 수렴된다. 이 전략은 덩샤오핑과 후진타오의 외교 전략인 ‘때를 기다리라’는 도광양회와 ‘할 말을 하겠다’는 유소작위의 절충선으로 보면 된다. 한마디로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과 당분간 일전(一戰)을 피하면서 경제 대국의 길을 찾겠다는, 2등 국가 중국의 노련한 외교 안보 전략인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과 대등한 군사력을 갖기 위해 최소한 15~2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중국의 야심 찬 계획인 ‘일대일로’(一帶一路)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역시 신형대국 관계론의 구체적 실천 수단이다. 육지와 바다를 가로질러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하나로 잇는 범중국 경제권이 목표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달러 중심의 경제에서 탈피해 경제의 중심을 중국으로 이동시키려 대미 경제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냉전에 버금갔던 중·일 관계가 화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일본 대표단 3000명에게 만찬을 베풀면서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乎)라며 환대했다. 당나라 시절 일본 유학생 아베노 나카마로를 언급하면서 “시인 이백 등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는 말로 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전했다. 최근까지도 노골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비판하던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들도 일제히 ‘중일 우호증진’을 합창하고 나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시 주석의 원모심려 계책이다. 중국 언론들은 지난달 23일 중·일 정상회담 직후 “중국의 평화굴기 과정에서 중·일 관계가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와 AIIB 구상에 경제 대국인 일본이 동참하는 것이 중국의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설도 실었다. 비록 미국과 한 편이 돼서 군사적으로 중국과 대결 하고 있는 일본마저 활용하겠다는 중국의 외교 전략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25개국 ‘미래 지도자’ 분단의 현장 가다

    25개국 ‘미래 지도자’ 분단의 현장 가다

    미래의 지도자가 될 세계 각국 청소년들을 초청해 우리의 분단 현실을 보여 주고 평화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청소년평화리더십포럼’이 25일부터 30일까지 UWC(Unite World College) 코리아나은재단(이사장 윤영기)에 의해 진행된다. 청소년평화리더십포럼은 이번에 처음 열리는 국제 행사로 세계 각국 고등학생에게 분단 현장을 체험하도록 해 한반도 평화와 세계 분쟁의 해법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갖게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25개국을 대표하는 38명의 청소년은 국내 고교 재학생들과 함께 26일부터 경의선 남북출입국사무소, 서울 강남구의회, 국회 등에서 3차례 포럼을 갖는다. 또 비무장지대(DMZ), 판문점, 제3땅굴 등을 둘러보고 DMZ 철조망 걷기, 나무 심기 등으로 친선을 도모한다. UWC는 해외 15곳에서 대학 입학 전 고교생을 대상으로 2년 교육과정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냉전이 시작되자 교육을 통해 국가 간 갈등을 종식시키자는 차원에서 1962년 세워졌다. 각종 장벽을 넘어 진정한 친구가 돼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익히고 훗날 어른이 됐을 때 전쟁을 예방, 공동 번영을 이루자는 취지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영국 찰스 황태자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자로 알려진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UWC 보스니아 분교에 다니면서 널리 알려졌다. UWC 코리아나은재단 김미정(54) 대표이사는 “통일은 남과 북 둘이서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세계 공동 관심사로 만들어서 지구촌이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인류의 공통 과제”라고 말했다. 또 “남북통일은 미래의 주인인 세계 각국 청소년들이 장차 각 분야에서 한국을 적극 지지해 줄 때 가능한 것”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북한 붕괴 안 믿어… 韓, 대북정책 희망 갖고 지켜볼 것”

    “북한 붕괴 안 믿어… 韓, 대북정책 희망 갖고 지켜볼 것”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서 지낸 31년 삶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자동차 추격전은 없었다. 기상천외한 무기로 적을 제압하거나 적국의 미녀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영화 같은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보기관 요원으로서 냉전적 대결의 질서가 지배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세계와 아시아, 한반도의 평화를 갈구했고 진실을 추구했다. 도널드 그레그(88) 전 주한 미국 대사다. 최근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의 한국어판(창비)을 펴낸 그레그 전 대사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인 삶의 역정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견해 등을 밝혔다. “CIA 요원으로 지내는 동안 일기나 기록을 남길 수 없었어요. 그저 기억에 의존해서 쓸 수밖에 없었고, 4년이 걸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초안부터 CIA의 검열을 거쳐야 했죠.” 여전히 행동과 발언에 제약이 있음에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는 “북한의 붕괴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적인 입장이다. 김정은은 지적이고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2002년 자신과 처음 만났던 상황을 소개하면서 “(당시 박근혜 의원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직후였는데, ‘희망으로 미래를 봐야지 후회로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고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앞으로 희망을 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문제에 대해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반환이 지연된 것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한국은 이미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고, 빨리 해결되는 것이 동북아 지역 안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CIA 한국지국장,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관, 주한 미국 대사 등을 지내고 은퇴한 뒤에도 태평양세기연구소 대표를 맡으면서 북한을 6차례 방문하는 등 북·미 관계 개선 및 남북 교류 협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미국의 이익에 충실한 외교관 혹은 김대중 구명 운동에 나선 자유주의 민주주의자, 그리고 북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친북 인사로서의 이미지다. 그는 “미국 정부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좋아하지 않는 정부나 지도자를 악마화하면서 자신의 무지와 외교적 실패를 덮으려 한다는 것”이라면서 “미국 정부에 북한을 악마화하는 정책을 중단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규정짓는 세간의 평가 자체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설] 북한에 강력한 경고 보낸 한·미 외교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어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 위협에 대해 확고한 대북 공조를 재확인했다. 최근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 위협,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 등으로 북한 내부의 불가측성과 불안정성 증가에 대해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한 빈틈없는 대비 체제를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케리 장관은 또 최근 새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등으로 미·일 동맹이 급속히 강화되면서 일각에서 제기된 한·미 동맹의 위축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이기 때문에 양국 간 건설적인 관계는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도모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기존 미국의 원칙적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회담은 다음달 중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사전정지 작업의 의미도 있다. 변함 없는 한·미 동맹 기조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 한·일 간 관계 개선을 통한 동북아 평화유지 등은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 온 대(對)아시아 전략이라는 점에서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케리 장관이 북한의 잇따른 군사적 도발 위협과 공개 처형 등 인권문제를 직접 거론하면서 안보리 제재 가능성과 함께 향후 대북 압력을 가중시켜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그는 “국제사회는 북한의 여러 악행에 대해 계속 초점을 맞춰야 하고, 압력을 더욱 가중시켜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남북 관계 개선을 지지한다는 종전의 대한반도 정책과도 다소 뉘앙스가 달랐다. 최근 북한의 SLBM 시험 발사 등에 대해 미국의 대북 군사전략이 보다 강경해질 것이란 의미도 된다. 물론 북한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크지만 미국의 대북 압박이 거세질 경우 북한의 반발과 이에 따른 한반도 정세의 긴장은 우리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남북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되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어야 하는 난제에 직면한 것이다. 현재 동북아 정세의 변화는 우리가 환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 야심차게 추진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3대 외교 전략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미·일은 지난달 양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긴밀한 군사·경제 동맹으로 변화하면서 ‘방위 가이드라인’을 18년 만에 바꿔 신밀월 시대를 열고 있다. 이에 맞서 지난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종전 70주년 기념식에서 손을 맞잡고 중·러 연대를 과시했다. 신냉전 구도가 가시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북한에 대한 압력이 가중될 경우 동북아 정세는 다시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동맹 역시 국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보다 유연하고 능동적인 외교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 中과 틀어진 외톨이 김정은, 러시아와 ‘新 등거리 외교’

    中과 틀어진 외톨이 김정은, 러시아와 ‘新 등거리 외교’

    북한이 중국과의 군사협력을 강조하던 변인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의 숙청을 통해 1970년대 김일성 주석 시절 추구했던 등거리외교의 21세기판인 ‘신(新)등거리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북한의 외교노선은 김정은(얼굴)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1월 자신의 핵심 군사 참모이자 군부 내 작전통인 변 국장을 숙청한 것에서 그대로 볼 수 있다. 변 국장은 당시 김 제1위원장에게 한·미동맹을 의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과의 핫라인을 단절하라는 김 제1위원장의 지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가 숙청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1970년대 시절 김 주석이 중·러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는 자주노선을 표방하며 자신만의 몸값을 높이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비록 중국과 미국이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소련에 대항해 이 같은 북한의 등거리 외교가 퇴색됐지만 최근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냉전에 버금갈 정도로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 같은 북한의 전략이 먹혀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중국과의 관계가 냉랭한 상태다. 2013년 5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을 가졌지만 핵보유국 인정은커녕 문전박대를 당했다. 지난해에는 장관급 이상 고위 인사가 단 1명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자고 주장하던 변 국장이 숙청된 것은 북한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들은 일단 이 문제에 대해 극히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북한의 잔인한 숙청 및 처형은 북·중 관계를 더 꼬이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1월 숙청된 변 국장이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주장하다가 숙청된 게 사실이라면 북·중 관계는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북·중이 최근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실제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의미 있는 행동은 없었다”면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할 중국이 북한 문제에 자꾸 엮여서는 안 된다는 대북 회의론자들의 목소리가 더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의 경우 유리 트루트녜프 부총리와 알렉산드르 갈루슈가 극동개발부 장관이 연이어 평양을 방문해 양국 간 우애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노골적인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의 방러가 무산되긴 했지만 협력은 가속화될 분위기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4일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지 3년이 되도록 정상회담을 하지 못할 정도로 예전과 다르다”며 “북한이 러시아에 밀착하면서 1970년대 식 등거리 외교를 펼치는 생존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견공에 폭탄 매달아 탱크에 돌진케 했더니…기상천외의 현대무기 역사

    견공에 폭탄 매달아 탱크에 돌진케 했더니…기상천외의 현대무기 역사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돌을 깎아 창을 만들고 나무를 다듬어 몽둥이를 만든 이후로 끊임없이 신무기를 개발해 상대 영토를 침략하거나 자기 땅을 지키려고도 했죠. 무기의 성능을 개량해 더 많은 인원을 살상하고자 하는 욕구는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무기가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실패’ 딱지가 붙었고, 일부는 어렵게 빛을 봤으나 볼품없는 성능 때문에 조롱거리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최첨단 무기를 동경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전 이번에 이런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무기를 보여드리려 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잖아요. 한번 들여다 볼까요. 마지막 세계대전인 2차 세계대전은 신무기의 각축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무기가 쏟아진 전쟁이었습니다. 미국, 영국, 소련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과 나치 독일은 상대 병사를 더 많이, 효과적으로 살상하기 위한 무기 개발에 힘을 쏟았는데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황당한 무기도 참 많았습니다. 잘 알려진 것 중 하나가 ‘개 폭탄’(antitank dog)입니다. ●개에 폭탄을 매달아 전차에 돌진시켰더니…황당한 결과가 소련군은 독소전 초기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구형 전차로 독일에 맞서야 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독일의 신형 전차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죠. 소련군은 ‘맨몸’으로 대항하다 연이은 패배로 후퇴를 거듭하게 됩니다. 소련군은 그래서 고민 끝에 군견을 훈련시켜 자살 특공대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개 4만 마리를 활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는데요. 시한폭탄을 두른 개를 적 전차에 돌진시키는 단순한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 전차로 달려가기는 커녕 소련 전차로 돌진해 폭사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디젤(중유)을 사용하는 소련 전차를 이용해 훈련한 개들이 가솔린(휘발유)을 사용하는 독일 전차 대신 익숙한 냄새를 풍기는 소련 전차로 달려왔기 때문이죠. 놀란 소련군은 불쌍한 개를 더 희생시키는 대신 이 계획을 즉시 폐기했습니다. 독일이 소련에 패배해 더이상 공세를 취할 수 없게 되자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은 전세를 주도하기 위해 프랑스로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키는 계획을 준비하게 됩니다.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죠. 그런데 히틀러는 연합군의 상륙을 예상하고 스페인부터 벨기에까지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역에 수많은 콘크리트 벙커를 짓도록 지시했습니다. 해안 아래는 철조망과 지뢰를 매설하고 대포와 기관총을 촘촘히 설치했습니다. 영국군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벙커를 파괴할 방법을 구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무기가 ‘판잰드럼’(Panjandrum)입니다. 판잰드럼은 바퀴모양의 구조물에 로켓을 달아 추진력으로 스스로 굴러가게 하는 기상천외한 무기였습니다. 여기에 폭약을 실으면 적이 있는 고지로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 폭발하게 한다는 복안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로켓의 추진력이 약해 예상보다 속도가 느렸고, 추진력을 강화하자 로켓이 바퀴에서 분리돼 튀어나가버렸습니다. 또 평지에서는 그나마 제대로 굴러갔지만 돌이 가득한 고지에서는 제멋대로 굴러가 오히려 바다 쪽으로 되돌아오는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습니다. 1t 무게의 폭발물을 실은 바퀴가 굴러오는 재난을 상상하기도 싫었던 연합군은 개발계획을 포기합니다. ●총에 삽을 끼워 방패로 사용하려 했던 캐나다군 1차 세계대전에는 무기는 아니었지만 적의 총탄을 방어하는 황당한 ‘삽’도 등장했는데요. 바로 캐나다군의 ‘맥아담 방패삽’(macadam shield showvel)입니다. 평소에는 병사의 개인 삽으로 사용하다가 유사시 적과 조우하면 총에 끼울 수 있도록 구멍을 냈습니다. 그런데 손바닥만한 삽의 크기로는 총탄을 막을 수 없었고, 세기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죠. 스스로를 ‘천재 전략가’라고 추켜세웠다가 결국 패망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대형 무기를 선호했습니다. 무기를 좋은 정치 선전 도구로 여겼던 그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무기로 적을 단번에 제압하길 원했습니다. 히틀러 뿐만 아니라 당시 군 전문가들도 무기의 크기와 공격력이 비례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마우스 전차’(maus tank)와 ‘도라포’(dora cannon)입니다. 도라포의 정식 명칭은 ‘구스타프 열차포’로 구경 800mm에 포신 길이만 32.5m, 전체 길이 47.3m, 너비 7.1m, 높이 11.6m, 무게 1350t의 거대한 모습을 자랑합니다. 무게가 너무 무거워 도저히 차량으로는 끌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열차에 실어 이동시켰다고 합니다. 사격 준비에만 한 달 이상이 걸리고 250명이 달라붙어야 조작이 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덩치였죠. 여기에 2500명이 철로를 설치하면서 길을 터야 했습니다. 최대 47km까지 포탄을 날릴 수 있었지만 효율성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죠. 8.4m 길이에 4.8t이나 되는 포탄을 하루에 14번 밖에 발사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침공 당시 요새인 마지노선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했지만 결국 마땅히 사용할 곳을 찾지 못하다 1942년 소련의 요새를 포위 공격한 세바스토폴 전투에 딱 한 번 사용했을 뿐입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나기 직전 이 열차를 해체하거나 적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파괴해버렸습니다. ●박물관 전시물이 된 최대 시속 20km 괴물전차 1942년 히틀러는 연합군 전차가 절대로 파괴하지 못할 괴물 전차를 제작하도록 지시합니다. 전세가 이미 연합군쪽으로 기운 1943년 11월 개발된 것이 8호 전차 ‘마우스’입니다. 무게가 무려 188t에 당시로서는 엄청난 구경인 128mm 주포와 75mm 부포를 갖췄습니다. 개발자들은 전면장갑 200mm, 포탑 장갑 240mm로 만들어 어떤 연합군의 포도 뚫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소련군의 주력전차였던 T34의 전면장갑이 52mm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인데요. 문제는 비만한 덩치 때문에 최고 속도가 시속 20km에 불과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연합군 전투기의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죠. 그래서 시제품 2대를 끝으로 더이상의 생산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944년쯤 실전에 투입시키려 했지만 전황은 이미 기울었고, 독일은 종전 직전 전차를 폭파시켰죠. 그런데 소련이 폭파된 전차를 노획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죠. 지금도 냉전시대에도 황당한 작전이 있었는데요. 바로 ‘도청 고양이 작전’(accustic kitty project)입니다. 미국의 CIA는 고양이의 몸 속에 실제로 도청장치를 삽입해 대화내용을 엿듣는 방식을 고안해냈습니다. 당시에는 도청장치 크기가 지금처럼 작지 않았기 때문에 고양이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겁니다. 고양이가 배가 고프면 현장을 이탈하는 문제가 부각되자 식욕을 억제하는 수술까지 했다고 합니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CIA는 결국 고양이를 현장에 투입시키는데 성공했는데요. 결과는 허무했습니다. 고양이가 자동차에 치어 죽었기 때문이죠. 고양이 몸속의 도청장치가 탄로날까봐 CIA는 즉시 고양이 사체를 회수했고, 그것으로 프로젝트는 끝이었습니다. 배우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 ‘지아이조2’에 등장하는 ‘신의 지팡이’(the rod from god) 위성 공격 시스템도 실제로 미국이 진행했던 프로젝트입니다. 영화에서는 런던 도심을 초토화시켜 핵폭탄에 맞먹는 위력을 보여줬는데요. 1980년대 미국에서 개발된 이 시스템은 길이 6m의 금속인 텅스텐(중석)탄 10여발을 탑재한 위성을 우주로 쏘아올린 뒤 탄을 지상으로 자유낙하시켜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텅스텐탄은 무게가 100kg에 달해 가속이 붙으면 최대 시속 1만 1000km로 지상으로 돌진하게 되고 이를 통해 목표 지역을 초토화시킨다는 것이 최초의 시나리오였죠. 하지만 연구를 진행하면 진행할 수록 위력이 핵미사일보다 높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공격위성을 쏘아올리는데 필요한 막대한 예산과 이미 실용화된 탄도미사일 생산가격 비교하면 결론은 뻔했죠. ●”적군을 게이로 만들자” 황당 발상의 결말은 1990년대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황당 무기로는 ‘게이 폭탄’(gay bomb)이 있습니다. 1994년 미 공군 소속인 오하이오주 라이트 연구소는 적진에 ‘아프로디시악’이라는 물질이 가득한 폭탄을 투하해 적군들이 서로 참을 수 없는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이 폭탄을 생각해내게 됩니다. 아프로디시악은 일종의 최음제로, 적진에 투하해 남성 위주로 구성된 적군을 동성애에 빠지게 하고 최종적으로 전의를 상실시킬 의도로 개발했습니다. 연구소는 이 ‘안전한 비살상 무기’를 사용하면 사랑에 굶주린 군인들이 총을 놓고 동성 연인에게 푹 빠질 것으로 확신했다고 합니다. 연구소는 상부에 무려 70억원의 예산을 요청했는데요. 시작도 하기 전에 효과에 의문을 가진 정부가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아 자동 폐기됐습니다. 적군은 물론 아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다 일반인이 최음제에 노출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생기겠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만 이 무기는 황당한 발명자에게 상을 주는 2007년 ‘이그노벨상’ 평화상 부문에 선정돼 세상에 실체를 드러냈고,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전쟁을 막아 전 세계에 평화를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죠. 라이트연구소 일부 연구진은 적군에게 땀·방귀·입냄새를 유발해 냄새로 숨어있는 병사를 찾아내고 적진의 사기까지 떨어뜨리는 특수 폭탄도 개발했지만 마찬가지로 상부로부터 외면당했다고 하니 정말 노력이 가상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나토, 러시아와 핫라인 복원 직후 스파이 혐의로 협력관 12명 추방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벨기에 브뤼셀 본부에 파견 와 있던 러시아 인력 12명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롤러코스터처럼 복잡한 나토와 러시아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놓고 “예전 냉전 시대에 비견할 만한 외교 방식이 부활한 것처럼 보인다”고 신문은 평가했다. 가디언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 나토가 본부에서 일하던 러시아 측 파견인력 30여명 중 12명을 지난달 모스크바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나토 비회원국인 러시아는 정치적·군사적 업무 조율을 위해 인력을 파견해 왔다. 나토는 이번 조치가 나토 비회원국에 허용된 파견인력 쿼터(30명)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나토 관계자들은 “추방된 12명은 모두 스파이 혐의를 받던 사람들”이라고 증언했다. 이번 조치 이후 나토주재 러시아 대사인 알렉산드르 그루슈코 등 러시아 측 인사들이 나토 내에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가디언은 덧붙였다. 나토와 러시아의 반목은 최근 양측의 핫라인 복원 직후 이뤄진 것으로 주목받는다. 나토는 2013년 2월 개통했던 러시아와의 핫라인을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끊었다가 최근 복원한 상태였다. 러시아 전투기와 나토군 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반복되면서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나토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군사개입 문제를 제기하고, 러시아는 나토의 소련권으로의 세력 확대를 비판하면서 심각한 긴장 관계에 들어가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北 SLBM’ 20년 허송세월한 軍...아직도 ‘킬 체인’ 타령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北 SLBM’ 20년 허송세월한 軍...아직도 ‘킬 체인’ 타령

    대한민국이 창군 이래 최초로 여성 이름을 잠수함 함명으로 명명하면서 신형 잠수함 진수를 자축하고 있던 지난 주말, 북한은 김정은이 직접 참관한 가운데 동해상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 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을 쏘아 올리며 우리 당국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군 당국은 북한의 이번 SLBM 수중 발사 시험 성공의 의미를 애써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발사된 SLBM이 더미(모의탄)이었으며, 사출 실험 정도가 겨우 성공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발사된 미사일 사진이 포토샵을 이용해 합성한 사진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SLBM 발사 테스트 성공 자체는 사실로 간주하면서 실전배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실제로 이 SLBM을 실전에 배치했을 때 한반도에 몰아칠 후폭풍이다. -軍, 지난 20년간 각종 징후에도 평가절하 북한 명칭 북극성, 한·미 군 당국 식별 기호 KN-11로 명명된 북한의 SLBM과 이를 발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의 존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관측되어 왔었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1994년께 SLBM을 탑재해 운용하는 골프 II(Projetc 629A) 잠수함을 고철로 입수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북한이 이 잠수함을 해체, 역설계하여 신형 잠수함을 건조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지난 2003년 9월에는 평양 인근 미림공항에서 이동식 발사대에 탑재되어 있는 무수단 미사일이 미국 정찰위성에 발견되었는데, 이 미사일의 형상은 북한이 1994년 입수한 골프 II급에 탑재되는 R-27(NATO Code SS-N-6)과 판박이였다. 북한이 SLBM을 베낀 신형 미사일을 개발했고, 이에 앞서 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상식적으로 이들 두 무기체계를 결합해 운용할 가능성에 대한 대응책이 논의되었어야 했지만, 잠수함과 미사일이 북한에 넘어간 사실을 인지하고도 20년 넘게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이 입수한 잠수함은 15~20m 수심을 약 5노트 가량의 속도로 항해하면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 시스템을 갖춘 잠수함이었다. 즉, 동해나 남해, 서해 어느 곳이든 은밀히 이동해서 물속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군이 정찰위성과 무인정찰기 등이 1년 365일 24시간 내내 북한 영토를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모든 방공 레이더와 미사일이 북쪽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동쪽이나 남쪽에서 핵미사일이 날아오른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이 미사일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주권국가라면 예방적 자위권(Anticipatory self-defense) 차원에서 자국의 안보에 이처럼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잠수함과 SLBM 개발을 정밀 추적하면서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이 무기들의 개발을 저지하고, 그럴 수 없다면 파괴해야 한다. SLBM 탑재 잠수함은 완성된 이후에 물속에 들어가면 사실상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면 이라크나 이란, 시리아에 했던 것처럼 테러나 공습으로 개발 시설을 파괴했겠지만, 지난 10여 년간 이러한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SLBM 탑재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 마련도 추진되지 않았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조치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면서 국방부가 가장 내놓은 전략은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 Korea Air-Missile Defense)’였다. 북한의 미사일 위치는 모두 파악하고 있으며, 북한 미사일은 액체연료와 산화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사 전 약 40분 동안 미사일 발사대를 세우고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 동안 먼저 탐지해서 선제공격하겠다는 것이 킬 체인 구상이다. 그러나 지난 2013년 4월 미사일 위기에서 증명된 것처럼 북한의 미사일은 연료와 산화제를 충전한 상태에서 기동이 가능하며, 지하 사일로에서 발사할 경우 사일로 덮개가 열리기 전까지 발사 징후 사전 탐지가 불가능하다. 즉, 애초부터 킬 체인은 전제 자체가 심각한 오류였지만,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은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 조원이 소요되는 킬 체인 구상을 밀어 붙였다. 패트리엇 PAC-3 미사일로만 구축되어 공군기지만 보호할 수 있는 KAMD는 사정거리와 요격 고도가 대단히 짧기 때문에 수 조원을 쏟아 부어도 한국형 미사일 방어(Korea Air-Missile Defense)가 아니라 한국형 공군기지 미사일 방어(Korea Air base Missile Defense)밖에 될 수 없다. 문제는 지상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막을 수도 없는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 체계 구축을 위해 15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배정해 놓느라 가장 심각한 위협인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 마련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SLBM과 이를 운용할 잠수함이 등장했고, 킬 체인과 KAMD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니, 이제라도 그 15조 원은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예산으로 돌려져야 한다. -어떤 대안이 있나? 국방부는 SLBM 탑재 신포급 잠수함이 2~3년 이내에 전력화될 것이며, 여기에 탑재되는 KN-11 SLBM은 4~5년 이내에 실전 배치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전력화 징후가 보였던 지난 20여 년간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몇 년간이라도 현실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 카드는 선제적 대응과 수세적 대응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선제적 대응이란 북한의 잠수함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파괴하는 것이고, 수세적 대응이란 미사일이 발사된 이후 이를 요격하는 것을 말한다. 현존 기술 수준에서 이 두 가지 카드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원자력 잠수함과 항공모함, 이지스 구축함으로 구성된 기동함대뿐이다. 흔히들 한반도 주변 해역은 잠수함의 천국이라고 한다. 동해와 서해, 남해의 수중 환경의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그 제각각의 성격들은 공교롭게도 잠수함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수중에서는 전파가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잠수함을 찾는데 음파를 이용한다. 문제는 바닷물의 매질(Medium)이다. 바닷물은 수심과 온도, 육지로부터의 거리, 일조량, 해류 등 다양한 변수의 영향 때문에 같은 해역이라고 해도 온도와 염도 등이 일정치 않다. 매질이 비슷한 물이 뭉쳐있는 가상의 물 덩어리를 수괴(水塊)라고 하는데, 군함이나 잠수함이 적 잠수함을 효과적으로 찾아내기 위해서는 적 잠수함과 같은 수괴 안에 위치해 있거나, 적 잠수함이 있는 수괴 가까이 탐지 장비를 투하해야 한다. 북한 SLBM 탑재 잠수함을 가장 효과적으로 탐지해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은 잠수함이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상대의 SLBM 탑재 전략원자력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해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을 대량으로 운용했다. 평시에 적의 해군기지 앞에 은밀히 매복하고 있다가 적의 전략원잠이 출항하면 꽁무니에 따라 붙어 추적하는 것이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들의 임무였다. 이들 잠수함들은 적 전략원잠을 추적하다가 적 전략원잠이 미사일 발사 심도로 이동하거나 발사 조짐을 보이면 즉각 어뢰 공격으로 적 전략원잠을 격침시키는 임무도 맡았다. -원자력 잠수함· 항공모함 등 절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수중 잠항이 가능해야 하는데, 우리 군이 보유한 잠수함들은 이러한 능력을 보유한 잠수함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미국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 로버트 김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미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2020년 이후로 예정된 장보고-3급 신형 잠수함의 전력화 시기를 조금 더 앞당기고, 확정된 3척 이외에 추가 6척을 원자력 추진 방식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신형 공격원잠 바라쿠다(Barracuda)급의 건조 사례를 보면 성능에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3,000톤급 잠수함보다 그리 높지 않은 비용으로 원자력 잠수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최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우라늄 농축을 가로 막고 있던 가장 큰 걸림돌이 없어졌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바라쿠다급과 유사한 수준의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삼는 원자력 잠수함 건조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 해군의 원자력 잠수함 보유는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의 무력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동해와 서해 북한 영해에서 기습적인 순항 미사일 공격을 통해 적의 수뇌부를 타격할 수 있다는 전략적 억제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북한은 물론 주변국에 대해서도 강력한 전쟁 억지력이 될 수 있다. 원자력 잠수함과 더불어 잠수함을 탐지/공격할 수 있는 항공전력 확충도 필요하다. 전투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해군 실정에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북한 영해 인근의 공해상까지 전투함을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수상 전투함은 수중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공해까지 나간 북한 잠수함을 잡기 위해서는 항공기가 필요하다. -'무용지물' 15조원 킬 체인·KAMD 구축 대신... 항공기는 수중에 있는 물체를 탐지할 수 있는 소노부이를 이용해 잠수함을 찾는데, 소노부이를 다수 운용할 수 있는 해상작전헬기나 고정익 해상초계기는 수상함보다 월등히 넓은 범위를 초계할 수 있다. 그러나 항공기를 이용한 잠수함 탐색/격멸 작전에는 몇 가지 제한 사항이 있다. 우선 지상의 기지에서 발진해 북한 영해 인근 공해상까지 진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거리를 날아가야 하는데, 탐지 장비나 어뢰, 음파탐지기 등을 탑재할 수 있는 무게는 비행 거리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거리가 멀면 멀수록 작전에 제약을 받는다. 또한 북한 영공 인근까지 항공기가 접근하면 북한이 전투기를 보내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딱 한 가지 있다. 바로 항공모함이다. 항공모함을 북상시켜 북한 인근 공해상에서 고정익 해상초계기를 띄우거나 다수의 해상작전헬기를 발진시키면 구축함이나 호위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면적을 감시할 수 있으며, 접근해오는 북한 전투기나 전투함들은 전투기를 띄워 대응할 수 있다. 원자력 잠수함과 항공모함 함재기에 의한 조기 탐지/파괴가 실패해 북한이 SLBM을 발사했다면 이지스 구축함이 SM-3 미사일로 요격하면 된다. 모든 탄도 미사일은 발사되어 최대 탄도고를 찍기 전까지인 상승 단계에서의 속도가 가장 느리기 때문에 탐지 직후 요격해 버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원자력 잠수함 1척은 1~1.5조원, 항공모함과 여기에 실을 각종 항공기 구입에는 5~6조원, 이지스 구축함이 SM-3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도록 개량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척당 3,000억 원 안팎의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국방부가 사실상 무용지물인 킬 체인과 KAMD 구축을 위해 책정하고 있는 15조 원의 비용이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7기동전단 전력과 합쳐 항공모함 전단 2개는 만들 수 있다. 핵탄두 탑재 SLBM과 이를 탑재한 잠수함은 과거 냉전 시절부터 미국과 소련 양국의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iton)를 구현하는 최상위 협상 카드였다. 불량국가인 북한이 이를 보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비대칭 전력 하나가 추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로 내몰리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난 20여 년간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북한은 SLBM을 만들어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제 이 SLBM에 핵탄두가 실려 실전에 배치되기까지 남은 몇 년의 시간마저 정쟁(政爭)과 각 군 밥그릇 싸움으로 허비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물속 ‘北핵미사일’을 지상서도 무능한 ‘킬 체인’으로 제압?

    물속 ‘北핵미사일’을 지상서도 무능한 ‘킬 체인’으로 제압?

    대한민국이 창군 이래 최초로 여성 이름을 잠수함 함명으로 명명하면서 신형 잠수함 진수를 자축하고 있던 지난 주말, 북한은 김정은이 직접 참관한 가운데 동해상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 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을 쏘아 올리며 우리 당국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군 당국은 북한의 이번 SLBM 수중 발사 시험 성공의 의미를 애써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발사된 SLBM이 더미(모의탄)이었으며, 사출 실험 정도가 겨우 성공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발사된 미사일 사진이 포토샵을 이용해 합성한 사진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SLBM 발사 테스트 성공 자체는 사실로 간주하면서 실전배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실제로 이 SLBM을 실전에 배치했을 때 한반도에 몰아칠 후폭풍이다. -軍, 지난 20년간 각종 징후에도 평가절하 북한 명칭 북극성, 한·미 군 당국 식별 기호 KN-11로 명명된 북한의 SLBM과 이를 발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의 존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관측되어 왔었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1994년께 SLBM을 탑재해 운용하는 골프 II(Projetc 629A) 잠수함을 고철로 입수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북한이 이 잠수함을 해체, 역설계하여 신형 잠수함을 건조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지난 2003년 9월에는 평양 인근 미림공항에서 이동식 발사대에 탑재되어 있는 무수단 미사일이 미국 정찰위성에 발견되었는데, 이 미사일의 형상은 북한이 1994년 입수한 골프 II급에 탑재되는 R-27(NATO Code SS-N-6)과 판박이였다. 북한이 SLBM을 베낀 신형 미사일을 개발했고, 이에 앞서 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상식적으로 이들 두 무기체계를 결합해 운용할 가능성에 대한 대응책이 논의되었어야 했지만, 잠수함과 미사일이 북한에 넘어간 사실을 인지하고도 20년 넘게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이 입수한 잠수함은 15~20m 수심을 약 5노트 가량의 속도로 항해하면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 시스템을 갖춘 잠수함이었다. 즉, 동해나 남해, 서해 어느 곳이든 은밀히 이동해서 물속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군이 정찰위성과 무인정찰기 등이 1년 365일 24시간 내내 북한 영토를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모든 방공 레이더와 미사일이 북쪽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동쪽이나 남쪽에서 핵미사일이 날아오른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이 미사일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주권국가라면 예방적 자위권(Anticipatory self-defense) 차원에서 자국의 안보에 이처럼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잠수함과 SLBM 개발을 정밀 추적하면서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이 무기들의 개발을 저지하고, 그럴 수 없다면 파괴해야 한다. SLBM 탑재 잠수함은 완성된 이후에 물속에 들어가면 사실상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면 이라크나 이란, 시리아에 했던 것처럼 테러나 공습으로 개발 시설을 파괴했겠지만, 지난 10여 년간 이러한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SLBM 탑재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 마련도 추진되지 않았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조치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면서 국방부가 가장 내놓은 전략은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 Korea Air-Missile Defense)’였다. 북한의 미사일 위치는 모두 파악하고 있으며, 북한 미사일은 액체연료와 산화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사 전 약 40분 동안 미사일 발사대를 세우고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 동안 먼저 탐지해서 선제공격하겠다는 것이 킬 체인 구상이다. 그러나 지난 2013년 4월 미사일 위기에서 증명된 것처럼 북한의 미사일은 연료와 산화제를 충전한 상태에서 기동이 가능하며, 지하 사일로에서 발사할 경우 사일로 덮개가 열리기 전까지 발사 징후 사전 탐지가 불가능하다. 즉, 애초부터 킬 체인은 전제 자체가 심각한 오류였지만,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은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 조원이 소요되는 킬 체인 구상을 밀어 붙였다. 패트리엇 PAC-3 미사일로만 구축되어 공군기지만 보호할 수 있는 KAMD는 사정거리와 요격 고도가 대단히 짧기 때문에 수 조원을 쏟아 부어도 한국형 미사일 방어(Korea Air-Missile Defense)가 아니라 한국형 공군기지 미사일 방어(Korea Air base Missile Defense)밖에 될 수 없다. 문제는 지상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막을 수도 없는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 체계 구축을 위해 15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배정해 놓느라 가장 심각한 위협인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 마련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SLBM과 이를 운용할 잠수함이 등장했고, 킬 체인과 KAMD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니, 이제라도 그 15조 원은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예산으로 돌려져야 한다. -어떤 대안이 있나? 국방부는 SLBM 탑재 신포급 잠수함이 2~3년 이내에 전력화될 것이며, 여기에 탑재되는 KN-11 SLBM은 4~5년 이내에 실전 배치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전력화 징후가 보였던 지난 20여 년간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몇 년간이라도 현실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 카드는 선제적 대응과 수세적 대응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선제적 대응이란 북한의 잠수함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파괴하는 것이고, 수세적 대응이란 미사일이 발사된 이후 이를 요격하는 것을 말한다. 현존 기술 수준에서 이 두 가지 카드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원자력 잠수함과 항공모함, 이지스 구축함으로 구성된 기동함대뿐이다. 흔히들 한반도 주변 해역은 잠수함의 천국이라고 한다. 동해와 서해, 남해의 수중 환경의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그 제각각의 성격들은 공교롭게도 잠수함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수중에서는 전파가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잠수함을 찾는데 음파를 이용한다. 문제는 바닷물의 매질(Medium)이다. 바닷물은 수심과 온도, 육지로부터의 거리, 일조량, 해류 등 다양한 변수의 영향 때문에 같은 해역이라고 해도 온도와 염도 등이 일정치 않다. 매질이 비슷한 물이 뭉쳐있는 가상의 물 덩어리를 수괴(水塊)라고 하는데, 군함이나 잠수함이 적 잠수함을 효과적으로 찾아내기 위해서는 적 잠수함과 같은 수괴 안에 위치해 있거나, 적 잠수함이 있는 수괴 가까이 탐지 장비를 투하해야 한다. 북한 SLBM 탑재 잠수함을 가장 효과적으로 탐지해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은 잠수함이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상대의 SLBM 탑재 전략원자력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해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을 대량으로 운용했다. 평시에 적의 해군기지 앞에 은밀히 매복하고 있다가 적의 전략원잠이 출항하면 꽁무니에 따라 붙어 추적하는 것이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들의 임무였다. 이들 잠수함들은 적 전략원잠을 추적하다가 적 전략원잠이 미사일 발사 심도로 이동하거나 발사 조짐을 보이면 즉각 어뢰 공격으로 적 전략원잠을 격침시키는 임무도 맡았다. -원자력 잠수함· 항공모함 등 절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수중 잠항이 가능해야 하는데, 우리 군이 보유한 잠수함들은 이러한 능력을 보유한 잠수함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미국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 로버트 김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미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2020년 이후로 예정된 장보고-3급 신형 잠수함의 전력화 시기를 조금 더 앞당기고, 확정된 3척 이외에 추가 6척을 원자력 추진 방식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신형 공격원잠 바라쿠다(Barracuda)급의 건조 사례를 보면 성능에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3,000톤급 잠수함보다 그리 높지 않은 비용으로 원자력 잠수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최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우라늄 농축을 가로 막고 있던 가장 큰 걸림돌이 없어졌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바라쿠다급과 유사한 수준의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삼는 원자력 잠수함 건조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 해군의 원자력 잠수함 보유는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의 무력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동해와 서해 북한 영해에서 기습적인 순항 미사일 공격을 통해 적의 수뇌부를 타격할 수 있다는 전략적 억제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북한은 물론 주변국에 대해서도 강력한 전쟁 억지력이 될 수 있다. 원자력 잠수함과 더불어 잠수함을 탐지/공격할 수 있는 항공전력 확충도 필요하다. 전투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해군 실정에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북한 영해 인근의 공해상까지 전투함을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수상 전투함은 수중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공해까지 나간 북한 잠수함을 잡기 위해서는 항공기가 필요하다. -킬 체인·KAMD에15조원 항공기는 수중에 있는 물체를 탐지할 수 있는 소노부이를 이용해 잠수함을 찾는데, 소노부이를 다수 운용할 수 있는 해상작전헬기나 고정익 해상초계기는 수상함보다 월등히 넓은 범위를 초계할 수 있다. 그러나 항공기를 이용한 잠수함 탐색/격멸 작전에는 몇 가지 제한 사항이 있다. 우선 지상의 기지에서 발진해 북한 영해 인근 공해상까지 진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거리를 날아가야 하는데, 탐지 장비나 어뢰, 음파탐지기 등을 탑재할 수 있는 무게는 비행 거리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거리가 멀면 멀수록 작전에 제약을 받는다. 또한 북한 영공 인근까지 항공기가 접근하면 북한이 전투기를 보내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딱 한 가지 있다. 바로 항공모함이다. 항공모함을 북상시켜 북한 인근 공해상에서 고정익 해상초계기를 띄우거나 다수의 해상작전헬기를 발진시키면 구축함이나 호위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면적을 감시할 수 있으며, 접근해오는 북한 전투기나 전투함들은 전투기를 띄워 대응할 수 있다. 원자력 잠수함과 항공모함 함재기에 의한 조기 탐지/파괴가 실패해 북한이 SLBM을 발사했다면 이지스 구축함이 SM-3 미사일로 요격하면 된다. 모든 탄도 미사일은 발사되어 최대 탄도고를 찍기 전까지인 상승 단계에서의 속도가 가장 느리기 때문에 탐지 직후 요격해 버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원자력 잠수함 1척은 1~1.5조원, 항공모함과 여기에 실을 각종 항공기 구입에는 5~6조원, 이지스 구축함이 SM-3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도록 개량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척당 3,000억 원 안팎의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국방부가 사실상 무용지물인 킬 체인과 KAMD 구축을 위해 책정하고 있는 15조 원의 비용이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7기동전단 전력과 합쳐 항공모함 전단 2개는 만들 수 있다. 핵탄두 탑재 SLBM과 이를 탑재한 잠수함은 과거 냉전 시절부터 미국과 소련 양국의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iton)를 구현하는 최상위 협상 카드였다. 불량국가인 북한이 이를 보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비대칭 전력 하나가 추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로 내몰리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난 20여 년간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북한은 SLBM을 만들어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제 이 SLBM에 핵탄두가 실려 실전에 배치되기까지 남은 몇 년의 시간마저 정쟁(政爭)과 각 군 밥그릇 싸움으로 허비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사설] 6·15 공동행사, 남북관계 돌파구 계기 삼아야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기념하는 민간 차원의 남북 공동행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광복 70돌, 6·15 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남측 준비위원회는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중국 선양에서 북측과 접촉을 갖고 다음달 14~16일 서울에서 공동행사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직 정부의 승인이 남아 있지만 6·15 공동행사가 이뤄진다면 2008년 6월 금강산에서 열린 이후 이후 7년 만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천안함 폭침과 이에 따른 5·24 대북 제재 이후 남북 관계는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지금까지 경색 국면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모처럼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도 어제 “우리 정부는 문화, 학술, 체육 등 그동안 민족 동질성 회복과 남북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민간 교류는 허용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혀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6·15 선언 15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남북 공동행사가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경색된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남과 북이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 온 지난 7년 동안 동북아시아 정세는 숨가쁘게 변해 왔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일본은 해외 파병의 길을 열면서 군사대국화의 야심을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이른바 신밀월시대로 접어들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결속을 강화하는 등 동북아 정세는 사실상 신냉전 구도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지형이 격변하는 상황에서 남과 북 역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핵 문제를 비롯해 대북 전단 살포 문제 등 크고 작은 사안들에 휩싸여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북한 역시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한·미 군사훈련이 끝난 이후에도 격한 비난 성명을 쏟아부으며 남북 대화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남북 문제는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 남북 관계는 동북아 정세나 한·미, 북·미 관계에서 우리가 외교안보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다. 한반도에서 미·일과 중·러의 외교·군사적 압박 구도가 거세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대북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과거의 사건과 이념적 명분에 얽매일수록 남북 관계는 블랙홀로 빨려들고 주변 강대국들에 개입의 명분을 제공해 온 것은 생생한 역사가 증명한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드레스덴 선언, 통일대박론이 대담하고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가 변방의 목소리가 안 되려면 상황을 주도하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 남북 관계 복원은 이런 의미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4강을 끌어당기는 카드가 될 수 있다.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는 남북 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한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반목과 대결의 악순환을 끊고 대북 민간 교류를 확대하여 남북 당국자 간 대화 통로 개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도를 위해 6·15 공동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 세계를 아프게 했다 그래서 숨죽여 아팠다

    세계를 아프게 했다 그래서 숨죽여 아팠다

    #1. 연합군 폭격 직후 독일 드레스덴의 한 방공호에 들어섰다. 수백 구의 시체가 어지러이 뒤엉켜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텅 비어 있었다. 사방이 꽉 막힌 방공호를 가득 채운 건 찜통 같은 열기와 역겨운 냄새뿐이었다. 수색해 보니 찐득하니 녹아 있는 뼈들, 녹색과 갈색이 묘하게 섞인 짙은 액체뿐이었다. 그랬다. 집중 폭격의 열기가 사람들을 통째로 녹여 버린 것이다. 녹갈색 액체가 사람이었다. 시내 쪽으로 접근하자 참상은 더 명백해졌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성인들 시신 크기는 열기 때문에 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2. 소련군이 베를린 시내로 진입했다. 소련 병사들이 벙커에 숨은 독일인들을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불러냈다. 독일어를 모르는 그들이 내뱉은 유일한 독일어는 이거였다. ‘프라우 콤!’(여자 나와!) 그 병사들의 표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들 짐작하는 얼굴들이었다. 끌려나간 여자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비명은 이내 흐느낌으로 변했다. 방공호에 있던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서는 한사코 말하려 들지 않았다. 당시 열 살이던 나도 더이상 궁금해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길거리에 나가 말라비틀어진 빵 쪼가리 하나라도 더 주워 와야 했기 때문이다. #3. 어린 시절 나를 바라보는 가족의 눈빛에는 언제나 죄책감과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다른 집에는 있는 아버지가 왜 없느냐’고 물을 때마다 가족은 늘 말을 흐렸다. 그때 이웃들은 엄마를 두고 ‘토미 호어’라고 쑥덕거렸다. 좀 커서야 비로소 ‘토미’는 나치가 영국군을 비하해서 부른 말이란 걸 알았다. 엄마는 그렇게 ‘영국군 창녀’라 불렸고, 나는 또래 친구들에게서 ‘원숭이’라 불리며 놀림받았다. 영국군 점령 당시 태어난 사생아였던 것이다. 1945년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 자살, 5월 2일 베를린 함락에 이어 5월 8일. 마침내 각 지역에서 저항을 이어나가던 나치 잔당까지 완전히 소탕됐다. 해서 5월 8일은 유럽에서 2차대전이 끝난 지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독일은 9일을 승전기념일로 삼는다. 종전 70주년을 맞아 해외 언론들은 ‘독일 피해경험의 공론화’에 주목한다. ●연합군, 성폭행·약탈·방화 등 보복성 만행 사실 전범 국가의 피해 경험이란 피해 국가들엔 불편한 얘기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총동원 체제로 인한 일본 내부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 패전 뒤 본국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의 고단함을 그린 ‘요코 이야기’, 일제의 최후를 짐작한 일본군 장교의 고뇌를 다룬 영화 ‘이오시마에서 온 편지’ 따위의 작품에는 ‘왜 너희가 피해자인 척하느냐’는 비아냥과 ‘친일’ 딱지가 들러붙는다. 누구에게나 자기 고통이 제일 큰 게 인지상정이니 그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반전 평화로 가는 길을 다 함께 찾자는 일부 주장은 여전히 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종전 직전 영국군 주도로 이뤄진 1945년 2월 드레스덴 폭격은 잔혹했다. 다량의 폭탄과 소이탄을 함께 쏟아부었다. 둘의 화학작용은 엄청났다. 폭탄이 터지며 산소가 일순간 다 소모되자 그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강풍이 불었다. 이 강풍을 타고 도시 구석구석을 휩쓴 것은 소이탄의 불길이었다. 섭씨 800도의 불기둥이 시속 240㎞로 도시를 강타한 것이다. 1943년 4만명을 죽이며 함부르크를 초토화시킨 ‘고모라 작전’ 이후 간헐적으로 선보인 연합군의 ‘구역 폭격’이었다. 일본 나가사키 원폭 사망자가 4만여명이었다면 드레스덴 폭격 사망자는 3만 7000여명이었다. 이 작전을 입안한 영국군 사령관에겐 영국군 내부에서조차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드레스덴에 6884t의 폭탄이 쏟아졌다면 라이프치히엔 1만 1428t의 폭탄이 떨어졌다. 융단폭격을 맞은 쾰른은 76만명이던 인구가 종전 직후 4만명으로 줄었다. 이런 식으로 독일 전역은 140만개의 폭탄을 맞았고, 40만명이 죽었고, 750만명이 집을 잃었다. 나중에 진주한 연합군 병사들조차 예상을 뛰어넘은 참혹한 풍경에 놀랐다고 한다. ‘후방을 쳐서 적의 사기를 꺾는다’는 명분이 붙어 있긴 했지만 이 작전이 오로지 군사적 목적이었다고만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다. 1차대전에 이어 2차대전까지 일으킨 독일이다. 보복 성격이 짙었다. ●잇단 폭격에 40만명 사망·750만명 집 잃어 또 연합군 점령지에서 수많은 성폭행이 있었다. 특히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 나치 육군과 엄청난 혈전을 치렀던 소련군의 복수심은 하늘을 찔렀다. 히틀러는 자살하는 순간까지도 볼셰비즘에 대한 노골적 적개심을 드러냈을 정도니, 소련군이 독일을 보는 시각은 그 이상이었다. 소련군은 약탈, 방화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침묵 속에 묻혀버렸다. 애초에 53개국을 전쟁에 끌어들여 6000만명을 죽게 만들고,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것이 대체 누구냐는 질문이 되돌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전 70주년을 맞아 독일 매체들이 먼저 이런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가해자로서 그간 철저하게 봉인됐던 개인의 내밀한 경험들이 이번 70주년을 계기로 독일 매체를 장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시절을 살아냈고 기억하는 이들은 지금 모두 80대 이상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제는 한 시대를 정리한다는 느낌으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됐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獨, 가해자로서 봉인됐던 개인 피해에 귀 기울여 이런 분위기는 최근 코에르버재단의 싱크탱크 포르사서베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5월 8일을 해방의 날로 기억한다는 독일인 비중이 89%에 달했다. 연합국에 의한 패배로 기억하는 이들은 단지 9%에 그쳤다. 10년 전 35%에 비하자면 크게 떨어진 수치다. 2차대전의 패배가 억울한 일이라기보다 패전이 그 누구보다도 독일인 자신에게 좋은 일이었다는 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가령 기젤라 타이크만 할머니는 좀 더 커서 알게 된 2차대전의 진실 때문에 그간 해외여행이 괴로웠다. 국적이 독일로 찍혀 나오는 여권이 너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연합군의 만행에 대한 어릴 적 기억도 담담히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타이크만 할머니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얘기들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테 바우 팀머브링크는 아예 ‘우리, 점령지 아이들’이란 책을 냈다. 전승국 군인의 사생아 기록이다. 미군의 사생아인 팀머브링크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독일에만 25만명, 오스트리아에만 2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미군 아버지를 찾는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그는 “과거를 덮으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막상 아버지를 찾는다 해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적다”면서도 “오랫동안 고심해 온 문제를 해결한 이들은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고 말했다. 역사학자인 폴 놀테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100% 가해자라고만 말하기에는 비어 있는, 어떤 기억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서 “이제 거대한 이야기에서 개개인의 운명에 대한 얘기들로 사람들의 관심이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전승국 군인의 사생아 기록 ‘우리… ’ 책도 출간 물론 역사적 책임을 부인하거나 망각하는 건 아니다.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드레스덴 폭격 70주년 연설에서 “우리는 그 끔찍한 전쟁을 시작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면서 “독일이 피해자인 척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 자리엔 폭격을 주도한 영국 측 사이먼 맥도널드 대사도 참석했다. 드레스덴 폭격 피해를 과장하려는 극우세력을 준엄하게 꾸짖은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1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모스크바 무명용사 묘를 찾아 헌화한다. 종전 뒤 가장 잔혹하게 독일인을 학살했으며, 동독의 공산 독재를 지원했고, 지금도 신냉전으로 갈등하고 있음에도 나치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잊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사표현이다. 종전 70주년, 독일은 엄살 부리거나 핑계 대지 않았다. 나직이 읊조렸을 뿐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당파정치와 여론의 함정에 빠진 한국외교/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당파정치와 여론의 함정에 빠진 한국외교/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한국 외교가 뜨거운 감자다. 국내 언론은 아베의 방미가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가지는 의미를 평가하면서 한국의 외교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제정치 뉴스는 정치권이나 국민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며 언론사들도 국내 뉴스에 비해 국제뉴스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면 연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국제정치에 대한 관심은 비로소 한국이 집안싸움에서 벗어나 우리가 처한 위중한 국제적 현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의미하는가. 2015년 한국이 처한 국제적 현실은 ‘경술국치’로 귀결됐던 구한말의 상황에 못지않다.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적 국제질서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어 동아시아에서 힘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통해 관심을 다시 아시아로 돌리면서 미·일 간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완성돼 가고 있다. 국제 금융질서 역시 격변기다. 기존 미국 중심의 브레턴우즈 금융 체제에 대응해 막강한 부를 가진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해 새로운 국제 금융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이 미·일이 주도하는 경제동맹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주저하는 가운데 중국이 주도하는 지역 다자주의 협력체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은 최근 들어 한국에 외교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가입할 것인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한반도에 설치해야 하는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아시아 질서는 한국의 적극적 참여가 없어도 형성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이 AIIB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중국은 아시아에서 인프라를 지원하는 전략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한국이 협력하지 않는다 해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국내의 ‘당파정치’와 ‘민족주의’적 여론이 한국의 외교적 선택을 상당 부분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적 과정을 통해 형성돼 온 한국의 근대적 질서는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극화된 외교 노선과 인식을 한국 사회에 체화시켰다.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가 특징인 한국 정치의 갈등 상황은 국제정치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게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비준 과정의 갈등 사례에서 잘 나타났듯이 상당수의 대외 정책은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국내 정치의 주요 쟁점이 되곤 했다. 국제 문제가 국내적 이슈로 정치화되다 보니 합리적인 접근이 어렵고 여론 눈치보기 외교 행태를 보이게 된다.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수정주의적 행보에 대한 외교적 대처도 쉽지 않다. 민족주의적 여론이 국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문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이를 경제, 안보 이슈와 분리해 접근하자는 전략적 목소리도 있을 법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정책에서 이런 전략은 찾기 어렵다. 21세기 국제질서는 보다 복잡한 지형을 형성하면서 변해 가고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에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전통적인 국가들이 주도하는 구질서와 보다 다원화되고 분권화된 신질서가 공존한다. 이와 같은 다차원적인 질서는 국가가 형성할 수 있는 동맹의 당사자와 수를 증가시키고 있고,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전략적 선택지를 제시한다. 국가들은 근대국가적 외교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외교관계의 틀을 형성해 가려 한다. 미·일 밀착과 중·일 접근, 분권화되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외교 전략은 안정된 지역 질서를 형성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의 생존과 국익은 전통적인 쌍무적 동맹과 더불어 지역적 연계, 협력이 공존하는 국제 시스템을 형성하고 주변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전략적 외교를 펼칠 때 확보할 수 있다. 국내 여론에 부합하거나 당파적 입장에서 어느 한쪽의 정치적 입장을 편드는 외교적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동아시아를 위한 장기적 전략과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中 “아베 야망은 美에도 골칫거리 될 것”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의회 합동연설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사죄 표명 없이 우경화와 군국주의 야심을 노골화하자 중국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중국은 특히 아베 총리가 연설에서 ‘아시아 해양 3원칙’을 제시한 것이나 안전보장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태평양·인도양의 평화와 안정을 다져 나가겠다”고 언급한 것은 중국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미·일이 공동 방위하기로 한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에 함선을 보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침략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한 뒤 “냉전 시기에 형성된 미·일 동맹이 지역안정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아베의 군국주의 야망은 일본은 물론 미국에도 심각한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미국과 일본이 합심해 댜오위다오와 남중국해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세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미국의 의도는 일본을 부추겨 중·일 대립을 격화시키고 아시아태평양을 혼란에 빠뜨려 패권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중국은 이날 댜오위다오 부근 해역에 함선 편대를 파견했다. 중국 국가해양국은 중국해경의 2307, 2101, 2102 함선 편대가 댜오위다오 부근 해역에서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新방위협력지침’...전범국 일본 ‘족쇄’ 풀어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아베 美의회 연설] 中 외교부 “美·日동맹, 제3자 이익 침해·평화 훼손 안 돼”

    중국이 연일 미국과 일본의 밀월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쟁 책임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등에서 중국에 대한 협공이 노골화됐기 때문이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9일 정례브리핑에서 “미·일 동맹은 냉전 시기에 양자 간에 형성된 것”이라면서 “우리는 미·일 동맹이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지역의 평화·안정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미·일 동맹의 방향에 대해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는 중국 고유의 영토로, 누가 무슨 언행을 하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날 사설에서 “미국과 일본의 동맹 강화는 지역 패권을 위한 것”이라면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겨냥해 ‘망상적인 대국’이라고 했는데, 미국과 일본이야말로 착각과 망상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우(일본)가 호랑이(미국)의 힘을 빌려 위세를 떨치다가는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화통신은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 르포 기사를 통해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반복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아베 美의회 연설] 동북아 美·日 vs 中… 한국 균형외교 시험대

    미국과 일본 정상이 28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70년 전 ‘적대적 관계’에서 ‘부동의 동맹’(unshakeable alliance)으로 바뀌었다고 선언하면서 미·일 동맹과 중국은 동북아의 전후 질서 주도권을 놓고 피할 수 없는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됐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묵인하고 자위대의 활동범위 확대를 허용해 동북아는 물론 범세계적으로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전후 질서의 산물인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일본의 진출도 용인하겠다는 뜻까지 밝히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한국을 끌어들여 한·미·일 3각 동맹을 구축하고 호주, 인도 등을 끌어들여 중국을 포위하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태평양지역을 하나로 묶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체결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한·미 동맹 강화라는 숙명과 중국이라는 요소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한국이 가시적으로 중국에 대항하는 3국 동맹에 가담할 경우 동북아는 ‘한·미·일 VS 북·중·러’의 신냉전구도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 외교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김기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한국이 균형외교 역량을 본격적으로 발휘해야 할 시점”이라며 “중국에 경도되지 않으면서도 미국과 협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미·일 동맹의 강화가 2차대전 이후 수립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미·일 동맹의 강화가 중국과의 대립이 아닌 관여정책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증가되면서 외교적 활동 폭도 넓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한·미와 미·일 동맹을 경쟁적으로 보지 말고 넓어진 외교적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이 전후 질서 패권을 놓고 전략적 경쟁이 아닌 갈등 국면으로 들어설 경우 선택의 기로에 놓이겠지만 아직 중국은 완전하게 부상하지 못했고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기보다 견제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전략적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공간이 아직 한국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합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58년 전 외조부 美 의회 연설처럼…아베, 사죄 대신 양국 동맹 강조할 듯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9일(현지시간)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전 총리의 1957년 미국 의회 연설을 모델로 삼고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미국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제기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동맹을 세계에 과시하고, 역사 인식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자리로 삼으려 한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 등이 26일 보도했다. 신문은 아베 총리가 기시 전 총리의 연설을 집무실에서 듣는 등 58년 전 연설을 참고하며 연설 원고를 다듬었다고 전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용의자에서 가까스로 빠져 내각 수장이 된 기시 전 총리는 1957년 6월 20일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일 관계의 새 시대를 강조하며 반공과 함께 일본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미국의 대일 지원에 감사를 표하며 냉전에서 일본의 역할과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기시 전 총리는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2차례 별도로 연설했다. 기시 전 총리를 비롯해 요시다 시게루·이케다 하야토 등 역대 일본 총리 3명이 미국 의회에서 연설했지만 아무도 과거 전쟁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 외조부를 ‘정치 멘토’로 삼는 아베 총리는 일본 총리 사상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미래 지향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최대 도전자로 떠오른 중국과 테러리즘에 맞설 미·일 동맹의 중요성과 향후 일본의 역할 등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과거사와 관련해서는 태평양전쟁 희생자 애도 등 미국과 관계된 사안에 국한하면서 지난 22일의 반둥회의처럼 언급 수준이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 정도일 것으로 관측된다.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 전방위 압박을 받는 아베 총리의 승부처가 얼마나 통할지 주목된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사설] 아베 역사 역주행에도 한·일 대화는 이어져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다. 일본의 진주만 침공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이 대일 선전포고를 했던 연단에 일본 총리가 처음 서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일제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눈감는 종전 태도를 고수함으로써 한·일 과거사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 때문이다. 한·일이 과거에 발목이 잡혀 미래로 나가지 못한다면 두 나라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혹여 아베 총리가 미·일 신밀월 기류에 편승해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를 얻으려 한다면 오산임을 지적해 둔다. 국제관계에서 과거 없는 미래가 어디 있겠나. 미국 뉴욕타임스도 최근 “일본이 자국의 과거에 대한 비판을 계속 거부한다면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에 대한 신뢰감을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한·중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경계심을 풀지 않을 것이다. 근래 미·일은 신방위협력지침을 통한 안보 공조, 그리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시도 등 찰떡 궁합을 보이고 있긴 하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도 한·일 갈등이 지속되면 중국의 패권국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아시아 회귀 전략이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미국의 국방비를 덜어 주는 데 협조하는 대가로 과거사를 덮어 주기를 기대하는 착각을 말아야 할 이유다. 아베 총리가 방미길에 오르기 전인 지난 24일 미 의회 의원 25명이 연판장을 돌렸다. 애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과 마이크 혼다 의원 등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 총리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같은 날 워싱턴 미 의회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눈물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오불관언의 자세였다. 빈말로라도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외조부였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을 독회하면서 연설 원고를 다듬고 있다는 요미우리신문의 보도는 무엇을 말하나. 기시는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 대신 미국의 전후 지원에 감사를 표시하고 냉전기에 미국을 도울 일본의 역할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도 태평양전쟁이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며 미래지향적 미·일 관계만을 역설할 공산이 큰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이 중요하다. 아베 총리가 이제라도 진솔하게 과거사를 직시해 미 의회 연설을 한·미·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호기로 삼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시나리오는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갈등으로 “물 샐 틈 없다”는 한·미 동맹에 주름이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원칙을 지키는 것과는 별개로 안보·경제 분야에서는 한·일 협력을 이어 가는 투 트랙 접근이 불가피하다. 지난달 한·일 원로들은 아베 총리에게 수교 50주년인 올해 양국 정상회담을 못 하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는 우리 정부도 귀담아 들어야 할 고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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