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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 5·18 검찰수사 전말과 의미

    ◎재수사 91일만에 핵심 16명 심판대로/피고소인·목격자 등 8백여명 환문/「양민학살」 18차레나 광주현지조사/경복궁모임 실체·집권시나리오 등 새로 밝혀내 12·12와 5·18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착수 91일만인 28일 사실상 종결됐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5·6공의 실력자 16명이 군사반란및 내란 등의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79년 12월12일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한 지 17년만이다. 12·12는 군사반란으로,5·18은 내란으로 자리매김됐다. 검찰은 지난 해 11월30일 두 사건에 대해 「사정 변경」을 이유로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를 설치,본격적인 재수사에 들어갔다. 수사본부를 가동한지 5일만인 12월3일에는 전 전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해 군사반란 수괴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이어 피고소·고발인과 당시 국무위원,광주 현장의 목격자 등 모두 8백여명을 조사했다.처음 수사에 착수했을 때보다 4백여명이 많았다. 특히 광주 현지에 수사팀을 파견,18차례에 걸쳐 주남마을 등 양민학살을 조사했다.광주 현지에서 1백10명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등 진실 규명에 진력했다는 자체 평가다. 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국가 기강의 확립과 국가 장래의 위상 ▲국가 기본권의 본질과 참된 운용 ▲범행 가담 경위와 정도 ▲범행 후 뉘우치는 정도 등을 감안해서 사법처리했다.「엄정주의」와 「온정주의」적 요소를 종합,선별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12·12군사반란을 지휘하고 5·18당시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해 내란을 주도한 전·노전대통령을 포함해 11명을 구속기소하고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병력을 출동했거나 광주 현장을 진압했던 현장지휘관 등 관련자 55명은 불기소 처분됐다. 불기소 처분자 가운데 김진영 당시 33경비단장 등 12·12사건에 가담했던 지휘관 19명은 미필적 고의만으로도 반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에 해당,기소유예했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진종채 전 2군사령관 등 5·18관련 지휘관 33명에 대해서는 가담 사실만으로 국헌 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무혐의 처리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도피한 장기오·박희도씨와 캐나다에 체류 중인 조홍씨 등 3명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조치를 내렸다. 5·18특별법의 위헌제청으로 검찰은 12·12사건 관련자의 처벌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법원에 의해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장세동·최세창씨는 12·12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처벌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헌법재판소가 5·18특별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함에 따라 걸림돌은 사라졌다. 검찰은 재 수사에서 반란군 지휘부가 모인 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실체와 집권 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임시 국무회의장주변의 무장병력 배치,발포명령으로 확산된 계엄사령관의 「자위권 발동」 천명 등의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이에 따라 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에서부터 81년 1월24일 비상계엄 해제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강제 하야 등 몇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수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 신군부 핵심 3명 추가구속 의미

    ◎19명 사법처리… 「12·12」 수사 매듭/위헌시비 걸림돌 사라져… 새달중순 첫공판/단순가담 19명은 화합차원 기소유예 조치 검찰이 22일 박준병의원과 장세동·최세창씨 등 12·12사건의 핵심 관련자 3명을 추가로 구속함으로써 3개월을 끈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박의원 등의 구속으로 「12·12사건은 신군부측의 군사반란」이었음이 거듭 확인됐다.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는 신군부측의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졌다. 이 사건의 관련 피고인은 이미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비롯해 모두 19명이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까지 법정에 세우게 된 것은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국회가 제정한 5·18 특별법은 이를 뒷받침하는 단순한 절차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쿠데타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5·18 특별법은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관련자들의 처벌에 대한 법적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그러나 12·12사건 관련 피고소·고발인 38명 가운데 죄질이 가벼운 단순가담,부화뇌동자 등 19명에 대해서는 무혐의,공소권 없음,기소유예 처분을 내림으로써 사법처리 대상을 최소화했다.화합 차원의 배려라 볼 수 있다. 검찰은 이 달 말쯤 12·12 당시의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인 신윤희씨와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씨를 소환,보강수사를 마친 뒤 상관살해 및 미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키로 했다.미국으로 도피한 박희도 전 1공수여단장과 장기오 전 5공수여단장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검찰에서 두차례 조사를 받았으나 지난 달 캐나다로 몰래 출국한 조홍 전 수경사 헌병단장도 기소중지 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검찰은 핵심 관련자들이 5·18 내란에 깊숙이 가담하고,전씨의 비자금 조성에 연루됐거나 부정축재 등 비리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보강수사를 계속해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전·노씨 등 12·12사건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첫 공판은 3월 중순이나 하순쯤 열릴 전망이다.26일 첫 공판이 열리는 전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지금까지 세차례 공판을 가진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심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야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공판이 시작될 전망이다.전·노씨는 이 때 같은 법정에 설 것이다.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김영일 부장판사)도 전·노씨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공판을 진행하다 12·12 군사반란 사건과 5·18 내란사건을 병합해 심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노씨 등 피고인들은 재판에서 비록 정상참작이 되더라도 중형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박준병 의원 등 3명 수갑 표정/구속 각오한듯 “담담”/박의원 “20사당 병력 움직인 일 없다” 헌법재판소가 5·18 특별법에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22일 밤 전격 구속된 12·12 당시의 20사단장 박준병의원(자민련)과 3공수여단장 최세창씨·수경사 30경비단장 장세동씨 등 3명은 미리 각오한 듯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 1시간이 지난 하오 7시35분쯤 서울구치소로 가기 위해 검찰청사를 나선 박준병의원은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 박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되자 『20사단이움직이지 않은 사실을 검찰이 달리 해석,구속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써 12·12 당시 20사단 사령부가 성남 육군종합행정학교에 주둔했던 것이 병력출동이 아니었음을 주장. 5분 뒤 검찰청사를 나선 최세창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6공 이후 세번째로 구속된 장세동씨는 『대한민국 국법이 가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겠다.바람직스럽지 못한 법이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장씨는 5·18 특별법에 대해 『우리나라는 소급입법,사후입법을 했다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됐다』며 『미래를 기약할 법관들의 양심과 철학이 어디엔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이에 앞서 박의원은 상오 10시쯤 자민련 한영수 원내총무·김용환 부총재 등 4명과 함께 검찰에 출두. 최씨는 상오 9시50분쯤 비서관과 함께 검찰청사에 나왔다가 검찰의 출두 요구시간인 하오 2시보다 일찍 왔다는 이유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출두하는 촌극을 빚기도. 장씨는 하오 2시 검찰에 출두하면서 기자들을 피해 조사실로 올라갔다. ○…서울지법은 상오 10시30분쯤 「5·18 특별법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접수한 뒤 5만여쪽에 이르는 12·12사건의 검찰 수사기록과 지난 달 18일 위헌제청으로 보류됐던 장씨 등에 대한 영장을 김문관판사에게 전달. 법원은 하오 1시부터 청사 11층에 있는 김판사의 방 주변에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한편 김판사가 참석해야 하는 재판에 다른 판사를 보내는 등 김판사가 영장 심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 지난 달 18일 장씨 등의 위헌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제청을 한 김판사는 『당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위헌심판을 제청했지만 합헌결정을 내린 헌재의 견해를 최대한 존중해 영장을 검토했다』고 설명.
  • 장세동씨등 빠르면주말께 구속/12·12관련자 영장집행·공판 전망

    ◎박준병 의원 사법처리는 차후에 검토/전두환씨 등 피고인 17명 새달 첫공판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으로 5·18특별법 제정 당시부터 석달여를 끌어온 위헌시비가 단숨에 가라앉았다.이에 따라 검찰은 장세동·최세창씨 등 12·12사건 관련자들을 아무 법적부담 없이 사법처리할 수 있게 됐다. 검찰은 지난 달 18일 서울지법 김문관판사의 위헌심판 제청으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장씨 등 2명의 경우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는대로 구속을 집행할 방침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검찰이 다시 영장을 청구할 필요는 없고 법원이 이미 청구된 영장을 재심사해서 발부 여부만 결정하면 된다.그러나 헌재의 결정문이 대법원을 거쳐 서울지법에 송달되기까지 다소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빨라도 이번 주말쯤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검찰은 또 12·12사건을 재수사할 때부터 구속 대상자로 분류됐으나 임시국회 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법처리가 미뤄졌던 박준병의원(자민련·당시 20사단장)에 대해서도 장씨 등의 신병처리가 끝나면 영장 청구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나머지 12·12관련자 중 당시 수경사 경비단장 조홍씨,수경사 헌병단부단장 신윤희씨,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씨 등 3명은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따라서 12·12및 5·18사건과 관련한 피고인은 이미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모두 17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법원 역시 헌재의 합헌결정으로 공소시효라는 걸림돌이 사라짐으로써 앞으로의 재판이 홀가분해졌다.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는 『헌재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해 재판을 하겠지만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는 26일 첫 공판이 예정된 전씨 비자금 사건을 가능하면 두세차례의 공판으로 마무리지을 것으로 알려져 12·12 및 5·18사건의 첫 공판은 늦어도 3월 말이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동안 5·18특별법은 소급입법이며,이에 근거한 검찰의 재수사는 부당하다며 헌재의 위헌선고에 기대를 걸었던 전씨측은 진로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공소시효와 소급입법문제가 더 이상 쟁점이 안되기 때문이다. 전씨측은 따라서 12·12는 정승화 전 계엄사령관의 내란방조 혐의를 밝히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며,5·18은 계엄군의 정상적인 작전 지휘체계에 따른 정당한 군작전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내란죄와 군사반란죄의 성립 여부를 놓고 법정에서 사활을 건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 “5·18특별법 위헌 아니다”/헌재 합헌결정

    ◎“정의 실현이 「형벌불소급」 우선”/「12·12」관련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문희재판관)는 16일 5·18 특별법 위헌심판 제청과 헌법소원 사건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 날 하오 2시 대심판정에서 열린 5·18 특별법 위헌심판 제청사건 등 3건에 대한 결정 선고에서 『5·18특별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로써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 논쟁은 일단락됐으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등 사건 관련자들의 내란 및 반란죄에 대한 재판도 다음 달 초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김진우·이재화·조승형·정경식 재판관 등 4명은 결정문에서 『특별법이 12·12 및 5·18 사건 관련자,즉 헌정질서 파괴사범의 공소시효를 소급해서 정지시켰다 하더라도 정의 실현 요청에 따른 것이므로 위헌으로 볼 수 없다』며 합헌의견을 냈다. 이들은 『전·노씨 등 관련자들이 처벌받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 신뢰 보호의 이익과 법적 안정성보다,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강한 정의의 요청이 우선하기 때문에 특별법은위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반면 김용준·고중석·김문희·황도연·신창언 재판관 등 5명은 『어떠한 공익상의 이유도 개인의 신뢰보호 요청과 법적 안정성에 우선할 수는 없다』고 밝히고 『특별법이 기왕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범죄의 공소 시효를 정지시킨 것이라면 위헌』이라는 한정 위헌 의견을 냈다. 그러나 「위헌결정을 위해서는 재판관 6명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113조에 따라 특별법은 합헌이 됐다. ◎박준병씨 처리 미벙 헌법재판소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이달말쯤 12·12 사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12·12 당시 수경사 30경비단장 장세동씨와 3공수여단장 최세창씨를 군사반란 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구속키로 했다.법원은 지난달 18일 검찰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과 함께 이들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 발부를 보류했었다. 그러나 당시 20사단장 박준병의원에 대해서는 『구속 여부 방침을 결정한 바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밖에 상관살해 및 상관살해 미수 혐의가 드러난 조홍 전수경사 헌병단장과 신윤희 전수경사 헌병단 부단장,박종규 전3공수여단 15대대장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고위관계자는 『사법처리 대상과 일정은 헌재의 결정문이 법원에 송달된 뒤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이달말이나 내달초에 모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계엄법 연내 대폭 개정/사령관 「행정·사법 관장」 삭제

    ◎인신 구속·언론 검열 최소화/정부/“「5·17」 재발 방지” 역사 바로잡기 차원 정부는 현행 계엄법이 전시가 아닌 평시 계엄사령관에게 지나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판단,계엄사령관의 행정부와 사법부 관장 및 지휘·감독권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계엄법을 개정,97년부터 시행키로 한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지난해 8월 을지연습이 끝난 뒤 연습결과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역사바로잡기」 및 개혁입법 차원의 조치로 계엄법 개정을 추진토록 이양호국방장관에게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국방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31일 『현행 계엄법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계엄사령관에게 계엄지역 안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계엄사령관의 막강한 권한이 남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역사적 교훈에 따라 이같은 권한 남용을 원천적으로 불가능케 하기 위해 계엄법의 해당조항을 개정키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시에 군이 전투임무 수행과 병행하여 행정·사법등 계엄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 외국사례등을 모아 계엄법개정을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계엄법 제7조와 8조는 계엄사령관은 비상계엄이나 경비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지역의 행정·사법사무를 관장하는 것은 물론 행정·사법기관과 정보·보안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을 지휘감독토록 규정하고 있다. 계엄사령관의 행정·사법기관 지휘·감독권이 삭제되면 계엄선포시 계엄사령관이 지정하는 군 조정관의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법원·검찰 등에 대한 업무통제 기능도 없어지게 된다. 정부는 또 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을 담은 계엄법 9조가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비상계엄 때 작전이 지장을 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일반 국민의 권리를 대폭 보장하는 쪽으로의 개정을 검토키로 한것으로 전해졌다.계엄법 9조1항은 비상계엄지역 안에서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한 때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이 조항에 따라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80년 「서울의 봄」당시 법원의 영장없이 인신구속이 이뤄졌고 언론이 군 당국의 사전검열을 받는 등 국민의 기본권과 알 권리가 제한됐었다. 국방부는 그러나 비상계엄하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공안을 해치는 죄 ▲방화죄 ▲살인죄등 13가지의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한 군사법원의 재판관할권을 규정한 제10조는 비상시 필요한 최소한의 재판권을 규정하고 있다고 판단,개정대상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신중히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법은 5공 초기인 지난 81년 4월17일(시행령은 81년 12월 19일)전문 개정됐었다. 국방부는 각 군의 검토를 거친뒤 올 상반기중 개정안을 마련,하반기 국회 의결을 거쳐 빠르면 내년 새 계엄법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영장/내란목적 살인 등 혐의

    ◎「5·18」 재수사 사실상 마루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30일 정호용5·18 당시 특전사령관,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허화평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등 현역 국회의원 3명에 대해 형법상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정의원에게는 내란목적살인죄가 추가 적용됐다. 이로써 이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사람은 추가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이학봉·유학성·황영시씨 등 구속기소자 3명,이희성·주영복·차규헌씨 등 불구속 기소자 3명을 합해 모두 11명으로 늘어났다. 검찰은 지난해 11월말 5·18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여만에 사건수사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검찰은 5·18 당시 20사단장을 지낸 박준병의원은 5·18사건보다 12·12사건에 더 깊이 연루돼 있다고 최종 판단,5·18특별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사법처리를 유보키로 했다. 당직판사인 서울지법형사합의22부 유해판사는 31일 새벽 2시가 지나도록 영장관련 서류를 면밀하게 검토했으며 최욱서울지검장 등 검찰관계자들은 지난 18일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전철이 되풀이될 가능성에 대비, 검찰청사에 남아 영장발부를 기다렸다. 이종찬본부장은 이날 영장청구사실을 발표하면서 『일부 의원의 경우 부정비리에 대해서도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혀 이날 영장이 청구된 의원 3명의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에 따르면 허삼수·허화평의원은 5·18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신군부측의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을 직접 기획하고 전군지휘관회의와 계엄확대·국회봉쇄 등 일련의 집권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호용의원은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개입하는 한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정상적인 군의 지휘명령계통을 무시하고 현지로 직접 내려가 계엄군으로 투입된 3·7·11공수여단 등의 유혈진압작전을 진두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정호용의원은 이날상오 검찰에 출두하면서 『사전 집권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광주민주화운동을 강경진압토록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 구속 8명… 사회파장 최소화/검찰의 「5·18」재수사 2개월

    ◎“쿠데타 반드시 단죄” 선례확립 큰 의미/특별법 헌의결정 필요… 재판 늦어질듯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30일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등 현역의원 3명을 내란 등 혐의로 사법처리함으로써 사실상 일단락됐다. 지난해 11월 말 5·18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만이다.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모두 8명을 구속했고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핵심 관련자들로 처벌 대상을 최소화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을 이번 수사를 통해 쿠데타는 발생 시점이 언제든 반드시 단죄한다는 선례를 확립했다.「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김영삼대통령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됐다고도 할 수 있다. 검찰은 이날 정의원 등에 대한 구속영장에서도 드러났듯이 군권을 장악한 12·12사건과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이후의 과정을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시키지는 않았다.그러나 5·17 이후의 일련의 집권 시나리오가 80년 5월12일 신군부세력이 마련한 「시국수습방안」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집권시나리오의 창출에서부터 내란이 완성되는 81년 1월24일 비상계엄해제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허삼수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과 허화평보안사령관비서실장을 구속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에게 내란목적살인 혐의가 적용된 것은 전두환·황영시·이희성·주영복씨 등과 함께 자위권 발동이라는 명목으로 시위대에게 발포토록 하는 등 유혈진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정씨에게는 따라서 내란목적 살인죄가 추가 적용됐다. 검찰은 5·18 사건을 엄하게 단죄하면서도 사건수사가 몰고올 지도 모를 정치·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당히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처벌대상을 일단 13명으로 압축한 것도 이 때문이다.광주에 투입된 일선부대 지휘관들을 명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한 「생명이 있는 도구」로 규정,무혐의 처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지난해 7월 5·18 사건의 관련자들에게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점을 고려할 때 검찰의 재수사 자체가 스스로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수사 과정에서 신군부측의 집권시나리오와 발포를 용인하는 자위권 발동 사실 등을 새롭게 밝혀내는 등 오히려 검찰에 대한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검찰은 앞으로 5·18사건 피고인들이 5·18특별법 등에 대해 계속 위헌공세를 벌일 것으로 보고 법리 대응에도 주력한다는 방침이다.검찰은 이를 위해 이 사건에 대한 사법처리가 마무리될 때까지 특별수사본부를 존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5·18특별법 등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빨라야 다음달 말쯤에야 내려질 전망인데다 전두환전대통령이 단식 후유증으로 빠른 시일안에 법정에 출두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여서 이 사건에 대한 본격재판은 상당기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 「5·18」 3의원 구속영장 요지

    ▷정호용◁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허삼수·허화평·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 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 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시위가 발생하자 피의자 등의 정국장악에 상당한 장애요소로 판단,언론보도를 통제하면서 공수부대를 광주로 투입,강력히 진압하고 광주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계엄군으로 하여금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자위권발동이라는 명목으로 실탄을 분배해 발포케 하고 광주 재진입작전인 상무 충정작전을 실시해 광주 시민인 이정연 등을 살해했음.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 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하고,광주 시민들을 살해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허삼수·허화평◁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 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7일 하오 11시쯤 사회혼란 조성 및 학생·노동계 소요의 배후조종 혐의로 김대중 등을,권력형 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혐의로 김종필 등을 각각 체포하고 18일 무장병력으로 하여금 국회의사당을 점거,8월30일까지 국회의원 등의 출입을 통제하게 해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음. 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하고 7월 중순 국보위 법사분과위원들을 동원해 개헌안 시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전두환·노태우·이학봉 등과 함께 간선제 대통령 선출안 등을 결정하고 피의자 등이 운영하는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국정을 장악하고 대통령과 행정 각부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전대통령이 8월16일 하야하자 18일 서울과 제주를 필두로 잇달아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안보보고회의에서 새 대통령 후보로 전두환장군을 추대토록 하는 한편 8월21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도 전두환을 국가원수로 추대하기로 결의하고 8월27일 전두환이 제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9월1일 취임했음. 집권에 이르는 과정에서 취한 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거나 완결하고 언론을 순화시키며 신당을 창당해 정계를 개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계엄상황을 계속 유지하면서 9월 20일 피의자 등의 의견이 반영된 제 5공화국 헌법개정안을 마련,2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고,10월22일 국민투표로확정된 헌법개정안을 27일 공포하고,제10대 국회를 해산시키면서 국가보위 입법회의로 하여금 81년 4월10일까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게 하고 80년 6월20일부터 신당 창당을 추진하여 특정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한편 정보·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주도하에 민주정의당을 창당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으로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 기업인 9명 4∼1년 실형구형/노씨 비자금 공판

    ◎이현우 징역 10년·추징금 6억/노씨는 5·18관련자와 일괄구형 □피고인별 구형량 김우중 4년/최원석 4년/정태수 4년/이건희 3년/장진호 3년/김준기 2년/이준용 1년6월/이건 1년6월/이경훈 1년/금진호 6년/김종인 5년/이원조 5년/이태진 1년6월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대한 제3차 공판이 29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심리로 열려 노씨를 제외한 기업총수·핵심측근 등 나머지 피고인 14명 전원에 대해 징역 10년에서 1년까지 실형이 구형됐다. 대검중앙수사부 문영호2과장은 이날 삼성 이건희회장에게 뇌물공여죄를 적용해 징역 3년을 구형한 것을 비롯,이 사건으로 불구속기소된 기업인 9명 전원에게 징역 4년부터 징역1년까지를 구형했다. 대우 김우중·동아 최원석회장·한보 정태수총회장은 징역 4년,진로 장진호회장은 징역 3년,동부 김준기회장은 징역 2년을 각각 구형받았다.또 대림 이준용회장과 대호건설 이건회장에게는 징역 1년6월,(주)대우 이경훈회장에게는 징역 1년이 각각 구형됐다.전청와대경호실장 이현우피고인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죄가 적용돼 피고인 가운데 형량이 가장 높은 징역 10년에 추징금 6억1천만원이 구형됐다. 또 금진호의원은 징역 6년,김종인전의원과 이원조전의원은 징역 5년,이태진전청와대경호실경리과장은 징역 1년6월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논고문에서 『삼성회장 이피고인 등 관련 기업인들은 관행에 따른 성금제공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이권과 특혜를 염두에 둔 관행』이라고 지적하고 『이같이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기위해 실형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이현우·금진호·김종인·이원조피고인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서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직언해야 할 위치에 있던 피고인들이 뇌물수수를 도운 행위 또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 마땅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내란죄 등으로 추가기소된 노씨는 전두환전대통령 등 12·12 및 5·18사건관련자들에 대한 심리를 끝내면 일괄 구형·선고할 방침이다.이에 따라 노씨 비자금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선고도 이 때 내려질 전망이다. 이날 공판은 소병해삼성신용카드부회장(전그룹비서실장),이건기진로건설부장,홍관의동부건설사장 등 3명에 대한 변호인측 증인신문과 이현우피고인에 대한 검찰 및 변호인측의 보충신문에 이어 변론,검찰구형,최후진술의 순으로 저녁 늦게까지 진행됐다. 이날 공판에는 율곡사업과 관련,김종휘피고인에게 5천만원을 준 혐의로 추가기소된 대우 김우중회장의 뇌물공여사건과,코오롱 등 2개 기업이 30억원을 전두환전대통령에게 전달토록 주선한 이원조전의원 사건이 병합됐다.
  •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오늘 소환 구속/검찰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9일 5·18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의원(무소속)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의원,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의원(이상 신한국당)등 현역의원 3명을 30일 상오 소환,구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상희부장검사는 이와 관련,『이들이 출두하는대로 간단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은 뒤 별다른 상황이 없는 한 이날 중으로 내란목적살인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5·18 재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이들의 혐의 사실을 토대로 이미 구속영장 작성을 마쳤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20사단장인 박준병의원(자민련)은 5·18사건보다 12·12사건에 깊이 연루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5·18특별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사법처리를 미뤘다.
  •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29일 출두” 통보/30일 구속될듯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검사)는 27일 5·18사건과 관련,당시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특전사령관 정호용씨 등 현역의원 3명에 대해 29일 중 검찰에 출두토록 통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내란 혐의가 드러난 현역의원들이 29일 출두하면 보강 조사를 벌인 뒤 30일 형법상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허삼수·허화평의원은 5·18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집권시나리오인 이른바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했으며,정의원은 광주에 직접 내려가 7·11·3 공수여단 등의 유혈 진압작전을 진두 지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같은 혐의 사실을 토대로 구속영장 작성 작업을 이미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20사단장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박준병의원은 5·18보다 12·12 사건에 더 깊숙히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날 때까지 사법처리를 유보하기로 했다.
  • 새달말께 첫 공판

    서울지법 서울지법은 23일 5·18사건과 관련,검찰이 내란수괴등 혐의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등 8명을 기소함에 따라 이 사건을 12·12사건 및 전·노씨 비자금사건 담당재판부인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에 배당했다. 전·노씨가 동시에 법정에 서게 될 이 사건 첫 공판은 이르면 다음달말쯤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 전씨 등 내란죄 기소­수사검사 문답

    ◎“「자위권」 선언직후 진압군에 실탄 지급”/“황영시씨 「탱크진압·헬기 위협사격」 지시/전씨 등 내란상황 계엄해제날까지 지속” 23일 5·17 및 5·18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부장검사는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수사경위와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두환씨 등 4명에 대해 내란목적살인을 적용한 것은 이들이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렸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인가. ▲이들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발포명령을 내렸다고는 볼 수 없다.그 누구도 발포명령을 명시적으로 한 사람은 없다.그러나 이희성계엄사령관이 TV연설을 통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다』고 한 뒤 곧바로 계엄군에게 실탄을 지급했다.이와 함께 시위대에 대한 3회이상 경고,사전 위협사격실시,생명보호를 위한 하반신 조준 등 자위권행사요건의 준수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내란목적살인의 「미필적 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백한 지휘체계 이원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운데. ▲이원화여부를 한마디로 말하면 「없다」고 해야한다.이계엄사령관으로부터 광주지역 정웅30사단장 등에 이르는 정식 라인에 전·정호용씨 등이 중간에서 끼어들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이원화는 있었지만 뚜렷한 이원화 체계는 없었다. ­불법진퇴,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등의 혐의는 전·노태우씨에게만 적용됐는데. ▲이들의 혐의는 국무회의 병력동원과 김영삼씨 가택연금 등 두가지 범죄사실에서 발견했다.다른 사람들도 이같은 혐의는 인정되나 대통령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전·노씨에게만 적용했다. ­내란목적살인에 황영시씨가 포함된 이유는. ▲당시 참모차장으로서 내란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참여했으며 탱크진압을 지시했고 헬기기총위협사격을 전교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등 광주 강경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명령을 받고 실제 발포를 했던 군인들은. ▲계엄군은 명령을 받아 진압에 나섰던 생명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따라서 계엄군 전체를 공범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또 단순살인은 공소시효도 지났다.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도적 역할 및 적극적인 행동 여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는데 차규헌씨 등 불구속자들은 관여정도가 다른 피고인들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이희성씨는 고령이 감안됐다.이외에 개전의 정과 범행후 정상 등이 참작됐다. ­전씨가 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해 사실상 내란의 목적을 완성했으면 이 때가 공소시효 출발점이 되는 것 아닌가. ▲전씨 등은 대통령 취임후에도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크게 불안을 느끼고 계엄을 해제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꾸준한 논의를 벌여왔다.따라서 계엄을 다음해 1월에서야 해제한 것이므로 이때까지는 내란상황이 계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번 수사때와 비교해 이번에 새로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비상계엄해제시점까지가 신군부 폭동의 종료시점이라고 봤으므로 지난번 소홀했던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초법적 비상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국보위설치령」을 발동한 것을 비롯해 국무회의장에 병력을 배치하고 전화선을 끊어버려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등이 새로 밝혀졌다.또 K공작과 시국수습방안은 물론,언론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실체도 이번에 드러났다. ­광주현지조사의 성과는. ▲수사가 다 끝나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다. □「12·12」 「5·18」 재수사 일지 ▲95년 11월24일=김영삼대통령,5·18특별법 제정 및 관련자 의법처리 지시. ▲11월29일=정동년씨 등 고소·고발인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취하서 제출. ▲11월30일=검찰,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1일=검찰 전두환씨 출두통보. ▲12월2일=전씨,대국민성명 발표직후 합천행.전씨에 대한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발부. ▲12월3일=전씨 안양교도소에 전격구속수감,1차 방문조사. ▲12월5일=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소환. ▲12월7일=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9일=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 등 소환. ▲12월10일=권정달보안사정보처장,황영시1군단장,정도영보안사보안처장,허화평보안사비서실장 등 소환. ▲12월12일=최규하전대통령 1차 방문조사 시도.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16일=신현확국무총리,김진기육본헌병감 소환. ▲12월17일=장태완수경사령관 등 소환. ▲12월20일=전씨 경찰병원에 이감. ▲12월21일=전·노씨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 ▲12월27일=광주현장조사단 구성. ▲12월28일=검찰,사공일·이상연·안무혁씨 등 39명 출국금지. ▲96년 1월9일=정호용특전사령관,소준렬전남북계엄분소장 소환. ▲1월10일=허문도중앙정보부비서실장,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주영복국방장관,박영수통일주체국민회의사무총장 소환. ▲1월17일=장세동·황영시·최세창·유학성·이학봉씨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청구.전씨측,서울지법에 위헌제청신청. ▲1월18일=서울지법(당직판사 김문관) 전씨측 위헌제청 인용,장세동·최세창씨 영장기각. 황영시·유학성·이학봉씨 영장발부. 전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1월22일=노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헌재,「5·18특별법 위헌심판사건 및 5·18 재수사 헌법소원」 심리착수.
  • 발포명령·지휘체계이원화 규명/전씨등 내란죄 기소­수사결과와 의미

    ◎「정권찬탈」 단죄… 역사 재정립에 큰획/16년 응어리 광주시민 명예 법적회복 23일 검찰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8명을 내란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함으로써 12·12 및 5·18사건 재수사가 마무리됐다. 국회 회기가 끝난 뒤 정호용·허화평·허삼수·박준병의원 등 국회의원 4명을 사법처리해야 하는 수순을 남겨놓고는 있지만 수사 자체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지난해 11월30일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된 지 54일,12월19일 5·18특별법이 제정된 지 35일 만이다. 이로써 전씨와 노씨는 기왕에 기소된 비자금 및 12·12사건에 이어 3가지의 사건으로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전·노씨에게는 12·12사건에서뿐 아니라 5·18사건에서도 군사반란혐의가 추가적용됐다. 일각에서는 5·18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12·12사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한다.물론 헌법재판소에서 5·18특별법에 대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 12·12사건 관계자들도 사법처리할 수 있다.그러나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한 5·18이후 15년8개월여 만에 공소시효만료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관련자들을 기소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재수사를 통해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의 법적·역사적 성격을 확실히 했다는 점은 큰 성과다. 검찰은 5·18사건이 ▲계엄확대 ▲국보위 등 비상기구설치 ▲국회해산 ▲언론통제 등 신군부측의 치밀한 집권시나리오에 의해 이뤄진 정권찬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따라서 아쉬운 점은 없지 않지만 「역사를 바로 세웠다」는 점에서 전국민으로부터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5·18 당시 발포명령 및 지휘체계의 2원화문제 등도 어느 정도 밝혀냈다. 김상희주임검사는 『명시적으로 발포명령을 내린 사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이희성계엄사령관의 자위권발동 천명을 발포명령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수사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16년동안 응어리진 광주시민의 명예가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완전하게 회복된 점 역시 큰 의의로 내세울 수 있다. 앞으로 전씨측은 5·18특별법 등에 대해 집요하게 위헌시비를 벌인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전씨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이미 5·18사건 불기소처분에 대해 「성공한 내란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또한 전씨측은 5·18사건 공소시효 기산점이 최규하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공소시효 기산점은 법률문제가 아니라 검찰의 재수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질 수 있는 사실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전씨 “내란죄 추가기소 예상했던 일”/연희동·검찰 이모저모

    ◎전씨 “단식 않겠다” 건강회복 강한 의지/검찰 “특별법 적용안해 공소유지 자신” ▷전씨측 반응◁ ○…경찰병원에 34일째 입원중인 전두환전대통령은 23일 검찰에 의해 내란혐의로 추가기소된데 대해 『예상했던 일』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병원측은 전했다. 전씨는 면회온 가족들로부터 추가기소 소식을 들은 뒤 『오는 2월5일 공판 때에는 하루종일 앉아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해야 할텐데』라고 말하는 등 건강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병원 관계자가 전언. ○…이날 상오 10시부터 10여분간 전씨를 면회한 부인 이순자씨와 재국씨 등 아들 3형제,이양우변호사 등도 『추가기소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했으나 전씨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차남 재용씨의 득남소식을 전해듣고 『장세동씨의 귀가조치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로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는 등 흐뭇한 표정을 지었으며 『이제는 우둔한 짓(단식)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 ▷검찰측 반응◁ ○…검찰은 이날 공소장의 적용법조에 5·18특별법이 포함되지 않은 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자 『특별법은 이 사건의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기능만 있을 뿐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며 『통상 시효를 규정한 법조항은 공소장에 기재하지 않는다』고 설명. 또 전직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군형법상 반란죄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5·18특별법의 위헌여부에 관계없이 이날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유지는 가능하다는 입장. 검찰은 내란의 완성시점을 최규하대통령 하야일에서 비상계엄해제일로 늦춘 점과 관련,『법원의 인정을 받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수사검사가 확신 없이 어떻게 기소하느냐』며 자신감을 피력. ○…검찰은 기소된 8명의 죄목을 정하기 위해 그동안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돼온 5·17사건과 5·18사건을 별개의 사건으로 엄밀히 구분. 5·18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행위를 말하며 5·17은 이를 제외한 비상계엄확대부터 해제까지의 일련의 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자에만 내란목적살인죄가 인정된다는 것. ◎전·노씨 등 재판 일정/「12·12」 「5·18」사건 병합심리/헌재 결정따라 일정 바뀔수도/비자금 사건은 공판일 달리해 병행심리 23일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제기로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가 맡은 사건은 5·18사건을 비롯,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12·12사건 등 모두 4건이다.하나같이 초대형 사건에다 관련 피고인만 해도 모두 26명에 이른다.재판부는 앞으로의 재판일정과 관련,몇가지 원칙을 세워놓았다. 우선 전·노씨 비자금사건은 피고인들이 서로 겹치지 않으므로 공판일자를 달리해 병행해서 심리한다는 것.노씨 비자금사건 3차공판은 오는 29일,전씨 비자금 사건의 첫 공판은 다음달 5일 열기로 이미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다. 재판부는 그러나 12·12와 5·18사건에 대해서는 전·노씨가 함께 관련됐고 성격상 분리할 수 없는 측면이 강해 두 사건을 병합해 같은 날 공판을 진행키로 잠정 결론을 지었다.두 사건의 첫 공판은 지난 18일 전씨측이 특별법에 대한 위헌신청을 낸 데 이어 전·노씨측이 두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라 헌법재판소의 판단 전에는 일정을 잡기 어렵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여부를 최대한 빨리 결정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면 다음 달말이나 3월초쯤 첫 공판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헌재의 심리가 늦어지더라도 『위헌제청이 있을 경우 해당 소송사건의 재판은 정지되지만 긴급하다고 인정되면 법원은 선고공판 전단계까지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42조에 근거,심리를 앞당길 수는 있다.그러나 검찰은 장세동전청와대경호실장 등 아직 기소되지 않은 12·12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헌재결정에 따라 기소여부를 판단할 방침이어서 재판부도 헌재의 결정을 끝까지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 「5·17­5·18」수사 검찰 발표

    ▷1,공소제기개요◁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오늘 5·17,5·18사건과 관련하여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을 내란등 혐의로 서울지방법원에 기소하고 △이 사건 범행 당시 제3군사령관이었던 유학성을 내란모의 참여등 혐의로,육군참모차장이었던 황영시,보안사 대공처장이었던 이학봉을 각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였으며 △이 사건 범행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주영복,육군참모총장이었던 이희성을 같은 혐의로,육군사관학교장 차규헌을 내란모의참여 등 혐의로 각 불구속기소하였음 ○이로써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하여 반란 등 혐의로 △5·6공화국 대통령 재직중 비리와 관련하여 수뢰혐의로 각 기소하고 ○행정부 등 강압 통제 △이번 사건을 추가기소함으로써 세가지 사건으로 법원의 심판을 받게 하였음. ▷2,공소사실요지◁ ○전두환 전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인등은 △12·12 반란사건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였으나 그 문책이 우려되고 △국민과 정치권의 반발이 현실화됨에 따라△정국안정을 명분으로 12·12 반란사건의 핵심관련자를 주축으로 정치주도권의 장악을 기도한 끝에 ○군사력에 의한 힘을 바탕으로 정국을 장악하기로 하고 △행정부등을 강압적인 분위기속에서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비상기구의 설치를 구상하고 △입법부의 입법기능과 견제기능을 봉쇄할 수 있는 조치등을 강구하되 △그 개괄적 수단은 불법적 계엄확대조치 및 그 연장을 통한 폭압적 방법을 사용하기로 모의한 다음 ○국회기능 정지 시켜 ○80년 5월17일에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선포함에 있어 국무회의장 주변에 장갑차등으로 무장한 병력 6백여명을 투입하여 위압적인 분위기속에서 비상계엄 확대 선포안을 통과시키는 한편 △정당의 총재등을 체포·연금하면서 주요 정치인들을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5월18일에는 △계엄 해제를 안건으로 소집된 임시국회를 장갑차등을 동원하여 열리지 못하게한후 △그해 10월26일 제10대 국회가 해산될 때까지 그 기능을 정지시키고 △나아가 10월27일에는 입법기능을 국민의 대표기관이 아닌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강압에 의해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고 ○또한 행정각부를 임으로 통제하기 위해 ○비상계엄 이용 개헌 △같은해 5월27일에는 대통령자문기구 명목으로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12·12 반란사건의 중요관련자들이 위원으로 취임함과 동시에 △상임위원회를 두어 그 소관위원회로 하여금 △공직자 숙정,삼청교육,언론인 해직 △개헌작업등을 추진하게 함으로써 행정각부를 조정·통제하여 국무회의와 행정각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데 이어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에 이르게 하고 ○그해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사이에는 광주지방의 시민·대학생등이 비상계엄해제,전두환 퇴진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자 피고인등의 목적을 관철할 의도하에 공수부대 병력등을 동원,과잉진압에 의한 살상행위등을 자행함과 아울러 ○비상계엄을 이용한 폭압적 분위기속에서 개헌,김대중 재판,언론기관 통폐합등 일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헌법기관인 행정부·입법부등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등 국헌을 문란할목적으로 △전두환은 최고책임자로서 △노태우,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은 각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유학성,차규헌은 각 모의참여자로서 폭동하여 내란함과 동시에 반란하여 헌정질서를 유린한 범행을 저지른 것임. ▷3,향후수사계획◁ ○검찰은 5·17,5·18 사건에 대하여는 수사상황에 따라 관련자를 적법절차에 의해 계속 처리해 나가되 ○12·12 사건 관련자 전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과 관련한 위헌 법률심판제청·헌법소원등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계속중에 있으므로 그 결정이 내려진 후 처리할 예정이며 ○전두환 전대통령의 수뢰 및 축재사건에 대하여도 계속 수사해 나갈 계획임.
  • 검찰의 전씨측 위헌공세 대응

    ◎“5·18재수사는 「사정변경」 해당돼 정당”/법원의 공소시효 인정도 검찰 입장 “부축” 5·18특별법에 대한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측의 위헌공세가 가열되고 있다.검찰의 5·18사건 기소를 하루 앞둔 22일 전씨측은 「헌법소원 보충이유서」를 통해 또다시 검찰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등 집요한 법리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씨측은 지난 18일 장세동전안기부장 등에 대한 법원의 영장심사 단계에서 전격적으로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특별법의 위헌성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또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한데 고무돼 이틀 뒤인 20일에는 새로운 시각에서 검찰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94년과 지난해에 12·12와 5·18사건에 대해 각각 「기소유예」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고도 검찰이 이를 뒤엎고 재수사에 착수,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려는 것은 부당한 공소권행사라는 주장이었다. 노씨 역시 22일 한영석변호사를 통해 같은 취지의 헌법소원을 냈다. 전씨측은 특히 이날 헌재에 낸 「보충이유서」에서 『헌재의 결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마찬가지로 「기판력」이 있으므로 검찰은 재수사 및 공소제기 등 어떠한 결정이나 처분도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지난해 1월 헌재가 12·12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은 타당하다고 결정했으므로 검찰은 재수사나 공소제기 등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전씨측은 그 근거로 「헌법소원의 인용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한다」는 헌법재판소법 75조를 제시했다. 전씨측은 23일 5·18사건 관련자들이 기소되고 담당재판부가 정해지면 또 다시 위헌법률제청신청 또는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다.이 때에는 노씨측도 전씨측과 공동전선을 펼 것으로 보인다.전씨측 변호인인 석진강변호사는 이날 『검찰의 공소장을 면밀히 검토한 뒤 담당재판부를 통해 내란죄에 대한 위헌신청을 할지,아니면 헌재에 곧바로 헌법소원을 낼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전씨측의 이같은 공세를 일축하고 있다.특별법 제정 등 「사정변경」의 사유가 있었으므로 재수사의 부당성을 따지는 전씨측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검찰은특별법에 규정된대로 12·12 및 5·18사건과 헌정질서파괴사범에 대해서는 국가소추권의 행사에 장애가 존재한 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중단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즉 내란주동자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경우 비록 범죄는 성립했지만 공소시효는 정당한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한 이후부터 비로소 진행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특히 5·18사건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현행법에 따라 법원이 시효기산점을 비상계엄해제일인 81년 1월24일로 인정했으므로 부담이 없다는 입장이다.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소의 차이점/법원만이 신청 가능­위헌심판/사건 당사자가 청구­헌법소원 위헌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은 어떻게 다른가. 우선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법원만이 할수 있다.헌법 제111조는 법률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때에는 법원이 직권 또는 사건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를 제청,헌재의 심판에 따라 재판하도록 하고 있다.「재판의 전제가 된 때」의 재판에는 영장 심사도 포함된다는 것이 헌재의 판례다.전씨측이 지난 17일 장세동·최세창씨등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위헌제청신청서를 낸 것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또한 법률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됐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 일반적으로 재판이 중지된다. 따라서 전씨측은 앞으로 5·18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 재판의 전제가 되면 특별법이 위헌이라든가 5·18 사건의 공소 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다시 담당 재판부에 위헌제청 신청서를 낼 수 있다. 헌법소원은 법원이 아닌 사건 당사자가 직접 헌법재판소에 낸다는 점에서 위헌제청과 다르다.또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헌법소원이 제기되더라도 재판은 중지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법 68조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또는 위헌여부 심판의 제청 신청이 법원에 의해 기각된 때에는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전씨측이 지난 20일 낸 「검사의 공소권 행사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는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한 것이다.전씨 주장에 따르면 12·12 및 5·18 재수사 및 공소 제기는 「공권력의 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것이 된다.또한 전씨측은 5·18로 기소된 뒤 재판부가 5·18 특별법 등에 대해 위헌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이 조항을 근거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 전·노씨 오늘 기소/검찰/내란 혐의… 유학성씨 등 6명도

    ◎나머지 관련자 헌재결정뒤 처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은 22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등 5·18사건 관련자 8명을 내란 등 혐의로 23일 하오 기소한다. 구속 기소자는 전·노씨를 비롯,5·18당시 3군사령관 유학성,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육군참모차장 황영시씨 등이며 불구속기소자는 계엄사령관 이희성,국방부장관 주영복,육군사관학교장 차규헌씨 등이다. 검찰은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20사단장 박준병,보안사령관비서실장 허화평,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씨 등 현역의원 4명은 임시국회가 끝나는대로 사법처리키로 했다. 검찰은 나머지 5·18 피고소·고발인들에 대한 사법처리 방향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5·18특별법 등에 대한 위헌여부를 결정한뒤 종합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힐 방침이다. 이본부장은 이와 관련,『전·노씨 등에 대한 공소장은 A4용지로 50∼60쪽에 이르며 12·12사건은 포함시키지 않았다』면서 『이들의 내란혐의에 대해 법리적인 설명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5·18관련자 내란 확인/특수부/전·노씨 등 공소장 작성

    12·12 및 5·18수사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1일 전두환전대통령 등 5·18 관련,구속 및 불구속 기소자들에 대한 공소장 작성작업을 벌였다. 검찰은 오는 23일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에 제출할 공소장을 통해 5·18사건은 전씨 등 신군부측이 80년 5월4일 시국수습방안이라는 집권시나리오를 미리 작성,이를 근거로 치밀하게 이루어진 내란이라고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광주현장조사의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주남마을에서 계엄군에 의해 학살된 양민들이 더 있다는 광주현지 목격자 등의 주장는 달리 당시 의무기록과 암매장장소 발굴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살된 양민 등의 사망자 수를 공소장에 추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시국수습방안에 따른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결의하는 배경,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임시국무회의가 열리는 과정,정권기반을 다지기 위한 언론통폐합 실행 등을 구체적으로 공소장에 담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광주현지에서 투입된 계엄군이 정식 명령계통과는 달리 별도로 신군부측에 의해 지휘되는 등 지휘체계가 이원화되었다는 사실도 포함시켰다. 검찰은 전씨등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등을 낸 것과 관련,검찰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조만간 헌재에 검찰의 의견서를 보내기로 했다.
  • 헌재 빠른 결정 기대한다(사설)

    여야 합의로 5·18특별법을 제정하게 된 것은 헌정파괴의 주모자들에 대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림으로써 쿠데타로 인한 민족의 비극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역사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시작한 과거청산의 과정은 적법하고 빠를수록 좋다.우리사회가 과거 비극적 사건으로 인한 갈등에서 빨리 벗어나 대화합의 전진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18특별법 위헌 제정신청이 수용됨에 따라 「12·12」 및 「5·18」사건 주모자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재판 일정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현실적으로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제청 심리를 빠른 시일내에 마무리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더라도 본격심리에서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까지 내리려면 최소한 2개월은 걸릴 것으로 보여 재판일정이 영향을 안받을 수 없다. 「12·12」 반란혐의 공소시효문제와 함께 특별법 자체의 위헌여부 제청은 충분히 예견되어 왔다.정치권이 좀더 정교하게 대처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법적 혼란은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정치권은 당초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 일부가 특별법제정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헌재의 결정 직전에 소원을 취하했었다.결국 이번에 12·12 반란혐의의 공소시효와 특별법의 위헌여부는 헌재의 판단을 받게돼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정치권이 당시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보고 대응해도 되는데도 서둘러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제 다시 헌재의 결정을 구하는 역순을 밟음으로써 오늘의 결과를 자초했다고 하겠다.검찰은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내란혐의를 22일까지 추가기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밖의 관련 불구속피의자에 대한 기소는 위헌제청 결정 이후로 미룰 수 밖에 없어 재판일정이 상당기간 미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는 헌재의 신속한 결정을 기대하며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대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지금 진행되고 있는 「5·18」처리는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법치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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