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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우예권 ‘북미의 쇼팽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

    선우예권 ‘북미의 쇼팽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

    “콩쿠르라는 생각은 최대한 접어두고 연주하러 왔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과장하거나 꾸미려 하기보다는 제가 느낀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신경썼습니다.”국내 신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이 북미 최고 권위의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밴 클라이번 재단은 10일(현지시간) 밤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 홀에서 17일간 진행된 제15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금메달리스트로 선우예권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인이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이다. 앞서 2005년 양희원(미국명 조이스 양), 2009년 손열음이 은메달을 땄다. 1962년 시작되어 4년 주기로 열리는 이 콩쿠르는 냉전 시절이던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밴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는 대회다.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차이콥스키, 퀸 엘리자베스에 버금가는 대회로 ‘북미의 쇼팽 콩쿠르’로 불리며 북미 최고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선우예권은 5만 달러(약 5600만원)의 상금과 함께 3년간 미 전역 투어, 음반 발매 등의 지원을 받는다. 지난달 25일 개막한 콩쿠르는 전 세계 290여명이 참가한 대륙별 예선을 거쳐 선발된 15개국 30세 이하 신예 피아니스트 30명이 본선에서 기량을 뽐냈다. 한국에서는 5명이 나가 선우예권과 김다솔, 김홍기가 12명이 겨루는 준결선에 진출했고, 이 중 선우예권이 6명으로 추려진 결선에 올랐다. 9일 밤 결선 무대에서 선우예권은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5중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 관객 기립 박수와 함께 심사위원단 최고점을 받았다. 수상 직후 선우예권은 “너무 값진 상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서 “앞으로도 좋은 연주, 진실된 음악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 연주 때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감기에 걸려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잠을 자며 열을 빼내려고 했다”며 “심적으로 힘들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 때문에) 좀더 복합적인 감정들을 들려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다소 늦게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커티스음악원, 줄리아드 음대, 뉴욕 매네스 음대에서 수학했다. 세계적 연주자인 리처드 구드와 세이무어 립킨을 사사했으며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연주자 과정을 밟으며 베른트 괴츠케를 사사하고 있다. 윌리엄 카펠 국제피아노콩쿠르(2012),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2013),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2014),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2015)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금호아트홀 상주 음악가로 선정돼 5차례 리사이틀을 열었다. 오는 12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600석) 독주회는 이날 우승 소식이 전해지자 순식간에 매진됐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선우예권, 한국인 최초 美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결선무대 기립박수

    선우예권, 한국인 최초 美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결선무대 기립박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9)이 55년 역사의 세계적 피아노대회인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자로 선정됐다.반 클라이번 재단과 심사위원단은 10일(현지시간) 미 텍사스 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 홀에서 17일에 걸친 제15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폐막하며 선우예권을 1위인 금메달리스트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2005년 양희원(미국명 조이스 양)이, 2009년 손열음이 각각 2위에 해당하는 은메달을 수상한 바 있지만 우승은 한국인 최초다. 5월 25일 개막한 올해 대회에서는 대륙별 예선을 거쳐 선발된 15개국의 30세 이하 신예 피아니스트 30명이 기량을 겨뤘다. 한국인 참가자 5명 가운데 선우예권,김다솔,김홍기가 12명이 겨루는 준결선에 진출했고,이중 선우예권이 6명으로 좁혀진 결선까지 올랐다. 선우예권은 준결선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Op.109,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6번 Op.82,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K.467을 연주했다. 결선에서는 드보르자크 피아노 5중주 Op.81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Op.30을 연주했다. 선우예권은 결선 무대인 9일 밤 피아노 협연의 난곡으로 손꼽히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폭발적인 에너지로 소화해 관객들의 전원 기립 박수와 환호를 끌어내며 입상에 청신호를 켰다. 다른 피아니스트보다 다소 늦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한 선우예권은 실력에 비해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늦게 알려진 연주자다.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커티스음악원,줄리아드 음대에서 수학했고,이어 뉴욕 매네스 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 리처드 구드를 사사했다. 2015년 독일 피아노 어워드에서 우승한 것 외에도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2014년),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2013년),윌리엄 카펠 국제피아노콩쿠르(2012)에서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냉전 시절이던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해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는 대회다. 1962년을 시작으로 4년 주기로 열리며 루마니아의 라두 루푸(1966 우승),독일의 크리스티안 차하리아스(1973년 준우승) 등을 입상자로 배출했다. 예심을 통과하더라도 준준결선,준결선(독주·협연),결선(실내악·협연) 등 모두 5번의 무대를 통해 수상자를 까다롭게 가리지만 일단 입상하면 음악가로 성장하는데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쇼팽 콩쿠르,차이콥스키 콩쿠르,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견줄만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희망하는 피아니스트에게는 ‘등용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사람 e향기] “세종기지 30주년, 이젠 극지실용화 전략이다”

    [이사람 e향기] “세종기지 30주년, 이젠 극지실용화 전략이다”

    ‘정직이 힘이다’. 이는 윤호일(56) 소장이 실패를 통해 온몸의 세포로 체득한 인생철학이자, 삶의 좌우명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피치 못할 사정에 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사람은 잘못을 인정해 수용하느냐, 아니면 부정해 회피하느냐의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보통 사람은 지위와 논리로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려고 한다. 그 렇지만 이것은 정직이 아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누가 봐도 ‘내 잘못이다’고 지적받았을 때 이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정직이다. 이 같은 윤 소장의 인생 철학은 2003년 15명의 대원과 함께 세종기지 대장으로 남극을 찾았을 때의 쓰라린 아픔이 만들어 준 교훈에서 비롯됐다. 사람이 혹한의 폐쇄 환경에 놓여 살면 인간 본성의 밑바닥이 드러난다. 바로 그때 균형을 잡아주는 힘이 정직이다. 그래서 정직은 공평보다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윤 소장의 지론이다. ‘세종기지 30주년, 이제는 극지실용화 전략이다’. 우리나라 극지과학은 내년 2월 17일이면 30주년을 맞이한다. 성년을 지나 중년을 향해 나가고 있다. 인생에서 중년은 도전과 성취이다. 윤 소장이 ‘극지실용화 전략’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데는 ‘남극에서 북극으로 30년’, 도전 그 다음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극지실용화 전략은 천연자원 개발 등 미래자원 확보와 에너지 안보를 목표로 한다.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함도 담고 있다. 극지 생물 유전체와 대사체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도 물론이다. 모두 극지연구를 한 단계 더 높이 성장시키기 위함이다. 최근 캐나다와 함께 쇄빙선 아라온호를 이용해 벌이는 ‘북극해 캐나다 연안 수역에 담겨 있는 자원에 대한 기초조사’ 활동이 대표적이다. 2년째 진행되면서 R&D(연구·개발)로 발전하고 있다. 두 번째가 ‘북극해 루트’ 개척이다. 북극해 공해상으로 나가는 루트다. ‘북극해 탈러시아 전략’인 셈이다. 제2 쇄빙선이 필요한 이유다. 닻은 이미 올려졌다. 미래 후손들에게 활동무대를 넓혀주는 영토확장, 그 웅장한 고동소리가 양극해를 진동시키고 있다. 특히 남극에서 북극으로 나가는 최근 추세에 맞춰 북극해 공략을 위한 제2, 제3의 쇄빙선 위로 태극기 휘날리는 미래는 밝다. 편집자 주“극지연구, 후손에 물려줄 과학유산” 얼음 덮인 북극 바다가 녹고 있다. 온난화로 지구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 이상 한파가 몰아치기도 한다. 극지가 9~11년 전부터 인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인류의 미래가 극지 연구에 달렸다”는 윤 소장의 주장이 웅변인 이유다. 극지는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장소”이고 “미래를 현실로 앞당기는 견인력”이며 “미래 후손에 물려줄 우리의 소중한 과학유산”이다. 여기에 극지 과학인들의 희생과 피땀이 스며있음은 물론이다. 1988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남극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하며 극지 연구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해 1차 월동대원을 시작으로 29년 동안 매년 마다 월동대원들이 남극을 찾았다. 윤 소장은 1991년부터 1년 대장을 포함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씩 25년 동안 혹한의 남극을 오갔다. 월동대원들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문명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채 연평균 온도가 영하 23도, 여름 기온은 0~5도지만 겨울엔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뎌야 한다. 남극은 특히 얼음사막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보니 3차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월동대원까지 더하면 100여명이 넘는 극지인들이 대한민국 극지과학연구에 헌신과 희생의 피땀을 받쳐왔다. 윤 소장이 “극지인들의 피땀”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애적 동료애를 넘어선 진심 어린 존경을 에둘러 표현한 언어목록이다. 혹한의 폐쇄공간인 극지 생활을 잘도 견디어 온 극지인들에 대한 무한사랑의 표현이다. 말하자면 불립문자(不立文字)인 셈이다. 눈물 젖은 빵을 함께 나눈 사이,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30년 세월, 한 세대를 말이다. ‘눈물샘 마른 극지인, 윤호일’ 윤 소장의 눈물샘은 말랐다. 울고 울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부하의 얼어붙은 시신을 마주한 사건 때문이다. 윤 소장의 가슴 깊은 곳에는 그래서 ‘영원한 영웅, 고(故) 전재규 대원’이 함께 산다. 그때가 국민이 기억하는 바로 ‘2003년 남극 세종기지 실종사건’이다. 윤 소장이 당시 대장의 책임을 맡아 고(故) 전재규 대원을 포함해 15명의 대원과 함께 남극에 도착한 지 10여일 만의 참사였다. 윤 소장은 또 짝발이다. 오른발이 왼발보다 짧아서다. 1993년 남극 월동대원으로 1년을 머물면서 당한 사고가 원인이다. 연구활동 중 얼음에 깔려 허리를 다쳤지만, 어찌 치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귀국해 요추 3개를 철심으로 교체하는 수술로 몸을 다시 세울 수 있게 된 것이 천운으로 다행이었다. 하지만, 발에는 그 흔적을 남겼다. 그 후유증으로 윤 소장은 오른쪽 눈가와 입꼬리 떨림을 안고 산다. 분명 윤 소장은 극지과학 재해 장애인이지만, 장애인 등록은 하지 않았다. 과학자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때문이다.“제2 쇄빙선은 미래 성장동력” 윤 소장은 오는 8월이면 제5대 극지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이 된다. 1986년 한국해양연구소에 입소한 윤 소장은 지난 30년 동안 극지연구소, 한국극지연구의 눈부신 성장과 함께했다. 그렇다 보니 윤 소장은 “극지연구는 이제 질적 성장을 해야 할 시점”이라며 “극지실용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가치창출로써 국민의 성원에 화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소장이 취임 후 “국민이 공감하는 사회문제해결형 사업단을 구성”한 이유다. 또 전통적인 학문분야별 연구와 별도로 “임무(이슈) 중심형 사업단을 운영”하는 배경이다. 윤 소장은 이를 위해 북극해빙예측사업단, 해수면 변동 예측사업단, 극지 유전체 사업단, K-루트 사업단을 신설했다.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한 남극의 역할 규명 ▲콜드러시 시대를 주도하는 전략적 북극진출 발판 마련 ▲미답지 도전과 극지자원 활용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래가치창출이라는 3대 연구전략목표를 위해서다. 이에 따라 윤 소장은 “극지연구는 범부처 정책 사업으로 확대돼야 한다”며 “극지활동진흥법 제정과 제2 쇄빙연구선 건조”를 주문했다. 북극권 진출이 목표다.“북극권도 대한민국이 관할할 또 하나의 영역” 윤 소장에 따르면 현재 일본 정부는 한국과 같은 비 북극권 국가이면서도 일본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북극해가 남의 땅이 아니다’는 논리로 일본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일본 정부는 아예 선단을 구성해 북극해 러시아 연안에서 나오는 LNG가스와 유전자원을 일본열도에 공급한다는 ‘에너지 안보개념’을 운용하고 있다. 내친김에 러시아산 LNG가스와 원유를 북극해 항로를 이용해 유럽까지 운송하는 역할을 독점하겠다는 전략까지 구사하고 있다. 또 일본은 북극에서 일어나는 미국과 러시아 간의 냉전에도 대비하고 있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북극해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 재해, 선박이동, 유전활동에 대한 고급정보를 촘촘히 수집해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물론 항공우주연구원이 중심이 돼서 인공위성이 있지만 개수와 질, 궤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 보니 윤 소장은 “10대 강국인 대한민국도 북극권이 우리가 관할해야 하는 하나의 영역이란 원칙이 필요하다”며 “북극권이 이후 분쟁지역이 됐을 때 우리 몫을 차지할 영역이라는 관점에서 정부는 극지정책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5대 극지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지 오는 8월이면 1년이 된다. 그간의 소회는. -취임 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열심히 달려왔다. 극지연구의 질적 성장과 극지인력 양성을 목표로 기존 연구 과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과제 발굴에 힘써왔다. 당장 눈앞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10년, 20년 앞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경영에 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극지연구소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1987년 작은 연구실에서 시작, 2004년 부설화를 거쳐 올해 개소 13주년을 맞이했다.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준공 이래 본격적인 극지연구에 착수, 현재 남극과 북극에 3개 과학기지를 건설하고 아라온호를 건조해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극지활동에 대한 국가적 비전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남극연구활동 진흥기본계획, 북극정책 기본계획, 극지활동진흥법 등 국가 극지정책의 전략적 수립과 추진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극지연구 발전의 중심에 극지연구소가 있다. 어떤 연구인가. -극지연구는 기초과학연구다. 인류의 탄생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구 과거 역사부터 미래자원 확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분야이다.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 대응에 있어 극지연구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얼음으로 덮여있던 북극 바다가 녹으면서 북극의 막대한 천연자원 개발 가능성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더불어 북극의 지정학적 의미와 안보가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다. 특히, 아라온호 탐사를 통해 동시베리아해에서 처음으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발견하고 향후 북극 해저자원과 북극항로 개발이 이루어질 북극 지역의 해저 자원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 획득하는 등 미래 에너지자원 확보에 기여할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극지 실용화연구 중장기 전략의 수립을 통해 극지생물 유전체 및 대사체 특성 규명과 이를 통한 극지 유용 자원발굴 등을 추진하고 있다.→신정부 국정과제와 연계해 어떤 기여가 예상되는가. -사회 문제해결형 연구체제 수립으로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고 극지연구의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을 기관 전략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만큼 정부의 실용적 극지 정책 수립·추진과 국가 이익,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산·연 극지공동연구프로그램(PIP) 등을 통해 극지연구에 필요한 장비·로봇 및 관련 융·복합 기술개발을 활성화, 사업화를 촉진하고 극지유전체 및 대사체 활용기술 개발을 산업계와 연계하는 실용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가치창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극지연구소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가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새로운 사회적 가치창출의 주역이 되길 희망한다. →앞으로의 포부와 목표가 있다면 -내년 2월 17일이면 우리나라의 첫 남극 진출의 상징인 세종과학기지가 준공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세종기지는 현재 노후된 인프라 개선 및 대규모 증축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세종기지는 기후변화 연구와 국제협력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이다. 또 남극 반대편에서는 남극 내륙으로 독자적으로 진출하는 ‘코리안 루트’ 프로젝트 등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극지연구는 이제 질적 성장을 해야 할 시점이다. 극지 연구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극지활동진흥법 제정과 제2 쇄빙연구선 건조 등 주요 과제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극지연구는 해양과학, 지질학, 생명과학, 기후학 등 다학제적 학문 분야의 협력 및 국제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앞으로의 10년은 타 분야, 타 연구 기관과 협업 체계를 이루어나가는 그랜드 컨소시엄 형태로 극지 연구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 극지연구소가 그 중심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며 극지연구 외연 확대에도 힘쓰겠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윤호일 소장은 현재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소장 2015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부소장 2014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선임연구본부장 2013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기후변화연구부 부장 2003년 제17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 대장 1995년 인하대학교 대학원 해양지질학 박사 1986년 한국해양연구소 입소 1960년 12월 12일 출생
  • ‘DJ 구명 협상’ 美외교가 큰 별 지다

    ‘DJ 구명 협상’ 美외교가 큰 별 지다

    ‘미국 외교가의 큰 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9세.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의 딸 미카 브레진스키는 이날 자신이 진행하는 MSNBC ‘모닝 조’에서 “가장 영감을 많이 주고 딸에게 더없이 헌신적이었던 아버지가 버지니아의 한 병원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94) 전 국무장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92) 전 안보보좌관과 함께 미국의 3대 외교 ‘브레인’으로 꼽히는 고인은 1970년대 미 외교의 큰 그림을 그린 전략가였다. 1928년 폴란드 귀족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와 독일,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소련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캐나다에 정착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를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76년 카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다. 1978년 강경 대치하던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를 중재하면서 중동평화 협상을 이끌어 냈고, 같은 해 미·중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해 중국 베이징을 찾아가 카터 행정부의 뜻을 전달했다.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대응도 그의 전략에서 비롯됐다. 1980년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명을 위한 협상을 주도하는 등 한국 민주화에도 이바지했다. 브레진스키는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앞세운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특히 1997년 발간한 역저 ‘거대한 체스판’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각국이 치열한 수 싸움을 펼치는 ‘체스판’에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포스트 냉전시대에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체스판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2년 내놓은 ‘전략적 비전’에서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크게 의존하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할 것으로 예견한 바 있다. 브레진스키는 현실적인 접근의 외교 정책을 추진했으며 옛 소련과 관련해서는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브레진스키에 대해 키신저와 함께 “소련을 불신하는 마음을 지닌 외교정책의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했다. 퇴임 후에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과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로 재직하면서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EU 국방 여인천하

    EU 국방 여인천하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여성이 국방장관에 오르는 등 유럽 주요국 안보 수장직에 ‘여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실비 굴라르(52) 유럽의회 의원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는 등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좌·우파 인물을 가리지 않고 등용해 ‘탕평 인사’를 펼치는 마크롱 대통령은 각료 22명 가운데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며 양성 평등도 구현해 호평을 받고 있다. 중도 성향의 민주운동당 출신인 굴라르 신임 국방장관은 2002~2007년 국방장관을 맡았던 미셸 알리오 마리(70)에 이어 프랑스 사상 두 번째 여성 장관이다. 기성 정치인 가운데 가장 먼저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고 마크롱 캠프 외교 보좌관으로 활약한 그는 한때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으로 유럽연합(EU)에 친화적인 인물로 통한다. 1989년부터 1990년 독일 통일 과정 당시에는 외교부 관리로 독일과의 실무 협상에 참여했다. 굴라르는 지난 3월 18일 마크롱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만남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굴라르의 임명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틀을 벗어난 유럽의 독자 방위를 강조하는 독일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 주요국에서 여성 국방장관은 이미 ‘트렌드’로 굳혀진 지 오래다. 독일은 2013년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을 배출했다. 일곱 자녀의 엄마이자 산부인과 의사 출신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58)이 그 주인공이다. 폰데어라이엔은 집권 기독민주당 정치인으로 노동사회부 장관 등을 거쳤고 메르켈 총리를 이을 차기 총리감으로도 꼽힌다. 이탈리아에서는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정계에 진출해 국회 국방위원장 등을 역임한 로베르타 피노티(56)가 2014년 2월부터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 또한 스페인의 마리아 돌로레스 데 코스페달(51) 국방장관은 지난해 11월부터 역대 두 번째 여성 국방장관으로 활약 중이다. 네덜란드 국방장관도 2012년부터 집권 자유민주당 출신 여성 정치인 제닌 헤니스플라스하르트(44)가 맡아 왔다. 이 밖에 EU 회원국이 아닌 노르웨이는 지금까지 다섯 명의 여성 국방장관을 배출했다. 유럽 국가들의 여성 국방장관 발탁은 ‘여성’과 ‘민간인 출신’이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것으로 선출된 정치권력이 군을 통제한다는 ‘문민통제’가 구현되는 증거로 통한다.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여성 장관의 연쇄 등용은 냉전 종식 이후 유럽 국가 대부분에서 모병제 전환이 이뤄진 것이 계기가 됐다. 여군이 대폭 늘어나 여성의 국방 기여도가 높아지면서 그만큼 여성 장관에 대한 거부감이 완화됐다. 차기 총리 자리를 노리는 유력 여성 정치인들에게는 안보 분야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요직으로 여겨진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中 “김일성 때문에 중국군 수십만 죽었다”

    “미·중 냉전도 北 고집이 가져온 피해” 조선중앙통신 논평에 맹비난 퍼부어 중국 관영 매체들이 북한이 가장 숭배하는 김일성까지 대놓고 비난하는 등 북한에 대한 불만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대외적 외교관계를 고려해 수위를 조절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해외판 소셜미디어 매체인 협객도는 지난 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중국 비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는 제하의 평론에서 “중국은 조선중앙통신의 글에 대해 논쟁하고 싶지 않지만 할 말이 있다”고 밝혔다. 협객도는 “북한이 북·중 관계가 악화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다”면서 “비이성적인 인간처럼 핵을 반대하면 적이고 지지하면 벗이라고 하는데 이런 시각에서 보면 북한은 이미 벗이 하나도 없고 전 세계가 다 북한의 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시키려고 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몇십만 명의 중국 지원군이 북한에서 죽었고 20년에 걸친 미·중 냉전을 초래했으며 심지어 양안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데 모두 다 북한의 고집이 가져온 피해”라고 강조했다. 협객도는 “중국의 핵심 이익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인데 북한이 중국의 이익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 것 같다”면서 “조선중앙통신의 글은 북·중 간의 이익 갈등을 드러냈으며 글 마지막 부분의 경고적 표현은 거의 북·중 관계의 결렬을 선고함과 다름이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 매체는 “북한이 끊임없이 핵·미사일 시험을 감행하는 것은 한반도 정세를 임계점으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에 직면한 북한은 중국의 중재 외교 덕분에 일정 부분 외교 공간이 생겼으니 북한이야말로 중국에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객도는 “북한이 자신의 안위를 핵무기와 함께 묶는 것은 절대적인 불안을 초래한다”면서 “1972년 미·중 관계의 완화는 한국전쟁에 대한 화해라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은 여전히 대항적인 사고방식 속에 자승자박하고 있으며 중국을 원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있어서 중국은 공기와 같아 있을 때는 감지되지 않지만 없을 때는 치명적”이라며 “북한의 언론이 중국의 감정을 많이 상하게 했지만 중국이 실망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며 북한은 핵 포기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3일 ‘김철’이라는 개인 명의로 게재한 논평에서 “조중 관계의 ‘붉은 선’을 우리가 넘어선 것이 아니라 중국이 난폭하게 짓밟으며 서슴없이 넘어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씨줄날줄] 사드와 美 ‘군산정 복합체’/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드와 美 ‘군산정 복합체’/오일만 논설위원

    군산(軍産)복합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1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퇴임 연설에서다. 그는 “지금 미국은 방대한 군사체계와 군수산업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군산복합체란 방위산업 성장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세력으로 국방부, 군수업체, 과학·공학자 등이 포함된다. 미·소 화해를 추진했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배후에 군산복합체가 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50여년이 지나면서 군산복합체는 미 정치권까지 포함해 ‘군산정(軍産政)복합체’로 진화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50개주(州) 중 48개주에 방산업체 공장들이 퍼져 있다. 록히드마틴이나 보잉사 등 대표적 방위산업체들이 의도적으로 분산 배치한 것이다. 최대 고객인 미 국방부의 무기 구입 시 의회 승인이 필요한 점을 염두에 둔 조치다. 미 정치자금 공개단체인 오픈시크릿닷컴에 따르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은 2015년의 경우 총 535명의 상·하원 의원중 425명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국제적으로 무기 시장은 냉전 이후 최대 호황이다. 지역내 갈등과 전쟁으로 돈을 보는 구조 탓이다. 미국의 ‘테러 전쟁’ 이후 최근 5년간 중동 지역의 무기 수입이 급증했고 2011년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발표 이후 아·태 지역에서 무기 수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도 비슷하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대사가 미 방산업체 2위 기업인 보잉사 부사장으로 최근 일자리를 옮겼다. 대사 시절 한국에 구축한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무기 판매를 총지휘할 것이란 소문이 꼬리를 문다. 지난달 보잉사의 수석 부사장을 지낸 태트릭 샤나한을 ‘국방부 2인자’인 국방부 부장관에 내정한 것도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은 미국이다. 전체 수출액의 33%를 차지했다. 군산복합체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을 통해 세계 무기 시장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며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가 엿보인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전격 배치 이틀 만에 10억 달러 ‘사드 청구서’를 보냈다. 때 맞춰 한국 지형상 최소한 2대 이상의 사드가 필요하다는 ‘추가 배치론’도 미 학계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미국산 무기 수입액은 36조원에 달했고 2014년 세계 1위, 2015년 세계 4위 무기 수입국이다. 한국이 국제무기 시장에서 ‘호갱’으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오일만 논설위원
  • [길섶에서] 비틀스의 추억/오일만 논설위원

    몰락한 제국 영국의 자존심은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냉전시대 소련이 두려워했던 록 그룹 비틀스(The Beatles)였다. 소련의 젊은이들은 비틀스의 음악을 몰래 들으며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을 갈구했다. 아직까지 16억장의 앨범 판매량은 누구도 깨지 못한 신화로 남아 있다. 비틀스는 아픔부터 배웠다. 비틀스의 리더,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는 청소년기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공유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기타와 음악에 빠져들었다. 음악사에 빛나는 머더(Mother)와 렛잇비(Let it be)가 이렇게 탄생했다. 청운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10대 후반 독일 함부르크 뒷골목 클럽에서 하루 12시간씩 연주했다. 총성이 울려 대는 암흑 지대, 대기실에서 빵 한 조각으로 주린 배를 채웠고 근처 창고에서 새우잠을 잤다. 클럽이 망하면서 실업자도 됐다. 고향 리버풀로 돌아가 음악을 포기한 채 부두 짐꾼으로 전전하던 시절 그들은 새롭게 태어났다. 비틀스를 키운 것은 8할이 고통과 좌절이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지개가 뜨지 않는 것처럼…. 오일만 논설위원
  • [씨줄날줄] 북한이탈주민의 고뇌/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북한이탈주민의 고뇌/황성기 논설위원

    지금은 북한이탈주민이 공식적인 명칭이지만 여전히 탈북자, 새터민 같은 과거의 용어가 우리 사회에 뒤섞여 쓰이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이란 북한을 벗어나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법률 용어이기도 하다.통일부의 올해 3월 말 기준 자료를 보면 북한이탈주민은 남성 8848명, 여성 2만 1642명으로 총 3만 490명이 한국에 들어왔다. 2005년 이후 탈북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12년부터는 한 해 1500여명선으로 줄어들어 작년에는 1418명이 남한에 왔다. 북한이탈주민이란 명칭 변천은 남북 관계의 역사와 밀접하다. 1960년대 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월남 귀순자’란 이름으로 불렀다. 법으로 국가유공자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원호대상자로 우대하며 체계적인 지원도 시작했다. 동서 냉전과 남북 대치가 극에 이르렀던 1979년에는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을 만들어 사선을 넘어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귀순용사’로 불렀다. 냉전이 끝난 1993년에는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을 제정했는데, 귀순자를 국가유공자에서 생활능력이 결여된 생활보호대상자로 격하했다. 정착금을 비롯한 지원도 크게 줄였다. 1997년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탈북자’란 용어를 퍼뜨린 원조다. 자신을 김정일 정권의 학정을 피해 탈출한 ‘탈북자’로 지칭했다. 2005년 통일부가 탈북자란 용어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새터민’으로 바꿔 사용했다. 황씨가 위원장을 맡았던 북한민주화위원회는 2007년 “우리는 폭압과 독재의 나라에서 탈출한 탈북자”라면서 새터민 사용을 중단해 달라고 통일부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서울시가 지난 20일부터 북한이탈주민 대체 용어 공모에 들어갔다. “현재 용어에 북한이탈주민의 부정적 의견이 많고 남북하나재단 등 유관 단체에서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게 이유다. ‘북한’, ’이탈’ 등 어감이 좋지 않고 여섯 글자라는 점, 적극적 의지로 북한을 탈출했다는 자부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서울시는 좋은 용어를 발굴하면 통일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2000년 탈북해 2006년 한국에 입국한 한 탈북자는 서울시 공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필자에게 귀띔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 정착해 살고 있는 마당에 새 딱지를 붙여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차별 아니냐. 대한민국 국민이란 명칭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서울시나 통일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인 것 같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북마크] 대통령의 시대? 민주 시민의 시대!

    [북마크] 대통령의 시대? 민주 시민의 시대!

    오는 5월 10일 아침 신문의 헤드라인은 19대 대통령 당선자의 이름을 딴 ‘아무개의 시대’로 도배될 것입니다. 과거 신문을 찾아봤더니 17대 대선 다음날인 2007년 12월 20일에는 ‘이명박 시대’로, 18대 대선 다음날인 2012년 12월 20일에는 ‘박근혜 시대’라는 문패가 지면에 또렷이 박혀 있더군요. 왜 대통령이 한 시대의 상징이 될까요.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레퍼토리입니다. “‘박정희시대’ 때 굶지 않게 됐고 ‘전두환시대’ 때는 치안이 좋아 도둑이 없었다”고. 그 레퍼토리 끝에는 지난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가 배어 있습니다. 작가 김훈의 신작소설 ‘공터에서’는 마씨 집안의 가장인 마동수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마동수(馬東守)는 1910년 경술생(庚戌生) 개띠로 (…) 해방 후에 서울로 돌아와서 6·25전쟁과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를 살고, 69세로 죽었다.’ 평범한 인간들의 삶조차 결코 권력자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을 드러낸 소설적 장치이겠지만 ‘권력자의 역사’가 수많은 개인들의 실존을 압도해 온 독재의 기억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 첫 대통령 직선제인 1987년 이후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돼 왔습니다. 동시대의 학교에서 민주주의와 공화(共和)를 가르치지만, 현실 정치에서 대통령이 제왕이 되는 모순적 상황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이번 주 신간 중 한국과 미국 두 역사학자가 쓴 책이 시선을 챕니다.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의 ‘민주주의 잔혹사’와 미국 예일대 교수 티머시 스나이더의 ‘폭정’은 각각 민주주의의 외피를 둘러쓴 현대사의 이면과 본성을 꿰뚫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공과 논쟁에만 치우친 우리 현대사 반대편에는 그 지도자들에게 짓눌리며 간과됐던 수많은 개인들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홍 교수가 분단과 독재, 냉전과 반공이라는 특수한 조건에만 쏠려 있던 현대사에서 비켜나 당대 개인들을 호명하는 역사서를 내놓은 이유일 것입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보며 과거를 신화화하려는 지배자들의 욕망을 분석합니다. ‘역사를 모르는 세대’는 과거의 화려했던 순간을 동경하며 폭정에 순응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경고, 살벌하지만 현실적입니다. 역사는 선거가 끝나는 곳에서 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된다는 교훈을 전합니다. 시민 각자가 민주주의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는 역사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안동환 문화부 기자 ipsofacto@seoul.co.kr
  • 역사를 왜곡·악용한 세력들

    역사를 왜곡·악용한 세력들

    역사 사용설명서/마거릿 맥밀런 지음/권민 옮김/공존/288쪽/1만 5000원역사의 힘은 세다. 그 위력을 잘 알고 있었던 전 세계 지도자, 정치가, 주요 집단은 과거를 고쳐 쓰고, 부정하고, 파괴했다. 오직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한 것이다.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을 새로운 공산주의자로 개조하는 데 방해가 될 만한 모든 기념물과 문화유산을 파괴하려고 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이라크 침공에 앞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위협적인 인물로 그려내려고 애썼다. 저자는 제1·2차 세계대전, 종교·이데올로기의 충돌, 냉전 체제, 소련 붕괴 이후 세계 변화, 독재자의 지배 등 역사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 방식을 두루 탐색하면서 역사를 왜곡하거나 악용하는 주체라면 개인, 집단, 민족, 국가, 이념에 관계없이 비판한다. 저자는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왜 주의해야 하는지 강조하면서 조언한다. “역사를 사용하고 즐기되, 언제나 신중하게 다루라.”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열린세상] 연구중심대학과 대학혁명/전호환 부산대 총장

    [열린세상] 연구중심대학과 대학혁명/전호환 부산대 총장

    2016년 QS 세계대학평가 상위 30위권에는 미국 15개, 영국 7개, 스위스, 싱가포르가 각각 2개, 호주, 중국, 홍콩, 캐나다가 각각 1개 대학이 포함되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학이 무너지고 왜 미국 대학들이 세계대학 순위를 휩쓸까? 세계 30위 내에 든 미국 대학 15개는 모두 연구중심대학이다. 주립인 미시간대와 버클리대를 제외한 13개가 사립대이다. 작년 8월 나는 앤아버에 있는 미시간대를 방문하여 두데스탯 전 총장을 만났다. 그는 10년간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미국 대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경험하고 고뇌한 내용을 담은 책 ‘대학혁명’(2004년 번역 출간)의 저자로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다. 두데스탯 전 총장은 ‘연구중심대학과 미국의 미래’란 책을 나에게 주었다. 미 의회의 요청으로 2012년 출간된 이 책의 부제는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10개의 필수 혁신강령’이다. 미국에는 3600여개의 대학이 있다. 그러나 국가의 핵심 자산인 연구중심대학은 60여개뿐이고, 정부의 강력한 정책과 재정 투자가 성공의 핵심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은 연방·주정부와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에 의해 육성됐다. 남북전쟁이 진행 중인 1862년, 미 의회는 ‘토지무상양도법’을 통과시켜 농업과 산업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중심대학을 설립했다. 그 결과 세계를 먹여 살린 농업 녹색혁명이 있었고, 제조업은 20세기 미국을 세계 강국으로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 의회는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을 구축하기 위해 기초연구와 대학원 교육에 집중 투자하는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이러한 확장된 파트너십은 미국이 동서냉전에서의 승리는 물론, 세계 최초로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연구중심대학과 미국의 미래’에서 말하는 내용은 혁신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대학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중심대학들이 최근 들어 고등교육 비용 증가와 정부의 재정 지원 감소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대학들의 재정 확충을 위한 노력은 대학 본연의 임무인 기초교육과 연구에 집중할 에너지를 분산시켜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짚었다. 중국 등 아시아권 대학이 급상승하여 외국 우수 학생과 과학자 유입도 어렵다. 강력한 미국을 재창조하기 위해 연구중심대학과 정부, 기업 및 기부단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다시 강화해 장기전략 수립과 함께 연구재정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대학의 재정은 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대학들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주립인 미시간대의 경우 기숙사비를 포함한 연간 등록금은 주외 거주자는 약 6만 달러(약 7000만원)이고, 대학재정은 연 4조원 규모이다. 서울대의 5배, 부산대의 10배다. 주립인 버클리대학과 사립인 스탠퍼드대의 등록금(6만 7000달러)은 비슷하다. 영국의 대학 등록금 또한 미국의 연구대학과 차이가 없다. ‘국립대학=등록금이 싼 대학’으로 인식되는 우리나라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성과는 재정 투입에 비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계대학 평가순위가 대학재정 순위와 비슷한 것이 그 증거다. 미국의 대학은 연구중심대학(기초과목 강화 및 박사학위 수여), 교양중심대학(학사 혹은 전문석사학위 수여), 그리고 2년제인 산업중심대학으로 구분된다. 입학자격도 철저히 구분하고, 정부 지원금도 차등화하고 있다. 이는 효율적 재정 지원의 프레임으로 정착했으며, 다양화·차별화·특성화를 통해 대학이 급변하는 21세기의 ‘국가 싱크탱크’로서 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대학·정부·지자체·연구지원재단·기업 및 기부단체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한번도 시도한 적이 없다. 국립대 재정은 정부가 주도하면서 대학의 자율권을 제한했다. 대선 때마다 교육개혁을 외쳤지만 제대로 시행된 적은 없다. 이제 우리나라도 연구와 교양중심대학으로의 구분·육성과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기본으로 하는 장기적인 대학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다. 혁명의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는다.
  • ‘4월 북폭설’ 근거 얼마나 되나 따져보니...트럼프 “모든 옵션 마련” 지시

    ‘4월 북폭설’ 근거 얼마나 되나 따져보니...트럼프 “모든 옵션 마련” 지시

    ‘4월 말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을 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북폭설’, ‘선제타격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공격 감행 날짜까지 거론한 ‘예시글’까지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10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크게 우려할 필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지난 1월 미국에서 드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과 올 2월 말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이 급변하면서 ‘4월 북폭설’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북한 최고 지도부에 대해 중국의 ‘망명 압박설’까지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해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NSC에 “모든 옵션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고 9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도 이같은 설에 힘을 더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찬 직후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를 폭격하면서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미·중 양국이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끝나자, 미국이 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전략 무기들을 한반도에 재배치하면서 ‘설’에 불을 지폈다. 지난달 한·미 합동 훈련에 참여했던 칼빈슨 항모 전단은 8일 경로를 변경해 서태평양 해역으로 방향을 돌렸다. 또, 미 태평양사령부는 지난 7일 괌 기지에 있던 고고도 무인 정찰기 글로벌호크(RQ-4) 5대를 다음 달부터 6개월 동안 일본 요코다 기지에 전진 배치한다고 밝혔다. 글로벌호크가 요코다 기지에 배치되는 것은 처음이다. 미국 3대 공중파 방송인 NBC는 이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하고, 김정은을 제거하는 옵션 등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전술 핵무기가 재배치되면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첫 해외 핵무기 재배치 사례가 된다. 중국 정부의 한반도 문제 최고 전문가인 우다웨이 6자회담 수석대표의 10일 방문에 이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오는 16일 방한한다. 한국 측에 대화 상대가 없는 트럼프 대통령을 빼고는 미국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에 이어 부통령까지 트럼프 정부의 최고 실력자들이 모두 한반도를 찾았다. 앞서 NBC의 간판뉴스 앵커 레스터 홀트가 지난 3일(현지 시각)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저녁 메인 뉴스를 진행하고, ‘전쟁을 몰고 다니는 기자’라는 별명이 붙은 종군기자 리처드 엥겔 수석 특파원까지 오산 기지에서 마이크를 잡은 것 등도 선제 타격설에 힘을 싣는 정황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대사를 한국에 복귀시킨 것은 유사시 일본인 구출계획 수립을 위한 것이라는 보도(일본 산케이신문), 중국이 인민해방군 15만명을 북한 접경지역에 투입했다는 대만 언론 보도 등까지 더해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주부터 연일 국내 증시에서 돈을 빼는 순매도 행렬을 보이는 것도 전쟁을 앞둔 ‘징조’라며 더해졌다. 전문가들은 통상 4월에 키리졸브(KR)연습과 독수리훈련(FE) 한미연합훈련 등이 진행돼 ‘전쟁설’이 빈번히 나오곤 했다면서, 올해는 예측 불허의 강공파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정책의 열쇠를 쥐고 있어 통상적인 훈련 준비 과정을 놓고 마치 전쟁이 임박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네티즌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 “라면과 생수, 비상식량을 사러 가야 하는 것 아니냐”, “해외 언론을 보니 실제 북한 타격 가능성이 크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해 가족들을 대피하는 소개훈련도 했다는 설도 나왔다. 반면 “선거를 앞두고 안보이슈를 부각하기 위한 보수파들의 꼼수다”거나 “괜한 불안을 조장하지 마라”는 의견도 상당히 많았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0일 미국과 일본 중심으로 떠도는 ‘4월 북폭설’을 일축했다. 홍 장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남북회담본부에서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결국 안보의 핵심은 국민안전을 지키는 것인데, 선제타격의 목표는 북핵해결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것(선제타격)이 가져올 다른 여러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미·중 정상회담 중 북한 보란 듯 시리아 공습한 美

    미국이 어제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군의 공군기지에 맹폭을 가했다.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미국의 경고가 허언이 아님을 국제사회에 천명한 것이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위협하고 있는 북한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듯해 우리로서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공습이 북한 등 미국의 잠재적인 적국들에 대한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최근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이 하겠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등의 의미심장한 초강경 발언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그저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로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핵 문제 등을 협의하기도 했다. 발언 수위만으로는 시리아보다 북한에 대한 경고가 더 강력해 보인다. 이번 공습은 무엇보다 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개막된 트럼프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중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상회담 중의 시리아 공습은 북한에 대한 제재에 소극적인 중국에 대한 경고 사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대북 선제타격도 언제든 실행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본다. 북한은 오판하지 말고 중국은 제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라는 압박일 것이다. 미·중 회담 테이블에는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북핵과 사드 배치 문제가 중요 안건으로 올려져 어떤 합의안이 나올지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오는 15∼25일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을 순방한다. 펜스 부통령은 우리 인사들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다. 미국의 시리아 공습으로 강대국들 사이에 신냉전 기류가 거세지는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도 크다. 미국과 정상회담 중인 중국은 화학무기도 무력 사용도 반대한다며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지만 시리아 정권의 후견자 격인 러시아와 이란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은 일제히 미국의 공격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세계 정세가 이렇게 급박한데도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의 인식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깊은 안보 불감증에 빠져 있다. 강대국들의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국가 리더십이 약화된 데다 우리 입장을 전달해 줄 주한 미국대사도 공석이다. 대선 후보들은 상대방 헐뜯기에 쌍심지를 켜면서도 정작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위가 달린 안보 문제는 언급조차 없다. 국민을 안심시킬 만한 안보공약 하나 제대로 내놓지 않고 있다. 유승민 후보의 ‘한미 핵 공유 방안’만 눈에 띌 정도다. 대통령의 첫째 임무는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은 북핵을 걱정하는데 우리는 이토록 무관심해도 괜찮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선 넘었다” 경고 하루 만에 폭격… 미·러 新냉전 굳어지나

    러 내통설 잠재우기 등 다목적 포석도 일각선 “중동정책 원포인트 개입” 분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에 보복하기 위해 시리아에 대한 폭격을 명령한 것은 다목적 포석이 깔린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우선 미군 통수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 의혹이 불거지자 “무고한 아이와 유아를 죽인 것은 레드라인과 많고 많은 선을 넘은 것”이라며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악랄한 행동이 선을 넘었다”고 비난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알아사드에게 시리아 국민을 다스릴 역할은 더이상 없어 보인다”며 알아사드 정권 축출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앞서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도움이 없더라도 미국이 독자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최고위 인사의 경고가 잇따른 지 하루 만에 폭격에 나서 말이 아닌 행동하는 정치인임을 분명히 보여 줬다. 특히 시리아 폭격이 미·중 정상회담 만찬 도중 이뤄졌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현안으로 강조하는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앞으로 어떤 식으로 행동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 무력시위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공격에 대해 “중동 정책의 전면적 수정이라기보다는 ‘원포인트 개입’”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미군 관계자는 이번 공격이 “일회적인 것”이라고 밝혔지만 향후 전면적인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해 아랍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이번 공습은 무고한 아이들의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국제사회에 ‘행동하는 미국’의 이미지를 심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중동 내의 반발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과 이스라엘, 일본, 이탈리아,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폴란드 등은 미국의 공습에 지지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알아사드 정권 축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온 알아사드 정권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 IS 세력이 위축됐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하면 힘의 공백을 IS가 메꿀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동맹국인 호주는 알아사드 정권의 축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알아사드 정권과 밀착한 러시아, 이란의 반발도 미국이 전면전을 벌이는 데 부담으로 작용한다. 자칫 이라크 전쟁과 같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토니 블링컨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미국은 시리아 공격 이후에 똑똑한 외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격 대상에 알샤이라트 공군기지가 포함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러시아가 시리아 내에서 흐메이밈 공군기지에 이어 제2의 주둔지로 삼는 곳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군 주둔지를 공습한 데는 트럼프 행정부와 러시아 간 내통설 등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외계인 실존” 주장하는 NASA 비행사 4인 이야기

    “외계인 실존” 주장하는 NASA 비행사 4인 이야기

    외계인을 믿는 사람은 흔히 괴짜 음모론자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일부 우주비행사도 외계인이 존재하며 지구를 방문했다고 믿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NASA의 우주비행사 중 최소 4명의 베테랑은 외계인의 존재에 관해 자신의 솔직한 견해를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이는 미확인비행물체(UFO)가 핵무기 사일로(격납고) 위를 날아가는 모습을 목격했으며, 또 다른 이는 UFO를 실제로 봤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 우주비행사의 이야기를 나열한 것이다. 에드거 미첼 미첼은 1971년 1월 31일 NASA의 유인우주선인 아폴로 14호를 타고 달 착륙에 성공, 사상 6번째로 달에 발을 디딘 우주인이다. 조종사였던 미첼은 달에서 모선으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강하게 주시하는 듯한 영적 체험을 했으며, 이후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는 외계인들이 이전 파괴적인 핵전쟁에서 인류를 구해냈으며 바티칸이 새로운 에너지원의 비밀을 공유하려고 하는, 한 외계 종족에 관한 지식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핵탄두 사일로 상공에서 종종 외계인이 목격됐으며 이들은 냉전 시대 동안 핵무기가 발사되는 것을 막았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미국 정부가 뉴멕시코에 있는 한 작은 마을 근처에 비행접시 모양의 UFO가 추락한 것으로 알려진 로즈웰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는 “미 정부가 로즈웰 사건을 부정하는 이유로 외계인들이 인류에게 적대적인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소련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이에 대해 거짓을 말하고 은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폴로 14호의 달 착륙 45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해 2월 4일 85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고든 쿠퍼 NASA의 첫 유인 우주비행 임무를 위해 선발됐던 우주비행사 7명 중의 1명이다. ‘프로젝트 머큐리’라는 코드명을 가진 이 임무는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진행됐으며, 인간을 지구 궤도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가 탔던 우주선은 승무원들이 직접 조정하는 것이 아닌 자동 제어 방식이었다. 쿠퍼는 1951년 독일에서 UFO 한 대가 비행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NASA 근무 시절 실험용 미국 공군기지에서 외계인들을 봤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1985년 국제연합(UN)의 한 소회의에서 “외계 비행체와 그 승무원들이 다른 행성에서 지구를 방문하고 있으며 이런 비행체는 지구에 있는 것보다 기술적으로 더욱 진보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먼저 전쟁보다 평화적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유니버셜팀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완전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면서 “이들의 승인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 세계를 발전시킬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퍼는 77세의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았으며, 지난 2004년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데케 슬레이튼 데케 슬레이튼 또한 프로젝트 머큐리의 일원으로, 이후 그는 NASA에서 승무원 배정을 담당하는 고위 간부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 역시 1951년에 UFO를 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 물체는 마치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있는 접시처럼 보였다. 카메라가 없었지만 있었다면 사진 몇 장을 찍었을 것”이라면서 “이유가 무엇이든 당시 그 물체는 점점 더 빨리 위로 날아올랐으며 사라졌다”고 말했다. 슬레이튼은 1992년 악성 뇌종양을 진단받았으며, 1993년 6월 13일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브라이언 오리어리 오리어리는 1967년 화성 탐사 임무에 참여하게 됐지만, 이 프로그램은 1년 뒤 취소되고 말았다. 그는 1982년에 근사 체험을 한 뒤부터 외계생명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NASA를 떠난 뒤 프린스턴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던 오리어리 박사는 “우리가 외계생명체와 접촉하고 있다는 증거는 많다”면서 “오랫동안 우리를 감시해온 외계 문명들이 있으며, 그들의 외모는 인간의 눈에는 기이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말년에 장암을 진단받은 뒤 에콰도르 장수촌 빌카밤바에서 살다가 2011년 7월 28일 사망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울광장] 사드를 둘러싼 한반도 안보 생태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사드를 둘러싼 한반도 안보 생태계/오일만 논설위원

    미국과 일본의 주적은 중국이다. 매년 발표되는 미 군사전략 보고서는 중국을 북한과 러시아, 이란과 함께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4대 국가로 공식 지목했다. 일본 역시 냉전 시기 소련을 주적으로 삼았지만 욱일승천하는 중국이 동북아 패권을 둘러싼 숙적이 됐다. 아베 정권이 집단자위대 관련법 11개를 제·개정해 ‘군사적 재무장’을 실현한 명분도 중국 견제였다. 중국 역시 국가의 존망을 걸고 일본과 중일전쟁을 치렀고 한국 내전에서 미국과 결전을 벌인 악연이 있다. 미·일·중 3국은 동북아 패권을 놓고 한판 대결을 펼치게 됐고 그 무대가 다시 분단의 한반도가 된 것이다. 2015년 5월 아베 총리는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다. 미국 정계는 아베 찬양으로 들끓었다. 아베 총리가 예뻐서가 아니라 당시 합의한 미·일 신방위협력 지침 때문이다.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예산 증액과 병력의 추가 배치 없이 자위대의 군사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역시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관철했다. 이른바 중국 견제를 고리로 미·일 간 신밀월시대가 열린 것이다. 1997년 2월 10일 백악관에서 가진 미·일 정상회담. 여기서 일본은 ‘미·일 안전보장조약 제5조가 센카쿠열도에 적용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받아 냈다. 제5조는 일본이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 미·일이 공동 대처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고용과 투자 확대로 트럼프 정권을 전폭 지원한다는 약속을 했고 2조원대의 미국산 무기 구입에 동의했다는 후문도 들렸다. 일본으로선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힘겨루기에서 우위에 설 발판을 만들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 출신답게 짭짤한 경제적 실익을 챙겼다. 양국 모두 남는 장사를 했다. 국익이란 이런 것이다. 중국을 주적으로 삼은 미국은 미·일 군사동맹 확대라는 고리로 군수산업을 키우고 고용을 늘릴 수 있는 실익이 크다. 일본 역시 2014년 미국의 묵인 아래 무기 수출 금지국의 딱지를 떼고 군수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평화 수호를 앞세운 미·일 군사동맹 뒤에는 이런 경제적 실익이 숨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전후로 미 군수산업 주식이 폭등한 것도 이런 이유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국익은 한·미·일 미사일방어(MD) 체계와 직결돼 있다. 미·소 냉전 당시 태동한 MD는 미국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과 러시아를 확실하게 잡을 ‘신의 한 수’다. 하지만 출발점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초반부터 꼬였다. 노무현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부도 미국의 사드 배치 요구를 거절했다. 주변국의 반발과 경제적 보복을 종합 판단한 결과다. 대신 종심이 짧은 한국 지형에서 효과가 더 큰 킬체인 시스템을 선택했다. 이런 와중에 한·미·일 MD 전도사로 불리는 리퍼트 대사가 부임한다. 2014년 10월이다. 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을 지낸 최강의 인사다. 그가 한국에 온 직후부터 사드 배치에 발동이 걸렸고 그의 이임 전후로 배치가 완료됐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손익계산이 갈린다. 남북에 국한해 보면 우리가 최대 피해자다. 극심한 국론 분열에 경제 보복까지 당했고 그것도 현재진행형이다. 최대 수혜자는 공교롭게도 북한이다. 북핵 문제로 등을 졌던 우방국 중국을 다시 끌어당겼고 대북 국제공조도 무너졌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면 김정은 정권의 체제 보장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의 주적은 중국이 아니고 북한이다. 미국과 일본이 사드를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군사·경제적 이익과 정확하게 부합한다. 우리는 다르다. 21세기 국가 안보는 군사 안보 홀로 이뤄지지 않는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군사력이 얼마나 허망한지 북한을 보면 안다. 사드 배치 이후 한·중 관계는 수교 25년 이래 최악의 상황이다. 우리는 제1 투자·교역국 중국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중국 역시 무차별적 사드 보복이 반중 감정으로 이어져 결국 대한민국을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oilman@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한국의 동아시아 외교정책 구상/김성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월요 정책마당] 한국의 동아시아 외교정책 구상/김성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는 다양한 특징을 보인다. 첫째, 미·중의 세력 균형 및 견제와 합의 기조가 강화된다. 둘째, 미국·중국·일본·러시아 간의 협력과 갈등의 복합 구도가 유지된다. 셋째, 지역 체제의 전반적인 안정이 지속된다. 넷째, 북한의 안보 위협이 증대된다. 미·중은 대화의 기조를 유지하지만 미국의 견제와 중국의 대응이 전략적 불신과 세력 경쟁의 강화로 이어진다. 패권 경쟁의 단계로 진입한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지역 안정에 대한 공동 이익을 기초로 갈등과 합의 관계를 유지한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 강화로 인한 외교적 부담 증가와 내부 경제상황의 악화로 미국에 대한 유화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국내 정치의 불안정으로 인해 아시아 균형 정책을 지속하면서 대외적으로 안정적 외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유화 노력에 호응할 것이다. 미·일 동맹의 강화, 미·러 관계의 변화와 중·일 관계의 안정화 등이 동아시아 지역의 전반적 안정 체제를 유지하고, 한국과 주변국들이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한·미 동맹과 한·중 협력을 기반으로 다층적 복합외교를 추진하고 상황과 사안에 따라 국가 이익에 적절하게 중견국 가교 외교를 실행한다. 한반도와 관련된 많은 외교안보 사안들이 미·중 양국에 의해 결정될 수 있어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가교 역할을 통해 한국 입장을 설득하는 외교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한·미·중 3자회담 성격의 정책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되면 한·미 동맹의 주된 기능이 대중국 억지력으로 확대될 것이다. 한·중 우호협력 관계를 손상시키고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를 유발할 수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는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지역적 신뢰 구축과 다자안보협력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한·미·일 안보 협력 분야는 대북한 정보 공유 외에 해상재난 시의 긴급구조, 대테러·해적 행위에 대한 공동대응, 해양수송로(SLOC)의 공동 방위, 사이버테러,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서의 협력 등 다양한 안보 분야에서 다자적 협력이 가능하다. 남북한 관계는 장기적으로 평화적 통일을 염두에 두고 신뢰 구축을 통한 관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한국·중국·일본의 군사력 차이가 증대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해 한반도 안보에 대한 자주국방의 확고한 의지를 유지하면서 한·미 동맹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국 및 일본과의 다자안보 체제를 구축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동아시아에서 안보적 갈등이 일정 수준에서 관리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게 중요하다. 한·중·일을 하나의 지역으로 설정해 한·중·일의 안보를 확보하고 경제이익을 공유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한·중·일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고취해야 한다. 한·중·일 관계는 역사 인식과 영토 문제라는 갈등 요인을 포함하고 있어 국가 이익과 지역 이익 사이의 균형을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 6자회담과 같은 동아시아 안보 및 경제의 다자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해 대화와 협력의 관행을 축적하고 정부 및 민간 전문가들과의 정책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내 다자 협력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한국은 다자협력체의 형성 과정에 참여해 신뢰와 협력 문화가 구축되도록 가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북한의 참여를 이끌어 내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 한·중·일과 미국의 협력을 연계해 미국을 포함한 정책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동아시아 다자협력체 구축이 가능해진다. 양자 및 다자, 소·다자 외교를 포함하는 ‘한·중·일+미국’의 다층적 복합 외교를 위한 정책 네트워크의 형성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적 발전에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미·중·남·북 4자회담이 필요할 수 있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원칙과 유연성을 기본으로 전략적 함의를 포함하고 진화적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불붙은 우주강국 쟁탈전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불붙은 우주강국 쟁탈전

    印, 로켓 하나로 위성 104개 발사 中, 유인 우주선·우주정거장 개발지난달 15일 오전 9시 28분 인도 동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스리하리코타에 있는 사티시 다완 우주센터에서 인도가 자체 개발한 PSLV-C37 로켓(오른쪽)이 하늘로 힘차게 솟아올랐다. 인도 위성 3개를 비롯해 미국·이스라엘·네덜란드 등 6개국 101개 위성 등 모두 104개의 인공위성을 탑재한 PSLV-C37 로켓이 발사 17분 뒤 위성들을 궤도에 올려놓기 시작했으며, 11분에 걸쳐 모든 위성을 궤도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탁월한 성취”라며 반겼고, 인도인들은 트위터에 ‘인도우주연구기구(ISRO) 만세’라는 글을 쏟아냈다. “중국이냐, 인도냐.” 20세기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누가 달에 먼저 도착하느냐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데 이어 21세기 들어 중국과 인도가 우주강국 자리를 놓고 불꽃 튀는 각축전을 전개하고 있다. 104개 위성을 한꺼번에 실은 로켓을 쏘아올리는 데 성공하면서 인도인들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지만 중국은 해당 기술 수준을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인도는 100개 이상의 인공위성을 한 번에 발사하는 데 성공해 2014년 6월 러시아의 세계 최다 기록(위성 37개 탑재)을 단숨에 갈아치웠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226개(외국 위성 180개 포함)의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은 ISRO가 주목받고 있다.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주 벵갈루루에 자리잡은 ISRO는 우주과학기술 개발로 국가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ISRO는 인도 최초의 위성 ‘아리아바타’를 제작했고, 위성 ‘로히니’를 자체 제작한 발사체 ‘SLV-3’으로 처음 궤도에 올려놓았다. 2008년 10월에는 무인 달 탐사 위성 ‘찬드라얀 1호’ 발사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탐사선 ‘망갈리안’을 화성 궤도로 진입시켰다. 이로써 화성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세계 네 번째, 아시아 최초의 우주기관으로 인정받았다. 중국은 1970년 첫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해 5번째 위성 발사국이 된 뒤 1990년대 들어 고속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투자를 크게 확대하며 미국·러시아 등 기존 우주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우주굴기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실제로 지난해 10월 7번째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11호(왼쪽)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데 이어 여기 탑승한 자국 우주인 2명이 역시 자국이 만든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天宮) 2호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고 귀환하는 등 유인우주선 개발과 독자 우주정거장 건설 계획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인류 최초로 달 뒷면 탐사를 위한 탐사선 창어(嫦娥) 4호 발사를 준비하고 있고, 2020년에는 화성 탐사선을 화성궤도에 진입시킬 뿐 아니라 화성 표면에 착륙시키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는 1960년대부터 우주개발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2000년대 들어 ‘찬드라얀 1호’를 성공적으로 착륙시키고 ‘망갈리안’을 안착시키는 데 성공하는 등 몇몇 부문에서 빠른 기술 진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에 100개가 넘는 위성을 한꺼번에 쏘아올려 비용이 크게 절감되는 덕분에 우주산업도 ‘돈이 되는 기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가 상업적 우주 개발 시장에서 중국을 제치고 선도적인 지위를 점하게 됐다며 자축하고 있는 이유다. 인도는 지금까지 자체 개발 로켓으로 21개국 인공위성 79개를 발사해 1억 5700만 달러(약 1761억원)를 벌어들이는 성과를 거뒀다. 망갈리안도 발사 비용이 45억 루피(약 770억원)밖에 되지 않아 모디 총리가 미국 할리우드 우주과학 영화 그래비티 제작비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자랑할 정도로 뛰어난 효율성을 보였다. 2016년 현재 글로벌 우주산업 규모는 2015년 3230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상업용 우주산업은 76%가량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중국은 인도의 우주개발 성취가 “고평가됐다”고 깎아내리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중국 베이징의 항공 컨설팅 회사 위쉰테크놀로지의 란톈이 최고경영자(CEO)는 “104개 위성을 1개의 로켓에 실은 것도 모두 외국 기업 기술에 불과하며, 인도는 로켓과 발사 기회를 제공한 것밖에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중국의 경쟁 상대는 오로지 세계 1위 미국이라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우주 예산은 61억 달러로 미국(393억 달러)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다. 인도는 중국의 5분의1 수준인 12억 달러에 불과하다. 아시프 시디키 미국 포덤대 교수는 “중국의 우주 투자 규모는 인도와 차원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인도가 몇몇 분야 기술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유인 우주선, 우주정거장 개발 등 다각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상업적인 우주산업 분야에서도 중국의 시장 점유율(3%)에 비해 인도의 시장 점유율(0.6%)은 초라한 편이다. 그러나 중국 내 일각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좇아 거창한 사업에 자원을 쏟아부을 때 인도는 외국 위성 발사 대행이나 기상 관측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며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장융허 상하이 마이크로위성공학센터 신기술국장은 “인도가 (외국 상업 위성을) 저비용으로 다량 발사하면서 급격히 커지는 우주 비즈니스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khkim@seoul.co.kr
  • 中학자 “사드보복 누구 아이디어냐” 공개 비판, “사드 출구전략 찾자” 주장

    中학자 “사드보복 누구 아이디어냐” 공개 비판, “사드 출구전략 찾자” 주장

     북·중 관계에 정통한 중국 학자가 “사드 보복은 대체 누구의 아이디어냐”며 중국 당국의 사드 보복 정책을 공개 비판해 중국 내에서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선즈화(沈志華) 중국 화둥사범대 교수는 지난 19일 다롄(大連)외국어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북한은 잠재적 적이고 한국은 친구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연의 요지는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국가시책으로 추진하면서도 주변국들의 속내가 모두 중국에 비우호적이며, 위기가 도처에 도사리는 상황에서 사드 갈등은 중국의 또 다른 실책이라는 것이다.  선 교수는 “표면적으로 북한·중국은 동맹관계이고 미국·일본은 한국의 대북 제재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십년간 투쟁의 결과와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미 상황은 근본적 변화를 겪었다”며 자신의 판단으론 “북한은 중국의 잠재적 적국이고 한국은 중국의 가능한 친구”라고 강조했다. 선 교수는 특히 “한국이 잠재적 친구라는 것이 정확하다면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중국에, 특히 동북 지방에 유리할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동북 3성의 경제발전 전략상 목구멍을 막고 있는 북한이 뚫려 한반도와 통해지면 동북의 살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드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의 한반도 문제 대응이 갈수록 피동적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사드 이슈에서 양측이 빠져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사드보복, 반한 감정은 머리에서 지우고 한국의 결정에 맡겨보자”고 제안했다. 선 교수는 이어 “나는 현재 중국의 사드 문제 대응에 매우 반감을 갖고 있다. 대체 누가 이런 아이디어(사드보복)를 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한중 관계의 발전은 한미일 동맹을 비틀 수 있는 수단이 된다”면서 “(중국 외교 당국자는) 머리도 없느냐. 당신들은 한국을 한미일 삼각동맹에 계속 밀어넣고 있다. 주변 이웃국이 어떻게 보겠느냐. 적이 우리에게 바라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선 교수는 북한이 중국의 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자신이 오랫동안 수집한 북중교류 문헌과 자료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북중이 친구이고 동맹이었을 때는 마오쩌둥(毛澤東)과 김일성이라는 두 지도자간 특수한 우의에 기초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외교적으로는 1970년대 미중 관계의 해빙기가 시작되자 북중 동맹의 기반이 흔들렸고 경제적으로도 무산계급 연계론과 무상 원조에 의존했던 양국 경제관계가 중국의 시장경제 체제 도입으로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1992년 한중수교가 계기가 됐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미국이 대중 봉쇄에 나서자 덩샤오핑은 지속적인 개혁·개방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한국을 돌파구로 삼으려 했다. 김일성은 중국이 북한을 ‘팔아넘겼다’고 생각했고 이후로 북중 혈맹관계는 더는 존재치 않게 됐으며 이는 또한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계기가 됐다고 선 교수는 지적했다.  한국이 중국의 ‘친구’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중 수교후 중국과 한미간 냉전 상태가 종료되고, 역사적, 문화적 교류를 바탕으로 경제·무역의 상호 보완성이 심화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경제 외적으로 전략안보 측면에서 한국이 중국에 위협이 되느냐인데 진정으로 중국에 위협이 되는 것은 미국과 일본일 뿐 한국은 아니다”면서 “한미일 철삼각 동맹에서 약한 고리인 한국은 중국에 ‘이용 가치’가 높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 교수는 남한내 혁명을 촉발해 정부를 전복시킨 다음 무력통일하려는 북한 구상의 허구성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직접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 일화를 전했다. 그는 “촛불집회 시위대를 따라 행진하면서 ‘한국에선 (북한이 바라는) 혁명은 불가능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100만명이 시위를 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완전한 사회법치 체계로 진입한 나라에서 김일성 시대의 무력통일 구상이 가능하겠느냐.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선 교수는 지난해 일본에서 펴낸 저서 ‘최후의 천조(天朝) 마오쩌둥·김일성시대의 중국과 북한’에서 김일성의 무력통일 구상을 마오쩌둥이 외면한 일화 등 북중 ‘혈맹관계’의 이면을 파헤친 바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선 교수의 주장은 웨이보 등에서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시야가 열렸다”, “다시 생각해볼 기회”라는 반응과 함께 “위험한 생각인 것 같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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