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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은 사랑에 빠지면 몸속 면역체계 변화” (연구)

    “여성은 사랑에 빠지면 몸속 면역체계 변화” (연구)

    여성은 사랑에 빠지면 실제로 몸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른바 ‘상사병’으로 불리던 것이 단순한 감정 그 이상의 것임을 시사한다. 미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연구진이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여성 47명을 대상으로 2년간 혈액 표본을 채취·분석한 결과, 바이러스에 맞설 때와 비슷한 생리적인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국제학술지 ‘정신신경내분비학’(Psychoneuroendocrin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체내 면역체계를 지배하고 있는 유전자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기 위해 시작됐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여성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면 몸속에서 일반적으로 바이러스 감염에 맞서기 위해 나오는 단백질인 ‘인터페론’을 생성하는 유전자를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새로운 낭만적인 사랑은 심리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생리학적인 변화까지도 동반했다”면서 “이번 결과는 바이러스 감염에 관한 선천적인 면역반응의 선택적인 상향 조절과 일치했으며, 인간 생활의 핵심 경험 중 하나인 면역조절 상관관계에 관한 통찰력을 준다”고 말했다. 또 이번 연구에서는 사랑의 불꽃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면 여성의 인터페론 수치가 감소한다는 증거도 나왔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일부 결과는 낭만적인 사랑과 관련한 심리적인 변화가 연인 관계가 오래됨에 따라 약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면서 “사랑에 관한 생물학적인 상관관계는 장기간 더 안정한 연인 관계의 성숙함과 함께 약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앞으로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실제로 사랑에 빠졌는지는 물론 이런 감정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지를 측정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남성들에게서도 이런 생리적인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밀가루 음식만 2년 끊었는데… 어떻게 몸무게 7㎏이나 줄었지?

    [메디컬 인사이드] 밀가루 음식만 2년 끊었는데… 어떻게 몸무게 7㎏이나 줄었지?

    팔·다리는 가는데 배만 나온 전형적인 복부비만 체형이었던 직장인 이경수(43)씨는 2년 전 밀가루와 작별하고서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즐겨 먹던 튀김, 빵, 라면을 멀리하자 35인치였던 허리가 33인치로 줄었고 몸무게도 덩달아 7㎏이 빠졌다. 특별히 운동이나 다른 다이어트를 병행하진 않았다.달라진 것은 체형뿐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월례행사처럼 치르던 배앓이가 사라졌다. 이씨가 장염으로 병원을 찾은 건 지난 2년간 두 번뿐이다. 늘 부대끼고 거북했던 속이 편해지자 예민했던 성격도 바뀌었다. 이씨는 “짜증을 내는 빈도가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단지 밀가루 섭취만 줄였는데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과연 밀가루는 멀리해야 할 곡물일까. 밀가루는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먹어왔으며, 지금도 세계 인구 3분의2가 주식으로 삼고 있다. 이미 식품의 안전성 측면에서는 검증된 곡물이다. 최근 밀가루에 함유된 단백질인 글루텐 유해성 논란이 제기되면서 장내 염증과 소화장애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지만 의료계는 크게 문제가 되는 성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인 밀가루 섭취 늘지만 셀리악병 증가 없어 글루텐 섭취 문제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환이 ‘셀리악병’인데 한국인은 셀리악병과 관련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드물어 이 병에 걸릴 위험이 극히 적다는 것이다. 셀리악병은 글루텐에 면역체계가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자가면역성 알레르기 질환으로, ‘HLA-DQ2’라는 유전자에 의해 생긴다. 복부 통증, 식욕 부진, 설사, 복부 팽만감이 나타나는 소화기계 질환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밀을 주로 먹는 서양인의 5%가 이 병을 앓고 있고, 미국 전체 인구의 6%가 밀 알레르기로 고통받고 있다. 한국인의 밀가루 섭취량도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국내에서 셀리악병 발병이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보고는 없다. 하지만 한의계는 밀가루의 찬 성질이 위장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특히 체질적으로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과 따뜻한 기운이 약해 몸이 차가워지기 쉬운 소음인은 밀가루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김고운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교수는 13일 “찬 성질의 음식은 특히 몸이 찬 사람의 대사를 방해하고 소화 장애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리도 밀과 마찬가지로 성질이 차다. 소음인 체질은 평소 소화 기능을 돕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데, 성질이 맵고 따뜻한 찹쌀·닭고기·장어·마늘·감자·부추·사과·귤과 계피차·생강차·꿀차 등이 좋다. 김 교수는 “실제로 소화가 잘 안 되는 환자에게 밀가루 끊기를 권했는데 증상이 호전됐다는 환자가 많았다”며 “소화 장애가 있는 환자 외에도 알레르기가 있거나 체중 감량이 필요한 환자에게도 밀가루 끊기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부 비만과 밀가루의 연관성은 비교적 명확하다. 정제된 탄수화물이 주범이다. 정제된 탄수화물은 정제되지 않은 일반 탄수화물보다 우리 몸에 훨씬 빨리 소화·흡수돼 혈당을 급격히 올린다. 이때 우리 몸은 혈당을 낮추려고 인슐린을 과다하게 분비한다. 이 과정에서 일시적인 저혈당 증세가 나타나고, 공복감을 느껴 혈당을 빨리 올릴 수 있는 탄수화물을 더 찾게 된다. 저혈당과 고혈당을 오르내리며 탄수화물을 탐닉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은 당의 흡수를 촉진하는 것 외에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을 두뇌로 운반하는 역할도 한다. 두뇌로 전달된 트립토판은 기분을 좋게 하는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세로토닌이 감소하면 우울, 의욕 상실, 초조함 등의 금단현상이 오기 때문에 뇌는 더 많은 탄수화물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몸은 서서히 단맛에 길들어지고, 당연히 당뇨병과 비만 같은 합병증이 온다. 대표적인 정제 탄수화물인 밀가루 섭취만 줄였는데 이씨의 복부 비만이 사라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열량 높은 밀가루 음식 단품 섭취로 영양 불균형 정인경 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밀가루 음식 안의 첨가물이 건강을 해친다”고 말했다. 그는 “밀가루 자체가 나쁘기보다는 밀가루 음식 대부분의 열량이 높은 게 문제”라면서 “같은 밀가루 음식이더라도 건강하게 조리된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짜장면 1인분의 열량은 약 700㎉, 국물 라면은 500㎉ 수준이다. 성인 기준 1일 권장열량이 남성 2200~2600㎉, 여성 1800~2100㎉l인 점을 생각하면 두 끼만 짜장면과 라면으로 때워도 하루 권장열량의 상당량을 섭취하게 된다. 밀가루 음식이라고 해서 밀가루로만 이뤄진 식품은 드물다. 버터, 나트륨, 설탕 등을 함께 먹게 된다. 밥을 먹을 땐 채소와 고기 등 다양한 영양소가 든 반찬을 같이 먹지만, 밀가루 음식은 주로 단품으로 먹기 때문에 균형 잡힌 영양 섭취가 어렵다. 김은희 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교수는 “탄수화물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혈당 지수가 낮은 음식으로 식단을 바꿔야 한다”며 “혈당 지수가 낮으면 천천히 소화되기 때문에 급격한 인슐린 분비를 예방하고 쉽게 배고파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필요한 열량 중 탄수화물 비율을 낮추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는 것도 좋다”고 강조했다. ●실천 가능한 기준 정하고 밀가루 섭취 줄여야 밀가루 끊기 도전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2년째 밀가루를 멀리하는 이씨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밀가루가 들어간 소스까지 찾아 철저히 따져보고 아예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사흘 만에 실패했다. 밀가루 섭취를 완벽하게 끊으려다 보니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한 달 뒤 튀김, 우동, 빵, 라면 끊기에 다시 도전했다. 이후 9개월간 적어도 다섯 번은 몰래 숨어 튀김옷이 바삭거리는 돈가스를 먹어 치웠다. 다만 밀가루와 싸우기보다 실천 가능한 선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그러자 밀가루의 유혹이 시큰둥해졌다. 피로감도 줄었고, 폭음하는 습관도 없어졌다. 먹을 수 있는 안주가 적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을 줄이게 됐다. 이씨는 “사람의 몸은 신비해서 한 숟가락을 줄이면 한 숟가락만큼의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더라”며 “1주일에 한 번 먹던 라면을 2주에 한 번으로 줄여도 변화가 있었다. 밀가루는 끊는 게 아니라 평생 관리하는 것”이라고 웃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7년 전 불임 판정 받은 여성, ‘알비노 아기’ 출산한 사연

    7년 전 불임 판정 받은 여성, ‘알비노 아기’ 출산한 사연

    불임 판정을 받은 여성이 알비노 아기를 낳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잉글랜드 노스요크셔주 해러게이트에 사는 섀넌 코나티(22)가 불임 선고를 받은지 7년 만에 자연임신으로 아이를 출산했다고 보도했다. 섀넌은 지난 2011년 15살의 나이로 다낭성난소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다낭성난소증후군(PCOS)은 여성의 5~10%에게서 나타나는 내분비 질환으로 자연 임신 가능성이 희박하다. 17살에 남편 톰 케인(30)을 만난 섀넌 역시 여러 차례 임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임신을 거의 포기했을 때쯤 기적이 찾아왔다. 섀넌은 지난해 1월 갑작스럽게 자연 임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딸 아바 케인을 얻은 섀넌은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희박한 임신 확률을 뚫고 태어난 아바는 빨간 눈에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아바는 알비노(백색증)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알비노는 멜라닌 색소의 분포와 합성 과정에 결함이 생겨 태어날 때부터 피부와 털, 눈의 색소가 적거나 없다. 인종에 관계 없이 평균 2만명 당 1명 꼴로 나타나며, 시력 저하나 실명, 피부암을 동반하기도 한다. 섀넌은 “아바는 시력 문제 때문에 운전도 못할 것이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희박한 임신 확률을 뚫고 태어난 희귀한 알비노 아기를 기적이라 칭했다. 그녀는 “딸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도록 사랑으로 키울 것”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불임 판정 받은 여성, 7년 만에 ‘알비노 아기’ 출산

    불임 판정 받은 여성, 7년 만에 ‘알비노 아기’ 출산

    불임 판정을 받은 여성이 알비노 아기를 낳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잉글랜드 노스요크셔주 해러게이트에 사는 섀넌 코나티(22)가 불임 선고를 받은지 7년 만에 자연임신으로 아이를 출산했다고 보도했다. 섀넌은 지난 2011년 15살의 나이로 다낭성난소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다낭성난소증후군(PCOS)은 여성의 5~10%에게서 나타나는 내분비 질환으로 자연 임신 가능성이 희박하다. 17살에 남편 톰 케인(30)을 만난 섀넌 역시 여러 차례 임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임신을 거의 포기했을 때쯤 기적이 찾아왔다. 섀넌은 지난해 1월 갑작스럽게 자연 임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딸 아바 케인을 얻은 섀넌은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희박한 임신 확률을 뚫고 태어난 아바는 빨간 눈에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아바는 알비노(백색증)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알비노는 멜라닌 색소의 분포와 합성 과정에 결함이 생겨 태어날 때부터 피부와 털, 눈의 색소가 적거나 없다. 인종에 관계 없이 평균 2만명 당 1명 꼴로 나타나며, 시력 저하나 실명, 피부암을 동반하기도 한다. 섀넌은 “아바는 시력 문제 때문에 운전도 못할 것이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희박한 임신 확률을 뚫고 태어난 희귀한 알비노 아기를 기적이라 칭했다. 그녀는 “딸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도록 사랑으로 키울 것”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양반·평민 나뉘어 기호·서북파 대립… 내분 중심엔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양반·평민 나뉘어 기호·서북파 대립… 내분 중심엔 이승만

    [2부] 통합과 갈등:상하이 시기 ② 해체위기 몰린 임시정부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생겨난 세 개의 임시정부는 9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통합 임정은 행정력과 외교력을 갖춰 독립운동의 중추 구실을 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초심을 잃고 내부 갈등과 분열에 휩싸였다. 한줌도 안 되는 임정 권력을 두고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서 싸웠다. 몇몇은 갑오개혁(1894~1895) 때 사라진 양반·상민까지 거론하며 전근대적 계급의식을 보여줬다. 이 시기 임정은 ‘난파선’ 그 자체였다. ●통합정부 초기 비행대 운영 등 역량 총 동원 지난달 중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를 위해 찾아간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중루. 과거 프랑스 조계(외국인 자치구역)답게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이 남아 있어 젊은 세대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일대는 재개발이 마무리돼 도로나 건물이 정비됐지만 여전히 100여년 전 모습을 간직한 골목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로 우리 역사학계에서 ‘푸칭리(보경리) 청사’로 부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다. 임정이 상하이를 떠나기 전인 1926~1932년 사용하던 곳으로 상하이 임정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기자와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보경리 청사가 있는 저 구역은 상하이 안에서도 지가가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중국 정부가 임정 청사 보전을 위해 개발을 막고 있다”며 “최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을 두고 양국 관계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여기를 지키는 것은 항일투쟁의 역사를 공유하는 우리나라를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노령정부와 중국 상하이정부, 서울의 한성정부가 모인 ‘통합 임정’은 설립 초기부터 독립운동 주도권을 쥐고자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국내 곳곳에 지하 행정조직을 갖추기 위해 연통제를 실시하고 비밀 통신망을 확보하려고 교통국도 운영했다. 이들 조직을 활용해 국민들에게 공문을 전달하고 독립전쟁 인력과 자금도 모았다. 파리강화회의(1919~1920)에 외교력을 집중해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알렸고,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해 무장투쟁을 독려했다. 기관지 독립신문(1919~1925)을 발간하고 한인교육기관인 인성학교(1917~1975)도 육성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비행사 양성소를 설치해 비행대를 운영했다.김희곤(65)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은 “이 정도면 초기 통합 임정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했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국가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임정을 세워 외교 활동을 펼친 것은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행정부·의회 떨어져 미국서 혼자 활동 하지만 일제가 임정의 국내 연결망을 차단하면서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 본토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내분도 시작됐다. 가장 큰 문제는 리더 이승만(1875~1965)에게 있었다. 원래 상하이정부는 국무총리제였고, 통합 임정의 법통이 된 한성정부 역시 집정관과 국무총리가 중심인 집단지도체제였다. 이들은 정치권력이 한 사람에게 모이면 조선의 왕처럼 국가를 사유화할 수 있다고 여겨 대통령제에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자신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임정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대미 외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고 미국인에게 친근한 표현을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판 세력은 “늘 1인자이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상 자신이 최고지도자라는 점을 알리고 싶어 의도적으로 오역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승만의 거처도 논란이 됐다. 그는 “대미외교에 주력하겠다”며 임정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미국에 머물렀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난 뒤인 1919년 8월 25일 한성정부 집정관총재 자격으로 워싱턴DC에 대미외교단체인 구미위원부를 세워 그곳에 기거했다. 행정부와 의회가 중국에 있는데 대통령이 혼자 미국에서 활동해 제대로 소통이 될 리 없었다. 임정은 각료 인선이나 주요 정책 시행 때마다 대통령 부재로 어려움이 컸다.이승만은 미국 교민에게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다. 1919년 12월~1921년 8월 지출액은 8만 9321달러였는데, 이 가운데 상하이 임정에 보낸 돈은 1만 6732달러로 전체 지출의 20%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대부분은 구미위원부 운영비와 이승만 자신의 활동비로 썼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임정은 구미위원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그가 강하게 반발해 무산됐다. 국무총리 이동휘(1873~1935)는 그를 “독립정신이 불철저한 썩은 대가리”로, 내무총장 안창호(1878~1938)는 “정신병자”라고 비난했다.●이르쿠츠크파, 러 적군 부추겨 상하이파 독립군 학살 임정은 기호파(경기·충청·호남)와 서북파(평안·함경)로 양분돼 있었다. 기호파는 양반계급 출신이 주를 이뤘고 이승만을 지지했다. 서북파는 평민 출신이 많았고 안창호를 밀었다. 이들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기호파는 ‘변방 상놈들에게 임정 주도권을 내 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서북파 역시 ‘한양 양반네’들의 텃세에 지역주의 논리로 맞섰다.임시정부의 핵심 전략인 외교독립론도 성과가 없었다. 임정은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나마 임정에 우호적인 곳이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이 이끄는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와 쑨원(1866~1925)이 세운 중국 광둥성 호법정부였다. 하지만 이들도 임정의 내분이 심해지자 더 이상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 1919년 임정 통합 작업을 주도한 러시아 출신 문창범(1870~1938)은 상하이정부와의 갈등으로 통합 임정에 합류하지 않고 연해주로 돌아갔다. 그는 같은 러시아 출신임에도 새 임정에 합류한 이동휘를 비난하며 갈라섰다. 이때부터 문창범 세력은 ‘이르쿠츠크파’, 이동휘 계열은 ‘상하이파’라고 불렸다. 양측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1921년 6월 28일, 이르쿠츠크파는 러시아 적군을 부추겨 연해주 알렉셰프스크(자유시)에 머물던 상하이파 한인 독립군 부대를 대거 학살했다. 일본과 맞서기 위해 모인 고려인들이 의견 차이를 참지 못하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다. 이것이 한국 독립운동사상 최악의 비극으로 평가되는 ‘자유시 참변’이다. 이후 독립군은 연해주 일대에서 자취를 감췄다.●재정난·파벌싸움으로 재중동포 기반 상실 독립운동사 거두인 고 조동걸(1932~2017) 국민대 명예교수는 “이때라도 임정이 군무부를 만주로 옮기고 교통국(비밀통신망)을 다시 설치해 재만동포를 추스르고 조직 정비에도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재정난과 내부 파벌싸움 등으로 기회를 놓쳐 국민적 지지 기반을 잃었다”고 비판했다.임정은 이승만이 대미외교를 위해 워싱턴회의에 참석하려다가 개최국인 미국으로부터 문전박대당한 1922년 4월부터 ‘식물 정부’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은 1925년 3월 이승만이 대통령에서 탄핵될 때까지 이어졌다. 임정 지사들은 자신들이 표방한 민주공화정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남자들을 모성으로 품고 묵묵히 뒷바라지해준 이가 있었다. 바로 ‘임시정부의 어머니’로 불리는 정정화(1900~1991)다. 임정이 27년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헌신 덕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1살이던 1910년 김가진(1846~1922)의 3남 의한(1900~1964)과 혼인했다.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던 김가진은 아들을 데리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이듬해 정정화도 “연로하신 시아버지와 남편을 챙기겠다”며 상하이로 따라갔다. 그는 여성이어서 상대적으로 감시가 소홀하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10여년간 독립운동 자금을 운반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에 검거돼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김구는 그를 가리켜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칭송했다.●임정 가재도구마다 손때… 요인들 임종 다 지켜 정정화는 상하이에 온 뒤부터 1946년 귀국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 시간을 임정 요인과 가족을 돌보며 보냈다. 임정 인사 가운데 그가 지어준 밥을 먹지 않은 이가 없었고, 임정 가재도구 가운데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임정 독립운동가들의 임종도 다 지켰다. 그가 26년간의 임정 생활을 구술한 ‘장강일기’는 당시 독립운동 진영의 사정을 가장 잘 알려주는 사료로 평가된다. 그의 일대기는 연극 등으로도 만들어져 공연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귀국 뒤 그의 인생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남편 김의한은 한국전쟁 중 안재홍(1891~1965), 조소앙(1887~1958) 등과 함께 납북됐다. 남한에 남은 정정화는 부역죄로 투옥돼 고초를 치렀다. 이때 ‘옥중소감’이란 시로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남겼다. 나라를 되찾고도 여전히 남과 북으로 갈라져 싸움질만 하던 남자들에 대한 힐난이었으리라. “혁명 위해 살아온 반평생 길인데/오늘날 이 굴욕이 과연 그 보답인가/국토는 두 쪽 나고 사상은 갈렸으니/옥과 돌이 서로 섞여 제가 옳다 나서는구나.” 상하이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이탈리아 부총리가 프랑스 내분에 부채질

    이탈리아 부총리가 프랑스 내분에 부채질

    “이탈리아 부총리가 프랑스 내부 분란에 부채질?” 루이지 디 마이오(32) 이탈리아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를 휩쓸고 있는 ‘노란 조끼’ 운동에 지지를 표명하며, 이들의 정치세력화를 돕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정당인 ‘오성운동’의 공식 블로그에 “‘노란 조끼’, 포기하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노란 조끼’와 오성운동은 동일한 정신에서 탄생했다며“오성운동은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디 마이오는 기성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던 반체제 정당에서 집권 정당으로 탈바꿈한 오성운동의 대표이다. 그는 프랑스의 저항운동이 정당으로 발전하는 데 오성운동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란 조끼’ 활동가들이 오성운동의 온라인 플랫폼인 ‘루소’를 이용해 행사를 조직하고, 선거에 나갈 후보를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원 모두가 자발적으로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오성운동은 루소를 통한 투표를 통해 당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주요 선거에 나갈 후보를 뽑고 있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이어 “(창당) 9년도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집권 정당이 됐고, 우리를 비웃던 사람들은 이제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며 ‘노란 조끼’ 운동이 프랑스에서도 충분히 주류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코미디언 출신의 베페 그릴로가 2009년 창당한 오성운동은 좌와 우로 나눠진 기성정당의 부패를 싸잡아 비난하는 전략으로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을 빠르게 공략하며 지난해 총선에서 이탈리아 최대 정당으로 올라섰다. 당시 약 33%의 표를 얻어 최다 득표를 한 오성운동은 강경 이민 정책을 앞세워 약진한 극우 성향의 정당 ‘동맹’과 손잡고 연정을 구성하는 데 성공, 지난해 6월에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부를 출범시켰다. 오성운동은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럽 차원에서 연대할 새로운 정치 세력을 물색하고 있다. 이 같은 국경을 넘어선 유럽 차원에서의 파트너 물색이 디 마이오 부총리가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지원 발언의 배경으로 보인다. 오성운동의 연정 파트너 동맹 대표인 마테오 살비니(45) 부총리 겸 내무장관도 에마뉘엘 마크롱(41) 프랑스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히고 있는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난민 문제, 유럽연합(EU) 재정규약 등을 둘러싸고 마크롱 대통령과 여러 차례 공개적인 설전을 주고 받은 사이다. 그는 내무장관 취임 이후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들어오려는 난민들에게 항구를 폐쇄해 주변국과 마찰을 빚어왔다. 살비니 부총리는 “국민의 뜻에 어긋난 통치를 하는 대통령에게 저항하는 선량한 시민들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노란 조끼’ 시위 도중 발생한 일부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정부에 서민경제 향상 조치를 요구하며 마크롱 대통령 정부에 대한 불만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노란 조끼’ 시위가 전국에서 토요일마다 8주째 이어지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김 태의 뇌과학] 조울병의 뇌과학

    [김 태의 뇌과학] 조울병의 뇌과학

    조울병은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요 정신과 질환이다. ‘조증 삽화’는 과도한 자만심이나 과대 망상을 보이고 말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수면 욕구 감소와 망상, 논리의 비약, 주의 산만, 과도한 쾌락 추구 등의 양상이 1주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우울 삽화’는 우울감, 의욕 상실, 의도치 않은 체중 감소, 불면 또는 과도한 수면, 안절부절 못하거나 피곤하고 무기력한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는 것을 뜻한다.상반된 기분 상태가 모두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이기에 ‘양극성 장애’라고도 한다. 한 번이라도 조증 삽화가 발생하면 우울 삽화가 있는지와 관계없이 1형 양극성 장애로 진단한다. 조증 삽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은 ‘경조증 삽화’와 우울 삽화가 반복되면 2형 양극성 장애로 진단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양극성 장애 전체 유병률은 4.3%로 결코 드문 질환이 아니다. 하지만 정확한 뇌과학적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선 유전적으로 동일하면 같은 질병에 걸릴까. 한 연구에 따르면 일란성 쌍둥이의 양극성 장애 일치율은 40~70%에 이른다. 다만 양극성 장애는 1개의 유전자 이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다. 다양한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질병으로 발현되는 복잡한 질환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포막에서 칼슘의 이동을 조절하는 ‘L 타입’ 전압 의존성 칼슘 채널 유전자가 주목받고 있다. 이 유전자가 양극성 장애와 연관성이 있다고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칼슘은 흔히 아는 것처럼 뼈를 이루는 주요 성분이기도 하지만, 세포 안에서는 ‘2차 신호 전달자’로 작용한다. 세포 기능을 조절하는 데 필수적인 물질이다. 따라서 칼슘 채널의 기능 이상 자체는 미세할지라도 통합적 뇌기능에는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거시적인 변화도 있다. 뇌영상 연구에서는 양극성 장애 환자의 뇌 속에 뇌척수액이 흐르는 ‘뇌실’이라는 공간이 정상보다 확장돼 있는 것이 발견됐다. 특히 삽화의 횟수가 많을수록 뇌실 확장은 더욱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극성 장애가 반복되면서 뇌조직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시상하부ㆍ뇌하수체ㆍ부신으로 이어지는 내분비 조절 기능의 이상, 24시간을 주기로 살아가도록 조절하는 일주기 리듬의 이상, 중추신경계와 신체에서 염증 관련 물질의 비정상적 증가,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등 다양한 이상 소견을 보이고 있다. 다행인 것은 양극성 장애의 약물치료 효과가 매우 좋다는 점이다. 리튬 또는 발프로산과 같은 ‘기분 안정제’ 계열의 약물들은 세포 내 신호전달체계를 바로잡아 조증과 우울증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치료로 재발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양극성 장애는 치료를 중단하면 조증과 우울증 삽화를 반복하게 될 위험이 크고, 일단 재발됐을 때 그 피해가 되돌릴 수 없이 커 지속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해야 한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진원지 서울 한복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 선포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진원지 서울 한복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 선포

    <1부> 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③서울 ‘한성임시정부’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지자 일제는 헌병을 동원해 주모자를 검거·학살했다. 특히 조선의 수도이자 이번 운동의 진원지인 서울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은 대담하게 적지(敵地)가 된 서울 한복판에서 임시정부 설립을 선언했다. 바로 노령정부(러시아)와 상하이정부(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수립된 한성정부다. 이 정부는 인민의 뜻을 수렴하기 위해 민주적 절차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3·1운동 당시 감리교 전도사 이규갑(1888∼1970)은 평양 대표로 시위에 참석했다가 일제의 검거령으로 친척 집에 숨어 있었다. 3월 5일 오후 9시쯤 그에게 동지 8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이번 시위로 우리나라가 독립이 될 수도 있으니 서둘러 임시정부를 수립하자”고 제안했다. 이규갑은 “정부를 세우는 건 한두 사람의 기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 총의를 모을 지역 대표부터 뽑자”고 설득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임정이 만들어졌다. 임정 설립 주도자는 검사 출신 홍면희(홍진·1877~1946)와 목사 출신 이규갑 등이다. 이들은 조선 황실 인사나 독립운동가 33인 등과 관계없는 순수 민간인이었다. 17일에는 검사 한성오(생몰연대 미상)의 집에 20여명이 모여 임시정부 준비위원회를 열었다. 정부 명칭을 ‘한성임시정부’로 정하고 민주공화제에 기반한 집정관총재 제도를 택했다. 이들은 보름 뒤인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13도 대표자회의’를 열기로 했다. 각 도 대표들이 모여 민주적으로 결의하면 조선 국민 전체 의견으로 봐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임정 준비위는 곧바로 전국 각지를 돌며 민족 대표 25명을 모집해 13도 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풍경을 묘사한 이규갑의 증언이다. “당일(4월 2일) 아침 권혁채와 홍면희, 안상덕 등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그때는 3·1운동 뒤 각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던 때라 일경(일본 경찰)의 경계가 심했다. 인천역에 내리자 불심검문을 받았다. 홍면희는 변호사여서 무사했지만 나는 검색을 당했다. 그러자 홍면희가 ‘이 사람은 약장사로 우리와 일행’이라고 둘러대 위기를 면했다.” 이날 만국공원에 찾아온 이들은 많지 않았다. 종교계와 서울·경기 지역 대표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13도 대표자회의 장소를 만국공원으로 정한 것은 당시 이곳이 일본인을 중심으로 외국인이 모여 살던 곳이었기에 조선 독립 의지를 보여줄 좋은 장소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들은 같은 달 23일 서울 종로 중식당 봉춘관에서 총회 격인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를 선포하고 보신각에서 민중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3·1운동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때 한번 더 일제의 허를 찌르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이날 종로 일대에는 임시정부 선포문과 국민대회 취지서 등이 뿌려졌다. 집정관총재 이승만(1875~1965)과 국무총리 이동휘(1873∼1935), 내무총장 이동녕(1869∼1940) 등 각료 명단도 나왔다. 이런 내용은 미국의 UP통신(현 UPI)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덕분에 한성정부는 국내외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임시정부가 됐다.●현실적 제약으로 ‘미완의 시도’ 평가도 다만 한성정부가 완전하게 수립된 임정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천에서 열린 13도 대표자회의는 성원을 채우지 못했고 서울의 국민대회 역시 소수 학생들이 전단을 살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노령·상하이정부와 달리 국민 전체의 뜻을 반영해 민주공화정을 탄생시키고자 했지만 일제의 압박 등 현실적 제약이 많아 ‘미완의 시도’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현희(1937~2010) 전 성신여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한성정부는 13도 대표나 임시정부 준비위원회 위원들을 집행부 임명에서 배제하는 등 공평무사한 인사를 단행하려고 했다. 절차적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이 덕분에 1987년 9차 개헌 당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의 법통이 (한성정부를 계승한)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확히 선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논란의 중심에 선 임정 초대 대통령 “(해방 당시) 대한민국이 갓 도입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정부와 국민 모두 낯설고 서툴렀다. 이승만 정부는 (불가피하게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치했지만) 그래도 헌법을 정지시키거나 국회를 해산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지는 않았다.”(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는 (같은 진영인)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조차 좋았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독재·반공 이데올로기는 이승만 정권과 연관성이 높기에 그를 치켜세워야 (독재·반공 정치체제가) 합리화된다. 이승만의 재평가 시도는 반대편을 종북이나 용공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다.”(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성정부 집정관총재에 추대돼 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오르는 우남 이승만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를 비판하는 이들은 “독립운동의 분열과 남북 분단, 한국전쟁 당시 그릇된 대처, 부정부패, 독재정치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이승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마음놓고 그를 비난하는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한 그의 공로”라며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큰 만큼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1896년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졌다. 자주독립과 천부인권 존중, 한글 사용 등을 강조했는데, 배후에는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 등 서양 선교사들이 있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만들어 조선인에게 영어와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이승만은 이 학당의 학생이었다.●“일단 비위 거슬리면 타인 이해하려 안해” 독립협회는 종종 대중 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배재학당 학생들도 대거 참여했다. 이승만은 여기서 주도적 역할을 하다가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7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때부터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조선사회에 환멸을 느꼈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면 반드시 기독교 이념에 입각한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배재학당의 경험과 기독교의 이분법적 선악 개념 등이 더해져 훗날 남과 타협하지 않는 특유의 성격이 생겨난 것 같다. 이승만을 가까이서 도왔던 정치인 허정(1896∼1988)은 “평소 장난도 잘 치고 유머러스했지만 일단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조금도 자기 뜻을 굽히거나 남의 사정을 봐주려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성정부 집정관총재를 시작으로 중국 상하이로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임정 대통령 재임기간 5년 6개월 가운데 상하이에는 반년 정도만 머물렀다. 대부분 기간은 미국에 혼자 머물며 전보를 이용해 ‘원격 통치’를 했다. 이 때문에 이동휘(1873~1935), 안창호(1878~1938) 등과 마찰이 생겼고 훗날 임정 전체가 내분에 휩싸이는 원인이 됐다.●“정부가 단 한 사람 때문에 법을 바꾼 사례” 그는 또 한성정부 집정관총재에 임명된 때부터 스스로를 집정관이 아닌 ‘대통령’(president)으로 칭해 논란이 됐다. 교민 성금 유용 의혹과 윤봉길(1908~1932) 의거 비난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최근에는 1918년 10월 그가 미국에서 작성한 1차 세계대전 징집 카드에 국적을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적은 것이 알려져 비난을 샀다. 당시 미국에서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도적 오기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원래 상하이정부는 국무총리 제도였다. 하지만 이승만이 끝까지 대통령 직함을 고집해 결국 임정이 1919년 9월 개헌 때 통치제도를 대통령제로 바꿨다. 정부가 한 사람 때문에 법을 바꾼 보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루스벨트·윌슨과 인연… 지도자로 급부상 그럼에도 이승만은 1919년 4월 15일 중국 길림성에서 선포된 고려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로, 17일 평안도에 설립된 신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방총리로, 19일 인천에서 수립된 조선민국임시정부에서 집정관총재에 선임되는 등 거의 모든 임정에서 1, 2인자로 지목됐다. 조선 사회는 왜 이승만을 새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 여겼을까. 그는 31살이던 1905년 8월 기독교계의 주선으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를 만나 한국의 독립을 청원한 경험이 있다. 또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해 약소 민족에게 희망을 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 역시 이승만이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학교 총장이었다. 당시 한국인으로서 갖기 힘든 경력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이승만은 1차 세계대전 뒤 최강국이 된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외교 카드’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반려견 호적에 올리고 싶네예~” 반려견 사랑꾼 로버트 할리

    “반려견 호적에 올리고 싶네예~” 반려견 사랑꾼 로버트 할리

    ‘한 뚝배기 하실래예?’(2009년 라면 광고), ‘걸면 걸리니까 걸리버지예~’(1997년 핸드폰 광고) 등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 외국인의 등장으로 당시 대중의 많은 관심과 사랑까지 얻게 된 로버트 할리(한국명: 하일). 1997년 귀화해 인생의 반을 한국인으로 살아오고 있는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장성한 세 아들까지 두었다. 어느 덧 만 60세의 고참 방송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또 다른 ‘두 자식’인 반려견 샌디와 컬리, 이 두 늦둥이의 보호자로 인생 후반기를 새로운 사랑으로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학교이사장으로, 변호사로, 방송인으로 바쁜 일상을 보낼 수 밖에 없던 그가 늘 간절히 꿈꿨던 것을 지난해 한 방송을 통해서 현실로 만들었다. SBS플러스 <펫츠고! 댕댕트립> 프로그램을 통해 아내와 세 아들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미국 중서부를 여행하고 돌아온 것이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하일씨와 그의 가족은 미국의 선진 반려문화에 놀라움과 큰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하일씨의 단골 카페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은 서글서글한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했다. 말 잘 안 듣는 아들 보다 한 번도 불평불만 하지 않는 자신의 반려견 샌디와 컬리를 더 사랑한다는 하일씨. 반려견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호적에까지 올릴 생각을 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아쉬움을 달래고 말았다라는 그와의 유쾌한 만남을 정리했다.(Q) 많은 직종에 종사하시는 데 본인의 ‘진짜’직업은강아지 아빠죠. 학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고, 방송도 많이 하고 있어 방송인이라고 해야 되기도 하죠. 학교운영도 무시하면 안되니깐 이사장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죠. 물론 애들 아빠이기도 합니다. (Q) “집사람과 아들 없이 살아도 반려견 없이 못 살아예”라고 말할 정도다. 반려견 샌디와 컬리 소개 해주신다면제가 농담으로 코리안 아메리칸 코카스파니엘이라고 부르는 데 샌디를 처음 보고 나서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강아지가 너무 예뻐 미칠 지경이다. 컬리는 샌디의 아들이다. 굉장히 활발하고 산책 데리고 나가면 정신없이 뛰어가고 새만 보면 막 잡아먹으려고 한다.(Q) 순정만화 주인공 같이 생긴 막내 자랑 좀 해주신다면아빠하고 친구 같은, 동생 같은 그런 아들이다. 이게 자랑인지 모르겠지만 돈 쓰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고 사람만나는 것도 좋아한다. 집에 잘 안 들어온다.(웃음) (Q) 캘리와 샌디를 호적에 올릴 정도로 사랑하시는 데...강아지가 아들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들은 반항하고 말대꾸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강아지는 절대로 안 한다. 진짜 제가 호적에 올릴 수 있으면 올리겠지만 현실적으로 강아지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진짜 올리고 싶은 맘으로 그런 말을 한 거다. (Q) 강아지를 키우게 된 계기는결혼하고 나서 애기를 낳게 되니깐 강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번 키웠었다. 애들이 강아지하고 같이 밖에서 놀면 좋을 거 같았고, 잘 모르겠지만 머리 발달에 좋은 거 같다는 말을 들어서 키우게 됐다. (Q) 반려견 교육 혼자 다 했다는데 힘든 점은 없었는지힘든 거 없었다. 너무 쉬웠다. 사람들이 왜 그런 교육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제가 전에 키웠던 강아지들한테 그런 교육을 안 시킨 게 후회가 된다. 몸 돌리는 거, 앉는 것 등 많은 것들을 가르쳤다. 교육 덕에 샌디는 오랫동안 소변을 참을 수 있게 됐다. 이후 한 번도 실수한 적 없다. 아들 컬리는 소변을 다섯 시간 참을 수 있게 됐다. 훈련 계기는 아내도 강아지들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려고 훈련을 직접 시킨 거다. 아내가 집에서 너무 털이 많이 날려서 불평투로 ‘털털털’하고 말하지만, 이젠 잘 때 강아지를 껴안고 잘 정도로 좋아한다. (Q) 사유리와 한 소속사다. 서로의 반려견에 대해서 가끔 얘기하는지사유리가 키우는 두 마리 강아지 중 한 마리가 아프다. 암에 걸렸다. 강아지 안 키우는 분들은 잘 모른다. 키우던 반려견이 죽으면 ‘어떻게 눈물이 나냐고 그냥 강아지인데’라고. 나도 내 강아지가 아프면 많이 운다. 마음이 매우 속상하고. 사유리씨와 서로간에 이런 얘기들 많이 나눈다. (Q) 반려견과의 미국 여행은 어땠는지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은 여행 잘 못한다. 강아지 데리고 여행 갈 수 있게 돼서 너무나 좋았다. 헌팅턴 비치에 가보니 강아지 천국이었다. 크나큰 강아지들이 뛰고 놀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컬리와 샌디도 신나게 뛰며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오고,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국에도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Q) 일반견들과 함께 뛰노는 장애견들을 보고 많은 걸 느꼈다고 했는데다리도 없고 몸에 큰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장애견들을 일부러 키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하지만 너무나 보기 좋았다. 그러한 장애견들을 키우는 사람들이 강아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Q) 반려견과 캠핑카를 타고 미국을 돌아다니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지제가 직접 운전하는 캠핑카에서 강아지랑 같이 여행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같이 잘 수도 있고. 캠핑카 여행은 내 꿈이었다. 이런 여행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해보니깐 너무나 좋았다. 최고의 여행이었다. (Q) 여행준비가 힘들진 않았는지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은 거 같다. 조금만 알면 굉장히 쉽다. 정말 강아지 데리고 여행 가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 말하고 싶다. 여러분들도 도전해 보기를 권유한다. 후회하지 않을 거다.(Q) 미국의 반려견 문화는 한국과는 조금 다른데한 번은 한국에서 작은 강아지를 가방에 넣고 택시를 타려고 했다. 택시 운전사가 “타지마, 강아지 싫어”하고 그냥 가버렸다. 만일 그 분이 우리 집사람한테 “이 여자 보기 싫으니 타지마”라고 하면 제 마음이 어떻겠나.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강아지를 조금만 더 따뜻하게 받아주었으면 한다. 미국에서는 그런 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인정한다. (Q) 개를 유기하고, 학대하는 사람들을...왜 때려요. 왜 학대해요. 왜 그런 못된 짓을 해요. 반려동물은 내 아들하고 똑같다.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상상할 수 조차 없다. (Q) 가끔 반려견에 대한 이별 준비를 생각하곤 하는지다음 세상으로 떠난 강아지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걱정도 많이 하고 있고 더불어 신경도 많이 쓰고 있는 편이다.‘내 강아지가 죽었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다시는 키우지 못하겠어’ 하는 분들 있어요. 마음이 아프다고 다시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말이 안된다. 그렇게 사랑했으면 다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아들 셋 다 키운 아내분께 고마움이 있다면집사람이 지방에서 계속 아이들을 키웠으니깐 너무나 고맙다. 그리고 강아지들을 안 쫓아내니깐 제가 더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웃음) (Q) 2019년 기해년(돼지해)이 밝았다.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이 있다면?방송활동 하면서 조금 이상하다. 내가 나이는 제일 많은 데 이상하게 제일 바쁘다. 물론 학교운영도 열심히 할 거다. 물론 가족도 계속 사랑해야겠죠.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1부 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②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 상하이는 명나라 말기부터 성장해 1880년대에는 동북아시아의 최대 상업 도시가 됐다. 1910년 대한제국 국권을 빼앗긴 뒤로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주목받았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이 독자적 주권을 행사하는 ‘조계’(외국인 자치구역)를 설치해 일본을 비롯한 다른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간섭을 피할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는 외국인에게도 건국이념인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보장해 한국인에게는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민족의 두 번째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태동했다.●“첫 번째 ‘임정 터’ 못 찾아…대한민국의 숙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를 위해 지난달 중순 찾아간 상하이 최대 번화가 화이하이중루 일대. 사람과 차들로 거리가 넘쳐나고 전 세계 패션 브랜드가 건물마다 즐비했다. ‘자본주의 최전선’인 이곳이 정말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기자와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고층빌딩이 가득 찬 서금이로(옛 김신부로) 지역을 바라보며 “100년 전 이곳 어딘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프랑스 정부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상하이 임정 기념관은 ‘보경리 청사’로 1926~1932년에 썼던 곳이다. 이 작가는 “최근 중국인 학자가 첫 번째 임정 터를 찾았다고 간략히 발표했지만 이에 대한 고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1919년 3월 17일 러시아 고려인들이 프리모르스키(연해주)에서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를 선포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때마침 서울에서도 임정 수립을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같은 달 26일 프랑스 조계의 한 예배당에 모였다. “조선총독부에 맞서 서둘러 임시정부를 조직하자”는 의견과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국내 지도자들의 뜻을 들어 보고 정하자”는 반론이 맞섰다. 하지만 3·1운동 직후부터 중국과 러시아에서 거물급 인사들이 상하이로 모여들고 있어 정부 수립을 더는 늦추기 어려웠다. 앞선 노령정부에다가 서울에 임정(한성정부)이 또 생기면 독립운동의 주도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4월 10일 이동녕(1869~1940)과 이광수(1892~1950), 여운형(1886~1947) 등은 우리 역사 최초의 의회인 임시의정원을 꾸리고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밤을 새워 토의하던 중 신석우(1894∼1953)가 “임시정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따오고 공화제 국가인 중화민국에서 ‘민국’을 가져온 것이다. 여운형이 “이 나라가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의원 다수가 이에 공감해 상하이정부의 이름이 정해졌다. 다음날 이들은 국무총리에 이승만(1875~1965)을 추대하고 내무 안창호(1878~1938), 재무 최재형(1860~1920) 등 6부 총장(장관)을 임명했다. 우리가 국가기념일로 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은 여기서 유래됐다.●왕 아닌 인민이 주인인 민주공화정 첫 공식화 그렇다면 두 번째 임정은 왜 상하이에 세워졌을까.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최선화(1911~2003) 부부의 임정 기록을 외손녀 김현주씨가 정리한 ‘제시의 일기’(1999년)를 보면 여기가 왜 임정의 적지인지 잘 묘사돼 있다. “중일전쟁(1937~1945) 전 상하이는 서양 문물의 향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와 똑같이 살 수 있도록 조계지로 분할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조계지가 시설이 가장 좋았다. 프랑스는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답게 망명객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조선에서 온 이들이 다른 조계지에 숨으면 곧 붙들려 갔지만 프랑스 조계지에서는 안전했다. 설사 끌려간다고 해도 프랑스 정부가 항의하면 다시 풀려나올 수 있었다.”(1946년 2월 21일) 상하이정부는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노령·한성정부와 달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명시하고 한국사 최초로 민주공화정 국가 건설을 공식화한 것이다. 새 나라가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3·1운동 전까지 이어져 오던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를 완전히 단절시킨 것이다. 다만 상하이정부가 추구한 ‘외교독립론’은 훗날 임정이 끊임없이 갈등과 내분에 빠지는 단초가 됐다. 외교적 방법론은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적 역량을 반영한 전략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기든 지든) 일본과의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는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고 믿는 무장투쟁론자들을 설득하진 못했다.●쑨원의 부인 추모 능원에 신규식 등 만국공묘 상하이지하철 10호선 쑹위안루역 2번 출구로 나오니 말끔하게 정돈된 공원이 있었다. ‘중화민국의 아버지’ 쑨원(1866~1925)의 두 번째 부인이자 ‘중국의 국모’로 불리는 쑹칭링(1893~1981)을 추모하는 곳이다. 공원 한쪽에 외국인 묘지를 모아 놓은 ‘만국공묘’가 나타났다. 묘비를 하나씩 더듬다가 낯선 한국인 이름 하나를 찾아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획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계자’로 인정받는 신규식(1880~1922)이었다. 나라를 위해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불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특히 한쪽 눈을 가린 채 카이저 수염을 기른 외모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하지만 그가 초기 임정을 상하이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충북 청원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채호(1880~1936), 신석우와 함께 ‘산동삼재’(산동신씨 가문의 3대 수재)로 불렸다. 대한제국에서 군 장교로 활동하다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첫 번째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가족에게 발견돼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눈 시력을 잃었다. 지인들이 ‘애꾸눈’이라고 놀리자 신규식은 스스로를 ‘예관’(睨觀·한쪽 눈으로 흘겨봄)으로 불렀다.●신해혁명 경험삼아 민주공화정 개념 전파 1910년 8월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두 번째로 집에서 독을 마셨다. 때마침 대종교 종사 나철(1863~1916)의 눈에 띄어 다시 한 번 구조됐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이듬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중국의 공화주의 노력을 한반도에 적용하겠다는 생각에 쑨원과 천두슈(1879~1942), 천치메이(1878~1916) 등 혁명가 그룹과 친분을 맺었다. 쑨원이 이끄는 ‘중국동맹회’(1905~1912·중국 국민당의 전신)에 가입하고 청 왕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에도 직접 참여했다. 1912년 국내 독립운동 세력을 결집하고자 ‘동제사’를 조직했다. 총재 박은식(1859~1925)을 비롯해 김규식(1881~1950), 신채호, 조소앙(1887~1958) 등 동제사 출신은 후일 임정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다. 이들은 1917년 7월 임시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2년 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임정이 상하이에 자리잡은 건 신규식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제안한 신석우가 바로 신규식의 조카”라며 “신규식은 자신의 신해혁명 경험을 독립지사들에게 소개해 대한민국의 토대가 된 민주공화정 개념을 설파했다”고 설명했다. 1921년 11월 쑨원이 이끄는 중국국민당이 베이징 군벌정부에 대항해 광둥에 호법정부를 세웠다. 신규식은 국무총리·외무총장 자격으로 그를 찾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 국가로 승인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쑨원은 혁명동지 신규식을 극진히 예우했다. 호법정부의 정치·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그의 부탁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는 국제적으로 정식 주권기구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임정이 국민당의 후원을 받아 다소나마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됐다. ●해외서 문전박대 뒤 임정 외교독립론 도마에 1922년 대통령 이승만이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고자 워싱턴회의에 갔다가 개최국인 미국으로부터 문전박대 당해 쫓겨났다. 임정의 외교독립론이 논란이 됐다. 신규식은 이런 임정의 처지를 비관해 25일간 단식하다가 같은 해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일각에서는 그가 1921년 쑨원을 만났을 때 황제에게 예를 표하는 ‘만세’를 외친 것을 두고 사대적 자세를 지적한다. 하지만 대의명분을 누구보다 중시하던 신규식의 평소 성격에 비춰 볼 때 그런 굴욕을 참아내며 쑨원을 대한 건 오로지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으리라. 상하이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1부>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①러시아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우리는 헌법 전문을 통해 우리나라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통해 해방을 맞게 됐는지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한민국 임정은 1919년 여러 정부가 하나로 합쳐져 세워진 뒤 끝없는 갈등과 내분으로 수차례 해체 위기를 맞았다. ‘식물정부’로 전락해 명맥만 유지하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임정은 우리 역사 최초로 근대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27년간 외교 노력과 전쟁을 병행한 독립 운동의 총괄체였다. 왕족이나 정부 계승자도 아닌 이들이 민중의 뜻으로 임시정부를 세워 30년 가까이 제국주의 국가와 투쟁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에 있는 임시정부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임정의 역사와 인물, 이슈 등을 망라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을 12회에 걸쳐 싣는다. 이번 역사 탐구에는 김원봉(1898~1958년)과 김산(1905∼1938년), 조봉암(1898∼1959년) 평전을 쓴 이원규(72) 작가와 독립운동가 김연방(1881~1919년)의 증손자 김주용(53)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가 함께했다.●신한촌碑, 고려인 독립운동 중심지 일깨워 지난달 초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강추위가 몰려왔다. 서울보다 기온이 10도 가까이 낮았다. 기자를 안내한 교포2세 권세라(27) 가이드는 “그래도 여기는 연해주 다른 도시보다는 따뜻한 편”이라며 “러시아에는 ‘40도 이하 술은 술이 아니다. (영하) 40도가 안 되는 추위는 추위가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며 웃었다. 공항에서 남부 루스키섬 쪽으로 50여분쯤 달리자 시내 외곽 라게르산 비탈에 도착했다. 검은색 철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에 직사각형 모양 5m짜리 기둥 3개와 네모난 돌 8개가 놓여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묶어 놓은 태극기와 노란 리본도 눈에 들어왔다. 신한촌 기념탑이었다. 3개의 기둥은 우리 민족과 친근한 숫자인 3을 형상화한 것이다. 8개의 돌은 조선 8도를 상징한다.1911년 러시아 당국은 페스트 창궐을 명분 삼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던 고려인 마을 구(舊)개척리를 철거했다. 한인들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한국’이라는 뜻의 신한촌을 세웠다. 1919년 3월 17일 우리 민족이 세운 첫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한때 1만명이 넘는 고려인이 여기에 살았지만 1937년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1878~1953년)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마을을 모두 파괴했다. 지금은 기념비만이 이곳이 연해주 고려인 독립운동의 구심지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3·1운동은 세계 각지에 임시정부 설립을 촉발했다. 독립선언서 첫 구절에 “이제 우리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다”고 밝히면서 여기저기서 뜻있는 이들이 주권 기관을 세워 이를 정당화하고자 한 것이다. 제대로 된 조직을 갖춘 곳은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와 중국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하이 정부), 서울의 한성 임시정부 등 세 곳이었다.●전로한족중앙총회가 대한국민의회로 1917년 3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정부 수립을 위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300년 넘게 러시아를 지배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다.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년)은 열강의 제국주의 책동을 비난하며 “약소 민족의 자결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연해주 고려인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일본이 패배하면 우리도 반제국주의 흐름에 힘입어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같은 해 5월 문창범(1870~1938년)과 최재형(1860~1920년)이 중심이 돼 니콜스크우수리스크(현 우수리스크)에서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열었다. 러시아 전역의 한인을 대표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의미다.이들은 1919년 3·1운동을 준비하면서 2월 25일 중국 간도 지역 동포들과 함께 총회를 열었다. 이때 이름을 ‘대한국민의회’로 바꾸고 연해주와 간도를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선언했다. 의회 의장에 문창범을 선출하고 외교부장 최재형, 군무총장 리동휘(1873~1935년) 등을 임명했다. 공식 선포는 20일쯤 뒤인 3월 17일에 이뤄졌는데, 이는 3·1운동과 궤를 맞추려는 의도였다. 대한국민의회는 ‘노서아(러시아) 영토에 있던 임시정부’라는 뜻으로 ‘노령정부’라고도 한다.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국가 기능을 한 곳에 모아 집행하는 소비에트제를 채택했다. 단시일 내에 일본에 대한 무장투쟁에 나서고자 정부 조직 과정을 다수 생략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대한국민의회는 정부 선포 직후 각국 영사관에 전문을 보내 일본 제국주의와의 혈전(血戰)을 선언했다. 간도 뤄쯔거우(나자구)에 군사 훈련소도 마련했다. 신한촌 옛터에서 이원규 작가는 “전 세계 임시정부의 최종 목표는 독립 전쟁으로 영토를 되찾아 새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노령정부는 이런 임정의 본령을 구현할 최적지에 있었다”고 평했다.다만 이 정부는 상하이·한성 정부와 달리 별도의 헌법을 발표하지 않아 조직 구성이 체계적이지 못했다. 고려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유산계급인 원호인(러시아 귀화자)들이 무산계급인 여호인(미귀화자)들을 차별해 한인 사회가 둘로 쪼개지는 발단이 되기도 했다.●러·韓 어느 곳에도 최재형 추모비 하나 없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우수리스크. 발해성 등 2개의 성터가 있다고 해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쌍성자’로 부르던 곳이다. 민가가 즐비한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가자 단정히 정돈된 최재형 생가가 나타났다. 추운 날씨에도 러시아 인부들이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하느라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집은 그가 1919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살던 곳이다. 권 가이드는 “최재형을 빼놓고 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이나 러시아 어느 곳에도 추모비 하나 세워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노령정부 태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을 들자면 단연 ‘연해주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최재형이 꼽힌다. 안중근(1879~1910년)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1841~1909년)를 저격할 수 있게 8연발 브라우닝식 권총을 건넨 인물이다.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1860년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였던 아버지 최형백과 기생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9살이던 1869년 가족들이 배고픔과 학정을 이기지 못하고 크라스키노(연추)의 한인마을 ‘지신허’로 이주했다. 11살 때 “밥만 축낸다”는 형수의 구박에 집을 뛰쳐나왔다가 포시에트라는 작은 항구에서 러시아 선장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최재형을 친아들처럼 보살폈다. 그는 이 부부와 전 세계를 항해하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서양문명을 체험했다.1877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 최재형은 군수업자로 변신해 성공을 거뒀다. 당시 이 지역 노동자 한 사람의 급여가 월 10~15루블 정도였는데, 그는 포시에트항을 근거지로 여러 사업을 벌여 매달 1만루블 이상을 벌었다. 거부가 되자 그는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고국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다. 1909년 10월 안 의사의 하얼빈역 저격을 도운 것이 대표적이다. 최재형의 막내딸인 엘리자베트 표트로브나의 회고록에는 “안중근은 아버지와 함께 거사를 준비했고 실행 전 우리 집에 기거하며 사격 연습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연해주 한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페치카’(러시아식 난로)라는 애칭도 얻었다.●전 재산 독립에 쓰고… 日 헌병대에 총살당해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일본은 1920년 4월 러시아혁명 세력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에 상륙해 대대적인 체포·학살에 나섰다. 조선 독립에 전 재산을 쓰고 어렵게 살던 최재형은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의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돼 4월 5일 처형됐다. 63세였다. 당시 막내딸이 아버지에게 “뒷문으로 도망가라”고 여러 차례 애원했지만 가족들이 고초를 겪을까봐 담담히 앞문으로 나갔다고 한다. 죽음을 맞으러 발걸음을 내딛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외로웠을까. 블라디보스토크·바라바시·우수리스크·크라스키노(러시아)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세계적인 유방암 치료 항암제서 치명적 결함 발견 (연구)

    세계적인 유방암 치료 항암제서 치명적 결함 발견 (연구)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유방암 치료용 항암제가 뇌의 인지기능과 기억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것은 레트로졸(Letrozole)로, 국내에서는 폐경 후 여성의 일차내분비요법에 사용되거나,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이성 유방암에 아로마타제 억제제로서 이 약을 처방한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에서는 총 75만 5866회의 처방이 내려졌다. 영국암연구센터는 이 약을 처방받은 환자 중 30%가 열이나 피로감 같은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밝혔지만,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약물의 부작용을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원숭이를 대상으로 4주간 이 약을 투여한 뒤 변화를 살폈다. 그 결과 원숭이들은 4주 후부터 고열과 불안증세 등을 보였으며, 특히 해마의 기능이 손상된 것을 확인했다. 해마의 세포가 손상되면서 기억력 감소 증상이 나타났고, 이러한 부작용은 약물을 복용한 지 불과 4주 만에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레트로졸은 폐경 이후 유방암환자들에게 처방되는 아로마타제 억제제다. 10명 중 1명 꼴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하고 관절 통증이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거나 질 건조증 등의 부작용도 보고돼 있다. 그러나 해마에 직접적인 손상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마는 감정을 조절하고 기억력과 인지능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유방암 환자에서 레트로졸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이번 연구결과는 현재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여성들이 경험한 일부 증상을 정상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따. 세계 암연구기금에 따르면 유방암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에게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암으로, 2012년 한 해 동안 약 170만 명이 진단을 받았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신경과학저널‘(Journal of Neuroscience) 최신호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미운우리새끼’ 홍진영 母, 딸들 일상 공개에 “어째쓰까” 탄식

    ‘미운우리새끼’ 홍진영 母, 딸들 일상 공개에 “어째쓰까” 탄식

    ‘미운우리새끼’ 홍진영 어머니가 새 멤버로 전격 합류한다. 최근 진행된 SBS ‘미운우리새끼’ 녹화 스튜디오에는 홍선영, 홍진영 자매의 어머니가 등장했다. 끼와 흥이 넘치는 ‘홍자매’의 어머니답게 처음부터 남다른 노래 실력까지 뽐내며 녹화장의 분위기를 잔뜩 고조시켰다. 하지만, 잠시 후 딸들의 일상을 본 홍진영 어머니는 바로 혈압이 오르는 상황과 마주했다. 녹화 전, 사전 인터뷰에서 자신만만하게 “우리 딸들은 착해요” 라고 말했던 어머니가 “어째쓰까~어째쓰까” 연신 탄식을 내뱉는 모습에 박장대소를 유발하기도 했다. 특히, 하루 종일 네버 엔딩 ‘먹방’을 펼치며 말로만 다이어트를 다짐하는 홍진영 언니 ‘홍선영’의 털털한 매력에 스튜디오는 웃음 바다가 된 반면, 어머니만 혼자 “애가 탄다!” 라며 걱정과 분노를 동시에 발산했다. 그러나 ‘홍자매’의 먹성이 사실은 어머니를 쏙 빼닮은 것이라는 반전이 밝혀져 더 큰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최초 여자 미우새’ 홍진영의 어머니 등장으로 항상 찰떡 호흡을 자랑하던 母벤져스 사이에 내분(?)이 생겼다는데, 과연 어머님들 사이에 어떤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됐을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SBS ‘미운우리새끼’는 23일 오후 9시 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임신 중 오존 노출되면 태아 기형 위험↑

    임신 중 오존 노출되면 태아 기형 위험↑

    임신 중 오존에 노출되면 태아에게 선천성 기형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환경보건센터 교수팀은 2008∼2013년 태어난 0∼6세 선천성 기형 아동 15만명을 대상으로 태아 당시 오존 노출에 따른 기형 발생 위험도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연구팀은 산모의 임신기간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 등 3개 그룹으로 분류하고 대기 오존농도가 높아질 때마다 선천성 기형이 발생할 확률을 비교했다. 그 결과 임신 중기(4∼7개월)에는 오존농도가 0.018ppm 증가할 때, 태아의 비뇨기계 기형이 발생할 확률은 11.7% 높아졌다. 또 근골격계 선천성 질환 발생 확률은 7.1%, 심장을 비롯한 순환기계 기형은 5% 증가했다. 임신 후기(8∼10개월)에는 순환기계 기형이 4.2%, 근골격계 기형은 3.6% 높아졌다. 또 오존은 출생 후 내분비와 대사질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임신 중기에서 대기 오존농도가 0.018ppm 증가할 때 대사질환 관련 선천성 기형 발생 확률이 11.7% 높아졌고, 임신 후기에는 8.2% 증가했다. 홍 교수는 “대기 오염이 심한 날에는 임신부의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세계서 가장 희소한 혈액형 가진 2세 암환아, 기증자 찾았다

    세계서 가장 희소한 혈액형 가진 2세 암환아, 기증자 찾았다

    혈액형이 세계에서 가장 희소한 것 중 하나에 속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한 소아암 환아에게 기증자가 나타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BBC방송 등 외신은 11일(현지시간) 미국 비영리 혈액센터 원블러드의 발표를 인용해 희소 소아암을 앓고 있는 두살 배기 인도계 여자아이 자나이브 무갈에게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고 전했다.아이는 신경아세포종을 앓고 있어 화학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파괴된 혈액세포를 회복하기 위해 수혈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는 인도계 사람 대부분이 혈액 속에 가지고 있는 공통 항원 ‘인디언 B’(InB·Indian B)가 없었다. 때문에 부모들과 몇몇 친척이 아이에게 수혈해주기 위해 적합성 검사를 받았지만 누구도 일치하지 않았다.이에 따라 원블러드는 최근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증자 찾기에 나섰다. 이 기관은 조건으로 기증 희망자는 인도계나 파키스탄계 또는 이란계여야 하며 부모 모두 이들 민족에 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 중에서도 혈액혈은 A형이거나 O형이어야 하며 인디언 B 항원이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이와 같이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 4% 미만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 덕분인지 1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고 영국에 사는 한 여성이 아이에게 수혈하기 적합한 피를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노팅엄에 살며 두 아이를 둔 이 50세 여성은 익명으로 남길 원한다고 밝히면서도 아이를 도울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아픈 누군가가 회복하는 것을 돕는 데 내가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어 기쁘다. 언론의 관심으로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아시아인들에게서 기증이 장려되길 바란다”면서 “단 한 번의 헌혈도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블러드에 따르면, 미국에서 두 명의 기증자가 더 발견됐지만, 의료진은 아이를 치료하는 과정 내내 7명에서 10명의 기증자가 필요하리라 추정한다.아이의 종양은 두 달 전 위에서 처음 발견됐지만, 의료진은 이 종양이 약 10개월 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 성장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아이 아버지 라힐은 “우리 모두는 울고 있었다. 우리가 우려한 것 중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신경아세포종은 신경세포의 초기 형태에서 생기는 암의 일종이다. 5세 미만의 유아와 아동에게 가장 흔히 나타나며 그 이상인 어린이에게는 드물게 발생한다. 신경아세포종은 좌우 신장 위에 있는 한 쌍의 내분비 기관인 부신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된다. 이는 신진대사와 면역체계, 그리고 다른 필수 기능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는 신경세포 군집이 존재하는 복부와 가슴, 그리고 척수를 포함한 다른 부위에서 발생하거나 이곳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세인트주드소아연구병원에 따르면, 신경아세포종은 소아암의 7~10%를 차지한다. 미국에서는 매년 800여 건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한다. 원블러드는 화학요법 덕분에 아이의 종양 크기는 줄어들고 있지만, 아이는 결국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아버지 라힐은 “우리는 더 많은 기증자가 필요하다. 내 딸의 목숨이 당신의 피에 달렸다. 그러니 제발 헌혈해야 달라”고 말했다. 사진=원블러드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여기는 중국] 中 3살 여아, 세계 최연소 유방암 진단

    최근 중국의 3살 여아가 유방암 진단을 받아 충격을 주고 있다. 4일 중국경제망(中国经济网)은 산동(山东)지역에 사는 옌옌(妍妍, 3)이 최근 유방암 진단을 받아 장쑤성 인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보통 유방암은 성인 여성에게서 발견되며, 이렇게 어린 나이에 유방암이 발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옌옌은 전 세계 3번째 최연소 유방암 사례로 알려졌다. 옌옌의 모친은 지난 3월 딸의 윗도리 가슴 부위에 붉은색 자국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만져보니 끈적끈적한 느낌이었지만, 소량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붉은색 점은 점점 더 많이 묻어났고, 아이의 가슴에 작은 몽우리가 만져졌다. 병원에서는 “성조숙증이 의심된다”면서 “가급적 지나친 보양식을 피하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이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고, 수소문 끝에 장쑤성 인민병원의 탕진하이(唐金海) 전문 교수를 찾았다.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이는 분비성 유선암이라는 아주 특이한 형태의 유방암으로 판명 났다. 사례가 적은 만큼 치료 방법도 참고할 만한 선례가 드물다. 게다가 아이가 어려 유선의 선체(腺体)가 아직 미성숙하고, 치료 방식이 아이의 심신발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병원은 병리학부, 신경내분비 종양 전문가 등과 공동 팀을 꾸렸다. 또한 원격시스템을 통해 미국 하버드대학 부속 의대의 전문가들이 글로벌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병원은 여러 차례의 회의와 토론 끝에 아이의 유방발육을 고려해 유선을 보존하는 수술 치료법을 택했다. 즉 병변을 제거하는 동시에 유선 선체는 보존하는 수술이기 때문에 높은 정밀도가 필요하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평소 병원을 가장 무서워했던 아이는 “커서 의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탕 교수는 “3살 아이의 유방암은 매우 드문 경우지만, 암 발병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사진=수술 전 아이에게 응원을 보내는 의료진들 (중국경제망)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겨울만 되면 으슬으슬한 그대, 갑상선 괜찮으십니까

    겨울만 되면 으슬으슬한 그대, 갑상선 괜찮으십니까

    겨울에 유독 추위를 많이 탄다면 건강 이상을 의심해야 한다. 환자가 추위를 많이 호소하는 병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과 ‘레이노 증후군’이 있다. 2일 정호연 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에게 두 질병의 증상과 치료법에 대해 물었다.Q.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어떤 병인가. A.갑상선 호르몬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조절하고 몸에서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갑자기 추위를 많이 탄다면 갑상선 기능 이상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우리 몸에서 필요로 하는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해 대사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통계로 보면 여성 환자가 남성에 비해 5.5배 많다.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이유가 여성호르몬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Q.증상은. A.주로 쉽게 피로해지고 매사에 의욕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추위를 많이 타고 식욕이 떨어지지만 체중은 오히려 증가하는 모습도 보인다. 맥박이 느려지고 위장관 운동력이 낮아져 변비 증상도 생긴다. 월경 과다나 생리 장애가 나타날 때도 있다. 피부와 머리카락이 거칠어지고 건조해지는 증상도 함께 나타난다. Q.병을 확인하는 방법과 치료법은. A.병원에서 혈액검사를 받으면 쉽게 진단할 수 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 치료는 주로 갑상선 호르몬을 복용해 부족한 갑상선 호르몬을 보충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요오드’가 갑상선 호르몬 생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김, 미역, 다시마를 포함한 해조류를 적당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치료하지 않으면 고지혈증, 심장질환과 같은 합병증이 생기고 여성은 불임과 태아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증상이 나타나면 가급적 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Q.레이노 증후군은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 A.레이노 증후군이 있으면 추위나 심리적 변화에 의해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말초혈관이 오그라들고 혈액 순환장애가 생겨 피부가 창백해지고 손발 저림, 통증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레이노 증후군은 특별한 원인 없이 발병한다. 여성 환자가 62%로 남성보다 많다. 여성에게 증상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초경·임신 등 호르몬 변화, 설거지·빨래 등 찬물에 자주 노출되는 환경의 영향이 크다. Q.치료는. A.혈관을 확장하거나 수축하는 약물을 사용하고 효과가 없으면 교감신경을 차단하는 수술을 한다. 완치가 쉽지 않지만 치료하면 피부가 창백해지는 횟수와 기간이 감소하는 등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레이노 증후군을 예방하려면 찬 곳을 피하고 외출할 때 장갑을 꼭 껴야 한다. 흡연은 말초혈관을 수축시키기 때문에 금연은 필수다. 증상이 심해지면 혈관이 막혀 살이 썩는 피부 괴사까지 일어날 수 있어 증상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또 평소에 손발을 따뜻하게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사립유치원 오늘 운명의 날… 한유총은 ‘집단폐원’ 싸고 내분

    사립유치원 오늘 운명의 날… 한유총은 ‘집단폐원’ 싸고 내분

    일정상 교육위 법안처리 오늘 마쳐야 한유총 강경파 ‘폐원 성명서’ 압박에 대치하던 서울지회장은 쓰러져 입원사립유치원 사태가 3일 ‘운명의 날’을 맞게 될 전망이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법안 통과를 위한 여야 최종 담판이 이뤄지기 때문에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3법’ 통과 시 전체 유치원 폐원”이라는 초강경 공세에 나선 한유총은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 갈등이 격화되면서 내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2일 국회와 교육계 등에 따르면‘ 박용진 3법’ 등을 놓고 국회 교육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린다. 소위 위원장인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상임위에서 박용진 3법을 처리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교육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리는 3일”이라고 못박았다.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박용진 3법’과 자유한국당이 자체 마련한 ‘유치원 3법’을 두고 합의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오는 7일 이번 회기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국회 일정상 3법이 통과되려면 늦어도 3일까지는 교육위에서 법안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 한국당 발의안에는 사립유치원의 회계를 이원화해 누리지원금 등 지원금과 방과후 과정 비용 등 학부모부담금으로 나눠 관리하도록 했는데, 민주당에서는 이 부분에서 기존에 문제가 됐던 유치원 운영비 개인 유용 비리가 또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분이 여야 간 합의에서 중점 논의될 예정이다. 한유총은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 정책에 따라 개인사업자인 사립유치원은 어떻게든 (폐원 등) 자신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시도할 것”이라면서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다만 한국당의 법안에 대해서는 “(수용할지 말지)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일단 여야 합의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한유총은 내부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한유총 서울지회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박영란 서울지회장이 서울지회 영등포 사무실에서 강경파와 대치하다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앞서 박 지회장은 지난달 30일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만나 “유아 학습권을 침해하거나 학부모의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들은 배제하겠다”면서 한유총 비상대책위원회의 강경노선과 다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한유총 강경파 회원들이 서울지회 사무실을 찾아 ‘서울지회는 박용진 3법이 통과될 경우 폐원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하라며 압박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이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유총 비대위 관계자는 “압박 과정에서 쓰러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박 지회장이 몸이 좋지 않아 쓰러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여기는 중국] 결혼 후 불임으로 병원찾는 27세 여성, 알고보니 남자

    중국 후난성 샹탄시에 거주하는 새댁 샤오후이(小慧, 27세)는 최근 불임 시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지난 27년을 여자로 살아온 그녀가 사실은 남자였다는 것. 최근 결혼을 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임신 소식이 없다는 점에서 남편과 함께 정밀 진단을 받은 샤오후이 씨에게 병원 측이 전달한 진단서에는 그녀의 염색체가 ‘XY’라고 적혀 있었다. 세포형태학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구별은 전신 세포 속의 염색체가 각각 XX, XY로 다르다. 불임 진단을 받은 샤오후이 씨의 경우 외모는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염색체는 XY라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다. 해당 진단을 받은 후 그녀의 가족은 믿을 수 없는 결과 탓에 곧장 대도시에 소재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2차 검사를 실시, 같은 진단을 받았다. 창사시에 소재한 여성병원에서 이 같은 진단을 받은 샤오후이 씨는 눈물을 참지못하고 “그동안 줄곧 좋은 엄마가 될 꿈을 꾸고 있었다”면서 “수술을 받아서라도 엄마가 되겠다는 꿈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샤우후이 씨의 부모님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그녀의 생리는 남들보다 늦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6세가 되도록 초경이 시작되지 않은 탓에 여성 전문 병원을 찾았고, 해당 병원에서 초경을 촉진시키는 주사를 맞은 후에야 월경이 시작됐다. 이후에도 줄곧 그녀는 월경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서 진단한 에스트로겐 성분의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해왔다. 샤오후이 씨를 검사한 병원 주치의에 따르면 그에게는 여성을 상징하는 유방과 외음, 질, 자궁, 나팔관 등이 있어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염색체가 남성의 것인 XY라는 것을 인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그녀의 상태는 일명 XY 염색체를 모두 가진 ‘양성’이다. 하지만 염색체 이상으로 인해 성샘으로 불리는 생식 세포 발육 내분기관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다. 때문에 그녀의 현재 몸 상태로는 임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병원 측의 진단이다. 다만, 샤오후이의 경우 에스트로겐 분비 양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남성의 생식기는 발육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수술과 약물 치료 등을 통해 성샘 조직을 절개, 자궁 발달을 촉진하기 위한 에스트로겐 약물 치료 등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다. 그의 주치의는 “수술을 통해 샤우후이의 자궁 크기를 일반 성인 여성의 것으로 발육 시킬 수 있다”면서 “만약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 일부 조직이 암세포로 발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수술을 권하고 있다”고 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복귀 임박’ 커리, 다음주부터 코트서 훈련 시작

    ‘복귀 임박’ 커리, 다음주부터 코트서 훈련 시작

    사타구니 부상을 당했던 스테픈 커리(30·골든스테이트)의 복귀가 임박했다. ESPN과 CBS스포츠를 비롯한 현지 매체에 따르면 25일 미국프로농구(NBA) 골든스테이트 구단은 “부상을 당했던 커리가 지난 토요일(24일)에 다시 검사를 받았다”며 “그 결과 커리의 재활 프로그램은 매우 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어 “커리는 코트에서의 훈련을 시작할 것이다”며 “잘 진행된다면 다음주에는 팀과 함께 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티브 커(53) 골든스테이트 감독도 이날 “커리는 복귀를 열망하고 있다”며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재활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리는 지난 9일 밀워키와의 경기 도중 사타구니를 다쳐 물러난 뒤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결장은 벌써 9경기에 달한다. 커리가 빠져있는 사이 팀의 주축 선수인 케빈 듀랜트(30)와 드레이먼드 그린(28)이 말다툼을 벌여 팀의 징계를 받는 내분까지 일어났다. 더군다나 그린은 발가락에, 알폰조 맥키니(26)는 발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해 있다. 악재가 겹친 골든스테이트는 현재 14승 7패로 서부 콘퍼런스 3위에 위치해 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긴 하지만 화려한 선수들을 보유한 데다 ‘디펜딩 챔피언’인 것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모습이다. 커리의 복귀가 팀의 반전을 일궈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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