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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 베네수엘라’ 모니카 스피어, 노상 강도에 피살

    ‘미스 베네수엘라’ 모니카 스피어, 노상 강도에 피살

    미국에서 생활하는 미스 베네수엘라 출신 배우 모니카 스피어(29)가 7일(현지시간) 휴가를 즐기기 위해 남편과 함께 모국을 방문했다가 노강 강도의 총에 살해됐다. AP통신에 따르면 스피어는 전 남편 토마스 헨리 베리(39)와 함께 북부의 한 고속도로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5살 난 딸 마야 베리 스피어는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미구엘 로드리게즈 내무부 장관은 사건과 관련, “강도들에 의한 범죄로 추정되고 있으나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스피어 가족은 사건 발생 당시 견인 트럭을 탄 괴한 5명에 공격을 당하자 승용차 안에서 문을 걸어잠그고 저항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피어 가족의 승용차는 크게 파손된 채 푸에르토 카벨로와 카라보보 주의 발렌시아 사이의 고속도로에서 발견됐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부부의 차에 수차례 총격이 가해진 흔적이 발견됐다”면서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나 견인차를 기다리다 강도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트럭을 운전한 용의자 2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스피어는 베네수엘라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뒤 2005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 준준결승까지 진출했다. 이후 마이애미 등지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끈 미NBC의 스페인어 채널 텔레문도의 드라마 ‘잊혀진 열정’ 등에 출연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잔혹한 학살”로 규정한 뒤“이런 폭력행위는 우리가 가진 질병 가운데 하나”라고 비판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가장 살인 범죄율이 높은 국가 가운데 한 곳으로 지난해 살인건수는 인구 10만명당 39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현지 비영리 시민단체는 살인건수가 10만명당 79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탈레반 10살 소녀, 자살폭탄 테러 시도 충격

    탈레반 10살 소녀, 자살폭탄 테러 시도 충격

    한참 초등학교 다닐 나이의 소녀가 자살폭탄 테러에 투입됐다가 체포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최근 아프카니스탄 내무부는 남부 헬만드 지역 국경 경찰에 대항해 자살폭탄 테러를 시도한 10살 소녀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스포즈메이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이 소녀는 탈레반 소속으로 특수 제조된 폭탄 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내무부 대변인 세딕 세디키는 “이 소녀는 자신의 오빠가 지역 탈레반의 사령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면서 “미션 수행(자살 폭탄 테러) 임무를 받고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소녀는 현재 큰 충격을 받아 혼란 상태이며 라슈카르 가로 이송돼 조사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프칸 당국은 탈레반에서 자살 폭탄 공격에 투입되는 어린이들이 수천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2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10대 소년들이 자살폭탄 공격에 동원돼 희생되고 있다” 면서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들이 이를 막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에대해 탈레반 측은 “아이들을 전사로 쓰지 않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러시아 이틀째 자폭 테러… 기차역 이어 버스 폭발

    러시아 이틀째 자폭 테러… 기차역 이어 버스 폭발

    자살 폭탄 테러로 60여명이 사상한 러시아 남부 도시 볼고그라드에서 하루 만에 또다시 폭발테러가 발생했다. 38일 앞으로 다가온 소치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30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통신 리아노보스티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10분쯤 볼고그라드 시내 드제르진스키 시장 부근에서 운행 중이던 트롤리 버스(무궤도 전차) 안에서 폭탄이 터져 최소 14명이 숨지고 27명이 다쳤다. 폭발 충격으로 버스는 완전히 파괴돼 뼈대만 남았으며, 사고 현장 주변에는 희생된 승객의 시신 잔해가 널려 있었다고 수사 당국이 전했다. 블라디미르 마르킨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은 “남성 자폭 테러범이 폭발물을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용의자의 시신을 수습해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크렘린궁에서 알렉산드로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과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내무부 장관을 만나 테러 상황을 보고받았다. 한편 지난 29일 볼고그라드역에서 일어난 자폭 테러 용의자는 당초 ‘블랙 위도’로 알려진 옥사나 아슬라노바가 아니라 다게스탄자치공화국에서 활동하는 테러 단체 소속 반군일 확률이 높다고 러시아 보안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블랙 위도’는 러시아군에 의해 숨진 반군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다. 파벨 페첸킨이라는 본명 대신 안사르 아르루시란 아랍식 이름을 쓰는 이 용의자는 러시아 중부 자치공화국 ‘마리이 엘’ 출신으로 지난해부터 다게스탄의 테러 단체에 가입해 활동해 왔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인구 100만명의 볼고그라드는 체첸과 다게스탄에 인접해 반군의 주요 공격 목표가 돼 왔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테러범들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연쇄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두 사건의 연관성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러시아 남부 철도역사 자폭 테러…소치 동계올림픽 안전 비상

    러시아 남부 철도역사 자폭 테러…소치 동계올림픽 안전 비상

    러시아 남부 도시 볼고그라드의 철도 역사에서 29일(현지시간) 자폭 테러범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발 사고가 발생해 최소 16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수사 당국이 밝혔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보안에 비상이 걸렸다.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폭발 사고는 이날 낮 12시 45분쯤 볼고그라드 철도 역사 1층 출입구 근처에서 발생했다. 테러범이 역사 출입구 안에 설치된 금속탐지기 근처에서 몸에 지니고 있던 폭발물을 터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볼고그라드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900km 지점에 있으며 내년 2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흑해 연안도시 소치에서는 북동쪽으로 650km가량 떨어져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연방 정부에 맞서 분리·독립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이슬람 반군들이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테러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50여명 사상…TNT 10kg 폭발력“ 중대 범죄를 수사하는 연방수사위원회 블라디미르 마르킨 대변인은 “잠정 확인 결과 역사 폭발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해 입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승객 13명과 폭파범을 합쳐 14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나머지 승객 2명은 심한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숨졌다”고 설명했다. 부상자들 가운데는 위중한 환자가 많아 앞으로 사망자는 더 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역사 안에 있던 승객들이었고 금속탐지기 앞에서 검문검색을 하던 경찰관 1명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악천후로 현지 공항이 며칠 동안 폐쇄되면서 새해 연휴를 맞아 도시를 떠나려는 수백 명의 승객이 역사로 몰린 상황을 테러범이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마르킨 대변인은 “금속탐지기가 막았기에 망정이지 이런 장치 없이 자폭 테러범이 승객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던 대합실로 무사통과 했더라면 희생은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방수사위원회는 이날 터진 폭발물의 위력이 TNT 10kg의 폭발력에 해당하는 강력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사고 직후 현장엔 30여대의 구급차가 긴급 출동해 부상자 응급처치와 이송에 나섰다. 내무부(경찰청), 비상사태부,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은 역사 내에 있던 승객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조사를 벌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테러에 대해 보고받고 비상사태부와 보건부 등 관련 정부 부처가 부상자 지원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가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또 내무부 등 안보 관련 부처 수장들에게 테러 수사에 만전을 기해 배후 조직을 찾아내고, 관련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라고 지시했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도 테러 대응 훈련을 강화하는 한편 국가 보안을 책임지고 있는 부처 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원은 “테러를 경계하는 데 단 1초라도 방심해선 안 된다. 테러조직을 밝히는 데 전력을 다하고, 필요하면 특별 예산이라도 편성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테러 용의자 두고 엇갈리는 가설 마르킨 대변인은 이날 폭발 사고를 테러로 규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가 대테러위원회는 잠정 조사 결과 이날 폭발이 여성 자폭 테러범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연방수사위원회도 테러 직후 사고 현장에서 자폭 테러범의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시신 잔해 가운데 머리 부분을 발견해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테러가 지난 10월 말 역시 볼고그라드의 버스 안에서 발생한 테러와 마찬가지로 ‘검은 과부’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검은 과부’는 러시아 연방 정부의 반군 소탕 작전에서 남편이나 친인척을 잃고 복수 차원에서 자폭 테러를 감행하는 무슬림 여성들을 지칭한다. 하지만 마르킨 대변인은 이후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폭발물을 터뜨렸을 가능성을 포함 여러 가설을 검증하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다른 수사기관 관계자도 한 남성이 배낭 안에 폭발물을 숨기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다 탐지기가 신호음을 내자 경찰이 이 남성의 배낭을 점검하려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연방수사위원회의 또다른 관계자는 남성과 여성 2명이 함께 테러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관들이 수상한 외모의 여성을 발견하고 경찰관 한 명이 이 여성에게로 접근하던 도중 폭발물이 터졌다”고 전했다. 수사당국은 이날 볼고그라드 역사 테러와 지난 10월 말 볼고그라드 시내버스 테러가 같은 테러 단체의 소행일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수사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폭발 사고 현장에서 수류탄 핀을 낀 남성의 손가락 하나와 수류탄 파편, 전자시계 등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10월 버스 테러 현장에서도 비슷한 증거품들이 발견됐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보안 당국은 테러 용의자 색출을 위해 최근 공화국을 떠난 주민들의 신원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사고 이후 내무부는 전국의 모든 역사와 공항 등에 경찰 병력을 증강 배치하고 승객들의 수화물 검색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소치 올림픽 방해 노린 테러 가능성 볼고그라드는 러시아 연방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무슬림 반군의 테러 활동이 끊이지 않고 있는 남부 이슬람 자치공화국 체첸 및 다게스탄에서 멀지 않으며, 내년 2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흑해 연안 도시 소치에선 약 650km 정도 떨어져 있다. 볼고그라드 기차역은 러시아 각지에서 남부 지역으로 운행하는 열차들이 통과하는 중심역으로 매일 3500여 명의 승객이 이용하고 있다. 그동안 이슬람 반군들이 소치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테러를 자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이번 폭발이 그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란 추정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최대 이슬람 반군 지도자인 도쿠 우마로프는 지난 7월 전력을 다해 소치 동계올림픽을 저지할 것을 호소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25 전사 경찰관 63년만에 가족 품으로

    6·25 전사 경찰관 63년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매일 밤 장독에 밥을 떠놓고 살아 있기를 기원하셨죠. 아버지가 입으셨던 경찰 정복 한 벌을 애타게 간직하시며 우셨던 기억이 납니다.” 27일 6·25전쟁 당시 24세의 나이로 전사한 아버지 김세한 순경의 신원확인 통지서와 경찰 단추, 경찰 버클, 발굴 당시 유해를 덮었던 태극기를 전달받은 외동딸 김준자(64·부산 사하구)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김씨는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는다”면서 “아버지는 키가 훤칠한 미남형으로 총명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간신히 말을 이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강원 춘천시 동산면 군자리에서 유해 한 구와 더불어 경찰 단추·버클, 플라스틱 숟가락, 군장고리 등을 발굴한 것은 지난해 5월 21일. 이곳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 국군 6사단이 북한군 12사단의 남하를 저지한 원창고개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다. 신원 확인에 참고할 단서가 없었지만, 감식단은 2003년부터 6·25 전사자 유가족으로부터 채취해 축적해 둔 유전자(DNA) 시료 자료와 비교작업을 벌인 끝에 2009년 5월 22일 김씨의 유전정보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기 포천에서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순경은 1949년 10월 1일 내무부 치안국 보안과 소속 철도경찰대로 임용된 뒤 수원에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을 맞았다. 발발 3일 만인 1950년 6월 28일 춘천 인근 원창고개 전투에 투입돼 북한군을 저지하던 중 전사했다. 유해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내년에 경찰청 주관으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계획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2013 공직열전] (39) 여성가족부 (상) 실·국장급

    [2013 공직열전] (39) 여성가족부 (상) 실·국장급

    지난 9월 기준으로 중앙행정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 수는 총 61만 3364명. 이 중 여성가족부 소속 공무원은 전체의 0.04% 수준인 235명이다. 규모는 작지만 업무는 굵직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정한 4대 사회악 중 불량식품 근절을 제외한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주도하는 부처가 바로 여가부다. 또 여성 일자리 창출 및 일·가정 양립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역할이 한층 중요해진 여가부의 실·국장급 간부들을 소개한다. 지난 4월 여가부로 자리를 옮긴 심보균 기획조정실장은 과거 내무부 시절부터 안전행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내무부 출신이란 특성상 본부와 지방(경기, 전북)을 오갔고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실 소속 행정관 근무 경력이 있다. 2006년 총액인건비제를 도입해 지방자치단체에 일정 부분 인사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심 실장은 이번 인사를 계기로 사실상 안행부에서 처음 벗어났다. 달라진 근무 환경 속에서 일일이 밑줄을 치며 보고서를 살피며 더 꼼꼼해졌다는 게 직원들의 전언이다. 권용현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은 정무 제2장관실 시절부터 20년 넘게 여성·복지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2008~2010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산업정책국장 등을 지냈다. 그는 1996년 시행된 여성발전기본법 초안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고 이듬해 확정된 제1차 여성발전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관련 부처 업무를 총괄했던 경험이 있다. 정무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볼링을 통해 부서원 간 화합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기순 대변인도 1989년 정무 제2장관실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로 줄곧 여가부에 몸담고 있다. 사무관 시절 캐나다로 국비 유학을 가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여성 창업 모델을 연구했고, 여성정책국장으로 일하면서 여성 일자리 창출 업무에 집중하는 등 여성정책 관련 이론과 실무를 모두 갖춘 인물로 꼽힌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된 뒤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공공기관 여성관리자 목표제 도입을 이끌어 냈다. 박현숙 여성정책국장은 지방직 9급 공채 출신으로 고위공무원에까지 올랐다. 중앙과 지방 간 인사교류를 통해 1996년 경기도에서 정무 제2장관실로 자리를 옮기면서 여가부와 인연을 맺은 그는 꼼꼼한 업무 처리가 장점이고 일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 2011년 경력단절여성과장 시절 추진한 여성 취업 지원기관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업무로 일자리 창출 부문 정부업무 평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일명 ‘아이디어뱅크’로 불리는 조진우 가족정책관은 창의적이고 업무 추진력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여가부에 장기간 머물면서 인권보호과장, 권익증진국장, 여성정책국장 등을 거쳐 여가부가 담당하는 여러 업무에 훤하다는 평이 있다. 평소 책을 즐겨 읽고 등산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조 정책관은 다문화가족 자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언어발달 지원 서비스 마련과 아이돌보미 처우 개선 등에 힘쓰는 중이다. 윤효식 청소년정책관은 직원들과 잘 어울리고 유머를 갖춘 간부로 통한다. 병무청에서 공직을 시작한 그는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로 둥지를 옮긴 뒤로 지금까지 여가부에 남아 있다. 윤 정책관은 “위원회가 여성부로 확대 출범하는 과정에서 조직 개편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기획재정담당관과 운영지원과장 등을 거치면서 인사, 예산 등 다방면에서 근무 경험을 쌓은 그는 청소년 수련활동 안전 강화 및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 예방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개방형직위 공모를 통해 공직에 몸담은 김재련 권익증진국장은 이전까지 성폭력, 아동학대 사건을 주로 맡으며 ‘인권 변호사’로 현장을 누볐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 인권보호는 물론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시설 종사자들의 근무 환경 개선에도 관심이 많다. 여가부 관계자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성폭력 피해자 상담 일지를 국감 자료로 요구했을 때 피해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해 반대했다가 의원들로부터 ‘야단’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 인권 보호가 우선이라는 원칙과 소신을 끝까지 지키면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열린세상] ‘색깔있는 마을’과 ‘새마을운동 2.0’/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색깔있는 마을’과 ‘새마을운동 2.0’/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1970년 봄은 가뭄이 심했다. 그해 4월 22일 대통령 박정희는 가뭄대책을 위해 전국 도지사회의를 열고 가뭄 극복과 아울러 주민들의 자조자립 정신에 의한 마을가꾸기 사업을 제안한다. 정부는 이듬해 예산 30억원으로 전국 3만 3267개 행정 이(里)·동(洞)을 대상으로 ‘새마을가꾸기운동’을 편다. 당시 내무부는 시멘트 1170만 부대를 전국 이·동에 335부대씩 균등 지원해 마을가꾸기운동의 불을 지폈다. 이후 성과를 보인 1만 6600개 이·동에 대해서 추가로 시멘트와 철근을 무상지원하여 경쟁심을 유발했다. 이렇게 시멘트와 철근은 농촌개발의 상징이 되면서 수천년 이어온 농촌 모습과 주민 의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한편 변화는 상실을 동반하는데 우선적으로 전통 풍물(風物)의 훼손이다. 새마을운동 초기에 정부도 이 문제를 알았다. 당시 문공부는 1972년 4월에서 5월까지 각 분야 문화예술인 74명을 10개 반으로 나누어 전국 97개 새마을 현장을 조사하게 하고 의견을 요청했다. 이들은 농촌이 지닌 토속미와 전통가치 상실을 우려하며 한 예로 초가지붕, 돌담, 흙담, 나무울타리 등에 대한 무분별한 철거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가난 극복이라는 지상과제 앞에 이 건의는 가난을 그대로 두자는 것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결국 오늘날 농촌 마을은 어디를 가나 원색 슬레이트지붕과 시멘트 담장을 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마다, 부락마다 전해오던 저마다의 특색있던 이야기의 상실을 의미한다. 새마을운동이 출범된 지 40여년이 흘렀다. 이제는 마치 그간의 절대빈곤을 퇴출함으로써 국내 사명을 마치고 해외로 나가 사명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실정이다. 정부기관, 공기업, 민간기업, 시민단체, 지자체 등이 앞다투어 일부 부작용까지 보이며 아프리카를 비롯한 후진국에 새마을운동 수출에 나서고 있다. 수출도 좋지만 새로운 차원의 내수시장도 여전히 크다. 특히 절대빈곤 극복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농촌에 전통적 가치를 덧입히는 21세기형 새마을운동의 수요가 크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과제 140개를 제시하며 복지농촌건설을 하나로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세부 실천 과제로 정부는 전국에 5000개의 ‘색깔있는 마을’ 만들기를 추진 중인데, 이미 3010개 마을을 선정했다. 그런데 숫자 목표보다 입힐 색깔 내용이 중요하다. 숫자를 앞세우는 정부의 양적 목표는 검증되지 않은 주민의 일방적 사업계획서를 초래할 수 있다. 마을마다 간직한 전통과 문화에 대한 검증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문화, 예술, 역사, 민속, 향토 전문가 등 광범위한 인력의 참여가 절실한데 농촌현장에는 이러한 인적 자원의 부재가 심각하다. 요즈음 일어나는 귀촌 열기에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하여 그들의 새로운 열정을 투입함으로써 오지마을이 명품마을로 변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들 성공사례는 우리나라 농촌마을 개발 사업에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그런데 우려할 점도 없지 않다. 우리의 전통과는 어색한 외국풍의 색깔을 지닌 마을이 등장하고 그 속에 채워지는 내용도 서구식 흉내 문화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농촌 마을의 전통 가치를 살려 현대 가치로 전환하고 검증할 수 있는 폭넓은 인재의 참여 유도가 필요한데 정부 정책은 이를 지향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함께 새마을운동을 수출용으로만 생각해 해외로만 향하고 있는 공기업, 민간기업, 시민단체, 지자체 등의 역할도 기대해 본다. 이들이 새마을운동은 아직도 큰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필요한 인재들이 농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 조성에 기여한다면 이는 농촌에 대한 일방적 도움이 아니라 그들과 농촌이 상생하는 길이 될 것이다. 21세기형 새마을운동을 ‘나눔·봉사·창조’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새마을운동2.0’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운동이 농촌의 절대 빈곤을 몰아냈다면 그때 잃어버린 전통의 색깔을 부활해 새로운 가치로 전환시켜 주는 ‘새마을운동2.0’의 물결을 기대해 본다.
  • ‘불륜男女 손봐드려요’ 살인청부 사이트 ‘논란’

    ‘불륜男女 손봐드려요’ 살인청부 사이트 ‘논란’

    ”아내나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 같은데 손봐주고 싶다, 혹은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을 없애버리고 싶습니까? 돈만 보내세요. 서비스 확실히 해드립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살인 청부’를 온라인상으로 신청할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러시아에서 운영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킬러 대행 웹사이트’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러시아의 살인·폭력 청부 사이트인 ‘zakazat-killera(킬러 서비스).com’의 실상을 8일 보도했다. 해당 사이트는 ‘불륜을 저지른 아내나 남편’, ‘경제권에 치명적 타격을 준 사업 파트너’ 등 보기 싫은 사람들을 ‘아무도 없는 조용한 숲 속에서 협박’하거나 ‘물리적으로 타격 혹은 제거’해주는 험악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비용은 폭력 수위에 따라 값이 높아진다. 약간의 현기증을 유발할 정도로 고통을 주는 것은 105만원, 얼굴을 멍들게 하거나 이빨 몇 개가 파손되는 정도는 158만원, 갈비뼈나 팔·다리를 부러뜨릴 경우는 317만원 등이다. 사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서비스는 마피아, 갱, 전직 군인, 운동선수 등에 의해 시행되며 피해자가 구타당하는 장면을 찍어 영수증 차원에서 고객에게 제공한다. 또한 항상 위험에 노출되는 매춘 등의 불법 사업자들을 위한 ‘경호 서비스’도 운영한다. 구(舊) 소비에트 연방 ‘몰도바’에 사무실이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사이트는 고객들이 서비스를 이용함에 있어서 ‘법적 안전성’을 보장하는데 이면에 경찰 등의 사법기관과 모종의 협약이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한편, 러시아 내무부는 해당 사이트를 차단 조치했다고 밝혔지만 러시아 내부와 외국에서 아직 접속 가능하다. 사진=zakazat-killera.com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안행부 ‘부처 내 칸막이’ 허물어지나

    최근 국민은행의 위기가 12년 전 국민-주택은행 합병이 유기적 결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내부 갈등으로 작용한 게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공무원 조직도 예외가 아니란 분석이다. 안전행정부는 15년 전 지방행정을 주 업무로 한 내무부와 공무원의 인사·조직을 맡은 총무처가 합쳐 탄생했지만, 여전히 내무부 출신 또는 총무처 출신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지방행정 현장을 쫓아다녀야 하는 내무부 공무원이 ‘머슴’이라면, 총무처 출신은 ‘신사’란 이야기도 있다. 국민은행에서 국민은행 출신은 1채널, 주택은행 출신은 2채널이라 불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다. 결속력이 강해 ‘모피아’로 불리는 옛 재무부 출신과 기획력이 뛰어난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으로 크게 양분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직도 인사를 할 때면 문화 분야, 체육 분야, 국정홍보 분야 등 세 가지 채널로 나뉜다. 분야마다 승진 연수도 차이가 나서 비교적 승진이 빨랐던 국정홍보 분야는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안행부는 2일 해묵은 내무부-총무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자 총무처 업무인 1차관 소속 직원과 내무부 업무를 하는 2차관 소속 직원을 대폭 섞는 교류 인사를 한다. 같은 과에서 2년 이상 또는 같은 국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과장급 이하 직원이 인사 대상이다. 안행부는 내무부와 총무처가 통합했을 때 각각 업무 영역의 최고 요직이었던 인사국장(현 인사실장)과 자치지원국장(현 지방행정실장)을 맞바꿨다가 다음 해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간부급 인사교류를 중단했던 전직 장관은 “인사는 전문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해야지 맞바꾸기 인사만으로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행부 관계자는 “부처 내 칸막이는 업무의 전문성을 살려야 하는 문제와 아는 사람과 같이 일하고자 하는 정서적 측면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이번 안행부의 교류인사는 공무원 개인이 다양한 경험을 쌓아 앞으로 갈 길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시위 격화’ 태국서 첫 사망자 발생… 軍 해산작전 투입

    ‘시위 격화’ 태국서 첫 사망자 발생… 軍 해산작전 투입

    태국 군경이 정부 주요 청사를 점거한 반정부 시위대에 최루탄과 물대포를 발사하며 해산 작전에 나선 1일 국영방송국 PBS가 시위대에 점령당했다고 방콕포스트가 보도했다. 시위대는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한 달째 시위를 벌여온 가운데 이날 ‘국민의 쿠데타’를 선언하며 공무원들에게 2일부터 휴무에 돌입하고 시위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PBS 측은 “검은색 상의를 입은 시위대원 수백명이 방송국 안으로 몰려들었다”며 “(PBS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이날 오후 가동하기 시작한 방송국 블루스카이와 전파를 공유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부터 주요 정부 청사를 점거해 온 반정부 시위대는 이날 오전부터 총리 청사와 방콕 시경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청 마약단속국 사무실에서 영국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려던 잉락 총리가 급히 피신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시위를 이끌고자 최근 의원직을 사퇴한 수텝 전 부총리는 오는 5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생일을 앞두고 총리 청사, 국립경찰본부, 방콕 시경, 교육부, 두싯 동물원, 내무부, 외무부 등을 점거하는 ‘최후의 돌격’을 벌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요 청사를 중심으로 경찰 2만여명을 배치한 데 이어 군 병력 약 3000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이처럼 반정부 시위대가 과격 시위를 벌이는 것은 지난달 30일 밤과 1일 새벽 반정부 시위대와 친(親)정부 시위대인 ‘레드셔츠’ 간 총격이 발생해 2명이 숨지고 30~40명이 다쳤기 때문이다. 사망자는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람캄행대학교 학생 1명과 친정부 시위를 벌이던 20대 군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태국 집권당인 푸어 타이당은 한 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가라앉히기 위해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정부 시위대의 상당수는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에 찬성하고 있으나 수텝 전 부총리는 이미 조기 총선 방안을 거부하고 의회가 해산하더라도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번 시위는 잉락 총리가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사면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포괄적 정치 사면 입법을 추진하면서 촉발됐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14세에 4명 죽인 ‘살인청부업자’ 소년 결국 미국행

    14세 나이에 무려 4명을 살해한 살인청부업자 소년이 출소해 고향 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 양국 언론에 화제가 된 이 소년의 이름은 에드가 지메네즈 루고. 현재 17세인 소년은 멕시코의 한 마약 카르텔 소속으로 지난 2010년 모렐로스주에서 무려 4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악명을 떨쳤다. 이후 루고는 미성년자로서는 최고형인 3년형을 선고받고 멕시코의 한 교도소에 수감됐으나 최근 출소를 얼마 앞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의 핵심은 멕시코계인 루고가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라는 점. 이 때문에 멕시코 당국은 형기를 마친 ‘중범죄자’ 루고의 미국 추방을 준비했고 자국민 보호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 당국도 소년의 귀국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양국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까지 일어난 루고의 행선지는 결국 고향 미국으로 드러났다. 멕시코 모렐로스주 내무부 장관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루고가 석방돼 가족들이 사는 미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로 보내졌다” 면서 “그곳 갱생 시설에서 살게될 것 같다”고 밝혔다. 전직 ‘소년 킬러’를 떠안게 된 미 당국은 이에대해 “멕시코 당국과 원활히 협조해 일을 처리했다” 면서 “소년의 프라이버시 상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루고는 11살 경 멕시코 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마약에 취해 최대 7명 정도의 살인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9) 강남(상)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9) 강남(상)

    “서울은 넓다. 아홉 개의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380개나 된다. 동쪽으로는 청량리 너머로 망우리, 우이동 동북쪽으로는 의정부를 지척에 둔 수유리, 서쪽으로는 인천가도 중간의 영등포 끝, 동남쪽으로는 한강 너머의 천호동 너머, 서남쪽으로도 시흥까지 이렇게 굉장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넓은 서울도 370만명이 정작 살아 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소설가 이호철이 1966년 2월부터 신문에 연재한 ‘서울은 만원이다’의 한 대목이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된 1967년은 우리나라에서 보릿고개가 사라진 역사적 전환기였다. 해방 전후 100만명 선을 유지하던 서울 인구는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팽창하기 시작해 1959년 200만명, 1963년 300만명, 1970년 550만명을 넘어섰다. 매년 큰 도시 한 개(30만명)씩 인구가 불었다. 서울 곳곳은 공식통계상 13만채, 비공식적으로는 20만채 이상의 볼썽사나운 판잣집으로 뒤덮였고 시민들은 교통지옥에 시달렸다. 택지난과 교통난 해결이 급선무였다. 서울은 폭발 일보 직전이었고 비상구가 필요했다. 한강 너머 ‘신대륙’ 진출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강남은 논밭과 과수원, 초가집이 어우러진 한갓진 농촌이었다. 서울 사람들이 먹을 과일과 채소를 공급하는 초식(草食) 농사가 주를 이뤘다. 손수레에 채소와 과일을 싣고 강을 건넌 뒤 돌아올 때는 배설물을 실어다가 거름으로 썼다. 뽕밭이었던 잠원동은 무가 자라기 좋은 모래 토질이어서 단무지 농사가 성황이었고, 서초동은 미군과 서울 사람이 사갈 화초가 만개한 꽃동네였다. 압구정은 배나무 과수원골, 도곡동은 도라지 특산지, 청담동은 물 맑은 청숫골이었다. 이때 강남 사람들은 강 건너 강북 사람을 ‘서울사람’이라고 부르며 마치 상전 모시듯 했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이 ‘강남신화’의 틀을 제공했다. 서울은 종전보다 2배 이상 확장돼 오늘의 모양새를 갖췄다. 지금의 강남 지역과 중랑, 강북, 노원, 은평, 강서, 구로, 금천, 관악구가 서울시에 편입된 것이다. 양주, 의정부, 고양, 광주, 과천, 시흥 등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의 알토란 같은 땅이 서울 품에 안겼다. 5·16 쿠데타 주도 세력으로 현역 육군 소장이던 윤태일 서울시장의 공이 컸다. 군복을 입고 다녀서 ‘군복시장’이라고 불린 그는 박경원 내무부 장관, 박창원 경기도지사와의 기 싸움에서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교수는 “이 구역 확장이 없었더라면, (만약) 구역 확장이 늦게 이뤄졌더라면 강남 개발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치 지지부진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늘날 ‘강남’은 불과 50년 전 공중전화나 전신전화취급소조차 없는 ‘깡촌’이었다. 서울로 편입되고 나서는 남서울, 제2 서울, 새 서울 등으로 띄워졌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한때 강남 지역의 통칭은 영동이었다. 문희옥의 유행가 가사처럼 ‘여기는 남서울 영동’이었다. 강남이라는 지명은 1975년 성동구 언주출장소와 영등포구 신동출장소가 합쳐져 강남구가 생기면서 대세로 굳었다. 초창기 강남은 자체 지명을 갖기보다는 이웃과의 지리적 관계 속에서 존재했다. 영동은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행정편의적 작명이었고, 남서울은 단순히 ‘서울의 남쪽’이었다. 지금의 강남 지역을 이루는 광주군 언주면과 대왕면, 시흥군 신동면 등 옛 지명은 도로(언주로, 대왕 판교로)와 학교(대왕초·중교, 언주초·중교, 신동초교) 이름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서울의 초식 재배지였던 과거사를 가능하면 지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늘날 부와 권력의 정점을 이루는 강남이라는 지명에는 또 다른 차별적 통념이 존재한다. 강남은 최초 ‘한강의 남쪽’을 의미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강남구·서초구·송파구·강동구 등 4개 구로 범위가 좁혀졌다. 완전히 자리를 잡은 1990년대 이후에는 강남구·서초구·송파구 3개 구를 강남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강남구·서초구 2개 구나 강남구 1개 구를 ‘진정한 강남’이라고 여기는 시각이 엄연하게 존재한다. 강남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는 곡절이 많다. 화신백화점 재벌 박흥식의 1962년 남서울 신도시계획구상이 강남 개발의 첫발이었다. 1966년 1월 서울시가 내놓은 남서울계획이나 같은 해 8월의 새서울백지계획도 ‘박흥식 프로젝트’의 복사판에 그쳤다. 본격적인 강남 개발은 2년 뒤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면서 닻을 올렸지만 성공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서울=사대문’이라는 600년 묵은 등식이 그리 쉽사리 깨지지 않을 듯 보였다. 그러나 불과 20년 만에 ‘뜨는 강남, 지는 강북’의 시대가 ‘훅’하고 왔다. 강남은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다. 1969년 12월 한남동과 신사동을 잇는 한남대교(제3한강교)의 개통과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 개통이 결정타였다. 1964년 서독 방문길에 아우토반을 달려 본 박정희가 1967년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자 고도 경제성장의 혈류인 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한 것이다. 고속도로 편입 용지 매수비용이 문제였다. 정부가 용지 매입비를 줄이려고 고속도로의 기점인 제3한강교에서 양재동에 이르는 7.6㎞를 구획정리사업을 통해 무상확보토록 조치하면서 강남 개발의 물꼬가 터진 것이다. 영동1지구는 도로·학교·공원 등 공공용지 확보를 위해 세 차례나 구역 확장을 되풀이한 끝에 1971년 2월 최종적으로 1695만㎡(513만평)까지 늘어났다. 강남이라는 빈 땅을 부산~대구~대전~강남~한강~사대문에 연결함으로써 허허벌판의 개발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 영동2지구 개발계획은 1970년 11월 5일 발표됐는데 1206만㎡(365만평)의 엄청난 부지와 너비 70m에 길이 3.6㎞, 너비 50m에 길이 6.9㎞의 광폭 간선도로가 놓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첨단 격자형 가로계획이 선보였다. 대표적인 계획도시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도 볼 수 없는 넓은 길이었다. 광화문길(세종대로)보다 70배나 긴 길이 강남 땅에 ‘쭉’ 그어진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1, 2지구를 합쳐 2901만㎡(878만평)의 광활한 신천지가 개벽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강남은 4개의 산(내사산)에 둘러싸여 더 뻗어 나갈 곳이 없는 사대문 구시가지의 더할 나위 없는 대안이었다. 구시가지를 대궐과 성곽이 살아 있는 역사문화도시로 남겨 두고 현대적 신시가지로 개발할 만한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2000년 전 한성백제의 옛 도읍지이자 다가올 황해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현대화와 도시화가 판친 1970~80년대의 시대정신에 딱 맞았다. 한 건을 노리는 조급주의와 독재정권을 향한 충성 일변도 정책 그리고 정치자금 마련을 위한 부동산 투기의 흑막이 없었더라면 환상적인 도시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남의 성공 배경에는 ‘말 못할 안보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한강을 건너 피란길에 올랐던 서울 사람들에게 한강인도교 폭파와 강을 건널 수 없어 발을 구르던 기억은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다리 건너편 강남은 다시 재현될지도 모르는 피란길의 두려움을 잠재우는 안도감을 제공했다. 남북 긴장 조성을 통해 권력 연장을 획책했던 박정희 정권이 강북 억제와 강남 이전을 부추긴 점이 작용한 것이다. 강남은 폭발했다. ‘말죽거리 신화’가 시작된 지 20여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세계 최대 규모의 아파트공화국으로 우뚝 섰다. 서울 거주자의 절반, 우리나라 전체 주거자의 절반이 아파트에 사는 아파트 시대가 이때 촉발된 것이다. 강남발 부동산 광풍으로 남한의 땅값 총액은 올 현재 5000조원이 넘는다. 남한 땅을 팔면 우리보다 42배 큰 미국의 절반을 살 수 있고, 100배 큰 캐나다를 여섯 개나 살 수 있다고 한다. 말죽거리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지하철 3호선 양재역 동남쪽 말죽거리가 강남 부동산 투기의 원조이자 온상이었다. 말죽거리는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도망가던 인조가 말에서 내릴 새도 없이 안장에 앉아 죽을 먹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960년대 초 3.3㎡당 300~400원 하던 땅값이 10년이 지난 1970년 초 최고 50배 올라 2만원을 호가하더니 1970년대 말에는 1000배 이상 뛰어 5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같은 시기 강북의 신당동과 후암동은 10배, 25배 올랐을 뿐이다. 강남 땅값은 2003년 1000만원을 넘어선 이후 현재 3000만원을 호가한다. 달랑 300원 하던 땅값이 무려 10만배 오른 셈이다. 강남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군사작전식 초고속 압축성장의 유일무이한 모델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축복과 국내 최대 규모의 판자촌인 구룡마을 재개발 논란에서 보듯이 부동산 투기의 그늘에서 비롯된 천민자본주의의 저주가 공존하는 곳이다. joo@seoul.co.kr
  • “유관순 열사 옥중서 타살당해” 3·1운동 희생자 명부 첫 공개

    “유관순 열사 옥중서 타살당해” 3·1운동 희생자 명부 첫 공개

    3·1운동 피살자 명부와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가 최초로 공개됐다. 또 새로운 내용의 ‘일정(日政) 시 피징용자’ 명부도 추가로 발견돼 일제강점기 피해보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은 19일 1953년 이승만 정부에서 작성한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 1권 630명, 일본 진재(震災) 시 피살자 명부 1권 290명, 일정 시 피징용자 명부 65권 22만 9781명 등 67권을 수집하여 분석한 결과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명부는 주일 한국대사관이 이전하는 과정에서 지난 6월 발견되어 8월 국가기록원으로 옮겨졌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1952년 12월 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내무부에 전국적인 조사를 지시해 이번 명부가 작성됐다. 1952년 2월 제1차 한·일 회담이 결렬되고, 1953년 4월 제2차 한·일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되어 주일대사관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 “3·1독립 운동만세로 인하여 왜병에 피검(被檢)돼 옥중에서 타살(打殺)당함”이라고 기록된 ‘3·1운동 피살자 명부’는 217쪽의 습자지로 구성된 1권으로 지역별로 총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최초의 명부다. ‘일본 진재 시 피살자 명부’도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1권 109장으로 구성되었으며, 290명의 명단이 담겼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명부는 전국적인 정부 조사 결과인 데다 주소나 생년월일까지 포함됐을 정도로 세세해 앞으로 피해보상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3·1운동, 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단 최초 발견·공개

    3·1운동, 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단 최초 발견·공개

    한국 정부가 1953년에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 공개됐다. 이번에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 강제징병자 세부 명부도 나와 일제강점기 피해보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지 주목된다. 국가기록원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 9781명)’ 등 3가지 명부 67권에 대한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지난 6월 주일대사관 청사 신축에 따른 이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이를 이관받아 명부별 분석작업을 거쳐 이날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1952년 12월 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에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한 명부로 1953년 4월 제2차 한일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원은 밝혔다. ’3·1운동시 피살자명부’에는 1권 217매에 지역별로 모두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으며 읍·면 단위로 이름, 나이, 주소, 순국일시, 순국장소, 순국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동안 3·1운동을 하다 순국한 이들 중 공식적으로 인정된 독립유공자 수는 391명에 불과한데, 이번 피살자 명부 발견으로 그 숫자는 3배 가까이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된 3·1운동 피살자 수는 7509명이다.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는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1권 109매에 모두 290명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 피살자수는 6661명∼2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명부에는 관동대지진 희생자 이름 외에 본적, 나이, 피살일시, 피살장소, 피살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는 지금까지 작성된 피징용자 명부 중 가장 오래된 원본기록으로, 65권에 22만 9781명의 명단을 담고 있다. 이는 역시 1957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28만 5771명의 왜정시 피징용자명부에 비해 5만 5990명이 적지만 기존 명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년월일이나 주소 등이 포함돼 있어 피해보상을 위한 사실 관계 확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록원은 내다봤다. 실제로 경북 경산지역의 경우 피징용자 4285명 중 1000여명이 종전 명부에는 없는 새로운 명단으로 밝혀졌다고 기록원은 설명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과거사 증빙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 명부가 정부수립 직후 우리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됐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기록원은 이번에 수집한 자료를 국가보훈처 등 관련부서에 넘겨 독립유공자 선정과 과거사 증빙자료로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명부별 세부사항을 정리해 내년 초부터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前치안총수 고견 나누는 자리 비위 인사들까지 초청 ‘눈총’

    경찰이 전직 치안총수 초청 오찬간담회를 열어 뒷말이 무성하다. 경찰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 축소·은폐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시기에 비위로 물의을 빚은 전직 치안총수들을 불러 의견을 듣는 것이 적절치 못 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은 14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청사에서 전직 치안총수 초청 오찬간담회를 열었다. 이성한 경찰청장을 포함한 지휘부와 과거 내무부 치안국 시절부터 재직했던 치안총수 19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초청된 전직 총수 가운데 최기문·이택순 전 경찰청장과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등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최 전 청장은 2007년 남대문경찰서에 보복 폭행 수사를 중단하도록 청탁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았고, 이 전 청장은 2007년 2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기도 했다. 강 전 치안본부장은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당시 축소·은폐 의혹에 연루돼 직권 남용과 직무 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했다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현오 전 청장과 ‘함바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강희락 전 청장 등은 초청자 명단에서 빠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는 아니지만 신임 청장이 취임 이후 전직 총수들을 초청해 치안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듣는다는 취지로 그동안 몇 차례 열린 행사”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 경찰관은 “의례적으로 열리는 행사라고 해도 그런 분들을 불러 조언을 듣는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관가 포커스] 안행부 1·2차관실 인사교류 기대 반 우려 반

    [관가 포커스] 안행부 1·2차관실 인사교류 기대 반 우려 반

    현 정부에서 공직사회의 인사교류 활성화 방침이 정해진 가운데 안전행정부가 ‘부처 안 칸막이 허물기’에 나섰다. 안행부는 1, 2차관실 소속 공무원을 서로 다른 차관실 산하 부서로 옮기는 하반기 전보인사 방침을 결정하고 이달 말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과 근무 경력이 2년 이상이거나 같은 실·국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은 의무전보 대상이다. 한 부서에서 1~2년 근무했더라도 교류를 희망하면 인사대상이 될 수 있다. 의무전보자는 1~3순위 희망부서를 제출하고 1개 부서는 반드시 소속 차관을 달리하도록 했다. 잔류를 인정하는 비율은 실·국별로 20%로 제한했다. 과거에 잔류 인정 비율이 30%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인사 폭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안행부 내부 인사를 ‘칸막이 허물기’와 매한가지로 여기는 것은 안행부의 뿌리 때문이다. 안행부는 1998년 정부 조직·인사를 총괄하는 총무처(1차관)와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내무부(2차관)가 통합된 부처다.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안행부 내부에서는 과거 총무처와 내무부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있다. 안행부 관계자들은 “물리적 통합 이후 조직 내 화학적 결합은 잘 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안행부의 내부 ‘칸막이 허물기’는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일부 우려 섞인 의견도 있다. 1, 2차관실 산하 업무가 사실상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인사 대상자들은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한 공무원은 “다른 차관실 부서로 이동하면 그 부서에서 전부터 오래 일을 한 사람보다 근무 평정에서 불리한 점수를 받는다”면서 “일부 실·국은 이 같은 성과평가가 관행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과장급 관계자는 “현재 인사기획관실에서 근무 평정 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과도정부 vs 무슬림형제단… 또 ‘피의 이집트’ 우려

    과도정부 vs 무슬림형제단… 또 ‘피의 이집트’ 우려

    지난 7월 군부에 축출당한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에 대한 첫 재판을 앞두고 이집트 전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3일 이집트 언론들은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쿠데타 반대 연합’이 성명을 내고 “재판이 열리는 카이로 남부 마아디의 토라 경찰교육원에서 4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자”고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쿠데타 반대 연합은 무르시의 복권을 요구하고 군부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전했다. 무르시는 지난해 12월 대통령궁 앞에서 무르시 지지파와 반대파 간 충돌로 7명이 목숨을 잃을 당시 ‘평화 시위 참가자에 대한 살인과 폭력을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으로 혼란한 틈을 타 교도소를 탈옥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이집트 내무부는 임시 법정이 마련되는 토라 경찰교육원 주변에 경찰 2만여명을 배치해 경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지아드 바하 엘딘 부총리도 성명을 내고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의 안정과 통합을 꾀하려는 계획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무슬림형제단이 어떤 진로를 택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무르시 재판 당일 충돌이 예상된다. 특히 무르시가 이집트 법원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지지자들에게 밝힌 만큼 향후 재판 결과에 대한 파장도 우려된다. 한편 중동 국가를 순방 중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무르시 재판 하루 전인 3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를 방문했다고 관영 메나통신이 보도했다. AP통신은 케리 장관이 아들리 만수르 이집트 임시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 등 정부 고위 관리들을 만나 이집트의 민주적 개혁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회의록 삭제 당시 장관으로 곤욕… “구룡포 부품단지 잘 키울 것”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국민행복시대를 열어 가는 데 힘을 보탤 작정입니다.” 30일 경북 포항남·울릉 재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박명재(65)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고 새로운 정책의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 구축에 열정을 쏟을 각오”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19대 총선 때 포항남·울릉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마한 뒤 절치부심 재기를 노렸던 박 의원은 “정체된 포항 남구와 울릉 발전을 위해 온 힘을 바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특히 공천 경쟁 막판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삭제 당시 관련 장관으로 재직한 데 대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공천이 안갯속으로 빠져들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여당 간판으로 선거에 나서 당선된 박 의원은 무엇보다 신성장사업 추진을 강조했다. 박 의원은 “포항시 남구 동해면·장기면, 구룡포읍 일대에 약 1조원을 들여 조성 중인 국가산업단지인 블루밸리를 첨단 부품소재단지로 육성하겠다”면서 “지역 발전과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현안이 많이 있지만 주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우선순위를 따져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또 “현장중심 정치, 민생우선 정치, 약자배려 정치, 상생행동의 정치 실현으로 주민이 행복하고 따뜻한 정치를 열어 가겠다”고 덧붙였다. 낙선한 후보에 대한 질문에 박 의원은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다”며 “그러나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행정고시 16회 출신으로 총무처와 내무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박 의원은 30여년간 행정 관료를 지낸 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는 열린우리당 경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낙마했다. 지난 대선 직전에야 겨우 새누리당에 입당한 그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대외협력특보, 제18대 대선 경북선대위 지역통합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1947년 경북 포항 ▲서울 중동고 ▲연세대 행정학과 ▲경북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 ▲행자부 장관 ▲차의과학대학교 총장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열린세상] 베를린, 드레스덴, 그리고 서울/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열린세상] 베를린, 드레스덴, 그리고 서울/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독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통일 전후 사회보장제도 통합 과정을 살펴보면서부터다. 그 많은 통일비용 중 50%가 사회보장 관련 비용이었고, 연금이 전체 통일비용의 25%였다는 것을 알고서다. 만약 우리에게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면 하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더욱 그렇다. 통일 이전에 구 동독지역을 방문했던 구 동유럽 국민들이 천국과도 같은 곳에서 잘 산다고 감탄했다는 동독과 통일했는데도 이처럼 많은 비용이 들었다니 말이다. 통일부와 독일 내무부의 인적 교류 네트워크인 ‘한독통일 자문위원회’의 전문가 회의는 독일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회의 참석차 베를린에 도착한 지난 9월 22일은 독일 총선 날이었다. 메르켈의 기민당이 압승했음에도 연정 구성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는 독일에 대한 관심을 배가시켰다. 40%가 넘는 지지를 얻은 기민당이 군소정당과 제휴하면 연립정부 구성이 수월할 것 같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해서다. 특정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에 투표한 유권자의 심판이 두려워서란다. 섣부른 연정을 통해 정당의 정체성이 약화될 경우 유권자 심판이 엄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국민이 군소정당과의 연정보다 다수당과 제2당의 연장을 의미하는 ‘대연정’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원활한 국정수행 때문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지 분위기는 다수당인 기민당과 제2당인 사민당이 대연정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예상대로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대연정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독일 내무부는 통일과 관련된 1년 365일 기록 모두를 담은 수첩을 기념품으로 제공했다. 2014년용 수첩에는 2015년 달력도 있었다. 2013년 9월에 이미 2015년 달력이 수록된 수첩을 건네주는 주도면밀한 나라 독일, 그러한 독일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통일 시점이었다. 통일 3개월 전까지는 대다수 독일 국민이 생전에는 통일을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러한 독일 정부가 통일의 상징으로 안내한 곳이 구 동독지역에 속했던 드레스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엄청난 비극을 겪었던 도시, 대공 방어망이 붕괴된 상황에서 대규모 폭격으로 엄청난 수의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건물 90%가 파괴된 드레스덴이 역사의 아픔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무차별 폭격으로 인한 파괴와 분단의 아픔을 이겨내고, 철저한 고증을 통해 남아있는 흔적들을 연결해 옛 모습을 찾으며, 지나온 역사와 화해하는 상징으로의 드레스덴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통일이 더 늦었더라면 구 동독지역에 속해 있던 문화유산 상당수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설명과 함께. 과거 역사와의 화해 상징으로 드레스덴의 복구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는 상황에서 서울로부터의 기초연금 관련 소식이 날아왔다. 논란이 많던 기초연금 정부안이 발표되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안이 발표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서울에서는 기초연금이 모든 복지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가고 있다. 기초연금을 보는 시각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에서 처음으로 연금제도를 도입했고, 두툼한 연금 급여가 특징인 비스마르크형 공적연금제도의 원조국가인 독일이 ‘어젠다 2010’을 내세워 30년에 걸쳐 왜 연금 급여의 40%가 깎여 나가고 있는지를 되돌아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기초연금이라는 블랙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향후 급속하게 도래할 초고령 사회는 어찌 대처하고,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의 연금 문제는 어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기초연금을 통해 달성하려는 비전과 제도 운영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독일이 채택하고 있는 각종 제도의 외형을 단순히 모방하기보다는 어떤 고민을 통해 어떤 가치관이 형성되었으며, 어떤 시스템으로 각종 제도가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도입하려는 복지제도가 오히려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이집트 전역 군부 찬반시위 충돌로 최소 51명 사망

    이집트 국경일인 6일(현지시간) 전역에서 군부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군경과 충돌해 최소 51명이 사망하고 260명 이상이 다쳤다고 CNN 등이 전했다. 이 같은 사망자는 지난 8월 충돌로 수백명이 숨진 이후 최대 규모다. 이날 충돌은 지난 7월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군부에 반대하는 무슬림형제단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가 카이로 민주화 성지인 타흐리르 광장으로 행진하면서 촉발됐다. 타흐리르 광장에는 제4차 중동전 승리 40주년 국경일을 축하하고 무르시에 반대하는 수천명이 모여 있던 상황이었다. 군경은 무르시 지지 시위대가 타흐리르 광장으로 진격하자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무르시 지지 세력이 합류해 무르시 반대파와 투석전이 벌어졌고 군경이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대 체포에 나섰다. 양측의 시위는 카이로 외에 기자, 알렉산드리아, 베니수에프, 민야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무르시 지지 시위대가 타흐리르 광장 진입을 계속 시도해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집트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카이로에서 발생한 충돌로 적어도 20여명이 숨지는 등 전역에서 최소 51명이 숨졌고, 268명이 다쳤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이집트 내무부는 군경이 무슬림형제단 단원 등 423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군경의 체포 과정에서 시위대 일부는 군경의 진압을 피해 나일강을 헤엄쳐 도망치기도 했다. 군부 반대 시위에 참여한 ‘정당성 지지 국민연합’은 “카이로 도심에서 군경과 충돌해 시위대 1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무슬림형제단은 “군부가 평화로운 시위대를 상대로 폭력과 살인을 저질렀다”고 규탄했다. 이집트에서는 1973년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4차 중동전 승리를 기념하는 이날 군부 찬반 시위가 예고돼 유혈 사태가 우려됐다. 앞서 이집트 법원은 지난달 23일 무슬림형제단 활동을 전면 금지하도록 명령한 바 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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