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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상태·김대범 “개그맨 안됐다면 폐인이…”

    금방 ‘개그콘서트’ 리허설을 마치고 나온 개그맨 안상태(31)와 김대범(30)은 숨 돌릴 틈도 없어 보였다. 새 코너 ‘실미도 학원’으로 돌아온 이들은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코너 이야기뿐이었다. 무대에서는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두 사람이지만, 정작 무대 아래서는 낯설 정도로 진지함이 묻어났다. ‘진지하게’ 개그를 생각하는 두 사람은 2001년 전유성이 만든 극단에서 처음 만났다. 20대 초반에 만나 동고동락하며 개그맨의 꿈을 키운 두 사람은 이제 후배들의 ‘90도 인사’를 받을 정도로 성공했지만, 아직도 개그를 향한 욕심은 화수분과 같았다. 김대범이 없었다면 개그맨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안상태와 개그맨이 되지 않았다면 폐인이 됐을 것이라는 김대범, 두 사람의 우정과 개그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깜빡 홈쇼핑’으로 너무 뜬 상태 형을 질투하기도 했죠.” 13살 때부터 개그맨이 꿈이었다는 김대범이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안상태를 만난 것은 2001년. 개그맨이 되기 위해 ‘비법 노트’까지 만들어가며 꿈을 키운 김대범에게 안상태는 한낱 새내기일 뿐이었다. ‘한 수 가르쳐 주마’ 큰소리를 치려던 찰나, 김대범은 안상태의 내공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도 많이 서고 준비도 많이 했는데, 처음 시작하는 상태형은 너무 잘하는 거예요. 게다가 저는 비호감형인데 상태형은 호감형이어서 어딜 가나 사람들이 따랐죠. 결국 죽어라 연습한 끝에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상태형의 ‘깜빡 홈쇼핑’이 대박이 나면서 제 프로는 또 묻히고 말았어요.” 하지만 스스로를 몰아치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은 김대범은 결국 ‘마빡이’로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이제 두 사람 모두 대한민국 개그계를 대표하는 개그맨이 됐다. 김대범은 “당시에는 상태형에게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두 이해해요.”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대범이가 없었다면 개그맨이 되기 힘들었을 거예요.” 김대범의 말만 듣자니 ‘안상태는 천재 개그맨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에게도 나름 고충은 있었다. 부모님과도 대화를 잘 나누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을 고민하던 안상태는 군 입대 후 성격을 바꿔보리라 마음먹었다. “혼자 보초서면서 라디오 진행을 하기도 하고, 장기자랑 기회가 있을 때에는 제가 먼저 나서서 무대에 올라갔어요. 남 앞에 서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결국 극복한거죠. 제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개그맨이 되 보자’ 결심했어요.” 하지만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개그를 익힌 그에게 실전은 어렵기만 했다. 그때 안상태에게 ‘한 수’ 알려준 이가 바로 김대범이다. “당시 대범이는 노트까지 만들어가며 열심히 하는 노력파였어요. 개그를 배운 적도 없고 방법도 몰라서 고생하는 절 도와준 사람이 바로 대범이예요. 대범이가 없었다면 개그맨이 되기 힘들었을 거예요.” ◆개그맨이 되지 않았다면?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란에 ‘개그맨’이라고 적었다는 김대범은 한때 꿈을 포기하고 모 홈쇼핑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개그 욕심을 참지 못하고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다가 윗사람에게 꾸지람을 들은 뒤에는 ‘웃겨서 혼나는 곳에 있을 바에는 차라리 못 웃긴다고 혼내는 방송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단다. “개그맨 말고 다른 일은 적응을 못했을 것 같아요. 웃기고 싶은 마음도 참기 힘들었을 것 같고요. 개그맨이 안됐다면 ‘폐인’이 됐을 거예요.” 웃기지 못해 안달이던 김대범에 반해 내성적이던 안상태는 개그맨이 안됐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영문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 뜻을 따라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외모에서 오는 푸근한 느낌과 어울리는 소박한 대답을 내놨다. “취직해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아마 동네에 작은 전파사를 차려서 이웃들과 오순도순 지내고 있지 않을까요?” ◆“김대범은 소프트웨어, 안상태는 하드웨어” 두 사람이 함께 선보인 새 코너 ‘실미도 학원’은 다름 아닌 김대범의 아이디어다. 평소 주변에서 ‘아이디어 창고’라고 불리는 김대범은 기획에 뛰어난 재주가 있다. 이번 코너를 기획할 때에도 더욱 실감나는 캐릭터를 연구한 끝에 안상태를 섭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반해 안상태는 연기에 능한 개그맨이다. 평범한 캐릭터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실미도 학원’의 ‘안상태 훈련병’ 캐릭터도 감칠맛 나게 살렸고 그 결과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노력했어요. 상태형도 마찬가지로 연기연습을 너무 열심히 했죠. ‘실미도 학원’을 기획한건 저지만, 상태형이 연기를 너무 잘 해서 코너가 더 살아나는 것 같아요.”(대범) “대범이의 기획력은 놀라울 정도예요. 대범이가 소프트웨어라면, 전 그걸 연기로 표현하는 하드웨어인 셈이죠.”(상태) ◆“컬투 선배님들처럼 훌륭한 팀이 됐으면 좋겠어요.” ‘실미도 학원’을 힘 있게 이끌어가는 대장 역의 김대범과 어눌하고 느릿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웃음을 주는 안상태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개그 콤비다. 최근에 두 사람은 새 코너 외에도 홍대 앞 극단에서 여는 공연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두 사람의 꿈은 바로 컬투처럼 호흡이 잘 맞는 훌륭한 팀이 되는 것이다. “컬투 선배님들처럼 팀명도 짓고 활동도 같이하면서 더 큰 웃음을 드리고 싶어요. 저희를 믿고 공연도 보러 와주시고 ‘실미도 학원’도 많이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두 사람의 눈에서 또 다시 개그 욕심이 반짝였다. 글 /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실버세대 희망 Job기] (4) 풍물강사

    [실버세대 희망 Job기] (4) 풍물강사

    풍물은 추억이다. 5080 세대 누구나 시골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있다. 어린 시절 마을에 굿판이 벌어지면 온 동네가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마을 풍물패는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며 복을 빌었다. 하지만 그랬던 옛 추억도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급격한 산업·도시화로 마을 당산 어귀에서 울려퍼지던 풍악소리를 웬만해선 다시 듣기 힘들어졌다. 한때 꽹과리·장구·북 등을 꽤나 잘 다루던 어르신들의 명품 실력은 녹슬었고, 넉넉했던 마을 굿판은 점차 잊혀져 갔다. 하지만 최근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리와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각 지자체별로 풍물반을 운영하는 곳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 학교에서는 ‘방과후 학교’ 시간에 우리의 전통악기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이들을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풍물을 가르치는 풍물강사다. ●5080 풍물강사 이래서 좋다 한때 풍물로 날아다녔던 어르신들은 풍물전도사로서 제격이다. 풍물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야 깊은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5080 세대엔 요즘 젊은세대들에게 없는 전통음악에 대한 리듬감이 몸에 배어 있다. 올해로 29년째 방영되는 ‘전국노래자랑’을 보면 어르신들은 어떤 노래가 나와도 어깨춤을 들썩이며 논둑길을 밟듯 오금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한국 전통 춤이 절로 나온다. 댄스나 힙합 리듬에 익숙한 젊은세대들과는 다른 정서다. 가끔 도심에서 굿판이 벌어지면 어르신들이 발길을 멈추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전 마을 잔치 때 흥을 돋웠던 농악과 민요가 그들에게는 더 익숙한 탓이다. ●풍물강사 지원하려면 풍물강사는 주로 초등학교, 복지회관, 동사무소, 구청 등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자체적으로 모집한다. 풍물강사에 지원하려면 거주지역 인근의 학교나 복지단체, 지자체 등에 전화나 인터넷으로 풍물교실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지, 강사를 모집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에듀잡스(http://edujobs.kr/)에도 전국 학교의 풍물강사 모집공고가 게시된다. 강의 시간·횟수·급여·자격요건 등 선발조건은 각 단체마다 다르다. 대체로 하루 2시간, 평균 5만원 정도이며, 일주일에 1~2회 정도 한다. 특히 응시 자격요건이 문제가 되는데, 풍물 관련학과 전공자나 관련 자격증 소지자를 요구할 때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현재 경기 안양시 안양나눔여성회에서는 50세 이상을 위해 풍물을 가르쳐 줄 풍물강사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 반면, 서울 중랑구 시립망우청소년수련관에서는 나이제한은 없었지만, 풍물 관련학과 전공자나 자격증 소지자를 지난달 선발했다. ●실력이 녹슬었다면… 한때 풍물을 쳤지만 실력에 녹이 슬었다면 다시 풍물을 배워야 한다. 풍물을 배우려면 각 지방 본 고장에 있는 전수관에 찾아가면 된다. 농악으로 유명한 임실필봉, 진주·삼천포, 익산, 고창, 평택, 강릉 등 각 지역에 농악 보존회가 있다. 특히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는 200여명이 숙식을 하며 풍물을 배울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학교(063-643-1902)’가 있다. 연간 2000여명의 전수생들을 배출하는 이곳에서는 임실필봉농악을 이수한 조교들로부터 제대로된 풍물을 배울 수 있다. 또 여기서는 풍물뿐만 아니라 민요, 탈만들기, 전통놀이 등 각종 전통문화도 함께 배울 수 있어서 좋다. 가까운 곳을 찾는다면 지역 사회 풍물패에 가입하면 된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에 위치한 임실필봉농악 서울전수관(070-7555-2990)에서는 일주일 내내 풍물 강습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풍물을 배울 수 있다.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나 풍물강사는 방과후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초등학생과 복지회관 노인들을 주로 가르친다. 여성단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주부 풍물단을 가르치기도 한다. 풍물강사는 꽹과리·장구·북·징 등 전통 타악기뿐만 아니라 민요나 판소리도 가르친다. 우리 소리와 우리 장단은 하나로 엮어지기 때문에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며 손으로 악기를 치는 일은 자연스럽다. 또 풍물강사는 구연가처럼 옛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기도 한다. 강습시간 동안 쉼 없이 악기만 치면 누구나 팔이 아프다. 이럴 때 잠깐 휴식시간을 가지며 재미나는 이야기를 해주면 배우는 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 이처럼 풍물강사는 만능 엔터테이너, 우리말로 ‘꾼’이 돼야 한다. 양진성(44) 임실필봉농악 보존회장은 “풍물은 사람끼리 푸진 마음을 나누며 소통하는 것”이라면서 “풍물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명감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우리 소중한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만큼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염(68) 진주삼천포농악 보존회장은 “현재 학교에서 일하는 풍물강사의 처우는 열악한 실정”이라면서 “학교와 지자체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풍물강사 이것만은 갖춰야 모든 세대 아우르는 배려심 기본… 아이들 향한 애정도 풍물강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습 받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교수법도 달리해야 한다. 먼저 초등학생들은 흥미 위주로 풍물을 가르쳐야 한다. 적어도 4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풍물에 대한 흥미부터 북돋워야 한다. 초등학생들이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악기를 다루기에 적합한 신체 조건이 갖춰져 기술적인 측면의 강습 비중을 늘려나갈 수 있다. 복지회관에서 노인을 상대로 강습을 하다 보면 “가르치는 것이 틀렸다.”며 태클이 자주 들어온다. 그러면 “예전에는 그렇게 쳤지만 요즘은 이렇게 치니 따라해라.”라고 설득을 해도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에는 풍물 가락의 원형과 최신 트렌드 양쪽 모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가르치는 내용에 강사가 정통하지 않아 확신하지 못하고 애매한 자세를 취하면 가르치기 힘들다. 강습을 받는 노인들 중에도 한때 풍물로 이름을 날렸던 고수가 널렸을지 모른다. 한재훈(36) 임실필봉농악 서울전수관 관장은 “50대 이상이 풍물강사를 하면 아이들과는 40년 터울의 세대차이가 난다는 점이, 어르신들과는 연배 차이가 덜 나는 점이 문제”라면서 “풍물강사는 출중한 풍물 실력도 중요하지만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배려심과 넉넉한 이해심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풍물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함께 하는 전통놀이다. 때문에 풍물강사는 개인의 악기 실력만 신장시켜 주는 역할만 하지 않는다. 김정오(35) 열린문화터 대표는 “악기를 잘 가르쳐 대회나 행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풍물을 통해 공동체의식과 구성원 간의 배려심을 키워주는 게 풍물강사의 첫번째 임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학교에서 하는 풍물 강습이 ‘수업을 위한 풍물’이 아닌 ‘풍물을 위한 수업’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에서 7년 동안 풍물반을 운영해 온 화성 수영초등학교 최정은(42·여) 선생님도 “풍물강사는 악기 다루는 솜씨뿐 아니라 공동체의식, 어울림 등과 같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풍물강사로 활동하기 힘들다.”고 조언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풍물강사에게 듣는다 “잊혀지는 게 안타까워 가르치기 시작했죠” 경남 함양에 사는 하병민(55)씨는 20년 전 서울에서 함양으로 귀향했다. 풍물과 한국 전통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하씨는 귀향할 때 마을 풍물놀이, 달집태우기와 같은 어린 시절 전통놀이를 떠올리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와 보니 생동감 넘쳤던 옛 마을은 온데간데없었다. 절반에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갔고, 마을굿은 이미 맥이 끊어진 상태였다. 하씨는 “다시 풍물소리가 울리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풍물을 배우고자 하는 주부들과 직장인들을 모아 패를 만들었고 그들에게 무료로 풍물을 가르쳤다. 하씨는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굿을 칠 사람이 필요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씨의 풍물패는 어느덧 실력을 갖춰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지신밟기, 축하공연 등을 통해 마을굿을 부활시켰다. 함양군 내 여러 학교에서도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씨는 여러 학교와 지역단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지역 내 스타 풍물강사가 됐다. 그는 지금도 시간날 때마다 각 지방 농악을 가르치는 전수관을 찾아 풍물을 배워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씨는 “풍물은 협동심, 단결심을 기르는 데 탁월한 교육 효과가 있고 푸진 삶을 살고 싶은 내 인생철학과도 맞닿아 있다.”면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우리 풍물을 되살리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경남 남해 성명초등학교에서 풍물강사로 일하고 있는 이나경(50·여)씨는 농사를 짓던 지역주민이었다. 나이 마흔에 접어들어 풍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이씨는 현재 남해 화전농악 이수자로서 방과후 학교 시간에 초등학생들에게 풍물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우리 전통음악이 지역에서조차 잊혀지는 게 안타까워 풍물강사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의 지도로 성명초등학교 풍물패는 지난해 제3회 교육감배 초등학생 풍물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풍물강사로 활동하고 싶지만 자리가 마땅치 않은 분들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는 그는 “우리 전통 음악의 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연륜 있는 어르신 풍물강사들이 더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영준 이민영기자 apple@seoul.co.kr
  • “어린아이 안전하게 돌봐드려요”

    “어린아이 안전하게 돌봐드려요”

    강동구 상일동에 사는 주부 박정희(53)씨는 요즘 손자뻘 되는 어린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르면 손자를 둘 나이인 박씨의 호칭은 ‘아이돌보미’. 매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웃 동네에서 13개월된 남아를 돌봐주고 있다. 중학교 교사인 아이의 엄마는 외국연수를 나갔고, 아이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상태다. 아이의 할머니는 박씨가 올 때마다 바깥 바람을 쐬곤 한다. 박씨는 “집에서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 사회활동을 통해 보람을 얻는다.”면서 “보수가 적으나마 가계에 도움이 되고 내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아쉬운 점을 밖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월 80시간 연 960시간 이용 가능 복지·교육도시를 지향하는 강동구가 아이돌보미 지원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사업은 저출산 문제를 덜 수 있는 대안 사업으로 여겨진다. 구는 2일 아이돌보미 사업의 성공사례를 소개했다. 다른 24곳 자치구가 사회법인 등에 돌보미 사업을 위탁한 반면 강동구는 직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서비스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구가 아이돌보미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출장·질병·야근 등으로 일시적 돌보미가 필요한 가정에 우선 배치했다. 이용 시간은 주말과 공휴일을 포함해 월 80시간, 연 960시간 이내. 육아경력이 풍부한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돌보미를 선발해 각 가정에서 안전하게 식사와 간식주기, 놀이활동 등을 펼치도록 했다. 신진영(26·강동구 고덕동)씨는 “그동안 3명의 돌보미 선생님을 경험했는데 모두 만족했다.”면서 “사설 돌보미 업체는 출장비도 비싸고 개인 사정과 상관 없이 일정기간 사람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신씨는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맡겨둔 채 1주일에 두 차례씩 대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아이돌보미 서비스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비용부담이 적은 것이 특징. 가구 소득수준에 따라 가~다형으로 나뉘는데 돌보미의 도움을 1시간 받을 경우 가형 가구는 1000원, 나형은 4000원, 다형은 5000원만 부담하면 된다. 다형을 제외한 가, 나형 가구에는 구 보조금이 지원된다. ●질 높은 서비스의 비결은 직영 강동구에서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수는 3977명. 올해는 5월 말까지 1688명이 태어났다. 인구 47만여명의 도시이지만 지난해 수준을 유지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해식 구청장은 결국 질 높은 육아도우미를 내세워 출산율을 끌어올리기로 결심했다. 박현숙 저출산대책팀장은 “최근 아이돌보미를 추가로 뽑는 데 59명이 지원해 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며 “50시간 교육 후 다시 현장실습이 진행된다.”고 전했다.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보미는 모두 27명으로 도우미들은 구로부터 월 60만~70만원의 보수를 받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주택담보대출 일괄규제 서민만 피해”

    “주택담보대출 일괄규제 서민만 피해”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구두(口頭) 개입’이 연일 강도를 높이면서 은행권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문제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불만이다. 특히 현 시점에서 규제는 서민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은행들은 우선 주택시장에 가수요(투기)가 끼어 있다는 정부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 팀장은 “대출 수요 가운데 대부분이 실수요자라는 점에서 주택담보대출이 투기의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과열이라는 곳도 소수 물량이 호가를 올리는 상황이어서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를 반전시키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홍석영 신한은행 개인금융부 부부장도 “현장(은행창구)에서는 여전히 대출자가 크게 늘지도 않고, 증가한다고 해도 그 원인이 가수요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장 직원들도 비슷한 목소리다. 한 시중은행 강남지역 PB센터장은 “수십억원씩 실탄을 재워둔 선수급 부동산 투자자들도 투자를 꺼리는 판에 숫자상 대출이 늘었다고 이를 모두 가수요로 보는 것은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대출총량제 등 일률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줄인다면 오히려 서민만 피해를 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집값이 오른 곳은 버블세븐 지역 등 일부에 불과한데, 부자동네의 현상만 보고 전체 대출을 줄이면 선의의 피해자만 늘어날 것이란 논리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 팀장은 “강남에는 굳이 대출에 기대지 않아도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많겠지만 다른 동네에선 주택담보대출은 내 집 마련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면서 “자칫 부자동네에서 생긴 일부 부작용에 서민들만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에 제동을 걸 채비를 하고 있는 이유는 있다. 최근 대출 신장세가 심상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월 평균 증가액은 2007년 6월 이후 지난해 12월 말까지 1년 8개월 동안 1조 2574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1~5월에는 2조 2409억원으로 확대됐다. 자칫 이대로 놔뒀다간 가계 부실로 이어질 수 있으니 선제적 조치를 취하자는 것이다. 전국의 집값은 지난 4월 이후 3개월 연속 오름세다. 1일 국민은행의 ‘6월 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집값은 5월에 비해 평균 0.2% 올랐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현 상황은 집값 급등 우려로 너도나도 대출해 집을 사려고 덤비던 2~3년전과는 전혀 다르다.”면서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이유는 오히려 소득이 줄어든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들이 집을 담보로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유동성이 풍부하다 보니 물가가 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부가 출구전략을 논의하는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물가가 뛴다고 보기도 어렵고 일부지역에서 집값이 오르는 현상을 물가 상승으로 인식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출이 줄자 주택담보대출로 수요가 몰렸다는 분석도 있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금융위기가 결국 자산버블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정부의 선제적인 조치는 큰 틀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수도권 안에서도 주택경기의 편차가 심한 만큼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차별성 있는 규제가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유영규 최재헌기자 whoami@seoul.co.kr
  • 입주 시작했지만 갈길 먼 교하신도시

    입주 시작했지만 갈길 먼 교하신도시

    경기 북부 최대 택지개발지구인 파주 교하신도시 입주가 30일 시작됐다. 개발 면적이 일산신도시를 능가하는 거대 도시여서 일찌감치 수도권 주민들의 관심을 끌던 곳이다. 그러나 우려한 대로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군시설이 예정대로 이전하지 못하는 등 입주 여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당분간 입주민들의 큰 불편이 예상된다. ●말로만 ‘첫 유비쿼터스 정보도시’ 이날 오전 교하신도시 운정 1·2지구. 첫 입주 테이프를 끊은 일신건영 휴먼빌 아파트 1123가구의 입주가 시작됐다. 그러나 바로 인근에서는 여전히 건설중장비들이 굉음을 내고 있다. 도로에는 차선이 그려지지 않았고, 중앙분리대조차 없는 차도에는 여전히 ‘공사 중’이라는 표시가 있다. 버스정류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연말까지 총 5623가구가 입주할 계획이지만, 초등학교는 내년에야 4곳이 문을 연다. 따라서 올해 입주민들은 어린 자녀들을 이웃 단지인 자유로 현대 아파트 안의 와석초등학교까지 통학시켜야 할 처지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지만, 4개 초등학교의 몫까지 부담해야 하는 만큼 입주자가 몰리면 3교대 수업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중학교는 예정대로 9월에 개교하지만 고등학교는 2011년에 문을 연다. 정부는 교하신도시가 ‘치안, 응급구호, 환경, 지역교통, 생활정보 인프라를 구축한 대한민국 첫번째 유비쿼터스 정보도시’라고 공언했으나, 그런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교통망·군부대 이전 등 난제 산적 경의선 복선전철 성산~문산 구간이 1일 개통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광역교통 이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동산중개업자들은 “사업 시행자측이 9월 전까지는 모든 도로를 정비해 주겠다고 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경의선 복선 전철이 개통된다고 해도 걸어서 이용하기는 너무 멀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상암과 교하신도시를 잇는 제2자유로(22.7㎞) 건설은 소송으로 지연돼 내년 6월 고양 강매IC까지 19.7㎞만 우선 개통된다. 교하신도시와 자유로를 잇는 김포~관산 7.5㎞ 확장공사도 늦어져 왕복 6∼8차로 가운데 2∼4차로만 9월에 부분 개통된다. 또 교하신도시와 지방도 359호선을 잇는 우회도로(7.2㎞·4∼6차로) 개설공사와 금촌과 교하신도시간 지방도 359호선 확장공사(3.7㎞·6∼8차로)는 5월에 시작돼 2011년 완공된다. 교하신도시 한복판인 운정 1·2지구에는 아직도 군 포대진지(6만 1000여㎡)가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다. 파주시는 군에 신도시 외곽으로 이전을 요청했지만 “작전상 신도시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 공사가 완료되는 2014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주민 불편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주시나 대한주택공사를 다그쳐도 뾰족한 대답을 듣기 어렵다. 입주민들이 참고 지내는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것이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두달 전 부산의 결혼이주여성 12명이 함께 문을 연 다문화 카페 ‘휴’. 앤티루는 이곳에서 제일 애교 많고 싹싹한 막내이자, 베트남 홍보대사다.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응원 속에 하루하루 자신감을 되찾아 가는 앤티루. 고마운 가족들에게 한국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크게 한턱 쏜다. ●1 대 100(KBS2 오후 9시) 특집 ‘최후의 아내’편에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팀 중 김국진이 1인으로 먼저 도전하며, 그 다음 주에는 나머지 멤버인 이경규, 김태원, 이정진, 윤형빈, 이윤석, 김성민이 100인으로 도전한다. ‘최후의 아내’편의 100인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퀴즈의 여왕을 꿈꾸는 주부들이 도전한다.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미선과의 이별후 잠적해 버린 종신. 온 동네 사람들이 종신을 찾아 나선다. 종신의 엄마는 경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종신을 찾는 한편 자신에게까지 지극정성인 미선에게 마음을 점차 열게 된다. 한편 종신이 호텔룸에 숨어 지내는 걸 알게 된 연습생들은 종신에게 가수 데뷔를 시켜 달라며 조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25분) 3남매 중 첫째.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누구도 맏이로 보지 않는다. 무조건 “난 못해!”를 외치며 엄마부터 찾는다. 뭐든 내 요구대로, 내 마음대로인 아이. 그것도 모자라 수틀리면 울고, 소리 지르다 집어 던지고, 때린다. 더 심하게 하겠다며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 6살 승완이를 만나 본다. ●공부의 달인(EBS 오후 10시40분) 전교 최상위권의 성적을 가지고 있던 신영하 군. 어느 날 영하에게 사춘기가 찾아 왔다. 어머니의 간섭, 공부 대신 만화책에 빠져 있던 영하군과 어머니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벗어나 자신의 꿈을 찾은 신영하 군은 어떻게 공부의 달인이 될 수 있었을까.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0분)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온난화. 지구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전 세계 빙하가 급속하게 녹고 있는데 이는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져 섬이나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극빈국가들이다. 이들을 위한 특별한 지원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 우정본부 업무, 체신청 등에 대폭 위임

    6급 이하 동네 우체국의 신설·폐지와 우편 취급국 설치·운영 권한이 체신청에 위임된다. 또 출장소와 임시 우체국 설치도 현지 실정을 잘 아는 체신청에서 결정한다.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는 7월1일부터 본부에서 맡고 있던 501개 단위 업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30개를 직할관서나 체신청에 위임한다고 29일 밝혔다. 위임 업무는 경영기획실 45개, 우편사업단 43개, 예금사업단 22개, 보험사업단 16개, 감사팀 1개, 총무팀 3개 등이다.  체신청내 4급 팀장 내부 전보 인사권, 총괄우체국 관서급 조정, 6급 이하 계약직 공무원 채용 연장, 택배 영업점 설치운영, 신서독점권 위반업체 적발 및 법적조치 등의 업무도 직할관서와 체신청에 위임된다.  우정본부는 그동안 부족한 인력에도 집행·단순관리 성격의 업무를 수행해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권한 위임으로 업무량이 줄어들게 돼 저탄소 녹색성장 등 지속가능경영 업무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직할관서와 체신청도 지역특성에 적합한 우정사업을 소신있게 펼치는 등 과감한 책임경영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나쁜 엄마의 아들/박상규

    [엄마와 읽는 동화] 나쁜 엄마의 아들/박상규

    산골 조그만 동네에 남자 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이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 아이는 젊은이의 아들 영진입니다. 이 젊은이는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사뭇 고개를 숙이고 동네 사람들의 얼굴 보기를 꺼려했습니다.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은 젊은이를 보고 모여들었습니다. 아이들 중에는 영진이와 또래인 지한이도 있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그 젊은이를 보고 많은 말을 했습니다. 지한이는 관심을 가지고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습니다. “무슨 염치로 이 동네에 발을 들여놓은 거야?” “사업한다고 저희 부모 등골 빠지게 벌어 장만한 땅 다 팔아다가 없애 버리고 뭘 또 부탁하려고 여기를 온 거야.” “그야 빤하지 뭐. 다방 마담하고 낳은 아이를 길러 달라고 왔겠지.” “하여튼 그 어르신들 자식 잘 못 둬서 늦게까지 고생하는 것 보면 안타까워요.” “젊은이가 예쁜 여자 얼굴에 반해서 저희 부모 땅 팔아 시내에 다방을 차려서 몇 년 동안 살림 한답시고 흥청망청 살다 아주 망해 버렸으니 이제 어찌할 거야?” “그 다방 마담은 돈 다 날려 먹고는 남편과 아들까지 버리고 어디로 도망을 가고 말았대.” “그 여자 참 나쁜 엄마네요.” “젊은이 앞길 망친 것도 모자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가슴에 못 박아놓고, 자기만 편하려고 떠난 그런 여자는 정말 나쁜 엄마가 분명하지.” 아들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난 할아버지는 곁에 보이는 나무 몽둥이를 집어 들고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늙은 부모를 본 젊은이는 고개를 더욱 숙인 채 벌벌 떨었습니다. “이 놈의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났어? 당장 돌아가.” “아버지,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난 네 놈을 용서 못한다. 지금 당장 되돌아가지 않으면 이 몽둥이로 다리를 부러뜨리겠다.” 할아버지는 들고 있던 몽둥이를 쳐들어 아들을 치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젊은이가 데리고 온 영진은 할아버지의 다리를 꼭 잡고 말했습니다. 화가 잔뜩 난 할아버지도 손자가 빌며 애원하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넌 내 아들이 아니다, 어서 내 눈 앞에서 없어져버려.” “네 아버지 저는 갈 테니 아들 영진이나 좀 맡아주세요.” “……” “영진이 여기 학교로 전학 시켜서 잘 좀 가르쳐 주세요.” “……” 할아버지는 아들은 미웠지만 손자를 맡아서 키워주고 가르쳐 달라는 부탁은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영진아……” 할아버지는 들었던 몽둥이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손자 영진을 두 손으로 와락 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안돼 보였습니다. 여태까지 젊은이를 흉보던 동네 사람도 할아버지의 우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영진이 아버지는 슬금슬금 도망가듯 동네를 빠져 나갔습니다. “자식 잘못 둬서 미안합니다. 앞으로 불쌍한 우리 손자 영진이를 잘 감싸 안아 주세요.” 영진이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지한이에게도 한 마디 했습니다. “지한아, 앞으로 우리 영진이와 친하게 잘 지내줘.” “……” “우리 영진이도 지한이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할 거야. 아이들한테 우리 영진이 아빠 엄마 얘긴 하지 마라. 특히 영진이 엄마가 다방 마담이었다는 것은 아이들이나 선생님한테 말하면 안 돼. 절대 비밀로 해줘.” “……” “이런 얘기를 다른 사람들이 알면 영진이가 기가 꺾이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손자를 깔볼 거거든. 그래서 지한이한테 비밀을 지켜 달라는 거야 알았지?” “……” 지한이는 무엇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영진 할아버지가 부탁하는 말에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한은 영진이가 지한이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고, 얼굴도 더 잘생긴 것 같아 모든 면에서 밀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할아버지는 영진이를 고개 너머에 있는 학교에 전학을 시켰습니다. 영진이는 지한이와 한 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전학을 온 영진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친해지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영진이는 아빠 엄마와 관련된 비밀이 알려지는 게 싫어서 아이들 곁으로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전학 온 영진이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선생님 체육해요.” “체육은 왜?” “새로 전학 온 영진이가 얼마나 센지 알아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졸라서 선생님도 아이들을 씨름장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씨름장에 반 아이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았습니다. 보통 때처럼 씨름은 작은 아이들부터 붙었습니다. 이기는 아이에게 다음 아이가 계속 맞붙어 마지막에 남은 아이를 가려서 챔피언 인정해 주는 것이 이 반의 전통입니다. 영진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영진은 여러 아이들을 힘도 안 들이고 모두 쓰러뜨렸습니다. 아이들은 영진의 씨름 실력에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씨름 실력이 제일 좋은 지한이가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기면 챔피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씨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응원 소리가 커졌습니다. “지한이 이겨라.” “영진이 이겨라.” 두 편으로 갈려서 하는 응원전은 뜨겁고, 신났습니다. 드디어 영진과 지한이가 씨름을 하기 위해 서로의 허리를 붙잡고 앉았습니다. “너 나 이기면 안 돼” “왜?” “네가 나를 이기면 너의 비밀을 다 얘기할 거야. 알았지?” “……” 지한이는 작은 소리로 영진에게 말했습니다. 위협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영진은 그 소리를 듣고 힘이 빠졌습니다. 생각하니 화가 났습니다. 실력이 비슷한 지한이와 영진은 있는 힘을 다해 이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구경하는 아이들은 손에 땀을 쥐고 씨름을 지켜보았습니다. 영진은 배지기 수를 넣어 지한이를 멋지게 쓰러트렸습니다. 모래밭에 얼굴을 처박고 엎어진 지한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선생님 한 번만 더 하게 해 주세요.” “영진이도 괜찮겠지?” “네. 좋아요.” “그럼 3판 2승으로 우리 반 챔피언을 결정하겠다.” 영진과 지한이의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이번에 네가 안 져주면 여기서 넌 나쁜 엄마 아들이란 비밀을 애들한테 말해 버릴 거야.” “……” 지한이가 또 한 번의 경고를 했지만 영진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진이 이겨라.” “지한이 이겨라.” 아이들의 응원 열기는 점점 뜨거워 갔습니다. 지한이는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영진은 지한의 발을 걸고 몸을 들어 한 바퀴 빙 돌린 뒤 모래판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지한은 아까보다 더 형편없이 지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이 영진이의 손을 번쩍 들어 승리를 알렸습니다. “야, 영진이가 이겼다.” “영진이가 챔피언이다.” 모래밭에 내동댕이쳐진 지한은 반 아이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영진에 대한 분함이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영진이는 나쁜 엄마의 아들이다.” 지한은 큰 소리로 아이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영진이 엄마는 다방 마담이고, 영진이 아버지를 망하게 한 사람이래.” 선생님과 아이들은 지한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지한이를 보고 “그런 소리 하면 안 돼.” 이렇게 말하고는 영진이를 돌아보며, “지한이가 말한 것이 정말이라도 괜찮아. 용기를 가지고 살아.”하며 위로해 줬습니다. 영진은 아픈 상처를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영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영진아, 힘내라.” “영진아, 괜찮아 영진이는 할 수 있어. 영진이는 우리 반 챔피언이다.” “지한은 비겁해.” “지한이는 그런 짓 다신 하지 마.” 아이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외쳤습니다. 영진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 팔로 눈물을 닦으며 허리를 굽혀 꾸벅 절을 했습니다. ●작가의 말 우리 둘레에는 부모님의 헤어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서 크는 어린이가 참 많습니다. 이런 어린이들은 삶의 용기와 희망을 잃고, 외롭고 우울합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하고, 또 함께하는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 어울림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까이에도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가진 친구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는 내가 됩시다. ●약력 박상규는 1937년 충북 제천시 한수에서 태어나고 충주에서 공부하고 자람. 198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됨. ‘고향을 지키는 아이들’ ‘참나무 선생님’ 등 20 여권의 동화집을 냄.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 작품이 실려 있음. 초등학교 교사로 42년간 어린이를 가르치고 퇴직해서 지금은 충주에서 동화를 쓰며 살고 있음. 현재 한국어린이문학 협의회장으로 계간 ‘어린이 문학’이란 잡지를 발행하고 있음.
  • 포도밭 그 사나이 이번엔 ‘엄친아’로

    포도밭 그 사나이 이번엔 ‘엄친아’로

    “새 드라마 목표는 9시뉴스 전에 전국 모든 시청자들을 티비 앞에 앉아 있게 하는 겁니다.”(웃음)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 ‘왕과 나’, 영화 ‘우리 동네’에서 뮤지컬 ‘드림걸즈’까지, 배우 오만석(34)의 바쁜 행보는 올해도 계속 된다. 이번에는 KBS 새 일일드라마 ‘다함께 차차차’에서 여인들만 가득한 집안의 ‘엄친아’가 돼 돌아왔다. ‘다함께’(극본 유윤경·김정은, 연출 김성근·김영균)는 사고로 한날 한시에 남편을 잃은 동서지간을 중심으로 진정한 가족애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작품. 거기에 다양한 코믹요소를 결부시킨 경쾌한 분위기로 ‘밝고 건강한 드라마’를 지향한다. 여기에서 오만석은 제과회사 마케팅팀 말단 사원이자, 할머니, 어머니, 숙모, 또 여동생 등 여인만 가득한 집의 장남 ‘한진우’ 역을 맡았다. “집안의 보디가드”라는 소개처럼 25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만난 그는 힘과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한진우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잘 커온 청년이에요. 집안의 유일한 남자로 가족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고, 받은 만큼 사랑을 돌려주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지요. 그렇다고 모든 걸 잘하는 건 아니고요.” ‘엄친아’라는 말이 쑥스러운 듯 그는 “요령 안 피우고 건실히 사는 청년”이라고 자신이 맡은 배역을 설명하며 웃는다. 그러면서 “원래 말수가 적었는데 여자들 사이에만 있다보니 그새 수다가 많이 늘었다.”고 촬영과정의 애환(?)을 전했다. 드라마 주제인 가족애란 그에게 뭘까. “가족은 내가 노력하고 안하고, 또 선택하고 안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죠. 눈에 안 보이면 생각나고, 내가 밥을 먹을 때면 밥을 먹었나 궁금해지는, 그런 관심이 바로 가족애인 것 같습니다.” 촬영은 이제 고작 2주가 지났지만 오만석은 “같이 하는 배우들도 벌써 가족같다.”고 말한다. 인공적인 가족이지만 “드라마가 끝날 즈음이면 천운으로 맺어진 가족애를 느낄 것”이라며 웃는다. 극중 러브라인인 배우 조안을 두고도 “실제 사생활로 보면 임자(조안의 실제 연인 배우 박용우)가 있는 사람이지만, 극중에서는 참 마음에 든다.”고 재치있는 대답을 한다. 그는 “시절이 하수상한 때에 모두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드라마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새로운 출발에 대한 각오를 힘차게 전했다. 29일 오후 8시25분 첫방송하는 ‘다함께’는 ‘쌍과부’ 심해진과 박해미를 비롯, 최주봉, 이종원, 이종수, 박한별, 이청아, 조안 등이 출연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거리낌 없이 전하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

    ‘(추풍령 감자탕이) 지금처럼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아니라 욕망이나 욕정을 잠재우는 음식이었다고 하면 점주는 내 말을 믿어주기나 할까.’(‘추풍령’ 중에서) 소설가 이현수의 상상력은 참으로 능청스럽다. 1991년 이후 20년 가까운 문단생활에 고작 장편 둘에 소설집 하나를 남긴 더딘 걸음이지만, 이런 천연덕스러운 발자국을 남기려고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나 싶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장미나무 식기장’(문학동네 펴냄)의 수록작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전하는 힘이 있다. 각 작품들을 은근하게 서로 연결하는 주제나 상황 설정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칫 무거워질 이야기들을 처지지 않도록 당겨주는 재치있는 문체가 그렇다. 과부로 가득한 종가댁 이야기 ‘추풍령’이나 무능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사업수완 좋은 어머니를 다룬 표제작 ‘장미나무 식기장’ 등 수록작들은 끊임없이 남성 부재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어머니 상을 제시한다. 그 상황에서 어머니들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들은 ‘서방 잡아 먹은 년’이자 ‘벌떡증’(일종의 화병) 걸린 사람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비애를 능청스러운 긴 호흡의 문장으로 적절히 감춰버린다. 예를 들면 “머릿수건이나 머플러를 두른 여자를 본 적은 있어도 이슬람교도처럼 머리에 터번을 쓴 여자는 처음 봤고, 담요나 요가 깔린 바닥은 본 적 있어도 사람이 다니는 곳에 깔린 서양 카펫은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 보고 또 그걸 직접 밟아 폭신한 촉감까지 즐기던 중이었으니 무슨 정신이 있었겠는가”와 같이 덤덤한 표정으로 던지는 수준급 유머와 같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이현수의 작품은 초인의 윤리와 세속의 절망 사이에서 서성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품의 해설을 달았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문학계간지에 발표한 작품을 모았다는 작가는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은 오랫동안 곁에 두어 눈독이 새파랗게 올랐다.”면서 “작품을 넣을까 뺄까, 목차는 어떻게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책이 나오는 데 뭐하나 쉬운 게 없었으니 책값 비싸다고 하지 마시라.”고 장난스레 덧붙였다. 1만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탈북자·이주노동자의 삶 훈훈한 시어로 품다

    탈북자·이주노동자의 삶 훈훈한 시어로 품다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접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박해받는 선량한 이들이기에 연민의 시선으로 무조건 감싸줘야 할 대상인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벌레 대하듯 외면받거나 2등 시민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고정되고 박제화된 이미지다. 필리핀 베트남 몽골 파키스탄 미얀마 등 출신 국가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다투고 화해하고, 토라지고 즐거워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지만 실상은 그렇다. 만34년의 시력(詩歷)으로 어느덧 중견시인을 넘어 원로에 가깝게 된 하종오(55)가 나서 이들의 삶을 눈살 찌푸리며 멀리 밀어낼 이유도 없고, 당위성과 대의명분 아래 애써 끌어당겨 연대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새삼 확인시켰다. 그가 펴낸 열 일곱 번째 새 시집 ‘입국자들’(산지니 펴냄)에 등장하는 탈북자, 이주노동자, 이주민들의 삶은 핍진함 그 자체다. 그는 “시인으로서 모든 감정과 수식어를 배제했다.”고 강조했지만, 문학적 전형성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면서도 오히려 훈훈함으로 가득차 입가에 미소짓게 만든다. 시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피부 색깔과 성별, 세대 등을 모두 뛰어넘어 같은 계급으로서 연대하고, 노동현장에서 입은 장애로서 공감하고(‘장애’), 아버지의 자식, 자식의 아버지로서 함께 뛰놀곤 한다(‘밴드와 막춤’). 시인은 굳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시인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아시아 공동체’가 절로 그려진다. ‘…한국인 철진 씨도/ 인도네시아인 하디링랏 씨도/ 언제 잘릴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쉴 때는 옆에 주저앉고/ 일할 때는 물건을 맞잡고 옮긴다.(‘비정규직’ 중 일부)’ 또 ‘연인’을 보면 ‘파키스탄인 자밀씨’와 ‘한국인 정숙씨’는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둘 다 공장 노동자’이고 ‘서로의 마음이 몸을 끌어당긴다’는 이유로 사랑을 이뤄낸다. 1980~90년대 민중시와 통일시를 주로 쓰던 그가 이주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평범한 관찰이었다. 1991년 강화도의 허름한 농가에 작업실을 마련한 시인은 살고 있는 서울 변두리 집(면목동)과 김포를 오가는 길에 ‘저 들판에 왜 저리 많은 외국인들이 있을까.’라는 첫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이후 여러 경로로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국경 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등 여러 시집을 지속적으로 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주노동자 단체나 모임 행사 등은 일부러 피했다.”면서 “동네 변두리 목욕탕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얘기 나누다 보면 그 삶을 충분히 접하게 된다.”고 말했다. ‘입국자들’을 펴낸 출판사는 부산에 있는 산지니다. 시인은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면서도 일부러 서울이 아닌, 지방의 출판사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지방의 문화와 정서 등을 배경삼아 시나 소설 쓰는 문인들이 지방 문화의 활성화를 강조하곤 하면서 정작 이들도 자신의 책을 낼 때는 서울로 올라가기 일쑤다.”면서 “문인이라면 거대 출판사의 명성에 기대고픈 욕망을 버리고 좋은 시, 좋은 소설로 승부하려는 마음에서 출발 해야 한다.”고 힘줘 얘기했다. 시인은 그랬다. 글과 말이, 그리고 사람이 서로 다른 경우가 허다한 세상에서 주변부 삶을 살면서 주변인에 대한 지속적 관심, 게다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사소한 부분까지 살뜰하게 챙겨내고 있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이탈리안 레스토랑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

    이탈리안 레스토랑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

    정통 피자맛은 어떤 것일까. 피자와 스파게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이 음식들은 이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하나 더 문을 연다는 소식 또한 특별한 뉴스거리가 될 턱도 없다. 그래도 좀더 정통의 맛과 느낌을 준다면 생각은 달라질 수도 있겠다. 닳고 닳은 아이템의 매력을 되살리는 방법은 흔히 두 가지다. 정통으로 돌아가거나 퓨전으로 재창조하거나.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는 ‘정통’을 지향하며 문을 연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세련된 외관과 분위기로 이름 난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서울 강남 도산공원 옆에 위치해 있다. 동네 어딜 가도 피자 가게 하나 없는 곳이 없고 집에서도 스파게티쯤이야 라면 끓여 먹듯 하는 요즘이지만 심드렁하게 “그냥 또 한 군데.”하며 그냥 지나칠 곳은 아니다. 피자의 본향으로 유명한 ‘정통 나폴리의 맛’을 고수하는 이 식당은 개업한 지 고작 한 달 반밖에 안 됐지만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강추’되고 있으며, 실제로 좋은 자리를 원한다면 2~3일 전 예약은 필수일 정도로 뜨고 있다. 까닭이 있을 터. 피자와 스파게티는 미국을 거치면서 한 차례 진화를 겪었고 한국에 들어와 우리 입맛에 맞게 길들여졌다. 처음에는 이곳의 음식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가장 큰 반응은 약간 짜다는 것. 나폴리 사람들은 식사 때 와인을 늘상 곁들이기 때문에 음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짜다. 피자의 도우는 쫄깃함이 더한 것이 특징이고 스파게티면은 ‘알단테’(국수를 끊었을 때 가운데 하얀 심이 있는 상태)로 삶아 탱글탱글하지만 익숙하지 않으면 설익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현지화의 유혹을 거부하고 정통의 맛으로 승부를 걸었는데 제대로 먹히고 있다.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는 일본의 유명 레스토랑 체인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실력파 요리사 살바토레 쿠오모와 일본 레스토랑 전문 기업인 와이스 테이블(Y’s Table)이 손잡고 만든 식당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도쿄 롯폰기힐스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맛집으로 리스트에 올라 있던 이곳을 매일유업이 들여왔다. 매일유업의 김정완 부회장은 수시로 이곳에 들러 식당 운영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최근 식당에서 만난 김 부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을 좀 더 맛있고 제대로 내놓고 싶다는 욕심에서 (이 식당을)들여오게 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외식 사업을 펼치며 새로운 식문화 창출에 전념해온 그의 눈에 든 곳이 일본의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였다. 잘 나가는 일본 레스토랑을 들여와 그저 공간만 채우는구나 하는 선입견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래서 지난 5월4일 문을 열기까지 꼭 5년간 공을 들였다. 레스토랑 시설과 식재료에 쏟아부은 노력에 비하면 이곳의 음식값은 저렴한 편이다. 분위기로 마법을 걸어 저질 음식으로 손님 지갑을 털어온 일부 레스토랑과는 단단히 차별된다.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일본 디자인팀이 주방을 설계했고 실력 있는 이탈리아·일본 요리사들을 중심으로 주방이 돌아간다. 국내 직원들 또한 일본 현지 연수를 다 거친 것은 물론이다. 식재료는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해외까지 샅샅이 뒤져 최상의 제품으로만 들여오고 있다. 일반적인 모차렐라 치즈는 하루 세 번 짠 물소젖으로 만드는데, 여기에서는 하루 한번 짠 물소젖으로 만들어 더욱 진하고 쫀득한 제품을 사용한다. 햄은 산다니엘 브랜드로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제품이며, 해산물은 부산에서 그날 새벽에 잡은 것을 올린다. 주 재료인 방울토마토도 국내 최상품이다. 김 부회장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식탁에 놓인 샐러드에 들어간 방울토마토와 채소에 대해 “이건 좋다, 나쁘다.”고 일일이 평하며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농가에 일일이 재배법을 코치하고 있는데 안 되면 우리가 직접 재배할 생각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널찍하고 편안한 테라스가 먼저 마음을 동하게 하는 이곳의 매력은 음식에만 있지 않다. 요리사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마치 공연처럼 볼 수 있는 확 트인 주방과 주방 왼편에 자리잡은 화덕부터 남다른 ‘포스’를 발산한다. 이탈리아 장인이 빚었다는 화덕은 100% 나무장작으로 달궈진다. 화덕 앞에서 피자 도우를 반죽하는 빠르고 힘찬 손놀림을 넋놓고 구경하다가 그윽한 나무향 사이로 고소한 피자향을 맡으면 자연스레 군침이 돈다. 그렇다면 이곳이 나폴리 정통의 피자 맛을 보여 주고 있다는 걸 누가 보증할까. 이탈리아 농무부가 인정한 ‘나폴리피자협회’는 감히 ‘나폴리피자’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8가지 규정을 세워놓고 있다. 화덕의 종류, 온도, 도우의 두께·형태, 손반죽, 촉감, 토핑 재료 등 꽤 까다롭다. 개업 전인 지난 4월 깐깐한 심사를 거쳐 세계에서 300번째로 나폴리피자협회의 인증을 받았다. 서울에선 처음이다. 화덕 옆 벽에 그 인증패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오전 11시30분~오후 11시. 피자·파스타 1만~2만원선. 해산물·스테이크 등 메인요리 3만원대부터. (02)3447-0071.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수마와 함께 왔던 사랑의 여신

    수마와 함께 왔던 사랑의 여신

    A=수마(水魔)란 정말 무서운 것이더군. 지난 한주는 수해와 이에 대한 복구소식으로 신문지면을 메웠지. 그 비극 속에서도 엉뚱한 일,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일등이 없지 않았던 모양인데 이번 주에는 그런 이야기나 해 볼까. D=수중에서 피어난 사랑이 통금위반으로 걸린 이야기를 해볼까. 남녀의 사랑이란 무엇이길래 그 비극 속에서도 피어나게 마련이더군. 23일 상오 1시쯤 이재민 5천여명이 수용되어 있던 영등포초등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 수돗가에서 김(金)모씨(22·신도림동)와 박(朴)모양(20)이 사랑을 속삭이다 순찰 나온 경찰관에게 통금위반으로 잡혔어. 경찰에 잡혀온 이들은 아침에『사랑도 좋지만 우선 복구에 힘쓸 때가 아니냐』는 훈계를 받고 풀려났는데 듣고 보니 이들이 사랑을 맺은 계기가 미소롭더구만. 이들은 같은 동네에 사는데 신도림동 일대가 물에 잠겼을 때 각각 자기 집 가재도구를 날라 내다 서로 어려운 일을 도와주어 처음 알게 됐다는 거야. 그 뒤 영등포국민학교에 같이 수용되자 사랑의 불이 당겨져 그 경황 중에서도 남의 눈을 피해 매일 밤 수돗가에 나와 사랑을 속삭였다고 하더군. [선데이서울 72년 9월 3일호 제5권 36호 통권 제 204호]
  • [SPECIAL |가족] 가족, 숲과 들에도 있다

    [SPECIAL |가족] 가족, 숲과 들에도 있다

    생물학 또는 생태학적으로 인간만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아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많은 종류의 고등 동물들은 눈을 뜨고 처음 본 생물을 자신의 부모로 알고 살아간다는 “각인효과”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만이 아닌 숱한 생명체로부터 갖가지 유형의 가족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니, 한 번쯤 찾아 나서 보자. 작년 이맘때 새로 이사 온 집의 베란다에 둥지를 튼 박새 한 쌍이 11개의 알을 낳았고, 이들이 살아가는 일들을 이것저것 기록해 보았다. 새벽 6시 반, 날이 어슴푸레 밝아오면 삑삑거리며 엄마아빠 새가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곤충의 애벌레들이 잎을 갉아먹느라 정신없는 오전 10시 전후가 되면 작은 부리에 한두 마리의 애벌레를 걸친 채 마치 스케이트 선수처럼 빠르고 잽싸게 미끄러지듯 둥지를 들락거린다. 갓 부화하여 등에는 시늉만 해댄 것 같은 털이 듬성듬성 난 새끼박새들…. 아직은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끊임없이 먹이를 물어 나르느라 타버릴 것 같은 부모들의 날개 온도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온종일 이리저리 자리바꿈에다, 엄마아빠 새가 들락거리는 때를 기가 막히게 맞춰 하얀 똥덩어리를 내지르느라 겨우 눈뜬 그들의 삶도 바쁘긴 매한가지이다. 거의 자신을 통째로 집어넣을 만큼 커다란 입을 벌려대는 이들에게 잦을 때는 한 시간 평균 10~15회를, 뜸할 때는 다섯 차례 정도 먹이가 공급된다. 한 마리당 평균 200회, 하루 10시간 먹이를 나르고 2시간 휴식을 한다 해도 한 시간에 20회 이상을 들락거리는 셈이니, 거의 2~3분에 한 번 꼴이다. 결국 매일 수백 마리가 넘는 곤충을 사냥하는 셈이다. 가장이자 부모 노릇 하기가 얼마나 힘들까 계산이 안 된다. 집 안에 온통 구물구물한 새끼박새들이 넘칠 줄 알았다면 그렇게도 많은 알을 낳았을까 싶다. 열한 마리나 되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분주하게 들락거리는 숲은 박새 가족만이 있는 게 아니다. 딱새와 비둘기·노랑할미새 등도 가족을 이루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재미있게도 숲은 모든 새(鳥) 가족들이 먹고살기에 충분한 식당과 영양가 만점의 식단까지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전부 무료라는 점이다. 한 동네에 대략 30여 쌍의 박새 가족이 살고 있으니 하루 몇 천 몇 만 마리의 애벌레들이 사라지는 것인지 생각하면 참으로 경이롭기 그지없다. 이 모든 것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새 가족이 가진 힘이다. 최근 시화호의 개발과 맞물려 연안 갈대숲에 서식하던 고라니 처리 문제로 고민거리가 생겼다. 생포하거나 안전한 대체 서식처로 옮겨주지 못한 탓에 점점 살 곳이 줄어들자 사방이 훤히 보이는 맨 땅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사람의 눈에 띄는 고라니가 한두 마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가족 단위로 이동하고 먹이 활동을 하며 실제 어미고라니는 임신 중인 개체들이 대부분이다. 위기에 처한 이들 고라니를 안전한 보호시설로 옮기는 일을 맡은 안산시청 지구환경과의 최종인 선생님은 고라니 가족을 마취시켜 안전시설로 이송할 때마다 가족 이상의 애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들을 우리네 가족처럼 삶에 대한 불만이 없고 오직 잘난 인간들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라는 최 선생님의 걱정스런 목소리는 같이 살아야 할 가족의 의미가 얼마나 넓고 커야 하는지를 새롭게 일러주고 있다. 인근의 바위 절벽에서는 수리부엉이가 몇 년째 가족을 이루고 매년 후손들을 키워내느라 바쁘다. 특이하게도 수리부엉이 부부는 번식 철이 아닌 평시에도 끊임없이 교미를 하는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아마 가족간의 유대강화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하나라 생각된다. 평생을 한 쌍으로 살아가는 수리부엉이도 가끔은 로드킬로 짝을 잃거나 형제들이 비명에 숨지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끼들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거미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식구들을 거느린 이동형 가족을 자랑한다. 동물들에게만 가족이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우리가 잘 아는 아까시나무는 50년 정도 자라 죽음에 이르면 자신의 육중한 몸을 스스로 넘어뜨려 그동안 뿌려둔 후손인 종자들이 발아하기 좋게 숲에 커다란 하늘 구멍을 만들어 준다. 마치 적당한 유산을 남겨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같은 아까시나무가 젊어서 지나치게 많은 가족인 맹아를 남기기에 원성이 자자하고 묘지 부근에서 멸문지화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먹기 좋은 꿀과 질소고정을 통한 비옥한 토양 생성, 생태계에서 남기는 긍정적인 결과는 지구상의 모든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터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요즘 어떤 결합보다 강한 가족간의 유대관계가 급격히 손상되고 있다. 취직과 공부를 당부하며 꿀밤을 올려댄 엄마를 고발하고 접근 금지 처분을 신청하는가 하면, 노부모를 유기하거나 친족을 불손한 목적으로 위해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언론을 탄다. 박새처럼, 고라니처럼 또는 쓰러져가며 후손을 배려하는 아까시나무처럼, 최고의 훈장으로도 담을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 가족에겐 그같은 사랑이 넘쳐야만 한다. 조건 없는 동식물의 가족 사랑이 유난히 돋보이는 5월이다. 글 · 사진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 소장 ※ 이 글의 모든 내용들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됩니다. 박병권·한국도시생태연구소 소장. WDU 한방건강학과 교수. MBC ‘느낌표-이경규 다큐멘터리 보고서’에서 너구리박사로 출연. SBS ‘반달곰복원프로젝트’ 제작지원 및 출연. 《자연, 뒤집어 보는 재미》의 저자
  • [시론]비정규직 법과 비정규직 정책/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

    [시론]비정규직 법과 비정규직 정책/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

    최근 최저임금이 과거와 달리 대폭 인상되었을 때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친절한 경비아저씨들의 생활도 나아지겠지 하고 내심 기대를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경비아저씨들이 반으로 줄었다. 월 3만원 정도의 추가부담 때문에 경비아저씨들 일자리를 박탈했느냐고 동네반장인 처에게 면박을 주자 별 수입이 없는 노인네들만 사는 가구들에서는 정말 그 정도도 부담된다고 절반 해고를 완강히 주장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비정규직 문제도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는 복잡다단한 경제와 시장구조의 산물이다. 더구나 결과적으로 시장경제의 약자로서 인건비가 매우 부담스러운 중소기업들이 대다수의 비정규직을 안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기업을 압박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마치 내가 사는 동네의 노인 가구에서는 월 3만원이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각각 형편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는 7월1일부터 중소기업들도 2년 이상 고용한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비정규직법 적용을 앞두고 노사간, 노정간, 여야간 논쟁이 한창이다. 앞으로 몇십만명의 비정규직들이 법의 혜택을 보게 될지, 아니면 법의 취지와 달리 실직이라는 시장의 역풍을 안게 될지 추산과 추론이 다양하게 엇갈리고 있지만 적어도 엉뚱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긴급처방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들의 경영상황이 악화되어 있고 일자리도 추가로 만들기보다는 현재의 총량수준을 지키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법의 완벽한 개선을 위한 처방보다는 일단 국회에서 신속한 보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현재의 비정규직 법만으로는 비정규직 문제를 현실적으로는 해소하기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정책의 골간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기업들이 과도하게 남용한다는 점과 비정규직들의 고용불안이 곧 일상적 생활불안으로 연계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정규직과의 차별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미 시장은 차별의 근거와 시비를 피해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남용과 생활불안이 차후 집중적인 정책관심이 되어야 한다. 먼저 과도한 비정규직 사용을 줄이기 위해선 외주화의 확대와 단가인하 압박으로 인해 비정규직의 대부분을 떠안고 있으면서 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강화와 대기업-중소기업간의 상생을 위한 새로운 경제산업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 다음은 과도한 해고비용과 경직적 임금인상을 핵심으로 하는 ‘정규직 고용의 공포’로부터 사용자들을 해방시켜 줄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사용에 따른 비판이 정규직 해고에 따른 고통보다는 더 낫다는 기업들의 현실적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일시적인 지원금 혜택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감행할 기업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수준과 복지혜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업들이 업무와 직종을 분리하고 있기 때문에 점점 임금과 복지에 있어서 법적으로 정규직과의 차별 근거를 찾기 어렵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회적 수준의 차별은 분명하다. 따라서 재정의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서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정규직 중심의 사회보험 원리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서 비정규직의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
  • [발언대]대형슈퍼 동네 진출, 정부 입장 정해라/이윤보 건국대 경영대학원 교수

    [발언대]대형슈퍼 동네 진출, 정부 입장 정해라/이윤보 건국대 경영대학원 교수

    요즘 내가 만나는 슈퍼마켓 사장들은 거대자본의 대형슈퍼마켓(SSM) 진출로 얼굴들이 말이 아니다. 경기침체 여파에다가 SSM으로 인한 매출액 감소로 언제 사업을 접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한없이 애처롭기만 하다. 거대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대형마트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나 최근에는 대형마트 1위 업체까지 SSM 진출을 선언하는 등 대형마트 간의 과당경쟁이 치열해지면서 SSM을 경쟁적으로 출점하여 골목상권까지 싹쓸이하려고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지역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정당, 국회, 정부에서 거의 매주 개최하는 소상공인관련 간담회마다 대형마트의 규제를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WTO 규정을 들어 매번 규제가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영세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정책자금이나 보증지원도 중요하지만 영세상인이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잃어버린다면 이러한 정책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선진국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는 대규모 유통점의 출점 및 영업시간 등을 제한하여 지역 소상공인 및 중소유통업체 등을 적극 보호하고 있는데도 유독 우리나라만 대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규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지역환경, 교통, 주민생활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대형마트의 출점 및 영업을 규제하면 WTO 서비스협정 규정에 부합하는 만큼 규제 도입을 망설이는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전환이 필요하다. 국회도 지역민심을 의식하여 법률을 발의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외국의 규제사례를 참고하여 금년 중에 규제 법률을 입법화하여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바란다. 우리경제의 초석이 되는 소상공인들이 활력을 찾아 대형마트와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자세가 절실하다. 소상공인의 안정이, 서민의 웃음이 대한민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윤보 건국대 경영대학원 교수
  • ‘여고괴담5:동반자살’ 주연 손은서

    ‘여고괴담5:동반자살’ 주연 손은서

    ‘신인’이란 선입견은 몇 분 만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만큼 ‘여고괴담5:동반자살’(18일 개봉)의 배우 손은서(23)는 주관도 포부도 뚜렷했다. 강단있는 외모에선 여유와 배짱이 함께 묻어났다. 하기야 ‘여고괴담’ 시리즈의 주연이다. 10년간 최강희, 박진희, 공효진, 김민선, 김옥빈 등을 배출해낸 영화, 그 다섯 번째 작품에서 그는 당당히 선배들의 뒤를 이었다. 개봉을 하루 앞두고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손은서는 설렘과 흥분으로 들떠보였다. ●5545대1 경쟁률 뚫고 주연 낙점 “중 1때 처음 영화관에 갔는데, 그때 본 영화가 ‘여고괴담’ 1편이었어요. 무섭지만 재미있었죠. 연기 준비를 하던 4년 전엔 ‘여고괴담’ 4편이 개봉했는데, 그걸 보며 ‘다음 번엔 꼭 출연하리라.’ 다짐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별러왔던 작품이건만, 붙으리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경쟁자만 5544명. 특히 1박2일간의 마지막 관문은 ‘지옥 캠프’라 생각될 만큼 심신이 힘들었다. 17명의 최종 후보들도 모두 끼많고 연기력이 출중했다. “6시간 동안 연기 테스트를 했는데, 완전히 전쟁이었어요. 거의 쉬지도 못하고 새벽까지 연기하는데, 나중에는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어요. 하지만 지금 아니면 못한다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죠.” 이렇게 해서 결정된 5명의 주연들 가운데 그는 나이가 가장 많았다. 자연스럽게 맏언니 역할을 자처했다. “평소에도 사람들 챙기는 걸 좋아해요. 집에서는 막내이고 무뚝뚝한 편인데, 친구들 사이에서는 주로 언니 역할을 많이 했어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덕분에 극중 여고생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맡게 된 건 ‘소이’. 5명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감정표출보단 속앓이를 더 많이 하는 인물이다. 너무 큰 배역이란 생각에 부담감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종용 감독은 “상황별로 충실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마음을 다잡은 덕분에 촬영 후반에는 ‘소이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촬영 현장은 공포스럽지 않았다. 수다가 넘치고 화기애애했다. 와이어 액션 신이 무섭기는 했지만, 스릴 넘치면서 재미있기도 했다. “어렸을 때 동네친구들이 거의 다 남자여서 선머슴처럼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스릴 넘치는 걸 좋아해요. 무서운 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하죠.” 막연히 끌렸던 연기에 인생의 방향타를 고정하게 된 것은 고 3때였다. 드라마 ‘완전한 사랑’에 나온 김희애의 연기를 보고나서였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안 도와줘도 되니까 시험만 보게 해달라.”고 말했다. 수능을 치르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연기학원도 다니지 않은 채 혼자서 입시 준비를 했다. 결과는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 합격. 고향 부산에 전화했더니 아버지는 “어, 그래.”라는 말이 끝이었다. 굉장히 좋아하신 사실은 나중에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서야 알았다. ‘여고괴담5:동반자살’은 그에겐 첫 장편영화 주연 데뷔작이다. 2006년 케이블채널의 CF를 통해 연예계에 첫 데뷔했으니 3년 만에 이룬 쾌거. 그동안은 엡손, 맥도날드 CF와 드라마 ‘과거를 묻지 마세요’, 영화 ‘허밍’, ‘시선1318’ 등에 출연했다. 앞으로 맡고 싶은 역할은 퓨전 사극 ‘다모’의 채옥(하지원) 같은 인물이다. 킥복싱, 수영, 요가 등 운동에 소질이 많은 만큼, 액션 연기를 꼭 해보고 싶어서다. 또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 같은 중성적인 캐릭터도 연기해보고 싶다. 스산한 인물을 해봤으니 밝은 인물도 해보고 싶어서다. 좋아하는 배우가 있냐고 물었더니 단번에 “되게 많다.”고 말했다. “이영애, 김희애, 손예진, 문소리…. 좋아하는 선배님이 너무 많아요. 자기만의 분위기, 독특한 색깔이 있는 배우가 좋아요. 이 역할은 이분밖에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배우요.” ●“자기만의 색깔 있는 배우 되고 싶어” 함께 연기하고 싶은 남자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가 싶더니 “김명민”이란 답이 돌아왔다. “너무너무 연기를 잘 하세요. 캐릭터의 제스처는 흉내내기 쉬워도 말투나 성격 등을 만드는 건 배우의 몫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 바이러스’는 최고였던 것 같아요. 저야 TV로만 봤다는 게 아쉬울 뿐이지만요.” 신인답지 않은 신인. 아니 신인다운 신인이라 해야 할까. ‘여고괴담5’로 힘차게 첫발을 내디딘 손은서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김윤석 “‘거북이’ 속 역할, 실제 나와 닮아” (인터뷰)

    김윤석 “‘거북이’ 속 역할, 실제 나와 닮아” (인터뷰)

    김윤석은 짙푸른 셔츠를 걸친 채 연분홍색 딸기 셰이크를 마시고 있었다. 배우의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사람 냄새를 풍기는 남자. 그 이미지 그대로였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김윤석(41)을 만났다. ◆ 거북이 조필성 = 배우 김윤석 지금까지 맡았던 다양한 배역들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윤석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느냐.”고 답했다. “내가 만난 모든 캐릭터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 김윤석과 가장 유사한 캐릭터를 골라보면 영화 ‘즐거운 인생’의 평범한 가장 성욱이, 그리고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 형사라고 생각해요.” 김윤석은 이번 영화에서 어리숙한 시골 형사 조필성 역을 맡았다. 분노의 레이저 안광을 뿜어내던 ‘추격자’ 엄중호의 눈빛이 아니다. 멍하고, 총기 없고, 술이 덜 깬 것 같은 동네 아저씨다. 희대의 탈주범 송기태(정경호)에게 당하고 또 당하면서도 그는 쫓고 또 쫓는다. ‘거북이 달린다’에서 보여준 조필성의 이런 나른함, 김윤석은 그것이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했다. “연기를 하는 건지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건지 구분 안 가는 그런 캐릭터를 좋아해요.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꼭 있는 보통 사람 말입니다.”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은 그런 캐릭터다. 충북 어느 시골에 가면 꼭 만날 것만 같은 느릿한 말투의 아저씨. 놀랍게도 자연스러웠던 사투리 구사를 칭찬하자 김윤석은 “아주 충북 예산에 내려가 살다시피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 지역 사투리를 잘할 수 있는 비결은 그곳에 가서 지내는 거예요. 주변 환경, 조연 배우들과 잘 융화될 수 있도록 적응해야 해요. 그러면 억지로 하려 하지 않아도 체화된 억양이 나오는 겁니다.” ◆ 거북이 VS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와 ‘추격자’를 비교하자면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김윤석은 설명했다. 조필성은 ‘추격자’의 엄중호와는 환경부터 다르다. 추격자 엄중호가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자유로웠다면 조필성은 한 여자의 남편이고 사랑하는 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아빠다. “‘거북이 달린다’의 핵심은 등장인물들 간의 앙상블입니다. 혼자 뛰어다니던 엄중호와는 철저히 달라요.” 실제로 어린 두 딸의 아빠이기도 한 김윤석은 조필성과 딸의 관계가 바로 영화가 전달하려는 핵심이라고 했다. 조필성에게 어린 딸이 엄마의 눈을 피해 입을 옷을 가져다주며 한숨과 함께 던지는 “도대체 왜 그러는겨!”라는 대사는 거북이 조필성이 달리는 데 본격적인 기시을 건 장치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어린 딸에게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황당함을 넘어 슬픔이죠. 여기서 앓는 벙어리 냉가슴이야 말로 조필성에게 투지를 불러일으킨 가장 큰 요소였습니다.” 김윤석은 “조필성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딸과 함께할 때”라며 “영화 속에서 딸과 함께 하는 장면들은 실제로 딸을 대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거북이 달린다’를 사람 냄새 나는 영화로 찍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김윤석 역시 형사 이야기를 넘어 가슴이 훈훈해지는 가족의 드라마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 캐릭터는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김윤석은 이토록 기폭이 큰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전작 ‘추격자’의 엄중호라는 캐릭터를 벗어나기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김윤석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추격자’를 이야기하죠. 과연 김윤석이 엄중호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타짜’에서도 저는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연 김윤석이 ‘아귀’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배우들은 항상 그런 역할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전의 역할을 넘어서는 문제는 모든 배우가 고민하는 것이다. 김윤석은 이런 강박증에 빠지면 연기에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역할이 주어지면 그 역할에 맞는 정서를 최대한 표현해 내는 겁니다. 관객들이 다가올 수 있도록, 관객들이 제 역할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김윤석 본인도 수차례 언급한 것처럼 ‘거북이 달린다’와 ‘추격자’는 완전히 다른 영화다. 하지만 ‘추격자’의 후광은 상상 이상으로 드리워졌다. 일부 관객들은 김윤석과 형사라는 교집합에 집중하는 게 섭섭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윤석은 고개를 저었다. “조필성에게서 엄중호의 모습을 찾는 것도, 새로운 모습을 찾는 것도 결국은 관객들의 선택입니다. 제가 ‘‘거북이 달린다’와 ‘추격자’가 이렇게나 달라요!’하고 강요할 수도 없잖습니까. 그럴 권리도 없고요.”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30] 청년백수 이래서 힘들다

    [2030] 청년백수 이래서 힘들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청년 백수의 일상을 실감나게 그린 가수 장기하씨의 노래 ‘싸구려 커피’는 20~30대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청년실업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너와 나의 일이 된 탓이다. 그만큼 청년 백수들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돈, 연애, 미래 걱정까지…. 청년 백수들이 토로하는 ‘백수생활의 어려움’을 들어봤다.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하고 1년3개월째 백수생활 중인 김모(24)씨는 “백수의 서러움 중 8할은 돈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취업공부하고 사람 만나다 보면 최소한의 생활비는 들게 되는데 월급받을 곳이 없는 백수다 보니 항상 돈에 쪼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돈만 있으면 안 될 게 없는 우리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건 곧 자존심이 없다는 것과 같다. 돈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위축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며 김씨는 거의 울먹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은 벌었지만 지난해부터 경제 위기가 오면서 그나마 두 개 정도 하던 과외도 다 그만두게 됐다. “지금은 부모님에게 생활비 50만원을 받아 쓰지만 그마저도 눈치가 보여 계속 받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김씨는 말했다. 돈에 울고… “백수 서러움 중 8할은 돈” 공기업 회사원 박모(32)씨는 1000원짜리 소시지와 콩나물이라면 질색이다. 백수시절 아픈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진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2003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과일가게를 하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보증금 2000만원짜리 자취방도 내놓아 아버지 치료비에 보태야 했다. 대학원 진학을 꿈꿨던 박씨는 취직 준비를 시작했다. 넓은 방을 쓰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았다. 한 달에 10만원을 내는 대신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전담한다는 조건이었다. 집에서 용돈이 올라오기는커녕 치료비를 보태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박씨는 과외 2개를 하면서 50만원을 벌었다. 그 중 30만원을 떼어 집에 부치고 집세 10만원을 빼면 남은 생활비는 10만원이었다. 술과 담배를 끊고 밥은 집에서 해먹었다. 가장 싼 식재료인 1000원짜리 분홍색 소시지와 1500원어치 콩나물은 밥상 위의 단골 메뉴였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내면서 취업공부를 했고 그해 겨울 공기업에 당당히 합격했다. 박씨는 “눈물 젖은 소시지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백수 생활을 논할 자격이 없다. 사람이 되기 위해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참고 먹었던 곰이 된 심정이었다.”며 쓰린 과거를 돌아봤다. 백수를 괴롭히는 다른 요인은 바로 ‘마인드 컨트롤’이다. “저 나이 먹도록 놀고 먹는구나.”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그렇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 사법고시 준비를 그만두고 일반 기업체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정모(29)씨는 요즘 통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책상 앞에만 앉으면 온갖 고민들이 떠오르는 탓이다. 형제 중 장남인 정씨는 빨리 취업해서 부모님도 모시고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부쩍 강하다. 그러나 취업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 안정된 생활을 꾸리게 되는 시간이 자꾸만 늦춰져 불안하다는 게 정씨의 고민이다. 정씨는 “사법고시를 포기하기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1차는 붙는데 2차까지 가는 게 어려웠다.”면서 “조금만 더 하면 길이 보이는데 하는 생각에 몇년을 붙들고 있다가 미련을 떨친 게 얼마 전이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빨리 취직해야 할텐데 나이도 있고 정말 앞날이 막막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올해 초 중견기업 홍보실로 입사한 박모(30)씨의 지난 3년도 번뇌와 고민으로 점철됐다. 박씨는 2006년 서울의 한 사립대학을 졸업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선호하지 않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때 학과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그러나 번번이 낙방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졸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기소침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는 희망을 품고 기업에 원서를 접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였다. 박씨는 긴 좌절의 시절로 접어들었다. 세상과 담을 쌓은 ‘백수’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사귄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남자 친구는 2007년 졸업과 동시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왠지 남자친구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박씨는 자격지심을 이기지 못해 결국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불안감에 울고… “앞날 생각하면 막막” 이후 고등학교, 대학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리려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박씨는 지난해 말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호프집, 마트 등 여러 곳에서 일하며 사회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했다.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은 박씨는 올해 초 당당히 입사했다. 박씨는 “지난 3년 같은 세월은 다신 되풀이하지 않겠다. 절망의 끝을 본 만큼 이젠 희망을 향해 달려가겠다.”고 다짐했다. 한창 불타는 사랑을 경험할 20~30대지만 백수에겐 그것조차 녹록지 않다. ‘백수=낙오자’라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스스로 위축돼버려 좀처럼 사랑을 시작하기 힘들다고 백수들은 입을 모아 하소연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2년째 준비하는 이모(25)씨는 얼마 전 스터디 모임을 탈퇴했다. 그 스터디 모임에 속해 있던 한 남자 때문이다. 스터디가 결성된 것은 3개월 전.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인 4명의 남녀는 1주일에 두 번씩 모여 상식 문제를 같이 풀고 논술과 작문을 연습했다. 모임 첫날 이씨는 그곳에 나온 한 남성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세 살 많은 그 남자는 쾌활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같은 언론고시를 준비하다 보니 말도 잘 통하고 생각도 비슷했다. 딱 이씨의 이상형이었다. 이씨는 남몰래 그에 대한 호감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3개월. 적극적인 성격의 이씨는 먼저 그에게 고백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언제까지나 그가 고백을 해오길 기다릴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스터디 모임 때문에 간혹 그에게만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즉각 답신이 오는 것으로 봐서 그도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있었다. 사랑에 울고… 자격지심에 남친과 이별 마침 스터디 사람들끼리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이씨는 2차 술자리가 끝난 뒤 “더운데 바람이나 쐬러 가자.”며 그와 단둘이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용기를 내 고백한 이씨에게 그 남성은 “노”라고 했다. 자신도 이씨에게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연애할 때가 아니라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할 때인 것 같다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서로 격려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씨의 매달림에도 그 남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스터디를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백수들은 움츠리고만 있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1년간의 백수 생활을 ‘취업’이 아닌 ‘취집(취업 대신 시집가기)’으로 해결한 양모(26)씨도 그런 경우다. 5년 전 지방대학을 졸업한 양씨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들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다가 해질녘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한 달쯤 하자 점점 싫증이 났다. 행정법은 이해가 안 되고 영어 단어는 도통 외워지질 않았다.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의자에 앉으면 하품이 나고 좀이 쑤셨다. 도서관에 가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 쇼핑하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보다 못한 엄마는 “그렇게 공부할 거면 아예 접고 시집이나 가라.”며 양씨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 역시 “싹수가 안 보이니 아버지 회사에서 경리 일이나 도와주면서 맞선을 보라.”며 엄마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양씨 스스로도 경쟁률이 100대1이 넘는 공무원 시험을 통과할 만큼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양씨는 과감히 방향을 전환해 맞선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비록 직업이 없고 학력도 보잘 것이 없는 양씨지만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 때문에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집안 조건도 꽤 괜찮은 편이라 선 자리는 꾸준히 들어왔다. 양씨는 6개월 동안 7차례 정도 선을 봤다. 은행원, 한의사, 사업가 등 면모도 쟁쟁했다. 그중 양씨는 가장 마지막에 만난 네 살 위 대기업 회사원과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다. 그리고 양씨는 2년 전 아들을 낳아 아이 엄마가 되었다. 그는 “맞선을 보지 않고 공무원 시험을 계속 준비했다면 여전히 백수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면서 “‘취집’도 색안경만 쓰고 볼 게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오달란 박성국기자 dynamic@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긴장 속에 지샌 6·10대회 前夜 여의도 금융가 불안에 떨게 하는 이것 나경원 의원 패션모델로 전업? 홍석현 회장 법정 서는 이유 유시민 “가해자가 헌화하는 가면무도회” 유인촌 1인시위 학부모에 “세뇌되신 거예요”
  • 뱀같은 사나이의 사련(邪戀)3년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악하다. 개구리를 노리는 뱀의 악착스러움과 징그러움 - 결코 사랑이란 이럴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의 너울을 쓰고 벌어진 뱀과 개구리의「시소·게임」. 대구경찰서는 지난6일 박(朴)모씨(22·대구시)을 폭력행위등 처벌법 위반과 위계에 의한 간음혐의로 구속.『이처럼 뱀같은 인간은 처음 보았다』고 박을 맡아 구속영장을 집행한 변종근(卞種根)형사가 말할 정도로 그가 뱀같이 악착스럽고 징그럽게 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에게 개구리처럼 괴로움을 당했던 아가씨는 같은 동네에서 소꿉친구로 자란 문(文)모양(22·대구시). 이들의 고향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둘은 이웃에서 자라 국민학교도 함께 나온 동기동창. 어려선 철 없는 소꿉친구였지만 사춘기에 접어들자 둘은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가까이만 가도 질겁을 하며 도망치는 문양에게 더욱 사랑과 미움을 느꼈다는 게 박의 고백. 사건의 발단은 3년 전인 70년2월28일 밤 고향마을에서 일어났다. 문양이 이웃 마을에 심부름을 다녀오다 박에게 잡혀 뒷산으로 끌려가 욕을 본 것이다. 문양은 이때『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두손을「넥타이」로 꽁꽁 묶인 채 당했다』는 주장이고 박은『결사적인 반대는 없었다』고 진술. 어쨌든 이일을 계기로 둘은 계속 관계를 맺었고 반년도 못돼 온 동네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문양은 소문을 피해 대구로 도망쳤다. 대구에는 Y대학교에 다니는 오빠가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다. 박도 뒤따라 대구의 형집으로 옮겨왔다. 끈질기게 문양을 찾아다니며 사랑을 호소했다. 그러나 문양은 대구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는 윤(尹)모씨(25)와 약혼해 버리고 말았다. 박은 아무리 애걸해도 문양을 만나 볼수 없게 되자 협박하기 시작했다. 둘의 숨겨진 관계를 약혼자인 윤씨에게 폭로하겠다는 것. 타협 끝에 문양은『3일 동안만 동거한 후 깨끗이 헤어지자』는 박의 제의를 받아들여 여관에서 3일 동안을 함께 살았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이런 방법으로 끝날 수가 없었다. 소꿉친구 욕보이곤 결혼못하게 방해 박은 이번에는 딸의 혼사준비 때문에 대구에 온 문양의 어머니를 만나 돈 30만원을 요구했다. 돈을 받아내기는 커녕 오히려 호통만 들은 박은 기어이 윤씨를 찾아가 비밀을 폭로했다. 제대로 손목조차 잡아 보지 않았다는 윤씨는 당장 파혼을 선언, 결혼준비로 사용한 18만원을 문양측으로부터 배상받기까지 했다. 문양은 품 속에 식도를 품고 박을 만났다.『폭로한 사실은 거짓이었다』고 윤씨에게 변명해 달라고 졸랐다. 박은 오히려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문양은 칼을 꺼내 박의 등을 찔렀다. 두꺼운「잠바」에 미끄러져 칼은 빗나갔고 박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문양은 뒤쫓으며 칼을 던졌다. 칼은 박의 엉덩이에 맞아 상처를 냈다. 문양은 상해혐의로 대구경찰서에 구속됐다가 적부심으로 풀려났다. 다시 박을 찾아갔다.『거짓폭로였다』고 윤씨에게 말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박은 분통을 터뜨려 문양을 때렸다. 목을 졸라 실신하자 길바닥에다 버렸다. 문양은 순찰경찰관에게 발각되어 병원에서 소생하자 경찰에 찾아가 사실을 털어 놓고 박을 고발했다. 박의 간악한 집착이 사랑일 수 없다면 문양의 윤씨에 대한 집념은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대구(大邱)=배기찬(裵基燦)> [선데이서울 72년 8월 20일호 제5권 34호 통권 제 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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