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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대선 후보경선] 갈길 바쁜 힐러리, 잇단악재 “악”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를 2주 앞두고 갈 길 바쁜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잇단 악재로 발목이 잡혔다. 6일(현지시간) 힐러리 진영의 수석 선거전략가이자 최측근인 마크 펜이 힐러리 의원이 반대하는 미국과 콜롬비아간 자유무역협정(FTA)의 의회 비준을 돕기 위해 콜롬비아 대표들을 만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도덕성 파문이 확산되자 캠프를 떠났다. 펜은 대형 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러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콜롬비아 정부와 연간 30만달러의 계약을 맺고 양국 FTA 의회 비준을 지원하기 위해 활동해 오면서 지난달 31일 미국 주재 콜롬비아 대사를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펜은 지난 4일 콜롬비아 대사를 만난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결국 내부 압박에 못이겨 사퇴했다. 힐러리 의원은 미국과 콜롬비아간의 FTA가 미국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등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블루칼라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펜실베이니아 경선을 앞두고 있어 파급을 차단하기 위한 결정으로 보인다. 힐러리의 선거전략을 총괄해 왔던 펜의 공석을 다른 사람들이 메운다고는 하나 충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힐러리 의원 자신은 유세 과정에서 부정확한 발언으로 잇따라 신뢰성에 타격을 입게 됐다. 대통령 부인 시절 내전 중이던 보스니아를 방문했을 때 저격수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어 몸을 숙이고 차량까지 뛰었다는 ‘말 실수’ 여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실수’로 구설에 올랐다. 6일 미 언론들에 따르면 힐러리는 건강보험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오하이오주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사망한 임산부와 신생아의 이야기를 지난 5주간 부각시켰으나 이 사례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돼 더 이상 이 사례를 연설 때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kmkim@seoul.co.kr
  • [아일랜드에서 배우자] (하) 도전받는 경제 기적

    [아일랜드에서 배우자] (하) 도전받는 경제 기적

    |더블린 글·사진 김태균특파원 windsea@seoul.co.kr|아일랜드 제조업 근로자 평균임금은 시간당 26달러(약 2만 5000원)에 이른다. 미국(24달러)보다 높고 동유럽에서 최상의 인력을 보유한 폴란드(5달러)의 5배가 넘는다. 지난해 더블린의 생활비는 세계 주요도시 중 16위였다. 로마(18위), 암스테르담(25위)보다 높고 파리(13위), 뉴욕(15위)과 비슷했다. 특히 더블린의 사무실 임대료는 런던, 도쿄, 파리에 이어 세계 네번째인 1평방피트당 77유로(약 12만원)나 됐다. 20년 초고속 성장을 구가해 온 아일랜드 경제가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내부적으로는 높은 물가와 임금 등 고비용 구조가, 외부적으로는 높은 환율과 세계경기 침체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조짐이다. 미국의 경제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에서 ‘아일랜드 기적이 끝나가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유로화 강세로 장기호황과 경쟁력이 훼손되고 있다.”면서 올해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은 1.6%로 추락하고 실업률은 6%대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아일랜드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4.6%)에 크게 못 미치는 3.0%로 떨어지고 실업률은 5%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일랜드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은 크게 ▲인건비·물가 상승 ▲유로화 강세 ▲동유럽 국가의 부상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높은 임금이 경제의 중추인 외국자본들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일랜드 법인은 아일랜드 인건비가 서유럽 평균보다 높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고, 모토롤라는 지난해 5월 코크시 공장을 폐쇄했다.1989년 들어온 아일랜드 외자유치 성공의 대명사인 인텔과 국제금융서비스센터(IFSC)에 입주한 세계 최대 금융회사 씨티그룹도 다른 나라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일랜드는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특히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동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가경제에서 미국·영국 두 나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40%에 이른다. 실업률도 IBM,HP, 델 등 다국적 기업들의 채용규모에 따라 춤을 춘다. 대부분 나라에 공통적인 소득의 양극화라는 성장의 그늘을 아일랜드도 비켜가지 못했다. 학교를 일찌감치 포기하는 아이들, 미혼모 등 개방에 따른 사회문제도 심각해졌다. 정부는 최근 5년 동안 이런 문제가 심해져서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아일랜드는 ‘2016년을 향하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기술력 증대와 사회인프라 구축에 대대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자생력을 기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아일랜드 국책 싱크탱크 포파스(FORFAS)의 데클런 휴즈 경쟁력분과 위원은 “대학 진학률을 2016년까지 현재의 32%에서 48%로 끌어올리는 등 기술과 인재 혁신을 이뤄 하이테크의 나라로 변신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벤치마킹 올바른 방향은 우리나라에 ‘아일랜드 참고서’의 값어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우리가 ‘일본’(선진국)을 추월하고 ‘중국’(개발도상국)을 따돌리는 해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인가. 유사점도 많고 차이점도 많은 두 나라를 우선 비교해 보자. 한국이 일제 36년 식민지배를 비롯해 숱한 외적의 침입을 받았던 것처럼 아일랜드도 700년간의 영국 식민지배 역사를 갖고 있다.100만명이 사망한 1840년대 ‘감자 대기근’, 독립전쟁, 독립내전 등 거듭된 참화도 6·25전쟁 등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와 비슷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 순수하고 술과 노래를 좋아하는 국민적 특성도 두 나라간 유사점에 해당한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똑같이 자급자족이 아닌 대외개방형 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아일랜드는 인구 420만명으로 남한의 10분의1이 안 된다. 공업화로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과 달리 농업에서 첨단 지식산업으로 직행했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부유한 해외교포들과 인접 국가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공화주의’라는 한 뿌리로 모이는 양당정치의 역사,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교도라는 점은 통일된 국민합의를 도출하기 좋은 구조다. 아일랜드식 발전 모델의 국내 적용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은 엇갈리지만 노·사 관계 혁신이 국가경쟁력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신동면 경희대 교수(행정)는 “근로자와 기업이 상대방의 역할과 영향력을 존중하며 타협점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중립적 지위를 유지하며 다양한 정책을 통해 유인책을 제공한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는 “자유무역, 기업친화적 환경 등을 통해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선에서 끝난 게 아니라 이를 국내외의 네트워크와 성공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세계화된 경제로 통합해낸 것이 아일랜드 모델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최인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아일랜드는 인구가 적은 데다 재계·노동계가 높은 통일성을 보이는 등 우리와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 적절한 실천 모델을 넓은 관점에서 찾아야지 아일랜드의 사례를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존 던 상공회의소장 “전세계 대상으로 정책 벤치마킹 인력·영어사용 등 외자유치 강점”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과 강한 실천능력이 아일랜드 경제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봅니다. 한번 방향을 잡으면 반드시 관철시키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그때그때 지체없이 수정해 나갔습니다.” 존 던 아일랜드 상공회의소장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사회연대협약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정부의 힘을 그 배경으로 들었다.“해묵은 노·사 반목이 사라지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정부가 어느 한쪽의 눈치를 보며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오직 경제발전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던 겁니다.” “아일랜드는 처음에는 영국에서 대부분의 정책을 베껴 왔습니다. 이후에는 핀란드·스웨덴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 좋은 정책들을 배웠지요. 그 뒤에는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 전 세계 국가로 벤치마킹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던 소장은 “한국이 아일랜드에서 배울 점이 있겠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아일랜드 문화의 특수성에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일랜드에서는 대규모 토목공사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이 쉽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매우 쉽게 이뤄지는 것으로 들었다.”면서 국민적 특성과 현재 처한 여건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수한 인력과 지리적 요건, 영어 사용 국가 등의 강점이 여전하기 때문에 임금·물가 등 비용측면을 좀더 개선한다면 외국자본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비용 측면에서 비교우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에도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렌든 할핀 산업개발청 대변인 “정권 바뀌어도 정책기조 유지 금융 등 R&D센터 유치에 주력” “다른 어떤 나라, 어떤 기업에도 없는 고유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매킨토시의 컴퓨터 운영체제(OS) ‘맥OS’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보다 더 좋은데도 윈도를 쓰는 것은 대부분 컴퓨터가 윈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그런 배타적인 우위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외국자본 유치를 전담하는 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A) 브렌든 할핀 대변인은 “교육·기업환경·세제 등에서 확실한 경쟁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의 경제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스템도 중요합니다. 아일랜드에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기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공무원이 바뀌어도 외국자본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는 똑같이 제공됩니다. 시스템이 탄탄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에 사람이 바뀌어도 과거와 달라질 게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는 “동유럽의 약진으로 우리의 경쟁우위가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정보기술(IT)·디지털미디어·의약·금융·무역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생산라인이 아닌 연구개발(R&D)센터 유치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값싼 인건비 등이 장점인 동유럽과는 시장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 ‘239년 왕정’ 네팔 민주주의 첫실험

    ‘239년 왕정’ 네팔 민주주의 첫실험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네팔이 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난다. 오는 10일 역사적인 총선을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제헌의회가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면 239년간에 걸친 샤(Shah)왕조에 의한 절대왕정은 완전히 종식되고 공화제로 바뀐다. 지난달 24일 ‘은둔의 왕국’ 부탄이 총선을 통해 100년 동안의 왕정을 완전히 접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데 이은 것이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민주주의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다. 네팔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0일 전국 240개 선거구 2만 1000여개 투표소에서 제헌의회 의원 610명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6일 현재 선관위에 등록된 지역구 출마후보는 3947명이며 비례대표 후보도 5710명에 달한다. ●마오반군 “선거 압승 자신한다” 현재 네팔에는 74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총리가 이끄는 네팔국민회의당(NC)과 마르크스 레닌 주의자 연대인 네팔공산당(UML), 인도와 중국이 기원으로 알려진 마오 반군이 만든 네팔공산당(M)이 3대 정당으로 손꼽힌다. 왕정 반대에 한목소리를 내는 이들 정당이 이번 총선에서도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절대왕정 국가였던 네팔은 1990년 비렌드라 전 국왕이 입헌군주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치개혁을 단행하면서부터 정치상황이 급변했다. 하지만 정정 불안으로 2년을 넘긴 정부가 없었고 1996년 마오반군의 무장봉기로 네팔은 내전의 불바다로 빠져들었다.10년 내전 끝에 정부와 마오반군은 2006년 11월 공동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을 치르기로 합의했었다. 총선 이후 정국 기상도에 있어서는 맑음보다 흐림에 무게추가 실린다. 부탄은 국왕이 스스로 권력을 국민에게 넘겨줌으로써 소리 없는 정치혁명을 이룬 데 비해 네팔은 ‘피플파워’가 국왕의 권력을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유혈사태가 벌어졌으며 희생자가 속출했었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마오반군이 “우리는 총선 압승을 자신하고 있다.”며 “선거 조작 행위가 포착되면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밝혀 향후 정국은 시계제로 상태다. ●향후 정국 시계제로… 주도권 다툼 예상 이에 따라 네팔 정부는 파국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정 선거를 위해 28개 국제기구와 단체에서 선거감시단 856명을 초청했으며 부정선거 감시요원도 6만 4000명을 위촉했다. 인도와의 국경을 봉쇄하고 13만 5000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하는 한편 지난 주말부터 항공기를 동원한 공중정찰도 실시하고 있다. 한국외대 남아시아연구소 김찬완 박사는 “네팔은 의회민주주의 경험이 적고 마오주의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정착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당분간 정국 주도권을 둘러싸고 계파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네팔의 민주화 실험이 성공할지, 미완으로 끝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최태환칼럼] 박근혜 태업의 명암

    [최태환칼럼] 박근혜 태업의 명암

    지난해 가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였다. 작가 이문열은 걱정했다. 후보 검증이 내전의 칼로 쓰여선 안 된다고 했다.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았던 그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의 사생결단을 두고 한 말이었다. 검증공방이 도를 넘었다. 네거티브 전략이 난무했다. 사실상 내전이었다. 갈등은 가까스로 봉합됐다. 박근혜 후보의 경선패배 승복이 마침표였다. 대선 승리의 출발점이었다. 집권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다시 내전이다. 공천갈등이 내전의 칼이 됐다. 대선 승리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이다.18대 총선 결과를 우려하는 상황까지 왔다. 공천심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호기가 넘쳤다. 공천혁명을 표방했다. 안강민 전 검사장은 공천혁명을 이끈 전천후 폭격기였다. 당 안팎으로부터 스텔스기라는 찬사를 받았다. 결과는 새로운 내전의 출발이었다. 안강민이 떠난 당엔 분열과 갈등의 골만 깊고 선명하다. 한나라당은 전선이 없다. 지도부는 전선없는 전장을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당은 여전히 과반의석 확보의 기대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유권자를 끌어들일 절박한 호소는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2라운드 내전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심란하다. 한나라당의 한계를 봤기 때문이다. 국정 운영능력의 바닥을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친이·친박의 윈윈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내전의 끝은 뻔하다. 어느 일방의 굴복을 향해 달리는 형국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금 ‘이중 당적’이다. 몸은 한나라당, 마음은 바깥에 쏠려 있다. 집을 뛰쳐나가 친정을 압박하는 원군의 위세가 만만찮다. 그는 당 공천 결과를 두고 ‘자신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했다. 이중당적, 총선지원 태업의 명분이다. 하지만 그의 태업은 당은 물론 자신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우선 포퓰리즘 행보의 극치라는 당 안팎의 시선이다. 그는 친이측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천 협상과정에서 좀더 정치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너무나 순진했다. 수족이 잘린 아픔은 이해하지만, 협상력·정치력 한계의 자업자득이다. 뒤늦은 태업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 마케팅이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총선 결과 역시 부담이다. 한나라당 측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면 그의 입지는 그만큼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몽니를 부리다 상처만 입었다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다. 태업 효과가 극대화돼도 문제다. 안정의석 확보에 실패한다면 그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태업이 해당행위 시비로 비화할 수 있다. 오로지 당권·대권에 집착하는 이미지가 부각된 측면도 부정적이다. 친박측은 태업을 원칙·신의가 무너진 데 대한 반격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식구 챙기기가 공천의 최우선 가치였던 데 대해선 비판의 시각이 적지 않다. 변화와 쇄신의 여망을 회피하는 수구의 이미지를 각인케 했다. 어쨌든 물갈이, 쇄신이 공천의 화두였다. 당장 7월 전당대회가 문제다. 당권경쟁을 앞두고 친박연대, 무소속연대 인사들의 복귀를 둘러싼 갈등이 노골화될 게 뻔하다. 내전은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당의 다수를 장악한 친이측과의 전선을 어떻게 갖고 가야 할지도 숙제다. 이번 총선서 그는 ‘박근혜 마케팅’의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대중적 인기를 새삼 확인했다. 하지만 화려했던 인기가 아픈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험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거품’ 키우는 中 작가 모시기 경쟁

    ‘거품’ 키우는 中 작가 모시기 경쟁

    국내 화랑가의 큰손들이 너나없이 중국을 ‘해바라기’하고 있다. 올봄 미술가에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중국 작가전들이 그 방증이다. 올 들어 지금까지 주요 화랑들이 마련한 중국 작가전은 줄잡아 10여개가 훌쩍 넘는다. 갤러리 현대의 탕즈강 전, 아트사이드의 런샤오린 전, 공화랑의 천롄칭 전, 공근혜갤러리의 천뤄빙 전, 어반아트의 인쥔·인쿤 전 등 지난 한 달 동안만 해도 여럿이다. ●베이징 올림픽 특수 노려 국내 유치 경쟁 이제 막 문을 연 전시도 있다. 이화익 갤러리의 ‘Bizarre Flavor:엽기적인 그녀들’전은 서울 송현동 본점에서 13일까지 이어진다. 추이슈원, 한야주안, 양나, 장슈앙 등 중국 여성작가 4인의 그룹전이다. 이들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20∼30대 신인. 중국적 색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다분히 만화적인 회화 작품들을 선보인다. 또 올 초 린톈루 개인전을 마련했던 표갤러리에서는 베이징 인민대학교 유화과 학장으로 풍경화를 주로 그리는 왕커쥐 개인전을 6일까지 열고 있다. 이처럼 앞다퉈 중국 작가들에게 전시장을 내주는 풍경은 이제 국내 화랑가에선 익숙하다. 베이징 올림픽 특수를 노린 중국작가 유치 경쟁은 올 상반기 더욱 치열해진 상황이다. 런샤오린 전에 이어 곧바로 아트사이드는 5월 펑정제 전을 기획했고, 아라리오서울도 7월 왕마이 전을 열 계획이다. ●전시회 열려면 요구사항 무조건 들어줘야 이쯤 되면 중국작가 모셔오기 물밑경쟁이 현지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벌어질 지는 불 보듯 뻔한 일.“해외 경매에서 작품가를 경신하는 스타 작가들의 작업실 앞에는 한국 화랑 관계자들이 줄서 대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다. 개인전을 유치하기까지 실제로 울며 겨자 먹기로 시시콜콜한 요구사항을 다 들어줘야 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인쥔·인쿤 형제전. 지난해 가을 ‘우는 아이’ 시리즈로 유명한 인쥔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감했던 어반아트 갤러리는 그의 전시를 올해 다시 열기까지 대단한 공력을 쏟아부었다. 개인전을 열기로 했던 인쥔이 갑자기 형 인쿤과의 합동전시를 요구하고 나선 것. 어반아트 갤러리 박명숙 대표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영감을 준 이가 중화영웅 시리즈를 그리는 친형 인쿤이니 함께 한국전시를 열어 달라고 느닷없이 요구해 당황스러웠다.”며 “전시일정을 이미 잡아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형제전을 열게 됐다.”고 귀띔했다. ‘중국의 김종학’으로 통하는 왕커쥐 개인전을 국내 최초로 마련하기까지 표갤러리도 몇년 동안 엄청난 공을 쏟았다. 표미경 실장은 “타이완의 현지 컬렉터가 나서 미술관 소장작품까지 끌어모아 어렵사리 성사시킨 전시”라면서 “그래도 150호짜리가 5000만원선으로 가격이 좋은 편이라 모두 팔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시작품 대부분이 미술관 소장품이라 일반이 살 수 있는 작품은 사실 몇 점 되지도 않았다. 작가 부부에 컬렉터 부부까지 특급호텔에 ‘모시는’ 등 제반경비도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검증 안된 작품 데려와 애매하게 소개하기도 현재 중국에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국내 상업화랑은 아트사이드, 갤러리 현대,PKM갤러리, 표화랑, 아라리오 등 10여개. 베이징 예술특구인 주창(酒廠)과 다산쯔(大山子) 지역에 대부분이 진출해 있다. 최근엔 개인 컬렉터가 베이징 등지에서 갤러리를 여는 사례까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중국 작가들과 친분을 쌓고 국내전을 섭외하는 건 대개 현지 갤러리의 큐레이터들 몫이다. 해외시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중국 현대미술을 국내에 폭넓게 소개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줄 잇는 중국 작가전이 나쁠 게 없다. 그럼에도 최근의 중국 쏠림현상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다양한 작가들을 발굴해 소개한다기보다는 작품이 없어서 못 파는 스타 작가 위주의 경쟁적 나눠 먹기 러브콜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한다. 분위기에 편승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사례 또한 적잖다는 우려도 들린다. 한 화랑 관계자는 “작품성과 시장성 모두 검증되지 않은 작가를 데려와서는 ‘상업성은 부족하지만 현지 화단에선 호평받는 작가’란 식으로 애매하게 선전하는 갤러리도 있다.”며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할 계획이라면 가격거품 여부를 철저히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美軍, 이라크 바스라 폭격 초토화

    美軍, 이라크 바스라 폭격 초토화

    석유에 눈먼 미국이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바스라를 초토화했다. 미군은 친미 이라크 정부군과 강경 반미 시아파무장조직인 마흐디민병대가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이 도시를 처음으로 공습했다. 28일(이하 현지시간) BBC,AP 등 외신들은 “미군 전투기들이 27일 밤과 28일 새벽에 걸쳐 두 차례 폭탄을 쏟아부었다.”고 전했다. 이번 전면 공습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승전선언 이후 5년 만의 일로 미군의 본격 개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석유 수출의 관문인 바스라는 반미 아이콘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이끄는 마흐디 민병대가 주요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바스라가 있는 남부지역엔 민병대의 세력권에 드는 시아파의 집단거주지가 많이 있다. 또한 남부는 세계3위를 자랑하는 이라크의 원유 매장량 가운데 60% 이상이 있는 ‘검은 황금’지대다. 특히 지표에 가깝게 원유가 묻혀 있고 질도 좋아 배럴당 생산단가가 1달러밖에 되지 않는 최적 지대이다. 이들 유전지대가 이라크 종전 후 반미세력의 수중에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 미국은 공습이란 강경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공습 이외의 카드로 친미노선인 누리 알 말라키 총리를 이용하고 있다. 그를 반미세력 제거의 선봉장으로 나서게 부채질하고 있다. 그동안 알 사드르의 위세에 눌려 미국의 ‘얼굴 마담’ 노릇을 했던 말라키 총리도 이번 기회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키울 기회로 삼으려 미국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그는 이라크군 3만명을 바스라에 투입해 25일부터 민병대에 대한 대대적 소탕에 나섰다. 말라키 총리는 28일 “민병대의 항복 시한을 당초 29일 자정에서 4월8일까지 연장한다.”며 “투항하는 민병대원에게는 현금을 주겠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민병대와 협상은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었다. 무력 충돌이 확산됨에 따라 이라크 전역은 포탄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더 이상 안전지대가 없는 내전 모드로 진입했다.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바그다드의 미군 특별경계구역인 ‘그린 존’에도 마흐디 민병대의 로켓포와 박격포가 연일 날아들고 있다. 미국 대사관과 이라크 정부청사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이 지역은 이번주 들어서만 4일째 공격을 받고 있다. 수도 바그다드엔 시민 안전을 이유로 30일 새벽 5시까지 3일 동안 통행 금지령이 내려졌다. 통금령 때문에 바그다드에서의 전투는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25일부터 바스라에서 시작된 양측의 무력충돌로 지금까지 14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교전은 각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어 희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라크 의회는 28일 오후 긴급회의를 소집,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 모색에 들어갔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말라키의 강경 노선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마흐디 민병대에 타격을 주기 위해 미국이 조장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라크의 내전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소년병·인종갈등·무국적자·AI…

    우리가 꼭 알아야 하지만 놓치고 있는 지구촌의 주요 사건들은? ‘세계정부’ 유엔이 27일 지구촌 식구면 꼭 알아야 할 열 가지를 뽑았다. 켜켜이 쌓인 국제적 현안들에 밀려났지만 꼭 개선해야 할 사안들을 되돌아보자는 뜻이 담겼다.# 총알받이로 내몰린 아이들 콜롬비아, 파키스탄,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30만여명의 어린이들이 총을 든 채 전쟁터에 병사로 내몰려 있다.10세 안팎에 13∼17세까지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절반은 소녀라고 자선단체 ‘아동을 구하라’가 밝혔다. 이들은 성폭행 등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사회복귀도 매우 어렵다.# 봄 되찾는 인종갈등 지역 유엔은 우간다를 대표적인 나라로 꼽았다.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40여년간 내전이 이어졌다.그러나 특히 북부지역에서 이러한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고 유엔은 밝혔다.# 국적도 없이 떠도는 이들 쿠르드족, 집시 등 유랑민족들은 물론 동유럽, 아프리카에서 고국을 떠나 더 살기 좋은 곳으로 향해 정처없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주로 귀화, 결혼, 입양, 영토변경 등의 사유 때 국가간 협정이 없어 발생한다. 전세계 1500여만명으로 추산되며, 교육·의료혜택 등 제도에서 소외된 채 숨어 지낸다.# 기후변화가 끼치는 악영향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는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져 소홀히 하기 쉽다. 하지만 대재앙이 닥치기 전에 준비하는 자세를 국제적으로 갖추지 않으면 인류를 곧 재앙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땅 꺼진 십자로(十字路) 유엔은 기로에 선 아프가니스탄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눈을 돌리자고 촉구한다.탈레반과 정부군의 전쟁으로 2001년 이후에만 민간인 15만명이 애꿎게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 할퀴는 말라리아 해마다 100만명 이상 사망자를 내는 금세기 최악의 재앙이다.주로 아프리카의 어린 새싹들이 희생된다. 유엔은 방충망 보급확대와 새 의약품 개발로 상황은 차차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봤다.# 확산일로 조류 인플루엔자 2003년 처음 나타난 뒤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도 사라지지 않아 대책이 시급하다. 최근 중국과 동남아시아까지 확대되며 동아시아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도 치료제 비축률이 3%에도 못 미치는 등 준비가 소홀하다.이밖에 서부 다르푸르와는 달리 남부 수단에서 펼쳐지고 있는 평화복구 노력과, 유엔 인권위원회 및 평화유지군 활동도 눈여겨볼 이슈로 꼽았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혁명의 시간/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한국 근현대사와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일제강점기 러시아에까지 흘러 들어간 조선인들은 일본의 시베리아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내전 초기부터 볼셰비키 편에서 반혁명에 맞서 싸웠다.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은 볼셰비키 당원이었고, 레닌에게 받은 권총을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1980년대 젊은이들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는 이론적 틀로서 러시아혁명을 숨어서 공부했다. 인연의 깊이에 비해 러시아혁명은 우리에게 오랜 기간 금기어였다. 특히 볼셰비키 ‘10월 혁명’에 초점을 맞춘 국내 연구서는 번역서조차 흔치 않았다. 근래에 번역된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과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가 명저로 꼽히나, 전자는 혁명의 현장을 기록한 저널리스트의 르포르타주 성격이, 후자는 혁명 주체가 쓴 혁명옹호 성격이 강한 글로 엄정한 학술서와는 거리가 있다. ‘혁명의 시간’(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류한수 옮김, 교양인 펴냄)은 박진감 넘치는 르포 형식을 띠면서도 객관적 사료에 기반한 학술서란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미국 인디애나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알렉산더 라비노비치가 냉전의 절정기인 1976년에 쓴 이 책은 ‘10월 혁명’을 ‘볼셰비키로 대표되는 극소수 무자비한 혁명가들의 권력 탈취 쿠데타’로 규정해온 서구 역사학계의 통설을 뒤집는 대담한 주장을 담고 있다. 저자는 혁명의 성공요인을 대중의 요구를 민감하게 포착한 볼셰비키의 현실 인식과 토론과 논쟁이 거침없이 이뤄진 볼셰비키 내부의 민주적 논의구조에서 찾는다. 이는 볼셰비키 집권요인을 당의 권위적 위계에서 찾는 서구 학계와 레닌의 탁월한 지도력을 강조하는 구 소련의 관점을 모두 뒤집는 해석이다. 볼셰비키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러시아인 집안 출신인 저자는 혁명 당시의 신문기사와 관련 문서, 회고록 등 1차 사료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10월 혁명’의 성공 요인을 재규명했다. 그의 학설은 이후 서구 학계가 러시아 혁명을 재평가하게 만든 계기가 됐고,70년대 보수적 역사해석에 반발해 등장한 수정주의적 관점을 형성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구 소련 비밀문서 해제 후 수정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지금도 저자는 “새로운 자료가 내 분석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지만 결론까지 바꾸지는 못했다.”고 주장한다.2만 9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9) 찰스 호히 아일랜드 前 총리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9) 찰스 호히 아일랜드 前 총리

    |더블린(아일랜드) 김태균특파원| 아일랜드는 ‘경제 기적(奇蹟)’이란 게 무엇인지 현실에서 보여준 살아있는 표본이다.‘서유럽의 병자(Sick Man)에서 켈틱 타이거(Celtic Tiger·켈트의 호랑이)로’,‘후진 농업국에서 선진 지식강국으로’ 등 다양한 변화의 수사(修辭)가 아일랜드에 따라붙는 이유다. 기적의 중심에 1987년부터 92년까지 총리(티샤흐)를 지냈던 찰스 호히(Charles Haughey)가 있다. 호히는 87년 3월 전체 의석의 과반이 안되는 ‘여소야대(與小野大)’로 3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했다.‘피나 폴(공화당)’의 당수로 이미 79∼82년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냈던 그는 당시 경제파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업률 17%의 ‘만신창이 경제´ 경제는 만신창이였다. 직전 해인 86년 실업률은 17%나 됐고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80년대 연 평균 국가 총 파업일수는 36만여일(개별공장 파업의 총합)이나 됐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30%를 넘어서 정부는 예산의 35%를 이자 갚는 데 쏟아부었다.73년 가입한 유럽경제공동체(EEC) 회원국들은 아일랜드를 EEC의 지진아로 여기고 있었다. 호히는 재정 건전화와 사회안정,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외국자본 유치 등을 경제회생의 실천목표로 잡았다. “국가재정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공공서비스가 약화돼도 어쩔 수 없다.” 무자비할 정도의 정부예산 삭감이 시작됐다. 교육·농업·사회복지가 초긴축 재정의 1차 타깃이었다. 공무원 수와 그들의 임금을 동결했다. 정부지출을 억제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이를 통해 저금리를 유도함으로써 기업환경과 해외자본 유입을 활성화하자는 생각이었다. 그해 10월에는 노조, 기업, 농업 등 각계 대표들을 한 자리에 불렀다. 정부가 세금을 내릴 테니 기업은 고용을 보장하고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해 경제회생에 동참하라고 설득했다. 산고 끝에 첫 번째 사회연대협약인 ‘국가재건프로그램(PNR)’에 합의가 이뤄졌다.3년간 임금인상률 2.5% 이내 제한, 법인세·소득세 감면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외자 유치로 내부 성장동력 확충 호히는 동시에 더블린의 부두가(도크랜드)에 ‘국제금융서비스센터(IFSC)’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해외 금융자본 유치를 통해 내부 성장동력을 확충하겠다는 뜻이었다. 과거 제조업체에 한해서만 10%의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하던 해외자본 유치 인센티브를 IFSC에 입주하는 외국 금융기관에도 적용했다.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다. 현재 IFSC에는 시티그룹, 코메르츠방크,ABN암로,JP모건, 메릴린치 등 전 세계 450개 금융기관이 들어와 1만명이 일하고 있다. 새로운 경쟁촉진법 제정, 외국자본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 제공, 외환규제 철폐 등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도 만들어갔다. ●작년 GDP 5만8883달러… 영국 압도 이런 노력 덕에 지난 20년간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왔다.GDP 증가율은 86년 0.4%에서 88년 3.0%,90년 7.7%로 급격하게 안정을 찾았다.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외자유치 효과가 본격화하고 지식산업의 성장이 가속화하면서 95년 9.6%,97년 11.5%,99년 10.7%로 성장률이 더욱 뛰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발표기준 아일랜드의 1인당 명목 GDP는 5만 8883달러로 800년간 식민통치를 했던 영국(4만 5301달러)을 압도했다. 유럽에서 아일랜드보다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아이슬란드뿐이다. 과거 호히와 함께 근무했던 조지 쇼 총리실 경제정책국장은 “호히의 업적은 외자유치, 규제완화 등 미래를 내다본 정책에도 있지만 더욱 큰 것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람들을 경제회생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도록 인도하고 조정해 간 특유의 추진력과 카리스마”라고 말했다. windsea@seoul.co.kr ■ 국민 모두가 함께 일군 경제회생 |더블린 김태균특파원|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면 우리(야당)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지 않겠다. 또 올바른 정책이라면 우리가 다시 집권해도 이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해 3월에 집권한 찰스 호히의 ‘피나 폴(공화당)’이 경제개혁 방안을 하나 둘 내놓고 있던 1987년 9월2일,‘피나 게일(민주연합당)’의 당수 알란 듀크스는 더블린 남부 탈라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이른바 ‘탈라 선언’.1922년 ‘아일랜드 내전’(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북아일랜드 처리 문제를 놓고 아일랜드인끼리 벌인 전쟁)에서 맞붙은 이후 계속된 양측간 극심한 대립이 종식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에는 호히의 선제적 유화책도 중요한 이유가 됐다. 호히는 자기가 총리가 되기 직전 집권당이었던 피나 게일의 정책들을 대부분 이어받았다. 야당시절 반대했던 정책들조차 일부 실행에 옮겼다. 해묵은 정쟁은 경제파탄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판단이었다. 호히가 경제 최우선 정책의 돛을 올렸어도 야당과 기업·노조·농민 등의 호응이라는 순풍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기적은 없었을지 모른다. 특히 야당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여당이 공공지출 삭감과 임금인상 억제 등 인기없는 정책을 펼 때 이를 정권탈환에 이용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여당을 도왔다. 이때 수립된 전통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됨으로써 아일랜드 경제에 대한 안팎의 신뢰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3년에 한번씩 사회연대협약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노·사·정이 보여준 양보와 합의의 미덕도 귀한 밑거름이 됐다. 임금인상·근로조건 등을 둘러싼 노·사 이견으로 사회연대 시스템 자체가 깨질 뻔한 상황이 여러번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노·사가 한발씩 양보하며 정부의 중재를 수용해 원만한 타결을 지었다. 존 던 아일랜드 상공회의소장은 “사회연대협약은 여당과 야당, 기업과 노조 등 개별주체들이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windsea@seoul.co.kr ■ 찰스 호히는 누구? |더블린 김태균특파원|찰스 호히는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자국에서는 ‘지난 반세기 가장 강력한 아일랜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이다. 호히를 논할 때면 항상 ‘카리스마(charisma)’와 ‘논쟁적(controversial)’이라는 단어가 따라 붙는다. 정계의 거목으로 선진국 진입의 길목을 열었다는 평가 못지 않게 검은 돈과 여성편력 등 부정적 이미지도 강하기 때문이다. 호히는 1925년 아일랜드 북부의 낙후된 지역 캐슬바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회계학과 법학을 공부한 그는 51년 유력 정치인 숀 레마스(59∼66년 총리 역임)의 사위가 되면서 정치와 연을 맺었다.57년 33세 나이로 더블린에서 의원이 된 뒤 92년 정계를 떠날 때까지 총리만 3차례(79∼81년,82년,87∼92년) 지냈고 법무장관(61∼64년), 농업장관(64∼66년), 재무장관(66∼70), 보건·사회복지장관(77∼79년)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의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세번째 총리 재임 때였지만 이 기간은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날들이었다. 그동안 누적됐던 각종 스캔들이 한꺼번에 분출됐기 때문이다. 호히는 재계 인사들과 오랫동안 청탁과 뇌물의 고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출처가 모호한 돈으로 대저택에 살면서 밤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화려한 사교생활을 했다. 여러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도 잇따라 폭로됐다. 풍자만화가들은 호히를 딸기코의 알코올 중독자나 호색한으로 자주 묘사했다. 91년에는 10년 전 언론인 도청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고 정부각료들이 일제히 등을 돌리면서 호히는 92년 2월 불명예스럽게 정계를 떠났다. “나는 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 왔지만, 그들은 모르네. 더 이상은 그만…” 호히는 마지막 의회 연설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 나오는 주인공 오셀로의 마지막 대사를 인용했다. 호히는 2006년 6월13일 8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일랜드 정부는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러주었다. windsea@seoul.co.kr
  • [씨줄날줄] ‘티베트에서의 7년’ /구본영 논설위원

    최근 티베트에서 유혈사태가 번지면서 맨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브래드 피트 주연에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연출한 ‘티베트에서의 7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히말라야 원정을 떠난 오스트리아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가 수용소에 갇혔다가 탈출, 티베트의 라싸에서 겪는 실화를 다룬 영화다. 고대 서양문명의 중심이었던 그리스에선 희랍인이 아닌 다른 민족을 ‘바르바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대 영어의 야만인(Barbarian)의 어원이 됐다. 동양을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대개 이런 시각에서 동양 문화를 한 수 아래로 그리기 일쑤다. 그러나 ‘티베트에서의 7년’은 동양 문화를 편견없이 다뤘다. 주인공이 어린 소년이었던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서 인간의 삶에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대목이 그랬다. 중국 시짱(西藏) 자치구가 티베트인들의 분리독립 시위로 준내전 상태란다. 시짱 자치구는 티베트인들의 오랜 생활터전이었다. 당송 시절 토번(吐蕃)이란 강성한 통일국가를 이루기도 했다. 중국 고대사는 한족의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주변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기록했다. 한족의 시각에선 티베트인들도 이런 ‘오랑캐 민족’중 하나일 뿐이다. 중화주의적 편견을 버리고 보면 고대 때부터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민족인 셈이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보면 영토의 4분의1에 이르는 시짱 자치구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광물과 목재 등 자원의 보고여서만이 아니다. 티베트가 분리되면 다른 55개 소수민족들의 연쇄 반응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칭짱철도로 한족들을 대거 이주시키는 흡수 정책과 서부대개발이란 당근 정책을 함께 구사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20년래 최악이라는 이번 유혈사태는 57년에 걸친 ‘중국 우월적’ 동화정책이 뿌리내리지 못했음을 웅변한다.20여년간 티베트 고유의 불교문화를 억제해 왔지만, 라싸 거리의 주민들은 여전히 염주를 쥐고 다닌다지 않는가.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의 문화적·종교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쪽으로 자치권을 확대하는 것이 사태 해결을 위한 차선의 대안은 될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선부론(先富論·능력껏 부자가 돼라)/던컨 휴잇 지음

    중국 남부 광둥성의 지난해 1인당소득은 8900달러, 서부 닝샤후이주 자치구의 소득은 176달러.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곳의 소득격차는 무려 50배에 이른다.1978년 덩샤오핑이 ‘선부론(先富論·능력껏 부자가 돼라)’을 앞세우며 개혁·개방을 실시한 지 30년을 맞은 지금, 도농간 빈부격차는 중국의 가장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그런 배경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005년 균부론(均富論·다같이 부자가 되자)의 기치를 올린 것. 그렇다면 선부론은 어떤 현재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선부론이 물론 빈부격차의 한 원인이 됐지만, 그래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은 중국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절대 기아에서 해방시키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는 점이다. ‘선부론’(던컨 휴잇 지음, 김민주 등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은 중국 시장경제의 키워드가 된 선부론을 집중 조명한 책이다. 영국 BBC의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저자는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을 거시적인 틀에서 다루기보다는 경제발전에 따른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라오바이싱(老白姓·일반인)’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베이징에서 만난 여든 두 살의 자오 노인은 내전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용케 견뎌온 자신의 집이 재개발로 헐리는 것을 모습을 지켜 봐야 했다.1990년대 말까지만해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던 조용한 회색도시였던 베이징은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지금 대규모 토목 공사가 한창이다.2∼3년 전만 하더라도 막힘없이 달리던 베이징의 5개 순환도로는 만성적인 교통체증에 허덕이고 있다. 서유럽이 1세기 만에 이뤄낸 것을 한국은 20년동안, 중국은 10년 만에 이룩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중국의 고도성장에 찬사만 보내는 것은 아니다. 서구 언론인 특유의 중국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여전하다.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경제발전을 이끄는 도시의 모습을 소개하는 한편 실업·빈부격차 등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1만 9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

    “사람에게 어떤 딱지도 붙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는 그런 삶을 희망했다. 하지만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인, 외교관, 정치인, 망명자, 공산주의자, 평화주의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살았을 때나 죽은 이후에나 그에겐 수많은 딱지가 붙어 다녔다.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박병규 옮김, 민음사 펴냄)는 파블로 네루다가 말년에 쓴 자서전이다. 칠레의 전원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이생에서의 호흡을 멈추기 직전까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딱지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외투를 입었던 네루다는 그가 겪었을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시시콜콜 늘어놓지 않는다. 자서전은 자신의 인생을 미화하거나 내면의 회한으로 침잠하는 대신, 그가 발 딛고 살며 끊임없이 개선해 내고자 발버둥쳤던 바깥 세상과 대면한다. 자신의 사생활이나 신상 이야기 대신 시대상황과 그 속에서 살았던 인물들의 삶의 궤적과 고민에 초점을 맞춘다. 네루다는 책 서문에서 “회고록을 쓰는 사람의 회상과 시인의 회상은 다르다.”고 썼다. 그는 ‘회고록 쓰는 사람의 회상’으로 밤마다 자신의 시를 동료 게릴라들에게 읽어 줬던 체 게바라를 비롯해 카스트로, 아옌데, 네루, 피카소, 엘뤼아르 등 그가 삶의 여정에서 만나온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네루다의 자서전은 단지 그만의 회고록에 머물지 않는다. 성찰적 언어로 길어낸 ‘20세기의 회고록’이라 할 만하다. 네루다가 밟아온 발자국은 당대 칠레의 운명과 씨실과 날실로 얽혀 있다.“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다.”며 우울한 사랑의 시어를 구사하던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과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죽음, 격변하는 칠레의 정치상황을 거친 후 “성숙한 작가는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다.”고 언어의 목소리를 바꿨다. 그는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란 표현으로 자신의 평생을 돌아봤다.“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라고 했지만,“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라고 그는 정의했다. 네루다의 시는 서정과 낭만에서 출발했지만, 시대와 민중 사이에서 완성됐다. 네루다가 생전에 끝내 탈고하지 못했던 자서전은 사후에 그의 부인과 친구의 손을 거쳐 정리됐다. 원고는 피노체트 군부의 감시망을 피해 국외로 반출돼 1974년 스페인에서 출간됐다.2만 5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광주민주화운동 인문학적 성찰 연구서 ‘5·18 그리고 역사’ 출간

    광주민주화운동 인문학적 성찰 연구서 ‘5·18 그리고 역사’ 출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폭넓은 인문학적 성찰이 이뤄졌다.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위주로 5·18을 분석해온 기존의 접근 방식을 훌쩍 뛰어 넘은 것이다. 최근 출간된 ‘5·18 그리고 역사’(최영태 등 지음, 길 펴냄)는 역사학, 정치학, 문학, 미술사, 철학 분야로까지 시각을 넓혀 5·18을 총체적으로 해석하고 조망했다.5·18의 사상사적 측면까지 파고들어간 의미있는 성과다. 작업의 첫 싹은 2005년 봄 전남대 5·18연구소 소장이던 최영태 사학과 교수가 ‘5·18항쟁과 민주·인권’이란 강의를 개설하면서 트기 시작했다. 강의를 원하는 학생들이 늘어나자 학교는 이듬해부터 2개 강좌로 교육과정을 확대했고, 전남대의 문제의식에 공감한 광주·호남지역 대학들(2005년 2학기 조선대,2006년 광주대,2008년 호남대 등)이 속속 강의를 열어 뒤를 따랐다. 이번에 나온 책은 각 대학 교수들이 1년 동안 토의해 만든 초고를 다시 1년간 실제 수업에 적용한 뒤 재차 토론을 거쳐 가다듬은 내용들이다. 최 교수는 “기존의 5·18 연구서들이 연구자의 전공에 따라 관점의 쏠림 현상을 보였는데 여러 전공자들이 공동연구자로 참여하면서 폭넓은 시각으로 5·18을 바라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필진들은 조만간 5·18 피해자까지 참여시킨 연속 세미나를 개최해 연구결과를 객관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5·18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란 논문으로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신학대학 교수 재임용 탈락 문제로 6년간 ‘거리의 철학자’로 지내다 2005년 전남대로 부임한 김 교수는 오랜 기간 5·18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적 독해를 시도해왔다. 김 교수가 2006년 5·18연구소의 학술계간지 ‘민주주의와 인권’에 발표한 ‘응답으로서의 역사’는 5·18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활자화된 첫 번째 철학적 고찰이다. 그는 이번 논문에서도 5·18을 단일 사건이 아닌, 한국 역사에서 면면히 관찰되는 ‘씨알(민중)과 국가기구간의 전쟁’이자 ‘서로주체성의 만남’으로 파악하는 독특한 사유를 선보인다. ■ 5·18 철학적 해석 김상봉 교수 다음은 김상봉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그간 5·18에 관한 철학적 접근이 부재했던 이유는.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5·18을 연구한 학자들은 주로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으로 항쟁을 바라봤다. 주변부 자본주의의 모순이 어떻게 광주에서 폭발됐는가가 관심 연구대상이었다. 이때 기본전제는 5·18이 침해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이란 시각이다. 문제는 그것만으론 5·18이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양 사회과학 이론으로 파악할 때 전례 없는 국가폭력 양상을 보인 5·18은 해석 불가다. 서양의 계몽적 해방과 한국의 자기해방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로주체성’ 개념은 그래서 도입한 것인가. -‘서로주체성’ 개념을 처음 쓴 건 1998년 출간된 첫 책 ‘자기의식과 존재사유’에서였지만, 광주를 서로주체성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나온 ‘서로주체성의 이념’이란 책에서부터다. 참된 의미에서 공동의 주체성은 내가 홀로 정립하는 주체성이 아니라 나와 네가 함께 정립하는 주체성이다.5·18은 온전한 공동체의 전범이다.5·18은 서구 이론에서 말하듯 빼앗긴 권리를 찾는 투쟁에 그치지 않고 참된 만남을 구현하려는 서로주체성의 운동이다.5·18은 고통을 함께 나누고, 같이 먹고, 같이 싸우는 이상적 정치공동체의 원형질이라 할 수 있다. ▶5·18을 한국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씨알과 국가기구간의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파악한 것도 독창적이다. -5·18로 발생한 씨알과 국가기구의 충돌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근본적 사건이다. 최근 200년 동안 한국은 본질적으로 내란 또는 내전 상태에 있었다. 정조가 사망한 1800년 이후 이 땅의 모든 국가기구는 씨알의 나라가 아니라 씨알을 잠재적인 적으로 삼은 기구였다. 홍경래의 난에서부터 동학농민전쟁,3·1운동, 광주학생운동, 제주 4·3사건 등도 이 같은 대립구도의 역사적 사례다. ▶김 교수 시각대로라면 제2, 제3의 5·18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5·18처럼 야만적이진 못하겠지만 방식은 다양하게 변주될 것이다. 충돌이 현실화될 때 국가기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본질적으로 한국의 국가기구가 국민 전체를 위한 서로주체성의 현실태가 아니므로 양자간의 전쟁이 근절되긴 힘들 것이다. ▶전쟁의 연쇄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뭐라고 보나. -국가기구를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자유와 주체성의 현실태로 만들 수 있느냐가 문제다. 관건은 시민정치의 복원이다. 정치가 실종되고 경제만 남은 현 상황은 매우 위험하고 불길한 징후다. 경제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질 때 국가 권력은 언제든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고, 사회적 약자는 더욱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다. ▶앞으로 5·18을 주제로 한 철학적 사유를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인가. -서로주체성 이념 위에 한국 항쟁사의 토대를 놓으려고 한다. 서양의 항쟁사와 무엇이 다른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항쟁사의 독특성을 규명할 것이다. 올해 준비중인 논문 가운데 ‘계시로서의 역사’란 게 있다. 5·18을 일종의 종교적 계시로 파악한다. 지금까지 계시는 신적인 것과 인간을 초월한 것으로만 여겨졌고, 예수와 부처를 통해 개인의 완성이라는 소승적 구원에 머물렀다. 반면 5·18의 독보성은 공동체의 완성을 통해 개인이 완전해진다는 데 있다. 항쟁지도부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사망한 윤상원이 대표적이다. 윤상원은 5·18을 통해 신화가 됐다. 인류가 지향할 것은 개인적 완성이 아니라 공동체적 완성이고,5·18을 통해 그 가능성이 제시됐다는 얘기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은 ‘파격’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은 ‘파격’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데미안 허스트가 갓 대학을 졸업한 애송이 작가였던 1988년. 그러나 그는 도발의 메시지로 가득한 현대미술전 ‘프리즈(Freeze)’전을 열어 미술계의 시선을 단박에 압도했다. 전시에 함께 한 젊은 작가그룹의 이름은 ‘yBa(young British artists)’. 당시 그룹의 멤버로 국제무대에서 왕성하게 활약해온 이안 다벤포트(42)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의 개인전이 아시아권에서 열리기는 이번 국내전이 처음이다. 다벤포트는 1990년 ‘브리티시 아트쇼’에 참가한 뒤 몇몇 주요 갤러리들에서 순회공연하면서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이듬해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개인전을 열고 세계적 권위의 미술상인 ‘터너 상’후보에 오르면서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여러 색깔의 페인트를 주사기로 흘러 내리게 하는 이른바 ‘라인 페인팅’ 기법 등을 동원한 독창적 작품들로 유명하다. 이번 국내전에서는 줄무늬와 아치, 원 시리즈 등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의 작품 17점을 내놓았다. 작가는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파격적 작업방식을 집중 소개한다. 캔버스가 아닌 파이버보드나 알루미늄판에 물감 대신 가정용 페인트를 동원한 작품들이다. 붓 대신 못, 물통, 주사기로 화면에 페인트가 흘러 내린 흔적으로 수직선이 반복되는 독특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알루미늄판 위로 흘러내린 줄무늬의 색조와 리듬을 느끼게 하는 근작 ‘Poured Lines’시리즈가 그 기법을 이용한 대표적 작품이다.21일까지.(02)720-1524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급변하는 IT5대 이슈](4) 인터넷전화(VoIP) 본격화

    [급변하는 IT5대 이슈](4) 인터넷전화(VoIP) 본격화

    “아날로그 전화의 120년 역사는 머잖아 종언을 고할 것이다.” 1999년 10월 새롬기술이 무료 인터넷 전화 ‘다이얼패드’를 공개했을 때 사람들의 놀라움은 대단했다. 끔찍한 통화품질과 불편한 이용방법 때문에 관심은 이내 시들해졌지만 인터넷 음성전화의 대중화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보였다는 점에서 다이얼패드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존재감을 부여받고 있다. 다시 인터넷 전화가 주목받고 있다. 다이얼패드로부터 얼추 10년이 흐른 지금 인터넷 전화는 벤처기업의 기술력 과시나 틈새시장용 상품이 아니라 실생활과 밀접히 연결된 거대 기간통신 네트워크의 하나로 성장했다. 인터넷 전화의 또 다른 이름은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다. 공공전화교환망(PSTN)을 쓰는 기존 일반전화와 달리 인터넷망(IP)을 통해(over) 목소리(Voice)를 전달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장점은 경제성이다. 시내전화의 경우 인터넷 전화나 기존 KT·하나로텔레콤 일반전화나 거의 차이가 없지만 시외·국제요금에서는 격차가 크다. 전국·전세계에 걸쳐 연결된 인터넷망을 활용하는 것이어서 공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KT와 하나로텔레콤의 시외요금(반경 30㎞ 이상)은 각각 3분에 261원,250원이지만 LG데이콤의 인터넷 전화는 시내요금과 똑같은 38원이다. 데이터통신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부가서비스도 가능하다. 얼굴을 보며 하는 화상통화는 물론이고 날씨, 뉴스, 인터넷뱅킹 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LG데이콤, 삼성네트웍스,SK텔링크, 한국케이블텔레콤, 스카이프(미국) 등이 인터넷 전화 사업을 하고 있지만 미국·일본 등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일본은 인터넷 전화 가입자가 1375만명에 이르고 미국도 2006년 말 기준 935만명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30만명의 LG데이콤이 가장 많다. 인터넷 전화 시장은 올 상반기에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번호이동제도’의 시행이다. 인터넷 전화에는 이동전화의 010,011,016,019처럼 070이라는 식별번호가 붙는다. 스팸전화로 많이 활용되는 060·080과 비슷한 데다 인터넷 전화에 가입하려면 당장 쓰는 번호를 포기해야 해 거부감이 컸다. 이 문제는 그동안 시장 활성화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번호이동제도가 도입되면 현재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다. 국내 최대 통신회사인 KT가 오는 5월 가정용 인터넷 전화 사업을 본격화하면 국내 시장은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IDC는 국내 인터넷 전화 시장이 지난해 2552억원 규모에서 향후 5년간 연 평균 53%씩 성장해 2011년 1조 4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열린세상] 베이징 올림픽과 ‘성당(盛唐)의 꿈’/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열린세상] 베이징 올림픽과 ‘성당(盛唐)의 꿈’/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2008년 8월8일 오후 8시8분8초에 개막하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인권 문제, 공해 문제, 음식 문제 등 몇가지 악재가 터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중 나의 관심을 끈 소식은 미국의 세계적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베이징올림픽 예술고문직 사퇴다.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토착민인 푸르족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으로 20여만명이 학살되고 난민 250만명이 발생했는데도 수단의 석유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학살을 중단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반인권적인 중국 정부가 개최하는 올림픽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로 사퇴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의 세계적 감독이며 베이징올림픽 개막행사의 예술감독인 장이머우는 당나라의 수도이던 시안을 방문한 자리에서 “성당(盛唐) 문화는 중화 문화의 최고봉이다. 성당은 군사적으로도 세계 최고였다. 곧 중화의 문명이 성당처럼 불끈 일어나 세계인의 긍지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이 자국의 문화와 국력을 전세계인들에게 자랑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당국은 개막식 주제를 특급비밀로 분류해 놓고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으나 장이머우의 발언이나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 볼 때 ‘성당시대의 재현’이 거의 확실한 듯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라는 당을 개막식에서 부각시키려는 것은 또다시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해 보겠다는 의지의 문화적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개막공연에서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의 예술도 웅장하게 선보일 것이라고 전해진다.56개 소수민족의 예술을 통일적으로 집대성함으로써 후진타오 주석이 주창해 온 ‘조화(和諧·화해)사회’의 꿈을 전세계에 알리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이런 개막식의 주제들은 베이징올림픽의 3대 테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3대 테마는 첫째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둘째 ‘녹색 올림픽, 과학기술 올림픽, 인문 올림픽’, 셋째 ‘조화’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정황들을 살펴볼 때 1970년대 말 이후 중국의 대외정책과 경제정책을 대표하는 용어이던 ‘도광양회(韜光養晦)’와 ‘흑묘백묘(黑猫白描)’는 이미 용도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인민이 잘살 수만 있다면 외국기업이든 환경오염 유발업종이든 가리지 않겠다던 정책이 몇년 전부터는 첨단산업과 친환경산업만 받아들이겠다는 ‘녹묘(綠猫)’ 정책으로 바뀌었다. 또 최근 들어 공식·비공식 행사에서 중화민족 부흥과 강대국 건설이 주창되고, 중앙텔레비전이 강대국 흥망사인 ‘대국굴기(大國屈起)’란 프로그램을 만들고, 동북공정을 비롯한 여러 공정들을 활발하게 진행해 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의 신중함은 벗어던진 지 오래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중화권 내 소수민족이나 주변국들을 ‘조화’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통일하고, 미국과 경쟁하는 세계적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올림픽이란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과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이 각기 반대의 입장에서 대응하는 것을 우리는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우리에게 중국이란 나라는, 그리고 베이징올림픽은, 메달 획득과 함께 풀기 어려운 여러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 과제에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장이머우의 화려하고 장엄한 연출로 펼쳐질 56개의 소수민족 공연에서,‘조선족’의 춤과 노래가 중화민족의 ‘거대하고 조화로운 세계’에 행복하게 편입되는 광경을 황홀하게 감상할지도 모른다.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 [프로배구 V-리그] 안젤코 “MVP 내가 찜했어”

    ‘큰 꿈은 시대와 조국의 아픔도 넘어선다.’ 삼성화재 안젤코 추크(25)는 보스니아 출신이다. 지난 1992년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내전의 전화(戰禍)를 겪었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 역시 시대의 아픔을 비껴가지 못했고 전쟁에 참여해야 했다. 전쟁은 아홉살 소년을 여느 평화로운 곳 또래 아이들보다 조숙하게 만들었다. 훌쩍 커버린 키는 물론 고통과 참담함을 이겨내는 마음까지…. 소년의 큰 키는 배구선수에 적합했다. 그는 배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배구에 좋은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 크로아티아로 귀화했다. 이후 이탈리아 2∼3부리그를 오가다 지난해 8월 이름도 생소한 한국까지 왔다. 안젤코는 1년도 채 못돼 프로배구 최고의 선수, 역대 최고의 용병으로 우뚝 서 나가며 삼성화재의 ‘우승청부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젤코는 07∼08 프로배구 득점부문에서 662득점으로 2위 보비(대한항공·562점)를 멀리 제쳐놓고 압도적 1위에 올라 있다. 이뿐 아니라 오픈공격(47.89%), 시간차 공격(67.69%), 공격종합 등 3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후위공격 성공률(55.55%)과 서브에이스(세트당 0.336개) 부문에서는 각각 주상용(현대캐피탈·57.44%)과 팔라스카(LIG·세트당 0.338개)에 아슬아슬하게 뒤처지며 2위에 올라 있다. 남은 경기 활약에 따라 5관왕도 가능할 정도다. 그의 몸값은 용병 연봉상한선(28만달러)에 턱없이 못 미치는 10만달러의 ‘헐값’이지만 가치는 100만달러급 이상이다. 시즌 최우수선수(MVP)는 사실상 예약해 놓은 상태다. 지금의 안젤코를 만든 것은 신치용 감독의 혹독한 훈련과 용인술이었다. 한국 생활 첫 대회인 지난해 10월 코보컵에서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넘쳐나는 힘에 비해 공격도, 수비도 엉망이었다. 신 감독은 안젤코가 극도로 싫어하는 러닝과 수비 등을 통해 혹독히 단련시켰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세계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는 어디?

    세계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는 어디?

    세계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는 어디일까? 지난 26일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브룩킹스(brookings) 연구소는 141개의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각 나라의 국력을 종합 평가, 가장 취약한 나라(world’s weakest states)를 발표했다. 보고서(타이틀명: Index of State Weakness in the Developing World)에는 각 나라의 경제·정치·안전보장·사회복지 4분야의 점수가 기록되어 있다. 가장 먼저 취약한 나라로 꼽힌 곳은 소말리아로 전체 141개 국가 중에서 0.52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 소말리아는 경제·정치 부분에서 0점을 받아 ‘가장 취약한 국가’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위권 안에는 전쟁 이후 각종 테러로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4위·3.11점)·내전으로 난민이 속출하고 있는 콩고(3위·1.67점)와 수단(6위·3.29점) 등과 같은 아프리카 국가가 대부분이었다. 아시아권 국가로는 경제부분에서 가장 낮은 점수(0.52)를 받은 북한(15위·3.87점)과 미얀마(17위·4.16) 그리고 네팔(22위·4.61점) 등이 올랐으며 북한은 미얀마·쿠바와 함께 국민총소득(GNI)에 대한 수치가 보고되지 않았다. 이밖에 브릭스(BRICs)인 러시아(65위·6.20점)와 인도(67위·6.28점) 그리고 중국(74위·6.41점)과 브라질(99위·7.22)이 주요 순위에 올랐다. 한국은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진=brookings.edu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고] 너무 소홀한 ‘아프리카 외교’/박원화 외교통상부 대사·고려대 겸임교수

    [기고] 너무 소홀한 ‘아프리카 외교’/박원화 외교통상부 대사·고려대 겸임교수

    아프리카 하면 질병, 가난, 내전 등으로 살지 못할 곳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상황만 보아도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 때문에 아름답고 풍요한 곡창이 기아의 땅으로 변하였고, 석연찮은 케냐의 대통령 선거결과 부족간 내전으로 1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는 아프리카에서 피부 색깔과 종교 차이에 따른 차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종청소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아프리카에 과연 희망은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였다. 아프리카는 2005년도 세계 국민총생산의 약 2%(9800억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구가 세계 12%(8억 4000만명)나 되는 아프리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생명도 포기할 용의가 되어있는 이들의 아픔이 인접 대륙(특히 유럽)으로 전가되기 때문에 서방 선진국들은 수년전부터 아프리카 발전문제를 G-7 회의의 중요의제로 삼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가 2000년부터 아프리카연합(AU)을 구성하여 연 2회 정상 회의 등을 통해 문제를 자체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사태가 개선되기보다는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과거 비동맹정책노선에서 아프리카 등 대 후진국 외교를 중시한 중국은 지금 자원확보 외교로 전환하여 국익을 거양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익 거양에 있어서 과거 서방 종주국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자원이 없는 한국이 아프리카를 어려운 곳이라는 인식으로만 대하여서는 아니된다. 이는 2006년도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를 초과하여 세계에서 룩셈부르크 다음으로 고 소득국인 산유국 적도 기니의 이름도 알아야 배럴당 100달러인 고유가 시대에 자원외교를 할 수 있고 또 54개국이나 있는 아프리카의 숫자적 중요성도 알아야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남북한 대립외교에 이어 북핵문제를 둘러싼 주변 4강국 외교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외교에 있어서 이명박 정부의 자원, 에너지 외교 추진 천명은 참으로 참신한 CEO적 국정 운용 방법이다. 다만, 실용측면의 외교만 강조할 경우, 상호 신의와 존경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외교 가치에 배치되는 것으로서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와 같이 국제관계에서도 신의를 구축한 후, 상호 이익이 되는 거래를 추진하는 것이 시간을 요하지만 낭패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그간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에 원조한 1억달러 정도의 액수는 일본의 100억달러, 중국의 440억달러와 크게 차이가 나며, 중국의 주석과 총리가 지난 수십 년간 매년 아프리카를 각기 순방하는 등 후진국들에 대하여 꾸준한 공을 들인 결과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일본보다 대국의 대접을 받는다. 이에 비하여 우리는 1982년 전두환 대통령이 아프리카 방문후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한 것이 전부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 없는, 달리 말하여 우리 목전의 이익과 직접 연결이 되지 않는 아프리카에 대하여 우리나라가 그간 소홀히 하여 왔다. 자원외교를 뒷받침하기 위하여서도 이를 극복하여야 하는데 이는 아프리카 등 후진국의 문화와 언어를 알고 이들의 인간성을 사랑하면서 장기 근무하는 다양한 외교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외교의 다변화와 전문성은 이라크의 김선일 피살 사건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한국인 인질 사건에서도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 다르푸르 학살 5주년… 악몽은 아직도

    다르푸르 학살 5주년… 악몽은 아직도

    ‘21세기 최초의 대학살’로 불리는 수단 다르푸르 사태가 26일로 발발 5년을 맞았으나 악몽이 가실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인권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평화유지군(UNAMID)을 파견했지만 이와는 달리 성과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수단 정부도 손을 놓기는 마찬가지 양상이다. 이같은 비관적 상황을 방증하듯 25일(현지시간) BBC는 “말만 무성할 뿐 실질적인 성과는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유엔 “20만명 사망·220만명 난민 발생” 유엔은 이날 5주년을 맞아 성명을 통해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임무를 맡은 항공기가 전쟁 때문에 접근하지 못해 수십만명이 구호품을 받지 못해 굶주리고 있다.”면서 “다르푸르 사태 이후 20만명 이상이 숨지고, 집을 잃고 떠돌아 다니는 난민도 220만명이나 된다.”고 발표했다. 최근 AP통신도 지난 5년간 사망·실종자는 30여만명에 이르며, 난민은 300만명 가까이 발생했다고 수단 정부와 국제사회를 비난했다. 이날도 수단 정부군이 다르푸르 반군과 교전에서 무장 헬리콥터를 빼앗겼다고 발표하는 등 현지에서는 꼭 5년이 지난 오늘도 총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다. 수단 정부는 사망자가 9000여명이라고 축소하려 애쓰는 등 인종갈등과 뒤엉켜 민감한 다르푸르 사태에 대해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상황이 날로 악화되는 바람에 다르푸르에서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식수, 식량 부족으로 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 2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올 1월 발발한 차드 내전의 영향으로 다르푸르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며 거듭 경종을 울렸으며, 지난주 아프리카 순방을 마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1억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1월 다르푸르 사태 해결을 위해 유엔과 아프리카연합(AU)은 12억달러를 들여 평화유지군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 2만 6000명 선이었던 평화유지군 규모는 아프리카 외 국가들의 병력 지원을 꺼리는 수단의 방해로 35% 수준인 9200명만 파견됐다. 이마저도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BBC와 AFP 등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쏟아 부은 돈, 노력에 비춰 국제사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도주의적 개입을 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국제사회가 사태 해결의 시기를 놓쳐 전범 처벌 등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역할에 대해 공조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中, 특사파견… 인도적 지원 확대 한편 다르푸르 사태 해결에 팔짱을 끼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온 중국은 이날 지원확대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4일 평화유지군 증파를 밝힌 데 이어 이날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는 류구이진(劉貴今) 중국 다르푸르 특사가 찰스 마니안프 수단 인권장관과 만나 식수난 해결을 포함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확대 외에 280만달러를 추가로 지원하겠다는 협정을 맺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1100만달러를 다르푸르 지원금으로 내놨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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