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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정책ㆍ군축전략 세미나 중계

    민자당과 평민당은 5일 각각 63빌딩과 프레스센터에서 「6ㆍ29 3주년기념 대토론회」 「통일및 북방정책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가졌다. 민자당토론회는 「민주화와 정치발전의 향후과제」 「북방정책과 통일전망」 「경제안정과 국민복지」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평민당토론회는 통일및 북방정책이란 단일 주제로 전개되었다. 이날 두 토론회 내용중 정부측의 통일정책 논리를 정리한 민자당토론회의 이홍구 대통령정치담당특보와 군축에 관한 구체적 전략을 제시한 평민당토론회의 지만원씨(군사전략가)의 주제발표 내용을 각각 발췌,소개한다. ◎북방정책과 통일 민자/새로운 민족공동체 꾸미는 작업/대결서 협력관계로 전환이 관건 ◇북방정책과 통일전망(이홍구 대통령정치담당특보)=국내외에서 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6공화국이 이를 통일로 향한 획기적 새 발상과 정책수립의 계기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통일은 과연 무엇을 뜻하며 어떻게 추진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원초적 문제에 대해 다음 세측면에서 새로운 발상이 전개되었다. 첫째,통일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의 창조라는 것이 뚜렷하게 인식되었다. 통일은 새로운 민족사회를 만드는 창조적 작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그러한 통일의 미래상은 정치위주로 특히 국가체제위주로 논의되기 보다는 민족의 전통과 꿈과 삶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민족공동체의 창조를 중심으로 기획되는 것이 규범적 측면에서나 실현가능성이란 측면에서 다함께 바람직하다. 셋째,민족공동체 형성을 통한 통일의 달성은 여러 단계를 거친 긴 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무한한 인내력과 치밀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위와같은 새로운 발상에 입각해 대화ㆍ교류ㆍ협력을 통한 남북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마련코자 7ㆍ7선언이 나왔으며 공동체 형성을 위한 종합적인 청사진으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남북당사자간 협의와 병행해 이에 걸맞는 주변환경의 조성과 지역적 평화구조의 모색을 위해 유엔에서의 6개국 협의체안 제시가 있었다. 북한이 냉전시대의 고정화된 입장,전체주의 체제가 지닌절대적 경직성으로부터 다소나마 탈피해 대결관계를 협력관계로 전환시키는 노력에 동참토록 유도하기 위해 우리는 3면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것은 7ㆍ7선언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등 획기적 정책추진,우방 및 국제사회로 하여금 북한에 개방압력,북한의 동맹국들로 하여금 변화의 불가피성을 북한에 설득토록 하는 3면 전략이다. 이러한 3면으로부터의 개방화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아직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남북간에는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 대화가 전개될 것이며 다음달로 예정된 총리회담이 그 첫번째 예이다. 남북대화나 교섭의 초점은 의제선정에 있지않고 대화의 형식이나 틀에 있다. 남은 문제는 북한이 우리 정부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대화를 나눌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북군축의 요체 평민/주한미군 전쟁억지력 설득을/정상회담서 정치결단 내려야 ◇남북한군축의 요체(지만원 전국방연구원책임연구위원)=군축은 안보전쟁시대에서 경제전쟁시대로 돌입하는 세계적인 변화 추세이다. 남북한간에각종 교류가 활발해지고 군사적 위협이 축소된다는 것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지름길이며 전제조건이다. 전 공산권의 정치ㆍ사회적 변화와 경제개발의 물결이 우리 북방외교정책과 이익을 같이하고 있으며 한소관계의 진전으로 북한의 체제고수 노력은 북의 고립화를 더욱 심화시켜갈 것이다. 주한미군이 대북전쟁 억제력만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사아에서의 세력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에 납득시키는 것은 군축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주한미군은 남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의 철수는 일본의 핵개발과 재무장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 납득시켜 주한미군의 존재를 정당화시켜야 한다. 군축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군축은 화해ㆍ개방ㆍ교류의 정치적ㆍ경제적 접근과 병행 실시되어야 하고 공세적 방어전략과 선방어 전략이 포기되어야 한다.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은 북한을 군축협상에 끌어들이는 데 가장 좋은 무기다. 주한미군이 전쟁억제력을 제공하고 있는 사이 남한은 과감히 감군을 실현,북한에 신뢰성을 보여줄수 있다. 군축의 추진전략으로는 일단 남북 정상회담에서 군축에 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린 뒤 남북 공동위원회를 개최,기본원칙 등에 대한 실무접근을 봐야 한다. 각종 교류외에 휴전선 일대에서 물물교환 10일장,각종 연예행사,미술전 등의 민간활동을 증진해야 한다. 군축을 위해 비생산적인 FX사업포기선언등으로 남한이 솔선해 신뢰구축을 선도해야 한다. 각 정당의 범정당적인 연구기구를 설치하고 군과 정부는 최우수 인력을 선발,대북제안 내용과 대내작업에 대한 정책을 연구해야 한다. 북한에게 감축규모와 감축후의 인력ㆍ장비 등의 처리문제 등을 제안해야 한다.
  • 동독 훔볼트대 미셀교수는 말한다(이제 독일은 「하나」:5)

    ◎“「폐쇄체제」염증이 통합 앞당겼다”/일당독재ㆍ경제피폐 따른 국민불만 폭발/자본부족등 과제 많지만 시장경제 낙관 분단 독일이 하나된날,1일의 「D­마르크 데이」를 감격으로 보낸 동서독국민들은 이제 들뜬 분위기에서 벗어나 차분히 주변을 되돌아 보고 있는 모습들이다. 『경제ㆍ사회통합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왜 그것이 가능했으며,앞으로 무슨 문제점이 있고,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민족사 변천의 전환점에 선 그들이 곱씹고되새겨 볼 구석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동독지식인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동베를린 훔볼트대 경제학교수 크나후터 미셀박사를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경제ㆍ사회ㆍ 통합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세대에서는 희망할 수도,기대할 수 없었던 역사적 선물을 독일 민족에게 안겨 주었다. 통일이란 꿈이 어느날 갑자기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동서의 화폐가 어느 한쪽의 것으로 단일화 됐다는 사실은 실무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나 그것이 바로 실질적인 분단종식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민족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평소 통일에 대한 귀하의 생각은 어떤 것이 있나. ▲먼저 얘기 했듯이 먼 장래의 것이며 우리 세대에서는 그 기반이나마 착실히 다져두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아 왔다. 언젠가는 이루어야할 분단민족의 과제가 통일인 것만은 사실이나 1년전만 해도 누가 오늘과 같은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난 1년간 급속히 진행된 통일추진 작업들이 제수준을 밟았다고 보는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미화되게 마련이다. 칭찬받을 만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좋은 결과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나는 지난해 11월 베를린 장벽붕괴 이후 가시화되기 시작한 통일이 피바다속에서 이루어 질 것인가,아니면 시민들의 자유스런 의사표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평화적으로 성취될 것인가에 대해 매일 매일 걱정하면서 89년을 넘겼다. 자칫 잘못했으면 굉장히 비참한 사태가 초래 됐을지도 모른다. 서로 결과는 다르지만 중국 천안문사태나 루마니아사태가 비극을 초래한 점은 똑같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던 점을 돌이켜 보면 소름이 끼친다. ­통일의 가능성을 점친 것은 언제쯤인가. ▲호네커가 실각하고 두달쯤 뒤에는 통일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헬무트 콜 서독총리와 한스 모드로브가 만나 민족문제 해결에 희망적인 작업을 해내는데 실패했더라면 동독사람들은 통일작업의 추진을 포기 했을지도 모른다. 공산독재정권타도 데모는 그 목적이 성취되자 자연스레 통일요구 시위로 바뀌었고 다시 콜­모드로브 작업의 격려를 위한 궐기대회 비슷한 성격으로 변모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거리낄 것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동독국민들을 처음 거리로 나오게 한 배경은 무엇이었나. ▲공산당 일당독재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폐쇄사회의 모순,경제침체 등 원인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행할 수 없도록 묶어둔데 대한 반발과 불만의 폭발은 평소 강제로 주입시켜온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지난해 동독시위의 첫 구호는 「여행자유화」였음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위에 앞서 계속된 서독으로의 대탈출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또 차 한대 사려면 13년을 기다려야 하는 침체된 경제상황이 부채질을 한 셈이다. 동독 국민들은 처음부터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억압된 사회는 어떤 하찮은 동기에 의해서도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계속되어 오던 동독은 자본주의 서독으로 흡수되고 있다. 사회주의가 소멸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만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경제형태는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독의 예를들면 주택ㆍ의료ㆍ교육문제 등에 있어 사회보호를 위한 그물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급격히 변동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안에서의 점진적인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변화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더욱 강화되고 존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경제통합을 해석한다면 동독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급류가 흐르는 강을 헤엄쳐 건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윤이란 생소하면서도 매력있는 열매를 보장하고 있는 강건너 저쪽의 시장경제를 향해 힘들게 헤엄쳐 건너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동독은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어느정도의 경제규모는 유지하고 있어 강건너 저편에 도달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강을 건너려는데 가로막는 것은 없는가. ▲솔직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도 모자란다. 생산시설은 낡고 경영기법도 뒤떨어져 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시장경제체제로 바뀌는데 대한 모델도 없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숱한 시행착오가 뒤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통합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완전통일에 지장을 줄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과연 경제통합이 완전통일의 첫관문이라고 보는가. ▲물론이다. 분단의 골이 깊어져 있는데,완전통일이 한번에 달성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헛꿈에 불과하다. 통일은 해야겠고 그것이 정치적으로는 아직 불가능할 때 우선 경제통합부터 실시할 수 밖에 없지않겠는가. 이론가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통합이전의 단계로대차방법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일단 통화통합으로 시작했고 큰 무리가발견되지 않고 있느니만큼 잘 진행 될 것으로 생각한다. ­동독은 이념적인 면에서 과거의 「동구」에서 이미 떠났다. 그러나 옛 우방들과의 관계 마저 끊을 수는 없다고 보는데,앞으로 동구국가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리라고 보는가. ▲관계가 더욱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도 이미 과거의 이념 굴레 안에서의 친구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며 또 스스로도 변하고있다. 앞으로의 세계,미래의 유럽에서는 옛날과 같은 이분법의 친소관계가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되고 하나의 국가가 되더라도 과거에 맺은 조약들은 계속 지킬 것이며 그들과의 경제관계도 더욱 수월해지고 깊어질것이다. ­독일의 통일을 겁내고 있는 이웃나라들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 ▲「독일」하면 모든 인류는 「전쟁」을 연상한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이야기이다. 우리는 다시 큰 힘을 가지고 이웃에 간섭하고 세계를 귀찮게 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누가우리의 얘기를 쉽사리 믿으려 하겠는가. 정치적 통합이 뒤로 늦어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답을 알고 있다. 히틀러가 힘으로 유럽을 전쟁속으로 몰아넣었으나 결국은 항복으로 끝났고,그뒤의 독일역사는 민족분단 비극사이다. 우리는 이같은 역사적 교훈을 늘 명심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통일이 정말 올해안에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전독총선이 끝나면 바로 실현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동안 과정에는 국민들의 힘이 큰 작용을 했지만 이제부터는 정치지도자들의 역량에 달렸다.
  • 고르지 못함을 걱정해야 할 때(사설)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불환과이환불균)』는 말이 있다. 공자가 그 제자를 꾸짖으면서 한 말이다. 적은 것보다 더 걱정해야 할 일은 고르지 못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참으로 만고의 진리로 되는 명언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모두가 못살 때는 못사는 것만이 걱정이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게 되면 그에 따라 마음의 병이 도지게 된다. 못가진 자는 자칫 가진 자와 위정을 원망하면서 불평 불만과 반항 정신을 싹틔우고 가진 자는 또 가진 자대로 군림하면서 오만해지기 쉽다. 공자가 걱정을 했던 것도 그것이다. 함께 없을 때는 심성이 상하지 않았던 것인데 고르지 못하게 됨에 따라 빈부간에 심성이 비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3일 경제기획원이 국회에 제출한 한 자료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한번 더 깊이 해보게 한다. 절대 빈곤층이 3백31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7%에 이른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들은 자력으로 최저수준의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다. 그보다는 좀더 낫다고 하더라도 근근이 생계를 이어 가는 층까지를 염두에 둔다면 개인소득 5천달러로 선진국 대열에 끼어 들고 있는 우리는 대단히 많은 빈곤층을 안고 있다할 것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기에 미국 같은 나라에도 거지는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 가난에 대해서는 제가 무능하고 나태했기에 결과한 것 아니냐 하는 극단론도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논리를 한결같이 적용시킬 수는 없다. 질병·불구외에도 복합된 사회의 부조리 현상이 빚어내는 소년소녀 가장의 경우 등 갖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웃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절대빈곤층이 많다는 것은 우리의 치부이다. 생각하자면 체제 유지의 측면에서도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시해야 한다. 금세기들어 공산주의 사상이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절대빈곤층이 두터웠던 데에 연유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절대빈곤층이나 준절대빈곤층을 줄이는 일이야 말로 「민중」과 「대중」을 앞세우는 운동권 논리의 소지를 없애는길로도 된다 할 것이다. 이들 절대빈곤층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하여 그 흔한 데모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배려를 반드시 정부의 시책에다만 미루어 버릴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부를 구가하는 층들이 수수방관하지 않아야 겠다는 뜻에서의 말이다. 물론 당장의 구호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자녀교육에의 길을 열어주고 또 가능한 경우 자활에의 의지를 심어주는 가진 자들의 장기적 안목의 노력이 정책과 병행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진다. 그 점에서 얼마전 발표된 럭키금성의 「사회복지재단」에 찬사를 보내면서 운영의 묘까지 살릴 것을 아울러 당부해두고자 한다. 이번 기획원 제출 자료에서 주목되는 것이 절대빈곤층의 시도별 분포상황이다. 전남이 1위이고 전북이 2위로 되어 있는데서 지역균형발전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 해소는 어떤 외침이 아니라 이런 불균형의 시정에서부터 출발되는 것임을 명념해야겠다.
  • 교포화합에 앞장 민단 박병헌단장

    ◎“민단­조총련 장벽도 곧 헐리겠지요”/조총련 내부에도 「변화의 기류」 움터/노대통령 방문계기,“동포로 포용” 결심 민단사상 최초의 소련 공식방문을 앞두고 있는 박병헌단장(61)은 분주한 속에서도 1시간여에 걸쳐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성과,조총련과의 대화계획,소련방문의의 등을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먼저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재일동포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이를 계기로 조총련측과의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요. ▲사실 대통령의 방일결정때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민단내의 의견도 찬ㆍ반으로 갈려있는 상태였습니다. 우선은 일본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사죄태도가 분명치 않은 상태였다는 점,또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보장문제도 석연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대통령의 방일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논이 있었습니다. 재일동포의 법적지위문제는 70만 동포의 생활권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민단이 대통령 방일을 반대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민단집행부에서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민단입장에서는 이만큼 노력했으면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와서 한말씀하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며,90년대 정리의 계기가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 판단은 옳았습니다. 대통령의 방일은 45년 재일동포의 한을 풀어주었고,일본의 정치ㆍ지식인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새로운 관점에서 인식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차원높은 국회연설에 대해서는 민단ㆍ조총련을 불문하고 재일동포전체가 긍지를 갖게 한 큰 성과였습니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방일은 재일동포사이의 민단ㆍ조총련의 장벽을 제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노대통령은 법적지위해결은 민단계동포 뿐만 아니라 조총련계동포들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일본정부도 수긍했고,한국과는 교제를 갖지않던 일본사회당ㆍ공산당 수뇌들과도 대화를 나눌 계기가 됐습니다. 대통령의 국회연설 때 사상유례없이 전 국회의원이 참석했다는 것은 한일관계를 중요시하려는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밖에는 모르던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민단ㆍ조총련의 장벽을 제거할 것입니까. ▲노대통령이 민단주최 환영리셉션에서 『조총련계 인사들을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동포로서 포용해 나가야할 것』이라는 말씀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책임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45년간 일본에서 받았던 차별의 설움을 씻고,동포간 투쟁의 역사를 종식시켜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우리의 문호는 개방되어 있으며 조총련중앙과 조건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기 때문에 이달중으로 제의할 생각입니다. 사실 그동안에도 몇차례에 걸쳐 대화를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건이 다릅니다. 독일의 통일에서 교훈을 얻는 바와 같이 우리의 남북통일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 시초는 일본 도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계정세가 변화하는 가운데 처음으로 시도되는 우리의 제안은 받아들여지리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조총련이라는 조직은 아직도 북한의 지령을 받아 파괴활동을 일삼는 적성단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제는 공작적 차원의 흉계는 버리고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대화에 나서도록 권고하려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로 보아 저쪽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조총련 조직자체로서는 아직도 일체의 대화접촉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한덕수의장은 나이도 많고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는 것 같으나 일반회원들의 공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경제인들은 융통성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총련인사들의 한국방문도 매년 2천여명씩을 상대로 실시하는 성묘단의 차원을 떠나 지도층에서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폭을 넒혀나가도록 주선하겠습니다. ­이번 민단집행부의 대거 소련공식방문단 구성은 사상최초의 것이 아닙니까. 방소 목적은 무엇입니까. ▲소련거주 한인들의 모임인 고려한인회(회장 미하일박) 간부들과 만나 소련과 북한의 현황을 파악하고 의견을 듣자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해외동포로서 본국의 북방정책을 지원하고 참여할 길을 찾자는 뜻도 내포된 것입니다. 이와함께 북한의 지도급 출신 소련 거주 인사들의 일본방문도 초청,의견을 듣는 기회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오는 7월4일에는 파리에서 개최되는 해외한민족협의회 운영위원회에도 참석키로 되어 있습니다.
  • 광고시장 개방 대비,자생력강화 주안/「광고진흥법」제정 추진의 함축

    ◎소비자 보호ㆍ공익성 제고가 목적/일부선 “언론통제 위험성 내포” 비판도/여론조사서 79%가 “현 법규 개선 희망” 정부는 국민생활에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91년 광고시장의 개방이 임박해옴에 따라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서두르고 있다. 아직 정부의 공식입장은 구체화 되지 않았지만 올해안에 각종 광고관련 법령과 윤리강령을 포괄하는 새로운 광고법을 별도로 제정하는 것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보처는 이와 관련,현재 광고관련 법규와 윤리강령 등 각종규정이 1백40여종에 이르고 있으나 관련 법규 상호간에 합리적 기준이 결여된 데다 광고규제 규정의 미비로 소비자보호가 미흡하며,광고의 공익성제고를 위한 장치가 부족해 광고시장 개방을 고려하면 문제가 심각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광고시장의 개방에 따라 광고업계의 자생력 제고와 광고의 공정거래질서가 시급히 확립되어야 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본적 시각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복안이 내면적으로는 광고의 진흥보다는법적 규제의 강화나 사전사후 심의기능강화 의도가 강해 광고를 통한 언론통제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공보처는 이에따라 광고업계의 여론을 보다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 현재의 광고산업의 상황과 여건에서 광고관련 법규 등에 대한 광고전문가들의 의견조사를 실시,그 결과(오차어용치 ±4%)를 26일 발표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4월9일부터 5월26일까지 광고관련학자 광고주 광고대행사 광고제작사 매체사 광고관련단체 소비자단체 정부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는 ▲새 광고법 제정에 대한 의견 ▲광고 및 광고산업 전반에 대한 평가 ▲현행 광고물 심의제도평가 등이 중점적으로 조사됐다. 우편회신을 이용한 이번 조사에서는 1천5백여명중 3백69명이 응답했는데 조사결과 광고전문가들은 우리의 광고산업이 사회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현재 광고산업은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광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98.9%가 광고가 일상생활에 도움을 준다고 대답했으며 문제점으로는 과대광고(20.6%) 매체수급불균형(10%) 광고전문인력부족(8.7%) 순으로 꼽았다. 광고관련 법규 재정비와 관련해서는 현상태 유지의견이 2.4%에 불과한 데 비해 79.2%가 개선을 희망했다. 국내 광고관련 각종 법령과 윤리강령을 포괄하는 별도의 광고법 제정의 필요성에는 59.1%가 찬성,19.2%가 반대의견을 나타냈으며 새 광고법을 제정할 경우 명칭은 광고진흥법(38.2%)으로,광고시장 개방이전인 금년에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52%)이 높았다. 새 광고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로는 합리적인 기준 및 통일성 필요(25.7%) 소비자보호와 과대광고 방지(13.3%) 광고관련 법규를 통합한 모법필요(10.1%)가 지적됐고 새 광고법에는 광고의 자율성과 책임성(86.7%) 광고로 인한 피해구제 및 소비자보호(84.3%) 광고물 자율심의제도(75.6%) 등이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행 광고관련 법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광고관련 법규 상호간의 합리적 기준결여(47.7%)를 들었으며 광고물에 대한 규제정도는 보통이라는 의견(41.7%)이 가장 많았으나 소비자단체(76.2%)와 정부기관(51.4%)에서는 미흡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행 방송광고물 심의제도에 대한 의견에 있어서도 전체적으로 현재보다 더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화(37.9%)쪽보다 다소 높은 43.1%의 응답률을 보였다. 소비자단체(90.5%) 정부기관(82.9%) 광고관련단체(58.6%) 등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대행사(68.7%)와 광고주(58.5%)는 완화되는 방향을 선호했다. 방송광고물에 대한 바람직한 심의제도는 법적 심의제도와 자율심의제도의 병행(53.9%)을 들었으며 인쇄매체 광고물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을 응답자의 55.3%가 꼽았다. 이와함께 최근 광고업계에서 활발히 거론되고 있는 자율규제 기구의 구성과 관련,전반적으로 광고물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자율규제방법으로서는 광고관련단체를 중심으로 한 중앙자율규제기구의 구성(57.2%)을 들고 있어 주목된다. 광고전문가들은 특히 광고시장 개방에 대비,광고업계가 시급히 대처해야 할 방안으로 광고업계의 자생력과 국제경쟁력 제고(66.4%)와 전문인력의 양성(50.9%) 등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한편 광고업계 현안인 외국인 모델의 방송광고물 출연에 대해서는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66.4%)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 재미작가 김은국씨의 「민족사적 6ㆍ25론」

    ◎한민족,자의건 타의건 「자유로운 삶의 길」로/“살상ㆍ폐허ㆍ굶주림” 고정관념 벗어날때/개개인의 체험 역사적 맥락서 조망해야/반억압 선택은 바로 「인간해방의 길」/이제야 변혁하는 동구를 보니 큰 대가 치렀지만 값진 경험/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6ㆍ25니 8ㆍ15니 그러한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어마어마한 뜻을 갖고 있는 역사적인 날이 찾아올 때마다 느끼는 것들 중의 하나이지만 우리는 참으로 쓸데없이 거창하고 모호한 말을 즐겨쓰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문을 토대로 한 우리의 언어의 덕분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에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세상의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특이한 태도가 있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흔히 겉잡을 수 없는 허황한 상투용어로 한마디하고 넘어가 버리는 버릇이 있다. 8ㆍ15가 오면 언제나 「과거 36년간 혹독한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로 시작하고 끝나고 6ㆍ25가 오면 으레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시작하여 「조국분단의 쓰라림」 등으로 끝난다. 상투용어란 것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써먹어 오다보니 누구나가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처럼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지만 따져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까 한번쯤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상투용어를 빌려 쓰지 말고 자기의 말로써 인생의 경험을 이해하려고 애써 볼 만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 한국에서 흔히 듣는 말이지만 「6ㆍ25를 모르는 세대」라는 표현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개는 「6ㆍ25를 모르는 세대」가 이렇고 저렇고 할때 풍기는 뜻은­그런 표현을 쓰고 사람들에게서 오는­그 세대가 좀 한심하다는 것이다. 그 세대가 한심한건 말건 그것은 둘째로 치고 우선 그러면 그 표현이 내포하는 즉 「6ㆍ25를 아는 세대」는 과연 6ㆍ25를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인생과 역사의 결합 누가 시작한 진담­농담인지는 몰라도 어린애들(물론 6ㆍ25를 모르는)에게 6ㆍ25때 얼마다 먹을 것도 없고 고생했었던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 애들이 「그럼 왜 라면이라도끓여먹지 않았냐」하더라고… 원 그런 어처구니 없는 한심한 것들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6ㆍ25를 아는 세대」가 6ㆍ25때는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피란만 다녔다는 식으로 「고생」했다고 말을 시작하면 어린애들은 역시 그런 식으로 반문을 할 것이 뻔하다. 고생했다,굶었다,헐벗었었다,많이 죽었다,도시는 폐허가 됐었다,가족이 흐트러졌다­물론 6ㆍ25의 경험속에는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간다. 6ㆍ25라는 것이 빚어낸 현상이며 결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6ㆍ25를 참으로 설명해 주지도 않고 해줄 수도 없다. 경험이란 것은 왜 그 경험이 있게 되고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알지 못하면 그 경험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러니 한편으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공동체가 쓰는 상투용어로,또 한편으로는 「고생했다」는 개인이 쓰는 역시 상투용어로만은 6ㆍ25와 같은 어마어마한 민족공동체적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6ㆍ25를 체험한 세대에게나 6ㆍ25를 모르는 세대에게나 마찬가지의 문제라고 본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역사관,그 역사관과 개인을 연결시켜주는 개인의 인생관­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하는­가치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나에게는 6ㆍ25는 「선택」의 경험이라고 여겨진다. 그 「선택」에는 두가지의 선택이 있었다고 본다. 하나는 개인적인 한가지 한가지의 「작은 선택」들이고 또하나는 커다란 역사적인,나아가서는 철학적인 「커다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커다란 역사적인 철학적인 「선택」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중에 온 것이다. 우선 「작은」 선택들이 모이고 쌓이고 하다 좀더 철이 들고 배우고 사색하게 되면서 그 개인과 역사를 연결시켜 주는­인생관과 역사관의 결합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고향이 이북이어서 8ㆍ15를 이북땅에서 맞았다. 그 덕분에 남한으로 넘어오기 전 3년여를 북한식 공산주의체제 밑의 생활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경험에 바탕을 둔 「작은 선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내게 중요한몇개만을 들어보겠다. 첫째로 생각되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의 특이한 「작은 역사」를 무시하고 말살시키려는 주의와 사상을 거부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공산당 권력체제가 주장하고 실행한 소위 계급투쟁으로 「소지주 계급」의 낙인이 찍힌 우리는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때의 우리의 재산이란 한때 가난했던 조부모님이 일하고 저축하여 쌓았던 것이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고­본인들과 후손의­노력해온 그들의 구체적인 「작은 역사」는 「계급투쟁」이라는 추상적인 커다란 주의ㆍ사상으로부터 아무런 이해와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 그 경험은 개개인의 작은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나에게 심어주었고 그것을 말살시키려는 주의ㆍ사상ㆍ정치체제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정치관을 갖게 했다. 또한 그러한 소위 「계급투쟁」의 발단,심리적 원시점은 인간의 가장 천한 본능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의 것을 탐내고 남을 시기하는 원시적인 본능을 부추겨서 『잘산다』 『못산다』의 개념과 정의를 오로지 물질적인 차원에만 두는 가엾은 인생의 가치관을 보았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나아가서는 그러한 추한 인간의 본능을 『그럴듯한』 정치이념과 주의로 장식하여 인간의 증오심을 정의감으로 가장시켜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어떠한 사상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선택」을 했다. 목사이셨던 외조부께서 일본통치하에서도 억압을 당하시고 북한공산체제 밑에서도 억압을 당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나의 외조부님을 억압하는 자들」에게의 반항의 「선택」에서 시작하여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이면서도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치이념ㆍ주의사상은 반대해야 한다는 「선택」을 하였다. ○한국은 운좋은 나라 그렇게 하여 내가 6ㆍ25가 일어나기 얼마전 남한으로 넘어 왔을 때는 이미 수많은 작은 「선택」들이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6ㆍ25가 왔을 때 그 전쟁은 나에게는 혹독하게 말한다면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나」를 없애버리려는 권력에는 방항ㆍ대항해야 하는 선택밖에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대한민국이 더 좋아서 더 귀중해서 대한민국을 사수하기 위해서 참전한 것 같지는 않다. 또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어쩌니 하는 감상을 품고 전쟁을 겪은 것 같지도 않다. 우선 「나」라는 하나의 인간의 「자신」이 살아 남아야겠다는 것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개성,특이한 작은 역사,개인의 존엄성­이러한 것들이 보존되고 살아 남아야겠다는 신념과 행동의 선택에서 이윽고 자유에의 「선택」이 있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인생관 가치관이 그 당시에는 지극히 구체적인 것이었으면서도 이념적으로는 뚜렷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훗날에 「나」라는 하나의 개인과 그 개인의 경험을 역사와 연결시켜주는 역사관을 찾았을 때 6ㆍ25를 비롯한 지난날의 경험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인간의 역사를 이렇게 생각한다. 즉 인간의 역사는 「해방」으로의 과정이라고 본다. 자연의 공포와 횡포로부터의해방,질병으로부터의 해방,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무식으로부터의 해방,인간이 타인에게 행하는 무자비한 잔인으로부터의 해방­끝없이 많은 인간해방이 필요하고 하나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유」로의 행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혹한 인간역사의 사실이 증명하듯 그것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한 해방의 과정은 조금씩이나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여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해야 한다. 개개의 구체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하여 여러 작은 「선택」을 해온 나로서는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지극히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6ㆍ25란 나에게는 하나하나의 개인이 나름대로의 해방을 찾고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인생관과 역사관을 얻게 해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흔히 진담­농담으로 말하듯이 대한민국은 참으로 운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그렇게 말할수 있는 나도 운이 좋은 사람이 되겠지만). 6ㆍ25는 대한민국에도 역시 하나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싫건 좋건 이끌린 삶 강대국간의 냉전이니,국제정세의 배경이니,국토의 분단이니­「동족상잔의 비극」이니­그런 것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6ㆍ25라는 역사적 사건과 경험은 한국으로 하여금 되돌릴 수 없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선택을 하도록 했다. 그 「선택」으로 한국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자유주주의체제 쪽으로,공산주의의 국가통제경제가 아닌 자유시장경제체제 쪽으로,그 당시에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이끌려 간 것이다. 그리하여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간에 개개인의 역사가 존중되고 개개인의 나름대로의 자유가 존중될 수 있는,앞서 말한 인간해방의 역사관의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가 의식적으로 또한 고의적으로 그러한 역사의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는 말은 아니다.한국이 운이 좋은 나라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게 된다. 6ㆍ25를 전후한 국제정세와 6ㆍ25라는 처참한 경험을 겪고 살아남은 한국은 어쩌다 싫건 좋건 그러한 길을 선택하게 됐고 그리하여 오늘의 한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한 선택을 한 이상 한국은 어쩔 수 없이라도 한걸음 한걸음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 끼여 따라가게 돼있다. 지난 몇년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변화와 발전을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커다란 인간역사라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은 물론 국가사회라는 공동체도 예측할 수 없는 현상과 결과를 빚어내는 버릇이 있다. 6ㆍ25라는 역사는 어쩌면 한국사회가 자진해서 이룬 것이 아닌 하나의 선택을 한국사회에 강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선택이 나 자신의 선택과 어울리는 것이기에 지극히 흡족하게 느낀다. 그러기에 나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는 6ㆍ25를 겪었기 때문에,또 6ㆍ25를 계기로 하여 전세기적인 인간가치관과 인간통치관에서 탈피하여 전진적인 인간해방의 역사적 흐름에 함께 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기다랗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동독을 비롯하여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ㆍ루마니아 심지어는 불가리아 등­동구 여러나라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화를 생각만 해보면 된다. 그들의 역사야말로 인간해방의 역사이다. 40여년간의 공산주의 독재체제 밑에서 억압당해 왔던 하나하나의 인간들을 해방하고 자유를 이루어준 역사의 흐름이 파도를 친 것이다. 불평ㆍ불만이 많고 걸핏하면 「한」이 어쩌고 하는 우리는 동구의 그들에 비하면­나아가서 소련의 일반 시민들과도 비하면­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6ㆍ25라는 참혹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경험이 헛되지 않게 해준 그 「선택」 덕분에 우리는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서 그들보다 훨씬 앞서 있게 된 것이다. 동구의 그들 뿐인가. 소련의 사정을 살펴보며 리투아니아ㆍ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 국민들의 자유독립에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 우크라이나의,그루지야의,아르메니아의,아제르바이잔의 모든 개인들의 자유독립으로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2차대전이후의 세계역사를 소위 냉전의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 냉전의 역사는 실은 자유와 억압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선택하고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선택한 진영은 꾸준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이면서 인간을 억압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인간을 조롱하는 것들에서부터의 인간해방을 이루어왔다고 본다. 그것을 인정 안하다면 동구공산권의 붕괴와 동구 사람들의 자유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인간가치관의 대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2차대전후부터의 이른바 냉전은 결국은 정치이념의 대결이었고 인간의 가치관의 대결이었다고 본다. 인간의 「자유와 개방」을 위주로 하는 이념과 절대적인 정치권력 체제속에서의 「인간통치」에 전념하는 이념과의 대결이 아니었던가. 6ㆍ25에 참전하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하는 감상을 품고 있지 않았었다고 나는 앞서 말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냉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6ㆍ25전쟁이 내게는 단순히 부족간의 영토싸움이라든가 조국통일이라는 미명아래에서의 권력다툼이라든가 그러한 전세기적인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었기에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그 전쟁은 2차대전때 이미 시작되고 그 후에 냉전으로 계속된 이념의 대결이 터져나온 전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싫건 좋건 틀렸건 옳건간에 사람은 각자각자 나름대로의 작은 역사를 창조하고 자유와 개방을 이루고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풀어주고 돌봐주어야 한다는 가치관과 이념과 역사관을 「선택」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6ㆍ25의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상투용어로 그 경험을 「설명」해 버리려는 것을 싫어한다. 그 전쟁이 그것뿐이었다면 그야말로 전세기적인 관념으로 그 전쟁의 경험을 소화하려는 것이 된다. 그 보다는 「나는」 「우리는」 그러한 참혹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이러한 선택」을 하였노라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김은국 □32년 함남 함흥출생.□황해도 황주,중국 만주에서 성장. □48년 평양 제2중(평양고보)재학중 월남. □50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중퇴(6ㆍ25발발로). □51∼54년 육군장교복무. □55년 도미,미들버리대(정치학 및 역사철학전공),존스 홉킨스대(영문학 전공),아이오와대 대학원,하버드대 대학원 졸업. □64년 6ㆍ25를 배경으로 한 소설 「순교자」를 하버드대 대학원 졸업논문 대신 발표,세계적 명성얻음. □이후 「심판자」 「잃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영혼」 등 발표.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시라쿠스대,캘리포니아 주립대교수 서울대 교환교수 역임. □현 매사추세츠 소재 「트랜스 리트 에이전시」 (국제저작권대행회사)대표.
  • 수방대책에 총력을(사설)

    비 피해가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남부지방부터 침수시켜가며 북상한 비는 20일,밤사이의 폭우로 중부지방을 물난리속에 몰아넣었다. 이번 비로 21일 현재 11명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농경지도 3만7천여㏊가 침수되는 등 39억원에 가까운 재산피해를 내고 있다. 서울에서만도 21일 아침까지 2명이 숨지고 1백40여채의 집이 물에 잠겼다. 아직도 호우경보가 발령중인 지역이 많고 침수범위가 늘어나는 중이어서 피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물난리를 보며,해마다 똑같은 재해가 거듭되는데도 피해는 늘어가고 예방의 기능은 거의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안타까워진다. 올해는 특히 연초부터 수해가 예고되었었다. 예고를 적중시키려는 듯 비 난리도 일찍부터 서둘러 오고 있다. 그런데도 방비는 예년에 비해 앞선 것이 없는 듯하다. 그점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87년 홍수때 서울시민을 그토록 넋나게 했던 망원동 펌프장만 해도 펌프설치건물이 완성되지 않아 거둬둘 유수지도 파지 못한 상태라고한다. 관계되는 다른 공구도 모두 비슷하여 공기를 마친 것이 거의 없고,건자재난에 정비도 못갖춰 장마철에 대비할 도리가 없는 듯하다. 거기에 안양천변에 신설될 예정이던 배수펌프장은 기반시설도 안되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탄천ㆍ성내천 일대의 분류하수관로 준설공사의 늑장으로 파헤쳐진 상태로 그냥 있어서,그 자체가 위험을 내포한 지역도 늘어났다. 수해는 규모만 다를 뿐 해마다 찾아오는 「연례행사」이고 시기도 대충 정해져 있다. 이렇게 「예정된 재해」가 번번이 사람들의 게으름이나 현명하지 못한 대응으로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천재지변이 불가항력의 재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피해내용은 아직도 거의가 「인재」라는 점이 사실은 우리를 실망시킨다. 그런가하면 있는 돈으로 지원하고 복구하는 작업까지도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피해규모는 통계가 분명한데도 턱없이 모자라게 책정되어 있고 그나마 까다로운 절차로 묶여있어서 피해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못하는 결과를 빚고 있는 것이다. 재난에 대한 대비는 닥치기 전에 해야 낭비도 줄고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데 우리는 항상 그렇지 못하다. 닥쳐서 허겁지겁하고 지내놓고는 깡그리 잊는다. 지금이라도 불합리한 구조는 탄력성있게 개선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개인에게도 문제는 있다. 상습침수지역에 불법 무허가시설을 하고 위험을 무릅쓴 채 살거나 물속에서 고압전선에 대해 주의를 하지 않는 일을 예사로 한다. 행정력이 개인의 모두를 지킬 수는 없으므로 자구노력을 해야만 위험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이렇게 재난의 위협이 있을 때에는 특히 이웃끼리 서로 돕는 일이 긴요하다. 밤사이의 동태를 역할분담하여 지키고 서로 돌보아가며 공동대처하면 많은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수재와 먼 사람들도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냉담하게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자신들에게 천재지변이 닥칠지 모른다. 남이 간절하게 필요할 때 누구도 나를 돌봐주지 않게 될 것이다.
  • 동북아평화 “태풍의 눈”… 북한 「핵개발」

    ◎「6개월안 제조설」의 충격과 파장/소 군원중단 대비한 자구책인듯/루마니아ㆍ동독서 원료ㆍ기술도입 추정/신데탕트 역행… 한반도 긴장 촉발 북한의 핵개발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가. 북한이 6개월 이내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는 그동안 많은 논란과 함께 가설로만 무성했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제조의 현실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냉전체제의 마지막 잔재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킴은 물론 동북아시아와 더 나아가 세계의 전반적인 군사균형을 크게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핵개발 가능성은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설은 이미 수년전부터 꾸준히 흘러 나왔으며 특히 얼마전에는 미국의 위성사진을 통해 평양북쪽의 영변에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 시설외에 핵폭발시험 용지와 핵연료 재처리공장으로 보이는 시설물등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및 서방국가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북한의 핵무기제조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지난 4월 월포위츠 미국방차관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제조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었다. 미국은 소련이 철저한 핵확산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의 도움을 통해 핵무기를 제조한다 해도 적어도 5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의 자체기술로 핵무기를 제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소련은 최근 원자로 4기의 대북한 판매를 중단시키고 기술ㆍ자재 등의 판매도 중지시킨바 있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는 현재의 기술수준은 핵무기제조까지는 미치지 못하며 다만 제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제감시하에 두어야 한다는 정도로 논의가 돼 왔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 자신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정협정체결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IAEA이사회에 참석한 정근모 과기처장관도 지난 14일 북한이 IAEA와 핵안정협정체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는 7월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히고 이는 협정체결의 필요조건이 되는 의미있는 「진일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보도는지금까지 북한의 핵개발 능력에 대한 「정설」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특히 앞으로 5∼6년이 아닌 6개월내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주장과 소련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동독과 루마니아의 구정권으로부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과 원료를 입수했다는 지적은 매우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물론 뉴스 소스로 돼 있는 소련관리가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 아직은 주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 북한의 핵무기제조 가능성이 소련으로부터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높여주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지금까지 언급이 없었던 소련이 왜 갑자기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는지에 대해 석연치 않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핵안정협정체결을 하도록 국제적 압력을 겨냥한 전술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대남군사적 우위 확보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일성은 특히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의한 동구개혁과 세계적 화해가 정착되면서 소련으로부터의 개방압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핵무기보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일성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소련의 일방적인 통제나 영향력을 어느 정도 배제시킬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안정협정에 서명한다해도 그들의 핵무기개발에 제동을 걸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견해도 밝히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동서 화해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최근 한소 정상회담으로 긴장완화의 조짐이 보이던 한반도를 심각한 핵위험지대로 만들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 소,보혁대결 재연 조짐/리가초프,고르비 비난… 투쟁 선언

    ◎소연방 개편안 공개적 반대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의 강경파 정치국원인 예고르 리가초프(68)는 크렘린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소연방 개편과 관련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지도 노선에 공개적으로 도전,그가 국가를 분열상태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에 맞서 정치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리가초프는 한 농업관리들의 모임에서 행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연설원고에서 『현 국가지도노선은 우리 연방정부의 몰락을 초래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자신은 『이같은 위험한 시점에서 당과 국가를 위해 끝까지 정치투쟁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가 14일 보도했다. 새 공화국 연합체제와 관련,크렘린 지도부에서 나온 최초의 공개도전으로 간주된 이 연설에서 리가초프는 『우리는 매우 위험한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즈베스티야는 그가 정치투쟁을 추구하기 위해 인민대회에 구성될 농부연합의장직 제의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 「통석의 염」 의미 “사죄한다” 내포/일 외무성 보도관

    【도쿄=강수웅특파원】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노태우대통령에게 밝힌 일본의 과거사 사죄발언중 「통석의 염」은 「사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일 외무성의 와타나베 보도관이 밝혔다고 26일 일본의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 와타나베 보도관은 이 deepest regret를 apologize(사과하다 사죄하다)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도쿄주재 외국기자단에 설명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 직업교육 확산에 거는 기대(사설)

    인문계 고교3년생을 대상으로 한 위탁 직업교육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들어 실업계고교 출신자들에 대한 취업률이 1백%에 가깝고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높아져가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열기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능인들이 대량 배출되고 이들이 대접받는 시대를 예고하는 듯해 흐뭇하다. 고교생들의 탈선행위가 연일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같은 인문고교생들의 1인1기교육은 제대로만 실시된다면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여긴다. 그 하나는 이같은 직업교육에 대한 교육열의 확산은 결국에는 우리 교육의 병폐인 대학입시위주의 풍토를 개선하게 되고 청소년들의 건전한 직업관 확립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직업학교가 처음 학생을 모집했을 때 1천2백명 모집정원에 무려 4천여명이나 지원했다는 것이 이에대한 밝은 전망을 가능케 하고 있다. 더욱이 이것은 문교부가 검토하고 있는 고교교육체제 개혁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갖게 하는 것이어서 또다른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 우리의 직업교육은 중학교 졸업자들만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고교졸업 학력을 갖춘 우수한 기능인의 확보가 어려웠으나 올해부터 이것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학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는 불합리성이 없어지게 됐다. 이것도 기능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직업교육을 확산시키는 데 보다 큰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들의 직업교육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면서 자칫 교육내용의 부실가능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들이 월요일만 자기 소속학교에서 공부하고 나머지 요일에는 이 직업학교에서 보냄으로써 해이해지기 쉬운 학습태도와 함께 학생관리에 문제는 없나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별다른 부작용은 없다는 것이나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는 때에는 교육의 역효과는 물론 여러가지 말썽이 뒤따른 다는 것을 유의해야 될줄 여긴다. 따라서 이 직업학교가 보다 제대로 운영되고 우수한 기능인력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교과내용이 알차게 짜여져 그것에 의해 수업이 이뤄지고 실험실습시설도 제대로 갖추고 우수한 교사를 확보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해 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직업교육에 대한 열기를 수용할 능력을 전국적으로 골고루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실업고에 진학하고 싶어도 수용능력 부족으로 인문계고교에 들어가야 하는 학생이 12만명이나 된다는 것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의 하나는 이 직업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개성을 살리고 능력ㆍ적성에 맞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진로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점이다. 이와함께 장기적인 안목에서 학력ㆍ학벌위주의 풍토개선에 우리 사회가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인문계 고교내에서 직업과정 학생과 상급학교진학 희망자 사이의 갈등해소에도 신경을 써야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우수한 고급인력의 확보를 위해서는 고졸자라도 언제든지 공부할 수 있는 평생교육제도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수도권 공장규제완화 재고를(사설)

    수도권지역의 공장건축규제 완화조치는 중소기업의 공장부지난 해소라는 시의성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수도권은 우리나라 공업생산의 42.6%,제조업 고용의 48.3%를 차지할 만큼 공업배치가 기형적으로 편중되어 있다. 이런 공업입지의 수도권 집중은 서울의 과밀화와 수도권 도시규모의 확대를 초래하는 등 공업이 밀집될수록 도시과밀화를 심회시켜 왔다. 그동안 서울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수원ㆍ안양ㆍ성남ㆍ부천 등 도시의 급속한 확대는 수도권의 공업집중과 커다란 관련이 있다. 공업의 수도권 집중은 그 자체문제로서 주택부족ㆍ교통난ㆍ환경오염ㆍ범죄증가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도권과 지방간의 불균형성장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왔다. 공업이 발전한 지역은 집적의 이익이 있고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하여 기업의 공업입지가 활발히 추진되나 공업이 낙후된 지역은 처음부터 입지격차가 커져 상대적으로 더 불리해짐으로써 공업이 낙후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정부는 이 문제들을 해소하기위해 수도권지역을 5개권역으로 구분하여 억제정책 차원에서 개발을 엄격히 제한해 온 것이다. 이번 규제완화는 먼저 정책의 일관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 무등록공장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공장의 신증설 허용은 지금까지 정책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뿐만 아니라 규제완화의 요구를 증대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무허가 공장 양성화 또한 양성화에 대한 기대를 자극하여 무허가 공장을 더욱더 양산시키는 악순환의 요인이 됨을 알아야 한다. 또한 앞서 제기된 주택부족과 교통난등 문제를 고려치 않은 공장입지난 완화는 중소기업들의 경제적 편익을 위해서 사회적 비용을 희생하는 중대한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주택가격파동과 전ㆍ월세가격인상은 물론 교통체증을 완화해야할 정부가 오히려 문제를 확대시키는 자기모순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욱이 수도권지역의 환경오염문제는 비상한 관심을 갖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가평과 이천등 자연보전권역에 시ㆍ군당 1만8천평 규모의 공단 5∼6개씩개발토록하고 공장 신ㆍ증설대상업종에 공해가 없는 15개 첨단업종을 추가하고 있다. 이들 지역의 공단건설은 아무리 공해가 없는 업종을 입주시킨다 하더라도 수도권의 상수도원인 한강의 수질을 오염시킬 염려가 없지 않다. 다음으로 이번 조치가 부동산투기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앞으로 1천평 이하의 공장증설이 허용됨으로써 중소기업체들이 소규모 공장용지와 공장주변 토지를 대거 매입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정부가 이를 예상하여 이들 지역을 모두 토지거래 허가지역으로 묶을 방침이지만 다른 허가지역에서 토지투기가 있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정책은 결정에 앞서 사회적 편익과 비용이 철저히 분석되어져야 함은 재론이 필요치 않다. 그 점에서 이번 조치에 대하여 신중한 재고가 있어야 하며 오히려 지방공업발전을 위한 획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 “재벌 땅투기 봉쇄”초강경처방/「5ㆍ8부동산대책」배경과 전망

    ◎투기열풍 재우게 산업ㆍ금융자본 유입 차단/담보활용가치 제한,과다보유 원인제거/비업무용의 한계모호… 일부 반발 우려도 정부가 그동안 「방치」해 오다시피했던 재벌의 부동산투기에 대해 큰 「칼」을 빼들었다. 그러나 이 「칼」이 재벌의 투기행위를 뿌리뽑는 데 얼마만큼 유효적절하게 사용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8일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투기 억제대책은 발표내용만을 놓고 볼 때 과거의 부동산 대책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고단위 처방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 이번 대책은 정부의 여신관리를 받고 있는 49대 재벌그룹과 증권ㆍ보험회사 등 금융기관으로 그 대상을 국한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거대한 자금동원 능력을 갖고 있는 부동산시장의 「큰손」들이다. 이들은 국가경제의 토대를 이루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주체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들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은 당국의 투기억제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본업인 생산활동보다는 투기를 통해 엄청난 「불로소득」을 챙겨온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한 온갖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때마다 「큰손들은 빠져나가고 송사리만 걸려든다」는 비난과 함께 국민들의 정책에 대한 불신과 대기업등에 대한 위화감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이들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부동산투기에 대한 제재조치를 가시화 하지 않고는 만연된 투기심리를 붙들어 맬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재벌의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해 이번 대책에서 동원되고 있는 정책수단은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 매각」과 「부동산 담보취득의 부분적 제한」으로 간추려 볼 수 있다. 전자는 대기업이 갖고 있는 부동산 보유량을 강제적인 방법으로 줄이는 것이고 후자는 부동산을 과다하게 보유할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만듦으로써 대기업의 부동산 보유욕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동산 투기억제의 일환으로 정부가 개인이든 기업이든 민간부문에서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에 대해 강제매각 방식을 동원한 것은 그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그동안대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신관리 차원에서 비업무용 부동산보유를 금지해왔다. 또 이미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비업무용으로 판정될 경우 6개월이내에 이를 처분토록 하는 강제규정도 두고 있다. 그러나 강제처분권이 행사된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강제매각 방식에 대해서는 그 합법성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합법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강제매각으로 인한 후유증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소리도 많다. 물론 강제매각은 비업무용으로 판정된 부동산을 소유한 기업이 자체매각을 하지 않을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토지개발공사나 성업공사에 「위임」하는 요식절차를 밟아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에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여신을 쥐고 있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처분 위임명령」이 내려지면 해당 기업은 이를 거스를 수 없다. 따라서 강제매각 방식은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을 제외하면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비상수단인 셈이다. 정부는 이같은 비상조치에 대해 재계 일부에서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상당수준의 호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눈치이다. 이미 김종인 청와대경제수석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의 잇단 재계인사들과의 접촉을 통해 노태우대통령의 재벌투기 근절에 관한 의지가 매우 강한 톤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개인이나 기업은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잡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부동산 가운데 기업(계열및 비계열 포함)의 비업무용 부동산,개인의 사치성토지(별장ㆍ골프장ㆍ고급주택ㆍ고급오락장 등)및 토지초과이득세 과세대상인 유휴토지,대출받는 사람과 담보부동산의 소유자가 다른 제3자 명의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담보취득이 금지된다. 이는 부동산의 담보활용 가치를 상당부분 제한하는 것으로서 부동산의 과다보유 동기를 제거함으로써 투기억제에 지속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같은 조치에는 현재의 담보대출 중심에서 점차적으로 신용대출 중심으로 금융관행의 선진화를유도해 나가겠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부동산담보 취득제한조치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업무용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제3자 명의인 부동산을 담보롤 한 대출이 금융기관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선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당장에는 상당한 대출압박이 불가피해질 것이며 그 대부분은 담보능력이 빈약한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이번 「4ㆍ8 투기억제 대책」은 산업ㆍ금융자본이 비생산적인 부동산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구멍을 틀어 막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자금흐름의 왜곡」 현상은 우리 경제를 위기상황으로 몰아 넣고 있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기업이 생산활동을 통해 땀흘려 이윤을 추구하지 않고 부동산투기로 앉아서 손쉽게 떼돈을 벌려고 하는 풍토는 두가지 측면에서 경제의 활력 회복을 더디게 하는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그 하나는 제조업의 공동화현상을 초래함으로써 산업기반을 강화하는 데「기여」하지 못한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 투기 열풍을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 점이다. 「5ㆍ8대책」은 이같은 병리현상을 치유함으로써 「기업은 생산활동을 통해 사회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업윤리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급박한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이번 대책이 적용대상으로 49대 재벌기업을 선택한 것도 바로 이같은 「상징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과연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마디로 기업은 생산활동과는 직접 관련되지 않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사지도 갖지도 말라는 것이 이번 대책의 골자이지만 어디까지가 「업무용」이고 어디까지가 「비업무용」인지를 구분짓는 한계는 기업당사자가 아닌 한 가려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을 계기로 기업가들의 각성과 자발적인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부동산 투기억제 특별대책 주요내용 ◇대기업 보유부동산 관련 ●대책내용 비업무용부동산의 처분 -판정기준 90년 4월 개정된 법인세법 시행규칙적용 -여신관리대상 계열기업군 6월말까지 자체처분계획 제출 -국세청 내무부 은행감독원 실태전면조사 ㆍ5대계열 기업군 5월중 조사 ㆍ44개 계열 기업군 6월중 조사 -해당기업 비업무용 판정시점으로부터 6개월이내 자체매각 또는 성 업공사에 매각위임,토지개발공사에 매수요 청 ㆍ토개공 택지개발 가능토지를 감정가격으로 채권매수 ㆍ기타 토지 건축물 부속토지는 성업공사 경쟁입찰 매각(6개월내 미조치시 신규부동산 취득전면 금지,신규여신 금지) -해당기업군 기업체및 계열주와의 특수관계인 매수불가 비업무용 판정기준 정비강화 -8월말까지 새로운 판정기준 강화정비(91년1월 시행) ㆍ생산에 직접 사용되지 않은 부동산 비업무용 판정기준강화(연수 원등) ㆍ현행 법인세법 지방세법 토초세법상 판정기준 통일 계열기업군의 부동산 신규취득 억제 -91년6월말까지 생산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부동산만 취득 허용(공장부지,창고,연구시설,주택건설용토지 등) -콘도업,전문휴양업(민속촌 해수욕장온천장 수영장 등),오락업 신규진출금지(골프장,스키장,목장,조림용 임야 등은 90년1월에 신규진출금지조치) -구체적 판정기준 은행감독원이 제정 주거래은행 부동산취득 승인시 은행감독원과 사전협의(내무부 국세청은 관련자료 협조) -주거래은행승인 없이 부동산 취득시 ㆍ취득가액상당 대출금에 연체대출금리(19%)적용 ㆍ규정위반정도따라 신규취득 금지 또는 신규대출중단 금융기관의 부동산 담보취득제한 -비업무용 부동산 금융기관 담보취득금지(제2금융권도) ㆍ담보취득 금지대상 ①계열및 비계열기업포함한 법인및 개인기업 비업무용부동산 ②별장,골프장,고급주택,고급오락장 등 사치성재산 ③ 개인소유토지중 토지초과이득세 과세대상 유휴토지 -제3자 담보취득금지(제2금융권도 준용) *금융기관 담보취드중인 비업무용및 제3자명의 예외인정 기업부동산 세제혜택 축소 -특별부가세 과세범위 확대 ㆍ조세감면규제법시행령 개정 조세감면범위 대폭축소(예:2년 이상 가동공장등) -차입금 과다기업 부동산매입시 지급이자 손비부인범위한정 ㆍ상품전시장 판매장등 취득시 지급이자 손비부인 제3자명의 부동산 실태조사 및 처분 촉구 -30대 계열 기업군 제3자명의 부동산 5월중 자진신고 ㆍ국세청 전면 실태조사 병행 -제3자명의 업무용 부동산 3개월내 기업명의 전환 -제3자명의 보유 비업무용 처분 증여세 추징 -임직원 개인목적 취득경우 자금출처 및 탈세여부 집중조사 ㆍ대기업 개발예정지 주변지역 구입사례조사 추진체계의 일관성 확립 -대기업부동산 과다보유 억제대책 계속 보완 -일선집행기관 집행상태 철저 감독 -감사원 및 중앙행정기관 집행기관에 대한 정기감사 실시 □금융기관 관련 증권ㆍ보험사의 과다보유 부동산매각 -89년1월1일이후 취득한 다음 부동산중 투기성향 또는 과다 인정되면 매각 ㆍ점포용 사옥용으로 구입후 미착공상태 부동산 ㆍ연수원 체력단련장등 영업목적이외 부동산 ㆍ상당부분 임대하고 있는 부동산(신축중 건물포함) -88년말이전 취득한 다음 부동산도 매각 ㆍ취득후 3년 경과되고 2년이내 당초 취득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 는부동산 ㆍ개발제한지역등에 소재,업무용으로 활용될 수 없는 부동산 -구체적 매각대상 증권 보험감독원 조사후 확정 -처분대상 부동산 3개월내 자체매각 -처분기간중 매각되지 않으면 성업공사 매각 위임 ㆍ택지개발 가능 토지는 토개공에 매각 또는 매수의뢰 -처분대상 보유시 성업공사와 별도 협약체결(공개경쟁 입찰) -해당 계열기업군및 계열주와의 특수관계인 매수불가 금융기관 점포신설 동결 -은행 증권 보험등 금융기관 금년중 점포신설동결 ㆍ신설금융기관경우 별도기준에 의해 최소한 신설허용 -91년부터 금융기관 점포설치에 관한 새로운 기준설정 ㆍ은행 증권 보험감독원등 3개 감독기관 금융기관 점포 협의회 설치 운용 ㆍ적자점포 매각합병및 교환유도 금융기관 부동산 신규취득 억제 -별도기준 정해 필수적 부동산만 취득허용
  • 「21세기의 세계」 미ㆍ소 두 석학 강연 요지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앞두고 세계는 동구와 소련의 변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과연 동구의 격변은 앞으로의 국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같은 문제를 점검해 보기 위한 강연회가 「21세기의 세계」라는 주제로 1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회에는 최근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저서에서 미국의 몰락을 예언,세계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미 예일대의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교수와 소련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개혁파 정치인이기도 한 유리 아파나셰프 모스크바 국립 역사자료대학총장이 강연했다. 다음은 이들 두학자의 강연요지이다.(편집자주) ◎미래사회 3요소는 「민주ㆍ도덕ㆍ생산성」/통신혁명으로 「북한 폐쇄」 지탱 힘들어/폴 케네디교수 우리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동안 역사를 통해 볼때 단일사건이 엄청난 변화와 불안을 야기시킨 경우가 많이 있다. 동구와 다른 곳에서 일어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맥락에서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우리들은 헝가리에서 다당제가 실시되고 차우셰스쿠 전 루마니아 독재자가 처형되고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단일사건에 대해 알고있지만 이러한 것이 있게된 장기적인 요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겠다. 먼저 경제적인 요인을 들수 있겠다. 이것은 마르크스경제와 서구의 자유시장 경제사이에 경제성장 및 생활수준 등에서 격차가 더욱 커졌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80년대의 세계는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했지만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는 심해졌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사회주의(마르크스) 국가들은 쇠퇴했으며 그밖의 지역은 성장을 기록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과학적 사회주의가 노동자 시민들에게 높은 생활수준을 약속했지만 이것이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통신의 혁명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70∼80년대는 마르크스국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탈린시대와 비교해서 많이 해외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학생 기업인 등은 세계의 여러나라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소련인들은 영국의 BBC와 미국의 소리방송 등을 통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지난 80년대초 동독정부는 일부 관료를 드레스덴으로 이주시키려고 했지만 이들의 반대에 봉착하였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는 서독 미국의 TV방송을 시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독 폴란드인들은 서방의 방송을 통해 자국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서구에서 누리고 있는 부를 그들이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성공을 거둘것인지 아니면 인종분규 보수파의 반발 등으로 실패,동구에 악영향을 미칠것인지 주목되고 있지만 어떤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마르크스사회는 결코 89년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며 성공한 사회와 실패한 사회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과 통신의 혁명등 2가지 기본요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요소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변화가 평화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은 평화적이었지만 중국은 지난해 천안문 사건에서 보듯 개혁운동을 물리적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물리적인 탄압은 변화의 속도를 늦출뿐 개혁과 자유를 바라는 국민들의 욕구를 말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변화물결을 초래한 통신혁명은 북한에도 영향을 미쳐 김일성체제는 오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현대 사회는 다음과 같은 도전을 받고 잇다. 첫째,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기술발전 둘째,산업의 자동화로 인한 직업의 안정문제 셋째,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른 농민들의 생존위협 넷째,전세계적인 기온상승 다섯째,선후진국간의 인구변동 등이다. 이런 도전들은 상호 상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은 통신기술이 발달되고 로봇과 산업자동화의 발달로 많은 국민의 실직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같은 문제에 무관심한 정부는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ㆍ이념적으로 큰 도전을 받게 된다. 그 예는 동구와 중남미사태에서 잘 보아왔다. 마지막으로 21세기초 성공적인 사회가 되자면 효과적인 제조업 생산기반을 갖춰야 한다. 민주주의만으로는 성공적인 사회를 충분히 갖출 수 없다. 자립할 수 있고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는 상품생산기반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제조업 능력이 부족해도 의료업 호텔업등 서비스업으로 이를 커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이같은 견해에 반대한다. 결론적으로 미래의 성공적인 사회는 건전한 도덕적 윤리적 기반과 함께 굳건한 산업생산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89년의 동구사태는 도덕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 모두에서 파산됐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세계 여러 나라에 보여준 좋은 경종이었다. 동시에 물질적 풍요와 도덕적 기반이 잘 갖추어진 사회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교훈도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유토피아건설 완전 포기/소련의 동ㆍ서양결합의 중계자역할 기대/유리 아파나셰프 공산권국가에 대한 세계의 이목집중은 이제 우연한 일이 아니다. 체르노빌원전 사고,원자력잠수함화재 및 핵무기ㆍ화학무기 등은 결코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련의 질낮은 생활수준ㆍ국경선폐쇄ㆍ소련공화국들의 탈소움직임도 그 대상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존 세력균형 질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탄생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재 소련과 동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변화가 세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지 얘기하고 싶다. 변화는 상호연관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 이들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변혁들은 시작과 종결을 동시에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지속적인 대규모의 사회실험이 끝나고 있다. 마르크스ㆍ레닌이즘이 종결됨과 동시에 현대판 거대 러시아제국이 종말을 맞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양적 공업화에 대한 종결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같은 현상들은 전후 2개의 진영으로 갈라놓은 얄타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최근 소련의 각계에서는 소련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 수많은 논의를 해왔다. 사회주의ㆍ비사회주의ㆍ반사회주의ㆍ스탈린주의등 뿐아니라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수많은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고민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하튼 이런 논란들은 의식적으로 계획된 행위의 결과다. 소련의 현체제는 볼셰비즘 혁명 이후 72년간 지속된 사회주의,정통 마르크시즘의 부산물이다.물론 이 사회주의 실험이 수많은 희생자를 내지 않았거나 외국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더라면 긍정적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사회주의 유토피아 건설을 완전히 포기했다. 소련 사회조직의 기본요소는 경제적으로는 국유생산,시장경제폐지,상품경제 청산,중앙집중화된 계획경제,사유재산 몰수였다. 사회적으로는 정부권력이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간섭을 해 국민들에게 무력감을 심화시켰다. 즉 생산에 대한 관심보다 소비ㆍ분배문제에 우선을 두었다. 그리고 사회계층도 노멘클라투라(특권층)와 「분배를 받을 권한이 있는 사람」으로 양분됐다. 소련사회의 국유화는 칼 마르크스의 견해와는 달리 사유재산제도의 「극복」이 아니라 「폐지」에 문제가 있다. 또한 권력과 정보에 대한 당의 독점,노동의 결과에 대한 당의 독점,다당제부재,허울좋은 헌법제도,형식적인 선거제도 등도 소련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인간화ㆍ민주화를 부정하는 이같은 제반 요소들은 정통마르크시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위적ㆍ작위적 사회주의의 결과요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의 이상실현은 최근 10년간 크게 왜곡돼 그릇된 방향으로 치닫게 됐다. 소련의 양적 경제발전은 한계점에 이르러 뒤로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위기상황은 자연환경파괴도 마찬가지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추진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도 소련사회의 난치병을 치유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소련의 모든 불행과 재난에는 페레스트로이카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소련국내에서는 요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찬ㆍ반 논의가 분분한데 1천9백만명의 소련 공산당원중 9백만명가량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사실로 미뤄 소련사회의 개혁은 급진적ㆍ과격한 방법으로 추진되지 않으면 안된다. 고르바초프는 집권초기에는 개혁방향을 제대로 잡았으나 최근엔 이를 번복,대외정책 뿐아니라 「인간적 가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뀐 느낌이다. 특히 현재 경제ㆍ문화ㆍ윤리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잇는 소련에서 가장 난제는 민족문제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따라서 현재 소련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제반현상들이 21세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학자로서 소련이 어떤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즉 21세기에는 제국주의 국가로서 소련이 차지할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의 동서에 정신적ㆍ문화적 바탕을 공유하고 있는 소련은 향후 동서양을 결합시키는 좋은 중계자 역할은 할 것으로 본다.
  • 재일동포 지위협상 어떻게 돼가나

    ◎접점 못찾는 「지문폐지」… 한ㆍ일신경전/「역사인식」에 큰 차이… 팽팽한 줄다리기/일 관계부처,이견 노출… 애드벌룬만 무성/한국 “취업 등 실질보장”정치적 결단 촉구 재일 한국인 후손의 법적지위 보장과 처우개선을 위한 한일간의 교섭은 마치 「종반」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현재 한일간에 최대 현안이 되어있는 이 문제해결을 위해 일본정부는 25일 하오 긴급히 다니노 사쿠타로(곡야작태랑) 외무성 아시아국장을 서울에 파견,비공식 국장급협의를 벌이도록 조치했으며,오는 30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상당한 보따리」를 풀어 놓을 듯이 각종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측에서도 지난주 이원경 주일대사를 돌연 일시귀국시켜 정무협의를 가진데 이어 박태준 한일의원연맹 회장겸 민자당 최고위원 대행을 일본에 급파,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를 비롯,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일한의원연맹회장,후쿠다 다케오(복전부대) 전총리 등 요인들을 만나 한국내의 강력한 여론을 전달하고 일본측의 정치적 결단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고 있는 점이 문제해결의 막바지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은 낙관적인 전망에 불과하다. 지금 단계에서 한국내에 일부 언론조차 이제까지 한국측이 요구해 온 9개항목 가운데 최소한도인 「3세이후」에 대한 영주권 부여와 지문날인 적용 제외는 확보되지 않았는가 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오산이다. 한국인을 「조센진」(조선인)이라고 보는 일본인의 잠재의식과 일본의 외교가 그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안 해결을 위한 한일간의 교섭은 「종반」이 아닌 「시발점」에 서있으며 「역사청산」도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일본 정치인들의 언동과 상관없이 현안문제를 담당하는 일본의 외무ㆍ법무ㆍ경찰ㆍ자치ㆍ후생성 등 관계성ㆍ청의 「역사인식」은 우리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이후 총리는 지난 24일 각의가 끝난뒤 국회내에서 나카야마 타로(중산태랑)외상,오쿠타 게이와(오전경화)자치상,하세가와 신(장곡천신)법상,호리고우스케(보리경보)문부상,사카모토(판본삼십차)관방장관 등 5각료를 소집,『재일 한국인 문제에 대해 최선을 다하라』며 정치적 해결을 도모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박최고위원 대행을 만난 자리에서도 『현안 문제들이 한일 양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되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이후 총리는 국회답변에서도 『재일한국인이 존재하게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양국이 납득할 만한 선에서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늘 말해왔다. 25일자 요미우리(독매)신문은 1면 기사에서 일본정부는 재일한국인 3세의 법적지위ㆍ처우문제로 최대의 초점이 되어있는 지문날인 문제와 외국인 등록증 상시 휴대문제에 관해 「3세이후는 적용을 제외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그 근거로서는 24일 이시하라 노부오(석원신웅) 관방차관을 중심으로 구리야마 쇼이치(율산상일) 외무,오카무라 야스다카(강촌태효) 법무사무차관,스즈키 료이치(영목양일) 경찰청차장등이 협의한 결과라고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협의된 것은 협정영주권자가 징역 7년 이상의 형을 받았을 경우 대상이 되는 강제퇴거 규정을 대폭 완화 한다는 선에 불과했다. 2시간에 걸쳐 행해진 이 회의는 일본정부가 처음으로 소집한 차관레벨의 협의였다. 같은 내용의 기사에서 아사히(조일)신문은 『3세 이후의 세대에 대해 「장래」 지문날인 의무를 면제한다』는 안을 중심으로 의견조정을 시도했으나 『법률의 명분상으로는 다른 외국인에게도 평등하게 적용하는 것이 도리』라고 주장하는 법무성과 『재일한국인과 조선인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경찰청의 의견이 대립,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등록법을 근거로 한 지문날인 문제에 관해 일본 관계 부처에서는 『이것은 기술적 문제이며 정치결단의 대상밖』이라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따라서 지문날인 제도를 폐지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정치결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오히려 이 제도를 폐지한다면 『인물을 특정할 수 있는 다른 과학적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보도(25일자 마이니치(매일))도 나오고 있는 판이다. 이것은 더욱 해괴한 발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과학적 방법」이란 쉽게 말해 「물리적ㆍ의학적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며,이것은 머리카락 이라도 잘라 보관하겠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처럼 일본의 관계부처 사이에 의견조정이 안되고 애드벌룬만 무성한 상태에서 다니노 아시아국장이 서울로 급파됐다. 그가 비공식 국장급 협의에서 내놓을 「제안」은 2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3세이후에 대한 영주권 부여,재입국 규제 및 강제퇴거 규정의 완화 등을 중심으로 한국측의 의향을 타진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한국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영주권 부여는 재일한국인의 정주성에 비추어 당연한 것이며 「선심」도 아무것도 아니다. 재입국 규제 및 강제퇴거 규정의 완화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들이 「조센진」의 상징으로서 낙인을 찍어 놓고 싶은 심정에서 강행하고 있는 지문날인 제도가 폐지되지 않는한 재일동포들의 「역사의 한」은 풀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이며 상징적인 것이다. 실리로 따져 본다면 교원채용이라든가 지방공무원으로의 채용문제가 더 클 수도 있다. 다니노 국장의 「서울행」두번째 경우는 아무 제안 사항도 갖지 않은 채 실무회담에 임하는 경우이다. 다소간 내놓을 「선심」은 오는 30일의 외무장관 회담으로 미루고 자신은 단지 내부사정을 빌미로 한국측의 양보를 요구하는 작전으로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일본의 입장은 급하다. 가이후 정권의 안정과 장래 일왕의 한국 방문 실현을 위해 더 없이 소중한 한국대통령의 방일은 반드시 성사시켜야만 할 외교적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아무 것도 현안 해결을 위해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역사인식은 아직도 올바로 잡혀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일체의 책임은 일본측에 귀속하는 것이라는 것이 도쿄외교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 「과학문맹」퇴치운동 시급하다/현원복 과학저널리스트

    ◎「과학의 날」을 맞으며/「1인1기」좁은 테두리 벗어나 대중화 꾀해야/과학기술 발전,「외형」보다 「내실」에 주력할 필요 서울 정동에 있던 낡은 원자력병원건물에서 과학기술처가 출범한 뒤 어느덧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올해로서 스물세번째의 「과학의 날」을 맞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가 몰라 보게 달라졌듯 우리의 과학기술도 그 규모나 질에서 장족의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왔다. 우선 과학기술투자규모는 과학기술처가 발족하던 1967년의 60억원에서 5백배가 넘는 3조원을 넘어섰으며 연구개발인력은 4천명에서 7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당시 원자력연구소와 막 발족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등 불과 2∼3개에 지나지 않았던 연구기관도 이제는 출연연구기관의 수만도 20개에 가깝고 민간연구소의 수는 멀지 않아 1천개를 바라보게 되었다. 또 연구개발시스템도 대형의 과제를 수행할 정도의 수준을 갖추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몇개 분야에서는 세계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술을 쌓아 올리고 있다.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과학기술투자의 확대는 더욱 가속화되어 1996년에는 오늘날의 3배를 넘는 10조원규모에 이르고 연구개발인력도 2001년에는 15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21세기의 동이 틀 무렵에는 이른바 세계 7대 선진국 수준의 기술역량을 갖춘다는 매우 의욕적인 목표를 세운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추정한대로 90년대의 과학기술은 80년대보다 10배나 빠른 걸음으로 발전될 것이라고 내다볼 때 우리는 이런 외형적인 확대 못지 않게 더욱 내실있는 발전을 모색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더욱이 선진국의 기술보호주의가 더욱 심화되는 추세에서 자칫 우리의 기초연구를 포함한 여러 노력이 소홀하면 종래 선진국과의 기술격차(선진국수준의 40∼60%)는 더욱 크게 벌어질 수도 있을것이다. 최근 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89년에 접수된 물질특허출원 1천9백88건중 93%가 외국인이 출원한 것이며 한국인의 것은 1백40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런 걱정을 뒷받침 한다. 우리의 과학기술 발전의 걸림돌이 무엇인가를 진솔한 자세로 검토하고 색출하여 만약 그 요인이 정책상의 결여나 연구부문간의 조정 미흡 또는 정부부처간의 불협조에 있다면 원대한 안목을 가지고 과감하게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한편 과학기술발전을 위한 이런 노력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과학대중화를 통한 일반국민의 「과학문맹」을 퇴치하는 노력이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소수의 과학기술집단의 노력을 통해 세계7위권 선진국 수준으로 진입한다고 해도 대다수의 국민이 「과학문맹」이라면 과학선진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기술문명시대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대한 사회 또는 선진된 사회는 이런 선진과학기술이 몰고 오는 사회변동에 능동적으로 훌륭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성원을 가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오늘날 대표적인 과학기술의 이기인 자동차의 보급이 이제 막 궤도에 오른 우리 사회에서 자동차사고로 사망하는 율이 선진국의 10여배를 웃돌고 있다는 현실은 일반의 과학적인 인식의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이것은 인간과 기계의 속성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는 기초적인 상식조차 분간할 수 없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이라는 사업은 국민의 절대적인 이해와 뒷받침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것은 특히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의 경우 자금의 출처는 납세자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은 주체가 되는 우수한 인재의 계속적인 확보없이는 어렵게 되어 있다. 민주국가에서는 납세자인 일반국민이나 그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나 또는 국가재원의 배분을 담당하는 정책당사자들이 기초연구가 국가발전에서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초연구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과학문맹」은 「반과학」이 움틀 수 있는 소지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는 데 문제는 심각하다. 그래서 과학기술발전 없이는 국가나 민족의 앞날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의 경우는 「과학문맹」의 퇴치운동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부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지식의 주체를 소수집단에게 한정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철학정신을 죽이고 마침내 정신적인 빈곤으로 이끌어간다』는 이유 때문에 과학의 대중화를 역설한다고 했으나 우리가 오늘날 과학의 대중화에 노력해야 하는 배경에는 그보다 더욱 절박한 국가 사회의 생존문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정부는 몇차례에 걸쳐 「전국민의 과학화운동」을 선언하기는 했으나 그 노력은 거창한 구호와는 걸맞지 않았다. 오늘의 과학대중화는 지난날 「1인1기」식의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과학문명시대를 지향하면서 과학을 문화의 일부로 정착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김일성의 딜레마(특별 기고)

    ◎북한,「폐쇄적개혁」ㆍ「배타적개방」기로에/「정치안정」ㆍ「경제활력」 두 과제사이서 갈등/주민요구ㆍ국제환경 대응할「변화」불가피/소련개혁 결과따라 개방여부 결정될듯 북한에서는 4월15일이 김일성의 생일로 「민족 최대의 명절」이 다. 이날에는 김일성의 「위대성」을 조작하고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하는 각종 경축행사가 국내외적으로 성대히 펼쳐진다. 금년 78회 생일날에도 북한의 공식적 발표는 「우리 인민이 수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모신 위대한 수령」이라든가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임을 자축하고 있지만 북한의 현실적조건은 아마도 북한정권 수립이래 「최대의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북한은 6ㆍ25이후 지금까지 주변환경의 충격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변화된 환경에 「창조적」 「주체적」으로 적응해 왔고 주체사상에 기초한 북한식 사회주의 노선을 충실히 밟아왔다. ○북한,「최대궁지」에 1953년 스탈린 사망,1964년 국제 공산주의운동 원칙에 관한 중소이념논쟁,1979년 미ㆍ중국 국교수립 등국제환경의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주체적 적응방식으로 극복했다. 그러나 1989년6월 중국 천안문에서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군중에 총격을 가한 유혈사태를 비롯,1985년에 등장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1989년11월 베를린장벽의 붕괴,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한국과 공산권과의 급속한 관계개선,그리고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부처에 대한 전격적 처형사태에까지 직면한 북한은 이제 소련ㆍ동구사회주의 여러나라의 혁명적 대개혁 앞에 더이상 「주체적」 대응방법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당도한것이다. 이와같은 급격한 대변혁의 폭풍속에서 북한은 이제 체제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그것은 현존체재를 어떻게 유지ㆍ강화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김일성 주체사상의 기초위에서는 찾아내기 어렵게 되었다는데 있다. 기존 체제이 고수를 위해 대내적 통제를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따라서 대외적 개혁ㆍ개방을 강행할 것인가를 놓고 그 어느쪽도 김일성 자신이 지금까지 시도해왔고 의도했던 바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북한은 김일성이 하고자 했던 제반 정치적 목표달성을 보장할만한 조건들이 성숙되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체사상」도전 직면 여기에서 북한 사회주의체제가 계속해서 그 정당성을 입증하고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란 오직 기존의 김일성 유일사상체제를 고수하는 일이다. 그런데 내외적 환경변화 속에서 주체사상에 기초한 「대를 이은 혁명노선」과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명분이 어느정도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라는 현실적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체제고수”입장 불변 적어도 지금까지 북한은 제4의 공산주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통적 마르크스ㆍ레닌주의로부터 변형되고 편향되어 있다. 지난해 9월9일 정권창립 41주년 기념 노동신문 사설에서 『우리 혁명은 사회주의 완전승리의 전환적 계선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와 같이 북한사회주의는 중국의「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나 소련의 개방ㆍ개혁적 사회주의,그리고 동구제국의 사회민주주의와도 구별되는 북한 특유의 독자노선(주체노선)을 주창해 왔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엄청난 실험과 기회가 교차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역사의 대변혁속에서도 현존체제를 그대로 고수한다는 것이 기본적 입장이다. 그 논리는 ①북한의 혁명목표가 전혀 변하지 않고 있으며 혁명전략에 있어서도 근본적 변화가 없고 ②40여년간의 사회주의 혁명과정을 거쳐 김일성주체사상이 유일적으로 지배하는 「김일성 한사람의 나라」가 건설되었으며 ③「수령론」이라든가 「대를 잇는 충성」그리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내세워 부자간의 세습체제까지도 합리화할 만큼 수령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④그뿐만 아니란 아직도 북한 사회내부에는 기존체제에 저항할만한 도전세력의 조직화 가능성이 희박하며 ⑤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도 「주체의 지도적 지침」에 기초한 위로부터의 의도적 변화만이 진척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이를 뒷받침한다. ○「주체적」선택 어려워 이런 면에서 북한은 외래사조를 「잡사상」「썩어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이라 규정하고 오직 『수령을 충성으로 받들며 수령의 사상과 의지대로 싸워 나가야만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고 김일성ㆍ김정일의 영도를 떠나서는 오늘의 번영과 내일의 전도에 대해 말할 수 없다』라고 가르치고 있다(노동신문 1989년7월14일). 공식적 공표와 정치적 맥락에서 보면 북한이 대내적인 사상통제와 사회구조적 폐쇄성을 당장 늦추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40년 넘게 1인1당 독재체제를 지속시켜온 북한 사회가 대변혁의 국제환경에 대하여 기존의 주체노선으로만 대응이 가능할 것인가도 또한 의문이다. 적어도 대외적 측면에서 최근에 있었던 몇가지 징조들은 북한이 대공산권은 물론 대서방에 대해서도 몹시 서두르는 접근 시도를 엿볼 수 있다. 북한의 대외개방적 움직임은 한국의 북방정책,동구권의 대변혁,그리고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르바초프의개혁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귀결되며 북한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는가는 보다 직접적 작용력이 될 것이다. 소련은 최근 북한에 대하여 『개혁흐름을 외면함으로써 페레스트로이카가 겨냥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구축에 중대한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련의 언론매체들은 아직까지 제한적이고 조심스런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으면서도 과거에 비해서는 전혀 새로운 입장에서 남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김일성은 빨치산의 한 부대만을 지휘한 소련군대위였다」는 등,김일성과 김일성주체사상을 격하하고 있으며 「항일 빨치산 투쟁」의 성과에 대한 북한측의 과장을 견제하는 내용의 보도를 의도적으로 공개하고 있는가 하면 북한정권 수립과정과 6ㆍ25에서의 소련의 기여를 유달리 강조하고 있다. 그 반면 한소관계에 있어서는 「양국관계에 장애요소는 없다」는 입장변화와 더불어 김영삼-고르바초프 회담과 같은 충격요법을 사용함으로써 현실에 기초하여 북한에 대한 소련의 일방적인 북한지지자세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경고적 태도표명이 점차 노골화 되고 있다. 이는 북한-소련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가 된다는 면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취할 수 있는 활동공간이 그 만큼 좁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주민의식 점차 와해 물론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대단히 비판적이고 단호하다. 북한 중앙통신은 「한민전」의 성명을 인용하는 형식을 빌려 『우리의 우방인 소련은 우리 인민의 적과 친구가 되는 일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고귀한 사회주의 주권국가가 남한과 외교관계 수립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을 건전한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김영삼의 방문에 대한 모스크바의 코뮈니케가 사실이라면 이는 소련이 남한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점령을 묵인하고 노태우 군사파시스트 정권을 지원,한반도의 분단상태를 영구화하는데 협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북한중앙통신 90년4월10일)』. 이상과 같은 북한의 비난태도는 한소관계의 진전을 북한으로서는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은 현실임을 인식하고 있다는증거이며 나아가 한소수교를 계기로 소련으로부터 더욱 드센 개혁ㆍ개방적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박한 상황을 인식한데서 오는 반사적 행동으로 보여진다. 여기에서 북한은 개방이냐 고립이냐, 체제고수냐 체제개혁이냐의 갈림길에서 그 어느쪽의 선택도 「주체적」으로 내릴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상과 같은 대외적 변혁흐름과 더불어 체제내적 사회문제들을 안고 있는 북한이 주민들의 사상을 강화하고 「90년대 속도창조운동」과 같은 구태의연한 정치행정적 대중동원운동을 촉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얼마만큼 효과를 볼 것인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평축」이후 현재까지 전주민들을 대상으로 외래문화에 대한 배타심을 길러내기 위하여 정치사상사업을 적극 강화하고 있지만 외래문화의 전파,즉 「제국주의자의 문화적 침투」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풍토는 주체사상이 지금까지 발휘했던 사회정치적 기능이 점차로 약화되고 나아가 김일성ㆍ김정일 지향적인 의식구조마저 와해되고 있다는 한 증거이다. 이러한 북한상황의 특수성을 전제할 때 북한으로서 선택해야 할 체제유지 방법은 산업화 과정에 따른 주민의 기대상승과 외부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개혁적조치(혁명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가 불가피하게 된다. 인민의 요구와 환경적 작용력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그 체제 자체의 생존에 위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적 혁명」의 연장 그러나 현실조건은 북한사회의 체제존속을 위해서 개방화,민주화 방향의 변화가 필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우리식대로」사회주의 혁명을 한다는 방법상의 현실적용 차원에 한정시키려 할 것이며 김일성 주체사상이나 체제자체의 본질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북한이 1958년 사회주의적 제도의 개혁이 완성된 이후 일관해 왔던 「보수적 혁명」의 연속된 실험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상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북한사회는 결국 사회주의의 발전단계에 있어서 현실적으로는 주체사상에 기초한 정치적 안정과 과학ㆍ기술에 바탕한 경제적 효율을 동시에 극대화시켜야 할 상황이며 이 두가지 목표간의 상극적 관계 때문에 이른바 「폐쇄적 개혁」 내지 「적대적 협력」「배타적 개방」이라는 모순 내포적 변화형태를 선택해야 할 딜레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아주주도권회복 노린 계산된 증언/“남북한중재용의”소 제안의 배경

    ◎주한미군 철수 명분확보의도 내포/“평화정착”구실로 아태진출도 겨냥 미소 외무장관회담의 한반도문제 토의내용을 설명하는 가운데 소련측이 표명한 「남북한 중재 용의」발언은 가깝게는 한소 수교의 박두,멀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을 예고하는 것이다. 소련이 남북한 사이에 들어서서 분쟁 해결을 중재하려면 최소한 남북한과 각기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해 한국과 국교가 없는 소련이 남북한 분쟁을 중재하겠다는 것은 한국과 곧 공식 외교관계를 갖겠다는 뜻을 우회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소련의 남북한 동시 수교와 이를 통해 확보하게 될 남북한 중재기능은 남북대화의 활성화와 남북공존의 안정을 위해 건설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은 전망하고 있다. 또한 한소 수교가 앞으로 미­북한 대화와 한중 관계의 진전,그리고 일­북한접촉을 가속화시킬 자극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면 멀지않아 한반도에 구한말시대를 연상시키는 4강의 각축전이 재현되리라는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소련측의 이번 「남북한 중재 용의」표명은 계산된 발언이었다. 지난 5일 미 국무부에서 보도진 앞에 등단한 소련 외무부고위관리는 미리 준비한 메모를 보고 이 대목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소련이 워싱턴에서 이를 터뜨린데서는 몇가지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유럽을 변화시킨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아시아지역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에 이번 미소 외무장관회담은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또 워싱턴에 대해 한소 관계진전에 상응하는 미-북한 관계개선을 촉구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남북한 모두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남북한 분쟁을 중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소련의 선언은 1년 4개월간의 대북한 접촉에도 불구하고 평양과 아무런 기초관계조차 정립못한 미국에 뼈아픈 소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소련은 「중재 용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이번 외무장관회담등에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제기해 온 ▲남한내 핵무기 철수▲남북한 감군 ▲「한반도 장벽」철거 협상등 북한측 주장을 중재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을 법하다. 한반도 긴장의 원인과 처방을 둘러싸고 미소는 이번 외무장관회담에서도 상반된 시각과 견해차를 보였다. 미국은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정책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소련은 한반도를 분쟁지역 명단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만큼 한반도 상황에 대해 밝은 전망을 갖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련은 한반도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한국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라고 지적,이의 철거를 요구했다. 또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여 한국의 「북침」 방지를 보장하라고 미국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의 한반도상황 낙관론은 실제상황을 반영한다기보다 고르바초프가 제의한 아시아지역 군축과 연결된 정치적 주장으로 미측은 보고 있다. 즉 한반도에서 긴장이 줄어들었고 또 줄어들 전망이라고 해야 소련이 주한미군을 비롯한 동북아 주둔 미군의 감축과 철수를 주장하는 강도를 높일 수가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안보문제전문가들에 따르면 소련은 궁극적으로 한반도중립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반도중립화뿐만 아니라 소련의 아태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도 미군은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 소련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이에 맞서 미국이 북한의 군사적위협을 강조하는 이유가 동북아에서 미군주둔을 합리화하려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과 소련은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국제감시와 남북대화 및 남북한간 신뢰구축조치의 증진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은 한국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유럽의 경험」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에 고무받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셰바르드나제가 얘기한 「유럽의 경험」은 미국이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반도에서 가능한 것으로 판단,추진하고 있는 「유럽형 군축」 즉 선신뢰구축 조치,후군축을 뜻하는 것이다. 소련의 「남북한중재」는 이처럼 미국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유럽형 군축」을 시발로 시도될지 모른다고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 “언론책임 다해야 신뢰받는다”/유재천 서강대 교수

    ◎「신문의 날」에 부쳐 오늘로써 서른번째 「신문의 날」을 맞는다. 해마다 신문단체들은 「신문의 날」을 맞아 그때마다 우리 신문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나 또는 목표를 함축하는 내용의 표어를 선정해 왔다. 올해는 「책임있는 신문,신뢰받는 신문」을 표어로 정했다. 말하자면 이 표어에는 책임있고 신뢰받는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신문인들의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자성과 다짐의 표현 신문의 사회적 책임은 언론의 자유와 함께 항상 강조되는 규범이다. 그 까닭은 자유의 개념속에는 책임이라는 관념이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철학적 관점 때문만이 아니라 신문이 사회의 공기로서 공적과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비롯되는 신문의 사회적 책임은 크게 나누어 볼 때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첫번째 의미는 신문이 언론의 자유를 오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소극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신문이 권력기관화되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한다거나 혹은 개인이나 법인의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사회적 요구가 이에 속한다고 보겠다. 두번째 뜻은 언론의 자유를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즉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언론의 사회적 구실과 연관된 과제이다. 신문은 전통적으로 환경의 감시자일 뿐만 아니라 환경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의미를 제시해 주며 문화를 전승시키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이를 위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므로 신문은 그와같은 구실을 충실하게 담당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요청은 신문이 지니는 사회적 책임의 적극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때 신문이 소극적및 적극적 의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독자로부터 신뢰를 받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단체들이 올해의 표어로 새삼스럽게 「책임있는 신문,신뢰받는 신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표어는 적어도 두가지 측면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나는 현재의 우리 신문이 제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있으며 그 결과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반성이고,나머지 하나는 책임있고 신뢰받는 신문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다짐이라 생각된다. 이와함께 우리는 신문의 책임이 어떤상황 속에서 특히 강조되어 왔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돌이켜 볼 때 신문의 책임은 언론자유가 극도로 억압당했던 상황에서 언론의 자유가 크게 확대되는 전환기에 항상 역설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바로 그러한 현실이라는 점에서 올해 신문 주간의 표어가 지니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책임있고 신뢰받는 신문이 되기 위해 몇가지 유의할 바를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환기상황 직시를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신문이 지니는 사회적 책임의 소극적 측면과 관련하여 사이비언론을 척결하는 과제이다. 특히 이 문제가 중요한 까닭은 언론자유의 오용과 남용의 전형적 병폐인 사이비언론의 발호가 언론계의 자율적인 정화노력에 의해 척결되지 못하는 경우 타율적인 힘의 개입이 불가피해지고,그에따라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는 가능성 때문인 것이다. 이미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5ㆍ16이후 언론에 대한 억압이 그 당시의 사이비언론에서 말미암았었다는 역사적 체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기성 신문계의 금품수수도 자정운동을 통해 없어져야 하겠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신문이 보다 국민의 알 권리에 충실히 봉사해달라는 요청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날의 경우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통제가 극심했으므로 신문이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현실은 어느정도 독자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책임이 언론 그 자체에 귀결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인식을 해야만 한다. 특히 민주정치의 과정에 있어 여론이 정책결정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신문은 중요한 공공의 관심사를 제때에 알려주어야만 옳다. 그럼에도 요즘의 신문은 그와같은 본래적 기능,즉 여론형성자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경우 어느 신문치고 그 법안이 국회 문공위에 상정되었으며 그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는지를 보도해 준 일이 없다. 신문들은 그 법안이 통과된 뒤 교육계에서 문제를 삼자 비로소 보도와 논평을 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교육계의 중요한 관심사를 보도하고 논평함으로써 토론의 의제를 설정하여 여론을 형성시켜야 할 신문이 뒤늦게 여론에 밀려 그 문제에 관심을 보인 결과가 된 셈이다. 이러한 사례가 어디 이 뿐이겠는가. 오늘의 신문이 제 할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또한 우리 언론이 보이고 있는 일관성의 부재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를들어 경제각료팀이 교차될 때마다 드러나는 태도로 물러간 경제팀의 정책을 비판하던 신문들이 새로운 경제각료팀이 내세우는 지난 팀과는 반대되는 경제시책을 역시 비판하는 자세를 보이는 현상이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경제시책에서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 신문 자신이 자기의 관점을 확고하게 정립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론형성 기능 미흡 우리 신문이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지 못한 데서 초래되는 결과는 여러면에서 우리 언론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고 있다. 기사의 깊이가 부족한 원인이 되기도 하며 여론을 오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가치와 규범이 극심한 혼란을 겪는 시대상황일수록 언론은 일관성 있게 관점을 제시해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시대가 신문에 대해 요구하는 책임일 것이며 그렇게 할 때 신문은 독자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포장마차서 성형수술(조약돌)

    ○…서울 북부경찰서는 29일 실내포장마차주인 박성수씨(47ㆍ강동구 천호4동 438)를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위반(무면허 의료행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박씨가 갖고있던 코 성형수술용 실리콘33개,의료기구 20종류 1백23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박씨는 지난해 12월말부터 자신의 실내포장마차에 딸린 7평크기의 내실에 성형수술용 실리콘ㆍ마취제ㆍ주사기 등 의료기구를 갖춰놓고 지난 7일 상오10시쯤 『싼값에 성형수술을 해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진모씨(48ㆍ여ㆍ택시운전사)에게 20만원을 받고 코 성형수술을 해주는 등 2차례에 걸쳐 불법 성형수술을 해준 혐의를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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