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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사장교 출신 공직 새 파워엘리트 인맥 부상

    학사장교 출신 공직 새 파워엘리트 인맥 부상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김덕중 국세청장.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정부기관의 수장으로 임명된 이들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학사장교 출신이라는 점이다. 동문 규모가 4만 7000여명에 이르는 학사장교 인맥이 이번 정부에서 새로운 파워엘리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육군학사장교총동문회는 지난 25일 ‘2013년 명품 학사장교 교류의 장’이라는 동문행사를 했다. 과거 동문행사 참석자는 200명 내외였지만 올해에는 3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최근 학사장교 출신들이 공직의 새 그룹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1기 출신인 유 장관은 1981년 학사장교제도의 탄생을 함께했다. 그의 1기 동기로는 현 총동문회장인 김동완 새누리당 의원과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 이종배 충주시장 등이 있다. 충남도청 행정부시장을 지낸 김 의원과 행정안전부 2차관을 지낸 이 시장은 유 장관과 같은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함께 입문했다. 유 장관은 “당시 총무처에서 행정고시 출신 장교를 선발했던 것이 지원동기였다”면서 “장교로서 지휘통솔 경험이 이후 공직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9, 10대 학사장교총동문회장을 지냈다. 이번 정부에서는 국세청의 학사장교 인맥이 눈에 띈다. 김덕중 국세청장 이외에도 이전환 국세청 차장, 이종호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이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 이들은 모두 학사장교 7기이다. 김 청장은 “학사장교로 복무하며 리더십과 소통능력을 배웠고 내성적인 성격도 변했다”는 소회를 대내외적으로 밝힌 바 있다. 청와대에서는 오균 국정과제비서관과 박동훈 행정자치비서관 등이 학사장교 출신이다. 그 외 공직에서는 김준동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과 김낙회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장, 정재근 안행부 지방행정실장, 김의도 통일부 남북출입사무소장 등이 있다. 현직 단체장 가운데는 이 시장 외에도 이성 서울 구로구청장과 전귀권 양천구청장 권한대행 등이 있다. 학사장교는 학군장교(ROTC) 등 다른 장교임관 제도와 달리 학사 이상의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매해 6월에 입교해 16주의 양성교육을 받고 복무기간은 36개월이다. 올해 임관하는 58기는 다음 달 28일 입교한다. 학사장교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의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인다는 점이다. 한 기수에 속한 연령대의 폭이 넓고 대학졸업자, 석·박사, 유학파 등 출신 분야가 다양하다. 박명수 학사장교총동문회 사무총장은 “학사장교 출신들의 다양성이 단결을 강조하는 군 문화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정한조의 짐작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내성에 두고 온 상단들이 울진 포구로 회정하는 길인 너삼밭재에서 버려진 차인꾼의 시신을 거두었다. 십이령이라고 함은 쇠치재, 바릿재, 샛재, 너삼밭재, 너불한재, 작은한나무재, 넓재, 코치비재, 곧은재, 막고개재, 살피재, 모래재를 일컫는 것인데, 담꾼의 시신이 발견된 너삼밭재는 울진 포구 경내인 샛재와 저진터재 사이에 있었다. 그 고개가 넓재에 비하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울진 포구 소금 상단이나 어물 상단들이 밥자리로 자주 이용하는 계곡이 자리잡고 있어 그들 사이에서는 밥자리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내왕 길손들이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에 보란 듯이 시신을 유기한 것은 소금 상단을 위협하려는 악행임을 삼척동자라도 알 만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런 참혹한 일을 대담하게 연달아 저지르는 까닭은 천봉삼을 구명한 사람들이 십이령을 넘나드는 소금 상단이었다는 것을 염탐한 결과이기도 했다. 화적들에게 대중없이 덧들이다가 칼 맞은 차인꾼은 평소에는 “그 사람 똥 안 싸면 부처”라는 별호를 들을 정도로 무골호인이었다. 언문도 모르는 판무식이었지만, 누가 시키지 않으면 이틀 사흘이 지나도 구린 입을 떼지 않을 정도로 과묵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의와 마주쳤을 때는 잠시도 참지 못하는 병통이 있어 애꿎은 목숨을 속절없이 날려버린 것이었다. 울진 포구 소금 상단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내력은 오래전부터였으나 태생은 안동 부중 내성 쪽 사람이었다. 내성과 울진 포구의 경계에 있는 선달산과 옥석산 중로에 있는 박달령 아래 생달이라는 궁벽한 마을이었다. 알고 보니 아직 엄지머리 미장가여서 슬하에 거두는 식솔은 없었으나, 학같이 늙은 일흔 노모를 지성껏 봉양하는 효자였다. 정한조가 앞장서서 장례비를 갹출하여 보란 듯이 장례를 치르고, 생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박달령의 노루막이에 양지볕을 골라 묻어 주었다. 부의전은 반수 30냥, 접장 15냥, 공원들은 5냥, 일반 부상들은 3냥씩 거두었으니,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무덤에서는 박달령을 오가는 길손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바라다보였다. 행중에서 장례를 엄중하게 치르는 것에 불평도 없지 않았으나, 정한조의 생각은 달랐다. 명줄을 버린 차인꾼은 원상들과 달리 하잘것없는 삯전으로 연명하는 신세였지만, 소년 때부터 소금장수 상단과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고락을 같이한 세월이 10년이 넘었으므로 흉허물 없는 동배간이나 진배없었다. 뿐만 아니라, 소굴에 있는 놈들도 장례를 모양 있게 치르는지 섬거적에 둘둘 말아 시구문에다 버리는지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었다. 차인꾼이 남기고 떠난 노모는 치매가 있어 아들이 저승길로 들었는지 출타 중인지 깨닫지 못했다. 가세조차 구차하여 삼순구식이 어려운 형편이라, 늙은이가 열명길에 오를 때까지 상단에서 생계를 돌보기로 하였다. 적당들이 여러 총중이 손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시신을 버려 위협으로 삼았다면, 장례를 떡 벌어지게 치른 것도 저들에게 위협일 수 있었다. 장례를 치른 뒤 정한조는 못다 한 얘기가 있어 천봉삼과 마주앉았다. “내성 임소의 반수님을 뵈러 갈 것입니다. 우리의 피가 뜨겁고 세력이 다부진들 부아통을 터뜨리고 대중없이 대처했다간 필경 작폐를 당하리다. 반수님을 뵙고 통문을 돌리는 것도 침착하게 잠행으로 조처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가 따를 것입니다. 통문을 돌리는 일은 적당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하겠지요. 형세가 고약하게 되었소만 노형이 보건대, 도대체 저들의 수효가 얼마나 되었소?” “얼추 70, 80여명이 소굴을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만 수효를 딱히 가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눈대중일 뿐이지요. 패거리 중에는 농투성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무뢰배, 타짜꾼이며 소매치기, 들치기, 날치기로 연명하던 놈들도 끼어 있고, 심지어 도부꾼 행세하던 놈들도 있어 모이면 적당이고 헤치면 양민이었지요. 함경도, 충청도, 경상도 할 것 없이 여러 고을에서 흘러든 유민들이 대부분입디다.” “와주 노릇 하는 수괴는 만나보았소?” “먼빛으로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놈이었소, 용모단자(容貌單子)를 그릴 수 있겠소?” “평소 상복 차림에 방갓을 쓴 채로 몸을 숙이고 다니다 보니, 그의 얼굴을 아는 이가 별로 없습니다. 시생은 몇 번 면대한 일이 있어서 기억은 합니다만, 적실하진 않습니다.” “안다는 얘기요, 모른다는 얘기요? 면대를 했다면 얼추 외양은 꿰고 있을 것 아니오.” “마흔 중반으로 보였는데 험상궂게 생기지도 않았고, 허우대도 그다지 훤칠하지 않았지요. 글줄 깨나 읽었는지 식견이 제법입디다. 떨거지들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계략을 모두 그놈이 통섭하는 눈치였습니다.” “방갓 쓰고 다니는 놈들이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지.”
  • [씨줄날줄] 진드기의 습격/정기홍 논설위원

    미국 국제정책센터 연구원인 셀리그 해리슨은 그의 저서 ‘코리안 엔드게임’에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봄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진드기와 벼룩, 거미가 강원도 철원과 김화, 북한의 평양지역에 대량 살포됐으며 이로 인해 흑사병과 탄저병이 크게 번졌다”고 적고 있다. 1951부터 4년간 AP통신 남아시아특파원을 지내기도 한 그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등 아시아의 잘 알려지지 않은 비사(秘史)를 다루고 있다. 베트남 전쟁 때 초목을 고사시키는 맹독성 고엽제가 대량 살포된 것처럼 진드기가 전쟁터에 뿌려졌다는 게 놀랍다. 진드기 이야기는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의 일화에도 나온다. 그는 서울의 쌀가게에 취직을 하기 전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할 때 잠을 자다가 벽을 타고 천장에 올라온 빈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하찮은 미물도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못할 일이 무언가”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유명한 ‘빈대의 교훈’이다. 이후 각색이 된 것인지, 사실인지는 몰라도 이 이야기는 ‘빈대와 진드기의 교훈’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진드기와 관련된 속담도 적지 않다. ‘진드기와 아주까리 맞부딪친 격’(서로 엇비슷한 것이 맞붙어 옥신각신한다는 뜻), ‘진드기가 아주까리 흉보듯’(보잘 것 없는 주제에 남의 흉을 본다는 뜻), ‘진드기가 황소 불알 잘라먹듯’(자기보다 큰 존재의 급소를 쳐서 이긴다는 뜻) …. 유독 아주까리 비유가 많은 점이 흥미롭다. 소의 배에 찰싹 달라 붙어 피를 빨아먹어 통통해진 진드기는 아주까리씨와 외양이 닮았다. ‘진드기의 습격’으로 전국이 야단이다. 농번기에 밭일을 하던 노령자 두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진드기에 물려 사망하고 의심 환자가 잇따르고 있다. 진드기가 옮기는 쓰쓰가무시 환자도 지난해 8600여명이나 돼 10년 사이 4배가 증가했다고 한다. 벌레의 공격이 시작된 것인가. 세계 곳곳에서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메뚜기와 벌떼, 해파리 등의 습격도 잦아졌다. 지구의 기온변화(주로 온난화)로 인해 벌레들의 이동이 잦아졌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면서 내성도 강해진 반면 인간은 면역력이 약해진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종류가 900개나 된다는 진드기는 대부분 자연 생태계에 필요한 존재다. 인간에게도 유익하다. 이번 바이러스 진드기 사태의 경우도 치사율이 감기 수준인 6% 정도여서 건강한 사람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차분하게 대응하면 된다. 필요 이상으로 진드기 공포를 조장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한 가지 수상한 것은 있습니다. 저들이 장례를 치러주지도 않을 것인데, 어째서 시신을 거두어갔는지 그리고 원상과 차인꾼을 분별하기가 어렵지 않았을 텐데 어찌 원상들은 욕보이지 않고 차인꾼들만 죽이고 또 협박하여 소굴로 데려갔을까요. 그 내막을 짐작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신을 가차없이 버리고 갔을 터인데요.” “원상을 욕보이면, 필경 임소 전체가 들고일어나 보복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고, 차인꾼을 둔소로 데려가면 고분고분해서 저들과 짝패되기 십상이라는 생각을 가졌겠지. 아니면 세작이나 척후로 써먹을 속내가 있었던지. 그리고 가근방 내왕길 지리에 밝은 사람이 필요했을 테지. 시신을 거두어간 것은 부상들이 통문을 돌려 도회를 열고, 장례를 시작으로 하여 임소의 부상들이 결속을 다지고 둔소를 소탕하려는 계기로 삼을까 걱정해서일 것이오. 그들 소굴에 책사도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이 그럴듯하군.” “아서, 그게 아닐 수도 있네. 일면식도 없는 도둑의 속내를 앉아 있던 우리가 어찌 알겠나. 함부로 예단하는 게 아닐세.”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어허, 그놈들 귀신 잡아먹고 도깨비 똥 눌 놈들이로군.” “그런데 행수님은 왜 말씀이 없습니까.” “……“ 좌중의 시선이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었던 도감 정한조에게 쏠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꿀 먹은 벙어리였다. 어떤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마디하라고 짓조르고 드는 것을 생트집으로만 알아서 정한조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고 고단했던 일행들은 새벽잠으로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깨어보니 정한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숨도 자지 않고 곽개천을 밖으로 조용히 불러내어 먼저 말래 도방으로 가겠다고 통기하고 한밤중에 겁도 없이 단신으로 말래로 떠난 것이었다. 야밤에 혼자서 십이령을 넘는다는 것은 여간한 간담이 아니었다. 화적은 고사하고 짐승의 밥이 되기 꼭 알맞았다. 곽개천이 동행하겠다고 하였으나 끝끝내 내치며 듣지 않았다. 도대체 이렇게 서두르는 까닭이 어디 있느냐고 아득바득 따지고 들었으나 천근 같은 입을 열지 않았다. 개호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리는 음산한 밤중에 내성을 발행한 그는 열불나게 길을 줄이기 시작했다. 끼니를 꼬박 굶은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짐승과 동행도 해가면서 이틀 만에 샛재 비석거리에 당도하였다. 불각시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화들짝 놀라 눈을 하얗게 뜨는 월천댁에게 물어보았으나 자취를 감추었다는 포병객이 찾아왔었다는 귀띔은 없었다. 당장은 실망스러웠으나, 열 일을 제쳐두고 그 위인의 행방을 쫓아야 했다. 근자에 일어난 수상쩍은 사태와 적변의 시단이 모두 궐자의 행적과 상당한 관계를 가졌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저러한 사정을 알아챌 리 없는 월천댁은 딴청을 피웠다. 봉당 쪽마루에 걸터앉아 초연히 먼산바라기를 하는 정한조에게 바싹 다가앉으며 월천댁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 구월이 말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기운도 탈진해서 눈앞에 보이는 것이 모두 희미한 사람에게 또 무슨 넋두리를 하려고?” 월천댁은 정주간 안쪽에 있는 골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제법 침통한 표정으로, “글쎄, 도감 어른도 아시다시피 저년이 이팔방년이 내일모레 아닙니까.”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간혹 봉노 앞을 지나다니는 도감 어른 수하 중에 한 사람을 보니까. 허우대도 튼실하고 붙임성도 있어 보입디다. 성깔도 녹록지 않아 보이던데. 새앙머리한 처자 나이 이팔이라면 명치끝까지 차오른 게지요. 그래서 이 에미에게는 저 꼴같잖은 소생이 노상 끌탕이랍니다. 숫막이라는 것이 길가에 나와 앉은 하찮은 거처가 아닙니까. 삽짝도 없어 문만 벌컥 열면 바로 안방이지요. 어느 떠돌이 비렁뱅이가 한밤중에 칼 물고 들이닥쳐 저년 앙가슴 내질러 자빠뜨리고, 자던 입에 콩가루 털어넣듯 막무가내로 육허기나 채우고 튀어버릴까 해서 자다가도 문득 깨어나면 가슴이 두근거려 두 번 다시 잠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그로써 절개가 이지러지고 나면, 갈 곳은 대처의 색주가뿐이지요. 그런 오욕을 당하면 색주가에서 살꽃이나 파는 처량한 신세밖에 될 게 없습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헤어진 지 불과 이틀 만에 다시 만난 조기출 일행의 행색은 꿰다 만 산적같이 꾀죄죄하게 육탈이 된 것은 물론이었고, 모두 쥐 뜯어먹은 송곳 자루같이 남루했다. 꿩 구워 먹은 자리에는 재라도 남아 있지만, 그들은 육탈은 물론이고 손에 쥔 것이라곤 흙먼지뿐이었다. “이런 작변이 있나. 어쩌다가 이토록 몰골 숭한 꼴을 당하였소? 이틀 전만 하여도 허우대들 멀쩡하지 않았소.” “적변을 당했습니다.” 먼저 잠들었던 일행이 나중 온 일행들을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아랫목으로 잡아끌어 앉히고 물을 떠다 먹이며 야단을 떨었으나 봉노 안의 부산스러움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아니었다. 나중 돌아온 일행의 수효를 눈대중으로 점고하던 정한조가 조기출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일행 중에 두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 “이런 낭패가 있나. 두 사람 목숨이 창졸지간에 모두 거덜났더란 말이오?”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적당의 칼을 맞고 숨을 거뒀습니다. 시신조차 산적들이 거두어 갔습니다. 한 사람은 혼비백산하여 산비알로 튀었는데 어디로 줄행랑을 놓았는지 도무지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잠시 찾아 헤매긴 하였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구들장이 꺼져라 하고 한숨 소리가 터져나왔다. “도대체 어느 어름에서 적변을 당했다는 것입니까?” “내성 경내를 금방 벗어나 상주길로 접어들어 반나절도 못 간 백주 대로였습니다. 해가 나절가웃이나 기울었을까요. 그때라면, 백주 대낮이나 다름없지요.” “백주 대낮인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몽땅 털렸더란 말이오?” “복물은 물론이고 장두전이며 전내기 짚신까지. 육승포 외골 전대에 감추었던 150냥을 몽땅 털리고 사람 목숨까지 거덜내고 말았습니다. 전대를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간 적당들이 배를 가르고 창자라도 꺼내갈 기세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저희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신표하며 물미장까지 빼앗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50냥이면, 한양 변두리에 가서도 기와집 두 채 값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소용없을 성부른 물미장까지?” “예.” 조기출 일행은 샛재 숫막에서 정한조 일행과 같은 날 발행했지만, 복물짐이 비교적 단출했던 탓으로 내성에는 하루 먼저 당도하였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길을 줄일 욕심으로 내성에서 사처를 잡지 않고 내처 상주길로 접어들기로 하였다. 해가 질 때쯤이면 맞춤한 숫막을 찾아들어 하룻밤을 유숙할 작정이었다. 내리고 있는 진눈깨비가 언제 그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진눈깨비가 내리면 습기 먹은 건어물이나 미역 짐이 더욱 무거워지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어 길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었다. 열불 나게 길을 줄이는 중에 중화참이 지나고 나자, 극성스럽던 진눈깨비가 씻은 듯이 긋고 난 다음 촘촘한 봄 햇살이 자드락 가득히 넘쳐나고 있었다. 일행의 발걸음도 햇살과 함께 한결 가벼워지고 농담까지 나누며 산코숭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일행이 산코숭이를 돌아가려는 그 참에 난데없는 일행과 만나게 되었다.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스무 살 안팎의 남색짜리 새색시와 코에서 흙냄새가 풍기는 늙은이였다. 보아하니 꼬락서니는 뭣하나 명색 신행길이 분명했다. 대낮이라 하나 허리가 매화나무 등걸처럼 휜 늙은 노인네 한 사람과 나이 불과해서 이팔로 입에서 젖비린내조차 가시지 못한 어린 각시가 작반하여 행로가 한적한 산중길을 더듬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조기출 일행이 자청하여 작반을 청하게 되었다. 늙은이도 퍽이나 다행스러웠던지 일행을 향하여 행수가 어느 분이신지 과람하다며 몇 번이나 허리를 조아려 체면을 차렸다. 너무나 한적한 터에 내려쪼이는 햇살 아래로 일행을 할끔할끔 눈짓하며 장금장금 걸음을 떼어놓는 각시에게 모두 시선을 빼앗기게 되었고, 쓰개치마 사이로 보이는 용모를 훔쳐보자 하니, 산중 아낙네치고는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밉상이 아니었다. 일행은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신행길을 바싹 따라붙어 농을 걸기도 하였다. “허릿매가 잘록하여 색탐깨나 하게 생겼는걸.” 신부는 일행들이 언죽번죽 걸어오는 농염한 희롱에도 이렇다 할 대꾸가 없었다. 그러나 싫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아서 산골 계집치고는 때를 벗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허, 저 엉덩이 보게나. 교태와 고혹함이 가히 현종을 모신 양귀비일세.” “예끼, 이 사람. 하찮은 산골 각시를 감히 어따 빗대나.” “양기가 명치끝까지 차올랐으니, 추물인들 서시로 보일 수밖에.” 늙은이가 뒤따라야 할 신행길에 난데없는 행상꾼들이 언죽번죽 걸쭉하게 내뱉으며 뒤따르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말래 도방에서 병구완을 받고 있던 그 위인이 끝내 본색을 밝히지 않고 버티더니, 불현듯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네. 의리는 새옹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한다고 배워왔었는데, 궐자가 그 의리를 헌신짝 버리듯 배신하고 말았다네.” “부러진 다리가 쾌복이 되지 않았을 텐데요?” “그런 휘진 몸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것도 불길한 징조일뿐더러, 오랜 숙객*으로 서로 흉허물 없이 지내는 우리 상단 일행을 색주가에 데리고 가서 창피를 안긴 윤기호의 속내 하며, 운수납자 행세하는 무뢰배가 자취를 감춘 병자를 뒤쫓고 있다는 소식도 서로 얼개가 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내막인 것 같기도 해서 머릿속이 뒤숭숭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 도방으로 오는 도중에 숫막 쪽 마루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오랫동안 생각을 해보았으나 전혀 짚이는 게 없었네.” “그 포병객은 만기가 남아서 차인들과 같이 병구완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만기가 아직 황구를 벗어나지 못해서 좀 해망쩍은 구석이 있지 않은가. 내가 여러 번 알아듣도록 일러두었지만, 몰래 자취를 감추려고 기회를 엿보는 놈에겐 당할 재간이 없었겠지.” “도감 어른께선 만기를 너무 두둔하는 것 같습니다.” “만기도 원상인데 우리가 역성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사고무친한 아이를 누가 위해주겠는가. 아니래도 은(銀)을 주고 사는 것이 초년고생이라고 내가 떠먹이듯이 달래주었으니, 공연한 트집 잡아서 번거롭게 만들지 말게나.” “윤가를 어떻게 할까요? 못된 소행머리를 가졌다면 이참에 우리와 거래를 끊어버리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윤가의 처신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두부 먹다가 이빨 빠지는 일도 허다하지 않습니까.” 성깔 있는 곽개천의 말에 사뭇 어두운 안색이던 정한조가 가만히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들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닐세. 윤기호로 말하면 명색 내성 장시를 휘어잡고 있다는 포주인이 아닌가. 우리가 궐자와 오랫동안 거래를 트고 자별하게 지내던 인연을 단칼에 무 자르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일세. 그랬다간 또 어떤 환난이 닥칠지 모를 일이 아닌가. 수상한 일일수록 순서에 따르는 법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세. 포주인이 설마 우리를 무단히 야료하려 들었겠나.” “야료가 아니라, 우릴 날탕으로 삼키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도감 어른 말씀처럼 두고만 보다가 나중에 큰 손실을 보고 나서야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손실당할 게 뭐가 있나. 우리가 억매흥정으로 소금 짐을 넘긴 것도 아니고 시게전이든 드팀전이든 행상들을 상종하여 풍속을 어지럽히고 색주가에서 색사나 벌이며 희희낙락한 적도 없지 않은가. 윤가의 사위스러운 속내를 세세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우릴 욕보일 심지를 품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원상의 정도를 지킨다면 함부로 덧들이지는 못할 것이야. 우리들 처신하기 나름일세.” 사달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시름 놓았다 싶었던 일행이 다시 등잔을 끄고 누웠다. 추녀를 스치고 지나는 칼바람 소리는 3월 초입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스산했다. 너무나 을씨년스러워 귀를 막고 싶을 정도였다. 멀리 있는 색주가에서 들려오던 가녀린 소음도 드디어 가라앉아 사위가 고즈넉하여 바람벽을 기어오르는 벌레 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삿자리를 깐 방바닥은 헐벗은 각설이 불알처럼 차가웠으나 눈두덩은 벌써 천근같이 무거웠다. 바로 그때였다. 도방 울바자 너머로 부산하게 내닫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발소리는 도방의 울바자 앞에서 멈추어 섰다. 몇 사람은 벌써 코를 골고 있었으나, 생각이 많았던 정한조는 뜻밖의 발소리에 진작부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밖까지 걸어온 발소리가 멈추고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감 어른. 시생 조기출이올시다.” 벌떡 일어난 정한조가 찌그러진 외짝 바라지를 손으로 쳐서 벌컥 열었다. 어두운 밤빛 속이어서 확연하게 짚여오지 않았으나, 분명 상주와 고령의 저자를 겨냥하고 발행하였던 조기출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떨고 서 있는 조기출의 등뒤에 어슥버슥 서 있는 7, 8명의 일행들 행색 역시 덕장에 매달려 눈보라에 시달리는 동태 꼴이었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명 저고리에 껴입었던 배자하며 단단히 조여매었던 통행전이며 패랭이는 어디로 갔는지 오리무중이었고, 동저고리와 옹구바지 차림으로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사추리에 달린 불알인들 온전했을까. 비 맞은 수탉 꼴이 된 몰골들을 한동안 넋을 빼고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던 정한조가 소스라치며 밖에 서 있는 일행을 봉노 안으로 불러들였다. 찬바람이 봉노 안으로 몰아치는 바람에 잠들었던 일행이 눈이 휘둥그레져 일어나 등잔에 불을 당기느라 난리 법석을 떨었다. “이게 어떤 육시랄 놈들의 소행이오?” *숙객:단골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어둑하게 가라앉았던 하늘에서 음산한 기운이 도는가 하였더니 마침내 솜털처럼 촘촘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눈만 내던 시절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 봄이 가까워진 것이 분명했다. 머지않아 부지깽이만 꽂아도 싹이 난다는 3월이 닥칠 것이다. 봄 사돈 꿈에 볼까 무섭다는 말이 있는 춘궁기가 시작되면 소금값은 더욱 치솟아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일행은 처소에서 가까운 식주인을 찾아 오랜만에 요기를 배불리 하고 도방으로 돌아와 일찌감치 잠자리를 보았다. 따끈한 아랫목에 모두 목침 하나씩을 차지하고 어슥버슥 누웠는데, 문득 배고령의 신세타령이 들려왔다. 뒤통수에 패랭이 얹고 꽁무니에 짚신 차고 한평생을 걸어도 앉아서 쉬어본 적 없네 허기진 뱃구레 움켜쥐고 고개치 넘나들다 물미장 턱에 걸고 먼 산 바래기가 낙일세 검은 머리 흰머리 될 때까지 행역에 시달려 일점 혈육도 없이 이 풍진세상 홀로 떠도네 서발 작대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사고무친 병구완에 은사죽음인들 구완받을 길 없네 봉놋방 부들자리에서 생면부지 사람들과 말뚝잠으로 밤 지새다가 깨어나면 꼭두새벽 오늘도 하염없이 십이령길 고개치 넘나드네 일모도궁에 일숙 청해도 돌아오는 문전박대 꿩의 병아리같이 뛰어들 품속 어디에 없으니 사위스런 이내 속내 누굴 잡고 하소연할까 객리행상에 지쳐도 형단영척(形單影隻) 의지할 데 없는 팔자 부지거처 불구인생(不久人生) 누구를 허물하리오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며 고해 바다 겪다가 허공에 날리는 먼지같이 저세상으로 가네 고해 바다 헤매다가 저승으로 돌아가네 심사가 뒤숭숭했던 곽개천이 나직하게 타일렀다. “배고령, 남의 어수선한 복장 지르지 말고 그만 자세. 설친 잠이나 벌충하게.” 일행이 부들자리에 코를 박고 막 잠잘 채비를 하는 중에 초저녁에 헤어졌던 정한조가 문을 벌컥 열고 봉노 안으로 들어섰다. 누워 있던 일행이 모두 일어나 등잔에 불을 댕기고 초저녁에 숫막에서 겪었던 살풍경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색주가에서 허튼소리 몇 마디 건넸다가 무뢰배들에게 되우 당했습니다. 자칫 덧들였다간 싸다듬이로 등에 누린내가 나도록 맞을 뻔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정색을 하고 자초지종을 듣고 있던 정한조가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석연치 못한 구석이 있네. 증거는 없으나 임자들이 포주인 농간에 놀아난 것 같군.” 열적은 얼굴로 정한조의 기색을 살피던 박원산(朴元山)이 말했다. “포주인 농간에 놀아나다니요? 그 역시 우리와 똑같이 몰골 숭한 꼴을 당했는데요?” “임자들을 끌어들인 포주인의 저의가 어디 있었는지 지금 당장 내막을 헤아릴 수는 없으나 궐자의 농간이 있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네. 장차 두고 볼 일이지만, 내성은 포주인 윤기호가 주름잡고 놀던 병문이 아닌가. 그런데 임자들은 왜 포주인을 따라 색주가 출입을 하였나? 미련하기 짝이 없는 위인들이란 평판 듣기 딱 알맞게 되었네. 절약이란 바늘로 흙을 떠 담는 일처럼 어렵고, 낭비는 모래밭에 물을 뿌리는 일과 같아 한번 버릇 들면 끝을 모른다 하였네. 모두 자중하게. 그렇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식이 심상치가 않네.” 정한조가 몇 마디 쥐어박자, 좌중은 얼음 속처럼 조용해졌다. 그때 곽개천이 물었다. “무슨 말씀인지요? 또 무슨 사단이 있었습니까?”
  • [씨줄날줄] 세계문화유산 개성/서동철 논설위원

    고려의 수도 개성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확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역사상 어느 왕조의 수도보다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도(古都)가 개성이다. 유네스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보고서를 보면 사실상 개성 시내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대상이 되는 듯하다. ICOMOS가 권장한 명칭은 ‘개성의 기념물과 유적’이라고 한다. 북한의 문화유적으로는 2004년 고구려 고분군에 이은 두번째 등재가 된다.현재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은 ▲경주역사유적지구 ▲석굴암과 불국사 ▲조선왕릉 ▲종묘 ▲창덕궁 등 10곳이다. 삼국시대 이후 세계문화유산을 배출하지 못한 왕조는 백제와 발해만 남는다. 하지만 백제는 ‘공주·부여역사유적’으로, 발해의 상경성은 중국이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COMOS 보고서에 따르면 개성역사유적지구는 12개의 개별 유산으로 이루어졌다. 성곽을 제외하면 ▲만월대와 첨성대 ▲개성 남대문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와 표충사 ▲왕건릉을 비롯한 7개 왕릉 ▲명릉과 공민왕릉이다. 만월대는 궁궐터, 첨성대는 천체관측시설이다. 잘 알려진 대로 선죽교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참살당한 현장이며, 표충사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숭양서원 또한 정몽주의 충절과 서경덕의 덕행을 추모하는 시설이다. 5곳의 성곽 유적은 삼중으로 이루어진 고려의 방어체계를 보여준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나성(城)과 발어참성(勃禦塹城), 내성(內城)이다. 발어참성은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로 궁예의 휘하의 개성 호족이었던 왕륭이 쌓았다. 궁예는 성이 완성된 898년부터 7년 남짓 후삼국의 한 축이었던 태봉의 수도를 철원에서 발어참성으로 옮긴 적도 있다. 왕건이 새 왕조를 개창한 이후 개성은 줄곧 고려의 국도였다. 이후 현종은 거란의 위협에 맞서 1029년 발어참성 외곽에 나성을 쌓았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기 이전 발어참성 내부에 궁성을 보위하는 내성을 구축했다. 고려의 왕도로 강화도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고려는 몽고에 대항하고자 고종 19년(1232)부터 38년 동안 강화를 임시수도로 삼았다. 강화에는 궁궐터와 고종의 무덤인 홍릉을 비롯해 적지 않은 고려시대 유적이 남아 있다. 따라서 개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강화의 고려유적을 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개성과 강화도를 한데 묶은 ‘고려 왕도의 기념물과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남북한이 세계문화유산 공동 등재를 추진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곽개천의 점잖은 언사에 찌그러진 바라지 문을 열었던 궐자가 한순간 머뭇거리는가 하였더니, 내친김이란 듯 걸찍하게 내뱉었다. “이놈 봐라, 대살지게 생겼다 해서 제법 고시랑거리는군. 난장 박살을 내주기 전에 썩 비켜나라, 이놈.” “함자가 뉘신데 언사가 그토록 고약하시오?” “혓바닥을 뽑아버릴 놈들. 보면 몰라서 묻고 있느냐. 눈깔은 뒀다가 동냥을 보냈나, 꽁무니에 박고 지내나. 보아하니 비킬 데 없는 행상꾼들이 분명한데, 언죽번죽 제법 할퀴고 드는군. 정말 회술레를 돌려야 정신을 차리겠나?”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초저녁부터 주찬을 질탕하게 차리고 앉아 술판들 벌이고 있구려.” 점잖게 타이르는 말에 오히려 기분이 상한 궐자가 메줏덩이만 한 주먹을 뭉쳐 내려칠 시늉을 하며, “엇따. 이놈 봐라, 네놈들은 안 처먹어도 배부른 생불이더냐?” “내게 무슨 대단한 도량이나 있는 줄 아시오? 여차하면 발길질도 마다하지 않는 성미니 대중없는 헛소리 집어치우시오. 댁이나 나나 죽고 나면 모두가 여섯 자 아니겠소. 자칫 완력을 뽐내다 보면 평생 신세 망치는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소.” “어허, 기침에 재채기가 겹친다더니. 말본새 한번 피마 씹구멍같이 잘도 실룩거리네. 결기를 자랑만 하지 말고 어디 한번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들어 봐.” 어육지변을 만들겠다고 땅땅 벼르는 중에 곽개천은 냉큼 둘러댈 말구멍을 찾지 못하자, 얼굴이 원숭이 볼기짝이 되어 안절부절이었다. 그는 봉노에 둘러앉은 패거리들의 얼굴에서 문득 살기를 느꼈다. 분명 일손을 놓고 장삿길로 나선 도부꾼들이나, 장시를 배회하며 일손을 찾는 차인꾼들은 아니었다. 장시를 배회하는 무뢰배들이라 하더라도 감히 원상들을 상대하여 그런 막말을 할 수는 없었다. 완력 한 가지로 막 살아가는 부류거나 추쇄당하고 있는 살범이 아니라면, 지난날 포수 생활 할 적에 어디선가 한두 번 마주친 듯한 얼굴도 있었다. 더 이상 대거리를 주고받다간 난리 북새통을 겪을 것이었다. 그때, 윤기호가 곽개천의 괴춤을 잡아끌며 말했다. “걸레는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법, 더 이상 비위짱 사나운 꼴 보기 전에 그만 돌아섭시다. 내성 술청 거리에 색주가가 한두 군데입니까. 내가 업어다 난장 맞힌 꼴이 되었소.” 곽개천 일행이 그들을 상대하여 완력을 겨루기로 한다면 결코 불리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임방을 코앞에 둔 내성에서 분란을 일으킨다면 까닭이야 어디에 있던, 풍속을 어지럽힌 죄로 징치를 당하게 될 것이었다. 속내를 좀더 알고 보면 그 왈짜들 역시 형세가 불리한 곽개천의 사정을 익히 꿰고 있었기에 시비를 걸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한때, 보부상의 우두머리에게 장시의 풍속 단속권을 부여한 적이 있었으나, 스스로 작폐를 저지르는 경우 구성원의 우두머리와 접장을 처벌했었다. 그러나 장시의 질서가 워낙 어지럽게 되자 단속권 자체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무뢰배와 도부꾼들이 물밀듯이 장시로 몰려들어 풍속을 어지럽혀 놓았기 때문이었다. 괴춤을 뒤져보았자, 냄새나고 성가신 불알 두 쪽밖에 가진 것이 없는 왈짜들을 상대로 세력 다툼을 벌인다면 우세 당하는 쪽은 곽개천 일행일 수밖에 없었다. 머쓱해서 술청에서 물러서고 마는데, 잔뜩 기대했던 김청도가 일행의 뒤를 따르며 혼잣소리를 하였다. “검은 구름에 학 지나가듯 잠시 희다 말았군.” 일행의 떨떠름한 기색을 모를 리 없는 윤기호가 냉큼 발명하였다. “행중에 이런 수치가 없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허물하겠습니까. 공연히 본데없는 것들 상종했다가 살풍경한 꼴을 당했습니다. 모두 엄포에 불과하지만 제 불찰이 큽니다.” 배고령이 맞장구쳤다. “모두가 부질없는 짓입니다. 당초부터 떡전을 찾거나 도방에 둘러앉아 막걸리 추렴이나 할 생각을 가졌더라면 그 발칙한 놈들에게 우세는 당하지 않았을 테지요.” “우리 행중에게 색주가 출입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어서 그런 수치를 당한 게야. 그만 도방으로 들자구. 휘진 몸둥이들 이끌고 색주가 전전해 보았자 골병만 깊이 들 뿐이지.” 곽개천이 딱 부러지게 일갈하자 모두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술청 거리를 벗어났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머지않아 돌담으로 둘러친 술청 거리가 나타났다. 명색 색주가라 하지만, 돌담 일색이었다. 돌담은 바람만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봄이 되면 각종 약초 따위가 돌 틈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4월이 되면 그 돌 틈에서 제비꽃*이 움을 튼다. 제비꽃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개미집이 있는데, 제비꽃을 개미들이 번식해 주기 때문이다. 제비꽃 뿌리를 찧어 화농된 상처에 바르고 명주로 싸매주면 증상이 멎는다. 저녁 거미가 내려온 터라, 술청 거리는 벌써 나름대로 분장을 시작하고 있었다. 색주가 돌담에 기대 세운 장대 위의 용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술청마다 등불을 밝혀서 창자가 출출하거나 타향길에 고단한 길손들의 가슴속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여름날이면, 마당에 내다 놓은 살평상에 논다니나 들병이들이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호객도 삼가지 않았지만, 추운 겨울에는 얼어죽을까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빈 봉노에 불만 희미하게 밝혀두었다. “주모오.” 윤기호는 단골인 색주가로 들어서면서 호기 있게 주모를 불렀다. 그러나 평소와 같이 엉덩이를 얄기죽얄기죽 흔들어 대며 내닫는 주모가 냉큼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보아하니 진작부터 봉노를 차지하고 술추렴하는 낯선 패거리들이 있었다. 정주간에는 늙은 중노미 혼자서 국솥에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윤기호는 중노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언성을 높였다. “주모오?” 그제야 정주간으로 난 바라지 문을 살짝 열고 주모가 삐쭘 얼굴을 내밀었다. 주모는 윤기호를 알아보자 냉큼 영색을 짓고 정주간으로 나섰으나 행동거지가 평소처럼 날렵하지 않고 굼떴다. 게다가 봉노에서 술추렴하던 패거리들에게 거웃을 내주고 시시덕거리던 중이었는지 고쟁이 속곳 차림에 맨발이었다. 들병이 둘을 두었는데, 그 논다니들 역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술청에는 너댓 되는 장정 패거리들이 두루거리 술상에 난삽하게 둘러앉아 술추렴들 하고 있었는데, 밖에 서 있는 일행들을 힐끗힐끗 눈짓해가며 주거니 받거니 곤댓짓을 하면서 떠들었다. 단골집을 찾아왔는데도 예상치 못했던 홀대를 당하자, 적잖이 배알이 뒤틀렸던 윤기호는 주모에게 심사 뒤틀린 눈길을 보내며 볼멘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굴러온 패거리들인가?” 공술을 주는 대로 받아마셔 취기가 도도한 주모가 게트림 길게 빼고 난 다음 시큰둥하게 대꾸를 건넸다. “그야 모르지요. 어디 굴러온 개뼈다귀들인지.” 단골인데도 주모의 언행이 느닷없이 상되고 퉁명스러운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윤기호는 소금 도가 포주인으로서 내성 장시에서는 행세깨나 한다는 위인이었고, 그의 수결은 멀리 있는 고령이나 원산의 보부상들 사이에서도 거리낌없이 통용될 정도로 신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윤기호에게 주모가 갑자기 안면을 바꾸고 문전박대를 한다는 것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었다. 소금 상단 일행은 그 연유를 알아챌 수 없었다. 사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디서 굴러온 패거리인지 모르겠다는 주모의 말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정주간 바라지 문이 부서져라 버럭 열리면서 한 사내가 나보란 듯이 문 밖으로 썩 나섰다. 입성은 뜯다 만 꿩같이 스산했으나 눈은 얼음에 빠진 쇠 눈깔처럼 번들거리는 궐자가 다부지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염병에 까마귀 소리라더니, 어느 개자식이 찾아와 남의 속을 불쑥 질러?” 험악한 목자를 보자하니 대중없이 덧들였다간 장정 다리 하나쯤은 일같잖게 작신 분질러놓을 것 같았다. 얼떨결에 윤기호를 뒤따라온 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일행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배고령이 옆에 선 길세만의 잔허리를 꾹 찌르며 속삭였다. “냉큼 비켜나세.” 윤기호를 따라온 소금 상단 일행 중에는 결기 있는 곽개천이 끼어 있었다. 그는 열린 바라지 문 사이로 봉노 안의 풍경을 문득 엿보았다. 일견해서 행랑것이나 장물림들로 보이긴 했다. 그러나 같은 원상들이라면 이쪽에서 다소 범절에 어긋난 행동거지를 보였더라도 다짜고짜 욕지거리로 대거리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맨상투 바람인 그들 중에 댓개비로 만든 패랭이(平凉子)를 쓰고 있거나 이마에 패랭이를 쓴 자국을 가진 자도 없었다. 분명 원상들은 아니었다. 굴러온 뜨내기임은 분명했는데, 그 본색을 얼른 가늠하기 어려웠다. 곽개천은 그들의 속내를 떠보기로 하고 한마디 던졌다. “큰소리로 주모를 찾은 우리들도 결례가 있었지만, 대뜸 험한 말로 대거리할 것은 아니지 않소.” *제비꽃:오랑캐꽃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행중의 최상주가 입아귀를 비쭉하고 나서 면박을 주었다. “성깔하구선, 쳐다보는 데 체면 깎이나?” “모두 나만 쳐다보는 까닭이 나변에 있나?” “이 방안에 있는 행중 식구들 중에 살송곳 박는 솜씨가 출중하다는 뜻인데, 성깔부터 벌컥하면 어떡하나. 임자는 성질 올곧지 못한 수탉처럼 걸핏하면 핏대를 곤두세우고 대드나?” “어허, 이런 봉패가 있나. 여러 동무끼리 두둔하지는 못할망정 여러 총중이 보는 면전에서 창피를 주면 지렁이도 꿈틀하는 법이야.” “연잎에 물방울 붙는 것을 본 적이 없듯이 자기 행실이 옳으면 감히 욕을 들을까.” 정한조가 나서 오금을 박아주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행중이 싸잡아 부아를 돋우었다면, 방구석에 있던 목침이 날아가는 변고가 벌어질 뻔했다. 그런데 윤기호의 말이 언중유골이라고 생각했던 최상주가 지나간 얘기를 다시 되돌려 곱씹고 나섰다. “아니, 우리가 한강 떼배 사공들보다 주머니가 가볍다는 말씀은 듣기 거북하네요. 물길과 산길을 내왕하며 연명하는 게 다를 뿐 가가예문이라고 염낭쌈지 무겁고 가벼운 것은 견주어 보아야 아는 것 아닙니까. 한강 떼배 사공 놈들 울진의 백두대간 금강송을 몰래 벌목해 모리를 챙긴다는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 알고 있습니까?” 정한조에게 한주먹 쥐어박혔던 윤기호가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사과하였다. “아이고. 그렇구말구요. 제 주둥이가 가벼워 창졸간에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혜량하십시오.” 금세 안색을 바꾸어 영색을 짓는 윤기호를 바라보며 껄걸 웃는 중에 정한조가 말했다. “술청거리 색주가에 주등이 켜지기 전에 물상객주들 찾아가서 겨냥한 물화부터 흥정하게. 전대들 단단히 조여 매고 들치기, 날치기, 소매치기는 고려 적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일세. 아니면 임소의 반수하며 나한테 혼쭐이 날 줄 알게들.” 볼일이 있다며 행수가 먼저 자리를 뜨자, 행중 몇이 뒤따라 일어서고 몇 사람이 남았다. 어딘가 미련이 남아 냉큼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눈치챈 윤기호가 금방 안색을 바꾸고 남은 사람들에게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추었다. “울진 포구로 회정하자면, 썰렁한 접소에서 3, 4일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아니겠소. 행수가 회정길을 서두른다고 댁들도 덩달아 학춤을 출 수야 없지 않겠소. 유기전이니 시게전이니, 포목전이니 원매할 물건들이 도가에 쌓여 있지만, 흥정이란 시일을 두고 밀고 당겨야 길미가 많은 법이란 것을 시생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소. 괜히 서두르다 보면 억매흥정에 무단히 악명 쓰기 십상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인생 산다는 것이 칼 물고 뜀뛰기가 아닙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때에 전 입성으로 행로가 번다한 병문 거리로 나가서 해동갑으로 발서슴해본들 반갑게 맞이하는 일점 혈육인들 있습니까. 모두가 허망할 뿐입니다. 길미에만 눈독들이지 말고 쌓여 있는 행역들도 풀어주어야 맛이지요.” “어디 좋은 데가 있습니까?” “시생이 누굽니까. 이 내성장 병문 거리에서 여립꾼으로 잔뼈가 굵은 처지가 아닙니까.” “포주인 말씀이 그럴싸합니다. 거느린 가솔도 없는 처지에 아득바득 이문을 노려서 어디다 쌓아두겠습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그들은 성애 먹던 소반을 밀치고 약고 꾀바른 윤기호와 함께 어물 도가를 나섰다. 벌써 해는 지고 멀리 바라보이는 산허리에 희미한 저녁 이내가 비단 폭을 두른 듯 치렁치렁하게 걸려 있었다. 윤기호가 먼발치로 선머리에 서고 네 사람은 그 뒤를 따랐다. 도감 정한조가 으름장을 놓았던 터라, 누가 염탐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뒤통수가 쭈뼛거렸으나, 색주가에서 벌어질 짜릿짜릿한 광경들이 뇌리에 떠올라 윤기호를 뒤따라가는 발걸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계집의 사타구니에 콧등을 박아본 지가 까마득한 옛날로만 생각되었다. 따지고 보면 한 달포 전에 길가에서 인심 좋은 들병이를 만나 육허기를 채운 사정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어찌된 셈인지 그것이 까마득하게 먼 옛날에 겪었던 일로만 생각되는 것이었다. 해가 진 후에도 길거리는 심심찮게 오가는 길손들로 분주했다. 좌반전, 어리전, 드팀전, 애막, 황화전들을 벌였던 난전 좌판 어름에는 노인네들과 철부지들이 뒤섞여 횃불을 켜들고 땅에 떨어진 낙곡이나 엽전을 줍자고 야단이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반수님께서도 안녕하신지요?” “예.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었지요.” “이번 파수에는 어떤 물화를 가져갈 요량입니까?” “궂은 날씨에 소금섬을 지고 오느라 행중 모두 뼛골이 어긋날 정도였소. 그래서 우리 행중은 보행객주에 등짐을 내리면 너 나 할 것 없이 정강이를 내놓고 쑥찜질하느라 분주하오. 젊을 땐 얼추 쑥으로 다스린다지만, 나잇살이나 들면 병증이 골수에 사무쳐 기동이 임의롭지 못할 것이오. 그래서 이번 파수에는 피륙을 흥정하든 담배나 곡물을 흥정하든 동무들에게 맡겨 두려 하오. 행중 식구들과 오랫동안 작반하면서 살펴보았소만, 그만하면 나름대로 안목을 가졌고 눈썰미도 출중해서 모두 제 그릇을 가진 터에, 도감이라 해서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사사건건 간섭이 낭자하면 여기저기서 불퉁가지들 내겠지요.” 정한조의 말에 둘러앉았던 동무들 중에 어떤 사람은 빙긋 웃고, 어떤 사람은 떨떠름해서 마뜩잖아하였다. “임방 하직하고 도가로 오는 중에 술청 거리 앞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어디서 논다니들이 떼로 몰려왔는지 예전과 달리 퍽이나 분주하더군.” 정한조가 술청 거리를 지나오면서 받은 뒤틀린 심사를 얼굴에 그대로 꿰고 윤기호를 쏘아보는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반에 놓아 둔 막걸리 한 잔을 정한조에게 낼름 권하며 말했다. “잘 아시다시피 현동 저자나 내성장에는 경상우도 상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송도(松都)나 원산(元山)의 행상이나 심지어 호상(胡商) 들까지 출입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울진 포구 염전에서 온 소금장수 행수 상단의 주머니가 가장 두둑하다는 것을 뜨내기 논다니들이라 할지라도 모를 리 없지요. 떼배들이 숨차게 오르내리는 충청도 목계 갯벌 저자나 고령의 개포 뱃나들에는 삼폐 기생이며 들병이들 수십 명이 떼를 지어서 몰려와 주변에 원진을 치고 있답니다. 한수를 오르내리는 떼꾼들의 엽전 꿰미를 겨냥하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안동부중을 통틀어 울진 포구에서 온 내성 장시 소금 상단만큼 주머니 사정이 두둑한 행중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논다니들은 계집에 주린 상단이 들이닥치면 불난 집 개처럼 날뛰게 되지요.” “귀로 듣기는 좋을지 몰라도 실은 좋지 않은 소문이오. 소금 팔아 길미를 보기는 하지만, 모두 전대에 넣고 다니진 않소.” “모두가 집도 절도 없는 홀아비 신세들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니 포주인이 우리 행중 모두 사타구니라도 뒤져 보았더란 말이오?” “아이구, 아닙니다. 시생이 자발없이 내뱉은 말일 뿐이지요.” “말이란 어 다르고 아 다르다 하지 않았소.” “우리는 전대를 차고 다니지도 않을뿐더러 계집에 주린 사람들도 아니오.” 그 순간, 둘러앉았던 행중의 시선들이 어찌 된 셈인지 일제히 길세만에게 쏠렸다. 눈치를 알아챈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열없어서 입도 뻥긋 못 하고 있던 그가 한참만에 모꺾어 앉으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이런 낭패가 있나. 왜 나를 쳐다들 봐. 내 턱에 개똥이라도 묻었나?”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섣불리 이르기는 뭣하겠으나, 적당을 소탕하는 데 원상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은 비켜날 데 없는 사실이겠습니다. 그러나 모진 놈 곁에 섰다가 날벼락 맞더라고 수하에 거느린 죄 없는 차인꾼이나 보행꾼 들이 애꿎은 까마귀밥이 될까 걱정입니다. 개중에는 처자를 둔 위인들도 없지 않기 때문이지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네. 그들 역시 원상들과 팔자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원상들이 없었다면, 다리품 팔아 생업을 유지할 수 있겠나. 그건 그렇고 임자는 왜 아직 미장가인가? 아직도 맞춤한 아낙을 찾지 못했나?” “반수님의 말씀을 따르다 보니 아직 물색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내 탓이라니? 그 무슨 해괴한 말인가?” “4, 5년 전에 정색하고 하신 말씀 잊으셨습니까? 하루의 화근은 식전에 취한 술이요, 1년의 화근은 발에 끼는 갖신이요, 평생 화근은 성품 고약한 안해라 하지 않았습니까. 계집은 믿을 수가 없으니 집을 떠나갈 때도 행선지를 말하지 말라 하였지 않습니까. 믿을 수 없는 족속을 안해로 맞이할 바에는 엄지머리로 사는 것이 속 편한 일이겠지요.” “어허,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나도 쓸개 빠진 위인이란 소릴 들어도 싸네.” “그 말씀뿐만 아닙니다. 장사를 나갈 때는 나중의 증거를 위하여 행선지를 알리고 관문이나 나루터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수금한 돈은 전대에 넣어 사타구니에다 숨길 일이다. 남에게 위협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로 여행할 때는 일찍 숙박을 정하고 밤에는 절대로 길을 나서지 마라. 잘 때도 속옷을 벗으면 안 된다.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동무들 몰래 갈보집에 출입하지 말 것이며, 남자에게 영색을 지으며 아양하는 소년을 조심하라. 원매자(願賣者)에게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대하며, 험악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마라. 연장자를 존중하고 나이 어린 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마라. 또한 약자를 속이거나 강자에게 굽신거리지도 마라. 강자도 약자도 똑같은 태도로 대하라. 큰 거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상담하고 독단이나 속단으로 하지 마라. 사물에 구애받거나 융통성이 없는 자는 실패한다. 도박꾼이나 한량은 가까이하지 마라. 또한 길가의 논다니들과 수작을 걸고 있는 사람과 마주치더라도 상관하지 마라.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시생은 항상 가슴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사상십요라고, 거기에 있는 말일세.” 반수 권재만을 하직하고 물러나 어물 도가를 찾았더니 공원 곽개천과 바른말 잘하는 배고령, 여색 밝히는 길세만, 결기 있고 면목이 단단한 최상주(崔尙州)가 내성의 어물 도가 포주인 윤기호(尹基鎬)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그들이 10여 년 전부터 숙객으로 거래하는 윤기호는 지난날에는 소금 도가의 여립꾼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아예 도가를 꿰차고 물주 노릇하며 내성장 일경의 길미를 농단(斷)했다. 벌써 흥정이 결단이 되었는지 마침 성애를 먹고 있었다. “도감 어서 오시오.” 윤기호가 염치를 차려 벌떡 일어나 화롯가 자리를 도감에게 내주고 비켜 앉았다. 수하 행중이 바라보는 가운데 예의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울산 포구 소산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랬듯이 소금, 미역 아니면 건어물에 염장품이었다. 그러나 이들 물화가 십이령이나 고초령을 넘지 못하면 경상도 북부 일경의 대다수 고을에서는 짜든 싱겁든 명색 소금 맛을 보기 어렵고, 소금이 좋았기에 울산 포구 건어물도 마찬가지로 천세났다. 안동 상주의 주변 지역에서는 낙동강을 타고 오르는 뱃길을 따라 소금섬들이 올라온다지만, 가뭄이나 홍수가 지면 여축없이 뱃길이 막히기 때문에 수급이 들쭉날쭉하여 종잡을 수가 없었고 소금값도 올랐다 내렸다 널뛰기를 반복하였다. 울진 포구 소금 상단이 대접받게 된 까닭은 날씨가 맑으나 궂으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그들로 말미암아 수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울진산 토염은 고가에 매매되었다. 울진 포구 토염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원매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윤기호는 소금 유통을 농단하면서 구문을 받기도 하였는데, 거개가 소금 한 섬에 닷푼(分)이나 1전(錢)의 구문을 받았으나 그는 대담하게도 한 섬에 2전의 구문을 받았다. 울진산 토염이란 명분 때문이었다. 소금 유통에 대한 주인권(主人權)*이 있었는데, 그 권리가 매매나 상속 혹은 양도되기도 하여 400냥 이상 나가기도 하였다. 윤기호가 노리는 것은 어물 도가의 농단만이 아니었다. 울진 질청의 아전들을 부추겨 염전을 사들이려 한다는 소문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울진 소금 상단이 자신의 농단을 언제부턴가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상단 몰래 잠은도매(潛隱盜賣)를 예사롭게 저질렀다.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장시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행위였다. *주인권(主人權):요사이 권리금
  • [韓·美 정상회담] 52년이 빚은 차이

    중국의 국가 지도자들은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클럽(NPC)에서 연설을 한 전례가 없다. 베테랑 기자들의 모임인 NPC에서 쏟아질 공격적인 질문 공세에 시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 자리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처했다. 1961년 11월 첫 미국 방문에서다. 43세 때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실내에서도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사람을 대하던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잘못 읽어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두 차례나 해야 할만큼 긴장했다. 그럼에도 그는 ‘후진국의 군사 정변’에 우호적일 리 없는 미국 기자들에게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길은 그 당시 NPC에 서는 것 말고는 없었다. 52년 뒤 그의 딸은 굳이 그런 자리를 통해 알려야 할 필요가 없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워싱턴을 찾았다. 미국 공중파TV CBS가 찾아와 인터뷰를 하며 한국 대통령의 입국을 전국에 알리고, 상·하원에서 동시 연설을 할 만큼의 위상을 갖게 됐다. CBS방송은 6일(현지시간) ‘이브닝 뉴스’를 통해 박 대통령의 방미 사실과 인터뷰 내용을 리포트 형식으로 보도하면서 “박 대통령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고 소개했다. 아버지는 외국의 민항기와 군용기를 번갈아 타며 네 번의 기착 끝에 워싱턴에 입성했지만 딸은 전용기 편으로 13시간30분 만에 뉴욕에 도착했다.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파병을 제안하면서 차관을 제공해 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요청을 차갑게 거절했다. 딸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의 회장들을 이끌고 미국을 찾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사절단에 삼성·LG 등 재계 거물이 포함된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보잉사 등 7개 미국 기업들은 3억 8000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뉴욕에서는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악수했다. 이 자리에서 “유엔의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 성장한 만큼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십수명의 한국직원들과 사진도 찍었다. 미국에는 별도로 6·25 참전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남자가 바람핀다면 ‘이것’ 먹여라

    앞으로 자신의 남자가 바람을 피울 조짐이 보인다면 ‘미노사이클린’이란 여드름 치료제를 먹여보는 것은 어떨까. 최근 일본 과학자들이 이 항생제가 남자의 외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와세다대학과 규슈대학 연구진이 남성 98명을 대상으로 미인계 실험을 시행했다. 연구진은 4일 동안 이들 남성을 두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는 미노사이클린을, 나머지 그룹에는 위약을 제공했다. 이어 두 그룹에게 각각 여성 8명의 사진을 보여주고 신뢰도와 매력도를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위약을 마신 그룹은 외모의 매력도와 신뢰도가 비례했지만 미노사이클린을 섭취한 그룹은 평가가 외모에 좌우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이 항생제를 섭취한 그룹은 전체적으로 그 여성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데 신중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남성이 미녀에게 빠지는 것은 매력적인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 “이에 반해 미노사이클린을 섭취한 남성은 미인을 볼 때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 사용된 미노사이클린은 주로 여드름이나 메타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라임병 등의 염증 치료제로 사용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11)두산그룹, 청소년 사진 촬영 성장 프로그램 ‘시간여행자’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11)두산그룹, 청소년 사진 촬영 성장 프로그램 ‘시간여행자’

    “지난 40년 동안 총 75만장의 작품을 찍었는데 이 중 제 마음에 드는 사진은 단 10장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카메라 세상은 선택의 폭이 넓으니까 용기를 잃지 말고 다시 찍고 새로 도전하세요.” 지난여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노을공원에서 열린 ㈜두산의 ‘시간여행자’ 여름방학 캠프에서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사진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열정, 인생 경험담을 털어놨다. 크고 작은 상처 하나씩은 안고 사는 58명의 어린 학생들은 숨을 죽인 채 눈동자도 깜박이지 않고 김씨를 응시했다.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서는 어떤 의지가 엿보일 정도다. 김씨가 “시간여행자를 통해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하자 비로소 우렁찬 박수가 나오며 학생들의 표정이 해맑아졌다. 두산은 사진 촬영을 통해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을 돕는 시간여행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역사의식과 자연환경을 인식할 수 있는 장소에서 갑갑한 현실에 가로막힌 자신의 눈이 아닌 맑고 투명한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꿈을 키울 기회를 주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시간여행자’라는 이름은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지었다. 이 프로그램은 문화 예술적 자질을 지녔으나 가정 형편 탓에 꿈을 키우지 못하는 중학교 2학년생부터 고등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한다. 8개 조로 나뉜 학생들은 5월부터 매주 한 차례씩 총 20회에 걸쳐 방과 후 3~4시간의 사진 교육을 받는다. 전문가로부터 사진 이론과 역사 등 4회에 걸친 이론교육을 받은 뒤 고궁과 박물관, 공원, 골목길, 쓰레기장 등지에서 16회에 걸쳐 실사를 한다. 2박 3일간의 지난 여름방학 캠프에서는 사진작가 김중만씨, 무용가 안은미씨, 신병주 건국대 교수 등이 멘토로 나섰다. 이를 통해 1기생 58명은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2주일 동안 120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처음에는 60명이 참여했으나 2명은 개인사정으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9개월 교육과정의 모든 비용과 3000만원이 드는 전시회 비용은 모두 두산에서 책임진다. 120만원 상당의 디지털카메라는 어린 학생들로선 처음 받는 값비싼 선물이다. 1기생 박초롱(17)양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가난에 쪼들리지만 늘 밝고 명랑하다. 문화 예술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데 박물관이나 공연 관람은 말도 못 꺼낼 처지다. 그런 초롱이에게 카메라 렌즈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해 준 눈이다. 초롱이는 교육을 마친 뒤 최광주 ㈜두산 사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시간여행자 프로그램을 꼭 계속 운영해 주세요. 저와 같은 처지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고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조영만(17)군은 가난한 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중학교 입학 때부터 사진작가의 꿈을 잊은 적이 없다. 하지만 친구들의 휴대전화를 빌려 내장 카메라의 셔터만 눌러봤을 뿐이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주변 사람도 없었다. 영만이는 올해 H미디어고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김진호(16)군은 내성적인 성격에 말수가 적지만 늘 친구를 먼저 생각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다가 불량배를 만나 곤욕을 치르는 경험을 했다. 모멸감을 느끼면서 친구가 상처를 입은 것이 큰 충격이었고 진호의 말수는 더 줄었다. 그러나 카메라 렌즈에 어두운 골목길이 포착되자 눈망울이 반짝였고 기분 나쁜 기억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시간여행자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나영 ㈜두산 관리본부 과장은 “청소년 자살률 1등 국가라는 참담한 현실에서는 자칫 눈에 삐뚤어진 세상만 보일 수 있지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다시 보면 예술의 세계가 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 착안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더욱 보람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건 그렇구… 그 논다니 창병 얻었단 얘기 밑절미 있는 말인가?” “밑절미가 있던 없던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가랑비에 옷 젖더라고 계집질에 눈이 뒤집혀 허둥지둥 하다보면, 머지않은 장래에 창병 얻어 뼈까지 녹아나서 신세 망치는 날이 오지 않겠나. 창병도 창병 나름일세. 양매창(楊梅瘡)*을 얻으면 그게 바로 악창이어서 약도 없어 목숨 하나 일같잖게 거덜낸다네. 하나뿐인 초라한 육신, 낮에는 부담짐 지우고 밤에는 색탐에 부대끼다보면, 몸가축인들 온전할 리 없지. 초개 같은 목숨 진작 잡도리하지 못하면 지레 죽을 수도 있네. 우리네 행상인들 망하고 나면, 탱자처럼 쭈그러들어 대그락대그락하는 불알 두 쪽만 남을 뿐일세.” 길세만은 잡힌 말꼬리를 떼어버릴 궁리가 없었다. 머뭇머뭇하다가 대꾸할 말미를 놓치고 말았다. 속내가 뒤숭숭한 터에 배고령이 한마디 덧붙인다. “언젠가 행수님 말씀이 생각나네… 매화는 엄동설한을 뚫고 피어나기 때문에 그 진한 향기를 자랑할 수 있는 법이라고… 나 같은 무지렁이가 처음엔 무슨 흰소린가 해서 어리둥절했다네. 그런데 임자를 지켜보자니 그 말씀의 속 깊은 뜻을 얼추 깨닫게 되었다네… 얄팍한 길미나 챙기는 임자가 논다니 밑구멍에 찔러주어야 할 해우채는 오죽했겠나… 주책없다 생각 말고 내 말 새겨듣게. 우리 사이 흉허물 없이 지내니까 이런 말 하는 것일세.” 설피를 꺼내 신어야 할 만큼 한대중으로 내리던 눈은 언제부턴가 씻은 듯이 그쳤다. 산중 날씨란 그래서 짐작할 수 없었다. 말래에서 발행했더라면 너삼밭이 이른 중화 자리가 되었겠지만, 샛재에서 발행했으므로 중화 자리는 빛내골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새벽에 진눈깨비를 만나 지체되었으므로 너삼밭재 밥자리에서 중화를 짓기로 하였다. 그곳에는 안면이 낯설지 않은 어물 저자 차인꾼들 대여섯이 새옹을 걸어놓고 이제 막 한술 뜨고 있었다. 밥자리라고 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적막강산이긴 매한가지였다. 중화 먹는 말미에도 땀에 젖은 배자와 짚신 감발을 풀어 계곡 자갈 바닥이며 밭둑 위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그들은 정한조와 조기출 일행 20여 명이 밥자리를 찾아 계곡으로 들이닥치자, 근래에 보기 드물었던 상단의 규모에 기가 질린 나머지 뱀 만난 여치처럼 잽싸게 두렁 위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일행들이 나서서 진정을 시켰다. “동고동락하는 터에 그 무슨 해괴한 짓들이오. 얼른 먹던 중화들 드시오.” 너삼밭재에서 들밥을 먹고 허기를 채웠다면, 빛내골과 넓재까지 계속 내달아 광희골 회룡천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당도해야 했다. 넓재에서 광희골까지는 내리막이어서 길 줄이기가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치비재와 성황당이 있는 밭재 지나서 숙소참인 맷재까지는 내리막보다는 꼬불꼬불한 자드락길에 오르막뿐이었다. 맷재는 십이령 중에서 마지막 고개로 꼽는 곳이기도 했다. 맷재에서 막지고개만 넘어가면, 현동저자와 내성저자의 차인꾼들과 만나 건어물 상대들이 등짐을 줄일 수 있었다. 행중이 맷재에 당도했을 때는 호랑이를 만나는 불상사가 있더라도 더이상은 발짝을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먼길 행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20여 명을 헤아리는 대상대가 함께 걸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나 늦깎이로 상단에 뛰어든 조기출과 같은 사람들은 고단하다 못해 몰골이 파리하고 눈자위가 허옇게 되어 숨을 가다듬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정한조가 측은하여 한마디 불쑥 질렀다. “생선 몇 뭇 팔아 하찮은 길미 챙기겠다고 이 고초를 겪는구려. 나물 먹고 물 마시더라도 차라리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소?” “도감께서는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때로는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없지 않지요. 그러나 행중 식구들에 견모*가 된다 하여도 두 번 다시 죽은 놈 발바닥같이 찬 냉골에 들어앉아 좀먹은 탕건은 쓰고 싶지 않소. 도감 입으로도 괭이 든 비렁뱅이는 없어도 책 든 비렁뱅이는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비 오는 날 똥장군을 등짐 대신 지고 길바닥에서 엎어지고 자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은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양매창(楊梅瘡): 매독 *견모: 놀림가마리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행중에는 객지를 말똥같이 굴러다녀도 떠나온 고향을 꿈에도 잊지 않으려고 배고령(裵高靈), 최상주(崔尙州), 장안동(張安東), 박원산(朴元山), 권영동(權永同)같이 자신의 태생지를 이름으로 부르는 행중도 없지 않았으나, 곽개천만은 소년 시절에 만났던 포수가 지어준 이름으로 행세하였다. 행수와 곽개천이 겨끔내기로 주고받는 말을 행중은 그다지 귀여겨듣지 않고 술추렴에만 이마를 곤두박고 있었다. 귀틀집 풀막 지붕을 핧고 지나는 해질녘의 바람 소리가 울적할수록 뱃속은 더욱 허전하여 숨바꿈으로 술 사발을 돌리고 있었다. 만기가 지어준 새웅밥으로 얼추 끼니를 때운 정한조는 이웃 숫막에 사처 잡은 조기출을 찾아갔다. 그는 아직 선비 시절 때를 벗지 못해서 자리를 잡고 좌정하였다하면 행탁에 넣고 다니는 필사본을 꺼내 읽곤 하였다. 정한조가 쪽문 바라지를 열고 봉노로 들어서자, 그는 끝동이 너덜너덜하게 해진 저고리를 얼른 수습하면서 정한조에게 아랫목을 내주고 한쪽으로 썩 비켜 앉았다. 손위 손아래의 경계를 구분하는 처신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저녁 요기는 하였소?”  “조밥에 소금국으로 얼추 허기증은 모면했습니다. 마땅한 찬반이 없어 쩔쩔매는 늙은 주모를 보다 못한 행중 식구들이 산에 올라가 눈 속을 헤치고 이제 막 움이 돋는 수리취나 참취 같은 나물을 뜯어 삶아 소금물에 찍어먹은 게 고작이었습니다.”  “이번 행로에는 안동, 상주 거쳐서 상무사 임소가 있는 고령까지 갔다가 회정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면 얼추 달포는 걸리겠습니다. 행중이 모두 동행입니까?”  건어물 행상들은 보통 흥부장에서 발행하여 말래를 거쳐 샛재를 지나고 곧은재 아래에 있는 검은돌 마을이나 현동 저자, 그리고 내성장에서 물화를 처분하고 회정하는데 보통 팔구 일이 걸렸다. 그들 행중에는 울진 포구 근처에 가솔을 거느린 행상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대여섯은 현동저자나 내성에서 회정할 것입니다.”  “고령까지 다녀오자면 이래저래 달포가 지나야 할 텐데, 그때쯤이면 십이령에도 봄빛이 완연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드릅이나 고비나물 삽주나물이 비석거리에 지천이겠지요. 이번 행보에는 우리 행중과 내성까지 동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별일은 없습니다만, 나귀들도 있고 해동머리라서 비알진 길을 건너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우린 먼동 트기 전에 발행하려 하였습니다.”  “동행으로 고개를 넘읍시다.”  그런 제안을 받기는 오랜만이었으나 그럴만한 내막이 없지 않겠기로 그리하자고 승낙을 하였다. 그렇다면 당장 내일 샛재에서 발행하는 상단의 수효가 20여 명을 헤아릴 것이었다.  “초행일 텐데, 내륙의 저잣거리를 섭렵하다보면, 무뢰배들이나 협잡꾼들과 여러 번 마주칠 것입니다. 그들은 여간한 행내기들이 아닙니다. 삭은 바자에 노란 개 주둥이라고 말참견 잘하는 놈에 농간만을 일삼는 놈들을 만나 맹랑한 지경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피가 뜨겁고 세력이 다부지다 한들 그 패거리들을 따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니,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장시의 폐단이 나날이 흉흉해지고 있습니다. 멀리까지 가서 기러기가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일행을 닦달하시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러기가 되어: 손해보지 말라는 뜻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 땡추가 주모가 수절 과부라는 것을 진작 눈치채고 언젠가 소리개 뱁새 덮치듯 날탕으로 삼키려고 주막거리 어름을 정탐하려 들렀는지도 모르지 않겠소.” 월천댁이 입귀를 치켜들고 흔들비쭉하더니, 정한조의 농을 되받아쳤다. “쥐똥 같은 소리 그만하시지요. 개짐 벗어던진 게 까마득한 옛날이네요. 군동내 나는 육고기 탐하는 스님이 있단 소리는 못 들어봤습니다.” “혹간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괴나리봇짐조차 가진 게 없었다면 그게 사칭하는 무뢰배나 난봉꾼 아니겠소.” 정한조는 농으로 얼버무리고 봉노로 들고 말았다. 행중이 한결같이 땀에 절은 짚신과 행전을 풀어 횟대와 시렁에 걸어 말리고 있었다. 몽근 짐들을 지고 벼랑 중턱을 까낸 고개치 길만 걸었으니 두께살이 앉은 어깨는 좀 쑤실까만, 먼길 행보 만리 행역도 대수롭지 않은 듯 술방구리 하나와 두루거리 밥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곤댓질들 해가며 시답잖은 농들을 건네고 있었다. 원상들이건 차인꾼들이건 미장가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여럿이 모여 앉아도 상투 튼 위인들은 한두 사람 정도이고 대부분이 머리를 땋아내린 엄지머리들이거나 외자상투였다. 정한조만 하더라도 상투를 틀고 있었으나 나이든 거간들을 상종해야 할 처지여서 외자로 튼 상투였다. 행중이 방안에서 시구문 차례로 술사발을 돌리고 있거나 목침 차지하기 투전 놀음을 하고 있는 사이 만기는 양식 전대를 풀어 울바자 밑에 새옹을 걸어놓고 쭈그리고 앉아 밥을 짓고 있었다. 숫막에서 내놓는 요깃거리란 끽해야 장떡이나 도토리묵이어서 그것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됐기 때문에 뱃구레가 큰 축들은 새옹으로 지은 밥을 안다미로 퍼서 배를 채워야 든든했다. 봉노에 있는 동무들 가운데 행수 정한조가 소금섬을 물로 끌라면 군소리 한마디 없이 끌고 갈 만치 매사에 행수를 따르는 곽개천(郭介天)이 방 귀퉁이에 끼어 앉아 부들자리 위에 산가지를 널어놓고 무슨 셈을 하다 말고 행수를 힐끗 쳐다보며 풀쑥 질렀다. “성님 왜 그러십니까.” “혼자 사는 까막과부 하소연이나 들었네.” “얼른 보아도 하소연이 아니던데요?” “눈치 하구선… 우리 행중 등 뒤를 개호주 한 마리가 줄곧 미행하고 있으니 호식을 당하기 전에 방비하란 말이더군.” “개호주도 영물이라 적선한 사람에겐 얼씬도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여기서 내성장까지 갔다가 회정하자면 140리 내왕길을 일순*이 넘도록 눈보라에 시달림을 받아야 할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개치 길마다 개호주와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면, 그 또한 곡경이 아니겠나.” “만기가 밥을 짓고 있으니 요기는 나중에 하시고 우선 목이나 축이시지요.” 곽개천의 태생은 빛내골 산골이라 하였으나 소년 시절부터 말래 숫막거리에 진출하여 퇴개꾼*이건 중노미 노릇이건 닥치는 대로 연명하며 잔뼈가 굵었다. 일찍이 조실부모해서 서발막대 휘둘러보았자 거칠 것이 없는 사고무친이었기 때문이었다. 중노미 노릇으로 남의 대궁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소년 시절을 보내는 중에, 백두대간을 발서슴하며 풍상을 겪는 늙은 포수의 곁꾼이 되었다. 그 포수가 어느 해 한겨울 노루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멧돼지에게 뱃구레가 찢겨 죽고 난 뒤, 그 화승총을 차지하고 명색 소년 포수로 연명하다가 말래 접소에서 정한조를 만나 상단의 차인꾼으로 입문하여 원상이 된 사람이었다. 역시 미장가였으나 장시에 가면 눈치가 멀쩡한 거간들과의 흥정에 밀리지 않으려고 외자 상투로 행세하였다. 늙은 포수를 따라 백두대간의 비알지고 험악한 기슭을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했으므로 십이령 내왕길쯤은 눈감고도 넘을 만큼 이력이 나 있었다. 십이령길 말고도 그만 알고 있는 지름길이 여럿이어서 부상들 가운데서는 그가 축지를 한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일순: 열흘 *퇴개꾼: 구운 숯을 운반하는 짐꾼
  • 대처, 남편 첫 만남에 “딱히 매력은…”

    지난 8일 숨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공식 전기가 출간됐다. 23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이 책에는 남편 데니스를 만났을 때 느꼈던 첫인상 등 그간 대처에 대해 알려져 있지 않은 진솔한 내용이 담겨 있다. 1982년 포클랜드 섬을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인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에 대한 대처의 개인적인 소회도 나와 있다. 특히 대처가 정부 관리들에게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며 갈등을 빚었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비밀회담을 하도록 허용한 사실도 처음 공개됐다. 대처는 생전에 언론인 찰스 무어에게 그녀의 전기를 쓰도록 하고 개인 서류와 정부 문서에 대한 독점 열람권을 허용했다. 이번에 무어가 쓴 전기 1권을 보면 대처는 남편인 데니스와의 첫 만남에서 그에 대해 “아주 매력 있는 인물은 아니다. 매우 내성적이지만 상당히 괜찮다”라고 회고했다. 책에는 대처가 윌리 컬렌이라는 농장주와 데이트를 하다가 그를 자신의 여동생인 뮤리엘과 결혼시키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컬렌은 당시 대처에게 비싼 향수와 명품 핸드백 등의 선물을 주면서 구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처는 1949년 컬렌을 자신의 동생에게 소개했고 둘은 이듬해인 1950년 밸런타인데이에 약혼했다. 전기 2권은 대처 정권 후반기와 그녀의 은퇴 시절을 다룰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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