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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홀대받던 소비, 시대의 중심에 서다

    홀대받던 소비, 시대의 중심에 서다

    소비의 역사/설혜심 지음/휴머니스트/496쪽/2만 5000원‘인간의 욕구 충족에 필요한 물자나 용역을 이용하고 소모하는 일’. 백과사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비’의 정의이다. 그런 단견적 ‘소비’ 인식은 오래도록 학문의 영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제학에선 소비를 뺀 생산과 공급에 집착하기 일쑤였고, 소비의 영역을 애써 축소하거나 폄하한 사가들의 언사도 넘쳐난다. 카를 마르크스는 소비를 인간관계나 사회적 성격을 은폐하는 ‘상품 물신숭배’라 칭했다. 심지어는 잘 먹고 잘 입는 등의 소비 욕구를 ‘인간적 기능’이 아닌 ‘동물적 기능’으로까지 몰아붙였다.하지만 이제 소비의 영역은 엄청난 스펙트럼을 갖는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 쓰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물건에 대한 상상력과 관계 맺기를 비롯해 편 가르기 같은 사회적 역학을 포함하며 마케팅, 쇼핑, 재활용에까지 미친다. 2012년 영국 역사학자 프랭크 트렌트만의 선언은 그 대표적 반증이다. “‘소비하는 인간’이 ‘만드는 인간’을 대체했다.”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쓴 책은 그 선언과 궤를 같이한다. 일상의 공간에서 지나치기 일쑤인 ‘소비’의 문제를 정색하고 역사의 중심에 놓았다. 소비하는 인간 ‘호모 컨슈머스’의 역사를 욕망과 유혹, 소비, 확장, 거부의 5개 카테고리로 나눠 풀어내는 흐름이 독특하다. 근대 이후 탄생한 소비자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지금의 사회까지 전방위로 뻗친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돌팔이 약장수, 원조 화장품 아줌마 에이본 레이디의 방문판매, 최초의 대량판매와 할부제를 도입한 싱어사의 재봉틀, 소비생활을 확 바꿔놓은 백화점과 쇼핑몰, 홈쇼핑…. 그 궤적에서 만나게 되는 역사적 사실들이 흥미롭고 신선하다. 1824년 상점을 열고 기성복을 팔기 시작한 포목상 피에르 파리소는 상류사회에 국한했던 ‘소비의 행복’을 대중으로 확산한 계기로 기록된다. 상류층 사람들의 복장을 저렴한 남성용 기성복으로 만들어 하급 공무원과 소상인, 노동자들에게 팔면서 모든 계층에 대량복제된 ‘명품세상’을 안겨준 것이다. 그런가 하면 화장품 회사 에이본의 등장은 소비의 영역에 여성을 끌어들인 첫 사건이다. 여성이 돈을 벌 기회가 없었던 19세기 말 에이본사의 판매원 자리는 여성이 사업에 진입해 소비 능력을 갖게 하는 유일한 기회였다고 한다. 노예제 폐지의 일환으로 일어난 설탕 거부운동과 흑인들의 불매운동, 미국의 국산품 애용운동처럼 소비를 저항이나 연대와 연결한 사례들도 눈에 띈다. 설탕, 쌀, 면화 등 노예노동을 통해 생산된 상품들에 대한 거부를 촉구한 윌리엄 폭스의 이른바 ‘팸플릿 사건’은 대표적이다. 당시 설탕에 거의 중독되어 있던 영국 사회에서 노예가 생산하는 설탕을 섭취하는 일을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행위’에 비유해 설탕거부운동을 촉발했다. 19세기 말부터 남부 아프리카로 유입, 판매된 서구산 ‘백색 비누’의 사례도 흥미롭다. 검은색을 띤 것들이 차별받고 배제되던 사회에서 ‘백색 비누’는 보상의 소비 수단이었고 ‘백색 신화’는 지금도 여전히 위생과 미용 업계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수집 논쟁과 병적 도벽, 성형 소비, 노년층 소비…. 소비를 ‘삶의 편의성을 넘어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둘러싼 행위’로 규정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소비는 사회의 일반적인 흐름을 거부하거나 그 견고한 구조에 균열을 내는 저항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뉴딜정책 성공에 잊혀진 ‘여성 착취’

    뉴딜정책 성공에 잊혀진 ‘여성 착취’

    집안의 노동자/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지음/김현지·이영주 옮김/갈무리/304쪽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은 이 한마디로 학교 급식소에서 일하는 조리원들의 노동을 하찮고 무가치한 것으로 간단히 끌어내렸다. ‘집안의 노동자’를 읽는 내내 이 말이 맴도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닐 것이다. 정부가 자신들이 설계한 시장 경제를 이루기 위해 여성들을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로 만드는 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책의 요체이기 때문이다.1929년 대공황 이후 속출한 실업, 빈곤, 붕괴된 가족 등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꺼내 들었다. 국가가 직접 공공인프라를 조성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소득을 분배하는 뉴딜정책에서 결코 수혜자는 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운 주인공들이 있었다. 바로 여성이다. 여성학의 고전인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1972)의 저자인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교수(이탈리아 파도바대 정치법학부)는 바로 이 ‘아이러니’에 주목했다. 수많은 뉴딜 연구에서 빠진 관계, 바로 국가와 여성의 관계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뉴딜의 복잡한 사회구조는 가사노동과 육아를 도맡는 여성, 즉 ‘집안의 노동자’에게 빚졌다는 것이다. 루스벨트 정부 초기부터 가족 복구는 생산 재개와 함께 핵심 과제였다. 때문에 뉴딜 정책 집행자들은 여성들은 집 안에서만 일해야 한다는 노선을 견지했다. 임금과 국가가 주는 소득은 노동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만큼, 국가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바탕으로 한 가족 제도 강화를 목표로 모든 계획을 짠 것이다. 17만명의 여성을 가사서비스시범사업 강사로 고용해 식사 준비, 양육, 빨래, 다림질 등을 다른 여성들에게 가르치도록 한 것도 한 예다. 여성들은 자식을 키우며 새로운 노동력을 길러내고 남편의 재생산을 돌봤다. 상품 구매력을 유지하는 것도 여성들에게 맡겼다. 지금도 그렇듯,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은 채로. 결국 “‘집안의 노동자’는 뉴딜의 성공 또는 실패를 좌우하는 전략적 주체”였고 “(정부가)여성의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여성은 드러나지 않게 일해야 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가족을 위한 사랑과 희생’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 안에 국가가 국가 주도의 경제를 펼치기 위해 여성과 여성 노동을 ‘착취’해 온 역사가 드러난 셈이다. 20세기 초 페미니스트들은 1912년 ‘시카고 이브닝 월드’의 한 여성 투쟁 기사에서 예견한 듯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남편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남편의 시간과 에너지는 모두 사장 소유이다. 아내는 자신을 소모하여 사장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략) 주부는 광산이나 공장의 자본가 사장이 집에 있는 여성의 노동력을 지배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보수를 주거나 인정해 주지도 않으면서 그녀의 삶을 내내 움켜쥔 채로 말이다.’(39쪽) 1920년대 내내 ‘집안의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진 기술 혁신-전기다리미, 가스레인지, 세탁기 등-도 여성의 노동 부담을 덜어 주지 않았다. 외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일거리들을 던져놓았다. 저자는 이때부터 가사노동은 ‘사랑’으로 하는 노동이며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나쁜 행위로 낙인찍는 가족 이데올로기가 공고해졌다고 지적한다. 완벽한 청소로 마지막 세균 한 마리까지 남김 없이 죽이는 게 노동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는 방식으로 여겨졌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쁜 엄마, 나쁜 아내가 되는 식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금도 이 논리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당시 여성들은 흑인과 함께 정부로부터 복지뿐 아니라 일자리 계획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가족을 먹여살리려 집 밖에서도 일해야 하는 여성의 이중 노동은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1933~1945년 미국 노동부 장관을 지낸 프랜시스 퍼킨스는 이들을 ‘부유한 용돈벌이 노동자’라 일컬으며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이자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인간이므로,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막말했다. 왜 지금 뉴딜에 ‘이용’된 여성들을 봐야 할까. 역자의 말대로 책 속 시대와 공간은 현재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여성에게 집중된 (무급)가사 노동, 그리고 이를 ‘밥하는 아줌마’, ‘맘충’이라며 폄하하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저급한 사회, 노동 현장의 각종 차별, 부의 양극화 등은 우리의 지금과 데칼코마니처럼 같다. 더욱이 포용적 복지국가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구상들이 구체화되고 있는 요즘, 미국의 뉴딜은 우리를 경계하게 한다. ‘모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또 누군가가 기만당하고 희생되어선 안 된다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남자는 커피값 18% 더 내세요”… 남녀 임금격차 알리기 ‘실험’

    “남자는 커피값 18% 더 내세요”… 남녀 임금격차 알리기 ‘실험’

    “남자 손님이세요? 그럼 커피값 18% 더 내세요.”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주 멜버른시 브룬스윅 시드니로드에 있는 카페 ‘핸섬허’(Handsome Her)는 채식주의자 및 여성을 위한 환경 친화적 공간으로 인근 주민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을 위한 이 작은 카페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달 초부터 남자 손님들에게만 커피 등 주문한 품목 가격의 18%를 더 받고 있기 때문이다. 카페 입구 푯말에 써 있는 규정은 다음과 같다. “남성 고객은 남녀 임금 격차(2016년 기준)를 반영하기 위해 18%의 프리미엄이 부과됩니다. 이는 여성을 위한 서비스에 기부됩니다.” 카페가 도입한 ‘남성세’에 준하는 18%는 호주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남녀 임금 격차 17.7%를 의미한다.●“임금 격차 알리는 좋은 기회” vs “남성 역차별” 여성 친화적 카페의 ‘작은 실험’은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남녀 임금 격차를 알리는 좋은 방법”이라는 평가부터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 아니냐”는 부정적 의견까지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18% 추가 요금은 강제는 아니다. 알렉산드라 오브라이언 카페 운영자는 현지 언론에 “남성 손님들이 추가 요금에 불편해하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문밖으로 밀어내지는 않는다”며 “전반적으로 남성 고객들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부러 먼 곳에서 찾아와 기꺼이 추가 요금을 내고 별도로 기부금 통에 돈을 넣기도 한다”며 이 같은 규정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남성세 부과금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과 아이를 돕는 단체 등에 기부된다. 카페의 고참 직원 대런도 인기를 끌고 있다. 카페 페이스북에 따르면 대런은 지난 15년간 장애 아동을 돕고 직접 채소 등을 재배하는 등 오랫동안 임금을 받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초기 단계부터 카페 운영을 도왔으며, 남성에게 비용을 더 부과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대런은 8월 초 18% 프로젝트에 직원으로서 참여했으며, 자신이 20년 만에 처음 벌어들인 수입의 18%를 카페가 선택한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카페 측은 “대런과 같은 놀라운 지지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10일 만에 480달러(약 55만원)를 모금해 ‘엘리자베스 모건 하우스 호주 원주민 여성 서비스’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대런의 활동이 알려지자 카페 페이스북에는 그를 응원하는 댓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는 한 손님은 “작은 카페로부터 기적이 시작되고 있다. 남녀 동일임금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호주의 남녀 임금 격차는 2014년 15.4%에서 2015년 17.0%로 올랐다가 지난해 14.3%를 기록했다. 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중간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느 정도일까.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2014년 36.7%, 2015년 37.2%, 지난해 36.7%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은 격차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국 남성이 지난해 100만원을 벌었을 때 여성은 겨우 63만 3000원을 번 것이다. 2014년 25.9%로 3위, 2015년 25.7%로 2위인 일본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다. 남녀 임금 격차가 30%를 넘는 나라도 한국이 유일하다. 컨설팅사 PwC는 “OECD 2015년 조사에서 남녀 임금 격차 평균은 16% 수준인데 한국은 두 배가 넘는다”며 “한국이 남녀 임금 격차를 해소하려면 (현 상황을 고려할 때)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녀 임금 격차 해소 논의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벌어지면서 각국 정부와 국회의 정책 입법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같은 노력의 핵심 지렛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 강화다. 미국은 1963년 제정된 ‘동일임금법’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정부는 2009년 임금 차별 소송 기간 연장을 골자로 한 ‘릴리 레드베터 공정임금법’을 제정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또 2014년 남성 임금의 77% 수준인 여성 임금을 남성과 동일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동일임금법’을 추진했으나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치자 연방정부 계약 업체들을 대상으로 임금 차별 해소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가장 진전을 거두고 있는 지역은 유럽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자가 임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거나 근로자의 임금 관련 정보 청구권을 강화하고, 분쟁 발생 시 사용자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는 등의 다양한 입법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또 동일임금을 실현하기 위한 기업의 자체적 노력 및 노사 공동 노력 등 새로운 접근도 시도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직원 수 25명 이상 모든 고용주는 남녀 임금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의무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남녀 동일임금 인증제’를 지난 4월부터 시행 중이다. 소르스테이든 비글륀손 아이슬란드 사회평등부 장관은 “직장에서 남녀가 동등한 기회를 누리도록 모든 조처를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아이슬란드는 “성별 임금 격차를 2022년까지 해소하겠다”고 공언했다. 독일은 지난 5월 동일노동을 명확히 정의한 ‘보수구조투명화법’ 제정안을 통과시켜 7월부터 여성 노동자가 남성 동료의 연봉을 확인하고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 영국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벨기에는 직원 수 50~250명 이상 기업이 남녀 직원의 연봉 격차를 공개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을 운영 중이다. 특히 2015년 ‘남녀 임금 격차와 싸우기 위한 법률’을 개정한 벨기에 정부는 매년 성별 임금 격차 보고서를 발간하고,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격차 해소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덕분에 벨기에의 성별 임금 격차는 2000년 13.6%에서 2014년 3.3%로 급감, OECD 국가들 가운데 격차가 가장 작은 나라가 됐다. 스위스도 기업이 남녀 임금 실태를 공개하도록 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으며, 연방기관과의 관급공사 계약 기업들은 성별 임금 정보를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文정부 남녀 임금 격차 해소 최우선 과제로 한국보다는 성별 임금 격차가 작지만 여전히 상위권인 일본은 아베 신조 정부가 총리자문기구로 설치한 ‘일하는 방식 개혁실현회의’가 지난해 12월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3월 ‘일하는 방식 개혁실행계획’을 공개했다. 아베 정부는 특히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마련한 일하는 방식 개혁의 일환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지켜 줄 것을 업계에 요청하고 있다. 한국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1989년 개정한 남녀고용평등법에 명문화했지만 OECD 조사에서 볼 수 있듯 거의 무용지물이다.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여성 최초 고용노동부 수장에 오른 김영주 장관은 지난달 취임 후 남녀 임금 차별 구제와 성평등 임금공시제 검토 등을 언급했다. 대선 후보 시절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근로기준법에 고용 형태별 차별 금지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밝힌 문재인 정부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준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장은 “비정규직 중 여성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확립하는 것은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는 의미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며 성별 및 고용형태별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Jean한 나눔’…성북 의류업체 청바지 1000벌 기부

    서울 성북구의 한 의류업체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해 달라며 청바지 1000벌을 선뜻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돈암1동 주민센터 직원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을 복지 증진을 위한 자원 발굴을 위해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돈암삼성아파트 상가에 입점한 한 의류업체 대표가 판매 중인 청바지 1000벌을 아무 조건 없이 기부했다. 주민센터 측은 곧장 지역민들로 구성된 돈암1동 지역사회복지협의체에 이를 알렸다. 이에 지난 29일 돈암삼성아파트 앞에서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주관으로 특별한 바자회가 열렸다. ‘가을맞이 청바지 패션 바자회’다. 바자회 당일에는 통장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새마을문고, 자율방재단 등 지역 내 주민단체들도 동참해 음식 나눔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의류업체 대표는 31일 “사업자로서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소외된 이웃을 위해 수익금을 사용해 달라”고 했다. 성북구 관계자는 “바자회 수익금 50만원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며 “다가올 추석을 맞아 이웃의 따뜻한 마음까지 담아 소중히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엄종섭 돈암1동장은 “주민센터와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중심으로 마을 내 다양한 자원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것”이라며 “기부가 활성화돼 어려운 이웃들에게 온정이 전해지는 나눔의 선순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제주에 국내 첫 영리병원 개설 허가 신청

    道, 이달 중 허가 여부 결정 방침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이 병원 개설 허가를 신청해 승인 여부가 주목된다. 제주도는 중국 자본이 투자한 녹지국제병원이 지난 28일 개원 허가 신청서를 접수, 개설 허가 요건 충족 여부 등을 확인 중이라고 31일 밝혔다. 도는 전문가 등을 초청해 1일 외국의료기관 관리방안 등에 대해 세미나를 열고 9월 중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병원 개설 허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제주특별법에 따라 설립이 가능한 영리병원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진료가 가능하며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영리병원 개설 최종 승인 권한은 제주특별법에 따라 제주도지사에게 있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 등은 영리병원이 의료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등 의료 공공성을 훼손한다며 허용을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제주지역 시민단체의 정책질의 답변에서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녹지국제병원은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77만9㎡) 내 2만 8163㎡ 부지에 지상 3층·지하 1층, 47개 병상 규모로 지어졌다.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 진료과가 개설되며 의료진은 의사 9명, 간호사 28명, 국제의료코디네이터 18명 등 134명이다.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은 주식회사처럼 자본을 조달해 운영하고 수익은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의료법에 동네 개인 의원을 제외한 모든 병원은 비영리의료법인으로 환자 진료로 생긴 수익은 다시 병원에 재투자하도록 규정돼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100년의 시간이 흐르는 공간 ‘돈의문 박물관 마을’ 첫 공개

    100년의 시간이 흐르는 공간 ‘돈의문 박물관 마을’ 첫 공개

    서울시, 기부채납 받은 땅에 리모델링 통해 옛 마을 보존 30여개 건물마다 전시 열려…미래 공유도시 기술 체험 기회지난 100년 서울시민의 삶과 동네의 역사가 살아 있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2일 개막하는 세계 최대 건축비엔날레인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요 전시장으로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배형민 총감독은 31일 언론 사전 공개 행사에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마을 형태의 전시장으로, 세계적인 문화 명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조선시대 한옥과 일제강점기 가옥 그리고 19세기 골목길까지 100년의 시간이 혼재하는 오래된 골목 사이사이에서 관람객들은 미래 공유도시에 적용될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을 만나게 된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서울 종로구 경희궁 자이 아파트를 짓는 조건으로 돈의문 터 옆 마을인 새문안 마을 땅과 건물을 기부채납 받은 서울시가 마을 전체를 보존하면서 마련됐다. 당초 68동의 집이 있었는데 15동을 철거해 중앙에 마을 공동체를 위한 마당을 만들고, 상당수 가옥은 개축·증축·수선을 거쳤으며, 골목길은 원형 그대로 유지했다. 전면 철거된 뒤 공원이 될 뻔했으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리모델링인 도시재생을 통해 마을 전체가 박물관으로 부활한 것이다. 포켓몬고 게임처럼 증강현실(AR)을 활용해 내가 걷는 거리의 미세먼지 현황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확인하는 ‘서울 온 에어’, 태양광을 이용해 지하공간에 자연 빛을 보내 녹지를 조성하는 ‘침략적 재생’ 프로젝트 등이 전시된다. 비엔날레 식당과 카페도 문을 연다. 인도 첸나이에서 초청한 셰프가 직접 요리하는 탈리, 태양광으로 구운 빵, 도시양봉 꿀로 만든 차를 맛볼 수 있다. 비엔날레가 끝난 이후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는 역사전시관, 유스호스텔, 서점, 건축설계사무소, 식당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배 총감독은 “박물관 마을 내 30여개 한옥과 근현대 건물마다 1~2개씩 전시가 열린다”며 “관람객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 마을로 돌아간 듯한 공간 속에서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듯 전시를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씨줄날줄] 공동육아나눔터/김균미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공동육아나눔터/김균미 수석논설위원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보육과 교육에서 사회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할 때 단골로 인용되는 아프리카 격언이다.‘공동육아’ 하면 가장 먼저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성미산 마을이 떠오른다. 맞벌이는 늘어나는데 믿고 맡길 보육시설은 부족하고, 획일적인 기존의 어린이집에 만족할 수 없었던 부모들이 1994년 모여 협동조합 형태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설립했다. 부모들이 품앗이로 아이들을 돌봤고, 보육교사 선발부터 식단, 프로그램까지 부모들이 결정했다. 대안학교의 모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보다 경제적 부담은 컸지만 부모와 지역공동체가 육아에 직접 참여한 사례는 큰 관심을 모았었다.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정부의 저출산 지원 대책에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9일 발표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도 저출산 지원 항목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공립 어린이집 확충과 함께 공동육아나눔터 확대도 들어 있다. 2010년 5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공동육아나눔터는 급속한 핵가족화로 약화된 가족 돌봄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이웃들이 자녀를 함께 돌보고 육아 경험과 정보를 나누는 ‘열린 공간’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공간과 운영비를 지원한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학습활동과 체험활동 등 다양한 품앗이가 이뤄진다. 부모들이 돌아가며 자녀들과 함께 등하교를 돕기도 한다. 공적 지원이 가미된 변형된 성산동의 공동육아 프로그램이라고나 할까. 정부는 현재 전국 66개 지역 149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동육아나눔터를 내년까지 196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예산도 올해 17억원에서 30억원으로 늘려 잡았는데 조정 과정에서 깎이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공동육아나눔터는 전국의 건강가정지원센터나 동네 도서관, 주민센터 내 공간을 나눠 쓰는 경우가 많다. 2013년 주민공동시설 설치 총량제 운영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면서 아파트 단지 안에 하나 둘 공동육아나눔터가 눈에 띈다. 삼성생명과 롯데, 신세계그룹을 비롯해 대우건설, 경기도시공사, LH 등 건설사들의 참여가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아직은 공동육아나눔터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공동육아나눔터가 활성화돼 입소문이 나면 말려도 늘어난다. 그러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품앗이와 참여가 중요하다. 경로시설을 찾은 어르신들 옆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부모들의 ‘수다’로 시끌벅적한 이웃 공동체를 기대해 본다.
  • [문화마당] 이름이 뭐라고/강의모 방송작가

    [문화마당] 이름이 뭐라고/강의모 방송작가

    박완서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다가 이름에 반한 꽃이 있다. ‘능소화.’ 배경의 농염한 분위기도 한몫했겠지만, 도발적이되 천박하진 않은 느낌이랄까. 검색을 해 보니 옛날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 하여 ‘양반꽃’이라고도 불린다 했다.그리고 한두 해쯤 지난 늦여름 단독주택이 많은 골목길에서 돌담 위로 흐드러진 능소화를 드디어 만났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그때만 해도 흔하지 않았기에 집에 와서도 눈에 어른거렸다. 생각날 때마다 입에서 이름을 살살 굴려 보았다. ‘능소화.’ 지금은 동네 개천에만 내려가도 줄줄이 피어 있어서 별 감흥은 없지만, 이름은 여전히 지극히 사랑스럽다. 나는 가끔 이름에 끌려 과소비를 한다. 얼마 전에는 SNS에서 판매글을 보다 ‘풋귤’이란 이름이 예뻐 충동적으로 주문을 하고 풋귤청을 만들었다. 씻고 칼질하느라 팔이 아팠지만, ‘ㅍ’을 소리 낼 때 상큼하게 터지는 느낌이 간지러워 고생 따윈 쉽게 잊었다. 풀잎을 부를 때는 입속에서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난다고 했던 시인(박성룡 ‘풀잎’)의 마음도 이랬을 거야 하면서…. 며칠 전 계약 건으로 한 사무실을 찾았다. 서류를 내미니 담당자는 얼핏 이름만 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본인 아니시죠? 위임장 가져오셔야 합니다.” 자주 겪는 일이라 대수롭잖게 신분증을 내밀며 ‘접니다’ 했다. 접수대 한편에 붙은 위임장 견본을 보니 위임인 칸에 ‘홍길동’, 대리인 칸은 ‘전지현’이 적혀 있었다. ‘그래, 여자 이름이 저 정도는 돼야 인정을 받지’ 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작명에도 유행이 있다. 우리 땐 ‘숙’ 자, ‘희’ 자로 끝나는 이름이 흔했고 은주나 영주 정도면 매우 세련돼 보였다. 한때는 한글 이름이 성행한 적도 있는데, 요즘은 서윤, 하은 같은 이름이 대세란다. 개명 절차가 쉬워진 탓인지 40, 50대 심지어 60대 지인이 그런 발랄한 이름을 바꿔 달고 나타나기도 한다. 별난 이름 때문에 울고 웃은 에피소드는 차고도 넘친다. 초보 운전자 시절 겁 없이 과속을 하다가 교통경찰에게 딱 걸렸다. 아주 신기한 걸 발견했다는 듯이 면허증을 살피던 경찰이 물었다. “이 이름은 어떤 한자를 씁니까?” 나는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대답했다. “마땅할 ‘의’에 모범 ‘모’. 마땅히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되라고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이름인데 그 뜻을 거슬렀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던 그 경찰 아저씨는 한바탕 웃고 나서 “좋은 이름이네요” 하고는 그냥 보내 주었다. 그래도 되는 시절이었다. 발음이 어려운 탓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모가 되고, 성별이 남(男)으로 분류되는 건 다반사였다. 라디오 작가로 원고를 쓰게 됐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입니다’로 시작하는 오프닝을 쓰려면, 그 ○○○의 마음을 읽고 나의 생각과 잘 버무려야 한다. 그동안 꽤 많은 그와 그녀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돈을 벌면서 나름 그 시간을 즐겼다. 여럿의 이름 뒤에 숨어 그들의 말을 같이 만들다 보니 보이는 세상은 조금씩 넓어지고, 내 이름이 새삼 소중해졌다. 어느 날 시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대필작가로 잠깐 생활비를 벌어 본 적도 있는지라 첫 행을 읽기도 전에 시큰해졌다. 그리고 작년에는 기어코 내 이름을 저자로 하여 책을 냈다. 다 이름 탓이다. 아니, 이름 덕분이다.
  • ‘황금빛 내 인생’ 박시후 “심려끼쳐 죄송..제작진이 믿어줬다”

    ‘황금빛 내 인생’ 박시후 “심려끼쳐 죄송..제작진이 믿어줬다”

    배우 박시후가 “심려끼쳐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지상파로 복귀한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29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KBS2 새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제작발표회에서 박시후는 본식이 시작되기 전 단상에 올라 머리를 숙였다. 이 작품은 박시후가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5년 만에 복귀하는 지상파 드라마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박시후는 “안녕하세요, 박시후입니다”라고 말문을 연 뒤 “다른 제작발표회 때보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이 큽니다. 작품으로는 작년 ‘동네의 영웅’ 이후로 1년 만인 것 같고, KBS에서는 ‘공주의 남자’ 이후 6년 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습니다. KBS를 통해서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릴 수 있어서 영광이고,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개인적으로 심려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사과를 전했다. 박시후는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저를 믿어준 감독님, 작가님, 시청자분들께 폐가 되지 않도록 작품에 임하겠습니다. 저희 드라마는 행복을 깨닫게 해주는 따뜻한 드라마입니다. 따뜻한 시선 부탁드립니다”라고 당부했다. ‘황금빛 내인생’은 금수저로 신분 상승 기회를 맞이한 여인이 도리어 나락으로 떨어지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깨닫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박시후는 극중 냉철함 속에 따뜻함이 있는 재벌 3세 최도경 역을 맡아 신혜선, 서은수, 이태환 등과 호흡을 맞춘다. ‘내 딸 서영이’ 소현경 작가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김형석 PD가 호흡을 맞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 후속으로 9월2일 오후 7시55분 첫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무서운 10대 형제…친구 죽이고 암매장까지

    무서운 10대 형제…친구 죽이고 암매장까지

    10대 초반의 어린 형제가 또 다른 10대 어린이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아르헨티나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건은 최근 부에노스 아이레스주의 플로렌시오 베리아라는 곳에서 벌어졌다. 악셀 이삭(10)은 사건이 벌어진 날 오후 6시쯤 동네에 사는 친구의 집에 놀러간다면서 집을 나섰다. 늦은 시간까지 이삭이 귀가하지 않자 그의 엄마는 아들이 놀러간 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건 아들 친구의 형(14)이었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그는 “이삭이 집에 와 동생과 놀았지만 곧 갔다”면서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든 이삭의 엄마는 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신고를 받고 바로 출동한 경찰은 마지막으로 이삭의 행방이 확인된 친구의 집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경찰이 이상한 흔적을 발견한 곳은 이삭이 놀러간 친구집의 뒷정원이다. 무언가를 묻은 듯 정원엔 얼마 전 흙을 판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찰이 이곳을 파보려 하자 실종된 이삭의 친구(10)는 “형과 내가 이삭을 죽여 파묻었어요”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알고 보니 이삭의 동갑내기 친구와 그의 형이 저지른 일이었다. 살해되기 전 이삭은 친구와 말다툼을 했다. 그걸 본 친구의 형은 베개를 들고 이삭에게 덤벼들었다. 이삭을 쓰러뜨린 친구의 형은 베개를 얼굴에 덮고 힘껏 눌러버렸다. 이삭은 발버둥치다가 숨이 막혀 사망했다. 형제는 뒷정원에 구덩이를 파고 사망한 이삭을 묻어버렸다. 뒷정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이삭의 머리엔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상처가 범행 당시 생긴 것인지 묻을 때 생긴 것인지는 부검을 해봐야 알겠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14살과 10살 된 형제가 10살 어린이를 죽이고 암매장까지 했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라면서 “범죄자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 사회적 대책이 요구된다”고 보도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강서 주민 삶에 스민 ‘10분 도서관’

    강서 주민 삶에 스민 ‘10분 도서관’

    “One little two little three little Indians….” 지난 24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강서구 화곡4동 주민센터 내 강서영어도서관의 한 교실에서는 귀에 익숙한 영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영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예닐곱 살 아이들 12명이 미국 민요 ‘열 꼬마 인디언 소년들’(Ten Little Indian Boys) 리듬에 맞춰 귀여운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강사와 아이들은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간간이 강사가 우리말로 설명을 곁들이긴 했지만 50분간 진행된 수업은 영어가 주를 이뤘다.교실 밖 넓은 공간에는 책꽂이마다 영어 책들로 가득했다. 유아·어린이 동화부터 청소년·성인용 인문서적까지 다양했다. 곳곳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영어 동화를 읽고 있었다. 일곱 살 아들과 자주 이곳을 찾는다는 원은지(39·마곡동)씨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영어 책도 많고,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풍부하다”며 “동네마다 도서관이 잘 갖춰져 있어 아이들 교육에도 좋다”고 했다. 강서구의 도서관이 양적·질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역 내 어느 동네에서나 걸어서 10분이면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는 ‘10분 도서관’을 구축했고, 단순히 책을 빌리거나 공부만 하던 데서 벗어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10분 도서관 조성은 노현송 강서구청장이 2012년 야심 차게 추진한 ‘1동 1도서관’ 사업의 성과다. 구는 동 주민센터, 경로당, 복지관, 교회, 아파트 공용시설 등 자그마한 공간이라도 허용되는 곳에 작은도서관을 지속적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사업 초기 전무했던 작은도서관은 5년 만에 26곳이나 문을 열었다. 구립도서관도 4곳에서 8곳으로 늘었다. 사립시설까지 합하면 관내 도서관은 70곳이 넘는다.30일에는 화곡1동에 솔뫼작은도서관이 개관한다. 구 관계자는 “솔뫼도서관 개관을 통해 민선6기 공약사업 중 하나인 ‘35개 공공도서관 조성’을 달성하게 됐다”며 “불과 5년 만에 구축한 10분 도서관은 ‘교육도시 1번지 강서’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고, ‘꿈을 여는 교육도시’ 구현을 앞당기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질적으로도 향상됐다. 도서관마다 ‘아빠와 함께하는 독서캠프’, ‘작가와의 만남’, ‘놀면서 배우는 독서토론’, ‘성우가 읽어 주는 그림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고력 체스’, ‘감성 캘리그래피’, ‘영화로 배우는 영어’, ‘어린이 음악대’, ‘사진 기초반’ 등 문화체험강좌도 많다. 구 안팎에서 호평을 받는 상생 프로그램도 적지 않다. 화곡8동 곰달래도서관의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 ‘마음이 따뜻해지는 힐링 라이브러리’가 대표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편견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학생들의 진로 문제도 함께 고민한다. 각 도서관에 청소년들의 진로 설계를 돕는 ‘강서진로주치의’를 운영, 학생들이 진로주치의와의 주기적인 상담을 통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도서관 운영 전문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작은도서관에는 도서관마다 사서 1명을 상주토록 해, 주민들에게 수준 높은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2년 도서관학교를 개설, 해마다 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의 전문성도 키우고 있다. 올해도 자원봉사자 100여명이 9월 한 달간 북큐레이션, 책 보수 등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다. 노 구청장은 “오늘날 도서관은 주민들의 평생교육, 여가생활, 소통과 교류, 건강 등을 책임지는 복지서비스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 내 재개발·재정비 구역의 기부채납, 공공시설 유휴 공간 발굴 등을 통해 도서관을 계속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사설] 日 도시바의 있을 수 없는 반도체 매각 행보

    SK하이닉스가 일본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하려던 계획이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도시바가 반도체 회사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를 미국의 웨스턴디지탈(WD)이 포함된 ‘미·일 연합’으로 바꿔 오는 31일 정식 계약할 것이라고 한다. 애초 도시바는 지난 6월 SK하이닉스와 손잡은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과 일본 정책투자은행의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막판에 SK 등을 빼고 거기에 WD사를 넣겠다는 것이다. 국제 매각 사례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WD는 원래 도시바 반도체 제휴 업체였다. 그런데 우선협상대상에서 배제되자 SK하이닉스 등으로 이뤄진 한·미·일 연합과 매각 협상을 벌이는 것에 크게 반발해 왔다. 국제중재재판소에 중재신청을 내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도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일본 내에서는 반도체 산업을 한국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무엇보다 SK하이닉스가 융자로 지원하는 인수 자금이 전환사채여서 앞으로 도시바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 이런 과정에서 경제산업성 등 일본 정부가 나서 WD가 포함된 새 미·일 연합과 협상을 우선하도록 조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가 주시하는 기업 매각의 우선협상자를 손바닥 뒤집듯 해도 되는 일인가. 동네 구멍가게를 사고팔 때도 최소한의 상도의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글로벌 기업의 국제 입찰에서 일반 상거래 관행을 깨고 얼렁뚱땅 우선협상자를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의성실 원칙을 들먹일 나위조차 없는 상식 이하의 행태다. 이번 도시바와 WD의 새 협상 조건은 애초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제시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SK하이닉스의 의결권 요구(전환사채로 출자) 문제만 해도 애초 제안서에 있던 사항이다. 이미 이런 조건을 잘 알면서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놓고 이를 문제 삼아 결국 최종 계약 대상에서 뺀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우리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도시바와 WD는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에 이어 2, 3위를 달린다. 이런 두 기업의 결합은 명백한 시장 독점 행위에 해당한다. SK는 이 점을 내세워 국내외에서 도시바가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측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사흘밖에 없다.
  • 박일준 “생모, 나 겁탈당해 낳았다고..” 충격 고백

    박일준 “생모, 나 겁탈당해 낳았다고..” 충격 고백

    혼혈 가수 박일준이 생모에 대해 입을 열었다. 24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박일준의 일상이 그려졌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에 태어난 박일준은 3살 때 친어머니에 의해 보육원에 맡겨졌다. 이에 대해 박일준은 “그 당시 한국 군인한테 겁탈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 거야. 우리 생모가. 미군이었는데 한국군이라고. 내가 자라면서 다른 나라 사람처럼 얼굴이 나오니까 바로 나를 고아원에 놓고 버리고 가버린 거지”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제작진은 “친어머니와 만나보신 적이 있냐?”고 물었고, 박일준은 “한 번도 못 만났지. 나를 버리고 간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오! 진아’ 불렀을 때 친어머니를 찾는다는 광고를 내고 그랬었다. 그런데 결국 못 찾았지”라고 답했다. 박일준은 이어 “양부모님하고 우리 친어머니하고 언니, 동생하고 친했던 사이였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내가 고아원에서 땅바닥에 떨어진 강냉이를 주워 먹고 있는 걸 보고 양부모님한테 얘기를 했대. 그래서 가봤더니 내가 ‘엄마’하고 달려오더래. 그때부터 나를 키우기 시작했대. 양부모님들이 자식이 없다. 자식을 못 낳으셔. 그래서 나를 자식처럼 키웠지”라고 고백했다. 이후 박일준은 우연히 미국의 친아버지와 이복동생들을 찾았지만 그리움보다는 원망이 더 커 그 뒤 한 번도 찾지 않았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샀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길섶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서동철 논설위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가 번쩍 뜨였다. 소싯적에 즐겨 들었던 영국 클라리넷 연주자 레지널드 켈의 브람스 소나타였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에 육박하는 연주자가 모노로 녹음한 음원이니 요즘은 듣기가 쉽지 않다. 이 연주가 좋아 클라리넷을 연습한다고 동네를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끝까지 비슷한 소리도 낼 수 없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운전을 하면서 듣겠다고 USB에 다운받았다. 엊그제 절에 취재 가는 길, 기대를 안고 USB를 자동차의 음향기기에 꽂았다. 그런데 클라리넷 소리는 갈라져 음정을 잃었고, 피아노 소리도 뭉개져 나왔다. 기본형 자동차의 초보적 음향기기 탓이다. 돌아보니 어린 시절 큰형과 방을 함께 쓰는 바람에 ‘클래식 음악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FM도 아닌 AM 라디오가 하루 25분 내보내는 프로그램이 유일했다. 작은 휴대용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잡음이 절반을 넘었다. 그런데도 오래지 않아 그 ‘고문 시간’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 ‘내 귀가 건방을 떠는구나’ 생각하며 USB를 다시 꽂으니 음악 소리는 갈 때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박일준, 30년 넘게 술을 마신 결과 “수혈팩 6개로 연명”

    박일준, 30년 넘게 술을 마신 결과 “수혈팩 6개로 연명”

    [서울신문EN] 가수 박일준의 근황이 공개됐다. 박일준의 인생 이야기가 24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공개된다. 박일준은 “병원에 오다가 죽는 병, 수혈팩 6개로 연명했다”며 간경변과 정맥파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일화를 공개했다. 박일준은 6·25 전쟁이 끝난 직후 1954년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모는 박일준이 세 살 때 외모가 남들과는 다른 것을 보고 고아원에 그를 맡겼다. 이름도 없이 ‘개똥이’라 불리며 고아원에 살고 있을 때 동네에서 생모와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우연히 그를 발견하고 입양해 키웠다. 어린 시절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라는 혼혈의 특징들 때문에 ‘연탄’, ‘라면’이라는 별명으로 늘 놀림을 받은 박일준. 때문에 젊은 시절 반항기로 엇나갔다는데. 그 모습을 본 친척들은 박일준을 왜 키우냐며 양어머니를 만류하지만 ‘내 아들 내가 키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하며 사랑으로 박일준을 키워왔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계속됐고, 술과 담배로 그 스트레스를 푸는 일상도 계속 됐다. 그렇게 30년 넘게 술을 마신 결과는 간경변. 식도정맥이 파열되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살아날 확률이 반반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성실한 투병생활 끝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박일준은 이후 가족의 소중함에 보답하고자 1등 남편, 1등 아버지로 180도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혼혈의 아픔을 극복하고, 죽음의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다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일준의 우여곡절 인생 스토리는 24일 밤 10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육점 총기난사 사건…긴 기다림에 화 치민 40대남

    정육점 총기난사 사건…긴 기다림에 화 치민 40대남

    참을성이 부족한 남자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무차별 총격을 가한 사건이 벌어졌다. 총격으로 2명의 사상자가 났다. 브라질의 한 동네 정육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용의자 에디날도 다실바(48)는 사건이 벌어진 날 닭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갔다. 정육점엔 손님이 가득했다. 닭고기를 달라고 했지만 정육점이 주문한 부위를 손질해 내놓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손님이 워낙 많아 응대가 늦어진 탓이다. 평소 참을성이 없고 화를 잘 내는 남자는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을 넘어가자 슬슬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빨리 닭고기를 달라고 했지만 정육점 측은 “손님이 많아서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하지만 화를 참지 못한 남자는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피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그런 남자에게 “소란을 피지 말고 나가달라”고 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급기야 정육점 주인은 “당신 같은 사람에겐 고기를 팔지 않겠다”면서 문제의 남자를 쫓아냈다. 끔찍한 사건의 시작이었다. 정육점에서 쫓겨난 남자는 잠시 후 픽업을 몰고 정육점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차에 탄 채 창문을 내리고 정육점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몸을 피하면서 정육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나중에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보니 남자는 정육점을 향해 최소한 6발의 총을 쐈다. 한 남자(42)는 가슴에 총을 맞고 숨을 헐떡이다 현장에서 숨지고 노인 한 사람(61)은 팔에 총상을 입었다. 다행히 노인은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남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체포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신병을 확보하지는 못한 상태로 알려졌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씨줄날줄] 우리 동네 책방/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우리 동네 책방/황수정 논설위원

    내가 동네 서점에 발을 끊었던 이유는 돌아보면 단순했다. 원하는 책이 없을 때가 허다해서다. 의욕 충만해서 찾는 책이 재고가 없어 헛걸음할 때는 이만저만 김이 새는 게 아니다. 동네 서점은 오랫동안 참고서나 사러 가는 곳이었다.그랬던 우리 동네 서점을 요즘 다시 간다. 한 달 전쯤 계산대 한쪽에 자리 잡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문고본이 눈길을 끌었다. 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판형도 좋았지만, 산뜻한 표지 디자인으로 리모델링된 매무새가 구미를 당겼다. 민음사가 기존의 세계문학전집에서 선별해 동네 서점에서만 팔려고 재출간한 ‘쏜살문고 동네 서점 에디션’. 책방 주인은 “광화문 교보문고에도 없고 인터넷에서도 주문할 수 없는, 우리 동네 서점에만 있는 책”이라고 몇 번이나 자랑을 했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문고본 ‘무진기행’을 사들고 온 그날 이후 나는 동네 서점에 다시 재미를 붙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을 또 사게 될까, 야릇한 기대감에. 요사이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동네 책방 탐방이 취미”라는 이들이 많다. 조촐한 동네 서점을 찾아 멀리 소도시들을 여행하고, 동아리를 만들어 탐방 프로그램을 짜기도 한다. 신도시라 불리는 우리 동네에도 지하철역 근처 주택가에 작은 책방이 새로 생겼다. 올 초 어느 산책길에 개업떡을 받아들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반년 새 골목 명소로 자리를 굳혔다. 주말마다 주민 독서가들의 독서 토론이 열리고, 어떻게 섭외했을까 싶은 유명 작가들의 낭독회가 심심찮다. 계간 ‘동네서점’에 따르면 근년 들어 한 해 새로 문을 여는 작은 서점은 300여개다. 책을 안 읽는 세상이라는데도 동네 책방은 꾸준히 는다. 작은 책방의 매력은 백인백색일 것이다. 대형 서점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왜소해지는 느낌을 받지 않아서 나는 무엇보다 편하다. 그만큼 실속 있는 피안의 공간이 또 없다는 생각이다. 동네 서점에서만 파는 민음사의 ‘쏜살문고’ 마케팅은 가볍게 성공했다.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등 쉽지 않은 두 권을 한 달 새 3쇄 4000부나 찍었다. 초쇄 2000부로 실험했다는 출판사는 동네 서점 에디션을 계속 내놓을 요량이다. 문학동네도 인기 작가들의 새 소설을 최근 동네 서점에서 예약판매했다. 동네 서점을 살리자면서 정작 인터넷이나 대형 서점 중심으로 출판 마케팅을 했던 데 대한 자성이기도 하다. 좀더 욕심내자면 이런 실험은 작은 출판사로도 확장됐으면 한다. “최순실도 건드리지 않는 업계”라 자조하는 빈약한 출판시장에 동네 책방이 ‘원기소’가 되기를.
  • 2017 미스코리아 진 서재원 “돈-인맥-성형 루머 신경 안 써”

    2017 미스코리아 진 서재원 “돈-인맥-성형 루머 신경 안 써”

    2017 미스코리아 진(眞) 서재원이 하이엔드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라뮈샤의 뷰티 라인에 메인 모델로 나서며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bnt와 함께 진행된 이번 화보에서 그는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며 능숙하게 촬영을 이끌어 나가 가히 미스코리아 진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미스코리아 당선 이후 첫 화보였던 그는 촬영 내내 작은 도움에도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더니 인터뷰에 들어서자 이제야 조금 긴장이 풀린다며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먼저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자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대답과 함께 합숙 기간 내내 사용하던 라뮈샤 뷰티 제품의 메인 모델로 서게 돼 설레고 기쁘다는 소감을 밝혀왔다. 이어 아직도 가끔은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미스코리아 출전계기에 대해 묻자 아르바이트로 헤어쇼 무대에 섰던 경험을 밝히며 “그때 섰던 화려했던 무대가 인상에 깊게 남았는지 이후에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는 꿈을 꿨다”며 “이후 2년간 고민한 끝에 출전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의 권유나 추천으로 미스코리아 대회를 출전하게 되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출전 지원 원서부터 시작해 하나부터 열까지 순수히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의존해 준비했다는 그의 경험담은 왠지 신선해 보였다. 실제로 그는 대회를 앞두고 동네 주민센터 헬스장에서 몸매를 관리했다고. “기구나 환경은 좀 열악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금전적인 부분을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꾸만 손을 벌리는 게 죄송스러워 대회 준비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준비했다”며 성숙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어 “그래도 대회 준비 기간 동안 8kg이나 감량했다”며 생긋 웃어 보일 때는 영락없는 20대 여대생의 모습이었다.미스코리아 진 당선 예상을 했었냐는 질문에 “사실 마음 속으로 진으로 예상하고 있던 후보 언니가 있었는데 갑자기 미(美)에서 그 언니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내가 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선(善)이 불리는 순간에는 마음 속으로 수상소감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당선 기사가 나간 이후 돈이나 인맥으로 당선된 거 아니냐는 댓글과 성형 루머가 돌았던 것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니 신경 쓰이지 않았다”며 쿨한 면모를 보이기도. 다만 “내게 이상적인 몸매의 기준은 ‘건강미’이기 때문에 나는 내 몸매가 만족스러운데 기사 댓글에 몸매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하더라”며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성숙한 답변을 내놨다. 당선 이후 나가는 기사에 달리는 악플이 신경 쓰이지 않냐는 질문에는 “악플도 관심의 표현이라 생각하기에 크게 상처 받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악플보다는 무플이 더 상처”라고 답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매력 포인트에 대해서는 “웃기고 애교가 많은 편”이라고 말하며 “평소에 엽사(엽기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당선 이후에는 친구들이 못 찍게 말리더라”며 아쉬운 미소를 내비쳤다.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던 그녀의 또 다른 취미는 다름아닌 서핑. “21살 때 시작해 2년째 푹 빠져 있는 중”이라고 답해 이색적인 취미 활동을 밝혔다. 인생에 가장 예쁘고 꽃 다운 나이에 미스코리아 진이라는 영광의 타이틀까지 얻은 그녀에게 조심스레 연애에 대해 묻자 “아직”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미스코리아 활동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덧붙이던 그녀는 이상형에 대해서는 “자상하면서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이라고 답하며 연예인으로는 배우 이정재를 꼽았다.한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 중인 그녀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무용 전공을 살려 한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내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따뜻한 심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던 서재원. 앞으로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대표해 그녀가 펼쳐나갈 활약이 기대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017 미스코리아 진 서재원 “돈, 인맥, 성형 루머 신경 안 써”

    2017 미스코리아 진 서재원 “돈, 인맥, 성형 루머 신경 안 써”

    2017 미스코리아 진(眞) 서재원이 하이엔드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라뮈샤의 뷰티 라인에 메인 모델로 나서며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라뮈샤Xbnt와 함께 진행된 이번 화보에서 그는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며 능숙하게 촬영을 이끌어 나가 가히 미스코리아 진(眞)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미스코리아 당선 이후 첫 화보였던 그는 촬영 내내 작은 도움에도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더니 인터뷰에 들어서자 이제야 조금 긴장이 풀린다며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먼저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자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대답과 함께 합숙 기간 내내 사용하던 라뮈샤 뷰티 제품의 메인 모델로 서게 돼 설레고 기쁘다는 소감을 밝혀왔다. 이어 아직도 가끔은 미스코리아 진(眞)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미스코리아 출전계기에 대해 묻자 아르바이트로 헤어쇼 무대에 섰던 경험을 밝히며 “그때 섰던 화려했던 무대가 인상에 깊게 남았는지 이후에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는 꿈을 꿨다”며 “이후 2년간 고민한 끝에 출전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의 권유나 추천으로 미스코리아 대회를 출전하게 되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출전 지원 원서부터 시작해 하나부터 열까지 순수히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의존해 준비했다는 그의 경험담은 왠지 신선해 보였다. 실제로 그는 대회를 앞두고 동네 주민센터 헬스장에서 몸매를 관리했다고. “기구나 환경은 좀 열악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금전적인 부분을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꾸만 손을 벌리는 게 죄송스러워 대회 준비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준비했다”며 성숙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어 “그래도 대회 준비 기간 동안 8kg이나 감량했다”며 생긋 웃어 보일 때는 영락없는 20대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미스코리아 진(眞) 당선 예상을 했었냐는 질문에 “사실 마음 속으로 진(眞)으로 예상하고 있던 후보 언니가 있었는데 갑자기 미(美)에서 그 언니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내가 진(眞)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선(善)이 불리는 순간에는 마음 속으로 수상소감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당선 기사가 나간 이후 돈이나 인맥으로 당선된 거 아니냐는 댓글과 성형 루머가 돌았던 것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니 신경 쓰이지 않았다”며 쿨한 면모를 보이기도. 다만 “내게 이상적인 몸매의 기준은 ‘건강미’이기 때문에 나는 내 몸매가 만족스러운데 기사 댓글에 몸매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하더라”며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성숙한 답변을 내놨다. 당선 이후 나가는 기사에 달리는 악플이 신경 쓰이지 않냐는 질문에는 “악플도 관심의 표현이라 생각하기에 크게 상처 받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악플보다는 무플이 더 상처”라고 답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매력 포인트에 대해서는 “웃기고 애교가 많은 편”이라고 말하며 “평소에 엽사(엽기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당선 이후에는 친구들이 못 찍게 말리더라”며 아쉬운 미소를 내비쳤다.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던 그녀의 또 다른 취미는 다름아닌 서핑. “21살 때 시작해 2년째 푹 빠져 있는 중”이라고 답해 이색적인 취미 활동을 밝혔다. 인생에 가장 예쁘고 꽃 다운 나이에 미스코리아 진(眞)이라는 영광의 타이틀까지 얻은 그녀에게 조심스레 연애에 대해 묻자 “아직”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미스코리아 활동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덧붙이던 그녀는 이상형에 대해서는 “자상하면서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이라고 답하며 연예인으로는 배우 이정재를 꼽았다. 한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 중인 그녀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무용 전공을 살려 한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내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따뜻한 심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던 서재원. 앞으로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대표해 그녀가 펼쳐나갈 활약이 기대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드피플+] 17년 간 자식 4명과 함께 세계여행 중인 부부

    17년이라는 시간동안 무려 100개 나라 이상을 세계여행하는 부부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더욱 놀라운 점은 길고 긴 여정에서 모두 4명의 자식까지 낳아 온가족이 함께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17년 째 세계여행 중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부부 헤르만(49)과 칸델라리아 잽(47)의 사연을 전했다. 최근 영국에 입국해 현지를 여행 중인 잽 부부는 아메리카 대륙을 시작으로 세계 각 대륙을 돌았다. 특히 지난 2010년 잽 부부는 부산으로 입국해 오래된 자동차를 몰고 한국땅 일주를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믿기 힘든 잽 가족의 세계여행은 어린시절 몽상이 현실이 된 경우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의 아는 오빠 동생이었던 두 사람의 꿈은 세계여행이었다. 칸델라리아는 "14살 때 처음 우리는 데이트를 했다"면서 "만날 때마다 함께 여행서적을 읽으면서 세계여행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9년 후 두 사람은 결혼했고 오랜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했다. 2년 간 돈을 저축한 부부의 첫 여행이 시작된 시기는 지난 2000년. 부부는 1928년 산 클래식카를 타고 남아메리카 대륙 남쪽 끝인 파타고니아에서 출발해 알래스카까지 종단하는 대장정에 나섰다. 당초 계획은 6개월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온 것은 4년이나 지난 2004년. 칸델라리아는 "출발 6개월 후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에콰도르였다"면서 "모아놓은 돈도 다 떨어져 여행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때부터 우리는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과 책, 사진을 팔아 여비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부부는 4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행 중 얻은 경험과 추억은 여전히 그들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이에 부부는 이듬해 다시 짐을 싸 본격적인 세계여행에 나섰다. 먼저 부부는 2009년까지 중미, 미국, 캐나다 전역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애마'를 배에 선적해 호주와 뉴질랜드를 돌아 본 부부는 한국과 일본을 거쳐 동남아시아까지 여행했다. 흥미로운 점은 길고 긴 여행길에서 부부는 올해 16살이 된 장남을 포함, 모두 4명의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칸델라리아는 "여행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큰 아들이 태어났으며 모두 국적도 다르다"면서 "처음 2명으로 시작한 여행이 이제는 6명이 됐다"며 즐거워했다. 길고 긴 여행에서 여비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자식 교육일 터. 칸델라리아는 "주위 사람들이 자식 교육에 대해 우려하는데 아르헨티나 교육부의 커리큘럼을 따르고 있다"면서 "내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2달에 한번 꼴로 온라인 시험 결과를 교육부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가장 큰 교육은 여행하면서 얻는 경험"이라면서 "예컨대 아프리카에서는 먹이사슬을, 피라미드에서는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제 잽 부부의 마지막 여행지는 현재 머물고 있는 유럽이다. 칸델라리아는 "1년 후 쯤이면 고향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면서 "다음 모험의 목표는 한 곳에서 사는 방법"이라며 웃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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