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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 연합군 폭격… 예멘 민간인 131명 사망

    내전으로 피로 얼룩진 예멘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130명 이상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예멘 남서부 타이즈주(州) 해안도시 모카 인근의 알와히자 마을에서 결혼식 도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131명이 사망했다고 유엔과 현장 의료진이 29일 밝혔다. 사망자 가운데는 여성 최소 80명을 비롯해 어린이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장 목격자들은 연합군의 오폭이었다고 주장했다. 연합군의 공습 직후까지만 해도 최소 31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으나, 사망자 집계가 진행되면서 인명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유엔 관계자는 “이런 추세로 볼 때 사상자 규모가 이번 (예멘) 사태가 시작된 이래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숨진 참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번 공습을 맹비난하면서 “하디 예멘 대통령과 후티 반군 등 예멘 안팎의 이해 당사자들은 즉각 군사 행동을 중단하고 평화협정에 들어갈 것”을 촉구했다. 유엔이 이번 폭격에 문제를 제기하자 가해자로 지목된 사우디군은 29일 “연합군은 지난 사흘간 모카 지역을 폭격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지난해 9월 예멘 수도 사나를 장악한 시아파 후티 반군은 올해 초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정부 세력의 근거지인 남부 지역까지 압박했다. 이에 대해 연합군의 공습과 물자 지원에 힘입은 친정부 민병대는 아덴 등 주요 지역을 재탈환했고, 최근에는 사우디로 피신했던 하디 대통령이 예멘으로 귀국하면서 내전이 격화됐다. 이에 따라 지난 11~24일 2주간 아동 26명과 여성 10명을 포함한 민간인 151명이 숨졌다. 지난 3월 사우디 공습이 시작된 이래 숨진 민간인 수는 모두 2355명에 이르며 부상자 수도 4800명을 넘어섰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전문]박근혜 대통령 제7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문..키워드 ‘평화’

    [전문]박근혜 대통령 제7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문..키워드 ‘평화’

    박근혜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0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통일, 동북아 평화·번영 등을 위한 우리의 정책을 설명하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당부했다. 다음은 기조연설 전문. 리케토프트 총회의장님과 반기문 사무총장님, 그리고 각국 대표 여러분. 먼저, 유엔 창설 7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리케토프트 덴마크 전(前) 국회의장님의 제70차 유엔총회 의장직 수임도 축하드립니다. 70년 전 전쟁의 참화를 딛고 탄생한 유엔은 전 세계 인류에게 희망의 등불이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현실정치의 제약 속에서도 사람을 중심에 두겠다는 유엔의 정신에 대한 신뢰와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도전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인류를 위한 공공선 증진에 크나큰 기여를 해왔습니다. 평화의 상징인 ‘블루헬멧(blue helmet)’의 유엔 PKO는 이 순간에도 국제평화와 안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UDHR) 채택은 인권신장의 획기적인 계기가 됐고, 인권이사회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설립은 인권보호 제도화의 괄목한 만한 진전이었습니다. 2000년에 시작된 새천년개발목표(MDGs)는 수억 명의 인구를 절대 빈곤에서 탈출시킨 유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빈곤퇴치 캠페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엔의 노력이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올해는 대한민국에게 있어서도 광복 70주년과 분단 70년을 맞는 기쁨과 번뇌가 교차하는 해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은 분단과 전쟁의 시련을 딛고 일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냈으며, 정부수립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엔은 늘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국제평화와 인권증진, 공동번영이라는 유엔의 가치와 이상은 바로 우리의 비전이었고, 대한민국이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또한 유엔이 꿈꾸는 미래와 같이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이룩한 도전과 성취의 역사야말로, 보다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유엔의 목표가 성공적으로 반영되어 온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의장님, 그러나 유엔과 국제사회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인류는 세계 도처에서 동시다발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직도 크고 작은 분쟁과 극심한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ISIL로 대표되는 극단주의 세력의 발호는 해결이 시급한 국제사회의 현안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불안정은 최근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 한 장이 보여주듯이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 발생이라는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범지구적인 기후변화는 우리 후손들의 삶까지 위협하고 있고, 에볼라를 비롯한 감염병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으며 보건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제 지구촌 어느 누구도 범세계적, 초국경적 위협과 도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는 국제질서가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국제평화와 안보, 인권증진, 공동번영을 위해 유엔이라는 희망의 등불이 전 세계에 빛을 발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국제사회가 유엔을 중심으로 단합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믿음’이라는 유엔 헌장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강한 유엔을 만들어, 새로운 다자주의(renewed multilateralism)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유와 인권, 정의, 법의 지배에 기초한 인간 존중의 가치를 실현시켜 나가야 합니다. 지구촌의 평화와 행복을 우리 외교의 핵심 가치로 추구하는 한국은 인류애의 이상과 이를 위한 실천을 강조하면서 유엔이 국제사회가 직면한 도전들을 대응해 나가는데 모든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의장님, 유엔이 주도하는 Post-2015의 새로운 개발의제 도출을 위한 노력도 바로 이러한 사람 중심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흘 전, 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된 ‘2030 지속가능개발의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불과 반세기 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과 개발협력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2030 지속가능개발의제’가 지구촌 곳곳에서 제2, 제3의 기적을 일으키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개발의제 이행에 핵심역할을 담당할 유엔경제사회이사회의 의장국으로서 한국은 개발목표 달성을 위해 적극 기여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우리의 개발경험과 노하우를 국제사회와 적극 공유해갈 것입니다. 그 동안 한국은 비약적인 발전의 발판이 된 새마을운동 경험을 개도국들과 나눠왔습니다. 새마을운동은 경쟁과 인센티브를 통해 자신감과 주인의식을 일깨우고, 주민의 참여 속에 지역사회의 자립기반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개도국 개발협력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틀 전 우리는 UNDP, OECD와 함께 새마을운동 특별행사를 열고, 개도국 빈곤퇴치와 혁신적 지역공동체 건설에 협력해 가기로 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개도국의 ‘새로운 농촌개발 패러다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이러한 노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한국 경제 발전의 또 하나의 중요한 원동력은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육성한 우수한 인재들이었습니다.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국가발전을 이루는 지속가능개발의 핵심과제입니다. 한국은 글로벌교육우선구상(GEFI) 지원국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 5월 UNESCO와 함께 세계교육포럼(WEF)을 열어 2030년까지의 세계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인천선언’ 채택을 주도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교육 분야에서의 이러한 노력을 지속해 갈 것입니다. 특히, 한국은 UNESCO와 함께 세계시민교육 확산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한국은 글로벌 보건안보를 강화하는 데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한국은 작년 말 에볼라 대응 긴급구호대를 시에라리온에 파견한 데 이어, 3주전 서울에서 개최된 제2차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 회의에서 개도국 역량 강화를 돕기 위해 향후 5년간 총 1억불을 제공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또한, ‘소녀를 위한 보다 나은 삶’이라는 이름으로 향후 5년간 2억불 규모의 개도국 지원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대표단 여러분,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를 이뤄냈지만,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매년 4월 5일을 식목일로 지정하고 산림녹화에 노력한 결과, 1ha당 나무 총량이 50년 동안 20배가 늘었고, 1972년부터는 도시 외곽에 개발을 제한하는 그린벨트를 지정해서 환경과 발전의 조화를 이뤄왔습니다. 이제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참여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이며, 국제사회가 금년 12월로 예정된 기후변화총회에서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기후변화 대응이 부담이 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인식 아래 대한민국은 지난 6월 말에 능동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INDC)를 제출하였고, 기후변화 협상에 적극 참여해 가면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녹색기후기금(GCF)과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의 유치국으로서 에너지신산업 관련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서 개도국에 전수하면서,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 대표단 여러분, 최근 유엔이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맞춰 평화활동, 평화구축 및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재검토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참혹한 전쟁 경험과 남북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한국은 평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으며, 유엔의 평화 수호 노력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18개 임무단에 약 1만3천500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했고, 한국의 평화유지군은 모범적이고 주민 친화적인 평화유지와 재건활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조만간 유엔과의 협의를 거쳐 PKO를 추가 파견할 계획이며, 아프리카연합과의 실질적인 파트너십도 강화할 것입니다. 중동의 불안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 등을 위해서도 관련국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강화해 나갈 예정입니다. 한국은 역내 국가들 간에 긴장과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동북아의 평화기반 구축을 위해서도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동북아 지역은 역내 국가들간 높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에도 불구하고 정치 안보분야 협력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동북아 안보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들도 나타나고 있어 역내 국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번에 통과된 일본의 방위안보법률은 역내국가 간 선린우호 관계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투명성 있게 이행되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반기문 사무총장께서는 긴장과 대립이 지속되는 동북아를 가리켜, 지역협력 메카니즘이 없는 ‘중요한 고리를 잃어버린 곳’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동북아평화협력구상(NAPCI)’을 추진하는 이유도 잃어버린 고리를 다시 연결해서 동북아에 신뢰 구축과 협력 증진의 선순환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현재 역내 국가들 사이에 원자력 안전, 재난관리, 보건을 비롯한 다양한 협력 분야의 협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의 축적은 세계 평화와 협력 증진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노력은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북한 핵은 국제 핵비확산 체제의 보존과 인류가 바라는 핵무기 없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지난 7월 이란 핵협상이 최종 타결되었는데, 이제 마지막 남은 비확산 과제인 북한 핵문제 해결에 국제사회의 노력을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최근에도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반하는 추가적인 도발을 공언한 바 있습니다. 이는 어렵게 형성된 남북대화 분위기를 해칠 뿐 아니라 6자회담 당사국들의 비핵화 대화 재개 노력을 크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추가도발보다는 개혁과 개방으로 주민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핵개발을 비롯한 도발을 강행하는 것은 세계와 유엔이 추구하는 인류평화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북한이 과감하게 핵을 포기하고 개방과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북한이 경제를 개발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대표단 여러분, 지난 10년 동안 유엔은 특히 인권보호와 자유신장을 위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냈습니다. 2005년 유엔 세계정상회의에서는 ‘보호책임(R2P)’ 개념을 채택했고, 르완다 및 구 유고 전범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으로 제노사이드 관련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확립하였습니다. 저는 오늘날 인류가 처한 인도적 위기 상황의 악화를 막기 위해, 이러한 보호책임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 이 자리에서,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어느 시대, 어떤 지역을 막론하고 분명히 인권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금년은 특히 ‘여성, 평화와 안보를 위한 안보리 결의 1325호’가 채택된 지 15년을 맞는 해로서, 국제사회가 분쟁 속의 여성 성폭력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2차 대전 당시 혹독한 여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이 이제 몇 분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이 살아계실 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 문제에 관한 유엔 인권최고대표들과 특별보고관들의 노력이 헛되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과거를 인지하지 못하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이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유엔에 담긴 인류애를 향한 영원한 동반자 정신이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지난 1년간 인권 분야에서 국제사회의 큰 이목을 끈 사안의 하나는 바로 북한 인권문제입니다. 작년에 발표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는 북한 인권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이어 유엔 인권이사회와 총회의 결의채택뿐만 아니라 안보리에서도 논의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북한이 이러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귀를 기울여서 인권 개선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대표단 여러분, 저는 작년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 단절의 상징인 DMZ에 평화의 꿈을 만들어 나가는 공간인 세계생태평화공원을 건설할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DMZ 지뢰도발 사건이 보여준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가 한 순간에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직면한 엄연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남북한은 고위급 접촉을 통해 8.25 합의를 이루어냈고, 이제 신뢰와 협력이라는 선순환으로 가는 분기점에 서게 됐습니다. 그 새로운 선순환의 동력은 남북한이 8.25 합의를 잘 이행해 나가면서 화해와 협력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을 실천해 나가는데 있습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가 정치·군사적 이유로 더 이상 외면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8.25 합의에 따라 당국간 대화와 다양한 교류를 통해 민족 동질성 회복의 길로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의장님과 사무총장님, 그리고 각국 대표 여러분, 며칠 후인 10월 3일은 독일 국민들이 통일을 맞이한 지 2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저는 유엔이 1948년 대한민국의 탄생을 축복해 주었던 것처럼, 통일된 한반도를 전 세계가 축하해 주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간절히 꿈꾸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냉전의 잔재인 한반도 분단 70년의 역사를 끝내는 것은 곧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에서는 기차로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유라시아 친선특급이란 철도여행이 있었습니다. 참여한 사람들은 큰 감동과 감격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철로는 굳게 닫혀 있어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 길을 활짝 열어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 수 있도록 유엔의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평화통일을 이룬 한반도는 핵무기가 없고 인권이 보장되는 번영된 민주국가가 될 것입니다. 또한, 통일 한반도는 지구촌 평화의 상징이자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동북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70년 전 유엔 창설자들이 꿈꾸었던 평화와 인간 존엄의 이상이 한반도에서 통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유엔과 모든 평화 애호국들이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대한민국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위대한 여정에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커버스토리] ‘NY’에 쏠린 세계의 ‘눈’

    [커버스토리] ‘NY’에 쏠린 세계의 ‘눈’

    193개 회원국 중 160여개국 정상 직접 참석,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별 연설,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복귀하는 쿠바 지도자…. ●푸틴, 오바마·아베 등과 회담 25~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릴 ‘유엔총회 및 개발정상회의’의 면면이다. 리수용 외무상을 참석시킨 북한을 비롯한 30여개국을 제외하면 회원국 정상 대부분이 모이다 보니 기후변화와 같은 총회 의제에 더해 정상들 간 별도 회동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총회에서 ‘별들의 화합’이 기대된다면 양자회담에선 ‘별들의 전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나 난민 문제 같은 국가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현안이 산적한 데다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사태 등 이웃한 국가 간 대결을 초래한 이슈가 공전 중이기 때문이다. 껄끄러운 관계를 개선하는 데 적극적인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2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회동하기로 했다고 타스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회동은 지난해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 뒤 두 번째다. 푸틴 대통령은 같은 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도 정상회담을 한다. 나란히 선 정상의 사진만으로 세인의 시선을 끌 만한 회동은 대부분 무산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54년 만에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이뤄 낸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을 다시 만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과 이란, 인도와 파키스탄 정상이 함께 서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중·일 정상 간 만남에 대해서는 공식 회담 일정 없이 ‘기획성 조우’ 가능성만 제기되고 있다. ●朴대통령, 아베와 조우 가능성도 한편 취임 후 세 번째 유엔 본부 방문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전용기 편으로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출발하기에 앞서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위배되는 도발 행동을 강행한다면 분명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나 4차 핵실험 등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전후로 예상되는 무력 도발을 억지하는 데 정상 외교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대통령은 북한에 핵개발 기술을 전수했던 파키스탄의 나와즈 샤리프 총리와 방미 중 양자회담을 할 계획이다. 뉴욕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서울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콜롬비아 반세기 내전 종식…교황, 또 분쟁의 중재자였다

    콜롬비아 반세기 내전 종식…교황, 또 분쟁의 중재자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장 기간 지속해 온 전쟁인 콜롬비아 내전이 반세기 만에 종식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교황 쿠바 방문 때 “평화 협상 실패 안 된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좌익 반군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는 23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에서 만나 내년 3월까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합의했다고 AP 등이 보도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FARC는 2개월 이내에 무장을 완전히 해제하기로 약속했다. 3년 가까이 끌어온 평화 협상이 결실을 맺은 것은 핵심 쟁점인 내전 범죄자 처벌에 관해 양측이 합의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동안 FARC는 내전 종식 후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면 전쟁을 끝낼 수 없다고 버텼다. 양측은 과도기적 성격의 특별 평화 재판소를 설치해 단순 반란죄의 경우 노역형 또는 사회봉사 명령 등으로 처벌을 경감해 주기로 했다. 민간인 납치, 아동 강제징집, 성폭력 등의 중대 범죄는 사면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내전 범죄자 처벌 관련 양측 극적 합의 외신들은 이번 합의와 관련해 반세기 동안 이어진 내전이 완전히 종식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반겼지만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산토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역사적인 진전”이라고 축하했다. 반면 콜롬비아 내 보수 강경파를 대표하는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은 “강력한 처벌이 없으면 폭력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반군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비판했다.한편 이번 합의가 나오는 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숨은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평화 협상 기간 중 협상 장소인 쿠바를 방문한 교황은 지난 20일 아바나에서 “콜롬비아의 평화 협상이 실패로 끝나선 안 된다”며 “더욱 확실한 양보가 있어야 한다”고 양측 협상팀을 압박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기후 변화가 낳은 또 다른 비극, 난민

    오는 25~28일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기후변화와 더불어 난민 위기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이 겪는 난민 사태를 논의할 때 전쟁 등 폭력행위뿐 아니라 기후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학자들의 경고를 국제사회가 뒤늦게 받아들인 셈이다. 2차 대전 이후 최악이라는 난민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2011년 촉발된 시리아 내전이지만 더 근본에는 기후변화가 자리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리처드 시거 교수는 지난 3월 발표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기후변화와 시리아 최근 가뭄의 시사점’이라는 논문에서 난민 사태의 원흉이 기후변화라고 결론을 내렸다. 농경과 인류문명의 주요 발상지로서 시리아가 속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에덴동산이 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곳이었으나, 2007~2010년 닥친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불모지가 됐다.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시로 대거 몰려들었으며, 시리아 국민의 40%가량인 760만명이 고향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시리아에서 가뭄이 정치 불안의 촉매로 작용했다”며 “인간이 기후 체계를 교란한 게 내전의 가능성을 2∼3배 이상 높인 것으로 관측된다”고 지적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노먼 마이어스 교수는 10년 전 ‘환경난민’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환경 난민은 가뭄 등 환경적 요인이나 이에 파생되는 인구폭발, 내전 등으로 실향한 이들을 말한다. 그는 ‘환경 난민은 시급한 안보문제’라는 2005년 5월 논문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난민이 2억명에 달할 것”이라며 “이 시대 인류의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어스 교수는 “난민은 환경 때문에 발생하지만 수많은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를 부를 수 있다”며 “바로 소요나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내전, 폭력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는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환경난민의 시대’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주요 의제로 등장할 예정이다. 한편 유럽연합(EU)의 난민 대책이 이번 주 고비를 맞는다. 난민 수용 방안을 둘러싸고 유럽 각국이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22일 EU 내무장관 회의, 23일 EU 정상회의가 잇따라 열린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내년 난민 수용 규모를 8만 5000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독일을 방문 중인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은 “2017년 (난민 수용 규모로) 1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피아노 불타자 희망도 사라져…” ‘시리아 피아노맨’ 끝내 난민으로

    “피아노 불타자 희망도 사라져…” ‘시리아 피아노맨’ 끝내 난민으로

    5년째 이어진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에서 꿋꿋하게 희망을 연주해 세계를 감동시켰던 일명 ‘시리아 피아노맨’이 결국 고국을 등졌다. AFP통신은 20일(현지시간) 시리아 피아노맨으로 알려진 아이함 아흐마드(27)가 독일행 난민으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아흐마드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정착한 야르무크의 길거리에서 피아노를 놓고 노래와 연주를 해 유명해졌다. 그가 어린이들과 함께 ‘내 형제여, 야르무크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라는 곡을 부른 동영상은 유튜브 등에 올라 난민의 참상을 알리는 등 큰 반향을 낳았다. 난민 캠프에서 3년간 배고픔과 전쟁의 공포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가 난민 대열에 오른 결정적 계기는 유일한 위안이던 피아노가 불타 없어지면서다. 지난 4월 야르무크는 수니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인 알누스라전선의 격전장이 됐으며, 두 조직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요해 음악을 금지했다. 이들을 피해 피아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자 트럭을 타고 이동하던 그는 테러세력의 검문에 걸렸고, 자신의 눈앞에서 피아노가 불타 없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흐마드는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여서 (피아노가 불타는 것은)친구의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도착하기까지 1500㎞에 이르는 아흐마드의 여정은 험난했다. 곳곳에서 주검을 마주하고, 온종일 끼니를 때우지 못한 날이 숱했다. 다른 난민 70명과 그리스행 작은 보트를 나눠 타려고 그 또한 밀입국 브로커에게 1250달러의 돈을 지불했다. 처자식을 시리아에 두고 홀로 독일행을 택한 그는 돈을 벌어 가족들을 데려오는 것이 당장 목표다. 연주를 향한 꿈도 여전하다. 그는 AFP에 “유명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고 싶다”며 “전 세계를 순회하며 시리아 난민들의 고통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日자위대 해외서 무기 사용 현실화

    일본 자위대가 해외에서 무기를 사용하며 다른 나라 부대를 경호하는 집단자위권 행사가 현실화하게 됐다. 일본 방위성은 수년째 내전을 겪는 아프리카 남수단에 파견되는 자위대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임무에 ‘출동 경호’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공영방송 NHK가 20일 보도했다. 출동 경호는 자위대가 긴급사태가 발생한 지역으로 출동해 무기를 사용하며 제3국 부대를 경호하는 임무다. 방위성은 오는 12월 교체 투입될 남수단 PKO 부대에 대해 출동 경호 관련 훈련을 실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방위성은 이를 위해 자위대가 활동할 지리적 범위와 휴대 가능한 무기 종류, 사용 방법 등을 임무별로 정한 ‘부대 행동 기준’을 수정하고 있다. 안보 법제가 국회에서 강행 처리되자마자 자위대가 새 법에 따른 해외 임무 확대에 나선 것이다. 자위대의 PKO 활동을 규정한 종전 ‘PKO 협력법’은 제3국 군이나 민간단체를 경호하기 위해 자위대가 현장으로 출동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안보 관련 법령 제·개정으로 현장 출동과 무력 사용이 가능하게 됐다. 자위대는 오는 12월 사이타마현의 항공기지에서 자위대 창설 이후 처음으로 해외에 억류된 일본인 구출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이는 육·해·공 자위대 수백명이 함께하는 통합 훈련으로, 육상 자위대의 대(對)테러 부대인 특수작전군 등으로 편성하는 ‘중앙 실시간 타격부대’도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카타니 겐 방위상은 자위대 운용과 관련해 “새 안보 법제에 입각한 검토에 들어갔다”며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비, 훈련 등을 포함해 확실한 형태로 자위대를 파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여기자에 공격당한 시리아 축구감독 가족의 수난사

    여기자에 공격당한 시리아 축구감독 가족의 수난사

    헝가리 여기자 페트라 라슬로의 공격에 넘어졌던 난민이 시리아의 유명 구단 축구감독 출신 오사마 압둘 모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내전으로 얼룩져야 했던 그의 과거가 재조명되고 있다. 중동 현지언론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오사마의 아들 모하나드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통해 그 가족들이 겪어온 수난을 상세히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버지 오사마가 헝가리 기자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모습을 보며 아들 모하나드(19)는 무력감과 좌절을 느껴야만 했다. 한때 시리아 도시 데이르에조르에 연고를 둔 유명 축구구단의 감독을 맡았던 아버지가 이런 신세에 처하기까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시리아 데이르에조르 시에서 살던 오사마 가족은 정부군이 도시를 폭격함에 따라 수도인 다마스쿠스로 피난했다. 그러나 아버지 오사마는 고향을 떠나지 못했고 대신 2주에 한 번씩 가족들을 찾아와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피난길에 오르기 전 정부군에 의해 총상을 입었던 아들 모하나드는 다마스쿠스에서 치료를 받았고, 그가 완치되자 가족들은 다시 도시를 떠나 이번에는 국경을 넘어 터키로 향했다. 이 시점까지도 아버지는 고향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도시가 이슬람국가(IS)에 침공 당하자 결국 모든 것을 버린 채 터키로 넘어와 가족들과 재회했다. 터키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가족들은 고향보다 높은 물가에 허덕였고 아버지 오사마는 일거리를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맏이 모하나드와 두 동생 모하메드(17), 자이드(7)는 모두 최소한의 교육은커녕 생존을 위협당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맨 처음 터키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둘째 모하메드였다. 8개월 전 그는 이탈리아를 경유해 독일 땅을 밟는데 성공했다. 이후 아버지는 모하나드와 어머니를 터키에 둔 채 자이드를 데리고 모하메드의 뒤를 따랐다. 한시라도 빨리 막내 아들에게 안정적 삶을 돌려주고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부자는 세 번의 시도 끝에 그리스에 입국했으며 그 다음 마케도니아를 거쳐 헝가리 접경국가인 세르비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국경을 넘으려던 중 헝가리 여기자에게 공격당한 이번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아들 모하나드는 "왜 헝가리 여기자가 아버지와 막내에게 그러한 적개심과 증오를 표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면서 "기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독재가 몸은 다치게 했을지언정 혼은 해치지 못했다" 면서 "나 또한 이민자들에게 기회를 약속하는 독일을 찾아 배움을 이어갈 예정" 이라고 덧붙였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대모스크 크레인 붕괴로 107명 사망… ‘내우외환’ 사우디

    이슬람 성지순례(하지)를 10여일 앞둔 1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대모스크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107명이 숨지고 238명이 다쳤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순례자 압사 사고 방지를 위한 모스크 확장 공사 현장에서 크레인이 강풍에 쓰러지며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불필요한 토목공사”라는 비판이 힘을 얻으며 지역 종주국인 사우디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 리더십에 타격이 가해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12일 확산된 사고 순간 영상을 보면 대사원을 둘러싼 수십대의 크레인 중 한 대가 초속 23m의 강풍을 동반한 폭우에 5초 만에 무너졌다. 이슬람 대예배(주마)가 있어 사고 당일 오후 5시 10분쯤 모스크에 운집해 있던 인파는 크레인과 건물 파편을 피하지 못했다. 파키스탄, 인도, 이집트, 이란 등 다국적 사상자가 발생했다. 살만 국왕은 사고 이튿날 붕괴 현장과 병원을 찾아 “사고 원인과 메카 복구계획을 조속히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사우디 당국을 향한 비난이 멈추지 않고 있다고 CNN 등은 평가했다.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모스크 확장을 주도한 장본인이 사우디 왕가였기 때문이다. 살만 국왕의 선왕은 2012년 대모스크 규모를 40만㎡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이듬해 공사에 착수했다. 120만여명이던 대모스크 수용 능력은 2013년 1단계 공사 뒤 165만명으로 늘었고 올해 220만명으로 늘 예정이었다. 현지 언론인 알리야드는 “성지순례 기간에 맞춰 공사를 끝내려고 강풍 예보에도 불구하고 안전조치 없이 강행하다 사고를 냈다”고 비판했다. 두바이처럼 메카를 ‘마천루 도시’로 변신시키려던 계획도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알자지라는 “카바(메카 중심의 검은 돌)에 경배하러 왔다가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메카를 보며 사우디가 경건함까지 불도저로 밀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밝힌 한 순례객의 인터뷰를 전했다. 메카를 기반으로 한 이슬람 문화유산 조사위원회 설립자인 이르판 알알라위는 “개발 욕구 때문에 사우디 정부가 문화유산 보호와 안전에 무신경하다”고 말했다. 메카에서는 1990년 1426명, 1994년 270명, 1997년 340명, 1998년 180명, 2006년 360명이 압사했다. 대규모 인명 사고가 날 때마다 이란 등 경쟁국들은 “사우디에 순례객 관리 능력이 없다”며 사우디의 종교적 리더십을 깎아내려 왔다. 저유가와 예멘 내전 장기화로 경제적·군사적 리더십에 상처가 커진 상황에서 크레인 붕괴 사고는 사우디의 종교적 리더십마저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헝가리 여기자에 공격당한 축구감독 가족의 수난사

    헝가리 여기자에 공격당한 축구감독 가족의 수난사

    헝가리 여기자 페트라 라슬로의 공격에 넘어졌던 난민이 시리아의 유명 구단 축구감독 출신 오사마 압둘 모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내전으로 얼룩져야 했던 그의 과거가 재조명되고 있다. 중동 현지언론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오사마의 아들 모하나드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통해 그 가족들이 겪어온 수난을 상세히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버지 오사마가 헝가리 기자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모습을 보며 아들 모하나드(19)는 무력감과 좌절을 느껴야만 했다. 한때 시리아 도시 데이르에조르에 연고를 둔 유명 축구구단의 감독을 맡았던 아버지가 이런 신세에 처하기까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시리아 데이르에조르 시에서 살던 오사마 가족은 정부군이 도시를 폭격함에 따라 수도인 다마스쿠스로 피난했다. 그러나 아버지 오사마는 고향을 떠나지 못했고 대신 2주에 한 번씩 가족들을 찾아와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피난길에 오르기 전 정부군에 의해 총상을 입었던 아들 모하나드는 다마스쿠스에서 치료를 받았고, 그가 완치되자 가족들은 다시 도시를 떠나 이번에는 국경을 넘어 터키로 향했다. 이 시점까지도 아버지는 고향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도시가 이슬람국가(IS)에 침공 당하자 결국 모든 것을 버린 채 터키로 넘어와 가족들과 재회했다. 터키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가족들은 고향보다 높은 물가에 허덕였고 아버지 오사마는 일거리를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맏이 모하나드와 두 동생 모하메드(17), 자이드(7)는 모두 최소한의 교육은커녕 생존을 위협당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맨 처음 터키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둘째 모하메드였다. 8개월 전 그는 이탈리아를 경유해 독일 땅을 밟는데 성공했다. 이후 아버지는 모하나드와 어머니를 터키에 둔 채 자이드를 데리고 모하메드의 뒤를 따랐다. 한시라도 빨리 막내 아들에게 안정적 삶을 돌려주고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부자는 세 번의 시도 끝에 그리스에 입국했으며 그 다음 마케도니아를 거쳐 헝가리 접경국가인 세르비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국경을 넘으려던 중 헝가리 여기자에게 공격당한 이번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아들 모하나드는 "왜 헝가리 여기자가 아버지와 막내에게 그러한 적개심과 증오를 표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면서 "기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독재가 몸은 다치게 했을지언정 혼은 해치지 못했다" 면서 "나 또한 이민자들에게 기회를 약속하는 독일을 찾아 배움을 이어갈 예정" 이라고 덧붙였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지구를 보다] 중동 최악의 ‘모래폭풍’ 우주에서도 관측

    [지구를 보다] 중동 최악의 ‘모래폭풍’ 우주에서도 관측

    중동에 불어닥친 역사상 최악의 모래 폭풍이 우주에서도 관측됐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관측위성 '테라'가 촬영한 마치 태풍처럼 중동을 강타한 모래 폭풍 모습을 공개했다. 뿌연 모래와 먼지를 안고 소용돌이 치듯 불어닥치는 이 모래 폭풍은 중동 전역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거대한 크기다. 사진 상에도 드러나듯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페르시아만을 휘감은 모래폭풍 위용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 우주에서 보면 진귀한 광경일지 모르겠으나 이 모래폭풍이 가져온 피해는 크다. 중동 현지언론에 따르면 전례없이 찾아온 늦여름 모래폭풍으로 10여명 이상이 숨지고 수천여명이 호흡곤란 등으로 치료 중이다. 또한 모래 폭풍 영향권 내 일부 공항은 기상악화로 비행기 이착륙의 지장을 받고 있으며 수많은 학교 또한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다. 특히 내전으로 고통 중인 시리아 또한 포성이 일부 멈춘 상태다. 알자지라 등 현지언론은 "시리아 반정부군이 머물고 있는 북부 도시 등에 대한 공습도 멈춘 상태" 라면서 "70여년 만의 찾아온 최악의 모래폭풍으로 시리아 난민촌은 모래를 뒤덮였다"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5000달러 들고 20일 사투… 생지옥 넘어 ‘생존의 땅’으로

    [단독] [커버스토리] 5000달러 들고 20일 사투… 생지옥 넘어 ‘생존의 땅’으로

    수년째 내전으로 황폐화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는 젊은이들에게서 꿈을 앗아갔다. 끊임없는 포탄 공방으로 매주 수십 명이 죽어 나갔다. 불과 수㎞ 밖에선 정부군과 이슬람국가(IS)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근 야무크 난민촌에 장티푸스가 발생해 수십 명이 스러져 갔다. 다마스쿠스에서 북동쪽으로 20㎞ 떨어진 소도시 두마에 살던 수헤일(23)도 매일 악몽을 겪었다. 그는 “참수와 드럼 폭탄 투하가 일상화된 이곳에서 오폭으로 무고한 시민 250여명이 한꺼번에 죽는 것을 보고 탈출을 결심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10일(현지시간) 털어놨다. 이곳에선 2년 전에도 정부군의 폭격으로 1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마음을 다잡자 일은 쉽게 풀렸다. 외아들과의 생이별을 반대하던 어머니는 정부군에 강제 징집당했다가 목숨을 잃은 아들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선 마음을 돌렸다. 그의 친구 3명은 IS와 격전을 치른 팔미라와 데라에서 잇따라 전사했다. 수헤일은 “외아들이라 징집을 면제받은 상태였지만 탈출하기 전날까지도 시리아 정부가 ‘조국을 구하라’며 자원입대를 독촉했다”고 말했다. 비디오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매달 315달러(약 37만원)의 월급을 아껴 모았다. 여기에 차를 판 돈과 부모로부터 받은 자금을 합해 5000달러(약 592만원) 가까운 여비를 마련했다. 지난달 시리아를 탈출해 최근 독일 뮌헨에 들어온 수헤일의 탈출 과정을 재구성했다. 그는 지난달 수백㎞를 걸어서 서쪽 레바논 국경을 넘었다. 무더위와 군경의 눈을 피해 낮에 숨어 지내다 밤에 걷고 또 걸었다. 레바논으로 넘어와 베이루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이즈미르로 갔다. 항공료는 300달러(약 36만원)가량 들었다. 이른바 ‘돈 있는’ 난민이 택하는 전형적인 루트다. 그러나 이곳에서부터 다른 난민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과 두 다리에 의지했다. 터키의 대표적 휴양지인 에게해의 이즈미르에 도착한 그는 고무보트에 의지해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으로 향했다.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참변을 당한 바로 그 코스다. 이때 고무보트를 운용하는 브로커에게 1000유로(약 134만원) 넘는 돈을 줬다. ‘딩기’로 불리는 고무보트는 원래 관광용이었지만 난민이 몰리면서 그리스 밀입국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4인용 고무보트에 12명이 탔다. 그는 승선비를 현금으로 선불로 줬다고 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올 국내 난민 신청자 2669명… 출입국장서 90명 신청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대규모 난민이 몰려드는 일이 거의 없다. 3면이 바다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2013년 7월부터 난민법(6조)을 만들어 공항이나 항만 등의 출입국장에서 긴급하게 발생하는 난민 신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의 이용률은 매우 저조하다. 11일 법무부에 따르면 올 1~7월 출입국장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은 90명으로 전체 난민 신청자(2669명)의 3.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일단 국내에 들어온 뒤 일반 출입국사무소에서 난민 신청을 한다. 법무부는 난민 신청자 대다수가 항공기를 이용해 입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을 경유해서 온다. 우리나라 난민신청자의 특징은 ‘생계형’이 다수라는 점이다. 올해는 전체 신청자의 41.6%인 1111명이 불법체류 상태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왔다가 난민을 신청한 경우도 572명(27.4%)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법무부는 난민 심사를 좀더 엄격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엔 이집트에서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12명을 모집해 1인당 5000~1만 달러를 챙긴 ‘난민 브로커’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다. 난민법은 난민 인정 사유를 국적·인종·종교·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로 본국에서 박해를 받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1994년부터 올 7월 말까지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시리아인은 760여명이다. 이 중 85%가 내전 이후 3년간 집중됐다. 이 가운데 3명만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570여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강제 송환도 되지 않고 취업도 가능하지만 난민과 달리 기초생활·교육·직업훈련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심사에 불복해 법원으로 가서 판단을 구하더라도 결정이 잘 바뀌지 않는다. 법원이 난민법상 ‘박해’를 ‘생명·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난민 소녀에게 피자 전하는 독일 아이 장면’ 화제

    ‘난민 소녀에게 피자 전하는 독일 아이 장면’ 화제

    여성 카메라기자가 난민에게 발길질을 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센 가운데 이와 대조적으로 독일에 도착한 한 난민 여자아이에게 같은 또래 독일 여자아이가 한 조각의 피자를 전하는 장면이 감동의 화제를 몰고 있다. 미국 NBC 방송의 어산드라 비나그라드 기자는 9일(현지 시간) 독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독일 국민이 환영하는 장면이 담긴 여러 짧은 동영상을 언론사 트위터에 올리며 이를 보도했다. 지난 7일, 촬영된 이 동영상 중에는 독일의 한 여자아이가 인형을 손에 쥔 채 막 독일 땅을 밟은 한 난민 여자아이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피자 한 조각을 전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담겨 있다. 비나드라드 기자가 '독일 아이의 감동적인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이 동영상은 순식간에 50여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네티즌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려 일으키고 있다. 한편, 비교적 포용적인 난민 정책을 펴고 있는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에도 분산 수용 등 난민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주말 하루에도 약 1만여 명에 달하는 난민들이 독일로 들어오는 등 올 한 해에만 주로 시리아 내전을 피해 망명길에 나선 약 80만 명의 난민들이 독일로 몰려올 것으로 보인다고 NBC 방송은 전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의 난민 포용 정책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전망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독일로 들어온 난민 여자아이에게 피자를 전하고 있는 독일 여자아이 (해당 페이스북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입장 들어보니?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입장 들어보니?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시리아 난민 문제에 대해 소극적 반응을 보여온 미국이 국제사회의 압박이 고조되자 시리아 난민 수용을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상황이 점차 악화되면서 미국이 이러한 짐을 견뎌내고 있는 나라들을(유럽국가) 돕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우선 요르단과 터키 등 시리아 주변국 난민캠프에 대한 식량과 주택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미국 본토로 난민을 추가 수용하는 방안도 고심 중이다. 앞서 미국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후 1500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이에 더해 내년 중으로 8000 명의 난민을 추가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지만 국제 인권단체를 중심으로는 미국이 추가로 난민 수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난민 사태의 직접적인 당사국인 유럽 7개국 정상들에게 전화를 걸어 난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유럽 각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국내외 난민 현실] 국내 난민 522명… 난민 보호율 18%

    올해 7월 말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522명이며 인도적 체류자 876명을 포함하면 국내 난민 보호율은 18.1%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이집트인이 568명으로 가장 많았고 내전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 출신은 204명으로 파키스탄인(386명)과 종교적 이유로 한국의 문을 두드린 중국인(360명)에 이어 네 번째다. 2013년 난민법을 제정한 정부는 난민 신청자를 심사해 기초생활과 사회적응교육 등이 보장되는 난민과 난민의 혜택을 지원하지는 않지만 국내 체류를 허가하는 인도적 체류자로 분류해 관리한다. 법무부는 심사를 통해 고국에서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인도적 체류자는 사유가 해결될 때까지 국내 취업 활동도 가능하다. 법무부가 난민 업무를 시작한 1994년부터 올해 7월까지 1만 2208명이 정부에 난민 인정을 신청했다. 외국인이 정부에 난민 신청을 하면 6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고 확정될 때까지 6개월씩 연장할 수 있다. 난민 신청 6개월 이후부터는 취업이 가능하며 난민 신청일로부터 6개월 동안은 월 40만원 수준의 정부 지원금이 제공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이민자 아들이었다” 왜?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이민자 아들이었다” 왜?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시리아 난민 문제에 대해 소극적 반응을 보여온 미국이 국제사회의 압박이 고조되자 시리아 난민 수용을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상황이 점차 악화되면서 미국이 이러한 짐을 견뎌내고 있는 나라들을(유럽국가) 돕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우선 요르단과 터키 등 시리아 주변국 난민캠프에 대한 식량과 주택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미국 본토로 난민을 추가 수용하는 방안도 고심 중이다. 앞서 미국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후 1500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이에 더해 내년 중으로 8000 명의 난민을 추가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지만 국제 인권단체를 중심으로는 미국이 추가로 난민 수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난민 사태의 직접적인 당사국인 유럽 7개국 정상들에게 전화를 걸어 난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유럽 각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 가운데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이었다”는 내용이 다시금 이목을 끌고 있다.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에 전세계가 애도하던 지난 2일 스위스의 IT 기업가 데이비드 갤브레이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사진을 올리고 이 같은 한 줄 설명을 달았다.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사진 = 서울신문DB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국내외 난민 현실] 불안정한 신분 탓 단순 노무직에만 취업… ‘빈곤의 늪’ 허덕

    [국내외 난민 현실] 불안정한 신분 탓 단순 노무직에만 취업… ‘빈곤의 늪’ 허덕

    “난민으로 인정되면 한국에 남고 싶어요. 그러나 끝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다른 나라로 가야겠죠.” 아자르 아흐마드(30·가명)는 시리아 출신의 ‘인도적 체류자’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한 후 2013년 3월 고향 알레포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왔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진 못했다. 1951년 제정된 유엔난민 협약에 전쟁과 내전은 난민 인정 조건으로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건 분명하지만 타국에 난민이 급격히 유입될 것을 우려해 국제적으로 전쟁과 내전은 제외됐다. 다만 각 국가는 ‘완충지대’인 인도적 체류 제도를 두고 있으며 아흐마드는 한국으로부터 인도적 체류 허가만 받았다. 시리아 내전이 5년째에 접어들면서 지난 7월까지 시리아인 713명이 난민 신청을 했으나 난민 인정은 고작 3명에 그쳤다. 문제는 그에게 허락된 것이 ‘체류할 수 있는 권리’와 ‘취업할 수 있는 권리’뿐이라는 점이다. 취업 역시 ‘단순 노무직’만 가능하다. 난민 인정자와 달리 지역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 의무교육이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가 받은 비자(기타·G-1)는 1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그는 시리아에서 한국 기업과 함께 중고차 사업을 벌여 자동차 정비 기술이 있지만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아흐마드는 8일 “비자를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 탓에 자동차 정비업체 사장들이 우리를 고용하기 꺼려 한다”며 “한국어를 못하는 것도 취업을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흐마드에게 빈곤은 현실이다. 운 좋게 자동차 정비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나오면 일당 5만~10만원 벌이를 한다. 하지만 매일 일이 있지는 않다. 그가 한 달에 버는 돈은 백만원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 정부로부터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후 인천에 살던 아흐마드는 월세 50만원도 부담하기가 어려워 올 1월 강원도 춘천으로 옮겼다. 그는 “춘천은 집값이 저렴해 매달 10만원씩만 내고 있다”며 “고향인 알레포와 비슷한 느낌이어서 전쟁이 빨리 끝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전 세계를 비탄에 빠지게 한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처럼 생존을 위해 한국에 온 인도적 체류자 876명의 현실은 아흐마드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 한국에 입국했다가 내전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서지 오리에(42·코트디부아르·가명)는 자녀 교육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오리에는 약 10년 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자리잡았다. 생계는 그럭저럭 꾸려 가고 있지만 아들이 3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교육비 부담에 걱정이 많다. 다행히 인도적 체류자에게도 의무교육이 제공돼 아들이 학교에 다닐 수는 있지만 방과후학습은 교육비 부담으로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난민 인정자들에겐 자녀 학비 지원 제도가 있지만 오리에는 인도적 체류자이기에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또 아들이 성장해 고등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현실도 그를 힘들게 하는 미래다. 오리에는 “난민 인정자에겐 직업교육 등도 시켜 주지만 나는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4년 한국에 온 후 시리아 내전 발발로 발목이 잡힌 아함 다니아(32·가명)는 10년 넘게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 인도적 체류자 신분이기에 가족에 대한 비자 발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신혜인 공보관은 “인도적 체류를 허가하는 제도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인도적 체류자 역시 주거와 취업, 의료, 교육, 가족 결합 등 기본적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목숨 건 3500㎞… 세상에서 가장 먼 탈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5일 밤(현지시간) 오랜 여정 끝에 독일 뮌헨역에 도착한 난민들은 “독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아랍어 및 영어 메시지와 박수를 받고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따뜻한 음식과 음료 외에 아이들에겐 곰인형 같은 푸짐한 선물까지 안겼다. 이들은 서툰 영어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일부는 목숨을 건 ‘엑소더스’가 독일에서 마무리된다는 벅찬 감동에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터뜨렸다. 이들 대다수는 내전이 격화된 시리아 등 중동에서 건너왔다. 터키 국경을 통해 그리스와 발칸 국가들로 넘어온 뒤 경찰의 봉쇄를 뚫고 다시 헝가리까지 이동해 서유럽행 기차를 기다렸다. 시리아의 정든 고향을 등지고 차량과 배편 등을 이용해 최소 3500㎞를 목숨을 걸고 건넜다. 시리아 세 살배기 난민의 비극이 발생한 지 사흘 만인 이날 에게해의 그리스 아가토니시 섬에서 2개월 된 시리아 영아가 익사했다. 한 난민 여성이 물에 빠져 위중한 상태의 아들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섬에 의료진이 없어 결국 숨지는 등 난민의 비극이 계속됐다. 교통수단이 차단된 난민들은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켈레티역에서 독일행 기차를 기다리던 난민 500여명은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175㎞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어서라도 가겠다”던 행렬은 주변 수용소 난민까지 가세하면서 단박에 수천명 규모로 불었다. 대혼란을 우려한 헝가리 정부는 뒤늦게 버스편을 제공했다. 이날 새벽 3시쯤 난민을 실은 첫 버스가 오스트리아 국경에 도착했다. 헝가리에서 출발한 ‘난민 버스’들은 이날 하루 1만명 가까운 난민을 실어날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난민들을 제한 없이 수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한편 이집트 해군이 지중해에서 난민 220여명이 탑승한 세 척의 어선을 나포했다고 밝혔다고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 등이 6일 보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무능한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판치는 IS… 길어지는 난민 행렬

    난민 발원지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무능으로 난민의 탈출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랜 내전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세력 확장으로 알아사드 정권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IS가 시리아의 요충 도로인 M5 고속도로의 35㎞ 인근까지 진격했다며 IS가 이곳을 점령한다면 수백만 난민이 탈출을 시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11년 3월 이후 4년째 계속되는 시리아 내전과 IS 세력 확장이라는 문제는 결국 유럽 난민 사태로 연결된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시리아에 있는 IS를 공습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다음달 초에 열릴 의회투표에서 시리아 내의 IS를 공중폭격하는 방안을 승인받기 위해 노동당 의원들을 설득할 계획을 세웠다고 로이터 등이 6일 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 4일 국방부 회의에서 시리아 공습 문제를 논의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을 7일 발표할 예정이다. 시리아에 대해 러시아가 군사 지원을 본격화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미국이 우려를 표명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5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 개입은 갈등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무고한 생명의 손실을 키우고 난민의 탈출을 가속화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시리아 인권네트워크’는 올 들어 7월까지 IS에 의한 시리아인 사망자는 1131명이지만 정부군과 반군에 의한 사망자는 7894명에 달한다고 밝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내전 4년 동안 25만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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