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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행정] 강남구 온라인 연계 이동도서관

    [현장 행정] 강남구 온라인 연계 이동도서관

    “와∼여기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다 있네.”(신지수·일원초등학교 4학년) “만화책만 고르지 말고 다른 책도 좀 보렴.”(학부모·수서동)“만화책이 아니에요. 모두 명작이에요.”(유지원·일원초등학교 4학년) 22일 오후 5시 강남구 수서동 현대아파트를 찾은 강남구 이동도서관 차량 안 풍경이다. 가을 해가 짧아져 주변이 어둑어둑해져 가는 시간대이지만 어린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35인승 규모의 이동도서관은 이들로 인해 만원이다. ●매주 한 번 도서 3000권 배달 강남구 이동도서관 차량이 이 아파트를 찾은 것은 지난주 월요일에 이어 일주일 만이다. 한 번 오면 2시간쯤 머물다 간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때가 되면 주부나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움직이는 도서관’을 찾는다. 좌석을 없애고 만든 책장엔 3000여권의 책이 어린이용과 어른용으로 나뉘어 빼곡히 꽂혀 있다. 어른들 책장을 보니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가 12권까지 꽂혀 있다. 그 옆엔 최인호의 ‘유림’이 장식하고 있다. 어린이 책장엔 그림책과 ‘옥상의 민들레꽃’ 등 동화책, 만화 등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만화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김동리의 ‘감자’ 같은 명작들이다. 태어난 후 처음으로 바깥바람을 쐰다는 갓난애를 업고, 다섯 살배기 딸의 손을 잡고 이동도서관을 찾은 주부 김선미씨는 “매주 정해진 날 이동도서관이 찾아와 자주 이용한다.”면서 “애들용 동화책을 주로 빌린다.”고 말했다. 강남구 이동도서관은 올 들어 그 기능이 대폭 업그레이드됐다. 당초 1대에 불과했던 이동도서관 차량을 지난 7월 3대로 늘렸다. 이들 차량은 42곳을 매주 한 번씩 찾아간다. 한 번 가면 2시간씩 머문다. 차량은 모두 압축천연가스(CNG) 차량으로 아파트나 동네 주차장에서 시동을 켜고 있어도 매연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또 강남구에 있는 45개 도서관의 장서 85만권 가운데 원하는 책을 골라서 대출 신청을 하면 이동도서관의 정기 방문일에 이를 가져다 주는 ‘고객맞춤서비스’를 도입했다. 신사동에 사는 주민이 개포동 소재 도서관에 있는 책을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이동도서관을 통해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강남구 도서관 장서 85만권 이용 가능 강남구에는 현재 9개 구립 도서관과 3개 이동도서관,25개 각급 학교의 도서관,7개 동사무소 문고, 강남전자도서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대출가능 여부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SMS서비스’도 도입했다. 책이 없거나 대여가 안 되는 책은 SMS로 자세히 알려준다. 이런 서비스들이 도입되면서 하루 120여명에 그쳤던 이용자수도 평균 550여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빌려 읽는 책만 700여권에 달한다.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각 도서관을 전산화해 인터넷으로 책을 신청하면 이동도서관이 책을 전달하는 시스템으로 주민들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서 “내년에는 책 구입 예산도 늘리고, 미비점을 보완해 이동도서관을 더욱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하늘아래 처음본 스트립쇼

    하늘아래 처음본 스트립쇼

    내노라는 연예인 제치고 명성 떨치는 김(金)시스터즈 「뉴욕」에서 1주일 머무른 다음「시카고」「워싱턴」「샌프런시스코」에서 공연을 갖고 다시「라스베이거스」에 돌아왔다. 아침8시. 거리엔 강아지 한마리 없이 조용했다. 사막 한가운데 동그만이 서있는「라스베이거스」는 이런때 삭막한 느낌까지 주었다. 김「브러더즈」와의 약속이 있어 들렀지만 아침잠을 깨우기가 미안해서 도박장에 들어갔다. 24시간 개점하는 도박장에 들어가니 거리에서는 볼수없었던 사람들이 그 안에 가득차 있었다. 모두 충혈된 눈초리로 도박에 열중하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재수나 한번볼까 하고「슬러트·머신」앞에 갔다. 공장처럼 가득 늘어선「슬러트·머신」, 이것도 미국적 양상의 하나. 1시간가량 하고나니 본전치기, 재수가 나쁜 편은 아닌듯. 김「브러더즈」집에 이른게 9시께였다. 사막길 끝에 늘어선 호화판 주택지였다. 이 동네에는 김「시스터즈」의 숙자(淑子)와 김「브러더즈」들이 각각 자기주택을 갖고 있다. 이러다가는 멀지않아서「김즈·빌리지」가 될판이다. 가던날이 장날이라고 김「시스터즈」는 숙자가 임신4개월이 되어서 출연을 못하고 있었다. 김「브러더즈」는 3일전에 공연이 끝나서 쉬고있는 중이었다. 그들의「쇼」무대를 못보게된게 큰 유감. 이곳의 많은 공연장들은 세계각국 각 연예인들의 경연장이 돼있다. 각국에서 모여든 유명 연예인들이 아래위 집에 자리잡고 손님 끌기에 바쁘다. 이런 치열한 경쟁속에서 김「시스터즈」김「브러더즈」의 명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구나 생각하니 같은 연예인으로서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섹스 영화쯤은 저리가라 관객참가 권하는 난장판 마침「유럽」순회공연을 마치고 온 유주용·윤복희의「코리언·키튼즈」의 공연이 있어서 가봤다. 김광수(金光洙)씨 가족과 송민영씨, 이노미씨등이 함께 몰려갔다. 유주용, 윤복희는 몹시 반가와하면서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들의「쇼」는 순수한「오리엔털·쇼」로 관객들의 박수가 장내를 메웠다.「라스베이거스」에는 이렇게 한국연예인들이 건재하고 있어 무척 흐뭇했다. 3일간 쉬는동안 나는 관객입장에서 여러 공연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게 화려하고 멋있는「쇼」들 이었다. 볼수록 감탄하는 한편 신경질이 났다. 이렇게 기업화하고 제작비를 무제한으로 쓴「쇼」를 할수있을까, 생각할수록 신경질이 났다. 일본서 좋다는「쇼」를 많이 봤지만「라스베이거스」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된다. 나오는「탤런트」도 가지각색. 감히 흉내도 낼수없는 재주들을 부리고 있었다. 생활여유가 있기때문에 미국사람들은 그들의 향락을 최대한으로 즐기려하는 것같다. 「쇼」공연도 가지 가지지만 술집에서 벌어지는「스트립」은 가관이었다. 갈데까지 다간 느낌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녀가 무대에서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무용을 공공연히 벌이고 있다. 전라의「스트리퍼」가「플래시·라이트」까지 준비해 가지고 나와서 그것을 손님에게 주고 그것으로 자기 몸의 일부를 들여다 보라고도 한다. 「섹스」영화는 점잖은 편이다. 어떤 술집에서는 무대에서 남녀가 실제로 성행위의 실습을 구경시킨다. 한참 열을 올리다가 희망자는 나오라고 객석을 향해 소리쳤다. 올라와서 실연을 하라는 것이다. 참으로 알 수없는 행동들이다. 물론 무대에 뛰어올라가 참여하는 관객중에는「사꾸라」도 끼여있다는 소문. 광란(狂亂)의 쇼에 노인들은 야릇한 한숨짓고 이런 광적인 구경거리를 눈앞에 두고 한편 구석에서 푹푹 한숨만 쉬고 술잔을 기울이는 노인도 있다. 나이가 많아서 도저히 욕망을 달성할 수 없는 노인들이 쇠퇴한 육체를 통탄하는 것일까? 자기들의 젊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 향락의 절정기에 무용지물이 된 자신을 서러워 하는 것일까? 눈요기로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달래고 있다 생각하니 서글퍼 보였다. 이런 집의 관객은 그만큼 노인층이 많았다. 나라가 크고 인종이 많으니까 별의별 사람이 많다. 이런 풍경을 보고 말세가 왔으니 하느님을 믿으라고 외치는 종교인도 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미국인은 충실한 남편이고 정숙한 현모양처다. 타락적 분위기는 극히 일부분의 현상이고, 그것도 타락이기보다는 일시적 향락으로 인정해줘야 할듯하다. 많은 인종이 모여서 법을 지키고 국가에 충성할줄 아는 것이 미국 국민성인 것 같다. 1월16일,「워싱턴」에서 공연을 가졌다. 5백명 입장의 소극장에 7백50명이 들어왔다. 4백명쯤 예상했던 것이 예상외로 많이 와서 미국경찰이 소방규칙을 내세워 정문을 잠그겠다고 위협했다.「워싱턴」교민회가 생긴후 교포가 이렇게 많이 모이기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오랜만에 눈물이 나는 한국 웃음을 실컷 웃었다고 말했다. 미국생활을 하면서 미국「코미디언」들의 웃음은 웃었지만 진짜 배속에서 나온 웃음은 처음이라고도 했다. 교포들의 가장 큰 경축일인 8·15때에 꼭 다시 와달라는 부탁을 수없이 받았다. 고국을 떠난 교포들에게는 한마디의 고국소식도 퍽 귀하고 반가운 것 같다. 모이면 얘기꽃에 밤새는 줄을 몰랐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각 지역이 교민회를 조직해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지만 다른 나라사람에 비해서 수가 적다. 외국에서는 이민을 많이해서 씨를 뿌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숫자적으로 뒤지고 있다. 앞으로 자꾸 내보내 많은 씨를 뿌리고 그것이 힘으로 단결하여 한국의 위세를 떨쳐야 하겠다는 생각이 한없이 간절했다. 「워싱턴」에서는 당초 2일의 예정이 4일로 바뀌었다. 모두들 자기집에서 하룻밤이라도 쉬어가라는 부탁인데 그걸 모두 받아들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포에 대한 애정, 핏줄에 대한 정분은 외국에 나가서 확실이 실감을 하게 되는가 보다. [선데이서울 71년 2월 28일호 제4권 8호 통권 제 125호]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9) 논산 연무~상월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9) 논산 연무~상월

    전북 여산에서 1번 국도와 갈라진 옛길은 충남 논산 연무대와 닿아 있다. 이 길로 접어 들면 연무읍 고내리에 봉곡서원이 나온다. 서원 앞에 사는 80대 할머니는 “여자들이 꿈을 꾸면 옛날에 욕을 본 사람들이 나타난다며 (서원을) 옮기라고 해유.”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최근까지 사람이 살다가 떠난 흔적이 있다. 특별하게 보이는 서원은 아니지만 이계맹 등 조선시대 때 귀향을 갔던 선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기에 그리 생각하는 듯했다. ●논산훈련소 주변 경기도 옛말 서원 앞에는 ‘황화정(皇華亭)’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다. 황화정은 서원에서 400m쯤 북쪽에 있던 정자다. 옛날 현감(군수)이 관찰사(도지사)를 맞고 배웅을 하던 곳이다. 황화정이 훼손된 뒤 비석만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황화정이 있던 마을은 지금 한적하고 쇠락한 농촌일 뿐이다. 예전에 전라도 지역에 속했던 마을이다. 이 마을 끝에서 옛길은 다시 1번 국도와 만난다. 곧 이어 육군훈련소(옛 논산훈련소·연무대)와 입소 대대가 나온다. 훈련소 앞에서 식당 호객을 하던 김영심(74)씨는 “훈련소도 옛날 훈련소지, 지금은 아녀. 자꾸 오그라져.”라며 최근의 경기를 전했다. 흔한 술집도, 다방도 없다. 입소병의 ‘총각딱지’를 떼주던 아가씨촌도 사라졌다. 교통이 좋아져 입소날에 부모의 차를 타고 오고 면회 때도 멀리 나가 먹는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호객을 하던 70대 할머니는 “재수 있으면 하나 걸리고 공 치는 날이 많아.”라고 한탄을 했다.“밥 먹고 가슈.” 두 할머니는 끝내 객(客)의 소매를 잡아끈다. 훈련소 입소 대대 앞도 마찬가지다. 식당이 줄지어선 거리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논산은 역사상 최고 전쟁터 훈련소에서 옛길을 따라 좀더 올라가다 옆길로 2㎞쯤 빠지면 견훤 왕릉이 나온다. 이 왕릉은 기념물 26호로 연무읍 금곡리에 있다. 견훤은 완산(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세력을 키웠으나 아들 신검과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을 빚으면서 고려 왕건에게 멸망했다. 죽으면서 “완산이 그립다.”고 해 이곳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전주 모악산이 보이는 것도 이런 연유다. 논산은 후백제가 왕건과 전투를 벌였고 백제가 멸망할 때 계백장군이 신라와 싸운 황산벌이 있는 곳이다. 육군훈련소도 이곳에 있고 계룡대도 있다. 삼군본부가 있는 계룡대는 현재 계룡시에 속하지만 이전에는 논산 땅이었다. 논산지역 향토 사학자 류제협(61)씨는 “논산은 넓은 곡창지대여서 전투식량 조달이 손쉬워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치러졌다.”며 “삼국시대 때는 접경 지역이라 전쟁이 많았고 계룡대는 높은 계룡산이 둘러싼 천혜의 요새여서 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논산은 최대 전쟁터일 뿐만 아니라 삼국 통일을 이끌어 통일을 상징하는 고장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견훤 왕릉에서 다시 탄 옛길은 연무터미널과 개태골을 거쳐 1번 국도와 갈라져 은진향교로 향한다.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이 향교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봄과 가을에 제향을 지낸다. 공자 등 성현 22명의 위패를 모신 향교는 평상시에 문이 닫혀 있다. 향교 안에 30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떨어진 은행 열매가 옛 정취를 이어준다. 향교에서 1㎞쯤 올라가면 망보기마을이 나온다. 고개에서 적들이 오는지 망을 보았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양이나 전라도로 갈 때 선비들이 이곳에서 쉬었다고 한다. 큰 정자나무 밑에 계단식 서낭당이 있다. “20년 전만 해도 소몰이꾼들이 정자나무 밑에서 쉬다 갔어.” 나무 밑에서 붉은 고추를 널어 말리던 70대 할머니가 넋두리처럼 내뱉었다. 이 마을을 지나면 옛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촉사가 있다. 보물 232호 석등도 있지만 높이 18m의 국내 최대 석불인 은진미륵(보물 218호)이 서 있어 유명하다. 고려 목종 9년(1006년)에 완공된 이 석불은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구절초가 절 안에 가득 꽃망울을 터뜨려 가을 분위기를 한껏 뽐냈다. 사찰로 들어가는 계단 옆에 세워진 이승만 박사 추모비는 이 곳의 옛 정취와 달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추모비는 방공청년회 논산지부가 1965년 건립한 것이다. ●‘춘향전´에 7군데나 지명 나와 옛길은 다시 논산시 부적면으로 이어진다. 향토 사학자 류씨는 “전북 여산에서 충남 공주 경천까지 가는 길의 지명이 춘향전에 7군데나 나와 이 구간이 ‘춘향전 옛길’이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새다리도 이 가운데 하나다. 부적면 신교리 논산천에 있는 이 다리는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면서 다리를 놓았던 돌이 냇가에 묻혔다고 한다. 부적면사무소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진 옛길은 지금도 넓은 논 사이를 달린다. 호남선 건널목을 건너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2리의 자연부락인 지밭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무당이 후백제를 멸망시키려 왔던 왕건의 꿈을 해몽해줘 왕건이 이를 믿고 공격, 끝내 멸망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서용호(81)씨는 “한양으로 가던 길은 농로가 됐거나 경지 정리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푸념했다. 4∼5㎞쯤 되는 비포장 농로를 달리다 보면 노성천이 나오고 이 하천을 건너자마자 초포마을이 나온다. 이 일대 주민들은 이 마을을 ‘풀개’라 불렀다. 주소는 광석면 항월리다. 이곳은 한양을 오갈 때 반드시 거치는 마을이었다. 자연히 주막촌이 형성됐고 왈패들이 많았다.‘최장사’니 ‘팔장사’니 하는 힘센 전설적인 장사 이름이 전설로 내려온다. 주민들은 이들이 들었던 거대한 돌이 있다고 전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새로운 교량이 들어섰지만 예전 다리를 쓰던 돌들이 냇가에 흩어져 있다.20∼30년 전까지만 해도 논산장을 가려면 지나던 길이다. 주막집들은 지금 슬래브 주택으로 바뀌었다. 허름한 기와집 한 곳에서만 막걸리를 팔았다. 주민 이유영(67)씨는 “주먹 깨나 쓰던 장사들이 많아선지 ‘아사리 풀개’라고 불렀다.”면서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이곳에 5일장이 서면 노성, 상월 등 인근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 오는 걸 꺼렸다.”고 회고했다. 풀개를 떠난 옛길은 노성천 옆을 따라 올라간다. 노성면으로 들어서자 교촌리 ‘윤증고택’이 맞는다. 윤증(1629∼1714) 선생은 조선시대 숙종 때 한학자로 스승 송시열 선생의 논리를 비판하는 등 성품이 대쪽 같았다. 대사헌, 우의정 등에 임명됐으나 모두 사양했다. 고택은 윤증의 성품대로 간결하고 품위가 있다. 중부지역 양식에 남도풍이 가미돼 있다. 중요민속자료 190호다. 길은 이어 상월면을 거쳐 공주시 계룡면으로 들어간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부인2리 지밭마을 유래 “옛날 선비들이 한양에 말 타고 갈 때 서낭당 앞에서 내려서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말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대유.” 논산시 부적면 부인2리 지밭마을 주민 오영근(65)씨는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전하면서 대뜸 이렇게 말했다. 마을안 논 옆에 세워져 있는 서낭당은 무당을 모신 곳이다. 이 무당은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아들 신검의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사건과 관련이 있다. 왕건이 후백제를 치려고 개태사 근처에 진을 치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자신이 무쇠솥을 쓰고 물속에 빠지는 꿈이었다. 왕건이 “불길하다.”고 고민하자 부하들이 “이 마을에 해몽을 잘하는 무당이 있으니 한번 물어보자.”고 했다. 무당의 딸로부터 ‘흉몽’이라는 얘기를 듣고 낙심해 되돌아가던 왕건을 때마침 집에 돌아온 무당이 붙잡았다. 무당은 “길몽이다. 솥은 왕관을, 물은 등극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왕건은 무당의 말에 곧바로 후백제를 쳐 멸망시켰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뒤 무당의 은혜를 갚고자 ‘부인’이라는 작위를 내리고 땅을 하사했다. 지금의 마을 이름도 이 작위명에서 유래하고 있다. 지밭이란 자연부락명도 ‘제사를 지내는 데 쓰는 밭’이란 뜻에서 변형됐다. 오씨는 “쳐다봐서 보이는 땅은 전부가 무당 땅이었다고 해요.”라고 전했다. 재미있는 것은 왕건이 하사한 엄청나게 넓은 토지의 일부가 지금도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 땅은 두 마지기(400평 정도)로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경작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쌀로 매년 대보름 전날 마을 서낭당에서 무당의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요즘 서낭당 앞에는 건축폐기물이 어지럽게 쌓여 있지만 제사 때는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지낸다고 한다. 제삿날이면 일부 주민이 풍물을 치면서 서낭당으로 올라간다. 제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 풍물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준비해놓은 음식을 하나씩 가지고 뒤따른다. 제사는 성대하다. 오씨와 함께 도랑에서 우렁이와 참게를 잡고 있던 서일웅(67)씨는 “(제사를 지내는) 그날은 주민 모두가 멸치도 안먹는다.”고 웃었다. 비린 것을 피할 정도로 무당의 제사를 신성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여년 전만 해도 제사 때면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했다.”면서 “지금도 제삿날 직전에 초상집에 갔던 주민은 서낭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HAPPY KOREA] (25) 남원시 대산면 ‘구름다리 마을’

    [HAPPY KOREA] (25) 남원시 대산면 ‘구름다리 마을’

    가을걷이가 한창인 황금 들판에는 풍요로움이 넘친다. 공기가 유난히 맑아 자꾸만 들이마시고 싶다. 코스모스가 하늘 거리는 마을 안길은 눈이 시리도록 정겹다. 마을 앞 운교천은 생수처럼 깨끗하다. 전북 남원시 대산면 ‘구름다리’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 하지만 이 마을은 여느 농촌과는 달리 활기가 넘친다. 교룡산과 풍악산 품에 안기듯 자리잡은 이 마을에는 지난해부터 ‘제2의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로 뭉쳐 일어선다. 구름다리 마을은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이 전통적으로 강한 곳이다. 우리나라 농협운동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이다.1972년에는 새마을운동에 모범을 보여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다른 지역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슬레이트로 지붕개량을 할 때 구름다리 마을은 주민들이 스스로 기와공장을 건립해 집을 지었을 정도다. 평생을 고향에서 뿌리를 박고 살아가기 때문에 품앗이 등 아름다운 미풍양속도 잘 보존돼 있다. 지난 70년대에 비해 변한 게 있다면 주민들의 나이다. 당시 30∼40대였던 새마을운동의 주역들이 이제는 60∼80대가 됐다. 151가구,303명의 주민 가운데 115명이 65세 이상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젊은이 못지 않게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다. 살기좋은 지역만들기에 나선 주민들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던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되살리기로 했다.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친 것이다. 잠시 시들해졌던 공동체 의식을 되살려 새로운 소득원을 개발하고 이를 상품화해 삶의 질을 높이기로 결의했다. 우선 자체적으로 내집 가꾸기에 나서 생활공간에 개혁을 시도 하고 있다. 도회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집 단장을 잘 해야 농촌체험을 하려는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지역 특산품도 잘 팔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양해주(65) 추진위원장은 “제2의 마을 발전을 이룩하자는 의식이 되살아나면서 그동안 잠재돼 있던 공동체 의식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며 살기 좋은 마을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유·무형 자산을 상품화 이 마을 주민들은 매일 저녁 마을회관에 모여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살기좋은 지역 추진위원회,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발전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가장 큰 자산인 청정 자연환경을 상품화하기로 했다. 주민들이 모두 장수하는 비결인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공해에 찌든 도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마을 앞에 있는 산림청 지정 아름다운 숲인 ‘왈길숲’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울 계획이다. 왈길숲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장관을 이루고있다. 이장 진상호(70)씨는 “교룡산과 풍악산 소나무숲에서 불어오는 공기는 최고의 보약”이라면서 “도시 사람들에게 내집처럼 편안하게 쉴곳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 살거리,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마을 모두가 하나로 뭉쳤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친환경 고품질 쌀인 스테비아 허브미 생산단지 33㏊와 아스파라거스 재배단지를 조성했다. 노인회는 웰빙식품인 검은 콩과 고사리를 재배해 힘을 보태고 있다. 부녀회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을 개발할 계획이다. 흑염소와 토종 미꾸라지를 양식해 건강식단에 올리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앞으로 전주∼광양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마을 주변에 2개의 골프장이 들어서면 접근성이 좋아져 향토음식점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고 살기좋은 만들기 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인층은 폐쇄된 마을 도정공장을 정비해 소득사업으로 연계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젊은층은 이를 반대한다. 하지만 이는 마을 발전을 위한 건강한 의견 제시일 뿐 결코 갈등은 아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양해주 추진위원장은 “소득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 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자금지원을 확대하고 자율성을 준다면 주민들의 사기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원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강춘성 남원 부시장 “지리산 연계 문화관광도시 목표” “남원은 청정 자연환경과 유무형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관광도시입니다.” 강춘성 남원 부시장은 “지리산을 끼고 있는 청정 환경이 최고의 자산”이라며 “이를 토대로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를 만드는 것이 지역발전의 목표”라고 소개했다.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농특산물을 수출하고 식품산업을 육성하며 건강·휴양과 문화·예술이 연계된, 돌아와 살고 싶은 ‘귀향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 차별화된 식품산업으로 미꾸라지를 소재로 한 추어산업 클러스터, 오리 브랜드 개발, 멜론 명품화, 오디 기능성 식품, 허브식품 연구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리산 청정연수 레저 관광도시’를 육성해 내실 있는 관광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지리적 특성을 살려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연수시설을 유치하고 전문체육강화 훈련장의 메카로 발돋움한다는 전략이다. 그는 “3개 고속도로와 전라선이 교차하는 서남권 내륙의 교통 요충지이고 지리산, 광한루, 혼불문학관 등 풍부한 관광자원이 있기 때문에 사계절 관광지, 기업형 레포츠단지, 전문 연수도시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지역을 재디자인 해 아름답고 쾌적하고 특색있는 마을 환경을 조성할 방침입니다.” 강 부시장은 “구름다리마을을 모델로 남원시 전역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자연친화형 귀향도시로 구축하는 체계적인 방안을 견실하게 추진하겠다. 고 말했다. 남원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구름다리 마을은‘구름다리 마을’은 동네 형상이 마을 북쪽과 남쪽에 있는 풍악산과 교룡산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법 멀리 떨어진 두 산을 이어주는 마을 이름처럼 이곳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은 끈끈하기로 유명하다. 1960년대에는 마을 어른이신 복태봉(83)할아버지가 중심이 돼 농협운동을 이끌었다. 주민들이 출자해 조합원이 됐고 공동창고를 지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단결된 힘을 과시했다. 새마을운동 역시 이 마을이 전국적인 모범이 됐다. 주택개량, 마을길 넓히기, 청소, 새로운 영농기술 도입 등 모든 면에서 앞서 나갔다. 주민들이 함께 모은 재산도 적지 않다. 임야 135㏊, 논 2만㎡, 현금 1억 1000만원을 공동 운영한다. 수익금으로는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70세 이상 노인에게 매월 5만원씩 용돈을 준다. 애경사에는 쌀 2∼3가마씩을 전달한다. 매년 5월1일 개최되는 리민의 날에는 효부상, 근로상을 주고 어려운 이웃에게는 땔감도 지원한다. 리민의 날은 38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농사도 대행해준다. 농번기에는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함께 식사를 하는 공동배식제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삶의 질이 높은 부자 마을을 만들기 위해 또 다시 일어서고 있다. 남원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요즘처럼 놀이문화가 다양하지 못했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여가시간에 어떤 놀이를 즐겼을까? 삼국시대부터 전래된 쌍륙은 서양의 체스와 비슷한 모양의 쌍륙말 32개와 쌍륙판, 그리고 주사위 2개로 할 수 있는 놀이다. 이와 함께 비사치기 사방치기 등의 놀이를 할 때 사용했던 ‘목대’를 소개한다. ●해피선데이(KBS2 오후 5시30분) 울릉도를 떠난지 4시간. 거센 파도를 뚫고 불빛 한 점 없는 밤바다를 달려 마침내 독도에 도착한 1박2일팀.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우리의 땅 독도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는다. 대한민국 독도 경비대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독도의 정상에서 그 어느 곳에서 보는 것보다 아름다운 일출을 맞이한 1박2일팀. ●시즌드라마 ‘옥션하우스’(MBC 밤 11시40분) 김우찬 화백의 제자이자 친밀한 관계로 유명했던 박인희가 기자회견을 열어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된 김우찬 화백의 그림이 위작이라는 주장을 한다. 김우찬 화백의 부인은 진품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그림을 산 갤러리 측은 재감정을 의뢰하게 된다. 윤재와 연수는 그림의 진위 여부를 추적한다. ●황금신부(SBS 밤 8시45분) 쓰레기 봉투를 내다버리던 한숙은 집 앞에 주차한 차 안에서 영민을 발견한다. 한숙은 결혼 반대가 혹 자신의 처와 관련이 있는지를 영민이 묻자 “정 궁금하면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나무란다. 영민은 “그 얘기는 긍정한다는 뜻이냐?”며 반문하고…. ●명랑주식회사(EBS 밤 9시) 홈패션을 손수 디자인해서 재단, 재봉을 다 하시는 어머니 채혜경씨와 그 옆에서 모든 보조를 하고 있는 아버지 박경원(지체장애5급)씨가 주인공이다.10여년 전 불의의 사고가 연속으로 일어나 절망적이었던 박경원씨 가족. 작년 불굴의 의지로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예튼이불’이라는 홈패션 전문점을 창업했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전 8시30분) 이스라엘에서는 재활용 캔을 이용해 만든 예술작품에 대한 시상식을 통해 재활용에 대한 대중의 의식 변화를 꾀하고 있다. 스페인 스라소니는 토끼의 개체수가 줄자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토끼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스라소니의 개체수도 늘어나게 됐다. ●겨울새(MBC 밤 9시40분) 경우 모가 영은의 순결을 거론한 그날부터 경우는 잠자리를 시모의 방으로 옮기고 단 한마디 말도, 아는 체도 않는다. 경우의 돌변한 태도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영은은 병원으로 찾아가 경우의 오해를 풀어보려고 애 쓰지만, 경우는 여전히 영은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영은은 이혼을 결심하고…. ●한국영화특선 ‘강화도령’(EBS 밤 11시) 강화도에 사는 더벅머리 총각 원범은 산속의 칡뿌리를 캐어 먹고 살아가지만 실은 왕가의 혈통이다. 헌종이 승하하자 동네에서 홀대받던 이 청년은 하루아침에 철종 임금으로 등극한다. 대왕대비와 제조상궁으로부터 궁중의 법도를 배워나가지만….
  • [발언대] 지역축제 관심과 지원 절실/ 방승환 전통타악연구소장·한서대 교수대우

    과거의 찬란한 역사는 오늘에 와서는 화려한 문화로 승화된다. 그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역사의식을 불어넣고 새로운 교육현장으로 정착된다. 나아가 자생적인 문화관광 상품으로 발전되어 지역이 세계로 나아가는 무형의 값진 터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지난 5∼7일 열린 ‘한성백제문화제’는 1994년 시작돼 8회에 이르는 동안 지역축제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세밀한 고증으로 백제인의 기상과 일상적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는 것, 백제왕들의 모습을 통해 대륙적 기상을 장엄하게 재현해내고, 또 그것을 통해 역사와 문화·관광·학술·교육가치 등 다양한 효과를 생산하며 자치구 문화축제의 내적 질과 외양을 동시에 확대했다는 데 있다. 백제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한 ‘한성백제학술세미나’가 그렇고, 백제의 건국부터 송파의 미래를 아우르는 전통예술 공연이 바로 그 예에 속한다.‘백제, 하늘이 열리다’는 주제로 거행된 1㎞에 달하는 역사문화 거리행렬은 2000년 전 역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한성백제문화제’는 동네 축제의 범위를 넘어 이제 국민들, 외국인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행사의 면모로 자라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역의 전통예술 축제가 이젠 그 지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이 축제는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지역의 민속행사가 국민적, 나아가 국제적이 될 때 그것은 곧 세계적 문화유산이 되고, 다시 한류 열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지역에서 이루어 놓은 문화축제적 유산을 광역 자치단체나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과 보호가 필요할 때가 왔다. 그것은 바로 문화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상승시켜 문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물심양면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방승환 전통타악연구소장·한서대 교수대우
  • 聖女! 36년동안 시동생 병수발한 50대 여성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온몸을 불사를 수 있는 그런 사랑,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나요.‘성녀(聖女)’이라고 불러야죠.” 중국 대륙에 한 여성이 남편과 사별하자,홀로 살아갈 수 없는 시동생에 재가해 36년동안 병수발을 하고 있는 ‘중국판 성녀’ 라는 사실이 밝혀져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사연을 전해준 주인공은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 원링(溫嶺)시 빈하이(濱海)진 신중(新中)촌에 살고 있는 옌구이팡(顔桂芳·55)씨.그녀는 19살때 시집와 남편이 사별한 뒤 병든 시동생과 다시 결혼해 무려 36년동안 돌봐주고 있는 ‘중국판 성녀 테레사수녀’로 불리고 있다고 전강만보(錢江晩報)가 15일 보도*다. 전강만보에 따르면 옌씨는 지난 1971년 19살의 나이로 장란성(張蘭生)씨와 결혼했다.당시 장씨의 동생 쥐성(菊生)씨는 바다 낚시를 하다 썰물에 휩쓸리는 바람에 진흙탕 속에 씨름하다 겨우 살아나왔으나 반신불수의 몸이었다. 얼굴이 넙데데해 복스럽게 생긴 그녀는 그러나 시집온 첫날부터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시동생 쥐성씨를 돌봐주는 것이 첫번째 임무였을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다.옌씨는 “처음에는 몸도 제대로 가누질 못하는 시동생 근처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몸은 불편하지만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런 마음이 눈녹듯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한번은 시동생이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어요.급히 병원으로 달려가 알아보니 급성 위염이었습니다.병원에서 약을 타와 밤을 지새우는 등 시동생의 병상을 지키며 잠을 자지 않은 날도 여러날 됩니다.특히 시동생은 이가 좋지 않아 치통이 심한 것은 물론 제대로 씹을 수 없습니다.그런 때는 자신이 어린 아들에게 밥을 씹어먹이는 것처럼 꼭꼭 씹어 먹이곤 했습니다.” 옌씨는 시동생에게 밥 씹어먹이기를 비롯해 대소변 받아내기·옷과 이불 세탁 등 궂은 일은 모두 다 도맡아 처리해왔다.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1987년 힘든 애옥살이에도 하늘같이 믿고 따랐던 남편 란성씨가 갑작스레 사망했다.고혈압이 악화돼 중풍으로 이어져 결국 열명길에 오른 것이다. 당시 아이 셋을 두고 있던 옌씨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남편이 경제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집안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큼 남편이 죽자 앞날이 캄캄했다.아이 셋에 병든 시동생까지 부양해야 하는 일이 모두 그녀의 두 어깨에 달리게 됐다. 이런 상황을 잘알고 있는 같은 동네 사람들은 옌씨에게 재가하기를 권유했다.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은 차치하고 병든 시동생을 두고 재가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해서 동네 사람들이 재가 자리를 권하면 첫째 조건이 아이 셋과 병든 시동생을 함께 데려가도 좋다는 사람이면 된다고 말하자 모두 두손을 들었다.이에 그녀는 곧바로 병든 시동생과 다시 결혼했다. 이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옌씨에게 “정말 바보”라고 말했다.이들은 “자신의 아이 셋을 키우는 일만도 힘든 판국에 병든 시동생까지 챙기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옌씨는 “나도 그말을 모두 이해한다.하지만 병든 시동생을 내가 돌보지 않으면 굶어죽는데,어떻게 상관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해 듣는 사람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단독]“鄭캠프 핵심간부 명의도용 개입”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캠프에서 활동 중인 청와대 행정관 출신 안모(44)씨가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대리접수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14일 “‘정 캠프의 안모씨 등 2명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최소 6명의 명의를 도용해 대리접수를 했다.’는 수사의뢰서가 같은 당 정봉주 의원에 의해 접수돼 수사 중”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안씨를 불러 명의도용 및 대리접수를 했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경찰에 접수된 수사의뢰서에 따르면 안씨 등 2명은 김모(30·여)씨 등 최소 6명 이상의 명의를 도용해 대통합민주신당 국민경선 선거인단에 불법 대리등록했다. 서울신문이 명의를 도용당한 사람들에게 확인한 결과, 신모(37·여)씨 등 3명은 본인이 선거인단에 등록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 김모(55·여)씨 등 2명은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 도와달라기에 별 생각 없이 해줬다.”고 밝혔다. 조모(34·여)씨는 “직접 등록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올 2월 옛 열린우리당 당원으로 가입했지만, 지난 8월쯤 모두 탈당했다. 또 이들이 서울의 같은 동(洞)에 살고 있는 점으로 미뤄 옛 열린우리당 당원명부가 지구당별로 유출돼 조직적으로 명의도용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안씨는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당내 경선 및 대선에서 노무현 캠프의 회계 실무를 맡았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행정관(4급)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가 2003년 9월 그만뒀고 현재 정 캠프의 조직본부 기획조정실장을 맡고 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HAPPY KOREA] (24) 안동시 북후면 ‘산약마을’

    [HAPPY KOREA] (24) 안동시 북후면 ‘산약마을’

    지난 11일 오후 경북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도로변 들판. 수십명의 주민들이 여기저기 모여 마을이 떠들썩한 가운데 구수한 음식 냄새가 지나는 사람들의 코를 자극한다. 한쪽에선 마을 아주머니들이 전을 부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동네 어르신들이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바비큐 시설에 직접 구운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곁들여 마신다. 영락 없이 마을에 큰 잔치가 벌어진 모습이다. 이곳은 북후면 주민들의 자랑인 산약(마)의 우수성을 전국에 소개하는 자리다. 지역 특산품과 먹거리를 소개하는 모 방송국 프로그램 녹화가 있는 날이라 주민들이 모두 모였다. 이날 주민들이 내놓은 음식은 모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이 대체작물로 재배하고 있는 산약(마)으로 만든 것들이다. 생마를 얇게 썰어 부친 마전, 마가 섞인 사료를 먹여 키운 참마돼지 고기, 마를 첨가해 빚은 참마 막걸리 등 10여가지가 소개됐다. ●1000평 재배하면 1000만원 소득 행정자치부가 지정한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은 북후면 옹천1·2·3리, 도촌 1·2리 5개 마을이다.590여가구에 1700여명의 주민들이 살면서 산약을 집중 재배하고 있다. 주민들은 살기좋은 마을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주민들 스스로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정부로부터 5억원을 지원받아 산약 시식과 전시 판매, 산약 수확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산약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도시의 소비자나 관광객들이 편안히 쉬면서 산약을 체험하게 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2년 동안은 25억원을 투입해 산약을 테마로 한 아름다운 거리 조성에 나선다. 현재 용역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거리가 조성되면 산약 체험을 중심으로 다양한 볼거리, 먹을거리를 체계적으로 갖추게 돼 안동의 대표적 명소로 거듭날 것이라는 게 안동시와 주민들의 생각이다. ●산약으로 FTA 파고 넘는다 산약(山藥)은 마를 한방에서 일컫는 용어다. 산우(山芋)·서여(薯囊)라고도 하는데, 중국 원산으로 약초로 재배하며 산지에서 자생한다. 땅속 깊이 들어간다. 품종에 따라 뿌리가 긴 것, 손바닥처럼 생긴 것, 덩어리 같은 것 등 여러 가지다. 동의보감에 위장 등 내장기능 강화에 좋다고 적혀 있으며, 특히 당뇨·숙취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북후면 도촌1리 이장을 맡고 있는 권춘원(51)씨는 “술을 많이 마신 뒤 잠들기 전 생마 2개만 깎아 먹으면 아침에 전혀 숙취가 없다.”고 자랑한다. 우황청심환 성분의 4분의1을 마가 차지하는 것도 바로 마의 특효를 보증해 주는 것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주민들은 작게는 100여평에서 많게는 1만 5000평 규모로 마를 재배하고 있지만 소득이 만만치 않다. 북후면 옹천3리에 사는 박성왕(62)씨는 지난해 100여평에 마 농사를 지어 300만원의 소득을 얻었다고 했다. 생마 10㎏ 1상자에 8만원 정도 수입을 올렸다. 박씨는 규모가 작은 데다 서울 친척을 통해 판매를 했기 때문에 면적당 소득이 특별히 많은 편이다. 보통 대규모로 짓는 농민들은 평당 1만원, 즉 1000평 마농사를 지으면 1000만원 정도 소득을 올린다. 그래도 쌀 농사보다는 2∼3배 이상 높다. 소득이 높은 만큼 재배에 들어가는 노력도 대단하다.4월 초에 파종해 11월에 수확할 때까지 병충해 방제 등 마 관리에 매달려야 한다. 물이 차면 뿌리가 쉽게 썩기 때문에 물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재배지로 모래가 많은 마사토양을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는 또 뿌리가 50㎝ 이상 땅속 깊숙이 박히기 때문에 수확작업도 힘든 편이다. 권춘원씨는 “재배 못지않게 홍보와 판로가 중요하다면서, 같은 양이라도 판로에 따라 농민간 소득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마 홍보와 판매를 위한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판매의 대부분은 이렇게 직접 주문을 받은 뒤 택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라 안동시는 마 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기인 북후면장은 “현재 농협이 운영하는 마 가공공장에서 마 분말과 각종 음료 등 60여가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면서 “수요가 계속 늘면서 저장 및 생산라인을 내년에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공장의 처리능력은 200∼300t이지만, 처리할 마는 500여t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공장에서만 작년에 6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7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그중 10억원어치는 중국·일본·캐나다 등에 수출했다. 안동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김휘동 안동시장 “마는 약·먹거리 등 쓰임새 다양 FTA 대비 대체작물로 각광” “우황청심환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성분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저희가 ‘산약’으로 부르는 마입니다.” 김휘동 안동시장은 산약이 약의 재료뿐만 아니라 건강식품, 음식 재료로서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며 인터뷰 내내 마 자랑에 침이 마르지 않았다. 김 시장은 “2005년 재정경제부로부터 ‘마 특구’로 지정받은 뒤 마 재배와 수요가 크게 늘었다.”면서 “행정자치부 지원으로 진행중인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이 완료되는 2010년이면 ‘안동 산약’에 대한 인식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시장은 특구 지정 이후 마 판매와 홍보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2005년 11월엔 모 TV홈쇼핑 채널에 직접 출연해 안동산약을 소개하면서 잠깐 동안 3억 9000만원어치를 팔아치우기도 했다. 그 여진으로 그해 12월까지 10억원어치를 추가로 판매했다고 한다. 김 시장은 “마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 개발뿐만 아니라 홍보·판매기법 도입, 판로개척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면서 “최근엔 유명 인터넷 홈쇼핑과 계약을 체결, 곧 판매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시장은 마의 가능성에 대해 “한·미 FTA 체결로 피해가 예상되는 우리 농업의 대체작물로 매우 유망하다.”고 강조했다. 아직 마를 식품으로 먹는 사람이 극소수이고, 이제 막 그 효용성이 알려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시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안동시에서도 현재 살기좋은 마을 사업지로 지정된 북후면 옹천리, 도촌리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면들도 적합한 토지를 찾아 대체작물로 재배하는 계획을 이미 작년에 수립했다고 밝혔다.KDI 분석에서도 이미 이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받은 상태라고 했다. 김 시장은 “안동은 수백채가 넘는 고택(古宅)들을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와 농촌문화가 어우러진 전통·녹색 체험마을을 활성화하기 위한 신활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안동산약은 살기좋은 마을 사업뿐만 아니라 신활력 사업에서도 기둥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9)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9)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

    마애불(磨崖佛)이란 벼랑바위에 새겨놓은 부처이지요.‘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삼존불처럼 바위 속에서 부처가 걸어나오고 있는 듯 높게 돋을새김해놓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통일신라 말기부터는 갈수록 평면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아예 선각(線刻)에 가까워지지요. 이런 현상을 두고 조각기법이 퇴화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대가 떨어지는 마애불은 이렇듯 세상의 평가가 후하지 않으니, 기대를 갖지 않게 마련이지만 뜻밖에 조선 후기 것이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이 그렇습니다. 학도암(鶴到庵)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불암산(佛巖山) 남서쪽 기슭에 있는 작은 암자입니다. 관음보살상은 절 바로 뒤에 우뚝 솟은 높이 22m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졌지요. 학도암에 오르면 왼쪽으로는 멀리 삼성동 무역센터 너머로 청계산이 산세를 자랑하고, 가운데로 눈길을 옮기면 관악산과 남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산 아래 마들에서 시작된 건물 숲은 끝간 곳이 없는데, 군데군데 솟은 산은 회색 바다 위에 떠있는 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불경에 관음보살은 작고 흰꽃이 피어 있는 바닷가 봉우리에 살고 있다고 했으니, 이곳에 관음보살좌상을 새긴 사람도 분명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학도암 마애불은 1872년 명성황후의 시주로 조성된 것으로 사지(寺誌)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도암은 1624년(인조 2년) 창건된 이후 줄곧 작은 암자였다고 하지요. 절터가 가파른 경사지여서 앞으로도 큰 규모의 중창불사는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왕실의 발원으로 거대한 마애불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관음보살의 상주처로 꼭 맞는 환경조건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학도암 마애불이 예기치 않은 감동을 주는 것도 이처럼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상징성이 더해졌기 때문이겠지요. 높이가 13.4m에 이르는 학도암 관음보살은 일단 크기로 참배객을 압도합니다. 그러면서도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의 성격에 걸맞게 부드럽고 넉넉해 보이지요. 전체적으로는 조각이라기보다 그림처럼 느껴집니다.‘화폭’으로 쓰여진 바위는 자연석으로는 보기 드물게 희고 판판합니다. 좋은 ‘그림’의 바탕에 좋은 재료가 뒷받침되었습니다. 실제로 학도암 마애불은 화승이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새긴 것입니다. 마애불에는 명문(銘文)도 남겨놓았는데, 화승을 뜻하는 금어(金魚) 장엽의 이름이 보입니다. 명문에는 또 김흥연 이운철 원승천 박천 황원석 등 석수(石手) 5명의 이름도 올려놓았지요. 마애불전문가인 이경화는 법명(法名)을 쓰지 않는 석수들을 1865년 시작되어 1872년 마무리된 경복궁 중건과 연결지었습니다. 선의 강약과 리듬을 살려내는 솜씨로 보면 궁중에서 실력을 쌓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장엽의 작품인 삼척 신흥사 아미후불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균형감각과 유려한 필선을 장기로 하는 그가 비계에 매달려 초본대로 바위 표면에 관음보살상을 그려놓으면 궁중 석수들이 선을 따라 새겨나갔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쯤되면 마애불 전통의 퇴화가 아닌 회화와 조각이 만나는 새로운 전통을 창조한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불암산이 뒷동산이나 다름없는 중계동 주민이라면 우리 동네에 정말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다는 자부심을 한껏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dcsuh@seoul.co.kr
  • [데스크시각] 공공기관 감사와 축구심판/임창용 공공정책부 차장

    다 아는 얘기지만 스포츠에서 국가대표팀끼리 맞붙는 A매치의 주심은 제3국 국적의 심판이 맡는다. 시골에서 동네 대항 축구시합을 해도 여건만 되면 다른 동네 사람이 심판을 본다. 반칙행위를 공정하게 잡아내 벌칙을 주기 위해서다. 만일 경기에 나선 팀과 한 국적 또는 한 동네 사람이 심판을 본다면 상대편은 물론 관중도 심판 판정에 불만을 가질 것이다. 공무원, 공기업 직원들의 비리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이같은 스포츠게임의 불공정한 심판을 떠올리게 된다. 정부 부처의 감사관, 공기업 감사들이 이들 심판과 자꾸 오버랩되는 것이다. 감사관은 각 부처에 속해 있으면서 직원의 업무와 비리를 감시·감찰하는 업무를 맡는다. 이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려면 당연히 기관장이나 상관, 동료들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감사관도 조직의 구성원이자 일개 간부인 이상 조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해 일부 부처 감사관직을 외부에 개방하고 있다. 한데 실행이 제대로 안된다. 외교통상부·보건복지부·건설교통부 등 감사관직을 외부에 개방하고 있는 12개 부처 중 순수 민간인을 감사관으로 뽑아 쓰는 곳은 관세청 등 2곳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공무원 출신이고, 그 중 상당수는 소속 부처 출신이다.‘무늬만’ 개방형인 셈이다. 해당 부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감사업무를 수행하려면 조직 내부와 업무를 꿰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들이댄다. 그러나 아무리 조직을 꿰고 있다 한들, 자신의 승진·인사의 숨통을 기관장·상관이 쥐고 있고, 십수년간 동고동락해온 동료·부하들이 눈에 걸리는데 그들의 비리를 소신껏 파헤쳐 낼 수 있겠는가. 적지 않은 부처들이 감사관을 공모할 때마다 ‘적임자가 없다.’며 2차,3차 재공모를 한다. 검사출신 변호사, 대기업 출신 감찰 전문가가 지원을 해도 마찬가지다. 모 부처의 한 간부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들어와 조직을 흔들어 놓을까 부담된다.”고 털어 놓았다. 진짜 속내는 바로 이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적임자는 ‘조직의 생리와 업무를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인물인 셈이다. 공기업의 방만경영과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연일 도마에 오르지만 개선되지 않는 원인도 자체 감사시스템 부실에서 찾고 싶다. 부처 감사관과 달리 공기업 감사는 대부분 외부에서 수혈된다. 문제는 상당수 감사들이 정치판을 들락거리던 비전문가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자리 챙겨 주기 수혜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 때문에, 기관장은 물론 노조, 직원들에게 감사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 공기업 감사는 고장난 호루라기를 물고 있는 심판과도 같다. 비전문가, 정치권 낙하산이라는 실뭉치가 호루라기속을 꽉 채우고 있으니, 아무리 불어대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공무원과 공기업 혁신의 해답은 자체 감사시스템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 감사관을 외부에서 뽑되, 진정 감사의 논리를 꿰뚫고 있는 소신파 ‘감사 전문가’를 발탁해야 한다. 부처 조직과 업무를 미주알고주알 꿰고 있어도 감사의 날을 세우지 못하면 감사관으로선 부적격자다. 공기업 감사에 정치권 출신의 비전문가를 앉히는 해묵은 악습의 고리도 끊어내야 한다. 정부가 공기업 혁신을 끊임없이 외쳐대면서도 낙하산 감사 인사의 고리를 끊지 않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다. 공직사회에서 한쪽 팀과 공모한 심판이 뛰는 불공정한 게임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고장난 호루라기를 문 심판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피해를 입는 상대편 팀은 다름 아닌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임창용 공공정책부 차장 sdragon@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8) 강원 영월 모운동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8) 강원 영월 모운동마을

    안개와 구름 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망경대산(1088m)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영월군 하동면 주문2리 모운동(募雲洞).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이다. 하동면 면소재지에서 옥동천을 따라가다 주문교를 건너 산 아래에서 숲길을 오른다. 마을이라곤 없을 것 같은 길을 따라 4킬로미터를 오르면 느닷없이 해발 700미터의 마을이 나타난다. 종종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여 되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32가구 60여명이 살고 있는 산꼭대기 마을이다. 비가 온 다음이면 어김없이 골골이 낀 안개와 구름이 신비함을 더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잡화를 가득 실은 트럭(일명 늴리리차)이 확성기를 통해 유행가를 울리며 찾아오는 오지이지만, 믿기지 않는 전성시대가 있었다. 80년대 말 석탄산업합리화법 발표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민이 1만명에 이르렀다. 현재 영월인구가 4만명 정도이니 어느 정도 규모인지 짐작이 간다.6개 이(里)로 나뉘어졌던 마을이 지금은 1개 이(里)로 통합되었다. 탄부로 일했다는 박효정(67)씨는 “예전에는 이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이 세 번 놀랐다.” 며 “첫 번째는 영월읍에서 몇 시간이고 산길을 타고 오는 데 놀라고, 두 번째는 멀리서 보는 마을의 휘황찬란한 야경에 놀라고, 세 번째는 자고 나서 다닥다닥 붙은 수많은 판잣집에 놀랐다.”고 한다. 전성시대의 흔적은 지금도 찾을 수 있다. 마을 곳곳에는 약국 극장 당구장 목욕탕 이발소 색싯집 등 그 옛날 흥청망청하던 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영월읍내에도 들어오지 않던 낭랑쇼단과 여성극단 등이 이 마을엔 들어왔단다. 번성기 때 마을에서 요정을 두 개나 운영했고 지금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문마담’으로 통하는 김할머니는 “영월에서 문마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당시가 좋았어!”라며 “그때는 지긋지긋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어! 광산돈은 햇볕 보면 없어지기라도 하듯이 흥청거렸어.”라고 회상하며 당시 손님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인물평을 했다. 옛날 당구장을 개조한 토박이 김흥식(54) 이장집은 탄광촌의 유물들로 가득하다. 올해 강원도 선행도민 대상을 받은 김 이장은 비록 마을이 폐광촌이지만, 고원휴양지를 만들어 제2전성기를 되찾겠다고 열심이다. 마을 곳곳에 각종 야생화를 심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한테는 집도 무상으로 빌려 주었다. 주민들은 밋밋하던 작은 담장에 동화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수려한 지형을 이용한 트레킹 코스를 만들고, 마을 위를 지나던 무연탄을 나르던 전철길을 되살리고, 폐광산굴을 이용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각종 채탄 장비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만들겠단다.800여명의 학생들이 2부제 수업을 하던 모운초등학교는 지금은 폐교되고 외지인을 맞이하기 위한 숙박시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자연환경이 척박하여 논 한평 없고 변변한 밭도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최근에는 생활환경 개선과 공동체의식 복원을 위해 추진하는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마을로 선정되어 마을을 정비했다. 매년 5월에는 고향을 떠난 수백 명이 마을을 찾아오고, 나무를 심으며 고향사랑을 실천한다. 떠나간 사람이 찾아오고, 터를 잡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가꾸는 마을이다. 마을을 뒤로하면서 상상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구름 모여 있는 마을에 편안한 표정의 여유 있는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사진 글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열린세상] 외고 존폐 논란과 사교육 양극화/ 최병서 동덕여대 문화경제 교수

    [열린세상] 외고 존폐 논란과 사교육 양극화/ 최병서 동덕여대 문화경제 교수

    외고와 국제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은 뜨겁다. 그런데 이를 관장하는 교육부의 판단은 차갑기 이를 데 없다. 왜 교육의 수요자와 공급자의 시각 차이가 이토록 큰 것일까? 두 집단 사이의 뜨거운 감자는 교육의 평준화와 사교육비 증가 문제이다. 사교육 중에서는 영어교육비가 핫 이슈이다. 왜 영어가 문제인가? 경제적 관점에서 재미삼아 영어구사력과 소득수준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한다면 상당히 높은 정의 관계가 발견될 것이다. 나아가서 영어능력과 좋은 대학입학률이나 고소득 직종 진입률과의 관계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영어 교육에 쏟아붓는 돈은 얼마나 될까? 지난 4년반동안 외국유학이나 연수에 쏟아부은 금액이 146억달러(약 15조원)에 달한다는 통계가 최근에 나왔다. 이는 조기유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 기인하는데 초·중·고교의 조기 유학생 수는 최근 6년간 10배나 급증했다. 공교육의 평준화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이처럼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2006년에는 서울에 국제중 두 곳의 신설이 결정되었다가 교육부와 전교조의 반대로 끝내 무산되었다. 얼마전에는 교육부 싱크 탱크인 교육개발원이 외국어고와 일반고 학생들의 ‘국어’ 성적의 비교를 근거로 외국어고의 학교교육 효과는 거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런 교육부가 최근에 제주도에 영어특구를 조성하고 이곳에 국제중학교 신설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왜 제주도인가? 학생들 수요가 많은 서울을 외면하고 가기도 어려운 제주도인가? 이는 마치 ‘여우와 두루미’ 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심보를 연상시킨다.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 놓고 두루미가 먹을 수 없도록 접시에 음식을 내놓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달리 비유하자면 가게를 내는데 굳이 수요자들이 많은 번화한 길거리에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가기 어려운 뒷골목에 가게를 내겠다는 것인데, 이런 교육부의 심보를 이해할 수 없다. 특목고를 없애고 국제중학교를 설립하지 않는다고 사교육이 없어지겠는가? 그 결과는 반대로 나타날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평준화된 공교육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는 학생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자신의 아이가 더 뛰어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더 많은 양질의 사교육을 선택하려고 할 것이고 따라서 사교육비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사교육에 투자할 수 없는 저소득층의 자녀는 좋은 사교육을 받을 기회는 더 적어지며 교육의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될 것이다. 교육부는 양질의 교육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줄이는 방책에서 탈피해야 오히려 교육의 양극화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문제의 해법은 공급의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 영어교육을 위해서 좋은 원어민 교사를 대폭 확충해서 모든 일선 일반 학교에 배치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저소득층의 아이들도 누구나 쉽게 동네학교에서 수준 높은 양질의 영어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사교육을 따로 받지 않아도 될 만큼 공교육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지름길이다. 특목고에 대한 수요의 원인을 찾아내고 일반고의 교육수준을 높이는 투자는 하지 않고 특목고를 끌어내려 하향평준화하겠다는 비합리적 발상은 학생의 교육선택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한 국회의원 토론회에서 교육부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교육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팽배해 있다. 교육부는 언제까지 교육현장의 불만과 교육소비자들의 원성에 귀를 막고 눈을 감을 것인가? 최병서 동덕여대 문화경제 교수
  • [현장 행정] 강서구청 공무원 자원봉사단

    [현장 행정] 강서구청 공무원 자원봉사단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올 추석처럼 연휴가 긴 명절은 외로움을 더하게 한다. 달력 속 빨간 날의 하루하루가 혼자임을 각인시키는 탓이다. 강서구청 공무원자원봉사단(사진)이 긴 명절 외로운 분들을 찾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구청직원 150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지난해 2월부터 7개팀으로 나눠 매주 봉사활동을 진행 중이다. ●월세 5만원 주택의 소박한 리모델링 “미안해서 그러지…. 쌀쌀해지는데 그냥 불이나 좀 땔 수 있게만 해줘.” 26일 강서구 방화1동 한 무허가촌.7명의 강서구청 공무원자원봉사단이 방문한 안덕수(82) 할머니의 집은 이 동네에서 ‘검은 굴뚝집’으로 불린다. 물가비싼 서울에서 월세 5만원에 단독주택 한 채를 빌려 주니 오죽할까.60∼70년대에나 봤을 법한 얼기설기 얹은 슬래브 지붕사이로 언제 쓰러질지 모를 굴뚝이 옹색한 살림을 말해준다. 요즘 사람들에게 굴뚝은 생경스러운 풍경이다. 동사무소에서 봉사대상 독거노인을 찾던 중 알게 된 안 할머니의 집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전통적인 아궁이 부엌이다. 말이 좋아 전통이지 겨울이면 건축공사장에서 버린 나무 등 땔감을 모아 난방을 한다. 땔감을 찾고 나르는 것 역시 온전히 할머니 몫이다. 이날 봉사단의 임무는 막히고 갈라진 굴뚝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일. 숭숭 구멍난 굴뚝이 부식돼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전기장판을 사드린다고 해도 “전기세를 감당할 형편이 못된다.”며 할머니가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봉사단은 어쩔 수 없이 대공사에 들어갔다. 총무과 길민수(43)씨 등 서너 명의 회원들은 바로 굴뚝구하기에 나섰다. 월세 5만원짜리 집의 소박한 리모델링은 이렇게 시작됐다. ●추석에 배달된 굴뚝선물 치수방재과 이원호(48)씨 등 남은 회원들은 집수리에 나섰다. 방안은 아궁이의 열기가 구들장 틈새로 뚫고 들어와 이미 장판이 검게 타들어간 상태였다. 불에 타 건드리기만 해도 뚝뚝 부러져나가는 장판을 모두 걷어내고 금간 구들장은 두껍게 깨냈다. 그대로 시멘트만 얇게 발랐다간 얼마못가 같은 곳이 깨져나갈 정도로 균열이 심한 탓이다. 솜씨 좋은 몇몇 회원 덕에 방엔 판판하게 새 구들장이 깔렸다. 오후 2시가 지나자 굴뚝을 사러 갔던 팀이 4m가 넘는 굴뚝을 어께에 메고 돌아왔다. 요즘 이만 한 굴뚝을 찾기도 힘들었지만 운반도 만만치 않아 길씨의 승용차 지붕이 고생 좀 했다고 한다. 굴뚝을 바로세우고 황토 흙과 시멘트를 발라 철사로 동여맸다. 오후 4시쯤 시범삼아 신문지를 아궁이에 넣고 태우니 연기가 시원스럽게 빨려나갔다. 굴뚝공사가 성공적이란 증거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땀범벅이 된 회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다. 기획공보과 예산팀 최기웅(44)씨는 “저소득층이 많은 구에서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 예산지원만 할 순 없다는 생각에 결성된 모임”이라면서 “명절에 부모님께 좋은 선물을 드린 것 같은 뿌듯한 하루였다.”며 미소지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9)숭록대부까지 오른 ‘神醫’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9)숭록대부까지 오른 ‘神醫’

    약을 쓰는 의원과 별도로 침의를 양성하자는 주장은 세종시대 전의감(典醫監) 책임자였던 황자후가 처음 내세웠다.“병을 속히 고치는 데는 침이나 뜸만 한 것이 없습니다. 의원으로서 침을 놓고 뜸을 뜨는 구멍을 밝게 알면 한 푼의 약도 쓰지 않고 모든 병을 고칠 것입니다. 지금부터 중국의 의술을 익히는 법에 의해 각각 전문(專門)을 세우고 주종소(鑄鐘所)로 하여금 구리로 사람을 만들게 하여, 점혈법(點穴法)에 의해 재주를 시험하면 의원을 취재하는 법이 또한 확실해질 것입니다.” 허임의 ‘침구경험방’ 첫 판본이 나온 지 7년 뒤인 효종 2년(1651)에 내의원의 부속청으로 침의청(鍼醫廳)이 설치되었다. 당대 침구술의 최고 실력자들이 왕궁에 모이게 된 것이다.‘내침의선생안’에 202명의 내침의, 즉 내의원 침의 명단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외과수술로 가장 이름을 날린 침의가 백광현이다. ●의서를 보지 않고 침을 써서 말을 고치다 침의로 이름난 백광현(白光炫·1625∼1697)은 사람됨이 순박하고도 조심스러웠다. 자기 동네에서도 너무 진실스러워, 마치 바보 같았다. 키가 큰 데다 수염이 길었으며, 눈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다. 대를 잇는 의원이 아니라, 처음엔 말의 병을 고쳤다. 말의 병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그 처방을 모은 ‘마의방(馬醫方)’이 광해군 8년(1616) 4월 의주에서 간행되었지만, 그는 이런 책을 보지 않고 오로지 침만 써서 치료했다.‘마의방’에 말의 경혈도가 있어서 경혈을 찾아 침을 찔러 넣으면 편했는데, 그는 자기 방식을 고집해 경험을 쌓았다. 임상실험을 충분하게 한 것이다. 말침은 사람에게 시술하는 침에 비해 납작하고 넓은 봉 형태이며 철제로 만들었다. 침을 오래 놓을수록 손에 익어지자, 사람의 종기에도 시험을 해보았다. 지금은 종기가 별로 나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위생관념이 열악해 많이 났으며,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되는 큰 병이었다. 침으로 사람의 종기까지도 고쳐 기이한 효험을 많이 보게 되자, 드디어 사람 고치는 것만 일삼았다. 마의(馬醫)에서 침의(鍼醫)로 전업했으니, 신분이 상승한 셈이다. 그가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의과를 거쳐 내의원에 들어가지 않고 민간에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의 종기를 보고, 상황에 따라 달리 시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그의 진단이 더욱 정확해졌다. 중인들의 전기를 많이 지었던 정내교가 백광현의 전기도 지었는데, 그가 종기의 뿌리를 뽑은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종기에 독이 가득 차면 근(根)이 생기는데, 옛 처방으론 이걸 고칠 방법이 없었다. 광현은 이런 종기를 보면 반드시 커다란 침을 써서 근을 발라내어, 죽을 사람도 살렸다. 처음엔 침을 너무 세게 써서, 어떨 때에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에게 효험을 보고 살아난 사람들이 차츰 많아졌으므로, 병자들이 날마다 그의 대문에 모여들었다.” 정내교는 “지금 세상에서 종기를 째고 고치는 법은 백태의에게서 시작되는데, 그 뒤에 배운 자들은 모두 그에게 미칠 수 없었다.”고 했다.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종기를 외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처음 개발한 것이다. 시술하다 환자를 죽이기까지 했다는데, 사람이 아니라 말부터 치료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째보면서 임상실험에 일찍 성공했고, 사람에게 시술할 무렵에는 이미 침술이 손에 익었을 것이다. 침을 놓는 솜씨는 의서를 많이 보았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병자들이 모여들수록 의술 베풀기를 좋아해, 더욱 힘쓰고 게을리하지 않았다. 몸을 사리지 않았으며, 돈을 밝히지도 않았다. 침으로 째서 뿌리를 뽑는 비법을 써 그의 이름을 크게 떨쳤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신의(神醫)라고 칭송했다.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종기를 똑같이 고치다 그는 의과에 합격하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내의원에 배속되었다. 현종 11년(1670) 8월16일 실록에 “왕의 병환이 회복되자 백광현에게 가자(加資)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품계를 한 급 올려주었다는 뜻인데, 몇품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숙종은 10년(1684) 5월2일 정사에서 그를 특별히 강령현감(종6품)에 임명했다가 포천현감으로 바꾸었는데,“의관의 수령 임명이 여러 번 중비(中批)에서 나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진실로 만족하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백광현이 미천한 출신이고 또 글자를 알지 못하는데도 별안간 그를 이 벼슬에 임명하니,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대론(臺論)이 일어났다.”고 사관은 기록했다. 어의들이 왕의 병을 고치면 승진하고, 의원으로 더 이상 승진할 자리가 없으면 지방 수령으로 발령내는 경우가 많았다.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의원에게 상을 주는 것이 당연했다. 백광현이 현종의 목에 난 종기를 고치고, 효종비 인선왕후의 머리에 난 종기도 큰 침으로 수술하여 완치시켰으며, 자신의 목에 난 종기와 배꼽에 난 종기까지 침으로 치료했으니 종6품 현감으로 발령내는 것쯤은 숙종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효종이 종기를 제대로 고치지 못해 세상을 떠났으므로, 종기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중비(中批)는 임금의 뜻이다. 백광현을 내의원의 관직에 올려주는 것은 상관없지만, 지방 수령은 문과나 무과에 급제한 양반이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으니 파격적인 대우였다. 사간원에서 그를 반대할 명분이 없자 “글자를 알지 못한다.”고 반대했다. 그가 전형적인 의과 출신이 아닌 데다 전통적인 의서(醫書)도 보지 않고 경험에 따라 치료한 침의였으므로, 한문에 약한 것을 트집잡은 것이다. 그는 1691년에 지중추부사,1692년에 숭록대부로 승진했는데, 실제 직책이 없는 벼슬이나 품계였다. 정내교는 그의 전기를 쓰면서 높은 벼슬에 오른 그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숙종 초엽에 어의로 뽑혔는데, 공을 세울 때마다 품계가 더해지곤 해서 종1품에 이르렀다. 벼슬도 현감을 지내, 민간에서 영예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병자들을 대할 때에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부름이 있으면 곧 달려갔고, 가서는 반드시 자기의 정성과 능력을 다하였다. 병이 다 나은 것을 본 뒤에야 치료를 그만두었다. 늙고 고귀해졌다고 해서 게을러지지 않았다.” ●“백광현이 세상에 없어서 죽는구나” 정내교는 전기를 쓰면서, 자신이 실제로 본 백광현의 신통한 진단을 이렇게 증언했다. “내 나이 15세 때에 외삼촌 강군이 입술에 종기가 났다. 백태의를 불러왔더니, 그가 살펴보고 ‘어쩔 수가 없소. 이틀 전에 보지 못한 게 한스럽소. 빨리 장례 치를 준비를 하시오. 밤이 되면 반드시 죽을 게요.’라고 말했다. 밤이 되자 과연 죽었다. 그때 백태의는 몹시 늙었지만, 신통한 진단은 여전했다. 죽을 병인지 살릴 병인지 알아내는 데 조금치도 틀림이 없었다. 그가 한창때에는 신기한 효험이 있어서 죽은 자도 일으켰다는 게 헛말은 아니었다.” 정내교가 15세 때라면 백광현이 71세 되던 1695년이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데, 이 해에 재상을 치료한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12월9일에 각기병을 앓는 영돈녕부사 윤지완에게 왕이 백광현을 보냈는데, 사관은 “백광현이 종기를 잘 치료하여 기이한 효험이 많이 있으니, 세상에서 신의(神醫)라 일컬었다.”고 설명했다. 효종 10년(1659) 5월1일에 약방에서 문안하자, 효종이 “종기의 증후가 이같이 날로 심해 가는데도 의원들은 그저 심상한 처방만 일삼고 있는데, 경들은 심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답하였다. 의관 유후성이 산침(散鍼)을 놓자고 아뢰어 그대로 따랐지만, 효험이 없었다.3일에는 병이 위독해 편전에 나가지 못했으며, 왕이 입시한 의관들에게 종기의 증후를 설명하라고 명했지만 아무도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4일에는 의관 신가귀가 침을 놓자고 했으며, 유후선은 놓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신가귀가 침을 놓았지만, 혈락(血絡)을 범하는 바람에 피가 그치지 않고 나와 효종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한 달 뒤에 신가귀는 교수형을 당했다. 효종 10년이라면 백광현이 아직 내의원에 들어오지 못하고, 민간에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던 시절이다. 몇 년 뒤였다면 효종의 종기를 침으로 고치지 않았을까? 정내교는 백광현의 전기를 끝내면서 “종기가 생겨서 그 독을 고치기 어렵게 된 사람들은 요즘도 반드시 ‘세상에 백광현이 없으니, 아아! 이젠 죽을 수밖에 없구나.’라고 탄식한다.”고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십년 뒤에도 그의 신통한 침술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백광현은 4형제였는데,2남 광린(光璘)과 4남 광현이 의원으로 활동했다.4형제의 후손 가운데 역관, 의원, 계사가 골고루 배출되었는데, 광현의 후손에서 대를 이어 침의가 많이 나왔다. 정내교는 “그가 죽은 뒤에 그 아들 흥령이 대를 이어 의원이 되었는데, 꽤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고 했다. 그의 침술이 아들을 통해 가업으로 전수된 것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기고] 이번 추석 장보기는 재래시장에서/이호조 서울 성동구청장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 추석연휴는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이지만 하루이틀 휴가를 내면 9일까지 쉴 수 있는 모처럼의 황금연휴여서 그동안 못 뵈었던 가족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교통, 통신의 발달과 핵가족화로 명절에 대한 감흥이 예전같지 않다. 항공사의 추석연휴기간 국제선 예약률이 90%를 넘었다고 한다. 명절을 가족끼리 여행하기 좋은 연휴의 하나로 생각하는 추세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3대 명절 설, 단오, 한가위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은 단연 한가위였다.‘열양세시기’의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대로 한가위는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에 대한 결실과 함께 한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훈훈한 고향의 정을 나누는 최고의 명절임에 틀림없다. 속담에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고 할 만큼 추석을 전후해 ‘온보기’로 하루동안 친정 나들이를 하는 것이 여성들게는 큰 기쁨이며 희망이었다. 요즘도 민족대이동이라 할 만큼 몇 천만명이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을 만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것이 이 연유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추석이 가까워지면 동네 재래시장에 들러 고향에 가져갈 한 보따리의 선물을 마련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정성껏 선물을 고른 후 여기에 마음을 얹어 큰집에 가곤 했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고 바쁜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요즘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규격화되고 잘 포장된 선물을 사가는 게 일반화됐다. 명절을 앞둔 시장경기는 갈수록 양극화가 뚜렷하다. 대형마트의 매출은 크게 늘고, 재래시장은 평상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명절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다고 상인들은 하소연한다. 재래시장에서는 대형마트에선 느낄 수 없는 사람사는 분위기와 그 지방의 인심이 있다. 또 파는 사람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가격을 깎는 재미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지방의 특산물들이 많아 타지인들도 시장에 가면 금세 그 마을이 어느 산물로 유명한지 안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어디를 가나 특산물은커녕 다 똑같은 제품뿐이다. 서울 성동구에는 단일품목 세계 최대 규모이자 수도권 육류 유통의 60∼70%를 차지하는 마장축산물 시장 등 크고작은 재래시장이 많다. 그동안 재래시장 현대화를 위한 노력으로 시설이나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마장축산물 시장도 구와 조합상인들의 노력으로 시장 이미지를 크게 개선했으며 인접 청계천 하류가 자연생태적으로 복원되면서 주변환경도 획기적으로 좋아져 이제는 가족과 함께 들를 수 있는 서울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특히 이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고기의 품질은 뛰어나다. 신선한 축산물이 매시간 지방에서 배송돼 신선하며, 가격도 대형마트보다 20∼30% 싸다. 원산지와 가격표시도 의무화해 초보 고객도 믿고 살 수 있다. 포장기술도 대형 매장 못지않아 갈비세트나 꼬리세트 등 추석맞이 선물용 고기를 사려는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상인들이 스스로 정량, 정가, 정품의 ‘3정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서비스 개선에 힘쓴 결과 이제는 서비스나 품질 면에서나 육류 제품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재래시장이 살아야 지역경제가 산다. 성동구도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장의 환경은 물론, 주차장과 화장실의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올 추석 선물은 가까운 재래시장에서 장만하자. 가격 흥정하고,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해 그동안 잊고 있던 사람사는 맛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이호조 서울 성동구청장
  • ‘칙칙폭폭’ 추억의 간이역

    ‘칙칙폭폭’ 추억의 간이역

    어렸을 적 기차역은 단순히 열차를 타고 내리는 곳이 아니었다. 한 고장의 삶과 꿈이 녹아 있는 시작과 끝(始終)의 공간이었다. 보따리 한가득 장에 내다팔 것들을 실은 어머니들에게는 가족의 하루 끼니를 책임지는 중요한 출발점이었고, 고향을 떠나 상경하던 젊은이들에게는 꿈의 시작이었다. 시작하는 이들에게 그 곳은 꿈의 출발점이었고, 결과가 어찌 됐든 도착하는 이들에게는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는 첫 풍경, 첫번째 공간이었다. 지금은 퇴락한 채 서 있는 간이역이지만, 단순히 벽돌건물 한 채의 쓸쓸함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제 곧 한가위. 많은 이들이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할 게다. 이번 한가위엔 옛 모습을 온전히 간직한 간이역을 찾아 옛 일들을 추억해 보는 건 어떨까. 글 사진 박준규 기차여행전문가 traintrip.kr # 영동선 하고사리역 한국의 간이역들 중에는 특이하게도 마을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간이역이 있다. 영동선 양원역과 하고사리역, 지금은 폐역된 경북선 미룡역이 그 주인공. 하고사리역은 도계지역 석탄자원이 개발되면서 1966년 마을주민들에 의해 현재의 역사가 세워졌다. 기차역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찾는 경우는 드물지만, 하고사리역은 예외다. 우뚝 서 있는 능수버들이 역무원 하나없는 역을 지키는 풍경이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시인, 화가는 물론, 별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곳. 철도를 주요 주제로 삼는 미술가 김지환씨는 지친 나그네가 머물 만한 쉼터로, 간이역을 노래하는 박해수 시인은 ‘물안개 피어나는 아침 물빛 영혼’으로 표현했다. 아름다운 간이역을 노래한 것이 어디 예술가뿐이랴. 철도여행 마니아들에게는 이미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지금은 열차가 정차하지 않지만, 버스 연결편이 잘 갖춰져 있다. 그림같은 간이역을 가보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 ▶가는 길 청량리역 안동행 열차→영주역 하차→강릉행 열차→도계역 하차→삼척·동해·강릉·속초행 버스. # 경북선 용궁역 이름처럼 용왕님은 없지만, 한적한 간이역의 정취를 한껏 머금은 곳. 주황색 지붕과 벽면, 의자의 아기자기한 색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낭만적인 간이역으로 떠나려는 여행자들에겐 딱이다. 용궁역에 내려 따끈따끈한 박달식당 순대국밥을 먹는 건 용궁역 여행의 ‘기본코스’다.4000원이면 순대 한 접시와 느끼함 없는 따끈한 순대국밥을 맛볼 수 있다. 용궁면 소재지에서 택시로 10분 정도 가면 내성천 물줄기가 휘감고 도는 회룡포에 도착한다. 장안사와 회룡포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회룡대를 가는 것도 좋고,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뚫린 철판을 이어 놓은 ‘뿅뿅다리’를 따라 드라마 ‘가을동화’의 어린 시절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의 사랑이야기가 있던 회룡포를 거닐어도 좋겠다. ▶가는 길 서울역→동대구·부산·마산·진주행 열차→김천역 하차→영주행 열차 탑승→용궁역 하차.(버스의 경우 영주, 김천, 구미에서 용궁면 소재지까지 이용 가능) # 군산선 임피역 세월이 멈춰선 마을.70년 넘은 임피역이 호남평야 한 쪽에 고즈넉하게 서 있다. 한때 컸을 법한, 그러나 지금은 역무원이 철수한 소박한 간이역이다. 등록문화재가 된 덕에 갑자기 철거될 염려가 줄었으니, 낭만을 꿈꾸는 여행자들이라면 언제라도 찾으면 된다. 역전마을 안으로 접어들면 방앗간 시설물이 보이고, 조금 더 들어가면 ‘신생이용원’이라는 1970년대 간판을 만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속으로 접어든 것 같은 느낌. 이 동네가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194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선 듯하다. 임피역 구내는 탁 트인 전망과 3칸짜리 통근열차의 왕래로 인해 제법 유명세를 얻었지만, 언제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사람 수는 5명을 넘지 않는다.4월이면 커다란 벚꽃이,10월이면 노랗게 자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명물이 된다. 아름다운 경치는 어느 간이역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임피역이 지니고 있는 꾸밈없는 아름다움은 쉽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2006년 11월까지 근무했던 임피역의 ‘마지막 역무원’ 양선재씨의 말을 빌리자면 밤이면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단다. 두 그루 은행나무가 밤새 속삭이는 사랑이야기 때문. ▶가는 길 용산, 영등포역→광주·목포·여수행 열차→익산역 하차→군산행 통근열차→임피역. # 중앙선 능내역 정차하는 열차가 없어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곳. 서울에서 가까운 데도, 도시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나 한가한 시골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다산유적지 등 역 주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들도 많다. ▶가는 길 청량리역에서 2228번 버스를 타고 능내역 하차. # 동해남부선 송정역 아담한 역사 앞 마을과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백사장의 곡선도 아름답고, 송정해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해운대까지 갔다오는 것도 재미있다. ▶가는 길 서울역→부전행 열차→부전역 하차→울산행 열차→송정역 하차(부산역, 부전역에서 시내버스로도 이동 가능). # 동해남부선 안강역 불국사역 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역사를 문화공간으로 바꿨던 최해암 시인이 역장으로 있는 곳. 수시로 그림, 시 작품 전시회를 연다. 가끔 역장이 DJ로 등장해 멋진 음악들을 선사하기도 한다. 기차역의 고정관념을 확실히 깨주는 곳. ▶가는 길 서울→부산·동대구·마산·진주행 열차 탑승→동대구역 하차→포항행 열차→안강역. # 정선선 나전역 꼬마열차로 유명한 정선선의 4대 간이역 중 한 곳.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목조역사인데다, 예쁜 도깨비그림이 그려져 있어 철도마니아뿐 아니라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가는 길 청량리역→강릉행 열차→증산역 하차→아우라지행 열차→나전역. # 문경선 진남역, 불정역 진남역은 진남교반과 그 아래를 흐르는 영강의 경치가 일품인 곳.1960년대 지어진 목조 역사의 원형이 잘 유지돼 있다. 불정역은 침대차와 객차 등을 이용해 국내 최대규모의 ‘철도 펜션’으로 거듭날 계획이 추진중이다. 문경새재 등 주변 관광지와의 연계성도 좋다. ▶가는 길 서울역→부산·동대구·마산·진주행 열차→김천역 하차→영주행 열차→점촌역 하차→문경방면 시내버스→진남역(불정마을)하차.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경남 돌풍의 핵은 박항서 감독

    지난해부터 필자는 경남FC의 홈 경기 해설을 위해 창원을 다녔다. 서울에서 창원까지는 멀고 먼 길이다.경기 시작 1시간 전까지는 도착해야 하는 탓에 비행기를 탄 적도 많았는데, 김해공항에서 창원경기장까지도 두 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했다. 그저 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지루하고 답답했다. 작년에 특히 그랬다. 홈경기 때마다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고 결국 12위에 주저앉았기 때문에 패배한 경기를 해설하고 올라올 때는 서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요즘은 달라졌다. 경남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의 9부 능선을 넘어 3위를 달리고 있어서다. 지난 16일 대구FC와의 원정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면서 5연승을 기록했다. 경남은 스타가 없는 약점을 역이용해 끈끈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한 공격 축구를 선보임으로써 21라운드 ‘하우젠 베스트팀’으로까지 선정됐다. 특히 지난 1일,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는 와중에 펼쳐진 밀양에서의 홈경기는 축구가 어떻게 ‘감독의 축제’를 만드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명경기였다.1만명을 겨우 수용할 수 있는 밀양공설운동장은 경기 시작 전 이미 만원 사례를 이뤘고, 폭우 속에서도 어느 한 사람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선수들은 근성있는 공격축구로 일관한 끝에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승리를 결정짓는 까보레의 골이 터졌을 때, 공정한 해설을 해야하는 내 자신의 목소리가 어쩔 수 없이 높아졌음을 고백한다. 5연승의 까닭은 응집력에 있었다. 지금은 까보레와 뽀뽀, 산토스를 비롯한 외국인 선수에다 정윤성 김성길 김근철 박종우 김효일 등이 널리 알려지고 있지만, 올해 초만 해도 그들은 다른 팀에서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선수들이었다.공격의 선봉인 뽀뽀와 정윤성은 각각 부산과 수원이 방출한 선수였고, 김효일과 박종우도 전남에서 옮겨 왔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대형 사고’를 치고 있고, 그 한복판에 박항서 감독이 있다. 15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코치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지난해 부임 당시에도 그는 큰 형 같은 코치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달라졌다. 지금 그는 무명의 선수들을 창조적으로 조합해 아름답고 날카로운 공격 축구를 선도하는 감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미덕은 결코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독이기 때문에 호령도 하고 짜증도 부리지만 그것은 억지로 ‘카리스마’를 요구하는 위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정말이지 한 동네에 사는 이웃집 형 같은 인간미다. 스스로를 낮추면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박항서 감독에 의해 지금 경남은 ‘가을의 전설’을 써나가고 있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한승원 토굴살이] 바보시인 이야기

    [한승원 토굴살이] 바보시인 이야기

    시인의 토굴에서 남쪽으로 80m쯤 떨어진 곳에 소 백 마리쯤을 키울 수 있는 우사 두 채와 그 우사의 주인집이 나란히 서 있었다. 우사와 주인집의 파란 양철지붕은 쏟아지는 햇살을 뽀쪽거리는 스테인리스 쇠 조각들처럼 퉁겨 날리곤 하므로, 시인은 서재에서 나와 들판과 바다를 내다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지난 한여름의 어느 날 아침에,40대 중반의 우사 주인이 시인을 찾아왔다. 시인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우사를 지은 지 10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는 아직 송아지 한 마리도 들여놓지 않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정부 보조금 5000만원,5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의 5000만원을 가져다가 그것을 설치한 이래, 소를 키우려 하지 않고, 그 돈으로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가 빈손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우사 주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시인은 그 우사에 소를 넣어 키우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그 우사 속에서 백 마리쯤의 소가 생활하게 된다면 소의 똥오줌 냄새와 파리 떼들이 들끓을 것이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시인의 토굴을 향해 몰려들 것이 뻔한 일이었다. 시인은 그 농부가 우사에 소를 넣으려 하는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행정 당국을 상대로 ‘왜 마을 안에 축사를 짓도록 했는지’를 놓고 소를 제기하려고까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젊은 우사 주인은 시인의 처지를 생각해서인지, 자기네 집 옆 우사에 소를 넣어 키운다면 먼저 자기들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에서인지, 소를 키우고 싶어도 자금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인지, 좌우간 소를 넣어 키우지 않은 것이었으므로, 시인으로서는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시인의 마음을 깊이 읽어온 듯 우사 주인이 말했다. “오래 전부터 이 사람 저 사람이 제 우사를, 일 년에 200만원씩 세를 내고 사용하고 싶다는 것을, 여기 사시는 선생님 처지를 생각해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저께도 제 동생 친구가 와서 통사정을 했거든요. 그런데 마다했어요. 그냥 놔두니까, 동네 사람들이 저것을 자기네 창고처럼 사용하는 것도 속상하고 그래서, 이제 지은 지 10년이 지났으니까 군에서도 상관하지 않을 테고…만일 선생님께서 저것 철거하는 비용을 부담해주신다면 없애버리고 싶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진 시인은, 철거 비용이 기껏 100만원쯤일 거라는 생각으로 “고맙네. 그 비용 내가 부담해줌세.”하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찾아온 농부가 말했다. “폐기물 처리 회사에서 와보고 8t 트럭으로 13대쯤이 소요되겠다는데, 한 트럭에 25만원이랍니다. 모두 삼백 몇 십만 원은 되겠는데 300만원만 부담해주십시오.” 시인은 그 비용이 너무 많다 싶었지만 한 번 약속한 것이므로 그 돈을 선뜻 주었다. 시인의 아내는 시인의 말을 듣고 하늘을 향해 소처럼 웃더니,“당신이 결정한 일인데,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좌우간 그것 뜯어내면 시원하기는 할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한데 제 어미에게서 그 사연을 전해들은 아들이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왜 그러셔요? 한·미 에프티에이로 인해서, 이때껏 소를 키우던 사람들도 폐업하려고 꿈틀거리는 판국에, 대관절 어느 누가 새삼스럽게 그 우사를 비싼 세 주고 얻어서 소를 키우려 하겠습니까?!” 시인이 우사 주인에게 봉 노릇을 했다는 소문이 근동에 퍼진 어느 날 면장이 시인을 위로해 주려고 찾아왔다. 시인은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우사를 철거하고 나니까 시야가 트이고 시원해졌는데, 날마다 맛보는 그 시원한 맛이 어디 300만원어치만 되겠습니까?” 소설가 한승원
  • [단독]“카페냐고요? 병원이랍니다”

    [단독]“카페냐고요? 병원이랍니다”

    ‘병원이야, 카페야?’ 병·의원들이 성분명 처방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기존 병원의 틀을 깬 새로운 형태의 병원을 운영하는 한 젊은 의사의 조용한 실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앞에서 ‘제너럴 닥터’라는 내과를 운영하는 김승범(31) 원장이 그 주인공. 이색 카페가 즐비한 이곳에서 그는 카페 형태의 이색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오르간에 나무의자… 벽엔 메뉴판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2층 병원에 오르면 옛날 오르간과 나무 의자 등이 놓여 있고, 한쪽 벽에는 음료수 메뉴판이 걸려 있는 것이 영락없는 이색카페다. 김 원장은 물론 간호사 누구도 하얀 가운을 입지 않았다. 김 원장이 “여긴 카페가 아니라 병원”이라는 말에서 병원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김 원장이 2004년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5월1일 이 병원을 카페 형태로 개업한 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그는 5분 만에 끝나는 진료 형태를 거부하고 누구나 편하게 들러 쉬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 의사와 오래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병이 없어도 환자들이 카페처럼 들러 이야기하면 그것을 환자노트에 담는다.”면서 “이런 이야기 속에서 병을 예방하는 진짜 진단을 하고 치료를 권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일명 ‘느림의 진료’다. 또 다른 이유는 서울 시내의 내과 공동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내과는 수익성이 낮아 비싼 임대료를 내지 못해 주택가에만 자리 잡게 되었고, 결국 시내에는 의료 공백이 생긴 것이다. 그는 비싼 임대료에 의한 의료공백을 메울 묘안을 생각하다가 카페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자는 생각을 했다. 대신 환자들에게는 더 많은 시간을 쏟아 일명 ‘인간적인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넉 달째라 수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수익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김 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의원은 양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질적으로는 환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산골 등이 의료 사각지대였지만 지금은 기능적인 의료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시민들은 무언가 자신의 몸이 아프다고 느꼈을 때 특별한 병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병원을 찾지 않는다. 즉,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으로만 인식되고 시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병을 키우거나 저절로 병이 낫기도 한다. 환자들이 카페에 들르듯 쉽게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는 것이다. 그는 동네 병원이 병원의 벽을 허물고 오랜 상담을 하는 체계를 세워 이러한 기능적 의료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환자와 길게는 두시간 넘게 상담 따라서 그의 병원은 오전 10시30분부터 밤12시까지 불을 끄지 않으며 한 환자와 길게는 2시간 이상을 상담하기도 한다. 또 처음에는 둘째주, 넷째주 월요일에 쉬려고 했으나 환자들이 자꾸 찾아와서 그마저도 없앴다. 김 원장에 따르면 이번 추석이 맘먹고 처음으로 쉬는 날이다. 그는 “동네의료일수록 환자에게 개인화된 맞춤정보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감기도 사람마다 증상과 처방이 다 다른데 같은 약을 처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큰 병원이야 생명이 달린 병을 치료하느냐 여부가 관건이지만 병·의원은 치료뿐 아니라 예방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 그는 ‘환자는 고객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인사를 90도로 하는 서비스는 환자가 원하는 의료행위의 핵심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과도한 친절은 환자를 속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서 “속이 쓰려 내시경을 원하는 환자에게 돈을 더 받자고 친절한 말로 수면내시경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과음 등 환자의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잔소리를 해야 한다.”고 소견을 밝혔다. 결국 의료서비스가 아니라 신뢰를 쌓는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른 동네병원과 달리 간호조무사를 고용하지 않는다. 정규간호사를 고용해 자신은 큐어(치료)의 역할을 하고 간호사는 케어(관리)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김 원장은 “결국 의사와 약사 그리고 간호사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 환자가 쓸데없는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지 않게 된다.”고 밝혔다. ●‘느림의 진료´ 데이터 공개할 예정 김 원장은 느리고 인간적인 치료를 통한 환자들의 데이터를 10월까지 심포지엄을 열어 공개할 예정이다. 데이터는 환자들의 의사 권고에 대한 수용 행태가 매우 높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는 “환자들이 카페 인테리어에 한번 놀라고 의사선생님이 직접 커피를 서빙하고 상담을 하는 모습에 두번 놀란다.”면서 “의사가운을 벗으며 탈권위화로 신뢰가 사라질까 걱정했는데 환자들이 친근감에 더 많이 신뢰를 얻는다더라.”면서 멋쩍게 웃었다. 이어 “의학은 결국 인간을 위한 학문인데 요즘에는 의료만 있고 인간은 없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카페처럼 편하게 들르는 병원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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