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내성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성병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기업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나체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택시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069
  • “실종 해병대원 발견해 인양중…심정지 상태”

    “실종 해병대원 발견해 인양중…심정지 상태”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던 해병대원이 야간 수색 도중 발견됐다. 19일 경북도소방본부와 해병대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8분쯤 경북 예천군 내성천 고평교 하류 400m 지점에서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일병을 수색 당국이 발견해 인양 중이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특수구조단과 드론팀이 야간 수색을 하던 중 A일병을 확인하고 인양을 하고 있고 사망 여부는 병원에서 판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A일병은 이날 오전 9시 10분쯤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급류에 휩쓸리며 실종됐다. A일병이 실종되자 A일병 구조를 위해 이날 예천 지역 모든 실종자 수색은 일시 중단됐다. 한편 소방 당국 드론팀은 이날 오전 10시 35분쯤 개포면 동송리 경진교 부근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을 발견했다. 한때 해당 시신이 A일병으로 알려졌으나 경찰과 안동병원 등에서 확인한 결과 지난 15일 용문면 제곡리 한천에서 대피 도중 유실된 도로에서 물에 휩쓸린 70대 실종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 구명조끼도 없이 실종자 수색… 해병대 1명 급류 휩쓸려 실종

    구명조끼도 없이 실종자 수색… 해병대 1명 급류 휩쓸려 실종

    19일 경북 예천군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내성천 급류에 휩쓸린 해병대원은 구명조끼를 비롯해 아무런 구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병대 1사단 측은 구명조끼가 제공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에 들어갔을 때 깊지 않았으며 소방당국과 협의가 이뤄진 하천간 도보 수색 활동이었다”면서 “유속이 낮은 상태에서 지반이 갑자기 붕괴할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날 오전 보문교 일대 내성천에 투입된 장병들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인간 띠’를 만들어 강바닥을 수색했다. 일반적인 수난 사고 때 119구조대가 활용하는 ‘로프’ 없이 사람과 사람이 일렬로 서서 물속을 걸어 다니는 수색 방법이다. 사고 당시 보문교 부근에는 해병대원 39명이 있었다. 이들은 일렬로 4m 정도 거리를 두고 9명씩 짝을 맞춰 장화를 신고 수색에 투입됐다. 최초 신고자라고 밝힌 한 주민은 “내성천은 모래 강이라서 보통 강과는 다르다”며 “계곡처럼 갑자기 3m씩 아래로 빠지는데 그 아래가 펄이라서 강가에서나 도보 수색을 해야 하는데 왜 가운데까지 들어가는지 지켜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종된 해병대원의 모친은 현장을 찾아 “물살이 셌는데 구명조끼는 입혔느냐,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왔는데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느냐”며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 왜 구명조끼를, 물살이 얼마나 센데… 이거 살인 아니냐, 살인”이라고 절규했다. 일각에서는 실종자 구조를 위해 동원된 해병대, 경찰, 소방당국 등 기관별로 경쟁이 벌어지며 무리한 수색을 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해병대 병사 실종은 무리한 임무 투입으로 발생한 인재”라고 밝혔다. 한편 예천군 문화체육센터에서 임시 거주하는 이재민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황기순 할머니는 “복구를 한다 해도 집으로 돌아가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재난방송을 지켜보다 수색 중이던 해병대원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한 박윤희 할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믿기지 않는다는 듯 “우짜노. 그런 일이 왜 생겼냐. 우리 손주도 군대에 있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예천군에 따르면 ‘트라우마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이재민은 문화체육센터에 머무르는 총 44명 중 5명이나 됐다. 예천군 보건소 관계자는 “초기 상담을 한 결과 거주지와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는 분이 많았다”며 “상담군의 10% 이상이 고위험으로 나온 건 매우 높은 비중”이라고 말했다.
  • 한화진 “오송 참사 전 3차례 경보… 文정부 때 하천 정비 안 됐다”

    한화진 “오송 참사 전 3차례 경보… 文정부 때 하천 정비 안 됐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19일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하천 정비사업이 거의 안 됐다”면서 획기적인 하천 정비·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지난 정부에서 시행했던 ‘물관리 일원화’ 정책을 대형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 환경부로 일원화했던 수자원 관리를 다시 국토교통부로 재이관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한 장관은 이날 경북 예천군 내성천 홍수취약지구를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시민단체 반대가 컸던 지난 정부에서 (지방)하천 정비 사업이 거의 안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지방이양일괄법이 시행된 후 지방하천의 경우 국고 보조금 없이 지방세로 준설 등 정비 사업을 해야 하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라면서 “현 정부에서는 지방하천을 포함해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야기한 미호강 범람의 책임 소재에 대해 한 장관은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게 (지자체에) 미호강 관련 경보를 세 차례 보냈음에도 인명피해가 발생해 안타깝다”고 했다. 댐과 하천 수위를 보며 홍수특보-홍수주의보-홍수경보 등 예경보를 환경부가 적시에 보내는 업무에선 차질이 없었다는 뜻이다. 한 장관은 “괴산댐은 월류 가능성을 예측해 2시간 전 주민 대피 명령을 통보했다”고 예를 들었다. 한 장관의 이날 설명은 지하차도 참사를 야기한 책임 소재를 두고 환경부와 지자체 간 공방이 거듭되는 가운데 나왔다. 미호강은 국가하천으로 환경부가 관리 주체이지만, 환경부는 국가하천 중 5대강 본류와 일부 국가하천만 직접 관리하고 나머지는 국고를 지원하며 지자체에 위임한다. 미호강은 환경부가 충북도에 위임하고 충북도가 다시 청주시에 재위임하는 형식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참사의 원인이 지난 정부의 잘못된 물관리 일원화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점증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환경부가 전국 지류·지천, 하수 관리 전반을 담당할 역량이 되는지 많은 의문이 제기됐지만 이번 폭우 사태를 겪으며 그 의문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물관리 업무를 제대로 하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장관은 이 자리에서 “명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관리 일원화 정부조직법은 2017년 5월 논의가 점화됐고, 2018년 6월 공포·시행됐다. 국토부가 수량 관리를, 환경부가 수질 관리를 맡았는데 법 개정 이후 하천 관리를 제외한 수량·수질·재해예방 등 대부분 물관리 기능이 환경부로 통합됐다. 2020년 12월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하천 관리 기능까지 이관되며 물관리 일원화가 마무리됐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환경부의 물관리 역량에 대한 비판으로 확산되며 수자원 관리의 국토부 재이관 논의가 다시 제기되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물관리 일원화 정책을 되돌리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여소야대 속에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이 이번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을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다만 20일로 예정된 4대강 보 철거 관련 감사원의 공익감사 발표가 물관리 업무 재이관 주장에 힘을 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속보]“실종 해병대원 발견해 인양중…심정지 상태”

    [속보]“실종 해병대원 발견해 인양중…심정지 상태”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던 해병대원이 야간 수색 도중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야간 수색 작업은 내성천 보문교에서부터 오천교를 지나 조선시대 세워진 사적지 선몽대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19일 경북도소방본부와 해병대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8분쯤 경북 예천군 내성천 고평교 하류 400m 지점에서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일병을 수색 당국이 발견해 인양 중이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특수구조단과 드론팀이 야간 수색을 하던 중 A일병을 확인하고 인양을 하고 있고 사망 여부는 병원에서 판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A일병은 이날 오전 9시 10분쯤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급류에 휩쓸리며 실종됐다. A일병이 실종되자 A일병 구조를 위해 이날 예천 지역 모든 실종자 수색은 일시 중단됐다.
  • 이재민 트라우마 예사롭지 않다… “고위험 10% 이상”

    이재민 트라우마 예사롭지 않다… “고위험 10% 이상”

    ‘나는 자연인이다’ 출연 고 장병근씨, 아내와 함께 장례 이재민 황기순씨 “복구돼도 집 돌아가기 겁나…무너질 것 같아” 군 보건소 “거주지·경제 손실 걱정 많아… 고위험군 별도 상담 지원”19일 오전 경북 예천읍 내 한 장례식장. 건물로 들어서니 종편 MBN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고(故) 장병근씨의 궂은일을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시간 탓인지 접객실은 텅비어 있었다. 조문객이 없는 장례식장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장씨가 생전 활동한 모임 등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조화 예닐곱개만이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빈소에는 부모를 동시에 잃은 장씨의 맏아들과 딸, 외국인 며느리가 할 말을 잃은 듯 고개를 숙인 채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다. 영정 자리에는 장씨와 그의 아내 전모씨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옆쪽으로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김형동 국회의원이 보낸 조기가 보였다. 아들은 인터뷰 요청에 “아버지와 어머니 장례를 동시에 치르다보니 겨를이 없다. 장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언론에서 도와달라”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장씨와 아내 전씨는 지난 15일 산사태로 실종됐다. 장씨는 18일 119특수구조단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으며, 매몰됐던 아내 전씨 시신은 앞서 16일 수습됐다. 예천군 문화체육센터에서 임시거주하는 이재민들의 트라우마도 만만치 않다. 이곳에서 만난 황기순 할머니는 “군청 직원이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챙겨줘 큰 불편함은 없다”면서도 “복구를 한다해도 집으로 돌아가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그는 “집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함이 가장 크다”며 “현장에 다녀 온 주민에게서 산사태로 지반이 많이 약해졌고, 살던 집도 안전하지 않다는 얘길 들었다”고 전했다. 재난방송을 지켜보다 수색 중이던 해병대원이 실족,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한 박윤희 할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믿기지 않는다는 듯 “우짜노. 그런 일이 왜 생겼냐. 우리 손주도 군대에 있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예천군에 따르면 ‘트라우마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이재민은 문화체육센터에 머무르는 총 44명 중 5명이나 됐다. 예천군 보건소 관계자는 “정신건강에 대한 초기 상담을 한 결과 거주지와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상담군의 10% 이상이 고위험으로 나온 건 매우 높은 비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살 위험성이 높은 이재민을 포함, 고위험군에 대해선 연계기관 상담 등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오전 9시 10분쯤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하던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또 수색 당국은 이날 오전 11시쯤 예천군 개포면 동송리 경진교 부근에서 70대 A씨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
  • “구명조끼 비싼가요, 왜 안 입혔어요”…실종 해병대원 부모 오열

    “구명조끼 비싼가요, 왜 안 입혔어요”…실종 해병대원 부모 오열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왜 구명조끼를…. 물살이 얼마나 센데, 이거 살인 아닌가요.” 경북 예천에서 집중 호우·산사태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해병대 장병 부모는 아들이 실종된 현장을 찾아 오열했다.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일병은 19일 오전 9시 10분쯤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렸다. 함께 물에 빠졌던 2명은 수영을 해서 빠져나왔으나 A일병은 20미터가량 얼굴이 보인 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떠내려가다가 사라졌다고 장병들은 전했다. 사고 당시 해병대원들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연합뉴스에 따르면 A 일병의 부모는 이날 오후 12시 30분쯤 실종 사고가 발생한 예천군 호명면 보문교 일대를 찾았다. A 일병의 아버지는 중대장에게 “물살이 셌는데 구명조끼는 입혔냐,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왔는데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냐”며 “이거 살인 아닌가요 살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명조끼도 안 입히는 군대가 어딨느냐. 기본도 안 지키니까”라며 “어제 저녁에 (아들과) 딱 2분 통화했다. 물 조심하라고. 아이고 나 못 살 겄네”라고 절규했다. A 일병의 어머니는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며 “내 아들 어디 있나. 가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해병대에 가고 싶어 하더니”라며 주저앉았다. 실종된 A 일병을 찾기 위해 이날 예천 지역 모든 실종자 수색은 일시 중단됐다. 소방 당국 드론팀이 오전 10시 35분쯤 개포면 동송리 경진교 부근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한때 ‘A 일병이 발견됐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확인 결과 해당 시신은 지난 15일 용문면 제곡리 한천에서 대피 도중 유실된 도로에서 물에 휩쓸린 70대 실종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 [포토] 해병대원 수색작전 중 실종, 참담한 해병대원들

    [포토] 해병대원 수색작전 중 실종, 참담한 해병대원들

    집중 호우·산사태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 장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19일 해병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10분께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하던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수색 중이다. 전날부터 수색 현장에 투입된 A 일병은 동료 대원들과 이날 오전부터 대열을 맞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다가 갑자기 강물에 빠졌다. 함께 물에 빠졌던 2명은 수영을 해서 빠져나왔으나 A 일병은 급류에 떠내려갔다고 장병들은 전했다. A 일병이 실종되며 A 일병 구조를 위해 이날 예천 지역 모든 실종자 수색은 일시 중단됐다.
  • 해병대원, 예천서 실종자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

    해병대원, 예천서 실종자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

    집중 호우·산사태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 장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19일 해병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10분쯤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하던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119구조대가 수색 중이다. 전날부터 수색 현장에 투입된 A일병은 동료 대원들과 이날 오전부터 대열을 맞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다가 갑자기 강물에 빠졌다. 함께 물에 빠졌던 2명은 수영을 해서 빠져나왔으나 A일병은 20미터가량 얼굴이 보인 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떠내려가다가 사라졌다고 장병들은 전했다. 해병대 한 관계자는 “다른 장병들은 배영해서 빠져나왔는데 배영을 그 순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눈물을 보였다. 해병대 1사단 신속기동부대는 경북 예천 호우피해 복구에 투입된 가운데 전날부터 본격 수색에 나섰다. 해병대 1사단에 따르면 이 부대는 전날 예천의 한천 일대에 475명, 석관천 일대에 388명, 내성천 하류에 43명을 투입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경진교에서 삼강교 구간 19㎞에는 드론 2대와 소형고무보트(IBS) 8척을 투입했다.
  • [속보]해병대원, 예천서 실종자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

    [속보]해병대원, 예천서 실종자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

    집중 호우·산사태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 장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19일 해병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10분쯤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하던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119구조대가 수색 중이다. 전날부터 수색 현장에 투입된 A 일병은 동료 대원들과 이날 오전부터 대열을 맞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다가 갑자기 강물에 빠졌다. 함께 물에 빠졌던 2명은 수영을 해서 빠져나왔으나 A 일병은 20미터가량 얼굴이 보인 채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떠내려가다가 사라졌다고 장병들은 전했다. 해병대 한 관계자는 “다른 장병들은 배영해서 빠져나왔는데 배영을 그 순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눈물을 보였다.
  • 봉화·예천 물난리에 여름축제 줄줄이 취소

    봉화·예천 물난리에 여름축제 줄줄이 취소

    봉화군 “수해 복구에 행정력 집중”은어축제·산타마을 개장식 취소산사태 난 영주도 시원축제 접어 예천 등 경북 북부에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인해 막심한 인명 피해가 나면서 지역 시군들이 여름축제를 취소 또는 축소 운영한다. 봉화군은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봉화읍 내성천 일원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제25회 봉화은어축제’를 취소한다고 18일 밝혔다. 봉화은어축제가 취소된 것은 지난 2008년 수해로 취소된 이후 15년 만이다. 봉화군은 22일 소천면 분천리 분천산타마을 일원에서 열 예정인 ‘2023 한여름 산타마을 개장식’도 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일부 전시와 관람 프로그램은 운영된다. 13일부터 15일까지 400㎜ 가까운 물폭탄이 쏟아진 봉화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춘양면 서동리 주택과 학산리 주택에서 4명이 숨졌고 주택침수가 잇따랐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수해를 입은 군민들이 하루빨리 일상 회복을 할 수 있도록 복구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영주시도 29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가흥동 서천둔치에서 개최하려던 ‘2023 영주 시원(ONE) 축제’를 취소했다. 시원(ONE) 축제는 영주시가 2013년 중단한 수박축제를 올해 복원, 새롭게 기획한 여름 대표 축제다. 영주에서는 이번 폭우에 따른 산사태로 주택 12채가 파손됐다. 특히 풍기읍 삼가리와 장수면 갈산리에서 4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문경시는 22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흥덕동 영강체육공원 야외공연장에서 개최 예정인 ‘영강 어린이 물놀이 축제’를 잠정 연기했다. 문경문화예술회관이 26~27일 열기로 ‘한여름 밤의 트롯 축제’도 무기한 미뤘다. 예천군은 21~22일 열 계획이던 ‘예천 버블런’ 행사를 잠정 연기했다. 올해 2회째를 맞은 예천 버블런은 거품으로 가득 찬 2㎞ 길이의 패밀리파크 물놀이장과 송평천 코스를 통과하는 이색적인 축제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이 행사는 애초 14일, 15일 이틀간 경북도청 신도시 내 패밀리파크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가 장마로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영덕군은 인근 시군이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것과 관련, 올해 영덕황금은어축제를 취소했다. 군은 코로나19 사태 외에는 매년 7월 말쯤에 영덕읍 오십천 일원에서 영덕황금은어축제를 열었다. 한편 18일 오후 4시 기준 예천·영주·문경 등에 내린 극한 호우로 경북에서 예천 12명, 영주 4명, 봉화 4명, 문경 2명 등 모두 22명이 사망했고, 예천에서 5명이 실종됐다.
  • 매일 커피 2잔 넘게 마신 사람, ‘고혈압 위험’ 낮았다

    매일 커피 2잔 넘게 마신 사람, ‘고혈압 위험’ 낮았다

    이대 연구팀, 1만여명 두 그룹 나눠 분석2잔 초과 그룹, 고혈압 위험 16% 낮아 하루에 커피 2잔을 초과해 마신 사람이 2잔 이하로 마신 사람보다 고혈압 위험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화여대 의대 하은희(환경의학교실)·편욱범(순환기내과) 교수 공동 연구팀은 2012∼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19세 이상 1만 2133명(남 5303명·여 6830명)을 대상으로 커피 섭취량과 고혈압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8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임상 고혈압’(Clinical hypertension) 최신호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연구 대상자를 하루 커피 섭취량에 따라 2잔 이하 그룹(9260명)과 2잔 초과 그룹(2873명)으로 나눠 고혈압 유무를 살폈다. 분석 시점을 기준으로 전체 대상자의 19.4%(2359명)가 고혈압 상태였다. 고혈압은 수축기 혈압이 140㎜Hg(밀리미터 머큐리)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90㎜Hg 이상인 경우, 항고혈압 약물로 치료 중인 경우로 정의됐다. 연구 결과 하루에 2잔이 넘는 커피 섭취량은 고혈압과 반비례 관계를 보였다. 연구팀은 하루 커피 섭취량이 2잔 넘는 사람의 고혈압 위험은 2잔 이하로 마시는 사람보다 16% 낮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연관성은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서 두드러져 최대 24%까지 고혈압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관찰됐다. 커피의 주요 성분인 카페인은 단기적으로는 교감 신경계 활성화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생산 증가 등의 부작용으로 혈압 상승을 부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커피에 들어있는 풍부한 섬유질과 폴리페놀 등의 주요 성분이 카페인에 의해 유발된 승압 작용에 대한 내성과 항염증 작용 등을 통해 오히려 더 유익한 효과를 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커피 섭취가 이미 발생한 고혈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아직 없고, 아직 알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는 만큼 커피를 마시더라도 하루 3잔 이하로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커피와 고혈압 발생의 인과관계를 본 게 아니라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인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하루 2잔이 넘는 커피 섭취가 고혈압과 반대의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소방 “예천 하천서 실종자 추정 시신 1구 수습”

    소방 “예천 하천서 실종자 추정 시신 1구 수습”

    경북 예천군에서 폭우로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18일 경북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예천군 용문면 제곡리에서 실종자로 추정되는 A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실종자 수색 지원에 나선 해병대원이 제곡리 하천 일대를 수색하던 중 A씨를 수습했다. 수색 당국은 “A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병대 1사단 신속기동부대는 경북 예천 호우피해 복구에 투입된 가운데 이날부터 본격 수색에 나섰다. 해병대 1사단에 따르면 이 부대는 이날 예천의 한천 일대에 475명, 석관천 일대에 388명, 내성천 하류에 43명을 투입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경진교에서 삼강교 구간 19㎞에는 드론 2대와 소형고무보트(IBS) 8척을 투입한다. 오후에는 회룡포 일대에 상륙돌격장갑차(KAAV) 3대를 투입해 하천 주변을 탐색한다.
  • 물폭탄 맞은 경북 북부 시군, 여름축제 줄줄이 취소·연기

    물폭탄 맞은 경북 북부 시군, 여름축제 줄줄이 취소·연기

    경북 북부에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막심한 가운데 지역 시군들이 개최 예정이던 여름축제를 줄줄이 취소 하거나 축소 운영하기로 했다. 봉화군은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봉화읍 내성천 일원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제25회 봉화은어축제’를 전면 취소한다고 18일 밝혔다. 봉화은어축제가 취소된 것은 지난 2008년 수해로 취소된 이후 15년 만이다. 또 22일 소천면 분천리 분천산타마을 일원에서 열 예정인 ‘2023 한여름 산타마을 개장식’도 전면 취소했다. 다만 일부 전시와 관람 프로그램은 운영된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400㎜ 가까운 물폭탄이 쏟아진 봉화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춘양면 서동리 주택과 학산리 주택에서 4명이 숨졌고 주택침수가 잇따랐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수해 피해를 입은 군민들이 하루빨리 일상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수해복구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영주시도 오는 29일부터 8월 6일까지 가흥동 서천둔치에서 개최하려던 ‘2023 영주 시원(ONE) 축제’를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 ‘시원(ONE) 축제’는 영주시가 2013년 추진하다 중단 한 여름 수박축제를 올해 다시 복원, 새롭게 기획한 여름 대표 축제다. 영주에서는 이번 폭우에 따른 산사태로 주택 12동이 파손됐다. 특히 풍기읍 삼가리와 장수면 갈산리 주택에서 4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문경시는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시내 흥덕동 영강체육공원 야외공연장에서 개최 예정인 ‘영강 어린이 물놀이 축제’를 잠정 연기했다. 문경문화예술회관이 오는 26~27일 열기로 ‘한여름 밤의 트롯 축제’도 무기한 연기했다. 예천군은 오는 21~22일 열 계획이던 ‘예천 버블런’ 행사를 잠정 연기했다. 올해 2회째를 맞은 예천 버블런은 거품으로 가득찬 2㎞ 길이의 패밀리파크 물놀이장과 송평천 코스를 통과하는 이색적인 축제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이 행사는 애초 지난 14일, 15일 이틀간 경북도청 신도시 내 패밀리파크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가 장마로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영덕군은 인근 시군이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것과 관련, 올해 영덕황금은어축제를 취소했다. 군은 코로나19 사태 외에는 매년 7월 말쯤에 영덕읍 오십천 일원에서 영덕황금은어축제를 열었다. 한편 18일 오전 6시 기준 예천·영주·문경 등에 내린 극한 호우로 19명(예천9, 영주4, 봉화4, 문경2)이 사망하고 8명(예천)이 실종됐다.
  • [단독] 그는 왜 스위스서 죽음을 준비하나 [금기된 죽음, 안락사②]

    [단독] 그는 왜 스위스서 죽음을 준비하나 [금기된 죽음, 안락사②]

    <2> 그린라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 ‘죽음의 선택권’이 주는 희망 “나답게 살고 싶어 스위스로 간다” 10명. 2016년부터 최근까지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한 한국인의 숫자다. 그리고 300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조력사망을 신청하기 위해 스위스 조력사망 지원 단체에 가입했다. 그들은 왜 8770㎞를 날아 그 먼 곳으로 죽기 위해 떠나려는 걸까.서울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간 스위스 조력자살 지원 단체 가운데 하나인 디그니타스에 가입한 한국인 회원 2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 중에는 암, 신부전, 뇌종양,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의 질환을 앓는 사람도 있었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했지만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가 존엄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데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저는 간호사였어요. 내과 병동에서 일할 때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을 조절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말기암 환자들을 자주 봤어요. 그랬던 제가 환자가 되고 보니 한국에서 죽는 게 두렵더라고요.” 이소연(41·가명)씨는 13년째 만성골수성백혈병과 싸우고 있다. 2021년 11월 갑작스레 암 수치가 증가했을 때 디그니타스 가입을 결심했다. 치료제가 듣지 않는 급성기나 말기가 되면 스위스로 가 조력사망하기 위해서다. 한때 간호사였던 이씨가 마지막 순간에 병원 대신 안락사를 택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병원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이씨 남편 역시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빨리 죽여 달라고 할 만큼 고통을 호소해도 병원에서는 환자의 의식이 떨어질까 봐 진통제를 쓰는 데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통증 조절을 해 줘도 환자가 아픔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에요.” 지난 2월 경북 왜관의 자택에서 만난 이씨는 “의료계에 있어 본 사람치고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스스로 백혈병 진단을 받고 10여년을 투병하며 그런 고통을 때때로 경험했기 때문이다.2010년 겨울 이씨는 회사 복도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살짝 넘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시커먼 멍이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이상하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 두 곳을 찾아 검사한 결과 백혈병이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글리벡’이라는 혁신적인 표적 항암제가 개발된 덕에 관리만 잘하면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고통과 두려움이 옅어지진 않았다. 약 부작용은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만큼 독했고, 때때로 죽음과 맞바꾸고 싶을 만큼 심한 통증과 맞닥뜨려야 했다. 평소엔 온종일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피로감에 시달렸다. 이씨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몸 상태를 예측할 수 없어 약속을 잡거나 장시간 외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도 이틀 전부터 배가 아파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라고 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처음 사용한 약이 글리벡이었다. 이 약은 숱한 백혈병 환자를 살린 기적의 치료제로 불렸지만 피부와 장기가 얇아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근육이 파열되고 인대가 늘어났다. 배란이 출혈로 이어져 두 번의 난소낭종 파열 수술을 받고 나선 평생 피임약을 복용해야 했다. 이씨는 “어딘가에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유리처럼 부서지는 영화 ‘글래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이 덜 고될 듯해 초등학교 보건 강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2016년 무렵엔 아예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하루 대여섯 번씩 찾아오는 설사는 외출을 어렵게 만들었다. 새로운 일을 해 보려고 직업전문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 학원에 도착해 강사에게 인사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설사가 터진 일도 있었다.#통증항암치료와 부작용 반복에 죽음과 맞바꾸고 싶은 고통“후회 없을 만큼 다 해봤어요” “신호도 없이 나오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다행히 패드를 하고 있어서 참사는 막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에 너무 놀랐어요. 그 무렵 터널을 지나면 뱅글뱅글 돌며 어지럽더라고요. 공황장애가 생긴 거예요.” 글리벡의 부작용이 한계에 이르면서 이씨는 2019년 두 번째 항암제인 ‘타시그나’로 약을 바꿨다. 이번에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하면서 담석이 생겼다. 결국 지난해 3월 담낭절제술을 받았다. 세 번째 수술이었다. 그는 “수술 후 깨는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팠다. 통증이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얘기하는데도 경증환자 대하듯 참으라고만 하던 주치의를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날 때마다 대항하고 적응하며 십 년 넘게 암과 싸워 왔는데, 2021년 가을 정기 추적검사에서 암 수치가 올라갔다는 결과가 나왔다. 항암제가 듣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약에 내성이 생기거나 부작용이 심해지면 세 번째 약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때부터는 골수이식도 염두에 둬야 한다. 다행히 검사 결과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씨는 오래전부터 생각한 디그니타스 가입을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애초에 골수이식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더는 부작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골수이식을 하고 나면 자기 몸에서 하나 정도는 잃어버려요. 실명하는 분들도 있고, 숙주 반응으로 폐나 장이 망가지기도 하고요. 제가 아는 분은 골수이식을 하고도 재발해 세 번이나 이식했어요. 몸이 건강한 상태이고 처음이라면 시도해 보겠지만 이제는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 빤히 알거든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골수이식 대신 안락사를 택하겠다는 뜻을 남편과 언니에게도 전했다. 이씨의 ‘버킷리스트’(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는 ‘잘 죽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진단을 받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이제는 예측된 죽음을 준비하고 싶어요. 갑자기 코로나나 폐렴에 걸려서 죽지 말고, 마지막에 스위스까지 무난히 갈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기를 바라요.”#일상15개월 ‘시한부 선고’ 받았지만항암치료 대신 ‘남은 일상’ 선택“말기 환자에게 선택지 너무 부족” “항암치료를 꾸준히 했을 때 15개월 정도 예상됩니다.” 2020년 1월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의사의 말에 최수진(52·가명)씨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병원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어머니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는 평소 절대로 하지 말라던 의료 장치들을 두 달째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이거 다 치워라.’ 어머니가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다시 깨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형제들은 어머니를 보내 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씨는 일 년에 한두 번 받던 산부인과 정기 검진에서 우측 신장 옆에 종양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술과 조직검사 결과는 육종암이었다. 이름조차 낯선 육종은 악성 종양 중에서도 1% 정도밖에 안 되는 희소 암이었다. 이미 대장과 대정맥, 복막 등 장기 주변에 퍼진 4기였다. 의사는 항암치료가 잘 듣지 않는 병이라고 말하면서도 수술로 육종을 완전히 제거하긴 어려우니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더 큰 병원을 찾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항암을 하면 나을 수 있나요?” 최씨의 질문에 의사는 ‘고식적 항암’이라는 어려운 말로 답했다. 치료 단계는 이미 지났으니 암의 진행 속도를 늦춰 생존 기간을 늘리자는 뜻이었다. “그럼 항암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항암치료를 받다가 체력 소진과 부작용으로 몸이 더 안 좋아지는 사례를 더러 봤기 때문이다. 최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한다면 괜찮겠지만 회사까지 그만둬야 한다면 진짜 시한부 환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게 싫어 병가도 내지 않고 수술한 뒤 직장에 복귀한 터였다. 의사는 “항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며, 주의를 주듯 “이 상황에서 항암을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온 최씨는 다음 진료일을 앞두고 주치의 앞으로 편지를 썼다. 마음은 이미 항암을 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1년 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나답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의사에게 항암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몹시 부담스러웠다. 병원은 계속 다니면서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관리해 나가고 싶은데, 항암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진료를 포기하는 것처럼 비칠 듯했다. 게다가 3분도 안 되는 진료 시간은 이런 뜻을 충분히 전달하기에 너무 짧았다. 그는 A4 용지 한 장짜리 편지를 써서 진료일 전에 도착하도록 했다. ‘저는 항암치료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제 삶을 일상생활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존 기간이 1년 미만으로 단축될 수 있고, 수개월 안에 위중한 상태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지만 이제부터 의미 있는 일정으로 채워 나가며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려고 합니다….’ 최씨에게 한 가지 고민은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병원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친구들과 먼 훗날쯤으로 생각하고 얘기했던 ‘안락사’를 떠올렸다. 어렵사리 스위스 조력자살 단체를 찾아 가입하고, 필요한 절차와 서류를 준비했다. 지난 1월 경기도에서 최씨를 만났다. 1년 반도 안 남았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머니는 최씨가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셨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어머니를 보낸 게 너무 힘들었는데 적어도 난 준비할 시간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병원의 예측과 달리 항암치료 없이도 직장과 일상생활 모두 그대로 이어 가고 있었다. 암세포가 요관을 누르고 있어 이를 확장하는 스텐트 시술을 한 것 외엔 별다른 통증 없이 건강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항암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병을 낫게 하는 치료가 아니라 제가 걱정하는 안 좋은 기간을 늘릴 뿐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암이 잘 듣지 않는다고 하면서 항암을 권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더라”라며 말기 환자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부족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씨에겐 일상의 삶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은 마지막 3개월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임종한 어머니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최씨는 스위스행을 준비하게 되면 그 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할 거라고 말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거쳐 먼 나라까지 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력사를 합법화한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제가 남길 기록이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국내 다른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생존고문 같은 통증… 진통제만 24알조력사망 승인받고 삶 달라져“오늘 하루도 더 최선 다하게 돼” “주변에서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얘기가 30명 넘게 들렸어요. 어느 순간 트라우마보다는 이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경태(43)씨는 11년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다. CRPS는 특정 부위를 다친 후 극심한 신경성 통증이 계속되는 만성질환으로,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환자는 정신을 잃을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 희소질환이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진단과 치료도 쉽지 않다. 김씨의 통증은 2013년 5월 자전거 사고로 왼쪽 팔을 다친 뒤 시작됐다. 갑자기 찾아온 고통은 “가스레인지 불에 손을 올려놓은 듯” 뜨거웠다. 이후로도 수시로 몰려드는 통증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중에는 통증을 참느라 손톱과 발톱을 남김없이 뜯었다. 김씨가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하루에 먹는 약만 24알이다. 모르핀, 옥시코돈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 근육 이완제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하루하루 사는 게 고문을 받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김씨가 디그니타스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2019년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후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공개적으로 조력사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임종 직전이 아니지만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진정을 넣었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통증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다른 대안이 없을 땐 안락사라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웰다잉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모두 회피하고 있어요.” 김씨는 2021년 12월 디그니타스에 조력사망을 신청해 ‘그린라이트’(승인)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스위스행을 계획하던 중 ‘신약이 개발되고 있으니 3년만 더 참아 보자’는 의사의 권유로 조력사망을 보류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 선택권이 주어지자 역설적으로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됐다고 한다. 이는 디그니타스 회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사업을 시작했다. 체력을 기르려고 무에타이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스스로 설계하고 나면 오늘 하루도 더 알차게, 최선을 다할 수 있어요. 저는 그걸 보여 주려는 거예요.”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기획취재부 유영규 부장, 신융아·이주원 기자
  • 옳고 그름을 떠나…모두에게 ‘어떻게 살아낼 건가’ 묻고 있었다 [금기된 죽음, 안락사②]

    옳고 그름을 떠나…모두에게 ‘어떻게 살아낼 건가’ 묻고 있었다 [금기된 죽음, 안락사②]

    <2> 그린라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 심리부검 전문가가 읽은 다그니타스 회원의 심리 서울신문은 심리부검 전문가인 박지영 상지대 교수에게 디그니타스 한국인 회원 20명의 인터뷰(진술)에 대한 질적 분석을 의뢰했다. 조력사망을 선택했거나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를 기자가 아닌 전문가의 눈을 통해 보다 깊게 분석하고 읽어 내기 위해서다. 심리사회적 경험 분석은 익명화 과정을 거쳤다. 최종 분석 내용은 최대한 박 교수의 분석문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20인의 이야기 속에는 누구든 한 번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경험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늘어난 시간 대부분을 노인으로 살아야 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의과학에도 질병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존재 의미에 대한 갈등은 의료적 시스템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인의 사연을 읽으며 비록 조력사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디그니타스 회원 20명은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다. 이들 중 조력사망까지 신청한 사람은 7명이었다. 신청 결과 2명은 승인, 1명은 거절됐으며 다른 4명은 신청 과정에서 서류 작성의 어려움, 공증 등 절차상 어려움으로 인해 일시 중단한 상태였다. #투병하루 사는 만큼 더해지는 고통 “병든 상태로 나이는 들어가고 몸은 점점 아픈데 약은 안 듣고 처방도 안 되고 돈도 없어지는데 일은 할 수가 없고….” (회원 5) 살기 위한 노력은 꽤 오랜 기간 치열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30년이 넘도록 이들은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물의 부작용을 견디며 일상이 된 투석을 버티고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치료를 받으며 투병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살기 위해 선택한 치료는 시간을 거듭해도 병과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살아갈 만한’ 일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랜 약물 복용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했고 마약류 진통제에도 내성이 생겨 고문 같은 통증을 혼자서 참아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더는 약물과 증상을 견뎌 낼 체력과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반신 통증은 마약 패치도 효과가 거의 없어 못 견디겠고 병원에서는 진통제 용량을 늘리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고 참으라고 합니다. 상반신도 복부 압박이 심해 호흡이 불편하고 위를 눌러 식욕도 없어요. 소변줄을 차고 있으나 소변이 안 나와서 응급실에 가 소변줄을 갈고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어요.”(회원 9) “유방암 항암제 부작용이 심해 자율신경계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아요. 현재는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심각한 이명, 청각과민증, 청력소실로 동네 마트 외출도 힘든 상태가 됐어요.”(회원 10) 평생을 환자로 살아야 하는 삶에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 온 ‘나’란 존재가 사라진다. 목숨을 이어 가는 ‘연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병은 평범한 일상을 중단시켰을 뿐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생리적 욕구조차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통증에 대비해야 하는 시간은 두렵고 치료 과정에서 생긴 공황, 설사, 탈모, 발진 등은 자신이 최소한 지키고 싶었던 ‘인간다운 삶’과 멀어지게 했다. 의료와 복지서비스가 다양해지고 돌봄시스템이 확장되고 있다지만 이들이 체감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환자의 증상보다는 질병 유형만을 기준으로 약물이나 치료비 수준이 결정된다. 이 때문인지 젊은 암 환자나 혈액투석 환자들은 사회가 자신을 후순위 환자로 여긴다고 말한다. “호스피스도 알아 봤지만 혈액투석은 포함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을 단계가 아니면 투석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연결해 주진 않더라고요.”(회원 12)#희망일그러진 일상, 대안의 탐색 “간병 문제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안락사를 고려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말기 암 환자나 식물인간처럼 사는 사람은 경제적 문제로 인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라도 가족에게 부담을 덜 주고 질 좋게 죽는 것을 바랄 거예요.”(회원 11) 처음부터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가졌던 희망은 병전(病前) 생활로의 복귀였다. 완치가 어렵고 평생 약을 먹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두 달도 아닌 수년, 수십 년 동안 치료와 일상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무리였다. 점점 약해지는 체력 때문에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쉬어야 할 시간에 투석을 하고 웃을 일에도 통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경우가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직장에도, 주변 사람에게도 미안해졌다. “열여덟 살부터 (서른여섯 살인) 지금까지 혈액투석을 하고 있어요. 4시간씩 소요되는 투석을 직장에 다니며 하루 걸러 진행하는데,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요.”(회원 12) “새 직장 출근 5개월 만에 공황과 우울,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생기면서 체중이 늘어나고 그러면서 대인 기피증까지 왔어요. 잠깐 쉬려 했던 게 2년째 쉬게 됐고 이제 완치에 대한 희망을 접었어요.”(회원 13)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고통이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까지 확대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때문에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점점 어려워졌다. 상황을 끝낼 방법은 자살뿐이라는 생각이 커졌다. 이들은 자신의 마지막을 존중하고 가족에게도 충격과 상처가 덜할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남의 도움 없이 살기 어려운 상태에서 연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내가 사는 게 아니거든요. 안락사의 기회가 없다면 저는 자살할 것 같아요.”(회원 2) #선택나를 위한 마지막 권리 이들이 조력사망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내 의지’였다. 그래서 의식이 명료하고 기력이 남아 있는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조력사망 신청 절차를 진행하고자 했다. 이는 자신을 위한 마지막 권리이자 언젠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해야 할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이라 여겼다. “통증으로부터 탈출할 수도, 견딜 수도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디그니타스 문을 두드렸어요.”(회원 3) “평소 웰리빙보다 웰다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조력사망은 그런 점에서 준비된 죽음이에요. 내가 의식이 없으면 안락사하게 해 달라고 평소 자녀들한테도 말해 뒀어요.”(회원 6) 조력사망의 결정은 역설적으로 삶을 버티는 새로운 동기가 됐다. 환자로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치료와 고통에 압도되지 않고, 언제든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조력사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여지가 현 상황을 버티며 살아내고자 하는 원동력이 됐다. “저는 투병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치료에 전념할 것입니다. 다만 조력사망 승인은 앞으로의 투병 여정에 꼭 필요한 마음의 큰 위안이자 안전장치입니다.”(회원 8)이제 우리 사회도 죽음의 질을 이야기할 때다. 이는 제3자로서 조력사망을 옹호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뷰에 응한 디그니타스 회원들의 경험을 빌려 누구나 죽음 앞에서 맞닥뜨릴 질병과 고통의 시기에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고 개개인은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작은 틈으로나마 드러내 보자는 것이다. 여기 스무 명의 이야기가 그런 의미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영 상지대 교수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단독]“안락사 희망 20인의 사연…결국 우리 이야기였다”[금기된 죽음, 안락사]

    [단독]“안락사 희망 20인의 사연…결국 우리 이야기였다”[금기된 죽음, 안락사]

    서울신문은 심리부검 전문가인 박지영 상지대 교수에게 스위스 존엄사 단체 ‘디그니타스’ 한국인 회원 20명의 인터뷰(진술)에 대한 질적 분석을 의뢰했다. 조력사망을 선택했거나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를 기자가 아닌 전문가의 눈을 통해 보다 깊게 분석하고 읽어 내기 위해서다. 심리사회적 경험 분석은 익명화 과정을 거쳤다. 최종 분석 내용은 최대한 박 교수의 분석문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20인의 이야기 속에는 누구든 한 번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경험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늘어난 시간 대부분을 노인으로 살아야 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의과학에도 질병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존재 의미에 대한 갈등은 의료적 시스템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인의 사연을 읽으며 비록 조력사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디그니타스 회원 20명은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다. 이들 중 조력사망까지 신청한 사람은 7명이었다. 신청 결과 2명은 승인, 1명은 거절됐으며 다른 4명은 신청 과정에서 서류 작성의 어려움, 공증 등 절차상 어려움으로 인해 일시 중단한 상태였다.①투병, 하루 사는 만큼 더해지는 고통 “병든 상태로 나이는 들어가고 몸은 점점 아픈데 약은 안 듣고 처방도 안 되고 돈도 없어지는데 일은 할 수가 없고…” (회원 5) 살기 위한 노력은 꽤 오랜 기간 치열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30년이 넘도록 이들은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물의 부작용을 견디며 일상이 된 투석을 버티고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치료를 받으며 투병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살기 위해 선택한 치료는 시간을 거듭해도 병과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살아갈 만한’ 일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랜 약물 복용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했고 마약류 진통제에도 내성이 생겨 고문 같은 통증을 혼자서 참아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더는 약물과 증상을 견뎌 낼 체력과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반신 통증은 마약 패치도 효과가 거의 없어 못 견디겠고 병원에서는 진통제 용량을 늘리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고 참으라고 합니다. 상반신도 복부 압박이 심해 호흡이 불편하고 위를 눌러 식욕도 없어요. 소변줄을 차고 있으나 소변이 안 나와서 응급실에 가 소변줄을 갈고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어요.” (회원 9) “유방암 항암제 부작용이 심해 자율신경계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아요. 현재는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심각한 이명, 청각과민증, 청력소실로 동네 마트 외출도 힘든 상태가 됐어요.” (회원 10) 평생을 환자로 살아야 하는 삶에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 온 ‘나’란 존재가 사라진다. 목숨을 이어 가는 ‘연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병은 평범한 일상을 중단시켰을 뿐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생리적 욕구조차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통증에 대비해야 하는 시간은 두렵고 치료 과정에서 생긴 공황, 설사, 탈모, 발진 등은 자신이 최소한 지키고 싶었던 ‘인간다운 삶’과 멀어지게 했다. 의료와 복지서비스가 다양해지고 돌봄시스템이 확장되고 있다지만 이들이 체감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환자의 증상보다는 질병 유형만을 기준으로 약물이나 치료비 수준이 결정된다. 이 때문인지 젊은 암 환자나 혈액투석 환자들은 사회가 자신을 후순위 환자로 여긴다고 말한다. “호스피스도 알아 봤지만 혈액투석은 포함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을 단계가 아니면 투석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연결해 주진 않더라고요.” (회원 12)②‘보통의 삶’에 대한 희망…그리고 죽음을 고민하다 “간병 문제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안락사를 고려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말기 암 환자나 식물인간처럼 사는 사람은 경제적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라도 가족에게 부담을 덜 주고 질 좋게 죽는 것을 바랄 거예요.” (회원 11) 처음부터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가졌던 희망은 병전(病前) 생활로의 복귀였다. 완치가 어렵고 평생 약을 먹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두 달도 아닌 수년, 수십 년 동안 치료와 일상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무리였다. 점점 약해지는 체력 때문에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쉬어야 할 시간에 투석을 하고 웃을 일에도 통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경우가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직장에도, 주변 사람에게도 미안해졌다. “18살부터 (36살인) 지금까지 혈액투석을 하고 있어요. 4시간씩 소요되는 투석을 직장에 다니며 하루 걸러 진행하는데,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회원 12) “새 직장 출근 5개월 만에 공황과 우울,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생기면서 체중이 늘어나고 그러면서 대인 기피증까지 왔어요. 잠깐 쉬려 했던 게 2년째 쉬게 됐고 이제 완치에 대한 희망을 접었어요.” (회원 13)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고통이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까지 확대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때문에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점점 어려워졌다. 상황을 끝낼 방법은 자살뿐이라는 생각이 커졌다. 이들은 자신의 마지막을 존중하고 가족에게도 충격과 상처가 덜할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남의 도움 없이 살기 어려운 상태에서 연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내가 사는 게 아니거든요. 안락사의 기회가 없다면 저는 자살할 것 같아요.” (회원 2)③나를 위한 마지막 선택 이들이 조력사망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내 의지’였다. 그래서 의식이 명료하고 기력이 남아 있는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조력사망 신청 절차를 진행하고자 했다. 이는 자신을 위한 마지막 권리이자 언젠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해야 할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이라 여겼다. “통증으로부터 탈출할 수도, 견딜 수도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디그니타스 문을 두드렸어요.” (회원 3) “평소 웰리빙보다 웰다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조력사망은 그런 점에서 준비된 죽음이에요. 내가 의식이 없으면 안락사하게 해 달라고 평소 자녀들한테도 말해 뒀어요.” (회원 6) 조력사망의 결정은 역설적으로 삶을 버티는 새로운 동기가 됐다. 환자로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치료와 고통에 압도되지 않고, 언제든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조력사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여지가 현 상황을 버티며 살아내고자 하는 원동력이 됐다. “저는 투병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치료에 전념할 것입니다. 다만 조력사망 승인은 앞으로의 투병 여정에 꼭 필요한 마음의 큰 위안이자 안전장치입니다.” (회원 8) 이제 우리 사회도 죽음의 질을 이야기할 때다. 이는 제3자로서 조력사망을 옹호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뷰에 응한 디그니타스 회원들의 경험을 빌려 누구나 죽음 앞에서 맞닥뜨릴 질병과 고통의 시기에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고 개개인은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작은 틈으로나마 드러내 보자는 것이다. 여기 스무 명의 이야기가 그런 의미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단독]“한국에서 죽는 게 두렵다…” 안락사 원하는 사람들[금기된 죽음, 안락사]

    [단독]“한국에서 죽는 게 두렵다…” 안락사 원하는 사람들[금기된 죽음, 안락사]

    10명. 2016년부터 최근까지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한 한국인의 숫자다. 그리고 300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조력사망을 신청하기 위해 스위스 조력사망 지원 단체에 가입했다. 그들은 왜 8770㎞를 날아 그 먼 곳으로 죽기 위해 떠나려는 걸까.서울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간 스위스 조력자살 지원 단체 가운데 하나인 디그니타스에 가입한 한국인 회원 2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 중에는 암, 신부전, 뇌종양,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의 질환을 앓는 사람도 있었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했지만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가 존엄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데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통증 “저는 간호사였어요. 내과 병동에서 일할 때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을 조절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말기암 환자들을 자주 봤어요. 그랬던 제가 환자가 되고 보니 한국에서 죽는 게 두렵더라고요.”이소연(41·가명)씨는 13년째 만성골수성백혈병과 싸우고 있다. 2021년 11월 갑작스레 암 수치가 증가했을 때 디그니타스 가입을 결심했다. 치료제가 듣지 않는 급성기나 말기가 되면 스위스로 가 조력사망하기 위해서다. 한때 간호사였던 이씨가 마지막 순간에 병원 대신 안락사를 택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병원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양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이씨 남편 역시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빨리 죽여 달라고 할 만큼 고통을 호소해도 병원에서는 환자의 의식이 떨어질까 봐 진통제를 쓰는 데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통증 조절을 해 줘도 환자가 아픔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에요.” 지난 2월 경북 왜관의 자택에서 만난 이씨는 “의료계에 있어 본 사람치고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스스로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10여년을 투병하며 그런 고통을 때때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2010년 겨울 이씨는 회사 복도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살짝 부딪혔다고 생각했는데 시커먼 멍이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이상하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 두 곳을 찾아 검사한 결과 백혈병이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글리벡’이라는 혁신적인 표적 항암제가 개발된 덕에 관리만 잘하면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고통과 두려움이 옅어지진 않았다. 약 부작용은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만큼 독했고, 때때로 죽음과 맞바꾸고 싶을 만큼 심한 통증과 맞닥뜨려야 했다. 평소엔 온종일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피로감에 시달렸다. 이씨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몸 상태를 예측할 수 없어 약속을 잡거나 장시간 외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도 이틀 전부터 배가 아파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라고 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처음 사용한 약이 글리벡이었다. 이 약은 숱한 백혈병 환자를 살린 기적의 치료제로 불렸지만 장기와 피부가 얇아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근육이 파열되고 인대가 늘어났다. 배란이 출혈로 이어져 두 번의 난소낭종 파열 수술을 받고 나선 평생 피임약을 복용해야 했다. 이씨는 “어딘가에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유리처럼 부서지는 영화 ‘글래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이 덜 고될 듯해 초등학교 보건 강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2016년 무렵엔 아예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하루 대여섯 번씩 찾아오는 설사는 외출을 어렵게 만들었다. 새로운 일을 해 보려고 직업전문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 학원에 도착해 강사에게 인사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설사가 터진 일도 있었다. “신호도 없이 나오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다행히 패드를 하고 있어서 참사는 막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에 너무 놀랐어요. 그 무렵 터널을 지나면 뱅글뱅글 돌며 어지럽더라고요. 공황장애가 생긴 거예요.” 글리벡의 부작용이 한계에 이르면서 이씨는 2019년 두 번째 항암제인 ‘타시그나’로 약을 바꿨다. 이번에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하면서 담석이 생겼다. 결국 지난해 3월 담낭절제술을 받았다. 세 번째 수술이었다. 그는 “수술 후 깨는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팠다. 통증이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얘기하는데도 경증환자 대하듯 참으라고만 하던 주치의를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날 때마다 대항하고 적응하며 십 년 넘게 암과 싸워 왔는데, 2021년 가을 정기 추적검사에서 암 수치가 올라갔다는 결과가 나왔다. 항암제가 듣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약에 내성이 생기거나 부작용이 심해지면 세 번째 약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때부터는 골수이식도 염두에 둬야 한다. 다행히 검사 결과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씨는 오래전부터 생각한 디그니타스 가입을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애초에 골수이식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더는 부작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골수이식을 하고 나면 자기 몸에서 하나 정도는 잃어버려요. 실명하는 분들도 있고, 숙주 반응으로 폐나 장이 망가지기도 하고요. 제가 아는 분은 골수이식을 하고도 재발해 세 번이나 이식했어요. 몸이 건강한 상태이고 처음이라면 시도해 보겠지만 이제는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 빤히 알거든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골수이식 대신 안락사를 택하겠다는 뜻을 남편과 언니에게도 전했다. 이씨의 ‘버킷리스트’(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는 ‘잘 죽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진단을 받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이제는 예측된 죽음을 준비하고 싶어요. 갑자기 코로나나 폐렴에 걸려서 죽지 말고, 마지막에 스위스까지 무난히 갈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기를 바라요.” #자기 결정 “항암치료를 꾸준히 했을 때 15개월 정도 예상됩니다.” 2020년 1월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의사의 말에 최수진(52·가명)씨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병원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어머니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는 평소 절대로 하지 말라던 의료 장치들을 두 달째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이거 다 치워라.’ 어머니가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다시 깨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형제들은 어머니를 보내 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씨는 일 년에 한두 번 받던 산부인과 정기 검진에서 우측 신장 옆에 종양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술과 조직검사 결과는 육종암이었다. 이름조차 낯선 육종은 악성 종양 중에서도 1% 정도밖에 안 되는 희소 암이었다. 이미 대장과 대정맥, 복막 등 장기 주변에 퍼진 4기였다. 의사는 항암치료가 잘 듣지 않는 병이라고 말하면서도 수술로 육종을 완전히 제거하긴 어려우니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더 큰 병원을 찾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항암을 하면 나을 수 있나요?” 최씨의 질문에 의사는 ‘고식적 항암’이라는 어려운 말로 답했다. 치료 단계는 이미 지났으니 암의 진행 속도를 늦춰 생존 기간을 늘리자는 뜻이었다. “그러면 항암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항암치료를 받다가 체력 소진과 부작용으로 몸이 더 안 좋아지는 사례를 더러 봤기 때문이다. 최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한다면 괜찮겠지만 회사까지 그만둬야 한다면 진짜 시한부 환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게 싫어 병가도 내지 않고 수술한 뒤 직장에 복귀한 터였다. 의사는 “항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며, 주의를 주듯 “이 상황에서 항암을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온 최씨는 다음 진료일을 앞두고 주치의 앞으로 편지를 썼다. 마음은 이미 항암을 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1년 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나답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의사에게 항암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몹시 부담스러웠다. 병원은 계속 다니면서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관리해 나가고 싶은데, 항암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진료를 포기하는 것처럼 비칠 듯했다. 게다가 3분도 안 되는 진료 시간은 이러한 뜻을 충분히 전달하기에 너무 짧았다. 그는 A4 용지 한 장짜리 편지를 써서 진료일 전에 도착하도록 했다. ‘저는 항암치료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제 삶을 일상생활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존 기간이 1년 미만으로 단축될 수 있고, 수개월 안에 위중한 상태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지만 이제부터 의미 있는 일정으로 채워 나가며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려고 합니다….’ 최씨에게 한 가지 고민은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병원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친구들과 먼 훗날쯤으로 생각하고 얘기했던 ‘안락사’를 떠올렸다. 어렵사리 스위스 조력자살 단체를 찾아 가입하고, 필요한 절차와 서류를 준비했다.지난 1월 경기도에서 최씨를 만났다. 1년 반도 안 남았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머니는 최씨가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셨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어머니를 보낸 게 너무 힘들었는데 적어도 난 준비할 시간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병원의 예측과 달리 항암치료 없이도 직장과 일상생활 모두 그대로 이어 가고 있었다. 암세포가 요관을 누르고 있어 이를 확장하는 스텐트 시술을 한 것 외엔 별다른 통증 없이 건강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항암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병을 낫게 하는 치료가 아니라 제가 걱정하는 안 좋은 기간을 늘릴 뿐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암이 잘 듣지 않는다고 하면서 항암을 권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더라”라며 말기 환자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부족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씨에겐 일상의 삶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은 마지막 3개월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임종한 어머니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최씨는 스위스행을 준비하게 되면 그 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할 거라고 말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거쳐 먼 나라까지 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력사를 합법화한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제가 남길 기록이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국내 다른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생존 “주변에서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얘기가 30명 넘게 들렸어요. 어느 순간 트라우마보다는 이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경태(43)씨는 11년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다. CRPS는 특정 부위를 다친 후 극심한 신경성 통증이 계속되는 만성질환으로,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환자는 정신을 잃을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 희귀질환이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진단과 치료도 쉽지 않다. 김씨의 통증은 2013년 5월 자전거 사고로 왼쪽 팔을 다친 뒤 시작됐다. 갑자기 찾아온 고통은 “가스레인지 불에 손을 올려놓은 듯” 뜨거웠다. 이후로도 수시로 몰려드는 통증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중에는 통증을 참느라 손톱과 발톱을 남김없이 뜯었다. 김씨가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하루에 먹는 약만 24알이다. 모르핀, 옥시코돈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 근육 이완제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하루하루 사는 게 고문을 받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김씨가 디그니타스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2019년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후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공개적으로 조력사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임종 직전이 아니지만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진정을 넣었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통증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다른 대안이 없을 땐 안락사라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웰다잉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모두 회피하고 있어요.” 김씨는 2021년 12월 디그니타스에 조력사망을 신청해 ‘그린라이트’(승인)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스위스행을 계획하던 중 ‘신약이 개발되고 있으니 3년만 더 참아 보자’는 의사의 권유로 조력사망을 보류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 선택권이 주어지자 역설적으로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됐다고 한다. 이는 디그니타스 회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사업을 시작했다. 체력을 기르려고 무에타이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스스로 설계하고 나면 오늘 하루도 더 알차게, 최선을 다할 수 있어요. 저는 그걸 보여 주려는 거예요.”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식물 탄저병 방제 ‘담수 세균’ 발견, 미생물농약 개발 등 추진

    식물 탄저병 방제 ‘담수 세균’ 발견, 미생물농약 개발 등 추진

    고추 등 식물 탄저병 방제에 효과가 있는 ‘담수 세균’이 국내에서 확인됐다. 9일 환경부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5월 경북 포항의 저수지(마장지) 토양에서 발견해 분리한 브레비바실러스 할로톨러런스 ‘FBCC-B4359’ 균주에 탄저균 발병률을 낮추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생물농약으로 이용되지 않았던 박테리아계 담수 세균이 탄저병 방제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실험 결과 FBCC-B4359로 처리한 고추 열매는 탄저병 발병률이 37.0%로 균주 처리를 하지 않은 대조군의 탄저병 발병률(94.0%)보다 현저히 낮았다. 특히 스트로빌루린계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탄저균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추 노지재배 포장시험에서 약제 처리와 무처리 개체 발병률(64.0%)이 차이가 없었지만 FBCC-B4359 방제시 발병률이 41.2%로 낮아졌다. 토양까지 처리했을 때 발병률은 27.8%로 방제 효과가 더 컸다. 연구진은 연구 결과에 대한 특허 출원 및 미생물농약 개발을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정남일 낙동강생물자원관 미생물연구실장은 “기후변화로 식물병이 증가하나 화학농약에 대한 내성균 출현으로 방제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농업분야 방제 소재로 담수 세균의 활용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 바닷새 생존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

    바닷새 생존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

    1868년 미국에서 상아 당구공 대용으로 발명된 셀룰로이드는 플라스틱의 시초다. 인류에게 선보인 지 불과 155년 지났지만 우리 주변에서 먹는 것을 제외하고 플라스틱이 아닌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배달 음식 이용이 늘면서 플라스틱 사용은 급증했다. 넘쳐나는 플라스틱으로 인해 환경오염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면서 지난 3월 유엔 회원국들은 2024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협약을 마련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화석연료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은 제작부터 폐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상당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또 폐플라스틱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 햇빛이나 바닷물의 염분 때문에 마모돼 부서지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만든다. 이를 먹이 피라미드 가장 아래쪽에 있는 생물들이 먹으면 먹이사슬을 따라 최종 소비자인 사람에게 전달돼 축적될 가능성이 크다. 미세플라스틱은 그동안 청정 지역으로 알려졌던 극지방의 바다에서도 발견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물학과를 중심으로 한 27개국 161개 연구기관 소속 과학자 200명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플라스틱 오염이 국경을 초월한 엄청난 규모로 해양생물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7월 5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북부풀머갈매기, 유럽바다제비, 멸종위기에 처한 뉴웰스셰어워터라는 바닷새를 포함해 대양을 횡단하는 바닷새 77종 7137마리의 움직임을 추적한 데이터와 전 세계 해양 플라스틱 분포 지도를 비교 분석했다. 특히 연구팀은 페트렐이라고 불리는 바닷새들에 주목했다. 페트렐들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바다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해양 환경오염을 평가할 때 중요한 감시종이다. 바닷새들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하거나 먹잇감과 함께 삼키는 경우가 많다. 번식기에는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새끼에게 먹이는 경우도 있다. 몸집이 작은 바닷새들은 플라스틱을 뱉어 낼 수 없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플라스틱을 섭취한 바닷새들은 항생제 내성이 생기고 장내 미생물 군집이 변화하는 등 건강에 악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3월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진화학’에 실리기도 했다.분석 결과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해류로 인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와 한 국가의 관할권을 벗어난 곳에 쌓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플라스틱 오염은 광범위한 규모로 해양생물을 위협한다. 바닷새들이 맞닥뜨리는 플라스틱 노출 위험의 4분의1은 공해상에 존재한다. 특히 북동 태평양, 남대서양, 남서 인도양에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찬 지역이 있으며 멸종위기의 바닷새들이 이 지역으로 먹잇감을 찾아 모여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공해상에 쌓인 플라스틱들은 먹잇감을 찾기 어려운 페트렐을 비롯해 원거리를 이동하는 바닷새들이 삼키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연구의 주요 저자인 안드레아 마니카 케임브리지대 교수(동물학)는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바닷새에게 해양 플라스틱 오염은 심각한 생존의 위협 요소”라며 “바닷새들이 플라스틱 쓰레기에 자주 노출되면 생명 다양성의 회복력이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 클림트 주검과 함께 발견된 초상화, 유럽 최고가 경매 기록 경신

    클림트 주검과 함께 발견된 초상화, 유럽 최고가 경매 기록 경신

    오스트리아가 사랑하는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1862~1918)는 55세이던 해 2월 6일 스튜디오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다. 한달 전 뇌출혈 후유증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화업에 매달렸던 이젤 위에는 작품 두 점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초상화 ‘부채를 든 여인’이었다. 초상화를 몇 점 남기지 않은 클림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초상화가 세상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유명한 ‘키스’ 등을 모두 앞질러 유럽 예술작품 최고가 경매 기록을 새로 썼다. 소더비는 2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부채를 든 여인’이 8530만 파운드(약 1413억원)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유로화로는 약 8600만 유로인데, 당초 예상가인 7600만 유로를 훌쩍 넘겼다. 유럽 회화 가운데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2008년 8040만 달러(약 1045억원), 조각까지 포함하면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 Ⅰ’이 2010년 1억430만 달러(약 1355억원)에 각각 낙찰돼 역대 최고기록을 갖고 있었다. ‘부채를 든 여인’은 두 기록을 모두 깼다. 이 작품은 홍콩의 한 수집가를 대리해 경매에 참여한 패티 웡이 구매했다고 소더비는 밝혔다. 경매사는 이 작품이 클림트의 기량이 절정에 이른 데다 실험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어떻게 소개했냐면 “파워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예술가의 걸작”이라고 했다. 당시 서유럽 화가들에게 불었던 일본풍이 반영돼 있다. 또 불멸이나 환생을 상징하는 불사조, 사랑을 의미하는 연꽃 등 중국풍도 투영돼 있다.소더비 측은 이 작품이 “기술적으로 역작일 뿐 아니라 경계를 확장하려는 실험적 시도로 가득하다”라며 “절대미에 대한 진심 어린 찬가”라고 평가했다. 이번 경매 결과는 클림트 작품만 놓고 봐도 최고액이다. 클림트 작품 중 종전 최고액을 기록했던 ‘자작나무 숲’은 지난해 경매에서 1억 460만달러(약 1359억원)에 낙찰됐다. 그러나 ‘부채를 든 여인’이 처음부터 평가가 높았던 건 아니다. 앞서 이 그림은 클림트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엘빈 볼레가 소유했으며 수집상을 거쳐 지난 1994년 경매에 나왔다. 당시 낙찰가는 1200만 달러(약 156억원)가 되지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단순 비교하면 29년 만에 평가액이 아홉 배로 뛴 것이다. 한편 전 세계 예술품 경매 사상 최고액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수를 그린 ‘살바토르 문디’(구세주)는 2017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 5030만 달러(약 5849억원)에 낙찰됐다. ‘살바토르 문디’를 경매에 내놓았던 소유주는 러시아의 억만장자이자 축구클럽 AS 모나코 구단주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였다. 구매자의 신원은 베일에 싸였는데 그 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제 소유주이며 이 작품이 그의 호화 요트 안에 걸려 있다는 목격담이 전해져 화제가 됐다. 오스트리아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분리파 운동에 앞장 선 클림트의 최고 걸작 ‘키스’(1907~08)는 벨베데레 궁에 소장돼 있어 경매에 나올 일이 없긴 하다. 오스트리아가 국보처럼 여기는 클림트의 이 그림을 경매에 내놓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연모했던 여성을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I’(1907)도 유명하다. 클림트는 내성적이었다. 자화상 같은 것을 그릴 용기 같은 것도 없었고, 평생 작품에 대해 떠벌여본 적도 없다. 그가 남긴 말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으며, 간단한 편지 한 장을 쓰는데도 멀미가 날 듯한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자화상이나 자서전은 불가능하다. 예술가로서 클림트를 알고 싶다면 내 작품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라.”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