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 제동 걸리나
경기회복의 속도를 놓고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 연초 정부를 중심으로 제시됐던 빠른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신통찮은 실물경제 지표들에 의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희망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정작 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내수지표들은 좀체 상승곡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 1월 도소매업 생산이 1년 2개월만에 가장 크게 줄었고, 지난달 자동차 내수판매는 6년 4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나라 밖에서도 악재들이 돌출하고 있다. 저환율, 고유가에 더해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값이 급락하면서 교역조건이 나빠지고 있다.
●소매업 생산 21개월만의 최대폭 감소
4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서비스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대표적 내수지표인 소매업 생산은 전년동월 대비 5.8%나 줄어들었다. 지난 2003년 4월(-6.2%) 이후 21개월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도매업도 1.9% 감소,7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이에따라 1월 도소매업 합계는 3.3% 줄면서 2003년 11월 이후 14개월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1월에 설 연휴가 포함된 데 따른 상대적 감소세로, 당초 예상치보다는 나은 결과”라고 밝혔다. 재경부는 올 1∼2월 잠정집계에서는 백화점 매출이 1% 중반, 할인점 매출이 4% 중반 수준으로 증가하는 등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1월 중 서비스업 전체로는 0.7%가 증가하면서 지난해 12월(0.6%) 이후 2개월째 증가세를 보였다. 도소매업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숙박·음식점업(2.8%), 운수업(5.4%), 통신업(5.2%), 의료업(4.2%) 등이 선전한 결과다.
●2월 자동차판매 6년4개월만에 최저
올 1월 호조를 보였던 자동차 판매도 ‘반짝 성장세’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의 집계 결과, 올 2월 자동차 내수판매는 지난해 2월보다 19.9% 감소한 7만 2000대로 1998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2월 설 연휴에 따른 영업일수 감소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1월과 2월을 합해 비교한 결과에서도 올해 15만 3000대로 지난해 1∼2월보다 8.4%가 적었다.1∼2월 영업일당 판매대수도 3328대로 2002년 5138대,2003년 5092대는 물론이고 지난해 3577대에 비해서도 7.5%가 감소했다.
●실질 소비능력 되살아나야
전문가들은 내수경기가 바닥을 친 것은 분명하지만 실질적인 내수회복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박사는 “내수경기가 바닥에서 횡보하고 있는 수준이며 회복세를 보여주는 일부 지표도 고소득층과 20대 등 일부 계층에 국한된 것”이라고 말했다.LG투자증권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는 “경기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제기됐지만 관건은 가계 소비 여력의 회복 여부”라면서 “개인소득이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아직 없는 상태여서 하반기는 돼야 소비 확대가 가시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가격하락 등 나라밖 악재 돌출
최근 들어 대표 수출품목인 반도체 가격의 급락세가 뚜렷해지면서 수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256메가 DDR램의 가격은 지난해 말 3.67달러에서 지난 2일 현재 2.84달러로 불과 두달새 22.6%가 떨어졌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수출증가율의 둔화와 경상수지 흑자폭의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환율의 추가하락 가능성과 국제유가의 고공행진도 지속적으로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 이승우 경제정책국장은 “우리 경제가 수출, 내수, 금융, 심리 등 여러부문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관찰되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는 모습이지만 고유가, 환율 등 대외적인 경제불안 요인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면서 “이는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경기회복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율하락이 유가상승의 타격을 상쇄하는 등 긍정적인 대목에 대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이날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국내 휘발유 가격이 ℓ당 3원가량 하락하는 등 가격안정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