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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7개월 버틴 시리아 난민 캐나다 망명 허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7개월 버틴 시리아 난민 캐나다 망명 허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7개월을 버텨 온 시리아 난민 하산 알콘타르(37)가 캐나다로부터 망명 허가를 받아들었다. 다마스쿠스 남쪽 수웨이다 출신으로 에콰도르와 캄보디아에도 망명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알콘타르는 최근 두 달 동안 구금센터에서 지냈는데 26일(현지시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무슬림연맹과 캐나다 케어링 소사이어티의 도움으로 망명 허가를 받아 밴쿠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캐나다 케어링 소사이어티의 로리 쿠퍼 자원봉사자가 지난주 이런 소식을 들었다며 “엄청나게 다행스러운 소식이라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공항에서 그를 껴안을 때까지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부침도 많았고 어마어마하게 긴 여정이었다”고 반색했다. 그의 변호인도 망명 허가를 받았음을 확인한 뒤 그가 캐나다로 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캐나다 연방 이민국은 사생활 보호를 들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캐나다 케어링 소사이어티가 만든 온라인 모금 사이트를 통해 많은 후원이 쏟아졌고 6만 2000여명이 서명한 청원서가 캐나다 이민국 국장에게 전달됐다. 그는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일어났을 때 아랍에미리트(UAE)의 보험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군 복무를 이행하지 않아 여권을 경신하지 못했고 체포당할거나 군대에 끌려갈까 두려워 귀국하지 않고 불법체류하다 2016년 체포됐다. 지난해 새 여권을 얻어 시리아와 비자 면제 협정을 맺은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말레이시아에 3개월 여행 비자를 얻어 도착했다. 비자가 만료된 뒤 터키로 가려 했으나 탑승이 거부돼 캄보디아로 향했지만 또다시 말레이시아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렇게 공항 도착 터미널에서 7개월을 버티며 승무원들이 먹다 남긴 음식들로 굶주림을 면해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난민 76만명과 더불어 사는 요르단… 일부선 “내 일자리 잃을라”

    [글로벌 인사이트] 난민 76만명과 더불어 사는 요르단… 일부선 “내 일자리 잃을라”

    서너 살쯤 된 난민 사내아이가 지난 13일 요르단의 자타리 시리아 난민 캠프 초입에서 기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맨발이었다. 자신과 다른 외모의 한국 기자가 신기했던 것일까. 숱 많은 속눈썹 아래 까만 눈동자가 기자를 응시했다.기관총을 어깨에 맨 요르단 군인들 십수명이 지키는 출입구 바리케이드를 지나 캠프에 발을 디뎠다. 캠프는 거대한 도시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컨테이너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기자를 안내한 유엔난민기구(UNHCR) 관계자는 “자타리는 요르단 최대 난민 캠프다. 현재 난민 8만명이 산다”고 말했다. 컨테이너 집 외벽에는 색색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UNHCR 관계자는 “난민들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난민 범죄 심각하지 않아 캠프 치안을 담당하는 알 수디 요르단 시리아 난민국 대령은 “요르단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직후부터 인도주의적 이유에서 난민을 수용했다. 난민들이 시리아 국경에서 가까운 자타리에 모여들었다. 요르단 정부는 2012년 7월 자타리 캠프를 정식으로 열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난민 캠프 내부 범죄율은 요르단의 다른 도시와 비교했을 때 보통 수준”이라면서 “국경에서 보안검사를 거쳐 난민을 받는다. 지금까지 테러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캠프 내 학교와 별개로 난민들의 교양 교육, 여가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커뮤니티센터’에 들어갔다. 센터는 방 1개짜리 건물 대여섯 개로 구성돼 있었다. 이 가운데 한 개 건물은 전시장이었다. 시멘트 벽면에 난민들이 그린 그림을 걸었다. 울 것 같은 눈으로 캔버스 밖을 응시하는 소년, 한쪽 다리를 잃은 어린이 등을 그렸다. 내전의 아픔이 전해졌다. 그림을 그린 탐만 알나벨시(26)는 “시리아에 돌아가면 군대에 징집되고 싸우다 죽을 것”이라면서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내전으로 형 죽어···시리아로 안 돌아가” 센터에서 나와 22세 청년 아흐마디 살림의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10평이 채 안 되는 컨테이너 집에는 거실, 침실, 화장실이 있었다. 살림은 “2013년 시리아에서 탈출했다. 내전으로 형을 잃었다. 다른 형제는 옥살이를 하고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요르단에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오후 5시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거리에 불이 하나 둘 켜졌다. 서방 언론이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빗대 ‘샹젤리제’라고 부르는 자타리 캠프 내 시장이 난민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UNHCR 관계자는 “자타리에 상점이 3000개쯤 된다”고 했다. 이튿날 아즈락의 시리아 난민 캠프를 방문했다. 아즈락 캠프 관계자는 “자타리는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캠프다. 아즈락은 자타리가 포화상태에 이른 2014년 4월 건립했다. 아즈락은 자타리의 문제점을 보완해 계획적으로 지었다”면서 “최대 12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지금은 약 4만명이 머문다”고 밝혔다. 아즈락은 컨테이너 가옥 배치부터 정연했다. 자타리에 비해 아즈락 난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타리 난민들은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악수를 청했다. 아즈락 난민들은 좀처럼 미소를 보이지 않았다. UNHCR 관계자는 “아즈락에는 국경을 건너다가 요르단 정부에 억류되는 등 고초를 겪은 난민들이 모여 있다. 경계심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아즈락 커뮤니티센터는 자타리의 그것보다 더 컸다. 입구에 커다란 일장기가 걸려 있었다. UNHCR 측은 “일본 정부가 아즈락 내 커뮤니티센터 4개를 다 지어줬다”고 말했다. 센터 중심에는 축구장이 있었다. 남학생 몇몇은 헤진 운동화를 신고 뛰었고 몇몇은 맨발로 달렸다. 굳은 얼굴로 캠프 거리를 걷던 학생들은 축구장에서는 웃음을 보였다. 축구장 옆 건물에서는 가수 싸이의 대표곡 ‘강남 스타일’이 흘러나왔다. 문을 열어보니 청년 너댓 명이 웃통을 벗고 역기를 들었다. 운동 중인 한 청년에게 “한국 기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이 음악을 틀은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다. 평소 운동할 때 강남 스타일을 즐겨 튼다”고 답했다. 아즈락에는 그럴듯한 병원이 있었다. 난민 20여명이 복도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병원 관계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 5일 운영한다. 하루 평균 200명의 난민을 진료한다”면서 “의사 3명, 인턴 1명, 간호사 8명이 있다. 큰 환자가 발생하면 응급차를 불러 인근 큰 병원으로 옮긴다”고 말했다. 자타리와 아즈락 캠프가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가는 것은 국제사회의 도움 덕분이라고 UNHCR 암만 사무소에서 만난 스테파노 세베레 요르단 대표가 말했다. 그는 “지난 10월까지 요르단에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각국의 공여금 1억 9750만 달러(약 2236억원)가 전달됐다”면서 “하지만 내전의 장기화로 각국의 피로도가 쌓여 공여금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우려했다. 세베레 대표는 “요르단에는 정부 추산 130만~150만, UNHCR 추산 76만명의 난민이 산다. 이 가운데 80%가 요르단 도시에서 요르단인과 어울려 살아간다”면서 “요르단 청년 실업이 83%에 이를 정도로 사정이 심각하다. 일부 정치인이 난민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다행히 요르단인들은 난민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지역사회와 난민의 갈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난민들 요르단인과 공존 과연 도시 난민의 삶은 어떨까. 지난 15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 거주하는 예멘 난민 가정 두 곳에 들렀다. 할리마(45·여)는 가족과 함께 근근이 산다. 할리마는 “UNHCR의 지원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 가정부 일을 가끔 하지만 일이 별로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내전으로 아들 하나를 잃었다. 남은 아들과 두 딸의 목숨이 걱정돼 2015년 도망쳤다”면서 “난민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한국에 간 예멘인들도 전쟁이 아니었다면 결코 한국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마의 어머니 아틀리아 후세인(72)은 “내전이 끝나면 눈 깜빡할 사이에 예멘에 돌아가겠다. 예멘의 공기와 흙 모두 다 그립다”면서 “아들들이 예멘, 사우디, 쿠웨이트, 이집트에 흩어져 있다. 걱정된다”며 울먹였다. 또 다른 예멘 난민 하마드(60) 역시 생활고를 호소했다. 그는 “나는 심장질환 때문에 일할 수 없다. 아들이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실업난이 심해 취직이 안 된다. 한국에라도 가고 싶다”면서 “우리 가족은 예멘에서 행복했다. 내전 때문에 예멘에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서 난민이 되는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난민 일자리 제한… 암암리 타 직종 취업도 하지만 시리아와 이라크 등 주요 무역국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요르단의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난민을 바라보는 요르단의 시선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운송업에 종사하는 40대 요르단 남성은 “난민들은 그럭저럭 살만한 것 같다. 그들은 요르단인 절반 임금만 받고 일해 그나마 직장을 구한다”면서 “이러다가 내 일자리까지 빼앗길까 걱정된다. 난민들을 시리아로 되돌려 보내자는 것은 아니지만 착잡하다”고 토로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법적으로 난민들은 건설업, 농업, 요식업, 수공업 등 4개 업종에만 종사할 수 있다. 요르단인과 일자리 경쟁을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암암리에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난민들이 있어 요르단인들이 속앓이를 한다. 한 시리아 난민이 프리랜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한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전했다. 글 사진 자타리·아즈락·암만(요르단)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뉴스 in] 요르단 최대 난민 캠프를 가다

    [뉴스 in] 요르단 최대 난민 캠프를 가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직후 난민들은 인접국 요르단으로 몰려들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추산 요르단 내 난민은 시리아·이라크·예멘 등에서 온 76만명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난민이 요르단인과 평화롭게 공존한다. 비결은 무엇일까. 예멘 난민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를 두고 한국 사회가 한 차례 몸살을 앓은 가운데, 요르단 자타리·아즈락 캠프의 난민과 암만의 도시 난민을 만났다.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덩치가 커졌다’고 오만불손하게 구는 중국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덩치가 커졌다’고 오만불손하게 구는 중국

    남의 나라 장관실에 무단 난입하고, 회의 도중 박차고 나가질 않나, 국제행사 진행을 가로막거나, 만찬장에서 술주정을 하질 않나, 그리고 토론회에서는 깽판을 치고…. 중국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잇따라 안하무인 행태를 보이는 바람에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AFP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지난 17일 오후 폐막을 앞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 외교관 4명이 공동성명 초안에 불만을 품고 개최국 파푸아뉴기니의 림빈크 파토 외교장관실에 난입하는 APEC 사상 초유의 소동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관들은 이날 파토 장관에게 2분만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며 막무가내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면서 장관실에서 나오는 추태를 보였다. 파토 장관은 여러 차례 중국 대표단과의 만남을 거부했다며 “(의장국) 외교장관으로서 중국과 단독으로 협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중국 측 관리들도 이것을 안다”고 말했다. 파푸아뉴기니 외교관들은 “협박을 하고 있다”며 중국 외교관들의 행태에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중국 외교관들은 공동성명 초안의 ‘우리는 모든 불공정한 무역 관행 등을 포함해 보호무역주의와 싸우는 데 동의했다’는 문장 중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라는 대목을 문제로 삼았다. 이 대목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사용한 용어라고 주장하며 공동성명 채택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을 뺀 20개국 정상들은 모두 찬성했다. 미·중 간 갈등 때문에 1993년 APEC 정상회의 창립 이후 처음으로 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앞서 9월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에서 열린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서 중국 외교관들이 연설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스 주재 중국대사를 지낸 두치원(杜起文)은 회의 도중 기후변화와 관련해 연설하려고 나섰지만, 회의를 주재한 바론 와카 나우루 대통령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중국 대표단은 회의장을 떠나기 전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시끄럽게 회의장 주변을 성큼성큼 걷기도 했다. 분이 꼭두까지 난 와카 대통령은 중국 대표단이 “무례했다”며 힘으로 작은 섬나라를 위협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큰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협박하려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구 1만 3000여명, 면적이 서울시 성동구(16.8㎢)보다 조금 큰(21㎢) 소국 나우루는 중국 측의 갖은 회유에도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은 회의를 앞두고 비자 문제로 나우루와 중국 간에 이미 한 차례 신경전이 벌인 바 있다. 나우루 정부는 PIF 회의에 참석하는 중국 대표단에 외교관 자격으로 비자를 주는 대신 개인 자격 비자를 발급받으라고 해 중국 측을 분노케 했다. 중국 대표단은 지난해 5월 호주 퍼스에서 열린 국제회의인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ey Process) 개막식에서도 대만 대표단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한 데 불만을 품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중국 대표단은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이 소개되고 원주민식 환영행사가 진행되려는 순간 자신들의 앞자리에 놓인 마이크를 이용해 회의 진행을 가로막았다. 중국대표단은 대만 대표단을 겨냥해 회의장에 공식 초대받지 않은 인사가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문제를 제기한 뒤 한동안 항의해 회의장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아프리카국가 대표들이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대만 대표단의 참석을 계속 문제삼자 회의는 차질을 빚었다. 현장에 있던 호주 참석자들은 중국 대표단이 행위에 대해 “정말 역겨웠고 놀라웠으며, 아주 부적절했으며 무례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호주 외교부 대변인은 호주가 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선례에 따라 대만 기업을 초청했다며 “중국과 다른 나라 대표단의 반대로 대만 측 초청을 철회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막 행사에서 계속된 혼란은 유감스러운 일로 호주 정부의 우려를 호주 주재 중국대사에게 전했다”라고 강조했다. 킴벌리 프로세스는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에서 채굴돼 불법거래되는 다이아몬드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와 업계 관계자가 참석하는 회의로 2003년 처음 열렸다. 중국 외교관 출신인 사쭈캉(沙祖康)은 2010년 9월 유엔 사무차장(경제·사회 담당) 재임시절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술주정을 부리는 바람에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휴양지 알프바흐에서 진행된 만찬행사장에서 참석자들이 건배를 하는 순간 술에 만취해 반 총장과 행사 관계자들에게 술에 만취해 막말을 내뱉어 물의를 빚었다. 이를 목격한 유엔 관계자들은 당시 사 사무차장은 “반 총장이 나를 제거하려 했으며, 또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 총장을 향해 “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뉴욕에 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가, 다시 유엔을 사랑하게 됐으며 반 총장에 대해 몇 가지는 존경하게 됐다고 말하는 등 15분 가량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의 한 관계자는 당시 10여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이때 반 총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술주정을 받아주며 만찬을 계속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파르한 하크 유엔 대변인은 사 사무차장이 이와 관련해 반 총장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며 그가 반 총장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것을 불공정하다고 여겨 바로잡으려고 하다가 실수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 전 사무차장은 2006년 BBC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입 닥치고 조용히 있는 게 훨씬 낫다”는 과격한 발언을 하는 등 외교관답지 않은 거친 화법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 관영매체 기자도 나서서 막무가내식 행태를 보였다. 지난 9월말 영국 런던 버밍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영국 보수당 인권위원회와 영국 NGO 홍콩워치가 공동 주최한 ‘홍콩의 자유, 법치, 자치의 약화’라는 주제의 토론회는 기자가 깽판을 치는 바람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홍콩워치 공동 설립자인 베네딕트 로저스가 “중국은 홍콩반환 때 (중국과 홍콩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라고 했던 것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 행사를 취재하러 온 중국 중앙방송(CCTV) 쿵린린(孔琳琳) 런던특파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신은 거짓말쟁이, 반중(反中)분자다. 당신은 중국의 분열을 바란다”고 고함쳤다. 이어 행사에 참석한 리주밍(李柱銘) 홍콩 민주당 창당 주석, 우산혁명 주역 베니 타이(戴耀延) 홍콩대 교수 등 홍콩 인사들을 향해 “나머지도 모두 반역자이자 꼭두각시”, “가짜 중국인들”이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사회를 맡았던 피오나 브루스 보수당 의원이 쿵 특파원의 모욕적인 발언에 퇴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당신들은 (나를 퇴장시킬) 권리가 없고 영국엔 민주주의가 없다”, “나는 기자이고 항의할 권리가 있다”고 외치며 한사코 퇴장을 거부했다. 뭄싸움이 벌인 에녹 류는 트위터에 “그를 데리고 나가려 했더니 ‘자신을 침묵시키려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내 뺨을 두 차례 때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쿵 특파원은 출동한 현지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돼 일반 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과 CCTV는 성명을 통해 “언론 자유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단지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는 이유로 중국 기자가 이런 봉변과 모욕을 당한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보수당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전쟁도 멈췄던 드록神, 20년 축구인생 멈췄다

    전쟁도 멈췄던 드록神, 20년 축구인생 멈췄다

    첼시의 전설이자 세계 최고 공격수 EPL 득점왕… 대표팀 A매치 65골 中·터키·미국 거쳐 올 시즌까지 뛰어‘푸른 피’(첼시)의 상징이자 아프리카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40·코트디부아르)가 20년 정든 그라운드에 작별을 고했다. 드로그바는 22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는 “지난 20년은 내게 엄청난 시간이었다. 내 축구 인생을 여기서 끝내기로 결정했다. 옆에서 지켜준 가족들과 모든 이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이제 다음 여정을 그리려 한다”고 말했다. 은퇴는 예고된 일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SL) 2부리그 피닉스 라이징에서 뛴 그는 지난해 여름 “팬들에게 우승컵을 주고 평화롭게 떠날 생각이다.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현역 은퇴를 암시했다. 일부에서는 현역 연장설이 있었지만, 그는 말을 바꾸지 않았다. 6세 때 삼촌을 따라 프랑스로 이주한 드로그바는 유소년 팀을 거쳐 1998년 프랑스 르망에서 프로선수의 삶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리그앙(1) 갱강으로 이적해 처음으로 1부 리그를 밟았다. 이후 드로그바는 승승장구했다. 2004년 올랭피크 마르세유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로 이적한 드로그바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특히 큰 경기마다 엄청난 존재감을 보이며 팀에 많은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EPL 네 차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한 차례, 축구협회(FA)컵 네 차례, 리그컵 세 차례 우승을 일구며 첼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6~2007시즌과 2009~2010시즌 두 차례 EPL 득점왕에 오른 그는 축구 하나로도 평화를 일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에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을 올려놓은 뒤 내전을 겪고 있는 조국에 “잠시만이라도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해 얼마 뒤 실제로 휴전이 선포되고 이듬해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기적과 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코트디부아르 대표로는 102차례 A매치 출전에 65골을 넣었으며 2014년 유니폼을 벗었다. 드로그바는 전성기가 지난 2012년 중국 슈퍼리그 상하이 선화로 이적해 축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터키를 거쳐 2014~2015시즌 첼시로 복귀했다. 과거에 견줘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올 시즌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그는 지난 9일 루이빌시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선발 출전했는데, 이 경기가 선수로 뛴 마지막 경기가 됐다. 첫 첼시 이적 당시 2400만 파운드(약 346억원)의 몸값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를 보란 듯이 넘어 ‘첼시의 전설’로 남은 드로그바는 “누군가 너의 꿈이 너무 크다고 이야기하면 고맙다고 말한 뒤 그것을 바꾸기 위해 더 열심히 그리고 영리하게 일해라. 항상 자신을 믿어라”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언도 함께 남겼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시리아 알레포 어린이들의 ‘산타’, 기부금 유용해 철창행

    시리아 알레포 어린이들의 ‘산타’, 기부금 유용해 철창행

    내전으로 얼룩진 시리아 북서부 알레포 어린이들에게 각종 장난감을 나눠줘 ‘알레포의 산타클로스’로 알려진 핀란드인이 기부금을 유용한 혐의로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핀란드 헬싱키 지방법원은 21일(현지시간) 시리아계 핀란드인 라미 아드함(45)에 대해 자신이 세운 자선단체의 기부금을 유용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고 영국 BBC 방송이 전했다. 알레포 시민들은 아드함을 ‘알레포의 장난감 밀수꾼’으로 불렀다. 음식과 약품, 장난감이 가득 든 자루를 등에 지고 알레포를 찾아오는 모습이 밀수꾼 같아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자루를 여는 순간 아드함은 산타클로스로 변신해 인기를 끌었다. 아드함은 알레포에서 태어났지만 10대 때 핀란드로 이민을 가 핀란드에서 줄곧 살았다. 대학 졸업 후 작은 건강식품업체를 운영하던 아드함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보고는 “동포들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 없다”며 2012년부터 홀로 시리아 구호 활동에 나섰다. 처음에는 사비를 털어 음식과 약품을 사들였다. 아드함은 알레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전달하게 된 배경에 대해 “3살배기 딸 야스민이 ‘내 바비인형도 전해주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딸의 말을 들은 그는 즉시 곰인형과 바비인형 60여개를 사들고 터키 국경 근처 난민캠프로 갔다. 알레포 어린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현재 핀란드에서 시리아 지원단체 ‘수오미 시리아’를 운영하는 그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시리아를 찾았다. 구호물품과 장난감 구입비는 기부금으로로 충당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이 이어지는 알레포로 70~80㎏이 넘는 장난감 자루를 짊어지고 들어가는 일은 위험의 연속이다. 하지만 핀란드 사법당국은 그가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수오미 시리아에 기부된 돈 일부를 빼돌려 개인적으로 썼다고 밝혔다. 기부금 34만 달러(약 3억 8000만 원) 중 7만 달러(약 8000만원)는 핀란드 한 지역 농장의 오두막을 짓는 데 쓰였고, 또 일부는 터키에서 만든 그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또 그가 모금에 필요한 허가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드함이 알레포 아이들에게는 산타클로스였지만, 탈세, 마약 범죄, 폭행 전과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故허수경 시인을 추억하며… 22년 만에 다시 나온 ‘모래도시’

    故허수경 시인을 추억하며… 22년 만에 다시 나온 ‘모래도시’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재출간도“외국 사람만 사는 하늘 아래에 외국 사람만 걷는 거리에 외국어로만 사용해야 하는 자리에 다시 가서 살지는 말아 주길.”(이병률 시인 추도사 중) 일찍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 그리움을 노래했던 고 허수경(1964~2018) 시인. 지난달 3일 세상을 떠난 시인의 49재에 맞춰 소설과 산문집이 재출간됐다. 각각 22년, 13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오는 ‘모래도시’(문학동네)와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난다)다. ‘모래도시’는 시인의 첫 장편소설이다. 마치 시인처럼 고향과 가족을 떠나 독일의 한 대학에서 만난 세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렸다.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에서 고대근동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 속에는 서울을 떠나 독일로 유학 간 ‘나’, 천체망원경으로만 보이는 머나먼 곳을 꿈꾸는 ‘슈테판’, 내전 중인 레바논을 떠나 기원전의 사람들이 동경했던 이상향 딜문을 지금 여기서 그리는 ‘파델’이 등장한다. 셋 다 비슷한 듯 다른 시인의 분신들이다.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는 2005년 첫 출간 당시 제목이 ‘모래도시를 찾아서’였다. 오리엔트의 폐허 도시 바빌론을 중심으로 고대 건축물 발굴 과정에 참여했던 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시인은 책에서 전 인류의 역사를 막론하고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 불멸을 탐한 인간 욕망의 부질없음을 탓한다. “모래먼지 속 모래먼지가 될 제 운명을 예견이나 한 듯, 발굴터에서 써 나간 이 아픈 기록들은 시인의 유서로도 읽히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출판사 측 설명이다. 지난 20일 경기 고양 북한산 중흥사에서 열린 시인의 49재에는 동료 문인들과 독자 50여명이 참석했다. 김민정 시인은 송사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삶과 죽음이 섞인 바둑돌처럼 뒤섞인 채 흔들리다 가는 게 삶인가. 그걸 언니가 알려 준 것 같아서 기쁘다”고 말했다. 함성호 시인이 스무살 이상 나이 차가 나는 김지하 시인을 ‘지하형’이라 불렀던 시인을 추억하며 “뻔뻔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말할 땐 간간이 웃음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어지는 함 시인의 말엔 모두들 조용해졌다. “나는 왠지 당신이 뮌스터에 있어서 좋았다. 아파도 모르는 곳에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위로할 수 없는 곳에 있어서 좋았다. 너무 먼 곳이었으니까.” 먼 곳에서 더욱 먼 곳으로 떠난 이의 넋을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달랬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참혹한 예멘 내전… 뼈만 남은 소년

    참혹한 예멘 내전… 뼈만 남은 소년

    10살짜리 예멘 소년 가지 살레가 19일(현지시간) 예멘 남서부 타이즈의 알무다팔 병원 침상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을 드러낸 채 누워 있다. 영양실조에 걸린 소년의 몸무게는 8㎏에 불과했다. 지난 1일에는 예멘의 참혹한 현실을 상징했던 7세 소녀 아말 후세인이 끝내 영양실조로 숨져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국제아동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날 2015년부터 시작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동맹군과 후티 반군의 내전으로 인해 예멘 어린이 8만여명이 아사했다고 발표했다. 타이즈 AFP 연합뉴스
  • 美 CIA “카슈끄지 살해 배후는 왕세자”결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를 지시한 인물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라고 결론을 내리자 이란에 대응해 중동 질서의 주요 축을 이루던 미국과 사우디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산불 피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했다는 CIA 보고와 관련해 “가능한 일”이라며 “CIA의 판단은 아직 시기상조로 19~20일쯤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상세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에 대해 “대통령은 CIA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사우디 정부의 카슈끄지 살해에 대해 비난하면서도 그동안 사우디 왕가에 대해서는 비판을 삼가해왔다. CIA는 빈살만 왕세자와 형제인 칼리드 빈살만 주미 사우디 대사가 카슈끄지와 했던 통화 내역을 토대로 카슈끄지의 살해를 지시한 인물은 왕세자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칼리드 대사는 지난달 카슈끄지가 살해당하기 전 전화를 걸어 그의 안전을 보장한다며 터키의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으로 가서 서류를 수령하라고 말했고 이 내용은 고스란히 CIA에 도청됐다. CIA의 판단은 빈살만 왕세자가 사소한 문제까지 챙기는데다 그의 개입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분석에 근거한 것이다. 이에 주미 사우디 대사관 측은 “이는 거짓이며 칼리드 대사는 카슈끄지의 터키행과 관련한 어떤 논의도 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사우디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시선이 싸늘해지면서 압박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15일 카슈끄지 피살 사건과 관련된 사우디 인사 17명에 대해 자산동결, 거래금지 등 경제제재를 단행했고, 미 상원은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지하고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가 주축이 된 연합군 전투기에 대한 미국의 재급유를 금지하는 제재법안을 발의했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석유 감산을 타진한 사우디에 증산할 것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사우디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원유를 지난 7~8월 하루 100만 배럴에서 이달 들어 하루 60만 배럴 수준으로 줄이는 등 미국의 유가 하락 압박에 맞서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을 제재하는 국면에서 수니파 맹주이자 이란의 적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이 미 언론의 평가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17일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면서 “미국과 사우디의 중요한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계속해서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임신했다고 병원비 더 내?”…일본 ‘임신부 가산금’에 저출산 대책 역행 시끌

    “임신했다고 병원비 더 내?”…일본 ‘임신부 가산금’에 저출산 대책 역행 시끌

    일본에서는 올 봄부터 병원 외래진료에 대해 ‘임신부 가산금’ 제도가 생겼다. 임신부에 대해 진찰·처방을 받을 때 병원비를 더 내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임신부 지원은 못해줄망정 추가요금을 받는 것은 저출산 대책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임신부 진료에는 약 처방 등에 있어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18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임신부 가산금 제도는 올 4월 신설됐다. 초진에는 750엔(약 7500원), 재진에는 380엔이 추가로 의료기관에 지불된다. 건강보험 자기부담를 30%를 적용할 경우 환자들이 실제로 더 내야 하는 금액은 초진 약 230엔, 재진 약 110엔이다. 야간이나 휴일에는 금액이 더 커진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있는지를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도쿄에 사는 임신 5개월의 여성(34)은 “동네 피부과에서 머리 가려움증에 대해 진찰을 받았는데, 명세서에 ‘임신부 가산(초진)’이라고 적혀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마이니치에 말했다. 현재 임신 중이라고 말하자 의사는 “약을 약하게 지어주겠다”며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럼 말했지만, 모든 환자에 대해 배려하는 것은 의사로서 당연한 것인데 왜 임신부에게만 비용을 더 요구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트위터 등 SNS에는 “저출산 대책 차원에서도 임신부의 부담은 줄여야 한다” 등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테현의 29세 여성은 “안과에서 콘택트렌즈 처방을 받을 때에도 임신부 가산을 적용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로부터 관련 설명 등은 전혀 없었고 돈만 더냈다”며 분개했다. 제도를 도입한 후생노동성은 “합병증·감염증에 대한 대응, 적절한 약의 선택 등 임신부에 대해서는 한층 각별한 배려가 요구된다”며 “보수를 좀더 내더라도 의료 지원을 더욱 충실히 하자는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의료사고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임신부 진찰을 꺼리는 의료계 분위기도 감안됐다. 니가타현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는 의사(55)는 “임신부 진료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가산금은 필요하다”며 “이와 관련해 환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하는데,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인 제도 홍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후생노동성은 이달 초부터 각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임신부 가산금에 대한 안내전단 배포를 시작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전 직원에게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권총 지급한 미국 중소기업 눈길

    전 직원에게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권총 지급한 미국 중소기업 눈길

    미국의 중소기업 사장이 전 직원들에게 올해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권총 한 자루씩을 지급해 입길에 올랐다. 15일(현지시간) 미 캔자스 지역 매체인 위치타 이글 등에 따르면 위스콘신주의 작은 도시 호튼빌에서 강화유리컵을 제조하는 ‘벤샷’은 정규직 직원 16명 전원에게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권총을 지급했다. 벤샷은 위스콘신주법을 준수하기 위해 권총을 직접 지급하지는 않는 대신 총 8000달러 어치의 ‘기프트 카드’(상품권)을 직원들에게 나눠 주고 각자 권총을 구매하도록 했다. 대신 1인당 500달러(약 55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각자 자유롭게 총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총기 안전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전체 16명의 직원 중 이미 권총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장총을 샀고, 이 가운데 두 명은 처음에 거절했다가 안전 교육을 받은 후 권총을 구매했다. 벤샷 소유주인 벤 울프그램은 “모든 직원들이 자신들이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기를 원했고, 이런 취지에서 권총은 완벽한 보너스였다”고 자신했다. 이 기업이 보너스로 총기를 준 건 자사 제품과도 연관성이 있다. 이 업체가 제조하는 강화유리컵은 총알이 날아와도 깨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품은 양주잔·와인잔·맥주잔 등이며 주 구매자들은 주로 경찰이나 군인이 많다. 직원 중 상당수가 퇴역한 베테랑 군인 출신들이다.아마존 쇼핑몰에서 벤샷의 유리잔들은 ‘최상급’으로 평가 받을 정도로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덕분에 2015년 공방 형태의 가족 기업으로 설립된 벤샷은 3년 만에 정직원 16명을 둔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인 첼시 프리스트는 권총 보너스에 대해 “우리 모두를 강하게 느끼도록 해주고 안전하게 지켜줄 최고의 선물”이라고 흡족해했다. 울프그램은 “권총 보너스가 지역 사회에 알려진 후 항의도 꽤 받았지만 오히려 전 직원이 무장한 상태가 돼 더 안전해졌다”며 개의치 않았다. CBS는 통상 미국 기업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평균 비용은 1인당 79달러(약 9만원) 정도라고 전했다. 미국은 전 세계 국가 중 개인의 총기 소유를 활성화하고 있다. 전미총기협회(NRA)는 미국인 5500만명이 개인 총기를 보유한 것으로 본다. 2016년 하버드대 등의 조사에 따르면 개인 보유 총기 수는 2억 6500만개로 추정되는 데 내전을 겪은 예멘인들보다도 더 많다. 최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교 회당과 캘리포니아주 오크스 술집의 무차별 총격 살인과 같은 총기난사 사건은 1991년 콜로라도 컬럼바인 고교 참사 이후 매년 미 전역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정민 지음, 글항아리 펴냄) 오랜 세월 다산 정약용을 연구해 온 저자. 그의 기운을 받고자 내려간 전남 강진에서 뜻밖의 저술을 만난다. 200여년간 다산의 책으로 알려졌던 ‘동다기’, ‘상두지’의 원저자를 찾는 10여년의 고증 추적기를 그렸다. 436쪽. 2만 2000원.의사가 뭐라고(곽경훈 지음, 에이도스 펴냄) 때론 환자에게 냉정하고, 동료 의사들에게도 ‘악당’을 자처하는 괴짜 의사의 의학 에세이.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보호자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왜곡된 문화와 정서를 꼬집기도 하고, 의사 사회의 잘못된 권위 의식과 직업 윤리의 부재도 질타한다. 252쪽. 1만 5000원.경관기행(정기호 지음, 사람의무늬 펴냄) 옛 사진에 담긴 시선과 기억을 좇아온 정기호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여행 이야기. 포항, 상주, 통영, 경주, 서울 등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더듬 찾아가며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풍경과 아직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을 모두 기록했다. 272쪽. 1만 5000원.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에마뉘엘 제라르·부르스 쿠클릭 지음, 이인숙 옮김, 삼천리 펴냄) 60년 전 아프리카 최초로 콩고에 민주공화국을 세운 파트리스 루뭄바(1925~1961)의 죽음과 그 파장을 그린 책. 그의 죽음은 신생 독립국에서 나타나는 권력투쟁과 내전, 열강의 각축, 낡은 제국주의의 뿌리를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404쪽. 2만 3000원.평범한 미덕의 공동체(마이클 이그나티에프 지음, 박중서 옮김, 원더박스 펴냄) 인권, 자유, 평등, 민주주의. 세계가 경제적으로 통합되면서 ‘세계 윤리’라 불리는 가치들도 사람들 내면에 침투하고 있는 것일까. 통합카네기국제문제윤리위원회가 100주년 프로젝트로 미국 뉴욕과 LA,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등 세계 7개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 도덕적 선택의 순간에 어떤 가치를 따르는지를 살펴봤다. 367쪽. 1만 8000원.아름다움의 선(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창비 펴냄)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영국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의 작품. 퀴어 소설로는 처음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평범한 가정의 게이 청년 닉과 마거릿 대처 시대의 전형과도 같은 페든 가족 사이에 흐르는 내밀한 긴장을 축으로 영국 상류층의 위선과 모순, 닉과 주변 동성애자들의 현실적인 삶을 그린다. 680쪽. 1만 7000원.
  • “故 이태석 신부는 세계의 영웅” 남수단 교과서에 수록

    “故 이태석 신부는 세계의 영웅” 남수단 교과서에 수록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선종한 고(故) 이태석 신부의 삶이 내년부터 현지 교과서를 통해 전해진다.15일(현지시간) 남수단한인회와 현지 매체인 주바 모니터 등에 따르면 남수단 교육부는 지난 9월 이태석 신부의 삶과 업적을 담은 교과서를 발간해 내년 2월 새 학기에 맞춰 일선 학교에 보급하기로 했다. 이 신부에 대한 기술은 남수단 고등학교 시민생활 교과서에 2장에 걸쳐 실렸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는 3장에 걸쳐 다뤘다. 두 교과서는 이 신부의 출생부터 학창시절, 남수단에 와 봉사하게 된 과정 등 그의 삶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아울러 고인이 청진기를 들고 어린이들을 진찰하는 장면과 암 투병 중 병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모습 등 그를 추모할 수 있는 여러 사진들도 수록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인종·종교적 분쟁이 남수단인 약 200만명을 숨지게 했지만 그는 도움이 필요한 어떤 이들의 고통도 덜어줬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신부가 종교를 가리지 않고 치료했다고 평가했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이 신부가 극심한 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던 남수단 톤즈 마을의 주민을 위해 헌신했고, 그는 남수단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의 영웅으로 기억된다고 헌사했다. 남수단 교육부는 2015년부터 이 신부를 교과서에 수록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는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데 헌신했지만 정작 자신은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2010년 48세라는 너무나 이른 나이로 세상과, 남수단 톤즈 사람들과 작별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양날의 칼, 중국의 ‘돈폭탄’ 외교/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양날의 칼, 중국의 ‘돈폭탄’ 외교/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와중에서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40조 달러(약 4경 5500조원)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상품과 서비스를 수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시 주석은 얼마 전 ‘제1회 중국 국제수입박람회’에서 “시장 개방을 통해 15년간 상품과 서비스 수입이 30조 달러, 10억 달러를 각각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해마다 2조 6700만 달러어치를 수입해야 하는 셈이다. 지난해 수입액은 1조 8420억 달러 정도다.시 주석은 9월에도 아프리카 발전을 위해 600억 달러의 자금 지원 계획을 밝혔다. 이 중 150억 달러는 무상이고 200억 달러는 무이자와 저리의 우대차관이다. 중국 기업들이 1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아프리카개발기금 100억 달러와 수입융자기금 50억 달러도 제공한다. 아프리카 재해 구호를 위해 10억 위안(약 1630억원)을 쾌척하고 식량도 무상 원조한다. 그는 7월 중동에도 대규모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아랍연맹을 위해 20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16억 달러를 무상 원조한다. 아프리카와 중동에 약속한 지원액이 900억 달러를 훨씬 넘는다. 중국의 ‘돈폭탄’ 투하는 ‘세계 리딩 국가’라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무역전쟁의 대미항전 우군을 확보한다는 복안이지만 과거 경험에 비춰 보면 후폭풍이 엄청나다는 게 문제다. 중국은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으로 경제가 피폐화된 1950~60년 아시아·아프리카에 40억 위안을 쏟아부었다. 28억 위안은 무상이고 12억 위안은 무이자나 우대차관이었다. 1958년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40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어 나가는 판국에도 소련에 지지 않으려고 지원에 앞장섰다. 더군다나 1960년에는 대외원조 전담 부서인 대외경제연락국을 신설하기도 했다(프랑크 디쾨터, ‘마오의 대기근’). ‘혈맹’ 북한에 대한 지원도 아낌없다. 1951~65년 대북 지원액은 6억 1350만 달러다. 4억 5000만 달러가 무상이고 1억 5750만 달러는 유상이다. 일제 36년 피눈물의 대가로 받은 대일청구권자금 5억 달러(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보다 많다. 1958~60년에는 방직 염색과 시멘트, 베어링, 진공관 공장 등 29개 프로젝트 건설도 지원했다(진징이·진창이, ‘한반도 통일이 중국에 미칠 편익비용 분석’).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2강’인 G2로 불렸다. 2011년 경제 규모가 세계 2위 일본을 넘어서자 중국 내에서는 언제쯤 미국을 앞설지 점치며 한껏 들떴다. 하지만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폭탄에 중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중국 내에서 미국과의 전면전은 무모하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글로벌 패권을 차지하는 앞날을 기대할 수는 있다. 중국이 지난 40년간 덩치를 키우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중국 내부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더미 등 초미의 현안이 산적해 있고, 대국이 갖춰야 할 ‘국량’도 한참 못 미친다. 적어도 지금은 덩샤오핑(鄧小平)이 내건 ‘도광양회’(韜光養晦·능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를 견지해 나아가야 할 때다. khkim@seoul.co.kr
  • 하루만에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휴관 백지화

    하루만에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휴관 백지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고궁)의 휴관을 둘러싼 해프닝이 하루만에 끝났다. 대만 고궁측은 “2020년부터 3년동안 휴관하겠다”는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정부 대변인까지 나서 휴관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는 등 부산을 떨기도 했다. 대만 빈과일보는 14일 천치난(陳其南) 고궁 원장이 전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타이베이(台北) 소재 고궁 본관의 3년 휴관 계획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천 원장은 커즈언(柯志恩) 국민당 입법위원이 입법원에서 지난 12일 공개한 고궁 3년 휴관 계획에 대해 당시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없어서 해프닝(오해))이 일어난 것같다고 해명했다. 그는 휴관은 고궁 보수 및 증축 시 하나의 선택 사항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고궁이 꼭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고궁이 건축된 지 50년이 넘어 지붕에 균열이 생기고, 에어컨 등 설비와 전시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보수 및 증축 계획을 준비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천 원장은 고궁 측이 국보를 민진당의 지방선거에 이용한다는 여론에 대해 고궁 보수 및 증축 계획은 예전부터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대만인들은 “(고궁을) 휴관하려면 우선 입법원, 법원, 총통부부터 휴관하자”, “머릿속에 온통 선거뿐”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만 행정원 콜라스 요타카 대변인은 고궁 보수와 증축 기간에 휴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연합보 등 대만언론은 고궁이 내부공사를 위해 고궁 본관을 3년간 휴관하고 전시물은 서남부 자이(嘉義)현 타이바오(太保)시에 자리한 고궁 남부분원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전날 보도했다. 이 때문에 대만 여행업계가 충격에 빠지는 등 논란이 커졌었다. 고궁이 휴관할 경우, 연간 500만명 가량의 관광객이 줄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고궁은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국민당이 국공내전 패배로 대만으로 쫓겨가면서 중국에서 옮겨온 70여만 점의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美, 이란 이어 러시아 추가 제재 착수… 신냉전 고조

    美, 이란 이어 러시아 추가 제재 착수… 신냉전 고조

    美국무부, 의회에 러 추가 제재 진행 통보 트럼프, 푸틴과의 11일 회담 연기 시사도 美정찰기·러 전투기 충돌 위기 등 긴장감미국 국무부가 이란에 이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착수했다. 지난 3월 영국에서 화학무기로 러시아 출신의 망명자를 독살 시도한 사건이 명분이지만 미·러 정상회담 연기, 흑해에서의 일촉즉발 군사 충돌 가능성 등 마찰이 고조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1991년 제정된 ‘생화학 무기 통제 및 전쟁 종식법’에 따라 러시아에 화학무기 사용 중단을 약속하고 국제사회의 사찰을 받아야 하는 90일간의 유예기간이 이날로 끝났다”면서 “화학무기를 사용한 러시아가 이 법을 지키지 못한 사실을 의회에 통보했으며 이에 따라 추가 제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미 국무부는 러시아 정부가 영국으로 망명한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에게 유독 신경작용제 ‘노비촉’을 사용한 것으로 결론짓고 지난 8월 러시아의 안보 관련 품목·기술의 수출을 금지하도록 제재를 가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90일 내 국제사찰 수용을 약속하지 않으면 추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 밖에도 2016년 미 대선 개입,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등을 이유로 러시아에 다양한 경제 제재를 시행 중이었다. 애초부터 러시아가 화학무기 사용을 인정하고 미국의 사찰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미 의회의 대러 강공책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트 러시아 총리는 당시 “미국의 제재 움직임은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전쟁 선포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러시아와의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 탈퇴를 선언한 후 미·러 양국 간에는 신(新)냉전 기류가 팽배해졌다. 오는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돌연 “파리에서 회담하게 될지 확신할 수 없고, 아마 (이달 말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회담 연기를 시사했다. 같은 날에는 러시아 인근 흑해 상공에서 비행 중인 미 해군 정찰기에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가 25분 동안 초근접해 충돌할 뻔한 상황도 벌어졌다. 미 해군이 “러시아군이 국제공역에서 무책임하게 행동했다”고 비판하자 러시아 국방부는 “우리 영공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밖으로 유도했다”고 반박하는 등 앞으로도 우발적 충돌이 재현될 여지를 남겼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여기는 남미] 수녀 되려다 성인물 배우 된 미녀 “신앙은 안 버렸어요”

    [여기는 남미] 수녀 되려다 성인물 배우 된 미녀 “신앙은 안 버렸어요”

    한때 수녀가 되려다 성인물 배우로 전업한 미모의 콜롬비아 여성이 당당하게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유디 피네다(28)가 바로 화제의 주인공. 피네다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록 수녀의 꿈은 접었지만 매주 성당에 나간다"며 "지금의 직업에도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네다는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주 이투앙고의 한 원주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2살 때 가족이 내전을 피해 이주하면서 그가 자란 곳은 우라바다. 독실한 가톨릭가정에서 자란 피네다는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에 들어갔다. 자주 학교를 방문하는 수녀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수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피네다는 수녀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으려 수도회에 들어갔다. 10살 때의 일이다. 이후 8년간 수도회에서 수련을 받았다. 피네다는 "당시 너무 너무 만족한 생활을 했다"며 진짜 수녀가 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수도회에서 나오게 된 건 교리를 가르치는 남자교수와 사랑에 빠지면서다. 사랑을 위해 꿈을 접기로 한 그는 결단을 내리고 수도회를 나왔다. 이후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다국적 식품업체 네슬레에 근무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하지만 인생은 또 반전됐다. 네슬레에 다니며 알게 된 한 영화감독으로부터 콜롬비아 최초로 BJ(인터넷방송인)를 위한 대학이 설립됐다는 말을 듣게 된 것. 호기심에 이 대학에 들어간 그는 과정을 마치고 성인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성인배우의 길로 접어든 건 이때부터였다. 피네다는 현재 주당 20시간 정도 일을 한다. 이렇게 일하면서 벌어들이는 돈은 매월 5000달러(약 562만원) 정도다. 성인물 산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피네다는 신앙을 버리진 않았다. 매주 금~일요일은 빠지지 않고 성당에 나간다. 피네다는 "내 직업을 알게 된 신부님이 여러 번 조심스럽게 전업을 권유했지만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며 "지금의 모습으로도 성당에 나가면 큰 기쁨을 누린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당당하고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직업과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콘피덴시알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양귀비 문양 거부한 마티치 “열두 살 때 공습 떠올라서요”

    양귀비 문양 거부한 마티치 “열두 살 때 공습 떠올라서요”

    “그 문양을 보면 열두 살 때 마을에 폭탄이 떨어졌던 일이 떠올라서요.”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타 네마냐 마티치(30·세르비아)는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본머스와의 원정경기를 2-1로 이겼을 때 유일하게 유니폼 상의에 양귀비 문양을 달고 뛰지 않아 팬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양귀비 문양은 영국의 1차대전 전사자를 추모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5일 인스타그램에 성명을 발표해 1999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군이 코소보 땅에서 세르비아 군을 축출하려고 벌인 공습을 양귀비 문양이 연상시킨다며 오는 11일 현충일에 열리는 맨체스터 시티와의 더비에도 문양을 달고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티치는 “사람들이 왜 양귀비 문양을 달고 뛰는지 전적으로 이해하고 모든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전적으로 존중하며 내전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누군가의 고통도 공감한다”면서도 “어릴적 겁에 질렸던 기억이 떠올라 내가 양귀비 문양을 달지 않을 권리도 갖고 있음을 절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귀비가 영국인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을 해치거나 누군가를 공격할 의도가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이유에서의 결정”이라며 자신의 결정을 이해해 앞에 놓인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영국재향군인회는 “양귀비 문양을 다는 결정은 개인적 선택 사안”이라고 밝혔다. 사실 지난 주말 잉글랜드 챔피언십 경기에 양귀비 문양을 달지 않고 나선 이는 또 있었다. 제임스 매클린(29·스토크시티)은 미들즈브러와 0-0으로 비겼을 때 자신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던 관중 일부를 겨냥해 “교육받지 못한 동굴 거주인”이라고 거친 표현을 소셜미디어 글에 쏟아냈다가 축구협회(FA)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하나의 중국’ 부정하는 대만인… 독립국가 명문화엔 반대

    조심스런 태도는 여전… 85%가 “현상 유지” 대만 국민의 68.2%는 “대만과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정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 또 68.6%는 차이잉원 정부가 중국의 압박에 관계없이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생존 공간 확보’를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지지했다. 이런 입장은 대만정치대 선거연구센터가 정부 산하 대륙위원회의 위탁을 받아 지난 8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반영돼 있다. 이 조사에서 ‘대만 자결권’과 관련, 응답자의 82.9%는 “대만의 미래와 양안관계는 대만인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답했다. 이는 과거와 달리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만인”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 준다. 1949년 국공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갔던 외성인(外省人) 세대가 사라지고 대만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만 토종’의 내성인들이 늘면서 이런 경향도 커졌다. 1989년 대만의 계엄령이 풀리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란 세대들이 대만의 주축을 이루면서 정체성의 변화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응답자의 85.8%는 “넓은 의미에서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등 조심스런 태도였다. 대만이 중국과 전혀 별개의 나라임을 공식 선언하거나 헌법 등을 고쳐 이를 명문화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미다. 1947년 공포된 중화민국(대만) 헌법에는 대만의 영토 규정을 “고유 강역으로 한다”는 모호한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대만 독립론자들은 이를 “대만 섬과 그 부속 도서”라고 명확하게 고치고, “중국과 별개의 나라임을 세계에 선언하자”는 입장이다. 한편 중국의 대만에 대한 관광객 제한으로 2015년 418만명을 넘었던 대만을 찾은 중국 관광객들은 2016년 351만명, 2017년 273만명으로 급격하게 줄고 있다. 대만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41%에 달하며, 동남아(18.5%)·미국(11.7%)이 뒤를 이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수단 난민 출신 마빌, 호주 대표로 A매치 데뷔골 뽑기까지

    수단 난민 출신 마빌, 호주 대표로 A매치 데뷔골 뽑기까지

    케냐에 있는 수단 난민 캠프의 찰흙집에서 지내던 에이워 마빌(23)이 지난달 호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쿠웨이트와의 A매치 데뷔 경기에서 데뷔골을 뽑아내 4-0 완승에 힘을 보탰다. 수단 내전 때 부모가 탈출해 케냐 카쿠마의 난민 캠프에서 태어난 그의 기구한 인생 역정을 BBC 월드 풋볼 프로그램이 4일(현지시간) 소개해 눈길을 끈다. 배고픔과 비좁은 주거 여건은 매일 가족들이 맞닥뜨리는 문제였다. 찰흙으로 오두막을 세웠는데 서구인들의 보통 주택의 침실 하나 크기에 불과했다. 숨이 막히는 그곳에서 어머니와 동생, 여동생 등 네 식구가 부대끼며 살았다. 유엔에서 배급하는 일인당 1㎏씩의 쌀 4㎏과 콩 3㎏ 뿐이었다. 하루 한끼, 저녁만 먹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하루를 버텨나가는 방법을 찾게 되더라고요. 초라한 저녁 한끼가 주어진 것만으로 감사하게 된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난민 캠프에서 처음 축구 공을 차본 것이 다섯 살 때였다. 하릴이 없어서였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꽂혔다. 두 시간 걸어가면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있어 1달러를 내고 맨유 경기를 봤다. 2006년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주했다. 축구는 영어를 익히고 다른 이와 교감하는 데 유용했다. 열여섯 살 때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 구단에 입단해 호주 A리그를 2년 동안 경험했고 2014년 호주 축구협회(FFA)컵 우승에도 힘을 보탰다.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을 숱하게 경험했다. “한 번은 열여섯 살 때인데, 집에 오는 길에 이웃들로부터 공격을 당했어요. 난 현관 문을 걸어 잠그고 가족들을 숨게 한 다음 ‘꺼지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들은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대꾸하더군요. 그것 말고도, 길을 가는데 지나가던 차에서 경적을 울리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이었어요.” 그런데도 새로운 조국을 대표하는 일은 뿌듯하다고 했다. “저와 저희 가족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줬기 때문이지요. 호주를 인종차별의 나라라고 규정짓지는 않겠어요. 그런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나라는 아닌 거지요. 인생의 절반을 보낸 나라이기에 조국이라고 부르고 대표하는 것이 자랑스럽고요.” 2015년 그는 덴마크 미트윌란으로 이적해 3년 동안 뛰었다. 그리고 지난달 16일 쿠웨이트와의 친선경기에 선발 출전해 후반 43분 골맛을 봤다. 많은 이들로부터 격려 메시지가 쏟아졌는데 어릴 적 영웅 파트리스 에브라의 축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에브라가 맨유에서 뛰던 경기를 보며 자랐는데 그렇게 빅스타가 내게 피드백을 보냈다는 것은 내가 열심히 했고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증명인 셈이었지요.” 마빌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 ‘맨발에서 축구화로(Barefoot to Boots)’을 만들어 카쿠마 난민캠프를 정기적으로 돕고 있다. “축구화와 축구 장비, 병원 용품을 그곳 난민들에게 기부해요. 2주 휴가를 얻으면 그곳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가족과 함께 일주일을 보냅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일은 정말 힘들었지만 내 남은 인생에 은총이 된 것에 감사한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구축하게 만든 고마운 기회였다고 감사히 여기고 있어요.”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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