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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태권도 첫金 정재은선수 집 표정

    “태권도 가족에게 경사났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시드니올림픽에서 최초로 정재은 선수(20)가 당당하게 금메달을 따내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 정선수의 집 앞에 모여 있던 가족과 이웃,동네 태권도장에서 응원온 어린이 30여명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정 선수네가 남들처럼 버젓하게 사는 집안이 아니라 아버지가 실내장식업을 하다 실패해 현재 지하 단칸방에 사는 형편이라 정 선수의쾌거는 가족들과 이웃들을 더욱 기쁘게 했다. 정 선수의 집 앞 주차장에 TV를 설치해 놓고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은 정 선수의 발차기 공격이 성공할 때마다 “와” 함성을지르고 손뼉을 치며 열띤 응원을 펼쳤다. 정 선수의 가족은 태권도가 취미인 아버지 정병상씨(50)가 “다들몸이 너무 약하다”며 가족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 모두 태권도 고수가 된 ‘태권도 가족’.작은오빠 정재원씨(26)도 군에가기 전까지 태권도장 사범으로 활동했다. 딸의 열렬한 팬이자 코치인 아버지 정씨는 딸을 조금 더 가까이서응원하기 위해 지난 27일 시드니로 떠났다.어머니 조영희씨(47)는 막내딸 재은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빠가 시합에 나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며 “태권도 선수가 되게 해달라”고 마구 졸라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행여 다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한번시작한 일이니 결실을 이루라”고 엄하게 딸을 가르쳤던 어머니 조씨.조씨는 “중학교 때부터 합숙을 시작해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해줬는데 이렇게 장한 일을 해내니 너무 고마울 뿐”이라며 끝내 눈시울을붉혔다. 운동을 시작한 뒤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던 정 선수는 중학교 시절“너무 힘들다”며 운동을 포기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태권도 가족’의 애정과 격려가 큰힘이 됐다.큰오빠 정재열씨(28·경호원)는“재은이는 오빠 둘과 함께 자라서 씩씩하고 구김살없는 성격”이라며 “지하 단칸방에 사는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정상에 우뚝선 동생이 대견하다”고 말했다. 작은오빠 정재원씨의 제자인 꼬마 태권도 선수들이 “재은 누나 만세” “나도 커서 금메달을 딸 테야”라고 외치며 발차기를 해대자정 선수의 집 앞은 온통 웃음바다가 됐다. 이동미기자 eyes@
  • 전자화폐 편한 e세상 이끈다

    전자화폐가 뜨고 있다.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직원들의 월급도 전자화폐로 지급되는 세상이다. ?국내 서비스업체 30여곳 국내 처음으로 네트워크방식의 전자화폐를 개발한 ㈜이코인(www.ecoin.co.kr)은 PC방이나 서점,편의점 등 전국 1만여 가맹점에서 ‘e코인’을 판매하고 있다.일정액의 현금가치가내장된 카드를 구입한 뒤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카드 뒷면의 고유번호를 입력하면 사용액만큼 돈이 빠져나간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영화를 보면 500∼1,000원,만화를 보면 300∼1,000원이 든다. 데이콤의 ‘사이버패스’(www.cyberpass.com)는 신용카드로 재충전이 가능하며 공공요금까지 온라인에서 낼 수 있다.커머스넷코리아와이니시스는 온라인에서 전자지갑을 내려받아 설치한 뒤 신용카드나계좌이체를 통해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아이캐시’(www.internetcd.co.kr)와 ‘이니페이’(www.inicis.com)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통합메시징 서비스업체인 베스트나우는 전자지갑인 ‘씨포켓’을 통해 직원들의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직원들은 씨포켓에 개설된 사이버계좌에서 월급을 확인하고 본인의 시중은행 계좌로 이체해 현금으로바꾸거나 인터넷 가맹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로 물건을 살 수 있다. 한편 산업자원부는 오는 2004년까지 225억원을 투자,하드웨어방식의 전자화폐를 개발할 계획이다. ?마일리지도 전자화폐로 항공사에서 시작된 마일리지 서비스도 전자화폐의 한 축을 이룬다.마일리지 포인트를 제공하지 않는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예전에는 적립한 마일리지에 따라 상품을 지급하는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현금으로 돌려주거나 온라인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사이버머니로 전환해주고 있다. 인터넷광고업체 네띠모아(www.netimore.co.kr)는 회원들이 적립한사이버머니만큼 현금으로 계좌이체해주는 ‘엠캐시’제도를 시행중이다.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 흩어져있는 푼돈 사이버머니를 모아쓸 수 있는 서비스도 유행이다.시그마테크는 ‘엔포인트’(www.npoint.co.kr)에서 마일리지 공유 서비스를 하고 있다.인터넷 쇼핑몰인 메타랜드도 입점업체들의 보너스 포인트가 호환되는 ‘넷포인트’(www.netpoints.co.kr)를 개설했다.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 마일리지가 화폐가치를 지니면서 고객을 관리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기업들이 온라인에서만 통용되는 사이버머니를 구입해 광고를 클릭하거나 제품을 실제로 구입한 소비자들에게 실적에 따라 지급하고,이용자들은 사이버머니를 얻기 위해 나이나 취향,결혼유무 등 자신의 신상정보를 기업에 제공한다.고급 정보를 제공할수록 더 많은 사이버머니를 얻는다. 한국통신프리텔은 이동통신 상품인 ‘Na’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사이버머니를 공짜로 얻어 물건을 살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 ‘Na X’(na.n016.com)를 운영하고 있다.각종 온라인 행사의 참여 실적에 따라 사이버머니인 ‘쨈’을 준다.한 관계자는 “휴대폰 보조금 폐지 이후 가입자를 묶어두기 위한 새 마케팅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전자화폐의 종류. 온라인이나오프라인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현금대신 내는 일종의 돈이다.네트워크방식과 하드웨어방식으로 대별된다. 네트워크방식은 미리 현금을 주고 산 화폐의 가치를 온라인에서 주고받는 방식으로 전자지갑형과 선불카드형이 있다. 전자지갑형은 사용자가 자신의 PC에 가상으로 지갑을 만들어 본인은행 잔고의 일부를 이체한 뒤 온라인에서 돈을 내는 방식이다.은행계좌와 별도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선불카드형은 일정 액의 현금가치가 있는 카드를 산 뒤 온라인에서 물건을 살때 카드에 적힌 고유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이다.인터넷콘텐츠 이용료 등 소액결제에 편리하다. 하드웨어방식은 집적회로(IC)칩을 플라스틱 카드에 넣어 화폐가치를저장하는 일종의 선불카드. 은행이나 신용카드 업체에서 본인의 계좌와 연결된 카드를 발급받아 이용할 수 있다.충전된 돈을 다 쓰면 은행이나 현금자동지급기 등에서 재충전해 반복 사용할 수 있다.아직국내에서는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김재천기자. *金大煜 이코인 사장 “동네 수퍼마켓서도 전자결제”.“전자화폐가 신용카드나 기존 화폐를 곧 대신할 것입니다” 전자화폐 서비스업체 ‘이코인’ 김대욱(金大煜·36) 사장은 전자화폐의 가능성을 이렇게 강조했다.현재 유통되는 통화량 가운데 신용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나머지는 우리가 쓰고 있는 직불통화다. 전자화폐의 하나인 IC카드가 실용화되는 2005년쯤에는 전체 통화량의 50%가 다양한 전자화폐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사장의 관심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소액결제.IC카드식 전자화폐와는 달리 인터넷에서 주로 100∼1만원에 거래되는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 신용카드나 주민등록번호 등 이용자의 신상정보를 입력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결제할 수 있는 전자화폐가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 주민등록번호를 일일이 알려줘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콘텐츠 이용료처럼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소액결제는 익명성이 중요합니다” 김 사장이 전자화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초.PC통신 이용자들이 인터넷으로 이동하면서 각종 유료 서비스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과금체계가 없는 것을 알고 국내 처음으로 익명성을 내세운 전자화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편의점이나 PC방,서점 등에서 쉽게 구입해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전자화폐를 고안한 것이 지금의 ‘e코인’이다.지난해 5월 선불카드를 통한 전자상거래시스템에 관한 비즈니스모델 특허를 출원한 뒤 이코인을 설립, 3개월만에 3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연말까지 150억원 매출이 목표다.내년 초엔 코스닥에 등록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최근 미국 중국 일본 등에 국제특허를 출원하고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미국 실리콘밸리에 미국 법인인 ‘이코인닷컴’(www.ecoin.com)을 설립,운영에 들어갔다.이르면 올해 안에 중국과 일본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중앙대 물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LG반도체 중앙연구소 주임연구원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시장분석팀장을 지냈다.현재 반도체 컨설팅회사인 세미피아 컨설팅그룹과 이코인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김재천기자.
  • [대한광장] 가을이다

    어느 날 문득 가을이 우리 곁에 왔다.소매 끝을 스치는 바람결이 어제와 다른가 싶어 먼 산을 바라보니,산빛도,강가에 나뭇잎 부딪치는소리도 어제와 다르다.우리 몰래 세월이 벌써 이렇게 훌쩍 흐른 것이다.둘러보면 산 뿐이 아니다.태풍에 시달린 나무 이파리들도 상처를쓰다듬으며 어느새 색깔이 퇴색해 간다.큰물에 쓰러진 개울가의 고마리꽃이며,물봉선화며,구절초도 꽃을 환하게 피웠다. 이제 이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들은 한 계절을 정리하고 있다.쓰러졌으면 쓰러진 대로,꼿꼿하게 서 있으면 서 있는 대로 그것들은 살아 온 세월 앞에 고개를 수그리며 익어간다. 논두렁을 넘어 찰랑찰랑 익어가는 벼며,콩 밭에 키 큰 수수도 제 무게로 고개를 숙였다.큰바람 속에서도 제 몸을 잘 간수하여 붉어져 가는 대추야,감아,알밤들아,모든 바람을 이긴 곡식들아,풀들아,나무들아 콘크리트 벽 속에서 소주를 마시며 더위를 이겨 낸 사람들아,모두 애썼다.작고 크든 시련을 딛고 일어선 것들은 산들바람부는 이 가을 하늘아래 모두 눈부시다. 밤길을 걸으며 풀섶에서울어대는 풀벌레 울음소리,깊은 밤 어디선가 낭랑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한 계절의 이 쓸쓸한 모퉁이를 돌아가며,나는 문득 소슬해지는 어깨를 추스린다.나는 잘 살았는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그러므로 가을은 남보다 자기를 들여다보게 하는,자기에게 더 외로운 계절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가.내가 온 힘을 기울여 애쓰는 이 수고가 세상의 어디에 소용이 된단 말인가.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내 몫인 것 같은 이 재물과 권력과 지식은 얼마나 하찮고 부질없는 것들인가.세월은 바람같이 빠르고 인생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다만 이 세상에 남을 것은 진실 뿐임을 알 때 생은 경이로워진다.눈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떡에 눈 멀면 훗날 그 떡보다 더 큰 욕을 먹는다는 것을 알라.한줌 권력이 저 들에 피어있는 들꽃보다 낫다는 생각을 나는 해보지 않았다. ‘사랑의 온기가 더 그리워지는/가을 해거름 들길에 나는 서 있습니다/먼 들 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가고/산그늘도 묻히면/길가에 풀꽃처럼 떠오르는/그대 얼굴이/어둠을 하얗게 가릅니다/내 안의 그대처럼/꽃들은 쉼없이 피어나고/내 밖의 그대처럼/풀벌레들은/세상의 산을일으키며 웁니다/한 계절의 모퉁이에/그대 다정하게 서 계시어/춥지않아도 되니/이 가을은 얼마나 근사 한지요/지금 이대로 이 길을 걷고 싶고/그리고 마침내 그대 앞에/하얀 풀꽃 한 송이로 서고 싶어요’ 어느 가을.나는 힘없고 가난한 내 사랑에 따뜻한 온기가 되고 싶어,해지는 들길에 앉아 이 시를 썼다. 내가 근무하는 작은 학교 운동장에 서늘한 산그늘이 내려온다.아이들이 놀다 돌아간 운동장은 산뜻하게 비어 있다.소슬바람이 부는 산아래 나는 두 손을 편히 내려놓고 서서 산을 올려다본다.어쩌면 산은 저리 변함이 없을꼬? 산그늘은 천천히 내려오며 작은 마을을 덮고 푸른 강을 건너 앞산을 오른다.해 지는 동네도,강변에 풀잎들도 참 곱다.서산에 걸린 해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발광하는 저 찬란한 가을논과 강물의 풍경을 함께 보는 일은 행복하다. 보아라,저 메밀잠자리들은 내가 밥 한 숟갈 주지 않았어도 푸른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저 풀잎들은 그대가 눈길 한번 주지 않았어도 저렇게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간다. 가을이다.이 가을 저 들에 풀잎 한 포기,한톨의 곡식인들 어찌 내게 무심하리.한 계절의 모퉁이는 돌며 나는 나에게 진정 다시 묻고 싶다.너의 가을은 저 파란 우리나라 가을하늘처럼 참말로 근사한가? [김 용 택 시인]
  • 배드민턴 이동수·유용성 가족들 표정

    ■배드민턴 남자 복식에서 은메달을 딴 유용성의 충남 당진군 당진읍채운리 고향집에서는 유용성-이동수조가 결승전에서 패해 금메달을놓치는 순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은메달 획득을 자축했다. 유용성의 어머니 김상오씨(60)는 “장사를 하느라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했는데 용성이가 효도를 했다”며 “용성이는 어릴 때부터 기가셌고 승부욕이 강해 기마전이나 달리기 등에서 진 적이 없는 꼬마대장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진 이천열기자 sky@. ■서울 관악구 봉천1동 당곡시장 내 배드민턴 남자 복식 은메달리스트 이동수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선물의 집’앞에는 가족,친척과 동네 주민 등 60여명이 모여 결승전에서 이동수가 분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 이청덕씨(57)는 “동수가 배드민턴을 시작한 초등학교 4학년때만 하더라도 키가 작아서 코치가 연습을 제대로 시키지도 않았다”면서 “하지만 동수가 천성이 성실해 메달을 땄다”며 감격해 했다. 이씨는 또 “초등학교 시절 동수가 배드민턴 연습을 하다 부러진 라켓을 가지고집으로 왔는데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라켓 하나 사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어머니 전명순씨(55)는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동수가 금메달을못 딴 뒤 군문제 등으로 심한 좌절에 빠졌었는데 원래 말이 없는 편이라서 이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았다”면서 “항상 도움을 못주는것이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효자아들이 온가족 소원 풀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영호(金永浩·30대전시 도시개발공사) 선수의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 고향 집은축제분위기에 힙싸였다.금메달을 따는 순간,안방에서 TV를 보던 어머니 현순돌씨(玄順乭·65),부인 김영아씨(金榮娥·30) 등 가족은 서로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 아들 동수군(3)은 어떤 경사가 있는지도 모른 채 엄마가 기뻐하자덩달아 ‘까르르’ 연방 웃어댔다. 어머니 현씨는 “이제 온가족의 소원이 이뤄졌다”며 “15년 전 남편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한 일들이 눈 녹듯이사라졌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현씨는 “어젯 밤 남편이 돈 봉투 2개를 주고가는 꿈을 꿨다”며 “이 때문에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내심 금메달 소식을 기다렸는데 소원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같은 팀 선수로 만나 함께 국가대표로 활약하다 4년 전 결혼한 부인김씨도 “오늘 아침 ‘보고싶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며 “돌아오면 남편이 좋아하는 닭도리탕을 맘껏 해주고싶다”고 기뻐했다. 대전에 살고 있는 부인은 이날 점심 때 아들과 함께 김선수의 고향집으로 달려와 가족과 합류했다. 2남4녀 가운데 막내 아들인 김선수는 아버지가 지난 85년 위암으로숨진 뒤 어머니가 넓지않은 논밭을 가꿔가며 자식을 키우는 게 안타까워 훈련중 틈틈이 시간을 내 농삿일을 거드는 등 동네에서 소문난효자. 현씨는 “지금은 영호를 뒷바라지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그때에는 형편이 어려워 영호에게 별 도움을 못 준 게 안타깝다”고지난날을 되새겼다. “올림픽에 나가기 전 영호에게 부담이 될까봐 메달 얘기는 한번도안했다”는 현씨는 준결승전이 열리기 전까지 떨리는 가슴을 어쩌지못하는 듯 집 앞 논밭에 나가 일에 매달리기도 했다. 김선수가 소속된 대전시도시개발공사 직원들도 일손을 놓고 TV를 보다 금메달이 확정되자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는 등 들뜬 하루를 보냈다. 공사 관계자는 “김 선수가 무척 자랑스럽다”며 대전시와 협의해대대적인 환영대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
  • “내년엔 열차타고 北고향 가겠지요”

    “이 열차를 타고 30분만 달리면 내 고향 금천이야.철마가 다시 달리면 맨먼저 잡아 타려고 문산에서만 살았어.” 18일 역사적인 경의선 복원 기공식이 열린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에는 수많은 실향민들이 몰렸다.이들중에서도 백발이 성성한 세노인은 전시된 증기기관차에 오르면서 기차를 처음 타는 아이처럼 유독 더 기뻐했다. 지난 51년 1·4후퇴때 꽁꽁 언 임진강을 혈혈단신 건너온 이호철(李豪哲·82·문산읍 문산4리)씨는 같은 동네에 사는 이필남(李弼南·88)·김기화(金基華·67)씨와 함께 녹슨 철길을 만지고 또 만졌다. “문산 다음이 장단이야.그 다음이 봉동이고 봉동 다음은 개성,토성,계정,내 고향 금천,한포,평상…해주…신의주까지 올라가지.” 임진강 너머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반세기 동안 문산을 떠나지 않은이들은 경의선 역 이름을 줄줄이 외웠다.호철씨와 필남씨는 금천 출신으로 금천 백마보통학교 선후배 사이.이웃에 살았던 두 사람은 고향에 남겨둔 처자식을 잊지 못해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문산에 정착했다. 장단역에서 조금떨어진 경기도 개풍이 고향인 기화씨는 이웃에 사는 호철씨와 필남씨를 친형처럼 따르며 고향생각이 날 때면 함께 임진각을 찾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기화씨는 “50년 동안 500번 이상 임진각을 찾았지만 매번 가슴이아팠다”면서 “그러나 오늘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며 활짝 웃었다. “호철이,검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열차를 타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게 생각나는가.” “나다마다요,해주 친척집에 갈 때도 경의선만 탔지요.”“형님들,저는 경의선 타고 개성중학교까지 통학한사람입니다.옆자리에 여학생이 앉았을 때면 장단과 개성이 왜 그리가깝게 느껴지던지….” 호철씨와 필남씨가 경의선의 추억을 꺼내자 기화씨도 이에 질세라기억의 조각들을 쏟아놓았다. 남쪽에 내려와 다시 가정을 꾸린 호철씨와 필남씨는 양쪽의 처자식들에게 미안해 아직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하지 않았다. 두 노인은 “끊겼던 철길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북쪽의 아내와 자식생각이 더 간절하다”면서 “조만간 상봉신청서를 내겠다”고 말했다. “열차는 사람의 마음까지 실어 나르는 이상한 힘이 있어.이 놈이늙은 우리들의 한을 싣고 북으로 달리다 보면 곧 통일도 되겠지.” 자유의 다리 너머 길게 뻗은 철길을 바라보던 세 노인은 못내 아쉬운 듯 머뭇거리다 기관차에서 내렸다. 임진각 이창구기자 window2@
  • 의료계 오늘부터 재폐업 돌입

    구속자 석방 등 의료계가 내건 전제조건에 대한 돌파구를 찾지 못해정부와 의료계의 대화 재개가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15일예정대로 집단 폐·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의과대 교수들은 외래진료를 비롯,모든 진료에서 철수하더라도 암환자를 비롯해 응급실,분만실,중환자실 등 응급체계에 대해 ‘전문의 진료단’ 형태로 자원봉사에 나서기로 해 최악의 의료공백 사태는 면할 것으로 보인다.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 산하 비상공동대표 10인 소위원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임의협의회,전공의비상대책위원회가 공동으로 암환자 수술을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의쟁투 중앙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열고 전제조건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이 미흡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15일부터 동네 병·의원들이 재폐업 투쟁에 들어가기로 결의하는 한편 향후 투쟁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유상덕기자 youni@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6)낯선 땅에서

    *제주 똥돼지치기 자연순환 따른 '유기사육법'. 변소에 들어가니 판자를 얹은 변기 구멍 위로 막대기 하나가 비죽히올라와 있다.이건 뭣에 쓰는 막대기인고.급한대로 주저앉는데 갑자기밑에서 꾸울,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돼지 대가리가 널판자 아래로 쑥들어온다. 내려다보니 돼지우리쪽에서 변소의 밑으로 통하는 개구멍같은 통로가 있고 그리로 돼지가 상체를 들이민 것이다.나는 혼비백산하여 얼른 바지를 추스르고 일어나 변소 밖으로 뛰어 나와 버렸다. 대번에 어떤 광경을 머리 속에서 떠올렸기 때문이다.일을 보는 중에오물이 밑에 있는 돼지의 귀에라도 떨어지고 그것이 머리를 흔들며털어댄다면 나의 아랫도리는 그야말로 초토화 될 게 아닌가. 밖으로 나와서 어쩔줄 모르고 발을 구르며 서성대다가 하여튼 일이급하여 다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주저앉는데 또 꾸울,한다.그제서야 나는 구멍 위로 비죽히 솟아 있는 막대기의 쓰임새를 알아차렸다.막대기를 잡아 이곳 저곳 찌르면서 머리를 들이밀려는 동물을 쫓으면서 일을 치뤘다.아래에 신경을 쓰느라고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대충 하고서 얼른 나온다.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돼지가 다시 울타리판자 사이로 그 영리한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본다.나는 뒤늦게야 돼지의 눈빛이 어째서 그렇게 영리해 보이는지를 짐작했다.그가 나를 보는 눈빛은 이를테면 “야,밥 온다!” 하는 느낌의 표정 그대로였기때문일 것이다.괘씸한 놈 같으니. 자연보호 좋아하는 이들 말로는 변소를 돼지 식당으로 삼는 제주도의전통식 돼지치기야말로 자연의 순환 법칙에 따른 지혜로운 사육 방법이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말이다. 사람 거시기 먹고 싼 돼지거름은 밭으로 가고 푸성귀는 그걸 먹고 자라나 사람이 다시먹게 된다.그럴듯하기는 해도 어쩐지 먹는 얘기 하다가 싸는 얘기 하려니 께름직하다. 제주의 돼지는 전통적인 사육 방법 때문에 지금은현대식 돈사로 모두 바뀌었지만 옛날 이름 그대로 ‘돋통시(똥돼지)’라는 정답지만 치열한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다. 그러나 조상이 그렇게 자라나 그런지 제주 토종돼지의 맛은 전국에서 알아준다.우선 기름기가 적고연하고 부드러우며 살이 찰지다고 한다.맛있기로는 제주도의 산야에 즐비한 구멍이 촘촘한 화산석을 달구어 그 위에서 소금뿌려 구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기름기를 돌이 흡수해 버린다.적당히구워 먹다가 새것으로 바꾸면 된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나더러 야만인이라고 하겠지만,세계 어디에서나 민속 음식치고 약간은 야만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가령 ‘새끼회’ 같은 것은 여자들은 대부분 먹지 못하고 남자들 사이에서도 비위 좋은총각 녀석들이 키들대며 서로 격려하며 먹을만한 음식이다.이것은 새끼를 밴 돼지를 잡아 태 속에서 그야말로 태어나기 직전의 돼지새끼를 꺼내어 깨끗이 손질하여 칼로 조아서 갖은 양념한 날 것이다.대접에 담아 내온 것을 보면 거의 물회처럼 보이기도 하고 죽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처음 먹는 사람은 이런 물기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의문을가져서는 절대로 먹을 수가 없다. 실은 애기보를 함께 존 것이라 양수가 고기와 함께 섞인 것이다.독한 소주와 물회를 함께 먹으면서 찬으로 곁들여서 밥도 먹는다.나는 체험에 대한 욕구가강한 편이고 호기심이 많아서 몇번 먹어보고 나서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씩은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해인가 팔십년대에 일본에 갔다가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 작가인김석범 선생과 만났는데 그가 나를 우에노 야시장 부근에 있는 조선음식점 거리로 데려갔다. 그는 아마도 나를 은근히 떠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자리가 네 다섯 밖에 없는 작은 주점으로 데려가서는 김선생이 새끼회를 시켰다.나는 하나도 놀라지 않고 아주 맛있게 그것을 먹어 치웠고 노인은 매우 놀란 듯 했다.이쯤 하면 아마도 두 손을들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이런 엽기적 만찬에 한국에서 온 손님을초대하고 자신도 즐거워하는 고향 잃은 노작가를 열심히 먹어 주는행동으로 위무해 드렸다. 독일 망명 시절에 윤이상 선생도 가끔씩은 추억 속에서 ‘개장’을떠올렸는데 일본에 갔더니 어느 교포가 몰래 하는 보신탕 집이 있다며 초대를 하더라는 것이다.너무도 신이나서 허리띠 끌러 두고 입맛을 다시며 호텔을 나서려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고 했다.혹시라도누군가 기자가 알고 신문에라도 쓰고 그것이 독일 사회에 알려지면저명한 작곡가인 그의 삶과 예술은 그날로 끝장이라는 것이다.실제로독일에서는 그 무렵에 자르 탄광지대에 있던 한국인 광부 몇이서 놀러 갔다가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를 한 마리 잡아 먹고 들통이나서 온 독일의 신문에서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다.이것은 서구에서는우리 사회에서 토막살인 정도의 엽기적인 사건이 된다.그들 광부들은 막대한 벌금을 물고나서 국외 추방을 당했다.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타관 객지에서 그런 강렬한 토속 음식은 알지못하게 시달렸던 다른 종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달래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돼지고기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육개장도 빼놓을 수가 없다.제주의한라산고사리는 먹고사리라고 하여 연하고 맛이 좋은데 돼지 살코기와 함께 찢어서 양념하여 육개장을 끓이면 얼큰하고 구수하다.간을맞출 때에 밀가루나 메밀가루 갠 것을 훌훌 뿌리면 국물이 꺼룩하고진득해진다. 선선한 가을이 되면 꿩이 살이 오르고 한창 먹을만 해지는데 ‘메밀저배기’는 꿩 고기 음식으로 가장 알려진것이다.메밀을 반죽하여밀어서 칼국수처럼 썰어 두고 꿩은 살을 발라내고 뼈를 칼등으로 두드려서 생강 마늘을 두어 푹 우려낸다.국물에 간을 하고 채 썬 무를넣고 다시 끓이다가 메밀국수와 파를 넣고 끓여낸다. 메밀로 하는 음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빙떡’도 그중의 하나다.메밀 가루를 풀어서 돼지 기름으로 번철에 넙적하니 지진다.그 위에 고명을 얹는데 전통적으로는 고사리와 무를 채 썰어서 넣지만 요새는 표고 돼지고기 당근 파 등속을 쓰기도 한다.조금 더 고급으로하려면 무채와 다진 꿩 고기를 넣기도 한다. 익어가는대로 끝에서부터 돌돌 말아서 지져낸다.이런 빙떡을 칼로 썰지 않고 길다란 채 그대로 손에 들고 먹어야 맛이 좋다.꿩고기 샤부샤부 같은 것은 꿩 사육장이 많아진 뒤에 나온 관광식당의 품목이다. 차조로 하는 것으로는 평안도의 노티처럼 ‘오매기 떡’이라는 게 있다.차조를 불려 방아에 찧어 가루로 만든 다음 동그랗게 빚어서 끓는 물에 삶아서 꿀이나 묽게 만든 설탕에 갠다.여기에 콩고물이나 팥고물을 묻히기도 한다.고구마를 말려서 가루를 내어 생고구마를 얇게저며서 켜로 깔고 시루에 쪄내는 ‘감제떡’도 맛이 있다. 이런 여러 먹을거리 외에도 나는 뭐니 뭐니 하여도,더운 여름날 찬밥에 세닢짜리 콩잎을 따다가 깨끗이 씻어서 멜첫(멸치젓) 한 마리 얹어서 앞니 끝으로 꼬리 지느러미 잘라 뱉어내고 싸먹는 콩잎쌈 맛을잊지 못한다.젓갈이라면 그밖에도 ‘게우젓’과 ‘자리젓’이 밥맛을돋군다.자리젓은 제주도 발음으로 ‘자리젯’이라고 해야 입 안에 침이 고이는데 위에 나온 자리돔을 소금에 절여 삭힌 것이다.통째로 담근 것을 잘 다져서 풋고추와 다진 마늘 고춧가루로 양념하여 밥 반찬으로 먹는다.게우젓은 일테면 전복의 내장으로 담근 젓인데 요즈음은너무 비싸서 발발 떨며 먹어야 한다.단골 회집이 있다면 서너번 가서호기있게 팔아 주어야 한번쯤 작은 종지에 내다줄 정도다. 전복내장을 사다가 집에서 소금에 절여 푹 삭이고나서 묵혔다가 조금씩 내어갖은 양념하여 먹는데 잘 묵힌 게우젓은 오래된 고추장처럼 되직하고짙은 암갈색이 된다. 이것을 젓가락 끝으로집어다 뜨거운 밥위에 살살 비비면 쌉쌀하고 비릿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가득찬다. 황석영
  • 한가위 祝詩/ 추석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자갈들이 일어서서 우는 이 나라의 시골길을 너와 지붕의 돌담길과 깨어진 비석을 미루나무가 서 있는 냇가,서낭당 버려진 무덤을 찾아서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힘있게 흐르는 강물이 천리 강산을 달려와서 몇 평의 모래 밭을 만드는 것을 산에 마음 주며 네 자랐던 곳 서울서 기차를 타고 여섯 시간 하늘 가까이 내려오다 멈춘 동네 백로의 날갯짓과도 같이 때에 절고 한숨에 전 동네 오랜만에 저 빈 집 빨랫줄에도 기저귀 널리고 애기똥풀꽃이 피어 웃음소리 화안하구나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황토와 자갈과 그리고 말오줌내 엎질러져 이따금 하얀 질경꽃들이 피어 흔들리는 길 천 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 우리들 흙 속에 바람 속에 잠들어 있는 그윽한 숨결을 찾아서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남끝동 초록저고리 옥색치마의 한 주름에도 서러운 이 나라의 역사와 한숨이 배인 여인아 너와 나는 이슬 묻은 어느 산자락 항아리처럼 누워서 가을볕 아래 질펀히 흘러가는 저 모래톱이며 강물을 보자 추석에는 우리 다 함께 교외선을 타자 저 허공 위에 빗장구름 펄펄 날리며 도라지 풀 초롱꽃 더윗술 걸러 마시고 어느 여울물에 손발을 씻자 손발을 씻어 새 힘으로 뭉쳐서 돌아오자. 송수권. *한가위 祝詩·祝畵 작가. ◆축시 송수권 시인 송수권(宋秀權·60) 시인은 전남 고흥 출생으로순천사범학교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1975년 월간 ‘문학사상’에 ‘산문(山門)에 기대어’외 4편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시집 ‘산문에 기대어’ ‘꿈꾸는 섬’ ‘초록의 감옥’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등을 발간했다.소월시 문학상,정지용 문학상,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박대성 화백 소평(小平) 박대성(朴大成·55) 화백은 경북 청도에서 출생했으며 1974년 대만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1979년 ‘상림(霜林)’으로 제2회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다.북한 화문(畵文)기행을 다녀왔으며 최근 가나아트센터에서 초대전을 열었다.동양회화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혁신적인 감각을 아우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발언대] 하회마을 주민 무분별한 상행위 자제 했으면

    안동 하회마을이 망가지고 있다고 한다.현지주민들의 무분별한 상행위 때문이라고 한다.관광지는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행태로 망가지는경우가 많다.그러나 현지주민들의 잘못으로 쇠락할 수도 있다.90년대제주도의 경우가 후자에 해당한다. 안동 하회마을이 관광지로서 인기를 얻는 것은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온 유무형의 전통문화유산때문이다. 바로 이 유산이 관광자원인데 이것이 망가지면 관광객들은발길을 다른 데로 돌리게 되어있다. 필자는 78년과 86년 두 차례 하회마을에 간 적이 있다.고즈넉한 동네분위기는 일품이었다.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당시 차를 몇번씩 갈아타며 포장도 안된 그 먼 하회까지 간 이유는 내가 요구하는 여행욕구를 하회마을이 만족시켜줬기 때문이다.주민들은왜 관광객이 하회에 오는지 깨달아야 한다. 주민들의 생계와 관련되어 있는 상행위를 없앨 수는 없으니 하회마을의 고유성과 동질성을유지하는 선에서 주민자치기구를 만들어 통제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있다.문화재의 보존은 사람이 사용하면서 손질해 가는 것이 좋다.사람의 숨결이 깃들일 때 문화재는 살아 빛나는 것이다. 또한 일별 주별 월별 연별로 수용능력을 파악해 관광객들을 제한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입장료 인상도 그중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하회는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이 좁은 지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려들면 순식간에 망가지게 되어있다.당국도 뒷짐만 지고 방관해선 안된다.하회마을은 좁고 제한된 지역성 때문에관리하기에 쉬운 관광지에 속한다. 99년의 경우 관광객 111만명에 연간 입장료 수입이 18여억원이라면작은 관광지치고는 결코 적은 수입이 아니다.수입은 주민의 소득증대,문화재 보호보존수리 및 자연환경보호,부대비용 등에 쓰여져야 한다.그래야 주민의 불만도 상쇄시킬 수 있고 문화유산도,자연환경도 보존할 수 있다. 관광은 주민들과 관광객,문화유산,자연환경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산업이다.‘관광은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깨달아야 관광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보존될 수 있다. 고산자[시드니 UTS대 관광레저학과 박사과정]
  • [대한광장] 의료대란의 교훈

    의약분업의 무리한 시행으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단시일 내에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점차 확대 심화되어가고 있는 것같다.의료계는 폐업을 강행하면서 이번 기회에 그간의 모든 숙원사업을 일거에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기세이고 약계는 정부가 더이상 양보하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부는 의료보험수가를 일부 인상시켜주는 한편 폐업주동자에 대한형사처벌,전공의 강제징집 등 양동작전을 펼치고 있다.시민단체들도정부가 의사들의 요구에 굴복해서 서민들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이러한 가운데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국민의 정부 전반기 성과를 평가하는 여론조사에서도 가장 실패한 정책의 첫번째로 의약분업이 꼽힐 정도로 이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던 의약분업제도가 왜 이러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혹시라도 이 제도가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더라도 모든 당사자들이 협력하여 이를 참고견디어내면 결국은 정부가 얘기해온 대로 국민건강이 증진되고 의약산업의 발전이 기대될 수 있을 것인가?이에 대하여는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기가 주저된다. 우선 의약분업과 같이 국민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제도개편을 시행함에 있어 정부가 너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최근 정부도 제도 시행과정에서 여러가지 준비가 부족했음을 시인한 바 있다.현재까지 우리사회에서 시행되어온 분업화되지 않은 의약관계는 정부가 제도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정해 놓은 것이라기보다 과거부터 정서적으로나 관습적으로 형성되어온 제도였던 것이다. 환자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진료받고 필요하다면 주사도맞고 약도 타왔으며,이보다 경미한 경우라면 동네약국에 들러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타와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소위 원스톱서비스가 이루어져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그야말로 효율적인 제도였던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지나치게 효율적인제도로 인하여 의약품의 오남용이 심각해지고 그래서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불가피하게 의약분업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면 새로운 제도가 보다 원활히 정착될 수 있도록 단계적 시행을 통한 추진이라는 지혜를 발휘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의료보험제도도 이제는 시장경제원리를 일부 도입해야 할 시기라고본다.1977년 처음 도입된 의료보험제도는 공공재로서의 의료서비스를 추구함으로써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고통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해방시켜주었으며,우리나라 전체 사회안전망에 핵심적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이다.그러나 여기에는 비현실적인 의료수가,경직적으로 운영되는 보험제도 등 많은 비효율과 사회적 비용이 숨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의료수가가 시장가격 이하에서 책정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초과수요 현상이 지속되고 있고 이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의료산업은 생명공학을 중심으로 최첨단의 길을 가고 있다.인간의 유전자정보가 완전히 해독돼이제까지 불치의 병으로여기던 질병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형태도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다.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의료행위별 진료단가는 물론 어떤 진료행위는 보험대상에 포함되고 어떤 것은 안되고 하는 것을 당국이 일일이 결정하는 수준에 있으니 우리국민은 어느 세월에 선진의료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겠는가. 이제는 기존의 의료보험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민간보험이 의료보험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더이상 국민간 위화감을 내세워 규격화된 의료서비스만 강요해서는 안된다.이미 국내의료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수많은 환자들이 해외병원을 기웃거리고 있지 아니한가?현재의 의료대란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수습될 것이다.이러한 과정에서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만 있다면 이제까지 환자 뿐 아니라 모든당사자들이 겪은 희생은 일부라도 보상받게 될 것이다. 진영욱 한화증권 사장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6) 孫貞道목사 활동지 吉林

    중국 길림성의 성도(省都) 장춘(長春)에서 ‘장길(長吉)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45분쯤 달리면 길림(吉林)에 도착한다.길림은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만주국 시절일본인들은 길림을 일본의 고도 경도(京都)에 빗대 ‘소경도(小京都)’라고 불렀다.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길림 도심을 ‘S자’로 휘감아 도는 송화강(松花江)은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는다.이는 근처에풍만(豊滿)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겨울철 송화강에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찬공기와 어우러져 강 주변의 나무에 은백색의 얼음꽃을 피우는데 이는 길림의 대표적인 겨울 풍물로 꼽힌다. 길림은 일제강점기 우리 항일투사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곳이기도 하다.특히 정의부 계통의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고참의부나 신민부의 거두들도 이곳에서 활약했다.독립운동가들이 길림에 운집하게 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당시 길림은 북만주 일대에서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국땅을 떠나 만주행에 오른 동포들은 대개 길림선을 통해 만주오지로 들어갔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길림에 주저앉았다. 또 하나는 길림이 심양,장춘,연길 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면서도 남만주철도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외부의 영향이 덜미치는,소위 ‘소왕국’과 같은 곳이었다.길림이 한 때‘비적(匪賊)의 소굴’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게다가 이 지역의 중국 군벌들은일제에 항거하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어서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천혜의 요지’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1924년 11월 만주 길림성 유하현(柳河縣)에서 조직된 정의부의 간부 가운데 상당수는 이곳 길림에서 활동하였다.집행위원회 위원장 현익철(일명 현묵관)을 비롯해 지방부 위원장 김리대,군사부 위원장 이웅,그리고 별동대 대장 이동훈,경무과장 김구(金球)등이 모두 길림에서활동하였다. 길림은 또 1919년 11월 창립된 의열단(단장 金元鳳)의 창립지이자고려혁명당 역시 1926년 4월 이곳 길림에서 창립됐다.의열단의 창립지인 길림성 파호문(把虎門)밖 중국인 농부 반(潘)씨집은 이미 헐린상태며,고려혁명당 창립지인 길림성성(城) 영남반점은 현재 길림시북경로 179번지 길림시건축설계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김이삼(金利三) 기자가 피살된 동아여관은 현재 정춘집단공사 길림시 분공사(分公司,길림시 회덕가 90호 소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길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해석 손정도(孫貞道·1872∼1931) 목사를 들 수 있다.평남 강서출신인손 목사는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0년 선교사로 만주에파견된 이후 1931년 길림에서 병사할 때까지 일생을 오점없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자다.1912년 선교활동을 벌이던 하얼빈에서 일제가조작한 ‘가쓰라(桂太郞)공작 암살모의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에서 ‘거주제한 1년’의 유배형을 산 손 목사는 1919년 3·1의거에 참여하였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그 해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구성되자 이동녕 초대 의장에 이어 의장에 선출되었으며,21년에는 임시정부 임시국무원 교통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임시정부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치열해지자 이듬해 임정을 박차고 나와 북만주 길림으로 향하였다. 길림시내 우마항(牛馬巷) 서광(曙光)골목에 예배당을 건립한 손 목사는교회를 거점으로 선교사업과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당시 손목사는 길림지역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그의 예배당·자택은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취재팀이 손 목사의 집터와 예배당을 찾았을 때 이들은 모두 헐린 뒤였으며, 일대는 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예배당은 인근에 새로 건립돼 있음)현재의주소로는 길림시 선영구(船營區) 청도가(靑島街) 춘광호동(春光胡洞)일대로 동네이름마저 서광호동에서 춘광호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주민에 따르면,“2년전 서광호동 골목이 헐리면서 동네이름도바뀌었다”고 했다. 손 목사의 길림 시절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 주석이다.당시 손 목사는 ‘소년김성주’의 후견인이자 그를 항일운동의 길로 안내한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1926년평양의 창덕학교(소학교)를 졸업한 김성주 소년은 민족주의 단체인 정의부가 화전(樺甸)에서 설립한 화성의숙(華成義塾)에 입학했다.당시 숙장(塾長)은 천도교도이자 항일운동가인 최동오(崔東旿)선생이었는데 최 선생은 86년 월북한 최덕신(崔德新) 전외무장관의 부친이다.(금년 8·15 이산가족 상봉때 북측 단장을맡은 류미영씨는 최 전장관의 부인이다.)그러나 그해 6월 부친의 갑작스런 별세의 충격으로 학업을 중단한 그는 이듬해 길림으로 건너와 육문(毓文)중학에 입학했는데 그는 당시 부친의 친구인 손 목사의지도와 후원을 받으며 생활하였다. 특히 공산주의 성향의 독서회를 이끌던 그가 중국 군벌에 체포되자손 목사는 감옥으로 사식과 침구를 제공하는 한편 군벌에게 뇌물을주면서까지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였다.그 덕에 그는 감옥에 들어간지 7개월만인 30년 5월초에 출감했다.김 주석은 생전에 남긴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첫머리의 ‘손정도 목사’편에서 “손 목사의 도움으로 제 때에 감옥에서 석방되지 않았더라면 10년쯤 감옥생활을 더 했을 것”이라며 “손 목사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회고했다. 길림시내 송화강변에 위치한 육문중학에는 그가 다닌 옛 육문중학의 구지(舊址)가 신관 뒷편에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길림시는 92년 이곳을 ‘중점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관리하고 있다.350평 규모의 ‘구지’에는 당시의 교사(校舍)·온실 등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다. 마당 한가운데는 92년에 건립한 김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동상 뒷편에 위치한 교사에는 당시 김 주석이 공부하던 교실이 ‘김일성동지독서기념실’로 꾸며져 있다.‘구지’ 관리자인 왕쑹린(王松林·52)주임은 “김일성 동지는 1927∼30년 이곳에서 공부를 했으며 당시 키가 작았던 탓인지 자리가 제일 앞줄이었다”고 말했다.왕 주임은 취재팀에게 “중국에 파견나온 북한 공직자들이 더러 방문하는 예는 있지만 남한 국적자가 방문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손 목사의 후손들은 해방후 김 주석과는 ‘서로 다른 길’을걸었다.장남 원일씨(元一·작고)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으며,3녀인실씨(仁實·작고)는 YWCA 회장,통일원 고문,한국적십자사 부총재 등을 지냈다.길림시절 김 주석과 형제처럼 지낸 차남 원태씨(元泰·86)는 의대 교수출신으로 현재 미국 네브래스카주오마하에 거주하고 있는데,그는 지난 91년 방북해 김 주석과 60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바 있다. 길림(중국) 정운현기자 jwh59@
  • [문화도시 문화거리](6)연극·미술의 고장 밀양

    밀양백중놀이,밀양아리랑 등의 전통놀이문화와 얼음골,표충사,영남루,사명대사 유적지 등의 손꼽히는 문화유산을 간직한 밀양.부산 마산창원 울산 등 인근 대도시를 잇는 삼각지대에 위치한 인구 13만의 중소도시 밀양은 오랜 세월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속이 알찬 문화도시로 성장해왔다.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대신 보이지않는 곳에서 꾸준히 문화의 향기를가꾸는 전통은 요즘에도 그대로 이어져온다.그중에서도 문닫은 초등학교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창의적 노력은 단연 눈길을 끈다.전시성 문화행정이 아니라 생활에 밀착한 일상의 문화를 추구하는 밀양의 남다른 문화예술관을 엿볼수 있는 상징적인 대목이기 때문이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지난해 9월 연희단거리패 단원 60여명과 함께부북면 가산리 월산초등학교에 터를 잡은 ‘밀양연극촌’은 1년새 이 지역의 새로운 ‘문화명소’로 자리잡았다.밀양시와 밀양시교육위원회의 배려로 5년간 무상임대한 500평 규모의 폐교에는 연습실과 무대제작실,의상제작실,조명기자재실,숙소 등이빼곡이 들어차있다.운동장 한귀퉁이에는 400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통나무 의자를 들여 ‘숲의 극장’을 꾸몄다. 이곳에서는 주말 저녁마다 연희단거리패 고정레퍼터리와 신작들을 공연하는 ‘주말극장’이 열리는데 인근 주민들을 위한 ‘동네극장’인데도 부산 마산 대구 울산은 물론 서울에서도 차를 몰고 내려와 주말마다 운동장이 주차장이 될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네살먹은 어린애부터 팔순 할머니, 때론 술취해 주정하는 관객들까지 ‘숲의 극장’은모두 포용한다.“연극의 문턱을 낮추면 관객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밀양에서 깨닫게 됐다”고 이윤택은 털어놓는다. 내후년쯤엔 이곳서 아시아공연예술축제가 열릴 전망이다.‘아시아의전통과 동시대적 창조’란 주제아래 한국과 일본,중국을 중심으로 인도 몽고 등 남방문화를 아우르는 대규모 공연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밀양을 동시대 문화예술의 메카로 부상시킬 야심에 부풀어있다.지금까지 밀양연극촌이 해낸 문화적 성과를 감안하면 헛된 욕심으로 끝날것같진 않다. 산내면 가인리에 자리한 가인예술촌도 독특한 지역문화공간의 모범으로 꼽을 만하다.96년 10월 가인초등학교에 문을 연 가인예술촌은뜻맞는 밀양 미술인들의 공동작업실 겸 지역주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톡톡히 한몫을 해내고 있다.현재 이곳에는 박장길(서양화)심점환(서양화)이정형(조각)등 8명의 작가들이 한솥밥을 먹으며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입촌을 원하는 작가는 기존 작가들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1년에 개인전 1회이상,그룹전 3회이상에 참여해야 하는 등 규칙이 엄격한 만큼이곳 작가들은 누구보다 왕성한 창작활동을 자랑한다.교사 한켠에 전시실을 마련해 번갈아가며 상설전시회를 여는 한편 부산,마산 등 인근 대도시에서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지난해에는 이곳에서‘한국 미디어아트 현황과 과제’(2월)‘한국 현대미술의 쟁점’(6월)을 주제로 두차례 학술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당시 이곳을 방문한 도쿄대와 고베대 교수들은 “저력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가인예술촌은 또 매년 여름 ‘가족캠프’를 열어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도자기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등 일반인을 위한 문화공간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박장길씨는 “언젠가는 이곳에서 밀양비엔날레같은국제미술행사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극촌이나 예술촌과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초동면 범평리 범평초등학교의 ‘미리벌민속박물관’도 밀양의 개성있는 지역문화공간이다.98년7월 개관한 이곳은 성재정 관장이 30년간 일일이 모은 손때묻은민속유물 2,400여점이 전시돼있어 학생들의 시청각교육장으로 그만이다.밀양지역은 물론이고 부산,창원 등에서 단체로 관람오는 일이 잦고,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주말에 오는 외지 관람객도 300∼400명을헤아린다.성관장은 “폐교를 선뜻 개인에게 내준 밀양시의 문화정책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문화도시는 번듯한 문화예술회관이나 야외공원을 짓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지역주민들이 좀더 가깝게 문화를 접하고,향유하는 문화네트워크의 구축이야말로 진정한 문화도시의 필요조건이라 볼때 밀양은 한발짝 앞서가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밀양 이순녀기자 coral@.*이렇게 가꿉시다- “아시아 전통 숨쉬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밀양(密陽)을 나는 ‘비밀스런 양지’라 부른다.그만큼 밀양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다.인구 13만의 밀양시는 몇십년이 지나도 인구가 늘지 않고 공장도 큰 호텔도 들어서지 않는다.우리극연구소가 밀양에 연극촌을 세울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밀양의 한적함때문이다. 한때 1,000여명에 이르렀던 한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40여명으로 줄고,급기야 폐교의 운명을 맞으면서 우리는 꽤나 크고 시설이 좋은 학교를 연극촌으로 접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밀양은 이런 식으로 폐교된 초등학교가 가인예술인촌,민속박물관 등으로 탈바꿈하고 있다.폐교된 학교를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창작의 산실로 활용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밀양시장 이상조씨의 발상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로 변화하는 지금 고도 정보통신사회의 뒤켠으로밀려나고 있는 밀양을 자연과 문화의 도시 이미지로 탈바꿈시키려는시장의 발상과 열정을 시민들 또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밀양의 문화는 뭐니뭐니 해도 맑은 물과 부드러운 황토 흙,그리고 녹색 환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이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서슬퍼런 전통이 버티고 서있다.표충사,안동 손씨 집성촌,여주 이씨 집성촌 고택 등은 우리에게 민족의 본래적 심성과 생활양식을 일깨우는귀중한 교육장이 될 수 있다.이 자연과 전통을 문화적 기반으로 하여 이제 동시대의 예술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가인 예술인촌은 화가들의 창작 산실이고,밀양연극촌은 지금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의 종합연극제작소로 조성되고 있다.밀양시내 실내체육관을 800석 규모의 무대 공연장 겸용으로 전환하는 작업 또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적극적인 동시대 문화 수용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면,자연과 전통의 도시 밀양은 동시대 문화 예술의 메카로 부상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밀양을 프랑스의 아비뇽이나 영국의 에딘버러처럼 세계적인 페스티벌을 열어 도시의 이미지를 제고시켜야 한다는식의 현시적인 발상을 경계한다.세계적인 문화도시라는 환상을 따라가다가는 특색도 없는 백화점 나열식의 문화 전시장이 되기 십상이다.나는 차라리 비밀스런 양지 밀양이 생명 생태 환경친화의 도시문화,혹은 아시아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전통과 창조의 예술이 생산되는도시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밀양에 가면 맑은 바람과 공기와 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란 캐치프레이즈는 공장이 들어서지 않는 도시란 오명을 자부심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아니면,‘밀양에 가면 아시아의 아름다운 전통이 동시대의 예술로 창조되고 있습니다’란 문화적 발상이 세계적이란 환상 보다 훨씬 알차고 독자성이 있을 것이다.나는 밀양이 이런 환경도시,아시아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문화도시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윤택 연극연출가 밀양연극촌 예술감독
  • [사설] 전공의도 복귀하라

    휴·폐업에 나선 동네의원들이 속속 문을 열어 폐업률이 18일 현재11.9%로 떨어졌다.한때 60%에 가까웠던 수치가 이처럼 떨어지고 특히광주·강원·충북·전남·제주 지역 동네의원이 모두 문을 열어 국민에게 1차 의료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전공의 비상대책위 위원장이 ‘대정부 투쟁 전면전 선포’를발표하는 등 전공의들의 강경한 태도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의대 교수와 전임의들 역시 이들의 행동에 보조를 맞추기로 해 ‘의료대란’은 전공의들의 태도에 따라 방향과 정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전공의들에게 다시 한번 간곡히 당부한다.이제는 의료현장에복귀해야 한다. 정부 당국의 지시로 10여개 병원이 18일 전공의·전임의들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이에 앞서 부산 인제대병원이 지난 16일 이사장 명의로 산하 병원 4곳의 전공의·전임의들에게업무복귀를 명령했다.인제대병원이건 18일 새로 ‘업무복귀 명령’을내린 병원이건, 우리는 그 판단이 같으리라고 본다.그것은 국민의 생명을볼모로 한 폐·파업을 더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비록 동네의원이 대부분 문을 열긴 했어도 전공의 파업이 계속되면대형병원의 중환자 수술과 입원·외래 환자 진료는 여전히 큰 차질을빚게 된다. 또 전공의 개개인은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심지어 해임까지 당하는 불이익이 예고돼 있다.이는 전공의들과 국민 모두에게피해를 입힐 뿐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다툼이다.전공의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강경노선을 주장하지만 그 주장은 더이상국민과 의료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전공의들은 냉철하게 사태를 직시하기 바란다.여러분의 주장을 받아들일 대상도,여러분이 언젠가 복귀해 진료할 대상도 결국은 국민이다.국민이 여러분의 파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의대 교수와 전임의들에게도 한마디 하겠다.여러분은 전공의 과정을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전공의들을 의료현장에서 지휘하고 가르치면서 그들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하는 입장이다.그런데도 의약분업실시 이후 한번도 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전공의들의 결정을 뒤따르기만 하는 행태를 보였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 후배들의 희생을 줄이고 사태 해결을 주도해 주기 바란다.의료계 폐·파업으로 국민이 극심한 고통과 불편을겪은 지 20일 가까이 됐다. 가장 강경 노선을 걷는 전공의들에게 이제는 의료현장으로 돌아올 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간곡하게 당부한다.
  • 남북이산상봉/ 휴대전화로 오빠 극적상봉

    남측 가족의 실수로 상봉자 명단에서 누락된 막내 여동생이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를 한 끝에 북에서 온 큰오빠를 50년 만에 극적으로만났다. 최상화씨(56·경기도 광주군)는 16일 북측 이산가족 숙소인 워커힐호텔 로비에서 이제나 저제나 큰오빠 상길씨(68)가 호텔 밖으로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상화씨는 전날 상길씨에게 “오빠,내일 내가 호텔로 가서 기다리고있을게.밖으로 나갈 때 잠깐이라도 볼 수 있게”라고 전화를 했고,이날도 호텔 1층에서 “오빠,나 지금 호텔 1층이야”라고 상길씨가 있는 객실로 전화를 했다. 상길씨는 “상화야,이따 오후에 버스 타고 밖으로 나갈 때 내가 너를 알아볼 수 있게 네 이름을 크게 써서 버스 앞에 서 있거라.내 너에게 손을 한껏 흔들어 주마”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던 누이는 호텔 지하 1층엘리베이터 앞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오빠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1시간 가까이 지났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물 밀듯이 밀려나오는 가족들 사이에서둘째 오빠와 언니들의 손을 잡고내려오는 오빠의 얼굴을 발견했다. “오빠…” “네가 상화냐” 6살 때 고향인 경기도 여주군 동네 뒷산에서 어깨동무를 해주며 “대장부 살림살이 이 정도면…”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10대 미소년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지만,두 남매는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나 반세기를 뛰어넘은 재회의 기쁨도 잠시.오는 18일 오빠가 떠나기 직전 공항에서 잠깐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을 빼고는 언제 또 있을지 모르는 후일의 만남을 기약하며 상화씨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만찬장으로 들어가는 오빠의 모습을 뒤로 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특별취재단
  • “의보수가 20%이상 인상”

    정부는 9일 병·의원 운영 원가의 80% 수준인 현행 의료보험 수가를 앞으로2년내에 단계적으로 현실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2년까지 의료보험 수가가 지금보다 20% 이상 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9일 오후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주재로 재정경제,행정자치,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의사협회의 전면 재폐업 결정에따른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전공의들에 대한 처우는 지난 6월 당정협의에서 약속한대로 보수를 조만간적정수준으로 인상하고 전공의 수련제도 개선 등 종합적인 장기발전 방안도마련키로 했다.이를 위해 이달 중순쯤 25명 내외의 전문가들로 의료발전특위를 구성키로 했다. 또 의료계 인력이 과잉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2001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현수준으로 동결하되 수급상황을 면밀히 검토해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방안도 강구키로 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날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반응을 보여 제2의 의료대란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편의사협회가 11일부터 재폐업 투쟁에 들어가기로 결의,동네의원들이 이에 가세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공의와 전임의들의 파업에 이어 일부 의대 교수들도 외래진료 철수를 결의하는 등 의료계 휴·폐업 사태가 확산되고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이날 교수협의회 전체회의를 열고 10일부터 중환자실과 응급실 등을 제외하고 외래진료를 중단하기로 했다.고려대 의대 교수들도 다음주부터 외래진료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유상덕 이지운기자 youni@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1)낯선 땅에서

    내가 전라도에 내려가서 십 년이나 살았으니 이사 다니기를 동네 마실 다니듯 하던 나로서는 꽤나 오래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청소년 시절에 전라도의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보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이따금씩 도시가 답답해지면휘익 한바퀴 돌아보고 오는 곳이 전라도였다. 칠십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전라도의 시골은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데가 많았다.정답고 포근해 뵈는 초가집이며 토담과 돌담으로 이어지는 고샅길이며 왕대숲과 남도에서만 자라는 동백,석류,수선화,무화과,오죽,시누대,배롱나무들이 탱자울 넘어 작은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그리고 수려한 가지를 늘어뜨린 붉은 소나무들이 늘어선 곳에 이끼 얹은 기와를 올린 옛집이 한 두 채씩 있었다. 대전 논산을 지나 도계를 넘어 벌써 전주에만 가도 이런 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아무데나 이를테면 버스 차부 모퉁이에 있는 작은 주막엘 가보아도 서화가 걸려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런 집 뒷간엘 가도 작은 산수화나 사군자가 걸려 있었다.주전자로 막걸리를 파는 장터 앞의 선술집에서도 따로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곁들이 안주로 꼬막무침에 생선토막에 나물에 묵에 술국에다 나중에는 수박 두어 쪽까지 나온다.그러니 남은 안주가 아까워서 한 주전자 더 시키고 그러면 안주가 다시 나온다.꼭 한 잔씩만 하자고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안주 맛에 이끌려 지지벌겋게 거의 만취가 되어서 술집을 나서게만든다. 비빔밥이니 콩나물국밥이니 하는 것들이 진작에 어느 도시에서나 흔해졌지만 옛날 전주 콩나물 해장국은 조금 달랐다.나는 어떻게 된 것이 글쟁이 보다는 그림쟁이들과 잘 어울려 다니던 편이었는데 그들은 감정 표현이 직설적이고 술 또한 잘먹는다.그래서 걸핏하면 술잔이 나르고 주먹이 올라가는 자리가 되기 일쑤이건만 술자리 하나는 언제나 질펀하다. 콩나물 해장국은 왕멸치로 국물을 내어 통통하고 실하게 자란 콩나물을 넣어 간을 따로하지 않고 맑은 채로 끓이는데 내오기 직전에 달걀 흰자위를 풀어 넣어 준다.노른 자위가 섞인 채로 덩어리가 된 채로 그릇의 반쯤을 차지하고 있는 요즈음 식은 텁텁해서 맛이 없다.뚝배기에 한 그릇씩 끓인 국이 상에 올라와도 아직 보글보글 끓고 있다.끼끗한 육젓 새우젓이 하얗게 따라 나오는데 이것을 조금 넣고 국물도 넣어 간한다.반찬은 김치와 깍두기인데 어떤 이들은 깍두기 국물을 국에 넣기도 한다.나는 그냥 맑은채로 먹는다.속풀이 한다고 식물성으로만 말갛게 먹기에는 아무래도 슴슴한지 장포를 찢어 내놓는다.요즈음 시중에서 장조림을 성의껏 내는 집도 있지만 장포라야 맞는다.쇠고기 홍두깨살이나 대접살을 삶아 포를 떠서 굽는다.양념장을 고루 발라서 다시 한번 굽고 두들기고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양념이 속까지 배도록 약한 불에 구워서 잘게 찢은 다음에 잣가루나 깻가루를 뿌린다.콩나물 해장국을 먹을 때에 또 한 가지 곁들여야 할 것이 있다.바로 해장술인데 진하게 걸른 막걸리에 흑설탕을 넣어 한소끔 끓여서 뜨거운 채로 사발에 내다 준다.국밥을 먹는 사이 사이로 이 해장술을 마시면 온몸이 후끈해지고 땀이 나면서간밤의 숙취로 무둑하던 속이 후련하고 시원해진다. 전북 전주 남원 지방의 음식이 다양하고 맛깔스런 것들이 많아서어느 것부터 얘기를 해야할지 모를 정도다.고들빼기나 무소박이 더덕김치 같은 것들은 여러 문인들의 입담에 오르내리거니와 추어탕이며 오리탕이며 용봉탕이며하는 것도 있고,특히 상이 모자라서 겹쳐 놓고 비워지는 순서대로 다시 늘어 놓아야 하는 한정식은 도대체 이런 식으로 어떻게 장사를 할까 싶을 만큼그 맛과 인심이 남도다웁다. 어떤 이는 곳곳의 서화와 한정식의 풍요로움이 지주 문화의 잔재라고 약간의 비아냥을 섞어 이야기하지만 그것도 일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음식 치레에 치중하는 것은 역시 중인의 것이다.감영이 있던 데나 군영이 있던 곳,또는 상단이 있던 고장에는 먹을만한 음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서울에서도 오래된 전통 여관에서는 아침에 숙박비에 포함된 밥상을 차려 주는 데가 더러 있었다.내가 남도 쪽을 돌아다니던 시절이야 말할 것도 없이 시골 읍내의 여관에서는 아침 밥상을 들여주었다.대개 책상반에다 국과 밥,그리고 조치라고 하는 찌개 한 가지에 생선이나 고기반찬에 마른반찬,나물,간장,고추장,젓갈 등속을 정갈한 사기 그릇이나 유기에 담아 내왔다.정겨운 것 한 가지가 있으니 작은 접시에 날달걀 한 개를 담아내오는 것이다.밥을 반쯤 먹고나서 남은 밥에 달걀을 깨어 넣고 비벼 먹는 맛이 그만이다. 그야말로 집에서 먹던 가정식 백반인 셈이다. 상차림에도 격식이 있어서 칠첩반상이 기본이었다.밥과 국에 김치 한 두가지 찌개나 찜이 나오고 첩에 들지 않는 간장 초간장 초고추장 등이 있고 숙채,생채,조림,구이,전유어,회,마른반찬의 일곱가지가 칠첩이다.구첩반상은 위에다 나물,구이,조림 등의 숫자를 늘린 것이며,교자상은 여러 사람이 연회를할 적에 먹는 겸상이다.한정식 집에서 내던 상이 바로 이것이었으니 그야말로 상 다리가 부러질 지경으로 가짓수가 많았다.구절판과 신선로와 소 닭 돼지 고기와 해물 어패류가 함께 한다.낮것상이라고 하여 점심에 원반에다 간단히 차리는 독상도 있다.그런가 하면 술과 각색 안주를 차려 놓는 주안상이 있다.구절판에 산적에,편육,회,냉채,찜,신선로,전유어,마른 안주 등속이 올랐다. 내가 칠십년대 중반에 어딘가 농촌 지방으로 가야겠다고는 진작에 작심을 하였으나,전라도 해남으로 내려가게 된 데에는 그 해 여름의 여행길 때문이었다.우연히 스케치를 하러 가는 화가 친구들을 따라 나섰다가 처음으로 강진이라는 곳에 이르렀다.물론 정약용의 유배지 만덕산 다산 초당에도 청자 가마터에도 가보고 너른 갯벌과 탐진강 줄기도 바라보았다.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지만 옛날 읍내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대숲을 스치는 바람이 소슬하였다. 그래서 당장에 갯가가 내다보이는 언덕에 맞춤한 집을 찾다가 그만두고 옆고을인 해남으로 가서야 사정에 맞는 집을 구하여 꿩 대신 닭이라고 그 고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아니 해남이 닭이라니,말도 안되는 소리였다.비록 읍내에서 바다가 멀기는 하여도 아늑하고 풍광 좋기로는 해남이 더욱 옛고을다웠다. 식솔들을 버스로 보내고 이삿짐을 가득 실은 트럭 앞자리에 앉아 먼지나는비포장 길을 달려서 우슬재를 넘는데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저 아랫편에 업드린 해남 읍내와 들판이 보였다.내가 찾아낸 집은 고래등 같은 고가의 마당안에 무슨 더부살이 집처럼 따로 낮은 돌담을 두른 남도식의 일자집이었는데 어른 셋이서 팔을 둘러야 겨우 닿을 만큼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가 마당 귀퉁이에 서있었고 역시 사람들 말로 삼백년 묵었다는 동백나무가 있었다.동백나무는 전에 살던 이가 너무 잎이 무성하여 잘랐다는데 그 아래 둥치에서 새 순이 돋아나 오히려 분재나무처럼 둥글고 탐스럽게 자라났다.느티나무와 동백은 무슨 부부처럼 사이 좋게 아래 위로 서있었다.
  • ‘의료대란’ 다시 온다

    대한의사협회가 오는 11일 전면 재폐업 투쟁에 들어가기로 전격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전공의,전임의의 파업으로 대형병원의 진료차질이 빚어지고 있는데 이어 동네의원들의 부분 휴진도 전면 휴·폐업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여또 다시 의료대란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대한의사협회는 8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정부가 의료계의 요구를 수용하지않음에 따라 재폐업 투쟁을 유보해온 그동안의 입장을 번복,오는 11일 전국규모의 전면재폐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의협은 이날 회의에서 “대다수 개원의 회원들이 이미 폐업투쟁에 돌입한데다 전공의와 전임의까지 파업을 하고 교수들까지 강경투쟁에 동참할 조짐을보이고 있다”면서 “더 이상 정부의 결단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는데의견을 모으고 이같이 결정했다. 의협 관계자는 “지난 8일간 의약분업을 실시한 결과,불법 임의·대체조제등 문제가 속출했고 수입면에서도 의료기관 운영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정부가 대안을 내놓을 때까지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의 의약분업은 준비가 안된 채 시행되는 것으로 막대한불이익을 받는 의사들로서는 생존권 차원에서 전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현재 정부에 대해 ▲구속자 석방및 수배자 해제 ▲약사법 재개정 ▲의료수가 현실화 등 10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가톨릭의대와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이날 오후 각각 대학내에서 전체교수회의를 열고 외래진료 철수를 결의했다. 가톨릭의대는 11일부터 외래진료에서 철수키로 했으며 연세대 의대는 구체적인 철수 시기를 교수평의회에 일임하고 오는 10일 열릴 예정인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 결정에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유상덕 전영우기자 youni@
  • 전임醫 파업 가세

    동네의원들의 부분 휴진 속에 병원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펠로우)들이 7일파업에 가세함에 따라 각 대학병원에서는 진료에 차질이 빚어졌다. 전국 30여개 대학병원 1,300여명의 전임의들은 이날 오전 병원별로 사직서를 내고 대부분 파업에 들어갔다. 1주일째 계속된 전공의들의 파업에 이어 전임의들의 파업 가세로 병원별로예약진료가 늦춰지고 예약환자 외의 신규 입원 및 외래 환자의 접수가 중단되는 등 진료차질이 빚어지면서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대병원은외래환자 신규 예약을 20일 이후로 미뤘고,신촌세브란스병원은 수술이 평소80건에서 12건으로 줄었다.삼성서울병원도 수술 건수가 평소의 5분의1 수준인 21건에 불과했다. 병원 관계자들은 “교수들이 수술은 물론 외래진료에도 나서고 있어 당장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고 있으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외래진료가 전면 중단될수도 있다”고 말했다. 동네의원 휴진투쟁이 진행중인 서울,경기, 울산 등 7개 시도의 휴진참여율은 지역별로 지난 주초 40∼50%에서 이날 16∼24% 수준으로 떨어졌다.유상덕 김경운기자 youni@
  • 동네약국 처방전 조제 ‘유명무실’

    의사의 협력없이 준비한 동네약국의 처방약이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동네약국들이 현재 갖추고 있는 처방약의 종류는 200∼500종 정도. 그러나 의료계의 상용처방약 목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을 비롯한 동네의원들이 처방한 약을 제대로 준비하려면 1,000여종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일선 약사들의 얘기이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선일약국 약사 유원영씨(66)는 “300종의 처방약을 갖추고 하루 30건 안팎의 처방전을 받고 있으나 처방약 가운데 한두가지가 없어 되돌려 보내는 환자가 많다”면서 “의사들이 하루빨리 목록을 넘겨줘야처방약 조제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고가의 처방약은 한두번 조제하고 더이상 처방이 없을까봐 살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면 동네약국의 처방전 조제는간단한 것 이외에는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 태평로의 정수약국 약사 정현수씨(47)도 “의료계의 비협조로 처방약을 300종밖에 갖추지 못했다”면서 “현재 준비한 것 이상으로 갖추려고 해도 의사들이 나중에 엉뚱한 처방약 목록을 제출할까봐 구비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문재빈 서울시 약사회장은 이에 대해 “약국들이 개별적으로 동네의원들과 협력해 목록을 얻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상덕기자 yo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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