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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유마일리지 최초 도입 6개월새 매출 두배 올려”

    1993년 서울 압구정동의 새서울주유소. 이곳에서 기름을 넣으면 1500원짜리 양말이 공짜였다. 한번 더 넣으면 스카프, 종이카드 위의 60번을 다 채우면 무료 온천 숙박권이 나왔다. 사은품이라고 해봤자 200원짜리 휴지 하나가 전부이던 시절에, 그것도 주네 마네하며 승강이가 벌어지던 당시로써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업계 최초로 ‘주유 마일리지’를 도입,6개월 만에 매출을 두배로 끌어올린 이가 지금의 권기연(40) 새서울그룹 대표이사 사장이다. 한동안 조용하던 그가 최근 강원도 양양의 골프빌리지 조성과 수입차 딜러 가세로 다시 한번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양양국제공항에서 클럽하우스까지 도보로 3분 거리인 골든비치CC(가칭·27홀)는 ‘비행기에서 내려 걸어가는 국내 최초의 골프장’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린에 골프텔(50실)과 콘도미니엄(100실)까지 갖춰 동해안 최고의 골프 빌리지로 조성한다는 게 권 사장의 꿈이다. 오는 9월 회원권을 분양한다.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느냐는 지적에 권 사장은 “동서고속도로가 완공되면 불과 1시간30분 거리”라며 자신있어했다. 그의 핸디는 10. 얼마전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본 닛산차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 공식딜러로도 선정됐다.“강남 터줏대감이라 누구보다 강남사람들의 심리를 잘 안다.”는 그는 “새달 1일부터 본격 시판에 들어가 연말까지 700대, 내년에는 1800대를 팔 계획”이라고 밝혔다.입사 당시 300억원에 불과하던 회사 매출을 지난해 5개 계열사(㈜양양공항컨트리클럽,SS모터스, 호텔 덕구온천,㈜새서울석유,㈜새서울정보통신) 1000억원으로 불려 놓은 그인 만큼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는 경상북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천리건재상’집 막내아들이다. 동네이름(안동시 천리동)에서 상호를 딴 그의 아버지(권영복·현 그룹 회장)는 1977년 서울 개봉동에 사실상 그룹의 모태가 된 대원주유소를 인수하면서 서울로 사업기반을 옮겼다. 이듬해 압구정동에 새서울주유소를 냈다. ‘주유소 재벌’에서 정보통신·골프장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것은 스물여덟살의 젊은 2세가 경영에 합류하면서부터. 권 사장은 “자식들 중에 공부를 제일 못해서”라고 설명했지만 “3형제중에 사업가 소질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주위의 얘기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나와 쌍용자동차에서 1년쯤 샐러리맨 생활을 한 그는 93년 과장으로 ㈜새서울석유(주유소 운영업체)에 입사했다. 처음 석달간은 기름만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주유 마일리지’를 도입하게 됐을까.“기름넣으면서 보니까 완전 배짱장사라더구요. 뭔가 고객들을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마진의 일부를 돌려주는 방안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러나 사은품값만 한달에 몇천만원이었다.“철없는 2세가 사업을 말아먹으려 한다.”며 임직원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아버지(당시 사장)도 못마땅해했다.“마일리지를 도입한 지 두달 만에 매출이 엄청나게 치솟으면서 갈등이 싹 해결됐다.”는 권 사장은 이때부터 ‘오너 아들’이 아닌 ‘장사꾼’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결국 입사 3년 만에 사장이 됐다. 주유원들을 전부 이끌고 일본 MK택시로 ‘친절연수’를 떠날 만큼 직원들 투자에도 적극적인 그는 5년내 매출 1조원대 돌파라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내년 예상 매출액은 2500억원이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악입문 25년 ‘국민 소리꾼’ 장사익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악입문 25년 ‘국민 소리꾼’ 장사익씨

    열정과 사랑으로 휘감는다. 생명과 환희로 빚어낸다. 시원(始原)은 흥얼거림이다. 즉흥적이지만 틀을 깨며 희로애락을 넘나든다. 고요인가 싶더니 폭포수처럼 토해낸다. 맞다. 작곡이라는 개념을 벗어던진다. 국악 시 가요 재즈를 끌어들여 온갖 고생으로 살아온 몸과 마음에 절인다. 반주라야 북이나 피아노, 하지만 절묘한 생동감의 조화를 이룬다. 행복을 기원하는 소망이 있고, 장아찌같은 맛깔스러움으로 다시 듣고 싶어진다. ●박자틀 깬 특유의 창법 “하얀 찔레꽃/순박한 찔레꽃/별처럼 슬픈 찔레꽃/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밤새워 울었지/아, 노래하며 울었지/아, 춤추며 울었지/아, 당신은 찔레꽃”(장사익 시·곡 ‘찔레꽃’) ‘국민소리꾼’ 장사익(57)씨. 전직 카센터 직원, 독서실 운영, 가구점 총무, 전자회사 직원, 보험회사 직원…. 방랑과 고난의 길에서 느즈막한 마흔여섯에 ‘찔레꽃’으로 정식 가수가 됐다. 이후 특유의 창법으로 ‘장사익 류(類)’라는 새로운 음악적 장르를 구축하면서 ‘이 시대의 소리꾼’으로 자리매김했다. 요즘에는 더욱 절정의 소리를 토해낸다. 속도경쟁의 무한시대를 비웃듯 ‘느림의 미학’으로 팬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는다. 오라는 곳도 많고 갈 곳도 많다. 돈이 되든 안되든 ‘뒤풀이’자리를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기립으로 노래를 따라하니 이보다 더 아니 좋을 수 있으랴. 장씨는 올해로 국악에 입문한 지 25년을 맞는다. 서울 종로구 홍지동 자택에서 만났다. 갈옷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며 집앞까지 마중 나왔다. 원래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를 사양했다. 또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집은 가파른 북한산 자락에 떡하니 걸터앉은 듯했다.10여평의 잔디마당에 들어서자 바람의 종소리가 먼저 들려왔다.‘학교종이 땡땡땡’을 비롯, 절간 처마밑에 달린 풍경(風磬) 등 10여개가 마당 한켠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손님을 맞았다. 장씨는 “이놈들은 가끔 오케스트라처럼 반주역할을 한다.”며 웃는다. 이때 참새 몇마리가 휙 날아간다. 세숫대야 크기의 물받이 돌그릇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저긴 참새들이 목마를 때 잠시 들렀다 가는 놀이터”라고 했다. 또 마당 한가운데에는 높이 1m가 채 안되는 ‘토(土)장승’이 몇개 있었다. 노래부르는 장씨 자신의 형상도 있었다. ●북한산자락서 신선처럼 여유 이어 2층으로 올라갔다. 탁 트인 통유리의 벽이었다. 시골집 대문짝이 바닥에 고즈넉하니 놓여 있었다. 응접용 테이블이었다. 앉자마자 눈앞에 인왕산이 병풍처럼 쫙 펼쳐진다. 문득 이보다 더 좋은 집터가 있을까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저쪽은 인왕산 정상으로 뻗는 바위능선이지유. 코끼리 콧잔등처럼 생겼시유. 매일 만나지유.” “인왕제색도가 따로 없군요.” “호텔비 내고 살아유. 집은 (죽을 때)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잖아유. 섬이나 마찬가지예유.” “저걸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소리가 나오겠습니다.” “편하게 잠만 자지유.” “경치가 워낙 좋아 부부싸움도 안하시겠네요.” “왜유, 계속 해유.” 이때 병풍에 쓰인 ‘백년가약서’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하늘 고완선(부인 이름)과 땅 장사익은 금후(今後) 100년 동안 항상 사랑하고 존경하고 늘 행복함을 유지시킨다는 약서(約書)를 씁니다. 단,100년후에는 영원(永遠)으로 계약조건을 변경합니다.’부부의 자필사인도 새겨져 있었다. 러브스토리를 물었더니 “우리 집에는 TV도 없다.”고 동문서답이다. “저 콧잔등 바위는 몇수억년됐지유. 여기 앉아 있으면 (자연의)소리와 풍경이 들려오는 것 같아유. 우리가 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유. 나무들을 보세유, 사람은 더우면 이동하지만 나무들은 서로 싸움을 안해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겨울이 되면 옷을 홀랑 벗더라도 그대로 서 있지유. 나무와 풀들이 바로 저한테 선생이예유.(사람들은)마음이 오염되면 흰 것을 희게 보지 않아유.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집착을 버려야 일이 되는 것 같아유.” 서울을 떠난 지 40년이 됐어도 순도 100%의 고향사투리는 여전히 버리지 않고 품고 있었다. 잠시 창밖을 응시한다. 지나온 과거가 생각났던지 “빗자루로 쓸면서 걸어왔다.”고 했다. 처음부터 노래를 하려고 욕심을 냈으면 아마 오늘날의 자신과는 많이 차이가 났을 것이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노래는 듣는 사람이 공감해야 자신의 소리를 스스로 평가해 달라고 하자 “기쁨과 슬픔,(노래를)들었을 때 ‘아, 그거 내 얘기야.’라는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대신했다. 요새 다들 빨리 가지만 느림속에서 거꾸로 가자, 박자 같은 걸 해체하고, 틀에 박힌 것보다는 정서속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예를 들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의 첫소절 중 ‘헤일 수 없이∼’에서 ‘헤’를 길게 강약을 주면 단어 하나로 삶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고 했다. 장씨는 새우젓으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 삼봉마을에서 7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위로 누님 한명, 남동생 둘, 여동생 셋이 있다. 소리의 기질이 많은 부친은 당시 소문난 장구잡이였다.5일시장 등을 다니며 장사를 했지만 7남매 식구들을 겨우 키워낼 정도의 평범한 농가였다. “지가유, 초등학교 5학년때 웅변을 했시유. 동네 뒷산에 올라 소리를 가다듬는 것이 버릇이 됐지유.5년동안 그렇게 하다 보니 소리가 터졌다고 하데유. 가수 남일해 남인수 박재란씨의 가요도 많이 불렀지유.” 웅변할 때는 정치가가 되는 게 꿈이었으나 곧 ‘밥만 먹고 살자.’로 선회했다. 그래서 1965년 상경해 선린상고에 진학했다. 전 프로야구 선수 김우열씨와 동기동창이다. 역도부 학생들이 입장권을 주며 야구장으로 몰아내는 바람에 야구 구경도 많이 했다. 고 3때 종로 화신백화점 근처의 고려생명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이때 인근 낙원동 음악학원에 다니며 노래연습을 했다. 직장생활 3년후 군입대를 했다. 공병주특기였지만 소리솜씨가 좋아 31사단 문선대에서 근무했다. 나훈아 배호 신중현 등의 노래를 워낙 잘 불러 문선대의 대표가수로 활약했다. 72년 제대후에는 가수의 길로 나서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또 장남의 도리를 할 겸 직장을 구했다. 작은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74년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실직했다. 여기저기 직장을 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전자회사 영업사원도 해보고 노점상도 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 야간대학에 다녔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결혼해 아이들을 낳아 쪼들림의 연속이었다. ●단소,·피리 등 대부분 독학으로 익혀 10여년 방랑끝에 84년 서울교대 뒤쪽에서 독서실을 운영하면서 사업의 길로 들어선다.2년 후에는 무역회사를 차렸지만 곧 문을 닫아 다시 백수생활로 돌아갔다. 그러던 90년 매제의 도움으로 카센터에 취직했다. 직책은 ‘사무장’이었지만 오는 손님들한테 커피를 타주고 말을 걸어주는 ‘시간땜방’이었다.3년을 그렇게 보냈다. 92년말이었다.‘이모양 이꼴로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이듬해 국악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사실 80년부터 국악에 입문해 공부를 계속해 왔던 터였다. 처음 1년동안 단소를 배웠고,5년 동안 피리를 익혔다.86년에는 태평소를 배웠다. 스승에게 사사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독학이었다. 93년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다. 때마침 그해 전주대사습놀이에서 ‘공주농악’으로 장원에 뽑혔다. 또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결성농요’로 대통령상을 탔다. 이듬해 전주대사습놀이에서도 ‘금산농악’으로 장원에 올랐다. 94년 11월 주위의 권유로 서울 신촌에서 첫공연을 했다.100석규모의 극장에는 300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자고나니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내친김에 1집앨범 ‘하늘가는 길’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로 데뷔해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엄청 고생했시유. 다 말로 표현할 수 있남유. 울며 웃으며 예까지 왔지유. 한국적인 된장냄새로 삶의 진실과 정직을 담아내야지유.” 아들 둘은 현재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피리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49년 충남 홍성 출생 ▲ 68년 선린상고 졸업, 고려생명보험 입사 ▲ 70년 육군입대 ▲ 72년 문선대 활동후 제대, 무역회사 입사 ▲ 80년 국악입문. 정악피리와 태평소·대금산조 등을 배움 ▲ 84∼86년 독서실 운영 ▲ 90∼92년 카센터 근무 ▲ 93년 사물놀이와 농악활동 ▲ 94년 장사익 소리판 ‘하늘가는 길’로 가수 데뷔 ■ 음반 하늘가는 길, 기침(98년), 허허바다(2000년), 꿈꾸는 세상(2003년) ■ 공연활동 96년 세종문화회관대극장에서 ‘장사익소리판 하늘가는 길’ 공연 이후 국내 및 해외공연 60여차례. ■ 상훈 전주대사습놀이 ‘공주농악’장원(9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결성농요’로 대통령상 수상(93년), 전주대사습놀이 ‘금산농악’ 장원(94년),KBS국악대상 ‘뜬쇠사물놀이’ 대통령상(95년),KBS국악대상 ‘뿌리패사물놀이’금상(96년)
  • [열린세상] 무너진 마을 공동체 살려내자/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북한산 자락의 세검정 골짜기로 이사를 온 지 십년이 지났다. 가파른 산언덕을 오르내리는 일이 때로 고역스럽기도 하다. 겨울에는 엉금엉금 기어 눈길을 내려가고, 여름에는 땀에 젖어 언덕길을 올라와야 한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펼쳐지는 산등성의 아름다움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생각조차 못하고 산다. 어둠이 걷힐 무렵 드러나는 산허리는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으로 눈부시다. 이따금 구름 사이로 두 마리씩 새가 날기도 한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은 따로 있다. 동네 아이들과 주말마다 축구를 하는 것이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나를 기다린다. 편을 나눠 몇 시간 뜀박질을 한 후, 기껏해야 우유와 빵 한 조각씩을 사주는 것이 전부지만 그것으로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생각해 보면, 공동체라는 것이 무너지고 마을이 해체된 오늘에 와서 아이들은 동네에서 축구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마루에 가방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뛰어나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것은 옛날 일 이다. 어른들이 서로 뉘 집 아이인지를 알아보고 보호하는 속에서,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놀이를 결정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 공동체가 살아있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공동체가 무너진 오늘날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축구 하나만 해도 그렇다. 체능이라는 과외에 돈을 주고 별도로 가입하지 않으면, 동네 운동장에 나와 축구팀 하나도 구성하고 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이들과 어울리며, 무너진 공동체가 우리 사회에 요구하는 또 다른 비용이 과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외라는 것이 자기 자식을 천재로 착각한 대한민국의 맹렬 주부들이 만든 기현상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대문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 놀 수 없는 어린이들을 어른들이 귀가할 때까지 그냥 ‘돌리는’ 것이었다. 천재수업 혹은 선행학습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을 빙빙 돌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빠른 사회변동을 경험하여 왔고, 그 사이 공동체라는 것이 얼마나 유지되기 어려웠는지는 높은 이사율이 말해준다. 읍면동의 경계를 넘어 거주지를 옮기는 이사율이 매년 20% 내외로 기록되고 있다. 일본의 5%, 유럽의 2% 수준에 비해 볼 때, 대단히 높은 비율이다. 옮기고, 올라가고, 넓히는 것이 개발연대 발빠른 사람들의 지표였고 자랑이었다. 그 변화의 와중에 어떤 지속성이 있는 인간관계, 안정된 마을가꾸기 같은 것에 마음을 쏟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옛날 시골마을의 공동체와 동네에 대한 추억이 있는 세대는 노래방에 가서 ‘강촌에 살고싶네’라는 노래를 조릴 뿐, 현실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공동체를 회복하고 마을을 만드는 일은 단순히 어린아이들의 축구 문제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규범도, 삶의 질도,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어렵다. 이것이 요즈음 얘기하는 사회자본이론의 핵심이다. 사회자본이론에 따르면, 국가 안에 동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안에 국가도 있고 동네 안에 경제도 있다. 단순한 지리적 단위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공동체 속의 신뢰와 규범, 질서로 인해 경제발전이 결정되고 국가의 흥망이 좌우된다. 필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지방자치에서도 그러한 측면이 발견된다.1991년 이후 우리가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하였지만, 일정 수준 분권화에는 성공을 이룬데 반해 아래로부터의 자치는 발아되지 않고 있다. 마을과 동네 단위의 공동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공동의 어울림이나 동네일에 관심없던 사람이 어느날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참여에 앞장 설 리 만무하다. 공동체와 마을이 무너져갈수록,‘뿌리 뽑힌 자’들의 허탈한 가치관은 도를 더해간다. 공동체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얘기는 옛 추억을 그리는 복고풍 타령이 아니다.21세기를 열어가야 하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공동체를 살리고 마을을 만드는 일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주말마다 동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함께 하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가기를 나는 소망하게 된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 빗자루 들고 만난 이웃 “정이 저절로 쌓이네요”

    빗자루 들고 만난 이웃 “정이 저절로 쌓이네요”

    “집앞 골목도 깨끗이 치우고 이웃간에 정도 나누니 좋아요.” 부산 동구 주민들은 자신의 집앞 골목길을 스스로 치우며 이웃간의 정을 나누고 있다. 주민들은 매일 아침이면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각자 집에서 빗자루 등 청소 도구를 가지고 나와 집앞 골목길을 말끔하게 치우고 있다. 이처럼 주민들이 동네청소에 나선 것은 5년전인 지난 2000년부터.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부산에 당시 제법 많은 양의 눈이 내리는 바람에 눈에 미끄려져 다치는 사람이 속출하고, 골목에 세워둔 자동차는 눈이 녹을 때까지 꼼짝을 못하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산 꼭대기에 살던 범일1동 5통 주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각자 집에서 빗자루 등 청소 도구를 가지고 나와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눈 치우기를 하면서 이웃을 알게 된 이들은 이후 매일 아침마다 내집앞 내가 쓸기를 하면서 친목을 다지고 있으며, 관내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 구청은 내집앞 내가 쓸기 운동 5주년을 맞아 지난 15일 주민 및 새마을 방역단과 함께 내집앞 골목 쓸기와 방역활동을 펴는 경진대회를 가졌다. 한편 구청은 매달 80ℓ짜리 쓰레기 봉투와 빗자루 등 청소물품을 229개통에 지원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 안보윤씨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 안보윤씨

    “뭘 쓰고 싶은지, 뭘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냥 제 만족을 위해서 쓸 뿐이에요. 현실에선 평생 하지 못할 생각과 행동, 말들을 소설로 풀어내는 거지요. 그래서 소설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욕심은 아직 내면 안 될 것 같아요.”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안보윤(25). 당선소식을 전해온 수화기를 든 채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믿기지 않아서였다. 문학동네작가상은 김영하, 조경란, 전혜성, 박현욱, 박민규 등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해온 신인작가 등용문. 그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명지대에서 사학을 전공한 그는 현재 같은 대학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다. 중·고교 때 백일장에 나가 곧잘 상을 타긴 했지만 글쓰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석달 걸려 완성한 첫 장편으로 덜컥 상을 받았다. 나직한 말투에서 배어나오는 차분한 인상과 달리 각각 독립된 네개의 글이 하나로 엮이는 그의 소설은 자못 엽기적이고, 잔혹하다. 소설에는 언제 실종될지 모를 아이들을 위해 몸 구석구석에 특별한 문신을 새기고, 실수로 죽인 여성의 몸을 절단해 한강에 내다버리고, 자신의 다리를 혐오해 녹슨 못이 박힌 각목으로 자해하는 인물들이 너무나 태연하게 등장한다. 그는 “‘현실에선 이보다 더한 일들도 일어나는데 이쯤이야….’하는 생각으로 썼는데 주변에서 너무 잔혹하다고 지적해 놀랐다.”면서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어이없는 사건이고, 등장인물들이지만 이게 인간 본성의 모순이며, 당신 혹은 나의 모습일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중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서영은은 “가공의 현실과 있을 법하지 않은 인물들에게 옷을 입히는 상상의 활력은 눈부실 만큼 매혹적”이라고 평했고, 문학평론가 성민엽은 “강렬한 작의와 거침없는 발상, 통쾌한 추진력 그리고 이것들을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치열한 태도를 높이 샀다.”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5개월 된 아기 구한 ‘호주 한인 영웅’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는 교포 이형섭(60)씨가 자신의 몸을 던져 두 마리의 개로부터 위협받던 호주인 소녀들과 5개월 된 아기를 구해준 사연이 알려지면서 ‘아기를 구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호주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15일(현지시간) ‘핏불의 두번째 공격:개에 물린 영웅, 아기를 구해내다.’란 제목으로 이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핏불은 애완견이지만 공격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3일 저녁 6시쯤 이씨는 귀가하던 중 동네 거리에서 5개월 된 아기 이사이아를 유모차에 태우고 길을 지나던 엄마 제시카 맥닐(17)로부터 “앞에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같이 있던 친구 타흐니아 모세스(17)는 “우리는 얼른 지나가려고 했지만 개들이 덤벼들었고 이씨를 물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개 두 마리가 이씨의 손을 먼저 문 다음 그가 쓰러지자 얼굴과 다리 등을 무차별적으로 물어뜯었다고 설명했다. 그 틈을 타 맥닐과 모세스, 그리고 아기는 근처에 있던 트럭에 올라타 개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이씨는 옆집 담을 넘어가 겨우 개들로부터 벗어났다. 맥닐은 “개들이 바로 아기 앞까지 따라왔다.”면서 “이씨가 아니었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그는 영웅이다.”라고 칭송했다. 병원으로 실려간 이씨는 두 차례 수술을 받은 뒤 안정을 되찾고 15일 퇴원,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의 딸 엘리사(25)는 “평소에도 가정적인 아버지는 그녀들이 다치도록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흉터가 남는 것을 무릅쓰고 좋은 일을 위해 몸을 던졌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14일 텔레비전 방송(채널 10)에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한편 이 사건을 일으킨 개 두 마리는 지난달 2일에도 한 할아버지(75)를 물어 상처를 입힌 전력이 있어 지난 14일 주인의 동의 아래 ‘처분’됐다고 신문은 전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임해리의 色色남녀] 셸위댄스

    나는 섹스와 댄스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성에 대한 강의를 하고 나면 아주 진지하게 꼭 이런 질문을 하는 여자가 있다.“근데요, 섹스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이구! 사람살려!!! 내 대답은 간단 무식이다.“ 잘 쓰는 남(男)하고 많이 하면 실력, 무지 늘어요.” 댄스도 기본을 배워야 하고 기술을 연마해야 하듯이 섹스도 무술처럼 초식을 익혀야 제대로 잘할 수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섹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이며 그것은 댄스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1)호흡법을 익혀 리듬에 대한 감각을 발달시켜야 한다. 호흡은 조식(調息)이라 하는데 숨고르기를 말한다. 호흡은 들숨과 날숨, 숨을 멈춤의 3가지 과정인데 느리고 깊게 하는 호흡이 좋다고 한다. 남자들이 블루스라고 추는 것을 보면 호흡이고 리듬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여자와 부둥켜 서 있는 남자,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남자가 대부분이다. 이런 남자는 한두 가지의 체위로 평생을 써먹을 확률이 크다. 섹스도 욕구의 해소에 치중하면 호흡이 가빠질 수밖에 없고 호흡이 거칠어지면 기의 흐름(에너지)은 나빠지고 짧아진다. 조루는 호흡조절이 안 되어 짧아져서 통제를 못하는 것이다. 담배 한 개비 정도의 소총으로 담배 한 대 피울 정도의 시간 안에 사정(射精)을 하면 불감증에 안 걸릴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여자의 성(性)은 ‘양은냄비’가 아니라 ‘돌솥’에 가까운 것이다. 한편 여자의 ‘’쓰는 소리도 리듬감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그 사운드에 따라 남자의 흥분을 유도하기도 하고 멈추게 하는 액셀러레이터이자 브레이크의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만약 여자의 ‘소리’가 침묵한다면 그것은 남자에 대한 저항이거나 무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2)상대의 감정과 컨디션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타입은 ‘뽕’시리즈의 동네 머슴같이 무식하게 들이대는 남자이다.‘슈퍼맨’같이 파워도 있고 다정다감한 남자를 원하는 것이다. 성능이 좋은 차일수록 속력을 내도 승차감이 안락하고 덤프트럭은 경운기 수준인 것이다. 3)스텝을 익혀야 한다. 발을 붙였다 떼고 전진과 후진, 좌회전과 우회전, 턴을 하는 과정 속에서 호흡이 들어가고 발에 힘을 주었다 빼고 몸의 무게를 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춤을 배우는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슬로 슬로 퀵퀵, 원 투 차차차 등 춤을 출 때 구령과 번호를 붙이는 것은 스텝을 익히기 위해서이다. 상대와 호흡을 맞춰 스텝을 익힌 섹스는 정신적 만족과 신체적 건강에 보약이 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좌절과 짜증으로 심신이 다운되어 반복되면 성욕감퇴를 갖게 되는 것이다. 4)파트너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섹스도 댄스도 혼자 뛰는 마라톤이 아니다. 반드시 상대와 함께하는 것이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감은 기본인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원치 않을 때는 과감히 포기하고 할 때는 에고를 버리고 헌신하듯 상대에게 봉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섹스, 잘하고 싶으면 댄스부터 배워봅시다. 성 칼럼니스트 sung6023@kornet.net
  • 미아리하면 이제 ‘룰루랄라’ 입니다

    “미아리를 더욱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이끄는 데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작곡가´ 김희갑(사진 오른쪽·70)씨가 최근 서울 강북구 미아리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곡 ‘룰루랄라 미아리’를 내놓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노랫말은 ‘국민작사자’이자 부인인 양인자(61)씨가 발품을 팔아 지었다. 다음은 노랫말 중 일부이다. ‘꽃향기가 들려온다 어디서 들려오나/바람시켜 날 부르네 우리함께 찾아가보자/룰루랄라 미아리 수유리에선 쉬엄쉬엄/솔밭공원 돌아드니 어야 불쑥 삼각산/다람쥐 숨바꼭질 청솔모야 도토리는 엇다 감췄니/쪽나무 입맞추네 종달새는 샘이 나서 뽀로롱 뽀로롱/∼룰루랄라 즐거워라’●“미아리 일대 직접 돌아다니며 작사” 작사가 양씨는 “미아리 일대의 산자락과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미아리의 일대의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면서 “얼핏 듣기에 동요같은 느낌도 들지만 (남편이)우리가락을 잘 섞어 경쾌하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벌써 미아리 주민들이 모일 때마다 이 노래를 즐겨 부를 정도로 애창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작곡가 김씨와 알고 지내는 김현풍(65) 강북구청장과 주민들의 부탁을 받고 노래를 만들었다. 미아리는 그동안 인근 하월곡동 일부지역에 위치한 속칭 ‘텍사스촌’으로 적지 않은 오해를 받아왔다. 김 구청장은 “올해가 개청 10주년을 맞는 강북구의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노래를 부탁했다.”면서 “이제는 ‘한많은 미아리고개’가 아니라 즐거운 ‘룰루랄라 미아리’로 불려졌으면 좋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코리아나 멤버였던 캐시리가 불러” 노래는 1988년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로 유명한 그룹 ‘코리아나’의 리드보컬 캐시리(Cathy Lee)의 국내 데뷔곡이자 솔로앨범에 발표됐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앨범은 지난 5월 말 제작됐으며 미아리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밝은 목소리도 삽입됐다. 이와 관련, 작곡가 김씨는 “캐시리와는 94년 신상옥 감독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실종’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 ‘증발’을 만들 때 주제가 작업을 하면서 만났다.”고 밝혔다. 이후 캐시리는 우리 가요의 발음·정서에 대한 공부와 김씨의 열성적 도움에 힘입어 데뷔앨범을 내기에 이른 것. 김씨는 “좋은 가수를 만나면 그 가수만이 지닌 장점을 잘 관찰하고 또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 작곡가의 역할”이라면서 “캐시리는 팝은 물론이고 가요에서도 완벽할 만큼 음악적 감각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칭찬했다. 캐시리의 앨범에는 ‘룰루랄라 미아리’외에도 김씨 부부가 콤비를 이룬 신곡 ‘그 친구 조심해요’와 ‘당신은 거짓말쟁이’‘아빠를 사랑해’ 등 4곡과 ‘킬리만자로의 표범’‘그 겨울의 찻집’ 등의 리메이크곡이 수록됐다.김문기자 km@seoul.co.kr
  • 사회인야구 자존심대결

    사회인야구 자존심대결

    제7회 서울시장배 국민생활체육야구대회가 지난달 28일 시작돼 주말마다 예선경기를 펼친 결과 12일까지 1부 리그 4강과 2부 리그 8강이 확정됐다. 1부 리그와 2부 리그는 선수 출신 동호회원의 포함 여부로 구분되며,1부에는 선수 출신이 3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2부 리그에는 선수출신이 뛸 수 없다. 동대문경기장을 비롯, 우리은행구장, 성균관대구장, 고양시 코리아구장 등에서 진행되는 이번 대회에는 1부 리그 20개팀과 2부 리그 28개팀 총 48개팀이 참가했다. 12일까지 경기 결과 1부 리그 4강에는 대륙상사1·영재사관학원·라이거스·JNS가 올랐다.2부 리그는 위너스·동진시스템·IES·TK싸이클론·대륙상사2·삼성SDS·레인저스·YD크레인스가 8강에 진출했다. 1부 리그 준결승은 오는 18일 우리은행구장에서 펼쳐지며, 결승전 역시 25일 우리은행구장에서 치러진다.2부 리그는 18일 우리은행구장에서 8강전에 이어 25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준결승과 결승이 동시에 펼쳐진다. ●대륙상사1, 스트라이커스 잡고 8강행 12일 동대문구장에서는 1부 리그 3경기가 연속으로 열렸다. 먼저 오전 7시에 시작된 영재사관학원(감독 김형진)과 블루제이스(감독 최원경)와의 승부에서는 영재사관학원이 14대4(4회콜드)로 블루제이스를 대파했다. 영재사관학원은 홈런 1개를 포함한 장단 8안타를 뽑아내며 상대팀 투수를 3명이나 마운드에서 끌어내렸다. 특히 승부의 쐐기를 박은 4회에는 타자일순하며 7점을 뽑아내기도 했다. 반면 블루제이스는 최상도와 임학수가 이어던진 영재사관학원 투수들의 구위에 눌려 이렇다할 공격을 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이어 펼쳐진 대륙상사1(감독 유준호)과 스트라이커스(감독 최용석)의 이날 두번째 경기에서는 11대10으로 대륙상사1이 승리를 차지하고 8강에 진출했다. 대륙상사1은 2회초 선두로 나선 5번타자 이신택부터 1번타자 노태성까지 연속으로 안타를 뽑아내 6득점을 올리며 승기를 잡았다. 이어 4회에도 4점을 뽑아내며 무난히 승리하는 듯 했다. 그러나 스트라이커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스트라이커스는 4회말 공격에서 2점을 뽑아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6회말 마지막 찬스에서 안타 3개와 상대팀의 실책 등으로 5점을 대거 뽑아내며 1점차까지 따라가는 등 역전하는 듯했으나 뒷심부족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추첨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 1부 리그 마지막으로 열린 영재사관학원과 조양해커스와의 경기는 6회까지 6대6으로 비긴 채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내지 못했다. 결국 사회인야구에만 있는 ‘추첨 승부’를 통해 영재사관학원이 ○표 5개를 뽑아 5대 4로 승리했다.‘추첨 승부’는 9개의 ○표 제비 가운데 5개 이상을 뽑으면 승리하는 것이다. 영재사관학원은 이날 오전 7시에 예선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이 염려되는 상황이었으나 선전했다. 영재사관학원과 조양해커스는 마지막 6회까지 승부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먼저 영재사관학원은 4대4로 비기던 6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2사 이후 집중력을 발휘하며 강래현의 2루타와 상대방의 실책 등을 더해 2점을 추가해 분위기를 승리로 몰아갔다. 그러나 조양해커스의 뒷심도 만만치 않았다. 조양해커스는 몸에 맞는 볼 2개와 적시 안타를 뽑아내며,2점을 따라가 6대 6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2루에 주자가 있는 가운데 3번 타자 황상원이 적시 안타를 뽑아내 ‘막판 뒤집기’가 연출되는 듯 보였으나, 무리하게 홈으로 뛰어들던 2루 주자 윤범수가 홈에서 태그 아웃당하면서 경기는 추첨으로 이어졌다. 승리의 여신이 영재사관학원에 미소를 보내는 순간이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여기선 승부를 ‘제비’ 가 가른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승부를 가리는 일은 언제나 짜릿하다. 특히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박빙의 대결에서는 더욱 그렇다. 축구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승부차기나 골든골, 농구 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터진 역전 버저비터(buzzerbeater),9회말 2사 풀카운트에서 작렬한 ‘굿바이 홈런’ 등은 선수와 관객을 모두 극도의 흥분 상태로 몰아간다. 그런데 순수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활동하는 사회인야구(생활체육야구)에서는 ‘제비 뽑기’가 선수와 응원 나온 가족들을 울고 웃게 만든다. ●경기 빨리 끝내기 위한 궁여지책 12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제7회 서울시장배 국민생활체육야구대회 8강 마지막 경기에서 이 대회 첫 ‘운명의 뽑기’가 등장했다. 영재사관학원(감독 김형진)와 조양 해커스(감독 민경호)가 7회까지 접전을 펼쳤지만 결국 동점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대회 경기규칙에 따르면 결승전은 승패가 결정날 때까지 연장전을 벌이지만, 준결승전까지는 무승부가 될 경우 추첨으로 승패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야구연합회 김종광 사무국장은 “열심히 뛴 선수들에게 승부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안타깝다.”면서 “그러나 시간을 단축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일요일인 12일 하루에만 동대문운동장에서 6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데 따른 ‘궁여지책’인 셈이다. 김 국장은 “서울에는 제대로 된 야구장이 동대문과 목동 야구장을 제외하면 없다.”면서 “그나마 사회인 야구는 운동장 대관 순위에서 가장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동대문운동장의 경우 중·고교야구대회나 대학야구 등이 치러지지 않는 기간에만 사회인야구 동호인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김 국장은 “사회인 야구는 다른 경기가 없는 주말에만 하기 때문에 충분히 동호인들을 위해 운동장을 대관해 줄 수 있다.”면서 대한야구협회나 기타 관계자들의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뽑으면 ‘역적’,○를 뽑아라 최종 승패를 결정짓는 ‘운명의 뽑기’는 마지막 이닝을 뛴 영재사관학원와 조양 해커스의 선수들 9명이 하나씩 제비를 뽑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모두 18개의 제비에는 ○와 ×가 각각 9장씩 들어있다. 때문에 ○를 다섯개 이상 뽑는 팀이 승리하게 된다. 제비를 뽑을 양팀 9명의 선수들은 일렬로 줄을 서서 상자에서 하나씩 뽑아 심판에게 건네준다. 이렇게 9명이 다 뽑은 후에 양팀이 번갈아 가면서 하나씩 개봉하게 된다. 이날 치러진 ‘뽑기’에서 일부 선수들은 “뽑는 즉시 ‘○’·‘×’ 여부를 확인하자.”고 요구하기도 했으나,‘×’를 뽑은 선수들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한다는 주최측의 판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재사관학원와 조양 해커스의 ‘운명의 뽑기’는 본 승부만큼이나 팽팽했다. 양쪽은 번갈아가면서 ‘○’,‘×’를 뽑더니만 결국 4대 4 최후의 한 장까지 이르게 됐다. 마지막 한 장의 ‘○’가 적힌 제비는 영재사관학원 쪽에서 개봉됐다. 영재사관학원의 김형진 감독은 “막판까지 추격해 온 상대팀의 기세에 뽑기마저 눌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면서 “사회인 야구가 좀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뽑기 같은 ‘동네야구 방식’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길섶에서] 만보계의 덕/이용원 논설위원

    며칠전 만보계를 샀다. 만보계가 처음 소개된 게 10년은 넘지 않나 싶은데, 그 무렵 만보계를 하나 선물받아 한동안 차고 다녔다. 일정한 시간·거리를 걸은 뒤 몇 걸음이나 되는지 확인하는 게 재미 있었다. 또 당시는 일선에서 뛰어다니는 기자 시절이어서, 퇴근 때 만보계를 들여다 보고는 오늘은 취재를 얼마나 열심히 했나 되짚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며칠, 허리춤을 떠난 만보계는 잠시 방 구석에서 뒹굴더니 이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이번에 만보계를 새로 구입한 까닭은, 요즘 걷기를 운동삼아 하기 때문이다. 출퇴근 길에 집∼전철역∼사무실을 오가며 걷는 시간이 40여분은 되는 데다 부지런 떠는 날에는 회사 주변, 집 동네에서도 일부러 걷기에 1만걸음 채우는 데 자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만보계로 확인해 보니 의외로 쉽지 않았다. 쉬는 날인 지난 토요일 아내와 함께 집근처 공원에서 조깅 트랙을 여러 바퀴 돌았다. 한차례 돌 때마다 만보계를 확인해 1만보를 채우고야 집으로 돌아왔다. 만보계가 없었다면 트랙 돌기는 중도에서 그쳤을 것이다. 사물에는 모두 덕(德)이 있다더니 만보계에는 내 게으름을 잡아끄는 덕이 있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1)

    사연 : 이웃 수다장이들에 골치 아이 셋의 3세의 가정 주부입니다. 결혼한 지 7년 만에 15평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여 이사한 지 한 달쯤 됩니다. 오랜만에 이룬「마이·홈·플랜」에 부풀어 있는 저는 식모 없이 살림을 꾸려 나가느라고 여가라곤 잠시도 없는 형편이에요. 이 동네 아낙네들은 자고 새면 골목 앞에 모여 앉아 얘기에 열중합니다. 백해무익의 수다뿐인 그런 모임에는 흥미도 시간도 없어 끼지 않기로 했어요. 자기들과 한패가 되지 않은 대서인지 요즘은 혹시 골목 앞에서라도 만나면 그 쪽에서 외면들을 하고 맙니다. 적대시 당하지 않으면서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묘안은 없을까요? <영아 엄마, 종로구 통인동> 의견 : 우월감 버리고 어울리면 생활을 알차게 꾸미려 항상 노력하시는 모범주부이신 것 알겠어요. 자고 새면 모여 앉아 수다나 떨고 살림은 식모에게만 맡겨놓는 주부들이란 당신처럼 알뜰한 모범주부의 발끝에 놓기조차 과분한 사람들이라고 확신하시는 것 같군요.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수다장이들이라고 한들 바빠서 자기들 패에 끼지 못하는 이웃을 무턱대고 적대시 하기야 할라구요. 당신은 혹시 무의식 중에 그들 앞에서 모범주부로서의 우월감을 표시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그들 편에서 자격지심으로 그런 오해를 했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이쪽에는 전혀 우월감도 적대감도 없음을 알게 되면 그들의 태도도 달라지겠지요. 푸새다듬이나 대청소를 하는 날 그들 중의 한두 명을 말동무로 불러 들인다든지 별식을 해서 푸짐하게 집집마다 돌린다든지 해 보면 어떨까요. 그런 노력이 아깝고 아니꼽다고 생각할 만큼 천한 이웃이란 없을 줄 압니다. <Q> [ 선데이서울 68년 9/22 제1권 제1호 ]
  • 이젠 눈물이 말랐어요

    이젠 눈물이 말랐어요

    나는 학사기생(學士妓生) S각(閣)일기 학사기생 - 어느「멜로드라마」의 제목 아닌 생생한 현실속의 이야기다. 역경을 디디고 일어선 방년 24세, 한 아가씨의 의지가 오히려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신파조(新派調)의 눈물보단 냉엄한 현실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이 아가씨의 일기장을 뒤져 보면 - 67년 7월 ○일 집에 돌아오니 11시 20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건너왔다. 옷을 갈아 입으니 벗어놓은 옷이 마치 뱀껍질처럼 징그럽다. 왈칵 울음이 솟구쳤다. 울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지만, 끝내 울어버리고 말았다. 선운각(仙雲閣) - 흔히들 기생「하우스」라고 하는 곳의 기생이 되어버린 내 자신이 초라하다. 내일 아침 학교에 어떻게 나가나? 이제 여섯달이면 졸업이다. 하지만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의 차이가 몸서리치도록 무섭다. 오늘로 내 삶은 또 하나의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다. 성도 이름도 낯설기만 한 박은숙(朴恩淑) 세 글자 - 나에게 붙여진 이 새 이름 뒤엔 그림자처럼「기생」이란 두 글자가 따라다닐 걸 생각한다. 어쩌면 그렇게도 떨렸을까? 아까 처음으로 곱게 단장하고「유니폼」인 하늘색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고 손님방엘 들어설 때, 방안에 몇 사람이나 있는 줄도 몰랐었지. 그저 두렵고 떨리기만. 푹 고개를 숙인 채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모두 동문서답. 손님들은 또 어째 그럴까? 나이 지긋한 분들이 딸 같은 내게 그렇게 짓궂은 질문을.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언니들 이야길 들으니 처음 나오는 애들한텐 대개 그렇단다. 몸 둘 곳 모르고 앉아 있기 두어 시간. 얼떨결에 받아 쥔「팁」이 2천원. 돈 때문에 나왔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기생충같이 여겨지는 이 불결함. 낮엔 부업 피아노 선생님 밤에는 본업 박은숙 아씨 67년 8월 ○일 아침에 S가 찾아왔다. 밉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계집애. S는 자상히 지난 한 달 동안의 일을 묻고 선배다운 충고를 몇 마디 했다. 생각해보면 묘한 인연이다. 대학입시 공부하러 그 절에 가지 않았던들 S와 만나지 못했을 거고. 그럼「여대생 기생」이 되지도 않았을 걸. 서로 외로우니 공부하다 쉬는 틈에 사귀고 보니 정이 들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언니, 동생이 되어 버렸다. S가 기생「하우스」에 나가고 있는 걸 알기는 대학교 3학년 때. 그리고 석 달 전 학교를 그만두느냐 마느냐 할 때 이 집을 제의한 게 바로 S였으니. 한 달이나 망설였다. 천하고 밑바닥 인생이라는 느낌이 강박관념처럼 머리에서 뱅뱅 돌았다. S와 두어 시간 얘기를 하고 나니 한결 가슴이 후련하다. S는 역시 좋은 계집애다. S에게서 그녀의 의지 같은 걸 더 배워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레슨」시간이 됐기에 S를 보내고 아이네 집으로 갔다. 모여대 기악과 졸업반 학생이란 것만 알 뿐「그 집」얘길 모르는 아이 어머니는 그저 상냥스럽기만 하다. 좀 극성이긴 하지만. 두 시간 아이와「피아노」앞에서 실랑일 하다 보니 전에는 몰랐던 즐거움이 느껴졌다. 전엔 신경 쓰이고 피곤하기만 하더니 이젠 오히려 아이와「피아노」치는 시간이 뭔지 모르게 즐거웠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는「레슨」이 끝나자 한 곡 쳐달라고 자꾸 조른다. 어젯밤 마지 못해 마신 두어 잔 술 때문인지 머리가 무겁긴 했으나 꼬마의 청을 들어주었다. 「모짜르트」를 한 곡. 오래간만에 속이 후련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버스」속에서도 연방「모짜르트」를 흥얼거리던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67년 10월 ○일 꼭 석 달째다. 이젠 손님방에 들어가도 떨리는 버릇은 없어졌다. 모르는 사이에 나도 동화되어 가는 것일까?「레슨」을 끝내고 미장원엘 다녀오니까「마이크로·버스」가 떠날 5시가 다 되었다. 통근「버스」속에서 나는「핸드백」속에 든 세 아이의「피아노·레슨」값 1만 5천원과 오늘 받을 월급 5만원의 지출 내역을 곰곰히 생각한다. 생각하던 것보다 늘어난 내 쓰임새를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며-. 「팁」으로 받은 1~2천원은 미장원 가고「택시」타고 하면 하루 용돈으로 다 없어지고 어쩌다 좀 두둑한「팁」을 받아도 공돈이란 생각 때문인지 친구들과 구경가고 점심 먹고 나면 그만. 손님이 적어 월급만 받고 일찍 돌아왔다. 어머님에게 가니 8살짜리 막내와 어머니가 반겨 맞는다. 다 큰 딸년이 내놓은 3만원에 어머니는 또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가리신다. 『얼마나 고되냐』는 엄마의 말에 찔리는 듯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레슨」을 위해 할머니와 방을 따로 얻어 나가 살고 있는 것으로만 아는 어머니. 아무리「피아노」를 가르쳐도 7식구의 생활비는 못 된다는 걸 모르시는 선량한 엄마가 사실을 알아 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무섭다. 철없는 막내가 20가지 색나는「크레용」사게 2백원 달라기에 내주었더니 좋다고 매달리며『큰 언니가 최고』란다. 그「최고」의 말 뒤에 숨은 이야길 언젠가 저 애가 알게 되면 언니를 어떻게 생각할까? 집에 돌아와 할머니에게 생활비로 2만원을 내놓았다. 할머닌 이 큰 손녀가 자랑스러워 동네방네 효녀라고 떠들고 다니신다. 이부자리 속에 누워 곰곰히 생각했다. 이젠 눈물이 나지 않는다. 누가 무어라 손가락질 해도 나는 떳떳하고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보람을 느낀다.「백」속에 남아 있는 1만 5천원은 내일 아침 우선 은행에 달려가 예금해야지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화려한「리사이틀」에 나가「모짜르트」를 치고 있었다. 68년 2월 ○일 졸업이다. 내 생의 가장 즐거웠고 슬펐던 기억들이 담긴 4년의 맺음이다. 검은「가운」을 입은 이 많은 동창들이 저마다 숱한 사연이 담긴「캠퍼스」를 떠나길 서러워 한다. 엄마와 몇몇 이웃들의 축하인사를 받으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 끝없이 울었다. 그러면서 몇 번이고 외쳤다. 『은숙아 - 잘했어』 각(閣)에서도 아줌마랑 한바탕 축하연을 벌여 주었다. 그러면서 이젠「여대생 기생」이 아니라 어엿한「학사 기생」이란다. 아직 학교에 나가고 있는 아이들은 내 졸업이 무척 부러운 모양이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언젠가 S가 내게 들려주던 식으로 마음을 굳게 가지라고 일러주었다. 이젠 나도 제법 고참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단골 손님이 두 패가 왔을 땐 아직도 쩔쩔매지만 웬만한 농이나 유혹은 적당히 넘겨버리는 여유가 생겼다. 어쩌다 단골 손님들과 낮에「데이트」를 할 정도로 -「데이트」라야 점심을 먹거나 영화구경을 하는 게 고작이지만 - . 외국손님이 60%가 넘는 이 곳 생활에도 익숙하고 영어회화도 자신이 붙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를 관광요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에 알맞은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기에 무척 노력도 하고 혹시 몸에「기생티」가 밸까 제일 두려워 한다. 이제 졸업했으니 목표는 하나. 외국유학을 가는 거다. 그래서 맘껏「피아노」공부를 할 테다. 그래서 박은숙이란 이름이 결코 천하지 않았던 것임을 언젠가 알려 주리라. <Z> [ 선데이서울 68년 9/29 제1권 제2호 ]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기술위원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기술위원장

    ‘축구, 그분이 오셨다.’ 우선 2006독일월드컵 본선진출 여부가 곧 판가름난다.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도 이달에 열린다.3년전 한반도를 뒤흔든 ‘6월의 함성’이 다시 들려온다. 축구는 가장 스펙터클한 스포츠다. 감동과 환희, 좌절과 한숨…. 남녀노소를 동시에 한곳으로 집중시키는 거대한 응집력은 차라리 신화요, 전설이다. 누가 태극전사의 내달림을 보면서 웃고 울고, 마음 졸이지 않을 수 있으랴. ●축구인생 50년 ‘그라운드 풍운아’ 추억의 방송멘트가 있다.“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메르데카배 축구대회가 열리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입니다.” 1970년대초였다. 농촌의 여름밤,TV는 물론 라디오조차 귀했기에 저녁밥 일찍 먹고 서둘러 라디오가 있는 이웃집으로 속속 모인다. 이어 중계방송이 시작되고 아나운서의 “슛, 아깝습니다. 슈∼웃, 골인!”하는 목소리에 탄식과 환호가 교차한다. 상상속에서 슛동작을 흉내내는 모습은 저마다의 흥분이요, 잊지 못할 추억거리였다. 맞다. 그때의 우상이었다. 아시아의 표범, 그라운드의 풍운아로 표현된다. 네살 때 아버지가 월북해 ‘고아’나 다름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버려진 깡통과 길가의 돌멩이들을 속절없이 걷어차기 일쑤였다. 파란과 곡절의 축구인생 5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회택(60)씨.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아 대표팀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그를 만났다. 키 173㎝, 짧은 머리에 어깨가 딱 벌어져 다부진 체격, 왕년의 스트라이커를 연상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 역시 그대로였다. 독일월드컵 본선진출을 장담한 그는 먼저 한국축구에 대해 “월드컵 4강에 오른 팀이다. 다만 월드컵 4강 당시 수비수 3명, 즉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가운데 한 명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박주영 골결정력·패싱·순발력 3박자 겸비 공격라인에 대해서는 “박지성 차두리는 힘과 스피드가 좋아졌고, 안정환도 부상에서 회복됐다. 최근에는 박주영까지 가세했다. 경쟁이 아주 치열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박지성의 경우 공수에 걸쳐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패싱기술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박주영을 가리켜 골 결정력, 패싱력, 순발력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여기에 이천수와 설기현이 들어오면 경쟁은 정말 가열된다고 부연했다. 송종국 선수를 거론하면서 “(송 선수가)사경을 헤매는 것처럼 슬럼프에 빠져 있어 정말 아쉽다. 빨리 회복해 이들과 경쟁대열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본프레레 감독의 전술과 리더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히딩크 감독도 처음에는 욕을 먹었다. 결국 월드컵 4강에 올려놨다. 선수들도 죽어라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선수들은 자만심에 차 있고, 상대국가들은 우리나라를 반드시 꺾으려고 한다. 수비수를 더욱 보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승부세계에서는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 응집력과 투지가 관건이다.” 화제를 돌렸다. 현역시절인 70년대와 지금의 축구를 비교해달라고 했다.“당시에는 태클을 잘 하는 선수, 개인돌파가 좋은 선수 등 개인기술이 특징이었지만 지금은 체력과 체격이 아주 좋아졌다.”면서 “그때만 해도 잔디구장에서 축구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운동장 사정도 매우 좋아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에는 4-4-2,3-4-3 등 포메이션이 다양하고 국제정보에도 밝지만 그때는 전술과 정보가 보잘 것 없었다고 회고했다. ●67년 중앙정보부서 징발 ‘양지팀’ 창단 #에피소드 1.67년 2월. 이회택은 연세대 입학을 일주일을 앞두고 축구부원들과 동계훈련 중이었다. 검은 지프 한 대가 훈련장에 도착했다. 한 사내가 내리더니 “이회택이 이리 나와.”라고 했다. 사내는 중앙정보부 감찰실의 임경옥씨. 당시 ‘중정’은 누구도 거역 못할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회택이 사내와 함께 도착한 곳은 이문동 중정 본부. 사연은 이러했다. 북한이 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르자 박정희 대통령이 크게 충격받았다. 김형욱 중정부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축구깨나 한다는 사람들을 모두 징발했다. 감독 최정민, 골기퍼 이세연, 이회택 김호 김정남 김삼락 등 이른바 ‘양지팀’이 곧바로 조직됐다. 김 부장은 팀 창단식 때 이들을 불러모아 “모든 것을 지원해 줄 테니 빛을 보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훈시했다. 아울러 팀에서 뛰는 동안 군복무를 인정해주고 매달 2만원씩(쌀 한 가마니 4000원) 월급을 약속받았다. 잔디구장과 기숙사도 제공됐다. 갑작스러운 호강이 오히려 술과 도박을 가깝게 했다. 전적도 보잘것없었다.68년 5월 바그다드에서 열린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서 3전3패의 수모를 당했다. 이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전까지만 해도 축구가 인생의 전부였으나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양지팀 시절은 인생의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메르데카배 내기건 교민 비기기 작전 주문 #에피소드 2.68년 여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메르데카배 축구대회에 참가했다. 양지멤버가 주축인 대표팀은 패전을 거듭해 5,6위전으로 밀려났다. 상대는 인도. 당시만 해도 교포들이 거의 없어 외교관 부인들이 김치를 들고 와 응원할 정도였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교포라는 사람이 찾아와 고참선배를 만나고 갔다. 잠시 후 고참선배는 이회택 등 공격수들만 불러 비기는 작전을 주문했다. 교포가 비기는 쪽으로 상당액의 돈을 걸었으며 그럴 경우 배당액의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이회택은 말이 되느냐며 출전했다. 하지만 경기내내 그 말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영문을 모르는 수비수들은 몸을 날리며 열심히 뛰었다. 그날따라 이세연 골기퍼는 인도선수들의 슛을 잘도 막아냈다. 경기 종료 직전. 이회택은 상대의 공을 뺏어 김기복 선수한테 슬쩍 패스를 했더니 그냥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1대0으로 이겼다. 이씨는 국민가수 조용필씨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72년 어느날 저녁. 서울 퇴계로의 라이온스 나이트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조용필(보컬그룹 25시 멤버)과 처음 만났다. 이씨는 밴드를 무척 좋아했다. 이후 이씨는 조용필의 매니저 역할까지 했다. 잘 아는 킹레코드사의 박성배 사장에게 레코드 취입까지 부탁했다.‘돌아와요 부산항에’‘너무 짧아요’ 등을 이때 취입했다. 또 방송국 PD 등에게 연락해 조용필의 노래를 자주 내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뒤에는 바로 이씨가 있었다. 이와 관련, 이씨는 “2년여전 조용필씨의 부인 장례식 때 만난 이후로 서로 바빠서 잘 안 만나게 된다.”면서 “언젠가 골프 라운드도 한번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골프실력은 이븐파를 기록할 정도. ●한때 국민가수 조용필 매니저 역할도 축구인 이회택. 비록 키는 작았지만 빠른 몸놀림과 날카로운 슈팅과 드리블, 그리고 대담성을 가진 천부적인 골잡이였다. 김포가 고향인 그는 어릴 적 돼지 오줌보와 깡통 등으로 축구놀이를 즐겼다. 초등학생때는 동네 형의 손을 잡고 조기축구회에 나가기도 했다. 중3 때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끼리 축구부를 조직, 대회에 출전했다. 고등학교 진학은 축구부가 있는 한양공고에 먼저 원서를 냈다. 퇴짜맞았다. 빠르지만 기술이 없다는 이유에서. 마음을 돌려 얼른 영등포공고에 진학했다. 고교 2년 때였다.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고교 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첫시합은 부산상고였고 두번째는 광주상고. 연거푸 2골씩 넣어 이겼다. 축구신동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어 동북고로 스카우트됐다.65년 청소년대표에 이어 이듬해 국가대표에 뽑혔다.75년까지 10년 동안 한국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후 86년 프로리그의 포항 아톰스의 감독을 맡아 두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90년 대표팀 감독으로 이탈리아월드컵 본선에 참가해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74년 결혼한 그는 결혼한 딸(사위는 농구선수)이 얼마전 손자를 낳아 할아버지가 됐다. 아들은 한양대 1학년에 다니다 해군복무 중이다. 부인은 현재 방이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에 살던 부친은 2년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46년 경기 김포 출생 ▲ 65년 서울 동북고 졸업 ▲ 65년 청소년 국가대표팀 선수 ▲ 66∼76년 국가대표팀 선수 ▲ 69년 한양대 졸업 ▲ 83∼85년 한양대 감독 ▲ 86∼92년 포항제철 감독 ▲ 90년 이탈리아월드컵 대표팀 감독 ▲ 93∼2003년 대한축협회 이사 ▲ 2003년 전남드래곤즈 상임고문 ▲ 2004년∼현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기술위원장
  • 블루버드의 냠냠 다이어리

    안녕하세요? 이번주부터 냠냠다이어리를 연재하게된 블루버드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행복한 식탁을 책임져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양파부인 참치를 품다’ 라는 요리를 만들어 볼거예요. 음식은 있는데 이름이 없어서 그냥 내 식대로 붙여봤어요.^ㅡ^;;, 냉장고를 뒤져보니 참치가 있더군요∼, 참 알뜰한 주부지 않습니까? ㅎㅎㅎ 이름만큼 맛도 끝내준답니다. 재료는 참치캔, 양파, 다진마늘, 파, 청양고추, 홍고추, 후추, 소금, 계란, 밀가루가 끝이에요, 구하기 쉽죠! 만들기도 쉬워요.^ㅡ^;; (1) 먼저, 참치캔을 뜯어서요, 안 뜯으면 안되겠죠?  기름을 쏙 빼고 그릇에 담아줍니다. 밥그릇은 작아서 안되고요, 좀 큰 볼에…;; 그리고 청양고추를 채 썰어 넣습니다. 매콤한 맛을 위해서랍니다. 청고추도 썰어 넣고요, 파도 다져 넣습니다. 이제 간을 할 차례. 후추, 마늘, 소금을 넣고 간을 해준 후에 달걀이랑 밀가루를 넣고 반죽을 하시면 됩니다.^0^ (2) 사진처럼 양파를 썰어주세요. 링 모양으로 썰어주세요. 양파안에 미리 만들어놓은 참치를 넣을 거거든요. 양파를 자를 때 눈물 흘리지 않게(ㅠㅠ) 조심하세요. (3) 그러곤 기름을 두른 팬에 양파를 먼저 얹고요. 그 안에 반죽해 놓은 참치를 잘 담아둡니다. 숟가락으로 2술씩 하면 됩니다. 그 위에 장식을 위해 홍고추를 얹어줍니다. 테두리의 양파가 노릇하게 익으면 한번 뒤짚어 익힙니다. 맛있는 냄새가 나죠? 이제 완성! 짝짝짝!! 전에 해먹었던 적이 있는데 울 신랑이 칭찬했어요. 그렇지만 사진 이쁘게 찍구 맛이 없음 순∼엉터리라고 궁시렁대기도 한답니다.ㅎㅎ 냉장고에 참치가 없으시다구요?그럼 참치 사냥가요, 동네 슈퍼로∼∼∼. 양파는 혈압을 낮춰 주며 혈액 응고를 지연시켜 혈전(血栓) 예방에 도움이 된답니다. 고지혈증에 뛰어난 효과가 있어 심혈관질환의 예방 및 치료제로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게다가 볶아먹든 지져먹든 튀겨먹든 효능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고 하네요. 오늘밤 양파부인 참치를 품어보시지 않으시렵니까^0^
  • [깔깔깔]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 *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받은 거스름 돈에서 100원을 더 받았다고 말하며 돌려주기. * 버스 요금을 모두 10원짜리 동전으로 내기. * 선생님이 열변을 토하는 수업 시간 중에 화장실 가고 싶다고 손들기. * 처음 짝이 된 급우에게 책을 같이 보자고 하기. *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 대해 무지막지한 악성 리플이 달려도 대꾸하지 않기. * 전철 종착역에서 잠들어 있는 아주머니를 깨워 주기. * 짝사랑하던 그 애의 홈페이지에 몰래 들어갔다가 이벤트가 당첨됐는데도 당황하지 않기. * 모두들 가기 싫다고 하는 콘서트나 영화도 보고 싶으면 혼자서라도 가기. * 행운의 이메일을 받고도 연연해하지 않고 삭제하기.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풍성주택 고담일 회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풍성주택 고담일 회장

    “주택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환경과 더불어 사는 가장 아름다운 집을 짓겠습니다.” 최근 수도권에서 100% 분양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풍성주택 고담일(67) 회장은 “포근하고 편안한 고향집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아파트사업을 펼칠 것”이라면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제2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년간 지어온 아파트로는 미래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면서 “집은 가족들의 공동생활 터전이요, 편안한 휴식 공간이기에 쾌적하고 짜임새 있게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수도권에서 ‘신미주(新美住)’브랜드로 잇따라 100% 분양 신화를 이끌어가는 풍성주택이 업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대기업이 짓는 아파트도 아니고, 텔레비전 광고를 싹쓸이하다시피하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는 더더욱 아니라서 분양 성공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풍성주택 아파트 건설 현장을 방문해 보면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신용으로 집을 짓는다 고담일 회장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 사업을 무리하게 펼치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그는 “욕심을 냈다면 아마 큰 재벌이 되었을 것”이라면서 “20여년 동안 은행 융자 연장 한번 받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은행빚이 없는 회사다. 주위에서 사업확장 권유와 유혹을 많이 받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입주자에게 내건 약속은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지킨다. 외환위기를 맞아 고 회장도 자금난에 빠졌지만 계약대로 말끔하게 공사를 끝냈다. 분양 당시 약속은 사운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신용을 쌓고 분수에 맞게 사업을 추진하던 그도 대기업 위주의 금융 관행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많았다. 은행이 작은 회사라고 무조건 돈줄을 죌 때는 원망도 많이 했다. 사업장을 담보로 제공했음에도 돈을 빌려주지 않자 은행장을 찾아가 다투기도 했다. ●돈 되는 땅을 사둬라 아파트사업의 성공 열쇠는 빼어난 입지를 고르는 일이다. 아무리 설계가 뛰어나고 분양가가 싸더라도 변두리나 접근이 어려운 곳은 분양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고 회장이 고른 땅을 가보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입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20년 동안 땅을 보고 다녔으니 이제는 ‘고수’가 됐다. 그는 땅을 살 때 맨 먼저 분양성을 따진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지도 살핀다. 쾌적한 환경을 보장할 수 없는 땅은 아예 쳐다 보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업장이 경부고속도로 동탄 오산리 아파트 현장. 경부고속도로 기흥과 오산 인터체인지 중간 서쪽에 있다. 고 회장은 직감적으로 동탄 신도시와 가까워 신도시 후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고속도로에서 환히 보이는 곳이므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미주 아파트 브랜드를 알리는데 이보다 좋은 땅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을 잠재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홍보 효과 또한 만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억원의 광고비를 쏟아부은 것보다 효과가 더 컸다. 인근 동탄 신도시에서 대기업들과 맞붙어 결코 뒤지지 않았던 것도 오산리 현장에 나부낀 신미주 아파트 브랜드 홍보효과가 크게 보탬이 됐다. 택지지구 땅이 아니고는 자체사업 부지를 마련하는데만 2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땅을 살 때 한꺼번에 사들여야지, 시간을 끌다 보면 같은 지역 땅이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만약 건설업체가 땅을 사들인다는 소문이 나면 지주들이 막무가내식의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풍성주택은 주택사업의 원자재인 땅을 사는데 있어 모두가 전문가이다. ●차별화된 설계가 대박신화 불러 왔다 땅을 사고 나면 자체 직원들로 구성된 1차 설계팀이 부산해진다. 상품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고민하는 동시에 유행하는 아파트 모델을 정리하고 다른 업체 모델하우스에 나가 ‘커닝’도 한다. 설계 방향이 서면 설계사무소와 함께 본격적인 상품 만들기에 나선다. 회사와 설계사무소의 아이디어를 종합, 교감을 구한 뒤 최종 평면을 결정한다. 고 회장은 “아파트 평면 설계는 소비자 욕구와 편리함을 우선해야 한다.”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지 못해 완성된 설계를 뜯어 고친 것이 수십 번은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설계비를 아끼지 않는 회사로 잘 알려졌다. 지난 3월 동탄신도시에 분양한 풍성 신미주아파트는 생활하기 편리하고 짜임새 있는 공간 구조로 모델하우스 방문객들을 홀딱 반하게 했다. 인테리어도 최고 수준급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여러 곳의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기 때문에 금방 인테리어 차별화를 확인할 수 있다. 소문이 퍼져 이제는 동종 업체에서 인테리어 설계를 베껴 가기도 한다고 고 회장은 자랑한다. ●친환경 아파트로 승부건다 요즘은 소비자들의 아파트 선택 결정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건강이다. 풍성주택이 앞으로 짓는 모든 사업에 ‘웰빙 아파트’를 접목하기로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동탄 신미주아파트의 경우 단지 앞 중앙공원 조망권을 최대한 살렸다. 전방 500m까지 센트럴파크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아파트 단지에는 자동차가 없도록 설계했다. 대신 그 자리를 공원과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확보했다. 단지 녹지율이 무려 52.7%에 이른다.1층은 필로티와 개인정원이 조성된다. 동(棟)간 거리가 최대 68m에 이른다. 빼곡한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실내는 더욱 꼼꼼하게 설계한다. 층고를 기존 아파트보다 10∼58㎝ 높여 쾌적성을 살리고, 새 집 증후군을 없애기 위해 환경친화적인 자재를 사용한다. 습기를 빨아들이는 제오라이트 자연석 시공, 유해가스를 실외로 배출하는 인공지능 공기정화시스템 설치 등 웰빙아파트 기능을 살리도록 배려했다. 결국 수요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청약·계약 100%를 기록했다. ●현장을 지켜라 동탄신도시 아파트 분양 현장.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뒤섞여 아파트를 분양하는 자리였다. 마치 아파트 전시장과 흡사했다. 이 가운데 풍성주택 모델하우스도 끼여 있었다. 브랜드가 잘 알려진 대기업 모델하우스와 나란히 설치됐다. 그동안 여러 현장에서 아파트를 분양, 성공했지만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전반적인 주택경기 침체에 소비자들이 판교 신도시를 노리고 청약을 꺼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사실 몇몇 대기업조차 분양을 미룰 정도로 ‘시계’는 흐렸다. 하지만 풍성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을 고 회장이 직접 지휘했다. 모델하우스를 찾은 주부들을 안내하고 평면을 설명했다. 모델하우스에서 소비자들에게 자사 아파트를 설명하는 그의 모습이 세련됨이나 유창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진실이 배어 있었다. 건설현장을 찾아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안전을 살피는 일이 그에게는 일상 생활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고 회장은 누구 전남 신안군 도초면 섬동네에서 태어나 20년 동안 주택건설 한 우물만 파온 주택전문업체 최고경영자.67세. 욕심을 내지 않는 사업가로 유명하다. 정작 자신은 20년이 넘은 서울 금천구 시흥동 관악산 아래 단독주택에서 산다. 쥐들이 달음박질하면서 돌아다닐 정도로 낡은 집이다. 얼마전 수리했다. 이사를 못하는 이유는 살고 있는 집이 정이 들기도 했지만 워낙 등산을 좋아해 산 아래에 그대로 눌러 살고 있다. 하루 2시간씩 꼭 등산을 한다. 목사를 꿈꾸고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을 정도로 신앙심이 돈독하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도를 밟아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누구와 대화하든지 겸손 그 자체다. 고 회장의 속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그가 줏대없다고 흉을 보기도 하지만 사실은 외유내강형이다. 지난해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을 맡은 뒤 주택산업 발전에 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6000여 회원사를 아우르며 이끌고 있다. 고영성 사장이 아들이다. 경영학을 전공했다. 경영 수업을 쌓은 뒤 고 회장의 사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며느리는 디자인을 전공한 재원. 이 회사 설계·디자인팀에서 아파트 상품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 ■ 풍성주택은 어떤 기업 지난 1986년에 세워진 주택전문업체. 첫 사업으로 경기도 군포에서 90가구를 지어 팔았다. 처음에는 설움도 많았다. 중소업체들에 주택사업 면허를 내주지 않아 대기업 면허를 빌려 사업을 했다.87년 중소업체들에게도 아파트 시공권이 주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쳤다. 지금까지 공급한 아파트가 8000가구에 이른다. 주택산업이 호황일 때도, 다른 업체들이 발빠른 투자로 회사를 키울 때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지난해만 3000여가구를 분양했다. 연간 매출액은 1500억∼2000억원정도다. 사업장은 서울·수원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새로 개발한 ‘신미주’아파트 브랜드도 점차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SEOUL iN 창간 1주년 뒷얘기

    SEOUL iN 창간 1주년 뒷얘기

    6월1일이면 서울신문의 수도권 섹션인 ‘서울인(Seoul in)’이 태어난 지 꼭 1년 된다. 종합 일간지가 지역을 특화한 섹션을 만든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인은 매주 화·금요일 수도권·쇼핑·교육·부동산 부문으로 나눠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법한 이야기들을 실었다. ■게재 기사로 본 ‘서울 인’ 1년 서울인은 3대째 서울에 살고 있는 ‘5%의 자부심 서울 토박이’,100년의 역사를 지닌 ‘광진구 능동의 청·장년회’ 등을 통해 서울 시민의 정체성을 짚어봤다. 또 ‘서울에도 집성촌이?’(중랑구 신내동·망우동 등),‘서울에도 농부가?’(강서구 가양동 등) 등 서울이라는 도심 이미지와 걸맞지 않은 이색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종합일간지서 소외된 ‘장외 뉴스’ 상세히 그런가 하면 도봉구 지하차도 건설, 마포구 지역 방송국 개설, 지하철역에 생긴 사찰, 구로구·금천구의 영토분쟁, 안양의 농촌 동편마을 등 동네에서 흔히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도 담았다. 이 덕분에 지역 밀착적인 기사들로 기존의 종합일간지에서 다루기에는 뉴스 가치가 적었던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 ‘지금 그곳은’이라는 코너는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범죄 장소였던 신촌의 원룸, 동인천의 호프집 화재참사 현장, 박정희 시해장소였던 궁정동 안가 등을 찾아다니면서 독자들의 뇌리에서 벗어난 장소가 어떻게 변했는지 점검, 서울인의 간판코너로 자리매김했다. ●서울 즐기기·소자본 창업 큰 도움 서울인은 ‘가족과 함께하는 성곽여행’,‘도심서 즐기는 숲속 봄나들이’,‘지하철 따라 외국문화 즐겨요’,‘노란버스 타고 남산을 즐겨요’ 등을 통해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서울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안내했다. 지난해 9월 3일자부터 지난 4월까지 연재됐던 소설가 송기원의 ‘뒷골목 맛세상’은 종로 피맛골, 성남 모란시장, 인천 차이나타운 등을 순례하며 지역의 저렴하고 이름난 맛집뿐만 아니라 지역에 얽힌 사연·소설 구절 등을 맛깔스럽게 소개했다. 또 소자본 창업희망자를 위해 만들어진 ‘성공시대’ 코너는 ‘우리 동네에서 손님이 들끓는 가게·노점에는 어떤 영업 노하우가 있을까?’라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천원의 행복’(온리원) 등은 방송을 타면서 매출이 급증하기도 했다. 또 ‘마니아’ 코너에 소개된 ‘삼겹살에 미친 그들’,‘청국장 냄새가 싫다고요?’,‘소주파·맥주파 술 마니아’ 등 이색 동호회가 인기를 끌었다. ●“의회·마니아면 독보적” 평가 일간지로서는 유일하게 서울인에서만 다루는 기사들도 있다. 시의회·구의회 활동을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의회면과 각 구청 3만여명의 생활체육(마니아)면에 실리는 기사들이다. 이들은 각각 종합 일간지의 정치면과 스포츠면에 해당되는 셈이다. 의회면에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그대로 보여줄 뿐 아니라 서울시 택시요금·상수도 요금 인상 등을 다른 신문보다 앞서 내보내기도 했다. 또 구청의 꽃 4000여포기를 훔친 노원구의회 꽃도둑 의원은 화제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생활체육은 철저한 아마추어 스포츠를 다루면서 프로 스포츠의 기반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다.‘누드 브리핑’이라는 코너는 서울시청, 인천시청, 경기도 등 관가의 뒷얘기들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지방자치뉴스부 ■막내기자의 ‘서울 인’ 1년 꼭 백번째 만남입니다. 지난해 6월1일 첫선을 보인 서울인이 만 1년간 꼭 백번 독자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마치 여자친구와의 백일째 만남을 준비하는 느낌입니다. 첫번째 서울인을 내기 위해 준비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누구에게도 생소했던 길이었습니다. 무엇을 취재해야 할지, 어떻게 지면을 꾸며나갈지 모두들 혼란스러웠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막내기자로 서울인을 맡게 된 저로서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취재가 꼼꼼하지 못하고 표나 지도를 빨리 구하지 못해 선배기자로부터 눈물 찔끔 흘리도록 혼났던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활 주변에는 생각보다 취재거리가 많았습니다. 지난해 여름 밤늦게 집 근처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며 가로등 관리실태에 대한 기사를 생각했습니다. 버스 타고 다니며 무심히 지나쳤던 옛 나산백화점 건물에는 숨겨진 뒷이야기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독자를 대신해 직접 체험해봐야 한다는 일념에 제 몸을 혹사시키기도 했습니다. 지압보도는 직접 걸어보니 정말 발바닥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T_T. 하지만 온몸에 퍼지는 마사지 효과만은 최고더군요 . 지난달 청계천 공사현장을 살펴본 뒤 황사와 공사장 먼지 때문에 며칠간 마른 기침을 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아직 서울인은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생활밀착형 기사를 지향하면서도 취재 여건상 회사와 출입처 부근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고민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모든 언론사가 정치·사회 등 거대담론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언론현실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서울인이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벌써 일년. 아직 갈 길이 먼 서울인입니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열리는 조기축구대회라도, 시골 5일장 누추한 반찬가게 이야기라도 소중하게 담는 서울인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서울 인’에 바란다 쇠도 칠수록 단단해 지는 법.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은 ‘한살배기’ 서울인이 꿋꿋이 자라날 수 있도록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시 출입 기자, 장학사 등 전문가 집단은 서울인이 좀 더 세련된 ‘차림세’를 갖출 것을 당부했다. 전 서울시 출입 기자로 1년 동안 서울인을 지켜봤던 연합뉴스 이율 기자는 “한국에서 타블로이드판에 대한 신뢰도는 대판에 비해 여전히 떨어진다.”면서 “이 때문에 풍성한 서울인의 콘텐츠가 독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다가가는 게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또 “‘택시 T-머니 인식기 설치’,‘한강 주변 개발’ 등 단독 기사들이 잡지의 성격인 서울인에 실리면서 속보성이 떨어지곤 했다.”면서 “늦게 싣더라도 좀 더 풍성하게 쓰거나 본지에 실렸으면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시 교육청 심영면 장학사는 “서울인을 좀 더 화려하게 만든다면 일선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장점이 더욱 살아날 것”이라면서 “또 일선 학교에서도 쉽게 서울인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내용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지역지’답게 생활밀착형 기사를 더 비중있게 실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시 한문철 언론담당관은 “주5일제가 시행됐지만 주머니가 얄팍한 서민들이나 공무원들은 딱히 갈 곳이 없다.”면서 “인터넷에 중구난방식으로 있는 지역 정보를 문화, 체육, 복지 등 주제별로 정리해서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J홈쇼핑 홍보담당 전성곤 주임은 “젊은 계층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유통을 더욱 선호한다.”면서 “백화점, 할인점, 재래시장 등 오프라인 시장 위주로 나가고 있는 유통면에서도 온라인 부문에 관심을 기울이면 가독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 시민들도 더 재미있으면서도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서울인을 주문했다. 주부 권오열(57·오금동)씨는 “만화나 소설 등을 싣는다면 전체적으로 더 흥미로운 지면이 될 것”이라면서 “딱딱하고 어려운 행정이나 의회 기사를 쉬우면서도 심층적으로 보도해달라.”고 말했다. 대학생 박미리(23·여·고려대 컴퓨터학과 4년)씨도 “주말매거진 ‘We’에 비해 기사가 많고 지면이 빡빡하다는 느낌”이라면서 “시원한 편집으로 내용을 다루면 독자의 눈에 더욱 잘 띌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대학 명물거리’ 등 대학가를 다룬 기사나 각종 아르바이트, 취업 정보 등도 소개해달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시민기자로 활동해보니… 서울신문과 시민기자로 연을 맺은 지 1년. 전업주부로만 지내온 내겐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나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첫 기사로 ‘우리동네 이야기’에 상계1동을 소개했다. 집값은 싼 편이지만 수락산을 정원처럼 끼고 있어 마음이 넉넉하고 정감 넘치는 동네라는 취지였다. 주민들이 좋아할 거라 기대했는데 집값 싸다는 말은 뭐하러 했느냐는 빈축을 샀었다. ‘수락 파크빌’ 아파트가 원래 이름을 바꿔 집값이 급등했다는 기사를 쓴 뒤였다. 한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서 내가 쓴 기사 내용과 똑같은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내가 쓴 기사가 ‘특종’을 한 것 같은 기꺼움에 젖었던 기억이 새롭다. 도봉구 창4동과 창5동을 잇는 지하차도 공사설명회를 취재했을 때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발로 설명회장이 성토장으로 변하고 중재에 나선 구의원도 쫓겨나는 마당에 취재하는 게 발각되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민기자만이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내 사진도 찍고 메모도 한 뒤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보낸 글이 실리지 않거나 많이 수정돼 실렸을 때는 허탈하기도 했다. 다시는 쓰지 않겠노라 다짐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새 습관이 됐는지 조금만 색다른 일만 보아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북한산 아이파크 아파트만의 작은 행사인 ‘마을사랑’이 기사로 나간 뒤의 반향도 잊을 수 없다. 마을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 온 것이다. 정중히 사양했지만 그 흐뭇함만은 오래도록 고마웠다. 수필을 써오던 터라 글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사회생활이 적어서인지 처음 보는 사람과의 인터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명함도 없이 말로만 서울신문 시민기자라고 소개하자니 언론을 빙자해 허세부리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든 적도 있었다. 원고료도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탄탄한 ‘언로’를 가지고 있다는 자긍심에 다시 힘을 내곤 했다. 세상에는 크고 굵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낙숫물에 바위 뚫린다는 말처럼 큰 사건 뒤 가려진 생활속 작은 희로애락이 서민의 삶에는 더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서울신문사가 ‘서울인’을 통해 그런 작은 삶에 눈과 귀를 열어준 것에 고맙고 나도 한몫 거들었다는 자부심으로 지난 1년을 되돌아본다. 이병숙 시민기자 주부·수필가 ■지역신문 전문가가 본 ‘서울 인’ 우리나라를 ‘서울공화국’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기 때문이다. 신문도 그렇다. 서울에서 10개가 넘는 종합일간지가 발행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 때문에 지역 언론이 고사했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면 서울 시민들은 행복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서울 시민들도 자기가 사는 지역 소식을 얻기 힘들다. 지난 선거에서 뽑았던 국회의원, 구청장, 구의회 의원들이 무슨 활동을 하고 있나. 동네 앞에 파헤쳐진 공사판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언제까지 진행될 예정인가. 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 내가 주말을 이용해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이 발달돼 정보가 넘쳐난다고 한다. 정보는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중요한 것을 골라 주어야 한다. 구청마다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민원 안내나 홍보성 정보를 빼면, 실생활과 관련된 지역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전국’이 강조되면서 ‘지역’이 소외되고 있다. 그것은 서울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서울신문의 수도권 섹션 ‘서울 인’은 아주 좋은 시도였다. 단순한 섹션이 아니라 타블로이드 판의 독립된 신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서울 인’이 제공하는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쇼핑, 문화행사, 나들이 등에 관한 정보로 서울 시민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가 더 풍부해진 것은 사실이다. 서울을 더 잘 알 수 있는 다양한 정보와 서울과 수도권의 시정(市政)에 대한 뉴스와 논평도 유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서울 인’은 한 단계 도약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 나는 ‘서울 인’이 서울신문의 한 섹션이 아니라, 서울 시민을 위한 독립적인 주간지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립적인 제작진이 바람직하다. 현재 ‘서울 인’의 내용은 일반 신문의 문화, 부동산 섹션 등이 다루는 내용 중에서 서울과 수도권과 관련되는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고 있어, 서울 시민의 서울 지역에 대한 정보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나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신문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역성에 있다고 본다. 지역 정보와 지역에 기반한 광고가 아니고는 다른 미디어와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신문이 이러한 전환을 시도해나가는 데 있어 ‘서울 인’이 좋은 모델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 [임해리의 色色남녀]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남자들은 연령을 초월하여 ‘정력에 살고 정력 때문에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력(精力)은 쌀(米)과 푸르다(靑)가 합쳐진 말로 쌀 중에서도 가장 맑은 부분으로 에너지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력과 같은 의미로 쓰는 스테미나(stamina)의 뜻도 에센스(essence)이며 집중된 고도의 정신능력이라고 한다. 미국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스테미나가 높은 집단은 끊임없이 인격적 성장을 추구하고 사회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는데 능동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력을 성 기능에만 집중하다 보니 한국남성에게 성 기능 감퇴는 인생의 ‘빨간신호등’이 되고도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180만명이 넘는 발기부전 남성들에게 ‘홍해의 기적’ 같은 뉴스가 전해졌다.1999년 10월부터 시판된 비아그라(Viagra)의 등장이었다. 비아그라는 미국의 파이저사가 개발한 발기부전 치료제인데 원래는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가 임상실험 과정에서 발기부전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비아그라는 정력(vigor)과 나이애가라(Niagara)의 합성어로 나이애가라 폭포처럼 샘솟는 정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웨이거(偉哥)가 되어 ‘위대한 오빠’라는 뜻이 된다. 비아그라로 약국은 호떡집 불난 꼴이 되고 ‘일 나그라’ ‘서그라’ ‘누에그라’ ‘살리그라’‘동초그라’ 등 유사상표가 등장하였다. 이후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수요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중국산 가짜 비아그라까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에서도 오렌지카운티나 플러싱 같이 교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한국 남성의 50%가 성 불구자로 등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가면 비아그라를 선물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오랜 지인 몇몇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장어구이 집에 갔는데 40대 독신인 한 남자의 ‘이바구’에 다들 박장대소를 하였다. 어버이날 하루 전에 자기 친구가 쌀 60㎏을 갖고 집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팔순 넘은 노모가 아들녀석보다도 낫다고 그렇게 흐뭇해하는데 자기 얼굴은 죽 됐다는 것이다. 나중에 전화를 걸어 “야! 갑자기 쌀은 왜 들고 왔었냐? 아, 그리고 이왕 갖고 오려면 80㎏ 한 가마니도 아니고….” 그랬더니 그 쌀은 자기 단골 고객이 보내왔는데 남아서 벽제(그 독신남 거주지)까지 간 것이라고 하더란다. 그 친구는 의약분업이 안 되는 동네에서 약국을 운영하는데 어느 날 동네 방앗간 주인인 60대 아저씨가 40대 과부와 바람이 나면서 비아그라를 열심히 구입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한 달 전에 와서 그 아저씨가 하는 말이 “저기 그 약값 말인데… 쌀로 대치하면 안 될까? 내 약값을 더 쳐 드릴 테니…” 그래서 그 친구는 사람 살리는 일인데 하면서 쾌히 승낙했다 한다. 그런데 점점 쌀이 많아져서 처리가 곤란해졌다 한다. 비아그라 외에도 최대 36시간 지속시킨다는 시알리스, 발기의 강직도가 가장 뛰어나다는 레비트라 등이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전에는 비아그라 찾는 남자들을 사시로 보았는데 요즘은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한국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가 되기 때문일까?
  • [어떻게 지내세요] 위암·심장병 투병생활 ‘산장의 여인’ 권혜경씨

    ‘산장의 여인’이라는 추억의 노래가 있다.‘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누가 불렀을까. 권혜경(75)씨. 충북 청원군 남이면 외천리.‘산장의 여인’을 부른 업보 때문인지 노랫말처럼 아무도 찾는 이 없이 홀로 지내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권씨의 집을 찾았다. 가요평론가인 박성서씨와 ‘잘 있거라 나는 간다’로 시작되는 ‘대전부르스’의 안정애(70)씨가 동행했다. 병마와 싸운다는 권씨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하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두시간여 지나 청원 톨케이트를 빠져나왔다. 남이 파출소에 들러 권씨의 집을 물었더니 “아, 산장의 여인 그 분요.”하면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꼬불꼬불 시골길을 걸어 막다른 산골짜기 외딴집에 도착했다. 앞마당에는 5월의 풀이 무성했다.“권 선생님” 하면서 대문을 두들겼다. 두번째 소리를 듣고서야 “누구요?”하면서 문을 열었다. 백발이었다. 이윽고 “나 이렇게 살아, 어여 들어와.”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몇번 당부했다. 집안에는 달마대사 그림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권씨는 “밤에는 부처와 예수가 찾아오지.”하면서 득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툭 뱉었다. 권씨는 지난 1994년 5월에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했다. 시장기를 느꼈는지 “동네 자장면집에 가자.”고 했다. 대문밖으로 나왔다.10여평의 마당 한 쪽에 움푹 팬 구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권씨는 “저긴 직접 내가 팠지, 나중에 누워야 할 곳이거든.”이라고 했다. 이어 중식당. 마침 비가 쏟아졌다.‘배갈’ 술잔이 오고 갔다. 옆에 앉은 안씨가 권씨에게 “언니는 그때 은행원 출신으로 가요계에 데뷔해 여러가지로 품격을 높였지.”라고 했다. 권씨는 “야, 그러지 마라. 요즘 젊은 사람들 우쭐대면 안돼, 함께 살면서 좋은 분위기 만들어야 해.”라고 했다. 권씨는 또 “나 많이 아팠거든, 하지만 이렇게 멀쩡해 걱정하지 마.”라는 말로 안심을 시켰다. 권씨는 강원도 삼척 출생. 세무서장을 지낸 부친을 따라 어릴 적 경기도 의정부에서 자랐다.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그녀는 조흥은행에 입사했다. 하지만 타고난 끼는 못 속였다.26세때 KBS라디오 전속가수 모집에 ‘대니보이’를 불러 뽑혔다. 이른바 오페라 가수에서 ‘딴따라’로 변신했던 것. 워낙 목소리가 좋아 작곡가 이재호씨가 ‘산장의 여인’을 권씨에게 선물했다. 이 때가 56년 6월. 이 노래를 부른 지 6일 만에 권씨는 일약 스타가 됐다. 이어 ‘호반의 벤치’ ‘동심초’ ‘물새 우는 해변’ 등으로 60년대를 주름잡았다. 노래인생 50년. 흔한 연애 한번도 하지 않았다. 두시간여 얘기를 나눴다. 권씨는 “공기 좋은 곳에 살다 보니 위암과 심장병도 다 나았어.”라고 거듭 말했다.‘산장의 여인’을 듣고 싶다고 했더니 기꺼이 목청을 돋운다.75세의 원로였지만 목소리는 20대였다. 박수소리가 끝나자 “서울 가거든 소식 전하지 말라.”고 했다. 청원 김문기자 km@seoul.co.kr
  • [내 인생의 등대] 현동훈 서대문구청장

    [내 인생의 등대] 현동훈 서대문구청장

    현동훈(47) 서대문구청장은 아버지 현광조(72)씨의 ‘눈망울’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산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잠자는 시간보다 만화책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동네 형들과 어울리면서 나쁜 짓도 해봤다. 급기야는 학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런 생활을 보내길 6개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버지가 만화가게에 들이닥친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 끌고가 회초리로 삼을 사과 궤짝의 판때기를 뜯어 옆에 두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만 했다.‘왜 안때리실까.’하는 조마조마하는 마음에 10여분이 흐른 뒤 아버지는 조용히 나갔다.“아마 때렸으면 만화책을 더 열심히 봤을걸요. 하지만 아버지의 그때 눈망울이 아직도 선해요. 학창시절에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나오는 영화 ‘부메랑’을 보니까 아버지 눈망울의 의미를 알겠더군요.” 영화 ‘부메랑’에서 알랭 들롱은 왕년에 잘나갔던 폭력배였다. 아들 역시 폭력배로 경찰을 죽인 대가로 감옥에 간다. 아들은 면회온 알랭 들롱에게 ‘감옥에서 아버지 부하를 통해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알랭 들롱은 면회소에서 아무 말 없이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 봅니다. 이 장면이 화면에 꽉 차게 오랫동안 나올 때 울컥 하더군요. 마치 초등학교 때 봤던 우리 아버지의 눈과도 같았죠.‘아들이 잘 되길 바라는데 왜 그럴까.’하는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섞인 눈빛이죠.” 현 구청장은 이후 아버지의 눈망울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많이 다스렸다. 방황을 일찍(?) 겪은 탓인지 현 구청장은 줄곧 모범생으로 지냈다. 술·담배도 대학교에 와서야 아버지에게 직접 배웠다. 아버지는 현 구청장이 대학 졸업 후 사법고시에 미끄러졌을 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집안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3남3녀의 장남인 현 구청장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의 눈을 바라보며 용돈을 꼭 쥐어주곤 했다. 현 구청장의 아버지는 현재 제주도에서 렌터카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렌터카를 닦고 직원들을 맞이한다. 현 구청장은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의 눈망울만큼은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사과 궤짝의 판때기보다도 더 따끔한 회초리가 된다.”면서 “앞으로의 공직 생활에서도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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