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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미래차 흙탕물 튀기는 SK·LG 배터리 싸움… 중일만 웃는다

    韓미래차 흙탕물 튀기는 SK·LG 배터리 싸움… 중일만 웃는다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간의 ‘전기차 배터리’ 공방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소송을 소송으로 맞받아치더니 또 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두 배터리 업체가 양보 없는 ‘치킨게임’을 벌이며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대로 가다간 국내 미래차 시장의 경쟁력마저 크게 실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두 업체 간 갈등은 201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에 ‘전지 핵심 인력 채용 관련 협조 요청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LG화학에 다니던 전기차 배터리 담당 직원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것을 ‘기술 유출’로 본 것이다. 이어 LG화학은 같은 해 12월 대전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전직금지 및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영업비밀 유출 우려, 양 사의 기술 역량 격차 등을 모두 인정해 이례적으로 ‘2년 전직금지 결정’을 내리며 LG화학의 손을 들어줬다.양 사의 공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들이 여전히 유출된 영업비밀을 활용해 배터리 개발과 수주전에 나서고 있다고 보고 지난 4월 ‘전지 핵심 인력 채용 관련 협조 요청의 건’ 공문을 다시 보냈다. 이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장을 제출했다. LG화학의 이 소송이 바로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송 난타전의 출발점이다. LG화학 측은 소송장에서 “SK이노베이션은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 인력을 대거 빼 갔고, 이 중에는 LG화학이 특정 자동차 업체와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 인력도 다수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의 배경에는 독일 폭스바겐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전이 있었다. LG화학 측은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11월 폭스바겐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 관련 업무를 하는 직원을 빼내 간 이후 폭스바겐의 전략적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됐다”면서 “기술 탈취가 없었다면 수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SK이노베이션 측은 “폭스바겐의 배터리 물량 수주 시 자동차 생산 공장과 가까운 지역(미국 조지아)에 공장을 짓겠다는 고객사 맞춤식 ‘선수주 후투자’ 전략이 통한 결과”라며 “LG화학 내 폭스바겐 제품 인력이 누군지 알 수 없을뿐더러 접촉한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양 사 갈등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선점 경쟁이 낳은 자국 기업 간 ‘내전’인 셈이다.LG화학의 공세가 계속되자 SK이노베이션은 지난 6월 서울지방법원에 LG화학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영업비밀 침해가 전혀 없었다는 내용의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소송도 함께 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LG화학 직원의 이직은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며 정당한 영업활동이었다”면서 “LG화학의 근거 없는 비난을 더는 묵과할 수 없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30일 LG화학과 미국 내 자회사인 ‘LG화학 미시간’을 미국 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한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LG전자도 연방법원에 제소하기로 했다. 윤예선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 대표는 “이번 제소는 LG화학이 지난 4월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건과는 무관한 핵심 기술 및 지적재산 보호를 위한 정당한 소송”이라며 “LG전자는 LG화학으로부터 배터리 셀을 공급받아 배터리 모듈과 팩을 생산해 특정 자동차 회사에 판매하고 있어 소송 대상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또 “LG화학의 배터리 가운데 상당수 제품이 이번 특허 침해소송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 이번 소송에서 우리가 승소하면 LG화학과 LG전자는 손해배상 등 금전적 부담은 물론 기존 방식으로 수주·공급하는 제품의 생산 중단을 비롯해 배터리 사업 자체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것”이라면서 “LG화학과 LG전자 측이 생산 방식을 바꾸기 전에는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이 소송에서 패소하면 배터리 사업을 아예 접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인 셈이다.LG화학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이 소송에 대한 불안감에 국면 전환을 노리고 불필요한 특허 침해 제소를 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LG화학은 입장문에서 “LG화학의 특허 건수는 1만 6685건인 반면, SK이노베이션은 1135건으로 14배 이상 격차를 보이고 있다”며 “SK이노베이션이 면밀한 검토를 통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인지하고 이번 소송을 제기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LG화학은 그간 여러 상황을 고려해 ITC 영업비밀 침해소송 제기 이외에 특허권 주장은 자제해 왔다”면서 “이번 특허 침해 제소와 같은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가 계속된다면 SK이노베이션이 제기한 소송이 근거 없음을 밝히는 것을 넘어 LG화학의 특허를 침해한 행위에 대해서도 묵과하지 않고 법적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LG화학은 또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 이직자들이 반출해 간 기술자료를 ITC 절차에 따라 제출해야 함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두 회사의 소송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8년 전인 2011년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세라믹 코팅 분리막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SK이노베이션은 해당 특허는 무효라며 반소 성격의 특허무효심판을 제기했다. 당시 한국 특허 당국과 법원에서 이어진 소송전의 승자는 SK이노베이션이었다. 특허심판원과 사법부가 심급별로 여러 차례 “LG화학의 분리막 도포 기공구조는 SK이노베이션의 무기물 코팅분리막 기술과 다른 것”이라고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줬고, 소 제기 3년째인 2014년 두 회사는 서로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전에선 좀더 빠른 합의가 가능할까. 두 회사는 서로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전제 조건이 ‘상대방의 잘못 인정’이어서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임수길 SK이노베이션 홍보실장은 “지금이라도 전향적으로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판단해 대화의 문은 항상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LG화학 측은 “SK이노베이션이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한편 이에 따른 보상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의사가 있다면 언제든지 대화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인력, 기술, 특허, 판로 등을 놓고 경쟁하는 두 회사에 대해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이 최근 몇 년 동안 자국 기업에만 보조금을 주는 보호주의적 정책을 편 탓에 함께 고전했던 한국 이차전지 기업들끼리 비방전을 벌이는 게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로펌 등에 막대한 소송비용을 물어야 하는 데다 두 회사 간 다툼을 중국·일본 등지 기업들이 약진의 기회로 삼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직장인들의 익명게시판인 ‘블라인드’에는 “소송비용이 한 달에 50억원, 최소 2년 이상 법정 공방을 하면 1200억원이다. 그러면 직원에게 최소 600만원의 성과급 지급이 가능하다”, “직원한테 들이는 건 비용이고, 변호사에게 돈 쓰는 건 투자냐”, “로펌 배나 불리는 소송전”이라는 글이 쏟아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양 사 소송비만 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 돈으로 배터리 생태계 발전을 위한 중소기업들 펀드 조성을 하는 게 국익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스리랑카행 여객기 더반에 강제 기착, 타밀족 가족 송환 막아

    스리랑카행 여객기 더반에 강제 기착, 타밀족 가족 송환 막아

    인권 활동가 등 시위대가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밤 멜버른 공항에 들이닥쳤다. 호주에 사는 스리랑카 타밀족 일가족이 비행기에 태워져 스리랑카로 강제 송환된다는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온 것이었다. 스리랑카 내전을 피해 달아난 호주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고 망명을 신청했던 나데살링감과 프리야, 그리고 네 살 코피카, 두 살 따루니카 두 딸이었다. 지난해 3월 경찰이 새벽에 퀸즐랜드주의 시골마을 빌로엘라 집에 들이닥쳐 강제로 구금 센터로 옮겨져 거센 전국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가족이다. 당시 12만명이 가족을 집에 돌려보내라고 요청하는 서명에 참여했다. 그러나 일가족을 태운 비행기는 예정대로 밤 11시에 이륙해 싱가포르를 향해 날아갔다. 변호사들은 법원 판사에게 전화로 송환 중단을 강력히 요청했고, 법원은 다음달 4일 오후 4시 따루니카의 송환에 대한 항소 결정을 내릴 때까지 송환을 잠정 중단하라는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이어 여객기 기장에 연락해 멜버른으로부터 3000㎞ 떨어진 호주 북쪽 끝 다윈에 기착해 일가족을 내려주도록 했다. 가족은 경호원의 경호를 받으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때가 30일 새벽 3시쯤이었다. 당국은 30일에도 여전히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송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피터 더튼 국내부 장관은 “우리나라가 그 가족을 보호하는 데 빚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가족의 망명 신청을 면밀히 검토했으나 당국은 불허하기로 했으며 부모와 코피카의 항소 절차도 실패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카리나 포드 변호사는 “주어진 상황을 고려할 때 부모와 자식들을 떼놓으려 하는 등 아주 비인간적인 짓들을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돕는 앙겔라 프레드릭스는 가족들이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라고 전했다. 그녀는 비행 내내 딸들이 울고 있었으며 엄마 프리야는 애들과 나란히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의원들을 비롯해 많은 호주인들이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분노하고 정부에 최소한의 공감 능력을 보여줄 것을 호소했다. 야당 의원들은 데이비드 콜먼 이민부 장관에게 가족들이 더 체류할 방안을 찾아보라고 요구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차예련 딸 돌사진 공개 ‘미소가 끊이질 않네’ [EN스타]

    차예련 딸 돌사진 공개 ‘미소가 끊이질 않네’ [EN스타]

    배우 차예련, 주상욱 딸의 돌사진이 공개돼 화제다. 30일 차예련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달이나 지났지만 이제 나온 우리 인아 돌잔치 사진 이예용♥ 인아 얼굴을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제 마음데로 올릴수 없어서.. 이해해주세요♥♥ 내전부 주주부녀♥♥ #사랑해요 #주인아♥”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차예련이 딸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주상욱과 차예련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고 있다. 한편, 차예련과 주상욱은 지난 2017년 5월 결혼해 지난해 7월 딸 인아 양을 얻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10년 만에 귀환 직지원정대 추모하며… 청주, 새달 25일 등산화 등 유품 전시회

    히말라야 등반도중 실종됐다 10년 만인 지난달 시신으로 발견된 직지원정대 두 대원의 유품 전시회가 열린다. 박연수(55) 전 직지원정대장은 “다음달 25일이 박종성(당시 42세)·민준영(36) 대원이 베이스캠프와 교신이 끊기며 실종된 날”이라며 “해마다 이날 추모제를 열어왔는데 이번에는 이들의 유품도 전시할 예정”이라고 28일 밝혔다. 그는 “추모비가 세워진 청주고인쇄박물관 인근 실외에 임시 전시공간을 마련하거나 실내전시장을 빌릴 예정”이라며 “유품은 시신 발견장소에서 수집된 등산화, 텐트, 아이젠, 로프, 아이스스크류, 배낭커버 등 10여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고인들은 2009년 9월 23일 직지원정대 일원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히운출리(6441m) 북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이틀 뒤 실종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마오쩌둥의 ‘미국 친구’ 16년이나 복역했던 리텐버그 98세 일기로

    마오쩌둥의 ‘미국 친구’ 16년이나 복역했던 리텐버그 98세 일기로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의 미국인 고문으로 그와 가깝게도 지냈고 미움을 사 감옥에도 두 차례 보내졌던 시드니 리텐버그가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77년 두 번째 중국에서의 수감 생활에서 풀려나 1979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왔던 리텐버그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눈을 감았다고 가족들의 발표를 인용해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고인은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시장을 두드리던 빌 게이츠, 마이클 델 등 미국 기업인들에게 자신이 쌓은 중국 내 인맥을 활용해 조언하는 등의 기여를 했다. 또 중국 전문 가이드 투어 여행사를 차려 꽤 많은 돈도 모았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반항끼 많은 소년이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전공해 만다린에 능통했던 그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군 통역으로 중국 땅을 밟은 뒤 곧바로 국공내전과 공산혁명의 회오리에 휘말려들었다. 1946년 미군을 퇴역한 뒤 중국 공산당원이 된 리텐버그는 46일을 걸어 마오의 연안 장정 행렬에 합류, 통역으로 붉은 군대와 함께 여정을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마오의 이너서클에 가입해 2인자 저우언라이, 류사오치 등 엘리트 지도자들과 교분을 쌓았다. 리던바이란 중국 이름까지 얻은 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으로 결실을 본 혁명의 많은 순간들을 목격했다. 중국 정권의 거의 유일한 외국인 성원으로서 많은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건국 직후 첫 번째 시련이 닥쳤다. 요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이 그를 미국 첩자로 의심해보라고 하자 마오는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리텐버그는 6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오판이라고 뒤늦게 판단한 마오는 1955년 풀려난 그는 중국방송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뒤 라디오 베이징 국장이 됐고, 이따금 스스로 반미 선전 방송에 나섰다. 1958~61년 집단농장으로 이주를 강요해 2000만~5000만명을 굶어죽게 만든 대약진 와중에도 그의 공산당 이념에 대한 맹종은 흔들리지 않았다. 또 1966~76년 문화대혁명에 앞장서 부르조아 근성을 잔인하게 응징하는 홍위병에 가담했다. 하지만 1968년 다시 체포됐는데 이번에는 마오의 아내 장청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다시 첩자 혐의에다 국가전복 모의 혐의까지 덧씌워졌다. 그는 10년 동안 수감 생활을 견뎌야 했고, 부인 왕위린은 노동교화소에서 지냈다. 문화대혁명에 앞장선 것을 뒤늦게 후회했고 2016년 미국의 소리(VOA)인터뷰를 통해 홍콩의 불안한 미래를 우려했는데 작금의 민주화 시위로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갑작스러운 난민 생활, ‘다른 사람’으로 사는 방법

    갑작스러운 난민 생활, ‘다른 사람’으로 사는 방법

    우연히 타국에 나와 있는데, 고국에선 내전이 발발했다. 아버지는 한사코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밖에 있으라고 충고했다. 이국의 낯선 거리를 배회하다 지쳐 결국엔 정치적 망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갑작스럽게 난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알렉산다르 헤몬의 에세이 ‘나의 삶이라는 책’을 읽다 보면 ‘난민이 별 거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6월 한국 사회를 시끌시끌하게 했던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행위처럼 보였다. 그러나 헤몬처럼 개인의 삶으로 환원해서 보면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걷다 교통사고가 난 것처럼, 어느 날 우연히 나의 고국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그 바람에 나는 집을 잃었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태어나 문화 잡지 편집자로 일하던 헤몬은 27세가 되던 해 미국 시카고를 방문했다가 발이 묶인다. 갑자기 난민이 된 그는 그린피스 운동원, 서점 판매원, 강사 등 생계를 위한 다양한 일을 하며 영어를 익힌다. 문학 전공자이자 평생을 말과 글을 무기로 살아온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시련이었다. ‘시카고에 존재하는 법을 아직 몰랐기에 나는 형이상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했다.’(139쪽)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사라예보에서 이슬람교도 친구를 ‘터키인’이라는 말로 울렸던 헤몬은 그 자신이 영원한 이방인이 됨으로써 평생을 ‘다름’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그 결과 얻은 결론은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순간, 타자가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21쪽)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망명, 캐나다 이민 등으로 헤몬 가족에게 “원래는 어디 출신이십니까?”라는 질문은 일상이다. 이에 헤몬은 말한다. “저는 작가 출신입니다” 하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그게 아니라면 “아직 뭐라 말씀드리기엔 너무 이른 것 같네요”(35쪽) 정도로만 대답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에게 이런 질문은 답할 수 없는 의문들이 얽히고설킨 다름의 결정체다. 그렇다면 타국에서의 사무치는 외로움 속, 그를 지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헤몬이 시카고에서 가장 열심히 몰입했던 것은 뜻밖에 이민자 축구 모임이었단다. 이탈리아,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여러 사연을 안고 모여든 이민자들과 패스에 성공했을 때 느껴지는 발끝의 얼얼함으로 외로움을 견딘다고 그는 말한다. 번역서 제목은 원제(The Book of My Lives)보다 다소 심심해 보이지만, ‘이 책=그의 삶’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시리아인 유입에 지친 이스탄불, 2600명에 “오늘까지 떠나라”

    시리아인 유입에 지친 이스탄불, 2600명에 “오늘까지 떠나라”

    터키 이스탄불에 머무르던 수천 명의 시리아 이민 희망자들이 20일(이하 현지시간)까지 이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강제 추방될 위기에 몰렸다. 터키 당국은 제대로 서류를 갖추지 않은 이민 희망자들에게 원래 등록된 지역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일부 시리아인들은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한참 교전이 격화하고 있는 이들립으로 돌아가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며 버틸 각오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또 자신들이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자발 귀환을 다짐하는 서류에 서명하라고 강요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실 자진해서 이 도시를 떠나라는 명령은 지난달 말 내려졌고, 다만 한달 정도 시간을 줬는데 이제 그 말미마저 바닥났다. 마크 로웬 BBC 기자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은 8년 가까이 이어져 360만명 정도의 시리아인이 북쪽의 터키로 탈출했다. 이 가운데 50만명 정도가 이스탄불 체류 허가를 얻었지만 처음 체류를 허가받은 도시에서 이스탄불로 옮겨온 이들까지 합쳐 1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이달 초에 벌써 1만 2000명 정도가 원래 체류 허가를 받은 지방으로 귀환했고, 2600명 이상의 미등록 거주자가 내무부가 운영하는 보호 센터에 머무르고 있다. 이슬람권에서도 상대적으로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터키인들도 이제 시리아 이민들을 계속 포용해야 한다는 여론은 70%에서 40%로 떨어졌다. 에르도안 총리의 집권당이 올해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것도 이런 불만이 쌓인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8년 동안 터키로 들어오는 문은 닫히고 환영하는 기색은 바닥을 드러냈다. 터키 정부는 말로는 시리아로 돌아가길 원하는 이들은 안전하게 터키 군이 호송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시리아인들은 터키군의 호송 행렬은 국경 바로 너머 이들립까지만이라고 불평한다. 19일에도 시리아 정부군이 터키 군의 호송 행렬을 공습해 3명이 죽고 12명 이상이 다쳤다. 물론 이 지역은 지난해 교전하는 양측이 “완충 지대”로 합의한 곳이었지만 최근 시리아 정부군은 완충 지대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수요시위 1400회/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수요시위 1400회/이순녀 논설위원

    집회 3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현장 주변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도 몰려드는 행인의 발길을 막지 못했다. 누군가 나눠준 나비 모양 색종이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시민들의 머리와 어깨에 어느새 노란 나비의 물결이 일렁였다. 어제 정오에 열린 1400회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1월 8일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시작한 지 꼬박 27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이 있던 곳, 지금은 평화의 소녀상이 의연히 자리한 곳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외쳐 왔을 기억과 연대의 함성을 떠올리니 숙연함이 밀려왔다. “일본 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 이거는 바로잡아야 한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나오게 되었소.” 김학순 할머니의 피맺힌 증언은 숨죽여 지내던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연쇄 증언으로 이어졌고, 이는 국제사회에 일본 정부의 반인권적 범죄 행위를 널리 인식시켰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여성단체들은 2012년 12월 대만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 기림일’로 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코소보 등 내전국의 전시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과도 연대하는 등 인권·평화 운동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400회 수요시위에는 해외 11개국 24개 도시의 시민들이 동참해 공감과 지지를 나타냈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법을 제정해 지난해부터서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을 공식 국가기념일로 기리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20명이다. 지난 1월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올해 세상을 떠난 이들만 벌써 다섯 분이다. 남은 생존자들이 더는 억울함 속에 눈을 감지 않도록 가해자로부터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아 낼 책임과 의무가 한국 정부에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에서도 위안부를 부정하는 망언을 일삼는 극우 지식인과 단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내가 증인”이라는 생존자의 외침이 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지 참담할 뿐이다. coral@seoul.co.kr
  • “지울수록 번지리라”… 세계 37개도시 ‘연대의 날갯짓’

    “지울수록 번지리라”… 세계 37개도시 ‘연대의 날갯짓’

    국내 13개 도시 남녀노소 수만명 참가 종이 노란나비 티셔츠·가방에다 붙여 길원옥 할머니 “싸워 승리하자” 격려 성범죄생존자들 “함께한다” 지지 영상 도쿄·나고야·교토 등지서도 공개 증언“일본대사는 늙은이 말 똑똑히 들으세요. 이 늙은이들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죽기 전에 사과하고….”(올해 1월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 “나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얼마나 아프면 저러는지 생각해 주면 좋겠다.”(길원옥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두 할머니가 수요시위에서 했던 외침들은 전시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1992년 1월 시작돼 매주 수요일마다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1400번째 열렸다. 이날은 ‘제7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기도 했다. “죽기 전에 사과하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바람이 끝내 이뤄지지 않았기에 1400번째 수요시위에서도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위안부 동원을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3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수요시위에는 2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해 할머니 곁을 지켰다. 노란 나비 모양의 종이를 티셔츠와 가방 등에 붙인 참가자들은 “끝까지 함께 싸웁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고 외쳤다. 이날 수요시위에 참석한 길원옥(91) 할머니는 “더운데 많이 오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게 승리하는 사람”이라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국내 13개 도시뿐 아니라 일본, 미국, 대만, 호주 등 세계 12개국 37개 도시에서도 1400번째 날갯짓을 함께했다.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있음에도 일본 시민사회는 도쿄, 나고야, 교토 등에서 집회를 열고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던 고 김학순 할머니를 기렸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수요시위가 이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과 세계 각국으로 확대됐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알려준 평화와 인권의 정신에 세계 시민들이 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대만, 북이라크, 짐바브웨, 콜롬비아, 미국, 우간다, 일본 등에서 보내온 연대의 메시지도 수요시위 현장에서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대만 타이베이 여성구제재단은 “대만에는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두 분만 남았다”며 “정의 실현을 위해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이행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성범죄 생존자들의 목소리도 현장에서 울려 퍼졌다. 내전 중 성범죄 피해를 당한 타티아나 무카니레(콩고민주공화국)는 “할머니를 만나 제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학생들의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광주 신가중학교 학생회 학생들은 “중학생인 저희도 잘못하면 제일 먼저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고 배웠다”면서 “(일본은) 미래를 이끌어 갈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자유시 참변’ 또는 ‘자유시 사변’은 1921년 6월 28일 한인부대들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이 자유시에서 무장충돌한 사건을 말한다. 이 결과로 수십명에서 수백명까지의 한인들이 사망했으며 독립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이 사건이 러시아에서 발생하고 한 쪽이 주로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부대이었다는 이유로 공산당이나 러시아가 한인을 속여 독립군을 죽였다는 주장이 강했다.하지만 1990년대에 러시아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됨에 따라 러시아 연구자들과 임경석, 윤상원 등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은 러시아 자료를 사용하여 자유시사변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혔다. 1990년대 이후 나온 연구에 따르면 자유시사변의 주요 원인은 민족해방운동 내부의 권력 투쟁 (특히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 공산당 간의 갈등)과 정치 조직 간의 소통 문제 등이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 학계에서 “독립군을 공산당이 죽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잔재는 야인시대 같은 예술작품에도 나오고, 누리꾼들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애용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자유시 참변은 위키백과에는 “러시아 적색군이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한 사건”으로 규정되었고 나무위키에는 “독립군을 포함한 한인 무장 병력과 소련 적군이 교전을 벌인 사건”으로 나오며 심지어 신뢰성이 비교적 높은 한민족문화백과사전에도 비슷한 서술이 있다. 하지만 1921년에는 소련이 아직 설립되지 않았고 극동지역에는 붉은군대가 없었다. 하지만 자유시 참변은 무엇보다도 권력 욕심과 정세 오판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제1차 세계대전 도중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발생하였으며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를 비롯한 좌익세력들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다. 1918년, 소비에트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백위파)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온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끝내려는 볼셰비키의 결정을 막기 위해 연합국은 군대를 파견해서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내세워 1918년 4월 5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함으로써 러시아에 쳐들어왔다. 일제의 시베리아 출병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지역 한인들은 빨치산부대를 결성하여 볼셰비키의 붉은군대와 함께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최신 무기로 무장한 전투력이 뛰어난 일본군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쟁으로 경제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는 소비에트 정부는 극동지역에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1920년 4월 멘셰비키와 사회주의혁명당 등과 함께 극동공화국이라는 완충국가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극동공화국은 이에 극동에 있던 붉은군대의 부대들과 빨치산 부대, 그리고 극동공화국 정부 편으로 넘어간 전(前) 백위파 부대들으로 구성된 혼합 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 극동공화국은 극동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일본군의 철수에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일제가 지원하는 백위파 군대와 싸우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전략 때문에 일본은 극동지역의 군사 점령을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게 되었으며 주둔군을 유지하는 것도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다.이와 동시에 무장부대 통합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 이후 일제가 실시한 대대적 토벌작전 등으로 한인부대들이 간도에서 러시아령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는 민족해방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21년에 중국과 극동지역에서 무장투쟁 부대 대표 회의를 열어 단일 지휘체계의 구축, 군사학교 설립 등 문제를 논의할 것을 결정했다. 이와 동시에 1921년 1월 15일 코민테른은 극동지역대표부를 설치하고 보리스 슈먀츠키를 대표로 임명하였다. 슈먀츠키는 한인부대를 가능한 한 빨리 극동공화국으로부터 벗어나서 조선 쪽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으며 무장부대들을 통합하기 위해 창설된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위원장으로 조지아 출신인 깔란드라쉬빌리를 파견하였다. 깔란드라쉬빌리는 극좌 무정부주의자로서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극동의 나폴레옹’을 꿈꾸던 그는 슈먀추키와 이르쿠츠크파 빨치산부대장 오하묵, 최고려 등과 함께 한국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공공연하게 벌이려고 했다. 하지만 무기도 병력도 열세인 상태에서 조선을 향해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통솔권을 독점하려던 깔라드라쉬빌리와 오하묵 등 사람들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자유시에 집결한 빨치산 부대들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에트러시아 외무인민위원장 치체린은 1921년 6월 9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한인 빨치산들을 비밀리에 반드시 지원해야 하지만 지금은 (일제에) 공공연한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6월 10일, 볼셰비키의 지도자인 레닌은 이 서한을 보고 당분간 공공연한 행위를 하지 말고 비밀행동에 초점을 맞추라고 하였다. 같은 날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인부대들은 러시아 영토에 머물면서 적극행동에 나서기 위해 적절한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치체린의 제안을 채택했다. 다시 말하자면, 볼셰비키들은 한인빨치산들을 지원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극동지역에서 철수한 후에야 군사행동을 계획해도 좋다고 주장한 것이며 사실상 깔란드라쉬빌리의 모험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깔란드라쉬빌리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참변은 불가피해졌다. 통솔권을 독점하려는 깔란다리쉬빌리는 최고려 등 사람들의 지도를 거부한 한인빨치산들로 구성된 사할린부대와 몇 차례의 타협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깔란다리쉬빌리는 6월 28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소속 자유시 수비대에게 사할린부대를 무장해제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인민혁명군의 최후통첩을 받은 사할린부대 책임자들은 무장해제하지 않고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서 ‘미움받는 사람들’을 축출하면 항복하겠다고 대답했다. 양측은 7시간동안 동안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오후 2시 20분 인민혁명군 병력 1000명과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 속한 한인 병사 300명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30분만인 오후 3시쯤 전선은 평정되었다. 3시 50분 반항하는 병사들이 진압됐고 4시 사랄린부대의 한인들은 백기를 들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오후 8시 17분 전투는 거의 정리되었다. 자유시사변의 사망자는 최소 36명에서 최대 400명으로 추측되지만, 사상자에 대한 신뢰성이 높은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자유시 참변으로 빨치산부대 통합운동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글 사진: 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단독] 국민연금 이사장 “日 전범기업 투자 제한 절대로 안 될 일”

    [단독] 국민연금 이사장 “日 전범기업 투자 제한 절대로 안 될 일”

    “韓이 더 손해… 엄청난 후과 초래할 것 국제적 전범기업 정의와 달라 혼란도 민족감정 따라 움직이는 해결사 아냐 고도로 계산된 제한전쟁 벌여야 승산”국민연금공단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투자 제한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이사장은 13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 전범기업에 투자한 자금이 1조 2300억원밖에 안 되는데, 특별히 득이 안 되니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선언하고 국민적 영웅이 되고 싶은 유혹이 왜 없겠느냐”며 “하지만 전범기업 투자 제한은 엄청난 후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김 이사장은 일본이 맞대응해 경제보복 범위를 금융으로까지 확대할 가능성과 전범기업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투자금을 빼겠다고 선언하고, 일본 연기금도 똑같이 선언하면 우리가 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일본이 조금이라도 투자금을 변동하면 한국 시장이 큰 타격을 입는 취약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약자가 강자와 전면전을 벌이면 약자가 깨지게 된다. 고도로 계산된 제한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 노후자금인 기금을 운용하고 투자하는 공단 입장에선 손해를 봐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설령 투자를 제한하더라도 대상이 될 전범기업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김 이사장은 “세계 연기금들은 최근의 유고 내전, 아프리카 내전 등에 대량살상무기를 공급한 기업들을 투자 배제 리스트에 올리고 있다”며 “과거 전쟁 시기에 동원된 기업은 투자 배제 리스트에 올리지 않는다. 일반적인 세계 연기금의 배제 기준과 우리의 전범기업 기준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즉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전범기업’의 정의가 한국인이 정의한 일본 ‘전범기업’과는 명쾌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전범기업의 정의, 어떤 경우에 투자 배제를 할 것인가, 또는 투자 비중을 줄일 것인가, 오히려 거꾸로 늘릴 것이냐에 대한 세부 규정을 만들어 기금본부 펀드매니저들에게 지침을 주는 등 사회적 합의를 통해 책임투자의 원칙과 기준을 만들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의견을 광범위하게 모으고 있다”며 “이 작업이 진행되는 대로 사회적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김 이사장은 ‘논의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공개적으로 전범기업 문제를 예의주시하면 일본의 압박이 더 커질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그 부분을 많이 우려하고 있다”면서 “외교는 외교로, 정치는 정치로, 투자는 투자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민족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해결사가 아니다”라면서 “가급적 이 이슈를 피해 가겠다는 게 국민연금의 생각이며, 이 해법이 더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걸음걸이만 보고도 무릎관절염 파악할 수 있는 기술 나왔다

    걸음걸이만 보고도 무릎관절염 파악할 수 있는 기술 나왔다

    기계도 오래 쓰면 성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사람의 몸 역시 오래될수록 여기저기 고장이 난다. 대표적인 부위가 관절이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뼈와 뼈가 만나는 관절 부위가 손상되거나 염증이 생기는 관절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는 관절염 진단을 위해서는 엑스레이 사진 판독과 의사의 진단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관절염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코넬대 의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항공및원자력공학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공동연구팀은 걸음걸이를 분석해 무릎관절염의 진행 정도를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와 재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전기전자공학회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IEEE 신경시스템과 재활공학’에 실렸다. 기존에는 무릎 관절염을 엑스레이 사진 판독과 의사 소견에 따라 5등급으로 진단했지만 실제 환자들은 등급과는 상관없이 통증을 비롯한 다양한 증상으로 고통을 겪는다. 이 때문에 좀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진단을 위해 동작분석실이라는 장소에서 고가의 장비를 이용해 장시간에 걸친 데이터를 수집해 무릎 내전 회전힘을 측정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진단비용이 지나치게 비싸 실제 활용도는 떨어졌다. 연구팀은 로봇시스템과 신경생체역학을 결합시켜 러닝머신만 있으면 사용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환자가 걷는 동안 운동기구 발판에 가해지는 힘과 발목의 움직임을 측정해 무릎 관절에 가해지는 모든 힘을 실시간 계산해 관절염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관절에 가해지는 힘과 내전회전힘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올바른 걸음걸이 방법을 알려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관절염 통증을 줄일 수도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강상훈 UNIST 교수는 “이번 기술은 무릎관절염 환자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관찰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수술적 치료와 환자맞춤형 재활훈련을 제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과천시, 지역 내 중소기업 판로 개척 지원

    경기도 과천시가 지역 내 중소기업의 판로 개척과 홍보 활동 지원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시는 국내 전시회 참가하는 기업 4개 업체에 부스 임차료 등 전시회 참가 소요 비용을 최대 400만 원까지 지원한다고 9일 밝혔다. 올해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전시(박람)회에 참가했거나 참가 예정인 지역내 중소기업이 지원대상이다. 시는 기업 업력, 국내외 인증 여부, 기술개발 등 7개 항목에 대한 평가와 심사를 실시해 최종 4개 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다. 선정된 업체에게 부스임차료 100%, 각종 장치 비용의 60%, 홍보비의 60%를 합산해 최대 4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신청기간은 오는 16일부터 23일까지이다. 한편, 과천시는 상반기에도 관내 중소기업 1곳에 대해 국내 전시회 참가비용 400만원을 지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러시아, 핵 폭격기 미국 방공식별구역 침범…미·캐나다 F-22 출격

    러시아, 핵 폭격기 미국 방공식별구역 침범…미·캐나다 F-22 출격

    러 국방부 “훈련 일환으로 공해 수역 비행…국제법 준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 Tu-95 전략폭격기 2대가 미국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방공식별구역(ADIZ)에 무단진입, 미국과 캐나다 공군이 출격해 러시아 측의 비행을 차단했다. 8일(현지시간) CNN 방송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성명을 통해 Tu-95 폭격기들이 이날 알래스카 서부 해안에서 200마일(약 322㎞) 떨어진 방공식별구역 경계선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NORAD는 미 공군 F-22 전투기 2대와 캐나다 공군 소속 CF-18 2대가 즉각 출격해 Tu-95들을 차단했다면서 “(러시아 폭격기들은) 알래스카 서쪽 국제 공역에 머물렀으며 미국과 캐나다 영공에는 진입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이번 근접 비행은 미러 간 관계가 복잡미묘한 시점에 벌어져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란 핵 문제,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분쟁,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 등을 둘러싸고 양국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미러 관계가 냉전 이후 최악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알래스카 해안 서쪽 국제 공역에서는 올해 1월과 5월에도 미국·캐나다 방공식별구역에 러시아 폭격기와 전투기가 진입해 미국과 캐나다 전투기가 차단하는 일이 있었다. 지난 6일에는 러시아의 대잠초계기 2대가 같은 공역을 13시간 동안 비행한 적도 있다. 미군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잠재적 위기 상황에 대한 자국군의 대응 능력을 훈련하고 가상 적국에 대한 위력 시위 차원에서 이러한 비행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역시 러시아 해안 주변에서 간혹 유사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6월에는 유럽 지중해 상공 국제 공역에서 러시아 Su-35 전투기가 미국 해군 초계기 바로 앞을 수차례 고속으로 비행하는 등 진로 방해를 해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날 러시아 폭격기들의 미국, 캐나다 ADIZ 진입과 관련해 러시아 국방부는 “오션 실드 2019 훈련의 일환”이라고 밝혔다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Tu-95MS 미사일 탑재 전략 폭격기 두 대가 오션 실드 2019 훈련의 일환으로 베링해 공해 수역을 비행했다”면서 “비행은 10시간 이상 진행됐고, 특정 단계에선 미군 F-22와 F-18 전투기가 (Tu-95MS들을) 에스코트했다”고 말했다. 북극해와 대서양, 흑해, 태평양 등지에서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장거리 비행 훈련은 타국의 국경을 침범하지 않고 공역 이용에 관한 국제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러시아 국방부는 강조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23일 중국 H-6 폭격기와 러시아 Tu-95 폭격기 및 A-50 조기경보통제기 등 군용기 5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 A-50 1대는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두 차례나 걸쳐 침범했다. 러시아는 당시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고, 국제법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 공군은 F-15K와 KF-16 전투기를 출격 시켜 차단 기동을 펼침과 동시에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 쪽으로 경고사격을 하는 조처를 했다. 오션 실드 2019 훈련은 발트해에서 이달 1일부터 9일까지 진행되며, 전투함 49척과 지원함 20척, 러시아 공군과 해군 소속 군용기 58대가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16년 만에 다시 받을 미국의 파병 청구서… 제2의 이라크戰 될까

    16년 만에 다시 받을 미국의 파병 청구서… 제2의 이라크戰 될까

    미국이 또다시 한국에 공식적으로 해외파병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다국적방위연합체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4일(현지시간) 호르무즈 연합체에 대해 “일본, 한국처럼 이 지역에 이해관계가 있고 상품과 서비스, 에너지를 운반하는 나라들이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차원에서 참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고 미 국무부가 전했다.한국은 미국의 요청으로 2003년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이래 16년 만에 다시 미국으로부터 해외파병 요청을 받았다. 미국의 다국적방위연합체 구상은 최근 이 지역을 운항하는 유조선들이 이란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이란군에 의해 나포되면서 안전이 크게 위협을 받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물론 이란 정부는 유조선 피격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영국 유조선을 나포한 것은 영국이 먼저 이란 유조선을 나포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반박한다. 진실이야 어찌 됐든 간에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이 예전보다 훨씬 더 위험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최고의 유전지대인 페르시아만에서 석유를 실은 유조선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다. ●英 유조선 나포 후 호르무즈 해협 불안 가중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요청을 피할 명분이 별로 없다. 사실 파병을 요청한 미국은 중동산 원유에 별로 의존하지 않는다. 셰일오일 산출량이 크게 늘면서 미국은 자국 소비 석유 가운데 20% 정도만을 중동에서 수입한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액션을 취하는 건 정치적인 이유다. 반면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 역시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80%를 넘는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의 안전은 한일에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호르무즈 해협 사태를 미국에 맡기고 우리는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란과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일본은 미국의 요청이라지만 선뜻 해상자위대를 이란 앞바다에 파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 언론은 일본이 파병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니 미국의 요청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더더욱 무게감을 지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트럼프 파병 요청 거절 쉽지 않을 듯 만일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대로 호르무즈 해협에 병력을 보내게 된다면 우리의 관심은 무엇보다 파병부대의 안전에 쏠릴 것이다. 그리고 안전의 최대 변수는 전쟁 발발의 유무다. 과연 호르무즈 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미국과 이란 간에 전면적인 전쟁이 벌어질 확률은 낮다.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첫째, 미국의 동맹인 유럽이 전쟁을 꺼린다.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에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으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누군가 비용을 나눠 부담해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최대의 파트너가 유럽이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 가운데 누구도 이란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이란 정부와 맺은 핵합의를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왜 유럽은 이란과의 전쟁을 꺼릴까. ‘이라크 학습효과’ 때문이다. 2003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 주도하에 벌어진 이라크 전쟁은 애초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이 쉽게 이라크 정부군을 제압하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전투는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였지만 전후 재건 과정에서 늪에 빠졌다.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주도하는 이라크의 신정부는 정국을 장악하지 못했고 권력에서 밀려난 수니파 병사들이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에 흡수되면서 테러와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라크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 혼란 상태가 지속됐다. 그 과정에서 많은 미군 사상자가 발생했고 미국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계속 늘어만 갔다. 결국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에서 철군을 결정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시리아까지 번지자 이라크에서 세력을 확보한 이슬람 급진단체들은 시리아로 침투해 더욱 기승을 부리며 미국의 안보를 크게 위협했다. ‘이슬람국가’(IS)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장했다. 중동에서의 전쟁과 혼란은 난민을 낳았고, 이 난민들은 유럽으로 밀려들었다. 이와 더불어 이슬람 급진단체를 배후로 하는 각종 테러로 유럽은 공포에 떨었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은 유럽인들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 유럽인들에게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대립은 과거 이라크 전쟁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만일 이란과 미국이 전쟁을 벌인다면 중동 지역이 최대 피해자가 될 테지만, 그다음 피해자는 유럽이 될 수밖에 없다. 대서양 건너에 있는 미국보다 지리적으로 중동과 훨씬 인접한 유럽이 난민과 테러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유럽 국가들로서는 이란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보단 현상 유지를 하면서 핵개발을 통제하는 편이 훨씬 이득인 셈이다. 그래서 독일 등은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방위연합체 대신 유럽이 독자적으로 방위연합체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미국의 호전적인 대이란 정책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개입 땐 미국 일방적 승리 장담 못 해 둘째, 러시아가 이란을 지원할 가능성도 높다. 만일 러시아가 이란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면 전쟁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승리한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라크 전쟁과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다. 과거 걸프전과 이라크 전쟁을 미국이 주도할 때 러시아는 뒷전에 물러나 있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소련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이 갓 집권한 혼란기의 러시아로서는 해외전쟁에 개입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러시아는 중동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과 한 팀이 돼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했다. 이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군과 쿠르드 민병대를 꺾고 결국 시리아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후 이란과 러시아의 관계가 조금 경색되는가 싶었는데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이 긴박해지자 이란 정부는 다시 러시아에 SOS를 쳤다. 그 결과물로 러시아 해군과 이란 해군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군사훈련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타이밍이 모든 걸 말해 준다. 한창 이란을 압박하는 워싱턴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오판하지 말라. 러시아는 이란이 서방세계에 공격당하는 것을 지켜만 보지 않을 것이다.” ●러, 2010년 ‘아랍의 봄’ 사태로 중동에 관심 러시아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중동 정치에 끼어드는 것일까. 돌아보면 2010년 ‘아랍의 봄’이 전환점이었다. 멀리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이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반도에 상륙하더니 시리아까지 뒤흔들었다. 푸틴이 보기에 아래로부터의 반정부 투쟁이 점점 러시아 근처로 몰려오는 모양새였다. 아랍의 독재자들이 넘어지면 다음으로는 이란이나 중앙아시아 국가가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도 안심할 수 없었다. 특히 러시아에는 1500만명이 넘는 무슬림 인구가 있다. 이들이 급진 이슬람주의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 러시아의 내정도 불안해진다. 이에 푸틴은 단호하게 시리아에 개입했다. 전쟁이 아무리 참혹해져도 푸틴의 권좌를 위협하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의 불씨가 러시아로 번지지 못하도록 완전히 꺼 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동시에 아랍의 봄을 빙자해 중동 지역 안보와 경제적 이권에 개입하는 미국과 서방세계의 영향력도 차단하고자 했다. 러시아에 있어 중동은 정치·군사적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안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존재다. 러시아의 최대 수출품목인 천연가스와 석유 가격을 적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러시아 경제의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미국이 중동을 장악해 석유와 천연가스의 국제시세를 의도적으로 낮춘다면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미국의 제재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진 러시아로서는 천연가스와 석유의 가격을 지켜 내기 위해서라도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경제에 긴요한 사안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판단의 결과 러시아는 이란과 함께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했고 시리아 내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됐다. 지상군 투입을 꺼리며 점차 시리아에서 발을 뺀 미국은 중동에서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된 반면 러시아는 중동 정치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과시하는 역외 행위자로 자리잡았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러시아·이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확보한 중동 지역 내 영향력을 잃지 않겠노라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만일 이란이 미국과 서방세계의 영향력에 들어간다면 러시아로서는 턱밑에 칼이 겨누어지는 형국이 된다. 그 위협을 가만히 앉아서 당할 푸틴이 아니다. 만일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이란을 침략하면 러시아는 군사적 개입을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이러한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얻는 이익이나 명분이 러시아와의 충돌을 감수할 만큼 크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셋째, 이란은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오랜 정체성을 간직한 민족국가다. 따라서 외국의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이란의 국민적 저항과 반발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쉽게 이라크와 비교해 보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따라 건국돼 시아파-수니파-쿠르드로 정체성이 삼분돼 있는 이라크와 달리 이란은 최소 500년, 최대 수천년간 ‘페르시아’라는 정체성을 이어 온 민족국가다. 이란인들은 중동의 아랍 국가들에 대해 늘 약을 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희의 국경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만들어 준 것이지만 우리 국경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이라크와 달리 전쟁 이겨도 기대효과 낮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비주류인 시아파 및 쿠르드와 손잡고 지배세력인 수니파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란은 서방국가들이 무력으로 제압한다고 한들 현 집권세력을 대체할 만한 대안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이란의 이슬람 신정주의에 반발하는 세속주의 세력일 텐데, 그들조차도 과거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침탈당했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미국의 우호세력이 되기 어렵다. 요컨대 유럽이 미국을 도와 이란 정부군과 싸워 이긴다고 한들 그 이후에 친서방 세력이 이란에 세워지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으로서는 치러야 하는 비용 대비 기대되는 효과가 낮은 전쟁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낮다. 물론 이란에 적대적인 이스라엘이나 미국과 이란의 강경파 등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들도 존재한다. 또 파병부대가 국지적인 충돌에 휘말릴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여러 상황이 미국과 이란 간의 전면전 가능성을 낮게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이 지역에 파병하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로선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다. 박정욱 MBC 라디오 PD ■박정욱 MBC 라디오 PD는 ‘중동은 왜 싸우는가’ 저자로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양희은 서경석의 여성시대’, ‘배철수의 음악캠프’ 등을 담당했다. 고려대 정치학 석사.
  • [글로벌 In&Out] 공산당이 독립군 죽였다던 ‘자유시 참변’의 내막/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공산당이 독립군 죽였다던 ‘자유시 참변’의 내막/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28일 한인부대와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이 자유시에서 한 무장충돌이다. 이 결과 수십~수백명의 한인이 사망해 독립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소련 공산당이 한인을 속여 독립군을 죽였다는 주장이 강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러시아 문서보관소가 개방돼 임경석, 윤상원 등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 자유시 참변의 원인은 민족해방운동 내부의 권력투쟁(특히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파 간의 갈등)과 정치조직 간의 소통 문제 때문이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다. 1918년 러시아 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에 큰 피해를 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끝내려는 볼셰비키들을 막으려던 연합국은 군대를 파견해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 일본은 1918년 4월 5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했다. 일제 시베리아 출병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지역 한인들이 빨치산부대를 결성해 볼셰비키의 붉은군대와 함께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최신 무기로 무장하며 전투력이 뛰어난 일본부대들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1920년 반(反)볼셰비키 일부 세력과 손잡고 극동공화국을 설립하고 붉은군대의 부대들과 빨치산 부대, 극동공화국 정부 편으로 넘어온 전(前) 백위파 부대들로 혼합 구성된 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 극동공화국은 극동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일본군의 철수에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인민혁명군은 일제가 지원하는 백위파 군대와 싸우는 데 집중했다. 이와 동시에 무장부대 통합운동이 전개됐다. 봉오동전투 이후 대대적인 토벌작전 등으로 한인부대들이 간도에서 러시아령으로 넘어갔다.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는 민족해방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21년에 한인부대 대표회의를 열어 통합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동시에 코민테른은 극동지역 대표부를 설치하고 슈마츠키를 대표로 임명했다. 슈마츠키는 한인부대를 빨리 조선 쪽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으며 무장부대 통합을 위해 창설된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위원장으로 조지아 출신인 칼란드라시빌리를 파견했다. 칼란드라시빌리는 극좌 무정부주의자로서 전략적으로 사고하기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극동의 나폴레옹을 꿈꾸던 그는 슈마츠키와 오하묵, 최고려 등과 함께 한국 내에서 무장투쟁을 공공연하게 벌이려 했지만, 무기도 병력도 열세였다. 또 통솔권을 독점하려던 칼란드라시빌리는 자유시에 집결한 빨치산 부대들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외무인민위원 치체린은 1921년 6월 9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한인 빨치산들을 비밀리에 반드시 지원해야 하고, 지금은 공공연한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6월 10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인부대들은 러시아 영토에 머물면서 적극 행동에 나서기 위해 적절한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치체린의 제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칼란드라시빌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는 6월 28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소속 자유시 수비대에 사할린부대를 무장해제시킬 것을 요청했다. 최후통첩을 받은 사할린부대 책임자들은 무장해제하지 않았다. 양측은 7시간 동안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오후 2시 20분 인민혁명군 병력 1000명과 칼란드라시빌리 사령부에 속한 한인 병사 300명은 더는 기다리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오후 4시 사할린부대의 한인들은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자유시 사변의 사망자는 최소 36명에서 최대 400명으로 추측된다. 이 자유시 참변으로 빨치산 부대 통합운동은 완전히 실패했다.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북한의 신형 방사포 ‘대구경조종방사포’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북한의 신형 방사포 ‘대구경조종방사포’

    지난달 31일 군 당국은 북한의 원산 갈마 일대에서 동북방 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군 당국이 발표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정점고도 30km에 사거리는 250여km에 달했다.하지만 다음날인 지난 1일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신형방사포인 ‘대구경조종방사포’를 시험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군 당국이 발표한 탄도미사일과는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공개한 사진에서 드러난 북한의 신형 방사포 즉 대구경조종방사포는 기존 보유하고 있는 300mm 방사포와 몇 가지 다른점이 눈에 띄었다. 비록 모자이크를 통해 발사차량과 발사관의 모습을 가렸지만, 기존 300mm 방사포와 비교했을 때 차체는 궤도형으로 바뀌었고 발사관의 수도 8개에서 4개로 축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발사된 신형대구경조종방사탄은 400mm 구경에 가까운 크기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방사포란 다연장로켓포의 북한식 표현이며, 대구경조종방사포탄은 200mm 이상의 구경을 가진 로켓포탄에 유도장치를 장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대구경조종방사포탄은 유도탄으로 단거리 탄도 미사일과 유사한 사거리를 자랑한다. 북한이 발사한 대구경조종방사포탄의 경우 200km 이상 날라갔고 이러한 사거리는 단거리탄도미사일의 범주에 들어간다. 유도장치가 없는 로켓포탄의 경우 목표물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 발 많게는 수십여 발을 발사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도탄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과 관성항법장치 등을 장착하고 여기에 비행경로를 수정할 수 있는 조종날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유도탄으로는 미 육군이 사용중인 GMLRS(Guided MLRS)가 손꼽힌다. 이라크에서 내전이 한창이던 2005년 9월 처음 실전에서 사용되었는데, 당시 테러리스트 50여명이 결사 항전 중이던 건물로 2발의 GMLRS가 발사되었다. 발사된 GMLRS는 50km를 날아가 건물에 정확히 명중해 완파시켰고, 50여명의 테러리스트 가운데 48명이 사망했다.북한은 지난 2012년부터 유도탄을 사용하는 300mm 방사포를 개발했으며, 2013년에 시험발사가 진행되었다. 2015년 10월 열병식에 등장해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한미 군당국은 KN-09라는 식별코드를 부여했다. 우리나라도 차기 다연장 로켓포인 ‘천무’에서 230㎜급 유도탄을 개발해 운용하고 있다. 천무를 양산하고 있는 한화는 최근 230㎜급 유도탄을 개량한 천무-Ⅱ를 선보였다. 핵심은 기존 운용중인 230mm급 유도탄을 400mm급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PAC-3 MSE로 요격이 가능한 북한판 이스칸데르와 달리, 대구경조종방사포탄은 국내에는 아직까지 마땅한 요격체계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 때문에 ‘한국형 아이언돔’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언돔은 이스라엘이 개발한 요격 미사일로, 탄도 및 순항 미사일 요격에 초점을 둔 패트리어트와 달리 박격포탄이나 로켓탄 등을 격추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3월 장사정포 요격체계에 대한 신규 소요를 확정했고,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를 통해 장사정포 요격체계 선행연구 및 무기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총으로 뱀 죽이려다 실수로 임신한 아내를 숨지게 한 남편

    총으로 뱀 죽이려다 실수로 임신한 아내를 숨지게 한 남편

    집에 들어온 뱀을 쫓아내려 총을 쐈다가 실수로 임신한 아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시리아 남성이 경찰에 불잡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지난달 31일 보도에 따르면 알리 델 아리드(28)라는 이름의 남성은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시리아를 탈출해 터키로 터전을 옮겼다. 이후 이 남성은 농장에서 가축을 돌보는 직장을 구했고, 임신한 아내 및 두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침실 안으로 뱀이 들어온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뱀을 죽이기 위해 사냥용 총을 꺼냈다. 뱀을 향해 총을 겨누고 쏜 그때, 갑자기 근처에 있던 아내가 쓰러졌다. 조사 결과 뱀을 죽이기 위해 쏜 총의 총알이 튕겨져 나와 아내에게 향했고, 총에 맞은 아내에게서는 다량의 출혈이 발생했다. 임신 6개월이었던 아내는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응급처치 중 숨지고 말았다. 현지 경찰은 남성의 진술과 현장 증거를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조사 중이며, 처벌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日자민당, 참의원 선거 끝나자마자 ‘파벌의 전쟁’ 시작

    日자민당, 참의원 선거 끝나자마자 ‘파벌의 전쟁’ 시작

    일본 집권 자민당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면 또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이번에는 ‘내전’이다. 새로 당선된 의원들을 자기 파벌로 끌어들이기 위한 신인 쟁탈전이다. 자민당에는 7개의 파벌이 존재한다. 전체 의원의 80% 정도가 이 중 한 곳에 속해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으로 매일 기자회견을 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비롯해 20% 정도는 파벌에 속해 있지 않다. 지난 21일 참의원 선거 직전을 기준으로 가장 큰 파벌은 아베 신조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회장 호소다 히로유키 전 간사장)로 97명이 속해 있었다. 이어 ‘아소파’(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56명, ‘다케시타파’(다케시타 와타루 총무회장) 54명, ‘기시다파’(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49명, ‘니카이파’(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43명, ‘이시바파’(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19명, ‘이시하라파’(이시하라 노부테루 전 경제재생상) 12명 순이었다.이렇다 보니 당 총재(총리) 선출과정 등 중요한 의사결정에 파벌의 역학구도와 지지세력의 이합집산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각 파벌에서 새내기 의원들을 놓고 스카우트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이유다. 특히 오는 9월 내각개편 및 당직인선이 예고돼 있어 파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영입 경쟁이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28일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니카이파는 이번에 초선 참의원 3명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무파벌인 스가 관방장관의 지원을 받아 기시다파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가와이 안리(히로시마현) 의원도 이 중 한 명이다. 가와이 후보가 니카이파를 선택함에 있어 스가 장관의 추천이 결정적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니카이파는 이번 선거에서 소속 현직의원 1명이 낙선하고 다른 현직 1명이 이탈할 예정이어서 전체로는 ‘플러스1’인 44명이 됐다. 니카이파는 이에 더해 군마현에서 당선된 시미즈 마코토 의원의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가장 마음이 급한 곳은 이번 선거에 입후보한 현직 9명 중 4명이 낙선한 기시다파다. 지난 25일 선거 이후 처음으로 열린 계파 모임에서 기시다 정조회장은 파벌 영수로서 의원들에게 사과했다. 이날 모임에서 초선 아제모토 쇼고 의원의 가입이 확정됐지만, 참의원에서 4명이 줄면서 소속 의원 수는 49명에서 46명으로 줄었다. 기시다파는 기시다 정조회장이 아베 총리의 뒤를 이을 ‘포스트 아베’의 유력후보라는 점에서 선거 결과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규 회원 영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당내 제2파벌의 아소파(56명)는 현직 1명이 낙선했지만 기시다파가 4석을 잃으면서 참의원 의원 수에서도 기시다파를 넘어서게 됐다. 어느 파벌로 갈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니카이파와 기시다파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고 있는 가다 히로유키(효고현) 의원 같은 경우다. 두 파벌은 25일 각각 가다 의원과 만남을 갖기로 했지만, 그는 양쪽 어디에도 모습을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약제사연맹 출신으로 비례대표 몫으로 당선된 혼다 아키코 의원도 선거운동에서 지원을 받은 곳은 기시다파이지만 아소파에서 강력한 추파를 보내고 있어 고민 중이다. 반면 아베 총리가 속한 제1파벌 호소다파는 초선의원들의 가입 권유를 가급적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현직 20명이 출마했다가 1명만 낙선한 가운데 전 홋카이도 지사인 다카하시 하루미 의원만 새로 영입했다. 결과적으로 소속의원 수는 그대로 유지됐다. 아베 총리는 “너무 튀지 않도록 소속의원이 100명을 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동영상] 잔해에 깔린 채 여동생 티셔츠 붙잡은 언니, 동생 구하고 끝내

    [동영상] 잔해에 깔린 채 여동생 티셔츠 붙잡은 언니, 동생 구하고 끝내

    사진부터 보자. 공습으로 무너진 자택 잔해 더미에 깔린 채로 여동생 티셔츠를 붙잡고 있는 다섯 살 소녀가 보이는가? 아버지는 애타게 구조해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몇분 뒤 건물은 무너져내렸고 생후 7개월 밖에 안된 여동생 투카는 목숨을 구했지만 언니 리함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24일(이하 현지시간) 시리아 이들립의 아리하에서 정부군의 공습으로 벌어진 참변이다. 현지 매체 SY-24는 25일 영국 BBC에 “사진을 촬영한 이(바샤르 알셰이크 사진기자)는 처음에 자욱한 먼지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어린이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먹먹한 사진은 한동안 잊힌 시리아 내전의 참혹함을 다시 일깨우며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들과 지하디스트 무장세력으로부터 탈환하려는 이들립에서 어떤 비극을 연출하고 있는지 알리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지난주 유엔은 지난 4월 29일 이후 격화된 시리아 북부에서의 교전 여파로 350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고 33만명이 이재민 신세가 됐다고 발표했다. 사진이 촬영된 몇분 뒤 건물이 결국 무너져 내렸고 두 자매 모두 잔해 더미에서 발굴돼 근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뒤 이들립의 더 큰 병원으로 후송됐는데 그곳에서 리함은 생을 등지고 말았다. 여동생인 투카는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다. 어머니 아스마 나쿠흘도 공습 과정에 즉사했다. ‘하얀 헬멧’이란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시리아 민간 구조대는 아버지 암야드 알압둘라의 자택에서 다른 젊은 남성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이날 이들립 일대에서 다섯 어린이를 포함해 20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시리아 인권 옵저버토리는 밝혔다. 칸셰이쿤에서는 세 어린이를 포함해 일가족 10명이 몰살 당하기도 했다. 22일에도 반군이 점령한 마라트 알누만의 시장과 거주지를 겨냥한 전폭기의 공습으로 31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하마 북쪽이며 알레포 서쪽에 위치한 이들립은 8년을 끌어온 반군의 마지막 거점으로 치열한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러시아와 시리아 야당을 지원하는 터키가 휴전협정을 중재했지만 여전히 참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2015년에는 터키 해변에 숨진 채로 발견된 알란 쿠르디 사진이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고 시리아 난민 위기에 대한 각성을 이끌었다. 다음해에는 다섯 살 옴란 닥니쉬가 알레포의 앰뷸런스 뒤에서 피를 흘리며 떨고 있는 사진이 세계인을 놀라게 했는데 그 뒤 새로운 집에서 가족과 어울리는 사진이 전해져 안도하게 한 일이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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