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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자·동지·참모로 완벽 내조/한인옥 여사의 ‘경선’한달

    ◎이 후보 강직성 온화함으로 희석/“정도” 부창부수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 여사(59)에게 지난 한달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숨가쁜 시간이었다. 한여사는 분단위로 짜인 스케줄에 따라 전국을 돌며 대의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고 각계 각층의 여성들과 만나 여론에 귀를 기울였다.“한번 찾아와 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유명세를 실감하기도 했다.틈틈이 이후보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반려자이면서 동지,참모로서 ‘1인3역’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한여사는 특히 합동연설회장에 매번 참석,대의원들에게 악수를 청했고 연설회가 없을 때는 하순봉 비서실장 부인 등과 함께 시도별로 이동하며 이후보가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며 ‘쑥스러운’ 유세전을 펼쳤다. 한여사의 지원 행보가 이후보에게는 큰 힘이 됐다는게 주변의 평가다.이후보의 다소 강직한 이미지가 한여사의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로 상당부분 희석됐다는 것이다. 캠프내에서도 “정치초년생인 남편보다 낫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돌 정도였다.한여사는 이후보가 본격 대권레이스를 펼친 직후 구기동 자택을 찾은 기자와 만나 심경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그는 “무엇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 남편이나 저의 이심전심입니다.정도를 걷고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뿐입니다”라며 옹골찬 속내를 드러냈다.
  • 국회의원 부인(외언내언)

    참으로 눈치없다고 해야 할지 무신경하다 해야 할는지 모르겠다.정국이 4개월여나 수렁속을 헤매고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속에 경제가 곤두박질 치고 있는 시점에 여야 「국회의원 사모님」들이 46명씩이나 떼를 져 일본나들이에 나서는 이런 계획을 세우고 집행한 국회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제정신인지 궁금하다. 더욱이 한보 돈을 받아 검찰조사를 받은 의원부인도 포함된 이들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부인 방일단」일행은 삼부요인이나 사용케 돼있는 김포공항 귀빈실을 이용하고 일부는 면세점에서 수백달러짜리 핸드백 화장품 옷가지 등을 쇼핑해 빈축을 사고있다.일본 의원 부인들의 지난 4월 방한에 대한 답방이라지만 도쿄 오사카 관광일정이 대부분인 일본나들이를 이 어지러운 시점에 꼭 했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국회의원을 내조하는 부인이 이웃나라에 대한 식견을 넓히는 일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서민들의 해외관광이 보통일이 된지도 오래다.또 몇해전에는 부부동반으로 캐나다 여행을 한 J당 소속 한 중진의원이 10만달러나 하는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부인에게 사줬다는 소문이 현지 교민 입방아에 올랐던 일도 있었다.거기에 비하면 자비로 며칠 일본 구경을 하고 국내 면세점에서 우리돈 1백만원 남짓한 쇼핑을 한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국회의원,사회 지도층의 정신자세다.온통 비리투성이로 지목받고 있는 정치권,그렇잖아도 곱지못한 시선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부인들의 집단외유가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되짚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는 지도층이라면 나라가 어려운때 비록 일반국민이라면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삼가는 신중한 처신을 해야 옳다.나라를 걱정하고 어려움을 푸는데 도움되는 거친 일에 다투어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사회 지도층의 의무라면 지나친 주문일까.우리 지도층 어데서도 그런 솔선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우리 위기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 음식낭비는 죄악이다/김주영 작가(서울광장)

    북한주민들의 생활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나 혹은 그 실상을 있는 그대로 믿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식당에선 울분조차 느껴져 오래 앉아 견디질 못한다.중국의 연길시내 언덕배기에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한 김진경 박사는 서울로 돌아와선 좀처럼 식당 출입을 하지 않는다.그는 재미동포의 신분이었으므로 북한지역을 여러번 여행한 바 있다.아마도 그분만큼 북한주민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고 목격한 사람도 흔치않을 것이다. 나는 소설 ‘야정’을 집필할 당시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대를 답사하기 위해 여러번 연길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었다.연길시 당국에서 직영하고 있는 옌지빈관(연길빈관)에 도착하면 그때 한창 대학의 기초공사에 바빴던 김진경 박사를 만날수 있었다.그러나 나는 그분이 목격했다는 북한주민들의 참혹한 생활상을 대체로 믿지 않았다.북한주민들이 겪고 있는 척박하고 참혹한 생활상들 대부분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실상을 내게 토로하고 있는 그분의 내심에 어떤 다른 의도가 숨어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까지 품게 되었다. ○처참한 북녘생활 충격 내가 그분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기 시작한 것은 내 자신이 두만강 상하류 전체와 압록강 중류 접경지대를 꼼꼼하게 답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까마귀떼만 날아다니던 을씨년스런 집단농장의 풍경.비쩍 마른 소가 끌고가는 찌든 빈수레.강가언덕에 나와앉아 중국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사람들의 공허한 눈길.세탁도 하지 않으면서 빨래터에 나와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마냥 앉아만 있던 젊은 아낙네의 무언가 호소하는 듯한 그 처연한 눈길.저녁밥 지을 때가 되었는데도 굴뚝에 연기나는 집이 없었던 무산광산촌 일대의 그 스산했던 해질녘 풍경. 그리고 비내리던 날 오후,담배 한갑을 건네받기 위해 그 육중한 뗏목배를 중국쪽 강가로 잇대이던 압록강 뱃사공의 그 남루한 입성.그리고 담배갑을 건네받고도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 건넬줄 모르는 그들의 억눌린 채로 굳어버린 침묵.강가로 삽을 씻으러 나온 농부들의 입성은 살아계셨을때의 성철스님의 누더기옷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여름날 강가에 가면 으레벌이게 되어있는 먹고 마시는 우리들의 야유회 풍경을,수년에 걸쳐 8번이나 계속되었던 북한 접경지대의 답사에선 단 한번이라도 목격한 적이 없었다. 그 이후,나는 부득이한 경우외에는 고급식당 출입을 삼가기로 했다.그리고 많은 반찬이 나오는 식당출입도 자제하고 있다.나라의 경제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흥청망청에 반성이 없어 보인다.식당에서는 여전히 많은 음식들이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고 있다.가진 통계숫자는 없지만 우리가 남기고 있는 하루의 음식을 모두 합친다면 북한주민인구 반쯤의 한끼 식사를 보태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이 몰염치한 낭비는 계면쩍음이나 도덕적 판가름의 개념을 넘어 죄악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흔히 말하듯,우리의 염원은 통일이다.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어째서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로 가지 않고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달려오고 있을까? 말이 통하기 때문일까? 아니다.남한이 내나라 내조국이라는 생각 때문이다.떠올리기조차 두려운 일이지만,우리가 만약 지금의 북한처럼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공산독재체제 아래에서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원시적 자유조차 차단당하고 참혹하게 굶주리고 있을때,몽매에도 가고 싶은 땅이 어딘가를 생각해보자.틀림없이 자유와 풍요를 보장받을수 있는 내조국 어느 땅일 것이다. ○굶주리는 동포 생각을 우리는 자유와 풍요를 보장받기 위해 6·25라는 동족상쟁의 피흘림을 경험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족적으로는 반쪽의 수확이었고 승리였다.반쪽의 수확은 반쪽의 부채를 의미한다.아직도 우리의 반쪽은 억압과 굶주림의 터널속에 갇혀있다.그런 부채를 가진 우리가 가져야할 몸가짐은 구태여 가르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그로써 우리에게 염원이 있다면 그 염원을 성사시킬 실천도 뒤따라야 한다.별일 아닌 것 같지만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음식이나마 아껴먹을줄 알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그 염원을 앞당겨 이루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생각할 시간이다.
  • 판소리 고수 정화영(이세기의 인물탐구:128)

    ◎구전심수로 익힌 북가락의 명인/“북채만 잡으면 신명” 타고난 「끼」로 연마적공/현란한 장단으로 판소리 애로희락 다스려 창자가 무대에 나와 절을 하고 선창에 들어서기전에 정화영 고수는 벌써 ‘구궁딱’,각을 때리고 손으로 궁편을 치면서 창자의 창을 이끌어내려는 전조를 보인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분명코 봄이로구나’ 이렇게 ‘사철가’가 시작되면 고수의 손놀림은 눈부시게 분주해져서 북채로 매화점이나 소점 대점을 찍고 북의 몸체인 손궁편을 막아치면서 ‘얼쑤’ ‘좋구나’‘좋지’ 입추임새로 박자를 넣기도 한다. 또 창자의 노래가 서름에 복바쳐오를 것을 짐작하여 손으로 궁을 치고 동시에 북채를 굴려서 ‘궁따라딱’ 잔가락치기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전국국악경연서 장원 신명이 솟을때의 번개같은 손놀림은 마파람에 나부끼는 어지러운 갈대인듯 애로희락을 다스리고 흥과 신명을 자재로 고조시킨다. 그런중에도 창자를 능가하기 보다 연주자의 호흡과 음절에 귀를 모아 채편으로 찍고 치고 손으로 밀고 당긴다. 판소리에서북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첫째가 북치는 사람이고 다음이 소리하는 사람’이라는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로 짐작할수 있다. 또 ‘창자는 꽃이고 고수는 나비’라는 말도 있다. 춤장단이나 악기연주도 그렇지만 판소리는 특히나 북장단이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무쌍한 극적인 음악성을 온전하게 살릴수가 없게 된다. 아무리 절세의 명창이라도 고수의 한순간의 실수가 명성을 살리거나 무너뜨릴수도 있다. 그와 오랜 연주파트너인 가야금의 황병기 교수(이대)는 ‘정화영은 구전심수로 소리북을 익혀온 명고수’로써 ‘우리 전통국악계의 마지막 세대’라고 들려준다. 가난과 천대와 따돌림속에서도 오로지 ‘끼’하나로 버텨온 ‘당대 명인’이라 했다. 물론 그는 예맥으로 대를 잇는 다른 국악인들과는 다르다. 경기도 화성에서 ‘예술’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농가에 태어났으나 농악대가 동네에 들어오면 하루종일 집을 나가 어깨춤을 추면서 따라다녔고 냄비바닥을 쇠젓가락으로 두들기다가 어른들에게 들켜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장구든 북이든 북채를 잡기만하면 신바람나는 장단을 만들어내는 ‘타고난 북잡이 기질’이 아닐수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후 서울로 이사하자 학교공부대신 여성국극단에 미쳐 동양극장이나 계림극장 주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영천에 살던 서용석씨에게 대금을 배우면서 ‘김’소리가 날까말까한 정도에서 ‘눈썰미가 있다’면서 스승은 명창 박초월문하에 들여보내 주었다. 그때만해도 악기하는 이가 드믄 편이었다. 그는 박명창의 연습반주를 거들다가 17살되던 해 낭자국악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전국을 떠도는 공연으로 평생소원이던 광대의 길에 들어섰다. 21살때 광주예술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금으로 장원, 새파란 젊은이가 ‘대금을 잘 분다’고 해서 원로들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면서 ‘파릇젓대’란 별명으로 활동했다. 춥고 배고픈 유랑생활에서도 그 무렵에 만난 이정업 신용수씨에게 북과 장구장단을 다시 배웠고 한 공연에서 대금을 불고 춤장단 판소리장단을 치는 일인다역의 존재가 되어갔다. 여성국극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이번엔 옥류장이며 대하 청운각 등 요정을 전전하다가 기약없는 유랑생활을 끝내고 78년 뒤늦게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여기서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고법예능보유자인 김동준씨를 만나 직계후계자가 되었고 ‘국악이 한낱 천대받는 예술이 아닌,우리만의 자랑스러운 고유음악’이란 자부심으로 밤을 낮삼아 연마적공을 쌓아 나갔다. 느리고 완만한 진양조,의연하고 안정된 중모리,긴박감으로 몰아치는 자진모리 휘모리, 10분의 8박이 한 악절을 이루는 엇모리에 이르기까지 원형장단 변형장단을 고루 섭렵하고 창자나 연주자의 몸짓하나에서 일장일단을 읽어내는 귀신같은 섬세함을 익힐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84년 국립극장마당에서 열린 ‘수궁가’완창공연에서 스승인 김동준과 번갈아 장단을 맡았을때 15일간이나 계속되는 장기공연에다 완창 5시간이 그로선 견딜수 없었으나 스승은 한결같이 지치는 빛없이 신명을 올리는 것이 하두 신기하여 “선생님께서는 허구헌날 같은 공연이 지루하지도 않으시냐”고 물은 적이 있다. 스승은 제자의 질문에 얼핏 일별하고는 “그건 시간이지나야만 알게 될걸세”했고 10년이 지난후 가사한마디 음하나하나가 제대로 귀에 잡히기 시작하여 언제부턴가 다섯시간,열 시간공연도 무아경의 열락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게 되었다. 북가락은 일정한 공식이 정해져 있지 않고 고수마다 다르게 칠뿐 아니라 같은 고수라도 그날의 기분따라 그때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소리속을 무르익게 터득하면서 비로소 스승과 같은 훌륭한 인간문화재가 될 것을 목표로 정했으나 두 손과 머리와 발끝까지도 전신이 장단에 실리는 경지를 바라보고 있을때 ‘하늘같은 스승’은 타계하고 말았다.3년의 전수과정중 1년을 채우지 못해 인간문화재는 커녕 전수조교의 자격마저 박탈당한 처지다. 손으로 울림을 막아치기도 하고 북채로 엄지점 임지점을 맺고 찍고 굴려치면서 ‘궁당궁 당구당’,현란한 그의 장단에 실리다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무상한 열반이 깃드는 것을 절로 실감하게 된다. ○「판소리 북연주법」 출간 오죽하면 원로 성경린씨가 ‘그의 북은 장단마다 신기가 붙어 가락이란 가락은 장단에 녹아든다’고 평한다.불우한 방랑생활로 결혼도 사별이나 이별로 실패한 경험이 있고 지금은 약사인 부인 문윤옥씨(52)의 극진한 내조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자녀는 1남2녀. 그는 1년이면 서너차례씩 외국연주,가르치고 주관이 되고 솔선하는 위치에서 ‘북에관한 저서가 전무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판소리 북연주법’을 출간했고 지난 90년에는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제에서 ‘대금산조’ 독주와 오정숙 명인의 ‘심봉사 눈뜨는 장면’의 장단을 맡아 ‘신명이 절로 놀고 생명이 넘치는 북가락’으로 북쪽 관객의 가슴을 녹였다. 그의 장단은 소점이나 매화점을 잔가락치기로 때리거나 손궁과 북채로 합궁 겹궁을 달고 풀다가 일단락을 끝맺을 때의 합박은 ‘궁’소리와 함께 창자의 흥을 서서히 잠재우고 관객의 심장에는 싱싱한 고동을 울려준다. 북을 치면 먼저 북이 알고 ‘북이 소리를 타는 가운데’ 이제 그의 예술은 ‘절대조화’를 뛰어넘어 풍상을 견디는 무극의 경지에서 언젠가 통천하는 시기를 바라보고 있다. □연보 ▲43년 경기도 화성 출생. ▲57년중앙국악예술학원 졸업. ▲60년 박초월 문하 사사후 낭자국악단임단,서용석씨에게 대금사사. ▲78년 국립창극단 입단. ▲78­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김동준판소리고법 사사. ▲78­82년 한국국악협회 고수분과원원장,이사. ▲80년 민속합주단 ‘우리가락 마당’창설 대표. ▲81­84년 ‘우리가락 마당’ 기악발표회 3차례.(세실극장.국립극장,드라마센터). ▲81­현재 국립창극단 ‘박씨전’‘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등 고수 및 대금연주. ▲84년 광주예술제전국국악경연대회장원(대금). ▲84­86년 중앙대 음대 한국음악과 고법강사. ▲85­93년 국립창극단 기악부 악장. ▲85년 ‘춘향전’완창창극(창자 오정숙) 고수(국립극장). ▲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제참가연주. ▲89­93년 단국대 음대 국악과 고법강사. ▲89년 영국 ‘세계민속의 소리’ 심포지움 한국대표. ▲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 한국예술단으로 북한연주(평양 2·8회관) 대금독주 및 오정숙의 ‘심청가’ 고수. ▲90­9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고법김동준전수소 개설운영조교,국립창극단 ‘춘향전’대만연주 고수,미국연주,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주. ▲91년 정화영 판소리고법발표회(국립극장대극장),UN가입 경축사절단미국 카네기홀 공연. ▲93­96년 한국문화통신사 일본 NHK연주 및 핀란드 쿠오모음악제,화란음악제 UN참전용사 기념비 제막식, 네덜란드 전통음악제 등에 안숙선과 동행연주. ▲94­95년 전주대사습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 〈저서〉‘판소리 북연주법’ 〈수상〉KBS국악대상(85년),신라문화제대통령상(대금,87년),국악의해 국악보급 공로상(94년)
  • 블레어 부인 셰리 부스

    ◎공격형 내조 「영국판 힐러리」… 대졸·변호사시험 수석 토니 블레어의 손을 잡고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성하는 영국의 새 퍼스트 레이디 셰리 부스(43).영국판 「힐러리」로 불리며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는데 큰 몫을 해낸 공격형 내조자다.최근 영국 변호사협회지가 선정한 「올해의 법조인」에 뽑힌 현직 변호사. 부모가 모두 배우인 노동자계급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 부모가 이혼,편모와 조부모밑에서 성장했지만 대학 졸업 및 변호사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16세때 노동당에 입당,지난 83년 하원의원에 출마한 경험도 있어 정치경험으로는 블레어의 선배인 셈.연봉이 3억원으로 수입이 남편보다 4배나 많고 남편의 성 「블레어」를 따르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도 강하다.
  • 대책 어디서 찾을까(숨막히는 자금시장:4)

    ◎업계 “직접금융 기회 더 넓혀야”/정부 대기업 해외도입·중기 국내조달 확대 유도/차입의존 관행 탈피 자금수요 원천축소 급선무 지표상으로 시중 자금사정은 괜찮은 편이다.그런데도 막상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금을 끌어쓰기가 쉽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한다.한보·삼미부도사태 이후 금융기관들이 대기업,중소기업 가릴 것없이 대출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등 경직적으로 운용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들이 많다. 강경식 부총리가 최근 제1.2금융권 관계자들과 잇따라 만나 금융기관들의 경직적인 자금운용으로 흑자도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한 것도 이같은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의 자금난 완화를 위한 수단으로 중소기업에 비해 대외 신인도가 상대적으로 좋은 대기업은 해외자금을,중소기업은 국내자금을 많이 활용토록 한다는 방침아래 각종 정책을 추진 중이다.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저리의 자금을 빌려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외화자금의 유입으로 환율안정 등 외환수급의 안정을 기함으로써 국제수지 개선효과도 함께 얻자는 복안이다.대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많이 빌리게 되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국내 금융기관의 자금공급 여력은 높아지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대표적 조치가 대기업 무보증 전환사채에 대한 외국인 투자허용 시기를 당초 98년 말에서 올 상반기로 대폭 앞당긴 것이다.재경원 관계자는 『이미 허용돼 있는 중소기업 무보증 전환사채의 경우 대외 신인도가 떨어져 외국인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으나 대기업은 외국손님이 꽤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97년 중 20억달러로 예정돼 있는 해외주식 비(비)연계 증권의 발행요건을 완화,신용평가 등급(BBB)자체를 아예 폐지키로 한 점이나 해운사들이 선박건조를 위한 국제금융리스 규모를 올해에 32억달러로 늘리고 이를 조기에 도입토록 한는 방안도 같은 맥락에 있다. 재경원은 또 국산기계구입용 상업차관의 연간 도입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대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겠다고 밝히고 있다.당초 계획에는 97년 상·하반기에 10억달러씩 20억달러를 도입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하반기의 경우 신청 규모가 10억달러를 넘더라도 허용해 주겠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의 해외자금 차입규모를 늘리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현재 차입용도(수출 또는 수입)와 차입지역 등에 따라 90∼180일로 차등화돼 있는 중소기업의 외상수입기간을 180일로 단일화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문제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국내에서의 자금조달 숨통을 트이게 해 주는 것이다. 기업 자금담당 관계자들은 회사채 발행을 통한 직접금융 조달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한다.당국이 회사채 발행물량 등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필요할 경우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간여함으로써 부득이 기업어음(CP) 등 금리가 높은 단기자금쪽을 택할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차입에 의존하는 기업의 관행을 고쳐 자금수요를 원천적으로 줄이는 것이 선결과제다.자연스럽게 금리인하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 황 비서의 북경35일/긴장속 하루하루… 집필로 소일

    ◎“배신자 가라” 북 셩명에 “남한도 내조국”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의 북경체류 35일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지난달 12일 북경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망명을 신청한 그는 북한요원들의 공격시도와 좁은 공간에서의 단조로운 생활,한달이상 끈 망명협상 등으로 불안과 초조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황비서가 망명신청을 하자 그의 신변보호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그가 머물렀던 2층방에는 방문마다 방탄철판을 덧붙여 저격가능성에 대비했다.또 영사부 인근 옥상건물에 대한 정밀점검이 이루어졌다.중국공안은 장갑차까지 동원,영사부로 통하는 다섯곳의 골목입구를 완전 차단했다. 올해 74세로 고령인 황비서의 영사부 체류가 길어지자 우리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서울의 의료진을 극비리에 북경에 보내기도 했으나 체류기간중 정상 혈압을 유지,우리측 관계자들을 안심시켰다.식생활도 별 문제가 없었다.그는 평소 습관대로 아침식사는 걸렀으나 점심과 저녁식사는 보통사람의 절반이 안되는 양으로 먹었고 잠은 하루 3∼4시간만 잤다.그의 일과는 매우 단조로웠다.2평남짓한 2층방에서 대사관측이 제공한 운동복을 입고 명상과 집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화장실을 출입하고 3층 샤워장에 갈 때 영사부 직원을 만나면 목례를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그는 그러나 한번 말문을 열면 남을 설득하듯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폈다고 대사관 직원들이 전했다.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성격이 차분하고 꼬장꼬장한 그에 비해 비서관인 김덕홍은 활기와 아이디어가 넘치고 적극적이었다고 전했다. 황비서는 북한외교부가 지난달 『배신자는 갈테면 가라』는 성명을 발표했음을 알려주자 『남한국민도 북한국민과 함께 나의 동포며 남한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나의 조국인데 내가 왜 배신자냐』고 망명의 명분과 정당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 “집필 몰두… 건강 이상없어”/황장엽 비서 망명 한달째

    ◎북 배신자운운에 “남한도 내조국” 강조/식사 일반인 절반·하루 3∼4시간 수면 황장엽 북한노동당 비서가 북경 한국 총영사관으로 망명한지 11일로 한달째가 된다.영사관주변엔 중국공안(경찰)들의 삼엄한 경비가 여전하다.영사관으로 들어서는 도로는 차단선과 경찰차,트럭으로 막혀있고 영사관앞에는 장갑차 3대와 물대포차가 눈에 띈다.매일 1천200명의 중국경찰이 영사관 및 한국대사관 경비에 투입되고 있다는게 주중대사관측 설명이다.황씨는 처음과 다름없이 일반인 절반이하의 식사량으로 적게 먹고(소식),3∼4시간씩만 잠을 자며 많은시간을 글을 쓰면서 보낸다는 것이다.다음은 대사관 관계자와의 일문일답이다. ­황비서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영사관 2층서 생활하는 황장엽은 영사관측이 제공한 운동복차림으로 지낸다.책상물림형 학자라서 그런지 답답함을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거의 운동도 안한다.건강엔 문제가 없다.서울에서 최고권위급 의료진이 와서 그와 비서관 김덕홍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했나. ▲일본에서보도된 김일성과 김정일이 다투다 김일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적 있다.그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지난달 북한외교부의 「배신자는 갈테면 가라」라는 성명이 나왔음을 알려주자 무척 화가 난 표정이었다.『남한 국민도 북한 국민과 함께 나의 동포며 남한도 북과 마찬가지로 내조국』이라며 『내가 왜 배신자냐』며 망명의 명분과 정당성을 강조,당당한 모습이었다. ­북한체제에 대한 이야기는. ▲김정일 일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고 누구도 그에 대해서 충고나 진언을 할 수 없다는 북한권력층 내부의 상황에 절망하고 있는 속내를 여러차례 보여주었다.그는 『북한엔 이렇다할 반체제 인사도 집단도 없다.오직 그에게 충성하려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말했다.그는 김정일이 자신에게 복종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직감적으로 구별하고 판단해 내는데 천부적일 정도로 민감하다고 말했다. 대사관 관계자들은 황비서가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말수가 많지 않지만 말문을 열면 남을 설득하듯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말한다고 전했다.그러나 처음 생각하듯 북한내부 정보와 이야기를 폭로하듯 말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조용하고 담담한 그에 비해 그의 비서관 김덕홍은 활기와 아이디어가 넘치고 적극적인 성격이라면서 황비서의 망명에 김덕홍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시사했다.
  • 북 “올 먹는문제 해결 총력”

    ◎신년사 “모든 투쟁 김정일 영도” 공식승계 시사 북한은 1일 올해가 김일성 사망 3년째가 되는 해라고 강조하면서 새로운 경제정책 제시없이 「먹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역설했다. 북한은 이날 「위대한 당의 영도 따라 내나라·내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건설해 나가자」라는 제목으로 당보·군보·청년보 공동사설을 통해 발표한 신년사에서 『올해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서거한 지 세돌이 되는 해』라면서 97년도 새해에 당과 주민 앞에 나선 과업은 『우리식 사회주의의 총진군을 다그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관련기사 8면〉 신년사는 특히 『혁명위업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는 역사적 투쟁의 진두에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서 계신다』면서 『사회주의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모든 투쟁은 김정일동지에 의해 발전되고 영도되고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은 경제문제와 관련,『경제건설은 우리의 주공전선의 하나』라면서 『경제건설의 중심과업은 자력갱생의 구호 밑에 먹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풀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며 국토건설을 다그쳐 부강조국의 토대를 튼튼히 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연방제통일방안을 거듭 주장하면서 『남한정권은 털끝만한 통일의지도 없으며 이들에게는 기대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북침통일망상 밑에 외세와 함께 동족상쟁의 불집을 터치려고 발광하는 남조선 괴뢰도당의 모험주의책동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위협했다. 북한은 대외문제와 관련,『미국은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압살정책을 버리고 조선반도에서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할 데 대한 우리의 제안에 응해야 한다』고 밝히고 『일본도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걷어치우고 조선의 통일에 방해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97년도 신년사를 1일 상오9시40분부터 약 35분간 평양방송을 통해 보도했다.
  • 여야 OECD비준안 처리 합의 언저리

    ◎“파행땐 직무유기” 한발씩 양보/쟁점 검경중립화·방송법개정안 싸고 한때 “고성”/「제도개선」문제서 분위기 반전… 양보·수정안 수용 여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비준동의안 처리문제에 극적으로 합의했다.지루한 힘겨루기로 일관하던 여야는 19일 이틀째 4자회동을 갖고 26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4자 회동◁ ○…신한국당 서청원,국민회의 박상천,자민련 이정무 총무와 김중위 국회제도개선특위위원장은 이날 하오 4시15분 여의도 관광호텔에서 다시 만나 2시간동안 막판 절충을 벌였다. 회의초반 제도개선특위의 핵심 쟁점인 검·경중립화와 방송법 개정방안을 논의하면서 고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박총무는 『중요한 안건을 빼고 심의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따졌고 서총무는 『그럼 다 논의하자』며 분위기를 잡았다.박총무가 『다 들어준다는 얘기냐』고 공세를 펴자 서총무는 『심의하자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제도개선 문제에 대해 윤곽을 잡은 여야는 이어 OECD 처리로 들어갔다.서총무는 20일 강행처리에서 25일로 양보안을 냈고 야당총무들은 『심의 시간이 촉박하다』며 하루 연기한 26일 수정안으로 낙착됐다. ○…회담후 서총무는 『합의가 안되면 파행이 뻔하기 때문에 여야가 한발씩 양보했다』며 만족스런 표정이었다.야당총무들도 『심의도,대비책도 없는 OECD 비준안 처리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국회의 직무유기라는 각오로 임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표결방식에 대해 서총무는 『기립이나 무기명 투표와 상관없이 처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찬반토론을 거쳐 통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 움직임◁ ○…신한국당은 이날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20일 OECD 비준안 처리방침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서총무에게 협상 전권을 맡기는 양동작전을 구사했다.서총무는 이미 여야간 충돌은 피할 수 있도록 「양보수」를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김수한 국회의장이 OECD 비준동의안을 직권 상정할 경우 실력 저지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표면적으로 고수했다. ○…여야는 4자회동을 앞두고 숨가쁜 막후 접촉을 계속했다.상오 10시 30분 국회의장실에선 김수한 의장과 신한국당 서총무와 국민회의 박총무 등 3자회동을 했다. ◎여 외국 사례 공개/헝가리·멕시코 등 단시일·압도적 가결/“국회 상정” 반대는 시대착오 강력 비난 신한국당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한 논리를 개발중이다.이날 상오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는 외국의 사례를 공개했다.대부분 우리보다 무역수지 규모나 국민총생산액(GNP)이 적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사례가 주종을 이뤘다. 사례는 강삼재 사무총장이 수집했다.그는 먼저 90년대 들어 경제개발에 나선 폴란드의 경우 찬성 356표,반대 14표로 비준동의안을 처리했다고 했다.헝가리도 반대는 전혀 없이 찬성만 279표로,체코도 찬성 117표,반대 4표로 동의안을 가결시켰다는 것이다. 또 OECD 비준을 위한 국내조치에 소요된 시간도 멕시코가 10일만에,헝가리는 한달만에 처리했다고 했다. 강총장은 『우리가 이들 나라 보다 가입을 늦춰야 할 이유가 뭐냐』며 『OECD 가입 비준동의안의 상정마저 반대하는것은 시대착오적이며,정파적 이익에 급급하는 행태』라고 개탄했다.
  • 유엔사,북에 사과 촉구/정전위 접촉/우리측 공비명단 요구

    북한은 19일 주한유엔군사령부와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접촉을 갖고 『강릉 잠수함침투사건은 우발적인 사고이며 사살된 공비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이날 회의에서 북한측의 사과나 유감표명은 없었다. 유엔사는 북한측의 주장에 대해 ▲잠수함 사건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공식적인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유해반환 문제는 남북 당사자간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이날 접촉에 참석한 우리측 관계자는 북한측에 잠수함 승조원과 정찰조,안내조의 명단을 넘겨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92개 업종 2000년까지 투자개방/자유화계획 곧 APEC 제출

    ◎수입선 다변화 99년말 폐지 정부는 오는 25일 필리핀 수비크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무역·투자자유화 실행계획을 제출할 방침이다. 외무부 조원일 외교정책실장은 15일 『수비크 정상회의에서는 지난해 오사카 회의합의사항인 무역·투자자유화 계획에 대한 각국의 실행계획을 제출토록 돼 있다』면서 『정부는 OECD 가입에 따른 광범위한 자유화 조치사항을 중심으로 실행계획을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마련한 자유화 실행계획은 ▲2000년까지 92개 업종에 대한 투자개방과 규제완화 ▲99년말까지 비관세조치분야의 수입선 다변화 조치의 폐지 ▲우루과이라운드(UR) 합의사항보다 1∼2년 앞서 지적재산권 보호 국내조치 시행 등을 골지로 하고 있다.
  • OECD가입 비준 동의안 처리 전망

    ◎여권 이탈없으면 20일 본회의 통과/여­김 대통령 APEC 참석전 처리방침 확고/야­반대의사 거듭 강조… 비준전 공청회 주장 신한국당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비준 동의안을 오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움에 따라 처리결과가 주목된다. 신한국당은 2일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OECD가입 비준안을 23일 김영삼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회(APEC)회의 참석 전에 처리하기로 하고 20일을 처리일로 잡았다.국제협약 체결후 1∼2개월 안에 국내조치를 마무리하는 것이 관례인데다 중요한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김대통령과 우리나라의 위상을 감안해 결정했다는 설명이다.20일은 이달 29일까지 국회 예산심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유일하게 본회의가 예정된 날이다.조기처리방침을 세운 신한국당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다. 문제는 OECD가입 연기를 주장하고 있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태도이다.1일 열린 여야3당 총무회담에서 이들 두 야당은 OECD비준 반대의 뜻을 거듭 밝히고 비준 전에 공청회등을 열 것을 주장했다.새해 예산안 및 제도개선특위활동과도 연계,부수적인 이득을 챙기는 전략도 구상하고 있다. 다만 신한국당이 비준안을 상정한다면 이를 물리력으로 저지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자칫 비난여론을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대신 표결전 찬반토론에서 가입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라 예산안 심의등에 있어서 여야간에 적당한 절충이 이뤄지고 다른 돌발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 OECD비준안은 신한국당의 희망대로 20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공산이 크다.본회의 상정전에 여당과 야당·무소속이 동수로 구성된 국회 통일외무위를 거쳐야 하는 난제가 있으나 과잉저지는 않겠다는 야권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다소의 진통 끝에 통과될 전망이다. 그러나 뜻한대로 비준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더라도 신한국당은 마음을 놓을 처지가 아니다.비준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신한국당 의석이 153석이므로 재적의원 299명 전원이 표결에 참여한다면 최소한 15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4명만 이탈해도 비준안처리는 실패하는 것이다.더구나 극소수이지만 당내에는 OECD가입을 시기상조로 보는 의원도 있다.국민회의가 일반적 표결방식인 기립표결 대신 무기명비밀투표를 요구하는 것도 이들의 이탈을 염두에 둔 것이다.이런 이유로 신한국당은 소속의원들을 꾸준히 단속하고 민주당 및 무소속의원들의 동조를 최대한 이끌어 낸다는 방침이다.의원을 겸하고 있는 4명의 장관도 표결에 투입하는 「비상작전」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 이광수 통해 해명된 공비침투 의문점들

    ◎위장자수 아닐까/허기·갈증심해 탈진상태/「광어회」 암호 아니다/왜 쉽게 잡혔나/산속민가에도 지프·전화/북 거짓에 배신감·갈등/탑승인원 오락가락/정찰조·해상처장·부처장/안전 월북 시간벌기용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31)의 증언으로 그동안 미심쩍던 대목들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점은 이씨가 동료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위장 자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씨는 18일 먹거리를 구하려고 민가에 내려왔다가 경찰에 붙잡혔었다. 이씨는 이에 대해 『잠수함을 타고 침투,수압 때문에 두통과 소화불량을 겪었고 허기와 갈증이 심했다』며 당시 탈진 상태였음을 고백했다.정신적으로도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게 그의 증언.결국 이씨는 「싸우고 죽자」는 안내조장과 조원들의 강요를 뿌리치고 홀로 북으로 향했다.하지만 괘방산 언덕에서 바라본 강릉 시내의 화려한 불빛과 많은 차량은 자기가 지금까지 북에서 들은 것과 너무도 달라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바로 이것이 저항 없이 잡히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두번째 의문은민가에서 자기를 수상히 여기는 눈초리를 느끼고도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았던 점.이씨는 『남한에서 누구든 만나면 사살하라는 훈련을 받아 권총을 장전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미 저항의지는 꺾여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산속 민가 주인이 지프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집집마다 전화가 있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붙잡히고 나서 첫마디가 『광어를 먹고 싶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씨는 북한의 특수 계층인 자기만이 고급 어종인 자연산 광어를 먹을 것이라고 여겨 『못사는 남한 사람이 광어를 모를 것으로 생각했다』고 해명했다.철저한 세뇌교육으로 남한의 사정을 정반대로 알고 있음이 다시 한번 「진실」로 드러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탑승인원을 오락가락한 의문에 대해서도 『중요임무를 띠고 남파된 정찰조 3명과 해상처장·부처장 등 모두 5명의 안전한 월북을 위한 시간벌기 차원』이라고 밝혔다.그가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으면서도 잘 훈련된 공작원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피살된 11명의 행적이 석연치않던 부분도 그의 이같은 설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다시 말해 상황이 꼬이자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서로를 사살했거나 정찰조가 자신들의 침투목적을 숨기기 위해 동료를 살해했다는 것이다.자폭한 공작원의 남은 가족은 영웅대접과 함께 평생 행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김경운 기자〉
  • 이광수가 밝힌 침투명령서 생포까지

    ◎9월13일 정찰국장이 직접 침투명령/충성 맹세뒤 연회… 14일 새벽5시 출항/분계선 5마일전서 해저 60∼70m 잠수/15일밤 강릉앞바다 도착… 정찰조 상륙/17일 악천후속 후진접안 시키다 좌초/안내조 2명과 식량 구하러 일행 이탈/산속 헤매다 심한 허기… 민가접근 피체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씨는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남침투명령하달에서 출항·좌초·도주·생포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소상히 털어놓았다.이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생포까지의 과정이다. 함경남도 낙원(옛 퇴조)항에 기지를 둔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해상처 22전대 2편대 소속 1호 잠수함에 대남침투명령이 하달된 것은 9월13일 저녁.정찰국장 김대식 상장(별셋)이 직접 방문,김동원 해상처장(대좌) 및 부처장(상좌)과 조타수 이씨를 비롯한 승조원 21명 전원(안내조원 2명 포함)등 23명을 모아놓고 비상세포총회(당원모임)를 주재했다. 이들은 『우리는 김정일 최고사령관동지의 적후정찰임무를 피끓는 가슴마다에 받아 안았다.장군님께서 주신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고 살 권리도 없다.장군님의 안녕은 우리의 소원이며 다함 없는 마음을 담아 장군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한다』는 내용의 「충성의 맹세문」을 함께 낭독하고 서명했다. 정찰국장이 마련한 연회를 가진 뒤 이들은 다음날인 14일 상오5시 낙원항을 떠났다.출항전 비밀임무를 띤 정찰조 3명이 합류했다.총탑승인원 26명.이례적으로 정찰국장이 직접 나와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했다. 군사분계선 북방 5마일까지 잠망경을 올리고 전속력으로 남하한 이들은 이쯤부터 수중공기관과 잠망경을 내리고 해저 60∼70m 깊이에서 항진을 계속,군사분계선을 넘어들었다. 항해도중 승조원과 정찰조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었다.대화가 일체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이번 정찰조가 이미 세번정도 남파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눈게 전부였다.밥도 따로 먹고 휴식도 다른 방에서 취했다. 강릉에서 5마일정도 떨어진 지점부터는 잠수함을 부상시켜 잠망경으로 위치를 확인해가며 강릉쪽으로 접근,15일 하오7시쯤 강릉시 안인진리 앞 300∼400m 해상에 도착했다.이어 하오10시쯤 정찰조 3명과 안내조원 2명을 상륙시켰다. 16일 하오8시30분쯤.같은 지점에서 공작원을 잠수함에 태워 귀환시키려 했으나 기상이 좋지 않아 실패했다.계속 복귀를 시도하던 중 17일 하오8시30분쯤 『파도가 세니 해안 가까이 접안하라』는 안내조장의 무전지시가 떨어졌다.잠수함은 후진으로 해안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파도에 휩쓸리면서 좌초했다. 이들은 하오11시50분쯤 잠수함내 주요기물을 불태우고 파괴했다. 이때 공작원 3명이 먼저 해안을 떠나 도주했고 18일 상오 1시30분즘 이씨는 안내조장·조원 등 2명과 함께 『밥을 구해오겠다』며 상륙했다.이씨는 잠수복을 입고 있던 안내조원이 잠수복을 벗어 땅에 묻는 것을 도와준 뒤 함께 괘방산쪽으로 달아났다.잠수함 항해 때 흔히 나타나는 소화불량 등 증세로 밥을 거의 먹지 못한 이씨는 물론 안내조원도 크게 지쳐 있었다.쉬다 가다를 반복하다가 이씨는 「죽을 바에야 북으로 올라가면서 죽자」는 생각으로 지친 안내조원을 떠나 혼자서 활로를 찾기로 하고 이들로부터 이탈했다.산봉우리를 다섯번 넘어 길을 헤매는 과정에서 허기에 지친 이씨는 뭐든지 먹고 보자는 생각에 산자락 아래 강동면 모전리 민가에 내려왔다가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김태균 기자〉
  • 단파무전기 지령 받으며 북행 시도/무장공비­잔당 예상도주로

    ◎칠성산 은거… 오대산∼설악산코스 거칠듯/군,반경 50㎞ 3중포위 칠성산주변 압박 남은 무장 공비 5명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잠수함 함장인 정용구(42·중좌)와 안내원 김윤호(36·대위)가 22일 사살됨으로써 잔당 5명의 행방과 추격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군 수색대는 이들이 비록 특수훈련을 받은 공작원들이긴 하나 강릉 일대 50㎞ 수색 반경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소탕작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주 중인 무장공비는 부함장이자 안내원인 유림(38·소좌)과 전투원 이철진(28·소위)·김영일(30·소위),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20대 정찰조 2명이다. 이들은 혼자 또는 2명씩 짝을 이뤄 강동면 칠성산 일대에 몸을 숨기고 탈출을 시도 중이라는 것이 군 수색대의 판단이다.산세가 험하고 계곡이 깊어 은신처로는 적격이기 때문이다. 22일 교전 지역은 칠성산 정상에서 남서쪽의 왕산면 목계리 계곡과 북동쪽의 강동면 언별리 계곡이다. 목계리 계곡은 오대산과 태백산 줄기로 이어져 산자락을 타면 월북을 시도하기가 쉽다.21일 구정면 어단리에서 이병희중사에게 총을 쏘고 달아난 공비가 22일 목계리에 나타난 공비와 동일 인물이라면 태백산 방향으로 2∼3㎞ 진출했다는 얘기가 된다. 칠성산 북동쪽의 언별리는 해안에서 6㎞ 떨어진 지역이다.해안 지역에서 또다른 잠수함을 타고 탈출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해안의 경계태세로 미루어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비들은 낮에는 비트속에 은신하고,밤에는 이동하며 포위망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특히 지도와 단파무전기를 이용,북한의 지령을 받으며 탈출로를 찾고 있다.군 관계자는 이들이 하루에 2∼5번 가량 지령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오대산·설악산 코스를 타고 월북하려는 것으로 군은 파악하고 있다. 군의 압박·정밀수색에도 불구하고 무장공비를 완전히 소탕하려면 적잖은 시간과 희생이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2일 아군 2명이 전사한 데서 볼수 있듯 도주 중인 잔당들은 대부분 전투에 능한 안내조,침투조로 저항이 강력할 뿐 아니라 AK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이날 사살된 공비 2명이 압축비상식량과 현지에서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옥수수 등 식량도 지닌 것으로 미루어 당초 예상처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민가로 내려올 가능성도 희박하다.군 수색대의 선무방송에도 불구,투항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수색작업의 장기화에 대비,소탕 작전을 새로 마련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군 수색대에는 동계작전 태세에 들어가라는 지시가 하달됐다.소탕 작전 지역의 기온이 한밤에는 영상 3∼4도까지 떨어지는 등 초겨울의 날씨를 보이기 때문이다.
  • 상륙 4일… 금명 소탕 안되면 장기전/무장공비­수색 장기화 될까

    ◎산세 험하고 숲 우겨져 은신 용이/생존능력 탁월… 야생열매도 지천 무장공비 소탕작전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주중인 공비 7명 가운데 2명은 침투공작원,2명은 안내원으로 특수훈련을 받은 정예요원이다.지금까지 진압한 19명 가운데 공작조장을 뺀 나머지 18명과는 달리 생포·사살하기가 수월치 않을 수밖에 없다.나머지 3명은 잠수함 승조원이다. 또 이미 공비가 상륙한 지 4일이나 지나 일망타진의 생명인 조기소탕의 시기를 놓쳤다는 점도 앞으로의 작전성공여부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군은 도주중인 공비 가운데 일부는 강릉일대의 포위망을 이미 벗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관령부근까지 설정한 3중차단선을 내륙쪽으로 더욱 확대하는 등 수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날 상오부터는 생포된 이광수의 육성을 녹음한 선무방송을 실시하는 등 심리전도 병행하고 있다. 군은 현재 달아나고 있는 공비가 한데 몰려다니다 수색대에 포착돼 사살당한 승조원과는 달리 단독,혹은 2명씩 행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극한상황에서도 여러 달을 버텨낼 수 있는 혹독한 생존훈련을 받아 산악행군능력이 탁월하고 사격 및 무술 등 전투력도 상당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활로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소탕이 늦어질 수도 있다고 보는 데는 이들의 생존능력 외에 지형적·계절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이들이 은신하고 있는 강원 산간지역은 산세가 비교적 험하고 깊다.때문에 우거진 숲속에 쉽게 몸을 숨길 수 있는 데다 머루·다래·도토리 등 야생열매가 많이 나는 철이어서 굳이 민가에 내려오지 않고서도 배를 채울 수 있어 이들이 은신하거나 도주하기 좋은 여건이 되고 있다. 이같은 여건에서 이들이 땅을 파 이른바 「비트(비밀아지트)」를 만들어 낮에는 몸을 숨기고 밤에만 산악을 달려 조금씩 북으로 탈출하는 방법을 취할 경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발견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오대산이나 설악산을 통해 북한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을 탈 가능성이 높다.북한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요도(지도)도 지니고 있다. 공비들은 처음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국군복장이 아닌 민간인복장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사살된 공작조장 곁에서 아군복장 2벌이 발견됐기 때문이다.산악이 아닌 일반도로를 이용해 북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 가운데 공작조와 안내조는 이광수의 진술과 달리 잠수함이 좌초하기 훨씬 전에 육상으로 잠입,이미 내륙 깊숙이 침투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군은 지금까지의 사살위주의 작전에서 전환,생포위주의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광수의 진술이 수시로 바뀌고 있는 만큼 적어도 다른 한명을 붙잡아야 남파공비의 수는 물론 침투목적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일의 교전에서 아군 2명에게 총상을 입혀 1명을 숨지게 할 정도로 완강히 저항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생포작전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 무장공비­이 국방 간담내용

    ◎“도주 공비 국군­민간복 번갈아 입어”/월북루트 지도 노획… 퇴로차단 철야탐색/기온낮아 산악도피 한계… 소탕 오늘 고비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21일 북한 무장공비침투와 관련,합참 김동신 작전참모부장·서태석 정보본부장·윤창로 국방부대변인 등이 배석한 가운데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다음은 간담회내용. 북한은 이번 잠수함침투와 관련,아직까지 일체의 반응이 없다.현재 작전지역의 아침 기온은 영상 5도,산악지역은 3도까지 떨어지고 있어 공비들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공비들은 북한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요도(지도)를 소지하고 있다.19일 사살된 공작조장이 카메라와 M16소총,그리고 요도를 소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따라 밤낮으로 탐색및 섬멸전을 전개하고 있으며 심리전도 병행하고 있다.투항을 권유하는 삐라에는 붙잡힌 이광수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그의 육성도 방송하고 있다. 집단피살된 공비 11명 가운데 2명은 승선지도원,9명은 승조원이다.사살된 7명중에는 공작조장이 들어 있다.도주한 7명은 공작원이 2명,안내원이 2명,승조원이 3명이다.사살된 공작조장은 계급과 성명은 알 수 없으나 31세가량으로 보인다. 이광수는 도주한 공작원 2명과 처음 같이 잠수함을 빠져나왔으나 이들이 『동행하겠느냐』고 물었을때 이광수는 『나는 안내조와 동행하겠다』면서 이들과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사살된 조장곁에서는 아군복장 2벌이 발견됐다.따라서 도주한 공비들은 당초예상대로 국군복장이 아닌 민간인복장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오늘(21일)과 내일(22일)이 고비다.장기화되면 문제가 많다.지금은 오징어잡이 성수기인데다 송이버섯 채취적기로 작전지역 주민은 불편이 크다. 이광수의 진술은 처음보다는 안정되고 심경의 변화도 있는 것 같다.그러나 아직 확실히 전향한 것은 아니어서 진술을 1백% 신뢰하기는 어렵다. 공비들은 잠수함의 운항일지와 작전메모·통신장비 등은 다 배안에서 불태운 것 같다. 공비들이 장교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1·21사태 때도 모두 장교였다.특수부대요원인 만큼 대우를 해주지않겠나. 이들은 게릴라다.3명이건 1백20명이건 군사정찰과 요인암살·테러 등을 위해 특수훈련을 받고 침투했으면 게릴라다. 이광수가 타고 온 잠수함이 지난해 10월 남파된 부여간첩 이동식을 제주도에서 내려줬다고 진술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당시에는 반잠수정으로 침투했다.94년에도 동해안지역으로 침투했다는 진술의 경우 이광수는 자신이 소속한 부대에서 남한에 침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만 했다.그 진위여부는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으며 신빙성도 낮다.
  • “도주 공작원 M16·수류탄 중무장”/생포공비 이광수 진술내용

    ◎공작원 3명·안내 2명·승조원 21명/강릉공항·괘방산 안테나 정밀 정찰/“나와 안내원 둘 밥구하려 현장 이탈” 무장공비 이광수는 잠수함에 모두 26명이 타고 있었고 도주한 공작원은 M16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는 또 14일 함남 퇴조항을 출발,15일부터 17일까지 3차례 강릉해안에 침투했으며 공작임무를 마친 정찰조를 대동,복귀하려다 잠수함이 좌초되는 바람에 승선한 전원이 해안으로 상륙해 침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군 관계자가 전한 이의 진술내용을 재구성해본다. ▷침투◁ 14일 상오5시 함경남도 퇴조항에서 잠수함이 출발했다.(퇴조항은 흥남 북쪽의 조그만 항구로 인근에는 이들이 타고 온 「상어급 잠수함」을 건조하는 마양도가 위치해 있다). 15일 하오7∼9시사이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에서 3백∼4백m 떨어진 해상에서 공작원 3명과 안내원 2명 등 5명이 침투했다.이들은 16일 하오8시30분 안인진리 해안에서 접선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7일 같은 시간에 재접선을 시도,공작원 등이 모두 잠수함에 승선했으나 파도가 쳐 하오11시쯤 잠수함이 좌초됐다. 18일 상오1시쯤 공작원과 승무원 모두 탈출을 시도했으며 30분 뒤 공작원이 『우리는 먼저 떠나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행에서 이탈했으며 상오3시30분에는 안내원 2명과 함께 있던 이광수는 『밥을 구해오겠다』며 역시 현지를 이탈했다.우리는 당시 상륙한 지점 인근야산 봉우리에 있었다. ▷침투목적◁ 매월 15일 실시하는 민방위날 행사를 점검하러왔다(18일 진술).강릉비행장 정찰하러 왔다.괘방산정상에 있는 안테나 정찰하러 왔다(19일 진술). ▷무장공비 구성◁ 공작원(정찰조) 3명과 안내원 2명,승조원 21명이다.승조원에는 함장·부함장·기관장·전투원과 승선지도원 등이 포함돼 있다(군 당국은 조사과정에서 사살됐거나 자폭한 18명의 사진을 이광수에게 보여줬다).1명이 우리가 소속한 1편대가 아닌 2편대 상위1명이 끼어있었다.견습하러 잠수함에 승선한 것 같다(그래서 25명에서 26명으로 숫자가 늘어났다). 도주한 7명 가운데 공작원은 국군으로 가장하기 위해 얼룩무늬 전투복에 전투모·베낭을 갖고 있으며 체크무늬 티셔츠를 속에 입었다.무기로는 M16 각 1정과 실탄 90발,권총 1정,수류탄 2발,카메라 1대를 소지하고 있다. 안내조 2명 가운데 조장은 권총을,조원은 M16 소총을 휴대하고 있으며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이나 베낭이나 모자는 갖고 있지 않다.우리는 인민무력부 정찰국 직속이며 안내원 2명은 승조원에 포함돼 있다.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남파됐으며 그동안 안내원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그냥 승조원 역할만 했다. □무장공비 시간대별 행동내역 ▲14일 상오5시=함경남도 퇴조항에서 출발.공해상으로 우회하면서 영해 진입이 늦어짐. ▲15일 하오7∼9시=좌초지점에서 3백∼4백m 떨어진 해상에서 공작원 3명과 안내원 2명을 내려줌.안내원 2명은 공작원을 내려준 뒤 곧바로 복귀. ▲16일 하오8시30분=공작조와 안내조 해안 접선장소에서 접선시도했으나 1차 실패. ▲17일 하오8시30분=2차 접선에 성공.잠수함에 승선. ▲17일 하오11시=파도가 쳐 잠수함 좌초. ▲18일 상오1시=공작원과 승무원등 전원 잠수함 탈출. ▲18일 상오1시30분=해안에서 공작원 3명 중무장한 채 일행서 이탈. ▲18일 상오3시30분=안내원 2명과 함께 있던 이광수 『밥 구하러 가겠다』며 이탈. ▲18일 하오6시=군·경 검문검색에서 이광수 체포.
  • “도주잔당 국군복장 위장”/무장공비­추적 현장

    ◎수색 3일째/괘방산서 2명 발견… 포위망 압축/병력 4만 투입 입체작전/주요 길목 장갑차 등 중화기 배치 【강릉=특별취재반】 강릉 일대에 침투한 무장공비 소탕 작전이 시작된지 20일로 3일째. 군은 강릉 주변 산악지대에서 펼치고 있는 잔당 소탕작전을 강화하고 있다. 군은 생포된 이광수가 남파 공비는 모두 26명이라고 진술함에 따라 자살,또는 생포되거나 사살된 19명 외에 잔당 7명을 소탕하기 위해 육·해·공군 등 4만명을 투입했다.「아파치」 등 기관총을 장착한 중무장 헬기도 동원,항공 감시 체계도 강화했다. 군은 잔당 가운데 국군으로 위장한 공작조 3명과 안내원 2명은 3차 차단선인 대관령 바깥으로 빠져 나갔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3중으로 설치한 차단선을 더욱 내륙쪽으로 넓혀 저인망식 소탕작전을 전개 중이다. 군은 특히 지금까지 붙잡히거나 사살된 공비들은 잠수함 승조원으로 무기도 빈약하고 전투능력이 약했으나 공작조와 안내조는 M16 소총과 실탄을 비롯,수류탄 및 AK 소총을 소지하는 등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따라서 이들과 교전하다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주요 도로와 길목에 장갑차 등 중화기를 배치했다. 이들이 산 속 땅밑을 파고 「비트」(비밀 아지트)를 만들어 숨는 장기전에 들어갈 것에도 대비,나무 밑둥이나 낙엽이 깔린 부분 등을 일일이 대검으로 찔러가며 탐침작업도 병행했다. 이날 상오 러닝셔츠 차림의 공비 2명이 목격된 강릉 괘방산 일대에는 공수특전단 등 6개 특수부대 병력을 집중 투입,남북과 동서를 교차 수색했다. 이와 함께 19일 하오 잠수함이 출몰한 안인진리 해수욕장 부근 야산에서 강원도 인제군 육군 부대의 마크가 달린 중위·중사의 얼룩무늬 위장복 등 국군 장비가 발견됨에 따라 수색대의 어깨에 착용하는 식별표의 색깔을 수시로 바꾸도록 하면서 공비의 위장에 대비했다. 군은 이날 상오 10시30분쯤 MD 500 등 헬기 5대를 이용해 「투항해 생명의 안전과 행복한 삶을 찾으라」는 내용의 선무전단 7만장을 강릉시 일대에 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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