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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한번! ‘2002 붉은함성’

    다시한번! ‘2002 붉은함성’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세살짜리 딸아이가 최근들어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으며 붉은악마들의 응원을 따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독일월드컵이 다가오면서 텔레비전 방송에 붉은악마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탓이지요. 난생처음 본 붉은악마의 응원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아내도 덩달아 “구청 여성축구단에 들어가 운동이나 해볼까.”라며 너스레를 떨고 있습니다. 오는 6월이면 월드컵의 붉은 감동이 재현됩니다. 서울 시청 앞을 붉게 물들였던 인파 속에 묻혀 태극전사와 하나됐던 그 때. 월드컵 첫승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더니 8강,4강까지 태극전사들의 거침없는 질주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날의 감동을 독일월드컵까지 이어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가족과 함께 지난해 9월 문을 연 상암월드컵 경기장내에 있는 ‘월드컵 기념관’을 돌아보세요.2002년 6월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그 곳에 가면 ‘4강’의 감동과 기쁨이 넘친답니다. 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구청의 축구교실에 참가해 활동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어린이, 주부, 어르신 할 것없이 함께 축구를 즐길 수 있답니다. 독일월드컵에서도 우리의 ‘꿈★’이 이뤄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4강 감동·축구발전사 한눈에 ‘어게인(Again) 2002!’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내에 있는 ‘2002 FIFA 월드컵 기념관’에 들어서자 붉은 물결의 감동이 가슴에 물결쳤다. 붉은색 정문에 들어서자 내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02년 6월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월드컵의 감동을 다시한번 먼저 거스 히딩크 감독과 차범근 감독 등 축구발전에 공헌한 6명의 축구인 흉상이 있는 ‘명예의 전당’을 둘러본 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기념관에 들어섰다. 400평 남짓한 실내에는 내·외국인들 관람객들이 다시 돌아온 ‘월드컵의 해’를 반겼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볼 수 있는 전시실. 엄마와 함께 놀러온 황현준(8·강원도 속초시 주문진초등학교 1년)·현후(7) 남매가 자원봉사자 고월덕(66·여)씨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월드컵 당시 23인의 태극전사들의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과 축구공, 축구화, 기념주화, 기념품 등에 대한 설명에 푹 빠져 있다. “현준이는 2002년 월드컵때 ‘피버노바’ 공이 몇개 만들어졌는지 아니?” 고씨가 장래 희망이 축구선수라는 현준이에게 질문을 건네자 현준이가 잠시 고민한 뒤 “몰라요.”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고씨는 “2002개가 만들어 졌어. 혹시 퀴즈 프로그램에 나올지도 모르니까 잘 기억해 둬.” 고씨의 친절한 설명에, 현준이는 “네∼”라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맞은편에 있는 영상관 앞에서 현후는 오빠와 함께 두손을 앞으로 펴고 연신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이 곳은 최첨단 하이퍼 큐브 영상관으로 2002년 월드컵 하이라이트와 명장면을 모은 ‘6월의 붉은 함성’을 상영하고 있었다. 벽면에 6개의 대형 스크린이 둘러져 있어 이 곳에 들어서면 마치 당시의 느낌과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코너를 돌아 만나는 ‘대한민국 우리들의 붉은 함성’의 광장에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어 ‘31일간의 대장정’ 코너에는 A∼H조까지 당시 월드컵에 참여했던 국가들의 전적 등 각종 정보는 물론 모형으로 제작된 피파컵과 당시 입장권 등을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자원봉사자 고씨의 해박한 축구지식에 감탄을 쏟아낸다.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 누구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있는 그는 중국어 통역 담당으로 중국인 등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월드컵의 감동을 전해준다. 고씨는 “축구는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운동”이라면서 “일반 관람객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이야기를 해줄 때 가장 신이 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체험거리 풍성 전시관은 보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태극전사와 기념촬영’ 코너에서는 4강 신화를 만들어낸 태극전사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태극전사의 기념사진에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을 합성해 끼워 넣는 코너로 전시장 관람의 최고 기념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황의정(32·은평구 연신내동)씨가 “지윤아 웃어봐.”라며 딸 유지윤(4)양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촬영이 끝나자 곧바로 지윤이의 얼굴이 태극전사 기념사진에 합성됐고, 기계에 2000원을 투입하자 유니폼을 입은 지윤이의 멋진 기념사진이 프린트 됐다. 황씨는 “지윤이는 매일같이 스포츠 뉴스를 끝까지 볼 정도로 축구 등 스포츠를 무척 좋아한다.”면서 “태어나서 월드컵을 처음 본 아이에게 그때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있는 체험코너는 ‘가상 골키퍼 체험’. 외국인 여행객들이 천장의 빔프로젝터와 센서를 통해 날아오는 축구공을 막으려 허공으로 두손을 날린다.‘레프트, 라이트’ 등을 외치는 모습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바닥에 설치돼 있는 1m 크기의 터치 스크린의 축구공을 발로 밟자 축구공이 멋지게 날아가 골대에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만나는 ‘꿈★은 이뤄진다’는 코너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 사용할 공인구 ‘팀가이스트’가 전시돼 있다. 관람을 끝낸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날의 아름다운 기억 때문인지 함박 웃음이 가득했다. 기념관은 지난해 9월 축구협회 2층 축구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것을 멀티미디어 영상자료와 함께 개관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위탁운영하며, 관람시간은 40∼50분 정도 걸린다. ●관람 정보 가는 길은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출구를 이용, 경기장 서문방향으로 경기장을 끼고 100m쯤 가다 보면 나온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무휴다. 관람요금은 일반 1000원(단체 700원), 장애인·65세 이상·12세 이하 500원(단체 350원)이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려면 안내원에게 설명을 부탁하거나 내부에 설치된 안내단말기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통역서비스도 제공된다. 자세한 정보는 기념관(3151-0231)이나 홈페이지(www.worldcupmuseum.co.kr)에서 얻을 수 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배우고 즐길 곳 서울에만 1500여곳 월드컵 4강의 감동을 몸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가까운 축구 동호회나 구청 축구교실을 찾아가 보자. 서울에는 축구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축구단과 시설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각 구별로 조기축구회와 축구동아리, 일반·직장인축구회, 주부, 어린이축구단 등이 있어 이를 모두 합하면 1500개가 넘는다. 또 시내 곳곳에는 60여곳의 축구장이 있어 어렵지 않게 축구를 즐길 수 있다. ●‘왕년의 스타’가 만든 축구교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선수가 만든 ‘서초구 홍명보 축구교실’이 다음달 17일 문을 연다. 서초구는 어린이들의 체력향상과 스포츠맨십 습득을 위해 관내에 거주하는 6∼13세 어린이 120명을 뽑아 축구를 가르친다. 강의는 양재근린공원 잔디축구장에서 매주 금·토 주2회씩 열리며 연회비 6만원과 월 8만원의 회비를 받는다. 참가 어린이에게는 유니폼이 지급되고 상해보험에도 가입시켜 준다. 왕년의 스타들이 ‘꿈나무 육성’을 위해 문을 연 축구교실은 모두 12개. 양천구에서 지원하는 ‘김진국 축구교실’은 매주 수·토요일 안양천변구장에서 열린다. 또 신현호(송파구), 이태엽(강동구), 차범근(용산구) 등도 꿈나무를 키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각 축구단에는 전문 지도자들이 체계적으로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일석삼조의 자치구 축구교실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축구교실은 주부 축구교실이 대부분이다. 주부들은 상대적으로 축구에 입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작구 여성축구교실과 영등포구 여성축구단, 송파구 여성축구단, 노원구 여성축구단 등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에 가입하려면 각 구청 문화체육과에 문의하면 된다. 회원은 연중 모집하며 회비와 가입비가 저렴하다. 주부 축구교실의 장점으로는 축구도 배우고, 건강도 챙기고, 구민끼리 우의도 다질 수 있다는 것 등이 꼽힌다. 자치구 축구단 중 눈길을 끄는 축구단은 지난해 4월 발족한 ‘성동구 생활체육 70대 장수 축구단’. 축구단원 25명 전원이 70세 이상으로 평균나이는 72세이며 최고령자는 78세나 된다. 전체 축구단원의 나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1800세에 달한다. 이들은 축구로 건강과 우의를 다지고 있다. ●인근 공원에 축구하러 나가볼까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스포츠광장(http://sports.seoul.go.kr)에 따르면 서울시내 축구장은 모두 64개. 서울스포츠광장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가까운 축구장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가장 인기있는 인조잔디 축구장과 한강시민공원 축구장은 유료이며, 배수지 등에 마련된 동네 축구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10곳인 인조 잔디 축구장은 이용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가장 비싼 곳은 송파구 잠실동 올림픽주경기장(2240-8746)으로 주경기장은 하루 111만 6000원, 보조경기장은 33만 6000원이다.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공원 내 인조잔디 축구장(330-5516)은 2시간에 평일 7만원, 주말·휴일 10만원이며, 중랑구립잔디운동장(490-3466)은 2시간에 주간 5만 5000원, 야간 7만 5000원이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가 운영하는 축구장은 이촌·여의도·양화·잠실·반포·망원·난지·뚝섬·강서구·광나루지구 등 모두 13곳으로 이용료는 2시간에 1만 2000원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자치센터 탐방/신길7동 신청사] 동사무소가 예술의 전당?

    [자치센터 탐방/신길7동 신청사] 동사무소가 예술의 전당?

    ‘지하 2층, 지상 6층에 연면적 798평. 헬스장·노인정·청소년독서실…. 지난 17일에 찾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 7동 동 청사는 ‘동사무소’라기보다는 ‘동네 예술의 전당’에 가까웠다. 개관 다음날이라 건물은 풍선으로 한껏 치장한 상태다. 오봉환 동장은 “편의시설이 다양해 주민들이 축하할 겸 많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오 동장의 안내로 옥상부터 지하까지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6층 옥상에는 주민 쉼터와 예비군 동대본부가 자리하고 있다. 나무 의자에 앉아 녹차 한잔을 마시며 이웃들과 수다떨기에 좋을 듯 싶다. 저 멀리 산자락이 보여 시원하다. 창문으로 둘러싸인 계단을 타고 5층으로 내려오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펼쳐진다. 청소년 독서실과 새마을 문고가 바로 그것이다. 문고에는 소설, 수필, 동화 등 1만권이 진열돼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토·일요일에는 쉰다. 점심시간인 낮 12시∼오후 1시에도 문을 닫는다. 연회비는 2000원이고, 대출기간은 7일. 연체하면 하루에 100원씩 내야 한다. 한번에 2권까지 빌릴 수 있다. 신간을 매달 구입해 볼 만한 책이 많다. 현재 회원은 3100명. 청소년 독서실은 남녀로 분리돼 있다. 남학생 71명, 여학생 67명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오전 7시에 문을 열어 오후 11시에 닫는다. 입장료는 500원. 독서실을 관리하는 이미연씨는 “문의 전화가 많이 온다.”면서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칸막이 책상이 나란히 놓인 독서실은 밝고 조용했다. 책상은 1m 정도로 넓었다. 책장과 스탠드가 갖춰져 있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정해 앉으면 된다.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가 옆방에 따로 마련됐다. 공부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몇시간씩 앉아서 게임 등을 할 수는 없다. 4층은 다목적자치센터와 소회의실. 동이 운영하는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이다. 한글서예, 한문서예, 생활과학, 종이접기, 영어교실, 풍물교실 등이 마련된다. 회의실 중간에 이동벽을 만들어 필요하면 두 공간으로 나눠 사용토록 설계했다. 장애인 화장실이 눈에 띈다. 동사무소가 있는 3층을 거쳐 2층으로 내려왔다. 건물이 비스듬한 내리막에 건설된 터라 한쪽에선 2층으로, 다른쪽에선 1층으로 활용되는 공간이다. 오가기가 편해 노인정을 만들었다고 오 동장이 설명했다. 어르신 30여명이 바둑을 두거나 TV를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전 8시30분이면 하나둘씩 모여 오후 6시까지 머문다. 점심도 제공한다. 할아버지·할머니 공간을 따로 만들었지만, 함께 지내는 것이 좋다며 한곳에서 생활한다. 라태연(73) 할아버지는 “깨끗하고 따뜻하다.”며 만족해했다. 부엌 살림도 일품이다. 양문 냉장고에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김치냉장고까지 갖췄다. 냉장 공간이 넓어 30명 밥상도 뚝딱 만들어낼 듯싶다. 임간난(70) 할머니는 “가전제품도 다 있고, 따뜻한 물이 ‘콸콸’ 나와 밥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백미는 헬스장과 다목적실이 자리한 1층. 다목적실에는 54인치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주부가요 교실을 운영하기 위해 구입한 최신식 노래방 기계다. 방음시설도 완벽하게 갖췄다. 이날은 어린이들이 모여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주부 여럿이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러닝머신에서 걷거나 사이클을 타고 있었다. 벨트 마사지기로 허리근육을 이완하기도 했다. 입구에 신장·체중 자동측정기가 놓여있다.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 가볍게 머리를 ‘통’쳐서 키와 몸무게를 알려준다. 경직된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기구가 독특하다. 주부들이 거꾸로 누워 편안한 자세로 근육을 이완하고 있었다. 운동기구는 35대. 그러나 월 이용료는 2만원에 불과하다. 폭발적인 인기로 정원 200명은 이미 찼고,100명이 대기 중이다. 김정희(57)씨는 “집 주변에 깨끗하고 저렴한 헬스장이 생겨 너무 좋다.”면서 “낮시간에 오면 한가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녀 탈의실에는 옷장과 샤워실이 마련돼 있다. 운동복과 운동화는 제공되지 않는다. 운영시간은 오전 6시∼오후 9시. 다음달부터 오후 10시로 연장한다. 신길 7동 청사는 영등포구(구청장 김형수)가 2004년부터 추진하는 동청사 현대화 계획의 첫 결실이다. 낡은 동청사 9곳을 고쳐 주민편의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예산 375억여원이 들어간다. 신길 7동 청사는 삼환아파트가 기부채납한 토지에 구가 48억여원을 들여 완공했다. 지하 1,2층은 기계실, 발전실, 전기실과 주차장으로 이용된다. 1,2층은 주민체육시설·노래교실·노인정으로,2층은 동사무소로,4,5층은 다양한 자치프로그램이 운영될 다목적자치센터와 소회의실·독서실·문고 등으로 설계됐다. 영등포구는 “동청사가 앞으로 민원서비스와 문화서비스를 고루 갖춘 주민생활 중심 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 사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연 극] ■ 3월의 아트 23~4월30일 학전블루 소극장. 그림 한 점때문에 생긴 오해를 풀어가는 세 남자들의 이야기. 알 듯 모를 듯 기묘한 남자들의 우정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야스미나 레자 작, 황재헌 연출, 송승환 정원중 김일우(화목토)김석훈 오용 이성민(수금일)출연.(02)764-8760. ■ 그린 벤치 23∼3월12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자폐적인 가족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린 수작.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소설을 각색했다. 이성열 연출, 예수정 이지하 등 출연.(02)745-0308. ■ 복어 6월11일까지 아리랑소극장. 세금도, 병역의 의무도 없는 새로운 세상 ‘신천지공화국’에서 생긴 일. 김태수 작·차태호 연출, 김태훈 함건수 등 출연.(02)747-5016. [뮤지컬] ■ 그리스 3월23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춤과 노래로 만나는 뮤지컬의 고전.1970년대 미국 청소년들의 풋풋한 사랑과 젊음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냈다. 서울 공연에 이어 성남, 대구에서도 공연한다.(02)501-7888. ■ 벽을 뚫는 남자 28∼4월2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자유자재로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소심한 남자의 인생 역전기. 임도완 연출, 박상원 엄기준 등 출연.1588-7890. ■ 빨래 4월23일까지 상명아트홀1관. 좁은 달동네 골목길,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추민주 작·연출, 한정림 음악, 김영옥 박은영 출연.(02)762-9190. ■ 미스터 마우스 4월2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뇌수술로 천재가 된 청년의 고통과 좌절. 대니얼 키스 작·이현규 연출, 서범석 김태한 임강희 출연.(02)747-2050. [미 술] ■ 멈춤 27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 천연 옷감에 보일 듯 말 듯 그림을 그리고 한지를 여러 겹 붙여 퇴색된 느낌을 표현하는 한국화가 백원선씨의 개인전.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우리 여인네들의 삶의 자락을 섬세한 가락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작품들은 특히 정지해 있는 말(馬)을 이미지를 차용해 ‘멈춤’ 의미를 극대화시킨다.(02)732-5491. ■ 가위바위보 27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서울 청담동 ‘3story’. 가죽을 도화지처럼 조각 조각 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작가 홍승수와 점토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김정호, 회화작가 이찬호씨의 공동전시다.(02)549-7767. ■ 박승범 개인전 3월3일까지 서울 서초구 갤러리 우덕. 돌의 표면을 형상화해 독특한 세계를 표현하는 작가의 6번째 개인전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가 열린다. 작가는 수수하게 생긴 크고 작은 돌들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 내면, 본연의 세계, 우주의 탄생과 소멸을 그렸다. 박승범 아트 스튜디오 (031)923-3688, 갤러리 우덕 (02)3449-6071. [어린이] ■ 봄의 소리 왈츠 26일 오후3시,6시 서울열린극장 창동. 어린이를 위한 오케스트라와 발레의 만남.(02)578-7193. ■ 노을의 소원 28일까지 아트홀스타시티. 잔소리꾼 엄마를 없애달라는 소원을 빈 노을이 진정한 엄마의 사랑을 깨닫는 성장스토리.(02)745-0308. [무 용] ■ 한국의 명인명무전 24일까지 오후 7시30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17년째 이어져온 전통춤과 소리 무대.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등 공연. ■ 트러스트무용단 창단 10주년 공연 25,26일 오후 6시 아르코예술극장(구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자체 제작한 신작과 유럽에서 활약중인 단원들의 작품 공연. [클래식] ■ 투란도트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사랑의 위대함을 노래한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평일 7시30분, 토요일 오후 4시. ■ 토스카 3월 2∼5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한국오페라단의 올 시즌 개막작.‘토스카’는 ‘라보엠’‘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오페라. ■ 소프라노 김미화 독창회 3월6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홍난파 곡 ‘봉숭아’, 조두남 곡 ‘또 한 송이 나의 모란’ 등 한국 가곡의 밤.
  • 모교 지키려 입어권까지 포기

    “동네 유일한 기관인 모교가 사라지게 생겼는데 입어권이 문젭니까.”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주민 박병철(37)씨는 22일 마을의 파도초등학교가 통폐합 위기에 처하자 이같이 하소연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해 입어권(공동어장에서 어업을 할 수 있는 권리)까지 포기하는 긴급 대책을 내놓았다. 주민들이 입어권 포기결정을 내린 것은 최근 마을회의에서. 이 마을은 어촌계 회원으로 가입한 뒤 5년이 지나고 300만원을 내야 어업권리를 주는 것을 관행적으로 적용해오고 있다. 이 결정으로 초등생 자녀를 둔 외지인은 이 마을에 이사를 오면 곧바로 어장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다. 30년이 된 이 마을 공동어장에는 바지락이 양식되고 있다. 연 평균수입은 가구당 600만∼700만원 정도다. 이 학교는 내년 말까지 전체 1∼6년 학생이 30명을 넘지 못하면 통폐합 대상이 된다. 현재 학생수는 30명. 지난해도 30명이었으나 올해 6명이 졸업하고 입학해 더 늘지 않았다. 2004년 면내 모항초등학교에 통폐합될 대상이었으나 학부모들이 간청, 간신히 위기를 피했다. 당시 주민들과 지역교육청은 2007년 말까지 통폐합을 유보했다가 재거론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후 학생수가 30명을 넘지 못하자 이런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이 마을은 319가구에 819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나 이농현상으로 젊은이는 드물고 대부분 노인이어서 매년 신입생이 늘지 않고 있다. 학교가 생긴지 40년이 넘다 보니 주민들도 대부분 이 학교 출신이다. 교장·교감과 4명의 교사가 재직 중이다. 김필문 어촌계장은 “주민들의 자부심인 학교를 지키기 위해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했다.”며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 외지인이 많이 이사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봄을 시샘하는 늦추위가 한풀 꺾인 지난 16일 노재동 은평구청장은 현장 점검을 나섰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은평뉴타운. 그 중에서도 오는 6월 첫 일반분양을 앞둔 1지구였다. 덤프트럭 등 중장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 동승한 차안에서 노 구청장으로부터 ‘친절한 브리핑’을 들었다. “저 곳은 우회도로가 뚫릴 곳이고…, 이 곳은 집하장이 필요없는 최첨단 쓰레기처리장이 들어설 자리예요. 쓰레기로 인한 민원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저 곳(기자촌을 가리키며)은 뉴타운에서 절대로 빠지면 안돼요.(기자촌은 뉴타운에서 제외돼 있다.)어떻게든 주민들을 설득해 베벌리힐스처럼 대표적인 단독형 주거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마치 스크린이 이어지듯 노 구청장의 설명은 계속된다.“저기 저 불광천에는 고무로 된 댐을 건설해 유량을 조절할 계획입니다. 저런 곳(재래시장을 가리키며)은 현대화가 필요해요. 하지만 지금같은 방식으로는 안돼요. 매장 구성 등 변화에서 대형할인점의 순발력을 따라 갈 수 없어요. 좀더 새로운 방안을 채택해야 경쟁할 수 있어요.” 재래시장 현대화뿐 아니라 현행 현대화 방식의 문제점까지…. 구청 살림을 책임진다고 하지만 언제 저런 것까지 파악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설명은 깊이가 있었다. 노 구청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현장 중심 행정가다. 구청 한 간부의 얘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월요일 아침이면 간부들은 긴장합니다. 아침회의에서 구청장의 지적에 혼쭐난 간부가 한둘이 아닙니다.”이 같은 지적은 그가 휴일을 현장에서 보낸 결과다. 이곳저곳을 수행비서 없이 돌아본 후 개선사항을 회의에서 쏟아내기 때문이다. 노 구청장의 현장 나들이가 잦은 것은 은평구가 그만큼 둘러볼 곳이 많은 탓도 있다. 동네가 낙후돼 은평뉴타운을 포함해 38개 지역에서 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청소나 점검을 조금만 소홀히 해도 금세 표가 난다. 길을 가다 휴지를 줍는 일은 노 구청장의 일상이다. 서울시내 25개 구청 가운데 처음으로 불법부착물 제거 등 단순 청소업무를 경로당에 맡겼다. 골목길 청소는 할아버지 봉사대가 한다. 지난해 ‘깨끗한 서울가꾸기’ 대상을 탔다. “2만달러 시대는 말과 돈으로만 됩니까. 시민의식도 뒤따라가야 합니다.” 노 구청장에게는 꼬리표 하나가 따라 다닌다. 쓴소리를 잘하는 구청장이라는 것이다. “민선 구청장이 표를 의식해야지 쓴소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주민들 귀에 단 얘기만 하면 가식이에요. 이런 것은 오래 못 가지요. 은평구만 해도 인정과 온정이 살아 있는 동네예요. 말하는 사람의 진심이 통한다는 얘기”라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2시간여 노 구청장과 함께 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그가 무척 솔직하다는 점이었다. 촌사람 특유의 진솔함과 따뜻함이 있었다. 그는 행정 목표도 ‘따뜻한 행정’에 두고 있다. 그는 “뉴타운이 완성되면 은평구는 강·남북을 통틀어 서울을 대표하는 자치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그가 걸어온길 ▲출생 1941년 경남 함양 ▲학력 함양농고, 고려대 법과대학 ▲약력 흥국상사 신용관재부장,㈜동주상사 상무이사, 고려대 교우회 이사 겸 은평지부 상임부의장, 한나라당 15대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조직본부장, 한나라당 지방자치위원회 부위원장, 한나라당 은평(갑)지구당 상임고문·은평(을)지구당 부위원장,4대 서울시의원, 은평구 축구연합회 명예회장 ▲가족 정동화씨와 1남 1녀 ▲종교 기독교 ▲주량 마시지 않음 ▲좌우명 경천애인(敬天愛人) ▲애창곡 고향무정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0) 다예사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0) 다예사

    봄빛이 완연하다. 겨우내 자연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일깨웠다. 자연은 모든 사람들의 환상같은 것이다. 그러나 자연속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괴로움과 공포를 느끼곤 한다. 이번 겨우내 일지암 초당은 황금빛 베이지색 지붕없이 지내야 했다. 한번 내리면 20∼30㎝씩 쏟아지는 눈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외국자격증 남발 ‘茶 사대주의’ 경계를 초당 지붕을 얹는 인근 마을의 일꾼들은 그냥 손을 묵히고 있어야 했다. 입춘이 지나 땅속 깊이 잠복해 있던 얼음이 풀리던 날에야 겨우 초당지붕 얹는 작업이 시작됐다. 어느새 얼음에서 풀려난 붉은 땅들이 고슬고슬하다. 일지암 초당 운력이 끝나자 순천의 눈이 크고 순박한 차농사꾼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땅이 풀렸으니 자신의 다원을 한번 방문해달라는 것이었다. 다원의 이름은 ‘土父茶園’. 땅을 자신의 아버지처럼 경건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대하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그는 타고난 차 농사꾼이다. 상사호가 바라보이는 20도 넘는 경사지에 한폭의 수채화 같은 다원을 8년만에 일궈냈다. 차밭을 비껴 물이 흐르는 계곡을 손질하고, 소나무와 진달래를 가꾸는 데서 나아가 온 동네사람이 참여하는 작은 생산공동체를 일궈냈다. 밤낮없이 땅을 일구고 차를 돌보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진짜 차농사꾼이라고 한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유기농 차농사를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우직하게 한길로만 차를 만들고 대중들에게 자신있게 권한다. 그런 그의 눈에서는 맑은 차의 진향이 있다. 차는 진실하고 맑은 마음자리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산비탈을 홀로 8년을 거닐며 일궈낸 차밭은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그같은 작업들이 바로 우리의 차를 지키는 지킴이다. 오늘 우리의 차문화는 급속히 분화하고 있다. 차 품평회며 다예사, 한·중·일 등 각국 다도의 맥을 공부하는 다양한 장들이 늘어가고 있다. 급속히 확산되는 차문화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바로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는 일의 부족이다. 일본의 다풍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뒤 그것을 마치 우리의 다도인 양 공부시키는 차인들이 있는가 하면, 중국(타이완)의 다예사 자격증을 무분별 남발하는 차인들이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우리가 짚어야 할 점은 바로 중국과 일본 다풍에 대한 무분별한 ‘우리화’이다. 우라센케, 오모도센케의 일본다풍을 마치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다풍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이다. 일본의 다풍이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70년 초부터다. 당시 거의 멸절된 한국의 다도는 효당 최범술, 의재 허백련, 응송 박양희, 금당 최규용 등 몇몇 다인들에 의해서만 교류될 뿐 일반 차인들에게까지 전수되기에는 역량의 한계가 분명했다. 그런 틈을 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일본의 대표적인 다풍들이 우리 차인들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런데 그 차풍들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검증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우리 전통다도인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가 일각에서 인지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런 일본의 다풍을 일본다도의 대표적인 종가에서 공부한 일본인 차 선생들이 직접 국내에 들어와 가르치고 있다.70년대 초반 미국의 문화를 최고로 치고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던 때와 너무도 흡사하다. 일본이 차문화의 최강국으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일본의 차문화를 수입할 만큼 우리의 전통차문화가 빈약하지 않다. 우리 전통차문화의 원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깊고 넓은 역사의 푸른 광맥을 갖고 있다. 다음은 중국 다예사 열풍이다.‘묻지마’보이차에 이어 우리 차인들에게 마치 음습한 안개처럼 스며들고 있는 것이 바로 ‘묻지마’다예사 열풍이다. 현재 중국에는 수없이 많은 다예사들이 있지만 아직 다예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물론 중국은 차의 역사로 볼 때 그 원류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차문화가 부활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문화혁명으로 인한 차 생산기반과 차문화 파괴의 영향권에서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했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차생산은 걸음마 단계에 있다. 그런 점에서 수십년 나이를 먹었다는 보이차는 제대로 된 제품이 아닌 불량품이다. 건강을 위해 마시는 보이차가 바로 건강을 해치는 약이 되어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예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한국의 차인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무분별하게 다예사 자격증을 취득해온다. 마치 그 다예사가 훌륭한 차인의 증표인 것처럼 여기면서 그들은 자랑스럽게 우리 차인임을 내세운다. 많은 차인들이 ‘차의 사대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에서 배워온 차심평도 예외일 수 없다. 우선 다예사처럼 품평사 자격증을 취득해온다. 각자 배운 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차를 심평하지만 심평기준이 없으니 오류가 생김은 당연하다. 이같은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차인들의 노력도 배가되고 있다. 대한민국 차 품평대회, 대한민국 명차 품평대회 등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들이다. 차를 연구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보성 도립차 시험 연구소, 원광대·부산동의대·부산여대·순천대한국녹차연구소 등에서는 향, 탕색, 맛 등의 재질과 우린잎, 외관 등 외질을 통해 차의 품평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차의 품평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를 쌓는 중요한 작업이다. 일정한 품질을 보증하는 차의 품질은 생산자나 소비자 사이에 신뢰를 쌓음으로써 그 품질을 한층 더 발전시킬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차 품질 향상을 위한 품평기준 마련이 긍정적인 것은 차문화계 인사, 차 생산자, 차 연구자, 차 소비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공통의 장이 꾸준히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제주에서 마련된 세미나는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차와 관련된 한국 차인들이 다 모여 녹차 평가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는 향후 우리 차 현실에 맞는 심평기준안을 만들어 나가자고 했다. 그같은 일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한국차 품평기준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나아갈 것이 자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매우 많다. 불과 몇해 전 일이다. 차인구가 늘어가고 차 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 차의 브랜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자 명차선정을 위한품평대회가 곳곳에서 열렸다. 이른바 한국명차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생산자들 사이에서 무리한 명차 만들기 경쟁이 벌어졌다. 생산량의 유무와 상관없이 명차 브랜드로 선정됨은 유리한 마케팅을 선점하는 것으로 여겨져 명차 출품용 차를 만들기위해 올인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차 품평대회는 대회 당일 차 생산자가 출품한 100g단위 차 몇통을 심평하는 수준이었다. 차 생산자들은 명차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팽개치고 오로지 명차 몇통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그래서 탄생한 명차는 이름만 명차였다. 심평이 끝난 후 시중에 나오는 차는 그같은 등급을 맞출수 있는 차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같은 명품차 생산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차인들이 새로운 기준을 가진 품평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의 품평대회는 차 생산자도 모르게 열리는 경우가 많다. 차 생산지에서 생산되는 차와 일반시중에서 유통되는 차를 한꺼번에 구입, 차 생산자도 모르게 품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문제점은 남는다. 우선 생엽의 생산시기나 채다·제다법이 서로 다른 차를 함께 비교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심평기준. 차가 지역적 특산물이라고 한다면 각 지역마다 차의 분류법이 보다 세분화돼야 한다. 한발짝 더 나아가서 첫물차, 두물차, 끝물차, 여름차, 가을차 등 계절차에 대한 심평이 각 시기에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품평에 쓰이는 용어의 정립도 시급하다. 심평용어의 정립에 있어서 차의 외형과 내질을 우리의 기준에 맞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차인구 500만시대를 맞아 우리차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대목들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갖는 것은 우리 차문화를 한차원 발전시킬 수 있는 시금석이다. 우리 차문화를 찾기 위해서는 두가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먼저 규방다례 선비다례 생활다례 등 전통의 수많은 행다예법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고전이라는 고고한 장강의 흐름속에 내재한 전통다법을 있는 그대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다도를 연구할 다도학에 대한 투자와 결실이 필요하다. 또하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 우리차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열찬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현실에 맞는 심평과 품평, 그리고 다예사 등을 배출하기 위한 기준을 생산자와 소비자 연구자 차문화인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한국차문화 바탕을 만들기 위해 한발짝씩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일지암 암주 ■ 묵은차 맛있게 만들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차인들은 햇차의 진향이 그리워진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차나무들을 보면 엄마가 아이를 기르듯 대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마음이 부산해진다. 그러나 한해를 건너온 묵은 차들은 그맛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차의 맛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보관이 매우 중요하다. 병차, 이른바 발효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과 향이 진해지기 때문에 건조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녹차는 다르다. 묵은 차일수록 그 맛과 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매년 알맞은 양을 한꺼번에 준비해 잘 보관해야 한다. 일부 차인들은 차를 보관하기 위해 따로 저온냉장고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웬만한 차인이 아니라면 차 전용냉장고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묵은차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차를 마시기 전에 살짝 볶는 것이다. 번거롭고 예민한 일이기는 하지만 다른 냄새가 배지 않을 깨끗한 프라이팬을 준비한 후 뜨겁게 데워 살짝 볶아 먹으면 햇차의 향을 즐길 수 있다. 또다른 방법도 있다. 워머(warmer:찻물이나 차를 따뜻하게 해주는 차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요즘 차인들 사이에서 애용되는 워머는 두가지로 사용된다. 하나는 우려낸 찻물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차담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경우이다. 그것은 매우 통상적인 워머의 기능이다. 밤에 차담을 나눌 때 워머위에 놓인 투명한 찻그릇과 찻빛깔은 보는 사람, 마시는 사람 모두에게 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준다. 또 다른 워머가 있다. 돌이나 쇠 워머이다. 워머위에 묵은 차를 올려놓고 열을 가한 후 그 차를 우려내 마시는 것이다. 그때 워머는 차를 다시 한번 볶는, 이른바 가향처리의 기능을 한다. 가향처리된 차는 햇차의 맛과 향을 온전하게 회복하지는 못하지만 묵은차의 체증을 덜어버려 햇차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3∼4년이나 묵은 차도 같은 방법으로 가향처리를 하면 잃어버린 차맛을 일정정도 회복할 수 있다. 묵은 차를 볶아서 새롭게 마시는 것 역시 차를 마시는 비방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차를 마시는 비방이 아니라 찻속에 깃든 화·경·청·적의 진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우선이다. 차의 종류를 구분하고 질이 좋은 물을 사용하고 차의 분량을 가늠한 다음 물을 끓여 차를 마시는 행위는 차의 진정한 모습에 다가가는 체(體)와 용(用)의 진미를 알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요즘들어 차를 잘 음용하기 위해 현대적인 차구들이 많이 도입되고 있다.‘크로스 오버’란 것이 차문화에도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차 문화가 도입되고 실험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차문화가 중장년층의 전유물을 넘어 어린 학생, 젊은 청년들까지 함께하는 문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화적 접근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 군살 ‘쭉쭉’ 몸매 ‘쭉쭉’

    군살 ‘쭉쭉’ 몸매 ‘쭉쭉’

    두터운 코트를 벗어야 하는 계절이 왔다. 많은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겨우내 꽁꽁 감춰왔던 몸매. 산뜻한 봄옷을 걸치고 맵시를 뽐내고 싶지만 여기저기 붙은 살 때문에 폼이 나지 않는다. 아침 저녁으로 동네 한 바퀴 뛸 여유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실내 운동기구를 이용해볼 만하다.‘러닝 머신’외에 간편하고 다양한 가격대의 운동 기구들이 시중에 나와 있다. 그렇다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아무 것이나 골라서는 안된다. 안전한지, 내 몸에 맞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CJ홈쇼핑이 운영하는 인터넷쇼핑몰 CJ몰과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의 운동기구 부문 상품기획자에게 체형별로 알맞은 운동기구를 추천받았다. 요즘 인터넷쇼핑몰과 할인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운동기구도 참고하자. 운동기구의 최강자는 역시 ‘러닝머신’. 홈플러스 문화스포츠팀 이정석 대리는 “최소 40만원대에서 190만원대까지 다양한데 고가인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면서 “충격을 얼마나 완화시켜 주는지, 모터 마력 수가 얼마나 되는지, 공간은 충분한지 등을 잘 따져보고 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가정용 헬스 기구는 대개 1.75마력에서 5.0마력대의 제품들이 주종을 이루며,2∼3인 가족이 하루 3시간 사용하는 정도라면 3마력대 이상의 제품이 좋다.”고 덧붙였다. ‘AC 러닝머신(160만원)’은 비교적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부터 CJ몰 운동기구 중 최고 인기를 모으고 있는 상품이다. 헬스 클럽용 러닝 머신에 사용하는 ‘AC모터’를 사용해 소음이 작고 튼튼한 편이다. 속도, 경사도, 시간 조절이 편리한 원터치 버튼 기능을 강화한 점도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다. 러닝머신의 변형된 형태인 ‘마그네틱 라이더스 사이클론’(23만 8400원)’은 자전거 타기, 뛰기, 계단 오르기의 장점을 결합한 상품이다.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고,41cm의 넓은 원형 축으로 제작돼 운동효과를 극대화한다. ●부분별 살빼기 특성화 상품 인기 ‘나우채널 V4 트리오 헬스 사이클(29만 8000원)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안장의 앞뒤 조절이 가능하며, 소음이 거의 없는 것이 장점이다.‘파워 핸드 스테퍼(10만 9000원)’는 안정성을 위해 앞쪽에 기둥과 손잡이가 있어 인기다. 최근에는 전신 운동기기뿐만 아니라 배, 허리, 종아리 등 부분별로 살 빼기에 알맞은 특화상품을 내 놓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여성들이 뱃살을 빼기에 좋은 상품으로는 ‘에이비 킹 파워(7만 4900원)’가 있다. 쉽게 윗몸 일으키기를 할 수 있도록 고안한 제품이다.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밀착시킨 뒤 기구와 함께 윗몸을 일으키기 때문에 허리나 등에 무리가 덜 간다. 이효리처럼 탄탄한 배 근육을 만드는데 효과적이며,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꾸준히 운동할 자신이 있다면 저렴한 훌라후프나 짐볼을 추천할 만하다. ‘미모미모 야광 훌라후프(9900원)’는 야광으로 돼 있어 어둠 속에서도 운동할 수 있는 재미를 준다. 안 쪽으로 동그랗게 돌출된 공들이 지압 효과를 낸다. ‘나스포 왕방울후프(2만 7900원)’는 기존 훌라후프보다 2배 이상 무거워 많은 열량을 소비할 수 있다. 후프에 붙어있는 돌기가 커 지압 효과도 좋다. ‘다이어트 짐볼’(2만 2900원)’은 전신 스트레칭, 허리살빼기, 뱃살빼기 등에 도움을 주는 운동기구. 엉덩이를 탄력있게 만들거나 팔의 살을 빼는 운동에도 활용할 수 있다. 팔이나 다리를 드러낼 일이 많은 여성들은 뱃살 못지않게 팔이나 종아리 살을 걱정한다. 전문가들은 통통한 팔을 날씬하게 만드는 데는 아령 운동이 최고라고 조언한다.‘에어로빅 물아령(1만 1800원)’은 아령 안에 물과 모래를 넣어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어린이들에겐 놀이 겸할 수 있는 상품이 효과적 가벼운 무게로 시작, 차츰 무게를 늘려나가며 운동해야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최고 2㎏까지 무게를 늘릴 수 있다. 홈플러스 ‘G칼라아령 1㎏(2700원)’은 손잡이 부분에 마감 처리를 해 운동시 땀이 나더라도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하체를 집중적으로 운동하고 싶다면 ‘파워이클립스 7350D(35만 8000원)’를 눈여겨 볼 만하다. 자전거의 페달 축이 원형판과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운동 폭이 커 다리의 운동량을 키워준다. 운동을 한 뒤 근육을 풀어주는 데는 ‘EASY SLIM 종아리 벨트(1만 2900원)’,‘허리벨트(1만 3900원)’,‘허벅지 벨트(1만 2900원)’,‘탱크탑(2만 7900원)’ 등 부위별 벨트가 효과적이다. 어린이들에게는 단순히 살 빼기를 위한 운동 기구보다 즐거운 놀이를 겸할 수 있는 상품이 효과적이다. ‘쿠쿠토이즈 어린이 운동놀이세트(3만 1500원)’는 어린이들이 골프, 농구, 볼링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다. 잔디밭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하이로우 리바운딩(7만 9000원)’은 ‘아랫집’ 눈치를 안 보고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할 수 있어 좋다. 뜀 뛰기는 아이들의 성장판을 자극해 성장 발육에 도움을 준다. 직경이 102cm나 되기 때문에, 떨어질 염려도 적다. 운동기구를 살 때 주의할 점은 무엇보다도 안전성이다. 할인점에서는 되도록 직접 사용해보고 안전성을 테스트 해보는 게 좋다. 인터넷쇼핑몰에서는 직접 써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후기를 살펴보는 게 우선이다. 또 러닝머신같은 대형 운동기구는 설치 여부를 주문 전에 반드시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운동기구도 빌려 쓰세요 운동기구 값이 부담스럽거나 단기간만 사용할 것이라면 운동기구를 빌려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터넷에 다양한 운동기구 대여 사이트들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헬스웨이(healthway.co.kr), 헬시넷(healthynet.co.kr), 헬스렌탈(health-rental.com)등이다. 러닝머신, 자전거 등의 대여료는 보통 1개월에 5만∼10만원정도. 구매가와 마찬가지로 종류에 따라 값은 천차만별이다. 대여 기간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다. 단, 운동 기구를 빌려 쓸 때는 반드시 사용 약관을 주의깊게 읽어봐야 한다. 설치여부는 물론 물건에 이상이 있을 때, 사용 기간 중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등 세세한 사항까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좋다. 또 빌려쓸 때와 살 때의 가격에 큰 차이가 없는 제품,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제품은 사는 것과 빌리는 것 중 어느것이 합리적인지 비교해 봐야 한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인간시대] 5대째 아차산자락 토박이 ‘아차산지킴이’ 박정분 회장

    [인간시대] 5대째 아차산자락 토박이 ‘아차산지킴이’ 박정분 회장

    평생을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4H운동’.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 1980년대에는 한·일 민간인 친선운동. 1990년대 이후에는 친환경 운동과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 활동. 굴곡 있는 대한민국 반세기의 봉사 활동 역사를 구구절절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박정분(70) 할머니. 할머니는 5대째 광진구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다. 봉사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매주 일요일마다 아차산을 찾아 청소를 하는 ‘아차산 지킴이’의 대표를 맡아 봉사 활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체험으로 얻은 박 할머니의 봉사 활동 철학을 들어보자. 글 사진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내 평생을 광진에 봉사하며 살았다오. 인생의 황혼에서 칠십 평생을 돌아보니 후회는 없어. 다만 요즘 사람들이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 세상 모든 것이 귀한 줄 모르는 게 슬퍼.” ●14살부터 각종 활동… 봉사역사 산증인 배고프고 못사는 서러움 많았던 대한민국 반세기를 이어오는 동안 광진구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할머니가 있다. 지금은 ‘아차산 지킴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분(70·광진구 광장동)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 할머니가 평생 참여한 봉사활동 단체는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1945년 광복과 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4H운동’에, 개발시기인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 일본과 교류가 절실했던 80년대에는 한·일 민간인 친선운동,90년 이후부터는 친환경 운동과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 활동 등에 투신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각종 봉사 활동에서 손을 놓았지만 박 할머니는 대한민국 봉사활동의 산증인인 셈이다. 박 할머니가 어린시절부터 봉사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것은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아차산 자락에서 5대가 터를 일구고 살아온 광진 토박이인 박 할머니는 6·25전쟁 중인 51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떠난 것 외에는 평생을 광진에서만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박 할머니의 나이는 열네살. 폐허가 된 고향을 재건하자는 4H운동이 일었을 때 당시 소녀였던 박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돼지를 나눠주고 키우는 법을 직접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박 할머니의 봉사활동은 스물 한살에 결혼한 뒤에도 계속됐다. 33년 3개월 동안 공직 생활을 하고 지난 92년 성수2가 1동장으로 퇴임한 남편은 박 할머니의 봉사 활동을 평생 지원해준 든든한 후원자였다. ●표창장 셀 수 없을 정도 70년대 새마을 운동은 물론이고 성동광진 농심회 광진구 회장,80∼91년 한·일 친선협회 부회장,90년대 아차산 어머니산악회 회장, 아차산 지킴이회 회장으로 활동하다보니 한 평생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박 할머니는 요즘은 매주 일요일에 아차산 지킴이들과 아차산에서 만나 쓰레기를 줍고 주변을 정리하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박 할머니 자택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의 표창장이 즐비하다.‘자랑스러운 구민상’ 수상 경력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평생을 봉사 활동하며 살아온 이유를 묻자 박 할머니는 “팔자라니까. 그냥 좋아서 했어.”라며 웃는다. 그 시대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 일 이루셨을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할머니는 “전쟁 통에 배운 게 있어야지. 우리 세대가 고생만 하고 참 애매한 세대라니까. 나는 봉사 활동하는 게 마냥 좋았으니까 됐어.”라며 웃는다. ●요즘 사람들 물건 귀하게 여길 줄 몰라 하지만 박 할머니가 평생을 광진에서 봉사 활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5대가 한 장소에서 살았다는 박 할머니는 마을의 길 하나, 나무 한 그루, 동네 이름 하나까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딨어. 요즘 아파트 한동을 한 시간만 돌아보면 1년 내내 써도 좋을 버려진 물건들이 넘쳐나. 그런게 모두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인데 요즘 사람들은 간직하고 귀하게 여길 줄을 모르고 너무 쉽게 버려. 그러니까 내가 봉사 활동하면서 그런 것 지키고 싶었던 거야.”라며 박 할머니는 평생을 봉사 활동에 투신한 소신을 담담히 밝혔다. 세 아들은 출가시키고 남편과 단출하게 살아가고 있는 박 할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도 여기저기 부르는데로 따라다니며 봉사 활동하면 하루가 너무 바빠.”라며 노년의 즐거운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실속만점 여가활용 문화회관

    실속만점 여가활용 문화회관

    구민회관과 문화체육센터의 극장이 시민들의 좋은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저렴하고 가까운 것이 장점이다. 온 가족이 시내 개봉관이나 공연장을 찾으려면 일정을 맞추기 어렵고 저녁 식사까지 생각하면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자치구 문화시설을 이용하면 비용도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실속을 챙기면서 부담없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내용도 알차다. 문화 담당 직원들이 직접 최근 막을 내린 영화들을 보고 인기있는 작품을 고르고 대학로 연극 공연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볼 만한 작품을 선택한다.맞벌이 부부와 학원과 독서실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주말 오후를 보람있게 보내고 싶다면 가까운 구민회관이나 문화체육센터를 찾아가 보자. 이곳에는 영화와 연극이 있고,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있고, 젊은이들의 발랄함이 있다. 어르신들의 여유로운 발걸음도 발견할 수 있다. 보너스로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에서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식탁에 둘러앉아, 보고 듣고 느낀점을 이야기 하다 보면 풍성해진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마을 가듯 손쉽게 공짜같은 싼값에 문화생활 즐겨요 “친구들이랑 함께 큰 화면을 통해 보니까 집에서 볼 때보다 훨씬 생동감이 느껴지고 푹 빠지게 돼요.” 서울 동대문구 이문체육문화센터는 매달 둘째·넷째 금요일에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어머니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를 보여준다. 지난 10일 80여석 되는 자리가 거의 찼다. 대부분 5∼7살 되는 어린이들과 어머니가 함께 왔다. 이날 상영된 영화는 ‘이웃집 토토로’. 숲을 다스리는 동물인 토토로가 착한 어린이를 돕는 영화이다. 앞쪽에 앉은 어린이들이 “나무가 커진다.”면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의자위로 올라섰다. 토토로가 순식간에 나무를 크게 성장시키자 아이들은 무척 신기한 표정이었다. ●어린이들에겐 감동… 어른들은 여가 활용 토토로가 어려움에 처한 자매에게 선행을 베풀자,“토토로 정말 착하다.”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어린이도 있었다. 마지막에 토토로가 손을 흔들자, 대부분 어린이들이 일어나 “토토로 안녕”하면서 손을 흔들며 같이 인사를 했다. 영화가 끝난 뒤 불이 켜지자, 어린이들의 얼굴에는 진한 감동을 받은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아들과 함께 찾은 김경미(35)씨는 “요즘 어린이들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정서가 왜곡될까봐 걱정도 되는데 체육문화센터에서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 애니메이션을 볼 기회를 마련해 줘 다행”이라고 말했다. 서윤정(35)씨는 “아이들은 낮선 사람이 많고 음향이 큰 시내 영화관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곳엔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스피커도 울리지 않아 아이들이 마음 편히 볼 수 있어 자주 올 생각이다.”고 말했다. 유승영 문화사업팀장은 “어린이 정서에 도움되는 영화를 보여주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최근 상영할 때마다 빈 자리가 거의 없는 등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 문화회관은 주말을 맞아 ‘태풍’을 상영하고 있었다. 지난 10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구민 200여명이 가족단위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관보다 더 큰 스크린… 음향시설도 최신식 이들은 문화회관의 영화상영이 주민들의 주말 여가를 즐기는데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달에 두 차례 정도 가족과 함께 온다는 조강옥(45)씨는 “문화회관에서 보면 개봉관에서 종료된 영화를 봐야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집 가까운 곳에서 적은 비용으로 온 가족이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장점이 더 크다.”고 말했다. 김정희(44)씨는 “둘이 합쳐 5000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남편과 가끔 데이트할 수 있는 괜찮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이 문화회관 영화관은 연일 표가 매진돼 입장권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올해부터 입장료를 1000원 더 올려 2000원을 받자 관객 수가 좀 줄었다고 한다. 안병준 양천문화원 사무국장은 “스크린 크기가 11m×7m로 일반 영화관보다 더 크고 음향시설도 최신식이어서 시내 영화관 대신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이 곳에 오는 구민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주민들이 여가로 즐기는데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대학로 극단 배우 직접출연… 수준높은 무대 일부 문화체육센터에서는 영화 대신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서울 도봉구 창동문화체육센터는 지난 7∼9일과 13∼14일 각각 ‘똥 이야기’와 ‘라이방’을 올렸다. 대학로 극단의 배우들이 직접 출연했다. 하지만 가격은 대학로의 3분의 1 수준인 5000원. 권혜진 공연담당은 “대학로 극장에 비해 대관료가 싸고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극단이 저렴한 가격에 출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직접 연극을 본 뒤 많은 구민들이 즐길 수 있는 재밌는 연극을 신중하게 고른다고 설명했다. 관람객인 김수현(42)씨는 “인근에 문화공간이 없어 10년 동안 살면서 거의 문화생활을 못 했는데 최근 대학로까지 가지 않고 연극을 즐길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최근 많은 자치구가 영화와 연극 등 문화행사를 여는 것에 대해, 김태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요즘 자치구는 단지 찾아오는 민원인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에서 벗어나 직접 서비스를 개발, 제공하는 입장으로 변했다.”면서 “구민에게 다양한 문화행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은 새 시대에 맞는 지자체의 바람직한 변화다.”라고 평가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어떤 작품 어떻게 고르나? 개봉되는 수많은 영화 가운데 자치구의 구민회관이나 문화체육센터는 어떤 기준으로 영화나 연극을 고를까. 또 구민이 예정작과 시간, 장소 등 관련 정보를 빨리 접하는 길은 무엇일까. 동네에서 영화와 연극을 즐기는 방법과 정보를 모았다. ●저학년·학부모등 배려 상영 영화를 고를 때 가장 고려되는 부분은 어린이를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왜냐하면 구민회관과 문화체육센터 영화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구민이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생과 학부모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영 영화 가운데 전체 관람가 혹은 12세 이상 관람가인 영화가 많다. 가령,‘우리 형’과 애니메이션 영화 등이다. 김동흔 강북구 삼각산 문화예술회관 계장은 “어린이와 어머니가 함께 오는 경우가 가장 많고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등 젊은 층은 시내 개봉관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최신작인지 여부와 흥행성을 함께 고려한다. 김 계장은 “직원들이 종료된 영화 가운데 가장 최신작들을 살펴본 뒤 이 가운데 재미있는 것을 고른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다른 자치구의 구민회관과 문화체육센터도 비슷한 방식으로 상영 영화를 정한다. ●영화정보 온·오프라인서 제공 영화 홍보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 방식이 모두 쓰인다. 먼저 주요 사거리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상영 영화와 시간, 장소 등이 적힌 현수막을 건다. 한편 해당구청 공보실은 보도자료나 소식지 등을 통해 주민에게 알린다. 구민회관이나 문화체육센터 홈페이지 등 온라인 방식을 이용하기도 한다. 관심있는 주민들은 지역신문이나 해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다. 양천구민회관은 연락처를 아는 관객들에게는 새 영화가 시작되면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회원 가입하면 각종 혜택 양천문화회관과 강북구 삼각산 문화예술회관 등 일부 회관은 붓글씨와 단전호흡 등 해당 회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등록한 회원에 한해 이벤트 등을 통해 영화를 더 싸게 볼 수 있는 혜택을 마련해 준다. 양천문화회원은 연회비 2만원을 낸 회원에게 2000원 짜리 영화표 10장을 무료로 준다. 강북구 삼각산 문화예술회관은 이 회관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회원이 영화를 볼 경우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3000원짜리 영화를 2000원에 관람하게 해 준다. ●연극은 어린이 대상 많아 공연할 연극을 고르는 기준도 상영 영화를 택하는 기준과 비슷하다. 연극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와 학부모가 가장 많이 오기 때문에 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어린이 대상 연극을 우선시한다. 신데렐라와 피터팬 등을 들 수 있다. 또 담당 직원은 여러 연극을 대학로 등에서 직접 보고 관객이 많이 모이고 재미있는 연극을 고른다. 영화와 다른 특징은 연말과 연초에 회관에서 많이 연극 공연을 연다는 점이다. 보통 때는 연극은 한 달에 한 차례쯤 하는데 12∼2월엔 한 달에 두 차례 이상 한다. 대학로에 있는 극단들이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공연을 많이 하기 때문에 구민회관이나 문화체육센터가 그만큼 고를 영화가 많다는 것이다. 연극 관련 정보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해당 홈페이지와 지역신문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이러시면 안됩니다 “문화 에티켓을 지킵시다.” 일부 관람객들이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극장에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아 다른 관람객이 불편해하는 일이 생긴다. 기본적인 예절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등생이 성인물 보겠다는데… 구민·문화회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주로 ‘전체 관람가’나 ‘12세 관람가’가 많다. 하지만 마땅한 영화가 없으면 ‘15세 이상 관람가’도 상영한다. 대부분 규정을 잘 지키지만 가끔 초등생들이 보겠다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입장이 안 된다고 제지하면 “우리는 조숙해서 이 정도쯤은 볼 수 있어요.”라며 따지기도 한다. 안병준 양천문화원 사무국장은 “‘15세 이상 관람가’의 경우 부모와 함께 오지 않고 학생 혼자 오면 입장이 안 된다.”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직원들이 미리 영화를 본 뒤 문제의 소지가 될 장면이 있으면 삭제한다.”고 말했다. ●연극 배우 “사진 찍지 마세요” 관람객이 공연 장면을 촬영하거나 관람중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배우는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연극 ‘똥 이야기’배우 장은화(33)씨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 놀라서 대사가 안 나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또 “공연중에 휴대전화 벨이 울리면, 일부 관객은 ‘누구야’라며 짜증을 내는 소리도 들린다.”고 지적했다. ●음식 냄새 풍겨 공연 관계자들은 일부 관람객이 음식물을 몰래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권혜진 창동문화체육센터 주임은 “음식물 반입이 금지됐는데도 숨기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면서 “커피 등이 새 카펫에 쏟아지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범중 강남구청 문화담당주임은 “‘김밥 등 음식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들어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흑인이나 혼혈에 언제 관심가졌나”

    “흑인이나 혼혈에 언제 관심가졌나”

    |애틀랜타 이도운특파원|“축하한다, 자랑스러운 아들아!” “생큐 맘(고마워요, 어머니).” 한국계 풋볼 선수인 하인스 워드가 12일(현지시간) 미국프로풋볼리그(NFL)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뒤 처음으로 어머니 김영희씨를 찾았다. 워드는 지난 5일 열린 NFL 결승전 이후 애틀랜타 근교 맥도너의 자택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를 만나자마자 힘껏 끌어안고 볼과 입술에 뽀뽀를 하며 반가움과 기쁨을 표시했다. 김씨도 자랑스럽고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을 꼭 안았다. 워드는 ‘모자(母子)의 상봉´을 취재하려고 몰려든 한국 기자들에게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보였다. 촬영과 짧은 회견에도 응했다. 김씨는 “이틀전 욕실에서 미끄러져 팔을 다치는 바람에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오늘은 할 수 없이 내 아들에게 짬뽕을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워드도 “짬뽕 좋아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워드는 “어머니가 처음에는 풋볼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요즘은 일요일마다 경기를 시청하고 가끔은 코치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로부터 배운 대로 나의 아들도 겸손하게 키우겠다.”면서 “아들의 첫돌 때 한국식으로 잔치를 했는데 아들이 반지와 돈을 집었다.”고 전했다. 워드는 “나는 못하지만 아들에게는 한국말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어 책을 몇 권 사뒀다.”고 말했다. ●“아들관심 너무 과잉스러워 거북” 김씨는 기자들과 만난 뒤 집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한국에서 일고 있는 아들에 대한 ‘과잉 열풍’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 김씨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좋은 일이고, 여러 사람이 찾아와서 고맙긴 하지만 너무 과잉스러워 거북하다.”면서 “내가 원래 나서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김씨는 “과잉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 사람들이 흑인이나 혼혈이라면 언제 사람 대접이나 해줬느냐.”면서 “어렵게 혼자 살 때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잘되면 쳐다보고 그렇지 않으면 쳐다도 안 보는 것이 한국의 풍토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기자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모자간 포옹을 거듭 요구하자 “동네 부끄럽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아들위해 한국어책 사뒀다” 워드는 이에 앞서 하루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10년이나 15년 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스포츠 해설가가 돼 TV에 나올 수도 있고, 고등학교로 돌아가 풋볼 코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과 함께 공부도 아주 잘했던 워드는 “요즘은 학문적인 것 대신 비즈니스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서 “부동산 투자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만약 풋볼을 하지 않았다면 공부보다는 사업을 했을 것”이라면서 “어머니에게 배운 강인함 때문에 무엇을 해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워드는 그동안 집안의 법률 자문을 해주던 한국계 앤드루 리 변호사를 한국 언론 등과 관련한 창구로 지정했다. 따라서 워드가 한국에 투자하거나 한국과 관련한 사업을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dawn@seoul.co.kr
  • 11개월간 아프리카 가나서 활동 혼혈인 케빈 다넬

    11개월간 아프리카 가나서 활동 혼혈인 케빈 다넬

    “한국에서는 ‘검은 원숭이’라고 놀리고, 미국에 갔더니 재미교포 2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서러운 마음에 술과 마약에 빠져 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혼혈의 아픔도 잊게 됐습니다.”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국제청소년연합(IYF)의 해외봉사단 귀국 발표회에는 여느 한국인과 다른 외모를 가진 청년이 아프리카에서 한 봉사활동 경험을 발표한다. 주인공은 케빈 다넬(25·워싱턴대 4년).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따돌림을 당했던 검고 조그맣던 아이가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해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었다. 경기도 포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케빈은 초등학생 때 싸움을 한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다른 동네에 놀러가면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검둥이라고 놀렸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내가 반 흑인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말을 하는데 다르게 보는 시선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케빈이 말썽만 피우자 어머니는 열 살 될 무렵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보냈다. 하지만 케빈은 영어도 못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지만, 이번에는 재미교포 2세들이 무시하고 놀렸다. 케빈은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고 되돌아봤다. 미국에서 커가면서 케빈의 분노와 원망도 커가기만 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미국에서 술과 마약에 빠졌고,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타코마에서 가장 세력이 큰 갱단에 들어가 1인자 자리에 올랐다가 친형제 같은 친구가 총에 맞아 죽는 것도 지켜봤다. 그러다 우연히 해외봉사 사진전을 보게 됐다. 얼굴색과 상관없이 서로 도우며 해맑게 웃는 사진 속의 또래들을 보면서 “나 같은 마약중독자도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문을 두드렸다. 케빈은 지난해 2월부터 11개월 동안 아프리카 가나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고비도 맞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마을 노인들의 일도 도왔다. 이제 남들의 이야기에 신경쓰지 않는다. 케빈은 “한국과 미국에서 나처럼 무시당하면서 서럽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서민층 지난달 해외관광 75%↑

    서민층 지난달 해외관광 75%↑

    연초부터 급락세를 보인 원·달러 환율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부내에서조차 환율안정을 위해 외환당국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환율은 ‘수출한국’의 목을 죄고 있다. 원체 환율에 민감한 중소기업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 수십조원의 매출을 자랑하는 대기업들도 대놓고 ‘비상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강해진 원화덕에 모처럼 해외여행길에 오르는 서민부터 해외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는 부자들까지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다. 강원도 원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최명순(42·여)씨는 요즘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동네 사람들과 부은 곗돈으로 다음달 난생 처음 홍콩·싱가포르 등으로 여행을 떠난다. 달러 대비 환율이 급격히 떨어지자 ‘이때다’ 싶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직장 생활 3년차 김보라(27·여)씨는 고이 모은 1600만원짜리 적금을 깨고 지난 1월 미국 뉴욕 연수 길에 올랐다. 김씨의 어머니는 “5년 전 첫째 아이가 연수를 갔을 때보다 송금 비용이 확실히 적게 든다.”고 말했다. 원화 가치가 오르자 서민들이 미뤄뒀던 관광·유학·연수를 서두르고 있다. 하나투어 김희선 팀장은 “올 1월 해외여행 손님이 지난해 동기보다 75%나 늘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면서 “해외에서 물건을 살 때 더 많이 살 수 있다는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2003년 미화 1달러에 1200원 정도였던 환율이 최근 960∼970원대를 오르내리자 연간 출국자 수도 700만명에서 1000만명으로 42%나 늘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원화 강세는 단기적으로 서민들이 해외 경험을 넓히는 데 긍정적 영향을 준다.”면서 “그러나 환율 하락과 동반되는 주식 폭락, 펀드 수익 감소가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악화시킨다.”고 분석했다. 직장인 김우성(36)씨는 “반토막 난 주식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지만 만약 환율이 오르면 좋아질까 싶어 팔지도 못한다.”며 한숨지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태광그룹은 겉의 화려함보다 내실을 추구한다. 재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옥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울 중구 장충동 옛 동북고등학교 교사(校舍)를 30년여년 동안 그룹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타 재벌과 달리 초고층 호화 사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재계 서열 30위권이면 서울 광화문 한복판이나 강남에 번듯한 빌딩을 사옥으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6층짜리 학교 건물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고 말한다. 겉보다 속을 중시하는 태광의 사풍이 여실히 읽혀진다. 이같은 경영철학은 국내 재벌 가운데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그룹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이는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회장 때부터 관통하는 ‘내실경영’이 면면히 이어진 결과다. ●대쪽 같은 선대 회장의 결혼과 창업, 그리고 성장 창업주인 고 이 회장은 지난 1921년 경북 영일군에서 중농이었던 부친 이우식씨와 모친 정막랑씨 사이의 3남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간조(簡井)실업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등으로 일본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이듬 해인 42년 귀국길에 오른다. 이후 부친의 권유로 당시 22세 청년이던 그는 동네에 사는 이선애씨와 혼례를 올렸다. 신부 이씨는 이 창업주의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한동네 유지인 이송산씨의 맏딸이다.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씨와 ‘창업 동지’ 이기화(태광그룹 회장까지 지냄)씨는 이씨의 남동생이다. 이기화씨는 부산고·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이 창업주와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궜다. 이 창업주는 야당 거물이던 이기택씨와 처남매부지간이란 이유로 군사정권 시절 여러차례 세무조사를 받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처남이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게 이 창업주에게는 결코 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기업은 절대 정치와 연결돼선 안 된다.”며 사업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찍히면 죽던 서슬퍼런 군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정경 분리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베테랑 세무조사 요원들을 투입, 몇 날 며칠을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기업사에 전례없는 일이다. 이씨와 중매 결혼한 이 창업주는 공직(면사무소) 생활을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던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6·25전쟁이다. 1951년 공직을 접은 이 창업주는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부산 문현동에 모직 공장을 차리고 태광산업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바로 태광그룹의 모체다. 이후 1961년 전 삼호그룹 조봉구 회장과 동업을 시작했으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창업주는 조 회장과 결별한 뒤 부산 가야동에 새로운 공장을 신설하며 태광산업사를 주식회사로 출범시킨다. 초기 태광은 이 창업주와 이선애씨가 함께 일궈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선애씨가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댔고 기업이 커지면서 이 창업주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기업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태광은 섬유를 기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과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아크릴을 생산하던 태광은 눈부신 호황을 누렸다. 당시 아크릴은 양모 대체품으로 수요가 많았고 경쟁업체가 적어 태광의 고속 질주를 견인했다. 이 창업주는 스판덱스·나일론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했다. 섬유 호황기인 1970년대까지 내놓은 제품마다 시장의 돌풍을 일으켜 국내 최대의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태광은 이 시기에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화섬·석유화학에 금융이 붙으면서 태광은 본격적인 성장과 함께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약기를 맞은 셈이다. ●휴일에도 은행 이자는 큰다 태광그룹은 은행돈을 거의 안 쓰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타계한 이 창업주의 근검절약과 소탈함은 재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타계하기 전까지 이 창업주가 살던 서울 장충동 2층 양옥집은 지금도 부인 이선애(78)씨가 지키고 있다. 이 집에는 30∼40년 된 옛 가구들이 그대로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 정주영 회장에 버금갈 정도로 검소했다.”고 이 창업주를 회고한다. 그는 해외이든 국내이든 출장길에는 새로 지은 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법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십년 동안 단골로 다닌 낡은 호텔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점심도 설렁탕 한 그릇으로 후다닥 끝낼 정도로 무척 소탈했다. 이 창업주는 “은행돈을 빌리면 토·일요일 등 은행이 쉬는 동안에도 이자는 불어난다.”며 무차입 경영을 추구했다. 돈을 빌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지도 않았다. 번 만큼 투자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매출 규모 1조 3000억원인 모기업 태광산업의 부채 비율이 거의 제로인 것도 이같은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절약 경영과 남의 돈을 빌려 쓰지 않고 수익만큼 투자하는 실속경영은 그룹을 더욱 튼튼하고 알차게 만들었다. 인수한 부실기업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창업주는 또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 않고 공채 출신을 키워 경영진으로 기용했다.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은 그의 처남 이기화씨는 이 창업주의 사후 태광그룹 회장에까지 올랐다. 또 공채 출신인 류석기·강석명·최운형씨 등이 중용됐다. 그의 이런 원칙적이고 대쪽 같은 성품은 자녀들의 혼사로도 이어진다. ●화려한 혼맥…‘연애결혼은 없다´ 이 창업주는 생전에 모두 6명의 자녀를 뒀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의 연애결혼을 절대 허용치 않았다. 그는 평소 사대부가의 유교적인 면을 강조해와 전통 관습을 무척 중시했다. 재벌가의 혼사가 연애결혼보다 중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3남3녀를 하나같이 중매결혼시켰다는 것은 가풍을 짐작케 한다. 이 창업주는 집안 어른이나 친지들이 지체 있는 가문의 훌륭한 배우자를 찾아내 중매를 넣어 혼사를 성사시키는 방식으로 자녀들의 혼사를 치러왔다. 이처럼 중매 일변도로 자녀 혼사를 치른 것은 중매야말로 좋은 가문의 좋은 배우자를 폭넓게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태광그룹 2세들의 혼맥은 서민의 가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격이 높고 화려하다. 태광의 사돈가가 사람들은 당시에 내로라 하는 정·관·재계의 유력 인사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자녀들 혼사로 정·관·재계의 거물들과 사돈이 되었지만 이들을 경영에 끌어들이는 법은 결코 없었다. 지금도 모기업인 태광산업의 사장은 태광 신입사원 출신인 이화동(62)씨다. 이 창업주는 이선애씨와의 사이에 식진(사망)·영진(사망)·호진(44) 3형제와 경훈(52)·재훈(50)·봉훈(48) 세 자매를 뒀다. 이 창업주의 개혼(開婚)인 식진씨의 혼사는 비교적 평범한 집안과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로는 모두 유력 인사와 사돈을 맺는다. 이 창업주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태광산업 영업과장으로 있던 장남 식진씨를 1975년 개인사업을 하던 진재홍씨의 맏딸 임순(54)씨와 결혼시켰다. 식진씨는 태광산업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식진씨의 장인 진씨는 면방업체인 경방에서 일하다 독립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공대 동창회장을 맡기도 했다. 식진씨 부부는 정아·성아·원준 등 1남2녀를 뒀다. 장녀 정아(31)씨는 결혼했다. 연세대 상대를 나온 차남 영진씨는 어머니 이선애씨 친구의 중매로 장상준(전 동국제강 회장)가의 4남2녀 중 막내딸인 옥빈(54)씨와 1976년 결혼했다. 태광산업에 입사한 뒤 계열사인 대우파일, 흥국생명, 고려상호신용금고 등에서 중역으로 활동했다. 이들 사이에는 성준·성은 남매가 있다.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호진씨의 부인 신유나(42)씨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71·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씨의 맏딸이다. 호진씨는 대원고·서울대 경제학과(81학번)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 경영학석사(MBA), 뉴욕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슬하에 현준·현나 남매가 있다. 이 창업주의 세 딸은 모두 재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세자매 모두 이화여대 선후배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창업주의 독특한 자녀 교육관이 스며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태광의 혼맥은 이대 출신의 세 딸을 출가시키면서 보다 화려하게 뻗어 나간다. 장녀 경훈씨는 진주의 대지주이자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가의 막내 며느리가 됐다. 경훈씨의 남편은 유통전문기업 GS리테일 대표인 허승조(56)씨다. 이들의 결혼은 경훈씨 친척 할머니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이임용가에서 허만정가로 이어가면 조홍제-송인상-신덕균가와 만난다. 이연두-박치현-김준성-김우중가와도 연결된다. 경훈씨는 남편 허승조씨와의 사이에 지안·민경 자매를 두고 있다. 이 창업주는 차녀 재훈씨를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원용(56)씨와 결혼시켰다. 원용씨는 현재 경희대 의대 교수로 있다. 이 창업주는 재훈씨를 양택식가로 출가시키면서 정·관계 유력인사와 연결된다. 양택식가를 통해 홍진기-노신영-정주영가로 연이 닿는다. 김한수-김복동가로도 이어진다. 특히 이 창업주는 이 결혼을 통해 업계의 라이벌인 한일합섬의 창업주 김한수가와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재훈씨 부부는 서윤·서정·서인·혁준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3녀 봉훈씨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광호가의 외아들 태원(49·한국베링거인겔하임 회장)씨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동우·상우·정우 3형제가 있다. ●뉴미디어·금융으로 21세기를 준비 태광은 1996년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 해 11월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이 75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3남 호진씨가 경영 전면에 부상한다. 호진씨는 이 창업주가 그룹의 후계자로 일찍 점찍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이어 2004년 태광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호진 회장은 섬유가 주력인 태광의 업종에 메스를 댄다. 추진력에 관한 한 부친 못지않은 ‘신형 엔진’ 이 회장은 ‘조용한 기업’ 태광에 거센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변화의 추동 세력은 MSO로 표현되는 종합유선방송과 금융 등 두 갈래다. 이 회장은 미래 태광의 신성장 동력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1조 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진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이는 섬유와 화학 중심에서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기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디어 기업으로의 급성장이다. 이 회장은 케이블TV 회사인 ‘태광 티브로드’를 세웠다. 티브로드는 태광, 미래, 통신 등의 앞글자 ‘T’와 브로드 캐스팅, 브로드 밴드의 ‘브로드’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티브로드는 지역 케이블TV 20개를 거느리고 있다. 가입자 300만명, 시장 점유율 24∼25%로 명실상부한 국내 1위다. 아직까지는 많은 수익을 내고 있진 못하지만 뉴미디어는 태광의 미래를 밝혀줄 한 축임에 틀림없다. 이 회장이 2003년 이후부터 미디어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뉴미디어는 진헌진 티브로드 사장과 이상윤 안양방송 및 수원방송 사장이 이끌고 있다. 진 사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이 회장의 대학교 동창이다. 2002년 이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금융 쪽도 더욱 살을 붙여야겠다는 게 이 회장의 전략이다. 현재 흥국생명, 고려상호저축은행, 태광투자신탁운용으로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쌍용화재와 예가람상호저축은행, 피데스증권 등의 인수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쌍용화재와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태광산업은 쌍용화재 지분의 50% 이상을 확보했다.‘흥국생명+쌍용화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의 근거는 생명보험·손해보험 상품의 교차 판매다. 태광은 쌍용화재 인수 열기가 식기가 무섭게 피데스증권 인수에 나섰다. 피데스증권은 현재 주식거래 업무만 하는 중소형 증권사지만 태광은 이 회사를 인수해 종합 증권사로 변신시킬 계획이다.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은 서울·경남에 기반을 둔 저축은행이다. 이들 기업의 인수작업이 순조롭게 매듭지어지면 태광그룹은 생보, 손보, 증권, 투신운용, 저축은행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금융 쪽은 류석기 흥국생명 부회장과 김성태 흥국생명 사장의 투톱 체제다. 김 사장은 씨티은행 출신으로 LG증권 사장을 지냈다. 태광산업 출신인 오용일 흥국생명 전무도 눈여겨 볼 전문 경영인이다. 이호진호(號)의 태광은 대변신을 꿈꾼다. 현재의 청사진이 조만간 구체화되면 태광그룹은 화섬 석유화학, 금융, 미디어, 레저(태광관광개발), 육영재단(일주학술문화재단, 일주학원)으로 새 틀을 짜게 된다. ykchoi@seoul.co.kr ■ 정도·신의는 기업의 생명 ‘정도’와 ‘신의’.50여년 전 부산의 한 작은 시장에서 출발해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군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명제다. 이를 지키지 않는 거래처와는 두번 다시 거래를 이어가지 않았을 정도다. 정도와 신의를 기업의 목숨이자 기업의 자격이라고 늘 강조했던 이 전 회장은 한눈 팔지 않고 기업 경영에만 충실했던 기업인이다. 태광은 이 전 회장의 타계 10주년을 맞아 그의 기업·국가관 등을 조명하기 위한 자서전 출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어록 정리에 신경쓰는 눈치다. 그의 어록에서는 경영관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난 1973년 단 닷새 만에 흥국생명을 인수한 이 전 회장은 첫 임원회의에서 “보험회사의 재산은 보험가입자의 재산”이라며 “흥국생명의 돈을 태광에서 가져다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이 전 회장은 ‘오래된 만남’을 중시했다. 태광의 주거래 은행은 조흥은행. 양자의 관계는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오직 하나의 은행만을 고집한 이 전 회장은 1975년 대한화섬 인수 후 많은 임원들이 복수은행 거래를 건의했지만 “새 친구 열 명을 사귀기 위해 헌 친구 한 명을 안 버린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용은 이임용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자신의 입으로 말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계약서는 단지 둘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종이에 불과했다. 타계 몇해 전 신입사원 특강에서 신용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닷새 만에 서는 장에 못가는 사람이 장에 가는 친구에게 무엇 무엇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혹 자기 물건 사는 것은 잊어버리더라도 결코 친구의 부탁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 물건이 제수용품이었다면 남의 집 제사를 망치는 격이 돼 옛날 말로는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된다. 그래서 약속은 무서운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ykchoi@seoul.co.kr ■ 베일에 싸인 오너一家 재계에서 태광그룹만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오너 일가’도 없다. 창업주인 이임용 전 회장은 물론 후계자인 이호진 현 회장 역시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취재를 위해 이 회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가하다.’는 단호한 한마디였다. 오너 일가가 이처럼 몸을 꽁꽁 숨기는 데에는 격동기를 헤쳐온 태광그룹의 기업사와 유교적 관습이 맞물려 있다. 태광에 있어 정치는 짐이었다.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은 야당의 거목인 처남(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을 두면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사찰을 받았다. 고속성장을 질주한 태광이었지만 그럴수록 기업경영만큼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한눈 팔면 죽는다는 것을 절감한 이 전 회장은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에도 자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전 회장의 짙은 보수성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태광 일가의 여성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태광가(家)의 여성들에게서는 다른 재벌가와 달리 우먼파워를 찾아볼 수 없다. 여성으로서 적합한 문화계나 학술계에는 진출해 있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의 세 딸도 그렇고 며느리도 마찬가지다.3형제 못지않게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세 딸 중 남녀공학 대학을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큰딸 경훈과 둘째 재훈, 막내딸 봉훈씨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이들 모두 다른 대학은 생각지도 못한 게 아닐까. 경훈·봉훈씨는 남편이 재계의 실력자들이지만 외부활동 대신 살림을 하고 있다. 태광가의 며느리들도 전혀 노출돼 있지 않다. 삼성·현대가 등 재벌들의 며느리들이 문화·재계의 저명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40대 중반인 이 회장도 전경련 활동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 노출을 기피하고 있다. 선친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은둔의 경영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현장에 매우 충실한 CEO다. 캐주얼 차림으로 불쑥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놀라게 한다. 이 회장은 기업경영 못지않게 예술에 조예가 깊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도 사실상 이 회장 작품이다. 바닥재부터 인테리어, 사무실 소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CEO가 안됐으면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ykcho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새영화] 9일 개봉 ‘백만장자의 첫사랑’

    브라운관의 삼식이가 이번에는 스크린에 도전했다.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9일 개봉·제작 보람영화사)은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이어받고 있다. 현빈을 주연으로 내세웠고, 현빈이 맡은 재경 역은 ‘삼식’을 닮아있어선지 아예 ‘업그레이드된 삼식’을 내세웠다. 그렇기에 꼬치꼬치 따지면서 영화를 보는 것은 절대 금물. 예쁜 그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백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멋진 현빈을 큰 화면으로 즐기는 기쁨과, 은환역을 맡은 배우 이연희의 예쁜 모습을 누릴 수 있다. 이연희는 KBS 드라마 ‘해신’에 나왔던 얼굴이다. 재경은 제 멋대로 구는 재벌3세 고등학생.“12자리 숫자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말을 남발하고 다닌다. 그러니 하는 짓이라곤 싸움질이나 외제차 운전 같은 ‘폼 나는’ 것들. 그런데 상속 전선에 이상이 생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원도 산골 고등학교에서 졸업장을 받아야 유산을 주겠다는 유언장이 공개된 것. 재경은 어쩔 수 없이 강원도 산골 고등학교로 전학간다. 이 동네, 딱 동막골이다. 그러니 퇴학당하려고 엉뚱한 싸움을 벌이고,‘큰 거 한 장’으로 교장 선생님을 매수하려해도 통할 턱이 없다. 그런 재경이 변신하는 계기는 은환과의 만남. 은환도 만만치 않다. 친엄마가 자신을 알아보길 간절히 바라는 고아에다, 이쁘고 똑똑하고 마음 씀씀이도 좋고, 여기에다 몹쓸병에 걸려주는 센스까지 고루 갖췄다. 당연하게(!) 이 둘은 토닥거리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키워가는데…. 영화의 두 축 재경과 은환이라는 캐릭터를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간결하게 제시하는 영화 초반부나, 마지막 부분을 울고불고 하는 사랑타령으로 채우지 않았다는 점 등은 미덕으로 꼽힐 만하다. 그러나 재경과 은환의 관계가 너무 빨리 진전되는 건 아무래도 걸린다. 따라잡아야 하는 관객들로선 숨이 찰 뿐 아니라 재경의 캐릭터가 ‘시건방진 부잣집 도련님’과 ‘철부지 고등학생’ 사이에서 너무 심하게 널뛰는 바람에 야누스 같다.12세 이상 관람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김진송 지음

    ‘우리 동네는 서울에 있었다. 지금은 없다. 서울시 지도를 펴고 아무리 살펴본들 우리 동네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가끔은 그런 동네가 있었는지 나 역시 의심이 들 때가 있다.’(24쪽)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에게 사라진 유년의 공간은 아련한 그리움을 넘어 정체성의 일부를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안겨준다. 미술평론가이자 목수인 김진송씨가 쓴 책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세미콜론)는 개발의 이름으로 세상이 빼앗아간 유년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경계가 불분명한 기억을 더듬는 저자의 행보는 자전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든다. ‘1968 노량진, 사라진 강변마을 이야기’란 부제가 말해주듯 1959년생인 저자가 유년기를 보낸 노량진 강변마을은 빈민촌 철거계획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졌다. 1부 ‘강변의 기억’은 이사 온 첫날부터 마을을 떠나던 날까지 강변마을에서 보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재구성한 자전적 소설이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철교와 둑, 별장의 나무그늘, 짝사랑했던 꽃집 아줌마, 장난 심한 쌍둥이 형제가 차례로 불려나온다. 2부 ‘기억의 재현, 혹은 조금 긴 후기’는 거대한 수산시장으로 변한 현재의 노량진을 둘러보며 느낀 격제지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횟집으로 변한 별장, 우뚝 선 63빌딩, 생태공원으로 변해버린 샛강…. 저자는 “깡그리 점령당한 유년의 장소와 맞닥뜨리면서 나는 점점 알 수 없는 좌절에 빠져들었고, 방문한 내내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공간에 대한 회의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고 탄식한다. 어릴 적 뛰놀던 동네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그 변화의 폭이 두려워 망설여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미술평론가이면서 전시기획자, 출판기획자인 저자는 1930년대 서울의 근대화 과정을 담은 ‘현대성의 형성,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를 내기도 했다.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울이야기] (36) 노인복지

    [서울이야기] (36) 노인복지

    우리나라는 2002년을 기점으로 전체인구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7%를 넘어서서 ‘늙어가는 사회, 고령화 사회로 들어섰다. 특히 고령화가 진행되는 속도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어서 2018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로,2026년에는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의 노인 인구비율은 이보다는 낮은 6%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인구 증가율은 전국 평균을 상회해 서울의 노인인구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전국 인구의 약 4분의1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서울의 노인인구 규모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서울에 살고 있는 노인은 어떤 모습일까. ●노인,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이순옥(67세)씨는 요즘 손자, 손녀들과 이메일로 편지를 주고받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지난해 봄부터 복지관에서 하는 컴퓨터 수업을 들어온 이씨는 서툴지만 자판을 두들겨 짧은 편지를 쓰고 메일을 보내는 요령도 익혔다. 처음엔 할머니의 편지를 조금 신기해하기도 하고 어색해하던 손주들이 이젠 할머니의 짧은 편지에 학교 이야기, 여자친구 이야기, 엄마한테 야단맞은 이야기까지 알아보기 힘든 이모티콘까지 곁들여 긴 편지로 답장을 한다.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얼굴 한번 보기가 힘들었는데 이젠 가까운 곳에 둔 것 같아 마음 든든하기만 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듣는 컴퓨터 수업 이외에도 이씨는 포크댄스 수업과 일주일에 한번씩 근처의 장애인아동시설에 자원봉사를 가고 있어서 누구보다도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봄부터는 근처의 사회복지관에서 열리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에 참여하려고 신청해 두었다. 재작년 남편과 사별하면서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스런 시간을 기억하면서 주변의 비슷한 경험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3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이웃의 권유로 마지못해 따라왔던 복지관에서 이순옥씨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노인종합복지관은 노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노인복지시설 중의 하나이다. 현재 서울시에는 24개의 노인종합복지관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노인의 생활, 주택, 신상 등에 관한 생활 상담 및 질병예방 치료 등에 관한 건강상담과 지도, 취업상담과 알선, 기능회복 훈련, 교양강좌 등을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프로그램과 서비스들이 제공되고 있다. 장소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경로당 활성화 사업을 통해 경로당에서 노인복지를 위한 실제적인 프로그램을 시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복지관으로 이동할 때에는 무료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무료셔틀버스는 현재 서울시에서 12개 노선 25대가 운행되고 있으며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이동에 장애를 가진 시민과 이들과 동행하는 보호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다. ●경로당, 더 이상 동네 사랑방이 아니다 경로당은 그 숫자 면에서 볼 때 우리 주위에서 더욱 가깝게 찾아볼 수 있는 시설이다. 서울시에는 2005년 10월 현재 총 2770개의 경로당이 운영되고 있어서 양적으로 가장 많이 공급된 노인여가복지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경로당은 동네 노인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여가를 즐기는 장소로 인식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노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지역사회 내의 노인종합복지관 또는 종합사회복지관과 경로당간의 연계를 통해 복지관 사회복지사들이 경로당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사회복지 서비스나 사회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아직까지 초기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지원금의 부족, 전문인력과 프로그램 미비, 공간과 설비의 부족 등 많은 운영상의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으나 이러한 사업은 경로당이 지역사회의 노인들을 위한 종합적인 다목적 노인복지센터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설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이처럼 지역사회 내에서 활동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노인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반면에 건강이 악화된 고령노인도 함께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출생률의 감소로 노인들을 부양할 가족들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더욱이 여성들의 사회활동 증가와 핵가족화로 인해 노인을 보살피는 일이 더 이상 가족 내에서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부양을 필요로 하는 노인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장소에 따라서 시설보호와 재가보호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인 입소시설은 양로시설과 요양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양로시설은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는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양로시설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 일반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요양시설은 노인성 질환 등으로 요양이 필요한 노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가운데 치매나 중풍 등 중증 노인성 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설을 전문요양시설로 구분한다. 현재 서울시에는 18개의 요양시설과 23개의 전문요양시설이 있다. 서울시의 노인인구 규모를 고려할 때 이들 시설은 아직 수요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요양시설은 대부분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시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시설보호를 필요로 하는 서민층, 중산층 노인들이 갈 곳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양로시설과 요양시설이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을 시설에 입소시켜 보호하는 서비스 형태인 반면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필요한 보호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재가복지시설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가복지시설은 주간보호시설과 단기보호시설을 들 수 있다. 주간보호시설은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심신이 허약한 노인과 장애노인들을 낮동안 입소시켜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2004년 12월 현재 서울시에는 73개의 주간보호시설(실비시설 포함)이 있으며 이 곳에서 생활지도 및 일상동작훈련 등 심신의 기능회복을 위한 서비스와 급식 및 목욕서비스, 여가생활 서비스, 이용노인가족에 대한 상담 및 교육 서비스 등이 제공되고 있다. 단기보호시설은 보호가 필요한 노인을 시설에 단기간 입소시켜 보호하는 곳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는 주간보호시설과 유사하다. 단기보호시설의 보호기간은 원칙적으로 45일 이내이며 연간 최장 이용일수가 3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 ●재가복지서비스 지역사회 내에 거주하는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서비스들은 ‘재가복지서비스’로 구분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주간 단기보호시설에서 제공하는 재가서비스 이외에 무료급식, 식사배달 및 밑반찬 배달, 가정도우미 사업, 방문간호서비스 등 재가복지서비스가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에는 1만 5000여명(2002년 기준)이 넘는 결식노인이 있다. 생활곤궁, 취사불편, 가정문제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식사를 거르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서울시는 무료급식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경로식당은 서울시 관내 노인종합복지관 혹은 사회복지관 등의 민간복지시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저소득 결식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사업의 일환으로 자원봉사자 등을 통하여 식사 또는 밑반찬을 가정까지 배달하는 식사배달사업 및 밑반찬배달 사업도 실시되고 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방문간호사업은 노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아니지만 실제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상당수가 노인들이며 보건서비스의 수요가 노인들에게서 많기 때문에 수혜자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치매나 중풍 등 신체적, 정신적인 이유로 병원방문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함께 병원까지 동행해 줄 보호자가 없는 경우가 빈번해 보건·의료서비스가 필요한 경우에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재가노인을 대상으로 한 방문간호서비스는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로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로연금과 교통수당 일정한 소득이 없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들에게는 경로연금이 지원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의 경우 80세 이상 노인은 월 5만원,65세에서 79세 노인은 월 4만 5000원의 경로연금이 지급되며 저소득 노인의 경우 배우자가 없는 경우 월 3만 5000원, 부부가 동시에 수급자인 경우 월 3만 630원이 지급된다(2005년 기준). 법적으로는 부양의무자인 아들이나 딸이 있으나 사실상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해서 생계가 어렵지만 자녀가 있어서 생활보호대상자나 저소득 노인으로 선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따라서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보다 정교한 기준이 요구되고 있다. 경로연금은 노인의 경제적인 수준을 기준으로 하여 지급되는 반면 경제적인 수준과는 상관없이 모든 노인에게 지급되는 노령수당의 개념으로 서울시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교통수당 및 지하철 무임승차권을 지급하고 있다. 교통수당은 분기별로 1인당 3만 6000원씩 신청 노인에 한하여 지급되고 있으며 65세 이상 노인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신분증을 매표소에 제시하면 무임승차권을 지급하고 있다. ●‘노인일자리’가 곧 ‘노인복지’ 일을 하고 싶어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노인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일’이란 경제적인 소득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삶의 의미와 활력을 제공해 주는 원천이 된다. 때문에 일하고 싶어하는 노인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은 노인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노인을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주체로 인식하고 일자리 알선이나 사회참여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복지사업의 방향전환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고령자의 고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서울시에서는 고령자취업알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는 구직자 모집, 취업상담, 알선 및 사후관리, 구인처 개발 및 관리, 고령자 적합직종 개발 등을 주요사업으로 하며 노인취업훈련센터를 통한 취업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2003년부터 연 2회 실버취업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고령자취업알선센터 사업의 하나로 운영되고 있는 노인취업훈련센터(www.goldenjob.or.kr)는 만 55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재취업에 필요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경비원, 주차관리인, 건물환경관리원, 텔레마케터, 배달원, 노인, 아동도우미, 광고모델, 창업, 방화관리사 등 12개 직종에 대한 취업교육과 소양교육 등이 실시되고 있다. 지난 2005년 9월 개최된 ‘서울 2005 실버 취업박람회’에는 2만여명의 장년층 구직자가 참여했다. 이 박람회에서는 2000여개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포함하여 총 6207개의 일자리가 제공되었다. 이외에도 고령자 자활 후견기관으로 지하철 택배, 꽃배달, 안내인 등의 사업을 운영하는 지역사회 시니어클럽과 공동생산 및 분배를 통해 소득기회를 제공하는 노인공동작업장 등을 통해 노인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노인의 다양한 욕구에 대한 이해가 필요 보호가 필요한 노인에겐 적절한 보호와 지원을, 일하고 싶어하는 노인에겐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자리’와 ‘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적인 복지서비스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도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은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욕구와 상황들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김선자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부 부연구위원
  • [데스크시각] 도서관과 지자체가 만났을때/박선화 지방자치뉴스 부장

    자연의 산소처럼, 일상의 청량제로 도서관을 꼽아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최근 본지가 보도한 ‘도서관을 살리자’ 제하의 기획기사를 접하며 도서관의 현실이 예의 까까머리 시절의 단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 착잡하다. 한편으론 작은 도서관이나 동네 사랑방처럼 생활속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는 변화상을 확인하며 기대를 걸어 본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도서관의 문제점으로는 우선 도서관 정책을 다루는 정부의 역할이 미흡한 점을 들고 싶다. 문화관광부, 행정자치부, 교육인적자원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권한과 역할이 분산돼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응당 충분치 못한 예산과 사서 등의 전문인력이 부족해 일관되고 효과적인 정책집행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인지 도서관 겉은 번지르르한데도 숫자는 적고 ‘산꼭대기’에 있어 이용자의 불만을 사고 있다. 나아가 기업과 독지가, 장삼이사의 십시일반으로 꾸려지는 선진국의 기부문화와 자원봉사체계도 요원한 실정이다. 도서관이 종합적인 문화공간으로서 이름값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모두가 가벼이 여기는 도서관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의식주와 같은 생필품도 아니고, 정부의 정책순위에서도 언제나 뒤처져 있는 데서 연유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채 성숙하지 못한 우리의 문화의식에서 찾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이러한 도서관정책에 최근 정부가 전향적 자세를 보여 위안을 주고 있다. 참여정부는 도서관 정책을 삶의 질 향상과 시민의 복지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대처하려는 움직임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살기좋은 도시’가 문화와 복지, 환경이라는 유기적 정책결합을 통해 완성되려면 도서관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상징적 축이기 때문이다. 도서관 관련정책도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알차게 꾸미는 데 역점을 두려는 것이다. 따라서 도서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한 정부부처의 미시적이고 단선적인 정책대응보다는 정부와 기업, 시민이 함께하는 단계적 처방이 요구된다. 몇가지 정책적 대안을 제언해 본다. 첫째로 관련부처의 정책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 주무부서는 문광부이지만 예산지원은 행자부-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됐듯, 지방분권화의 취지를 살리며 집행의 효율성을 꾀하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주민자치센터나 기존 문고를 활용하는 작은 도서관의 활성화 대책이 우선임은 물론이다. 차제에 지자체의 청사 신축시 도서관 병용시설을 구비토록 행정적 조치를 강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부족한 사서인력의 양성이 교육부의 대학 정원정책에 막혀있는 점을 감안, 한시적 특별증원이나 예외를 인정해주는 대책도 검토할 만하다. 개정되는 도서관법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부처 이기주의와 기득권을 벗어나는 게 성패의 관건이다. 둘째로 인센티브 제공을 늘려야 한다. 부천시의 ‘작은도서관’이나 부산의 ‘쌈지도서관’처럼 지자체와 교육청이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는 적잖다. 이들에게는 한정된 예산내에서 상대적으로 지원을 더 늘려주는 방안이다. 예컨대 도서관 가꾸기에 앞장선 지자체에는 행자부가 예산은 물론 교부금을 늘려주는 것이다. 특히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행정혁신 평가시 단체장의 도서관 지원실적을 평가요소에 반영하면 그 유인효과를 높일 수 있다. 교육청에 대한 교육부의 지원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 건설사의 예에서 보듯 민간기업이 아파트를 지을 때 일정규모 이상의 도서관을 건립하면 그만큼 세금이나 부담금을 완화시켜주는 식의 규제완화책도 가능할 것이다. 셋째, 실효성있는 대표도서관을 서울도심에 세울 것을 권하고 싶다. 서울시는 일단 은평구 국립보건원 부지를 내심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문화도시를 지향하고 랜드마크를 문화공간에서 찾는다면 그 장소는 남산이 적합하다. 상반기면 철거되는 동물원과 식물원 부지를 활용해 상징성과 접근성을 얼마든지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미래세대의 가치창출 문화공간이 정부와 지자체, 민간의 유기적인 도서관정책에 달려있다면 지나칠까. 박선화 지방자치뉴스 부장 pshnoq@seoul.co.kr
  • [공교육 정상화…지금 학교에선] (8) 학부모 봉사모임

    [공교육 정상화…지금 학교에선] (8) 학부모 봉사모임

    일부 학교를 중심으로 학부모들의 신선한 ‘치맛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왜곡된 교육열을 담은 ‘바람’이 아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내 아이만 챙기려는 욕심도 아니다. 모두가 우리 아이고, 가족이라는 생각뿐이다. 다양한 학교 활동에 적극적,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교육을 변화시키고 있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속으로 들어가봤다. ●세륜초등학교 학부모 사서명예교사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오륜동 세륜초등학교 도서관.20여평 남짓한 열람실은 책 읽기에 푹 빠져버린 초등학생들 차지였다. 교육만화를 읽는 아이, 진지하게 위인전의 책장을 넘기는 아이, 책에서 뭔가를 찾은 듯 열심히 메모하는 아이, 엄마와 나란히 앉아 책 읽는 아이…. 열람실은 아이들의 독서 열기로 방학이 무색할 정도로 활기를 띠었다. 이런 열기의 비결은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봉사활동이다.124명의 어머니들이 사서 명예교사를 자청, 매일 어머니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돕고 있다. 책 대여와 반납 등 기본적인 업무에서부터 도서 정리, 독후 활동 지도, 도서관 예절, 뒷 정리에 이르기까지 도서관 업무 전반을 어머니들이 도맡아 처리한다. 어머니들 활약이 여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3월과 9월 매년 두 차례 신간 도서 가운데 양서를 골라 장서를 늘리는 것도 이들 몫이다. 학부모와 학년별 담당 교사, 교장, 교감이 모여 ‘도서선정위원회’를 열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책을 엄선한다.1년에 새로 들여놓는 책만 해도 1000여권에 이른다. 매년 10월이면 도서 알뜰바자회를 열어 읽은 책을 나누기도 한다. 학부모들의 열정에 학교에서도 연간 학교운영비의 5%에 해당하는 1400여만원을 도서구입비로 지원하고 있다. 어머니들이 직접 도서관 운영에 참여하면서 학교 도서관은 입소문을 탔다. 학생은 물론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이 곳을 찾아 책을 읽거나 빌려가기도 한다. 학부모 방정욱(41)씨는 “엄마가 학교 도서관에 자주 나오니까 아이들도 책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더라.”며 좋아했다.1학년 학부모인 조새라(36)씨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예 방과 후에는 도서관에서 있다가 오라고 한다.”면서 “처음에는 만화책만 보더니 점차 다양한 책을 골고루 찾아보는 등 책과 가까와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은주(42)씨는 “주변의 다른 도서관은 책이 너무 낡은데다 신간이 없어 불만이었는데 학교에는 다양한 책이 많아 아이와 함께 자주 이용하고 있다.”면서 “아이가 만화책만 좋아해 이번 방학에는 점차 글자 수를 늘려 읽는다는 목표를 정해 도서관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중의 학부모 독서클럽 ‘내키만큼’ 서울 전농1동 동대문중 학부모들의 작은 모임도 화제다. 아이들 학원 보내기에 열중하는 여느 학부모들과는 달리 스스로 책을 읽으며 모범을 보이기 때문이다. 학부모 독서클럽 ‘내키만큼’. 이 그 모임이다. 명칭은 ‘자신의 키만큼 책을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미국 링컨대통령 어머니의 말에서 따왔다. 독서를 말로만 강조할 게 아니라 어머니부터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지난해 시작한 모임의 현재 회원은 10명. 매일 방과후 시간에 두 명씩 돌아가며 학교 도서관에 ‘출근’, 학생들이 학원보다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매일 두시간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이 언제든지 도서관을 들러 책을 빌려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2학기에는 학생들이 원하는 장서를 늘리기 위해 도서바자회를 열기도 하고, 학생의 이름을 새겨넣은 책을 학교에 기증하는 이벤트도 개최했다. 매주 목요일에는 학부모 도서토론회도 연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씩 읽고 얘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에 대한 얘기부터 아이들 고민, 각종 교육 정보도 나눈다. 어머니들의 활동에 아이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원만 다니던 아이들이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고, 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처음엔 서먹서먹하던 어머니들도 직접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에서 책을 읽는 등 자녀와 대화의 시간도 많아졌다. 학부모 홍성애(44)씨는 “아이 대신에 공부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아이를 깨우칠 수는 있다.”면서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 “하루아침에 아이들이 달라지기는 어렵겠지만 엄마의 작은 노력이 아이들에게는 감동을 주고 바른 길이었다는 것을 단 한 명의 아이에게라도 깨닫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며 웃어보였다. 김계숙(40)씨는 활동을 시작하면서 집안에 처박아둔 대학생 때 사용했던 독서노트를 다시 찾아 먼지를 털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바쁜 생활이지만 책을 읽고 아이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말이 안 통하는 ‘웬수’가 된다고 하는데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면서 “중학생은 어느 정도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시험 압박감도 고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해 책 읽히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라며 자녀와 책읽기를 권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학교가 주민들 사랑방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사랑방’이 지역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선유고등학교의 ‘선유사랑방’이다.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학교에서 열리는 교사와 학부모, 지역주민들의 얘기 마당이다. 직장 때문에 학교를 찾기 어려운 학부모들을 위해 저녁 시간을 이용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 모임은 말 그대로 사랑방이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가 참여를 신청하면 매주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특정 교사를 만나 상담을 원하면 사랑방 모임이 끝난 뒤 개별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선유사랑방을 찾는 ‘손님’은 매주 10여명 안팎이다. 대화주제도 다양하다. 진학 관련 고민은 물론 생활지도, 학교 안전문제, 지역주민들의 학교시설 이용 등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생기는 고민거리와 궁금한 점, 건의 사항이 얘깃거리다. 등하교시 지나가야 하는 큰 길에 신호위반 차량이 많아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에 학교는 곧바로 영등포경찰서에 협조를 요청, 교통경찰을 배치했다. 방과후 학교 체육관 이용 방안이나 2008학년도 대입에 대비해 체계적인 논술지도를 해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지난 연말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방안 등을 의논했다. 학부모 김경애(48)씨는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학교를 찾기가 더욱 어려운데다 아이가 잘못할 때만 학교에 가는 것으로 생각해 부담을 느꼈는데 사랑방에 나가면서 학교도 이해하고 선생님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백운걸(50) 학교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은 “학교 운영의 궁금한 사항을 직접 묻고 답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이진호 교장은 “지난해 3월 개교한 신설 학교지만 학교와 지역사회가 좀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찾았다는 점에서 사랑방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광남초교에선 ‘넥타이 돌풍’ ‘이젠 넥타이 바람이다.’ 서울 광장동 광남초등학교에 ‘넥타이 바람’이 거세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들이 학교 일에 나서는 것과 달리 이 곳은 아버지들이 학교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주인공은 광남초 아버지회다. 치맛바람을 없애고 아버지들이 신선한 넥타이 돌풍을 일으켜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게 올해로 벌써 8년째다. 아버지회의 활동은 눈부실 정도다. 매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개최하는 산행대회는 아이와 학부모, 가족은 물론 교사, 교사 가족, 지역 주민 등이 참여하는 지역 축제다. 동네 아차산을 찾아 자연의 소중함을 나눈다. 흘리는 땀 한 방울 속에서 공감하는 끈끈한 정은 덤이다. 나무와 꽃, 곤충 등을 관찰하고 답을 맞히는 ‘숲속의 퀴즈’는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다. 나무가 숨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진기를 이용해 자연의 생명력을 체험하기도 한다. 협동심을 이용해 장애물을 통과하는 ‘거미줄 통과 프로그램’은 세 가족이 한 팀을 구성해 해결해야 하는 협동 놀이다. 가을 운동회는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동네 운동회로 열린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물론 지역 주민까지 참여한다. 옛날 시골 운동회처럼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막걸리가 등장하고, 시상대에는 학용품과 함께 양동이와 가재도구가 상품으로 오른다.3년 전에는 어린이대공원 잔디구장을 통째로 빌려 운동회 잔치를 벌였다. 여름방학에는 1박2일 일정으로 가족 세미나를 연다. 학생과 그 가족, 교사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이 행사는 다양한 체험활동과 견학, 강의, 토론 등으로 빼곡하다. 지난해에는 충남 서해안에서 갯벌체험을 하고, 작두콩 재배 농가를 찾아 두부 만드는 체험을 했다.2004년에는 한 학부모의 직장인 포항제철소와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둘러봤다. 노력봉사도 아버지들 몫이다. 학교 담장의 페인트가 벗겨졌을 때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주말에 뜻이 맞는 아버지들이 페인트칠 봉사를 했다. 운동회나 학예회 등 대규모 학교 행사 때는 무거운 행사 도구를 나르는 등 일꾼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모든 행사는 아버지회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현재 정식 회원은 70명. 회원은 아니지만 함께 활동하는 아버지들만 100여명에 이른다. 각종 행사와 활동에 드는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등록 회원이 한 달에 1만원씩 내는 회비가 전부다. 비결은 아버지들의 직업을 활용하는 것. 가족 세미나에서는 아버지들이 강사로 나선다. 치과의사는 치아관리 교육을 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컴퓨터 특강을 맡는다. 학용품 도소매업을 하는 아버지는 학용품을 운동회 상품으로 제공한다. 아버지들이 나서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남자 교사 수가 줄면서 남자들이 도와야 할 일이 많아진데다 평소 사회생활로 바쁜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가 시작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 아파트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는 지역 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해 아이를 함께 기르자는 아버지들의 향수 어린 의지도 바탕이 됐다. 8년째 활동하고 있는 학부모 박용수(44)씨는 “내 전문적인 직업 외에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뿌듯한 성취감과 함께 아이와 학교, 지역사회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면서 “실천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한 번 해보면 어느 학교나 할 수 있는 보람된 일”이라며 웃어보였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우리구 최고야! 성동] ‘1洞 1도서관’ 세운다

    [우리구 최고야! 성동] ‘1洞 1도서관’ 세운다

    우리구에 있는 도서관은 동네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크지는 않지요. 하지만 동네 가까운 곳에 있어서 이용이 정말로 쉽습니다. 특히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올 1월 성동구(구청장 고재득) 청사의 일부를 줄여 만든 무지개자료열람실입니다. 구청 3층의 한 부서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만든 시설이랍니다. ●구청의 한 부서 옮기고 설치한 자료열람실 각광 넓이는 140여평에 달합니다. 내부가 어린이열람실과 일반열람실, 종합자료실, 디지털정보실로 꾸며진 것도 나를 즐겁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린이와 학부모가 자유롭게 뛰놀며 독서할 수 있는 자유독서공간 등이 마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개관한 지 한달도 안돼 벌써부터 찾는 주민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동안 동네에 가까운 도서관이 없어 대형서점을 찾아 책을 보곤 했지만 구청 3층에 열람실이 생겼으니 틈틈이 짬을 내 책을 읽을 생각입니다. 저희 동네에 사는 성미자(42)씨는 이 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못했던 공부도 하게 돼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랍니다. 내친김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랍니다. 사실 그동안 성동구의 유일한 도서관이었던 성동정보문화센터(행당동 소재)는 평균 이용 인원이 평일 1200명, 일요일 1500명으로 정원을 두배 가까이 웃돌아 주민들의 독서열을 채워 주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금호·용답동 이어 성수동에도 건립 그런데 앞으로 무지개자료열람실 외에도 성동구가 올해안에 금호·용답·성수동 지역에도 도서관을 짓는다고 하니 정말로 반갑습니다. 구민들의 독서열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한몫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오는 5월에는 지상4층 연면적 452평 규모의 금호도서관이 문을 연답니다.‘꿈과 희망을 나르는 수변도시 여객선’의 모습을 갖추고, 내부는 어린이들이 즐거운 놀이, 자유로운 독서, 편안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안락하게 도서관을 설계한다고 합니다. 각종열람실, 디지털정보영어학습실, 문화교실 등도 들어선다고 하네요. 9월에 문을 여는 용답도서관은 체육시설을 갖춘 복합시설로 건립된답니다. 지하1층, 지상4층에 연면적 476평으로 어린이 및 일반열람실, 디지털 정보실, 시청각실, 문화교실, 놀이공간, 휴게실, 체력단련실 등을 갖추어 명실공히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같이 도모할 수 있는 웰빙센터로 만든다고 하네요. 성동구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관내 모든 도서관을 서로 전산 연결해 어느 곳에서나 반납이 가능하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8개 ‘어린이놀이터 도서관´ 큰 호응 현재는 성동구는 성동정보문화센터와 무지개자료열람실이 공유하고 있으나 새로 생길 모든 도서관도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돼 도서관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내 20개의 동사무소 가운데 8개의 동사무소에 ‘어린이놀이터도서관’을 설치해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성동구의 자랑거리랍니다. 어린이놀이터도서관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흥미를 갖고 자주 찾을 수 있도록 다소 딱딱하게 느낄 수 있는 도서관의 이미지보다는 자유롭게 놀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성동구는 ‘한동네 한 도서관’ 시책을 펴고 있답니다. 주5일제 근무의 확산, 자녀를 둔 사회 활동 인구의 증가, 노년인구의 증가 등 생활환경의 변화로 도서관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어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예산 부족 등으로 한동네 한 도서관이 달성된 것은 아니지만 성동구의 이같은 도서관 건립 계획이 문화, 정보, 독서, 놀이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정신적·문화적 산소탱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책 읽는 동네’로 거듭나는 성동구의 이같은 활동에 감사와 함께 뜨거운 성원을 보냅니다. 김복산 왕십리1동 새마을부녀회장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5) 죽음과 삶을 동일시하는 인생관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5) 죽음과 삶을 동일시하는 인생관

    우리는 대체로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하기를 기피하거나, 주검을 멀리 하려는 풍습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묘지도 생가와 가급적 멀리 두려 한다. 공동묘지를 동네 한가운데 두는 서양인, 일본인과 다른 데가 있다.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아는 것과 죽음을 자기의 삶 속에 새기고 사는 것은 분명 다르다. 우리는 보통 전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속담에 ‘대문 밖이 저승이다’고 하여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도 있지만, 그 속담을 자기에게 적용하려는 생각은 별로 없고, 아는 사람이 갑자기 돌아갔을 때에 원용하는 것 같다.‘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든가,‘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속담은 우리의 죽음관을 어느 정도 알려주는 것 같다. 다 현세주의의 강한 집착을 드러낸다. 세상사람들은 죽음이 인생의 끝인데, 그것을 미리 생각하기보다 먼 훗날 자기에게 불청객으로 찾아올 죽음을 그 때에 가서 고려하기를 원한다. 죽음의 현재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우리가 타인의 부고를 접하면서 죽음을 찰나적으로 잠깐 생각하지만, 죽음의 본질은 철저히 나의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님이라도 나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다. 죽음이 삶의 끝이지만, 그 끝은 완성이 아니다. 과일이 다 익어서 저절로 떨어지듯이, 그렇게 인생의 완성으로써 죽음이 오지 않는다. 죽음은 인생에 미완성의 아쉬움을 남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런 죽음을 향하여 인생이 달려가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방식을 ‘죽음에로 향하는 존재’라고 언명했다. 죽음의 생각을 먼 훗날로 연기시키려 하는 마음은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기에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죽음의 불안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그 죽음의 불안이 오히려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이미 우리가 이 글의 첫 회에서 소유론적 욕망과 존재론적 욕망을 구분한 적이 있었다. 전자는 소유적인 탐욕으로써 인생의 모든 시간을 채우려는 입장이고, 후자는 인생에서 자기 본성의 기호를 잘 성공시켜 그 열매를 이웃에게 보시하려는 자비로운 삶을 말한다. 둘 다 욕망인 이유는 무엇을 하려는 욕망의 氣로 사람의 마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소유욕은 이기배타적인 욕심인데, 왜 자비가 존재론적 욕망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자비는 존재하고 있는 마음이 현재 누리고 있는 기쁨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려는 그런 발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두가지의 욕망을 우리가 첫 회에서 본능과 본성으로 대비하여 설명했다. 죽음, 그것도 나의 죽음이 소유의 탐욕에서부터 나의 인생을 존재론적으로 보게 해준다. 인생을 존재론적으로 보게 한다는 것은 삶을 소유의 양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내가 존재해 온 질로써 평가하는 방식을 말한다. 나의 죽음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돈, 권력, 명예같은 것들을 내가 많이 쌓아놓는 길을 가게 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소유의 축적이 무상하고 덧없고 결국 죽음의 알 수 없는 저편으로 가져갈 수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죽음의 불안과 소유의 무상감은 나로 하여금 세상사람들의 소유적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철저히 홀로 죽어야 한다는 고독감, 남들과 싸우면서 모아 놓은 소유물들이 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죽기 직전에 깨닫는 것은 너무 늦다. 내가 소유의 환상에서 잠을 깨는 순간은 바로 나의 죽음이 이미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실존적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이것을 빨리 느낄수록 인간은 자기자신으로 존재하는 결단의 순간을 빨리 찾는다. 보통 인간은 이런 소유의 유혹에 함닉되어 산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가는 세상의 방식에 맞춰 ‘남 따라 장에 간다’는 스타일로 살아간다. 그렇게 살수록 죽음의 공포가 더 강렬하다. 더 강렬하기에 죽음을 자꾸 미래로 연기시킨다. 우리는 사후의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흔히 말한다. 그 세계는 경험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험은 죽음의 저쪽을 건너지 못한다. 마음이 욕망의 氣라면,氣는 에너지로써 불멸이다. 인생은 거의 무의식적인 氣의 습관에 따라 움직인다. 이것을 우리는 습기(習氣)라고 부른다. 즉 무의식의 욕망이 습기다. 무의식은 지하에 박힌 의식의 뿌리에 해당하므로 의식은 무의식의 습기에 영향을 받아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다. 무의식의 습기를 바꾸지 않고서 의식의 문제점을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그것은 당위론으로 끝나고 만다. 나의 인생은 결국 나의 죽음에로 향하는 길이라는 실존적 생각과, 매순간은 삶과 죽음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은 살면서 다른 한편으로 죽어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죽음에의 응시가 인간을 소유론적 습기의 속물근성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죽음의 저편을 알 수 없으나 삶도 죽음도 다 불생불멸하는 에너지(氣)의 양면성이라고 본다면, 생전에 소유적 탐욕 지향으로 습기가 이루어진 경우는 사후에도 그런 방향으로 응취할 것이고, 생전에 삶의 질적 차원을 높이려는 희망을 세운 사람은 사후에도 그런 방향으로 습기의 경향을 나타낼 것이다. 모든 종교에서 사후의 복락을 상징하는 극락과 천당의 개념을 말하는 것은 생전의 삶을 겁주기 위한 공포의 드라마가 아니겠다. 죽음을 삶의 이면으로 생각하는 죽음관이 삶을 건강하게 보살피게 한다. 하이데거가 생각하였듯이, 죽음을 향하여 선구적으로 결단하는 자만이 자신의 인생에서 본질적인 것을 찾고자 비본질적인 것들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생관은 보통 상상하듯이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허무적 인생관을 낳아 슬퍼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다 포기하게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돈벌고 열심히 생활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본래적 인생의 존재방식은 일상적 삶을 도외시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이면으로 매순간 생각하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기의 존재방식에 가장 알맞는 의미를 열심히 찾는다. 그래서 각자는 돈버는 일, 물건 만드는 일, 노래부르는 일, 공부하는 일, 힘쓰는 일 등, 자기의 할 일을 찾는다. 그 일을 찾아서 일에 무심으로 매진하되, 결코 남들을 속이고 괴롭히는 대가로 이익을 챙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이익의 쟁취는 결국 무의식적 나쁜 습기로 나를 더욱 옭아매는 더 큰 고통의 원인을 내가 만드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생관은 스스로 자기에게 주어진 본성의 특성을 잘 살려, 그것을 꽃피워서 남들을 즐겁게 도와주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을 살게 해준다. 오히려 죽음의 명상은 나 중심의 이기적 사고를 잊게 하고, 나를 해체시켜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이익과 즐거움을 주려는 자비심을 일깨워준다. 죽음을 앞 둔 환자가 전에 맛보지 못했던 탈이기적이고 탈자아중심적인 느낌은 이런 이타심의 정체를 알려준다. 한 송이의 꽃을 봐도 그 꽃과 존재를 나누는 한 몸이 되고 싶고, 한 마리의 산 새를 봐도 그 새와 함께 교감하고 싶은 그의 욕망은 소유론적 탐욕을 넘어서는 고결한 존재론적 욕망으로써의 희망이겠다. 그 희망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동기(同氣)의 우정어린 교감을 나누고 싶은 일체감의 느낌에서 온다. 이것을 단순히 유치한 낭만적 감상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유치한 낭만적 감상은 영혼에 깊은 감동을 줌으로써 영혼의 혁명을 일으키는 변화보다, 단지 마음의 표피적 호오만을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 감정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과 동기의 교감을 형성하려는 희망은 한 인간을 위대한 예술가나 철학자, 위대한 정치가나 실업가나 과학자, 위대한 종교가나 교육자를 키우는 원동력이 된다. 존재하는 일체와 형제가 되려는 마음은 내부에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안으로 자기자신에게 가까운 친구가 안된 이가 어찌 밖으로 다른 것들과 존재의 친교를 맺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신적 삶을 너무 도덕교육에 치우치게 해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과 말을 덜 속물적인 방향으로 고치려는 명분적이고 규범적 사고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왔다. 이런 명분주의는 겉으로는 옳은 듯해도, 실질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소유적 삶의 방식에서 존재론적 삶의 방식에로 옮겨놓는 데 유효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명분주의는 속물적 소유 집착을 비판하면서 공동체를 위한 당위론적 규범의 이념을 실현하도록 요청하는 또 하나의 반(反)속물적 소유주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덕적 명분주의로 투쟁하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그들이 비판하던 속물주의자 못지 않게 탐욕적 소유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규범문화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을 낳기 쉽다.17세기 화란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이다.‘인간은 어떤 것이 선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좋기 때문에 선이라고 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익을 좋아한다. 도덕교육은 규범적 삶만을 가르치나, 죽음의 교육은 무엇이 진정 인간의 삶과 죽음에 동시적으로 이익이 되는가를 가르친다. 죽음의 교육은 삶이 존재의 전부가 아님을 익히게 한다. 대자연의 존재방식은 뫼비우스(Moebius)의 띠와 같아서, 삶의 띠가 한번 죽음의 띠로 뒤바뀌고, 또 역으로 죽음의 띠가 다시 삶의 띠로 꼬이는 끈과 같다. 죽음을 대비한 교육은 도덕적 규범이 고칠 수 없었던 본능상의 이기적 무의식을 본성의 이타적 무의식으로 자리이동을 하게 하는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다. 그런 혁명적 변화는 당위적 규범의 강제성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자발적으로 솟아올라야 한다. 오직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용출하는 욕망만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본능과 본성은 다 이익을 욕망한다. 다만 그 욕망의 질이 소유와 존재처럼 다를 뿐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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