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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민·김경란 “내일 결혼해요”

    김상민·김경란 “내일 결혼해요”

    6일 결혼을 앞둔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과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씨가 웨딩 화보를 공개했다. 김 의원은 4일 “이번 결혼식에 참석해 주시는 하객들의 이름으로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아이들을 도우려고 한다”고 밝혔다. 아이웨딩 제공
  • 김상민 김경란 웨딩화보, 달콤한 키스에 행복 미소

    김상민 김경란 웨딩화보, 달콤한 키스에 행복 미소

    오는 6일 결혼을 앞둔 김경란 아나운서와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의 웨딩화보가 공개됐다. 김경란 김상민 커플의 웨딩화보에는 예비신랑 김상민의 팔짱을 끼고 행복하게 미소 짓는 김경란 아나운서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또 다른 웨딩화보에서는 김상민 의원이 김경란 볼에 입맞춤을 하며 달달한 애정을 과시했다. 웨딩화보 공개와 함께 김상민 의원은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결혼식에 참석해주시는 하객들의 이름으로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아이들을 돕는 시작을 하려 한다.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신 분들의 사랑과 축복을 남수단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 그곳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상민 김경란 웨딩화보, 입이 귀에 걸려.. “결혼식 하객 이름으로 남수단 기부”

    김상민 김경란 웨딩화보, 입이 귀에 걸려.. “결혼식 하객 이름으로 남수단 기부”

    ‘김상민 김경란 웨딩화보’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과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이 오는 6일 결혼식을 올린다. 김상민 김경란은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 이름으로 남수단 아이들을 돕기로 결정해 훈훈함을 주고 있다. 김상민 의원은 4일 페이스북을 통해 “경란 씨는 2012년부터 3년 동안 세 차례 아프리카 남수단을 방문하며 교육지원과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왔고, 경란 씨의 오랜 꿈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남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일”이라면서 “저도 경란 씨의 꿈을 응원하고 함께하고 싶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김상민 의원은 “이번 결혼식에 참석해주시는 하객들의 이름으로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아이들을 돕는 시작을 하려 한다.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신 분들의 사랑과 축복을 남수단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 그곳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예비신부 김경란은 2011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선정된 후 남수단에 매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해왔으며, 결혼식장에도 남수단 아이들을 돕기 위한 하객 대상 캠페인 부스를 설치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민 김경란은 2월 중 어린이재단과 함께 남수단을 방문해 지원금을 전달하고, 학교 설립을 진행할 계획이다. 네티즌들은 “김상민 김경란, 천사 부부네. 김상민 김경란 웨딩화보 아름다워”, “김상민 김경란, 션 정혜영 부부 뒤를 잇나요”, “김상민 김경란 웨딩화보 속 모습처럼 아름답게 살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김상민 의원 페이스북(김상민 김경란 웨딩화보)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상민 김경란, 오는 6일 비공개 결혼식

    김상민 김경란, 오는 6일 비공개 결혼식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과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이 오는 6일 결혼식을 올린다. 김상민 김경란은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 이름으로 남수단 아이들을 돕기로 결정해 훈훈함을 주고 있다. 김상민 의원은 4일 페이스북을 통해 “경란 씨는 2012년부터 3년 동안 세 차례 아프리카 남수단을 방문하며 교육지원과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왔고, 경란 씨의 오랜 꿈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남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일”이라면서 “저도 경란 씨의 꿈을 응원하고 함께하고 싶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김상민 의원은 “이번 결혼식에 참석해주시는 하객들의 이름으로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아이들을 돕는 시작을 하려 한다.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신 분들의 사랑과 축복을 남수단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 그곳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상민 의원, 김경란 모레 결혼식 “축의금 남수단에 기부” 왜?

    김상민 의원, 김경란 모레 결혼식 “축의금 남수단에 기부” 왜?

    김상민 의원 김경란 김상민 의원, 김경란 모레 결혼식 “축의금 남수단에 기부” 왜?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과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 씨가 오는 6일 오후 비공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며,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 이름으로 남수단 아이들을 돕기로 했다. 김 의원은 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경란씨는 2012년부터 3년 동안 세 차례 아프리카 남수단을 방문하며 교육지원과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왔고, 경란씨의 오랜 꿈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남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일”이라면서 “저도 경란씨의 꿈을 응원하고 함께하고 싶어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번 결혼식에 참석해주시는 하객들의 이름으로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아이들을 돕는 시작을 하려 한다”며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신 분들의 사랑과 축복을 (어린이재단을 통해) 남수단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 그곳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비신부 김 씨는 2011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선정된 후 남수단에 매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해 왔으며, 결혼식장에도 남수단 아이들을 돕기 위한 하객 대상 캠페인 부스를 설치키로 했다. 이들은 2월 중 어린이재단과 함께 남수단을 방문해 지원금을 전달하고, 학교 설립을 진행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상민 의원, 김경란 모레 결혼식 “경란씨 오랜 꿈 들어주겠다” 대박

    김상민 의원, 김경란 모레 결혼식 “경란씨 오랜 꿈 들어주겠다” 대박

    김상민 의원 김경란 김상민 의원, 김경란 모레 결혼식 “경란씨 오랜 꿈 들어주겠다” 대박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과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 씨가 오는 6일 오후 비공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며,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 이름으로 남수단 아이들을 돕기로 했다. 김 의원은 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경란씨는 2012년부터 3년 동안 세 차례 아프리카 남수단을 방문하며 교육지원과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왔고, 경란씨의 오랜 꿈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남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일”이라면서 “저도 경란씨의 꿈을 응원하고 함께하고 싶어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번 결혼식에 참석해주시는 하객들의 이름으로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아이들을 돕는 시작을 하려 한다”며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신 분들의 사랑과 축복을 (어린이재단을 통해) 남수단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 그곳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비신부 김 씨는 2011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선정된 후 남수단에 매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해 왔으며, 결혼식장에도 남수단 아이들을 돕기 위한 하객 대상 캠페인 부스를 설치키로 했다. 이들은 2월 중 어린이재단과 함께 남수단을 방문해 지원금을 전달하고, 학교 설립을 진행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빔 벤더스 감독 신작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메인 예고편

    빔 벤더스 감독 신작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메인 예고편

    현존하는 최고의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삶을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이 29일 국내 관객을 찾는다. 이 작품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년)으로 음악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장을 연 후 영화 ‘피나’(2012년)를 통해 무용수 피나 바우쉬를 스크린에 옮긴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이다. 극중 주인공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사회적 이슈와 함께 지구파괴에 대해 사진을 통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한다. 또한 그는 환경 복원운동을 직접 이끄는 등 ‘행동하는 환경주의자’로 대중의 존경을 받고 있다. 최근 공개된 예고편에는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영상은 인도네시아 서 파푸아의 얄리족 원주민들의 일상을 촬영하는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친근하고 인자한 미소로 피사체와 소통하는 살가두의 모습은 이내 강렬한 흑백 사진들을 통해 세계 최대의 금광 브라질의 세라 펠라다를 보여준다. 거대한 인간군상과 목숨을 건 노동 현장은 화면을 압도한다. 빔 벤더스가 사진을 통해 먼저 만난 살가두에 대해 “훌륭한 사진작가일 뿐 아니라 대단한 모험가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하듯, 예고편에는 지구 곳곳을 다니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는 살가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접근하기 힘든 북극곰을 찍기 위해 땅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가까이 다가간 후, 아들 훌리아노를 받침대 삼아 누운 채로 곰을 찍는 살가두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살가두가 목격한 인간은 선함과 고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모습만은 아니었다. 예고편은 이어서 콩고 지역으로 쫓겨 간 르완다 난민들의 참혹한 모습, 1990년대 중반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총격을 받은 버스의 모습 등 증오가 증오를 낳고, 모두가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가는 ‘인류의 광기 어린 전쟁의 역사’를 담은 비극적 순간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들은 인간이라는 흉악하고 끔찍한 짐승”이라 말하는 살가두의 담담하지만 비애에 찬 목소리와 표정은 보는 이의 가슴에 무겁고 깊은 울림을 전한다.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40년간의 작품세계와 그의 인생사를 돌아보며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을 스크린으로 옮겨낸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은 2014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특별상 수상,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일찌감치 기대작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사진·영상=영화사 백두대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獨·佛 전범·부역자 대거 처벌’ 반면교사 삼아야

    광복 70주년을 맞아 끝나지 않은 친일 청산 논란이 이슈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우리 사회가 과거에 대한 규명과 성찰을 넘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와 같이 과거의 멍에를 짊어졌던 해외 과거사 청산과 반민족 범죄 처벌 사례를 통해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치정권 패망 후 탈나치화 작업을 통해 나치 관련 경력자를 대거 처벌한 독일이나, 나치 점령기 동안의 대독 부역자를 대량으로 숙청한 프랑스는 종종 철저한 과거사 청산 사례로 꼽힌다. 독일은 1946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반인륜범죄’를 최초 규정해 10만명 이상을 구금하고 10만명 가까이를 공직과 기업에서 해직했다. 프랑스도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대독 부역자 10만여명을 사형·징역에 처하고 공민권을 박탈했다. 스페인도 1930년대 내전과 70년대까지 이어진 프랑코 독재정권에 추종한 자들에게 프랑코 사후 처벌이 내려졌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에서 중요한 것은 인적 청산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만큼 역사에 대한 교훈과 반성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도 한계를 드러낸 것이란 지적이 따른다. 독일에서는 패전국의 행위만 문제 삼는 ‘승자의 재판’이란 문제점을 노출했고 유대인 대량학살 규명에도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독 부역자에게 불관용 원칙을 적용한 프랑스도 정작 자신들의 식민지인 알제리에서(독립운동 1954~62년)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학살하고 이를 정당화했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60~90년대 이어진 인종차별에 대해 1995년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어 진상 규명과 국민화합을 동시에 달성하려 노력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가해자들의 깊은 반성과 사죄가 필요하다”면서 “그런 과정을 거쳐야 우리 사회가 화해와 성찰을 통한 미래지향적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전환의 시대, 기로에 선 동북아 정세 전망-해외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상) 지한파 언론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日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환의 시대, 기로에 선 동북아 정세 전망-해외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상) 지한파 언론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日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인 올해는 한국 광복 70년이자 일본 패전 70년, 중국 승전 70년 등 동북아 3국이 저마다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해다.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북한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안보협력 강화에 나서면서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에 맞서는 중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 가속화 행보로 인한 한·일, 중·일 간 갈등 증폭 등 올해도 동북아 정세는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중국, 미국 3국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격랑의 2015년 동북아 기상도를 전망해 본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언론인인 와카미야 요시부미(66·전 아사히신문 주필)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는 지난 12월 중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65년 맺은 한일기본조약은 50년간 진화해 왔다”면서 “새롭게 한일기본조약을 되돌아보고 지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서로 양보해 해결하도록 제안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양국 정상에게 주문했다. 합리적인 시각으로 한·일 간의 화해를 추구하는 글을 써온 와카미야 전 주필은 최근 ‘전후 70년 보수의 아시아관’(작은 사진)이라는 저서에서 일본 현대사를 보수 정치인의 행보와 엮어 통렬히 분석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연말 총선을 통해 정권 기반을 다졌다. 아베 총리의 향후 외교정책에 대해 유연 노선과 강경 노선의 양론이 있는데. -좀 희망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두 가지 관측 중 전자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과 일단 정상회담을 가졌고, 위기관리에 대해서도 합의하면서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50주년을 맞아 무엇인가 하는 게 좋다는 여론이 있다. 박 대통령이 유연하게 나온다면 아베 총리도 화답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핵심인데, 한 번에 해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양측이 접점을 찾는 자세가 좋다고 생각한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인 6월 22일 전에 두 정상이 만날 가능성이 있나. -지금 분위기라면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만나지 않고 50주년을 맞는 것도 심한 얘기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만나려고 해도 상대가 만나 주지 않는다”고 말해 왔는데,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보다 조금 유리한 입장에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아베 총리가 가게 되는데, 거기까지 가서 만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하다. 지난해 11월 중·일 정상회담을 하기 전 박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담을 긴밀히 성사시켰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아서 유감이다. →국교정상화 이후 50년을 평가한다면. 또 앞으로의 50년을 전망한다면.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어떤 의미로는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무리하게 타협했던 것이 독도, 역사인식 문제 등으로 불거지고 있지만 조약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의 경제 발전을 조약이 뒷받침한 것도 틀림없는 얘기이고, 게다가 타협을 그대로 방치한 것도 아니다. 조약의 내용은 50년 동안 진화해 왔다고 생각한다. 가령 일본의 반성이나 사죄가 조약에는 없었지만 무라야마 담화(1995년)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이를 위해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합의한 것이 주요 내용)으로 일본의 사죄가 명확해졌다. 또 당시 일본에서는 독재 정권과 조약을 맺어도 되느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한국은 민주화 국가가 됐다. 지금까지 부족한 부분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냉정히 생각하는 것이 정치나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 번 더 한일기본조약을 되돌아보고 위안부 문제 등 지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양보해 해결하고, 앞으로 50년을 새롭게 시작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신(新)김대중·오부치 선언 같은 새로운 파트너십의 제안인가. -가능하다면 좋겠다. 국가 대 국가로 맺은 공식 선언이라는 데 의미가 있지 않나. 일본이 다시 사죄하는 게 아니라 그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면서 미래지향적인 박근혜·아베 공동선언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기적으로는 한·일 관계를 낙관하나. -그렇다. 남북 통일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서도 영향은 있겠지만 그때 일본이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전후 70년을 평가하면. -70년간 일본이 한 번도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평화적인 경제 발전의 길을 걸어온 것은 평가해 주었으면 한다. 특히 1990년대에는 과거에 대한 사죄를 거듭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다른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중국이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확대되고 있고 계속해서 사죄를 요구당한 것에 대한 울분 섞인 반발도 있다. 과거를 모르는 세대가 주류가 돼 속죄 의식보다는 오히려 피해자 의식이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은 다시 한번 겸허히 자성을 해야 하지만 주변국에도 관용의 정신을 부탁하고 싶다. 남북 분단, 내전, 그리고 군사 독재로부터의 민주화를 경험해 온 한국에 비해 일본은 전후 평탄한 길을 걸어왔다. 이 때문에 사회 발전은 빨랐지만 에너지를 잃어 노화돼 왔다. 헤이트 스피치(특정 인종·집단에 대한 증오 발언)처럼 유치한 현상은 노화에 의해 갓난아기로 돌아온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달의 총선으로 극우 정당이 괴멸한 것처럼 일본 전체가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유아화하거나 아니면 성숙을 되찾아 가거나 현재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동북아 정세가 갈수록 복잡해질 전망이다. 일본의 대(對)중국 정책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그 안에서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G2라고 불리는 중국이 그 정도의 지위를 갖춘 것을 존중하는 동시에 견제하는 세력이 돼야 한다. 일본이 전후 경제 발전 속에서 겪어온 공해, 버블 등 큰 실패를 중국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중국은 경제력으로는 ‘넘버 2’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아직은 미숙하다. 한국은 일본의 중요한 ‘동지’다. 일본은 중국에 힘으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과도 다툰다면 고립되고 만다. 또 한국과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한·일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한·중·일 연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일 관계를 전망한다면. -지난달 총선으로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기지의 헤노코 이전이 어려워진 것 등을 감안하면 미·일 관계도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베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이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공화당에 기대를 하고 있지만 공화당이 집권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군사력이 약해지고 있는 미국은 일본에 기대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일이 갈등을 빚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과연 아베 정권이 잘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 된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주필은 1948년 도쿄 출신. 1970년 아사히신문 기자가 돼 지방 지국을 거쳐 1975년부터 정치·외교 분야를 취재했다. 2013년 주필로 퇴직했다. 현재 일본 국제교류센터의 시니어펠로인 동시에 게이오대학, 서울대, 동서대의 객원교수, 연구원으로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두 차례 한국 유학 경험이 있으며 일·한포럼의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르포 현대의 피차별부락’, ‘잊을 수 없는 국회 논전’, ‘한국과 일본국’, ‘야스쿠니와 고이즈미 총리’, ‘신문기자’ 등이 있다.
  •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올해 사망한 세계 주요인사 살펴보니…

    올해 사망한 세계 주요인사 살펴보니…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AFPBBNEWS=NEWS1(위), 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162명 탄 에어아시아機 추락] 올 자국기 세번째 대형 참사… 말레이 국민들 ‘충격’

    잇단 항공기 실종과 격추 사고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낸 말레이시아에 또다시 자국 회사가 운영하는 항공기가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말레이시아 국민들과 항공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한 해 세 번의 항공기 대형 참사가 모두 자국 국적기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앞으로 말레이시아에 큰 오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히 실종 이후 정확한 사고 원인이 나오지 않아 항공기 사고 역사상 최대 미스터리로 남게 될 지난 3월의 ‘말레이시아 항공 MH370 실종 사고’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다만 사고기가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 본사가 아닌 인도네시아 자회사가 운영하는 여객기이고, 탑승객 중 자국민은 1명뿐이어서 안도하는 분위기다. 앞서 말레이시아 항공 MH370은 지난 3월 8일 0시 41분 승객과 승무원 239명을 태우고 쿠알라룸푸르공항을 이륙해 중국 베이징으로 가다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됐다. 이륙한 지 50여분 만에 레이더에서 사라진 여객기는 갑자기 비행 경로를 반대로 돌린 것으로 추정돼 온갖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영국 인공위성의 남·북부 항로 데이터 분석 결과 실종기의 비행이 인도양 남부에서 끝났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기체의 추락 지점이나 사고 원인 등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17일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298명이 탄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이 미사일에 맞아 격추돼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 초기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내전을 벌이고 있는 친러시아 반군의 소행이 유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세월호·말레이機 참사 ‘침통’… 땅콩 회항·아베 폭주 ‘분통’

    세월호·말레이機 참사 ‘침통’… 땅콩 회항·아베 폭주 ‘분통’

    [국내] 정부 무능·정쟁에 더 아팠던 ‘세월호 참사’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돼 탑승객 476명 가운데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은 아직 실종 상태다. 특히 이 사고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대거 희생돼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게다가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실책,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의 정쟁은 국민들의 분노로 이어졌다. ‘숨은 실세 국정 개입 논란’ 연말 정국 강타 박근혜 정부의 ‘숨은 실세’로 거론돼 온 정윤회씨가 청와대의 ‘실세 3인방’ 등과 정기적으로 접촉하며 국정에 개입했다는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연말 정국을 뒤흔들었다. 문건의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 박지만 EG 회장 등 관련자 간 진실 공방으로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됐다. 헌재 “통합진보당 北체제 추종” 첫 정당해산 비례대표 부정경선,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통합진보당이 창당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대1의 압도적인 인용으로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헌재 결정에 의한 정당해산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헌재는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5명의 의원직 박탈도 결정했다. 조현아 ‘땅콩회항’ 항공법 위반 등 일파만파 조현아(40)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JFK공항 활주로에서 이륙 준비 중이던 인천행 KE086 항공기를 탑승구로 회항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에 대해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24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대한항공과 공모를 통해 증거인멸을 시도한 조사관을 체포했다. 일 년 내내 가혹행위·총기사고 해명한 軍 지난 4월 경기 연천의 28사단에서 윤모 일병이 선임병 4명으로부터 엽기적인 가혹행위에 시달린 끝에 숨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등 올 한 해는 군대 내 폭력과 총기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6월 동부전선 22사단 GOP 부대에서도 임모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동료 장병 5명이 숨졌다. 그 다음 달에도 2명의 A급 관심병사가 자살하는 사고가 발생해 군의 장병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공무원연금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안 시끌 대규모 적자의 누적으로 재정 부담을 키우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논의는 지난 9월 당·정협의회에서 본격화됐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 제시됐지만 공무원노조는 ‘공적연금 후퇴’와 ‘밀실논의’라며 반발했다. 여야는 최근 개혁안을 마련할 대타협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정년 연장 등 공무원의 사기진작책도 거론되지만 최종 결정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변별력 없고 또 출제 오류·… 최악의 수능 2015학년도 수능은 사상 최악으로 기록됐다. 변별력 조절 실패에다 출제 오류까지 겹쳤다. 생명과학Ⅱ와 영어에서 복수 정답이 인정됐다. 복수 문항, 복수 정답은 수능 도입 21년 만에 처음이다. 전년도 세계지리 8번 문항도 법원 판결로 전원 정답 처리됐다. 여론이 들끓자 교육 당국은 결국 수능 개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에서도 ‘낮은 곳’으로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8월 4박 5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한국 역사상 세 번째이며,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이후 25년 만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서울 광화문광장) 등을 집전했고 세월호 유족, 위안부 피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을 만나며 ‘낮은 곳’을 챙기는 모습에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연초 나라 뒤흔든 카드 3사 고객정보 유출 올 1월 새해 벽두부터 1억여건의 카드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신용평가회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직원이 KB국민·롯데·NH농협 등 카드 3사에서 200여만명의 고객 정보를 빼돌리면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사회지도층 인사와 연예인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모든 국민의 정보가 털렸다. 관련자들이 구속됐지만 집단소송이 이어지면서 법정 공방은 ‘진행형’이다. 총리 후보자 잇단 낙마… 청와대 ‘답답’ 인사 세월호 참사 이후 지명된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면서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4월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총리 후임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지명됐지만 과다 수임료와 전관예우 논란 등으로 낙마했다. 이어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지명됐지만 역사의식 논란으로 역시 물러났다. 결국 정 총리가 사의 표명 60일 만에 다시 총리직을 맡게 됐다. [국제] 크림반도, 러시아 귀속… ‘신냉전’ 암운 지난 2월 우크라이나가 친러시아 성향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고 서방으로 등을 돌리면서 크림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친러시아계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 귀속을 결정했고, 러시아는 신속하게 조약 체결과 의회 비준 절차를 마쳤다. 우크라이나 주변으로 군사력이 증강 배치되고,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 경제 제재에 착수하면서 신냉전이 도래했다. 말레이시아機 3월엔 실종·7월엔 피격 올 한 해 말레이시아항공은 가시밭길을 걸었다. 지난 3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해 중국 베이징으로 가던 여객기가 실종됐다. 여객기에는 승객과 승무원 239명이 타고 있었으나 단 한 명의 시신도 발견되지 않은 채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났다. 7월에는 승객 298명을 태우고 네덜란드를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미사일에 격추됐다. 전 세계 에볼라 공포… 7500여명 사망 지난 3월 이후 기니와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3개국을 중심으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번져 7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역대 최대 규모인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은 지난해 12월 기니에서 첫 사망자가 보고된 뒤 해를 넘기며 인접국은 물론 미국, 스페인 등 다른 국가로 퍼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8월 에볼라와 관련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슬람 급진 세력 IS, 잇단 외국인 참수 알카에다의 이라크지부(AQI)였던 이슬람국가(IS)가 수니파 이슬람교도를 규합해 순식간에 세계를 위협하는 급진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 조직은 지난 6월 신정일치 국가인 IS 설립을 선언한 뒤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점령했다. 이들은 서방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미국 언론인 제임스 폴리를 시작으로 5명의 외국인 참수 동영상을 공개했다. 아베 ‘집단자위권’ 강행·장기집권 체제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은 지난 7월 동맹국 등에 대한 공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반격하는 권리인 ‘집단자위권’을 각의(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로써 1945년 패전 이후 견지해 온 ‘전수 방위’ 원칙을 저버리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전환했다. 이어 중의원 해산 뒤 총선 승리라는 정치적 도박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지난 24일 제3차 내각을 출범시켜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백인경찰 흑인 사살… 美 인종갈등 몸살 지난 8월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비무장한 10대 흑인을 총으로 쏴 죽인 백인 경관과 7월 미국 뉴욕의 길거리에서 담배를 팔던 흑인을 목졸라 숨지게 한 백인 경관이 잇따라 대배심에서 불기소 판결을 받으며 미국 내 인종 갈등이 폭발했다. 항의 시위와 소요, 약탈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지난 20일에는 20대 흑인 남성이 뉴욕 브루클린에서 경찰 2명을 살해하는 등 사회 전체가 요동치고 있다. 홍콩, 주권 반환 후 최대 反中 ‘우산혁명’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지난 8월 말 의결한 ‘2017년 행정장관 선거안’이 불씨가 됐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 입후보자의 자격을 제한하자 홍콩 시민들은 지난 9월 28일부터 선거안 철회를 요구하며 도심 점거 시위에 돌입했다. 우산으로 경찰에 맞서 ‘우산혁명’으로 불린 시위는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75일간 지속되면서 200여명이 체포되고 500여명이 부상했다. 세계 시선 끈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부결 307년 만의 스코틀랜드 독립과 영국 연방 해체라는 격변 가능성으로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시켰으나 지난 9월 반대 55.4%, 찬성 44.7%로 부결됐다.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미래가 불투명한 독립보다는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계속 남는 길을 택했다. 스코틀랜드는 조세권과 예산권 등 자치권 확대라는 전리품을 챙겼고, 스페인 카탈루냐주 등 다른 지역의 분리독립 운동을 자극하는 불씨가 됐다. 유가 급락과 더불어 디플레이션 공포 미국의 셰일 개발 붐에 따른 산유량 급증과 중국의 성장둔화로 인한 수요 감소가 맞물려 국제유가가 급락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지난 11월 산유량을 동결하며 하락세는 탄력을 받았다. OPEC과 미국의 대결 양상 속에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반년 만에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주요 90개국 가운데 4분의1 이상이 1% 미만의 물가상승률을 보이며 디플레이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美·쿠바 국교 정상화 ‘53년 냉전’ 청산 미국과 쿠바가 53년간 이어온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다고 지난 17일 선언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이 쿠바 공산화를 선언한 뒤 미국 기업의 재산을 몰수해 2년 후인 1961년 양국의 국교가 중단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역사적 선언으로 미국은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을 크게 완화할 방침이다.
  • 눈먼 할머니의 길잡이… 우간다 어린 4남매

    눈먼 할머니의 길잡이… 우간다 어린 4남매

    빈곤과 질병에 허덕이는 전 세계 소외된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EBS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은 26일 밤 8시 20분 ‘우간다, 눈먼 할머니와 버려진 4남매’ 편에서 20년간 지속된 내전으로 극심한 가난에 고통받는 우간다를 찾는다. 가난한 시골 망운도 마을에서 시각장애인 할머니 나휴하(70)와 아이다(13), 에디사(10), 델리키(8), 아자리야(5)는 부모 없이 서로 의지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 제작진이 만난 아이다와 에디사, 델리키는 한창 학교 다닐 나이에 자기 몸보다 큰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고 있었다. 1년 전 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마저 집을 떠나면서 홀로 남겨진 아이들은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해도 겨우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을 정도지만 아이들은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집에는 할머니와 막내 아자리야가 있다.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거나 물건을 찾을 때 아자리야가 할머니의 길잡이가 돼 준다. 앞이 안 보이고 몸까지 성치 않아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할머니는 늘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일찍이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비록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 하더라도 아이들은 할머니의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 할머니가 요즘 탈장으로 인해 몸이 더욱 쇠약해지고 있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식사시간에도 내내 고통스러워하며 잘 먹지 못한다. 약도 사주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아이들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세계의 창] 민주주의 실험 홀로 성공 튀니지 비결

    튀니지는 ‘아랍의 봄’ 진원지이자 아랍 민주화의 ‘마지막 불씨’다. 2010년 12월 경찰의 폭력적인 단속에 항의한 대학생 노점상의 분신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는 벤 알리의 23년 독재정치를 종식시켰다. 뒤이어 민중 봉기가 발생한 다른 아랍 국가들은 모두 군부독재로 회귀하거나 내란·내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갔다. 하지만 튀니지는 지난 4년 동안 위기를 극복하면서 민주정치의 기틀을 다졌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사상 처음 민주적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 세계가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튀니지가 민주주의 실험에 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BBC와 알자지라는 이날 튀니지를 ‘아랍의 새로운 모델’로 묘사하면서 이슬람주의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의 타협 과정을 조명했다. 벤 알리 정권 붕괴 이후인 2011년 10월 총선에서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인 엔나흐다당이 승리해 연립정부를 구성하자 옛 정권을 지탱했던 세속주의 세력이 반발했다. 갈등이 고조되자 강경 이슬람주의 살라피스트들이 득세하며 세속주의자들을 공격했다.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세력이 세를 불렸다. 경제 위기까지 고조되자 정권퇴진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엔나흐다당은 정부 총사퇴와 중립 과도정부 구성이라는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 간 타협의 결정체는 헌법이었다. 새 헌법은 국교를 이슬람이라고 명시했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근거한 조문들도 모두 삭제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못 박았다. 고문 금지, 적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남녀평등도 명시했다. 더욱이 튀니지는 이슬람 강경파가 소수였다. 다수파인 무슬림형제단 계열의 온건한 엔나흐다당은 헌법 양보를 넘어 대선에서 이슬람 후보를 내지 않았다. 대신 민중 시위를 이끈 문시프 마르주키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 옛 정권 출신의 세속주의자로 경제를 외치는 에셉시 후보와 ‘아랍의 봄’ 투사 사이의 양자대결은 이렇게 완성됐다. BBC는 “정치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군부의 전통, 종교보다는 경제에 더 관심이 많은 여론, 프랑스와의 심리적 유대감 등도 튀니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고 있다”면서 “온건 엔나흐다당이 종교적 가치에서 출발했으나 세속적 민주주의 정당으로 발전한 유럽의 기독민주당이나 기독사회당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세계의 창] “종교는 정치 참여 말라” vs “신정일치 국가 건설” 세력다툼

    [세계의 창] “종교는 정치 참여 말라” vs “신정일치 국가 건설” 세력다툼

    #1 지난 8월 미국의 맹방을 자처하는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UAE) 공군이 리비아를 기습 폭격해 미국을 당황케 했다. 이들은 왜 미국 몰래 공습을 감행했을까? #2 ‘아랍의 봄’ 투사였던 이집트 청년 아흐메드 알다라위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대원으로 활동하다 전사한 사실이 지난 3일 전해졌다. 경찰 출신으로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가 왜 세계 ‘공공의 적’인 IS의 대원이 됐을까? #3 터키의 판검사들은 왜 국민이 장기집권을 허락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고 할까? 위 세 가지 질문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발단의 단초는 하나다. 바로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충돌’. 얽히고설킨 중동 정세를 이 키워드를 통해 바라보면 분쟁의 원인과 실체가 드러날 때가 많다. 먼저 이집트와 UAE의 리비아 공습부터 살펴보자. ‘아랍의 봄’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후 리비아에서는 이슬람주의 민병대와 세속주의 민병대가 일진일퇴의 내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월은 이슬람 민병대가 의사당과 정부 청사를 점령한 때다. 세속주의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이집트와 세속주의 왕정이 통치를 하고 있는 UAE로서는 자신들의 턱밑에 이슬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미국은 왜 놀랐을까? 이집트와 UAE가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면 이슬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이웃 카타르와 터키도 개입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중동전문가 미셸 둔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가자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에게 리비아에서 4개국이 전투를 벌이는 상황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다”고 분석했다. 피아 구분이 불분명해진 시리아 내전도 근원은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충돌이다. 처음에는 세속주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항해 모든 이슬람 세력이 함께 대항했다.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이슬람 무장단체 내부에서 종파 분쟁이 터졌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이후 IS로 진화)가 다른 반군들을 제압해 가며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의 ‘괴물’이 됐다. IS의 단기 목표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세속주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장기 목표는 미국을 침몰시키는 것이다. 이집트 청년 알다라위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전쟁의 희생양이다. 촉망받는 경찰이었던 그는 호스니 무바라크를 무너뜨린 항쟁의 최전선에 섰다. 그러나 ‘아랍의 봄’이 가져다준 해방 공간에선 이슬람주의 시위대와 세속주의 시위대가 충돌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한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를 급속도로 이슬람화시켰다. 이에 반발한 압둘 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무바라크보다 더 강압적인 철권통치에 나섰다. 알다라위의 삶을 추적한 파이낸셜타임스는 “알다라위는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시위대가 분열되는 것을 보고 절망했으며, 다시 군부가 집권하는 것을 보고 극단적 이슬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시민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시리아, 리비아, 예멘, 알제리 등에서도 알다라위와 같은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줄을 잇고 있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제 뉴스의 단골손님이다. 최근 그는 “무슬림 뱃사람들이 콜럼버스보다 314년 빠른 1178년에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했다”고 주장해 때아닌 역사 논쟁을 일으켰다. 여성학자들의 토론회에 참석해서는 “여성은 기본적으로 남성과 평등할 수 없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터키 공교육의 이슬람화도 추진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에서 하마스를 지원하고, 시리아에서는 무슬림형제단 반군을 지원하며, 이집트 군사정권과 각을 세우는 원인은 그의 판단 기준이 이슬람주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자 에르도안에게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들은 터키의 검사와 판사들이다. 삼권분립과 신정분리에 의해 통치되길 바라는 사법부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통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터키는 1923년 중동 국가 중 처음으로 헌법에 세속주의 통치를 못 박은 나라다. 이 때문에 판검사들이 나서서 대통령과 대통령의 아들 및 측근의 비리를 캐고 있다. 가디언은 “터키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향방을 정하는 시금석”이라고 평가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용어 클릭] ■이슬람주의 이슬람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려는 이데올로기이다. 종교지도자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통치하는 신정일치 국가 건설을 추구한다. ■세속주의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 종교의 정치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중동에서는 주로 왕족과 군부가 독재 통치로 세속주의 정치를 유지해 왔다.
  • 여성·아이도 무차별… 테러, 잔인하고 조직화됐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 동안 일어나는 테러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글로벌테러리즘데이터베이스’(GTD)는 1970~2013년 40여년간 축적한 자료를 인용해 이 기간 ‘12월 17일’을 기준으로 이 날짜에 일어난 테러의 숫자를 정리해 17일 발표했다. GTD 홈페이지(www.start.umd.edu)에 따르면 1970년대 이 날짜에 일어난 테러는 하루 10건 미만으로 주춤하다 1978년 50건에 육박하며 정점을 찍었다. 이는 냉전의 심화가 국지적인 테러를 확산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매년 같은 날 10건 안팎을 기록하다 2012년 폭증했고 지난해 12월 17일에는 60건에 가까웠다. GTD는 테러의 양상을 분석해 공공시설 파괴나 납치에서 자살폭탄테러 등으로 방식이 잔인해지고, 대상도 어린이 등 민간인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1960~1970년대 포스트 식민주의 속에서 자생하던 테러 조직이 1980~1990년대 냉전의 확산으로 힘을 얻고, 이후 지역을 넘어 조직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런 경향은 148명의 사망자를 낳은 파키스탄탈레반(TTP)의 ‘학교 테러’에서 잘 드러난다. 2004년 9월 334명이 목숨을 잃은 러시아 북오세티야 초등학교의 인질극과 지난해 7월 42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고교 폭격 사건 등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의 잔혹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테러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더 잔인해지고 분권화됐다.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권력 공백이 생기고, 시리아 내전 등으로 지하디스트들의 숫자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탓이다. 보고서는 ‘알카이디즘’이 반미 감정을 기반으로 세계 각 지역의 이슬람 토착 세력과 결합해 오히려 새로운 테러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GTD는 2007년 100건 정도에 불과했던 알카에다 및 연계 조직들의 테러 횟수가 2013년에는 900건 이상으로 9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방점은 이슬람국가(IS)에 찍혔다. IS가 알카에다마저 포기한 인질 참수를 고집하며 잔악한 수법으로 단기간에 인지도를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 전문가인 에브라힘 무사 미국 노트르담대 교수는 “이슬람 과격단체들이 어린이 등을 대상으로 잔혹한 행위를 벌이는 것은 기독교·서구식 교육을 받은 어린이들이 자라기 전에 미리 싹을 자르는 것을 ‘성전’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외로운 늑대’에 떨고 있는 지구촌… IS만 웃는다

    ‘외로운 늑대’에 떨고 있는 지구촌… IS만 웃는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16일 전날 시드니 카페에서 벌어진 인질극을 “무장단체와 연계된 ‘테러리즘’이 아닌 개인이 저지른 ‘사회적 범죄’”라고 정의했다. 호주 커틴대학교의 테러리즘 전문가 애니 얼라이 교수도 “인질범 만 하론 모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면 오히려 ‘이슬람국가’(IS)만 웃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이 모니스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와 떼어 놓으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근 IS가 자생형 지하디스트들이 성전에 참여할 것이라고 공언한 마당에 모니스를 IS와 연계된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면 오히려 IS의 입지만 키워주는 꼴이 되고 만다. 애벗 총리의 정의대로 모니스는 조직적인 테러그룹에 가담하지 않은 은둔형 범죄자였다. 본인은 ‘셰이크’(이슬람지도자)를 자처했지만 정치적·종교적 목적이 분명한 지하디스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모니스와 같은 ‘외로운 늑대’(lone wolf·자생적 테러리스트)가 IS보다 덜 위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늑대들이 더 위협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무장단체와 연계된 테러리스트들은 정보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되기 쉽지만 이들은 언제 어디서 테러를 저지를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2005년 호주 당국이 ‘펜데니스 작전’을 통해 자국 내 지하디스트들을 대부분 파악했지만, 시리아 내전 이후 전혀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면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IS의 영향을 받은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호주 정보당국 관계자는 가디언에 “현재 대테러 작전의 핵심은 유명 지하디스트 감시가 아니라 외로운 늑대 색출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생적 테러는 최근 테러의 주요 흐름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 유대 박물관에서 총기를 난사해 4명을 숨지게 한 유대계 프랑스인 메흐디 네무슈는 시리아에서 돌아와 혼자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10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의사당을 공격한 마이클 제하프 비보도 이슬람 개종자였지만 배후세력은 없었다. 같은 달 미국 뉴욕에서 경찰 4명에게 손도끼를 휘두른 제일 톰슨은 IS가 만든 참수 영상을 보며 스스로 과격해진 인물이었다. 지난달 18일 예루살렘 시너고그 공격도 하마스 등 무장단체의 지시를 받지 않은 2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텔레그래프는 “무슬림에 대한 차별, 주류 사회의 진입 장벽 속에서 외로운 늑대들이 탄생한다”면서 “이들의 공격은 감시망 밖에 있어 성공 확률이 높고 효과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관광공사, 유럽 안전 가이드 선봬

    관광공사, 유럽 안전 가이드 선봬

    한국관광공사 국외여행센터는 해외 긴급상황 발생 시 대처할 수 있는 안전 그래픽 가이드 ‘터치 잇 페이퍼’를 발간했다. 그림문자로 쉽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포켓판 팜플렛으로, 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 세 종류로 제작됐다. ‘그림’과 ‘전보’를 결합한 픽토그램을 활용해 해외 여행 시 위치문의, 약국, 병원, 분실 등 11개의 상황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한국어와 현지어가 병기됐고, 바지 뒷주머니에 쏙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다. 관광공사는 15일부터 인천국제공항과 서울메트로 주요 역사(서울역, 명동역, 을지로입구역 등), 한국관광공사 본사 지하 1층 관광안내전시관 등에서 터치 잇 페이퍼를 무료 배포한다. 관광공사 국외여행센터 홈페이지(www.smartoutbound.or.kr) 참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내 노래 정치적 이용 싫다” 고국 국기 흔드는 것 거절

    “내 노래 정치적 이용 싫다” 고국 국기 흔드는 것 거절

    “내 노래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걸 원치 않아요.” 지난 13일 밤(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중동 최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랍 아이돌’의 우승자 하짐 샤리프(21)는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끝내 고국인 시리아의 국기를 몸에 걸치거나 흔드는 것을 거절했다. 미국 ‘아메리칸 아이돌’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와 아랍권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자가 자국의 국기를 흔들거나 두르는 것은 관례처럼 여겨진다. CNN은 2년 넘게 시리아를 휩쓴 내전의 상흔이 샤리프를 무대에서 다르게 행동하게 만들었다고 14일 전했다. 샤리프는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가 가장 치열하게 벌어진 알레포 출신이다. 한때 시리아의 상업 중심지로, 정부군의 공습과 이슬람국가(IS)의 소수민족 학살 탓에 수많은 민간인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외신들은 샤리프의 가족 중 누가 목숨을 잃었는지, 혹은 샤리프가 쿠르드족 출신인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샤리프는 우승 직후 “조국이 내전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보게 해 달라고 신께 기도했다”면서 “내 노래를 조국 시리아에 바친다”고 말했다. 또 “내 첫 공연을 시리아에서 열고 싶다”고 말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심사위원들은 샤리프의 결정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지지했다. 레바논의 인기 여가수인 낸시 아즈람은 “샤리프의 우승은 시리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신의 뜻”이라고 말했고, 아랍에미리트의 가수 알함은 “샤리프가 피흘리는 시리아에 위로를 건넸다”고 치켜세웠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아랍 아이돌’은 아랍권 위성방송인 mbc가 주최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에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우승자 무함마드 아사프가 저항의 상징인 격자무늬 스카프 ‘케피에’를 두르고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원년 우승자인 이집트의 카르멘 술레이만도 이집트 국기를 몸에 둘러 혁명 직후 ‘아랍의 봄’을 기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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