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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학자가 밝힌 「중국의 6ㆍ25참전 배경」

    ◎김일성,남침2개월전 북경에 통보/모택동,유엔군 38선 넘자 심한 불안감/중국,미 무력위협 견제위해 참전 선언/소의 공군ㆍ물자지원 조건으로 병력 파견 6ㆍ25발발 40주년을 앞두고 한국전쟁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전쟁을 중국의 시각에서 조명한 논문이 중국학자에 의해 발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전쟁연구회(회장 김철범)주최로 14일부터 이틀간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리는 한국전쟁40주년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중국국제전략연구소의 적지해연구원이 발표할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결정에 대한 재고찰」이란 제목의 논문은 중국의 한국전 참전배경을 새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전 참전은 국민당정부를 후원하는 미국으로부터의 무력개입위협을 견제하기 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1950년6월20일 5천1백만명에 달하는 인민해방군을 주은래 책임아래 1천4백만명을 감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김일성은 50년4월 모스크바에서 평양으로 귀환도중 밀사를북경에 파견,모택동에게 군사적인 수단으로 조국을 통일키로 했다는 사실을 통보했으나 군사계획과 그밖의 상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지도자들은 처음부터 한국전에 개입할 의도는 없었고 김일성의 요청에 따라 인민해방군에 속한 한국계 중국군을 보내는 것만으로 평양을 돕고자 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트루먼이 6월27일 중국본토와 대만사이에 제7함대를 배치하자 미국이 국민당을 구하기 위해 중국내전에 다시 참가하기로 결정할 것으로 믿었다. 이에 따라 7월10일 「미국의 대만 및 한국침략에 대한 중국인민위원회」가 북경에 설치됐고 모택동은 등후아장군으로부터 급속한 남진,보급선 확대,후방의 공백상태등 한국전의 상황을 보고받고 김일성에게 「남진속도를 늦추고 확실한 방어망을 구축하라」는 충고를 했다. 9월초 북동부지역 사령관인 가오강은 한국전 상황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통일할 기회는 이미 지나갔으며 김일성의 군사행동은 처참하게 실패하리라고 확신했다. 이에 모택동은 9월9일 동부군사지구 제10군에게 철도에근접하게 병력을 배치,압록강에 대한 병력보강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 10월2일 주은래는 당시 인도대사인 파니카를 통해 만약 미군이 북한을 점령한다면 중국은 전쟁에 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한뒤 영국외상 포리스트 버빈은 네루를 통해 유엔군이 만약 38도선을 넘어야 할 경우에는 압록강 40마일 앞에서 멈추겠다고 중국지도자들에게 통보했다. 미국은 인도를 통해 전달한 자신의 약속을 두차례나 어겼으므로 중국지도자들은 미국의 맹서는 사기술이라고 믿게됐다. 1천㎞에 이르는 압록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병력이 필요하겠는가. 더구나 언제 적이 침입해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중국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50년 10월1일 김일성은 불리한 전황을 알리면서 인민의용군의 즉각 투입을 요청하는 전문을 모택동에게 보내왔다. 그러나 북동부지역 사령관 가오강과 임표는 이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들은 중국경제력의 열세와 군사력의 열세,후방의 취약성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어 열린 정치국특별확대회의에서 ▲한국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취약한 고리이며 ▲전면적인 핵전은 불가능하며 ▲한반도지형은 미군의 기계화부대와 화력운용에 불리하다는 결론에 따라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희생을 치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만약 중국이 전쟁을 회피한다는 것은 국민당에 대한 해방전쟁이 몇년 더 지체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10월2일 정치국 특별회의에서 모택동은 소련이 공중지원과 전쟁물자를 원조한다는 조건으로 병력파견을 승인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전황이 김일성에게 크게 불리해지자 스탈린은 딜레마에 빠지게 됐으며 이러한 딜레마의 탈출구로서 지상은 중국군이,공중은 소련공군이 기꺼이 맡기로 합의했다. 결국 10월13일 모택동은 김일성이 중국으로 후퇴하기 전에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압록강을 건너 진격키로 결정했다. 소련은 합의대로 50년말 공군 2개사단(2백대전투기)을 파견,압록강철교와 1백㎞에 이르는 의용군 보급로를 엄호했으며 중국군복을 착용한 이들 소련군조종사는 생포되더라도중국계러시아 소수민족이라고 속였다. 한국전에 투입된 2백30여만명의 중국인민의용군은 당시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전야전군의 66%,전포병사단의 60%,전기갑사단의 1백%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모택동이 중국과 미국의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거나 모택동이 본토를 석권했을 당시 트루먼이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면 스탈린은 당시 상황으로 봐서 모택동의 결정을 제지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전에서 이데올로기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지난 30년동안 서구의 역사가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국공산당과 트루먼행정부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했더라면 중국의 참전이라는 비극은 분명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스리랑카 내전 종식/정부ㆍ반군 휴전합의

    【콜롬보 로이터 연합】 스리랑카 정부와 분리독립을 위해 무장파괴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타밀족 반군은 12일 현재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양측간의 전투를 종식하기 위한 긴급협상을 갖고 13일 정오부터 휴전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스리랑카정부는 이날 저녁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측 협상대표인 샤훌 하메드 법무장관이 이날 타밀 타이거스반군(LTTE)의 본거지인 북부 자프나 반도로 가서 게릴라 지도자들과 협상을 갖고 상호 적대행위종식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 소 우즈베크공도 비상선포/대통령/“내전우려” 중앙정부에 개입요청

    ◎2만명 키르기스 월경시도 【모스크바 AFP AP 연합 특약】 소련의 키르기스족과 우즈베크족간의 인종분규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키르기스공화국에 이어 우즈베크공화국도 8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크공화국 대통령은 양종족간의 일련의 유혈충돌이 발생한후 접경지대인 안리잔의 수개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카리모프대통령은 또 키르기스공화국의 오슈지방을 비롯한 일부지역에서의 유혈충돌은 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크렘린당국에 인종분규 종식을 돕기위해 정치국원과 최고회의 대의원으로 구성된 정부조사위원단을 급파해 줄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4일 사유토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발생한 키르기스족과 우즈베크족간의 유혈충돌로 지금까지 적어도 78명이 사망하고 3백3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 내무부대변인은 3천여명의 키르기스 청년들이 이날 키르기스공화국 수도프룬제에 모여 최초 충돌이 발생한 접경지 오슈지방으로 가는 것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1만5천여명의 우즈베크인들도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공화국으로 넘어가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한편 대부분이 학생들인 5천여명의 키르기스인들은 프룬제에 모여 유혈충돌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가졌다.
  • 소 키르기스 수도 비상령/분규 악화… 4일째 3백81명 사상

    【모스크바 로이터 AFP UPI 연합】 민족간의 유혈분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소련 키르기스 공화국의 수도 프룬제시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7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이날 보도에서 통금과 병행 실시되는 이번 비상사태는 프룬제시의 상황이 악화되고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대규모의 무질서 유발을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바딤 바카틴 소련 내무부장관은 이날 키르기스 공화국과 인근 우즈베크 공화국간의 유혈인종분규가 확산돼 감에 따라 두 공화국 사이에서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바카틴 장관은 이날 최고회의에 출석,이같이 경고하고 오슈시에서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간의 토지분쟁을 계기로 촉발된 이번 사태로 지난 4일동안 모두 48명이 사망하고 3백33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질서회복을 위해 9백명의 소련 내무부 병력과 1천5백명의 정규군,4백50명의 국경 수비대가 키르기스 공화국에 투입됐다고 밝히고 현재 오슈시의 상황은 진정됐으나 『돌과 창ㆍ총기 등으로 무장한 수천명의 군중들이 오슈시와 우즈베크 공화국의 국경도시 안디즈한시 사이의 국경에 몰려나와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 7월까지 평화정착 훈센ㆍ시아누크 합의/캄 평화회담

    【도쿄 로이터 연합】 친베트남 캄보디아정권과 노로돔 시아누크가 주도하는 저항세력은 5일 도쿄에서 오는 7월말 이전까지 내전을 완전종식 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캄보디아 평화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반프놈펜 게릴라 공동전선내 주요 세력인 크메르 루주측이 이번 회동 참석 대표성에 대한 불만을 품고 타협안 서명을 거부함으로써 평화 정착 가능성을 희박하게 했다.
  • 4계파,오늘 동경서 평화회담

    ◎캄보디아 「11년 분쟁」 종식에 “청신호”/신 데탕트 여파로 내전 지속 명분 상실/휴전협정 체결… 연내 총선ㆍ연정 가능성 11년간 계속된 캄보디아 내전 종식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평화회담이 4,5일 이틀간 일본 도쿄(동경)에서 열린다. 이번 회담은 현 프놈펜정권(헹삼린정권)을 이끄는 훈센총리와 전 국가원수인 시아누크공,크메르 루주(구폴포트정권)의 큐삼판의장,구론놀정권의 손산 전총리 등 연합국민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3대 무장반군세력 등 4대파벌의 수뇌들이 전원 참석,휴전협정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이같은 희망적 관측은 그동안 분쟁해결을 막아왔던 외부지원세력의 입장에 변화가 있었고 더 이상의 내전지속이 어느 파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교전당사자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데서 도출된 것이다. 현 프놈펜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베트남과 소련,반군세력을 지원하고 있는 중국과 크메르 루주를 제외한 2개파를 지원하는 미국은 모두 국제사회의 데탕트분위기 확산에 따라 내전종식을 지연시킬 명분을 잃어버린 상태다. 지난 79년 캄보디아침공으로 크메르 루주정권을 타도한 베트남은 크메르 루주 지원세력인 중국과 최근들어 외무차관접촉을 갖고 내전종식과 민족통일을 상징하는 최고국민평의회 구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양국관계가 빠른 속도로 정상화 되고 있다. 미국과 소련도 이번 워싱턴정상회담에서 지역분쟁 해결노력을 거듭 다짐하는 등 내전종식쪽으로 견해차를 좁혀가고 있는 실정이다. 휴전협정이 예정대로 조인된다면 연내에 파리회의를 소집,협정내용을 보장할 국제감시기구를 구성하고 유엔평화유지군파견과 휴전감시,4개정파가 참여하는 자유총선,새정부 구성의 정치일정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프놈펜정권과 반군세력간의 이견이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다. 우선 반군세력을 지원하는 미국과 캄보디아국토의 90%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현 프놈펜정권은 내전 종결후 세워질 연립정부에서 크메르 루주가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반군세력들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는 크메르 루주를 배제시켜서는 휴전이 성립될 수 없으며 계속 외세에 이용당하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고,특히 크메르 루주측은 프놈펜정권의 즉각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또 유엔휴전감시기구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훈센정권은 권한을 최소화해 즉각 휴전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반군세력들은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시아누크공이 집권하다 70년 외유중 론놀에 의해 추방됐고 75년 폴포트정권이 무력으로 론놀정권을 진압한 뒤 79년 베트남군을 앞세운 헹삼린정권에 의해 타도되는 등 숱한 정변을 겪은 캄보디아 국민들은 이제 지리한 내전의 터널끝을 바라보며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 대만 새대륙정책의 저변(특파원 코너)

    ◎경제력 바탕,북경에 “우호의 손짓”/관광ㆍ친지방문 등 민간교류도 적극도모/통일보다는 정치ㆍ군사적 긴장해소 포석 대만이 제8대 이등휘총통의 취임을 계기로 적극적인 대륙정책을 추진하는 것 같다. 이총통은 지난 20일의 취임식과 22일 취임후 처음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 등을 통해 중화민국 대만의 입장에선 가히 혁신적이라 할 수 있는 대중국 정책방안들을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원감란시기 임시조례」의 폐기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듣기에 생소한 이 조례는 대륙의 국ㆍ공내전에서 국민당 장개석총통의 패색이 짙어진 1948년 만든 것으로 국민당의 중화민국정부에 대항하는 모택동공산당을 『모든 국민이 동원돼 진압해야 마땅한 반란조직』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다시 말해 1912년 중화민국을 세운 손문의 뒤를 이어 대권을 쥐게 됐던 장개석의 입장에서 정권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또 공산당이 대륙에서 존재하는 한 이를 반란이 계속되는 기간으로 보고 총통에게 비상조치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종신제가 가능토록 한게 이 조례의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총통이 이 조례의 폐기를 선언한 것은 북경정권이 더이상 반란단체가 아니며 때문에 앞으론 합법성을 인정하겠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반란단체가 아닌 이상 대만이 구태여 본토수복의 꿈을 간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도 나타내고 있다. 이총통은 또 지금까지 중공이라 부르던 북경정권을 그들의 정식 국호인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호칭했고 상호 언론기관 특파원을 상주시킬 것 등을 제의하면서 앞으로 중국과 대만이 동등한 입장에서 정부대 정부의 대화를 하자고 촉구했다. 그는 이러한 대만의 입장은 결코 「두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으며 통일논의를 위해선 상호 대등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평소 자신의 소신을 거듭 밝혔다. 이총통은 이밖에 대만의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대륙정책에 호응하는 표시로 중국은 대만과 가장 가까운 그들 해안지방의 군사시설을 대륙 안쪽 3백㎞까지 철수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양안의 민간교류 확대를 위해 대만은 친지방문 뿐 아니라 단순한관광목적인 경우에도 대륙행을 허가키로 하고 공산당원인 대륙인이 대만방문을 원하면 적정한 심사를 통해 입국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대만은 또 「동원감란시기 임시조례」의 폐기선언을 했으므로 과거 반란분자인 공산당원에게 자수절차를 생략하는 특혜(?)를 준다는 말도 했다. 어떻게 보면 조그만 섬만을 차지하고 있는 처지에서 가당치도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이겠지만 중화민국만이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내세웠던 대만으로선 체면을 손상시키면서까지 그들 입장을 후퇴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측은 이같은 대만의 견해표명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으며 다만 정부대 정부의 대화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경정권이 중국대륙전체를 대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총통의 조례폐기 선언등은 한낱 말장난 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측은 대만이 어디까지나 그들 영토의 일부이기 때문에 「1국2체제」방식의 통일이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대 정부가 아닌 공산당대 국민당의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국민당도 한개의 정당으로 인정,공산당영도하의 다당제를 하고 대만의 자본주의체제를 그대로 존속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총통은 정부대 정부의 대화를 통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 우선 이총통이 내세우는 「1국2정부」는 전혀 현실성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대만측의 실제 저의는 통일보다는 양안사이의 군사ㆍ정치적 긴장감을 완전히 해소시켜 대만의 경제와 사회복지수준을 더욱 높이려는데 있다는 것이다. 중국대륙이 둘로 갈라진 현실을 북경측이 일단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될 경우 통일논의에 있어 대등한 입장이 되는 것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대만의 위상이 높아지는등 이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만은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벌어놓은 뒤 11억 중국 대륙주민들이 모두 크게 부러워하는 모범생의 위치에서 통일문제의 주도권을 잡아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홍콩=우홍제특파원〉
  • 안보리 상임이사국/「캄」 자유선거 촉구/4개 정파에 통고

    【유엔본부 로이터 AFP 연합】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은 26일 캄보디아내 4개 분파가 지난 10년간 계속돼 온 캄보디아 내전종식에 있어 유엔의 도움을 바란다면 자유선거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통고했다. 미국과 소련ㆍ영국ㆍ프랑스ㆍ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은 이날 이틀간에 걸친 회의를 마치면서 이같은 조건을 캄보디아 내전종식과 관련된 모든 정치협상의 최소 조건으로 포함시키는 데 합의했다.
  • 캄보디아 휴전협정 조인/4대 정파/11년 내전 종식… 새달 발효

    【아라냐프라테트(태국) AP 연합】 캄보디아 친베트남 정권과 이에 대항해온 크메르 루주등 3대 게릴라세력은 휴전협정에 서명했으며 내달 발효될 것이라고 게릴라 고위소식통들이 26일 전했다. 이들 소식통은 4대 정파가 휴전협정서명과 함께 향후 캄보디아를 관장해갈 최고민족평의회구성에도 의견을 모았다고 전함으로써 지난 11년간 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려온 내전이 종식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들은 구체적인 협정내용이 내달 4∼5일 도쿄에서 열릴 예정인 캄보디아 평화협상에서 공개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4대정파가 오는 7월 파리에서 평화정착을 위한 회동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게릴라 세력의 하나인 크메르 인민해방전선(KPLNF)관계자는 휴전협정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면서 『휴전이란 없다』고 강조,전투가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임을 위협하기도 했다. 태국 외교소식통들은 게릴라 세력이 도쿄회담을 앞두고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공세를 재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 캄보디아 휴전협정 타결 임박/4개파,11년내전 종식 합의

    ◎태 총리 6월4일 도쿄서 평화회담 【방콕 AP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캄보디아의 교전당사자인 프놈펜정권 등 4개 파벌은 휴전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태국 라디오방송이 23일 차티차이 춘하반 태국총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방송은 또 차티차이 춘하반 태국총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방송은 또 차티차이총리가 오는 6월4일부터 이틀간 도쿄에서 캄보디아내전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차티차이 총리는 『4개 파벌이 곧 휴전협정에 서명키로 합의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차티차이총리는 캄보디아휴전협상의 주요 중재자로 활약해 왔다. 휴전협정이 서명될 경우 이는 11년동안 계속돼온 캄보디아 내전을 종식시키는 주요한 첫 정치협정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 방송은 차티차이총리가 방콕을 방문중인 구엔 코 탁 베트남외무장관과의 회담뒤에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구엔 코 탁 베트남외무장관은 22일 캄보디아 내전문제가 「터널의 끝에 이르러 빛이 보이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해 타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한 바 있다
  • 통일「예멘공화국」출범/살레 초대대통령취임… 5인평의회 구성

    ◎“국방비가 경제피폐 주인”인식… 이념벽 넘어/81년 협정체결,동서화해무드 타고 급진전 아라비아남단에 위치한 중동유일의 분단국가인 남북예멘이 꾸준한 노력끝에 마침내 22일 통일을 선언,단일국가인 예멘공화국(Republic of Yemen)을 수립했다. 통일예멘의 통치기구는 지난 4월 22일 양국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헌법초안에 따라 앞으로 30개월의 과도기간동안에는 인구비례에 의해 북예멘 3명,남예멘 2명으로 구성된 5인대통령회의가 구성돼 합의제로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 과도기간이 지나면 선거를 통해 행정부수뇌와 입법부를 구성한다. 입법권은 북예멘 국가자문평의회 의원 1백59명과 남예멘 인민의회의원 1백11명에다 대통령회의가 주로 야당인사로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명직 31명의 의원을 합한 3백1명 정원의 통일의회가 행사한다. 대통령회의는 양국간 사전 합의에 따라 알리 압둘라 살레 현북예멘대통령을 통일예멘의 새대통령으로,남예멘 집권 사회당 사무총장 알리살렘 알바이드를 부통령으로 선출했으며 하이데르 아부 바크르 알아타스 현남예멘대통령이 총리에 임명됐다. 헌법초안은 21일과 22일 양국의회에서 통과됐으며 오는 11월 30일 국민투표로 확정되게 된다. 친서방 자본주의 회교국가인 북예멘과 친소 사회주의 세속국가인 남예멘이 급속하게 통일을 이루게 된것은 통일을 향한 꾸준한 노력과 동서화해무드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예멘은 15세기이래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다. 1918년 제1차세계대전 이후 승전국 영국이 패전국 오스만터키로부터 이 지역을 분리시키면서 북예멘만 독립시키고 남예멘은 「남아라비아연방」에 편입,계속 지배해 왔다. 남예멘지역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중심이 돼 67년 독립했다. 외세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지 50년만에 남예멘이 독립하자 곧 통일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양국은 같은 민족,같은 언어,같은 종교(수니파 이슬람교)를 갖고 있었지만 이데올로기 차이는 현격했다. 동서대결무드가 고조됐던 79년에는 국경분쟁으로 전쟁도 치렀다. 그러나 이 전쟁도 양국민의 드높은 통일열망으로 한달만에 휴전에 이르렀고 81년에는 통일을 목표로 한 아덴협정이 체결돼 양국통합의 기본원칙이 천명되기에 이르렀다. 81년 11월 북예멘 살레대통령이 남예멘을 방문,통일노력을 본격화시켰고 83년 예멘최고평의회가 구성돼 통일방안을 구체화시켰다. 86년 남예멘에서는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려는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득세하기도 했으나 고르바초프등장이후 새로운 평화공존시대가 열리면서 다시 통일노력이 기울여졌다. 당초 오는 11월 30일로 예정된 통일이 5월 26일로,또 다시 22일로 6개월이나 앞당겨진 것은 외세의 개입,북예멘 북부지역의 시아파 원리주의자와 남예멘 극좌파의 반통일움직임을 조속히 배격해야 한다는 양국지도자들의 공통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밖에도 양국의 정치ㆍ경제사정도 통일을 촉진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북예멘은 독립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고 쿠데타도 빈발해 왔다. 아직도 북예멘 사회는 부족중심적이며 중앙정부의 행정이 지방에서 잘 집행되지 않고 있다. 1인당 GNP도 6백50달러,총 GNP57억달러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국방비가 5억3천만달러나 이르는 등 경제사정도어렵다. 남예멘도 86년 내전을 겪는 등 정정이 불안하며 총 GNP 10억달러,1인당 GNP 4백30달러에 국방비는 2억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어 통합의 필요성이 절실한 형편이다. 더욱이 양국 국경지역에서 84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유전의 공동탐사필요성과 공동탐사경험도 통일에 일조했다. 시바여왕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예멘땅에 통일이 옛날의 영화를 한꺼번에 가져다주지는 않겠지만 양국은 이미 양국국민의 자유왕래를 보장하고 있고 20일 군통합도 완료한 터라 통일에 큰 어려움은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서독통일과 함께 남북예멘의 통일은 동서화해시대를 확인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 「광주검문」피하려 열차서 뛰어내려 대학생 3명중 1명 숨져

    ◎대학생 3백명 전남대병원서 농성 【광주=임시취재반】 「전대협」출범식에 참가하려던 대학생 3명이 검문을 피하기 위해 열차에서 뛰어내리다 중경상을 입어 전남대부속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 가운데 1명은 머리등을 크게 다쳐 숨졌다. 19일 낮12시45분쯤 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장성역 구내에서 광주쪽으로 4백50여m쯤 떨어진 철로에서 서울발 순천행 제365 통일호(기관사 조왕운ㆍ42)를 타고 광주로 오던 임종훈군(20ㆍ경원대1년)과 신장호(20ㆍ대유전문대 건축과2년) 장민주군(19ㆍ경원대1년)이 달리던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이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을 목격한 장성역 선로원 정근모씨(52)로부터 구내전화로 연락을 받은 역무계장 이진희씨(50)는 역무원 3명을 사고지점으로 보내 추락한 3명을 장성군의료원으로 데리고 갔으며 의료원에서는 앰불런스로 광주기독병원으로 후송했다. 이곳에서 부상이 경미한 임군과 장군은 전남대로 갔고 신군은 상태가 위독,전남대 부속병원으로 다시 옮겨졌으나 하오7시20분쯤 숨졌다. 신군이 숨지자 대유공전학생 20여명과 조선대학생등 3백여명은 바로「규찰대」를 구성 전남대 부속병원정문과 응급실 주변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또 「광주ㆍ전남지역 민주연합」과 「5ㆍ18유족동지회」회원등 50여명은 이날 하오 전남대병원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 중국 「서안사건」의 주역 장학량 54년만에 “자유의 몸”

    ◎장개석을 감금,홍군회생에 기여/대만,연금 풀고 망백연개최 추진/중국과 관계개선 노린 유화제스처인듯 지나간 역사의 페이지속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장학량이 54년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게 됐다. 만주군벌이던 장은 중국대륙에서 장개석과 모택동에 의한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36년 12월7일 독전차 그를 만나기 위해 서안으로 온 장을 감금,국공합작을 통한 항일전선을 구축케 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한 인물. 당시 모의 홍군은 막 장정을 마친뒤여서 세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으며 장은 이러한 홍군에 대공세를 감행,완전 소탕하기 위해 국민당정부군산하 만주군지휘책임자인 장에게 공격명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장학량은 그의 부친 장작림이 일본군에 의해 폭사한 원한 등으로 공산당이 내건 항일민족통일전선전략에 동조,장을 구금했고 이에 따라 괴멸직전에 놓였던 모택동의 홍군은 숨을 돌려 세력확장에 힘을 기울인 결과 대세를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장은 그후 장개석에게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체포돼 1949년 국민당정부와 함께죄인의 몸으로 대만에 온뒤 줄곧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채 연금생활을 해왔던 것. 대만의 중국시보 17일자보도에 따르면 장학량은 오는 6월1일 대북시 원산호텔에서 90회 생일축하연회를 가질 예정이며 이 연회에는 이등휘총통을 비롯한 국민당 고위간부 등 2백여명이 참석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 신문은 「서안사건」이후 54년만에 장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는 사실은 국민당 정부가 그에게 특사의 혜택을 주는 것이며 앞으로 장은 기나긴 연금상태에서 풀려나 자유인으로 여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으로 끌려온 이후 그는 대북시 북투의 한 가옥에서 부인 조일적과 살고 있으며 생활비는 국민당에서 마련해 주고 있다. 이번 장의 90회 생일잔치를 위해 국민당측은 「장한경(장학량의 호)선생 9순경축위원회」까지 조직,요란스레 축하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관측통들은 오늘의 초라한 국민당정부를 있게 만든 장에 대한 대만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그가 너무 연로해 더이상 연금의 필요성이 없는데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선 불필요한 구원을 간직하는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을 비롯,모택동과 서안사건의 중재를 맡았던 주은래 등 동시대의 관련인물들이 이미 타계한지 오래됐음에도 장이 90세를 맞아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 미,「아시아 군사전략」 수정 논란

    ◎“감군”ㆍ“계속 주둔” 싸고 팽팽한 대립/「평화배당금」 국내전용 여론 비등 감축/국익ㆍ민주수호위해 상주불가피 주둔 【워싱턴 AFP 연합】 미국은 필리핀에서 개시된 기지 협상과 때를 같이 해 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역할을 90년대의 냉전이후 체제에 알맞게 재규정하려고 애쓰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소련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추진하고 유럽의 군축협상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면서 초강대국간의 긴장이 완화되기 시작함에 따라 미국의 아시아주둔 군사력도 마찬가지로 감축시켜야 한다는 압력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의원들과 국민들은 아시아주둔 미군을 감축시켜 여기서 나오는 「평화배당금」을 미국내의 만성적인 예산적자를 줄이고 다른 급한 국내현안들을 해결하는데 전용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군사전략가들은 비록 소련의 위협이 감소하고 동­서긴장이 완화된다 하더라도 갈수록 증대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이익보호와 역내대결 상황감시를 위해서는 미군이 아시아에 가시적으로 광범위하게 주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방부의 폴 월포위츠 정책담당차관은 『미국이 세계의 강국으로 남고 국익을 보호하며 민주주의 및 자유경제체제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미군이 아시아에 주둔,신뢰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로 기존의 아시아전략이 이처럼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의 아시아방위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대두됐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역내 맹방들도 이제는 경제강국이 됐기 때문에 자체방위에 대한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미국인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 맹방들 안에서 분출되고 있는 민족주의 감정도 미군의 계속적인 주둔에 장애요소로 부각되고 있는데 특히 클라크공군기지 및 수빅만해군기지의 임대기한연장 협상을 14일부터 갖고 있는 필리핀의 경우가 그렇다. 미국방부는 아시아주둔 미군철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동서대결상황에 토대를 두고 있던 미군주둔의 논거를 90년대의 상황에 맞게 바꾸려하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에 밝힌 전략검토보고서에서 아시아지역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4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중소국경주둔 소군을 감축하고 베트남의 캄란만주둔 군함 및 항공기일부를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고는 하지만 소련의 극동군사력은 자체방위에 필요한 수준을 여전히 훨씬 넘어서고 있을 뿐 아니라 공군 및 해군력의 현대화계획 추진으로 미국의 아시아역내 이익에 대한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 둘째 아ㆍ태지역과의 무역이 미전체무역고의 37%를 차지,오히려 대유럽무역 규모보다 50%가 더 큰데다 역내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미해ㆍ공군을 전진 배치시켜 해로를 보호하는 것이 긴요하다. 셋째 90년대는 아시아에 「엄청난 변화와 불안」이 도래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월포위츠차관의 말을 빌린다면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가장 무모하고 위험한 배역들 가운데 하나』로 계속 남을 것이며 미군과 궁극적인 대결상황이 빚어질 공산이 가장 큰 적대세력이다. 마지막으로팽창주의적인 열망을 가진 일부 아시아국가들의 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의 안보적 주둔이 「대체할 수 없는 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군사분석가들은 이러한 사례로 인도가 해군력을 증강시키고 있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미맹방들 사이에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아태지역 미 기지 현황/한국ㆍ일ㆍ비 등 3곳이상씩… 지구절반 커버/클라크ㆍ수빅만 최대… 일에 4만9천 주둔 【홍콩 로이터 연합】 필리핀내 미군기지의 장래문제에 관한 미국과 필리핀간의 협상은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방위구도를 개편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방부는 강대국간의 긴장이 완화됨에 따라 현재 지구의 절반에 걸쳐 배치돼 있는 아ㆍ태평양 지역의 병력중 10∼12%,총 12만명의 병력을 감축하는 계획을 현재 마련중이다. 다음은 아태지역에 배치한 주요 미국병력의 주둔 국가별 현황이다. ▲필리핀=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만해군기지 등 총 6개기지에 약 1만7천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두 기지가 이 지역 안보에 있어 핵심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수빅만기지에는 미 7함대가 있다. ▲일본=남부 오키나와섬 카데나(가수납)와 도쿄 외곽의 요코다(횡전),북부 미사와(삼택)등 3곳에 미군기지가 있고 도쿄 근처에 주한미군 지원부대가 배치돼 있다. 일본서부 사세보(좌세보)와 도쿄 남부 요코스카(횡수하)의 해군기지와 오키나와의 미해병 1개사단,일본서부 이와쿠니(암국)의 미해병 항공대 기지가 있다. 주일미군 4만9천명중 육군이 10%,해병이 40%,그리고 해군과 공군이 각각 2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주한미군의 숫자는 약 4만4천명. 육군이 대부분이며 해군과 공군도 일부 있다. ▲싱가포르=미군 군함에 대해 연료공급과 선박수리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군 수송기의 통과도 허용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측에 더 많은 시설 이용권을 제의했으나 싱가포르에는 몇대의 군함밖에 정박할 수 없으며 F16기 편대의 경우 1∼2개 편대가 교대로 착륙할 정도다. ▲호주=누룬가르,파인캡,노스웨스트만 등지에 3개의 미ㆍ호주합동군사기지가 있으며 노스웨스트만 기지는 인도양과 서태평양 해역의 잠수함들을 감시한다. 누룬가르와 노스웨스트만 기지는 정보수집도 하며 아울러 조기경보와 군축감시기지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들 기지에는 호주인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이 미군이며 지휘부도 미국이 맡고 있다. ▲괌=캘리포니아로부터 서쪽으로 6천마일,도쿄로부터 비행기로 4시간 거리에 있는 미국령 괌섬에는 앤더슨 공군기지,미8공군사령부,해군기지 1개가 배치돼 있다.
  • 니카라과 “무정부상태”/공무원파업,차모로퇴진 요구로 비화

    ◎관공서ㆍ중앙은 점거… 통신도 마비/거의 산디니스타계,민선정부와 첫 힘겨루기 니카라과가 사실상 무정부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공무원노조근로자들의 파업으로 행정기능이 중단되고 통신 금융서비스가 차단되는 등 전체적인 국가가능이 마비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파업은 특히 차모로대통령의 퇴진요구로 비화되고 있어 차모로 정권은 출범한지 불과 20여일만에 심각한 도전을 맞고 있다. 공무원노조 1만여명은 지난 11일부터 임금 2백%인상,식료품보조금제도 도입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이 확대되면서 15일에는 주요 정부청사를 점거하고 장관등 고위공무원들의 출근을 저지하기에 이르렀다. 파업근로자들은 또 중앙은행을 장악한데 이어 전화와 텔렉스등 모든 통신서비스를 차단했다. 이같은 통신서비스의 중단으로 심지어는 차모로대통령 관저의 전화도 불통되고 있다. 이번 파업의 직접적인 동기는 공무원들의 임금인상 요구였다. 공무원 노조근로자들은 월70%에 달하는 높은 인플레를 감안,2백%의 임금인상을요구했다. 그러나 차모로정부는 60%의 임금인상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차모로정부는 10년간의 내전으로 피폐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4번에 걸쳐 코르도바화를 평가절하하는 등 긴축정책을 펴고 있는데다 국가재정이 바닥이 나 공무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상황이다. 차모로대통령이 스스로 밝혔듯이 산디니스타정권이 물러 나면서 차모로정부에 넘겨준 국고는 불과 3백만달러였다. 여기에 비해 외채는 1백10억달러에 이르렀다. 공무원노조 파업의 또다른 원인은 산디니스타정부가 제정한 공무원법등 일련의 법률을 차모로정부가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오르테가 전 대통령정부는 퇴진하기 3개월전 대부분이 산디니스타인 공무원들의 안정된 직업을 보장하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노동조합결성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을 부여하는 공무원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차모로대통령은 이같은 공무원법들은 나라 형편상 실시가 어렵다고 판단,개정을 천명한 것이다. 공무원들의 파업은 로살레스노동장관이 『파업은 불법』이라고 선언하고 파업근로자들이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위협하자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파업근로자의 대량해고를 위협하자 이들은 오히려 파업을 확대하고 더 나아가 전기와 수도공급까지도 중단하겠다며 더욱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니카라과의 공무원 파업은 표면적으로는 공무원들의 불만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차모로정권과 오르테가 전 대통령이 이끄는 산디니스타세력과의 대결이라는 분석이다. 공무원들의 대부분이 산디니스타 추종세력들이라는 사실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니카라과 공무원들의 이번 파업은 따라서 정치적 동기가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공무원들이 차모로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등 이번 파업이 정부 전복움직임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정치적 동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공무원들의 파업은 오랜내전으로 피폐된 경제의 회복과 국민화합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출범한 차모로정부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선거를 통해 독재를 청산하고 세운 공화국정부가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차모로정부가 과연 이 난국을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니카라과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 “군축양보ㆍ동구이탈 방관에 불만/소 강경파,폭동유발 가능성”

    ◎셰바르드나제,“핵저장소도 피습 우려” 【워싱턴 연합】 소련외무장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는 미하일 고츠바초프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국민불만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내부 강경세력이 일대 사회적 폭발을 촉발시킬지도 모르며 교묘히 이는 소련내에 산재해 있는 핵 및 화학무기 저장소의 안전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셰바르드나제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달 소련 외무부내의 공산당 간부들에게 한 것으로 워싱턴 타임스지가 7일 미국정부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최근 고르바초프가 지나가는 말처럼 내전의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으나 소련 고위관리가 소련 사회에서 내부투쟁 발생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기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셰바르드나제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셰바르드나제는 『과격파들이 그렇지 않아도 고통받고 있는 대중을 선동,고의로 화약상자에 불을 당기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의 마음뿐 아니라 핵과 화학무기의 거대한 저장소,핵발전소,인종분규지역 등에 줄지을 사회적 폭발의 엄청난 결과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셰바르드나제는 고르바초프에 적대하는 고위직의 강경파들이 미소 군축협상에서의 양보와 동구 맹방의 이탈방관을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밝히고 『아프가니스탄 내전 개입으로 1천1백억달러를 탕진한 크렘린내부의 군사력 우선주의자,팽창주의자들이 소련을 오늘날의 빈한한 상태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했다. 그는 『우리 누구나가 소련연방이 위대한 나라라고 믿고 있지만 영토,인구,무기의 양,인민의 고통,개인 권리의 결여,생활의 혼란 등 이중 무엇이 위대하다는 말이냐』고 반문하면서 이제까지의 소련지도층을 통렬히 비난했다. 그는 또 『일부에서는 미국과 더 이상 타협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군비경쟁이 중단되지 않을 경우 미국의 과학기술수준을 고려할때 10년 또는 30년내에 소련의 국가안보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는 자명하다』고 개탄했다.
  • 소군,반고르바초프 무력시위/나토 소식통 “한때 내전위기”

    ◎“개혁에 불만” 지난 2월 4천명 중무장행진/충격 고르비,탈소ㆍ군축입장 강경으로 선회 소련에서 민주화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2월25일 소련군 정예요원들이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혁에 반발,「무력시위」를 벌였으며 이로 인해 고르바초프는 군축협상과 리투아니아의 분리운동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됐다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한 소식통이 3일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당시 모스크바 부근에 배치돼 있던 약3천∼4천명의 정예 타만경비부대 병력이 모스크바에 소재한 한 군사학교로 진입했으며 여기서 이들은 학생들을 박격포와 기관총으로 무장시켰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어 고르바초프에 대한 무력시위와 소연방의 분열을 우려하는 군부의 경고를 표시하기 위해 학교주위에서 행진을 벌였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이날 군부의 시위는 약10만명의 소련주민들이 민주화를 지지하며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과 때를 같이해 발생한 것이다. 소식통은 고르바초프가 이후 나토 16개 회원국과 바르샤바조약기구(WTO) 7개회원국이 빈에서 개최하고 있던 유럽배치재래식무기 감축회담(CFE)에서 입장을 경화함으로써 군부의 이같은 시위에 대응했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또 이른바 「개방된 영공」이라고 명명된 나토와 WTO간의 공중정찰에 관한 오타와회담에서 협정이 체결되는 것을 막았으며 소연방의 해체에 반대하는 군부의 주장에 동의,결국 리투아니아의 연방탈퇴에 대해 강경입장을 취하게 됐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고르바초프가 당시 군의 사기를 올려 주기 위해 더 많은 물품을 지원해주고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에게 원수란 칭호를 붙여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소식통은 또 고르바초프의 사진이 지난 3월16일자 소련군 기관지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때는 그가 군부와의 우호관계를 회복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의 ITN뉴스와 BBC방송도 나토의 소식통을 인용,소련이 당시 「내전 일보 직전」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서방의 저명 정치지도자들은 3일 모스크바에서 당시그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아직 접하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부시 미국대통령을 비롯,몇몇 인사들은 고르바초프에 대한 소련군부의 반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 「하늘만큼 먼 나라」/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수년전 「하늘만큼 먼나라」라는 한편의 연극이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극단 「산울림」이 대한민국연극제에 내놓았던 이 창작극은 그 예술성 이상의 감동을 남겼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 연극에는 백성희 조명남 전무송 박정자 이주실 등 우리 연극계의 뛰어난 배우들이 열연했고 임영웅씨의 연출솜씨 또한 훌륭했다. 그러나 불과 11명의 배우들이 비좁은 무대에서 엮어내는 연기력만으로 그 큰 감동을 자아낼 수 있을까. 「하늘만큼…」은 그런 연극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늘만큼 큰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이 극의 성공은 이산의 비극성이 갖는 극적 진실때문이었다. 분단과 이산은 40년,50년이 지나도 계기만 되면 한동안 잊고 살던 우리앞에 태연히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는 그 처절한 생채기를 다시 드러내 놓는다. 최근 일본 삿포로에서 만난 한필성남매의 상봉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 오누이의 오열은 이산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분단과 이산의 문제는 어찌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흐른다고 소멸하거나,더구나 없었던거로 해둘 성질의 것은 더욱 아니다. 이 극에서 황사장의 비극이 바로 그런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조강지처이고 나는 어머니의 외아들이었는데 이제와서 정숙하기만한 어머니가 재혼을 한 여자로,얼토당토 않게 내게는 웬 아버지 다른 형이 있어야 하느냐고 발버둥을 치지만 진실은 진실대로 남는다. 이산은 목이메어 헤어지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덧 2세,3세들의 문제가 돼 있는 것이다. 이 연극이 공연될 때는 남북의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각기 「먼 나라」를 상호방문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이 극은 더 큰 아픔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사는 일중에 만나고 헤어지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마음에 가식이 있으면 이 극에서처럼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한 어머니의 자식들이면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두 줄로 나란히 갈라서 있는 그런 모습으로는 재회의 뜻이 없다. 그것은 이산보다 더 큰 비극일지 모른다. 이 극이 공연된 것은 1985년의 일이다. 5년전이다. 5년전과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동안 세계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은 벌써 옛날의 얘기가 돼 버렸다. 두달도 채 남지 않은 오는 7월2일까지 동서간에는 경제통합이 이루어지고 통일작업이 내년안에 마무리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지난해 1년동안 대만에서 본토를 다녀온 사람은 무려 37여만명에 이른다. 89년 대만과 중국의 교역량이 37억달러. 작년 천안문사태이후 중국은 대외개방을 억제하면서 다른 외국의 투자를 막으면서도 대만의 대본토 투자에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89년 대만의 중국투자액이 10억달러 수준. 지난달 24일 대만의 대기업 포모사는 7백억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단지를 본토에 건설키로 했다. 같은날 대만은 본토와 민간대표부 상호교환을 제의했다. 통일이 무엇인가. 사람이 오가고 물자가 유통되면 통일이 아닌가. 대통령이 한사람이고 정부가 하나돼야만 통일 되는게 아니다. 그렇게 보면 통일 안된 나라는 우리 뿐인 셈이다. 1978년 초쯤으로 기억된다.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중국 통일문제에 관한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UC버클리대의 스칼라피노교수,당시 미 CIA국장 터너,그밖에 중국계의 미국학자들이 대거 참가한 호화토론회였다. 이 토론회의 주제는 중국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스칼라피노 등 미국사람들은 한결같이 「무력통일」 뿐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중국계의 많은 학자들은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 통일이 가능하다고 반론을 펴고 있었다. 그들의 논거는 중국에는 「중화」라는 문화적 응집력이 있기 때문에 평화적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에게는 그들의 주장이 생경하기만 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중국의 「중화」는 지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왜 안되는가」라는 얘기를 해보면 「6ㆍ25」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고 만다. 정말 그럴까. 중국은 우리보다 더 오랫동안 내전을 겪었고 대만정부는 나라의 반쪽도 안되는 조그만 섬에 쫓겨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김일성이 변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만 변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과연 그래야 할까. 동독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던때 서독은 오래전 동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분단과 이산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요며칠 사이 『한반도분단의 책임이 있는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들이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뒤이어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에게 문제는 없는가도 살펴볼 일이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열려있는가 말이다. 우리의 「하늘만큼…」은 의외로 가까울 수도 있다.
  • 아프간,비상사태 해제/이달말까지 개헌안 채택

    【카불 AFP 연합】 나지불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3일 내전종식을 위한 신속한 헌법개정의 길을 열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했다. 아프간의 비상사태는 지난 해 2월15일 소련군철수가 완료되면서 선포돼 14개월여 동안 지속됐으며 이번 해제조치는 예정보다 2주이상 앞당겨진 것이다. 모캄말 대변인은 나지불라대통령이 또 압둘 라힘 하티프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15인 위원회의 위원들을 임명했으며 이 위원회는 이달말까지 개헌안을 채택하게 될 「로야 지르가」(대의회)의 소집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올들어 물가 4.7% 올라/4월 한달새 「소비자」는 1.5%나

    올들어 소비자물가가 4.7%나 크게 올랐다. 1일 경제기획원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중 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가 3월에 비해 도매물가는 1.1% 소비자물가는 1.5%가 올라 올들어 4월까지 도매물가는 1.9%,소비자물가는 4.7%나 급등했다. 그러나 이같은 물가상승수준은 4월15일자 수준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 정부의 물가안정대책 발표이후 물가오름세가 다소 주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4월까지의 이같은 물가상승세는 공공요금의 인상에 이어 개인서비스요금 및 축산물,농산물 등 대부분 품목의 가격이 꾸준히 오른데다 주택 전ㆍ월세 가격이 폭등세를 보였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공공요금의 경우 올들어 4개월 동안 납입금이 평균 9% 인상된 것을 비롯,의료수가(7.0%) 시내전화료(14.8%) 시내버스요금(10.7%) 신문구독료(14.3%) 등이 모두 올라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주도했다. 농산물도 산지쌀값을 지지하기 위한 정부미 방출 억제로 시중 쌀값이 12.1%나 오른데다 각종 채소류 값도 상승세를 지속,공공요금과 함께 물가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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