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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호여사 청와대2년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취임 이후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도 왕성한 활동을펼쳤다. 소외계층을 위한 조용한 내조여서 ‘소리’가 나지는 않았으나 김대통령 ‘못지 않은’ 반경을 가졌다.본관 사무실로 매일 출근한다.역대 영부인들이 별로 사용하지 않던 곳이다.‘대통령 부인도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열심히 활동해야 한다’는 나름의 신념에서다. 이여사는 지난 2년간 271회의 공식행사를 갖고,1만여명을 만났다.13개 시·도를 방문,지역 여성들의 의견을 듣고 복지시설과 산업현장을 둘러봤다.9차례나 되는 대통령 해외순방에도 동행했다. 세 차례의 단독 해외방문도 있었다.지난 2일 여성으로는 최초로 세계지도자들이 모인 미 조찬기도회 주연사로 초청돼 연설했다.당시 남가주대학이 주는 국제사회복지상을 수상했다. 98년 4월에는 일본 아오야마(靑山)대학으로부터 교육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지난해 10월에는 자신의 저서 ‘내일을 위한 기도’ 일본어판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다녀왔다. 김대통령이 지난 2년간 IMF 위기극복에 주력했다면 이여사의 활동은 소외된 이웃에게로 모아졌다. 지난 1년동안 총 173회 공식행사 가운데 실직가장·해외입양아·탈북주민·결식아동·장애인 등을 위한 격려행사가 54회나 됐다. “경제위기라고 우리 아이들이 굶어서는 안된다”며 98년 결식아동돕기 단체인 ‘사랑의 친구들’ 명예총재에 취임,바자회 등을 통해 9억5,000만원을모금했다.지난해 서울 비정부기구(NGO)대회 명예회장과 대한암협회 명예회장도 맡았다. 이여사는 청와대에 입주한 직후부터 컴맹 탈출을 위해 노력,지금은 노트북컴퓨터로 연설문을 직접 작성한다고 한다. 양승현기자
  • [시베리아 대탐방](10)바르나울市 쿨루트 화훼농장

    *大雪原위에 피운 러 최고의 꽃밭. [바르나울(러시아)김규환 특파원] 시베리아의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 남동쪽으로 200여㎞쯤 떨어진 광업·농축산업의 핵심도시 바르나울.서부 시베리아의 대표적 철광석벨트인 벨로네츠크와 인스코예 광산지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이곳은 흐린 날씨에다 건물들마저 우중충해 칙칙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그러나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런 기분은 금세 사라진다. 바르나울 북쪽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시베리아 유일의 국영 데코라팁트이쿨루트 화훼농장이 있는 덕분이다.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철에도 쉬지 않고 그윽한 꽃향기를 내뿜고있는 이 농장이 ‘대설원(大雪原) 위에 핀 꽃’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냄으로써 인상을 단번에 바꿔 놓고 있다. 농장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진한 꽃냄새가 코를 찌른다.유리 온실속의 국화·장미·튤립 등 수많은 꽃들과 묘목들이 저마다 자태와 향기를 뽐내며 손님들을 맞고 있는 것이다.10여만평에 이르는 농장안에는 100여명의 화훼전문농업기사들이 이리뛰고저리뛰며 35개동의 온실을 관리하기 위해 바쁜 손길을 놀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재배하는 꽃은 50여종의 꽃과 각종 식물.벨리안즈·임타·레오나라·에벨린 등 국화계통 135개종과 파리·그란드갈라·암바사도르·랑콤 등장미계통 35개종,리기나·카르멘 등 알스트라메리아계통 2개종,런던·포비에라 등의 튤립계통 3개종 등 모두 300여가지의 꽃을 키우고 있다.특히 집에서화분으로 기를 수 있는 꽃도 무려 200여개종에 이른다. 지난 1975년 설립된 데코라팁트이 쿨루트 화훼농장은 당시 2.5ha(7,500평)의 소규모 농장으로 출발했다.혹한에다 일조시간이 한해 1,900여시간에 불과,꽃을 키우기에는 불모지나 다름없어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게린그 블라디미르 사장(60)은 “이곳에 화훼 농장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모험이었다”며 “개척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노력을 통해 혹한과 일조시간의 부족 등 열악한자연환경의 어려움을 극복,러시아에서 꽃의 품질이 가장 좋고 신선도가 뛰어나다는 평판을 얻어 연100만달러(약 11억2,000만원)를 벌어들이는 러시아최고 화훼농장으로 성장했다.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좌절하지 않는 정신력과 화훼전문 농업기사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택이다.이들은 ‘식물도 섬세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데,이 감정을 잘 조절해주면 질좋은 꽃을 생산할 수 있다’며 꽃의 관리를자식 돌보듯이 아껴왔다. 라이사 빌라예바 주임기사(여·38)는 “아침에 온실에 들어설 때 마음이 포근하면 장미들이 ‘우리들은 잘 자라고 있어요’라고 반기는 감정을 느낀다”며 그러나 썰렁하면 왠지 ‘우리들이 자라고 있는 환경이 쾌적하지 않아요’라고 불만족을 토로하는 것같다”고 전한다. 두번째 요인은 고지식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용을 지킨 점이 꼽히고 있다. 조금 비싸더라도 가장 좋은 품질을 공급하겠다는 방침과 얄팍한 술수로 소비자를 속이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웠다.그래서 판매용 상자에 꽃을 담을 때는 역설적이게도 나쁜 꽃은 위로,좋은 꽃은 아래로 포장토록 하고 있을 정도다.블라디미르 사장은 “상대방이 비록 어려움에 처해도 계속 꽃을 공급,‘한번 맺은 사업 동지는 영원히 버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서비스산업에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인들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신념을 보여줌으로써성공을 거뒀다”고 털어놓는다. 현대적인 농장 관리기법도 성공에 한몫을 했다.화훼농장의 운영은 모든 게컴퓨터로 관리된다.컴퓨터 자동 난방장치를 설치한 것은 물론 비료·물·온도·습도·광도(光度) 등의 공급과 조절도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는 얘기다.빌라예바 주임기사는 “온실 관리는 무엇보다 온도조절이 가장 중요하다”며 “온도 조절을 제대로 못하면 한꺼번에 꽃이 피기 때문에제대로 수확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데코라팁트이 쿨루트 농장은 특히 꽃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포장기술만 전담하는 농축산연구소,유전공학의 응용기술을 연구하는 농업연구소 등 이지역 연구기관들과 철저한 분업 및 전문화 체제를 통해 경쟁력도 키우고 있다.블라디미르 사장(60)은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이 원활하지 못해 지금은 국내시장 판로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며 “앞으로는 해외시장 개척에도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농장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다.옛소련이 붕괴되고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구조조정의 파고에 시달렸다.95년까지만 해도 직원이 270여명이었으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농업기사를 100여명으로 줄인 것이다.블라디미르 사장은 “지금 생각하면 구조조정으로 수익구조가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곳을 떠난 사람들에게는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전한다. 화훼농장 정문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마한 꽃전시관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이다.30여평 남짓한 이 꽃 전시관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국화·장미 등 여러 꽃들을 전시,손님들에게 팔기도 하고 화훼 바이어들에게 상담을 해주는장(場)이다.꽃을 사러온 세르게이 곤드라치예프씨(40)는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자주 들른다”며 “이 농장은 바르나울의 자랑”이라고 엄지손가락을치켜 세웠다. khkim@. * 시베리아의 인기 식품. [바르나울 김규환 특파원]시베리아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음식은 단연 아이스크림과 만두이다.‘마로지나(러시아어로 아이스크림)’라는 간판이 붙은가게 앞에는 어김없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몰려들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마로지나를 사 먹기 위해서다.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이 추운 시베리아의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잘 이해하기 힘들다. 친구와 함께 마로지나를 맛있게 먹고 있던 타냐 주가노바씨(23·여)는 “양에 비해 열량이 높은 데다 너무 너무 맛있지 않느냐”며 “마로지나는 춘하추동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시베리아 사람들이 즐기는 일종의 기호품”이라고자랑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객에게도 마로지나의 인기는 마찬가지다.열차가 역에 정지할 때마다 승객들이 우르르 열차 밖으로 몰려나가 아이스크림을 한아름씩 사가지고 열차 안으로 들어와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먹는 모습을 쉽게볼 수 있다. 특히 마로지나 가게에서는 마로지나광(狂)들이 아이스크림을 10∼20개씩 무더기로 사가는 바람에 커다란 봉지에 마구 구겨넣는 진풍경을 연출한다.하지만 아이스크림이 망가질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온 천지가 꽁꽁 얼어붙은 추운 날씨인 까닭에 그렇게 마구 집어넣어도 마로지나의 모양이 잘 변하지 않는 탓이다. 만두도 시베리아에서는 한끼를 때우는 주요 음식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포장마차와 같은 조그마한 음식점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 길가의 간이음식점 어디를 가도 쉽게 만두를 사 먹을 수 있다. 시베리아 만두는 우리들이 만두를 빚는 방법과 똑같다.만두의 크기는 추석등 명절에 먹는 조그마한 송편만하다.발음도 만트로 우리 말과 비슷해 정감을 느낄 수 있고,맛도 우리 입맛에 꼭 맞는다.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피요도르 벨레조프스키씨(36)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입맛에도 잘 맞는다”며 “자동차 여행 중에는 자주 만두를먹고 있다”고 전한다. 시베리아 만두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부인 나이나 여사에 의해 더욱 유명해졌다.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 여사의공격형 내조에 식상한 러시아 국민들이 현모양처로 인기를 끈 나이나 여사가‘시베리아 만두를 빚어 놓고 남편을 기다리는 여자’로 알려지면서 서민들의 음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은 덕분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강력한 도전자가 등장했다.화교들의 왕래가 빈번해지며 중국식 만두가게들이 시베리아 곳곳에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 대우차 임원43% 줄여…국내조직 대대적 통폐합

    대우자동차가 25일 임원 43% 감축과 국내조직의 과감한 통폐합을 주 내용으로 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대우자동차는 조기 경영정상화 차원에서 지난해 8월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임원 48명을 퇴임시킨 데 이어 이번에 45명을 추가로 감축,전체 임원(216명)의 43%인 93명을 줄였다.특히 재선임 임원중 47명은 국내외 사업장의 매각협상 지원과 구조조정을 위한 단기 계약직으로 선임,실질적 임원 감축은 65%에 이른다고 대우차는 밝혔다. 대우차는 국내조직을 책임본부제로 전면 개편하고 기존의 13개 부문 57개담당을 11개 본부 46개 담당으로 축소시켰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해외사업담당 조직이 수출부문으로 일원화되고 재무본부와 구매본부가 통합됐다고 대우차는 설명했다. 육철수기자
  • 대우重 임원 45%감축

    대우중공업 기계부문은 사업부제 도입과 임원 45% 감축,본사 및 해외조직에대한 과감한 통·폐합을 주내용으로 하는 조직개편을 27일 단행했다. 이에 따라 대우중공업 기계부문의 국내조직은 11본부 39담당 175팀에서 8본부 21담당 134팀으로 축소됐으며 해외의 4개 지역본부가 독립채산제 형태로개편됐다.또 지난 6월 이후 자체 구조조정으로 임원 18명을 감축한 데 이어이날 13명을 추가로 감축,임원수가 당초 69명에서 38명으로 줄었다.대우중공업 관계자는 “회사 조기정상화 차원에서 사업부제 도입을 통해 본부별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고 관리·지원부문 조직을 대폭 축소했다”며 “앞으로 각지역본부가 자생력을 갖고 영업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김환용기자
  • 金泰政前법무 구속후 수사 전망

    사직동팀 최종보고서 유출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신동아그룹의 조직적인 로비의혹 수사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김태정(金泰政)전법무장관을 구속 수감하면서 보고서 유출경위의 매듭을 푼 만큼 신동아그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쪽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신동아그룹 로비 수사는 ▲청와대 등을 포함한 전방위 로비 실체 ▲금품로비 여부▲외화밀반출 사건 수사때 검찰에 외압 시도 여부 등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위층 등 전방위 로비는 신동아그룹의 로비스트로 영입된 신동아건설 부회장 박시언(朴時彦)씨와, 이형자(李馨子)씨와 친분이 있는 교인들의 로비로압축된다.검찰은 박씨가 지난해 신동아그룹이 내사받기 시작하면서 영입된인물이라는 점에서 박씨의 전방위 로비의혹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이씨와 친분이 있는 교인들도 고위층을 상대로 최순영(崔淳永)신동아그룹 회장의 선처를 부탁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만큼 이들의 소환조사도 불가피하다. 금품로비 여부는 금융감독원 특감에서도 드러났듯이 최회장이 조성한비자금 53억여원의 용처 확인과 맞물려 있다.검찰은 이에 따라 최회장이 접대비와 기밀비로 사용한 35억여원과 개인용도로 사용한 18억여원의 용처를 확인하기 위해 조만간 최회장과 박씨에 대한 계좌추적도 병행할 방침이다. 외압 수사는 지난해 신동아그룹 외화밀반출 사건에 대해 누가 수사 중단을요구했는지에 집중될 전망이다.그러나 이 부분은 김전장관의 ‘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검찰이 김전장관을 서둘러 구속한 것도 김전장관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려는 전술로 이해된다. 검찰은 또 최초보고서 추정 문건의 출처와 위증 부분도 풀어야 한다.검찰은 내사추정 문건에 적힌 ‘조사과 첩보’라고 가필된 글씨와 날짜 등에 대한필적 감정도 고려하고 있다.최초보고서 추정 문건의 출처만 밝히면 제3의 기관이 옷로비 의혹에 개입했는지 여부도 규명할 수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李수사기획관 일문일답 이종왕(李鍾旺)대검 수사기획관은 5일 “사직동팀 최초보고서 추정 문건에대한 수사를 마친 뒤 외압설과 신동아측의 로비의혹,위증부분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박주선 전비서관을 다시 부르나. 당장 다시 소환할 계획은 없다. ?최종보고서와 관련된 법률적 판단이 끝났기 때문인가. 조사방법에는 여러가지 있을 수 있다.최초보고서 추정 문건의 출처 및 전달과정 의혹과의 연관성 등을 종합해 판단할 것이다. ?김태정 전장관도 다시 소환하나. 수사검사가 필요하면 할 것이다. ?최초보고서 추정 문건의 출처는 확인됐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조사하고 있다.아직 구체적인 단서가 나온 것은 아니다. ?김 전장관에 대한 영장이 발부된 뒤 박전비서관과 대질했나. 4일 밤 수사상 필요해 2시간 정도 함께 조사했다.대질은 이해가 상반되는 경우에 하는것이다. ?협박 부분도 수사하나. 필요하면 할 것이다.김전장관의 진술이 있을 뿐이다.박전비서관은 보고서 요청시 김전장관으로부터 신동아의 음해성 루머에대해 해명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들었다고 하더라. ?김전장관의 영장에 내사 착수시점이 1월15일로 돼 있는데. 특검과도 관련되는 만큼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영장은 사직동팀 내사기록을 토대로한 것이다. ?최초보고서에 대한 김전장관의 진술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출처를 말하지 않는다면 적법수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종락기자 jrlee@ - 金전장관 수감 표정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장관이 구속 수감된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지검 일대는 ‘법무장관을 지낸 전 검찰총수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애써 태연한 척하던 김전장관도 구치소에서 첫날밤을 뜬 눈으로 지새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심리적 충격에휩싸였다. ?4일 오후 11시쯤 서울구치소에 도착한 김전장관은 수인(囚人)번호 3223번을 배정받고 간단한 입소절차를 거쳐 구치소 1동 독거실에 수감됐다.김전장관은 자신의 처지가 믿기지 않는 듯 1평 남짓한 방안에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5일 아침식사로 나온 보리 섞인 밥과 된장국·오징어무침·김치도 다 비우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구치소측은 김전장관을일반 미결수와 똑같이 대우하면서 심리적 충격으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독거실 앞에 교도관 3명을 번갈아 근무시키고 있다. ?김전장관은 4일 오후 10시25분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11층 중수부조사실에서 내려와 서울구치소로 향했다.1층 로비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시 멍하니 서있던 김전장관은 긴 숨을 들이쉬며 수사관들과 함께 내렸다.수사관들은 전직 총장을 예우하려는 듯 양쪽에서 팔을 잡지 않았다. 김전장관은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쏟아지는 기자들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전혀 응답하지 않은 채 검은색 포텐샤 승용차를 타고 황급히 대검청사를 빠져 나갔다. ?전직 검찰 총수의 구속을 지켜본 검찰 직원들은 모두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신승남(愼承男)대검 차장만 김전장관이 서울구치소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을 뿐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을 비롯,대부분의 간부들이 김전장관이 구속 수감되기 전인 오후 8시30분쯤 퇴근했다.김전장관 구속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일반 검사들과 검찰 직원들도 김전장관에 대한 영장이 발부되자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 6월 법무장관이 된 지 보름 만에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으로 물러난 김전장관은 부인 연정희씨가 연루된 ‘옷로비 의혹사건’으로 결국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말았다.초임 검사시절 지방 지청만 6곳을 맴도는 ‘시골검사’의 설움을 겪다가 지난 82년 김석휘(金錫輝)전검찰총장에게 발탁돼서울지검 특수부장,대검 중수부장 등 요직을 거쳐 27년 만에 총수직에 오른김전장관에게 부인 연씨는 헌신적인 내조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 -사직동팀 최종보고서 유출 경로 김태정전법무장관이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사직동팀 최종보고서를 입수한 시점은 지난 2월 하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전장관은 당시 사직동팀에서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에 대해 내사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노심초사하다 박주선전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었다.사직동팀의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한 데다 이형자씨측으로부터 “옷로비 의혹을 일간지에 광고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은 터였다. 김전장관은 박전비서관이 내사가 종결돼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마쳤다고 하자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박전비서관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중권(金重權)전 청와대 비서실장,법무비서관실용으로 보고서 3부를 만들었다.그러나 김대통령에게 보고된 문건을 되돌려받았기 때문에 원본 2부를 보관하고 있었다.그중 한 부를김전장관이 보낸 검찰 직원을 통해 전달했다.보고서를 입수한 김전장관은 부속실 여직원을 시켜 표지와 신동아그룹 최순영회장의 구속 건의 부분을 가린 채 복사하게 했고 보고서의 크기도 대통령에게 보고될 당시의 B4규격(8절지 크기)에서 A4크기로 줄였다.표지를 뺀 이유는 청와대 보고서임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구속 건의 부분을 누락시킨 것은 옷로비 의혹으로 최회장을구속했다는 오해를 피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뒤 김전장관은 신동아건설 부회장 박시언씨를 총장 집무실로 불러 “사직동팀에서 조사한 결과 옷로비는 없었으니 이형자씨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전하라”면서 보고서를 보여줬다.그때 다른 손님이 들어오자 김전장관은 “나가서 찬찬히 읽어보라”고 했고,박씨는 집무실에서 나와 부속실 직원을 시켜 보고서를 복사한 뒤 원본은 김전장관에게 돌려줬다.박씨는 지난달 25일 전격 공개했다. 강충식기자 *朴전비서관 어떻게 되나 사직동팀 내사보고서 유출사건의 또다른 당사자인 박주선(朴柱宣)전 법무비서관의 신병처리는 어떻게 될까. 박전비서관은 5일 새벽 일단 귀가했으나 사법처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현재로서는 무혐의나 불구속기소 두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검찰 내에서는 최종보고서가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검찰총장이라는 ‘공적라인’ 사이에 건네진 만큼 처벌 불가론이 우세하다. 법무비서관이 업무상 협조관계가 긴밀한 검찰총장에게 내사결과 무혐의처리되고 대통령 보고까지 마친 사안에 대한 조사결과를 전달한 행위는 유출이라는 범죄행위와는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형남(朴炯南)영장전담판사가 지난 4일 김전장관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총장이 법무비서관으로부터 내사보고서를 받는 것은 공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박전비서관의 행동은 정당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도 검찰의 판단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종왕수사기획관이 5일 “공무상 비밀 누설죄의 적용은 반드시 문서로 작성돼야만 범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여운을 남긴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박전비서관이 최초보고서를 문서로 작성하지 않았지만 전화 등을 통해사직동팀 내사사실을 김전장관에게 알려줬다면 공무상 비밀누설죄가 적용될수 있다. 그러나 박전비서관이 사법처리되더라도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다. 이종락기자
  • [포커스 투데이] 남편 안와르 지역구서 당선 아지자女史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의 부인 아지자 이스마일여사(47)가 남편의 지역구에 출마,압승을 거두고 당선됐다. 여섯명의 자녀를 둔 아지자 여사는 자녀들을 위해 안과의사를 그만두고 가정으로 돌아갔을 정도로 평범한 가정주부 출신.‘남편 덕분’에 정치인으로변신한 탓에 정치경험은 전무하지만,의회내 야당의 목소리를 주도하며 18년동안 통치해온 마하티르 모하메드 총리 진영을 압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지자 여사는 평소 남편의 뒷자리에서 조용히 내조를 하고 스카프를 쓰지않고는 바깥에 나가지 않는 이슬람 여성의 전형이다.대학 시절 이슬람 학생지도자이던 남편을 만나 78년 결혼했다.안와르 전 부총리가 마하티르에 반기를 들고 20여개의 죄목을 뒤집어쓰고 투옥되자 ‘분연히’ 대중 앞에 나서서 남편을 옹호하는 민주 투사로 변신했다. 아지자 여사는 남편이 투옥된 이후부터 변화를 요구하는 야당진영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되면서 총선에 출마했다.그러나 야당진영이 처음으로 연합전선을 구축했지만 마하티르 총리의집권여당에 참패해 제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김규환기자 khkim@
  • “정상인들과 나란히” 장애넘은 弓士

    “내 과녁은 어쩌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인지도 모릅니다.때문에 내가 쏜 화살은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담고 있는 셈이지요” 80회째를 맞은 전국체전 사상 처음으로 한 중증 장애인이 전국의 내로라하는 일반선수들과 당당히 실력을 겨뤄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중반으로 접어든 인천체전의 양궁경기에 대전대표로 출전한 이홍구씨(35·대전장애인양궁협회)는 87년 교통사고로 척수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러나 이씨는 양궁 개인전 4개 종목에 휠체어를 탄 채 출전해 일반선수와똑같은 조건으로 경기를 하고 있다.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부인 황금주씨(33)가 표적을 확인하고 장비를 날라주는 등 ‘발’ 역할을 대신해 준다는 것. 이씨는 93년 친구의 권유로 양궁에 입문했다.하지만 그를 양궁에 몰두하게만든 사람은 92년 결혼한 부인 황씨.장애인 봉사활동을 하다 이씨를 처음 만나 결혼까지 한 부인 황씨는 늘 ‘휠체어 신세’를 비관하던 남편에게 삶의의욕을 불어넣기 위해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보육교사로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가운데서도 선뜻 1,000여만원에 이르는 장비를 구입해 주었고 남편의 선수생활 수발까지 덤으로 맡았다. 부인의 ‘지극한 내조’덕에 이씨는 지난해 세계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데이어 지난달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열린 퍼시픽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각종 장애인 대회에서 30여차례나 정상에 오르며 국내 장애인 양궁의 1인자로 우뚝 섰다.탄탄한 실력을 평가 받아 올해 체전을 앞두고 일반선수들을 제치고 마침내 대전대표로 뽑힌 것. 이씨는 “장애인과 일반인 모두에게 휠체어를 타고도 당당히 체전에 참가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양궁은 이제 내 인생의 버팀목” 이라고 말했다. [인천 특별취재반]
  • 타계한 라이사여사

    우아한 외모와 매너,뛰어난 패션감각에 활달함까지.생전 라이사 고르바초프 여사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다. 매사 적극적으로 남편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내조했던 라이사 여사는 이전까지의 소련 퍼스트 레이디와는 전혀 달랐다. 남편을 따라 외유에 나선 최초의 소련 퍼스트 레이디였다. 모스크바대 철학교수 출신인 그녀는 비록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사치스럽고 튀는 여성’으로 부정적 여론의 도마에 자주 올랐지만 서방세계에서는 지적이고 우아한 여성으로 주의를 끌었다. 이때문에 그녀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 함께서방세계에 크렘린의 어두운 이미지를 바꿔놓은 주인공으로 평가됐다. 남편인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의 금실은 전세계가 알아줄 정도.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평소 라이사 여사를 ‘나의 라야’로 부르며 평생의 동반자이자정치적,이념적 동지로 아끼며 신뢰했다. 라이사 여사가 최근 독일에서 투병생활을 할때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녀의 병상을 지켜,두 사람의 애정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여사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난 7월부터 독일 뮌스터대학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했고, 통일의 은인이기도 한 병상의 그에게 독일 국민들은 매일 꽃다발과 위문편지를 보내며 여사의 쾌유를 빌었다. 본명이 라이사 막시모브나 티타렌코인 여사는 32년 남부 시베리아에서 철도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모스크바 대학 재학시절 댄스 파티에서 같은 대학법대생이었던 고르바초프를 만나 53년 결혼했다.지난 91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실각한 뒤부터 건강이 악화됐으나 부군의 해외강연길에 꼬박꼬박 동행하며 내조를 다했다. 이경옥기자 ok@
  • 테마가 있어야 확실히 뜬다

    광진구(구청장 鄭永燮)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정,운용중인 ‘건대 패션의 거리’ ‘중곡동 가구의 거리’ ‘구의동 먹자골목’ 등 ‘특화거리’가 탁월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97년부터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는 건대입구역 부근에 조성된 ‘건대 패션의 거리’는 이미 동부 최대의 상권으로 떠올랐다.이곳에는 유명전문의류 할인매장 46곳이 밀집,청소년과 대학생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패션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10만원대의 유명브랜드 청바지를 2만∼3만원에 살 수 있으며 정장 셔츠 운동복 등도 평균 절반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소비자 물가안정에도한몫하고 있다. 구는 건대 패션의 거리를 위해 매년 10월 문화축제를 개최,청소년가요제와패션모델선발대회,힙합댄싱경연대회를 열어 청소년들에게 놀이마당을 제공하고 있다.또 지난 95년 가구점 57곳이 몰려 있는 특성을 살려 ‘중곡동 가구의 거리’로 특화시킨 천호대로 1.4㎞구간은 이후 중저가 브랜드의 가구점이 속속 입주,동부지역 최대의 가구 상권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구는 상인들과 함께 기획상품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상권 부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앞으로 이곳에 안내조형물을 설치하는 한편 혼수용품과 가전제품업체 등을 유치,혼수용품 전문상가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구는 이와 함께 지난 98년 2월 구의전철역 부근 ‘구의 먹자골목’을 ‘가격파괴의 거리’로 지정했다.이에 따라 56개 업소가 10%의 음식값을 인하했고 구는 이들을 모범업소로 지정하는 한편 위생검사를 1년간 면제해주고 쓰레기종량제 봉투와 물가안정 홍보용 전화카드를 지원하기도 했다.또 13억7,900만원의 위생시설 개선자금도 지원했다.그 결과 매출액이 가격파괴거리 지정 전에 비해 30% 이상 늘어났다.구는 이같은 효과를 바탕으로 지난 5월부터 각 동별로 1곳씩 가격파괴 시범거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총 14개 거리,225개업소가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영섭구청장은 “가격파괴 거리는 가격을 안정시켜 서민들의 가계에도 도움을 주지만 상권의 활성화로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이중의 효과를 안겨주고있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義烈 독립투쟁](5) 안중근 의사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자 일제는 이를 ‘암살’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안 의사는 공판정에서자신은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를 공격, 처단했다고설명했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향반(鄕班)집안에서 태어났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6년 3월 안 의사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 있는 가문의 재산을 모두 팔아 진남포로 이사한 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였다.두 학교의 교장이 된 안 의사는 애국교육과 신학문 교육을 통해 애국청소년들을 양성하였다.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안 의사는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설치하여 자신이 지부장을 맡고 부인과제수의 패물까지 모두 헌납하는 모범을 보였다. 1907년 7월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고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안 의사는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의병부대를 조직,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등 연해주 유력자들의 지원을 받아 300여명의 동포 청년들을 모집하여 연추(煙秋·노보키에프스크)에서 의병부대를편성한 안 의사는 당시 이 부대의 실질적 통솔자였다. 안중근부대는 모두 세차례의 전투를 치렀다.1908년 4월 초순 두만강 최하단인 함경북도 경흥군 일본군 수비대 진지를 공격한 안중근부대는 단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는 귀환하였다.이어 1908년 7월 제2차전투에서는 함경북도 신아산(新阿山) 부근의 일본군 수비대를 수 차례 기습공격,10여 명의 일본군 병사를 생포하였다.청년 휴머니스트였던 안 의사는 일본군 포로들을 ‘국제공법’에 의거,무기만 빼앗고 석방하였는데 이것이화근이 돼 제3차 전투에서는 참패를 하고 말았다.석방된 일본군 포로들이 안중근부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기습해온 때문이었다.겨우 목숨을 건진 안의사는 부하·동지 몇 명과 연추로 돌아왔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포신문 ‘대동공보’의 연추지국장으로 일하고있던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분할 협의차 만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사를 도모하였다.1909년 10월 10일 대동공보사 사장실에서는 총무 유진율(兪鎭律),주필 정재관(鄭在寬),기자 윤일병(尹日炳)·이강(李剛)·정순만(鄭順萬),연추지국장 안중근,회계원 우덕순(禹德順) 등 7명이 모였다.이자리에서 안 의사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이토를 처단하겠다”고 자원하였고 우덕순도 자원하고 나섰다.특공대는 2개조로 나뉘어 안중근·유동하(劉東夏)조는 하얼빈에서,우덕순·조도선(曺道先)조는 채가구(蔡家溝)에서 거사키로 하였다.그러나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채가구에서 정차하지 않고 그냥 통과함으로써 결국 거사임무는 안중근조에게 넘어갔다. 거사당일인 1909년 10월 26일 오전 하얼빈역 주위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안 의사는 러시아 경비병에게 ‘취재차 나온 신문기자’라고 속이고는일본인 환영객 집단 구역까지 깊숙이 진입하였다.이날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리자 안 의사는 여섯발의 총탄을 날렸는데 그 중 세 발이이토에게 적중하였다.거사에 성공한 안 의사는 그 자리에서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연창하였다. 안 의사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거사는 ‘암살’이 아니라 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특공작전을 전개한 결과라고 누차 밝혔다.안 의사의 의거로 일제의 만주침략은 장기간 지연되었다.중국인들이 만주·중국 관내에서의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방임한 것은 바로 안 의사와 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신용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안중근 의사 직계후손 근황 안중근 의사는 부인 김아려(金亞麗)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장남 분도(芬道)는 6세때 사망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분도보다 3살 위인 장녀 현생(賢生)씨는 백범 김구 선생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황일청(黃一淸·작고)씨와 결혼,은주(恩珠·71)·은실(恩實·68·미국 텍사스 거주) 자매를 두었다.은주씨는 남편 이용문(李容文·작고)씨와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남편 작고후 귀국,경기도 용인 수지에 살고 있다.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안 의사의 유일한 직계후손이다. 항주(杭州) 호강대학을 졸업한 차남 준생(俊生·1951년 45세로 작고)씨는 부인 정옥녀(鄭玉女·91년 작고)씨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현재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안 의사의 장손격인 준생씨의 장남 웅호(雄浩·67)씨는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은퇴,새크라멘토에 거주하고 있다. 간호대학 출신인 장녀 선호(善浩·70)씨는 한국인 2세와 결혼,4남매를 두었으며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차녀 연호(蓮浩·65)씨는 시애틀에거주하고 있다.정운현기자*白凡과 안중근家의 인연 19세의 청년 김창수(金昌洙·김구의 아명)는 1894년 양반사회를 타도하고자 황해도 동학농민전쟁의 해주성 전투에 선봉장으로 참여한다.그런데 당시 황해도에서는 반농민군 세력으로 의병이 조직되는데,그 대표적 인물이 안중근(安重根)의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이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박영효(朴泳孝)가 모집한 해외파견 유학생 70명에 선발되었다.그러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자 출세의 길을 버리고,대가족을 이끌고 신천군 청계동(淸溪洞)으로 들어갔다.1894년 황해도 동학군이 일어나자 이에 맞서 안태훈은 안중근 등 그의 아들과처자들까지 편입시킨 의병을 일으켰다.그 위력과 명성이 자자하여 황해도 동학군은 안태훈 부대를 두려워하였고,김창수 부대 역시 청계동을 특별히 경계하였다. 그런 안태훈이 청년 김창수에게 밀사를 보냈다.그 결과 두 진영 사이에는서로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쪽이 불행에 빠지면 서로 돕는다’는 공동원조까지 성립되었다.즉 안태훈은 비록 동학군을 토벌하는 입장이었지만 인재를 아끼고 있었고 개화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청일전쟁 전후의민족적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창수 부대는 점차 토호화하고 있던 같은 동학접주 이동엽(李東燁)부대에의해 해체되었다.얼마간의 잠적 이후 이듬해 김창수가 찾아 간 곳은 청계동의 적장 안태훈 집이었다.청계동에서 ‘적장(敵將)과의 동거’는 청년 김창수에게 중요한 인연과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다.안태훈의 각별한 후원으로 김창수는 부모님과 더불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안태훈가(家)의 식객인 고능선(高能善)은 동학의 꿈이 깨진 청년 김창수에게 새로운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또다른 식객 김형진(金亨鎭)은 같이 의기투합해 청국원정을 떠나사선을 넘나드는 동지가 되었다. 김창수는 청계동에서 스승과 동지를 얻었을 뿐 아니라,안태훈가와도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안중근의 아우 공근(恭根),조카 우생(偶生)은 임시정부 시절 백범의 측근이 되었으며,질녀 미생(美生)은 백범의 맏며느리가 되었다.또한 안태훈과의 화해,고능선의 교도로 백범은 양반이냐,상놈이냐 하는 계급의식 이상의 차원,즉 조국·민족문제에 눈뜨게 되었다.都珍淳 창원대 사학과 교수*安의사 5촌조카 民生씨 편지 발굴 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꼽힌다.그러면 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은 해방후 어떻게 살았을까.지난 8월말 학술행사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본사 김삼웅(金三雄)주필이 연변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입수한 두 통의 편지에 따르면,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 가운데 더러는 해방된 조국에서 대접은 커녕 분단과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다 ‘한많은 일생’을 마친 것으로드러났다. 김 주필이 중국서 입수한 편지는 지난 88년 한국에 거주하던 안 의사의 5촌조카인 민생(民生·생사불명)씨가 중국 연길(延吉)에 있던 사촌여동생 경옥(京玉)씨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경옥씨는 70세였다. 88년 1월 27일자 첫 편지에서 민생씨는 “지난 (87년)11월 15일 독립기념관장 춘생(椿生)형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들었다”며 연락이 닿은 경위를 밝혔다.두 사람은 안 의사의 삼촌인 태건(泰健)씨의 손자녀들로 46년 7월 민생씨가 귀국하면서 서로 소식이 끊겼었다. 민생씨는 편지 서두에서 “해방후 형제·자매들이 귀국하였으나 모두 전재민(戰災民)의 신세를 면할 길이 없어 더러는 눈물을 흘리며 미국으로 떠나버렸다”며 해방후 집안 인척들의 이산을 안타까워 했다. 특히 민생씨는 “1961년 5월(‘5·16’을 지칭함) 조국의 평화통일 이념을주장했다는 이유로 나는 반국가범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경근(敬根) 당숙도 7년형을 선고받아 일제때 명근(明根) 당숙이 옥고를 치르시던 서대문형무소 특감(特監)8사(舍)에서 감옥살이를 했다”며 “해방,독립된 내조국에 돌아와서 또 감옥살이를 치러야 함으로써 우리 안씨 가문은 이역과조국에서 선후대(代)에 걸쳐 50여 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고 통탄해 했다. 안 의사 집안 가운데 안 의사의 사촌동생 경근과 5촌 조카인 민생씨는 해방후 유달리 험난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쳤다.두 사람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민주구국동지회를 결성,반독재 투쟁에 앞장섰으며,장면(張勉) 정권 하에서는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준비위원회(민자통)에 참여하기도 했었다.5·16후 군사정권의 혁신세력 탄압 때 두 사람은 반국가범죄 혐의로 투옥됐으며 경근은 출옥 직후 작고했다. 민생씨의 경우는 ‘최악’이었다.1933년 만주에서 만주군에 붙잡혀 혹독한고문을 당한 후 도주하다가 다시 붙잡혀 양쪽 발끝을 작두로 절단당한 민생씨는 그 몸으로 감옥살이를 한 데다 68년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나,업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말년에는 지팡이와 의족에 의존해야 했다. 편지를 쓸 때 이미 70고개를 넘긴 민생씨는 “헤어진 동료들과 형제들이 그리울 때면 저 머-ㄴ 북녁(만주땅을 지칭한 듯)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가슴 쥐고 나무밑헤 쓸어진다 혁명군/가슴속에 솟는 피는 푸른 풀에 절벅해’… 이 노래를 부른다”고 적은 뒤 “가마귀도 우름을 멈추고 바람만 스치고지나갈 무덤없는 그들의 핏자죽 위에 한 송이 들꽃이라도 받쳐들고 가서 명복을 빌어드릴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며 눈물지었다.현재 민생씨는 생사가불명이다.광복회·국가보훈처·안중근의사기념관은 물론 사촌형인 안춘생씨마저 민생씨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 5월 28일자 두번째 편지에서 민생씨는 “과거 우리들은 안중근의 집안이라는 이유 때문에 왜놈들에게 죽어야 했고,징역을 살아야 했는데 해방후에는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주구들이 권력을 잡게 됨으로써 애국자들의 피해는 여전했다”며 역대 권력자 가운데 친일경력자들의 면면을 거론하였다. 정병학(鄭秉學·79)안중근기념관장은 “안 의사 집안의 인사 가운데 민생씨처럼 해방후 불우한 삶을 보낸 인사가 적지않다”며 “이는 해방후 친일·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이 주원인”이라고 말했다.정운현기자* 안중근家의 독립운동가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안 의사를 포함,모두 9명이 독립유공 공적으로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현재도 몇 명이 포상 심사중이다. 1909년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 안 의사는 독립유공훈장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인 대한민국장(1등급)을 받았으며,안 의사의 두 친동생 정근(定根)·공근(恭根)은 각각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또 사촌동생 가운데 명근(明根)은 ‘105인사건’으로,경근(敬根)은 임시정부 활동으로 각각 독립장을 받았다. 안 의사의 조카뻘인 ‘생(生)’자 항렬에서도 여러 명이 훈장을 받았다.대표적으로는 광복군 제2지대 구대장 출신으로 해방후 육사교장·국회의원·독립기념관장 등을 역임한 춘생(椿生·87·독립장)을 비롯해 춘생과 친형제로신민부에서 활동한 봉생(鳳生·애국장),그리고 안 의사의 첫째 동생인 정근의 장남으로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원생(原生·애족장)과 둘째 동생공근의 차남낙생(樂生·애족장) 등이 있다. 이밖에도 납북이나 공적서류 미비 등으로 서훈이 보류된 인사도 여럿 있다. 우선 공근의 장남 우생(偶生)은 중경 임시정부 시절 임정 편집부 과원으로활동했으며 해방후에는 백범의 대외담당비서로 활동했으나 그 후 납북돼 포상이 보류돼있다.또 안 의사의 사촌 봉근(奉根)의 자제인 민생(民生)과 그의형 호생(鎬生) 역시 독립운동을 했으나 해방후 ‘반정부활동’을 했다는 이유나 서류미비 등으로 아직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 [외언내언]‘퀸 머더’백수

    ‘백수(白壽)’란 백(百)에서 일(一)을 뺀 99세를 일컫는다. 인생은 40부터라고 했듯이 백수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 60을 충분히 살아낸 나이라고 할 수있다. 사람의 나이속에는 인생역정의 수난과 영욕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래서 한 시인은 ‘과거를 역력하게 기억할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했다면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어머니가 4일 99세의 생일을 맞았다. 공식적으로는 ‘퀸 머더’로 불리지만 그가 개인 서신에서 쓰는 이름은 피터. 빅토리아 여왕 시대 스코틀랜드의 스트레스모어 백작 딸로 태어나 1923년에 훗날의조지 6세와 결혼했고 남편은 차남이었으나 형인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버리고 미국인 이혼녀인 심프슨과 결혼하는 바람에 36년 왕비가 되었다. 보수적이고 위엄을 존중하는 그는 독일이 런던을 폭격하고 버킹엄이 위험에 처했을때도 폭격받은 지역을 방문하는 등 왕실이 군과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내조해온 것으로알려져 있다. 그러나 52년 조지 6세의 사망으로 딸이 왕위를 계승하자 48년째 은둔생활을 하면서 손자 3명이 줄줄이결혼에 실패하는 슬픔을 맛보았으며 2년전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사망했을 때는 찰스 왕세자가 정신적인 안정을 찾도록 격려해주기도 했다. 나이란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먹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나이에 책임지고 다복한 노년을 누릴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백세가 되면 머리카락이 다시 검게 되고 이빨도 새로 난다고 하지만 나이를 감당할만한 체력과 인품과 지혜가 없으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불행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아무도 자신의 노년을 짐작할수 없으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노쇠나 기능의 약화만이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졌던 눈이 밝아진다는 것을 알게 될뿐이다. 또 노년의 신비는 비합리적인 것이 성공하고 합리적인 것이 실패하며 행복과불행이 기약없이 문득 따라온다는 것을 깨닫게 될뿐이다. ‘퀸 머더’는 최근에도 파티와 경마를 좋아하고 아침부터 진이나 샴페인잔을 기울이며 ‘반드시 필요할 경우’에만 지팡이와 안경을 쓸만큼 건강하다고 외신이 전한다. 그는 90세 생일때 자신의 소원은 “100살까지 사는 일”이라고 한것처럼 이제 1년만 지나면 1세기를 꽉 채우는 생일에서 100세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주는 여왕의 서명이 든 생일축하 카드를 받게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를 역력히 기억하는 유복한 사람’으로 남게될 것이다. [이세기 논설위원]
  • [사설] 경기지사 부인의 거액수뢰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 부인 주혜란(朱惠蘭)씨의 거액 금품수수사건은 놀랍고도 충격적이다.임지사가 여권의 비중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인 데다 고위공직자 부인들의 고급옷 로비의혹 사건에 이은 일이라 국민들의 충격은 더하다.임지사 관련 여부와 거취에 당연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결과 주씨는 전경기은행장으로부터 은행의 퇴출을 막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3억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임지사는주씨가 검찰에 소환되기전 실토할 때까지 부인의 금품수수 사실을 몰랐다고하며 주씨도 임지사의 관련은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은행장이 거액을 지사 부인에게 줄 때는 주씨보다 남편인 임지사의 영향력을 보고주었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더구나 임지사는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출신이 아닌가.이러한 의혹은 검찰이 철저한수사로 명백히 밝혀줄 것으로 믿는다. 임지사 부인의 거액 수수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공직자들의 기강과 자세문제다.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추진해온 개혁과 강도 높은 부정부패 척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구시대의 비리와 악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하다.특히 최근 들어 잇따라 터져나오는 공직자들의 비리나 의혹사건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고통을 이겨내려는 대다수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도층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획기적인 개혁이 있어야 하겠다.이번 사건이 복잡한 정치상황에 악용될까도 걱정스럽다.비리나 부정부패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여나 야를 가릴 것 없이 범죄행위는 철저히 조사되고 처벌돼야 한다.주씨 사건의 엄정한 처리가 여·야 없는 사정의 본보기가되기를 바란다. 주씨는 평소 남편 못지않게 활동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옷로비 의혹으로 시끄러울 때 임지사의 생일잔치를 요란하게 벌이고 지사 대신수해현장에 가서 브리핑을 받는 등 ‘내조’의 수준을 넘는 돌출행동으로 말이 많았다.고위공직자 부인들의 사회활동이나 봉사는 바람직하지만 눈에 벗어나는지나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아울러 고위공직자는 평소 자신의 행동은 물론 집안과 주변을 깨끗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이 다시 한번일깨워주고 있다. 검찰조사 결과가 곧 밝혀지겠지만 임지사는 이번 사건에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설령 그의 주장대로 금품수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응분의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이 고위 공직자로서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 [인터뷰] 제31회 신사임당상 수상 힐튼호텔 정희자회장

    힐튼호텔 정희자회장(59·대우그룹 김우중회장 부인,선재미술관·아트선재센터 관장)을 외국인 직원들은 ‘타이거우먼’,‘터프우먼’이라고 부른다. 공격적인 경영스타일과 사소한 빈틈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즉각적인 일처리방식 때문이다.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더 할 수 없이 살가운 여성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가 또한 정회장이다.정·재계 인사들과 골프라운딩 도중 마실 물을 떠다주고 공을 주워 주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돋우면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인지 몰랐다면서 모두가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선정 제31회 신사임당상(像) 수상을 계기로 이뤄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특유의 선굵으면서도 솔직 다감한 태도로 시원시원한 답변을 해 나갔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습니다.직접 예술을 해 온 사람도 아니고 500년전 여성상에 부합된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요.하지만 알고보니 사임당은 아내와 어머니로서,그리고 예술가로서 내면의 열기에 꽉 차 있던 당찬 사람이었어요.한번은 실수로 남의 치마에 술을 쏟자 즉석에서 치마폭에 포도그림을 그려 주면서 이를 팔아 옷값을 하도록 했다는데 이를 보면 상업적 감각도 뛰어났던것 같습니다” 결국 21세기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고의 사임당상을 그려보면서 아내와 어머니,기업을 통한 예술활동의 지원자로서 이번 수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했다. “시상식때 나는 잘 못 들었는데 김회장이 ‘부군의 인사’를 하면서 울먹였다고 해요.셋방살이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30년동안 내조자로서 묵묵히일해온 데 대해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해 온 가슴속의 빚을 이 상이 대신해줬다면서….내 생각 보다는 요즘의 여러가지 감회가 뒤얽혀 그랬겠지만 어쨌든 우리부부는 외조와 내조를 많이 나눴습니다” 정회장이 살림을 하다 호텔 경영에 뛰어든 건 1주일이면 4∼5회씩 집에서김회장 손님 치르는 솜씨를 보고 주위에서 권유를 했기 때문이다.미술관 운영은 김회장의 출장을 따라다니며 현대미술을 눈여겨 보고 컬렉션하면서 구상한 것이므로 김회장의 외조를 받은 셈이라고 했다. 정회장은 호텔 경영도 야무지게 했다.16년 사이 힐튼호텔을 대우의 노른자위 기업으로 키워놓았고 해외에도 진출,하노이와 옌벤에도 대우호텔을 세웠다.요즘도 하루 3∼4시간 밖에 자지않는 그는 새벽 3시30분이면 일어나 호텔 음식계획에서부터 실내 장식 변경까지 하루 할 일을 메모하는데 그 분량이A4용지 두 장 씩이다. 호텔 일은 그가 필생의 사업으로 여기는 문화사업의 재원이 되기에 더욱 열심히 한다.선재미술관및 아트선재센터관장,예술의전당 오페라단 후원회장,각종 무용제 영화제 극단 유시어터 후원 등 문화사업과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흔히 돈이 많아 하는 줄 알지만 그건 전혀 틀린 것이다.“육신이 부서져라일해 얻은 수익금으로 사회환원을 하는 것인데 막무가내로 요구해 올 땐 서운하다”고 그는 말한다. 호텔과 미술관 운영에서 그는 크게 두 가지 자부심을 갖고 있다.첫째는 지방문화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선재미술관은 지방 최초의 현대미술관입니다.반대도 많았지만 경주에 현대미술관을 지으면 전통과 현대가 조화되고 늘 새로운 멋을 풍기는 관광도시가 되겠다 생각해 밀어 붙였어요” 그 생각은 주효해 선재미술관은 그의 고향이기도 한 경주의 문화명소가 됐고 근래 4∼5년 사이 광주,부산등 지방 미술관 설립에 불을 당겼다. 둘째는 호텔건물에 미술 진품을 걸어 국제 호텔업계의 인테리어개념을 바꿔놓은 것이다.경주힐튼호텔 등엔 그가 좋아하는 콜롬비아의 페르난도 보텔로를 비롯해서 세계적인 현대작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다.“값비싼 걸작들을 관리 시설도 제대로 안된 호텔건물에 거는 데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도 많습니다.하지만 호텔처럼 미술품 보여주기 좋은 장소가 어디 있습니까.요즘은 외국 호텔들도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어요” “손주들과 쉬고 싶어도 나이를 초월해 일하는 여성의 모델이 돼 달라는 주위의 기대 때문에 은퇴도 못했다”는 그는 호텔사업이 대우의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정되면서 심각한 위기감에 빠져있다.“이 문제를 김회장에게 직접 물어 본 일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문화사업을 못하게 될까봐 그게 더 안타깝다”는 심정은 숨기지 않는다. 모계 3대를 잇는 명문호텔 경영과 문화 후원자에의 꿈을 접고 따뜻한남쪽지역에 로즈가든을 가꾸겠다는 노후 계획을 앞당겨 실천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있는 정회장.그의 IMF위기는 허약한 토대의 국내 문화예술계에는 한층 어두운 그림자로 되돌아 올 공산이 크다.
  • 장물처리 분배과정서 틈 생겨…절도범 김강용-김영수 관계

    '사건 뒤에는 여자가 있다.''범죄 동업자는 서로간의 의심속에 공멸한다.' 이번 고위층 자택 전문절도범 사건도 이같은 범죄세계의 법칙에서 예외가아닌 듯싶다. 간 큰 도둑 김강룡(金江龍·32)씨와 공범 김영수(金永洙·47)씨의 동거녀들은 친구 사이였다.김영수의 동거녀 나모(41)씨가 친구 김모(41)씨를 지난해초 김강룡에게 소개했다.두 집은 경기도 안양시 석수3동의 한 아파트에 이웃해서 우애좋게 살았다.여인들은 남자들이 훔쳐온 장물을 보관,처리하는 내조(?)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러나 장물처리 과정에서 두 집안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다.김영수가 범행 뒤 장물분배 과정에서 자기몫을 챙기고 나서 다시 김강룡의 물건을 사들여 되파는,중간 장물아비 노릇을 해 이중의 수익을 올리면서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 나씨도 장물보관에만 그친 김여인과는 달리 반지와 밍크코트 등 여성물품장물 처리에 수완을 발휘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안양시내 술집에서 일당들에게 고가로 술을 팔아 미움을 샀다. 결국 장물 처리에서 계속 손해(?)를 보고있다고 생각한 김강룡은 김영수와 결별하기로 마음먹고 지난달 16일 김여인에게 부산으로 이삿짐을 옮기도록했다.같은 날 자정 마지막으로 김영수와 손을 ‘맞추다’ 검거됐다. 이들이 검거된 3일 뒤인 19일 경찰이 김영수 집과 김강룡 승용차를 압수수색했을 때 무려 273점의 장물이 나와 수사관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장물에는 고가의 물방울 다이아와 밍크코트,각종 서화,한병에 130만원을 호가하는양주 ‘루이13세’ 등이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김강룡의 집도 급습했으나 이미 이사간 상태였고 휴지통에서 ‘영수형을 못믿어서 반지 2개를 확인하러 간다’는 메모만 발견됐다.
  • “IMF 어려움 속 內助에 감사”

    “아이가 독립심이 약한데 어떻게 하면 좋지요” “앞으로 자녀혼수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29일 낮 12시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 강당.30∼40대 주부들이 申樂均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질문 공세를 폈다. 이날 행사는 IMF의 어려움 속에서 내조를 해온 직원 가족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남편의 일터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문화부가 마련한 가족과의 대화시간으로 서기관,사무관 부인 135명 가운데 맞벌이 등을 제외한 전업주부80여명이 참석했다. 申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직원들이 급여삭감,조직개편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의 힘이 컸다”며 가정을 굳건히 지켜준 아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그러나 직원 가족들은 여장관을 상대로 가정교육 등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부딪치는 문제에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자녀들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세요”,“남편을 비판하십시오,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는 마세요” 교육학 박사인 申장관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녀 양육,‘남편 다루는 법’ 등 비법을 털어놓았다. 구조조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미리 불행에 대해 예단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가능하면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자”면서 “장관 영역 밖의 일이지만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대화의 시간은 연극인 孫淑씨의 특강,궁중유물전시관 및 미술관 관람,경내 산책 등으로 오후 3시쯤 끝났다.
  • 쌍끌이협상 계속 難航

    한·일 두 나라는 16일 도쿄 수산청에서 양국 수산당국자회의를 속개했으나 일본측의 새로운 요구에 대한 양측 입장 차이가 커 협상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한국측 朴奎石차관보와 일본 나카스 이사오(中須勇雄)수산청장은 15일 밤늦게까지 한국 어선의 일본 수역 내 쌍끌이조업 허용에 따른 일본측 요구사항 등을 놓고 조율을 시도했다.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해양부 관계자는 “일본 수역에서 쌍끌이조업을 허용하는 데는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대신 이서(以西)저인망의 우리측 수역 내조업규제 완화와 복어반두업을 허용해줄 것을 요구해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쌍끌이 조업가능 배 숫자와 관련,양국은 그동안 제시한 100척(한국)과 50척 이하(일본) 안을 놓고 절충을 벌여‘합리적인 두자리수’로 정하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수치는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어획쿼터도 대략 1,800t 내외로 하기로 했으나 조업가능 수역과 관련한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고 해양부 당국자가 전했다. 복어 및 갈치 채낚기조업의 경우 허용방침을 재확인한 뒤 구체적인 조업수역에 대한 절충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오는 19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의 방한일정을 감안해 가급적 17일 중으로 협상을 마무리짓고 일부 미합의 쟁점은 곧 열리는 양국 어업공동위원회에서 재론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 [항공사고 왜 잦나]경직된 조직문화(上)

    연달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지는 항공여객기 사고로 국민들이 불안하다.왜 우리나라 항공사에 유달리 사고가 잦은가.그것도 특정사에 집중되어일어나는가.항공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진단한 뒤 대안을 모색해 본다. “인명피해가 없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지난해 8월 5일 도쿄발 서울행 KAL여객기가 김포공항에서 활주로 이탈사고를 낸 뒤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대한항공 최고경영자가 한 말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10월 15일 잇단 항공사고로 건교부로부터 중징계를 받자김포공항에서 자사의 조종사·정비사를 모아 놓고 대대적인 ‘안전결의대회’를 가졌다.이 최고경영자는 행사의 의미를 묻는 취재진에게 “언론에서 (사소한 일을 갖고) 하도 호들갑을 떠니까 ‘우리는 이렇게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두려는 거지”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언론이 때리니까 하는 수없이 한다’는 투였다. ▒내탓 아닌 네탓 풍토 최고경영자부터 기술진에 이르기까지 대한항공의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건교부 관계자는 “대한항공에는 자기반성이란 게 없다.사고가 나면 항상다른 데서 원인을 찾는다.97년의 ‘괌 사고’ 원인을 관제미숙으로 돌렸고지난해 8월 김포공항 활주로 이탈사고도 돌풍 때문이라고 발뺌했다.이런 식의 책임회피가 쌓여 또다른 사고를 일으키는 단초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교통개발연구원 관계자는 “항공기 사고의 잠재원인이 경영층의 안전의식이 확고하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최고경영자가 말로만 안전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이윤추구에 집착하면 조직원들은 안전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조직문화 대한항공의 경직된 조직 분위기도 문제다. 직원들은 “경영진이 현장을 다녀가고 난 뒤 남는 것은 징계와 지적사항 뿐”이라는 볼멘소리를 한다.경영진의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한 현장에서경영진을 곱게 볼 리가 없다. 조직의 비대화·관료화로 일방통행식 업무지시가 성행하면서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공무원 조직보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풍토에 대해 건교부해당 공무원들조차 혀를 내두른다. ▒땅에 떨어진 사기 대한항공은 지난해 델타항공에 200억원을 주고 국내 조종사들의 기량 평가를 의뢰했다.이전까지 외국조종사들이 들어오면 국내조종사들이 교육을 시켰는데 하루아침에 입장이 바뀌었다.대한항공 관계자는 “사기를 먹고 사는 조종사들 사이에 모멸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전했다.여기에다 올해 초에는 인력구조조정에서 180명의 정비사가 퇴출당하고 괌사고 이후 모두 70여명의 조종사도 떠났다.건교부 관계자는 “위압적인 회사분위기 속에서 경영진과 직원들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며 사기가 떨어진 것이 잦은 사고 발생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朴建昇 ksp@
  • 한나라 진통끝 재·보선후보 확정

    한나라당이 오는 30일 서울 구로을 재선거와 경기 시흥 보궐선거 후보로 구속된 李信行전의원의 부인 趙恩姬씨와 張慶宇 당 홍보위원장을 사실상 확정했다.4일 총재단회의 추인에 이어 5일 당무회의 의결을 거칠 예정이다. 후보선정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막판까지 저울질을 거듭했다.당내 이견을조율하느라 진통도 겪었다. 특히 趙씨의 후보 선정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섰다.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李전의원의 이미지가 새정치를 지향하는 당의 정치 이념이나 노선에 배치된다는 주장이 만만찮았다.金德龍부총재를 비롯한 개혁 성향 인사는 “차기 총선이나 정체성을 감안,지더라도 명예롭게 지는 길을 선택해야한다”며 난색을 표했다.그러나 끝내 외부영입이 여의치 않자 李會昌총재가‘차선의 대안’으로 趙씨를 낙점했다. 최근 옥중(獄中)남편을 대신해 ‘명예회복’에 나선 내조자는 지난 92년 14대 총선 당시 李鶴捧전의원의 부인 李雪惠씨,94년 ‘8·2보궐선거’당시 朴哲彦의원의 부인 玄慶子씨 등이 있다.李씨는 밀양에서 낙선했지만 玄씨는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됐다.특히 李씨는 유세 현장에서 동정표를 얻기 위해 딸과 함께 소복 차림으로 읍소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지도부는 한때 시흥에서도 고(故)諸廷坵의원의 부인 申明子씨가 나서도록설득했으나 申씨가 고사했다.미국에 체류중인 孫鶴圭전보건복지부 장관에게도 ‘S 0 S’를 보냈다.그러나 孫전장관은 3일 李총재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당내 후보경선에서 張위원장을 누르고 공천을 얻었는데 이번에도 張위원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마당에 또다시 내가 나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며 완곡하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 그늘진 곳 소리없이 어루만지기/李姬鎬 여사 청와대 1년

    대통령부인 李姬鎬여사의 내조 1년도 金大中대통령의 환란(換亂)극복처럼어려움의 연속이었다.李여사의 주요 활동은 우리 사회의 그늘지고 어두운 현장을 돌보는 것에 집중돼 있다. 李여사는 지난 1년동안 119회의 행사에 참석하고 4,680여명을 면담했다.이가운데 70%가 실직가정,해외입양아,탈북주민 격려와 결식아동 돕기,장애인격려,여성관련 행사가 대종을 이뤘다.이러한 활동은 지난해 10월 결성된 ‘사랑의 친구들’이라는 사회복지운동 단체의 명예총재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李여사의 활동은 의례적인 격려사나 읽고 돌아오는 겉치레가 아니었다.지난해 말 부산에서는 수백가구를 직접 찾았고,서울 봉천동 산동네 행사에서는영하 10도의 날씨 속에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30여가구에 직접 떡과 고기를돌렸다. 李여사 활동의 또다른 영역은 말그대로 ‘내조’다.金대통령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이나 저녁식사를 李여사와 단둘이 한다.이 자리에서 金대통령이 미처 챙기지 못한 신문과 방송의 사회·문화면 기사내용을 들려준다.주요 신문기사를 손수 스크랩하기도 한다.여성이나 어린이 정책에 대해서는 종종 의견을 내놓을 때도 있다. 또 다섯 차례에 걸친 金대통령의 해외공식 순방에 동행,방문국가의 어려운이웃을 찾아 金대통령을 측면지원했다.옛 해외유학의 경험을 살려 영어와 일어를 구사할 수 있어 측면지원의 효과가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梁承賢 yangbak@
  • 2차 정부조직 개편 어떻게-외교부 통상교섭본부 과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올 초 ‘정부의 2차 조직개편^251의 핵심문제가운데 하나다. 통상교섭본부나 경제부처들 모두 통상교섭본부 설치 이후 대외통상교섭의창구가 단일화됐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경제부처와 외교부간의 주도권 다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예전에는 어느 부처가 대외협상을 주도할 것인가를놓고 정말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다.韓悳洙본부장은 작년 한·미 자동차협상타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측 책임자와 핫라인을 열어놓은 채 본부장이 전권을 갖고 협상팀을 지휘한것이 빠르고 실속있는 타결이 가능했던 주요한 배경'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혁혁한 전과에도 불구하고 통상교섭본부의 빛을 바래게 하는 요인이 도처에 존재한다.‘머리만 있고 손발이 없는 기형적인 조직^251이란 지적이 가장 먼저 다가온다.산자부가 재계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를,재경부는 금융업계를 끼고 있는 데 비해 통상교섭본부는 ‘실물기반' 이전혀 없는‘나홀로' 부처다.그러다보니 실물에 근거하지 못한 ‘탁상정책'이 나올 수 있고 손발이 부족해 정책의 집행능력이 떨어질 우려도 있다.따라서 통상진흥과 통상마찰 예방,투자유치란 통상교섭본부의 임무를 고려할때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는 공기업 KOTRA를 산자부 산하에서 떼어내 편입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하지만 산자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작년 6월에는 金鍾泌총리 주재 회의에서 KOTRA 국내조직은 산자부,해외조직은 외교부 재외공관에서 관장하는 것으로 어중간한 ‘타협'을 보기는 했다. 이와함께 통상교섭본부의 대내외적 위상이 명확하지 못하다는 점도 태생적한계다.현재 본부장의 지위는 장관과 차관의 중간.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대외경제정책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형편이다.안에서 이렇게 취급받으니 밖에서도 힘을 받기 어렵다.양자 통상장관 회담 때도 해당국이 다소 머뭇거리는측면이 있을 수 있다. 통상교섭본부장이 국내외적으로 통상의 총수가 되기 위해선 명실상부한 장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洪淳瑛외교부장관도 최근 ‘1부처 2장관제'를 들고 나왔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우군은 보이지 않는다.행자부와 경제부처,청와대 관계자까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고개를 젓고 있는 실정이다.현재로서는 이번 정부 조직개편에서 외교부안이 반영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외교부내 통상과 정무가 ‘따로 노는' 어색함도 문제.차관이 정무만 담당하는 등 정무와 통상의 결재라인이 다르기 때문이다.정무조직이 본부장에게본부장이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하지만 그냥 참고용일 뿐 의무는 아니다. 이러다 보니 부족하나마 통상교섭본부의 손발이 돼야 할 재외공관중 일부의경우,‘경제외교'란 절박한 외침이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실정이다.통상교섭 본부의 한 국장은 '투자유치 지시를 거듭해서 내리지만 재외공관중 10∼20%정도는 아직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토로한다.외교부의 구상대로 ‘차관도 본부장에게 보고하는' 결재라인의 통합이 필요한 사안. 재경부와 산자부에서 통상교섭본부로 옮겨온 50명 가운데 상당수는 재외공관 근무를 희망하고 있지만 ‘외교관' 신분이 아니어서 아직도 꿈일 뿐이다.'외교통상직'으로직렬통합이 이뤄져 통상직 공무원도 재외공관에 나갈 수있어야 ‘경제외교'가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秋承鎬 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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