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청산과 나라 세우기/김석준 이대교수·정치행정학(서울광장)
전두환·노태우씨의 구속기소로 잘못된 과거역사의 청산작업은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지난 한세기동안 오욕의 역사는 일제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되고 일제잔제의 청산이 없는 위에 분단국가수립과 동족상쟁,5·16,10·17,12·12,5·17 등 일련의 군사쿠데타로 이어졌다.이처럼 외세와 정치군인에 의해 오염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온 국민들의 여망을 바탕으로 문민정부는 과거청산작업을 추진해왔다.하나회 등 군사조직해체와 안가철거,안기부등 국가정보기관의 문민화,공직자 재산공개와 율곡비리등 부정부패 척결,전 조선총독부건물 철거,관권·금권·행정·흑색선거추방,지방자치 전면 실시,정치관계법·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 등 제도개혁의 추진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이러한 정지작업위에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사건에 대한 청산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이는 김영삼정부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한국병 치유」와 「신한국 창조」의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청산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권위주의 질서가 형성되고 기득권세력이 지배세력으로 형성되지 않고는 아무리 잘못된 역사라도 유지될 수 없고 그것이 불법적·폭력적일수록 더욱 광범위하게 물리적·인적 통치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민주국가들이 시민혁명이나 전쟁을 통해서 과거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특히 우리처럼 여러차례의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유지해왔던 권위주의체제는 그만큼 청산하기가 쉽지 않고 청산과정에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어쩌면 지금 겪고 있는 일부 정치·경제의 혼란과 불안은 너무 가벼운 것일 수도 있다.
역사청산의 핵심적인 과제는 인적·물적·제도적·문화적 청산작업이다.일제식민통치나 군사쿠데타의 핵심세력들이 정치·경제·사회 등 역사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물러나는 인적 청산이 가장 현실적인 과제이다.전·노씨의 구속기소뿐만이 아니라 5·16이후 12·12와 5·17군사쿠데타에 참여하고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청산이 엄중히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물적·제도적 청산작업이다.정경유착의 구조적·제도적 관계를 와해시키고 통치자의 도구로 전락한 법과 검찰·경찰등 국가기구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일이다.야당과 사회일부에서 특별검사제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그리고 문화적 청산은 모든 국민의 의식·정신및 문화생활과 관련되기 때문에 가장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조선총독부 건물과 쇠막대기 철거,일제지명 개칭 등이 일제 청산이라면 정치군인들이 심어온 잘못된 「군사문화」의 청산은 쿠데타역사의 문화청산문제이다.
이처럼 역사청산은 인적·물적·제도적·문화적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각각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때 역사 바로세우기와 나라세우기가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국민과 각계가 나서야 한다.먼저 구세대의 정치인들이 물러나고 새롭고 능력있는 정치집단이 시민과 함께 정치를 주도하는 세대교체가 나라세우기의 우선 과제이다.여야를 불문하고 과거 잘못된 역사의 직·간접적인 책임을 정치지도자들이 지고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지역주의를더이상 정권장악의 볼모로 악용하는 죄악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새로 출범한 이수성내각과 김광일 청와대팀은 역사청산과 나라세우기라는 중요한 역사적 임무를 부여받았다.96년 총선과 97년 대선이라는 목전의 이해관계를 떠나 역사적 관점에서 나라 바로세우기작업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구질서와 기득권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국민과 역사를 위한 국가운영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과거청산의 소극적인 기능을 넘어 세계화와 개혁을 통한 「신한국 창조」라는 적극적인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무기력하기만 했던 여당도 이제 신한국당으로 거듭나서 나라세우기의 주체로 서야 한다.당내의 인적 청산과 신진대사를 통해 현시국의 주체적·능동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나아가 정부여당은 협력하여 역사청산과정에서 침체한 경제와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생활개혁작업을 본격적으로 과감히 추진하면서 역사 바로세우기작업을 실천해야 하겠다.
야당과 사회단체도 더욱 적극적으로 역사적인 과업에 주체로 나서야한다.정략적·수단적인 문제보다도 역사적·목적가치문제를 우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국민과 언론도 보다 이성적·역사적 판단과 행동을 필요로 한다.가식과 위선,잘못된 의리나 단식행위와 같은 감성에의 호소,궤변과 사술을 통한 보혁갈등구도로의 왜곡,개혁작업의 폄하와 당리당략적인 비판,막무가내적인 증언거부와 진실호도,일부언론의 재벌기업 비호 등 역사 바로세우기의 장애물은 도처에 있다.
마지막으로 불편을 끼치는 입원환자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전두환씨는 단식을 중단하고 떳떳이 병원이 아닌 교도소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최규하·노태우씨는 국민에게 진실을 밝혀 진실이 폭력보다 강하고 영원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역사를 세워야 한다.국민이 스스로 청치와 선거에 참여하고 감시·감독할 때만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다.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보편의 가치와 질서를 실현하는 나라세우기작업에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될때 정치인,경제인,언론인,검찰등 국가기구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