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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행정] 관악구 뒷골목 층계정비

    [현장 행정] 관악구 뒷골목 층계정비

    봉천동 1번지에 사는 순악질 여사는 오늘도 술을 마시느라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이를 갈고 있다. 그때 다리에 피를 흘리며 들어오는 아들 봉팔이. 집에 오다 계단에서 넘어졌단다. 관악구청 토목과에서 일하는 남편 A씨는 사연도 모르고 취기가 가득해 집에 왔다 울고 있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토목과 직원이 집 앞 계단 하나 못 고치냐.”며 바가지를 긁는 아내가 오늘은 하나도 미워 보이지 않는다. 다음날 출근한 A씨. 동료들과 함께 “동네 젊은이들조차 힘들게 오르내리는 봉천동 1번지 계단을 획기적으로 바꿔 보자.”며 아이디어를 짜기 시작한다. 지난 23일 서울시가 마련한 ‘2009 하반기 자치구 창의행정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관악구가 내놓은 단막극 내용의 일부다. 관악구는 구가 내놓은 ‘주택가 뒷골목 계단정비’ 사례가 서울 25개 자치구가 참가한 ‘창의행정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29일 밝혔다. ●서울시 창의행정 최우수상 뽑혀 관악구는 그동안 ‘계단은 그저 이동로일 뿐’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 낡고 부서진 주택가 뒷골목 계단을 도심 속 ‘쌈지공원’으로 바꿨다. 주민들이 언제나 편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게 만들 수 있다면 힘들여 올라야 하는 뒷골목 계단도 누구나 좋아하는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관악구는 오래전부터 ‘달동네’가 많아 골목길 계단이 유독 많은 편이다. 현재 재개발이 많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구에는 주택가 골목길이 127곳이나 된다. 지금까지 구는 수십년간 “통행에 문제가 없어 민원만 생겨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하자 보수에만 전념해 왔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이 열심히 노력해도 주민 만족도는 높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됐다. 구는 이런 현실에 대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조금 비용이 들더라도 도심 속 골목길 계단을 여유로운 휴식 공간으로 변화시키면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돈 쓸 곳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멀쩡한 계단을 다시 꾸미냐.”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 결국 이 사업을 위해 구 간부들까지 직접 나서 구의원들을 하나하나 설득했고, 결국 구비에 서울시 예산 보조까지 이끌어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성선주 토목과장은 “무엇보다 계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꾼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주민들이 날마다 이용하는 시설이 새롭게 바뀌어야 만족도가 크게 높아진다는 점을 들어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주민 호응 뜨거워… 사업확대 드디어 지난 5월 서림동 골목길 계단을 시작으로 주택가 뒷골목 정비가 시작됐다. 새로운 계단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다. “우리 집 앞 골목길도 새롭게 바꿔 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이달까지 관악구 지역 뒷골목 계단 13곳이 새롭게 정비됐다. 구는 앞으로 연차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지역 내 계단 전 곳으로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박용래 구청장 대행은 “앞으로도 계단이나 도로를 하나하나 아름답게 바꿔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내이름은 버그파이 5번/백미숙

    [엄마와 읽는 동화] 내이름은 버그파이 5번/백미숙

    내 이름은 버그파이 5번. 벌레로 만든 파이가 아니다. 스파이 벌레라는 뜻이다. 비록 겉모습은 애벌레지만 하찮게 잎사귀나 갉아먹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특수 임무를 띠고 만들어진 위대한 몸이라 이거다. 그래봤자 버그, 벌레 아니냐고? 겉모습은 작은 벌레지만 내 몸 속에는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 그리고 내가 보고 듣는 것을 본부로 보낼 수 있는 송신장치가 있다. 나를 개발하는 데 몇 명의 박사가 몇 년 몇 달 몇 일을 연구했는지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내 앞에 수백 마리에 이르는 벌레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 버그파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 다섯 번째, 나는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시험 단계를 거치기 위해 임무에 나섰다. 버그파이 작전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바로 나에게 달린 것이다. 나는 꽃집 진열장 안에 있는 국화꽃다발 속에 있었다. 몸을 숨기기엔 소국만한 게 없다. 백합이나 장미에는 숨을 곳이 별로 없다. 소국의 잎과 가지 사이에 몸을 숨기면 쉽게 들키지 않는다. 어느 아줌마가 꽃집 문 안으로 들어와 꽃들을 들여다본다. “와, 예쁘다. 이건 얼마예요?” “요거는요?” 아줌마는 손가락으로 이 꽃 저 꽃을 가리키며 값을 물었다. 지갑을 꺼내 들여다보며 잠깐 망설이더니 소국 한 다발을 샀다. 꽃집 언니, 아니 사실은 우리 본부 비밀요원이 나를 꽃다발 안에 살짝 넣었다. 눈에 안 띄게 잘 숨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나는 잎사귀와 비슷한 색깔에 아주 작아서 숨으면 절대로 들킬 염려가 없다. 버그파이 1번은 파리였는데 사람 집에 들어가자마자 파리채에 맞아 부서졌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사람 눈에 띄면 큰일이다. 애벌레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까. 집에 도착한 아줌마는 꽃병에 국화를 꽂았다. 그러고는 식탁에 올려놓았다. “와, 예쁘다. 가을분위기 나네.” 하고 중얼거리더니 카메라를 가져다가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꽃병 옆에 찻잔을 놓아보기도 하고, 표지 그림이 멋있는 책을 놓기도 했다. 이 아줌마도 혹시 사람파이는 아닌지 모르겠다. 카메라에 잡힐까봐 나는 국화 줄기 뒤로 꽁꽁 숨었다. 우리 버그파이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또 있다. 그건 바로 살충제다. 버그파이 2번은 바퀴벌레였다고 한다. 날랜 데다가 어디든 잘 다닐 수 있어서 버그파이로 아주 훌륭했는데 어느 날 살충제를 맞고 그만 쓰레기봉투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해충으로 버그파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살충제는 사람 몸에도 해롭다고 하니 내가 식탁 위에 자리 잡은 것은 참 행운이다. 설마 음식을 먹는 식탁 위에 살충제를 뿌리진 못할테니까. 나는 아줌마를 열심히 감시했다. 아줌마는 꽃병이 놓인 식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집 아저씨와 아이들이 나간 뒤에 아줌마가 신문을 보며 밥을 먹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아줌마는 내가 보는 것도 모르고 밥을 씹다가 흘리기도 하고, 방귀를 뀌기도 했다. 아마도 본부에서는 내가 보낸 영상을 보며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아줌마가 내 눈에서 사라져도 소리는 들린다. 아줌마가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나의 소리 탐지 마이크로 들어오니까. 아줌마가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줌마네 집안일 뿐 아니라 아줌마 친구, 친척네 일까지도 다 알 수 있다. 아줌마 동생이 인터넷 홈쇼핑을 통해 무엇을 샀는지, 아줌마네 친구들이 한 달에 한번하는 모임을 어디서 하는지 모두 들린다. 아줌마와 그 주변에 대한 모든 소식을 예민한 나의 소리 탐지 마이크에 다 담아서 본부로 보낸다. 본부에서는 벌써 아줌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가만 보면 아줌마는 좀 웃긴다. 아줌마네 아이가 학교 갈 때면 졸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면서 아줌마는 신문을 보다가 끄덕끄덕 졸기 일쑤다. 저녁에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컴퓨터를 켜고 있으면 조금만 하라며 끌 때까지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의 몇 배를 아줌마가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걸 나는 다 알고 있다. 아니 우리 본부에서는 다 알고 있다. 우리 본부가 버그파이를 개발한 목적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므로 나, 버그파이 5번은 이제 성공한 셈이다. 나는 본부에서 시킨 대로 아줌마를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살펴본 뒤에는 어떻게 될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원래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만들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자꾸만 국화잎의 쌉쌀한 냄새가 옆구리의 숨구멍으로 솔솔 들어온다. ‘하찮은 잎사귀 따위를 먹을 수는 없다. 나는 위대한 버그파이 5번인 것이다.’ 이렇게 외쳐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내 앞에서 뭔가를 자꾸 먹어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점점 참기가 힘들어졌다. 나도 모르게 입을 오물대며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잎사귀는 맛도 괜찮다. 나는 잎들을 먹고 먹고 또 먹었다. 국화 잎이 점점 없어졌다. 내가 먹어치우기도 했지만 시들어 먹을 수 없는 것도 많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줄기 위로 올라가 꽃잎을 먹었다. 꽃잎은 잎처럼 쌉싸름한 맛이 나면서 향긋했다. “아니 이게 뭐야?” 가까이서 큰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아줌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벌레잖아! 준영아, 이리 와 이것 좀 봐.” 아줌마가 큰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드디어 나는 들켜버린 것이다. “이 벌레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작은 벌레였는데 우리 집에 와서 크게 자란 거 같아. 처음엔 안 보였잖아.” 아줌마와 아들은 나를 보며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은 무척 커져 있었다. 처음 이집에 왔을 때의 네다섯 배는 되는 듯싶었다. 이제 들켰으니 내 임무는 여기서 끝인가? 무사히 본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버그파이 3번은 무당벌레였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귀여운 모습의 벌레로 개발됐다. 들켜도 파리나 바퀴벌레처럼 죽는 일은 없도록. 채소가게에서 열무 단에 묻어 사람 집에 들어가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런데 인정 많은 그 집 아이가 꽃밭에 놓아준다고 바로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바람에 임무에 실패했다는 거다. 버그파이 3번에 비하면 나는 꽤 오래 버텼다. 아줌마는 카메라를 가져다가 꽃잎을 갉아먹는 내 모습을 찍었다. 이쪽 꽃에 뒷발을 걸치고 저쪽 꽃으로 건너가는 모습도 찍었다. 이 덩치로는 어디 숨지도 못한다. 내 몸을 가려줄 만큼 큰 잎도 없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나는 놀라서 몸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아주 기분이 나빴다. 누군가가 나를, 내가 하는 행동을 구경하는 건 참 언짢은 일이었다. 아줌마의 행동을 우리 본부 사람들이 다 보았다는 걸 알면 아줌마 마음은 어떨까? “식탁 위에 까만 게 떨어져 있기에 뭔가 했더니 벌레 똥이었나 봐.” “윽! 똥! 더럽게 식탁에…. 엄마, 벌레 얼른 밖에 버려.” 아들의 말에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를 밖에 버리라는 말 때문이 아니라 내가 똥을 쌌다는 사실 때문에. 그럼 나, 버그파이 5번은 먹고 똥도 싸고 몸도 자라는 살아있는 벌레였던 거야? “야, 불쌍하잖아. 밖에 버리면 추워서 얼어 죽을 거야. 곧 나뭇잎도 다 떨어지면 먹을 것도 없을 텐데. 저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 열심히 이만큼이나 자랐는데.” 내게는 더 이상 아줌마와 아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버그파이 4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같이 애벌레였던 버그파이 4번은 분명 시험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본부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다. 꽃집 언니가 나를 데리러 올 리도 없고, 내가 이 집에서 탈출한다고 해도 본부로 가는 길을 모른다. 내가 버려진 것처럼 그 애도 버려졌던 거다. 맛있게 먹던 꽃잎도 더 이상 먹기 싫어졌다. 그냥 아줌마를 엿보고 그것을 본부로 보내는 일이 내 임무라면서 내가 벌레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안 써줬다. 아니 내가 살아 있는 벌레라는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걸 가르쳐준 건 바로 아줌마다. “널 어쩌면 좋니? 곧 겨울인데 언제 번데기 짓고 나비인지 나방인지로 깨어날 거니? 참 딱하다.” 아줌마의 이야기대로라면 나는 지금 이 상태가 아닌 또 다른 뭔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아줌마한테 미안해졌다. 내가 얼마나 아줌마를 창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나를 파리채로 때리지도 않고, 살충제를 뿌리지도 않고, 밖에 내다 버리지도 않는다. 나는 더 이상 버그파이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줌마네 집에 불이 꺼져 깜깜한 밤에 나는 조용히 내가 살던 꽃병에서 내려왔다. 식탁을 타고 기어서 또 아래로 내려갔다. 따뜻한 바닥을 기어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향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처음 이 집에 오던 날, 좁은 마당에 잎이 많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가려는 곳이다. 거기 가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 게 될 것 같다. 나는 신발들 사이를 지나 찬바람이 불어들어오는 틈으로 빠져나갔다. ●작가의 말 집에 꽂아놓은 국화꽃 화병에서 제법 자란 애벌레를 발견했다. 벌레가 징그러웠지만, 살아 있는 생명을 어쩌지 못해, 잎과 꽃을 갉아먹으며 제 몸을 불린 벌레가 가엾어서 그대로 두고 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벌레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어딘가로 숨어들어서 번데기를 짓고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 벌레를 보며 상상한 것을 동화로 만들었다. ●약력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꽃은 흙에서 핀다’로 당선했다. 제7차 교육과정 2학년 1학기 읽기 교과서에 동화 ‘오른쪽이와 동네 한바퀴’가 실렸다. 저서:오른쪽이와 동네 한바퀴, 감자는 약속을 지켰을까?, 작은 숲이 된 의자, 코끼리 때문이라고? 등.
  • 서울 CCTV 노후화 심각

    서울 CCTV 노후화 심각

    최근 서울 구로동의 한 폐쇄회로(CC)TV에 오토바이 날치기범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인근 은행에서 수백만원을 찾아 나오던 한 여성의 가방을 낚아채 달아나는 모습이 다 촬영됐다. 그러나 정작 범인의 얼굴과 오토바이가 흐릿하게 찍히는 바람에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관내 한 경찰관은 “휴대전화 카메라에도 못 미치는 화소수를 지닌 오래된 CCTV는 사실상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라며 “첨단 고성능 CCTV로 교체해야 범죄 예방 및 범인 검거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지역 범죄예방용 CCTV가 늙어 가고 있다. 6개 가운데 1개는 내구 연한이 다된 것으로 나타나 성능 보완 및 교체가 필요하다. 특히 내년에도 1000개 안팎의 CCTV를 설치할 예정인 가운데 ‘질’과 ‘양’을 놓고 경찰과 구청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빚어지고 있다. 29일 본지 조사 결과 현재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설치된 범죄예방용 CCTV는 모두 3366대로 나타났다. 서울 지역 CCTV는 2002년 7대로 시작해 2005년 247대, 2007년 480대, 2008년 588대가 설치됐고, 지난해에는 무려 1129대가 추가됐다. 구청별로는 강남구가 552대로 가장 많고 도봉구(51대)가 가장 적다. 문제는 CCTV 설치가 늘고 있지만 교체가 필요한 노후 CCTV의 수도 급증하고 있는 것. 현재 서울 지역에 설치된 전체 CCTV 가운데 4년 이상 된 CCTV는 558대로 16%에 이른다. 내년이면 581대의 CCTV가 추가로 노후화 단계에 접어든다. 전문가들은 범죄예방용 CCTV의 내구 연한을 최대 4년으로 잡고 있다. 일부에서는 24시간 내내 작동하는 CCTV의 특성상 수명이 2년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한다. 경찰도 노후화된 CCTV를 화소수가 높은 고성능으로 교체해야 강력범 검거 등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경찰 관계자는 “5~6년 전에 설치한 것들은 성능 등에서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지자체 사이에 CCTV 설치 붐이 일 전망이다. 용산구 80대, 중랑구 68대, 광진구 53대, 동대문구 50대 등 구별로 적게는 수십대에서 많게는 백대 이상 CCTV를 새로 설치할 예정이다. 올 들어 ‘강호순 사건’ 등 강력 사건의 범인 검거에 CCTV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면서 주민들로부터 “우리 동네도 설치해 달라.”는 민원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청들은 노후화된 CCTV 교체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산 때문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대당 설치비용이 1500만~3000만원에 이르고 KT회선 사용료를 포함한 연간 관리비가 1대당 600여만원 들어가는 CCTV를 연식이 지났다고 무조건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CCTV 설치 대수가 치안강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CCTV를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증거능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CCTV의 성능 개선과 효과적인 운용 시스템 마련도 중요하지만 순찰강화 등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석 최재헌기자 ccto@seoul.co.kr
  • [뉴스다큐 시선] 연탄을 담은 풍경들[동영상]

    [뉴스다큐 시선] 연탄을 담은 풍경들[동영상]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그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詩,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시인은 말합니다, 조선팔도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득바득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연탄차라고. 불이 붙으면 그대로 재가 될 때까지 뜨겁게 더 뜨겁게 자신을 태우는 연탄. 세상을 얼릴 듯했던 겨울 새벽 추위를 모두 몸으로 견딘 것처럼 연탄은 회색빛 재로 변해 버렸습니다. 연탄보일러가 데운 한 칸 방의 온기, 연탄불에 구운 노릇노릇한 고구마의 달콤함….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기만 한 연탄에 대한 기억을 아직도 간직한 이들이 있습니다. 연탄재처럼 부서져 가는 기억의 마지막 끝을 일상인 양 잡고 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글 사진 안석기자 ccto@seoul.co.kr 제가 태어난 곳은 서울 시흥동의 연탄공장입니다. 오늘(21일)은 날씨가 좀 풀려서 그런지 공장 너머 지하철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은 아침부터 트럭 행렬이 이어지면서 휴일인데도 평일보다 더 시끌시끌합니다. 저는 지금 25t짜리 대형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는데 저와 제 친구들이 가는 곳이 부자 동네인 강남이라네요. 저도 이제 ‘강남물’ 좀 먹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자! 제가 어디로 가는지 함께 따라오시죠. ●서울 시흥동 연탄공장 이야기 제 고향 ‘고명산업’은 서울에 2개뿐인 연탄공장 중 하나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11월은 일년 중 가장 바쁜 시기지요. 하루 연탄 생산량은 30만장 수준입니다. ‘얼마 안 되네.’라고 생각하시나요? 무려 100대가 넘는 차량이 온종일 눈코 뜰 새 없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직원분들은 누가 오가는지도 신경도 안 쓰고 일만 하십니다. 제 아버지(?)는 1978년부터 이 공장에서 근무한 신희철 전무입니다. 아버지가 일을 시작했던 1970~80년대만 해도 서울에 연탄공장이 무려 19개나 있었답니다. 그때는 서울의 하루 연탄 소비량이 2000만장이나 됐다고 합니다. 당시 이 공장의 하루 연탄 생산량도 지금의 두 배가 넘는 60만~70만개 수준이었죠. 1970년대 석유파동 때는 하루 100만장까지 찍어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서울 지역 하루 연탄 소비량은 얼마나 될까요. 아버지 말로는 70만장 정도에 불과하다네요. 이 공장은 1990년대만 해도 과거 삼천리연탄(현 삼천리E&E)의 시흥 공장이었습니다. 연탄산업이 사양길을 걷던 1997년, 본사가 시흥 공장을 폐쇄하기로 하자 아예 당시 직원들이 공장을 인수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답니다. 공장을 새로 열 당시만 해도 10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는 한때 60명이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외환위기로 석유 대신 연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경기가 회복되자 직원 수는 자연스럽게 줄어 현재는 27명이 공장에 몸담고 있습니다. 직원 평균 연령이 60살이 넘을 정도로 평생을 연탄과 함께 한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새 직원을 고용하면 되지 않냐고요? 모르시는 말씀. 요즘 젊은이들은 연탄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꺼려합니다. 올 들어 경제가 어렵다 보니 사무실에 석유난로 대신 연탄난로 놓는 분들도 많지요. 그런데 아마 이런 인기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네요. 정부 아저씨들이 무연탄 수급 불균형 해소라는, 한번 들으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정책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랍니다. 쉽게 말해 공장에 지급하던 보조금도 줄이고 가격을 자율화한다는 얘기입니다. 벌써 1일부터는 연탄의 공장도 가격이 개당 403원에서 483원으로 올랐답니다. 시설농가 등에는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지요. 여하튼 저는 이제 강남으로 갑니다. 트럭에서 잠깐 잠이나 자야겠네요. ●거여동의 연탄 이야기 “47, 48, 49, 50…. 아니다, 49개까지 옮겼지. 다시 합니다, 49, 50, 51….” 어, 이게 무슨 소리야. 벌써 도착했나. 밖을 보니 20대 청년들과 10대 학생, 50대 아저씨가 함께 나란히 줄을 지어 연탄을 옮기고 있습니다. “연탄 200개를 옮기려면 아직도 멀었다.”면서 일행을 재촉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언뜻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남자가 함께 연탄을 들고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부자(父子) 사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어린 친구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걸 보니 부자 사이는 아니군요. 분명히 강남으로 간다고 했는데 여기는 강남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튼 연탄 특유의 냄새가 아침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을 전체로 번졌습니다. 아! 이제 알았습니다. 여기는 송파구 거여동. 서울에서 가장 연탄을 많이 때는 동네입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은 ‘따뜻한 한반도사랑의 연탄나눔운동(한반도연탄나눔운동)’의 무료연탄배달 행사에 온 분들이라는군요. 법무법인 지평지성, 대학생 동아리 단체 ‘케피터즈’ 등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허허, 저렇게 연탄 나르면 안 되는데, 몇 명은 처음 연탄배달을 하는 분들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연탄 몇 번 나르다 보면 땀이 저절로 흐를 겁니다. 자, 이제 제 차례가 됐습니다. 저는 어디로 갈까요. 저의 새로운 안식처는 홀로 사는 김융래(71) 할아버지의 집입니다. 김 할아버지는 자신의 단칸방 옆에 차곡차곡 쌓이는 연탄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는군요. 아마 5월까지 연탄을 써야 한다며 머릿속으로 연탄 수를 세고 계신 듯합니다. 김 할아버지를 비롯해 한 가구당 들어가는 연탄은 200~300장 수준입니다. 추울 때는 하루 3~4개, 날이 풀리면 1~2개의 연탄을 쓰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은 날이 조금이라도 풀릴 때에는 한 장이라도 아끼신답니다. 그래야 봄 사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추위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웃 주민인 안귀래(80) 할머니도 연탄을 쓰십니다. 안 할머니의 얼굴에는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데요. 몇몇 분들이 연탄을 받지 못하신다고 한숨을 쉬시네요. “지난번에는 연탄 없는 집에 우리 집 연탄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집이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안 할머니의 고운 마음에 저도 갑자기 뭉클해집니다. 올해 한반도연탄나눔운동과 함께한 단체는 지난해 300여개에서 500여개로 늘었다고 합니다. 참가자도 3만 2000명에서 5만명으로 늘었다는 것이 원기준 사무총장의 설명입니다. 기업체 등의 후원금이 줄어들고 있지만, 봉사활동 참가자가 많아지니 그래도 힘이 되는 소식 아닙니까? 한반도연탄나눔운동은 봄·여름 사이 전국을 대상으로 저소득층 연탄사용가구 실태조사를 한 뒤 9월부터 본격적으로 연탄 배달을 시작합니다. 원 사무총장의 표현을 빌리면, 연탄봉사활동은 ‘사회적 효도’입니다.. ●노원구 월계2동 연탄가게 이야기 아 참, 말이 나온 김에 얘기 하나 더 할게요. 동네 연탄가게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요즘에는 공장에서 직접 배달을 해 연탄가게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연탄을 살 일도 거의 없을 테구요. 제 친구 가운데 재개발이 예정된 노원구 월계2동의 연탄가게로 간 애들이 있습니다. 가격이 530원 정도에 팔린다니 저보다는 비싸게 팔리는 친구들이죠. 주인 김문국(53)씨가 구멍가게와 연탄가게를 함께 운영한다고 하는데요, 평생을 그곳에서 사셨다고 합니다. 김씨 연탄 창고에는 지금도 1000장 남짓한 연탄이 쌓여있습니다. 많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200장씩 나눠 갖는다고 계산하면 다섯 사람 정도 분량밖에는 되지 않는 양입니다. 제가 호황을 누리던 1960~70년대에는 하루에 수 백 장이 팔리는 것도 예사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주문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오히려 짜증을 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경사가 가파른 동네까지 배달을 나가다 보면 웬만한 공사판 노동일보다도 고됐기 때문이지요. 김씨가 연탄배달 나갈 일이 크게 줄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인근에 주공상계19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일대의 연탄 판매량은 갈수록 급감했고 지금은 단골 빼고는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제가 김씨의 연탄가게에 갔으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봄이 될 때까지 새 주인도 못 만나는 신세가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여하튼 저는 이제 담담히 재가 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모두 따뜻한 겨울 보내십시오. 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 연탄의 역사 1966년 석유에 밀려 하향기 1990년대 초 폐광시대 맞아 탄광매몰 사건이나 연탄가스 중독사고는 1970~80년대 일간지의 사회면을 장식한 단골메뉴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연탄무료배달 소식 정도만 간간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연탄전성시대는 갔다. 우리나라 연탄공장의 효시는 대한제국 시기에 일본인이 평양에 설치한 공장이다. 광복 후에는 대성산업이 연탄공장의 맹아(萌芽)였고, 삼표·삼천리연탄 등 3대 메이저사가 1960년대를 대표했다. 이후 연탄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1963년 말 전국의 연탄공장 수는 400여개에 달했다. 그러나 업체 간 과열경쟁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고 불과 2년 뒤인 1965년에는 3분의1 수준인 130여개로 공장 수가 줄었다. 정부도 1966년부터는 에너지 정책 중심을 석탄에서 석유로 옮기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석유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37.4%를 차지해 처음으로 석탄을 추월했다. 1973년 석유파동으로 연탄 소비량이 잠시 늘기도 했지만 내리막길을 걷는 연탄의 소비감소 추세를 막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도시가스의 보급으로 연탄의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1990년대 초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폐광시대를 맞았다. 현재 에너지 소비에서 연탄·무연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2.1% 수준이다. 난방보다는 고깃집 등 음식점 연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현장 행정] 주민 외국어 교육… 통역 요원으로

    [현장 행정] 주민 외국어 교육… 통역 요원으로

    “Make a left turn and go straight.(좌회전을 한 후 직진하시면 됩니다.)” 자리를 가득 메운 70여명의 수강생이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운다. 따라 읽는 목소리도 우렁차다. 일반적인 영어 학원과는 강의내용이나 앉아있는 수강생 모두 사뭇 다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도 있고, 환갑을 앞둔 아주머니도 눈에 뜨인다. 지난 20일 종로구 가회동 주민센터 강당에서 열린 ‘북촌 주민 외국어 강습반’의 풍경이다. 북촌 주민 외국어 강습반은 종로구가 추진중인 ‘관광 1번지 종로 관광 명소 만들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지난달 13일 처음 개설됐다. 최근 가회동과 삼청동 일대인 북촌이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지역 관광 안내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이병호 문화공보과장은 “길에서 만난 현지 주민들도 거리낌 없이 외국인을 안내할 수 있는 ‘전 주민의 관광안내 요원화’ 차원에서 탄생한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4개월 과정의 강습은 딱딱한 문법보다는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안내 위주의 실용 회화 수업이다. 특별한 교재도 마련됐다. 종로에 있는 대학중 하나인 배화여대가 흔히 쓰이는 수백여 가지의 사례별·상황별 실용회화 어구들을 모아 교재를 만들어 무료로 제공했다. 강사료는 배화여대와 종로문화관광협의회가 절반씩 지원한다. 수업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열리고 영어는 오후 2시, 일어는 오후 3시30분부터 1시간30분씩이다. 중국어반도 조만간 개설될 예정이다.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김창숙(58·가회동)씨는 “평소 동네 골목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혹시라도 말을 걸까봐 두려웠다.”면서 “이번 강습을 열심히 듣고 우리 동네를 찾은 관광객들을 친절과 정성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종로구는 종로문화관광협의회 내에 돈화문, 대학로, 종로·청계, 동대문·낙산 협의회 등을 구성하고 전 지역에서 관광 외국어 익히기 붐을 조성할 계획이다. 삼청동주민센터에서는 매일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 5일부터 주민센터 청사 옥외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사랑하는 연인들의 사랑의 메시지, 부모님과 스승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 등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랑과 감동의 메시지’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어서다. 이상찬 삼청동장은 “주민 분들이 직접 말하기 어려운 속마음을 보다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사랑과 감동의 메시지는 주민센터 홈페이지와 카페 스마일삼청동(cafe.daum.net/smilesamcheong), 전화(731-0867), 방문접수 등으로 신청이 가능하고 자격과 시기에는 제한이 없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노란우체통(봉현주 지음·국선희 그림, 처음주니어 펴냄) 세상을 떠난 아빠와 열세살 딸 솜이를 이어주는 노란 우체통의 가슴 훈훈한 이야기다. 세상을 떠나기 전 당당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많은 편지를 써놓은 아빠와 하늘나라의 아빠,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솜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노란 우체통은 실제로 경북 봉화군에 있다. 9500원. ●모하메드의 운동화(원유순 지음·김병하 그림, 봄봄 펴냄) 전쟁과 테러의 한복판인 중동 어느 지역에 사는 소년 모하메드는 한국의 식이가 내다버린 운동화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축구 선수를 꿈꾸던 모하메드는 어느날 고철을 줍다가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잃고 만다. 한국과 중동땅을 오간 운동화의 눈높이에서 얘기하는 평화의 가치는 조용하지만 선명하고 감동적이다. 8500원. ●당산 할매와 나(윤구병 지음·이담 그림, 휴먼어린이 펴냄)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어 ‘변산 공동체’를 가꾸어 온, 수많은 어린이 그림책의 저자 윤구병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변산으로 살 곳을 찾아 내려오면서 만난 당산나무(당산 할매)와의 교감을 일러스트레이터 이담의 사실주의적 그림과 함께 포근하게 들려준다. 1만 2000원. ●괴물 길들이기(김진경 지음·송희진 그림, 비룡소 펴냄) 아이들은 늘 “왜?”, “돼!”를 말한다. “안 돼.”를 입에 달고 사는 어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인공 민수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왜?’, ‘돼!’라고 이름붙은 괴물들은 어른들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민수의 심리적 성장통을 상징한다. 판타지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가는 김진경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7500원. ●너울가지(박경태 지음·임연기 그림, 나비 펴냄) 네 가지 가슴 먹먹해지는 얘기로 묶여 있다. 서먹했던 아버지를 뒤늦게 이해하는 해미의 이야기 ‘해미의 결혼식’,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시뿌 아저씨와의 가슴 아픈 헤어짐을 담은 ‘시뿌의 낡은 수첩’, 순박한 시골 소년 달호가 갈래머리 소녀와 나누는 애틋한 우정과 사랑 이야기 ‘알고도 모른 척’은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케 한다. 8500원. ●괜찮아 괜찮아 두려워도 괜찮아(제임스J 크라이스트 지음·홍성미 옮김, 길벗스쿨 펴냄) 아이들의 우울증은 자각하기 어려워 어른들의 관찰이 없다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수업 시간의 발표, 동네 골목의 무서운 개, 친구 문제 등 걱정과 무서움, 불안을 떨치고 마음을 건강하게 다스리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시각화, 체계적 둔감법, 생각지도 만들기 등 전문 심리치료법이 제시된다. 1만원.
  • 달동네서 34년 사랑의 인술… 파란눈 여의사의 한국사랑

    달동네서 34년 사랑의 인술… 파란눈 여의사의 한국사랑

    “저녁 때는 녹초가 돼요. 하지만 웃음을 되찾은 환자들을 보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18일 오전 기자가 찾아간 서울 시흥5동 전진상(全眞常)의원. 60㎡ 남짓한 환자대기실에는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환자들로 북적댔다. 걱정스럽고 초조한 눈빛의 환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파란눈의 여의사’부터 찾는다. 큰 병원에 갈 만한 형편이 안 돼 이곳을 찾은 ‘판자촌’ 주민들은 그녀를 한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어두웠던 낯빛이 밝아진다. 배현정(63) 원장. 벨기에 태생으로 본명은 마리헬렌 브라쇠르. 1975년 이곳에 정착해 34년째 달동네 주민들을 돌보고 있다. 배 원장은 오전 9시부터 가난한 환자들을 맞이한다. 그녀의 일은 단순히 진료만이 아니다. 환자들은 배 원장에게 가족, 진학문제까지 털어놓는다. 어떤 환자와는 30분 이상 얼굴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녀는 “주사만 놓는 의사가 아닌 가족환경까지 다 볼 수 있는 ‘진짜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프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곳” 날마다 수십명의 외래환자를 맞아 피곤할 법도 한데 저녁이 되면 호스피스병동의 말기환자와 가족들을 돌본다. 배 원장은 “해외에서 도착하는 성금 관련 업무와 빈곤층 아동기금 등의 복지사업 업무까지 도맡아 하기 때문에 일을 마치면 새벽 2~3시가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 원장은 “아프면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며 미소를 띤다. ‘환자에게 받은 가장 뜻깊은 선물이 뭐냐.’고 묻자 “어느 크리스마스날 도착한 마늘”이라고 말한다. 30여년 전 병환이 있는 친정어머니와 가족을 돌보던 한 중년여성이 배 원장에게 감동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신문에 곱게 싼 마늘 한 접을 감사의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배 원장은 벨기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봉사단체인 국제가톨릭형제회에 입회한 뒤 1972년 우리나라를 찾았다. 수녀인 그녀는 1975년 고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으로 이불보따리와 노란 냄비 하나만 달랑 들고 ‘전진상 가정복지센터’를 차렸다. 의료봉사자의 도움을 받는 것에 한계를 느낀 배 원장은 1981년 중앙대 의대에 편입, 5년 만에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땄다. ●극빈층 무료 진료·생계비 지원 매달 생활형편이 어려운 200여명에게는 진료비를 한푼도 받지 않고 있으며 50명에게는 무료 왕진도 해준다. 해마다 50명의 중·고교생에게는 장학금을 주고 있다. 무료 유치원과 공부방도 만들었다. 일부 주민에게는 생계비와 양육비도 지원해 주고 있다. 배 원장은 25일 서울아산병원 내 아산교육연구관 강당에서 열리는 제21회 아산상 시상식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억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필리핀에서 시집왔지만,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혼자가 돼 버린 알렌.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삼남매를 키우며 외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삼남매에게 ‘아빠’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둥이 생긴다. 새 아빠가 생긴 후 그들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1 대 100(KBS2 오후 8시50분) 첫 번째 도전자는 각종 퀴즈대회 우승 석권, 자타공인 퀴즈박사. 가요계의 똘똘이 스머프 가수, 홍경민. 과연, 연예인 2호 5000만원의 주인공이 탄생할 것인가? 두 번째 도전자는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집념의 사나이. 다수 경력의 신세대 국어선생님. 부드러운 카리스마, 예심통과자 김기훈이 도전한다. ●살맛납니다(MBC 오후 8시15분) 유진네와 나리네는 함께 식사를 하며 결혼식 날짜를 조율한다. 한편, 매콤한 쫄면을 먹던 민수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너무 행복하다고 동생 경수에게 고백한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는데 아이를 갖게 되고 희망이 생겼다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25분) 경남 김해에 리틀 장동건. 그 뒤에 가려진 두 얼굴. 세상 모든 물건은 내가 접수한다. 네 것 내 것 다 내 것. 뭐든지 내 것이라 외치는 4살 김 강. 울음과 폭력으로 무장한 독불장군. 시도 때도 없이 엄마 가슴에 집착하는 아이. 과연, 4살 아이에게 마법 같은 개선안이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본다. ●공부의 왕도(EBS 오후 10시40분) 수리영역 38점에서 100점으로! 6개월 만에 수학을 정복한 부산 용인 고등학교 2학년 김지범 군. 계속 떨어지기만 하던 수학 점수를 60점이나 올린 김지범 군의 비법은 단 한 권의 문제집. 문제집을 푸는 횟수가 거듭될 때마다 걸리는 시간과 오답의 수가 줄었고 2학년 모의고사에서 수리영역 만점을 받았다.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 치매를 앓는 부인을 11년째 홀로 돌보며 살아가는 이수길씨를 만나본다. 아내 김영자씨는 50대 초반 꿈에도 생각지 못한 초로기 치매가 찾아왔다. 동네에서도 소문난 잉꼬부부. 이수길씨는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에게 진정한 사랑을 담아 헌신적으로 돌봐주는데….
  • [책꽂이]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최영미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00년 나온 책의 개정판. 당시 나온 산문집에서 몇 편 글을 골라 뽑아 수정했고, 2002년부터 최근까지 발표한 에세이를 더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민과 그 속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1만 1000원.●시간의 동공(박주택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전작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이후 5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 폐허 같은 삶 속에서 숨어 있는 광기와 수치, 또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정화내는 시인의 고통 등에 대해 노래한다. 제20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표제작 외에 69편이 실렸다. 7000원.
  • ‘얼굴 반 크기’ 딸기코 가진 할아버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술을 마셔온 60대 중국인이 얼굴의 반 만한 딸기코를 가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 현지 신문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성 톄링에 사는 리우 제(68)는 10여 년 전부터 코가 부풀어 오르더니 끝에 혹 두 개가 생겼다. 혹은 계속 커졌고 급기야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동네 사람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2리터 가량의 술을 마신 탓이라며 그를 ‘딸기코 할아버지’라고 놀렸다.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놀림에 오히려 즐거워 했다. 16세 때부터 양조장에서 일해온 할아버지가 하는 일이 술을 직접 마셔 맛을 보는 것인 터라 5cm에 달하는 ‘딸기코’가 훈장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맛을 판단하려면 술을 직접 마셔봐야 한다. 내게 술을 마시는 건 물 마시는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코가 얼굴의 반을 뒤덮어 볼썽사나울 뿐 아니라 숨도 잘 쉬어지지 않자 할아버지는 가족의 권유로 수술을 결심했다. 혈관이 팽창해 코가 부푸는 비류(rhinophyma)를 진단 받은 그는 최근 선양에 있는 성지병원에서 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병원 측은 “술을 지속적으로 마신 탓”이라면서 “고령인 만큼 독한 술을 계속 마시는 걸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3억 받아 강남 살고 싶어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와 누나를 살해한 10대 패륜아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9일 장모(17·무직)군에 대해 존속살해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군은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후배 김모(15·구속)군에게 “부모와 누나를 살해하면 보험금이 나오는데 이중 일부를 주겠다.”고 꾀어 지난달 10일 새벽 중랑구 면목동 자기 집에 불을 지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군은 장군의 사주를 받고 장군 집에 몰래 들어가 거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질러 방에서 잠을 자던 장군의 어머니 김모(49)씨와 누나(19)를 불에 타 숨지게 했다. 조사 결과 장군은 집 대문의 우유배달 주머니에 열쇠를 넣어 김군이 집안으로 침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장군은 범행 시각에 여자친구와 강원도 휴양지로 놀러가 사진을 찍고 이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등 알리바이를 만들어 범행을 은폐하려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장군은 경찰에서 “보험금 3억원을 타내 강남에서 살고 싶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 강동경찰서는 이날 평소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살해한 조모(26)씨를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했다. 조씨는 전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에게 항의하던 중 아버지가 자신의 뺨을 때리자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나온 뒤 달아나는 아버지를 뒤쫓아 찌른 것으로 드러났다. 아버지 최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이재연 오달란기자 oscal@seoul.co.kr
  • 마트 파고든 금융사… 은행 웃고 보험사 운다

    마트 파고든 금융사… 은행 웃고 보험사 운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이지영(34)씨는 얼마 전부터 주말 대형마트를 찾기 전 가장 먼저 아파트 관리비와 가스비 등 각종 고지서를 챙긴다. 집앞 대형마트 안에 은행 점포가 들어서면서 밀린 은행 일을 몰아서 보기 위해서다. 이씨는 “직장에도 코앞에 은행이 있지만 일하다 짬을 내기 쉽지 않다.”면서 “요즘은 연체료 내는 일이 부쩍 줄었다.”고 미소 지었다. 동네 대형마트 속에 금융이 자리잡고 있다. 올 들어 시중은행을 시작으로 보험·카드·캐피털까지 앞다퉈 마트 속으로 입점하고 있다. 간이 판매대에서 손님을 받던 과거 모습과는 달리 번듯한 매장에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으로 치장하는 등 업계도 적극적이다. 고객의 쇼핑 카트 속에 금융상품을 집어넣는 것이 업계의 목적이다. 9일 금융계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롯데마트 매장에 연중무휴(설, 추석 제외)로 운영되는 ‘IBK스토어뱅크’를 문연다. 오는 19일 롯데마트 울산 진장점과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점을 시작으로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도 추가로 지점을 열 계획이다. 개·폐점시간 등은 철저히 주부의 쇼핑 일정에 맞춰 오전 11시~오후 8시로 정했다. 평일엔 은행 일을 보기 어려운 직장인을 위해 주말에도 늘 문을 열기로 했다. 선두주자는 하나은행이다. 지난 5월 국내 최초로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안에 은행을 차렸다. 보험사들도 대형마트와 제휴하느라 여념이 없다. LIG손해보험이 지난 8월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보험 매장을 열었고, 9월 라이나생명도 홈플러스 인천 가좌점에 보험 컨설턴트를 상주시켰다. 같은 달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카드·롯데캐피탈 등은 함께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롯데마트 서울역점 등 2곳에 ‘롯데금융센터’를 개점했다. AIA생명도 홈플러스 서울 강서점에 최근 점포를 냈다. 은행과 대형마트와의 만남은 ‘성공적 제휴’라는 자체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업계 최초로 마트속에 문을 연 하나은행 지점 3곳은 각각 개설 3개월 만에 신규 고객이 4000여명 이상 몰릴 정도다. 보통 새로 생긴 은행 점포가 고객 5000명을 모으려면 1년가량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성적이다. 권재환 하나은행 강동홈플러스점 지점장은 “신규고객 수부터 카드 발급 숫자까지 일반 점포와 비교하면 최고 4배 정도의 성장세”라면서 “본부에서도 성공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기대만큼은 아니다.’는 평이다. 문의는 많지만 눈에 실적이 보이지 않아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문의는 확실히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실적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장(場)에서 판이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업계의 특성도, 파는 물건의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마트는 일일 방문자 수는 많지만 같은 고객이 다음날에도 다시 마트를 찾는 일이 많다.”면서 “결국, 같은 손님이 같은 지점에서 반복해 업무를 보는 은행에는 대형마트가 좋은 조건일지 몰라도 계속 새 고객을 모아야 하는 보험은 약점이 분명한 셈”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시간을 꼽는다. 대형마트 고객이 보통 장을 보는 데 할애하는 시간은 평균 1시간 반 정도. 문제는 신규 가입자가 보험상담사를 만나 가입을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1시간 정도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 5월 동양생명은 업계 최초로 신세계 이마트 66개 지점에 보험 상담창구를 설치했다. 하지만, 두달여만에 철수했다. 유영규 최재헌기자 whoami@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암염소 오드리/정영애

    [엄마와 읽는 동화] 암염소 오드리/정영애

    ‘미희’씨의 이름에서 느껴지듯 아름다운 부인이었습니다. 자상한 남편에 집안도 넉넉하였습니다. 그래서 미희씨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미희씨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슬하에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미희씨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미희씨는 자식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나갈 자신이 있었습니다. 의사로부터 임신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유명한 의사라는 소문만 듣고도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갔으며, 임신에 도움이 되는 약이라면 의사의 처방을 받기는커녕 약값조차 따지지 않고 먹었습니다. 그러길 10년, 미희씨와 달리 남편은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아기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내의 눈물겨운 노력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세월만 가면 해결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미희씨가 그 일로 우울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하자 남편은 큰 결심을 했습니다. ‘시골로 이사를 가자. 시골은 바쁜데다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단 말이야.’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시골로 이사를 갑시다. 마당에 예쁜 꽃밭을 만들고 텃밭에 채소를 가꾸고 닭을 키우며 여유롭게 살아봅시다. 내가 또 생각한 게 있소. 당신은 결혼과 동시에 그만둔 그림을 다시 그리는 거요.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내 모습을 화폭에 담아주면 나로선 더 바랄 게 없겠소.” 처음에는 미희씨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생활환경을 바꾸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얼마 뒤 미희씨는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시골 생활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미희씨는 아름다운 꽃으로 마당을 장식하고 밥상에 올릴 채소를 가꾸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 재미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내 아이들이 이 넓은 마당을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생각이 미희씨를 괴롭혔습니다. 어느 날 저녁 미희씨가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한낮의 밝은 햇빛이 이제는 서쪽 산꼭대기에 몇 줄기 빛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아랫집 송할머니네 집 염소가 미희씨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염소는 풀을 뜯다가 가끔 머리를 들어 ‘음매에’ 하고 울었습니다. 그 소리가 마치 ‘엄마아’ 하고 아기가 엄마를 부르는 것 같아 가슴이 찌르르했습니다.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송할머니는 바쁜 모양인지 염소를 데리러 오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미희씨가 염소를 몰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염소는 뿔이 길고 힘이 셌지만 온순했습니다. 미희씨가 송할머니에게 염소를 기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송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렸습니다. 아침마다 산으로 끌고 가 나무에 묶어 놓았다가 저녁에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무엇보다 귀찮다고 했습니다. “저 혼자 하루 종일 산에서 풀을 뜯어 먹으니까 키우긴 쉬워. 하지만 갑자기 소나기라도 와 봐. 들일 하다가 동동걸음을 쳐서 달려가야 한다니까. 성깔 더러운 놈은 주인 말도 안 들어. 그것뿐만이 아니야.” 송할머니는 지금까지 네 마리의 염소를 키웠는데 그 중 두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염소 값이 비싸니까 염소 도둑이 훔쳐 갔는지 산짐승이 내려와 물고 갔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또 염소를 기르세요?” 미희씨의 말에 할머니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키워서 팔면 돈이 되니까. 그리고 저 녀석 우는 소리를 들으면 어릴 적 내 새끼들이 들로 나간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좋아.” “어쩜.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미희씨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마침 다음 날이 장날이었습니다. 미희씨는 남편과 함께 장으로 나갔습니다. 장에 팔려고 나온 염소가 스무 마리도 넘었습니다. 대부분 큰 염소였는데 한 마리만 어린 암염소였습니다. 미희씨가 암염소 앞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암염소의 까만 털과 긴 속눈썹과 선한 눈망울이 미희씨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내 앞에 앉은 아름다운 미희씨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미희씨는 지금의 내 주인처럼 심술궂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을 안 듣는다며 듣기 싫은 욕도 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무엇이나 다 해 줄 것 같았습니다. 미희씨는 내가 아주 마음에 드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지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내 눈에 눈을 맞추고 방긋 웃기도 했습니다. 나는 미희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몸을 꼿꼿이 세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희씨가 탄성을 질렀습니다. “여보, 이 어린 염소 좀 봐요. 눈매가 예쁘고 참 영리하게 생겼어요. 까만 털이 윤기가 나서 모피 코트를 걸친 것 같아요.” 미희씨는 내 주인이 부르는 값에서 한 푼도 깎지 않고 나를 샀습니다. 나는 미희씨가 사는 예쁜 집으로 왔습니다. 미희씨가 내 이름을 ‘오드리’라고 지어주었습니다. 내가 외국 여배우처럼 예쁘게 생겼다며 붙여준 이름입니다.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는 미희씨가 엄마처럼 좋았습니다. 나를 자식을 돌보듯 지극 정성으로 위해 주었거든요. 미희씨는 나를 송할머니네 염소처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미희씨 집에 온 후 한번도 심술을 부리지 않고 온순하게 굴었습니다. 그저 미희씨 뒤만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먹기 싫어하는 억센 풀을 줘도 풀을 입에 물고 머리를 흔들어 흩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미희씨는 집안일이 끝나면 그림 그릴 도구를 챙겨 나를 데리고 산으로 갔습니다. 나는 미희씨가 내 울음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미희씨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끔 음메에 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면 미희씨는 붓을 놓고 달려와 한 손으로 나를 안고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귀여운 내 새끼!” 이 말을 들으면 나는 정말 미희씨의 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큰일이 났습니다. 송할머니네 염소가 또 없어진 것입니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미희씨는 크게 놀란 모양이었습니다. 미희씨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걱정 마, 넌 내가 지켜 줄 거니까!” 그 날부터 나도 송할머니네 염소처럼 밧줄을 목에 달았습니다. 밧줄이 길면 그런대로 자유로울 텐데 짧아서 답답했습니다. 남편이 내 마음을 알고 말했습니다. “오드리가 얼마나 답답하겠소. 그냥 자유롭게 다니도록 해 주구려. 그래야 튼튼해져서 위험에 대처할 힘과 지혜가 생기지.” 미희씨는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건강은 걱정마세요. 잘 먹이면 되니까요. 지금은 오드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해요.” 미희씨는 거실에서 잘 보이는 나무에다 나를 묶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멍하니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미희씨가 내 건강을 위하여 부드러운 풀도 베어오고 싱싱한 채소도 갖다 주었지만 내가 직접 뜯어먹는 것보다 맛있지 않았습니다. 미희씨는 나에게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도둑이 너를 향해 다가오면 크게 우는 거야. 알았지? 자, 내가 너를 훔쳐가려고 해.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음매에.”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런데 이럴 땐 길게 울지 말고 ‘매’하고 비명을 지르란 말이야.” “매!” “옳지. 아주 잘했어. 자, 이번엔 여우나 멧돼지 같은 무서운 산짐승이 나타났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뿔로 콱 받아버리지요.” “정답. 역시 넌 송할머니네 염소처럼 멍청하지 않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미희씨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미희씨의 은혜를 갚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즈음 다람쥐 한 마리가 나를 찾아 왔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묶여 있는 나무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내 시선을 끌더니 언제부터인지 우린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람쥐는 미희씨처럼 예뻤는데 꼬리가 특히 귀여웠습니다.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너, 너무 지루하지?” “응. 그래.” “너도 나하고 같이 산에 가면 좋을 텐데.” “싫어. 난 무서워.” “모르는 소리. 산이 얼마나 좋은데. 산에는 온갖 종류의 풀들이 다 모여 있어. 부드러운 풀은 얼마나 맛이 좋은데. 네 주인이 주는 풀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 아름다운 꽃도 지천으로 피어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노란색 벌노랑이는 황홀하다니까! 야생화들의 향기는 또 어떻고.” “염소 도둑이나 산짐승을 만나면?” “에이, 바보. 덤불숲에 숨거나 니 뿔로 받아 버리면 되지.” 다람쥐의 말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람쥐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의 말은 내 귀에 남아 뱅뱅 맴을 돌았습니다. 나는 자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나를 묶고 있는 밧줄을 끊어버리고 다람쥐가 말하는 산으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더 지겨워졌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밧줄을 탱탱하게 당기느라 안간힘을 썼습니다. 다람쥐가 손뼉을 치며 응원을 해 주니까 힘이 났습니다. 내 입에서 거친 숨이 뿜어져 나오고 신음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밧줄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밧줄을 끊고 도망을 간다면 넓은 초원에서 뒤로 벌러덩 누워 나뒹굴고 싶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아래를 향해 구르고도 싶었습니다. 산 속을 헤집고 다니며 내가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먹고 싶었습니다. 나는 변했습니다. 나는 이제 미희씨가 주는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저 도망칠 궁리만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내 몸은 말라만 갔습니다. 그 날은 그믐날 밤이었습니다. 어둠이 나를 유혹하였습니다. ‘이럴 때 도망가는 거야! 깜깜해서 좋잖아.’ 나는 빙글빙글 돌면서 그렇지 않아도 짧은 밧줄을 더 짧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밧줄을 사정없이 당겼습니다. 그러길 여러 수십 번. 다음 날 아침, 미희씨의 비명을 듣고 남편이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가엾은 오드리는 가만히 땅바닥에 누워 있었고, 밧줄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오드리가 도둑과 싸워 이겼어요. 이것 좀 보세요. 정말 장하지요?” 남편은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약력 진주교육대학 졸업. 한국 동화 문학상, 가톨릭 아동 문학상 수상. 저서:우리는 한 편이야. 서울특별시 시골 동네. 미리 찾아온 사춘기외 다수. ●작가의 말 언제나 그러하듯 엄마들의 최대 관심은 아이들의 교육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 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이름난 학원, 훌륭한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얻어 아이의 능력에 관계없이 이 학원 저 학원을 돌아다닌다. 이렇게 한다고 아이들이 바람직하게 자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쓴 동화가 ‘암염소 오드리’다.
  • 게골스 골드 “男스토커, 경찰에 신고” (인터뷰)

    게골스 골드 “男스토커, 경찰에 신고” (인터뷰)

    3인조 혼성그룹 게리골드스미스(GaryGoldSmith, 이하 ‘게골스’)의 여성 멤버 골드(본명 김지영)가 최근 남성 스토커로 인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최근 골드는 서울신문NTN과 가진 인터뷰에서 새 타이틀곡 ‘내 사랑 스토커’와 관련, “스토킹을 당해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어렵게 이 같은 사실을 고백했다. 본래 고향이 부산인 골드는 현재 연예계 활동으로 인해 서울시 모 여대 근처에 거주하고 있다. 골드는 “약 한두 달 전부터 매일 새벽 비슷한 시각이 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골드는 “새벽 한두시가 되면 밖에서 ‘저 ㅇㅇ예요. 보고싶다. 문 열어달라’며 문을 마구 두들긴다. 처음에는 제가 알고 있는 가수 연습생과 이름이 똑같아 문을 열 뻔했다. 그런데 잘 들어보니 음성이 달랐다.”고 털어놨다. 스토커는 자신을 소개하며 집요하게 문을 열라고 강요했다. 골드는 “그가 ‘저는 이 동네에 3년 이상 살았는데, 그 때부터 쭉 그 쪽을 지켜봤다’면서 ‘일단 문을 열고 이야기 좀 하자.’고 하는데 너무 너무 무서웠다.”고 두려워했다. 인터뷰 바로 전날에는 아침 6시에 찾아오는 과감함을 보였다. 골드는 최근 경찰서에 스토커를 신고했다. 경찰서가 집과 3분 내 거리지만 출동 후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한 상태. 골드는 “일단 신고가 접수돼 있는 상태라 경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소속사 몬스터월드 측도 “만약의 사태가 우려돼 매일 아침 골드의 집 앞까지 직접 데리러 가고 있다.”며 “기사화가 됐을 경우, 스토커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다. 한편 게골스의 홍일점을 맡고 있는 골드는 가창력과 댄스 실력을 겸해 최근 표인봉과 SM에서 제작을 맡은 뮤지컬 ‘동키 쇼’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지난 7일 MBC ‘쇼! 음악 중심’으로 컴백한 ‘게골스’는 ‘내사랑 스토커’의 첫 라이브 무대 후 호평을 이끌어내며 당일 포털 검색어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강동구 희망근로자 대상 인문학 강의

    강동구 희망근로자 대상 인문학 강의

    “인문학이 뭔지는 몰라도 강의를 들으면서 못 배운 설움을 차분하게 푸는 것 같아요.”(임순희·61·여·서울 강동구 천호3동) 서울 강동구가 희망근로자를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고 3일 밝혔다. 지난달 19일부터 시작된 인문학 강좌는 18개 주민센터를 돌아가며 개최되고 있다. 모두 72시간으로 구성된 강좌의 강사로는 경희대 교수 10명이 나섰고, 수강생은 희망근로자 993명이다. 수강생들은 ‘지혜로운 삶과 공동체의 삶’을 2시간씩 배운다. 또 시낭송을 함께 하고 동네 골목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마치고 강좌를 듣는다. 수강생 임순희씨는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며 하루에 3만 3000원을 받는다. 주5일 근무로 한달 60만원의 수입이 고작. 임씨는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남편과 사별한 후 이 적은 돈으로 고달픈 삶을 꾸리고 있다. 임씨는 “내 이름도 잊고 아줌마, 할머니로 살았는데 못 배운 설움을 조금이나마 푸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성모(52·성내2동)씨는 “밥 한 그릇 , 소주 한 잔이면 모를까 쓰레기 줍는 우리에게 무슨 인문학 강좌냐고 불평했지만 계속 듣다보니 가족을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의 최영준 교수는 “인문학은 ‘여보 미안해’ ‘사랑해’와 같이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자존감을 찾아주는 것”이라며 “인문학이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해식 구청장은 “민생대책인 희망근로사업이 6개월 정도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인문학 강좌를 덧붙였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뉴스다큐 시선]한남동을 통해 본 보이지않는 눈 CCTV

    [뉴스다큐 시선]한남동을 통해 본 보이지않는 눈 CCTV

    폐쇄회로(CC)TV가 대중화되면서 ‘보안격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있는 사람’은 CCTV를 통해 타인을 들여다보고, ‘없는 사람’은 부자에 의해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CCTV는 이렇듯 새로운 권력의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CCTV로 거리를 바라보는 대저택의 시선은 집요했고 이를 대하는 서민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분노하거나, 순응하거나, 혹은 냉소하거나. 부촌과 빈촌이 공존하는 서울 한남동에서 CCTV가 만들어내는 천태만상을 지켜봤다. 글·사진·동영상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누군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바라봄을 ‘당하는’ 사람보다 힘이 세다. 시선은 권력이다. 그러므로 폐쇄회로(CC)TV는 새롭게 떠오른 권력의 도구다. 정부는 ‘치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전국의 도로와 골목길 사이사이에 CCTV를 달아놓고 24시간 감시체제를 확립했다. CCTV를 통해 획득하는 공권력은 이제 민간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집에 CCTV를 달아놓고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표면적인 이유는 절도·강도사건을 미연에 방지해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가진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CCTV는 부(富)에 ‘시선 권력’이라는 또다른 요소를 더한다. ‘빈부 격차’라는 말에서 ‘보안 격차’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지점이다. ●“일거수일투족 감시받는 느낌… 사생활 침해” 이런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 중 하나가 서울 한남동이다. 남쪽에 있는 한강의 ‘한’자와 북서쪽에 있는 남산에서 ‘남’자를 따 이름지어진 한남동은 삼성, 현대, LG 등 굴지의 재벌가들이 모여 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 등 많은 나라의 대사관도 밀집해 있어 외국인도 많이 거주한다. 그러나 한남동에서 산 능선만 넘어가면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정착해 판자촌을 이뤘던 해방촌 등 빈촌도 찾아볼 수 있다. 3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 호텔 밑으로 ‘이태원길’과 ‘새봄길’이 마주 지나는 곳에는 대형 단독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유럽 귀족의 성벽처럼 드높고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 담벼락과, 철옹성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굳게 닫힌 창문은 집 밖에 있는 어떤 외부인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엿보인다. 거기에 하나같이 내걸린 사설 보안업체의 팻말은 최정예부대의 군번표처럼 가지런하다. 그중 화룡점정은 날렵하게 길거리를 굽어보는 CCTV다. 어떤 집은 대문 앞에만, 어떤 집은 담장을 둘러가며 CCTV가 도열해 있다. 새까맣고 기다란 몸체에 매의 눈같이 날카롭게 박힌 카메라 렌즈는 길을 지나가는 모든 것을 훑어내겠다는 듯 집요해 보인다. 이런 집요함에 압도당해서일까, 길거리는 한낮인데도 인적이 드물다. 가끔 지나가는 것은 창문을 짙게 선팅한 검은색 세단 아니면 승객을 실어나르는 택시뿐이다. 군사지역이 아닌 주택가인데도 곳곳에 ‘경비 초소’가 있는 몇 안 되는 동네인 한남동에서 배포있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종종걸음을 옮기는 한 흑인 청년과 마주쳤다. 제임스 아칸(James Akan)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은 나이지리아 대사관 직원이었다. 한남동에 산 지 1년 반이 됐다는 그는 CCTV에 대해 “좋은 것 아니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듯한 CCTV를 보면 과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CCTV는 만일의 경우를 위해 있는 것 아닌가. 만일 이 동네에 살인이나 강도같이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 CCTV는 범인을 잡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증거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CCTV를 달고 있는 집에만 좋은 것이 아니고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나를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시선은 바라보는 자의 시선과 동일선상에 있었다. 새봄길을 따라 내려가니 삼성문화재단이 2004년 세운 리움 미술관이 나왔다. 한때 리움 미술관 옆에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자택이 있었다. 2005년 신춘호 농심 회장과 ‘한강 조망권 분쟁’으로 구설수에 오른 뒤 지은 저택이다. 이후 이 전 회장은 자택을 한남동 내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근처에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 부회장 등이 살고 있어 ‘리틀 삼성타운’이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30m 정도 걸어가니 자그만 다세대 주택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한모(72)씨는 “CCTV를 보면 감시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CCTV가 붙은 주택 앞을 지날 때마다 괜히 위축되고 고개도 못 들겠고 뛰다시피 길거리를 지났다고. 돈 많은 사람들이 제 재산 지키겠다고 한 동네 사람을 갈라놓는 느낌도 들고. 그쪽은 그렇게 (바라보고) 살고, 우리는 이렇게 (감시당하고) 살고.” 한남동에서만 50년을 살았다는 한씨는 “원래 이곳이 부촌이긴 했지만 10년 전쯤부터 담을 높다랗게 쌓고 CCTV로 겹겹이 둘러치는 주택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저 사람들은 제대로 된 부자가 아냐.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관심도 없고 왕래도 없고. 그저 꼭꼭 닫아놓고만 살고. 내가 젊어서 미국이나 일본같이 잘 사는 나라들 수없이 가봤지만 저렇게 졸부처럼 구는 부자들은 선진국엔 없어. 저런 걸 보면 우리나라가 선진국 되기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해.”라고 한씨는 말했다. 한씨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시선 권력’의 기원은 구약성서 시절까지 올라간다. 박정자 상명대 교수는 저서 ‘시선은 권력이다’(2008)에서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타인에게 바라보여진다는 두려움은 인간의 원초적 공포라고 전했다. 고대에 신의 영역이었던 ‘시선 권력’은 근대에 이르러 공권력의 것이 된다.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덤이 구상한 감옥 ‘판옵티콘’은 가장 효율적인 감시체제인 동시에 가장 권위적인 시선 권력을 만들어낸다.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다.’는 뜻의 라틴어인 판옵티콘은 건물 가운데 망루를 세워놓고 교도관 1명이 원형 모양의 건물 전체를 감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감시관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수감자들은 중앙에 있는 감시관을 보지 못한다. CCTV는 이른바 사적 영역의 ‘판옵티콘’이다. 얼마 전까지 한남동에서 통장으로 일했다는 A씨는 “통장으로 일하면서 CCTV를 설치한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방 하나에 수십 대의 모니터가 놓여 있어서 주택 내부는 물론 길거리 곳곳을 24시간 볼 수 있었다.”면서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태어난 토박이라는 그는 “보안격차라는 말을 들어봤다. 그 말처럼 돈이 사람들의 생활 형태까지 바꾸어 놓는다는 말이 맞다.”고 했다. 근처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B씨는 “이건희 회장처럼 대단한 집들은 CCTV뿐만이 아니다.”라고 했다. “배달을 하면서 자주 지나다니다 보면 집 안에서 하는 얘기가 도청되지 않도록 전자파 같은 것으로 차단하는 방음장치가 돼 있는 것 같았다. 까만 차가 계속 집 주위를 돌면서 전파탐지를 차단한다. 또 대개의 경우 문이 죄다 닫혀 있지만 가끔 열려 있을 때 안을 들여다 보면 안에 있는 나무 한 그루도 그렇게 싱싱하게 잘 가꿔질 수가 없었다.”면서 “마치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았다.”고 전했다. ●“각종 범죄 증거남겨… 동네 보안까지 강화” CCTV 때문에 한남동, 이태원동 주민자치센터에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한다. 대저택 곳곳에 설치된 CCTV가 주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지역 주민 C씨는 “민원 넣는 사람들은 부끄러울 게 많은 사람들이에요. 북한남동 쪽에 일본 관광객을 접대하는 식당이나 술집이 있는데, 새벽 3~4시쯤 되면 여자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나. 그때 퇴근하는 거겠지. 그러고 다니면서 카메라에 노출되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이 동네에 룸살롱이 많아서 좀도둑도 많고 시끄러웠는데, CCTV가 많이 생기고 나서 동네가 조용해졌다.”면서 “혹시 동네에서 사고라도 생기면 CCTV 화면을 협조받을 수도 있고 좋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CCTV라는 문명의 이기가 초래한 비극은 보안격차뿐만이 아니었다. 야간근무하던 경비원이 사라지면서 사람의 일자리까지 빼앗았다. 지역 주민 박모(65)씨는 “전에는 CCTV가 유지 가격이 비싸 많이들 안 달았는데 요새는 가격이 많이 낮아졌나봐요. 너나 할 것 없이 달다 보니 새롭게 생긴 현상이, 예전에는 오전 7시~오후 7시, 오후 7시~다음날 오전 7시 이렇게 2교대로 경비원이 근무를 했는데, 이제는 경비원이 낮에만 근무하고 밤에는 없더라고. 그 사람들은 CCTV 때문에 죄다 쫓겨난 거지.”라고 말했다. >>> CCTV란 폐쇄회로 텔레비전(Closed Circuit Television). CCTV는 비디오 카메라를 이용해 특정 장소에 한정된 모니터로 신호를 전송하는 방식이며 주로 감시 카메라에 쓰인다. 범죄예방 및 도로의 교통상황을 빠르게 전달하는 용도로 쓰인다. 지난 3월 외국어인 CCTV를 대신해 ‘상황관찰기’라는 순화어도 생겼다. ■서울시 방범용 CCTV 3123대 강남구, 성동구보다 17배 많아 서울 시내에는 모두 몇 개의 CCTV가 있을까. 한 경찰 관계자는 “대답하기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알기 쉽지 않은 것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사설 CCTV 때문이다. 현재 사설 CCTV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없어 CCTV를 설치하는 것이 관리되지 않고, 따라서 몇 대가 설치되는지 현황도 파악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방범용, 교통관제용 등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이 관리하는 CCTV도 수없이 많다. 서울청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서울 시내에 있는 방범용 CCTV는 3123대에 이른다.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 관제센터가 설치돼 있어 관내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서울청에는 종합교통정보센터가 있어 서울 주요 도로 및 시가지의 교통 상황과 경찰 업무 등 실시간 벌어지는 상황을 대형 CCTV를 통해 확인한다. CCTV 설치 현황을 구(區)별로 살펴보면 ‘빈부격차’가 ‘보안격차’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가 8월 현재 각 자치구별로 방범용 CCTV 설치 현황을 취합한 결과, CCTV가 가장 많이 설치된 자치구는 ▲강남구(522개) ▲중구(210개) ▲용산구(180개) 순이다. 반면 CCTV가 가장 적게 설치된 자치구는 ▲성동구(32개) ▲관악구(40개) ▲은평구(44개) 순이다. 가장 적은 성동구와 가장 많은 강남구는 17배가량 차이가 났다. ‘부자동네’로 알려진 강남·서초·송파구의 CCTV 설치 개수를 합하면 848개로 전체(2762대)의 30.7%를 차지했다.
  • [서울광장] 조선왕릉은 말한다/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조선왕릉은 말한다/노주석 논설위원

    세종시 논란이 바야흐로 제2막에 접어들었다. 제1막의 주인공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제2막의 주인공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2막 1장은 각본상 주인공에 앞서 주연급 조연 두 명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다. 원안 수정과 원안 강행이라는 테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 있다. 둘 중 한 명이 제3막의 주연으로 점지받을지도 모른다. 세종시라…. 본래 명칭은 행정중심복합도시였다. 줄여서 ‘행복도시’라고 불렸는데 세종시로 이름을 바꿨다. 이해가 간다. 민족 최대의 성군 세종의 덕과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치세를 본받고자 작명했으리라. 그런데 세종시라는 이름이 괜스레 마음에 걸린다. 32년간의 덕치를 전후해 불었던 피바람이 떠올라서다. 얼마 전 다녀온 태종이 묻힌 헌릉과, 태조비 신덕왕후의 정릉에 얽힌 이야기도 생각났다. 저 멀리 영월 땅에 묻혀 있는 세종의 손자 단종의 애사(哀史)와 더불어. ‘왕자의 난’을 일으켜 보위에 오른 태종은 태조가 승하하자마자 영국대사관 자리에 있던 계모 신덕왕후의 능을 성 밖으로 옮겨 버렸다. 능이 있던 동네이름은 정동이지만 실제 능은 정릉동에 있는 까닭이다. 아들 방석을 왕으로 옹립하려던 계모를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조선 최초의 왕비이자 최초의 왕릉을 병풍석도, 난간석도 없이 묻었다. 260년 동안 후궁릉으로 수모를 당했다.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뺏긴 단종의 장릉은 유배지인 영월에 있다. 왕릉은 도성에서 100리 안에 둔다는 법도는 아랑곳없다. 죽은 지 241년 만에야 종묘에 부묘됐다. 궁궐이 삶의 기록이라면, 왕릉은 죽음의 기록이다. 지난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조선왕릉 40기에는 조선왕 27명이 재위한 518년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왕릉의 형태와 규모는 ‘산릉도감의궤’에 따라 만들어져 대동소이하지만 왕릉마다 사연은 남다르다. 함흥에서 옮겨심은 억새가 우거진 태조의 건원릉, 유일한 ‘여성 상위’ 왕릉인 인수대비와 덕종의 경릉, 도굴당해 가묘상태인 성종의 선릉, 뒤주 안에서 숨졌지만 아들 정조의 효심 덕분에 왕릉으로 부활한 사도세자의 융릉, 몰락하는 왕권을 상징하는 헌종의 삼연릉, 최고의 권력을 누렸으나 시신도 없이 봉분만 남은 명성황후와 고종의 홍릉…. 스토리가 없는 왕릉은 ‘죽음의 집’일 뿐이다. 조선왕은 국상 기간 중 선왕의 왕릉에서 정사를 시작해 왕릉에서 생을 마감했다. 왕릉은 권력이 지는 곳이자, 권력이 움트는 곳이다. 왕조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종 치세를 사이에 두고 전개됐던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찬탈사도 그 일부분이다. 세종시를 둘러싼 여야 간 대결국면이 급기야 여권 내 내홍으로 번지고 있다. 국민은, 유권자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국민은 세종시에 대해 사심이 없다. 원안대로 하든, 수정하든 ‘제대로 잘~’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 타협하지 않겠다.”라는 이 대통령의 신념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면 세종시에 목을 매는 이해관계인들을 설득해 매듭지었으면 한다. 수정안에 총대를 멘 정 총리와 국민과의 약속을 강조하는 박 전 대표의 행보도 눈여겨볼 대상이다. 제2막의 주연과 조역들은 시간을 내서 서울근교 조선왕릉 답사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시기 바란다. 세종시라는 현안을 보는 안목이 달라질 것이다. ‘역사의 눈’으로 봐야 문제가 풀린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신종플루 초비상] “10분 검사에 3시간 대기” 환자들 항의 빗발

    신종플루 백신 접종 첫날인 27일 오전 8시40분.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 소화기병센터 지하강당은 두 줄로 늘어선 의사와 간호사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거점병원 종사자라는 이유로 가장 먼저 신종플루 백신 접종 기회를 얻었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일부 의료진 백신 못맞아… 거부감도이날 백신 접종은 전국 472개 거점병원 중 7개 병원에서만 진행됐다. 서울은 54개 거점병원 가운데 순천향대병원과 고려대 구로병원, 국립의료원 등 3곳에서만 접종이 이뤄졌다.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접종을 시작도 못한 병원이 많았다. 순천향대병원에서는 직원 1200명 중 1 100명가량이 접종을 신청했다. 병원 관계자는 “신청하지 않은 직원은 백신 접종을 원하지 않았거나 신청 시기를 놓친 경우”라고 설명했다. 접종을 한 감염내과 김태형 교수는 “병원 근무자가 감염되면 병원이 마비되고 보건체계가 무너질 수 있어 맞으러 왔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 등 상당수 병원은 응급실로 몰려드는 신종플루 의심 환자 때문에 의료진 접종 시간을 며칠 뒤로 미뤘다. 접종을 받는 의료진 중 일부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백신을 접종받는 데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순천향대병원의 인턴 전모씨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거나 지금 감기에 걸린 인턴 동료들은 신청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면서 “임상실험이 불충분해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대 구로병원 의료진 1800여명 중 백신 접종을 신청하지 않은 사람은 200명 정도나 된다.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일선 보건소와 거점병원은 북새통을 이뤘다. 일부 병원에는 검사 결과를 늦게 통보받았다거나,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데 대한 환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감기 증세가 심해 검사를 받으러 왔다는 김영호(66)씨는 “동네 의원에 갔더니 거점병원으로 가라고 쫓아내다시피했다.”면서 “몸도 안 좋은데 고작 10분짜리 검사를 받기 위해 세 시간을 기다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동네 병·의원들은 감기 증세 환자들까지 신종플루 거점병원으로 보내면서 한산한 모습이었다. ‘신종플루 거점병원을 찾아가세요.’라는 공지를 문 앞에 붙인 서울 개포동의 한 소아과에는 배탈 환자와 외상 환자를 제외하면 발열이나 기침 등 감기 증세 환자들이 하루종일 거의 없었다. 원장 정모(44)씨는 “이왕이면 거점병원에서 치료받는게 좋을 것 같아서 붙여놨다.”고 말했다. ●병원서 감염될까 노심초사의심증세로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혹시나 병원에서 신종플루에 감염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김모(35·여)씨는 “환자들이 서로 붙어 앉지 않으려고 하고, 눈치를 심하게 보더라.”면서 “기다리는 내내 감기인데 괜히 데려와서 감염되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시작된 신종플루 백신 접종은 4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내년 2월까지 학생·임산부·노인 등 1716만명에게 순차적으로 접종된다.김민희 이민영 박성국기자 haru@seoul.co.kr
  • [2030] 불어난 살에 대처하는 방법

    [2030] 불어난 살에 대처하는 방법

    책상 앞에서 열 시간씩 앉아 공부하며 먹은 초코바, 잦은 회식에서 단숨에 비운 폭탄주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배신하지 않는다. 순도 100%의 지방으로 변해 옆구리와 배둘레에 정직하게 자리잡는다. 이 법칙을 거스르려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와 결혼, 취업을 위해 살과의 전쟁을 선포한 2030이 바로 그들이다. 오달란 박성국 유대근기자 dallan@seoul.co.kr ■ 주 3~4회 술 마셨더니 배둘레에 도넛링…매일 2000번씩 ‘줄넘기 야근’ 통번역대학원에 다니는 이모(25)씨는 살에 대한 경각심은 있지만 ‘귀차니즘’ 때문에 운동을 선뜻 하지 못 하는 타입이다. 10대 시절부터 운동에는 취미가 없었고, 몸매 관리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도넛처럼 양 옆구리에 들러붙은 이씨의 ‘원수덩어리’ 살들은 몇 년 전부터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학원 시험을 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몸매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도 모자라 시시각각 찾아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초콜릿을 옆에 끼고 살았다. 키 160㎝에 체중 50㎏을 넘은 적이 없었던 이씨의 체격 조건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6개월 전 체중계에서 눈금이 55㎏을 가리키는 것에 경악한 뒤 다시는 체중을 재보지 않았다. ●바나나·덴마크 다이어트 2주일도 못 넘겨 불어나는 살에 대처하는 이씨의 방법은 ‘xx 다이어트’. 하루종일 바나나만 먹는다는 바나나 다이어트, 당근과 오이만 먹는다는 당근오이 다이어트, 달걀과 자몽, 양념 안 한 닭가슴살만 먹는다는 덴마크 다이어트 등 인터넷에 떠도는 갖가지 다이어트들을 섭렵하게 된 것. 문제는 특정 음식만 먹는 다이어트를 2주일을 넘기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배를 곯다가 한꺼번에 폭식을 하게 됐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체중은 오히려 더 불어났다. 하다 못해 이씨는 큰 마음을 먹고 집앞 헬스장 회원권을 끊었다. “운동을 시작해 보라.”는 주위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이 악물고 3개월만 운동해서 예쁜 청바지를 사 입는 게 꿈”이라면서 “이번엔 절대로 중간에 포기하지 않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대학교 4학년인 정모(26)씨는 여느 취업 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씨의 취업 준비는 남다른 면이 있다. 토익, 학점, 각종 자격증 등 이른바 ‘스펙’ 관리는 일찌감치 끝냈다. 정씨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찾는 곳은 학교 체육관이다. 여름이면 당당히 상반신을 드러낼 정도로 ‘몸짱’이었던 정씨지만 취업 준비로 매일 책상에 앉아 숨쉬기 운동만 하다 보니 ‘식스팩’ 복근은 자취를 감췄다. 복대를 두른 듯 옆구리 살이 바지 밖으로 비집고 나왔다고 한다. 63㎏이던 몸무게가 어느덧 76㎏까지 늘어났다. 정씨는 연이은 면접 탈락의 원인을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이미지 탓으로 돌렸다. 때문에 살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매일 40분간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한 시간가량 근력 운동을 병행하며 좋아하던 술도 멀리했다. 저녁 6시 이후에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정씨다. 그러기를 한 달째, 정씨는 벌써 68㎏까지 체중계 바늘을 낮췄다. 정씨는 “몸이 한결 가벼워지니 마음까지 가볍고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며 웃었다. 직장 생활 2년차인 신모(29)씨는 최근 친구 결혼식에 가려고 평소에 입지 않던 정장을 꺼내 입었다가 깜짝 놀랐다. 대학생 때 면접을 위해 구입한 옷이 몸에 맞지 않았던 것. 복장이 자유로운 직장에서 일하다 보니 평소에는 몸이 불어난 것을 못 느꼈다고 한다. ●잦은 야근·회식은 다이어트의 적 신씨는 입사 초만 해도 헬스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자랑했다. 하지만 영업직에 종사하다 보니 연일 거래처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잡혔다. 일주일에 3~4일 꼴로 술독에 빠져 지내다 보니 입사 1년 만에 무려 10㎏ 이상 불어났다. 신씨는 “대학 축구 동아리의 회장을 하며 만능스포츠맨으로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아왔건만 이제는 지하철 계단만 올라도 숨이 가쁜 처지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급격히 불어난 살과 함께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 부산 출신인 신씨는 서울에서 직장을 구했다. 1년간 일에 빠져 바쁘다는 핑계로 지인들을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지만 선뜻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 못한다. 너무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각종 핑계를 대며 만남을 미루고 있는 것. 신씨는 “학생 때 몸매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5㎏ 정도라도 빼야 고향 친구들에게 얼굴을 비출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부터 자는 시간을 한 시간 줄이고 매일 밤 줄넘기를 2000번씩하고 있다. 중견기업 홍보팀 직원인 백모(31)씨는 입사 1년 만에 체중이 10㎏ 가까이 불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넘치는 의욕으로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거래처 실무자들과 술약속을 잡았고 기름진 고기와 폭탄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바지단추가 채워지지 않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우리 사위가 매끈한 몸매 하나는 최고”라며 추켜세우던 장모님도 백씨의 배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백씨는 6개월 전 본격 ‘체중감량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업무특성상 금식 등 식이요법을 통한 다이어트는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운동으로 3개월 안에 10㎏을 빼겠다고 다짐했다. 매일 아침 새벽 5시에 눈을 떠 하루 10㎞ 달리기 시작한 백씨는 여유로운 주말이면 마라톤 하프코스에 가까운 20㎞씩 집 근처 공원을 내달렸다. 생각대로 늘어졌던 뱃살은 점점 모습을 감췄다. 다이어트 시작 한 달 만에 7㎏을 감량한 백씨는 두 달이 채 안 돼 목표치인 10㎏ 감량에 성공했다. 그러나 백씨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운동을 위해 일어나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무릎이 아파왔다. 무리한 운동의 후유증 탓이었다. 뛰기는 커녕 걷기조차 어려워진 그는 이후 운동을 할 수 없었고 빠졌던 체중은 세 달 만에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백씨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다이어트에도 통하더라.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했어야 하는데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올해 초 입사한 새내기 사원인 최모(31)씨는 지난달 소개팅에서 상대 여성에게 거절을 당한 뒤 바로 몸매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는 입사 전까지만 해도 훤칠한 얼굴과 키 덕분에 꽃미남이라고 불렸다. 여자친구도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입사 후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원흉은 잦은 야근과 회식이었다. 영업직 사원이라 선배를 따라 거래처 간부들을 자주 상대해야 하는 최씨는 입사 9개월 만에 배만 볼록 나온 일명 ‘개구리 체형’이 돼 버렸다. 그는 “운동부족으로 팔다리는 근육 없이 가늘고 아저씨처럼 뱃살만 늘어지다 보니 소개팅 상대에게 아저씨 같다며 연달아 거절당했다.”고 우울해했다. 다이어트에 돌입한 그는 단시간 내에 체중감량 효과가 가장 빠른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침마다 근처 학교 운동장을 20바퀴씩 도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 “아침잠이 유독 많지만 야근과 회식 때문에 저녁에는 운동할 짬이 없다.”면서 그는 눈물을 머금고 새벽마다 달린다. 아직 3주째라 몸매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 같지 않지만 최씨는 그래도 “연말에 소개팅에서 여봐란 듯이 퀸카를 건져올릴 꿈에 부풀어 있다.”고 귀띔했다. ■ 입사 후 ‘개구리체형’ 소개팅서 퇴짜맞고…‘두번 실패없다’ 복근성형까지 호리호리한 외모 덕에 ‘미소년’ 소리를 듣는 대학생 박모(21)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100㎏이 넘는 거구였다. 재수생 시절 입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폭식증에 걸렸고 하루에 초코바를 6~7개씩 해치우다 보니 감당 못 할 만큼 몸무게가 늘어난 것이다. 대입에 성공한 박씨는 처음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이 30분만에 “다른 약속이 있다.”며 도망가듯 자리를 피하는 것을 본 뒤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명품몸매되려고 매일 댄스·헬스 동네 헬스장 등록을 마친 박씨는 매일 저녁 러닝머신 위를 달렸지만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느낌 때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인근 공원을 도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최신형 mp3를 주문한 그는 H.O.T의 ‘전사의 후예’부터 소녀시대의 ‘소원의 말해봐’까지 아이돌스타들의 댄스곡을 들으며 매일 저녁 2시간씩 공원 산책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 빠른 비트에 발맞춰 달리다 보면 지치는 줄도 몰랐다는 박씨는 불과 다섯 달만에 30㎏ 감량에 성공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차모(33)씨는 얼마 전 강남의 한 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렸다. 요즘 30대 남성들이 많이 한다는 ‘복근성형’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서였다. 뱃살 지방을 부분적으로 흡입해 복근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수술이다. 차씨는 “수술이 잘 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소개팅 전선에 뛰어들 생각”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5년 전 입사할 때만 해도 차씨는 178㎝에 75㎏으로 딱 보기 좋은 체격이었다. 그런데 입사 이후 1년에 정확히 2㎏씩 살이 찌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폭탄주가 도는 회식을 하다 보니 살이 겉잡을 수 없이 쪄 버렸다. 운동으로 몸매관리를 해 보려고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집 앞 헬스장, 동네 권투장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런데 번번이 한 달을 넘기지 못 했다. ‘운동을 할 바엔 잠을 더 자지. 술만 끊으면 살은 저절로 빠질거야.’라는 안이한 생각에 매번 굴복한 탓이다. 이제 80㎏를 넘어 90㎏대를 향해 달려가는 차씨의 몸매 때문일까, 그의 연애 생활은 백전백패였다. “체격 좋고 듬직한 남성이 이상형”이라는 말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개팅 자리에 나가봐도 애프터 신청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나치게’ 듬직한 그의 체형이 문제였다. 이런 일이 세 번쯤 반복되고 나니 차씨는 자신감마저 사라졌다. 이대로 가다간 노총각으로 늙어 죽겠다는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 그 두려움이 이번에 그를 ‘복근 성형’의 세계로 인도한 것. 차씨는 “물론 운동과 식습관 조절이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급한 대로 장가는 가야겠다.”면서 “이번 수술만 잘 되면 자신감도 회복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출산 후 불어난 살 지방연소 프로그램으로 직장인 4년차인 김모(30)씨는 6개월간의 산후휴가 및 육아휴직 뒤 복직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옷장을 열어보니 출산 후 15㎏이나 찐 살 탓에 맞는 외출복이 거의 없었던 것. 정장은 물론 티셔츠 같은 캐쥬얼복도 제대로 입을 만한 게 없었다. 김씨는 일단 궁여지책으로 헬스클럽에 등록했지만 식사량은 줄일 수가 없었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탓에 식이요법까지 병행하기엔 무리였다. 김씨는 아침마다 동네 공원 두 바퀴를 뛰고 와서 수유를 한 다음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개인 트레이너와 체질량 검사를 해 보니 출산 후 체지방량이 거의 배로 늘었다.”면서 “지방연소 프로그램을 집중 실행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러닝머신과 자전거운동 등 유산소운동을 40분간 한 다음, 근육량을 키우는 체조를 병행했다. “다행히 한달 반만에 7㎏ 가까이 빼긴 했지만 급격히 살을 빼서 혹여 모유수유에 지장이 있을까 한편 걱정도 된다.”면서 워킹맘의 비애를 뼈져리게 느낀다고 털어놨다.
  • [27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5년 전, 발리에서 렌치아니를 소개받고 첫눈에 반한 방정근씨. 하지만 보수적인 처가댁에서는 쉽게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장인, 장모님 마음 돌리기 작전에 돌입한 정근씨.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13번의 노력 끝에 드디어 결혼 승낙을 얻어낸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공개된다. ●1 대 100(KBS2 오후 8시50분) 섭섭한 퀴즈실력은 저리 가라. 똑똑한 이미지로 거듭나겠다. 1박2일의 재간둥이, 가수 MC몽. 과연 김C와 이수근의 실력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두 번째 도전자, 오늘은 퀴즈여행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체험한 지식으로 100인들을 정복하겠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여행가 송일봉이 도전한다. ●살맛납니다(MBC 오후 8시15분) 풍자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민수가 곧 검사와 결혼을 할 것이라고 자랑한다. 유진은 아버지의 의도된 계획아래 최고급 리조트회장의 딸 나리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갖는다. 한편, 학습지 인턴사원으로 영업업무를 보던 진수는 회사에서 정사원 발령을 내줄 생각이 없다는 의도를 알게 되자, 흥분하며 상사를 밀친다. ●문화가 중계(SBS 낮 12시30분) ‘프라멩코 카르멘’을 감상해본다. 카르멘과 플라멩코의 만남, 새로운 형식의 카르멘을 접할 수 있는 기회.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무용 ‘플라멩코’를 통해 재탄생했다. 좀 더 스페인적이고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번공연은 2009년 9월 11일,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공연된 내용이다. ●다큐10+(EBS 오후 11시10분) 수천 년간, 인류는 지구의 나이나 기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지구를 극적으로 변화시킨 물의 원천과 지구 생명체 탄생의 배경을 알아본다. 또 대륙의 이동 원인과 빙하시대의 대멸종, 그리고 기후의 변화에 따른 지구와 인류의 미래까지 예측해본다.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 국내 유일의 소싸움 여자 조련사 안귀분씨를 만나본다. 안귀분씨는 남편 덕분에 소싸움에 관심을 갖게 됐고, 급기야 싸움소를 직접 키우고 있다. 그녀가 키우는 소는 ‘안창이’. 녀석은 남편이 키울 때는 성적을 내지 못하더니 안씨가 키우면서 챔피언 자리에까지 올랐다. 안창이와 함께하는 그녀의 일상을 찾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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