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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그다드·암만/“세계적 명소” 사해(아랍서 지중해까지:6)

    ◎소금물 호수엔 반나관광객 “둥둥”/호텔 시설·음식 서구의 일류 못지않게 훌륭 물 위에 사람이 누워서 한가롭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고무튜브를 띄워놓고 그 위에 앉았거나 누워있는 사람도 있다.사해는 호수지만 바다처럼 넓었다.한낮인데 햇빛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고 이따금 실바람까지 불어왔다.야자나무 잎사귀로 지붕을 엮어 만든 파라솔 아래는 벌거벗은 유럽의 관광객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방금 물에서 나온 어떤 여인은 팽팽한 몸매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자기 일행이 기다리는 파라솔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호수 이쪽으로 먼곳에 길게 누워있는 요르단 계곡이 바라다 보이고 그보다 가까이 느보산교회가 있는 느보산 한자락이 손에 잡힐듯 선명하게 보였다.느보산 교회는 모세가 마지막 시절을 보낸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호수 건너편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땅이 사이좋게 나란히 있었다.우리가 보고 있는 저 푸른 야산이 최근 자치권을 얻어낸 예리코의 땅이라고 안내자가 일러줬다. ○암만서 20㎞거리 사해는 요르단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지 못해 생겨난 소금바다로 염도가 보통 바다의 7∼8배가 된다고 한다.그 때문에 사람이 알몸으로 누워서 책을 읽어도 끄떡없는 부력을 갖게 된 것이다.암만에서 사해까지 대략 20㎞거리인데 이 길은 심한 표고의 차이 때문에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암만이 해발 7백m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인데 반해 사해는 해발 0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이 추상적 이미지로 가득한 호수를 향해 차를 달리는 동안 나는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는 듯한 느낌속에 빠졌다.그러나 사해의 휴게소 레스토랑에 앉아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지옥이 아닌 밝고 아늑하기만한 천국에 와서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그것은 내가 한동안 사막을 헤매다가 비로소 푸근한 바다와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바그다드에서 암만까지 무려 15시간동안이나 차를 몰아 우리를 무사히 데려다준 순박한 이라크인 기사는 우리가 사례금조로 5달러를 주었을 때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거렸다.마흔 안팎의 이 남자는 손에 받아든 미화 5달러가 믿어지지 않는 듯 자꾸만 그 지폐를 확인하곤 했다.우리는 새벽 5시에 암만으로 들어왔는데 새벽 어스름 속에 나타난 이 작은 왕국의 수도는 동화의 나라를 연상시켰다.온통 흰색 뿐인 작고 아담한 집들이 높이가 각각 다른 여러개의 언덕둘레에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는데 그 풍경은 크레파스로 그려진 그림이었다.중심부 시가지도 인공도시답게 잘 정돈되어 있었고 주변의 큰 건물들은 아랍풍의 특징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리가 숙소로 정한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서구의 어느 일급호텔 못지않게 시설이 훌륭했고 음식도 훌륭했다.몇시간 잠을 자고 조반을 들기 위해 일행과 함께 호텔의 뷔페식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 진열된 음식들을 보고 나는 갑자기 눈이 부셨다.품질이 좋은 여러종류의 빵과 파이들,우유와 과일주스,각종 고기요리들,그리고 색깔이 다채로운 야채 샐러드,이런 음식들이 내 눈에 몹시 설게 느껴진 것이다.바그다드에는 이런 음식들이 없었다.일류라는 라시드호텔에도,알 만수르 호텔에도 이런 음식은 구경하기 어려웠다.작년에 바그다드에 다녀왔던 친구가 보름만에 암만의 호텔로 돌아와 처음 식탁을 마주했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었다는 경험담을 내게 들려줬을 때 나는 내 친구가 너무 감상적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이제 내가 같은 경험을 하고있는 것이다.그런데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껏 몇날동안 잘 먹지 못하고 돌아온 자신에 대한 연민일까? 혹은 바그다드에서 우유와 약품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아이들과 노인들에 대한 동정의 눈물인가? 나는 둘 모두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보다는 차라리 오랜만에 마주친 풍성한 음식에 바쳐진 눈물이란 말이 한층 그럴듯하게 들린다.그러나 이것도 맞지 않을 것이다. 로라의 집에 저녁초대를 받았던 날도 이 비슷한 주제로 친구와 잠시 논쟁을 벌였던 일이 있었다.전직 주한대사이자,현재 이라크 상무부 자문관인 가잘씨는 우리가 바그다드를 떠나기 전날 저녁 우리를 자택으로 초대했다.사실은 이라크 사람의 가정 분위기를 보고 싶다는 우리의 요청에 못이겨 저녁 식사에 우리를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이 초대가 내게 특히 반가웠던 것은 로라를 다시 만날 수 있을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로라는 무스탄시리아대학 영문과 1학년생이다.그녀를 처음 본 것은 바그다드 도착 하루 뒤였다.그때 가잘씨가 연락을 받고 자기 아내와 두 딸과 함께 호텔로 찾아왔었다.가잘부인은 상류사회 귀부인다운 품위와 미모를 지니고 있었고 영어도 유창하게 사용했다.장녀인 로라는 아빠 뒤에 숨어 있다가 가잘씨가 자신을 우리에게 소개하려고 돌아서자、그제서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자그마한 몸매의 귀여운 아가씬데 얼굴에는 총명이 넘쳐 흘렀다.정체 모를 깊은 슬픔을 감추고 있는 듯한 그녀의 크고 한없이 맑은 눈,그 눈을 봤을 때 나는 왠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그렇다.레바논 가수 마즈다 루미의 눈을 닮았다.나는 바그다드에서 그 얼굴과 만날 수 있기를 막연하게 기대했었는데 드디어 그녀를 만난 것이다.그러나 어리고 수줍은 로라에게 그런 따위 얘기를 들려줄 수는 없었다.그대신 가잘부인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따님은 내가 바그다드에 와서 만난 가장 예쁜 사람입니다』 ○염도 바다의 7배부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로라는 얼굴만 붉혔다.그뿐이었다.가잘씨 가족은 곧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로라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녁초대를 받은 것이다.가잘씨는 차를 몰고 가면서 현재 거주하는 집은 장모님 댁이고 자기집은 수리중이라는 말을 들려줬다.홀로된 장모님은 풍채가 좋은 노인인데 사실은 아주 불행한 할머니였다.가잘씨에게 처남이 되는 그의 두 아들은 이라크군의 장성들이었는데 공군장성은 이란과의 전쟁때 전사했고 육군은 한쪽 눈을 잃고 상이용사가 되어 있었다.가잘씨는 가족앨범에서 자랑스런 처남들의 좋았던 한시절 사진들을 보여줬다. ○월급 다털어 대접 식탁에는 낯익은 카밥과 코르사가 나왔다.샐러드도 나왔고 후식으로 과일과 보기 드문 아이스크림까지 나왔다.식사를 끝내고 담소를 하는데 무슨 얘기끝에 가잘씨가 자기 봉급이 하급공무원의 십배쯤은 된다는 말을 했다.십배라면 약3천 디나르,미화로 10달러가 채 안되는 돈이다.그때는 그 얘기를 그냥 흘려들었다.가잘씨가 너무 태연하게 그말을 했던것이다.나는 로라와 주로 얘기를 나눴다.이것은 그녀의 훌륭한 성품 탓이겠지만 로라는 고맙게도 나와 얘기하는데 진지한 흥미를 보여줬다.내 서툰 영어를 이해하려고 그녀는 무척 애썼다.로라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그녀는 아랍어와 영어로 시를 쓰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그 때문인지 내가 다소 추상적인 표현을 했을 때도,서툰 영어탓에 더 그렇게 되었지만 그것을 곧잘 이해하고 적절한 반응을 보여왔다.로라,네가 쓰는 시는 어떤 시일까? 그게 몹시 궁금하다.그걸 읽어보고 싶다고 내가 말하자.로라는 이 담에 시를 적어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우리는 친구가 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비록 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눈 셈이다.신앙얘기도 했는데 회교에 대해서만은 로라는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그녀는 기회가 주어지면 내게 자기네의 그 신앙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가잘씨 가족과 헤어진 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그 3천 디나르 얘기가 떠올랐다.나는 가잘씨가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저녁 한끼를 대접하기 위해 자신의 한달 봉급을 다 써버렸을 거라고 생각한다.반드시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음식을 먹을때 목에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던 사실이 기억된다.호텔로 와서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하자 친구는 그것은 로라에 대한 특별한 감정(?)탓이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인 태도일 뿐,사실에 근거한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라고 나를 비난했다.일반 서민들에 비하면 가잘씨는 그래도 상류층 생활자인데 동정의 표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그러나 나는 그때 내 감정이 동정도 연민도 아닌 것을 알고 있다.동정이나 연민은 고약한 버릇이다.로라에게 연민이란 말은 더구나 걸맞지도 않다.그렇다면 고난을 겪고있는 이라크인 전체에게 나는 동정과 연민을 느낀 것일까? 암만 호텔의 식탁에서 흘린 눈물에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잔잔한 사해의 수면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부질없는 생각에 젖느라고 시간 가는줄 모랐다.안내차 함께온 암만대사관 친구가 좀 지루한 듯 소금물에 몸을 담글 생각이 없으면 그만 암만으로 돌아가자고 내게 말했다.그제서야 나는 사해에서 눈을 떼고 휴게소 건물 밖으로 나왔다.파라솔 아래 있던 몸집 좋은 유럽인들도 어느새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 김성애 화려한 복권/김일성 후처,오랜만에 정치무대에

    ◎카터와 대동강유람… 서방에 이례적 공개/“반정일파” 내리막 20년… 작년부터 재부상 김일성 북한 주석의 후처이자 김정일의 계모인 김성애가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지난 17일 서방 TV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가 김주석의 전처(김정숙) 소생의 공식 후계자인 김정일과의 불화로 그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거의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다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인 김일성의 후광을 등에 업고 여맹위원장이라는 대외적 직함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김성애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6월 「평양시당 전원회의」때부터.이 회의에서 김성애의 존재가 후계체제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본 김정일측이 그녀의 측근에 대해 월권행위와 전횡을 내사해 집중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성애는 공식활동을 자제하면서 조용히 「자숙」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난해부터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지난해 7월 시아누크 캄보디아국왕의 방북 환영행사와연말 여맹 전원회의에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복권」됐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킨 바 있고 올해 4월 시아누크의 방북시에도 모습을 드러낸 사실이 북한방송에 의해 보도됐었다. 그녀의 친아들인 김평일은 김정일에 의해 「곁가지」로 몰리면서 주로 대외직책을 맡아오다 지난 3월 핀란드대사를 끝으로 평양으로 귀환해 군관계 요직을 맡았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김정일과의 후계투쟁에서 밀려나 20여년간 모습을 감추었던 김영주가 지난해 정치무대에 복귀한 것과 함께 주목되는 움직임이다. 김일성일가의 이같은 신상변화가 기왕의 후계체제를 다지기 위한 결속차원인지,아니면 김정일 후계체제의 불안감을 느낀 김일성의 노회한 「교통정리」인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마을버스 인도 덮쳐 행인 등 24명 중경상

    【부산=김정한기자】 마을버스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고장으로 인도를 덮쳐 승객과 행인등 2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6일 하오 5시50분쯤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삼거리약국앞 내리막길에서 우성버스 소속 부산5자 9754호 마을버스(운전사 이정수·33)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부산1바4889호 택시등 길옆에 주차해 둔 6대의 차량을 잇따라 들이받은 뒤 인도를 덮쳤다.
  • 미 대통령 연봉25년째 동결/역대 4회만 인상…보수 안오르는 직종

    ◎클린턴 19만불 수령… 닉슨보다 “저임금”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얼마만큼의 연봉을 받았을까. 운동선수들이 수백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억만장자들은 공채이자만으로 수십만달러를 버는 미국에서 대통령직은 결코 높은 직위에 걸맞는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보수가 ?으? 가망도 별로 없?? 비인기 직종으로 전락했다. 미국 대통령의 연봉은 1789년부터 지금까지 2백5년동안 단 네차례 인상됐다.대통령 봉급인상은 전적으로 의회소관인데 미국의회는 건국이후 84년만인 1873년에야 첫 봉급인상을 결의했으며 2·3번째 인상도 한참 뜸을 들여 1909년과 1949년도에 이뤄졌다. 지난 69년 마지막 인상이 결정된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연봉은 동결돼 인플레와 각종 세금을 감안할 경우 현재의 클린턴 대통령은 25년전의 닉슨때보다 봉급이 깎인 실정이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2만5천달러의 연봉을 받았는데 세금을 공제한 이 액수는 현 시세로 55만달러에 상당,18세기말 수준으로도 「왕휘」급이었다.이후 80여년의 동결기를 거쳐 첫번째 대통령봉급인상의 수혜자인 18대 율리시스 그란트 대통령은 재선 첫임기를 시작하면서 전보다 2만5천달러가 오른 5만달러(93년기준 78만달러)를 수령했으며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은 두번째 봉급인상 결정으로 7만5천달러를 받았다.이는 93년도 기준으로 자그마치 1백50만달러나 되는 후한 금액이었다.그 이후 대통령들의 연봉은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33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세번째 봉급인상으로 10만달러의 연봉과 함께 여행수당(4만달러),생활수당(5만달러)을 추가수령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세금과 인플레를 감안하면 현시가로 따져 45만달러에 해당된다. 69년 취임한 닉슨 대통령은 20만달러(93년기준 실수령액 47만5천달러)를 받았고 그 이후 25년동안 동결돼 클린턴 대통령은 실수령액이 19만달러에 불과, 역대 대통령중 최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한푼도 오르지 않는다면 25년뒤인 2019년에는 대통령의 연봉은 현시가로 고작 7만달러가 된다는 계산이다.하지만 아칸소 주지사 연봉의 두배는 되는 액수여서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 과연 전쟁은 날것인가(이동화칼럼)

    『한국에서 과연 전쟁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지난달 22일부터 약2주일동안 미국의 몇몇 도시를 다니며 남북문제에 관해 교민들과 의견을 교환할 기회를 가졌을때 집중적으로 제기됐던 관심사가 바로 이점이었다.평통자문위원 뉴욕·애틀랜타·휴스턴·로스앤젤레스지역협의회가 주최한 통일문제토론회에서마다 참석교민들의 질문초점은 여기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한반도정세에 불안을 느끼던 터에 때마침 판문점남북접촉 도중 북측대표가 『서울이 불바다가 될것』이라는 협박성 폭언을 한 직후라 많은 교민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매우 염려하고 있는 중이었다.공사석에서 만난 교민들중 여러명이 한국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분위기와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으며 심지어 걱정이 되어 한국에 달려간 사람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마치 LA에 강도높은 지진이 났거나 흑인폭동이 일어났을때 현지를 걱정하던 서울의 모습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한국쪽에 전화를 해본 이들은 그곳의 너무나도 태평한 반응과 분위기에 오히려 당혹하는 모습들이었다. ○미국의 결정은 곧 행동 「전쟁」의 가능성을 보는 교민들의 관점은 약 세가지로 집약되었다.첫째 미국 정부는 어떤 결정을 내리면 곧바로 행동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상대가 누구든 제삼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말이다.이라크의 후세인에 대한 응징공격,리비아의 카다피 숙소폭격,파나마의 노리에가 납치구속등 군사행동은 결정되자마자 전광석화와 같이 실행되었던 것을 예로 들었다. 둘째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현재 「화이트 워터 스캔들」속에서 허덕이고 있다.워터게이트호텔 도청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도중하차한 닉슨의 경우가 되고마느냐 아니냐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이같은 궁지에서 벗어나기위해 북한응징카드를 씀으로써 국민들의 이목을 돌리고 국면을 전환해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셋째 국제무기상들의 로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들었다.특히 미국의 군수산업은 미소를 축으로 했던 냉전의 해소와 함께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이제 생사의 기로에 몰려있기에 「전쟁로비」를 할 수밖에없으며 그 대상이 한반도 일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미국이 만약 「결정」을 한다면 보다 명분을 축적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국내문제를 호도하기위해 밖에서 일을 만들어 국민들의 눈을 돌리게하는 짓은 합리성을 결여한 것으로 후진적 사고에서 나올수 있는 가상이다. ▲한반도에서는 전쟁아닌 긴장조성만으로도 물건을 팔수있다는 등의 반론도 있었지만 토론 대세는 전쟁가능성이었다. 교민들의 이같은 관점은 북한의 도발에 의한 전쟁이라 하더라도 미국의 교묘한 유도에 의 한 것이 될것이라고 보는 것이기에 놀라웠다.미국사회에 대한 강한 불신의 표현으로 생각되었다.소수민족으로서 살아가는데 많은 고초를 겪었다는 증좌이다. 어떤 사람은 본국에 전쟁이 나면 그동안 이민와서 고생한 것이 부질없는 짓은 아니었다는 보상심리적 측면의 고백을 하기도 했으나 사실 이들의 「전쟁론」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친것은 미국의 언론이었다.신문·방송 특히 TV가 한국에 곧 전쟁이라도 터질것같이 호들갑을떨었고 이를 직접보거나 전해들은 사람들의 사고가 그쪽으로 경도되는 것은 당연했다. 걸프전에서 재미를 본 CNN이 한국에도 전쟁중계팀을 대거 보냈다가 맥없이 철수한 적이 있지만 ABC·CBS·NBC가 주말의 한국사태 악화에 대비하는 경쟁을 벌이는 휴스턴에서의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주말에 집을 지키다 코멘트를 해줄 교민의 알선을 한인회에 모두 부탁해온 것이다.이런 상황이니 분위기가 「전쟁우려」로 갈만했다. ○역량강화로 억지력을 그러나 한국에서는 떠나기 전에도 돌아온 후에도 전쟁에 대한 우려나 긴장감은 거의 없어 신기한 느낌이 들 정도다.전쟁이 나지야 않겠지만 이문제를 심각히 생각해보지조차 않는다면 이 또한 큰일이다.물론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정부로서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함은 물론 파급효과를 최소로 줄이는 노력을 배가함이 필요하다.이미 외국인투자와 관광객유치등에 영향을 받고있지 않은가. 이번을 계기로 다잡아야 할것이 있다.우선 강한 안보역량의 확보로 전쟁억지력을 키워야 한다.여기에는 패트리어트같은 신무기도 필요하지만 군의 기강과 사기의 확보가 중요하다.군인이 폭행과 강도까지 하는 사례가 자주 나와서는 안된다. 또 국민들의 감상적 대북관 시정이 필요하다.북한의 정권이나 지도자를 북한주민과 혼동해서 보는데서 감상이 싹튼다.이런 지적이 「보수」또는 「시대착오」라는 역매카시즘의 표적이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 산악자전거/27일 자연농원서 4백명 경륜

    ◎산길·자갈밭·덤불숲 60㎞ 완주해야/프로엘리트·엑스퍼트·스포츠 3등급/96년 미 애틀랜타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돼 인기 폭발 산악자전거(MTB·마운틴 바이크)시즌이 봄과 함께 활짝 열렸다. 전국 MTB협회가 주최하는 전국 산악자전거대회가 27일 상오10시 용인자연농원 전용코스에서 개막된다.이번 대회에는 프로 엘리트,엑스퍼트,스포츠등 3개 등급으로 나누어 총 4백여명의 선수가 참가,열전을 벌인다. 「자연에 도전하는 용기의 참 멋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대회는 대기오염·교통난등 심각한 환경문제와 쉽게 접할 수 있는 레저스포츠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데다 MTB경기가 오는 96년 미국 아틀랜타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코스는 자연농원 MTB코스 총연장 15㎞중 난이도가 제일 높고 경관이 수려한 5㎞코스에서 치러지며 최대 12바퀴(60㎞)를 완주해야 한다. 호암미술관 잔디밭을 출발,개울길∼자갈 오르막길∼백련사입구∼비포장도로∼급경사 내리막길(포장도로)∼유실수단지 소로길∼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며 프로 엘리트급 12바퀴,엑스퍼트급 7바퀴,스포츠급은 2바퀴를 완주해 그 순위를 결정하게 된다. 현재 미국·일본·유럽등 선진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MTB경기는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고 자갈길·모래밭·덤불숲등을 질주,스릴과 박진감을 만끽 할 수 있는 현대의 신종레포츠이다.청소년들에게는 강인한 체력단련과 자연에의 도전을 통한 진취적인 기상을 키워 건강한 청소년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교육적인 레포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지난 92년부터 활성화,2∼3차례 전국대회가 열려 선수층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며 지난해에는 「전국 MTB연합회」가 발족,대한 체육회 정식단체로 등록돼 활동하고 있다.참가희망자나 관심있는 사람은 자연농원 레이싱팀(0335­30­3286)또는 전국MTB연합회(02­579­3121)로 문의하면 된다.
  • 자동차 미 수출/미 진출 9년째… 위상과 문제점

    ◎성능 앞세운 마케팅전략 시급/48만대 판 88년 엑셀신화 단발로끝나/판매량 매년 감소… 현대 가 공장도 폐쇄/올해 16만대수출 예상… 고급차 개발 일 자동차사에 배워야 지난 86년 「포니」로 미국에 첫 발을 디딘 한국 자동차의 위상은 요즘 어느 정도일까. 수도 워싱턴 주변이나 서부의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는 현대의 엑셀이나 쏘나타,기아의 프라이드(수출명 페스티바)가 가끔 눈에 띈다.대부분 출고한지 오래 돼 외부에 녹이 스는 등 낡은 차들이다.그나마 숫자도 현저히 줄었다. 지난 88년에는 미국 시장에서 한국 차가 48만대나 팔렸다.이른바 「현대 엑셀의 기적」이었다.그러나 대미수출은 89년 23만대,90년 19만대로 꺾였다.그뒤 91년 17만대,92년 12만대,93년 11만1천4백대로 계속 내리막길이다. 다행히 올해에는 대미 수출이 작년보다 늘어날 전망이다.현대자동차의 로스앤젤레스 현지법인(HMA)의 김길래이사는 『미국의 경기회복에 힘입어 올해에는 한국 차들이 16만대 이상 팔릴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한국 차들의 가격경쟁력이높아졌다』고 설명했다.미국과 일본 차들이 지난 해 94년 모델을 내놓으며 가격을 5% 이상 올린 데 이어 올들어 또 인상한 반면 한국 차들은 94년 모델을 소폭 인상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지난 해를 고비로 한국 차들의 미국내 판매여건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줄기차게 성능을 개선한 후속모델을 내놓으며 다양한 판매전략으로 시장을 파고 드는 일본이나 미국 차들을 당하지는 못한다.예컨대 지난 80년대 미국 시장에 첫선을 보였던 일본 혼다의 시빅은 처음 포니엑셀보다 더 싼 값이었다.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지도 못했다.그런데 외양을 바꾸고 성능을 보강한 후속 모델을 연속 내놓으며 미국에서 소형차의 대명사가 됐다. 반면 현대엑셀의 영광은 단발로 끝났다.한 모델의 단경기가 2∼3년인 미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후속 모델을 연속적으로 내놓지 못한 데다,고장률이 일본차보다 높아 소비자로부터 점차 외면받았다. 더구나 2천㏄ 이상의 중형차 시장에서는 한국 차들이 아예 맥을 못춘다.국내에서는 없어서 못 파는 현대의 쏘나타가 같은 이유로 그다지 인기를 못 얻고 있고,현대의 캐나다 부르몽공장(쏘나타 생산)은 지난 해 10월 폐쇄됐다.미국 시장에서 한국 중형차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사례이다. 세계의 모든 상품의 운명은 시장이 넓은 미국에서 판가름난다.미국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에 많이 수출했다고 해서 으스댄다면 그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나 같다.특히 자동차는 미국에서 성가를 얻으면 그대로 세계의 명차가 된다.그러나 한국 차는 아직도 미국 시장에서 실력으로 일류가 못 된다. 요즘 미국 상류사회의 만찬장에서는 「렉서스 열쇠자랑」이 유행이라고 한다.식탁에 앉으면서 일본 도요타 렉서스 승용차의 열쇠를 슬쩍 포크와 나이프 옆에 올려 놓는 것이다.그러면 옆에 앉은 사람들이 감탄사를 연발한다.「10년 동안 잔 고장이 없다」고 선전하는 렉서스는 어느 틈엔가 미국 사람들이 돈을 벌면 꼭 사고 싶은 고급차가 됐다. 포드사의 토러스등 일부 미국 차들이 최근 판매고에서 일본 차를 앞지른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일본의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렉서스같은 고급차 위주의 전략으로 돌아섰다.세계의 명차인 독일의 벤츠나 BMW,영국의 롤스로이스 등과 가격 및 성능에서 경쟁을 벌여 일부 차종에서는 더 비싼 값으로도 잘 팔린다. 한국 차들은 이제 엑셀의 신화가 쉽게 무너진 데 대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한 전문가는 『렉서스를 개발하기 위해 2년여 동안 미국에 상주하며 수천억원을 들여 연구 개발에 열중한 일본 기업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며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따른 매연대책이나 미니밴 등 상용차를 겸한 승용차의 보급에도 눈을 떠야 한다』고 충고했다.
  • 수출 50% 격감… 한국의 1.5%(도표로 본 북한)

    북한의 수출은 지난 88년의 20억3천만달러를 피크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종주국인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만해도 교역이 비교적 활발해 88년의 경우 수입을 포함한 교역량이 52억4천만달러에 이른적이 있다.그러나 교역부진으로 수출이 89년 19억1천만달러로 감소한 데 이어 91년,92년 똑같이 10억달러 수준으로 격감했다. 지난해에는 수출증진에 총력을 경주해 중국등과의 교역량은 다소 늘었으나 원자재부족과 핵의혹에 따른 일본등과의 교역감소로 별로 호전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출품목이라고 해봤자 광산자원등 원자재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90년대 들어서는 저임금의 노동력을 활용한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특히 섬유제품의 신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반면 한국의 수출은 해마다 3∼7%씩 늘어 지난해 8백24억달러에 이르렀다.이에따라 남북한 수출격차는 갈수록 크게 벌어져 지난해의 경우 북한의 수출규모가 한국의 1.5% 수준에도 못미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고학력 취업난해소 급하다(사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이 한해 사이에 40%나 증가할 정도로 고학력 실업사태가 심상치 않다.작년 3·4분기이후 대졸실업자수가 4만명에 달해 이들의 실업률이 전체실업률의 배에 육박하고 있다.고학력자의 실업은 다른 실업보다 사회적으로 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막대한 교육비를 투자,단위당 생산성이 높은 인력을 양성해 놓고 놀리고 있다는 것은 경제사회의 손실이자 국력의 낭비이다. 현재 자연계대학 졸업생보다는 인문계졸업생이,수도권지역대학 졸업생보다는 지방대학 졸업생의 취업란이 더 심각하다.지방대학 졸업자의 취업난은 최근들어 더 악화되고 있고 지방대학 가운데도 대규모 공업단지가 들어서지 않은 지역 출신자의 취업은 더 어렵다. 고학력자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는 1차적인 요인은 그동안 대학들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데 힘을 기울이지 않은데 있다고 할 수 있다.경제적으로는 지난 91년이후 국내경기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자 기업들이 감양경영을 위해 신규사원채용을 대폭 줄임으로써 고학력자의 실업률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대학 졸업자의 취업이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은 몇해전부터 기업들이 대학졸업예정자를 데려다 실습을 시키는 인턴사원제를 실시하면서 수도권 우수대학에 그 인원을 집중 배정하고 있는데 원인이 있다.이처럼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대졸자의 취업난은 해가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다.고학력자의 취업난을 해소하자면 지금부터 장단기대책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우리경제가 급속도로 공업화되고 정보사회로 가면서 전문인력의 수요가 늘고 있다.대학당국은 학력만을 갖춘 졸업자를 양성하기보다는 고학력에 맞는 전문인력(실업계인력),즉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는 인력을 배출하기위해 교육제도의 개선이 있어야 한다. 지금 국내산업은 구조조정중에 있고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면 서비스부문까지 개방된다.국제무대에서 경쟁은 기술이나 경영 할것 없이 전문가들의 대결이다.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인력을 대학이 공급해 줄것을 사회는 요구하고 있다.물론 대학이 특정인력의 양성기관이 아니고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그러나 대학교육도 급변하는 경제환경과 사회적 요구를 외면한 채 존립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을 배출해야 할 것이다. 현안과제인 지방대학 졸업자의 취업난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지방대학·지방행정기관·지방연고기업 등의 삼위일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지방대학은 스스로 관련기업을 상대로 「취업촉진간담회」를 개최한다든가 지방행정기관에 해당지역 대학생을 특채시키는 등 다각적인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 빗길 윤화 잇따라 하룻새 11명 사망

    ◎봉고·탱크로리 충돌… 6명 숨져 29일 새벽부터 내린 비로 이날 하룻동안 전국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잇따라 발생,9명이 숨지고 2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이날 사고는 대부분 빗길을 과속으로 달리거나 커브길에서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 차량과 충돌해 인명피해가 많았다. 【울산=이용호기자】 이날 새벽 1시10분쯤 울산시 남구 옥동 고속주유소 앞길에서 경남 7로 3211호 봉고승합차(운전자 김정호·24·울산전문대 1년)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경남 7아 7961호 탱크로리(운전자 오청일·대구시 동구 신암4동 251의1)와 정면 충돌했다.이 사고로 봉고차에 타고 있던 김상형씨(21)등 울산전문대생 5명과 운전자 김씨등 모두 6명이 숨졌다. 이날 사고는 빗길에 내리막길을 달리던 봉고차가 도로확장구간에서 차선이 바뀌자 도로진입금지 표지판을 들이받고 맞은편 차선으로 뛰어들어 일어났다. 【청송=이동구기자】 이날 0시40분쯤 경북 청송군 현동면 도평2리 앞길에서 경북 8마 8724호 11t 트럭(운전사 김준기·29)이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경남 1도 5018호 에스페로 승용차(운전자 강동일·27)와 부딪쳐 승용차에 타고 있던 김영철씨(27·경남 마산시 해원구 합승동 79의 25)등 3명이 숨지고 강씨등 2명이 다쳤다.
  • 산악험로 사이클링/심신단련 관심 고조/96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미·일 등서 인기 폭발/21∼24단 기어 장착,30도 경사길 거뜬/4계절 내내 산간로 벗삼아 스릴 만끽/팔다리 굽혀 충격 흡수… 내리막 긴 코스가 유리 산악사이클이 최근 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의 정식경기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산악자전거 타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가고 있다. 흔히 MTB(Mountain Bike)라 불리는 산악자전거는 비포장도로를 주행할때 생기는 충격에 견딜수 있도록 설계된 자전거로 70년대 초반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다.일반자전거와는 다르게 일자핸들,폭이 넓은 타이어에다 프레임은 카본·티타늄 등의 가볍고 강한 첨단소재를 사용하고 30도 정도의 경사로를 오를수 있도록 21∼24단의 기어를 장착하고 있다. 이같은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험로를 누비는 산악자전거 투어링(여행)은 계절에 관계없이 자연을 벗삼아 육체를 단련하는 레저스포츠로서 미국및 일본 등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우리나라에서도 89년이후 산악자전거와 유사한 자전거가 크게 보급되고 지난해부터는 경기대회도 열리고 있으나 아직까진 동호인이 5백명 정도에 불과하며 산악자전거 타는 기술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다.코오롱스포츠정보센터의 도움으로 산악자전거 타는 요령과 투어링방법 등을 소개한다. ▲기본기술=주행할 때는 엉덩이가 안장에 살짝 닿을 정도로 올려놓고 비포장도로를 만나면 엉덩이를 안장에서 떼고 핸들과 페달만으로 주행한다.양팔과 양다리의 힘을 빼고 팔굽과 무릎은 가볍게 굽혀 충격을 흡수할수 있도록 한다.기어는 경사도에 따라 앞뒤 기어의 비율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오르막길에서는 앞기어를 작게 하고 뒷기어를 크게 하며 내리막길에서는 앞기어를 크게 하고 뒷기어를 작게 하는 것이 좋다. 브레이크는 양호한 노면상태에서는 둘째손가락과 셋째손가락으로 잡고 거친 노면에서는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잡는다.초보자일 경우 앞뒤 브레이크의 비율은 3대 7정도가 알맞다.언덕길을 내려갈때에는 미리 안장을 낮게 조정하고 허리를 뒤로 빼 체중을 뒤로 이동시켜 브레이크 효과를 높인다. 계단을 내려갈때는 페달을 지면과 수평으로 놓은뒤 뒷브레이크로 속도를 죽여 계단과 직각으로 내려가고 무릎으로 뒷바퀴의 충격을 흡수한다.점프방법은 둔덕을 향해 속도를 내어 달려 둔덕 바로밑에서 상체를 낮춘다음 둔덕 시작점에서 순간적으로 상체를 펴 주면서 차체를 띄운다.뒷 브레이크를 잡아 착지때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준비한뒤 뒷바퀴가 지면에 닿는 순간 브레이크를 떼어준다. ▲투어링요령=초보자의 경우 경험자를 대동하고 2∼3명이 팀을 이뤄 가는것이 좋다.코스는 산간 비포장도로나 시골길 등 무궁무진하지만 서울근교의 우면산길을 비롯해 경기도 조종천,가평천,양평 중미산휴양림,대부산 활공장,강원도 구절리∼송천 코스가 유명하다. 승용차로 목적지에 도착한다면 원형코스를,자전거를 분리해서 버스나 기차 등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일자코스를 택하되 체력에 맞고 가급적 오르막이 짧으며 내리막이 긴 코스가 유리하다.코스를 정했으면 먼저 현지정보와 경사도를 파악하고 장비가 고장날 경우에 대비해 렌치·스패너·펑크수리세트 등 공구를 갖추고 기본수리요령을 익힌다.이밖에 나침반과 지도 보는법 및 자연을 읽고 자연에서 생활하는 법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장비=산악자전거는 물론이고 헬멧과 장갑은 안전상 꼭 필요하다.자전거는 기어가 21단 이상이어야 하는데 초보자용으로는 30만∼50만원선의 것이 무난하다.이밖에 선글라스(고글)·휴대용펌프·전등·배낭 등도 필요하다.가격은 ▲헬멧 3만∼15만원 ▲장갑 1만∼3만원 ▲고글 3만∼23만원 ▲펌프 1만5천∼5만원 ▲물통 1만∼2만원이다.
  • 인티파나 발원지(평화싹트는 중동:3)

    ◎30년 정체 가자시 건설붐 기대/5억불 투입 항구 완공땐 경제활력/“과격이미지 서방 편파보도 탓” 불만 『바로 눈앞에 잔잔한 파란 바다를 두고도 배를 띄울 수 없는 어부의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가자시장 자카리아 미키박사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다. 지중해 남부해안에 연해 길이 45㎞ 폭 6∼13㎞의 길다란 모습을 하고 있는 가자지구는 어업과 농업이 주업이었다.그러나 1967년 이스라엘이 강점한 후 해안 1마일 밖으로의 항해를 금지,사실상 고기잡이가 불가능해져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됐으며 더욱이 원주민보다 더많이 밀어닥친 피난민 때문에 이 지역의 삶은 최악의 상태로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가자지구는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90여㎞ 떨어져 있다.예루살렘 동쪽 유대아광야의 삭막한 사막풍경과는 달리 올리브농장이 광활하게 펼쳐진 세펠라지대를 지나 해안평야로의 내리막길을 달리면 풍요로운 「약속의 땅」들이 계속된다.아시도드,아시켈론 등 이스라엘의 항구도시들이 지중해연안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러나 아시켈론을 지나 20여㎞ 남하,가자지구로 들어서면 차창 분위기는 전연 딴판이다.유일한 관문인 에레츠검문소를 지나자 4∼5명의 가자 사람들이 차를 둘러쌌다. 긴장하는 기자에게 그들은 가자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볼펜을 한자루 주었다.그리고 노란색 번호판(이스라엘 차적)으로 가자지구에 들어가면 신변에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가자지구의 흰색 번호판(요르단강 서안은 파란색)차로 갈아타라고 친절히 일러주었다. 첫 도시인 자발리아를 지나 가자시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물빛은 변함없는데 시가지 이미지는 온통 잿빛으로 바뀐다.30년 가까이 전연 보수나 건설없이 정체돼온 시가지는 테러로 부서진 건물,불탄 차량,각종 구호로 범벅이 된 담벼락 등으로 얼룩져 있었다. 엘하다 스트리트의 골목골목을 돌아 찾아간 PLO가자본부는 허름한 3층건물이었다.건장한 청년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성이고 있다가 낯선 출입자를 에워쌌다.동예루살렘 PLO본부 오리엔트 하우스에서 받아간 소개장을 내밀었더니 잠시후 국제담당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미키시장에게로 기자를 안내했다. 가자태생인 미키시장(58)은 미펜실베이니아대를 나와 프랑스 낭트대에서 행정학박사를 취득한 후 교수생활을 하다 조국건설을 위해 귀국한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최고기구인 7인위원회의 위원장도 맡고 있었다. 미키시장은 가자지구가 지난 87년부터 시작,대이스라엘 저항의 이론적 기반이 되고 있는 「인티파다(끝없는 봉기)」사상의 발원지가 됐고 하마스·지하드 등 급진 팔레스타인단체들의 활동거점이 되는 등 과격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대해 『과격을 전연 부인하지는 않지만 서방언론의 지나친 편파보도에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일부 테러는 개인적 차원의 일인데 시전체가 공포의 도가니인 듯한 보도는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가자인들이 느끼는 불만은 지난 87년 인티파다운동 시작 이래 66명의 어린이를 포함,모두 2백26명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정치적 이유보다는 경제적인 핍박에 더 기인하는듯 했다.이스라엘의 1인당 GDP가 1만2천달러인데 비해 요르단강서안(웨스트뱅크)은 그 7분의1인 1천7백달러,가자지구는 또 웨스트뱅크의 절반인 8백50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가자지구는 총수입중 50%가,웨스트뱅크는 수입액의 35%가 이스라엘에서의 노동수입이고 또 이스라엘이 국경을 하루 닫는데 웨스트뱅크는 2백만달러,가자지구는 75만달러의 손해를 입게 된다』고 설명하고 『이번 평화협정을 계기로 국경의 안정적 개방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또 가자항 건설계획에 대해 『5억달러가 들어갈 이 계획이 제대로 추진되면 농산물의 해외수출은 물론 생필품 안정공급 등 팔레스타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키시장은 『평화협정체결후 일부 과격파들의 반대도 있지만 주민들이 일주일간 환영행사를 벌이는 등의 분위기로 볼때 앞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끼리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우리의 평화협정처럼 분단된 남북한에도 평화가 오길 기대한다』며 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 3차7개년계획/성과 언급없어 실패한듯(오늘의 북한)

    ◎해 종료/연 4년째 마이너스서장 기록/외자유치 부진… 합영사업도 1건에 그쳐/최근 수년간 환율 등 경제지표 공개안해 북한의 제3차7개년계획(87∼93년)이 올해로 끝나지만 그실적은 목표에 훨씬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아직 4차계획에 대한 청사진은 물론 3차계획의 목표달성 여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않아 사실상 실패를 자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경제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공식통계는 60년대 중반이후 매년 상향일변도로 터무니없이 과장되긴 했지만 이따금씩 제한적으로 발표됐었다.그러나 동구권의 붕괴와 소연방의 해체로 경제사정이 급전직하한 이후 최근 수년 동안 성장률·환율등 주요 경제지표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올들어서는 이보다 한술 더 떠 거시 경제지표는 물론 기본적인 실물경제 수치의 발표도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있다.지난 9월28일과 29일 강성산총리,김달현부총리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국가격일꾼대회에서도 『사회주의 경제건설과 가격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는등 수사적인 구호만 난무했을뿐 올해 경제시책의 성과를 알리는 통계발표는 전혀 없었다. 이는 북한 경제사정이 「우리식 사회주의」체제 고수를 위협할 만큼 벼랑끝에 서있음을 말해주는 증좌라는 지적이다. 북한은 석탄,전력,금속공업부문을 올해 성장주도부문으로 설정하고 노동과 자재를 집중 지원하는 한편 NPT탈퇴와 준전시상태선포등 대내외적 긴장을 생산동기 유발수단으로 이용해 왔다.그러나 올들어 북한경제가 호전된 것같은 징후는 전무하고 오히려 극히 나빠진 증거들만 나타나고 있다. 올상반기중 북한 보도매체에 발표된 건설사업의 완공·조업 건수는 총2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4건보다 대폭 감소했으며 제3차7개년계획 중점건설사업인 순천비날론공장,사리원카리비료공장등 대규모 건설 사업진척이 매우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다만 평양시 3만가구 주택건설,전승기념관등 체제유지에 직결되는 전시적인 건설사업들만이 투자의 최우선순위를 부여하여 완공됐을 뿐이다. 이같은 부진한 성과는 93년도 예산을 긴축예산으로 편성했을 때 이미 예견됐었다.북한은 철도운송 기반강화,화학비료 증산으로 농업생산의 획기적 증대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이들 정책부문의 예산증가율은 각각 3.1%와 2.1%로 전년도의 5%와 4.5%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던 것이다.때문에 다른 부문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외자유치를 위해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세금법」「자유경제무역지대법」등을 잇달아 발표했으나 그 성과는 극히 미미했다.핵문제로 인한 국제관계의 악화로 상반기중 합영실적은 합영유치 1건,합영진출 1건,이미 설립된 합영회사 준공 1건등에 불과했고 그나마 유치기업은 조총련계에 편중됐다. 이처럼 북한 경제는 긴축예산 편성,국제협력 부진등으로 전반적인 산업생산동향이 지난해보다도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경제는 올해 연4년째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북한은 3차7개년계획기간중 성장목표를 연평균 7.9%로 설정했으나 지난해까지 연평균 마이너스1.3%를 기록하고 있다.87년 3.3%,88년 3.0%,89년 2.4%로 내리막길을 달리다 90년대 들어 90년 마이너스3.7%,91년 마이너스5.2%,92년 마이너스7.6%등으로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 「신토불이 23년」 농민 안영선씨(「2단계 개혁」을 말한다:7)

    ◎“신농정 농산물 값 안정 역점둬야”/농민자격증제로 경쟁력 제고를/도농격차 줄이게 복지·문화 지원 『개혁이란 커다란 나무는 새정부가 심었습니다.이제는 농민들을 비롯한 온 국민들이 뿌리가 되어 이 나무를 지탱하고 키워나가야 합니다』 농어민후계자 전북 연합회장인 농민 송영선씨(42)는 한여름의 뙤약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새정부의 개혁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호미와 괭이를 들고 흙과 함께 살고 있는 농민들에게 새삼스럽게 무슨 개혁이 필요한가는 생각을 송씨는 단호히 거부하고있다.그는 오히려 「개혁은 농민부터」라며 개혁의 제1조건을 국민 모두가 「나부터」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라고 꼽는다. 서울 장충고를 졸업한뒤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전북 진안군 진안읍에 내려와 23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송씨는 『농민이라고 해서 개혁은 우리 일이 아니라며 남의 일을 보듯하여서는 개혁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농민들이 깨어야 합니다.모든 농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정부가 잘하는 일에는 발벗고나서서 도와주고 잘못하면 목소리를 높여 바로잡아 가야 할 때입니다』 송씨는 『새 정부출범이후 면사무소나 군청·경찰서를 찾을 때마다 달라졌다는 생각을 피부로 느낀다』고 지난 6개월동안의 개혁에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었다. 『얼마전 영농자금을 대출받고 농약·비료를 사기 위해 농협에 들렀을 때 직원들이 전에 없이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개혁이 서서히 일상속으로 스며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방향에 대해 송씨가 갖고 있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새 정부의 신농정 5개년계획이 과거보다 농업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개방등의 파고속에서 어렵게 농촌을 지키고 있는 농민들에게 새로운 의욕을 줄만큼의 조치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첫번째 지적이다. 『이농현상이 계속되고 농촌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까닭은 농사를 지어서는 도저히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농민들 사이에 보편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농촌이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진단한 그는농민들의 불안감을 없애주려면 『농산물 가격의 폭등과 폭락을 막는 가격지지에 정부시책의 역점이 두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덴마크처럼 「농민자격증제도」를 도입,첨단농법과 과학영농을 배워 국제 경쟁력을 갖춘 영농을 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나름대로의 방안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쌀 시장이 개방된다면 농촌이 설 땅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우리 밀이 보기 힘든 것처럼 앞으로는 우리 쌀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 것입니다』 우리쌀지키기 전북지역대책본부장이기도 한 송씨의 쌀 수입 개방에 대한 반대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또 정부가 최근 발표한 양곡관리제도에 언급,계절별 가격진폭을 15% 이상 확대하고 수매도 계속해야 하며 담배인삼공사의 막대한 이익금을 농업안정기금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풍요롭고 살기좋은 농촌을 만들기위해서는 농촌의 복지·문화생활을 보장해야 하며 『가뜩이나 소득이 낮아 교육·의료·문화의 소외지대에서 살고 있는 농민들이 자녀학자금 지원도 받지못하고 의료보험료도 직장인들보다 많이 내고 있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벼 다수확 전북 1위를 차지했을만큼 학위없는 「농사박사」이기도 한 송씨는 『정부가 농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혁에 동참 시키기위해서는 지금 농촌을 짓누르고 있는 두꺼운 먹구름을 거둬주는 노력을 더욱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표면상 군비감축사업 일환/미 F16기 구매중단 배경

    ◎구매계약 이미체결… 4∼6년간 생산 계속 미국 국방부가 94회계연도(93년10월1일∼94년9월30일)부터 현재 미공군의 주력기종인 F­16 팔콘전투기를 더 이상 구매하지 않기로 한것은 미공군 비행단의 대폭적인 감축에 따른 것이다. 미국방부가 향후 5년간에 걸쳐 시행할 새 국방계획 가운데는 한국 공군이 차세대전투기로 확정,도입키로 한 F­16의 추가구매를 취소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미공군의 이같은 추가구매 취소는 F­16의 생산회사인 제너럴 다이내믹스(현재 전투기부문은 록히드에 합병됐음)의 생산계획에 다소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나 한국을 비롯,각국이 이미 주문한 양이 남아있어 상당기간 생산은 계속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의 군수산업은 이미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가 종식됨에 따라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더욱이 국방비의 대폭삭감을 공약으로 내세워온 민주당의 클린턴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방예산은 클린턴행정부가 잠정편성한 수준에서 다시 칼질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미국정부는 군수산업의 급격한 쇠퇴와 실업자 증가를 막기 위해 외국에 대한 무기판매를 촉진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9월 대통령선거전중에 당시 부시대통령이 지난 10년동안 미·중관계를 고려,신예 전투기의 대대만판매를 금지했던 조치를 해제,1백50대의 미사일장착 F­16을 향후 6년간에 걸쳐 팔기로 한 것이다. 다른 항공기 기종은 두고라도 한국의 차세대전투기인 F­16의 경우 91∼92년 사이에 ▲한국 1백20대 ▲터키 80대 ▲그리스 40대 ▲대만 1백50대 등의 구매계약이 체결됐다. 이들의 구매조건은 기술이전,조립생산비율 등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개 4∼6년간에 걸쳐 이뤄지므로 적어도 이 기간동안 록히드사의 F­16생산은 계속되게 된다. 미공군은 그동안 매년 20대 정도의 F­16을 구매해 왔으나 앞으로는 이를 취소하는 대신 F­22 스텔스기의 개발을 계속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작년 4월 유일한 모델기가 시험비행도중 추락,불타버린데다 6백억달러라는 엄청난 개발비가 투입돼야 하므로 본격적인 활용은 2천년대에나 가능할 것으로 군사전문가들은 보고있다.현재의 계획도 오는 99년까지 11대를 배치한다는 것이므로 적어도 2000년까지는 미공군도 현재의 F­16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 르노·볼보 국경넘은 결합/파리 박강문(특파원코너)

    프랑스의 가장 큰 자동차회사인 르노사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스웨덴의 볼보 자동차회사가 손을 잡는다.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는 이 두 회사의 합작을 「결혼」이라고 표현했는데 두 거물의 「결혼」은 수일내에 공식발표될 예정이다. 이 합작은 판매고 감소 추세에 있는 두 회사의 돌파구로 간주되고 있다.르노사는 볼보사보다 장사 규모가 크지만 시장은 주로 국내와 유럽인데 비해 볼보사는 세계를 시장으로 하고 있다.이러한 특성의 상호보완을 양측은 기대하고 있다.볼보로서는 유럽공동체 안에 긴밀한 동반자를 두게 된다는 이점이 있다.두 회사의 결합은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경쟁력 높은 일본 자동차의 시장 잠식 등으로 위축돼 가는 유럽 자동차의 자위 노력이기도 하다. 92년 영업실적을 보면 볼보사는 24억 프랑의 적자를 냈다.볼보사는 그러나 93년 상반기에 적자에서 벗어나 4천5백만 프랑의 순이익을 냈다.볼보사가 밝히고 있듯이 이 흑자는 지난해보다 차가 더 팔려 생긴 것은 아니고 스웨덴 화폐 크로나의 평가절하 때문이다.지난해 상반기 6개월동안 16만1천대를 팔았으나 올해 같은 기간에는 그보다 적은 15만6천4백대를 파는데 그쳤다. 르노사도 다른 유럽 자동차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영업실적이 저조했다.올해 상반기 판매고는 8백71억 프랑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8.35% 줄었다.차량 판매대수가 줄어든 데서 온 결과다.르노사의 한 관계자는 올 하반기에 줄어든 수요에 따라 영업 규모를 줄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따라서 이에 따른 부분적인 감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최근 수년간 유럽 자동차회사들의 판매실적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신문에는 자동차회사들의 감원이나 수익 감소가 자주 보도되고 있다.르노와 볼보의 「결혼」이 이 난관 돌파에 도움이 될 효자를 낳게 될 지 주목된다.
  • 세계경제 침체기간 장기화/한은 분석/89년말이후 40개월째 지속

    ◎70∼80년대엔 평균 28개월/“자본주의 퇴조” 분석도 세계 경제의 침체 국면이 90년대들어 급격히 길어지고 있다.이와관련,70∼80년대 고성장을 누렸던 선진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90년대들어 퇴조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시각이 대두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조사통계월보 7월호에 실린 「주요 국가의 경기순환의 특징과 시사점」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방 선진 7개국은 지난 70∼80년대에 4차례의 경기침체를 겪었으며,경기가 최고 수준(정점)에서 바닥(저점)까지 도달하는 데는 평균 28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지난 89년말에서 90년초에 시작된 최근의 경기침체는 현재까지 40개월간 지속돼 70∼80년대에 비해 12개월이나 길어졌다.특히 미국의 경기는 지난 89년1월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든 이후 지금까지 53개월간의 최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89년말에 정점에 도달한 이후 현재까지 42개월간 침체국면이 이어져 경기침체의 장기화는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 염전 인력난·저가수입으로 사양길

    ◎5년간 3천7백㏊ 휴·폐업… 실태와 대책/서·남해안 1천7백곳서 연55만t 생산/68% 영세업… 국내가 30% 외국산에 밀려/업계,수매확대등 유통구조개선­관리가격제 요구 드넓은 소금밭이 폐허의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바다의 사금이라 불리며 농어촌에 부를 안겨주던 염전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고임금과 인력난은 염전업에 일대타격을 가했다.또 인스턴트식품을 선호하고 김장풍습이 쇠퇴하는 등 국민 식생활이 변한데다 수입소금의 수요가 부쩍 늘어 염업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이에따라 국가에서 염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획기적 방안을 마련해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우리나라 소금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서해안을 찾아 그 실태와 대책을 알아본다. ▷현황 및 실태◁ 전국의 염전은 현재 1천6백93곳의 9천3백18㏊이며 생산량은 55만7백여t에 이른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1천2백78곳에 4천7백47㏊로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천·경기가 1백18곳 2천2백98㏊,충남이2백5곳 1천3백4㏊,전북이 24곳 9백69㏊ 등이다. 이는 지난 88년 1만1천8백㏊이던 면적에 비해 가동중인 면적은 8천88㏊로 무려 3천7백㏊의 염전이 휴업중이거나 폐쇄돼 쓸모없는 땅으로 변한 셈이다. ○전남이 절반 차지 휴·폐업의 대부분은 염업의 채산성 악화에 따른 것이지만 간척사업 등 각종 개발사업에 의한 것도 상당수 있다. 지난 87년 시작된 충남 서산·당진의 석문지구 간척사업으로 인해 15개 염전 1백38㏊가 잠겼다.또 88년의 경기 시화지구 간척사업으로 33개 염전 5백55㏊가 사라졌다. 이밖에 지난해 11월 착공된 영종도 신공항건설과 관련,영종도일대 5개 염전 26㏊가 폐전을 눈앞에 두고 보상이 진행중이다. 현재 조업중인 염전도 대부분 영세업체여서 수입소금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체 염전 1천6백93곳 가운데 염전면적이 1㏊ 이하인 곳이 59개 업체,1∼3㏊인 곳이 7백1개 업체,3∼5㏊인 곳이 3백89개 업체로 5㏊이하가 67.8%를 차지하고 있다. 염전업체 종사자수도 갈수록 줄어 가동중인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당 0.6명꼴인 4천8백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폐염전이 늘어나는데다 조업중인 염전마저 단위당 생산성이 떨어져 공급이 수요에 못미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일반염을 일컫는 천일염의 연간 생산능력이 50∼55만t,공장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기계염이 23만t의 생산능력을 갖춘 데 비해 국내수요는 80만t에 달해 2만∼7만t이 모자라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87년 이후 모두 20만6천4백t의 소금이 호주·멕시코 등지에서 수입돼 왔다. 아직까지는 공급이 부족한 해에 한해 수급차원에서 수입하는 형태지만 외국산 소금은 t당 35∼40달러로 국내가격의 30% 수준에 불과해 수입이 완전자유화되면 염업농가의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 ▷문제점◁ 우선 다른 물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소금값을 들 수 있다. ○가족 노동력 의존 소금 50㎏들이 한가마니의 값은 생산지가격으로 5천원 선이다. 소금 한가마니면 5∼6식구가 1년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다른 물가는 해마다 오르고 있는데 반해 소금값은 8년 전의 5천1백38원 안팎을 맴돌고 있다. 더구나 운송이 까다로운 서해안 도서지방의 경우 생산지가격이 3천5백∼4천원에 지나지 않는다.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판매값에 염업농가는 울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당 연간 소금생산량은 64t.이를 시가로 환산하면 6백40만원인데 염업농가의 평균보유염전이 3㏊이므로 연간매출은 대개 1천8백만원 내외다.소금생산에 특별한 재료비가 들어가지 않지만 인건비가 60∼70%를 차지해 이 정도 생산액으로는 사람 한명 제대로 쓸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염업은 3D기피업종의 대표적 업종으로 꼽힐 만큼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임금도 다른 업종에 비해 형편없어 가족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4∼6월에 연간 생산량의 60%가 출하되는데 최대수요기인 9∼11월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일시에 방출,손해를 자초하고 있다. ▷대책◁ 소금은 기후여건에 따라 생산량의 증감폭이 매우 커 공급이 매년 일정치 않은 만큼 수급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소금은 생산지에서 중간상과 도·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돼 일반농산물과 유통과정이 비슷하다. 그러나 연중 최대생산기와 수요기가 달라 가격이 불안정하다.때문에 중간상들이 농간을 부릴 소지가 많다. ○계절별 가격 큰차 이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생산기에 소금을 수매해 수요기에 파는 수매제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지금도 소금수매제가 실시되고 있긴 하나 수매량이 전체수급을 조절하기에는 부족하고 부정기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염업 관계자들은 해마다 3만t은 수매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또 가격안정과 수급조절을 위해 가격을 고정시키는 관리가격·지정판매인·공동출하관리제 등이 제시되고 있다.이와 함께 수입염 차익금으로 조성된 염가안전기금의 운용을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염전의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만큼 경제성이 없는 염전은 보상을 통해 과감히 정리하고 적정규모의 염전만 유지,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폐전으로 부족해진 생산물량은 기계염 제조의 확장으로 보충할 수 있다는 논리다. 부득이 수입을 하더라도 수입염을 국내 생산원가수준으로 공급하고 수입 및 판매창구를 일원화해 염업농가의 피해를 최소로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염업은 광업상의 채취업으로 분류돼 있으면서도 근로조건은 수산업 관련법의 적용을 받는 모호한 위치에 놓여 있다.이로 인해 근로자들이 법정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염전업자들은 은행대출을 받으려 해도 염전을 담보로 인정해주지 않아 비싼 금리의 사채를 빌려 쓰는 등 자금난마저 겪고 있다. 염전업자들은 『소금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고 있는 이때에 천일염가격인상과 각종 융자혜택이 이뤄지지 않는 한 소금생산은 한계에 이르렀다』며 정부의 대책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당국자 의견/“경쟁력 갖추도록 기계화 유도”/97년 수입개방… 천일염업계 지원/김대전 상공자원부 섬유생활공업국장 『오늘의 염전문제는 광산문제만큼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경쟁력이 떨어져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기가 어려운 산업입니다』 상공자원부 김대전섬유생활공업국장은 소금산업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더이상 경쟁력을 갖기 어렵게 된데 있다고 했다.규모의 영세성등으로 채산성이 악화된데다 수입소금과의 가격차이로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져 이른바 「퇴출산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특히 천일염은 기계염의 등장으로 사양화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염업을 보는 정부의 시각은 어떻고 앞으로의 정책방향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정부가 염업의 허가제를 없앤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현재 염관리법에 따라 염업을 하고자 하는 경우 허가를 받게 돼있습니다.그러나 97년 수입개방을 앞두고 염산업의 경쟁력제고를 위해 천일염을 제외한 신·증설 허가제한을 단계적으로 풀어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입니다.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허가제 폐지로 기계염의 신·증설이 이루어질 경우 영세염업자의 사양화가 급속도로 진척돼 도산사태가 우려되지 않습니까. ▲허가제가 폐지되지 않더라도 97년에는 수입자유화가 예시돼 있는 상태입니다.개방이 불가피할 실정이며 그러려면 경쟁력 강화가 선결과제입니다.이러한 구조조정과정에서 도태되는 사례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현재 다각도로 정책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염업의 현주소는. ▲현재 국내 천일염 가격은 수입 천일염에 비해 4배나 비쌉니다.호주나 멕시코 등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생산비가 워낙 적게 들어요.우리는 품이 많이 들지만 적도지역에서는 증발량이 강수량의 5배나 돼 광활한 염전에서 트랙터로 밀어 배에 선적할 정도입니다.경쟁력에서 처질 수 밖에 없지요. ­염업을 보는 정부의 시각은. ▲상공자원부로서는 허가제 폐지에 기본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염업계의 지적처럼 업계의 문제에 대한 보완대책을 마련한뒤 폐지하자는 입장입니다.어느 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수입개방 이후 외국업자의 가격조작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적정수준의 국내 생산은 유지돼야 합니다.세계 염업시장은 미국과 일본이 장악하고 있습니다.호주의 염전에도 일본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북미지역은 미국의 상권안에 있습니다. 식량안보적인 면도 무시될 수 없습니다.연10만∼15만t의 생산능력은 유지돼야 할 것입니다.물론 경제성이 없는 곳은 폐쇄가 불가피합니다.그러나 이 경우에도 정부가 지원해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인 정책구상은. ▲우선 유통부문의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생각입니다.공동집하장 건설 등이 그것이지요.또 염질을 높일 수 있는 기계화도 절실합니다.수입개방시 수입가와 국내 생산가의 차액의 일부를 기금으로 징수해 폐전 대책에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 빗길 트레일러 4중충돌/가족 등 7명 참변

    【김해=이정규기자】 12일 낮 12시10분쯤 경남 김해군 진영읍 하계리 진영휴게소 부근 남해고속도로에서 경북9아 3922호 25t 트레일러(운전사 여원식·28)가 중앙분리대를 넘어 마주오던 경남1노 7282호 스텔라승용차와 부산8머 6322호 1·5t 포터화물차 등 4대와 잇따라 충돌했다. 이 사고로 스텔라승용차에 타고 있던 이정수씨(58·고성군 마암면 삼락리)와 부인 최필선씨(58) 등 일가족 6명을 포함,7명이 숨졌다. 경찰은 이날 사고가 트레일러가 내리막길인 사고지점에서 과속으로 달리다 휴게소 진입로 부근에 몰려있는 차량들을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다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있다.
  • 「떠오르는 태양」서「사정낙엽」으로/「6공 황태자」박철언의원의 성쇠

    ◎인사·북방정책·합당과정 “실세중 실세”/“권력지향… 노 정권 망쳤다” 비난 받기도 박철언의원이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사와 마주 앉았다.단지 조사를 받는다는 차원을 넘어 사법처리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검찰 고위직 인사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몇년 전을 생각하면 그로서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6공초·중반 정확히 3당합당직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권력의 황태자」였다.주변의 모 인사는 「떠오르는 태양」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정상급 인사들까지 그의 눈치를 살폈고 권력지향의 사람들은 그에게 줄을 대려고 애를 썼다.노태우전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는 주요 인사와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그의 힘은 말 그대로 「무소불위」였다. 힘이 지나치면 부작용도 클 수 밖에 없다.그는 권력핵심부에서 독주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다.가까울 수 밖에 없었던 인사들도 어느 순간 그에게 등을 돌렸다.그는 자신의 몰락에 대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그를 아는 상당수 사람들은 「자업자득」「사필귀정」이라고 평가했다.방자하다고까지 비친 독선적 행동이 부른 당연한 결과라는 시각이다.한 여권인사는 그가 철저하게 권력지향적이었고 지나치게 권력을 즐겼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0년 국보위 법사위원으로 차출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서울지검 평검사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당시 국보위에 참여한 검사는 불과 3명 뿐이었다.발탁의 배경에는 노전대통령의 처고종사촌이라는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공이 출범하면서 그는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들어갔고 얼마후 법무비서관을 맡았다.당시 정치풍토쇄신법·학원안정법등 권력기반 강화를 위한 법안을 구상하는데 이론적 기초를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후 장세동 전청와대경호실장이 안기부장에 임명되면서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특별히 요청,그는 안기부장특보로 자리를 옮겼다.5공 핵심부의 두터운 신임에 따른 결과였다.검찰에도 적을 두고 있던 그는 얼마후 검사장급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했다.그는 사시 8회 출신으로 동기들은 아직 한사람도 검사장에 오르지 못했다.안기부에 재직하면서 그는 권력의 주요정보를 당시 민정당대표이던 노전대통령에게 전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그는 87년 대선 당시 월계수회를 구성,노전대통령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고 노전대통령의 핵심참모로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6공출범과 함께 청와대정책보좌관을 맡은 그는 노전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속에 국정전반을 주도했다.13대 전국구 의원을 겸직한 그는 89년에는 정무제1장관에 취임,당정업무 전반을 장악했다.그는 각종 인사에 관여했고 특히 서열을 중시한 검찰등 권력기관의 인사에 깊이 개입,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13대 공천에서의 5공인사 대거 탈락,뒤이은 5공청산,정호용의원파동에 막후역할을 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그는 전전대통령이 말한 『손좀 봐야 할 사람』가운데 첫 손가락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3당통합 직후까지도 막강한 위치에 있었다.이른바 「신TK」의 중심으로 한때 그의 주변에는 30∼40여명의 의원들이 모였다.차기대권후보로 까지 거론되기도 했다.그의 정치적 야망은 노전대통령이 사조직인월계수회를 관리하라고 지시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대표이던 김영삼대통령과의 대립은 그의 정치적 위상을 급전직하시켰다.그는 90년 3월 김대통령의 구소련행을 수행하고 귀국,『내 한마디면 정치생명을 끊을 수도 있다』고 말해 김대통령과의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그 여파로 그는 정무장관에서 물러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91년 4월에는 월계수회에서도 손을 떼야만 했다.이후 민자당 대권경선에서 반YS노선을 걸으며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를 거듭하다 지난해 10월 민자당을 탈당,국민당에 입당했다.6공후반 그는 노대통령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받는 처지가 됐다.아직도 민자당의 많은 민정계 의원들과 6공시절의 각료들은 『노대통령의 초반은 박철언씨가 망쳤다』고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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