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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은 없다’ 김주혁, “손예진과 두 번째 호흡? 당연히 오케이”

    ‘비밀은 없다’ 김주혁, “손예진과 두 번째 호흡? 당연히 오케이”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 김주혁이 파트너십을 과시했다. 26일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에서 진행된 영화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 제작보고회에는 손예진, 김주혁과 이경미 감독이 참석했다. 손예진 김주혁은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은 사춘기 딸을 가진 엄마 연홍, 김주혁은 지적이고 냉철한 야심가 정치인 종찬 역을 각각 맡았다. 선거 15일을 앞둔 상황에서 딸이 실종되는 상황에 빠지는 부부로 선거와 딸을 찾아야한다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선택을 앞둔 부부를 연기했다. 손예진은 김주혁과 또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 “되게 좋았다”고 말했고 김주혁은 “이렇게 잘하고 아름다운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데 당연히 오케이”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을 캐스팅한 이경미 감독은 “손예진 배우는 취향을 타지 않는 아름다운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줬고 그 과정을 꾸준히 지켜봤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 말고도 뒤에 숨어 있는 광기와 똘기를 끌어내고 싶어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또 김주혁에 대해선 “김주혁은 잘생겼는데 안 잘생긴 연기를 하더라. 외향적이지만 내성적인 연기를 하는 김주혁의 이면이 우리 영화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전했다. 영화 ‘비밀은 없다’는 국회 입성을 노리는 전도유망한 신예 정치인 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이 선거가 15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딸이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 6월 2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비밀은 없다 손예진, 세월 흘러도 변함없는 ‘냉동 미모’ 그리고 ‘각선미’

    비밀은 없다 손예진, 세월 흘러도 변함없는 ‘냉동 미모’ 그리고 ‘각선미’

    배우 손예진이 ‘비밀은 없다’ 제작보고회에서 변함없는 미모를 과시했다. 26일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에서 진행된 영화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 제작보고회에 손예진, 김주혁과 이경미 감독이 참석했다. 손예진 김주혁은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부부로 호흡을 맞춰 기대를 모았다. 이날 손예진은 가슴 라인에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화이트 초미니 원피스를 입고 우월한 각선미를 뽐냈다. 변함없는 청순 미모도 감탄을 자아냈다.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은 사춘기 딸을 가진 엄마 연홍, 김주혁은 지적이고 냉철한 야심가 정치인 종찬 역을 각각 맡았다. 선거 15일을 앞둔 상황에서 딸이 실종되는 상황에 빠지는 부부로 선거와 딸을 찾아야한다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선택을 앞둔 부부를 연기했다. 손예진은 김주혁과 또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 “되게 좋았다”고 말했고 김주혁은 “이렇게 잘하고 아름다운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데 당연히 오케이”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을 캐스팅한 이경미 감독은 “손예진 배우는 취향을 타지 않는 아름다운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줬고 그 과정을 꾸준히 지켜봤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 말고도 뒤에 숨어 있는 광기와 똘기를 끌어내고 싶어 캐스팅했다”고 밝혔고, 김주혁에 대해선 “김주혁은 잘생겼는데 안 잘생긴 연기를 하더라. 외향적이지만 내성적인 연기를 하는 김주혁의 이면이 우리 영화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영화 ‘비밀은 없다’는 국회 입성을 노리는 전도유망한 신예 정치인 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이 선거가 15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딸이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6월 23일 개봉한다. 사진=더팩트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부산서 50대男, 가로수 지지대 들고 묻지마 폭행…길 가던 여성 2명 부상

    부산서 50대男, 가로수 지지대 들고 묻지마 폭행…길 가던 여성 2명 부상

    25일 오후 5시 11분쯤 부산 동래구에 있는 대형마트 인근에서 5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가로수 지지대를 뽑아 길을 가던 행인에게 휘둘러 2명이 부상을 당했다. 피해자는 서모(22·여)씨와 정모(52·여)씨로, 이들은 각각 팔과 얼굴을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눈에 통증을 호소해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범행 현장을 목격한 시민 4명이 가로수 지지대를 뽑아 휘두르던 남성을 제압해 경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날 오후 트위터상에는 “젊은 여성과 할머님 한 분이 각목을 들고 뛰어나오는 한 남성에게 폭행당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신고를 받고 내성지구대 경찰들이 출동해 이 남성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검거 당시 이 남성은 소주 3병을 마신 상태였으며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묻지마 폭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범행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이언스 톡톡] 독버섯으로 우울증 치료?

    [사이언스 톡톡] 독버섯으로 우울증 치료?

    난 아즈텍 제국의 위대한 황제 ‘아우이초틀’(1486~1502)이다. 난 태평양 연안 도시국가들과 남쪽에 위치한 소(小)왕국들을 속국으로 삼아 태평양에서 대서양 연안에 이르는 땅들을 우리 것으로 만든,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전사이자 전략가라는 후대의 평가를 받고 있지.우리 제국에서는 다른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치르거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생기면 신이나 사물의 정령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곤 했어. 그때마다 제사장들은 ‘테오나나카톨’이라는 ‘마법의 버섯’을 먹었지. 버섯이 일으키는 환각 속에서 신의 모습을 보고 신의 메시지를 들었던 거야. 그런데 이 마법의 버섯의 정체는 우리 부족들만의 비밀로 부쳐져 있다가 1957년 ‘라이프’지의 르포 기사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어. 기사를 본 과학자들이 마법의 버섯을 실험실로 가져가 분석을 한 덕분에 우리도 몰랐던 버섯의 비밀이 풀렸더군. ●환각 버섯 속 성분 ‘사일로사이빈’ 임상시험 과학자들은 테오나나카톨이 여러 종류의 환각 버섯들을 섞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환각을 일으키는 성분인 사일로사이빈과 사일로신을 추출해 내는 데도 성공했다더군. 환각 성분들의 화학구조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비슷하다고 해. 아직도 환각을 일으키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일로사이빈이 몸속에 들어오면 세로토닌 수용체와 결합해 세로토닌의 대사를 방해하면서 환각 증상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이 때문에 많은 나라가 이 버섯을 마약원료식물로 지정해 무허가로 채집하거나 재배하는 것을 금지하게 됐다더군. 그런데 최근에 이 마법의 버섯을 이용한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봤어. 정신의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랜싯 정신의학’ 17일자 논문이었지. 영국 임피리얼칼리지런던(ICL) 의대, 런던대(UCL) 정신의학과, 왕립런던병원, 킹스칼리지 약대 연구진이 평균 17.8년 동안 우울증을 앓아 온 12명의 환자에게 사일로사이빈을 알약으로 만들어 먹이는 실험을 했대. ●20여년 앓던 환자들 3개월 만에 거의 완치 놀랍게도 사일로사이빈을 일주일간 먹은 모든 환자의 우울증 증상이 눈에 띄게 개선됐고, 그중 5명은 이후 3개월 동안 거의 완치된 것처럼 우울증세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야. 더군다나 이번에 실험에 참여한 대상자들은 기존에 나온 우울증 치료제로는 전혀 증세가 완화되지 않았던 중증 환자들이었다더군. 이번 임상시험을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도 눈물겹더군. 영국에서도 마법의 버섯과 그 추출액인 사일로사이빈은 헤로인과 코카인 등과 함께 ‘A급 불법 약물’로 구분돼 있지. 이 때문에 왕립학회 윤리위원회에서 “임상시험 참가자들이 뒤늦은 정신과적 증상을 보일 수 있는 만큼 임상시험이 끝난 뒤 3개월간 추적 검사를 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달고 임상시험을 승인해 줬다더군. 연구팀들도 만약에 있을 위험성에 충분히 대비하느라 임상시험 승인 후 환자에게 사일로사이빈을 투입할 때까지 32개월이 걸렸대.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 나온 결과는 기존의 우울증 치료제와는 달리 약의 내성도 약하고 안전하다는 것이라니까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물론 실제 치료제로 사람들에게 선보이기까지는 한참이 걸리겠지만 말야. 요즘 과학 분야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기술의 최종산물이 미칠 수 있는 사회적·윤리적 영향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 같던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의 연구에서는 이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한미약품, 국내 첫 폐암 표적항암제 ‘올리타’ 새달 출시

    한미약품, 국내 첫 폐암 표적항암제 ‘올리타’ 새달 출시

     한미약품이 국내 첫 3세대 폐약 표적항암제 ‘올리타정’(성분명 올무티닙)을 출시한다.  한미약품은 20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올리타정을 내달부터 국내에 시판한다고 밝혔다. 올리타정은 27번째 국산 신약이며 3세대 폐암 표적항암제로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첫 신약이다. 표적항암제는 암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신호를 방해해 암세포 증식 등을 억제하는 약물로 기존 항암제 대비 부작용이 적은 장점이 있다. 3세대 표적항암제인 올리타정은 1세대 표적 폐암치료제인 ‘EGFR-TKI(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티로신키나제 억제제) 제제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환자들이 복용 대상이다.  올리타정은 아울러 한미약품이 창사 이후 처음으로 허가받은 신약이기도 하다. 올리타정의 주 성분인 올무티닙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혁신치료제‘로 지정받았다. 혁신치료제는 FDA가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질병의 치료를 기대할 수 있는 신약 후보물질에 대해 기존 치료법보다 우월한 효력이 입증될 경우 신속한 개발과 허가를 위해 시행하는 제도다. 손지웅 한미약품 부사장은 “폐암은 여러 암 중에서도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암종 중 하나이고, 이로 인해 많은 폐암환자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올리타는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나아가 국내 첫번째 글로벌 혁신신약으로서 제약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약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리타정의 약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내년 상반기 이전에 보험급여 문제가 마무리 될 것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 독일 제약업체인 베링거인겔하임과 총 85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협약을 맺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이에 따라 향후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개발 및 상업화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2상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안에 유럽의약국(EMA)과 FDA에 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2050년이면 3초마다 1명씩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

    2050년이면 3초마다 1명씩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영국인 에밀리 모리스는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고 있다. 8년 전 요로감염 진단을 받고 항생제 처방을 받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치료 불가능한 항생제 내성(AMR)을 지녔다는 진단을 받은 건 그 즈음이었다. 부엌칼에 손가락이 베이는 하찮은 상처일지라도 에밀리에겐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이 된다.  항생제 오남용에 따른 내성 증대가 인류를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 발견 이전의 ‘암흑 시대’로 되돌릴 것이란 보고서가 19일(현지시간) 발표됐다. ‘항균 내성에 대한 고찰’이란 보고서에는 전 세계가 당장 해법을 찾지 않으면 오는 2050년 3초마다 1명 꼴로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할 것이란 경고가 담겼다. 연간 85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현재의 암보다 많은 1000만명이 매년 생명을 잃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중 아시아(473만명)와 아프리카(415만명)는 최대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  또 인공관절 수술이나 제왕절개 수술 등 간단한 외과수술이 매우 위험한 치료로 전락하며 결핵이나 성병 등이 다시 난치병화될 위험성마저 제기된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연간 100조 달러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보고서는 골드만삭스 자산관리 부문 회장을 지낸 짐 오닐이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2년에 걸쳐 작성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경없는의사회(MSF) 는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지지의사를 밝혔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도 “(기후변화처럼) 전 세계적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마치 사탕을 먹듯 복용하는 항생제 오남용을 해소하기 위해 20억 달러 규모의 국제 기금을 조성하고, 제약회사들의 무차별적 고농도 항생제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항생제 남용 폐해를 알리는 캠페인과 가축에 투여되는 항생제에 대한 집중 과세를 제안했다. 현재 영국에선 돼지 등 사육 가축의 45%, 미국에선 70% 이상에 항생제가 투여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사람에게 섭취돼 내성을 갖게 만든다.  항생제 내성은 감기와 같은 가벼운 증상에도 약품을 과다 사용해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기존 항생제로 치유가 힘든 난치성 결핵 등이 급증하는 등 인류에게 종말론적 시나리오를 불러오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번역을 할수록 내 글이 건강해졌다… 18년 만에 나의 소설을 쓰려 한다 충북 증평군 내성리에 자리한 ‘21세기 문학관’에 도착한 것은 지난 10일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서였다. 하늘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을 한 그가 녹색 철문 뒤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18년 만에 재개한 소설 창작을 위해 얼마 전 제주도 집을 떠나온 그는 이곳을 ‘자발적 유배지’라고 불렀다. 점심 겸 해서 낮술 잔을 기울였다. 적당히 술기운이 올랐지만, 그의 유장한 말투는 빨라지지 않았고 간결한 문장들은 장황해지지 않았다. 중간에 말을 멈추는 때가 잦았는데 적확한 단어나 표현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가 말했다. “기자 양반이나 나나 즐겁게 술 마실 만큼만 건강하게 살면 되는 거요.” 김석희(64)는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1979년 3월 어느 날 한참을 못 보고 지냈던 친구가 찾아왔다. 국사학과에 다니던 이종범이었다. ‘학생운동 하다가 제적됐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갑자기 어쩐 일일까.’ 전공은 달랐지만, 중간에 연결고리가 되는 친구들 덕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학교에서 잘리고 나서 작은 출판사를 하나 차렸다고 했다. “내가 불문과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김석희가 프랑스책 최고로 잘 읽는다고 하더라.” 다짜고짜 프랑스 고전을 하나 골라서 번역을 해 달라고 했다. “명색이 출판사이니 책을 좀 내야 하는데,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자니 번역료 줄 능력이 안 된다. 너한테는 술 한잔 사주면 되지?” 황당했지만, 학교에서 잘리고 뭐라도 해 보겠다는 그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안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곰곰 생각하다가 18세기 프랑스 심리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를 번역해 주었다. 나는 불어를 말하고 듣는 것에는 약했지만, 독해와 번역에 나름 강점이 있었다. 번역료는 정말 술 한잔이었다. 1980년 이종범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면서 출판사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그 책도 절판이 됐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내 인생의 이정표를 정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참, 이종범은 현재 조선대 사학과 교수로 박물관장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고 번역한 작품은 1982년 6개월 동안 작업한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1981년 메릴 스트립과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동명 영화가 개봉되면서 갑자기 원작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책은 1997년과 2002년에 다시 번역을 했는데, 내가 전문 번역가의 길을 가게 된 첫 작품이 됐다. -1952년 제주시 무근성(삼도2동)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경제사정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섬 소년에게 사방에 둘러쳐진 바다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갑갑함이었다. 섬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이었다. 1970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재수를 위해 서울로 와서 육십을 바라보는 2009년 4월에 다시 고향에 정착했다. 40년의 타향살이 끝에 그 바다가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 나는 변덕을 부렸지만, 바다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듬어준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때 가르쳐 주신 서예로 초등학교 때 웬만한 상들은 휩쓸었는데, 나한테 약간의 글재주가 있다는 것은 중학교 졸업 무렵에 알게 됐다. 제주일고 입학을 앞두고 도내 한 신문사가 주최한 학생 문예작품 공모전에 산문을 출품했다. 아직 고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 3학년 형들을 제치고 장원을 차지했다. 이 일로 입학을 하자마자 3학년 형들에 의해 반강제로 ‘향원’이라는 문학서클에 들게 됐다. 2학년 때는 동국대 문예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제주도립도서관은 제2의 집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뮈의 ‘이방인’을 이곳에서 읽었다. 모두 살인자인 두 책의 주인공이 꿈속에 뒤바뀐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큰 바다를 누비며 글을 쓰는 ‘마도로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국립해양대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6·25 때 서울 영등포에서 납북된 숙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있어 입학이 불허됐다. ‘마도로스 소설가’의 꿈은 그냥 ‘소설가’로 수정됐다. -1972년 삼수를 해서 대학에 갔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다. 어떤 친구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로 나갔고, 어떤 친구들은 술집으로 가 통음을 했다. 어떤 친구들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내 속의 울분을 터뜨리고 발산하기 위해 내가 택한 건 글쓰기였다. 일기를 쓰듯 글만 썼다. -수업에 들어간 기억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붕구(1922~1991) 교수님의 수업은 늘 감동 그 자체였다. 보들레르의 시를 설명하기 위해 직접 한시를 써서 읊으시다가 그걸 서양의 역사와 철학으로 이끌고 가셨다. 그러다가는 동양 인문학의 심오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셨는데, 이야기에 빠져 한참을 넋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새 처음의 보들레르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넓고 깊은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울림 있는 강의를 하는 교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1979년 2월 졸업과 동시에 국문과에 학사편입을 했다. 소설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문학을 좀더 배우고 싶었다. 그때부터 등단을 향한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됐고, 그 과정은 1987년 12월 26일에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끝이 났다. 세상에 대한 풍자와 야유를 담은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이었다. 당선되고 나서 나를 인터뷰한 기자가 ‘칼의 노래’, ‘현의 노래’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이다. 당시 그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1시간에 걸쳐 그와 나눴던 대화가 지금도 또렷하다. 그날 진탕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한겨울 골목길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고상한 책만 번역한 줄 안다. 하지만, 내 손을 거친 책들 중에는 일본 잡지의 부록과 같은 것들도 상당수 있다. 번역은 그 자체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시사영어사 출판부에 다니던 친구가 맡겨 준 연애소설 ‘할리퀸문고’ 시리즈는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한 달에 한 권씩 15개월을 번역했는데, 그 돈으로 쌀도 사고 아이들 공부도 시킬 수 있었다. 외국말을 입으로 하는 재주는 없었지만 눈으로 읽는 능력은 남보다 뛰어났다. 불어야 전공이니까 자연히 접할 기회가 많았고 영어는 틈틈이 원서를 읽으면서 번역 실력을 키웠다. 일본어는 학사편입한 국문과에서 현대문학 연구를 위해 일본 문헌을 참고해야 했기 때문에 독학을 했다. -1979년 학사편입부터 신춘문예에 당선된 1987년까지의 시간들은 이제 와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고난의 시간들이었다. 계속되는 탈락에 마음엔 칼바람이 불었고,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제주의 어르신들은 나를 ‘백수’로 생각했다. “백날 써 봐야 안되는 소설, 그만 좀 하고 다른 일 찾아봐라. 서울대를, 그것도 과를 2개(불문과, 국문과)씩이나 나와서 이게 무슨 꼴이냐.” 명절에 고향 내려가는 건 아주 고역이었다. ‘아버지의 감귤밭을 이어받아 농사를 지을까,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촌형을 찾아갈까.’ 고민은 계속됐지만, 소설가에 대한 꿈은 결코 포기가 되지 않았다. 안되면 안될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한 번역은 계속해야 했다. 번역한 책에는 ‘김한경’이라는 필명을 썼다. 나와 아내, 아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땄다. 내 본명은 내 최초의 소설의 표지를 위해 남겨 두기로 했다. -1987년 재일교포 작가인 김석범의 ‘화산도’를 번역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5권짜리 대하소설이었다. 자유실천문인협회 이호철 대표가 “6월 항쟁을 계기로 4·3 사건을 다룬 책도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올 테니 미리 준비를 하자”고 했다. 마지막 제5권은 이 대표가 번역을 했고 내게는 1권부터 4권까지 번역을 맡겼다. 일본어를 번역하며 곳곳에 제주 사투리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제주 출신 번역가가 필요했다. 제주 출신인 내가 4·3 사건 관련 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김한경’이 아닌 ‘김석희’를 역자 이름으로 썼다. 이 일을 계기로 번역료가 크게 올라갔다. 그다음 맡은 일은 2년 6개월에 걸친 영국 브리태니커 사전 한국판 번역이었다. 매월 200자 원고지 1000장씩을 넘겼다. 아내의 가계부에 단비가 내렸다. -1994년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이 두꺼운 책 3권을 들고 번역가 정도영·오정환 선생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이 책들을 읽어보고 번역해 출판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책의 지은이는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였다. 정도영 선생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오정환 선생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내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당시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에서 제3권(나중에 총 15권으로 완결)까지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세 명 중 가장 젊은 내가 맡았다. 2주 정도의 검토 끝에 우리 모두 ‘OK’ 사인을 냈다. 그때부터 2009년까지 12년에 걸쳐 번역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로마인 이야기’의 내용은 상당히 진취적이었다. 대부분의 책이 귀납적 형식을 취하는데 이 책은 제1권 전체를 할애해 ‘국가 크기도, 문화도, 경제도 1위가 아닌 로마가 어떻게 패권(覇權)을 쥐었는지 궁금해 이 책을 쓴다’는 의문을 던지는 게 특별해 보였다. 투박하지만 힘 있는 문체도 흥미를 끌었다. 책은 번역 출간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베스트셀러 첫머리에 이름을 올렸고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내가 저들만큼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아무리 해도 거장들의 작품과는 차이가 많은데, 이걸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나.” 힘들게 소설가로 등단을 하고 10여년이 흐른 1998년, 내 인생의 방향을 가르는 큰 선택을 했다. 그해 가을 중편 소설을 하나 냈는데 불현듯 소설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안되는 걸 들고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다. ‘나를 애먹이지 말자’고 했다. 소설을 중단했다. -2011년엔 ‘모비딕’을 출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번역이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은 정규 대학교육 없이 선원으로 살다가 작가가 된 사람이었다. 단정하게 완성된 문장이 아니었고, 단축형 비문이 많았다. 간혹 셰익스피어를 따라하는 도치문은 번역으로 그 느낌을 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번역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단어도 이유 없이 배열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대학 은사인 이휘영(1919~1986년) 교수님을 존경한다. 그는 1960년대에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홍수’를 번역했다. 독해가 번역의 초벌작업이라면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휘력과 문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신 분이다. -나는 ‘888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8시간 자고, 8시간 놀고, 8시간 번역한다. 일은 주로 밤에 한다. 아직 번역하고 싶은 책들이 많다. 특히 판타지의 고전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 국내에서는 ‘해리 포터’를 어린이들이 먼저 즐기게 됐지만, 사실 판타지 소설의 세계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고 심오하다.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다섯 살 손자를 위한 번역에도 욕심이 난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1998년 절필했던 소설 창작이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잡은 소설이다. 수많은 번역의 경험이 소설을 다시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많은 책을 번역하면서 내 글도 건강해졌다. 그저 예쁘게 다듬기만 한 미문,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고 할까. 젊은 날 나의 명함에는 ‘소설가·번역가’가 동시에 적혀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픈 열망이었다. 정작 등단한 후 소설을 접고는 ‘번역가·소설가’라고 썼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소설가라는 직업을 다시 앞에 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번역가 김석희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통한다. 영어와 불어, 일어로 된 해외 작가들의 소설을 한글로 재탄생시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 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허먼 멜빌의 ‘모비딕’, 재일작가 김석범의 ‘화산도’, 쥘 베른 걸작선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번역을 ‘장미 가시덤불에서 춤추는 것과 같은 고통 속의 쾌락’이라고 표현한다.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기도 한 그는 최근 18년 만에 자신의 소설 창작을 재개했다. ▲1952년 제주 제주시 출생 ▲제주제일중·고 ▲서울대 불문과·국문과 ,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중퇴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소설 ‘이상의 날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 수상(1997년) ●주요 작품 ‘화산도’(김석범) ‘아돌프’(뱅자맹 콩스탕) ‘여자란 무엇인가’(비올라 클라인)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에펠 탑의 검은 고양이’(아라이 만) ‘즉흥시인’(안데르센) ‘시간 박물관’(움베르토 에코 외) ‘인물 삼국지’(이나미 리쓰코) ‘빙벽’(이노우에 야스시) ‘칸의 제국’( 조너선 스펜스) ‘죽음을 삼킨 땅’(조르제 아마두)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스) ‘지구에서 달까지’(쥘 베른) ‘문명 속의 불안’(지그문트 프로이트) ‘살아 있는 역사’(힐러리 로댐 클린턴) ‘모비 딕’(허먼 멜빌)
  • [달콤한 사이언스] 생강의 단맛 식중독 막고 충치도 예방

    [달콤한 사이언스] 생강의 단맛 식중독 막고 충치도 예방

    맵고 알싸한 맛과 냄새를 가진 생강은 음식의 잡내를 없애는 데 주로 쓰인다. 대부분의 생선회에 생강이 곁들여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생강이 충치나 식중독을 예방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고려대 약학과 변영주 교수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박희등 교수 공동연구팀은 생강에서 단맛을 내는 성분이 세균의 생물막 형성을 막아 식중독이나 충치를 예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5일 밝혔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자연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진은 2011년 생강 추출액이 패혈증과 폐렴을 일으키는 녹농균의 생물막 형성을 막는다는 것을 규명했지만, 정확한 메커니즘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생물막은 미생물이 표면에 붙어 증식하기 위해 배출하는 끈적한 분비물로 치아, 수도관 등의 부식과 오염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특히 병원균이 만드는 생물막은 식중독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항생제 내성을 일으켜 질병 치료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연구진은 생강의 다양한 성분 중 ‘라피노스’라는 물질이 생물막 주요성분인 다당류와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고 생물막 형성에 필요한 신호전달물질의 농도를 낮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이 이번에 개발한 방법은 저렴한 비용으로 라피노스를 대량으로 쉽게 분리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천연물 추출 물질이어서 어린이 충치 예방에 부작용 없이 쓸 수 있고 기존 항생제와 함께 사용할 경우 항생제 내성을 낮추고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스마트폰 주는 엄마·아빠… 만3~5세, 성인보다 ‘중독’ 심각

    스마트폰 주는 엄마·아빠… 만3~5세, 성인보다 ‘중독’ 심각

    유아(만 3~5세)의 스마트폰 중독 수준이 성인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인형극과 연극을 통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와 아동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중독 예방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15일 발표한 ‘2015년 스마트폰·인터넷 과(過)의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만 20~59세) 스마트폰 중독 고위험군은 2.1%인 반면 유아는 2.5%로 성인보다 0.4% 포인트 높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해 9~10월 전국 만 3~59세 스마트폰 이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만 3~9세의 유아나 아동을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스마트폰 금단현상, 내성, 일상생활장애 등 세 가지 증상을 모두 보이면 고위험군으로, 이 중 1~2개 증상을 보이면 잠재적 위험 사용자군으로 분류했다. 유아나 아동 가운데 스마트폰 이용자 고위험군 비율은 1.7%, 잠재적 위험군은 10.7%였다. 이 중 유아의 고위험군 비율이 2.5%로 아동(만 6~9세)의 1.6%보다 0.9% 포인트 높았다.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나이가 갈수록 어려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정부는 스마트폰 중독을 막기 위해 미래부 등 9개 부처 합동으로 예방대책을 마련했다. 유아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인형극·연극 등을 통해 유치원,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매년 6만명 규모로 예방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스마트폰 과몰입 전담교관을 두고 장병들에 대한 교육을 한다. 부모와 자녀 간 올바른 소통과 인터넷 과다 사용에 따른 문제해결을 위한 ‘밥상머리 인터넷윤리교육’ 프로그램도 신설, 연 5만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 매년 1500명 규모로 교사·상담사 등 직무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100명가량의 정신보건 전문요원을 중독예방관리 교육 후 각 지역에 배치할 예정이다. ‘스마트 휴(休)요일(Day)’ 제정, ‘쉼’캠페인 등 스마트쉼 실천운동도 확산해 나가기로 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한미약품 ‘올리타정’ 국산 첫 표적항암제 허가

     한미약품이 개발한 ‘올리타정’(올무티닙염산염일수화물)이 국산 표적항암제로는 처음으로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올리타정은 이로써 우리나라 제약사가 개발한 27번째 신약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이 표적치료제 기술을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약 8500억원에 수출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한국,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이 제품의 독점권을 갖고 있다. 표적항암제는 암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신호를 방해해 암세포의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기존 항암제보다 독성이 낮아 부작용이 적다는 게 장점이다.올리타정은 암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신호전달 물질인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돌연변이를 골라 억제하는 표적항암제다. 기존 표적 폐암치료제인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티로신키나제 억제제’(EGFR-TKI)에 내성이 생긴 환자가 복용하면 좋다. 식약처는 폐암 환자들이 새 의약품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올리타정을 ’신속심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임상 3상 시험 실시를 유예하는 방식으로 심사·허가에 소요되는 기간을 약 2년 단축했다. 이 의약품은 지난해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도 ’혁신치료제‘로 지정받았다. FDA는 중대한 질병의 치료를 기대할 수 있는 신약 후보물질을 혁신치료제로 지정, 임상 2상만 거치면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니사, 아할테케… 고대 파르티아의 추억에 젖다

    중앙아시아 남단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국가다. 지난달 걸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정은지가 신곡을 소개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고 언급해 주목을 받았지만 어떤 나라인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투르크메니스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유럽에서는 ‘파르티아 사법’(射法·말을 탄 채 몸을 돌리며 활을 쏘는 사법), 동아시아에선 ‘한혈마’(汗血馬·하루에 천리를 가는 말) 정도다. 그러나 1991년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한 투르크메니스탄은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니사’ 유적 등 헬레니즘을 상징하는 많은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내년 9월 열리는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를 앞두고 들썩이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을 다녀왔다.지난 6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개최한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개막 500일 전 기념행사가 열린 곳은 니사 유적지였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아할테케’. 한 소년이 한혈마를 데리고 니사 성채에서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이 해외 언론인들과 각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국가적 자존심인 니사 유적과 한혈마, 두 가지를 결합한 공연이다. 니사 유적지는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시가바트에서 서쪽으로 15㎞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코베트다크 산맥이 바라보이는 산기슭에 넓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기후와 상수원 모두 수도를 삼기에 적당하다. 이곳을 바탕으로 파르티아 제국은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서기 3세기까지 고대 서남아시아를 무대로 동서 교역을 장악하며 번성했다. 니사 유적지는 200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20세기 들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건축물 유적을 찾아냈다. 유적지는 왕궁인 5각형 내성, 이른바 ‘옛 니사’와 바깥쪽 상업·거주 지역인 외성, 이른바 ‘새 니사’로 나뉜다. 내성은 진흙과 벽돌로 20m 높이 벽을 쌓고 그 안쪽으로 정원과 신전, 탑, 방 같은 구조물을 배치했다. 왕실 기둥을 비롯해 연회장으로 썼던 ‘붉은 방’, 조로아스터교 원형 사원 흔적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니사 유적지가 세계사에서 중요한 것은 이곳이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 이끈 동방원정을 계기로 동서문화가 융합하며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낸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 사원과 그리스 신상이 공존하고 그리스식 양조법에 따라 포도주를 빚은 흔적이 남아 있다. 동서교류사 권위자인 정수일 박사는 한 글에서 니사 유적지가 바로 헬레니즘의 산실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안서도호의 푸른 호마(胡馬), 만리를 뛰는 한혈마를 이제 보았네. 장안의 장사들이야 감히 타 보기나 하랴, 번개보다 더 빠른 걸 세상이 아는데. 푸른 실로 갈기 딴 채 늙고 있으니, 언제나 서역 큰길을 다시 달릴까.’당나라 시인 두보가 지은 ‘고도호총마행’(高都護聰馬行)은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었던 고선지 장군이 아끼던 한혈마를 소재로 했다. 피 같은 땀을 흘린다는 한혈마는 동아시아에서 천리마의 대명사다. 그 한혈마의 후손들이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천연기념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아할테케다.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기념행사에서도 전통의상을 입은 의장대 수십명이 아할테케를 타고 행진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소련에서 독립한 뒤 외교 무대에선 영세 중립국으로서 독자적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내년 9월 열리는 제5회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를 통해 국가적 위상을 높이려 한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인 지하자원을 갖고 있지만 최근 수송로를 장악한 러시아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발생한 경제적 어려움을 탈피하자는 국내외 정치적 목적도 있다.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실내 아시안게임과 무도 아시안게임을 통합해 주최하는 국제 스포츠 행사로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제4회 대회는 인천에서 열렸다. 댄스스포츠, e스포츠, 당구, 볼링, 체스, 바둑을 비롯해 태권도와 킥복싱, 무에타이 등 다양한 종목을 포함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아시가바트에서 만난 시민들은 하나같이 “내년에 아시안게임을 개최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2014년 인천에서 열렸고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아시안게임과 아시아 실내무도대회가 별개 대회라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1991년 독립 이후 처음으로 자신들이 주체가 돼 개최하는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이기 때문이다. 글 니사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니사, 아할테케… 고대 파르티아의 추억에 젖다

    니사, 아할테케… 고대 파르티아의 추억에 젖다

    중앙아시아 남단의 생소한 국가… 구소련 해체 뒤 영세 중립국으로실내무도 대회로 독자 생존 모색 지난달 걸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정은지가 신곡을 소개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일하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고 하면서 잠깐 주목받은 정도를 빼면 투르크메니스탄은 우리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게 현실이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유럽에서는 ‘파르티아 사법’(射法·말을 달리면서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기술), 동아시아에선 ‘한혈마’(汗血馬·피땀을 흘린다는 천리마) 정도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사’ 유적지 등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역사가 살아숨쉬는 독특한 매력으로 가득한 곳이다. 내년 9월 열리는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를 앞둔 투르크메니스탄을 다녀왔다. 지난 6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개최한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개막 500일 전 기념행사에서 하이라이트는 한 소년이 ‘아할테케’ 이른바 한혈마를 데리고 니사 성채에서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이 해외 언론인들과 각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국가적 자존심인 니사 유적과 한혈마 두 가지를 결합했다. 니사 유적지는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시가바트에서 서쪽으로 15㎞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코베트다크 산맥이 바라보이는 산기슭에 넓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기후와 상수원 모두 도읍지로 적당하다. 파르티아 제국은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서기 3세기까지 고대 서남아시아를 무대로 동서 교역을 장악하며 번성했다. 강력한 기병 전력을 무기로 기원전 53년 카르헤 전투에서 로마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2007년 니사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20세기 들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건축물 유적이 드러났다. 유적지는 왕궁인 5각형 내성, 이른바 ‘옛 니사’와 바깥쪽 상업·거주 지역인 외성, 이른바 ‘새 니사’로 나뉜다. 내성은 진흙과 벽돌로 20m 높이 벽을 쌓고 그 안쪽으로 정원과 신전, 탑, 방 같은 구조물을 배치했다. 니사 유적지가 세계사에서 중요한 것은 이곳이 바로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낸 동서문화의 용광로였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 사원과 그리스 신상이 공존하고 그리스식 양조법에 따라 포도주를 빚은 흔적이 남아 있다. 동서교류사 권위자인 정수일 박사는 한 글에서 니사 유적지가 바로 헬레니즘의 산실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안서도호의 푸른 호마(胡馬), 만리를 뛰는 한혈마를 이제 보았네. 장안의 장사들이야 감히 타 보기나 하랴, 번개보다 더 빠른 걸 세상이 아는데. 푸른 실로 갈기 딴 채 늙고 있으니, 언제나 서역 큰길을 다시 달릴까.’ 당나라 시인 두보가 지은 ‘고도호총마행’(高都護聰馬行)은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었던 고선지 장군이 아끼던 한혈마를 소재로 했다. 피 같은 땀을 흘린다는 한혈마는 동아시아에서 천리마의 대명사다. 그 한혈마의 후손들이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천연기념물로 귀한 대접을 받는 아할테케다.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엠블럼도 아할테케를 형상화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을 구성하는 5대 부족 중 가장 규모가 큰 부족 이름도 아할테케다. 소련에서 독립한 뒤 외교 무대에선 영세 중립국으로서 독자 생존을 모색하는 투르크메니스탄은 내년 9월 열리는 제5회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를 통해 국가적 위상을 높이려 한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인 지하자원을 갖고 있지만 최근 수송로를 장악한 러시아와 관계가 나빠지면서 발생한 경제적 어려움을 탈피하자는 국내외 정치적 목적도 있다.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실내 아시안게임과 무도 아시안게임을 통합해 주최하는 국제 스포츠 행사로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제4회 대회는 인천에서 열렸다. e스포츠, 당구, 볼링, 체스, 바둑을 비롯해 태권도와 킥복싱, 무에타이 등 다양한 종목을 포함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아시가바트에서 만난 시민들이 하나같이 “내년에 아시안게임을 개최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각종 시설 건설비로만 50억 달러를 쓰는 그 ‘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에서 열렸고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아시안게임과 다르다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1991년 독립 이후 처음으로 자신들이 주체가 돼 개최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니사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과학커뮤니케이터 이덕환 서강대 교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과학커뮤니케이터 이덕환 서강대 교수

    이덕환(62) 교수의 연구실을 찾은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에 놀란다. 우선 ‘화학자’라고 하면 흔히 연상되는 흰색 가운 입고 비커나 시험관 만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정말로 그의 연구실엔 컴퓨터와 책만 있다. 또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화학자가 맞나” 싶은 의문이 생길 만큼,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갖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세계를 연구하던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자가 사람들에게 과학을 전파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나서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닥터 리, 계속 화학을 할 건가?” “교수님, 제가 배운 게 화학밖에 없는데 다른 걸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 난 닥터 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일을 했으면 해. 열흘 동안 한국을 돌아보면서 느낀 건데, 이 나라 사람들은 과학이 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더군. 그래서 난 자네가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알리고 확산시키는 일을 해주면 어떨까 싶네.” -미국 코넬대 유학 시절 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이셨던 로알드 호프만(79) 교수님께서 1993년 10월 중순 한 대학 초청행사로 한국에 오셨다. 당시 교수님은 50대 중반의 정력적인 학자이셨고,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던 나는 부교수로 막 승진을 했던 상황이었다. 존경하는 스승이긴 했지만, 나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과학의 대중화라고? 그건 과학을 어설프게 배운 사람들이나 관심 갖는 일 아닌가요?” 호프만 교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마 대놓고 이렇게 반박했을지도 모른다. -‘우드워드·호프만 법칙’으로 유명한 폴란드 출신의 호프만 교수님은 198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신 이론 화학의 대가였다. 몇 권의 시집도 낸 시인이자 철학자이면서 화학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 미국에서 ‘화학의 세계’라는 TV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계셨다. 한국을 오셨을 때에도 미당 서정주 선생을 만나고 싶다고 먼저 요청하셨고, 나중에 두 분의 대화는 월간 ‘현대문학’에 게재되기도 했다. -호프만 교수님과의 만남이 있은 이듬해(1994년) 대한화학회에서 ‘홍보간사’란 자리를 신설했는데, 어쩌다가 내가 그걸 맡게 됐다. 학회 회장대행이었던 채영복(2002~2003년 과학기술부 장관) 박사께서 뜬금없이 나를 지목하셨는데, 대선배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1년 전 호프만 교수님과 나눈 대화가 현실이 되는 출발점이었다. -2남 3녀 중 넷째인 나는 맏이인 큰누나와 열 살 차이가 나고 큰형과도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나 꽤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공부하라는 채근도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초·중·고교를 다 나왔는데 방학숙제도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방학이면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 내려가 산으로 강으로 뛰어다녔는데, 공부를 얼마나 안했던지 시골 내려올 때 가져온 연필을 한 번도 깎지 않고 개학 때 그대로 교실에 가져갔을 정도였다. 그렇게 연필 한 번 쥐어보지 않고 개학을 맞다 보니 학교에 가면 글씨를 쓸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악필인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TV, 신문 등 입시정보를 접할 수 있는 채널들이 다양하지만 당시만 해도 TV는커녕 라디오도 흔치 않았다. 그래서 입시 정보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때 다들 경기중·경기고를 최고로 쳤는데, 나는 우리 형들이 다니던 경복중·경복고가 더 좋은 줄 알았다. 별생각 없이 경복중에 지원했는데, 경기중에 갔더라면 똑똑하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을 거란 사실을 입학을 하고서야 알게 됐다. 경복중에서 경복고로 직행을 했는데, 지금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과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고 계신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 고등학교 1년 선배다. 최 선배가 재수를 해서 서울대 같은 학번 동기가 됐는데, 문리대 이학부 학생 수가 적다 보니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 -고2에서 고3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할아버지께서 어머니와 함께 상경을 하셨다. 안동에서 큰 정미소를 운영하셨던 할아버지는 손주들 교육과 진로에 관심이 많으셨다. “덕환아, 대학에서 뭘 공부할지 결정했느냐.” “네. 저는 화학을 전공하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시며 의대나 법대는 어떠냐고 하셨다. “할아버지, 저는 법대 가서 평생 죄 지은 사람들 보며 살고 싶지 않아요. 의사가 되서 평생 아픈 사람들 보는 것도 싫고요. 저는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과학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다시 안동에 내려가시면서도 실망의 눈빛을 풀지 않으셨지만, 귀여운 넷째 손주의 고집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건 잘 아셨다. 얼마 후 수정 제안을 하셨는데, “화학과보다는 화학공학과가 어떠냐? 공대가 더 취직이 잘 된다는데….” 하지만, 공대 역시 처음부터 내 선택지엔 없었다. -화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2 때부터였다. 화학 수업을 처음 듣는데 “바로 이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화학과에 가겠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둘째 누나가 농화학과를 다녔는데 누나의 전공서적에서 원자와 분자의 그림과 화학식들을 보면서 의지가 더 확고해졌다. “덕환아, 화학과는 너보다 성적이 한참 떨어지는 애들이 가는 데야. 좀 억울하지 않겠니?” 담임선생님도 날 의대에 보내려고 고3 내내 설득하셨지만, 내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화학 공부를 하러 대학에 갔지만, 1973년 입학 첫 학기부터 석사과정을 마친 1979년 2월까지 6년 동안 한 학기도 처음부터 끝까지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집회와 시위로 거의 매 학기 휴교령이 내려졌다.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화학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분을 만났다. ‘일반화학’ 수업을 하신 김호진 교수님이었다. 김 교수님을 통해 이론화학이라는 분야를 처음 만났고, 그게 평생의 전공이 됐다. -지금까지 번역서와 저서를 합해서 30권 가까운 책을 냈다. 그중 번역서가 20여권이 된다. “전문 번역가도 아닌데 왜 그렇게 번역을 많이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과학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는 번역가가 아닌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번역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엄밀성과 정확성을 중요시하는 과학에서는 ‘어’ 다르고 ‘아’ 다른 법이다. 제일 먼저 번역했던 것은 1996년의 ‘그림으로 보는 분자 세계와 대칭성’이었는데, 삽화가 많은 화학입문서 비슷한 책이었다. 본격적으로 번역에 나서고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호프만 교수님이 쓰신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라는 책부터다. 어려운 이론 화학을 쉽게 잘 풀어내 미국에 있을 때부터 꼭 번역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었다. -최재천 선배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인을 꿈꿨던 ‘문청’(문학청년) 출신이었지만, 사실 나는 글 쓰는 일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학교 다닐 때 가장 힘들었고 싫었던 숙제가 바로 작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논문과 책을 빼고 신문, 매거진 등 대중매체나 인터넷 블로그 등에 쓴 글이 줄잡아 2300편 정도 된다. 1년에 평균 150~200편 정도 쓰는데 일주일에 3~4편꼴이다.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이 ‘잡문’이라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한 대중매체에 글을 쓰는 것은 ‘뒤늦게 터진 글솜씨’를 자랑하고 싶어서라거나 내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가 절대로 아니다. 호프만 교수님께서 부탁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이 좀더 과학에 친숙해지고 과학적 사고를 해줬으면 하는 책임감에서다. -나는 과학을 흥미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불과 100~150년 사이에 나온 지식들이다. 인류가 지구에 살아온 몇십만년과 비교하면 말도 안되게 짧은 시간에 나온 지식들이다. 그런 지식들을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역설적이지만 ‘재미있고 쉽게’란 흥미 위주의 과학, 신기술 개발 중심의 과학들이고, 나아가 그런 것들이 과학기피 현상을 불러온다. 재미있다고 하는 얘기만 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과학을 공부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과학은 쉽고 재미있다더니 어렵고 재미없네, 속았어’라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과학을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항상 현실 문제를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우리 사회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신이 확산되지 않는 이유는 기술 중심의 과학을 이야기하는 정부와 그런 주장에 은연 중에 동의하는 전문가들 때문이다. 나는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기초과학은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라고 말할 때 정말 화가 난다. 우주론이나 진화론을 100년 연구해 봐야 무슨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겠나. 기술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는 결과물인데 과학은 그 기술개발을 조직화, 체계화시켜 최종 산물까지 도출하는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과학의 여러 역할 중 3분의1에 불과하다. 다른 3분의1은 사람들에게 정직성과 비판성, 합리성이라는 과학정신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이게 과학의 역할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지식의 축적이나 과학정신 함양보다 경제적 가치와 기술개발이란 부분만 강조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술이전 숫자’, ‘국제학술지 게재 논문 수’ 같은 무의미한 통계가 더 중시되는 것이다. -사회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교수가 다른 데 관심 있는 것 아니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이 세상을 좀더 과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밀알이 되고 싶을 뿐이다. 사회와 동떨어진 지식인이란 있을 수 없다. 더군다나 대학교수들은 사회적 명성뿐만 아니라 캠퍼스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사회를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목소리가 커졌고 눈총도 받았던 것 같다. 아내가 나에게 자주 하는 소리가 있다. “당신은 절대 학교 밖에 나가 다른 것 할 생각은 하지 마라. 당신처럼 성격이 모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학교 밖에서 무슨 말 했다가는 정 맞는다.” 얼마 후면 정년을 맞는다. 그동안 썼던 나의 ‘잡문’들을 모으고 추려서 과학적 눈으로 우리 사회 문제 전반을 해석해보는 나름 거창한 시도를 해볼까 한다. 꽤나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을 것이고,그래서 더 도전해 보고 싶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이덕환 교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다. 대학에서 화학과 과학커뮤니케이션을 함께 가르친다. 이 교수는 실험 중심인 화학 분야에서 ‘양자화학’과 ‘비선형 분광학’을 전공한 보기 드문 이론 화학자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잘은 모르는 과학 주제들에 대해 속시원한 해답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언론사 기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과학자’로 통한다.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방송에 자주 출연하면서 20권 이상의 대중 과학서적을 번역했다. 특히 2004년에 번역 출간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 분야 최고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자신의 대학원 지도교수인 로알드 호프만 미국 코넬대 교수의 저서를 번역한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1996년)는 많은 대학에서 ‘신입생이 읽어야 할 필독서’로 선정됐다. ▲1954년 서울 출생 ▲서울 경복중·고, 서울대 화학과, 미국 코넬대 박사(1983년) ▲서강대 화학과 교수(1985년~),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운영위원장(2009년), 대한화학회 회장(2012년),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2013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신문·잡지 부문· 2004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08년)
  • [기고] 스몸비와 중독화 현상/김경우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

    [기고] 스몸비와 중독화 현상/김경우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

    미래창조과학부가 내놓은 스마트폰 중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은 성인 10명 중 1.4명이다. 청소년들의 중독 정도가 가장 높게 측정됐다. 성인보다 약 2배 높게 나타났다. 특히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사고를 당한 경우는 2014년 1만 9450건에서 2015년 2만 1200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대학 교정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던 여대생이 차량에 부딪혀 생명까지 잃었다. 또 다른 청년은 정면으로 차가 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중상을 입었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주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시비와 분쟁이 오간다. 뉴욕에서는 스마트폰에 집중한 채 길을 걷던 한 여성이 강으로 추락해 숨졌다는 기사도 있었다. 스마트폰은 매력적인 최첨단 전자기기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하다. 현대인은 한시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스웨덴에는 아예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 표지판이 등장했고, 뉴욕에도 ‘앞을 보고 다니시오’라는 경고가 도로 바닥에 쓰여 있다.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길을 걸으며 스마트폰을 이용할 경우 벌금까지 부과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몰입해 주변을 살피지 않는 사람을 스마트폰과 좀비라는 단어를 합성해 ‘스몸비’라고 부른다.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의 위험 정도를 실험한 결과 길을 걸을 때 시야는 120도이나 스마트폰을 보면 20도 이하로 급격히 좁아진다. 평소 같으면 차량 접근을 금방 알아채지만 스마트폰에 집중했을 땐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다. 청소년들은 충동적이고 호기심이 왕성한 신체적·정서적 발달 특성상 스마트폰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자제력 또한 약하기 때문에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정서적 발달에도 영향을 끼쳐 가족 간 대화를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나아가 대인관계, 우울증과 같은 사회 부적응의 폐해를 초래하기도 한다. 결국 시각적인 부분에만 치우치기 때문에 일방향 소통으로 사회성 및 정서 발달에 장애를 유발시켜 주의력 결핍과 같은 증상을 동반하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중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손을 덜덜 떨고 술이나 마약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모습만을 생각한다. 이러한 모습은 중독의 마지막 단계의 병리적 증상이지 그것만이 중독은 아니다. 중독의 특성은 내가 나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고위험 사용자군은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장애를 보이면서 내성 및 금단현상이 나타나며 비도덕적 행위에 둔해진다. 카를 융은 중독이란 정당한 고통을 회피한 결과라고 말한다. 이럴 경우 가족은 지속적으로 정서적인 접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독은 삶의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파괴적인 속성을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스마트폰 중독 경향성이 강한 청소년일수록 자기 통제력이 낮아지고, 이런 경우 자살 생각까지 높아질 위험이 있다. 스마트폰의 중독적 사용으로 자기 통제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큰 청소년들을 위한 개별적 개입과 사회적·정서적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홍콩 누아르에 바친다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홍콩 누아르에 바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는가. 택이 방에서 비디오로 영화를 보면서 어설픈 중국어로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웅본색’의 주제가다. 생각만 해도 맘이 짠해지면서 젊은 그 시절을 생각게 하는 영화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는 홍콩 누아르의 시대였다. 한국 영화가 대세인 지금과는 달리 80년대 극장가는 홍콩 영화가 넘쳐흘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영웅본색’이 있었다. 학창 시절 공부했던 사자성어 네 글자 제목으로 우리를 홀리던 영화는 지독히도 어두웠다. 80년대 홍콩의 허무한 분위기를 반영하며 남성 간의 유대를 강조한 범죄영화들이 유독 많았다. 음산한 톤과 어둡고 우울한 느낌의 영상이 특징이다. 범죄와 파멸이 반복되는 지하 세계의 운명을 그려 보이는 자동차 브레이크의 파열음과 총소리가 뒤섞인 음향이 날카롭다. 희미한 담배 연기가 깔린 듯 스크린은 늘 어둡다. 살인청부업자, 형사 등을 주인공으로 비정하고 냉혹하게 범죄자들의 세계를 묘사했다. 스크린 곳곳에 바닥 삶의 고단한 냄새가 배어 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홍콩 누아르’라고 불렀다. 암흑가의 범죄물을 다룬 영화 장르를 ‘필름 누아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80년대 홍콩 영화는 이처럼 대개 음울했다. ‘검다’는 뜻의 불어 ‘누아르’(Noir)를 알게 된 것은 과외의 소득이었다. 홍콩 누아르는 70년대 이 땅의 청소년들을 들뜨게 했던 이소룡 세대에게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시그널과 같았다. 이소룡은 1973년에 죽었다. 하지만 미녀 여배우와의 섹스 도중 절정의 순간에 죽었다는 확인되지도 않은 야한 소문과 함께 그의 영화는 그 시절 한국 청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교실에는 ‘아뵹’ 소리를 지르며 쌍절곤을 들고 설쳐대던 소년들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로까지 발전된다. 영화는 70년대 말 유신 말기 고등학교를 다녔던 내성적인 현수라는 인물이 전학 간 학교에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남성적인 정체성을 촉진하는 일종의 촉매로 ‘아뵹’이라는 요상한 기합 소리와 함께 이소룡의 절권도가 등장한다. 정무문, 당산대형, 용쟁호투 등등 주먹을 사용한 이소룡 영화가 기성세대의 치기 어린 십대를 사로잡았다면 총을 무기로 한 영화 ‘영웅본색’류의 홍콩 누아르는 기성세대의 이십대 청춘을 열광케 했다. 무협영화의 서슬 퍼런 칼싸움은 굉음과 함께 스펙터클한 총싸움으로 바뀌었다. 마치 발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슬로모션의 총격신은 비장미를 더했다. 이 같은 누아르 영화의 본질은 의리였다. 수컷들의 우정과 의리, 그리고 거금이 등장하는 영화에는 곧잘 배신이 숨겨져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의 방정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웅본색’도 의리와 배신, 그리고 파국이라는 전형적인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영웅본색’을 두고 이 같은 플롯을 나열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기실 이소룡이 ‘아뵹’으로 70년대 십대들을 사로잡은 것과 같은 이치로 ‘영웅본색’은 주인공 주윤발의 스타일이 한몫한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긴 버버리 코트를 입은 채 위조지폐로 담뱃불을 붙이던 바로 그 장면이다. 아, 또 있다. 틈만 나면 성냥개비를 이쑤시개처럼 씹어대던 그 모습은 또 어떠했던가? 무서울 만큼 냉정하고 장난기 가득한 유머를 지니면서도 짙은 페이소스가 넘치던 그는 극 중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워낙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기에 사람들은 ‘영웅본색’과 주윤발을 동일시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빚게 된다. 이는 조금 앞서 등장한 할리우드 영화 대부를 말런 브랜도와 동일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어 등장한 밀키스 광고가 그의 인기를 가늠케 한다. 단언컨대 그는 이 영화 한 편으로 1980년대 한국의 모든 남성에게 온갖 판타지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영웅본색’이 80년대 청춘을 사로잡은 데는 배경 도시 홍콩이 한몫했다고 봐야 한다. 금융이 발달한 도시이며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다. 낭만과 범죄가 동시에 가능한 최적의 도시가 홍콩이었다. 기억하시는가. 유년 시절 구슬치기를 하면서 멀리 보낼 때 홍콩 보낸다고 얘기하곤 했다. 지금에야 하루이틀 잠깐 쇼핑하러 다녀오는 땅이다. 하지만 먼 나라까지는 갈 생각도, 능력도 없던 80년대 홍콩은 이 땅에서 극소수 부유층들이나 다녀올 수 있는 꿈의 도시였다. 중국 땅이지만 오랜 세월 영국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가까이서 유럽의 풍취를 느낄 수 있어 더욱 인기였다. 그래서 치파오 차림의 제니퍼 존스와 윌리엄 홀든이 나왔던 영화 모정(Love is many splendored thing)의 무대인 리펄스 베이와 빅토리아 병원 뒤 늙은 느티나무는 가 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혔다. 키 큰 느티나무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인증샷을 찍는 최고의 장소였다. ‘영웅본색’의 인기는 시대적인 분위기에도 힘입었다. 중국 반환을 앞둔 그 시기 홍콩은 암울했고 푸른빛 바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함께 사람들을 스산하게 했다. 모두들 마음속에 영웅이 필요한 시대였다. 사람들은 ‘영웅본색’을 보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경험하게 된다. 총격신과 의리적인 복수는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그리고 마침내 맞이하는 영웅의 비극적인 죽음은 현실을 잠깐 동안 잊게 하는 효과적인 기제가 됐다. 영화는 코믹한 이류 영화를 만들던 오우삼 감독을 일약 최고의 감독으로 만들었다. 첩혈쌍웅, 종횡사해, 첩혈속집, 영웅본색2 등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그는 홍콩 누아르 영화의 불패 신화를 지켜 나갔다. 지금이야 톰 크루즈, 니컬러스 케이지 등을 기용하며 세계적인 거물로 성장한 그를 두고 존 우(John Woo)나 우위썬으로 부르지만 기성세대에게 그는 오로지 ‘영웅본색’의 오우삼으로 기억된다. 나는 ‘영웅본색’을 생각하면 늘 80년대 중반 개봉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연결고리가 맞지 않아 이해되지 않던 그 영화가 3분의1 이상 잘려 나갔다는 사실을 민주화 이후 알고 잠깐 동안 절망했다. 세르조 레오네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아마포라의 선율 위에 펼쳐지던 밑바닥 인생들의 진한 우정과 배반, 상처,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에 우리는 망연자실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영웅본색’과 자연스레 연결돼 있다. 그래서 할리우드 갱 영화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우리는 이어 등장한 홍콩 누아르에 큰 거부감 없이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홍콩 누아르, 80년대 암흑세계를 다룬 그들과 울고 웃으며 우리들은 자랐다. 그 속에는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사로잡았던 ‘영웅본색’의 핏빛 액션이 또렷히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얼마나 경제와 정치권력, 폭력과의 야합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영화를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된다. ‘영웅본색’, 80년대 이 땅의 뭇 남자들에게 성냥개비를 씹게 만들었던 영화와 함께 우리들의 이십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매체경영) yule21@empal.com ■편집자주: 격주 금요일자에 연재돼 온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은 필자 사정으로 잠시 중단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 ‘황금연휴’ 아직도 갈 곳 못 정했다면…이색 축제 BEST 5

    ‘황금연휴’ 아직도 갈 곳 못 정했다면…이색 축제 BEST 5

    어린이날 다음 날인 5월 6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직장인의 경우 사실상 5월 4일 퇴근 이후부터는 일요일인 8일까지 ‘황금연휴’가 주어진다. 갑자기 툭 떨어진 황금연휴, 아직 연휴 계획을 짜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국내 이색 축제’ 다섯 곳을 소개한다. 1. 가족과 함께 궁중에서 하룻밤을? <궁중문화축전> - 기간 : 2016.4.29 ~ 2016.5.8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 장소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 문화재청은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오늘, 궁을 만나다’를 주제로 ‘제2회 궁중문화축전’을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에서 개최한다.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의 개막제로 시작되는 이번 축전에서는 왕실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특히 궁궐의 일상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참여형 행사’가 마련된다. 경복궁의 부엌인 소주방에서는 전통음식을 만들고 맛보는 ‘수라간 시·식·공·감’(4.30∼5.8)이 운영되고, 가족과 함께 궁중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고궁문화체험’(4.30∼5.8)은 경복궁 함화당과 집경당에서 펼쳐진다. 또 흥례문 광장에서는 태국·일본·베트남 무용단의 ‘세계 왕실문화 교류공연’(4.30∼5.7)이 상연된다. 아시아 3개국의 왕실 무용단이 세계왕실문화 교류를 위해 각 왕조의 악무를 뽐내는 이번 공연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만큼 꼭 감상해야 할 포인트다. 이번 궁중문화축전에는 즐거운 이벤트가 숨어 있다. 한복의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 한복을 입은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야간 특별 관람이 가능하도록 한 것. 야간 특별 관람 시간은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입장마감 오후 9시)로, 궁중문화축전 기간에는 휴일 없이 야간 관람을 진행한다. 2. 경마장에서 말도 타고 말 이름도 지어보아요! <어린이 승마축제> - 기간 : 2016.5.5 ~ 2016.5.5- 위치 : 경기도 과천시 경마공원대로 107 (주암동)- 장소 : 렛츠런파크 서울(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  렛츠런파크 서울은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국내 최대 어린이 승마축제를 연다. 유소년 승마대회는 물론 말퍼레이드, 말운동회, 승마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돼 있다.  메인 행사는 유소년 승마대회다. 초등학교 선수 40명은 트랙경기에 출전하며 중학생 20명은 코스프레 장애물 경기에 출전할 예정이다. 특히 코스프레 장애물 경기의 경우 지난 4월 15일 개막한 렛츠런파크 승마대회의 결승전으로, 만화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의상을 따라 입는 코스프레를 가미한 경기다.  지난해에 이어 말운동회도 다시 열린다. 말에 대한 지식을 겨루는 ‘말 상식퀴즈’, 행운을 의미하는 편자를 고리에 던져 거는 ‘편자 던지기’, 장난감 인형 말을 타고 반환점을 돌아오는 ‘스틱홀스게임’과 조그마한 마차에 일행을 태우고 직접 말이 되어 끌어보는 ‘포니마차 끌기’까지 말을 소재로 한 창의적인 놀이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색행사로 ‘말 이름 짓기’도 함께 펼쳐진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도 출생 시 신고를 해야 하는데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이 직접 마음에 드는 말의 이름을 지어주는 의미 있는 행사다. 렛츠런파크 서울 관람대 앞 행사장에서 개최되며 참가자들에게는 멋진 응원봉도 증정한다. 3. 아이와 아빠가 함께 하는 ‘드론 조종 체험’ <2016 플레이쇼 키즈&키덜트> - 기간 : 2016.5.5 ~ 2016.5.8 - 위치 :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한류월드로 408 (대화동) - 장소 : 일산 킨텍스 제 2전시장 9A홀  종합 전시회 ‘2016 플레이쇼 키즈&키덜트’는 취미, 과학, 교육, 놀이, 체험을 테마로 구성된 전시회다.  방과 후 교육을 주제로 한 ‘제1회 애프터스쿨쇼’와 취미·레저 교육용 드론 전시회인 ‘제2회 드론쇼(Drone Show)’, 아이들의 재능 개발을 위한 창의과학체험 전시회인 ‘제2회 사이언스쇼(Science Show)’, 취미모형 전시회인 ‘제2회 하비쇼(Hobby Show)’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드론쇼에서는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한 위치제어기술, 충돌회피 등 최첨단 기능을 갖춘 드론의 공연을 볼 수 있다. 대형 행사장에서 음향과 조명장치를 활용한 국내 첫 ‘드론댄싱쇼’도 관람할 수 있다. 이외에도 로봇자동차 조종 체험, 동물 먹이주기 체험, 드론 조종 체험, 드론 안전교육 등 다채로움 체험프로그램 등이 준비돼 있다. 종이모형 카페에서 직접 운영하는 ‘종이로 만드는 세상(Paper Craft 2016)’과 국내 철도모형 전문기업에서 출품하는 ‘디오라마 철도 모형전’ 등 특별 전시관도 선보인다. 4. 내 취향에 맞춰 코스를 선택하는 축제 <C-Festival 2016 > - 기간 : 2016.5.4 ~ 2016.5.8 - 위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영동대로 513 (삼성동) - 장소 : 무역센터 전역 및 영동대로  ‘2016 씨-페스티벌’은 아시아 최대 ‘사진영상기자재전’부터 씨샵(C#), 아트토이, 문화놀이터, 수제맥주축제, 벌룬퍼레이드, 케이팝 콘서트 등으로 5일 내내 풍성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전시컨벤션코드’부터 ‘나들이코드’, ‘일상탈출코드’, ‘설렘코드’, ‘힐링코드’ 등 코스를 선택해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이 페스티벌의 특징이다.  5일 어린이날에는 초대형 벌룬 퍼레이드인 ‘C-퍼레이드’가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 동안 경기고부터 삼성역까지 코엑스 주변 영동대로 위에서 펼쳐진다. 약 30팀 1500여명이 참여하는 이번 행사는 대형 캐릭터 벌룬 퍼레이드 및 거리 공연, 화합의 피날레 공연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5. 어서와, 과자축제는 처음이지? <봉화 한국과자축제> - 기간 : 2016.5.5 ~ 2016.5.6- 위치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충재길 - 장소 : 봉화 내성천, 닭실마을, 후토스동산  제6회 한국과자축제가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천 체육공원과 후토스 동산에서 열린다. 가정의 달, 어린이 날에 맞춰 열리는 한국과자축제는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닭실마을 한과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닭실마을은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자리잡은 전통마을로, 닭이 알을 품은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찹쌀과 조청으로 만든 한과는 명품 한과로 유명하며, 이날 닭실마을 부녀회원들이 나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후토스 뮤지컬, 마술쇼, 칵테일쇼, 애완견쇼 등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과 4D체험관, 드론체험존, 인형탈 포토존 등이 운영된다. 또 각종 민속놀이를 체험하고 놀이기구를 타보는 즐거움도 있다.  추억의 7080학창시절 전시관에는 당시의 교실과 놀이도구, 군것질거리 등으로 꾸며 옛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했다. 이지연 인턴기자 julie31080@seoul.co.kr 
  • 스마트폰 없이 5분도 못 버티는 李대리 ‘노모포비아’

    스마트폰 없이 5분도 못 버티는 李대리 ‘노모포비아’

    인터넷 중독시 ADHD·우울증 실제 인간 관계보다 SNS 중시 열아홉 살 김군의 유일한 친구는 온라인 게임이다. 온라인 게임 속 가상공간은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만족감을 줬고, 특히 자신의 캐릭터가 남들보다 우월할 때 드는 만족감은 학교 성적에서 얻는 만족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시작해 잠들기 직전까지 했다. 성적표를 받아 들고서 충격에 빠져 컴퓨터의 모든 게임을 삭제했지만, 이번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클릭 한 번으로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지 않고 대화할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 새벽 2~3시까지 했다. 심각성을 인식한 부모님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김군은 인터넷 중독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상생활이 망가질 정도로 게임과 SNS에 빠진 지 1년여 만이었다. ●3~9세 유년기 인터넷 사용률 88%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97.2%)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정보통신 선진국이다.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전국 어디를 가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잘 구축된 인프라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독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인터넷이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인터넷 이용률은 82.1%로 이미 포화 상태다. 인터넷 이용률은 10~40대가 99%로 가장 높지만 60대 이상 노년층의 인터넷 이용률도 2013년 41.8%까지 상승했다. 부모가 아이를 달래려고 어릴 적부터 스마트폰을 보여 주면서 3~9세 유년기 인터넷 사용률이 이미 88%를 넘어서고 있다. 인터넷 중독의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스스로 정상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해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마트폰을 수시로 만지작거리거나 손에서 떨어진 상태로 5분도 채 버티지 못한다면 이미 모바일 중독과 금단현상을 일컫는 ‘노모포비아’(노 모바일폰 포비아)다. 이용 목적에 맞게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면 괜찮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몇 시간이 훌쩍 지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잠재적 위험 사용군에 속한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스마트폰 없이는 한순간도 견디기 어려우며 일상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지경이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고위험 사용자군에 속한다. 일반 사용자는 53.1%가 2시간 미만으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중독 위험군은 66.0%가 2시간 이상 사용한다고 한다. 인터넷중독 위험군의 9%는 하루 평균 6시간 이상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과다 사용하다 보면 우울과 불안 등의 중독 증상이 생긴다. 자극을 차단하면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끼고 같은 만족감을 얻고자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일종의 내성이 생긴다. 2014년 미국정신과협회 연례대회 자료집에 따르면 심하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주요 우울장애, 사회공포증, 강박장애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SNS나 인터넷 가상세계의 인간관계를 가족과 친구 등 주변 관계보다 더 소중히 여겨 주변 사람들에게 무관심해지고 게임 아이템을 사고자 100만원 이상을 쓰는가 하면 인터넷 이용을 못 하게 될 때 폭력적이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인터넷 중독 청소년 뇌기능 악영향 2014년 충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이 인터넷 중독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 결과는 인터넷 중독이 뇌 기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연구팀이 인터넷 중독 장애 진단을 받은 청소년과 일반 청소년에게 쉬운 문제를 풀게 하고 칭찬해 준 뒤 이들의 뇌 활동을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결과 일반 청소년은 두정엽, 측두엽, 보상 중추를 포함한 여러 영역에서 반응을 보였지만, 인터넷 중독 청소년들은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중독정신의학회의 ‘중독에 대한 100가지 오해와 진실’이란 자료를 보면 일반인과 인터넷중독자에게 게임 관련 사진을 보여 주고 뇌의 반응을 조사한 결과 인터넷에 중독된 뇌는 일반군에 비해 쾌락 중추와 연관된 부위에서 활성도가 증가했다. 이는 알코올이나 마약중독자에게 술 또는 마약 사진을 보여 줬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유사하다. ●스마트폰 안 쓰는 ‘프리존’ 만들기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을 절제할 수 없다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나만의 ‘프리존’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스마트쉼센터’가 권고하는 방법은 눈앞의 스마트폰을 종이 한 장으로 살짝 가려 두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안 보이게 하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습관적 사용을 줄일 수 있다. 보행 중, 운전 중, 회의 중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애플리케이션은 꼭 필요한 것만 내려받는다. 아이가 중독되지 않게 하려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접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거실 등 열린 공간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1회 20분 미만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등 규칙을 정한다. 스마트쉼센터는 “아이 스스로 스마트폰 사용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아이가 조절 능력을 기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무조건 컴퓨터를 끄거나 스마트폰을 뺏는 것보다 ‘30분까지만 하자’, ‘딱 한 게임만 더 하자’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아이와 약속한다. 메시지 답장이 늦게 와도 집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외로워서 혹은 심심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를 소홀하게 할 수 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36세 루크 월튼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레이커스 택한 이유

    36세 루크 월튼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레이커스 택한 이유

     왜 36세 젊은 코치는 첫 지휘봉을 휘두를 팀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낸 LA 레이커스를 선택했을까?  미국프로농구(NBA) 골든스테이트의 코치 루크 월튼이 LA 레이커스 새 사령탑으로 다년 계약을 맺었다는 발표에 적지 않은 팬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2순위로 레이커스에 지명된 뒤 2009년과 이듬해 우승 반지를 끼었던 친정 팀으로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있어 보여서다.  월튼 감독은 2012년 클리블랜드로 이적했다가 다음해 은퇴했다. 현역 시절 경기당 4.7득점에 2.8리바운드 2.3어시스트로 뛰어나지 않았다. 2014년부터 골든스테이트 코치로 일한 월튼 감독은 약 4년 만에 다시 ‘친정’으로 돌아오게 됐다.    월튼 감독은 이번 시즌 골든스테이트의 스티브 커 감독이 등 수술 후유증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감독대행을 맡아 39승4패, 특히 개막 후 24연승을 내달리게 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승진의 영광을 누렸다. 보스턴과 뉴욕 닉스 등 오라는 팀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것은 올 시즌 정규리그를 17승65패로 마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한 레이커스였다.    미국 ESPN의 레이모나 셸번 기자는 1일 커 감독이 버클레이 힐스의 자택으로 월튼을 포함한 모든 코치와 가족들을 초청해 골든스테이트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4강) 상대가 결정되는 포틀랜드-LA 클리퍼스의 1리운드 6차전 중계를 함께 시청하면서 월튼이 레이커스 사령탑 제안을 수락했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저녁 파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는데 월튼은 자동차가 고장 나 한 시간 정도 늦어졌다.   그는 그저 미소만 흘렸고 모두가 웃으며 반겼다. 사과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게 루크 월튼이다. 지난해 수석코치 앨빈 젠트리는 “그처럼 뼛속까지 편안한 이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게 그의 장점이다. 68세 수비 코치 론 애덤스는 물론 20세 루키 케본 루니에게도 편하게 말을 건넨다. 성격이 불같은 드레이몬드 그린에게 소리를 질러 야단칠 수 있는 것도, 내성적이며 자기비하가 심한 앤드루 보거트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것도 이런 성격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최고의 팀인 골든스테이트를 떠나 최악의 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것도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셸번은 지적했다. 바이런 스콧 감독이 지휘했던 레이커스는 너무 불안정하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절망적인 팀이다. 2011년 필 잭슨 감독이 떠난 뒤 18~24개월 간격으로 이런저런 얼굴로 사령탑을 계속 교체했지만 안정성도 없고 전망도 불확실하고 특출한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에 의존하는 팀에서 그닥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월튼 감독은 플레이오프를 마무리하는 대로 레이커스 감독 직을 맡을 계획인데 그의 편안한 리더십이 레이커스를 다음 시즌부터 변모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커버스토리] 유치원쌤… 수간호사…브라 기획자… 이건, 남자의 길

    [커버스토리] 유치원쌤… 수간호사…브라 기획자… 이건, 남자의 길

    남성보다 뛰어난 ‘알파걸’이 속속 등장하는 반면 여성 중심의 직업에 뛰어든 ‘알파맨’들도 늘고 있다. 기존의 성 역할을 넘어선 이들은 직업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세간의 편견쯤은 충분히 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유치원 교사, 간호사, 여성 속옷회사 직원 등 전통적으로 ‘금남의 구역’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남성 3명을 만났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3년차 유치원 교사 이택민 “남자 선생님 꺼린다고 15번 퇴짜, 겨우 합격했더니 엄마들 항의도, 이젠 서로 아이 맡아 달라 하세요 ” “16차례나 지원해서 유치원 교사가 됐죠. 지금은 저랑 결혼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생길 정도로 인기 만점이에요.” ●전국 남자 유치원 교사 853명… 전체의 1.8%에 불과 지난 20일 경기 성남의 유치원에서 만난 이택민(28)씨는 이곳에 온 지 3년 만에 동네 유명인사가 됐다. 처음에는 남자 교사여서 일부 부모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기우였다는 걸 다들 깨달았다고 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유치원 교사 5만 998명 중 남자는 853명(1.8%)에 불과하다. 이씨는 2007년 가천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했다. 59명의 신입생 중 유일한 남성이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정한 길인데 여자들의 틈바구니에 있으니까 쉽게 소외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학생회장을 자청했고 잘 버텨냈죠. 그런데 진짜 난관은 취업이었어요.” ●첫해 학부모 2명 “여교사 반으로 아이 옮겨 달라” 요구 이씨는 유치원 15곳에 원서를 넣었다가 다 떨어졌다. 7곳은 서류에서 탈락했고, 8곳은 면접에서 퇴짜를 맞았다. “부모들이 남자 교사는 꺼린다”고 대놓고 탈락시킨 이유를 말하는 원장도 있었다. 결국 16번째 지원을 해 지금의 유치원에 들어왔다. 하지만, 첫해에 학부모 중 2명이 “내 아이는 여교사 반으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남자 교사들이 여자 교사보다 섬세하게 신경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많은 건 아직은 어쩔 수 없죠. 여자아이를 둔 부모 중에는 성희롱 등 극단적인 상황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결국 시간을 두고 직접 보여드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거죠.” ●매일 전화상담하고 화장실 지도는 여교사에게 부탁… 이젠 아빠들 육아 멘토 이씨는 매일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알려주고, 수시로 상담을 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화장실 지도는 여성인 부담임 교사에게 맡겼다. 3년차가 된 올해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한 엄마가 “우리 아이를 이 선생님 반으로 배정해 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프렌대디’(프렌드+대디·친구 같은 아버지)가 주목받는 사회 분위기에 그를 찾는 아빠들도 늘고 있다. “한번은 아빠와 함께 가는 소풍을 기획했더니 아빠들이 아이 교육법에 대해 열성적으로 묻더라구요. 남자 교사라서 좀더 편하게 물어본다고 하시는데, 엄마 양육에서 부모 양육으로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남자 유치원 교사라고 해서 억지로 여성스러움을 연출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전 중3 때까지 철인3종 경기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동했어요. 여성이 주류인 직업이니 세밀함 등 여성의 장점을 배우려 하지만 억지로 여성스러워지면 아이들이 먼저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결국 유치원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수간호사 김장언 “친근한 남자 간호사 더 반기는 세상, 중요한 건 성별 아닌 삶에 대한 태도. 병실서 일할 후배 많아지길 바라죠 ” “예전엔 남자 간호사를 보면 다들 의사로 잘못 알았죠. 하지만 지금은 간호대학 교수 중에도 남자들이 있는걸요.” ●올 간호사 합격자 10%가 남자… 10년 새 10배 늘어 지난 22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김장언(57) 수간호사는 “중년 이상의 환자들은 일부러 남자 간호사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남자여서 농담하기도 편하고 이래저래 친근하게들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4년만 해도 간호사 국가시험 합격자 중 남성은 100명에 1명꼴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는 합격자 10명 중 1명이 남성이다. 10여년 사이에 비중이 얼추 10배가 된 셈이다. 지난 2월에는 전국의 남자 간호사가 1만명을 넘어섰다. 2013년에는 대한남자간호사회도 창립됐다. 이 모임의 초대 회장이 김 수간호사다. ●남자 간호사는 이미 병원 시스템에 정착… 새 영역 개척할 때 “후배들에게 아직 우리 분야는 개척할 부분이 많으니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해 줍니다. 이제는 남자 간호사가 병원 시스템에 정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일하는 어린이병원에 남자가 간호사로 일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죠.” 하지만 여전히 남자 간호사들은 중환자실이나 수술실에 주로 배치된다. 환자나 보호자와 소통하는 병실 근무는 아직 여자 간호사가 더 능숙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강한 탓이다. 그는 남녀가 서로 다른 방식의 섬세함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성별과 관계없이 간호사는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환자를 돕는 직업”이라며 “중요한 건 성별이 아니라 환자를 대하는 태도”라고 강조했다. “초보 간호사 시절 12세 소년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어요. ‘차라리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2~3년이라도 더 살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죠. 한동안 방황했어요. 결국 삶과 죽음은 인간의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지요. 그래서 순간마다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병역이 남자 간호사 발목… 군의관처럼 전공 살리는 군 보직 생기기를 김 수간호사는 남자 간호사에게 가장 힘든 것은 병역 문제라고 했다. “간호학과는 의대와 마찬가지로 학기마다 시간표가 짜여 있어 연속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군의관과 같이 전공을 살리는 군 보직이 없어서 일반 병사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졸업 후에 군대에 가면 취업 전 공백이 생겨서 더 부담이 됩니다.” 그는 이 부분이 후배 남자 간호사들을 위해 가장 해결해 주고 싶은 숙제라고 했다. “제가 처음 간호사를 시작할 때 멘토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죠. 그래서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남자들이 더 많이, 더 활발히 간호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남영비비안 상품기획부 차장 최세훈 “란제리 패션쇼서 얼굴 못 들던 초보, 브래지어 사이즈 척척 꿰는 전문가로, 변태 오해도… 하지만 다 패션입니다”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 그리고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체육교육과를 나와 20년 가까이 여성 속옷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성 속옷을 만들다 보면 당황스러운 일도 있지만, 어차피 다 같은 패션 아닌가요.” ●여성 몸매 보정해 주는 기능성 속옷 담당… 직원 10명 중 3명은 남자 최세훈(42) 남영비비안 상품기획부 차장은 브래지어, 팬티, 슬립 등 여성의 몸매를 보정하는 기능성 속옷을 담당하고 있다. 디자인실과 조율해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한 뒤 매장에서 판매하는 전 과정을 관리하는 게 그의 업무다. 1998년부터 무역회사에서 여성 속옷을 수입하는 일을 하다가 2009년 이곳으로 옮겼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본사 쇼룸에서 만난 최 차장은 “1998년 첫 출장으로 프랑스 파리 란제리쇼에 갔을 때는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여성 모델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지금은 남자 직원의 저변이 넓어져 10명 중 3명은 됩니다.” ●처음엔 매장도 못 들어가고 쇼윈도 너머로 훔쳐봐 자기 의지에 따라 업무 분야를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어서 주변에서는 그가 여성 속옷을 기획한다고 하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2000년에 홈쇼핑 방송의 여성 란제리 홍보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그걸 본 친구가 ‘야, 지금 TV에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와서 속옷을 판다’고 연락을 했더군요. 사실 처음에는 시장조사를 다닐 때 부끄러워서 속옷 매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쇼윈도 너머로 흘끔흘끔 훔쳐보며 조사를 했죠.” 2013년 10명 남짓한 해외시장 조사단의 막내로 일본 출장을 다녀오다가 세관 심사를 받을 때는 ‘변태 성욕자’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커다란 백팩에 한가득 여성 속옷 샘플을 넣었거든요. 인천공항 검색대에서 제 가방을 열어본 세관 직원이 여자 속옷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더군요.” ●속옷 디자인 여전히 금남지대 … 남녀 합작하면 최고의 작품 나올 것 지금은 여성들에게 속옷 제대로 입는 법,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를 고르는 법 등을 조언해 주는 전문가로 대접받는다. 착용감 등 여성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은 가족, 여성 친구, 고객에게 직접 물어본다. “저는 남자니까 자연히 고객에게 조언을 구하는 태도로 접근하죠. 그런데 그런 점이 오히려 고객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기획이나 마케팅 등이 아닌 속옷 디자인 부서에는 아직 남자가 진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 속옷 디자인에도 남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여직원들은 속옷의 작은 부분들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만, 남자들은 전체적인 느낌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양쪽이 합쳐졌을 때 최상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정의당 김종대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정의당 김종대

    3월 초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이 발표되자 국방부가 아연 긴장했다. 14~16대 국회에서 국방위 의원들의 참모로, 이후 청와대, 언론 등에서 20여년 동안 한 우물만 판 ‘민간 군사 전문가’ 김종대 전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의 존재 때문이다.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김 당선자의 일성은 “방산 비리 척결”이다. Q. 왜 그동안 몸담던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정의당인가. A. 진짜 민주 정당. 심상정 대표가 지난해 7월 대표로 선출되고 나서 처음 만난 외부 인사가 나였다. 진보가 여태껏 꿈꾸지 못했던 좋은 자산을 갖고 있다며 함께하자고 했다. 공교롭게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같은 날 점심을 먹자고 했었다. 고심 끝에 열흘 전 과천(집)까지 찾아와 설득한 심 대표를 택했고 9월 1일 입당했다. 민주주의에 충실한, 정당다운 정당은 정의당이라고 생각했다. Q. 이념적 정체성은. A. 온건 진보. 10이 보수, 1이 진보면 3 정도가 아닐까. 북한에 할 말은 한다. 우리 당에도 북한 눈치 보는 세력은 없다. 3대 세습, 핵실험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명백하게 반대라고 말한 적은 없다. 신중히 검토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 Q. 왜 정치를 하는가. A. 약자 대변. 내가 있어야만 대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 군 성범죄 피해자나 비무장지대 지뢰 사고를 당한 곽 중사의 어머니 같은 분들이 제보를 해 온다. 정치인들은 예산 주무르고 위신 높이는 걸 좋아하지, 약자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건 귀찮아한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연민이 바로 내 정치다. Q. 어떤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은가. A. 국방개혁 전문가. 20대 국회에서 더민주는 국방위 지원자가 단 한명도 없다고 한다. 야권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이 이번 선거에서 전멸하다시피 했다. 정의당의 초선 의원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야권의 안보 역량이 결코 여당에 비해 밀리지 않도록 교두보를 쌓겠다. 전문성은 물론 색깔론에도 휘말리지 않는 내성을 갖도록 하겠다. Q. 국방개혁의 화두는. A. 민간 국방부 장관. 민간인 국방부 장관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여전히 안보는 보수 이데올로기의 전유물이고 국민은 안보에서 배제돼 있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든가 폐쇄성을 극복하려면 안보민주화가 시급하다. Q. 최대 관심사는. A. 방산 비리 척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안보 위기를 틈타 긴급 소요로 들어온 무기사업에 비리 개연성이 크다. 기존 국방계획을 변경시켜 한탕주의 세력들이 긴급 소요라는 명분하에 끼워 넣은 사업들은 대부분 부실 아니면 비리다.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변호사를 보좌관으로 뽑았다. Q. 정치적 롤모델은. A. 노무현 전 대통령. 세간에서 말하듯 패거리 짓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을 지칭하는 친노(친노무현)는 아니다. 다만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범노(범노무현)다. 글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사진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프로필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제14·15·16대 국회 국방위원회 보좌관,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국방부 병영혁신위원회 위원, 월간 디펜스21플러스 발행인 겸 편집인,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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