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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주자 우선주차제 ‘삐걱’

    주택가 골목길의 주차난과 주차공간을 둘러싼 주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거주자 우선주차제’가 제도·관리상 허점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거주자 우선주차제’는 폭 5.5m 이상 이면도로 중 소방차가 다닐 수 있는 곳에 한해 장애인,근거리 거주자,장기 거주자,소형차주 등에게 유료로 주차구획을 배정하는 제도.지난해 11월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본격 시행됐고,인천에서도 오는 2004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그러나 같은 동네라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도시행 여부가 엇갈리고 있는 데다 시행시기가 미뤄진 곳에도 당초 구청측이 마련한 주차선과 안내표지판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주차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주택이 신설되면서 기존 주차공간이 모자라 아예 제도를 폐지하는 곳도 있다. 서울 구로구 개봉2동에 사는 회사원 박모(31)씨는 “집앞에 차를 세웠더니 이웃 주민이 안내표지판을 가리키며 ‘돈내고 가입했으니 주차하지 말라.’고 말했다.”면서 “동사무소에 문의한 결과 지난 4월 시행이 전면 중단된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박씨는“구청이 주차시설물을 방치하는 바람에 얌체 주민이 주차공간을 임의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포구는 주민 호응도나 주차공간,민원 등을 감안해 구 전체를 5개 구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우선주차제를 시행하고 있다.이 때문에 합정동·동교동·서교동은 왕복 6차선 양화로를 사이에 두고 각각 우선주차제 시행구역과 미시행 구역으로 나뉘는 바람에 주민들이 혼선을 겪고 있다. 구로구 개봉2,3동은 지난해 11월 우선주차제를 시범 실시했지만 다세대 주택과 빌라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졌다.주차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구청측은 아예 이 지역에 한해 우선주차제를 폐지해 버렸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시 전역으로 제도를 확대하기에 앞서 관리상 허점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지연기자 anne02@
  • 들꽃·곤충등 글마다 자연사랑 - 대한매일·국토연구원 공동주최 27일 시상식

    대한매일과 국토연구원이 공동주최하고 삼성생명이 협찬한 제7회 ‘초등학생 국토사랑 글짓기’대회에서 강소영(제주 신제주초등 3)양이 개인부문상(국토연구원 원장상)금상을 차지했다.은상은 백미경(강원 횡성초등 6)양과 유다은(경남 신안초등 5)양에게 돌아갔다. 전국 127개교에서 모두 5392편이 응모한 이번 대회에서 강양은 ‘우리들의천국’이라는 생활문을 써내 금상의 영예를 안았다.이밖에 개인상에는 동상 4명,우수상 50명,장려상 268명이 선정됐다. 단체부문상(대한매일 사장상)에서 금상은 경기 신촌초등,은상은 경기 부흥초등,동상은 경북 포항제철지곡초등학교가 각각 받았으며 지도교사상(삼성생명 사장상)은 금상에 박미옥(경남 신안초등),은상에 박남숙(경기 부흥초등),동상에 김정자(강원 횡성초등)교사가 선정됐다. 수상자 명단은 대한매일 홈페이지(www.kdaily.com), 국토연구원 홈페이지(www.krihs.re.kr)에 실렸으며 오는 23일자 대한매일 광고로도 게재된다.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전 10시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국토연구원 강당에서 열린다. 입상자 명단(개인상 중 우수상·장려상 생략)은 다음과 같다. ◇개인상 ▲금상 강소영 ▲은상 백미경 유다은▲동상 고기혁(대전 대덕초등6)도원주(경남 천전초등 6)최혜진(서울 도곡초등 5)이새미(경기 일동초등 6)◇단체상 ▲금상 경기 신촌초등▲은상 경기 부흥초등▲동상 경북 포항제철지곡초등 ◇지도교사상 ▲금상 박미옥 ▲은상 박남숙 ▲동상 김정자 김소연기자 purple@ ■개인 수상작 요약 [금상]‘우리들의 천국’ 민오름.나무도 없는 벌거숭이 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민오름에서는 예쁘고 신기한 이름을 가진 들꽃도 많이 볼 수 있고,우리들처럼 시원한 바람을 맞고 좋아하는 나무도 가득하다. 오늘은 금요일.친구들과 선생님이 함께 우리 동네 뒤쪽의 자그마한 산인 민오름을 오르는 날이다.오늘도 나는 선생님을 따라 걸으면서 물었다.“이 풀이름이 뭐예요?” “타래난초라고 한단다.”“그럼 이거는요?” “그건 오이풀.그 풀의 잎을 따서 손으로 비비면 오이냄새가 난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대.” 잎 하나를 살그머니 따서 손에 비비고 냄새를 맡았더니 정말 시원한 오이냄새가 났다. “선생님은 풀 이름을 어떻게 다 아세요?”“예전에 ‘들꽃기행’이라고 하는 행사에 몇 번 참가한 적이 있었단다.다른 오름에는 들꽃들이 더 많아.그 들꽃들을 다 둘러보고 내려오면 멀리서만 봐도 오름에서 들꽃 냄새가 나는것 같거든.” 우리반 남학생들은 곤충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사슴벌레를 보고 신난 친구,개미들의 본부를 발견했다는 친구.다른 친구들은 경사진 풀밭에 누워서 떼굴떼굴 구르기 시합을 하고 있다.그래도 나는 향기로운 들꽃이 좋다. 얼마 전 얄밉고도 큰 태풍이 휩쓸고 가버렸을 때,나는 태풍에 왜 산이 무너질까 궁금해서 아빠께 여쭈어 봤다.아빠는 “산을 마구 개발하면 산이 약해져서 태풍에도 쉽게 무너져 버리는 거란다.”하시면서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셨다. 나는 함부로 산을 다루는 아저씨들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민오름에서 만난 개미,사슴벌레,무당벌레,쥐며느리,지렁이,거미….강아지풀,오이풀,타래난초….이 작고 예쁜 것들이 오순도순정답게 사는 아름다운 산,우리들의 천국을 조심히 다뤄주세요.” 강소영 제주 신제주초3 [은상]‘쓰레기로 해 본 체험학습’ 우리 학교는 각 학년이 돌아가면서 운동장 청소를 한다.우리 6학년이 청소를 하는 월요일,대부분 하기 싫은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었다.선생님께서는 갑자기 5일간 학교,집 주위에서 뭐든 주워 가져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길에서 주운 쓰레기를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깨끗이 씻어 말리고 종이상자 같은 것은 차곡차곡 접기도 하고,하여튼 숙제니까 학교에 가져 가기 위해 준비했다. 5일 후 재량시간에 선생님께서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을 모아 보고서를 써보라고 하셨다.발표시간이 됐다.장난감을 만든 모둠이 두 모둠 있었고,과자 봉지의 이름을 외래어·고유어·외국어로 구분한 모둠,그리고 우리는 재활용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구분하여 발표했다. “쓰레기를 모으면서 이것으로 무엇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리고 이게 재활용이구나 했었고요.”“사실 저는 분리함에서 꺼내 왔는데 제대로 넣어져 있지 않아 불편했습니다.”우리는 할 말이 많았다.5일 동안 쓰레기를 주우면서 환경이 깨끗해지고 보잘것없는 쓰레기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배운 셈이다. 백미경 강원 횡성초6 [은상]‘내일의 꿈은 초록색’ 이번 여름방학에 그동안 꿈꾸어 왔던 일이 이루어졌다.유럽여행.도착하자마자 인도가 있는 곳 어디든지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장미,피튜니아,칸나….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없었을까.그때 한 할아버지와 작은 꼬마가 물뿌리개를 끙끙대며 들고 나와 정성스럽게 가로수를 매만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로수를 시나 동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그러나 그것을 보고 느끼는 것은 우리들이다.그러니 우리가 돌보고 가꾸어야 한다.우리가 자연에게 정성을 다한다면 꽃과 나무는 자신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여행 도중 태풍이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한국에 돌아오니 피해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나는 유럽 여행 전 우리의 자연을 볼 기회가 많았다.그때겉보기에는 푸른 산이지만 뿌리깊게 앉아 있는 나무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그 때문에 더 많은 피해가 난 것일까? 집 근처 공원에서 유치원생들이 모여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쓰러진 나무를 다시 세워주고 있었다.갑자기 자신이 생겼다.내 동생들이 만드는 내일은 분명짙은 초록색일 것이다. 유다은 경남 신안초5
  • [씨줄날줄] 전원일기 유감

    MBC TV의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 종영 소식이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사람들은 고향을 잃는 것 같다며 너나없이 아쉬워한다.때마침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가을 들녘이 전원일기 종영 소식에 오버랩되면서 고향 정감을 더했을 것이다.인생을 사계절에 대입해 보면 가을쯤이라는 착상도 애틋함을 보탰을지도 모르겠다.쟁기로 논밭 갈고 품앗이로 김을 매던 농촌을 아는 세대라면 어느새 40대 중반을 넘어 섰을 테니 말이다.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21일 처음 방송되었다.꼬박 22년의 세월이 흘렀다.시청률이 20% 안팎을 오르내리는 이른바 인기 드라마였다.스토리가 특이했거나 호화 배역 때문도 아니었다.잡힐 듯 말 듯 아련한 어린 시절을 실감나게 다듬은 영상에 빨려 들었던 것이다.핀잔을 들으면서도 동네 일마다 끼어드는 푼수 같은 일용 엄니는 영락없는 우리네 아줌마였다.세월이 바뀌며 전원일기 시청률이 8%대로 떨어졌다고 한다.소재가 고갈되어 방송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TV 채널권을 쥔 ‘아스팔트 세대’에겐 농촌은 먼 곳이 됐다는 설명이다. 방송국이 시청률을 앞세워 프로를 퇴출한다면 할 말이 별로 없다.그러나 지나치게 수익 구조만 따져서는 안 될 일이다.KBS도 10월말로 예정된 가을철프로 개편에서 유일한 청소년 드라마를 종영키로 했다고 해서 말들이 있다.여드름과 평범한 일로 갈등을 겪는 청소년 세계를 그리는 ‘접속,어른들은 몰라요’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것이다.이유는 물론 시청률이 5%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접속,어른들은…’은 인터넷 접속이 평균 5000회로 청소년 세계에선 인기 드라마라고 한다.그러나 시청률 만능 원칙만이 적용됐다고 한다. 방송 드라마도 영상 기록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방송의 공익적 역할도 잊어서도 안 된다.전원일기도 전통적인 농촌상을 대신해 정보화 시대 농촌을 있는 대로 담아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농촌 문제까지 극화해 낸다면 정말 훌륭한 영상 기록이 될 것이다.‘접속,어른들…’도 광고는 안 될지 모르지만 볼 만한 TV프로 하나 제대로 없는 청소년들의 공감을 얻는다면 투자를 아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청소년들을 위해서라면 프로 하나쯤 손해 봐도 좋을 것이다.방송사들의 용기있는 발상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개발 청사진/ 강북 권역별 특화… 균형발전 ‘날개’

    1100만 수도 서울 시민들의 눈이 서울시의 강북개발 구상에 쏠리고 있다.시는 낙후된 강북지역을 중점개발해 강남·북 지역간 균형을 이루고 시민화합을 도모,사람이 살 만한 매력이 넘치는 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이다.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시의 구상과 전망,문제점,외국사례 등을 짚어본다. ◆왜 강북개발인가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강남북 불균형문제는 없었다.그러나 70년대 이후 정부가 강남권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집중투자하면서 강남·북 차별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강남권이 업무·상업기능은 물론 주거·교육 등 생활환경 전반에 걸쳐 살 만한 도시의 뼈대를 갖춘 반면,강북권은 도심 공동화가 심화되고 외곽지역도 계획성 없는 난개발로 몸살을 앓는 등 지역간 불균형 현상이 누적되면서 국민통합의 저해요인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다(표 참조).게다가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등 현행 지방세제도 지역불균형을 심화시켜 잘사는 동네와 못사는 동네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근본대책이 필요하다는것이다. 이명박 시장이 지난 7월 취임과 동시에지역균형발전 추진단을 발족시킨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시가 ‘강북 개발’이란 용어 대신 ‘지역 균형발전’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금천·구로 등 한강의 서남부에 위치한 열악한 자치구들도 우선개발 대상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재개발 모델사업의 대상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이 시장은 오는 28일 시정운영 4개년계획을 발표하면서 3곳의 시범사업 대상지를 확정,발표할 예정이다.도심지를 중심으로 도심인접지역,외곽지역,도심·외곽 연결지역에 각각 하나씩 정해질 전망이다. 현재 노후불량 주택지역 3곳과 주택재개발구역 3곳 등 모두 6곳이 후보지로 거론된다.후보지를 낀 자치구로는 ▲도심인접지역은 종로 마포 서대문 중구 ▲외곽지역은 성동 광진 은평구 ▲도심·외곽 연결지역은 동대문 성북 성동 중랑구 등 10여개 구가 거명된다.시는 해당 자치구 주민들의 호응도와 도시정비효과,상징성 등 3가지 요인을 감안해 최종 대상지를 정한다. ◆언제,어떻게? 시는 개발대상지가 정해지면 바로 사업에 착수한다.시기는 이르면 내년 초가 된다.사업은 개발 대상지를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도시개발공사가 참여하는 공영개발인 도시개발사업방식이나 기존의 주택재개발 사업방식(민영개발)을 병행하게 된다. 시는 이번 개발의 개념을 구릉지 등 지역적 여건에 맞는 특화개발로 잡고있다.도심인접지역은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도록 ‘직주근접형’으로 개발한다.따라서 용적률과 건폐율을 최대한 허용,고밀도로 개발한다.밤만 되면 텅비는 도심공동화 현상을 막자는 취지다.반면 북한산 자락 등 구릉지를 낀 외곽지역은 자연생태환경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저밀도 개발을 하게 된다.이른바 ‘생태형’ 개발이다.중간권역은 주거중심형으로 개발된다. 공영개발에 필요한 재원은 도시개발특별회계의 3700억원을 활용한다.모자라면 국고보조나 금융권 차입 등도 고려하고 있다. ◆미래상은? 4∼5년 뒤 강북권은 주거여건은 물론,교육·문화·경제여건이 대폭 개선돼 쾌적하고 매력이 넘치는 살 만한 도시로 변하게 된다. 우선 공영개발로 도로·공원 등 도시기반시설이 대폭 확충돼 주거환경이 쾌적해지고교육여건도 개선된다.재개발사업구역에는 학교가 들어서고 낡은 학교시설은 보수된다.우수자립형 사립학교와 외국 우수학교의 분교도 유치,자녀교육문제 때문에 강남으로 이주하는 현상은 사라진다.침체된 강북경제도 살아난다.재래시장은 현대시장으로 바뀌고 복원된 청계천 일대 주변에 다국적기업이 입주하는 등 동북아 금융거점도시의 핵심센터로 부상한다.역사와 문화도 살아 숨쉬게 된다.광교·수표교 등 문화유적을 원상회복,21세기 시민들이 600년 수도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향유하게 된다. ◆남은 과제 이러한 ‘서울신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챙겨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시 산하 도시개발공사가 사업주체가 되어 공영개발할 때 생길 수 있는 부자를 위한 도시개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국고나 시비의 전폭 지원이 없는 한 독립채산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도시개발공사로서는 적정한 수익성을 내야 한다.고밀도 개발로 이어지고 보행환경 등 미래 환경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토지수용 때 보상문제를 둘러싸고 지주들과 마찰도 예상된다.게다가 세입자들로서는 이런 경우 전세보증금만 챙길 수밖에 없어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대진대 도시공학과 김현수 교수는 “강북지역은 못사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곳으로 소형 평형의 임대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이들이 밖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도개공 입장으로서는 못 팔아먹는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어서 결국 국고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정의철 교수는 “소득 불균형에 따른 괴리를 해소하려면 임대아파트를 짓기보다는,가격이 안 맞아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다세대·다가구 주택 매입을 시가 최대한 추진,개·보수해 서민들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도심재개발 구역과의 형평성도 문제다.다동·서소문·을지로 등 서울중구 도심재개발은 10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도로·공원 등 사회기반시설 설치를 민간 사업시행자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시는 이런 도심재개발구역을 이번 공영개발 시범사업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시범사업 대상지역이나 도심재개발구역이나 주거환경이 나쁘기는 마찬가지인데,지역에 따라 공공기관의 지원에 차이가 난다면 도심재개발구역 내 주민들로서는 형평성을 잃은 처사라고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도심재개발구역이 서울시 전체의 절반이나 되는 중구의 한 관계자는 “이 때문에 도로·공원 등의 공용용지를 시가 먼저 설치해주고 나중에 민간사업 시행자에게 설치비용을 부담시키는 방안으로 도심재개발 사업을 활성화해줄 것을 시에 건의했으나 아직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3개 시범단지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청계천 주변 일대에 대한 개발방향과 연계성을 확보할 필요도 있다.청계천 복원 추진본부는 동대문 패션타운을 청계천까지 확대하고 문화관광산업을 유치,서울형 신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또 일부 지역을 ‘외국인 투자촉진지구’로 지정,입주 외국기업에 대해 세제혜택과 사업 인허가 관련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세계적인비즈니스센터로 만든다는 구상이다.이렇게 청계천이 복원되면,비싼 임대료 등의 부담 때문에 이 일대 원주민들의 재입주는 시의 의도 여부에 상관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앙부처와의 업무협조도 중요하다.우선 건설교통부는 서울시가 강북권을 미니 신도시 형태로 재개발하려는 데 대해 부정적이다.기존 주거지나 시가지를 재개발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뿐더러 공급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신도시 개발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게다가 건교부 산하 중앙도시계획위원회는 시가 추진중인 3개 재개발 시범단지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권을 갖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세제개편 문제도 협의해야 한다.시는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10%를 재원으로 하는 ‘지방소비세’를 만들고 양도소득세를 지방으로 넘기는등 시와 자치구의 재정력을 모두 넓히는 방향으로 세제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그러나 재경부는 양도소득세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도시속 도시' 외국사례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도시 속의 도시(Town in town)’들이 잇달아 들어서고 있다.특히 선진국들은 수도(首都)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추세다.독립된 권역 건설로 강력한 이미지와 정체성을 살리는 한편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환경친화적 생태계를 조성하는 등의 다목적 포석이다.지하철,경전철 등 대중교통 시스템 개편을 개발의 축(軸)으로 한 것도 공통점이다.허허벌판에 조성하기도 하지만 기존 시가지를 재개발,특화하는 경우도 많다. 수도 ‘신도시’ 건설에 가장 앞선 나라는 프랑스.장기적인 계획과 뚝심을 갖고 개발에 나선 게 특징이다.루브르궁 서쪽 8㎞ 지점 230여만평을 대상으로 1994년까지 무려 37년간 ‘라 데팡스(La Defense)’ 프로그램을 진행했다.8㎞의 일직선 도로를 통해 라데팡스에서 개선문 등이 곧바로 보인다. 파리시는 프랑스혁명의 ‘역사 현장’으로 오랜 전통이 서린 곳이지만 발전이 정체된 라 데팡스를 크게 두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을 추진했다.상업·업무권역인 A지구에는 호텔 4곳,회의·전시장 60여곳,각종 공연장 등을 세웠다.B지구는 ‘주거 벨트’다.학교,교회 등 거의 전체를 공원지역으로 지정한 점이 특색이다. 현재 유럽 최고의 상업지구로 각광받는 라 데팡스에는 3600여개 업체의 본사가 몰려 있다.이 가운데 14개가 프랑스 기업 랭킹 20위권에 들어있을 정도다.13개 회사는 세계 ‘톱 50’으로 꼽힌다. 영국도 수도 속 ‘신도시’ 조성에 적극적이기는 마찬가지다.1994년부터 ‘런던 밀레니엄 타운 개발계획(Greenwich Peninsula)’을 내년까지 10개년 사업으로 펼치고 있다.규모는 660여만평으로 상업,주거,교육시설 등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이곳은 1980년대 중반 이래 세계적 대기업인 ‘브리티시 가스’ 등이 들어선 산업단지다.대규모 철근 적재소와 쓰레기 처리장 등 오염시설이 속속 들어서면서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전락한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독일의 경우 서울의 ‘강남북 균형 개발’과 비슷한 취지의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를 진행중이다.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동·서베를린 균형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93년 착수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흰색쏘나타 소유 군인 추적

    포천 영북농협 총기 강도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14일 범행 수시간 전부터 현장주변에 범행에 사용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승용차가 주차해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소유자를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탐문수사를 통해 지난 11일 오전 11시 농협에서 150m 떨어진 도로와 낮 12시40분 농협 인근 축협 앞에서 각각 번호판을 흰색 종이로 가린 EF쏘나타를 보았다는 동네 슈퍼마켓 주인과 주민 등 7명의 목격자를 찾아냈다. 신정배 포천경찰서장은 이날 범인들이 군용 연막탄·소총 등을 범행에 사용한 것과 군 작전 때처럼 번호판을 흰색 종이로 가린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범인은 직업군인이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제보를 통해 7∼8명의 용의자를 수사선상에 올려 수사중이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고 13일 조사한 1명의 용의자에게서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군에서 흰색 쏘나타 승용차를 소유하고 몽타주가 닮은 군인 2∼3명을 불러 조사를 벌이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으나 군 관계자는 “군 수사기관에서 용의자를 파악,조사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경찰은 1991년과 95년,96년에 경기도 광주·부천·남양주 등지 군부대에서 K-1 소총과 실탄을 분실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범인들이 98년 제조된 연막탄을 사용한 점으로 보아 당시 분실된 소총이 범행에 사용됐을 개연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
  • [굄돌] 서점의 서비스

    며칠 전 인문서 한 권을 사기 위해 제법 규모가 큰 동네 서점엘 갔다.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그래도 한동안 화제가 됐던 책이라 으레 있으려니 했다.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카운터로 가서 서점 주인에게 필요한 책의 제목을 말하고 그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대답 대신 그는 서가 한 쪽을 가리키며,그곳에서 찾아보란다.아무리 찾아도 사야 할 책이 없었다.가서 또 물어 볼 수밖에. 아르바이트생 한명을 부르더니 같이 가서 찾아보란다.분명 그곳에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이번엔 둘이서 서가를 온통 쥐 잡듯 훑어보았으나 허사였다.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고 찾는 책이 없다고 하자,주인의 대답은 미안함보다는 오히려 당당함이 배어 있었다.“그럼,찾으시는 책이 없나 본데요.” 찾는 책이 없는 것 같은데,책을 주문하면 며칠 후에 준비해 놓겠다는 대답을 기대하던 나는,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이없어하며 서점을 나서다,몇 년 전에 갔던 독일 보쿰 시내의 작은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직업이 직업인지라 좋은 책이 있으면 사기 위해 유학생과 함께 서점엘 가곤 했다. 직원에게 관심 있는 책의 주제를 설명하자 서점 중앙에 있는 컴퓨터로 오라고 하더니,주제별 검색을 한 후 서점에 있는 책과 없는 책을 구분해 주었다.서점에 없는 책은 24시간 안에 받아 볼 수 있다며,책을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서점을 나오면서 유학생에게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 친절을 베푸는 것이냐고 묻자,누구에게나 이런 서비스를 한다는 대답이다. 동네 서점의 서비스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출판 통계에 따르면 1년에도 수백 군데 서점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인터넷 서점과 할인서점 대형서점에 고객을 빼앗겨 더 이상 동네서점을 운영할 수 없다고 하소연이다.이런 외부적인 요인을 탓하기에 앞서,서비스 개선으로 고객들이 기쁜 마음으로 찾아오는 서점을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박철준 뜨인돌출판사 부사장
  • 우체국 인력난 덜고…재택근무 짭짤 주부 집배원 인기 정규 집배원 씁쓸

    재택근무를 하는 주부 집배원이 늘고 있다.이들은 동네 입구에서 정식 집배원으로부터 우편물을 전달받아 주민들에게 배달해 준다.주로 대규모 아파트단지에 많다.11일 우정사업본부와 일선 우체국에 따르면 주부 집배원은 서울에 280여명을 비롯,전국에서 45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올 들어 전국에서 100여명을 뽑았다. 일선 우체국과 1년 단위로 채용 계약을 맺어 하루 6시간 일하고 한달에 60만원 정도의 보수를 받는다.가사를 돌보면서 부수입을 올릴 수 있어 주부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우체국도 심각한 인력난을 덜고 정식 직원 채용에 따른 경비도 줄일 수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고 있다.우편물이 폭증하는 대선과 연말연시를 앞두고 주부 집배원의 수를 크게 늘릴 예정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우편물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다음달 말까지 주부 집배원300여명을 새로 뽑을 예정이다. 서울 강북우체국은 현재 11명인 주부 집배원을 오는 16일까지 24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서초우체국에서도 조만간 7명에서 9명으로 늘어난다.노원·양천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우체국들도 연말까지 주부 집배원을 대폭 증원할 것으로 알려졌다.주부 집배원들은 배달사고의 위험성이 있는 신용카드 발급 우편물,법원·경찰에서 발부되는 특별송달 우편물 등을 뺀 일반 우편물을 주로 배달한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5년차 정규직 집배원 1명의 인건비는 연간 2500만원 이상이지만,주부집배원은 1000만원 미만”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에서 주부 집배원으로 일하는 양민자(42)씨는 “집안 일을 피해 근무를 하고 돈도 벌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그러나 기존 집배원들은 “인력난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임시처방에 급급해한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S우체국에 근무하는 집배원 김모(43)씨는 “우체국이 정규 집배원을 더 채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당장의 이익을 위해 주부집배원을 찾고 있다.”면서 “우체국내 비정규직 집배원들은 일자리 보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당한 만큼 앙갚음 ‘복수극’ 뜬다?

    가정을 버린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던 딸이 손으로 병을 깨고,이를 집어들어 위협한다.아버지로부터 뺨을 맞자 이에 질세라 아버지의 새 부인의 뺨을 두 번 내리친다. 장안의 화제인 MBC일일연속극 ‘인어아가씨’의 한 장면이다.지금까지 전체적인 테두리를 볼 때 이 드라마는 가정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위해 배다른 동생의 약혼자를 가로채는 등 자신의 가정을 망가뜨린 사람들에게 똑같은 아픔을 겪도록 하겠다며 복수의 일념을 불태운다.‘너도 얼마나 아픈지 한 번 당해봐라.가정을 버린 주제에 딸을 때려? 내가 맞았으니 넌 더 세게 맞아라.’ 얼핏보면 주인공의 복수에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는 듯 비쳐진다. 49%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정상에서 독주하는 SBS월화극 ‘야인시대’의 모티브도 복수다.김두한은 극중 “독립운동은 반드시 만주에서 싸우는 것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드라마에서 그는 일제로부터 동네 상인을 지키고, 일제와 타협하는 무리를 척결하기 위해 싸운다.주먹세계의 질서를 내세우고 명예까지 따지면서 복수와 폭력을 당당한 사나이의 덕목으로 내세운다. 이처럼 요즘 방송되거나 종영된 인기드라마들을 살펴보면 복수를 기본 얼개로 삼는 게 많다.SBS드라마 ‘청춘의 덫’에서는 극중 심은하가 “당신을 부숴버리겠어”라며 멋진(?) 복수를 펼쳤고,얼마전 종영된 ‘여인천하’의 강수연도 복수의 화신으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한 많은 민족’의 정서에 부합하는 드라마들이 인기를 누릴 수밖에 없지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꼭 ‘당한 만큼 갚아주는 복수극’만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호부호형’을 못해 집을 뛰쳐나간 허준(전광렬)은 의술을 배워 ‘동의보감’을 쓰는 등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하는 것으로 세상에 멋진 복수를 해낸다.중상모략을 일삼는 유도지(김병세)를 포용하고 자신을 첩의 자식으로 낳은 어머니에게 효도로 보은한다.이 드라마의 경우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기본 구도로 설정했으면서도 남을 해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이긴다는 보편적 진리가 묵직한 여운을 남겼었다. “요즘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렇게 쓰면 안된다.'고 했던 종류의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어요.시청률에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작가인 저도 요즘 같은 풍토에서는 그런 드라마를 쓰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후배 작가들은 ‘시청률 공식'만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쓸 작품을 써보겠다.' 는 생각을 가져주길 바랍니다.”‘모래시계’의 작가 송지나씨의 최근 지적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주현진기자 jhj@
  • 아시안게임/ 볼링 - 차미정, 극적 뒤집기

    하마터면 덜미를 잡힐뻔 했다.모두가 우승을 낙관한 볼링 여자 3인조에서 한국은 타이완에 극적인 재역전승을 거두고 가까스로 금메달을 움켜 쥐었다. 초반엔 차미정(대전시청)-김수경(천안시청)-김여진(서울시시설관리공단)이 나선 한국이 일방적으로 앞서 지난 3일 김수경의 개인전에 두번째 금메달이 무난해 보였다.3번째 게임까지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4번째 게임부터 한국은 타이완의 무서운 추격에 휘말려 흔들리기 시작했다.결국 5번째 게임에서 타이완에 32핀차 역전을 허용했다.마지막 6번째 게임 마지막 주자 차미정이 나설 때까지도 전세는 변화가 없어 한국의 패배가 현실화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위기에서 차미정이 신들린 듯한 플레이를 펼쳐기 시작했다.이틀전 2인조전에서 막판 자신의 실수로 금메달을 놓친 것을 만회라도 하듯 스트라이크 행진을 거듭했다. 차미정은 평균 264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고,한국은 18게임 합계 3805점으로 타이완(3796점)을 9핀차로 제쳤다. 개인전 우승자 김수경은 볼링 첫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한국 대표팀에서 나이는 가장 많지만 경력은 가장 짧은 차미정은 대학(충남대 경제과) 졸업 후 직장을 잡지 못해 정신적으로 방황하던중 우연히 동네볼링장에 들러 스트레스를 푼 게 입문한 계기다. 선수등록 후 2년 만인 94년 국내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현대성우에 입단했고 97년 대전시청으로 옮긴 뒤로는 국가대표로 성장,이듬해 방콕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에서 제외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지난 6월 대표팀 최종선발전을 겸한 홍콩 아시아선수권 직전 대표팀 최고참 김희순(34)이 발 부상을 당해 임시 대표로 뽑혔고,아시아선수권에서 2인조와 마스터스 2관왕과 개인종합 2위를 거머쥐어 다시 주전을 꿰찼다.레인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승부욕이 강하지만 처음에 꼬이면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게 단점. 차미정은 “손끝 감각이 완전히 살아나 자신감이 생겼다.”며 남은 경기에서의 금메달 추가를 다짐했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대선후보 부인에 듣는다] (2)권영길후보 부인 강지연씨

    권영길(權永吉·61)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부인 강지연(姜知延·59)씨는 일요일인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연립주택 자택에서 기자들을 맞았다.“막 외출을 하려는 중”이라고 양복차림으로 나오는 권 후보 얼굴 뒤로 공간이 모자라 방 가운데까지 서가가 돌출해 있는 서재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는 게 보였다.매듭단추로 앞을 여민 개량한복 차림의 강씨에게선 인내로써 고난을 이겨낸 강인함이 풍겨 나왔다.남편에 대한 신뢰와 함께 민노당의 대선 공약과 쟁점 이슈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거실에 사각상을 펴놓고 앉아 1시간30분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권 후보의 노모가 나와 “수고가 많다.”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대담에는 신연숙 문화에디터와 김경애 동덕여대 교수 겸 본사 명예논설위원이 참여했다. ■결혼과정 ◇권 후보가 오빠의 친구라던데,어떤 점이 좋았나요. 고종사촌 오빠의 경남고 동기예요.오빠가 서울 우리집에서 대학을 다녀 자연히 친구들이 드나들게 됐고,그래서 만나서 대화도 하게 됐는데 (권 후보가)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이좋았습니다.연애감정으로 바뀐 시기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진지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50년대 말 당시에 이미 전쟁고아 등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혼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나중에 친구들과 서클을 만들어서 3∼4년을 계속했지요. ◇청혼은 어떻게 하시던가요. 연애를 하자 친정어머니가 극구 말렸어요.저는 있는 집 딸이고,권 후보는 없는 집 외아들에 홀어머니가 계시니,반대할 이유는 충분하죠(웃음)? 하지만 말리니 더 하고 싶고.헤어지지 못하고 시일이 경과하니 어머니께서 지치신 나머지 이젠 거꾸로 ‘빨리 시집가라.’고 하시더라고요.당시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결혼을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결혼을 하게 되면 단꿈을 꾸기 마련인데요,어떤 꿈을 갖고 있었나요. 당시에도 출세를 지향하지는 않았어요.최선을 다하는 삶에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피차 그런 마음에서 선택했죠.부귀영화를 꿈꾸지 않은 것은 제가 어렵지 않게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결혼에 후회를 한 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지만,근본적으로 되돌아보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다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조금 밉지요(웃음). ◇시부의 좌익 경력에 대해 부인이나 친정은 알고 있었나요. 그 당시 산청이라는 곳의 지리적 여건이 누구나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 그런게 문제되지는 않았어요.아무 생각없는 양민도 당하거나 죽거나 했지요.낮에 오는 사람들은 ‘(빨치산들) 먹을 것 주지 않았나.’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희생되고,밤이 되면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이쪽이나 저쪽이나 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지리산 주변 동네가 다 그랬지요.결혼한 뒤 시댁의 먼 집안어른들까지 시아버지를 칭찬하시더군요.욕할 데가 없는 분이라고….그것 때문에 결혼을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결혼하고 나선 단점도 보였을 텐데요. 사귈 때는 말 수가 적은 것이 매력이였는데,살다보니 재미가 없어 안 좋더라구요.자상하고 세심한 남편은 아니지만,따뜻한 사람이고 그걸 느낄 수 있게 해요.고통 중에도 지지하고 참고 잘 지내고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이 아닌가 해요.집안일은 거의 못하지만 정리 같은 것은 스스로 해요.혼자 밥상을 차려먹기도 하고,식사 후에 찬통을 닫아 냉장고에 넣고 그러지요.좋아하는 된장찌개 생선찌개 요리는 곧잘 합니다. ■가정생활과 자녀교육 - 집 담보로 대출받아 생활 ◇남편의 성격은 어떤가요.독단적인 면은 없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아이들 문제만 해도 조언은 하지만 스스로 충분히 생각했는지만 묻고 결정은 아이들에게 맡기고 또 그에 따라줍니다.저에게도 독재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남편이 회사 그만두고 직장 없이 유학갔을 때 불안하지 않았나요.파리에서의 학비는 어떻게 조달했나요. 그저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지요.일단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학비는 모아놓은 돈 조금으로 해결했고요.특파원 시절 남들은 여행도 휴가 받아서 가고 그러던데,우리는 언제나 12월30일∼1월초 신문 안 나올 때만 기차타고 이웃나라 다닌 게 전부예요.그래서 사진배경이 다 겨울밖에 없어요. ◇자녀교육도 모두 성공하신 것 같습니다만 해외 유학에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데요. 딸은 사위와 함께 서울대 박사과정을다니다 사위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국의 코널대로 갔어요.그것만으로는 생활이 안돼 고생했는데 딸도 이번에 같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게 돼 별 걱정은 없어요. 아들은 결혼할 때 전세를 얻어주었는데 2년 지나니까 ‘부부가 그동안 번돈하고 융자 2000만∼3000만원을 보태 집을 산다.’기에 ‘잘했다.’고 했죠.당초 건축과를 지망했다가 경제학과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오전 8시 출근에 밤 12시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염증을 느꼈는지,집을 전세주고 그 전세금을 받아서 하고싶던 공부를 다시 하겠다더군요.프랑스에서 실내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제분과 관련된 보도가 나올때의 심정은 어떠했나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해요.우리사회에 호화 해외유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다만 ‘우리는 아닌데…’ 하는 그런 생각을 했죠.그런 것 일일이 섭섭해하면 안됩니다.병 납니다. ◇부부싸움은 하시는가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한번씩 해야 정든다고들 하잖아요.그러나 남들 하는 그런 식으로는 못해봤어요.풀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안될 뿐 아니라 스스로‘나는 이래야 한다.’는 틀 속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권 후보가 파리특파원에서 돌아와 노조부위원장 나선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나요. 후보의 삶을 보아왔고,어떻게 살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지는 않았어요.후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비하면 앞으로 살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 길을 가야겠다.”고 하더군요.그 뜻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반대할 수가 없었죠. ◇당시 기자생활은 유신체제를 유지하는 축으로서의 역할이 있었는데. 양심이 허락하지 않은 글을 요구받을 때 고통스럽고 힘겨워하는 것을 봤어요.하지만 자기 양심에 어긋나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고심했어요.그런 것 때문에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지요.언노련에 있을 때 기성 정당에서 “비례대표 1,2번 주겠다.돈 없는 것 아니까 그냥 와라.” 이렇게 한 적도 있고,“지역구를 주겠다.” “노동부장관을 시켜주겠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후보는 시종 일관된 길을 가는 사람이었습니다.만약 흔들렸다면 나도 지지를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 때 갔더라면 하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추호도 없었습니다.농담으로는 해봤죠.‘한번 할 말 하고 나오는 것은 어떠냐.’고.그랬더니 ‘기성 정당으로는 실현하고 싶은 것 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자기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절했다고요. ◇후보께서 술은 잘 하시지요. 한번 시작하면 한도없이 마셔요.기자시절 술 마시는 데 대해 바가지를 긁지는 않았는데,왜냐하면 술마시고 들어오면 ‘나의 사랑하는…’ 뭐 이런 말도 하고,평소 안 하던 애정표시를 하거든요.사람도 부드러워지고 하니 바가지를 긁을 필요가 없었지요. ◇생활은 어떻게 하시나요.수입은 있나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쓰고 있어요.당에서는 일절 월급은 없습니다.국고보조금은 정책개발을 위해 쓰고 당 상근직원과 지구당에만 조금씩 나갑니다.그래도 오늘 세 끼 안 굶으면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가 잘하고 있다면 1만원짜리 당비가 많아질 것으로 믿습니다. ◇후원회를 하면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나요. 지금까지 후원회 해서 들어온 돈은 만져본 적도 없습니다.그 돈은 당에 들어가서 운영자금으로 쓰입니다.당원들이 1만원씩 특별당비를 내는데 쓸 수가 있겠습니까. ■개인생활 - 호스피스로 6~7년간 봉사 ◇이화여중·고에 이화여대를 나오셨는데,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 미래에 대한 꿈은 무엇이었나요.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습니다(웃음). ◇외국서 오래 사셨는데 외국어는 잘하십니까. 불어는 잘은 못해도 입을 여는 데 겁은 없어요.통하기야 하지요.영어보다는 불어가 더 낫습니다. ◇파리에서 학교는 안 다니셨나요. 사실 그림을 좋아해서 졸업후 홍대 미대를 가고 싶었어요.편입도 가능했지만 기회를 놓쳤는데 프랑스에서 기회가 돼서 청강생으로 미술공부를 많이 했지요.재미 있었습니다. ◇여유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인터넷으로 예약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아니면 (권 후보와) 둘이서 동네 호프집에서 맥주를 잘 마셔요.운동은 대모산에 잘 다녔지만 요즘은 시간도 없고 해서 잘 못가요. ◇후보 부인으로서의 득표활동은. 기성정당의 후보 부인은 득표를 위해 많이 방문하고 다니시더군요.사찰이고 어디고 다니면서 시주도 하고 기부도 하다보면 관계가 다져지는 것인데,그런 돈을 쓸 형편이 안됩니다.그래서 인간적으로 가서 도와드리고 할 뿐이지요.그리고 서울에서는 거의 살림만 하고 지역구인 창원에 집이 있어 1년에 3분의2는 그곳에서 지냅니다.창원에서는 당원모임,여성당원과의 활동,노래패 모임 등을 하지요. ◇이전에 사회활동은 많이 하셨습니까. 호스피스로 6∼7년 봉사했는데 오히려 받은 게 너무 많습니다.죽어가는 사람 만나는데 내 가족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했고,후보가 감옥에 갔을 때도‘숨넘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감옥)안에서 건강하게 잘 있는게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정치관 - 진보정당 길닦는 역할 최선 ◇민노당이 군소정당이라서 생각하는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가 당장 뭔가 이뤄내자는 욕심 거두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좋은 세상 만드는 데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진보정당이 이 나라에서 뿌리내려 보수정당과 함께 의견조율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봐요.그런 역할을 할 날을 위해 우리는 길 닦는 역할로 끝나도 좋다는 그런 생각입니다.실제로 우리가 주장한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상가임대차보호법,이자제한법들이 우리 당에서 제안해 이뤄진 법들입니다. ◇파리에 살면서 유럽의 좌파로부터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까요? 그런 면도 있을 겁니다.정치는 진보와 보수가 다듬어 나가야 합니다.보수내에서 이 당 저 당 나뉘어서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정쟁으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민을 생각하고,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펴는 정당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민노당의 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창당된 지 2년된 정당으로서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당입니다.저도 당원입니다.민노당은 분회를 거쳐 지회장에게 보고되고,전국에서 이런 것들이 모여 상부로 취합됩니다.여기서 전문가 토론을 거쳐 정책으로 확정됩니다.민노당의 정책은 그런 과정을 거쳐 개발한 것입니다.저도 당원으로서 마땅히 지지합니다. ◇민노당이 공약으로 내건 ‘10억원이상 재산 보유자 부유세 신설’은 어떻게 보시나요. 처음에는 발표를 잘못했다고 생각했어요.강남 주변에 사는 분 대부분이 집한 채에 예금 몇 억 있으면 보유세 대상인줄 알고 있더라고요.알아보니 실제는 그렇지 않더군요.대상은 상위 2만∼5만명 내외가 될 것이라는 게 공신력있는 연구소의 발표 내용이더라고요.이런 점들을 잘 홍보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어제 TV토론에서 신경써서 전달하려 하더군요. ◇남편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평소 말로 자주 꼬집거나 반대 의사를 냈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꼭 필요할 때만 얘기한다고 생각하는지 제 얘기엔 긍정도 하고 잘 받아주는 편입니다.어제도 TV토론 답변방식에 대해 조언했어요. ◇대선에서의 예상 득표는. 많이 얻어야지요.그러나 당원들이 만족하는 수준이면 저도 만족하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권영길 후보가 돼야 하는지 한마디로 말씀하신다면. 세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람입니다.원하는 세상 만들어줄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강지연씨는누구 - 재벌 외동딸… 파업현장 자주 방문 권영길 후보의 부인 강지연씨는 재벌집 외동딸이다.동방생명(현 삼성생명)창업주인 강의수씨가 바로 그의 부친이다. 권 후보가 좌익이자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소년기를 보낸 반면,부인 강씨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점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태어난 곳은 경북 영천이지만,초등학교부터 줄곧 서울에서 다녔다. 이화여대 재학 중 고종사촌 오빠의 친구로서 알게 된 ‘대학생 권영길’의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순수하고 좋아,집안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지만 선뜻 결혼을 결정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강씨는 친정으로부터 큰 도움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부친이 암으로 병원에 입원,삼성으로 기업이 송두리째 넘어갔고 재산정리도 제대로 못한 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홀어머니 아래 외아들 외동딸의 결혼이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동시에 모시고 살았다.종교는 가톨릭.중학교 때부터 개신교 학교를 다녀 기독교의 봉사와 겸손의 정신을 일찍이 받아들였다.그러나장손의 며느리로서 제사를 받들어야 했고,문규현 신부가 방북한 임수경을 데리고 들어오는걸 보고 감동을 받아 가톨릭을 ‘선택’했다.물론 권 후보가 가톨릭 영세를 받은 사람이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됐다.종교는 고난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된다고 한다. 현재 3남매의 자녀 중 장녀 혜원씨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남편과 함께 미국 코널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권 후보가 명동성당에서 총파업투쟁을 주도,당국의 수배를 받는 바람에 장녀 결혼식장에는 강씨 혼자갈 수밖에 없어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혜원씨 부부는 같은 성씨의 동성동본이기도 하다. 또 장남 호근씨는 프랑스에서 건축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으며,차남 성근씨는 서강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결혼 이후 남편의 ‘운동가적’ 풍모를 지켜 보면서 세상의 다른 면을 볼수 있게 된 것이 참 다행스럽다고 그녀는 종종 말한다.실제로 그녀의 외모 어디에서도 재벌집 외동딸의 풍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엔 어색하던 각종 집회에도 참여하다 보니 익숙해졌고,나중엔 파업현장 어디도 머리띠를두르고 갈 정도가 됐다고 한다.민노당 열성당원이기도 한 그녀는 요즘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민주노동당과 남편인 권 후보에 대한 ‘긍지’로 가득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젊은 두소설가 문학적 접근 보기/ 이 시대의 사랑법, 정답은?

    항용 우리의 정신과 몸에 밀착해 있다고 믿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여기에서 발원하는 ‘사랑법’은 문학적으로 어떻게 구현될까.원초적이고도 근원적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두가지 소설 박청호의 ‘질병과 사랑’(문학과 지성사),김종광의 ‘모내기 블루스’(창작과 비평사)를 만난다. 적어도 사랑법에서는 서로 극단적인 시각을 노정시킨 이 두 작품은,얼핏 판이한 사고방식을 서술하면서도 놀라운 유사성을 갖는다.사랑은 우리의 사회규범이 제시해 준 것처럼 대단히 진지하거나 숭엄한 것이라기보다 즉물적·즉자적이고 즉흥적이라는,그래서 그릇에 담기는 물처럼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수용하거나 스스로 이런 변화를 이끌어 간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주 진지한,그래서 군데군데 철학적 담론이 툭툭 튀어나오는 ‘도시적 사랑’이라는 현상(질병과 사랑)이 있는가 하면,조용한 농촌 마을을 밤마다 뒤집을 듯 요란법석을 떠는 ‘가루지기 타령’식의 해학적 씩씩거림(모내기 블루스)도 있다.도식적으로 읽어 내자면 불륜이라는 ‘도시적 사랑’의 매우 유력한 유형을 통해 도시인의 고뇌와 권태를 그려내는 ‘질병과 사랑’은 제법 진지한 담론을 깔고 있다.“사랑? 지금 사랑이라고 했어? 네가 사랑을 알아? 그래 네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게 도대체 뭔데?”하는 식이다. 이에 반해 ‘모내기 블루스’는 다분히 고답적인 사랑법을 통해 인간의 속내를 해학적이고 희화적으로 들여다 본다.“불꺼진 바깥채 아들방에서 색시가 죽겠다고 질러대는 소리가 참으로 장대하며,아들 질퍽대는 소리 또한 사람 잡겠다 싶었다.그러니 열 걸음은 족히 떨어진 안방 이내 몸의 잠까지 깨웠지.” 성석제의 웃음과 윤흥길의 해학을 버무린 듯한 충청도식 의뭉스러움(작가 김종광은 충남 보령 태생이다.)이 그의 입담에 배어 있다.아들에게 핀잔을 들은 뒤 “임마,나는 농사경력이 반세기여,반세기.”라고 띠알거리면서도 끝내는 경운기로 대표되는 첨단 영농의 흐름에 밀려난 아버지의 아쉬움을 무채색으로 그려내 직설법보다 더 설득력있게 ‘세상의 달라졌음’을 선언하고있다. 그러길래 여고 때 가출해 술집을전전하다 아들놈 꼬드김에 삯일꾼으로 얹혀온 서해의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습성’을 목도하고서도,이를 “세상이 달라졌는데 도리없잖유.”라는 식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기성세대의 아픔,그 아픔이 리얼리티를 더해줘 자칫 가벼울 수 있는 작품의 중심추 구실을 감당하고 있다.“처자는 여직 자는감?” “새벽참까지 만리장성을 쌓으니 오죽허겄슈.” “그럼 야들이 한몸으로 잤단 말여?” “동네 떠나갈 뻔 했슈.” 이렇듯 천역덕스럽게 아들놈 ‘사고친 일’을 되뇌는 늙은 부부의 대화가 진지성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애는 치료약을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인간의 몸을 감염시키는 치명적 질병’이라는 박청호는 ‘질병과 사랑’에서 허무와 권태를 재상산해 내는 육체적 사랑을 통해 현대인의 병들어 가는 일상을 날카롭게 추출해 내는 솜씨를 보인다. “모르겠어.미친 듯이 구멍을 파도 허무할 뿐이야.널 완전히 가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타인의 몸을 어떻게 다 소유할 수 있겠니? 잠시 경험하는 것만도 얼마나 가공할 만한 일인데.”“또 철학하네.”“화가가 그것도 몰라? 네 모델들을 다 네가 소유할 수 있어?” 박청호는 절대가치의 개념을 가진 ‘사랑’을 ‘하늘에서 지상으로’가차없이 끌어내려 거추장스러운 인식의 허울을 벗겨낸다.“그래,철학박사는 연애도 그렇게 철학적으로 하나? 예전에 자기를 임신시키고도 배신하고 떠난 애인을 또다시 만나 연애한다? 이거 정말 경이롭지 않아? 아니면 몸정이 그렇게 깊었어?” 이들의 작품은 이렇듯 서로 상이한 배경을 두고 전개되지만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의 일이라는 것,그래서 시간의 바다를 헤엄치는 인간이 시간성을 거역할 수 없다는 준엄한 현실인식과 맞닥뜨린다. 시아버지가 될 법한 노인네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논두렁에서 질펀하게 블루스 춤판을 벌이는 당돌한 ‘도시처자’의 회귀본능과,“누구의 아들인들 무슨 상관이랴.어차피 이 아이는 내 아이인 것을.”이라는,혈통이 모호한 임신을 두고 남편으로부터 끝내 발길질을 당하는 ‘박사 와이프’의 강고한 자아의식이 극성의 화음을 이루고 있다.이들의 일탈 혹은 상식을파괴하는 일탈적 행각은 체념으로 귀결된다.사랑이 고결한 형이상학적 가치라거나,거창한 통과의례를 거쳐 뿌리를 내린다는 봉건적 의식은 이들에게 이미 무의미한 질서다.사랑이라는 것도 결국 현실에서만 우거질 수 있다는 나름의 현실인식 때문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수준높은 시설·다양한 여가활동 지원 송파구는 ‘실버 천국’

    ‘송파구는 실버 천국.’ 경로의 달을 맞아 송파구(구청장 이유택)가 다양한 ‘실버 정책’으로 노인들의 삶의 수준을 한차원 높여 나가고 있다.생활이 어렵고 심신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보는 것은 물론 신바람나는 노후생활을 위해 다양한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것. 구는 오는 11일 송파 여성문화회관에서 노인 컴퓨터 경진대회를 여는 것을 비롯,26일까지 다양한 노인행사를 준비중이다. ◆할머니는 실버대학으로,할아버지는 골목길 대장으로-으뜸 노인복지 정책으로 실버대학이 꼽힌다. 송파2동사무소내 주민자치센터에서 시범운영중인 실버대학은 지난달 정원을 웃도는 73명이 등록해 인기를 그대로 반영했다.매주 화·목요일에 머리손질법,화장법 등을 배운다. 구 관계자는 “학생중 할머니가 50명”이라면서 “노인들 반응이 좋아 내년 3월부터는 28개동을 4개동씩 묶어 확대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건강한 475명의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골목 호랑이 할아버지제도’도 돋보인다.자기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담배꽁초도 줍고 비행 청소년을선도하는 등 지역 가꾸기에 한몫하고 있다. 집안에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몸을 움직이면서 지역사회 발전에도 참여할 수 있어 노인들의 호응이 크다.이밖에 실버악단과 실버합창단 활동으로 지역문화 창달에 기여한다. ◆석촌호수 인기 ‘짱’-최근 석촌호수 일대가 노인들의 새로운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석촌호수로 나오면 먹거리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해결돼 종로구 종묘 광장에 모여있던 노인들까지 이곳으로 옮겨오고 있을 정도다. 구 관계자는 “지하철 잠실역이 가까이 있는 데다 공원 인근의 노인종합복지관,불광사,복지단체인 ‘연꽃마을’ 등에서 점심도 무료로 제공해 주중에는 하루 250∼300명,주말엔 이 보다 두배나 많은 노인들이 찾는다.”면서 “편의시설을 늘리고 나무 등도 가꿔 더욱 편안한 휴식처로 꾸미겠다.”고 말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새영화/ 남자 태어나다-섬마을 총각들 권투로 대학가기

    ‘남자 태어나다’(11일 개봉)는 유려한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에 아기자기한 연기를 녹여낸 고만고만한 코미디영화다. 지도에도 없는 섬 마이도.마을 최고령 할아버지의 99세 생일날 ‘지령’이 떨어진다.‘대학가는 놈 만들어라.’ 마을 어른들은 대성(정준) 만구(홍경인) 해삼(여현수)에게 권투를 시켜 대학에 보낼 계획을 세운다.복싱계를 떠난 왕코치(이원종)가 사범으로 붙으면서 연습이 시작되는데…. 영화란 장르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빛바랜 사진과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과거를 눈앞의 이미지로 살려내는 데 있다.‘남자…’는 그 향수의 정서를 노렸다.흑백사진을 연결하다가 정지된 사진이 영상으로 바뀌면서 시작하는 영화는,1983년의 아물아물한 과거를 현재시제로 만들어 관객을 초대한다. 하얀 접시에 한아름 쌓은 빵,‘새벽종이 울렸네∼’ 노랫소리,리어카상의 번데기,막 싸우다가도 꼿꼿이 서서 가슴에 손을 얹는 국기 게양식 등 이제는 볼 수 없는 80년대 풍경이 정겹게 묘사된다.하지만 복고로 승부를 걸기엔‘해적,디스코왕 되다’‘챔피언’ 등이 선수를 쳐서 낡은 느낌이다. 게다가 오래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바랜 듯한 색감은 섬마을의 아름다운 자연을 오히려 개성 없이 만들어 버렸다.동네 어른들과 건달 등 조연급들의 코믹 연기는 눈에 띄나 특별한 정도는 아니다.그래도 홍수환씨가 지도했다는 권투신은 ‘챔피언’에 비해 긴박감이 있는 편이다. 억지로 감동을 심으려 한 것은 문제.“꿈만 있으면 세상에 나가 터져도 포기하지 않는다.” “남자는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아.”라는 식의 ‘꿈 타령’이 지나쳐 짜증이 난다. 거기다 대상을 왜 남자에 한정지었는지도 모를 일이다.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진짜 남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초 같은 남성들에게나 통할 듯싶다.‘천사몽’의 박희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김소연기자
  • [男男女女] 딸같은 며느리?

    “나는 항상 며느리와 딸처럼 지내려고 생각해 왔다.” 결혼을 앞둔 나에게 시어머님 되실 분이 다정하게 말씀하신다.아들만 둘을 둬서 적적하셨다는 어머님은 사근사근한 며느리를 맞을 꿈에 부풀어 계신 듯하다. 갑자기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나는 엄마에게 과연 어떤 딸이었을까? 지난 2월 카드값 막아야 하니 100만원을 달라고 무턱대고 엄마를 졸랐다.그런가 하면 엄마 생신에는 10만원짜리 선물을 사면서 내 생일에는 스스로 20만원짜리 구두를 골라 신는다.직장 생활한 지 3년이 넘었지만 동네 가게에 심부름이라도 갈라치면 엄마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부모께 드리는 용돈? 가끔 기분 좋으면 차에 기름 넣어 드리는 것이 전부다. 시어머님께도 이런 엄마 노릇을 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시어머님이 원하는 딸 같은 며느리란 어떤 모습일까? 예비신랑에게서 들은 말을 요약해 보면 무뚝뚝한 아들 대신 때때로 안부전화를 드리는 상냥한 말동무,집안의 대소사 때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듬직한 일꾼,맞벌이를 하면서도 신랑에게 따끈한 아침밥을 챙겨주는 헌신적인 주부,명절 때는 모든 음식을 척척 만들어내는 요리사를 ‘딸 같은 며느리’라고 생각하시는 듯하다.그러나 나는 이런 ‘슈퍼우먼’ 딸 노릇을 할 자신이 없다. 이렇게 동상이몽을 꿈꾸는 인공적인 모녀 관계는 애초부터 성공하기 어렵지 않을까.고부 관계는,‘아들’과 ‘남편’이라는 1인2역을 하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맺어진 사회계약적인 관계다.가족이긴 하되 중간다리인 ‘그 남자’가 없으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운이 좋아 서로 마음에 맞으면 친근한 사이가 될 수 있지만,가령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사이가 된다고 해도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새로 가족이 된 고부가 모녀처럼 특출나게 다정해야 한다면,그 중압감은 상대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갖게 할 수 있다.나아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 급격히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다. 고부 사이가 가족으로 거듭나려면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다음 서로가 익숙해질 때까지 참아내야 하지 않을까? 딸 같이 지내자는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시어머님은 못내 서운하신 듯하다.그러나 나는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만 말한다. “어머님,우리 엄마가 그랬듯 30년 가까운 애증의 세월을 감당하면서까지 저를 딸로 삼을 준비가 되셨나요,정녕?” 이송하기자
  • 남과여/ 장·차남들의 ‘속앓이’ - 장남 마음 너희들이 알아?

    대한매일 새 기획면 ‘남과여’가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 신설된다.‘남과여’는 최근 급변하고 있는 남녀의 성(性)의식과 결혼관,가족제도의 변화등을 21세기 개인의 행복추구 관점에서 조명한다.특히 이혼과 재혼율이 급증하는 사회현상의 이면을 분석,삶의 방식에 대한 다양한 읽을거리와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장남과 밑의 남자형제들간에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장남과 맏며느리는 “옛날처럼 곳간 열쇠를 물려 받지도 못했는데 책임질 일은 조선시대 수준”이라고 불평이다.부모 모시기를 비롯해 집안 대소사를 치르는 부담을 남동생들과 나누자는 것이다.그러나 남동생 부부들도 할 말은 있다.“혜택은 가장 많이 받고 자랐으면서 정작 ‘장남 의식’은 희박해 우리가 덤터기를 쓴다.”고 아우성이다.할 말 많은 우리시대 장·차남의 서글픈 자화상을 들여다 보자. 2남1녀의 장남인 강철민(34·회사원·경기도 성남시,이하 가명)씨는 요즘 일찍 퇴근해 부인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부인이 전업주부인데도 설거지·청소를 하고 주말에는 외식으로 비위를 맞추고 있다.이유는,지난해 가을 결혼한 남동생이 이번에는 추석 전날이 아니라 당일 아침에 오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직장을 가진 제수가 추석 전날 당직이라서 오기 힘들다고 했다.부모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둘째 며느리를 감싸고 돌았다.강씨의 부인 역시 결혼한 뒤 2년 정도 직장을 계속 다녔지만 명절이나 제사때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가로 향했다.따라서 그녀로서는 추석날 아침에야 오겠다는 동서가 달가울 리 없는 것이다.강씨는 “지금까지 아내가 불만을 말해도 이해하기가 솔직히 힘들었는데 제수씨가 들어 오니 새삼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두고 장남에겐 애환이 중첩된다.형편이 어려워도,말 못할 사정이 있어도 ‘장남의 도리’라는 무거운 책임이 항상 어깨를 누른다.그래서 명절에는 특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장남이 늘고 있다. 2남2녀의 맏이인 박경수(38·회사원·서울 마포구)씨.홀로 대구에서 사시는 어머니가 병환이 나자 형제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생겼다.박씨만 서울에서살고 다른 형제는 모두 어머니집 근처에 모여 살지만 막상 어머니가 편찮자 “서울의 병원이 좋다.”는 핑계로 박씨에게 모셔가기를 바랐다.박씨는 “어머니가 누나 둘의 아이들을 키워주시는 등 남다르게 가깝게 지내셨는데 이럴 때만 장남을 찾는 것이 속상하다.”면서 “큰 아들이지만 재산상속이나 다른 면에서 특별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여동생만 둘인 김경호(34·자영업·서울 성동구)씨는 무남독녀와 결혼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결혼 전에는 부모가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것이냐면서 1년 넘게 반대했다.처가는 처가대로 “우리는 딸 하나뿐이니 아들 노릇을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두 집에서 맏아들 노릇을 하자니 답답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설이나 추석 전날에 본가인 부산에 갔다가 차례를 물리자마자 처가인 강원도로 발걸음을 돌린다.그나마 시집간 두 여동생이 명절 오후에 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부산과 강원도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면 힘이 빠지지만,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을 비치면 부인은 “음식장만도 안하면서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면박을 준다. 그는 “벌써 4년째 명절마다 전국을 헤매고 다니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면서 “맏이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라고 털어놓았다. 이 시대 맏아들들은 말한다.“아우들아,너희가 장남을 아느냐?” 이송하기자 songha@ ■“차남도 할말 있다구요” 김유철(34·회사원·서울 서초구,이하 가명)과장은 이번 추석에도 ‘장염에 걸린’아내를 병원에 입원시킬 예정이다.김과장 부인은 명절 때만 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며 가슴이 답답한 ‘명절증후군’에 시달리지만,사실 장염은 아니다.‘멀쩡한’부인을 입원시키는 이유는 같은 동네에 사는 부모와 형 부부의 따가운 시선 때문.‘나쁜 며느리’로 낙인찍히는 대신 ‘병약한 며느리’를 택했다.이 해프닝은 사실 한살 위인 형과 형수 탓에 벌어졌다. “형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책임감같은 ‘장남의식’은 늘 부족했다.결혼도 차남인 내가 먼저해 형 대신 5년간 집안 대소사를 다 치렀다.형은 2년전 결혼했는데 이번에는 직장다니는 형수의 뒷수발까지 아내가 떠맡았다.아내의 불평을 들어 보면 내가 생각해도 너무해 지난해 추석부터는 아예 병원에 보낸다.” ‘맏 아들·며느리는 천형’이라는 한탄이 드높지만 ‘장남같은 차남’과‘맏며느리같은 둘째(또는 셋째)며느리’의 불평불만도 이처럼 위험수위에 다다랐다.장남으로서 특혜는 챙기고,책임은 동생에게 떠미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이다. 둘째 며느리인 이혜영(40·주부·경기 성남시)씨는 얼마전부터 교회에 다닌다.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시부모가 장남 집을 놔두고 자신의 집으로 제사를 가져오려 하기 때문이다.이씨는 “큰 댁이 집살 때 시부모님들이 논 팔아서 1억원을 보태주셨다.우리가 집살 때는 차남이라고 외면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차남 집으로 제사를 모시겠다면 어쩌냐.”며 고개를 외로 꼰다. ‘아들 있음’도 장·차남 갈등의 원인이다.‘무조건 둘째에게 시집가라.’는 친정어머니의 성화로 둘째 며느리가 된 배경진(35·교사·서울 양천구)씨.그는 첫째는 아들,둘째는 딸로 ‘골라’낳았다.시집에서는 장남이 딸 둘만 낳고 더이상 아기를 갖지 않자,명절 제사를 아들이 있는 배씨네 집으로 옮겨 모신다.배씨는 “장남과 맏며느리가 미안한 마음도 없이 차남에게 덤터기를 씌운다.”고 울상이다.그는 “제사를 가져 오면 시부모님도 모셔야 되는데,아들 낳은 게 죄냐.”고 반문한다. 부모의 ‘편파적인’사랑 역시 분란의 씨앗.차남 김종진(33·큐레이터·경기 성남시)씨는 “최근 아내가 ‘어머님께서 맏며느리만 예뻐한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가슴 아파했다.자라면서 형을 더 챙기는 집안 분위기에 상처를 받은 그로서는 부인의 말이 칼날처럼 가슴을 그은 것이다.차남이나 둘째며느리도 장남처럼 부모를 잘 모시고 싶지만,부모가 ‘그래도 장남이지.’하는 태도를 보여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장남도 힘들겠지만,차남은 차남대로 할 말이 있다.“형님,필요할 때만 장남 노릇 합니까?” 문소영기자
  • [대~한민국 24시] ‘노인천국’ 종묘광장

    ‘환갑을 훌쩍 넘긴 당신의 외로운 아버지는 오늘도 어느 공원 한 구석에서 짝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3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훈정동 90 종묘 앞 광장.어떤 이들은 이곳을 종묘공원으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아무튼,이 무렵 종묘 입장권 매표소 앞 잔디밭에서는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앉은 이들도 빈 페트병을 두드리며 장단 맞추기에 골몰했다. 덩실 더덩실 돌아가는 춤판의 주인공은 남녀 노인 8명이었다.옆에 나뒹구는 술병이 말해주듯 얼굴은 불그레 물들어 취기가 오른 모습들. 노인 쉼터의 ‘원조’는 종묘에서 버스한 정거장 거리인 종로3가 탑골공원(파고다공원)이지만 지난해 3월부터 독립운동 발상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새 단장을 하느라 1년간 폐쇄하면서 ‘놀이터’로는 잊혀져 버렸다.그렇다고 새 둥지를 멀리서 찾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낙원동’이라 부른다= 이 역시 인근 동네 이름이 낙원동이어서 잘못 붙여진 것.하지만 적어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 아직까지 ‘토’를 다는 이는 없다. 해가 일찍 뜨는 요즘 4만2000평에 이르는 드넓은 광장의 하루는 오전 8시쯤 하나 둘 노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열린다.이날도 신문지나 두툼한 마분지,바둑·장기판 등을 옆구리에 낀 노인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인원이 많지 않은 데다 바삐 날갯짓을 하는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지건만 노인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오죽 몸을 기댈 곳이 없는 형편이라면 약간은 찌뿌드드한 날씨에 움직이기가 수월찮은 노구를 이끌고 벌써부터 도심 광장까지 찾아왔을까.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이곳도 결국 그들에게 ‘낙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된다. 그러나 어쩌면 이 광장이 마지막 남은 ‘노인 천국’인지도 모른다.아니나 다를까. 오전 10시쯤 되자 광장 구석구석에 놓인 벤치는 이미 만원사례를 이뤘다.가져온 신문지나 마분지 등을 벤치에 깔고 앉은 노인들은 이제야 ‘동지’를 만난 기쁨으로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동시에 소란스러워졌다. 노인들은 화장실에 갈 때도 벤치에돌을 하나 올려놓곤 했다.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영역 표시’를 해놓는 것. 한 노인이 옆자리로 눈을 돌려 ‘까치’담배를 사러 인도(人道)의 매점을 다녀왔는데 한개비에 100원이나 하더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며 대화를 청했다. “내 나이쯤 돼 보이는데 자녀가 몇이오?”“아들만 둘인데 집 한채씩 물려줬지요.”“그렇다면 자식들에게 제법 대접받고 살겠는데….”“그게….” 몇년 전만 해도 사업이 번창해 한때는 10억원대의 돈을 다루기도 했다는 A(73)씨는 “잘 나가던 시절엔 부도란 말은 내 사전에 없다고 생각했는데,방심한 게 탈이었는지 그만 당하고야 말았다.”면서 “막상 돈이 떨어지자 사회는 물론 식구들조차 그리 달갑잖은 눈치”라고 단골로 광장에 나오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광장은 작은 ‘공화국’= 끼니를 때워야 할 낮 12시.웬 일인지 많은 노인들이 꿈쩍도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더러 아낙네들이 머리에 받치고 나르는 김밥이나 떡 따위를 느릿느릿 삼켰을 뿐이다.길 옆 ‘24시간 포장마차’에서 비스킷 몇 조각,또는 삶은 달걀 등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만 갔다. 이같은 상인이나 종교 전도자들이 많은 것은 인파로 북적대기 때문에 ‘약발’이 먹힌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뜻일 게다.사람들은 이곳에도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고 자랑을 늘어 놓듯 말하곤 한다. 점심시간을 다른 곳에서 보내고 뒤늦게 광장에 출연하는 ‘오후반’의 가세로 이젠 발 디딜 틈조차 없어질 무렵 내기 바둑이나 장기판 구경에 ‘단물’이 빠지면 노인들은 ‘쇼핑’에 나선다.‘호르몬을 생성해 온 몸에 다 좋다.’고 선전하는 만병 통치약을 파는 곳도 몇 군데 된다.깔끔한 노인들은 광장 한복판에만 2∼3곳 되는 구두 수선소에서 반짝반짝 광을 내거나 닳아빠진 굽을 갈아치울 수도 있다. 오후 1시20분쯤 이번엔 40대로 보이는 신사가 확성기를 들고 전도를 위한 설파를 시작했다.종교를 가져야 축복받는다는 말에 말쑥하게 차려 입은 백발 노인은 “선생 말대로 신(神)이 존재한다면 왜 멀쩡한 사람들을 물난리로 고생시키고,노인들을 버림받게 만드느냐.”고따져 물었다.설교하던 사나이는 몇 마디 응수를 하다가 지쳐버린 듯 어디론가 사라졌고 대신 기독교 신자인 다른 노인이 끼어드는 바람에 무신론 시비는 급기야 일파만파로 번지고 말았다. 이곳엔 이밖에도 조금 특별한 게 있다.바로 ‘박카스 아줌마’.저마다 들고 다니는 크고 작은 가방은 음료로 가득 차 불룩 튀어나온 게 특징이라면 특징으로 꼽힌다.‘박카스 드세요.’라며 손님을 끄는 게 보통이다.하지만 요구르트도 많이 판다. 음식이나 음료를 판매하는 통로는 이른바 ‘일천냥 가게’인 셈이다.요구르트 가격은 500원.비싼 이유는 ‘팁’이 붙기 때문이다.여성이 드물다 보니 이성(異性)으로서 말 동무가 돼 주는 대가다.만약 술을 같이 하고 싶으면 ‘위험수당’까지 합해 1만원 정도를 팁으로 내놓아야 한다. ◆가슴은 아직 뜨겁기만= 잔디밭 춤판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를 무렵인 오후 4시30분쯤 광장 관리사무소 앞에서 갑자기 싸움판이 벌어졌다.하루에도 심심찮게 열리는 ‘시국 강연회’가 비화된 것이다. 1시간 전 관리사무소 옆 종로국악정소광장에서 열린 강연회는 사뭇 진지하게 출발했다.70세쯤 되어 보이는 첫 출연자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청중은 족히 100명은 됐다.노인은 “각 정권에 워낙 속아 살아온 국민들이라 서로 믿지 못해 헐뜯는 습성이 있다.”고 지적한 뒤 “이젠 나쁜 얘기는 서로가 하지 않기로 하자.”고 제안했다. 시간이 흐르자 이제까지 듣기에 열중하던 청중들은 옆 사람들과 짝을 지어 소주제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았다.말하자면 분임토의가 이뤄진 셈. 모두가 흥미진진하게만 여기던 강연이 변질된 것도 이 대목에서 비롯됐다.한 노인이 “정권이 바뀌면 보복한다더라.”며 한 마디 불쑥 내뱉은 게 화근이었다.청중 가운데서 “누구한테 여당 편 들라고 하느냐.”는 가시 돋친 말이 쩌렁쩌렁 울려나왔다. 상대가 “그게 편 들라는 말이냐.그렇게 보는 당신이야말로 특정 정당 손들어주기야.”라고 하자 건너편에서도 “무식한 놈”이라고 맞받아쳤고 결국 멱살잡이로 이어졌다.어떤 이는 이를 다들 나라 걱정이 많은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오래 입어 해진 셔츠의 단추가 모두 날아가면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1시간이 넘도록 다툼은 계속됐지만 볼썽사나운 싸움판만 있는 건 아니다. 7∼8시가 되면 그나마 가족들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급해졌거나 돌아갈 곳이 있는 노인들은 이제 하나 둘씩 서서히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도 술이 고픈 노인들은 포장마차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또 캄캄해진 벤치에서는 요즘 유행어로 ‘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도 심심찮게 발견된다.이따금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면서 유혹해 오는 ‘박카스 아줌마’의 손을 떨치지 못한 것.물론 이러한 유혹은 대낮에도 없지 않다. 여관행에 드는 기준비용은 3만원이다.그러나 역시 에누리 없는 장사는 없는 법.‘있어 보이는’사람이라고 여겨지면 5만원까지 치솟지만,반대 경우라면 값은 형편에 따라 1만원 안팎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목수 일을 한다는 C(62)씨는 “보통 ‘○○동 아줌마,△△ 여사’로 불리는 매춘부들끼리는 서로가 알아보는 눈치”라면서 “나이가 주로 50대 안팎이지만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이 가세해 10여만원을 받고 소개비를 떼 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가뜩이나 시대가 낳은 갖가지 시련을 헤쳐온,오늘날 어르신들의 하루는 이런저런 해프닝 속에 힘겨운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었다.‘당신도 늙어 보라.’고 꾸짖는 듯이 말이다. 송한수기자 onekor@
  • [임영숙 칼럼] 남의 일이 아니다

    아침 출근길 남산 순환도로 반대편 차선에 개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무단 횡단을 하려다가 자동차에 치인 듯했다.1m 정도 떨어진 인도에서 다른 개 한 마리가 쓰러진 동료를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었다. 지난 8월초 집중호우에 경기도에 사는 내 친구가 수재민이 됐다.소설가인이 친구는 강물이 넘쳐 집에 물이 들어 오기 시작하자 키우던 개 7마리와 간신히 빠져 나왔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주말에 찾아가 보았더니 사람 허리까지 물에 잠긴 집에 남아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집의 겉 모습만 멀쩡할 뿐 모든 것이 망가진 것이다.전화는 불통이고 컴퓨터와 냉장고는 쓸모없게 됐고 물을 먹어 뒤틀린 옷장에서 꺼내 놓은 옷에서는 아직도 물이 흐르고 여기저기 쓰레기 산이었다.소설 원고와 자료들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태풍 ‘루사'로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창졸간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비하면 내 친구의 경우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중·고생 두 딸을 등교시켜 주고 돌아와 보니 불어난 강물에 집이 휩쓸려 큰딸이 실종돼 곡기를 끊은 채 딸을 찾아 헤매는 강릉의 한 아버지,그는“자식이 없어졌는데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겠느냐.”며 울먹였다.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자동차로 대피하다가 급류에 떠밀려 혼자만 살아 남은 가장의 심정은 또 어떠하겠는가. 솔직히 나는 그동안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에서 수재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그냥 안타까운 ‘그림’으로만 바라보았다.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었던 것이다.그런데 내 친구는 자신도 수재민인 처지에 태풍 ‘루사’의 수재민들을 걱정했다.“얼마나 기가 막힐까.내가 당해 보니 그 심정 알 것 같아.어느 구석이나 황토 천지고 뭐든지 손 보아야 할 텐데….” 친구의 말을 들으며 느닷없이 5·18광주민주항쟁 당시의 광주시민들이 떠올랐다.당시의 광주를 기록한 소설 ‘봄날’을 쓴 작가 임철우씨는 광주가 아직 ‘소문의 벽’에 갇혀있을 때 광주시민들의 고립감을 기자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다.가족과 친지들이 제나라 군대에 학살당하는 참혹함을 겪고 있는데,언론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철저히 침묵하고 TV 화면은 연예 오락프로그램으로 흥청거릴 때,분노와 절망과 무력감을 느꼈던 당시 광주 사람들의 심정을. 스스로도 “무슨 뚱딴지같은 연상작용인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침신문에 수재민의 친지인 듯한 독자가 ‘재해 특집방송’을 더 내보내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내 보낸 TV의 무신경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랬다.내 친구가 당한 재난에 망연자실했지만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었다.수재의연금을 조금 내고 친구의 젖은 옷들을 차에 싣고 와 대치동의 한 빨래방에 맡겨 세탁하고 고장난 시계를 수리점에 맡긴 일로 나는 친구의 고통을 덜어 주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게 친구에게 천분의 일,만분의 일이나 도움이 됐을까.운이 좋아 올 여름 수해에서 비켜섰지만 천재지변은 사실 어느때 들이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이라는 이번 수재는 한동안 떠들썩하게 다루어지겠지만 또 슬그머니 잊혀질 것이다.가옥의 ‘단순침수’에 그친 피해를 입은 친구네는 한 달이 지났음에도 수해복구가 아직 멀었고 친구는 이제 몸살을앓고 있다.태풍 ‘루사’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강원도나 경북, 경남, 전북지역 수재민들은 겨울이 지나도록 털고 일어서기 힘들 것이다.그러나 사람들은 남의 고통을 너무 빨리 잊는다. 아침 출근길,자동차에 치여 죽은 동료를 슬픔에 잠겨 바라보던 개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혼자 살면서 7마리의 개를 키운 내 친구는 동네 도둑 고양이들에게까지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는데 집중호우에 많은 고양이가 강물에 떠내려 갔다.넉넉지 않은 형편인 친구의 식객이 줄어 든 것을 나는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는데 그 개는 나의 그 비정함을 돌이켜 보게 했다. 임영숙/ 미디어연구소장ysi@
  • ‘광복절 특사’ 촬영현장 - 탈옥장면 NG…땅굴 드나들기 거듭

    4개의 긴 막대에서 물이 힘차게 쏟아진다.“레디 고.”10m 높이의 크레인위 카메라가 미끄러지듯 내려오자 감독이 소리친다.“승원이 형!” 이윽고 번개조명이 터지고,헐떡대는 소리가 들린다.“으∼흐∼.” 땅 속에서 불쑥두 손이 나오더니 플래시를 입에 문 차승원이 힘겹게 고개를 내민다.마치 자궁 속을 빠져나오는 쌍둥이처럼 이어 설경구의 머리가 보인다.쏟아지는 빗물에 고개를 젖히고 두 팔을 벌려 환호하는 차승원.“컷!” 영화 ‘광복절 특사’는 ‘주유소 습격사건’‘신라의 달밤’으로 코미디영화의 신기원을 연 김상진 감독·박정우 작가가 만드는 국내 최초의 탈옥영화다.이날은 전주공고 안에 지은 교도소 세트로부터 약 50m 떨어진 공터에서 촬영했다.탈옥에 성공하는 장면이다.어딘지 낯이 익다 했더니,‘쇼생크 탈출’의 패러디. 두 배우와 김감독,정광석 촬영감독,박 작가가 현장에 설치된 모니터 앞에 모였다.정감독은 “좋은 순간인데 왜 질질 짜냐.”라며 불평을 하고,김감독은 “시간이 너무 긴데….”라고 아쉬워한다.눈치만 보는 배우들.결국 다시 가기로 했다. 재촬영은 더 고역이다.스태프들은 땅굴 입구를 흙으로 다시 막으려고 흙을 반죽하고 토성을 만들 듯 하나하나 쌓는다.잠시 짬을 내 담배를 피우는 두배우에게 김감독은 “오늘 별로 힘 안들지?”라며 너스레를 떤다.머리부터 발끝까지 흙으로 뒤범벅된 차승원은 “너무 하시는 거 아니예요.”라며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새벽임에도 후텁지근한 날씨에 모기떼들의 ‘공습’으로 현장 상황은 열악했다.비가 안오는 날엔 밤샘 작업을 하기 일쑤여서 60여명의 스태프는 모두 탈진 상태.그 가운데 한 명이 “내일 쓰러져서 실려가면 육수 부족이라고 말해라.”고 농담을 던져도 웃을 힘조차 없는 듯 반응이 없다. 촬영 전 둘러본 교도소 세트는 붉은 벽돌의 아담한 2층 건물 2동이었다.학교 건물 뒤편 공터에 60t의 흙을 붓고,서대문형무소를 재현한 건물과 망루,담을 짓는 데 전체 제작비 32억원 가운데 8억원이 들었다.‘진짜’교도소에서는 촬영을 허가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과묵한 설경구와 달리 차승원은 특유의 느린 말투로 “여기가 담벼락이고요.”라며 직접 설명을 해 웃음을 선사했다.교도소 세트장에 구경 온 동네 꼬마들은 마냥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학생들도 소문을 듣고 우르르 몰려왔다.구경하는 것은 막지 않았지만 “지금 사인을 받는 것은 곤란하다.”는 말에 아쉬워하며 돌아갔다. 교도소 안 촬영은 서울종합촬영소에서 진행된다.이 교도소 세트는 외곽 촬영 때만 쓰는 것.창살을 가르며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럴싸한 건물이지만 감옥 안은 텅빈 채 쓰레기들만 나뒹군다. 준비가 끝나고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구경꾼으로서는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지루한 과정의 반복이지만,감독은 세세한 차이에도 민감해지는 법이다.두번째 촬영의 불만은 땅굴을 나올 때 배우들의 얼굴이 잘 안 보인다는 것.지친 스태프들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지상에 나온 뒤의 장면만 다시 찍기로하고 ‘OK’사인을 내렸다.이 3분짜리 장면을 찍느라고 촬영을 시작한 지 3시간여만이었다. 전주 김소연기자 purple@ ■'광복절…' 김상진감독 -“코미디가 모두 가벼운건 아니죠” “상업영화만 찍냐구요? 저도 나이 60이 되면 칸영화제 감독상도 받고 싶은 놈입니다.” 촬영현장에서 만난 김상진 감독은 검게 그을려 건강해 보였다.왜 탈옥영화를 소재로 택했느냐고 묻자 “다양한 상황을 끌어낼 수 있어 데뷔 때부터 찍고 싶었지만 돈이 많이 들어 엄두를 못냈다.”며 웃었다. ‘광복절 특사’는 탈옥과 ‘역탈옥’의 해프닝을 그린 영화.빵 하나 훔치고 감옥으로 간 무석(차승원).‘고무신을 거꾸로 신은’애인 때문에 충격 받은 재필(설경구).둘은 탈옥에 성공하지만,다음날 자신들이 광복절 특사 명단에 끼어 있음을 알게 된다. “탈옥,서울행과 돌아옴,석방 등 2박3일이 영화의 시간입니다.이 속에서 소외된 자들을 바라보는 편견,사면된 정치인에 대한 풍자를 담아 사회를 통쾌하게 비틀어 볼 생각입니다.” 코미디를 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그는 “코미디는 가볍다고 생각하는 게 불만”이라면서 “사실 우리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코미디”라고 주장했다.김감독은 다음 영화부터는 로맨스·역사·섹스코미디 등 새 장르에 도전할생각이다. 두 배우에 대해서도 칭찬에는 침이 말랐다. “좋은 연기자들이 있는데 영화를 못 만들면 제가 죽일 놈이죠.‘오아시스’에도 교도소가 나오는데 설경구는 전혀 다르게 연기해요.‘느끼한’차승원은 자신을 내던질 줄 아는 연기자죠.” ‘광복절…’은 10월초 개봉이 목표였는데,연이은 비로 촬영이 늦어져 10월 말쯤이나 공개될 예정이다. 김소연기자
  • 고양이 처리를 부탁해요…””들고양이 없애달라”” 민원쇄도

    서울시내 자치구들이 주인없는 고양이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들고양이를 소탕해 달라고 대책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봇물을 이루는 탓이다.이같은 요구는 구청 홈페이지 게시판과 민원부서 전화를 통해 하루 2∼3건씩올라오고 있다. 동대문구 답십리의 한 주민은 최근 구청 홈페이지 민원게시판에 글을 올려“고양이들이 배설물을 곳곳에 쏟아놓을 뿐 아니라 쓰레기봉투를 파헤쳐 악취가 진동하는 것은 물론 주변에 벌레가 들끓는다.”면서 퇴치해 달라고 했다.용산구에 사는 김모(여)씨도 “동네에 고양이가 많아 해가 지면 바깥 출입조차 겁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자지러지게 울어 가뜩이나 늦더위에 시달리는 판에 잠 못 들어 짜증나니 꼭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고양이 소탕은 간단치가 않다.지역경제과,산업위생과 등 담당 부서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먹이가 되는 음식찌꺼기를 없애려면 쓰레기봉투를 수시로 수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종일 지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최근 동물보호 단체들의 감시가 심해져 총기 사용이나 약제 살포 등으로 ‘씨를 말리는’ 일은 엄두를 못내고 포획조차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이에 따라 구마다 ‘24시간 감시체계’를 마련하는 등 갖가지 소탕 작전을 펼치고 있다.동대문구는 떠돌아 다니는 유기동물 관리를 민간 수의사에게 위탁하는 공수의(公獸醫)제도를 시행중이다.영등포·용산·서초를 비롯한 몇몇 구는 사단법인 동물구조관리협회에 위탁했다.은평·도봉·성북구 등은 고성능 덫을 준비,필요한 주민에게 임대해주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대한포럼] 아파트 보유세 묘약 아니다

    강남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뒤 ‘뛰는 아파트값 잡기’가 정부의 현안이 됐다.워낙 강남 아파트값 상승곡선이 가파르다 보니 정부가 다급한 기색이 역력하다.국세청은 이미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나섰고 공정거래위도 아파트 부녀회의 담합여부를 조사해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이해되지 않는 대책이지만 정부의 안타까운 심정을 엿보게 한다.급등을 막아야 하겠으나 수단은 제한돼 있고…. 정부는 또 서울 등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엄격하게 관리하기로 했고 3일쯤에는 재산세 누진율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투기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전방위적으로 아파트값 잠재우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투기대책의 주요골자 중 하나로 거론되는 보유세 강화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십수년전부터 대두된 ‘보유세(재산세) 강화,거래세(양도세) 완화’론이 마치 투기잡는 묘약처럼 등장하고 있는 데 대해 회의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무엇보다 지방세를 다루는 행정자치부는 경제부처와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치솟는 부동산 값을 안정시키려면 아파트 보유과세를 현실화해야 합니다.시가에 비해 훨씬 낮은 재산세 과세표준을 상향 조정해야 합니다.”(재정경제부)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고 주택을 보유한 모든 사람들의 재산세를 올린다면 국민들이 납득하겠습니까.말도 안되는 얘기입니다.”(행정자치부) 과연 보유세가 투기 열풍을 잡는 데 기여할까.대체로 세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고개를 갸웃한다.이는 보유세의 성격 때문이다. 첫째,보유세의 대표인 재산세는 아파트 등 건물을 갖고 있을 때 내는 세금이다.이 세금의 부과시점은 7월로 올해는 이미 지나갔다.올해 세율을 조정하면 내년 7월 계산된다.보유세가 투기잡는 사냥꾼이더라도 현재의 투기와는 무관하게 된다. 둘째,재산세는 지방세수 24조원 중 7000억여원 정도로 비중이 미미하다.부동산 거래에 물리는 세금을 조금 줄이는 대신 보유세를 올림으로써 세액을 현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재산세 오름폭은 엄청나게 된다.거래세를 3분의1정도로 줄이면 보유세는 대략 곱절 가량 늘어야 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10만∼20만원 하는 재산세를 100만원으로 올린다고 하더라도,주민들이 100만원 부담이 무거워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까 하는 의문도 있다. 셋째,가만히 앉아 살고 있는 주민들은 재산세를 곱절 내라고 하면 당장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아무 짓도 안했는데 세금을 더 내란 말이냐.”이런 항의가 쏟아질 게 뻔하다.한마디로 조세저항이 거세질 전망이다. 넷째,현재의 아파트값 급등이 투기바람 탓이라면 이는 분명 양도차익을 위한 것이다.투기꾼들은 보유를 위해 아파트를 사지 않기 때문이다. 이밖에 중앙정부의 목표를 국세가 아닌,지방세로 달성하려는 데서 빚어지는 원칙의 혼선문제 등도 고려해야 할 사안으로 꼽힌다. 결국 보유세를 크게 올리는 것은 여러가지 부작용만 양산하고 투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 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투기를 붙잡기 위해서는 보유세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유세 문제는 그 자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모처럼 세금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난 만큼 자치단체의 재정건전성을 높임으로써 지방자치제도를 정착시키고 조세형평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는 한두개의 정부부처가 의견조정을 함으로써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관련부처들이 모두 모여 지방세와 국세의 조정,거래세 위주로 된 세금의 개편 등 그동안 거론된 문제를 새롭게 토의해야 할 것이다.이를 통해 중앙정부는 보유세라는 정책적 수단을 하나 더 보유할 수 있고 지방정부도 세수확보를 통해 진정한 자치시대를 열 수 있다.보유세 논란은 공무원들의 생각이 땜질식에서 바뀌어야 함을 보여준다. 박재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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