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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고 아련한, 재미 이산가족·외국인 간호사의 한국전쟁

    아프고 아련한, 재미 이산가족·외국인 간호사의 한국전쟁

    아리랑TV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전쟁의 비극을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 ‘미싱’(Missing)을 17일부터 4주간 수요일 오전 9시 방송한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판문점 동편과 서편 출입구에서 제복 차림의 무표정한 사람들이 들어와 지정된 자리에 앉은 뒤 5조 63항으로 작성된 문서를 검토하고 서명한다. 주인공은 유엔군 수석대표인 미 육군 중장 윌리엄 케이 해리슨과 북한군 및 중공군 수석대표인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이다. 두 사람은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협정에 관한 협정’이라는 긴 제목의 문서에 서명한다. 한글, 영어, 중국어로 각각 작성된 문서에 서명하고 이를 교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2분. 세계 최장의 정전 체계가 비롯된 한국 정전협정에 서명한 잉크는 말라버려 빛바랜 지 오래지만, 여전히 가슴 시린 사연을 폐부 깊숙이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큐멘터리 ‘미싱’은 그들의 비극을 그린다. 1부에서는 재미 이산가족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미 이산가족들은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만으로 남북 이산가족상봉 협상 대상에서 제외돼 생이별의 아픔을 60년 동안 참아내야 했다. 상당수가 가족을 만나겠다는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 2부 ‘전장의 나이팅게일’은 외국인 간호사들의 사연을 전한다. 외국인 간호사들은 포탄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부상병을 돌보다 숨져간 동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3부는 전쟁고아를 살리려고 군법까지 어겨가며 사선을 넘나들었던 어느 미군 장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블레이즈델 대령은 중공군의 남하로 서울이 점령당하기 직전 한 학교에 피신해 있던 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후송한다. 그를 ‘아버지’로 기억하던 고아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한다. 4부에서는 세계 분쟁지역 아이들을 돕는 한국인들을 조명한다. 시리아는 60년 전 한국의 상황처럼 3년째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곳. 이곳의 소녀 디나는 부모가 처참하게 학살되는 모습을 목격한 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디나를 구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나섰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시리아 반군 간 선전포고… 갈등 폭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3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반군 세력 간 갈등이 폭발하면서 반군 안에서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반군 주축 세력인 자유시리아군(FSA)의 한 사령관은 13일(현지시간)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와의 인터뷰에서 반군으로 활동 중인 알카에다 연계 조직 ‘이라크와 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조직원들에 보복 전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발표는 지난 11일 시리아 북부 라타키아 지역에서 FSA 소속 카말 하마미 사령관이 ISIS 조직원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뒤 이틀 만에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이 사령관은 “이번 사건은 ISIS가 자유시리아군에 선전포고한 것이므로 우리도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군 내부에서 FSA와 ISIS 조직 간 갈등은 올 초부터 불거졌다. 두 조직은 내전 초기에는 정부군에 대항해 합동 작전을 펴 왔으나 최근 서방의 무기 지원 문제를 두고 급격히 사이가 벌어졌다. 미국 등 서방은 무기를 반군에 지원하면 알카에다로 흘러갈 것으로 우려해 지원을 늦췄고, 이에 FSA가 ISIS와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지난주 북서부 이들리브에서 FSA군 조직원들이 ISIS와 총격전을 벌이다 사망한 데 이어 13일에는 북부 알레포에서 검문소를 차지하기 위해 양측이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시리아 반군 연합인 시리아국민연합(SNC)의 칼레드 코자는 “ FSA와 ISIS 조직원의 전쟁은 향후 반군 진영에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양측의 갈등이 시리아 전역으로 번진다면 상황이 매우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7) 한반도 분단을 보는 외국의 시각(상)

    [정전협정 60년] (7) 한반도 분단을 보는 외국의 시각(상)

    ■미국·중국의 입장 美 ‘中 견제 전초기지’ vs 中 ‘대미 완충지대’… 전략적 인식 심화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조야(朝野)를 막론하고 한반도 분단의 조속한 종식과 평화적 통일을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연방하원의 여야 의원들이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결의안’을 발의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한반도 통일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국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통일 한국’은 친미적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통일 한국’이 친(親)중국 성향으로 기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될 경우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의 자세는 소극적으로 변할 개연성이 크다. 현실주의 이론의 대가인 미국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셰이머 교수는 2011년 한 세미나에서 “그동안 급속한 국력 신장을 이룬 중국이 향후 수십년간 더욱 힘을 키워 미국을 능가할 정도가 된다면 한국은 중국에 편승해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을 동아시아 정책의 기조로 설정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에 공을 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지리적으로 중국에 매우 근접해 있는 한국이야말로 대(對)중국 견제의 전초기지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틈만 나면 한·미 동맹을 “린치핀”(linchpin·핵심)으로 부르며 중요성을 부여하는 배경에는 이런 계산법이 작용한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북한발 위협이 사라지면서 미국의 한반도 방위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과거에는 많았지만 최근 중국의 국력이 급신장하면서 이런 전망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반도 방위 역량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중국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이 ‘한국전쟁’ 하면 떠올리는 것은 ‘미군의 북한 침략’이다. 중국의 대표 백과사전 격인 사해(辭海)에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과 관련해 “한국에 내전이 일어나자 미군이 북을 침략하고 나아가 중국 변경인 단둥(丹東)까지 치고 올라온 탓에 중국이 전쟁에 참여해 나라를 지키고 북한을 도와 미국을 물리쳤다”고 미화한다. 중국에서도 김일성의 남침설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화둥(華東)대학 역사학과 선즈화(沈志華) 교수는 러시아 비밀 문서를 토대로 한 연구를 바탕으로 꾸준히 남침설을 제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010년 환구시보 영문판에서 “스탈린이 1950년 4월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허락했고, 그해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마오쩌둥(毛澤東)으로부터 미군이 개입하면 중국이 돕겠다는 승락을 받았다”며 남침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주류 역사관은 아직도 북침이다. 일부 개혁파 지식인들은 “중국의 참전 결정은 마오가 소련과 밀착해 국내 정권 기반 강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당국의 인식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참전 결정은 마오가 내린 것이고 마오는 중국의 국부여서 마오에 대한 부정은 곧 중국 공산당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한·중 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지만 당국이 아직은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은 물론 한반도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핵은 중국에도 위협 요소여서 중국이 북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고 미국과 협력하면 북한 문제는 바로 해결된다”면서 “다만 이 경우 미군의 도움으로 남한 주도의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은 여전히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 분단 해결에는 장애물이 많다”고 내다봤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러시아·일본의 시각 러 “北, 중·러 감정골 이용 땐 분단 상황 지속” 1948년 한반도 분단은 냉전의 산물이었다. 미국과 함께 냉전의 한 축을 이뤘던 소련(현 러시아)은 영토 접경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막을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홍완석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소장은 “소련은 영토가 크기 때문에 항상 완충지대를 만든다. 유럽의 핀란드, 중앙아시아의 몽골이 대표적이다. 북한도 그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소련은 38선 이북을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의 보루로 삼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소련이 갖고 있던 영향력의 우위는 서서히 중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소련은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북한 정권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즈음만 해도 북한 지도부가 혁명적 이상주의를 어느 정도 유지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시각에서 북한의 남침은 침략이 아닌 해방전쟁이었다”며 한국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설명한다. 그러나 중국이 사회주의 진영에서 러시아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면서 중국과 소련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북한이 이를 잘 활용하면서 분단이 계속 이어지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을 끝내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역할이 남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계형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는 “러시아는 한국이 통일되는 게 동북아의 안정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통일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견제할 수도 있는 등 한국의 통일이 러시아의 장기적인 이익과도 일치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분단의 ‘당사자’였다면 일본은 ‘수혜자’였다. 분단이 고착화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인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을 한국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고 싶었던 미국의 입장 때문이다. 미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일본과 서둘러 맺었고, 이를 통해 패전국 일본은 정치적으로 ‘정상 국가화’ 됐다. 김민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런 점을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인이 일본에 혜택을 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개혁 외치던 시진핑 ‘보수파 달래기’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가 당의 지도자로 취임한 지 반년 여 만에 당의 혁명 성지인 허베이(河北)성 시바이포(西柏坡)를 찾아 중국 내 보수파 달래기에 나섰다. 시바이포는 공산당이 국민당과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던 시기에 사용하던 요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49년 3월 이곳에서 열린 제7기 2중 전회에서 ‘량거우비’(兩個務必·반드시 해야 할 두 가지)를 제창했다. 공산당 제7기 2중전회의는 공산당의 중국통일을 앞두고 당의 신지도부를 구성한 회의다. 마오는 이 회의에서 “당원들이 집권한 뒤에도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면서도 분투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문한 뒤 당과 군을 이끌고 수도 베이징으로 입성했다. 시 주석은 11일 이곳에서 “‘량거우비’에는 인민의 정권인 공산당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통치를 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승리한 뒤에도 당원들이 선진성과 순결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며 마오를 치켜세웠다. 시 주석의 이번 시바이포 방문은 반부패 등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마오를 정점으로 하는 보수파를 달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18차 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로 취임하던 첫날부터 “중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개혁·개방”이라며 ‘리틀 덩샤오핑(鄧小平)’의 행보를 보여 보수파의 불만을 샀다. 홍콩 시사평론가 조니 라오는 “시 주석의 시바이포 방문은 보수파의 지지를 겨냥한 것으로 시 주석이 아직 정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추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러 “시리아 반군 화학무기 사용” 美 “증거 없다”

    러시아가 시리아 반군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을 제기하자 미국이 즉각 반박하고 나서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시리아 내전의 화학무기 사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9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비탈리 추르킨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이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관련 보고서를 제출한 뒤 기자들과 만나 “시리아 반군이 지난 3월 19일 정부군 통제에 있는 칸 알 아살의 외곽 지역인 알레포에서 발생한 교전에서 사린 신경가스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추르킨 대사는 사린 로켓인 ‘바샤르 3’가 투하된 지역에서 채취한 발사체 일부를 러시아 전문가들이 분석했으며 해당 연구는 국제화학무기금지기구가 공인한 러시아 연구소에서 진행됐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반군이 화학무기를 직접 제조해 정부군을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면서 일축하고 나섰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아직 시리아 정부군을 제외한 다른 진영에서 화학무기를 제조할 능력을 갖췄다거나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카니 대변인은 그러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시리아 내전의 화학무기 사용 여부를 유엔이 조사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는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증거를 근거로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는 등 내전 개입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 측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향후 서방 국가들의 반군에 대한 군사지원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집트軍, 무르시 지지파에 발포

    이집트軍, 무르시 지지파에 발포

    8일 새벽 이집트 카이로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복귀를 주장하는 시위대와 이들을 진압하는 군이 충돌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져 최소 42명이 숨지고 500여명이 다쳤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무르시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군이 카이로 공화국수비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친(親)무르시 시위대를 향해 실탄과 최루탄을 발사해 일부 참가자가 머리와 가슴 등에 총탄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사망자 중에는 다수의 여성과 어린이 5명, 6개월 된 아기도 있었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이집트군은 “테러리스트들이 수비대 본부를 습격해 경찰관 2명과 군인 1명이 사망했다”며 책임을 시위대에 돌렸다. 공화국수비대에는 무르시가 갇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야권 인사들은 이날 총격 사태를 강력히 비난했다. 무르시 축출에 가담했던 이슬람 근본주의 ‘살라피스트’ 정당인 알누르당은 이에 반발해 향후 정부 구성 논의에서 빠지겠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폭력이 폭력을 낳고 있다”며 독립수사를 촉구했다. 무르시 축출 이후 이집트 내 여론 분열이 극에 달한 데다 대규모 유혈충돌까지 일어나면서 이집트도 시리아와 같은 내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무르시 타도 이후 불안한 동거를 해 왔던 야권 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세속·자유주의 진영이 과도정부의 총리 후보자 임명 여부를 두고 충돌하면서 내분 조짐이 일고 있다. 알누르당은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과 기업 변호사인 지아드 바하아엘딘이 범야권 단체인 ‘구국전선’(NSF) 소속이라는 이유로 잇따라 퇴짜를 놓았다. 이에 반정부 연합 ‘타마르루드’(반란)는 “알누르당이 협박과 강요를 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쫓겨나면서 이집트 정국이 시계 제로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만간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부와 세속주의자, 무슬림형제단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질 경우 ‘아랍의 봄’을 능가하는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일(현지시간) 오후 9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무르시의 대통령 권한을 박탈하고 이슬람 율법을 강조한 헌법의 효력을 전면 중지한다고 밝혔다. 이집트를 철권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들어선 무르시 정권을 집권 1년 만에, 그것도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 나흘 만에 끌어내린 것이다. 국영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이 발표 직후 무르시는 공화국 경비대에 가택연금을 당했고 그의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MB) 핵심 멤버들은 출국금지 조치와 함께 체포됐다. 조기 대선·총선 실시 방침을 밝힌 군부가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에게 임시 대통령직을 맡기기까지 겨우 반나절이 걸렸다. 군사독재 타도 30년 만에 얻어낸 민주화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오히려 시위대는 군부를 환영하고 있다. 2년 전 과도정부를 세운 군부에 민권 이양을 요구했던 시위대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이번 시위에서 충돌을 빚었던 세속주의 야권과 무슬림형제단의 관계도 변화무쌍하다. 2년 전 힘을 합쳐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했던 두 세력은 대통령이 하야한 뒤에는 서로 비방을 퍼붓더니 무르시가 취임한 이후에는 또다시 유혈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들은 목적이 같으면 허물없는 동지가 됐다가도 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상극으로 바뀔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군부의 권력 이양이 늦어질 경우 내전에 버금가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 이집트를 이끌어 갈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과정도 안갯속이다. 현재의 가장 유리한 세력은 군부다. 초대 대통령 무함마드 나기브를 비롯해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 무바라크까지 네 명의 지도자를 잇달아 배출한 군부는 지금도 이집트 정치·경제·사법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권력 중추인 최고군사위원회(SCAF)와 최상위사법기구인 최고헌법재판소(SCC) 모두 군부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집트 경제의 40%도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60년간 실권을 유지해 온 군부가 이번 시위 과정에서 보여준 결단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1928년 서구 지배와 왕정정치 타파를 목표로 탄생한 무슬림형제단 역시 이집트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이슬람이라는 정신적 코드를 바탕으로 권력 내부의 막강한 네트워크와 지지 세력을 보유한 덕에 역대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2000년대 온건 노선으로 돌아선 무슬림형제단은 급기야 지난해 자유정의당(FJP)을 창당해 제1당에 오르더니 정치 신인인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지금은 수세 국면에 놓여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수백만 지지자와 함께 타흐리르 광장으로 나온 다음 정국 혼란을 틈타 정권을 재차지할 수도 있다. 무바라크 퇴출에 이어 무르시까지 무너뜨린 세속주의 세력 또한 이집트 핵심 권력이다. 야권인 구국전선(NSF)은 아랍의 봄 시위를 주도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추천할 것으로 보인다.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는 “현재 야권 내부에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주의자와 콥트 기독교도 등 각계각층의 세력이 참여하고 있어 정치적인 단결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며 “지난 대선 때처럼 야권 후보가 난립할 경우 군부나 무슬림형제단에 정권을 다시 내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크로아티아 28번째 EU회원국 가입

    크로아티아 28번째 EU회원국 가입

    크로아티아가 7월 1일부터 유럽연합(EU)의 28번째 회원국이 된다. 크로아티아는 EU 가입을 계기로 조선과 관광 등의 산업에서 외국의 투자가 늘어나고, 사회기반시설 건설 등에 필요한 재원을 EU로부터 지원받아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옛 유고 연방 동료국가인 세르비아와 코소보, 보스니아 등의 EU 가입을 촉진해 내전으로 훼손된 발칸반도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역내 경제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EU 공식사이트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정부는 30일 수도 자그레브에서 EU 가입을 공표하고 이를 자축하는 기념식을 거행한다. 이날 자그레브 중심 광장에서 시작하는 기념식에는 EU 고위 인사와 각국 정부 대표 및 외교 사절 등이 참석한다. 크로아티아는 동유럽 공산 정부가 붕괴한 직후인 1991년 옛 유고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4년간 세르비아 등과 내전을 치렀다. 이후 2001년 EU 가입 전 단계인 ‘안정제휴협정’을 체결하고 2003년부터 본격 가입 협상을 시작하는 등 EU 가입 조건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유고 전쟁 범죄자를 체포해 국제 유고전범재판소에 넘겼고 슬로베니아와 국경선을 확정했는가 하면 이탈리아와 영토 소유권 분쟁을 매듭지었다. 크로아티아는 EU 회원국으로서 국가 전반의 기준을 EU가 정한 범위에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올해 초 농수산물과 식품 안전기준을 EU 기준에 맞췄는가 하면 최근에는 국경 검문소와 세관을 대폭 폐쇄했고, 300여명에 이르는 직원을 다른 곳에 배치하는 등 준비 작업을 벌였다. 국가 전반을 EU 기준에 맞췄지만 아직도 공공부문에 만연한 부패를 근절해야 하는 등의 과제가 남아 있다. 한편 크로아티아가 EU 회원국이 되면서 EU 가입을 타진하는 국가들에도 관심이 쏠린다. 차기 회원국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터키와 아이슬란드, 세르비아다. 터키는 1987년 가입신청을 했으나 독일 등이 반대해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어업 국가인 아이슬란드는 어획량 등을 둘러싼 어업협정 체결이 EU 가입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세르비아는 내년부터 EU 가입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문제는 ‘인종 청소’라는 참혹한 내전을 치른 코소보와 합의한 관계 정상화를 제대로 이행할지 여부다. EU는 세르비아에 코소보와의 관계를 정상화해야만 회원 가입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전쟁 성폭력 근절을” 졸리의 호소, 안보리 움직였다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38)가 유엔 회의에 참석, 교전 지역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행동에 나설 때라고 호소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졸리는 24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인 영국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주재한 회의에 참석해 “분쟁 지역에서 성폭력을 당한 수십만명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안보리의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졸리는 “유엔 안보리가 창설 이후 67년간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세계는 여전히 전쟁 성폭력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는다”면서 “안보리가 이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면 성과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성폭력에 대한 공포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졸리는 전쟁 자체에 성폭력 문제가 내재돼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이를 용인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비난했다. 졸리의 연설 이후 안보리는 교전 지역 당사자들에게 성폭력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이 결의안에는 성폭력을 반(反)인류적 범죄일 뿐만 아니라 대학살과 연관되는 행위로 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최근 유방 절제술로 관심을 모았던 졸리는 지난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내전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시리아 국경 인근의 요르단 자타리 난민캠프를 방문하는 등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反식민주의 근거한 내전 규정 잘못…공산주의 vs 反공산주의 이념전쟁”

    [정전협정 60년] “反식민주의 근거한 내전 규정 잘못…공산주의 vs 反공산주의 이념전쟁”

    캐스린 웨더스비(62)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존스홉킨스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을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의 한반도 내부에서 발생한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일어난 내전으로 보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의 시각을 반박했다. →정전 협상 과정은. -1951년 7월 처음 협상이 시작됐으나 미국과 중국, 소련의 소극적 자세로 협상이 지체됐다. 당시 북한 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일성은 미국의 엄청난 공습을 견딜 수 없어 조속한 정전을 원했다. 하지만 미국이 정전에 따른 경계선을 당시의 전선에서 훨씬 북쪽에 그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중국이 반대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후 미국의 공습이 더욱 심해지자 1952년 초 북한 지도부는 다시 중국에 정전을 간청했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은 북한에 보낸 메시지에서 “전 세계적인 공산주의 투쟁을 위해서는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소련은 한국전쟁으로 미군을 극동에 묶어둠으로써 동유럽에서 군사적 우위를 구축하려 했다. 1952년 가을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공산당 총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북한이 잃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더 있느냐”면서 정전을 반대했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은 뒤에야 비로소 정전 협상이 진전됐다. →북한의 목소리가 그렇게 약했나. -협상 과정에서 김일성의 역할은 미미했다. 모든 결정은 중국과 소련 지도자에 의해 이뤄졌다. 중국 협상대표가 전보로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고하면 중국은 그것을 다시 스탈린에게 보냈다. 역으로 스탈린이 마오쩌둥에게 지시하면 중국은 다시 중국 협상대표에게 하달했다. 북한과는 일부만 상의했을 뿐이다. 앞서 중국은 1950년 가을 참전하자마자 북한군의 지휘권을 접수했다. 김일성은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중국은 중국군의 역할이 압도적이라는 이유로 지휘권을 고집했고 스탈린도 중국 편을 들었다. →미국이 정전에 동의한 이유는. -미군도 많은 인력과 물자를 잃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은 압도적인 무기를 갖고 있었지만 지상에서 중국군을 이길 수 없다는 자괴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여전히 한국전쟁은 남침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남침이라는 것은 기록으로 입증된 명쾌한 진실이다. 김일성은 간절히 전쟁을 원했다. 그는 중국 권력 장악에 성공한 마오쩌둥처럼 한반도 전체로 공산혁명을 확산시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북한은 소련에 아주 의존적이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스탈린은 가톨릭의 교황, 김일성은 신부와 같은 위상이었기에 김일성은 스탈린의 말을 따라야 했다. 1949년 9월 김일성이 남침 승인을 요청했지만 스탈린은 미군 개입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스탈린은 1950년 1월 말 김일성이 다시 요청했을 때에야 남침을 승인했다. 북한은 원래 옹진반도를 공격해 남한이 반격하면 남한이 먼저 공격했다고 핑계를 대며 전면적으로 남침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6월 21일 남한군이 북한군의 공격 낌새를 알아채고 옹진반도에 병력을 증강시키자 초조해진 김일성은 38선 전역에서 남침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커밍스 교수는 1949년에 38선 부근에서 있었던 남북 간 무력 충돌의 대부분이 남한군의 공격이었다고 주장하는데. -남한이 많은 공격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남한 지도부도 통일을 원했다. 하지만 38선 근처에서 벌어졌던 소규모 무력 충돌과 전면전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만약 북한이 침공하지 않았다면 남한이 침공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미국이 전쟁을 승인하고 지원했다면 이승만은 아주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전쟁을 원치 않았고 무기가 없었던 한국군은 독자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없었다. →미국이 남한을 미군 방어선인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한 의도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의 규모를 줄이라는 요구가 미국 내에서 많았기 때문에 제한된 자원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우선 관심 지역은 일본이었고 그다음이 필리핀이었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이 국제전이라기보다는 내전이라고 하는데. -남북한만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싸움이기도 했다. 만약 스탈린이 승인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소련의 통제력은 남한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보다 훨씬 강했다. 만약 한국전쟁이 내전이라면 동서독 간에는 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겠나.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을 혁명세력 대 친일세력의 반(反)식민주의 전쟁으로 규정했는데. -공산주의 대 반(反)공산주의의 이념전쟁으로 봐야 한다. →한국전쟁의 교훈은. -근본주의적 이념의 파괴성을 경험한 것이다. 억지력의 중요성도 깨닫게 했다. 옛 소련 문서에는 “만약 1949년에 미국의 한국 방어 의지가 분명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부분이 있다. 애치슨 라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사설] 정쟁 접고 민생법안 6월 국회서 꼭 처리하길

    여야 모두 민생 법안 처리에 ‘올인’하겠다고 다짐한 6월 임시국회의 표류는 안타까운 일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논란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놓고 첨예하게 대치하면서 민생 현안 심의가 사실상 ‘올스톱’됐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많은 민생 법안이 기다리고 있는 국회라는 점에서 걱정은 더욱 크다. 법안 가운데는 경기 침체에 따른 민생의 고통을 덜어줄 경제 회생 방안과 시장질서의 공정한 재편으로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내용이 상당수에 이른다. 정치권도 당초 6월 임시국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결같이 “이번에는 민생을 위한 입법을 제대로 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공언한 사실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막상 회기가 끝나가는 마당에 민생은 접어두고 정치공세에만 매달리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6월 임시국회는 그렇지 않아도 첩첩산중이었다. 여야가 민생 현안에만 집중해도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이견이 적지 않은 사안이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른바 갑을(甲乙) 사이의 그롯된 거래 관행을 바로잡는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의 우선 처리를 목표로 삼았다. 반면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의 속도조절론을 펴면서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경제의 활력을 찾고 일자리 창출 등 당면 과제의 해결 방안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지금 경제 현안은 정치 현안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국회의원 겸직 금지와 연금제도 개선 등 ‘의원 기득권 내려놓기’ 법안도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어놓고 있다. 정치를 협상의 예술이라고 한다. 한쪽이 전부를 얻는 결과는 전쟁터에서나 나온다. 그럼에도 여야는 지금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민심을 잡는 경쟁이 또한 정치의 본령이라지만, 국민의 고통을 볼모로 벌이는 경쟁을 정치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정쟁이 아닌 정치를 해야 한다. 이번 임시국회는 여야 모두 새로 뽑은 원내대표 체제에서 맞은 첫번째 국회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원내전략에서 벗어나 민생 법안 처리에서 실리를 얻고, 명분도 여야가 나누어 챙기는 성숙한 협상 솜씨를 보여주기 바란다. 무엇보다 여야는 내년 지방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 계산법으로 6월 임시국회에 임해서는 안 된다. 벌써부터 배를 산으로 보낼 수는 없다.
  • [정전협정 60년] 브루스 커밍스 美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60년] 브루스 커밍스 美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한국전쟁’

    “한국 사람들은 왜 어느 쪽이 전쟁을 일으켰는지에만 관심이 있습니까.” 브루스 커밍스(70) 시카고대학 석좌교수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한이 한국전쟁의 책임을 놓고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비난전을 그만둬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의 부인인 한국인 우정은 박사가 학장으로 있는 버지니아주립대 캠퍼스 내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커밍스 교수는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날짜와 한국인 이름을 자료도 없이 술술 말해 한국전쟁 연구의 최고 권위자임을 실감케 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당신의 수정주의 이론에 반해 옛 소련의 기밀문서를 통해 북한의 남침이 확인됐는데. -나는 수정주의자가 아니라 개척자다. 내가 쓴 글은 미국 정부의 1급 비밀 문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는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침공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1985년부터 전두환 정권이 그렇게 (조작)한 것이다. 내가 1990년에 쓴 책은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됐다는 기존의 관념을 허물려는 시도였다. 한국전쟁의 뿌리는 1945년 이후 발생한 일련의 일들에 있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한반도 분단을 결정했고 소련이 나중에 그것을 수용했다. 그것이 한국전쟁의 기반이 됐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 진주했고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권력을 잡았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은 근본적으로 내전이다. 나는 북한이 남한을 6월 25일 침공한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침공이 남한의 자극에 의해 일어났는지 여부다. 1949년 8월 옹진, 개성, 철원 등지에서 남북 간 충돌이 격화됐다. 이승만이 공격을 원할 때 주한 미국대사가 반대했고, 김일성이 공격을 원할 때 주북 소련대사가 반대했다. 양측의 공격 욕구는 이렇게 억제됐다. 그리고 이듬해 봄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이 김일성에게 제한적인 대남 공격을 승인한 것이다. →소련 기밀문서 공개에도 불구하고 기존 이론을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기밀문서를 통해 소련의 연관성이 예상보다 깊숙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을 빼면 나머지는 별로 수정할 필요를 못 느낀다. 나는 내가 했던 일에 대해 여전히 굳은 확신을 갖고 있다. 다만 책을 쓰는 시점에 아직 나오지 않은 문서에 대해서는 예상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다른 학자들이 하지 못한 방대한 북한 문서를 연구했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내가 하지도 않은 말 때문에 공격받았다. 사람들은 내 책을 읽지도 않고 말했다. →한국전쟁을 미국이 일부러 유도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안 했다. 나는 단지 딘 애치슨 당시 국무장관이 탱크와 항공기를 한국에 두기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무기로 이승만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남한은 북한이 6월 25일 침공했을 때 대처할 무기가 없었다. 애치슨은 한국에 대해 매우 모호한 전략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김일성은 어리석게도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애치슨이 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그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고 그로 인해 미국은 많은 ‘옵션’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만약 이승만이 공격하면 미국은 지원하지 않는 반면 북한이 공격하면 이승만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애치슨이 남한을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한 이유는 이승만이 미국을 등에 업고 북한을 공격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남한이 북한을 침공할 가능성도 있었다는 얘기인가. -1949년 5월부터 12월까지 38선 곳곳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싸움을 남한이 먼저 시작했다. 따라서 1950년 6월 25일의 침공은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켰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1949년 8월 주한 미국대사는 워싱턴에 보낸 전문에서 “이승만이 북한군의 옹진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철원을 공격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국전쟁의 본질은 당시 남북한의 지도부가 서로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 모두 뜨거운 감자를 두 손에 쥐고 있는 꼴이었다. 그런데 이승만이 그해 12월부터 한국군에 “38선에서 도발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후 38선 남쪽이 조용해졌다. 남한의 공격을 남침 명분으로 삼으려던 김일성이 1950년 2월 주북 소련대사에게 “왜 남한이 요즘 공격을 안 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남한을 배제한 것은 북한의 침공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1949년 6월 30일 남한에 있던 마지막 미군이 오키나와로 나간 직후 애치슨 장관이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에게 ‘만약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유엔에 회부한다’는 메모를 건넸다. 한국전 발발 1년 전에 이미 전쟁 가능성을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스탈린이 승인하지 않으면 북한은 남한을 침공할 수 없는데, 스탈린은 침공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소련이 2차 대전의 후유증 때문에 새로운 전쟁에 뛰어들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스탈린이 허락지 않으면 감히 중국도 전쟁에 개입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탈린이 통제하는 획일적인 공산주의가 있다고 잘못 추정한 것이다. →한국전쟁의 특징은 무엇인가. -반(反)식민지 전쟁이라는 점에서 베트남전과 매우 비슷하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빨치산 출신 김일성 등은 북한을 접수한 반면 남한에서 김구와 같은 민족주의자들은 밀려났다. 남한에서 미국은 일본 경찰과 장교 출신들을 기용했다. →한국에서는 내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곳에서 8마일(약 12.8㎞)만 리치먼드 쪽으로 가면 남북전쟁박물관이 있다. 거기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남군을 침공할 명분을 얻기 위해 남군의 공격을 유도하는 속임수를 썼다’는 내용이 씌어 있다. 남부 사람들은 남북전쟁이 내전이 아니라 주(state)들끼리 벌인 전쟁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6월 25일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만 나쁘고 남한은 결백한 게 된다. →한국과 미국도 한국전쟁의 책임이 있다는 얘기인가. -미국의 책임이 크다. 미국은 38선을 그을 때 어떤 나라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쁜 결정이었다. 7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반도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이승만도 큰 책임이 있다. 그는 일본군에서 복무한 장교를 기용했다. →결국 한국전은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발생했다고 봐야 하나. -아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국 내 모순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45~1950년 사이 일련의 사태들이 영향을 줬다. →지난 60년간 정전체제는 잘 운영됐다고 보나. -아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 매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났다. 정전체제는 평화협정으로 대체돼야 한다. 중국과 소련은 1990년대 초 남한을 승인했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의 교훈은. -미국인으로서 나는 한국전쟁 당시의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 열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김일성의 반(反)식민지 운동에 봉착한 것이다. 1944년 국무부 문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인과 진정한 관계가 없는 반면 만주의 빨치산은 일본군에 잘 대적하고 있다”면서 “김일성을 접촉해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현실화했다면 한국전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정전 60년이 흐른 지금도 한국인들은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1997년 북한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갔을 때 한 북한인이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더라. “많은 원인이 복합작용한 내전”이라고 답했더니 그는 “한민족에 대한 미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이라고 하더라. 한국전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비난 게임’을 멈추고 화해해야 한다. 글 사진 샬러츠빌(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동아시아 전공) 박사 출신이다.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한국 현대사 연구에 천착했다.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은 반공주의에 치우친 기존 연구의 평면성을 넘어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식민지와 냉전, 계급 갈등이라는 전쟁의 구조적 기원을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한국전 연구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1980년대 통일, 반미 운동과 맞물려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전쟁 연구는 커밍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생겼다.
  • 잔인한 전쟁 너머 ‘휴머니즘’의 속살

    잔인한 전쟁 너머 ‘휴머니즘’의 속살

    정전 60년을 맞아 한국전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의 ‘한국전쟁’과 권헌익 영국 캠브리지대 석좌교수의 ‘또 하나의 냉전’이다. 전자는 적국의 시선으로 본 한국전쟁이란 점에서, 후자는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한국전쟁과 그 전후의 고통과 폭력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냉전이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한국전쟁] 왕수쩡 지음/나진희·황선영 옮김/글항아리/1000쪽/4만원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1999년 중국에서 초판이 출간됐고, 2009년 개정판이 나왔다. 국내에선 첫 번역 출간이다. 14년의 시차에 담긴 의미는 꽤 함축적일 터이다.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불렀다. 적군인 미군을 향한 대항적 성격으로 한국전쟁을 규정하는 하나의 관점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국제정치적 맥락이나 이념적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하는 태도에서 벗어난다. 이는 저자가 정치학자나 군사학자가 아니라 팩트를 추적하는 논픽션 작가라는 지점과 맞닿아있다. 치밀한 자료 수집과 수많은 관련자 인터뷰 등 방대한 취재량이 압도적이다. 저자는 한반도에 진입했던 중국국 소속 15개군이 전후에 정리한 전쟁사, 전쟁 종식 뒤 귀국한 참전 장병이 쓴 수많은 회고록, 전쟁 당시 한반도 전장에 있던 중국군 지휘부와 베이징의 지휘자들 간에 교환한 모든 문서와 전보를 열람했다. 또한 미국 역사학자 모리스 이서먼의 ‘한국전쟁’을 비롯한 서구의 다양한 관련서와 더글러스 맥아더의 회고록 등도 참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발부터 정전 협정까지의 긴박하고 참혹했던, 때로는 무기력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복원해낸다. 1950년 10월 8일 중국이 ‘중국인민지원군’을 출병하는 대목에서 출발한 책은 전장에 버려진 서적을 통해 적군의 작전 의도를 파악하려는 치열한 정보전과 피말리는 심리전, 각국이 구사하는 전술·전략의 유래와 전개 양상 등에 대한 꼼꼼한 기술을 거쳐 또 다른 전쟁의 양상을 보였던 정전 협상의 체결에서 끝을 맺는다. “병사란 전쟁 속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수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전쟁’을 집필하는 유일한 동력이 되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대령 계급의 국가 1급 작가라는 저자의 또 다른 타이틀은 중국 중심의 서술이란 한계를 피할 수 없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중국 내부의 자료들을 통해 한국전쟁의 한 축이었던 중국의 당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이 책만의 장점이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또 하나의 냉전] 권헌익 지음/이한중 옮김/민음사/256쪽/1만 8000 세계사에서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간 냉전의 역사선상에 놓인다. 1945년 조지 오웰이 처음 언급한 ‘냉전’은 실제적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지만 정치·외교·이념상의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을 의미한다. 서구에서는 냉전이 “오랜 평화이자 상상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해방공간이 분단으로 이어지고, 한국전쟁을 전후해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에게 이 시기는 과연 냉전일 수 있을까. 2010년 컬럼비아대에서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은 이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즉 한반도 해방공간의 역사가 세계 냉전사와 틀을 같이하는가 달리하는가,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이 책은 한국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제주 4·3사건과 베트남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폭력전 내전과 그와 관련된 반공주의 역사라는 형태로 전개되는 양상에 초점을 맞춘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냉전을 내전으로 경험한 사회에서 냉전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를 인류학의 핵심 조사방법인 참여관찰법을 이용해 접근한다. 저자는 제주 4·3사건으로 분열된 하귀리 마을 사람들이 최근에서야 학살자들을 기리는 추모제를 자유롭게 열 수 있게 되면서 화해에 이르는 과정에 주목한다. 또한 베트남전쟁 당시 형은 혁명군에, 동생은 미국편에 가담해 총을 겨누고 싸워야 했던 가족이 어느 한 명을 추모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고통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말한다. “한반도의 해방공간이 그러했듯이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 안에도 있고 또 밖에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가 세계사의 영역에서는 생경해지는 상황은 불행한 일이며 이제는 이 잘못된 구도가 고쳐져야 한다. 그 첫 걸음은 냉전의 역사에 안과 밖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즉 또 하나의 냉전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7쪽) 베트남전 양민학살을 종교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 ‘학살, 그 이후’와 전쟁의 후유증을 기록한 ‘베트남전쟁의 영혼’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저자는 최근 한국전쟁의 새로운 연구 틀을 형성하고자 하는 ‘한국전쟁을 넘어서’국제연구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이나 집, 음식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 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에밀라(34·여·가명)는 2002년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을 피해 남편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에밀라는 19일 기자와 만나 “코트디부아르에서 무용수로 일했는데, 특정 정당 인사들이 자신들을 위해 공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용수들을 마구 학대했다”며 당시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털어놨다. 그러나 한국 생활 11년째인 에밀라는 여전히 ‘난민 아닌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부는 코트디부아르 내전이 종결된 만큼 생존에 위협이 없다는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에밀라는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더니 아버지는 실종 상태이고,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군인들이 몽땅 가로챘다고 했다”면서 “다시 돌아가면 군인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에밀라는 한국에서 아들 부토(7·가명)와 딸 제니스(1·가명)를 낳았다. 부토는 현재 한국 학생들이 다니는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머니와 달리 부토는 우리말이 자연스럽다. 에밀라는 “부토는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한국 사람”이라면서 “어디를 나가면 아들이 저를 위해 통역을 해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밀라는 “학교 소풍이나 캠프 기회를 아들 부토에게 줄 수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에밀라 부부는 정부로부터 외국인 등록번호를 받지 못해 은행계좌 개설도, 여행자 보험 가입도 불가능하다. 에밀라는 “정식 직업을 갖고 일할 수가 없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면서 “남편이랑 같이 일해도 한 달에 고작 70만~120만원을 벌어 생활이 빠듯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의료보험도 가입할 수 없어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큰돈이 깨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난민 신청자’ 신분인 에밀라 부부는 2006년 난민 불인정을 받은 뒤 법무부를 상대로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에밀라는 “난민으로 인정받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면서 “출국 당시 유럽으로 간 친구들의 삶과 한국으로 건너온 내 삶은 10년이 넘은 지금 무척 다르다”고 했다. 에밀라는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난민법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었어요. 어떤 인생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죠. 불안하니까 그저 신께 기도할 뿐이었지요. 코트디부아르에 평화를, 그리고 이곳 우리에게는 자유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제 (난민법이 시행되면) 생활이 조금 나아지겠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글 사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G8 “시리아 내전 끝내기 위해 조치 취할 것”

    G8 “시리아 내전 끝내기 위해 조치 취할 것”

    17~18일(현지시간) 영국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시리아 사태 해법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의 첨예한 대립으로 이틀 연속 파행을 빚은 끝에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8일 회의 종료 뒤 기자회견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퇴진은 거론하지 않고 “시리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와 테러리즘 위협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Deeply concerned)”면서 “내전을 끝내기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을 합의했다”고만 밝혔다. G8 정상들은 빠른 시일 안에 모든 시리아 정파가 참여하는 평화회담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기로 했다. 또 내전으로 인해 난민 신세가 된 시리아인을 돕는 데 15억 달러를 추가로 쓰기로 했다. AP·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7일 오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두 시간 동안 진행한 정상회담에서 시리아 내전 종식에 대한 해법을 두고 심각한 의견 차이를 드러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을 전제로 권력 이양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푸틴 대통령은 합법정부인 알아사드 정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로이터 통신은 “폐막 당일 러시아를 제외한 7개국 정상이 푸틴 대통령을 제외한 ‘주요 7개국’ 성명으로 합의문을 발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결국 러시아가 알아사드 정권 이양을 언급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합의문에 뜻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주최국인 영국은 첫날 주제로 시리아 해법을 다룬 뒤 18일에는 다국적기업의 탈세 문제, 국제적인 테러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지만 첫 의제부터 심각한 불협화음을 빚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불거진 영국 정부의 G20 정상회의 도청 의혹에 대해 러시아를 비롯한 피해국들이 해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G8 회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러시아 대표단 관계자는 미 정보당국이 2009년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을 도청했다는 의혹에 대해 “자국 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 입장에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도청과 해킹의 집중적인 표적으로 지목된 터키는 자국의 영국 대사를 소환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정부 성명을 통해 영국 정부의 전면 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캐머런 총리는 “이번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정상들은 캐머런 총리가 내세운 핵심 의제인 ‘3T’ 즉 세금·교역·투명성(Tax·Trade·Transparency) 문제와 관련, 기업 부패와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감시를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인다’는 합의를 내놨다. 또 전 세계에서 무장조직에 납치되는 서구인의 몸값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대책도 세우기로 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G8 정상회의 개막 시리아 해법 찾기 고심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17일(현지시간) 이틀간의 일정으로 북아일랜드 로크에른 골프리조트에서 개막했다. 역외탈세 근절을 위한 국제 공조 방안과 시리아 내전사태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의장국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날 “이번 회의는 전 세계의 성장과 번영을 모색하는 자리”라며 “각국 정상들이 교역 확대와 조세 개혁 방안 등에 대해 신속하게 합의를 도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캐머런 총리는 과거 북아일랜드의 분쟁 상황을 언급하며 “대화와 정치적 해결 노력으로 난제도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 준 북아일랜드의 사례가 각국 정상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G8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영국 런던에 도착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캐머런 총리와 만나 시리아 사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사전 회담을 했지만 합의점을 찾지는 못했다. 캐머런 총리는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유혈 사태의 책임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에 있다고 주장한 반면 푸틴 대통령은 “피는 양측 모두의 손에 묻어 있다”며 정부군과 반군의 공동 책임론을 펼쳤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 반군에 군사지원을 준비 중인 미국과 일부 서방국을 겨냥, “적군을 사살하고 그 시신을 갈라 장기를 꺼내 먹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싶은가”라고 물은 뒤 “그런 행위는 지난 수백년간 유럽이 지켜 온 인도적 가치와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푸틴이 지난 5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공개돼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던진 ‘시리아 반군 인육 동영상’을 거론하며 미국과 영국·프랑스의 반군에 대한 무기지원 방침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G8 정상회의에서 푸틴을 비롯한 7개국 정상들을 만나 협조를 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푸틴의 이날 발언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시리아 문제 해법도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민주 연이어 ‘국정원 사건’ 의혹 제기… 정치권 출처·신빙성 촉각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의혹 제기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여권과 국정원과의 연계성을 거론하면서 “우리가 밝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직접 공개하라”고 압박하면서 추가 의혹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에 여의도 정가 주변에서는 정보의 출처와 신빙성 등을 확인하느라 분주한 상황이다. 일단 제보의 출처로는, 검찰이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을 민주당 측에 제보했다고 꼽은 전직 국정원 직원 김모씨와 당시 국정원 직원이었던 정모씨가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 정보위 민주당 간사는 국정원이 ‘원세훈의 국정원’과 ‘남재준의 국정원’으로 갈려서 지금 내전 중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볼썽사나운 권력 투쟁의 이유에서도 제보가 들어온다”고 직접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은 제보자가 두 전직 직원 정도라면 사태의 크기는 가늠할 수 있지만 민주당의 주장대로 ‘세력’이라면 그 파장이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껏 긴장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여권의 인사들은 그럴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17일 “원 전 원장도 MB(이명박) 정부 말부터 ‘레임덕’이었다. 상당수의 직원들이 원 전 원장 반대파로 돌아섰다”고 전하면서 “지금 국정원은 두 파로 나뉘는 갈등 상황이 아니다. 이미 남 원장 취임 초에 다 정리가 됐다. 남 원장이 인사개혁팀장에 원 전 원장 시절 ‘물을 먹었던’ 사람을 임명했고 ‘원 전 원장 라인’은 모두 물갈이가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배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 내리기 이르다는 관측이 많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상황을 제법 구체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전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불구속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MB 측근들에 의한 외압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불구속은 대구·경북(TK) 라인의 외압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김용판-박원동(당시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라인의 배후와 관련된 제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의혹 제기의 ‘속도’도 신빙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민주당 박범계 의원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김용판 전 경찰청장 외에 권영세 당시 박근혜캠프 종합상황실장의 이름이 거론되며 새로운 정황이 제시된 것이다. 게다가 배후로 권영세 전 실장을 지목하면서 정치적 무게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난 것으로 현 정부에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에는 힘들 것으로 보았지만, 이를 고리로 현 정부를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박영선 의원이 전날 배후로 현 정권의 정치적 기반인 ‘TK 라인’을 지목한 것도 이런 수순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제보의 창구가 한 사람인지 여러 사람인지도 중요하다. 정보의 출처를 역추적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첫 폭로자였던 신경민 의원이 상당한 양의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영선, 박범계 의원의 정보가 개별로 접수된 것인지 신 의원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한편에서는 경찰 내부에서 김 전 경찰청장의 동향이 흘러나왔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들,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 보듬다

    “내가 아파 봤기 때문에 같은 아픔을 당한 여성들이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어요.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베트남전에서 희생된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겠다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7일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7), 길원옥(84) 할머니의 뜻에 따라 조성한 ‘나비기금’ 가운데 각각 6000달러(약 675만원), 4000달러(약 450만원)를 지난달 베트남인 응우옌 반 루엉(43), 응우옌 티 김(43·여)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루엉과 김은 모두 베트남전 당시 파병됐던 한국군에게 성폭행을 당해 태어난 한국군 성폭행 피해자 자녀들이다. 정대협 관계자는 “루엉의 어머니는 한국군 장교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임신했고, 김도 아버지의 성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면서 “(베트남 현지의) 한국군 성폭행 피해자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결혼을 하지 못한 채 혼자 자식을 키우는 경우가 많아 2세들도 교육·소득 수준이 평균을 밑돈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지원으로 그동안 일용직 새우잡이로 일했던 루엉은 30년간 밭을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하노이에 거주하는 김은 건물을 빌려 상점을 열 계획이다. 앞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에서 받게 될 법적 배상금을 전 세계의 전쟁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이 배상을 하지 않자 지난해 3월 할머니들의 뜻을 따르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비기금’을 모았다. 가수 이효리씨가 첫 추진위원으로 500만원을 기부했고 지금까지 단체 300여곳과 개인이 참여해 7000만원 이상이 모였다. 협회 관계자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중 성폭력을 당했지만 다른 피해자와 어린이를 돕는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를 지난해 첫 지원 대상자로 선정해 매달 500달러의 활동비를 보내고 있다”면서 “할머니들의 꿈인 평화의 의미가 전해질 수 있게 필요한 부분에 기금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로하니 “美, 이란 핵권리 인정하라”

    하산 로하니(65) 이란 대통령 당선자가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 서방국들과 새로운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로하니는 대통령 당선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핵 프로그램에 대해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일 경우 이란과 서방국들 사이의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하니는 이어 이란 정부가 전 세계 국가들과 건설적인 상호작용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로하니는 그러면서도 이란 정부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상을 원한다면 이란의 핵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서는 “시리아 국민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면서 외국의 시리아 내전 개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로하니는 지난 14일 치러진 대선에서 전체 유효투표수 3670만 4156표 가운데 절반이 조금 넘는 1861만 3329표(50.71%)를 얻어 결선투표를 거치지 않고 당선을 확정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글로벌 시대] 비목의 계절, 당신을 기억합니다/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글로벌 시대] 비목의 계절, 당신을 기억합니다/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한때 필자가 즐겨 부르던 가곡 ‘비목’은 6·25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치열했던 전쟁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무명용사들의 헌시’가 바로 비목이다. 그 노랫말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용사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외로움을 공감할 수 있다. 얼마 전 ‘영화로 이해하는 한국과 국제정치’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고지전’을 감상했다. 6·25전쟁 당시 휴전협상 동안 한 치의 땅도 양보할 수 없었던, 휴전선 일대에서 가장 치열했던 고지쟁탈전을 소재로 한 영화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막바지 전쟁의 상황을 생생하게 잘 그려냈다. 또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에 세워진 이름 모를 비목”의 의미를 연상케 했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와 그러지 못한 세대 간에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과 인식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는 공동체 의식과 헌신한 이들을 잊지 않고 보훈을 실천하는 것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류 역사상 6·25전쟁과 유사했던 사례는 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테네 민족의 결사항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아테네는 고작 3만~4만 군사로 50만의 페르시아 대군을 용감하게 물리쳤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여타 도시국가들은 항복했지만, 아테네군은 결연한 전의를 다지고 그것을 공동체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승화시켰다. 이들은 정치적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항복하지 않았다. “살아서 굴복하기보다는 저항하면서 죽기를 선택했고, 정치적 삶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바탕으로 막대한 페르시아 대군을 막아낼 수 있었다. 남북전쟁의 내전을 극복하고 세계 문명의 중심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국가 부흥도 공동체를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 기치를 목숨으로 지키고자 하는 결의와 헌신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필자는 2006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하와이 미 태평양사령부(PACOM)와 진주만의 푸른 바다 위에 세워진 ‘메모리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 새겨진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보면서 순국선열의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에서도 그런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단지 266개의 단어로 구성된 전몰장병을 위한 추모연설을 통해 남북전쟁 당시 목숨 바쳐 싸운 용감한 전사자들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 헌신한 이들을 명예롭게 여겨야 하며, 그 죽음이 헛되지 않게 후손들은 자유를 지켜야함을 당부했다. 실제로 미국에는 웰링턴 국립묘지를 비롯해 많은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1944년 제대군인보호법 등을 제정해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상과 보훈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20세기 국제정치를 되돌아보면, 국가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무명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발전이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페르시아 전쟁에서 보여준 아테네 무명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한 페리클레스의 전몰용사에 대한 추모연설을 되새겨봤으면 한다. 그는 “죽은 자들의 용맹을 기리며 그들의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것”을 강조했다. 이처럼 세계문명을 주도한 국가들은 모두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켜낸 전몰용사와 상이용사들의 희생정신을 계승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호국보훈의 달 6월과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이런 소중한 정신을 잘 되새겨보고, 이젠 고령이 된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은혜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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