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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파무전기 지령 받으며 북행 시도/무장공비­잔당 예상도주로

    ◎칠성산 은거… 오대산∼설악산코스 거칠듯/군,반경 50㎞ 3중포위 칠성산주변 압박 남은 무장 공비 5명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잠수함 함장인 정용구(42·중좌)와 안내원 김윤호(36·대위)가 22일 사살됨으로써 잔당 5명의 행방과 추격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군 수색대는 이들이 비록 특수훈련을 받은 공작원들이긴 하나 강릉 일대 50㎞ 수색 반경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소탕작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주 중인 무장공비는 부함장이자 안내원인 유림(38·소좌)과 전투원 이철진(28·소위)·김영일(30·소위),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20대 정찰조 2명이다. 이들은 혼자 또는 2명씩 짝을 이뤄 강동면 칠성산 일대에 몸을 숨기고 탈출을 시도 중이라는 것이 군 수색대의 판단이다.산세가 험하고 계곡이 깊어 은신처로는 적격이기 때문이다. 22일 교전 지역은 칠성산 정상에서 남서쪽의 왕산면 목계리 계곡과 북동쪽의 강동면 언별리 계곡이다. 목계리 계곡은 오대산과 태백산 줄기로 이어져 산자락을 타면 월북을 시도하기가 쉽다.21일 구정면 어단리에서 이병희중사에게 총을 쏘고 달아난 공비가 22일 목계리에 나타난 공비와 동일 인물이라면 태백산 방향으로 2∼3㎞ 진출했다는 얘기가 된다. 칠성산 북동쪽의 언별리는 해안에서 6㎞ 떨어진 지역이다.해안 지역에서 또다른 잠수함을 타고 탈출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해안의 경계태세로 미루어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비들은 낮에는 비트속에 은신하고,밤에는 이동하며 포위망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특히 지도와 단파무전기를 이용,북한의 지령을 받으며 탈출로를 찾고 있다.군 관계자는 이들이 하루에 2∼5번 가량 지령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오대산·설악산 코스를 타고 월북하려는 것으로 군은 파악하고 있다. 군의 압박·정밀수색에도 불구하고 무장공비를 완전히 소탕하려면 적잖은 시간과 희생이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2일 아군 2명이 전사한 데서 볼수 있듯 도주 중인 잔당들은 대부분 전투에 능한 안내조,침투조로 저항이 강력할 뿐 아니라 AK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이날 사살된 공비 2명이 압축비상식량과 현지에서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옥수수 등 식량도 지닌 것으로 미루어 당초 예상처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민가로 내려올 가능성도 희박하다.군 수색대의 선무방송에도 불구,투항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수색작업의 장기화에 대비,소탕 작전을 새로 마련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군 수색대에는 동계작전 태세에 들어가라는 지시가 하달됐다.소탕 작전 지역의 기온이 한밤에는 영상 3∼4도까지 떨어지는 등 초겨울의 날씨를 보이기 때문이다.
  • 무장공비­이 국방 간담내용

    ◎“도주 공비 국군­민간복 번갈아 입어”/월북루트 지도 노획… 퇴로차단 철야탐색/기온낮아 산악도피 한계… 소탕 오늘 고비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21일 북한 무장공비침투와 관련,합참 김동신 작전참모부장·서태석 정보본부장·윤창로 국방부대변인 등이 배석한 가운데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다음은 간담회내용. 북한은 이번 잠수함침투와 관련,아직까지 일체의 반응이 없다.현재 작전지역의 아침 기온은 영상 5도,산악지역은 3도까지 떨어지고 있어 공비들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공비들은 북한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요도(지도)를 소지하고 있다.19일 사살된 공작조장이 카메라와 M16소총,그리고 요도를 소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따라 밤낮으로 탐색및 섬멸전을 전개하고 있으며 심리전도 병행하고 있다.투항을 권유하는 삐라에는 붙잡힌 이광수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그의 육성도 방송하고 있다. 집단피살된 공비 11명 가운데 2명은 승선지도원,9명은 승조원이다.사살된 7명중에는 공작조장이 들어 있다.도주한 7명은 공작원이 2명,안내원이 2명,승조원이 3명이다.사살된 공작조장은 계급과 성명은 알 수 없으나 31세가량으로 보인다. 이광수는 도주한 공작원 2명과 처음 같이 잠수함을 빠져나왔으나 이들이 『동행하겠느냐』고 물었을때 이광수는 『나는 안내조와 동행하겠다』면서 이들과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사살된 조장곁에서는 아군복장 2벌이 발견됐다.따라서 도주한 공비들은 당초예상대로 국군복장이 아닌 민간인복장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오늘(21일)과 내일(22일)이 고비다.장기화되면 문제가 많다.지금은 오징어잡이 성수기인데다 송이버섯 채취적기로 작전지역 주민은 불편이 크다. 이광수의 진술은 처음보다는 안정되고 심경의 변화도 있는 것 같다.그러나 아직 확실히 전향한 것은 아니어서 진술을 1백% 신뢰하기는 어렵다. 공비들은 잠수함의 운항일지와 작전메모·통신장비 등은 다 배안에서 불태운 것 같다. 공비들이 장교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1·21사태 때도 모두 장교였다.특수부대요원인 만큼 대우를 해주지않겠나. 이들은 게릴라다.3명이건 1백20명이건 군사정찰과 요인암살·테러 등을 위해 특수훈련을 받고 침투했으면 게릴라다. 이광수가 타고 온 잠수함이 지난해 10월 남파된 부여간첩 이동식을 제주도에서 내려줬다고 진술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당시에는 반잠수정으로 침투했다.94년에도 동해안지역으로 침투했다는 진술의 경우 이광수는 자신이 소속한 부대에서 남한에 침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만 했다.그 진위여부는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으며 신빙성도 낮다.
  • 상륙 4일… 금명 소탕 안되면 장기전/무장공비­수색 장기화 될까

    ◎산세 험하고 숲 우겨져 은신 용이/생존능력 탁월… 야생열매도 지천 무장공비 소탕작전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주중인 공비 7명 가운데 2명은 침투공작원,2명은 안내원으로 특수훈련을 받은 정예요원이다.지금까지 진압한 19명 가운데 공작조장을 뺀 나머지 18명과는 달리 생포·사살하기가 수월치 않을 수밖에 없다.나머지 3명은 잠수함 승조원이다. 또 이미 공비가 상륙한 지 4일이나 지나 일망타진의 생명인 조기소탕의 시기를 놓쳤다는 점도 앞으로의 작전성공여부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군은 도주중인 공비 가운데 일부는 강릉일대의 포위망을 이미 벗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관령부근까지 설정한 3중차단선을 내륙쪽으로 더욱 확대하는 등 수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날 상오부터는 생포된 이광수의 육성을 녹음한 선무방송을 실시하는 등 심리전도 병행하고 있다. 군은 현재 달아나고 있는 공비가 한데 몰려다니다 수색대에 포착돼 사살당한 승조원과는 달리 단독,혹은 2명씩 행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극한상황에서도 여러 달을 버텨낼 수 있는 혹독한 생존훈련을 받아 산악행군능력이 탁월하고 사격 및 무술 등 전투력도 상당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활로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소탕이 늦어질 수도 있다고 보는 데는 이들의 생존능력 외에 지형적·계절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이들이 은신하고 있는 강원 산간지역은 산세가 비교적 험하고 깊다.때문에 우거진 숲속에 쉽게 몸을 숨길 수 있는 데다 머루·다래·도토리 등 야생열매가 많이 나는 철이어서 굳이 민가에 내려오지 않고서도 배를 채울 수 있어 이들이 은신하거나 도주하기 좋은 여건이 되고 있다. 이같은 여건에서 이들이 땅을 파 이른바 「비트(비밀아지트)」를 만들어 낮에는 몸을 숨기고 밤에만 산악을 달려 조금씩 북으로 탈출하는 방법을 취할 경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발견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오대산이나 설악산을 통해 북한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을 탈 가능성이 높다.북한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요도(지도)도 지니고 있다. 공비들은 처음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국군복장이 아닌 민간인복장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사살된 공작조장 곁에서 아군복장 2벌이 발견됐기 때문이다.산악이 아닌 일반도로를 이용해 북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 가운데 공작조와 안내조는 이광수의 진술과 달리 잠수함이 좌초하기 훨씬 전에 육상으로 잠입,이미 내륙 깊숙이 침투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군은 지금까지의 사살위주의 작전에서 전환,생포위주의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광수의 진술이 수시로 바뀌고 있는 만큼 적어도 다른 한명을 붙잡아야 남파공비의 수는 물론 침투목적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일의 교전에서 아군 2명에게 총상을 입혀 1명을 숨지게 할 정도로 완강히 저항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생포작전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 “도주 공작원 M16·수류탄 중무장”/생포공비 이광수 진술내용

    ◎공작원 3명·안내 2명·승조원 21명/강릉공항·괘방산 안테나 정밀 정찰/“나와 안내원 둘 밥구하려 현장 이탈” 무장공비 이광수는 잠수함에 모두 26명이 타고 있었고 도주한 공작원은 M16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는 또 14일 함남 퇴조항을 출발,15일부터 17일까지 3차례 강릉해안에 침투했으며 공작임무를 마친 정찰조를 대동,복귀하려다 잠수함이 좌초되는 바람에 승선한 전원이 해안으로 상륙해 침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군 관계자가 전한 이의 진술내용을 재구성해본다. ▷침투◁ 14일 상오5시 함경남도 퇴조항에서 잠수함이 출발했다.(퇴조항은 흥남 북쪽의 조그만 항구로 인근에는 이들이 타고 온 「상어급 잠수함」을 건조하는 마양도가 위치해 있다). 15일 하오7∼9시사이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에서 3백∼4백m 떨어진 해상에서 공작원 3명과 안내원 2명 등 5명이 침투했다.이들은 16일 하오8시30분 안인진리 해안에서 접선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7일 같은 시간에 재접선을 시도,공작원 등이 모두 잠수함에 승선했으나 파도가 쳐 하오11시쯤 잠수함이 좌초됐다. 18일 상오1시쯤 공작원과 승무원 모두 탈출을 시도했으며 30분 뒤 공작원이 『우리는 먼저 떠나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행에서 이탈했으며 상오3시30분에는 안내원 2명과 함께 있던 이광수는 『밥을 구해오겠다』며 역시 현지를 이탈했다.우리는 당시 상륙한 지점 인근야산 봉우리에 있었다. ▷침투목적◁ 매월 15일 실시하는 민방위날 행사를 점검하러왔다(18일 진술).강릉비행장 정찰하러 왔다.괘방산정상에 있는 안테나 정찰하러 왔다(19일 진술). ▷무장공비 구성◁ 공작원(정찰조) 3명과 안내원 2명,승조원 21명이다.승조원에는 함장·부함장·기관장·전투원과 승선지도원 등이 포함돼 있다(군 당국은 조사과정에서 사살됐거나 자폭한 18명의 사진을 이광수에게 보여줬다).1명이 우리가 소속한 1편대가 아닌 2편대 상위1명이 끼어있었다.견습하러 잠수함에 승선한 것 같다(그래서 25명에서 26명으로 숫자가 늘어났다). 도주한 7명 가운데 공작원은 국군으로 가장하기 위해 얼룩무늬 전투복에 전투모·베낭을 갖고 있으며 체크무늬 티셔츠를 속에 입었다.무기로는 M16 각 1정과 실탄 90발,권총 1정,수류탄 2발,카메라 1대를 소지하고 있다. 안내조 2명 가운데 조장은 권총을,조원은 M16 소총을 휴대하고 있으며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이나 베낭이나 모자는 갖고 있지 않다.우리는 인민무력부 정찰국 직속이며 안내원 2명은 승조원에 포함돼 있다.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남파됐으며 그동안 안내원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그냥 승조원 역할만 했다. □무장공비 시간대별 행동내역 ▲14일 상오5시=함경남도 퇴조항에서 출발.공해상으로 우회하면서 영해 진입이 늦어짐. ▲15일 하오7∼9시=좌초지점에서 3백∼4백m 떨어진 해상에서 공작원 3명과 안내원 2명을 내려줌.안내원 2명은 공작원을 내려준 뒤 곧바로 복귀. ▲16일 하오8시30분=공작조와 안내조 해안 접선장소에서 접선시도했으나 1차 실패. ▲17일 하오8시30분=2차 접선에 성공.잠수함에 승선. ▲17일 하오11시=파도가 쳐 잠수함 좌초. ▲18일 상오1시=공작원과 승무원등 전원 잠수함 탈출. ▲18일 상오1시30분=해안에서 공작원 3명 중무장한 채 일행서 이탈. ▲18일 상오3시30분=안내원 2명과 함께 있던 이광수 『밥 구하러 가겠다』며 이탈. ▲18일 하오6시=군·경 검문검색에서 이광수 체포.
  • “도주잔당 국군복장 위장”/무장공비­추적 현장

    ◎수색 3일째/괘방산서 2명 발견… 포위망 압축/병력 4만 투입 입체작전/주요 길목 장갑차 등 중화기 배치 【강릉=특별취재반】 강릉 일대에 침투한 무장공비 소탕 작전이 시작된지 20일로 3일째. 군은 강릉 주변 산악지대에서 펼치고 있는 잔당 소탕작전을 강화하고 있다. 군은 생포된 이광수가 남파 공비는 모두 26명이라고 진술함에 따라 자살,또는 생포되거나 사살된 19명 외에 잔당 7명을 소탕하기 위해 육·해·공군 등 4만명을 투입했다.「아파치」 등 기관총을 장착한 중무장 헬기도 동원,항공 감시 체계도 강화했다. 군은 잔당 가운데 국군으로 위장한 공작조 3명과 안내원 2명은 3차 차단선인 대관령 바깥으로 빠져 나갔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3중으로 설치한 차단선을 더욱 내륙쪽으로 넓혀 저인망식 소탕작전을 전개 중이다. 군은 특히 지금까지 붙잡히거나 사살된 공비들은 잠수함 승조원으로 무기도 빈약하고 전투능력이 약했으나 공작조와 안내조는 M16 소총과 실탄을 비롯,수류탄 및 AK 소총을 소지하는 등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따라서 이들과 교전하다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주요 도로와 길목에 장갑차 등 중화기를 배치했다. 이들이 산 속 땅밑을 파고 「비트」(비밀 아지트)를 만들어 숨는 장기전에 들어갈 것에도 대비,나무 밑둥이나 낙엽이 깔린 부분 등을 일일이 대검으로 찔러가며 탐침작업도 병행했다. 이날 상오 러닝셔츠 차림의 공비 2명이 목격된 강릉 괘방산 일대에는 공수특전단 등 6개 특수부대 병력을 집중 투입,남북과 동서를 교차 수색했다. 이와 함께 19일 하오 잠수함이 출몰한 안인진리 해수욕장 부근 야산에서 강원도 인제군 육군 부대의 마크가 달린 중위·중사의 얼룩무늬 위장복 등 국군 장비가 발견됨에 따라 수색대의 어깨에 착용하는 식별표의 색깔을 수시로 바꾸도록 하면서 공비의 위장에 대비했다. 군은 이날 상오 10시30분쯤 MD 500 등 헬기 5대를 이용해 「투항해 생명의 안전과 행복한 삶을 찾으라」는 내용의 선무전단 7만장을 강릉시 일대에 살포했다.
  • 전투원 13명·승무원 7명/무장공비 20명 어떻게 구성됐나

    ◎20명 모두 장교… 함장 중좌·조장 대위/달아난 8명은 모두 안내원·침투조 18일 새벽 강릉해안을 통해 침투한 20여명의 북한군인들은 모두 남한에서 공작을 펼칠 임무를 띤 특수요원들이었을까. 군 당국은 이날 침투한 북한군은 대남침투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모두를 남한에 침투할 특수요원으로 보고 있지 않다. 북한전문가에 따르면 통상 특수전 요원들이 잠수함으로 침투할 경우 승무원과 침투요원,침투요원을 육상에서 안내할 안내요원으로 구성된다.좌초 직후 잠수함에 탔던 모든 요원들이 해안에 상륙했다고 가정할 때 20여명 가운데 10∼11명은 승무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15시간만에 강릉시 인근 청학산에서 자폭한 시체로 발견된 북한군인들은 상당수가 승무원으로 분석되고 있다.시체가 발견될 당시 1명만 권총을 갖고 있었고 권총을 소지한 간첩이 다른 10명을 사살한 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특수요원이라면 잠수함 등에 다량의 무기나 탄약을 남겨둘리 만무하고 도주하더라도 상당한 무장을 한채 우리 군과 대치상황에서도 사살될 때까지 저항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생포된 이광수(31)도 그가 밝힌대로 승무원일 가능성이 높다.이는 권총을 소지한 채 군·경의 검문검색에서 검거될 만큼 미숙한 면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나머지 8명은 전원 안내원과 침투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군 전문가는 보고 있다.고도의 침투훈련을 받은 이들은 이미 산속으로 도주한 뒤 대낮에는 은신처를 골라 숨어있거나 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이들은 군·경 수색이 종료된 이후나 느슨해질 때까지 은신처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숨어있다가 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보여 군·경의 수색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따. 군 당국은 대남침투를 직접 수행하는 인민무력부정찰국 소속인 이들은 비록 기관고장으로 표류하기는 했지만 침투조를 상륙시킬 목적을 띤것은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량의 살상무기는 물론 특수요원들이 침투 전에 김정일 앞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충성결의문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대남침투를 목적으로 원산을 출발했으나 기관고장을 일으켜 처음 계획한 곳에 침투조와 안내조를 상륙시키지 못하고 좌초,전원이 해안을 통해 상륙한 뒤 일부는 그들의 「적 접촉때 수칙」대로 자살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전국의 욕이 광주서 고개 맞댄다고(박갑천 칼럼)

    욕은 주먹아닌 말의 폭력이자 공격.불만이나 분노의 발산이며 억눌린 심리의 폭발이다.욕먹은 상대방이 끙짜놓고 뼛성내는건 공격의 성공.그 결과 주먹이 날아오기도 하지만. 같은 욕이라도 음담패설은 모양새가 좀다르다.그건 는실난실 음심을 건드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쪽이다.그렇긴하나 밑바닥심리는 크게 다를게없다.가령 『늙으면 양기가 입으로 오른다』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젊은날 같지않게 짜발량이돼가는 「현실」에의 반발아니던가. 권응인은 그의 「송계만록」(하)에서 성현의 「용재총화」에 대해 게정피운다.『간혹 추잡하고 비루한 말이 있다』면서.「청파극담」 등에는 성용재의 생김새가 「못난것」으로 돼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추잡하고 비루한말」은 그와 관계되는건지도 모른다.못생긴 굴왕신들 가운데는 음담패설로 열등감을 삭이는 경우가 적지않다는것 아니던가. 김삿갓의 파격적인 욕설시는 세상과 자신에대한 울분에서 나온다.어느 서당에 들렀더니 되우 아니꼽게 굴었던듯하다.­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서당은 내 일찍부터 아는바인데 방안엔 잘난자들만 있구나,생도는 열도 못되는데 선생은 나와보지도 않네』정도의 뜻.하지만 읽기가 거북해진다.「중과유생을 조롱함」(조승유)이란 시도 그런 유형이다. 송강 정철의 음담시조는 유배생활의 울분때문이었을까.첩이라고 기록된 기생 진옥과 어느날 술상앞에서 주고받은 시조가 그걸 느끼게한다.송강이 읊는 시조­『옥이 옥이라커늘 번옥만 여겼더니/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내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가짜옥인줄 알았는데 진짜옥인게 분명하니 「살송곳」으로 뚫겠다는 거다. 정송강이 홀랑 반했던 진옥이 어디 보통여자던가.이를받아 곧장 화답하는데­『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여겼더니/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내게는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철이라해서 엉터리 철인줄 알았는데 진짜철(정철)이니 골풀무로 녹여보겠다는 뜻.「살송곳」「골풀무」는 물론 남성과 여성이다.「근화악부」에 실려 전한다. 광주민학회에서 새달에 전국욕잔치를 벌인다고 한다.「살송곳」「골풀무」 욕가마리들 하많은 세상이라서 관심이 유다르다.그 잔치에 가서 앉아있느라면 그동안 체해서 옹이진 속이 풀릴것도 같다마는.
  • “남한내 공작원 복귀 시키려한듯”/「북 침투」 김신조씨의 분석

    지난 68년 무장 남파돼 청와대 부근까지 접근했다 생포된 김신조씨(55·기독인 귀순용사선교회 이사장)는 18일 이번에 침투한 북한 잠수함의 임무에 대해 「공작원 대동 복귀」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씨는 『한명이 생포된 만큼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잠수함의 임무는 남한에서 오래전부터 잠복활동중인 공작원들을 복귀시키려 했던 것일 가능성이 많다』고 추정했다. 그는 『남한에서 활동중인 공작원이 수사망에 노출되면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잠복하거나 복귀명령을 받게 되는데 이번 경우에는 안내원 등이 복귀명령을 받은 공작원을 데리러 왔다가 잠수함이 좌초되자 모두 육상으로 잠입,산을 타고 돌아가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간첩이 남파될 때 이전에는 안내조가 소형잠수함을 이용,몇명의 공작원을 먼바다에 내려주면 공작원은 물속에서 헤엄쳐 육상에 잠입하고 안내조는 복귀하는게 보통이었으나 이번에는 남파로 보기에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더욱이 11명이 한꺼번에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이들이 전문 전투훈련을 받은 공작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어 『현재 남한의 방어망으로 볼때 육상침투는 거의 불가능하며 유일한 방법은 최근 몇년새 경비가 허술해진 해상으로의 침투』라고 분석했다. 또 『북한의 간첩남파 시기는 나무가 가장 무성해 은폐가 쉽고 각종 야생과일이나 열매가 풍부한 9∼10월이 적기』라며 『이들은 주로 밤 10시에서 새벽 4시까지 활동하다 낮에는 산에 숨는다』고 설명했다.
  • 불황극복 일본서 배운다:하

    ◎과감한 조직개혁… 「적당주의」부터 추방/혼다·도쿄은·후지츠 등 연봉제 도입… 능력주의 전환/“잔업시간 제한·생산라인 통합,효율제고 묘안 속출 일본은 미국과는 다르다.미국의 꿈이 악몽으로 끝났을때 미국기업이 최고경영진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대량해고에 나섰지만 일본기업은 정도가 약했다.강제로 임직원을 감축하는 것도 가능한한 피했다. 근로자에게 어려움을 떠넘기는 식의 무책임한 경영도 찾기 어렵다.일본기업은 90년대의 불황을 효율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았다.종래의 적당주의로는 경영이 불가능하게 된 일본주식회사가 내린 결론이었던 셈이다. 「조직개혁­」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각종의 묘안이 쏟아졌다.대표적인게 연봉제.중견기업을 중심으로 80년대부터 연봉제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세계적인 대기업들도 연봉제대열에 동참한 것은 이때부터다.경기불황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일본에 성과를 중시하는 연봉제도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연봉제취지대로 운영되지 않는 면도 있지만 연봉제도입 자체가 사건이었다. 『경제가활황인 시기에는 적당주의의 사내조직으로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성과주의라 할 연봉제를 도입해 사내에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면 회사의 장래는 없다』 컴퓨터회사로 유명한 후지츠의 가쓰라타이사의 말이다.후지츠는 지난 94년4월부터 전종업원 5만4천명중 7천명의 관리직 전원과 생산직 반장급이상의 중견간부 1만명중 6천명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저돌적인 업무추진」으로 유명한 후지츠까지 연봉제를 도입한 것은 일본기업이 능력주의로 전환해가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평을 받기에 충분했다.후지츠에 앞서 지난 92년에는 혼다와 도쿄은행(현 도쿄미쓰비시은행),하세가와(장곡)건설 등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이 연봉제를 시작했었다. 불필요한 시간외(잔업)근무를 줄이려는 것도 효율화및 성과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미쓰비시전기는 지난 94년4월 「재량기획수당」을 도입하기까지 했다.잔업시간은 월20시간을 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그동안 일본에는 잔업근무가 많았다.『잔업수당을 챙겨 결혼자금을 마련했다』는 말이 나돌정도로 잔업근무는 인기였다. 하지만 불황기를 맞아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나 할 것없이 잔업시간을 제한했다.불필요한 비용은 줄이면서 효율을 높이려는 전략이다.일본근로자의 월평균 잔업시간은 89년에는 20시간이었지만 91년에는 18.4시간,94년에는 12.1시간으로 줄었다. 『일본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종래의 팀의 단결력보다 개인의 성과가 중요해졌다.모두 사이좋게 일하는 사풍보다 각 개인이 목표를 정해 성과를 창출하는 체제로 변해야 한다』 미쓰비시전기의 야마다상무의 말이다. 지난 92년말 이스즈자동차와 혼다는 부품을 서로 공급받는 계약을 맺어 자동차업계는 물론 재계에 충격을 줬다.자동차업체간의 공조는 처음이었다.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의 대표적 자동차업체가 내린 선택이었다. 소니는 여러형태의 생산라인을 통합해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여나가면서 불황을 극복하는 전략을 썼다.지바현의 VTR생산공장의 경우 92년초에는 부품 및 재료를 투입해 제품을 만들기까지 11일이 걸렸지만 그해 가을에는 4일로 단축됐다. 닛산자동차는 93년3월자마공장을 없앴고 수출전문업종인 중견업체인 신톰은 유럽 전용 VTR의 수출가격 폭락으로 93년 72억엔의 적자를 내자 신부(갑부)공장을 없애고 인도네시아로 생산공장을 옮겼다.효율화를 위한 불필요한 공장의 정리인 셈이다. 히타치가 92년 임원의 보수를 삭감하기 시작한 이후 철강 소프트산업 임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업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후지제록스는 93년 영업부문으로 2백명을 전환 배치하는 등 관리직사원을 영업쪽으로 투입하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기업들은 출장교통비,교제비,광고비부문의 긴축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민호 신한종합경제연구소 산업팀장은 『일본기업들은 인원감축보다는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위기극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덩치가 큰 대기업은 조직개편이 어렵지만 일본기업들은 과감히 해나갔다』고 설명했다.90년대에 불어닥친 불황도 일본은 지난 석유파동(오일쇼크)와 엔고때처럼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고 있다.역시 일본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 동양화가 박대성(이세기의 인물탐구:104)

    ◎청한­적요가 배인 시인같은 화가/한때 전국산천 스케치… 실경산수” 화풍지켜/인위·조작이 없는 소쇄한 화격에 선모심이… 희부연 연묵과 엷은 보라빛이 먼산을 이루는 가운데 가늘고 섬세한 수목사이로 청명한 물줄기가 운문율처럼 퍼져 있다. 사방이 온통 겨울을 재촉하는 계절의 끝에서 수면에 비친 스산함은 청한과 적요의 시를 흩뿌린다. 인적이 끊긴 촌가며 물가에 매어둔 빈 뱃전에도 긴휴면이 스며들어 보는 이의 가슴에 뭉클한 시심을 던진다. 소산 박대성의 수묵담채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소산은 시인같은 화가다. 실제로 화면에 시를 직접 써넣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카비르의 구절들을 어슷어슷 배경속에 수놓기도 한다. 「저 황홀한 피리소리를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누구의 피리소리인지는, 여기 등불하나가 타고 있다. 불꽃의 심지도 기름도 없이 연꽃 한송이가 꽃피어난다」 그의 작품은 간경·산뜻한 선묘가 특징이다. 묵광의 묘취를 한껏 펼쳐 마치 폭우가 쏟아지고 난뒤의 산자수명을 깊은 사유로 그려내고 있다.그중에서도 지난 94년 1천2백호 대작으로 일컬어지는 「성산포 일출봉」은 갈대가 휘날리는 일대장관을 「풍죽처럼 소화한」 호방한 화면이 일품이다. 이 한폭의 대작을 위해 그는 겨울태풍이 그칠줄 모르는 성산포에 머물면서 배를 타고 몇차례나 섬주변을 돌기도하고 봉우리의 성격을 소상하게 파악한후 「의젓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기상을 포착해냈다」고 말한다. ○추경·초동 즐겨 그려 1천호에 손댄 것은 경주 계림의 고목을 그린 「고목의 정원」이 처음이다. 수백년 풍상속에 의연히 서있는 계림의 노목은 그의 넘치는 화심을 움직여 「미의 내용을 구명하는 작업」에 철저하게 몰두할수 있게했다. 진한 먹을 튕겨서 쓰는 갈필대신 산마호라는 장봉을 써서 큰 그림을 그릴때의 일필휘지의 붓길과 은은한 번지기(휘염)로 변화가 풍부한 산의 형세를 제압한 것이다. 드넓은 공간에 그의 소재들을 들어앉히는 동안 『집사람이 먹을 갈아주는데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갈았다』고 웃는다. 부인 정미연씨는 생명이 집결된 누드화로 주목받는 서양화가다. 지방에서 활동하던 소산이 중앙화단에 부상된 것은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다음해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때 심사위원의 한사람이던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새로운 작가, 역량있는 신인을 발견한다」는 대전의 취지대로 「그의 그림은 우선 한눈에 새로웠다」고 못밖는다. 소산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커다란 수확」으로 화단에 받아들여졌다. 그는 주로 늦가을 풍경이나 초동을 즐겨 그린다. 평론가 유홍준은 그의 추경을 보고 「고담한 필묵과 스산한 운치의 적막감이 오늘날 박대성 작품의 미점」임을 상찬해 마지않는다. 작가자신도 아일과 풍요보다 쓸쓸함에 깃든 자연의 천리속에 고격이 숨어있음을 터득하고 있다. 그의 초기그림들은 까슬까슬한 붓자국을 들어낸 석묵으로 소슬한 한국의 산천이 안고 있는 정취를 섬세하게 표출해낸다. 그러나 88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대작전에 이은 최근의 작품들은 벽오동과 청오동, 청람이 넘실대는 바다와 수목에 산호색과 비취색 호박색을 장식하여 화사미를 보인다. 전경은 우람창울하고 원경은 생략과 절제로 짙고 엷고 가늘고 굵은 선과 색채가 상조되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나 그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적 시각은 빠른 붓의 속도와 날카로운 선획으로 스케일이 장대한 대작을 성취하였고 이는 「이제까지의 실경산수의 일반적 유형에서는 맛볼수 없는 다른 화격을 이끌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대해 오광수는 하나의 형식이나 틀에 안주해버리는 우리 미술풍토에서 「부단하게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자세는 「조선후기의 진경산수와 청전 소정을 중심으로하는 근대산수에 이은 「제3세대」로 정의를 내린다. 그는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화단의 시선을 집중시켰을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그림을 공부한 것은 청대초기의 화집인 「개자원화전」이 바탕을 이룬다. 경북 청도 한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3살때 부모를 잃고 왼손마저 다치자 고향의 빼어난 경관을 사생하는 것으로 그는 외로운 시절을 보낸것 같다.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이고 형과 누나들의 도움으로 17세되던해 부산으로 내려가 서정묵화숙에서 사사, 부산동아대가 주최한 국제미전 입상과 21세때 국전 첫입선을 비롯해 연속 8회 입선이 그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국전서 연속 8회 입선 그러나 연이은 국전입선후에는 당연히 특선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학맥 인맥이 없는 그는 번번이 도외시되었고 여기에 한맺힌 그는 「뭔가 최고가 돼야 한다, 실력으로 이 모든 것을 설욕하겠다」는 의지로 전국을 떠돌면서 혼자서 산천을 스케치해 나갔다. 『그림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는 고백에는 여전히 저항이 들어가 있다. 그가 화가로서 행운을 잡은 것은 대구매일신문 화랑개관기념 초대전이다. 대구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던 주경과 서동균 등 어느 한쪽을 선택할수 없었던 신문사측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이 전시를 계기로 대만과 일본초대전에서 그의 그림은 「소산화」로 크게 호평되었다. 당시 대만의 원로화가 양우명은 그의 그림을 「청전 이후」로 비유하면서 대만에 머물 것을 극구 권유했으나그는 중앙화단이 있는 서울에 정착했다. 그리고 뒤늦은 나이인 35세때 효성여대 회화과 출신인 정미연씨와 결혼, 부인의 그림자같은 내조가 「시대감각에 걸맞는 현대한국화」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자녀는 딸만 둘. 성격은 내성적인 편으로 일체의 그룹활동이나 단체전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가 평창동에 화실을 마련한 것은 10년간의 팔당시대를 거친 90년초부터다. 북악터널 못미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소산의 화실은 선비의 화숙처럼 은일하게 숨겨져 그의 정원과 화실은 하나같이 명품이다. 안방에서 내다보면 북악산 줄기가 사방으로 둘러치고 추분이 머잖은데도 연과 소나무와 죽의 푸르름은 작가의 초일한 화경인듯 시들줄을 모른다. 소산은 독특한 실험정신과 물결치는 소재의 전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는 화풍」을 지켜 기를 앞세운 작업보다 광활한 대자연을 테마로한 서정적 세계로 자기변신을 이루고 있다. 창일한 개성과 영롱한 구슬빛이 감도는 소산의 그림앞에 서면 인위와 조작이 없는 소쇄한 느낌, 거르고거른 영매의 화격에 선모심을 금치못하게 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에 한구절의 시를 품게한다. □연보 ▲1945년 경북 청도출생 ▲66년 국전 18회부터 25회까지 8회 연속입선 ▲68년 부산동아대 국제미전입선 ▲70∼80년 국내서 8차례 개인전개최 ▲74∼75년 태만 공작화랑초대개인전 ▲75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개관기념초대 개인전 ▲76년 일본 후쿠오카(복강) 선화랑개인전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추학(추학)」으로 장려상수상 ▲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상림(상림)」으로 대상수상 ▲80년 「계간미술」이 선정한 「새시대 9인전」,한국 화랑협회초대 「12인전」출품 ▲81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한국미술,81년」「한국현대수묵화전」 신세계미술관선정 「청년작가 10인전」초대출품 ▲82년 경기도 남양주 팔당정착 ▲84년 샘터화랑초대 「박대성·황창배 2인전」 ▲85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현대미술초대전」출품,가나화랑전속 ▲86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초대 「박대성·강대철 2인전」,도쿄 후지갤러리개인전 ▲88년 서독 쾰른시 파리나갤러리 초대전,중앙일보주관 「박대성 작품전」(호암미술관)에 대작 1백여점전시(3월9일부터 30일간) ▲89년 윤범모와 중국문화기행 ▲90년 백두산 만주일대여행,가나화랑초대 제15회 개인전 ▲94년 실크로드 기행전(동아갤러리),개인전(가나화랑)
  • 건축가 원정수/그의 건축에는 인간적 체취가…(인물탐구:103)

    ◎전통양식 바탕 선·면의 모더니티 창조/첨단빌딩 「포스코 센터」 서울의 명소로 21세기 선도기업체의 이미지를 자랑하는 테헤란로의 포스코센터,명실공히 서울의 명소로 등장한 이 첨단빌딩은 투윈타워매스로 구성된 「은유적 해석」이 두드러진다.마치 사과를 반으로 잘랐을 때 사과의 핵이 반으로 잘려나가는 모습,혹은 하나의 세포에서 세포분열로 자라난 일란성 쌍둥이가 마주선듯 타워간에 생기는 장력 긴장감이 미래를 향한 도약과 발전을 팽팽하게 강조한다.이는 토털건축을 지향해온 건축가 원정수의 최신작이다. 그는 평소 「자신이 몰두한 체험이 동반되지 않는한 건축은 그 맛과 멋을 깨달을수 없는 엄격한 세계」임을 천명해 왔다.그리고 이 장대한 건축물로써 인간성과 개성,쾌적한 자연성과 지역성을 포괄하고 건축의 기능과 기술을 구사하여 높은 격조와 세련된 완벽성을 결집시키고야 말았다. ○대학시절 현상공모 단골 그는 온화하며 합리적이고 주위사람들을 포용하는 성격이다.건축교육과 임상을 통한 오랜 건축실무자로서 바이올린의 G음 하나가 「G선상의 아리아」를 이루어내듯이 아무리 최악의 경우에서도 기량과 능력과 장인정신으로 개성있는 디자인을 창출한다는 여유가 만만하다.지나치게 「경직된 기능적 자세」나 「서구화 경향」에 집착하기 보다 건축주의 생활을 합리적으로 수용한 「편안하게 감싸는 생활공간」「자연과 친화할수있는 건축」으로 그의 건물에서는 어디서나 인간적 체취가 배어나온다. 그가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나 사리넨에 비유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자연환경에의 적응」「번뜩이는 창의력」때문이다.알토가 핀란드에서 태어나 조국의 건축양식과 개성을 고집한 것처럼 그는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해방후 1세대로서 한국적 색채를 일관되게 이끌어왔다.76년 현상설계에서 1등 당선한 한국은행본점은 은행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표현하기 위해 전통건축의 석조단층 아치에서 모티브를 찾고있고 89년 완공된 국회의장공관의 경우에는 푸른 녹이 드는 동판을 지붕으로 구성하여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다리게 하는 「전통속의 현대화」를 꾀하고 있다. 그가 건축의 꿈을 키운 것은 처절했던 6·25로 잿더미가 된 황폐한 서울을 보면서 여기에다 멋진 신세계를 펼치리라는 꿈과 야망 때문이었다. 건축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역시 철저한 수업과 알찬 실험을 거치고 있다. 서울대공대 재학시절부터 서울시청을 필두로 남산국회의사당과 충주비료사택단지·잠실주거단지·한국은행본점 등 수많은 현상설계에 응모하여 체계적인 경험을 쌓았고 공군기술장교로서 각종 군사시설과 병영숙소 설계에 참여하는가 하면·김희춘·이광로·김수근 등 기라성 같은 스승들을 사사하고 있다.선배들이 이끌던 구조사 신건축문화 무애건축을 두루 섭렵한 끝에 69년 건축가가 직접 수주해서 설계하는 일양건축을 설립했고 서울대 후배이자 같은 건축가인 부인 지순씨와 부부건축전을 열어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해보인바 있다. ○부인은 대학후배 건축가 건축비평가 임창복씨는 그의 건축에 대해 「탁발한 장인기질」과 「생활을 보는 독특한 시각」이 특별히 남다르다고 지적한다.「한국에서는 드물게 근대건축의 아름다움이랄수 있는 선과 면에 의한 모더니티의 구현에 성공한 작가라는 점과 그의 조형은 대부분 한국적 문화의 바탕을 이해한뒤 발전시켜왔다는 점,그리고 이 두가지 경향을 통합하여 지금도 그만의 새로운 조형세계를 창조하고 있음」을 높이 사고 있다. 그의 작업방식은 어떤 건축물이든지 새로움에 대한 확신이 설때만 비로소 일을 시작한다는 식이다.하나의 프로젝트에 단순하게 수정과 개선을 보충하기보다 처음부터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한후 감정적 자세로 새로움을 추구해낸다. 외국의 것을 도입하여 이식해놓은 듯한 우리의 하이테크가 아직 모방에 지나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일본 홍콩의 인텔리전트빌딩을 수없이 답사한후 금성사식당을 먼저 시도했고 이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성공하자 포스코빌딩을 이룩하는 모태로 삼았다. 건축은 디자인수법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오케스트라가 여러개의 악기군으로 편성되고 지휘자에 의해 하나의 교향악으로 조화되듯이 건축 역시 『생태적 인간적 테크놀로지 마케팅 제작관련 시스템은 물론 정치·사회·역사를 포함한 추상적 개념까지도 함축시킬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83년 이후 일양건축을 확대하여 창경원옆 원남동에 간삼종합건축사 사무소를 개설,혼자서 하는 건축이 아닌 각종 분야를 라인업으로 총괄하면서 1백50여명의 구성원들과 함께 사회의 현상을 직시하고 거기에 일익을 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올바른 순환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직원 150명 건축사무소 내 그는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전무이던 원대참씨의 3남1녀중 막내.경관이 수려한 청운동자택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중2때 국전에 응모한적이 있고 해방후 외국잡지 등을 통해 미국문화를 간접적으로 접한 것이 모더니즘 건축을 수리적 감각이 아닌 회화의 연장으로 받아들인것 같다.그에게 행운을 준것은 음악을 하는 형(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원경수씨)과 절친한 친구이던 서울대 이광로교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건축가인 부인 지순씨의 두터운 내조와 협력이 그를 한국건축계의 정상에 서게 했다.자녀는 딸만 넷. 모두 출가했고 그들은 부부건축이면서도 아직 자신의 집을 갖지못하고 동숭동의 빌라에 살고 있다. 신속한 정보처리시스템과 첨단통신 기능,경쟁적 가속화에 적응할수 있는 사무업무공간을 구축한 명작 포스코센터를 보고 건축가 공일곤은 「새로운 건축문화를 창출했을 뿐 아니라 이 아름다운 인텔리전트 빌딩은 종합예술의 차원에서도 국민적 긍지로 내세울 만하다」고 평가한다. 『이제부터가 정말로 나의 건축의 시작이다』 연녹색의 투명 매스에서 발산되는 신선한 불빛은 용광로에 불타는 무한한 에너지의 상징이며 연건평 5만5천여평으로 이룩한 거대한 타워는 언제나 새로움을 좇아 치솟는 그의 희망찬 미래이자 의욕이다.도시화 현대화의 첨단시대에서 그만의 건축언어로 건축오케스트라를 관장하는 그의 영감은 우주의 심장에 꽃피는 음악처럼 오늘도 끊임없이 불타며 창천하고 있다. □연보 ▲1934년 서울 출생 ▲1957년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졸업 ▲1957∼61년 공군시설 장교 ▲1961∼63년 구조사 근무 ▲1963­현재 인하공대 건축과 교수 ▲1968­현재 목구회 회원 ▲1970­현재 한국건축가협회 명예이사·대한건축학회 이사 ▲1974­75년 유한양행 촉탁 ▲1975년 잠실주거단지 현상설계 1등 당선,건설부건축 전문위원 ▲1976년 한국은행본점 현상설계 1등 당선 ▲1977년 미 남가주대 연구교환 교수 ▲1980년 인천 직할시 문화재 위원 ▲1980∼86년 (주)럭키개발건축 자문위원 ▲1980∼93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1982∼88년 공업진흥청 표준심의위원 ▲1983년­(주)간삼건축설립 ▲1984년 국제방송센터(IBC)현상설계응모 우수작 수상 ▲1989­현재 포항제철사옥(서울경영정보센터) 설계대표 서울대학생회관(72년)럭키여천사택단지(74년) 유한양행 안양공장(75년) 한국은행강릉지점·인하대체육관 학생회관 공학관(78년) 금성사평택공단 중앙연구소(84년) 경동산업본사·포항공대·망향휴계소(85년) (주)영풍서린지구재개발(86년) 동숭아트센터·국회의장공관·한국은행창원지점·경암빌딩(89년) 코오롱그룹신사옥·미도파백화점상계점·포항제철 서울경영정보센터(포스코빌딩)(91년) 엄덕문건축상(94년) 한국건축문화대상(95) 서울특별시건축상금상(96)
  • 독재 무너뜨린,「피플혁명」 지도자/라모스 대통령은 누구인가

    ◎ 한국전에 참전한 유일한 외국 원수 지난 86년 마르코스의 20년독재를 무너뜨린 필리핀의 피플혁명을 주도한 인물.당시 군 참모총장으로서 집안 친척인 마르코스 당시 대통령에 맞서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이후 집권한 아키노 대통령을 도와 마르코스 독재가 남긴 각종 부패청산을 위해 과감한 개혁을 주도했다.아키노 정부하에서 국방장관을 지내며 6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쿠데타기도를 막아냈다.지난 92년 6월30일 아키노의 후계자로 임기 6년의 단임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취임이래 평화와 안정,경제성장과 지속적인 발전,에너지 및 전력개발,환경보호,효율적인 관료제정착 등 5개항의 국정목표를 세워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해오고 있다.특히 정정불안의 가장 큰 위험요인인 회교무장저항세력(MNLF)과 공산게릴라를 합법화하는 등 화해정책을 펴서 안정의 발판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28년 3월18일 팡가시난지방의 링가엔시에서 출생.부친 나르시스 라모스는 신문기자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외무장관을 역임한 필리핀정계의 거물.라모스 대통령은 국비장학생으로 미육사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으며 임관직후인 52년 소대장으로 한국전에 참전해 그해 4월23일 율동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외국 국가원수로는 유일하게 한국전에 참전한 경력의 소유자가 됐다.이후 마르코스 정권하에서 승승장구,경찰총장과 86년 피플혁명 당시 참모총장서리에까지 올랐다. 이후 피플혁명에 가담해 마르코스 퇴진의 선봉에 섬으로써 인생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대통령 취임이후 정치적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회생의 발판을 마련해 국민으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내조하는 스타일인 부인 아멜리타 명 마르티네스여사와의 슬하에 딸 5명을 두고 있다.대단한 골프광으로 핸디 24.
  • “「칸수」 교수는 간첩” 동료들 경악

    ◎철저한 위장에 학생·이웃도 충격/아내조차 “필리핀인으로 알았다”/소속대학 포섭당한이 없자 안도/거침없이 활보… “안일한 반공의식에 경종” 단국대 사학과의 「무하마드 칸수」 교수가 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한 북한의 남파간첩 정수일로 밝혀지자 대다수 시민들은 북한의 치밀한 대남공작 수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대학의 동료교수 및 학생들과 이웃 주민들은 『정말이냐』고 되묻는 등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검찰 송치◁ ○…정은 이날 하오 1시쯤 서울지검에서 서울의 부인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북한에 있는 아내는 대남활동을 하고 있다는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 있겠지만 남한의 집사람은 내가 필리핀인으로 알고 있으며 간첩활동 사실은 모른다』라고 말했다. 또 남한에서 주로 누구와 접촉했느냐는 질문에 『동료 교수 등 학계인사였다.정치인·언론계 인사들과는 별다른 접촉이 없었다』고 밝혔다.재야운동권과도 별로 접촉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령은 무전으로 받았고 84년 이후 모두 60여차례에 걸쳐 보고했다고 말했다. ▷정의 자택◁ ○…정이 부인(45)과 함께 92년부터 살아온 서울 광진구 자양3동 우성아파트 주민들은 『정말 간디교수가 간첩이냐』며 놀라워했다.주민들은 정을 「간디교수」라고 불렀다. 아파트 경비원은 『콧수염을 길러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국말을 너무 잘해 약간 이상했다』며 『1년에 한번 꼴로 40대 후반에서 50대초반의 남자 2명이 찾아오곤 했다』고 전했다. ▷단국대◁ ○…「칸수」교수가 구속된 뒤 조사위원회를 열어 교수와 학생 가운데 포섭을 당한 사람이 있는지를 조사했으나 교내에서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안기부의 발표에서도 이와 관련해 별다른 내용이 없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장◁ ○…수사결과를 발표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은 발표 30분 전부터 수십명의 내외신 기자들로 붐볐다. 발표회 도중 정을 체포할 당시의 상황과 신문과정을 담은 비디오가 10여분 동안 방영됐다.정은 여기서 자신의 신분 및 남파경로와 목적 등을 또렷하게 대답했다.특히 북한 무용수 출신의 귀순자 신영희씨가 정의 처로 북한 모란봉극단의 안무지도자인 박광숙을 안다고 진술하는 장면도 담겨 있었다. ▷각계 반응◁ ○…안동일 변호사는 『경악스러운 일로 사회일각에 북의 적화통일 기조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일깨워 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최병헌 교수는 『칸수교수가 어느정도의 학문적 위치를 확보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사회 일각에선 교수사회에 간첩이 침투했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토록 허약하지는 않다』고 강조했다.〈김경운·박준석·이지운 기자〉
  • 김 대통령 국군모범용사 접견 이모저모

    ◎“하사관은 군의 허리” 강조/김 대통령­「6·25」 참상 기억 못하는 사람 많다/우리군 막강… 북 어떠 도발도 격퇴/장명자 상사 “다시 태어나도 여군 지원” 김영삼 대통령은 28일 하오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군 모범용사 62명을 초청,격려하는 자리에서 『하사관은 군의 허리』라면서 국토방위에서 하사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이날 다과회에는 대통령 부인 손명순여사도 자리를 함께 했다.이날 초대된 모범용사는 서울신문사가 주관하는 「국군모범용사 초대」행사에 참가중인 군인들이다.대부분 군대생활을 30년 가까이 한 원사,상사 등 고참 하사관들이다. 김대통령은 『학생시절 축구를 할때 중간 허리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었다』면서 『여러분들이 장교와 일반사병 사이에서 중간역할을 잘할 때 군 전체의 사기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하사관 중에서도 원사들은 오랫동안 한 부대에서 생활한 분도 있으며 군대에서 부모노릇,형님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에 취임한뒤 하사관들의 처우를 어떻게 하면 나아지게 할지를 많이 생각하고 또 실천해왔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46년전 한국전쟁이라는 불행을 겪었을때 부산과 대구,마산을 빼고는 북괴군에 의해 점령되어 조금만 더 갔다면 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서 『그런데도 그런 처참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김대통령은 「힘있는 자만이 평화를 가질수 있다」는 말을 거듭 강조하면서 『북한이 입으로는 큰 소리를 치지만 우리의 막강한 국군과 월등한 장비는 어떤 도발도 물리칠 만큼 강력하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당부말씀에 앞서 참석자 몇명과 환담했다.주로 근무여건·애로사항등을 질문했다.이규준 원사(육군)·정윤수 원사(해군)등은 『전용아파트 및 독신자·자녀 기숙사 건립,학자금 보장,부부동반 해외시찰 등 하사관대우가 월등히 나아져 사기가 충천하며 아무 걱정없이 교육훈련,부대관리에 전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여군인 장명자상사는 『다시 태어나도 여군하사관을 지원할 것』이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김대통령은 부인까지 포함,1백28명의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했다.촬영 도중 『어려운 가운데 모범용사들의 힘이 되어주고 있는 부인 여러분들의 내조에 감사한다』고 인사했다.다과회에는 행사를 주관한 서울신문사 손주환 사장,이양호 국방장관,김동진 합참의장이 배석했다.〈이목희 기자〉
  • 서울신문사 초청/모범용사 아내는 말한다

    ◎“30년 「전방 내조」 고충 말끔히 씻었어요”/오붓한 여행 한번 못했었는데… 부부금실 확인/가는곳마다 환대 흐뭇… 가족단위 행사 됐으면 서울신문사가 초청한 국군 모범용사 62명과 부인 60명은 지방을 여행하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모범용사 부인들은 남편과 함께 보내는 오랜만의 시간이 흐뭇하고 각 지역의 음식맛을 보고 지역특산품도 선물받은게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육군 2사단 이문부 원사의 부인 김복이씨(43·강원도 양구)는 『결혼 25년동안 남편과 단 한번도 오붓한 여행을 하지 못했다』며 『깊은 산골에 묻혀온 탓에 도시의 색다른 모습에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광주에는 처음 왔지만 인정이 넘쳐 마치 여러번 온 것 같다』는 김씨는 민속박물관에 전시된 남종화와 농경문화를 상징하는 각종 소품들에 신기해 했다. 육군 7사단 이규준 원사의 부인인 엄영자씨(45·강원도 화천군)도 남편과의 여행은 처음이다. 『30여년째 전방부근에 살아온 고충을 이번에 말끔히 씻었다』는 엄씨는 『지난 72년 남편이 월남에파병됐을때 갓 돌이 지난 딸을 안고 무던히도 울었는데 이제 그 딸이 25살이 됐다』며 남편의 손을 꼭잡고 『가는 곳 마다 환대해 준 광주시민들과 서울신문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고 서울신문이 마련한 이번 행사가 전 가족단위로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초청된 모범용사들의 부인들의 사정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모두 어렵게 살아왔고 이사 횟수만도 20번 이상이 대부분이다. 각군에서 선발된 모범용사 부부와 며칠 지내다 보니 금방 친구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고 여러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두루 보고나니 고생하는 남편한테 보다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됐다고 입을 모았다. 백령도에서 온 함정이씨(51)는 『지난 68년 결혼후 30여년만의 첫 여행』이라며 『당시에는 신혼여행을 못가는 부부가 많았다』고 말했다.함씨는 『남편은 열악한 조건에서 35년동안 하사관으로 근무하면서도 불평불만 한번 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그녀는 또 『보통 6개월동안 훈련에 참가한뒤 파김치가 돼 귀가하는 남편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이분들의 수고가 오늘의 국가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하면 자랑스럽다.짧은 기간이지만 이번 여행은 우리 부부의 금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장미정 중사(30·여·3군사령부 근무)는 『선배 동료들과 전국의 명소와 산업현장을 둘러볼 기회라서 기쁘고 광주는 조용하고 아늑한 도시이며 어디를 가나 김치맛이 으뜸』이라고 말했다.그녀는 결혼하여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긴다면 선배들처럼 부부동반으로 오고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들은 26일 광주를 방문,송언종 광주시장이 베푼 오찬에 참석한뒤 시립광주박물관과 광주연초제조창·광주 OB 맥주공장등 산업현장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날 오찬에는 안재호 광주시 정무부시장을 비롯 김원본 광주시부교육감·이선희 제1전투비행단장등 민·관·군 주요 인사가 참석했다. 이들 모범용사와 배우자는 이날 하오 7시30분 허경만 전남지사가 베푼 만찬에도 참석했다. 이들은 광주에서 1박한뒤 27일 전남 광양을 거쳐 부산으로 출발한다.〈광주=최치봉 기자〉
  • 여 중진들 서 총무 격려 잇따라

    ◎김윤환·이한동 의원 등 수시로 전화/개원협상 전략·각종 아이디어 제공 신한국당 서청원 원내총무가 15대 국회개원을 위한 여야 협상과정에서 당내 중진들로부터 「내조」를 톡톡히 받고 있다. 이들은 잦은 전화통화로 효율적인 협상전략을 조언하고 국회공전에 따른 초선의원들의 활용방안을 제안하기도 한다.원구성 차질로 낙심한 서총무에게는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서총무는 긴장감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표정이다. 원내총무를 경험한 김윤환 이한동 최형우 서정화의원,대통령 정치특보를 지낸 박관용의원 등은 수시로 격려전화를 걸어 야당 설득을 위한 「묘책」을 의논한다.본회의가 열리는 날에는 귀엣말을 나누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이런 과정에서 원내 차연장자인 김명윤의원 대신 세번째 연장자인 민주당 이중재의원을 의장직무대행으로 나서도록 하는 방안도 제기됐다는 후문이다. 같은 언론사 출신 선배인 최병렬의원도 「아이디어」를 제공했다.20일 경기 광주,21일 시화공단으로 이어진 초선의원들의 현장답사가 그것이다. 민생견학은 최의원의 건의를 서총무가 고위당직자회의에 보고해 이뤄졌다.국회는 겉돌지만 여론 수렴을 위한 초선의원들의 활동까지 멈출 수는 없다는 취지다. 중진들의 지원속에 서총무의 부인도 초선의원 아내들과 오찬을 나누며 당내 결속에 한몫하고 있다.19일과 20일에는 각각 서울지역과 부산·경남지역 의원 20명의 부인들을 대접했다.다음주에도 계속 일정이 잡혀 있다. 서총무는 『계파에 관계없이 당의 단합을 위해 중진들이 보내준 격려와 지지에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라고 기꺼워 했다.〈박찬구 기자〉
  • 대부분 정치관여 않는 내조형/러시아 대선후보 부인 성향

    ◎옐친 부인­조금씩 변신… 언론인터뷰땐 남편 자랑/주가노프 부인­엔지니어 근무… 선거캠페인도 안나서/고르비 부인­선거비 마련위해 고급드레스도 팔아 러시아의 예비 퍼스트레이디는 어떤 사람들일까.전통적으로 러시아지도자들의 아내는 가정적이다.또 정치인 남편과 자식을 돌보는데 일생을 헌신하는 현모양처형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같은 전통탓인지 대선후보 10명의 부인들 대부분은 이번 선거운동기간중에도 정치에의 간여나 대중앞에 나서는 일에는 될수록 삼간채 내조에만 열성을 보여온 글자 그대로의 내조자들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옐친의 부인인 나이나여사다.대통령실관계자들은 옐친대통령의 재임기간동안 한번도 정치에 관해 옐친대통령에게 「충고」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그러나 재임 5년이 지나면서 그녀도 조금씩 변신하고 있다.모임에서 양장을 말쑥하게 빼입고 공산주의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언론인터뷰에서는 남편자랑을 곧잘 늘어놓을 정도로 말수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옐친후보의 최대경쟁자인 주가노프의 부인은 나이나여사보다 더 보수적이며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일체 간섭하지 않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한 대변인은 『심지어 남편의 선거캠페인에도 나서려 들지 않을 정도』라고 말한다.이는 「선거용」이 아니라 부인 나제즈다여사 자신의 바람이며 주가노프일가 가족회의에서도 「가족이 일체 정치에 간여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고 대변인은 귀띔한다.그녀는 화학공장의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전통적 러시아 퍼스트레이디상을 인정하면서도 서구적 퍼스트레이디 감각을 갖췄다는 사람이 고르비의 부인 라이사여사다.그러나 남편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입던 고급 드레스까지 내놓는 조용한 내조자로 변신하고 있다.고르비의 선거비용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태세다.선거캠페인에는 여느 후보부인처럼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정치문제간여도 「NO」.레베드후보의 부인 이나여사도 남편의 지방캠페인에 가끔 동행하는 정도이며 말 수도 극히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 지도자부인상이 붕괴되는 조짐도 있다.자민당당수 지리노프스키후보부인,백만장자 사업가인 블라디미르 브린찰로프후보(50)부인이 그 주인공.갈리나 지리노프스키부인,나탈리아 브린찰로프후보부인등은 남편에게 대중적 지지를 안겨주기 위해 늘 조언을 하는 이들이다.하지만 이들도 정치문제만큼은 남편에 전적으로 맡긴다.화학자인 그녀는 캠페인기간동안에도 대부분을 실험실에서 보내는 「조용한」 아내다.나탈리아 여사는 남편을 따라 자주 대중앞에 모습을 나타내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남편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연구에 바친다.물론 「정치간여는 금물」이라고 본인도 생각한다.〈모스크바=류민 특파원〉
  • 김 대통령,교정대상 수상자 격려

    ◎“박봉에도 내조 잘했다” 수상자 부인 치하/두차례 건배 제의… 희생적 근무자세 칭찬/“「범죄없는 사회 건설」 자부심 갖고 노력을” 김영삼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서울신문과 한국방송공사가 공동주최하는 제14회 교정대상 수상자들에게 다과를 베풀고 희생적인 헌신을 치하했다. 김대통령은 『범죄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범죄가 국제화·지능화되고 있다』면서 『범죄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중인 여러분들이 더욱 분발할때 범죄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김대통령은 『지난해 유엔 정상회의와 올해초 방콕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도 범죄를 없애는 국제공조방안이 심도있게 협의됐었다』고 소개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언론의 범죄보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김대통령은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많은데 우리 언론은 범죄사실만 너무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우리보다 범죄가 훨씬 많은 미국·일본이 우리처럼 범죄보도를 한다면 24시간 내내 보도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다과회에 참석한 교정대상 수상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소감 및 애로사항을 자상하게 물었다. 대상을 받은 라성준씨(43·안양교도소 교사)는 『교도소에서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받은 재소자가 사회에 나가 새로운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볼때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이에 김대통령은 『자부심을 느낀다니 정말 자랑스럽다』고 치하하고 『더욱 용기를 갖고 우리 사회에서 범죄가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또 자비상을 받은 윤점렬씨(48·대한불교 조계종 삼보사주지)가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마음으로 교화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면려상을 수상한 민건철씨(56·홍성교도소 교위)의 부인 거옥희씨(53)에게 『박봉으로 고생하면서 내조를 잘했다』고 치하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두차례나 건배를 하면서 수상자를 격려했고 본관앞에서 기념촬영도 같이 했다.특히 교정대상을 주관한 서울신문 손주환사장과 한국방송공사 홍두표사장에게 감사를 표시했다.〈이목희 기자〉
  • 인천공항여객터미널/어제 기공식… 어떻게 짓나

    ◎최첨단 인텔리전트빌딩으로/자동화·고객편의시설 대폭 확충/실내조경 어울리는 수목도 심어 23일 기공식을 갖고 본격 공사에 들어간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은 20세기 건축공학 기술을 결집시킨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건설된다. 여객터미널 안에는 각종 고객편의시설과 최첨단 자동화시설이 들어서고 실내 조경도 어울리는 수목을 그대로 옮겨 심어 자연 모습을 최대한 반영,공항을 드나드는 국내외 승객들의 아늑한 휴식처로서도 손색 없게 지어진다. 여객터미널은 국내의 BHJW(범·희원·정림·원도시건축) 컨소시엄과 미국 뉴덴버공항 여객터미널(콜로라도주)을 설계한 미국 펜트리스 및 맥클리어사가 공동으로 설계해 지난 92년 국제현상설계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받았다. 이 터미널의 설계에는 자연환경과의 조화,전통문화의 계승발전,구조미,여객의 편의성,운영의 효율성 등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것이 특징이다.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위해서는 인천 앞바다의 파도치는 유연한 곡선미를 터미널 지붕과 탑승동에 담았고 선박의 돛대 모양을세로 직선으로 세워 해상공항으로서의 힘찬 이미지를 살렸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차원에서는 전통궁궐 성문의 이미지를 형상화 했으며 고유 전통문양을 건물 마감재에 새겨 첨단 기술과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첫 인상이 깊도록 신경을 썼다. 또 24시간 운영 가능한 지역중추공항으로서 이용객에게 편리하도록 편의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국제수준의 서비스와 원활한 여객처리시설,철도·버스 등 대중교통의 편리한 접근시설 등이 다양하게 설계에 반영됐다. 이날 기공식을 가진 제1 여객터미널을 중심으로 인천국제공항의 주요시설과 기능을 소개한다. ◇규모 및 구조=제1 터미널은 길이 1천59m,너비 1백49m,높이 33m,지하1층,지상 4층 규모로 연건평 10만8천평이다.여객터미널은 최종단계가 완성되면 제1터미널과 제2터미널,4개의 탑승동으로 구성되며 총면적은 33만6천평이 된다. ◇여객처리능력=제1 터미널은 2백56개의 체크카운터(김포공항은 1백61개)에서 시간당 6천4백명의 여객을 처리할 수 있다.국제선 41개,국내선 3개 등총 44개의 탑승구와 18개의 주기장을 갖추며 탑승구는 신속한 여객처리를 위해 승객들이 1층과 2층에서 동시에 내릴 수 있도록 2층 구조로 설치된다.최종단계가 완성되면 탑승구는 모두 1백53개로 늘어나며 연간 1억명의 여객을 처리할 수 있다. ◇수하물처리시스템=공항의 서비스 수준을 가늠하는 핵심시설로 1단계에서는 중앙집중식 자동분류방식인 TTSS(TILT TRAY SORTING SYSTEM)를 채택,출발 및 도착수하물은 15분 이내에,환승수하물은 10분 이내에 처리된다.이는 현재 주요 공항의 수하물 처리시간의 절반수준이다. ◇여객터미널 전면도로 교통=배후 지원단지 인터체인지부터 공항전용철도는 지하노선을 통해,전용고속도로는 18차선으로 확대돼 터미널에 접근한다. ◇무인자동열차(IAT)=3∼5량으로 편성,터미널과 탑승동을 연결하는 열차로 1백8초 간격으로 운행되며 가장 멀리 떨어진 역까지 8분이 걸린다.시간당 동일방향으로 1만4천명의 여객을 수송할 수 있다. ◇자동여객수송시스템(PMS)=IAT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여객터미널과 남쪽의 국제업무지역을연결하며 1백7초 간격으로 운항되고 시간당 수송능력은 1만명이다. ◇복합교통센터=제1여객터미널과 제2여객터미널 사이에 위치,공항내 교통관련시설을 종합관리한다. ◇편의시설=지하 1층에는 은행·환전소·슈퍼마켓·극장·헬스센터 등이 들어서며 지상 1층에는 식당·커피숍·스넥바·뉴스스탠드·선물점·약국·화훼점·서점·여행안내소·은행·환전소·렌터카카운터·수하물택배서비스센터·전시장·단기물품보관소 등이 설치된다.또 지상 2층에는 환승라운지·커피숍·스넥바·선물점이 들어서고 3층에는 식당·커피숍·스넥바·뉴스스탠드·선물점·백화점·은행(환전소)·보험카운터·우체국·유아놀이실·면세점·미용소·샤워실·오디오/비디오 감상실 등이 들어선다.4층에는 전망대·주식당·커피숍·고객라운지 등이 배치된다.〈육철수 기자〉
  • JP 대구 신명여고서 1일 교사

    ◎부인 박영옥 여사의 모교… 「세계 여성지도자」 특강/“청춘이란 마음상태가 기준”… 세대교체 거부감 표시 JP(김종필 자민련총재)가 대구 신명여고에서 1일교사로 강단에 섰다.지난 65년과 67년에도 도서관과 체육관 준공에 참여하기 위해 섰다. 이번 방문은 한국교총 초청으로 이뤄졌다.스승의 날을 계기로 「1일교사」를 의뢰하자 JP가 서울·청주·대구지역을 지목했고 교총이 다시 10개 학교를 추천,이 가운데 부인 박영옥여사의 모교인 신명여고를 택했다. JP는 특강에서 인디라 간디와 마거릿 대처,코라손 아키노등 세계 여성 지도자들의 성장과정을 들려줬다.영국 빅토리아여왕 시대 디즈레일리 수상의 부인과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부인의 예를 들며 「내조」도 강조했다. 그러나 핵심은 말미에 있었다.JP는 『세대교체는 나이만 갖고 하는 것은 아니다』고 최근 거론되고 있는 「양김 퇴진론」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또 미국 새무얼 울멘의 말을 인용,『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며 『나이가 칠십이든 육십이든 신념과 용기등을 잃지 않으면 젊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스라엘의 여성 정치인인 골다 메이어가 76세까지 수상직을 맡았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대권에의 도전의사를 간접적으로 피력했다.결국 1일교사는 외형적인 방문이유이고 실제는 김복동 수석부총재의 「양김퇴진론」과 박철언 부총재의 「야권단일후보론」에 맞서 TK(대구·경북)의 불만을 잠재우고 대권구도를 탄탄히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날 저녁 TK지역의 당선자대회도 이같은 연장선에서이다.그러나 외유중인 김수석과 박부총재를 비롯,박준규 최고고문이 개인사정으로 불참,TK의 「다독거리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백문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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