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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노씨 29일 구형/대검/전씨 사형·노씨 무기 예상

    12·12 및 5·18 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의 결심(구형) 공판이 빠르면 오는 29일 열린다. 대검 고위관계자는 12일 『이미 21차례나 진행된 이들 사건에 대한 재판이 앞으로 3차례 더 열린 뒤 29일의 25차 공판에서 구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29일 안되면 늦어도 8월1일에는 결심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전·노 피고인에 대해서는 12·12 및 5·18사건에다 비자금 사건을 병합해 구형을 할 방침이다. 전피고인에 대해서는 내란 및 반란수괴·뇌물수수 등의 혐의를 적용,사형구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노피고인도 반란 및 내란 중요임무종사·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을 구형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학성·황영시 피고인 등 나머지 14명에 대해서도 중형을 구형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담당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도 빠르면 다음 달 12일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박홍기 기자〉
  • 우국일씨,옛 상관 전씨에 깍듯이 인사/18차공판 이모저모

    ◎우씨,“신촌모임은 장성들 유인·격리한것”/이기창 변호사 일부신문 회견내용 부인 ○…12·12사건 당일 하오7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줄곧 함께 있었던 신현확 전 총리는 신군부측의 정승화 총장연행 재가요청과 관련,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최 전 대통령의 발언을 생생하게 진술. 최전대통령은 재가를 거절하면서 『이 친구들이(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 인사들을 지칭)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느냐』 『앞뒤가 바뀌었다.법을 무시하고 일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등 강하게 질책했다는 것. ○…이양우 변호사 등은 1시간여동안 계속된 신전총리에 대한 신문에서 『연행재가 과정에 압력과 강압은 없었다』는 등 피고인측에 유리한 진술을 이끌어낸 것을 상당한 성과로 평가. 신전총리는 『5·17비상계엄확대가 반드시 내란이라는 것은 아니다』 『정총장의 연행재가는 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과 충분히 의견을 나눈 끝에 결정한 것』 『대통령이 연행조사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며 다만 일종의 보류의사를 표명했다』고 진술하는 등 변호인의 신문에 긍정적으로 답변. 그러나 검찰신문에서는 『대통령은 불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재가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진술,신군부측의 행위가 위법임을 분명히 했다. ○…신전총리는 윤성민 전 육참차장,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등 신군부측에 대항한 육군본부측 인사들의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답변. 윤 전 육참차장이 전합수본부장으로부터 정총장연행을 통보받고 총리공관에 있던 신전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진술한 대목에 대해 신전총리는 『그런 전화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뒤집었다.또 『육본의 지휘계통이 수경사로 옮긴 것에 대해 보고받지 않았다』 『정총장의 연행뒤 육본측의 「진도개 하나」 발령도 통보받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등 신군부측에 유리하게 진술. ○…증인으로 출석할지 여부로 관심을 끌고 있는 최전대통령의 법률고문인 이기창 변호사가 모언론사와의 회견에서 『최전대통령이 12·12당시 정총장의 재가와 5·17계엄확대,그리고 하야때 신군부로부터 강압을 받지는 않았지만 신군부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 주목. 이변호사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측 모두 이변호사에게 진위를 파악하느라 한때 부산. 그러나 최전대통령으로부터 『내가 언제 신군부에게 속았다고 했느냐』고 질책을 받은 이변호사는 『「개인적으로 …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마치 최전대통령의 진술처럼 보도됐다』며 반론권을 통해 보도내용 대부분을 부인. ○…최광수 비서실장은 『최전대통령이 노태우 수경사령관을 불러 국보위 등 비상기구설치 불가방침을 전했다』는 검찰진술과 관련,변호인측의 잇단 사실확인 질문을 받고 『최대통령이 노피고인을 직접 불러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고 단언해 변호인측을 무색케 했다. 노피고인은 지난 공판에서 『비상기구설치와 관련해 최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었다. ○…우국일 전 보안사 참모장은 증인석에 앉기 전 옛 상관인 전피고인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예의를갖추었으나 정작 신문이 시작되자 가장 불리한 발언을 해 눈길. 그는 12·12당시 「신촌모임」을 가진 이유는 육본측 장성들을 유인,격리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전피고인이 합수본부장을 겸임하게 되자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강압적으로 받는 등 월권행위를 했다고 진술. ○…우참모장은 재판부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자신의 일기장 두권과 메모지 등에 나타난 기록과 검찰진술이 서로 다르다는 변호인단의 지적을 받고 『검찰진술이 맞다』고 해 한동안 변호인단과 설전.신촌모임이 시작된 시각이 기록에서는 하오7시로 돼 있으나 검찰에서는 이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고 진술했던 것. 그는 『신촌모임의 시각기록은 분명히 틀리지만 다른 사안의 시각을 기록한 메모는 정확하다』고 주장해 『신빙성을 어떻게 믿느냐』며 변호인단으로부터 세찬 공박을 받기도.
  • “시국수습안 보고때 전씨도 배석”/12·12 18차 공판

    ◎신현확씨 “정 총장 연행때 질책” 12·12 및 5·18 사건 18차 공판이 1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12·12와 관련,신현확 당시 국무총리 등 5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최광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우국일 보안사 참모장,구정길 대통령 특별경호대장,백동림 합수부 수사1국장 등도 증인으로 출석했으나 백씨에 대한 신문은 다음 기일로 미뤄졌다. 증인신문에 앞서 5·18과 관련,이희성·주영복 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있었다. 신 전총리는 『개인적으로 12·12는 하극상이지만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내란으로는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검찰신문에서 『12·12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측 장성들이 정승화 육참총장 연행에 대한 사후재가를 요구하자 재가 없이 연행한 것은 위법이라고 질책했고 노여운 표정으로 책임자를 데려오라며 재가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신씨는 변호인 신문에서 『재가 요청 당시 신군부측 장성들의 강압과협박은 없었고 대통령의 거부는 재가 보류였다고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5·17에 대한 검찰측 신문에서 신씨는 『비상계엄 전국확대,비상기구 설치,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최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전두환 보안사령관도 배석했으며 최대통령은 비상기구 설치와 국회해산에 대해서는 사실상 재가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전피고인은 배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최광수씨는 『신군부가 최대통령이 비상기구 설치를 완강히 반대하는 바람에 대통령 자문보좌기구 형태로 국보위를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신·최씨는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이 최대통령의 하야를 권유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주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광주지역 작전은 관할 전교사령관의 지휘하에 이루어졌고 실탄 분배를 지시하거나 허가 요청을 받은 일이 없고 자위권발동을 지시하지도 않았다』며 5·18에 대한 직접 개입을 부인했다. 변호인단은 이 날 『주 2회 재판으로는 변호인단이 재판에 참여하는 의미가 없다』며 주1회 재판을 요구하는 공판기일 변경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박상렬 기자〉
  • 「12·12」 「5·18」 공판 중간 결산

    ◎신군부 정권장악과정 소상히 밝혀/참고인 5백여명… 수사기록 13만7천쪽/변호인 사실관계보다 명분 집착 지적도 역사적인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사실심리가 24일 마무리됐다. 지난 3월11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군사반란 및 내란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이후 1백여일 만이다. 국내외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 이 재판은 그동안 7차례에 걸친 검찰의 직접신문과 9차례의 변호인 반대신문으로 숨가쁘게 진행돼 왔다. 이 날 16차 공판을 통해 전·노피고인을 비롯,16명의 피고인에 대한 사실심리가 끝나므로 사실상 이번 재판의 승패도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가름됐다. 법조계에서는 전체적으로 반란 및 내란혐의가 공판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나 피고인들이 법정 최고형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토대로 신군부측의 군권찬탈과 정권장악의 의도 및 과정을 집요하게 추궁,상당한 성과를 얻었다고 자평한다.그동안 5백여명에 이른 참고인 조사를 통해 13만7천쪽의 방대한 수사자료를작성,공소유지에 전력투구해 왔다. 변호인측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10·26사건 연루와 80년초의 혼란한 시국상황 등 상황논리 전개에 주력하므로 사실관계보다는 명분에 집착했다는 지적이다.공소사실 불특정을 이유로 5·18 부분에 대한 공소기각을 요청하는 등 공세를 폈는가 하면,주 2회 재판을 문제 삼아 법정퇴장 등의 지연전술을 펴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조속한 단죄를 희망하는 여론에 힘입어 재판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했으나 3차례에 걸친 파행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번 재판이 사실심리를 마치므로 앞으로 증인신문과 검찰의 구형,1심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그동안의 공판 과정에서 양측은 쟁점을 두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섰다. 12·12사건의 경우,▲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성격 ▲정참모총장 연행과정 및 재가의 합법성 여부 ▲병력출동의 불법성 여부가 쟁점이었다. 5·17사건에서는 ▲시국수습방안의 실체 및 성격 ▲비상계엄 확대를 결의한 국무회의장 무력봉쇄 ▲국회해산과 정치인 숙정 ▲국보위 설치및 성격 ▲최규하 대통령 하야 ▲언론통폐합 등을 놓고 설전을 주고받았다. 5·18사건은 ▲광주 병력출동 경위 ▲「자위권 발동」 경위 ▲양민학살 과정 ▲지휘권 이원화 여부 등이 핵심이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공방에 대한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다음 달 중순쯤 내릴 예정이다.〈박선화 기자〉
  • 최 전 대통령 법정 출두 “초읽기”/오늘 공판서 증인채택 결정

    ◎“「12·12」 규명 열쇠” 검찰·변호인 모두 원해/최씨 자발적 출두·강제구인 여부 등 관심 12·12 사건의 증인은 누가 될까. 초미의 관심사인 최규하 전대통령의 법정 출두가 초읽기에 들어갔다.증언 내용도 주목의 대상이지만 생존한 전직 대통령 3명 모두가 한 법정에 선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20일 열리는 12·12사건 15차 공판에선 증거조사를 거쳐 관련 증인들을 재판부가 채택한다. 검찰은 이 사건의 증인신청자로 A·B·C 3가지 방안을 마련해 놓았다. 공판에서 드러난 쟁점의 진실을 가리고 변호인의 증거 동의여부를 봐가며 신축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수사기록 13만7천여쪽에 등장한 인물은 무려 5백명을 훨씬 웃돈다. 검찰은 A단계 증인으로 50여명을 압축해 놓았다.변호인측이 사건의 본질과 상관 없이 시시콜콜한 진술에까지 매달릴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B단계는 20여명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으로,가능성이 가장 높다. C단계는 신속한 재판진행과 쟁점을 가리는데 꼭 필요한 10명 정도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방안이다. 어느단계든 증언이 꼭 필요한 사람은 10명선이다.최 전대통령과 당시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장태완 수경사령관,노재현 국방부장관,윤성민 육군참모차장,권정달 보안사정보처장,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김진기 육본 헌병감,신현확 전 국무총리,이건영 3군사령관 등이다. 핵심쟁점인 정총장 연행에 대한 대통령 재가의 합법성,지휘체계 유지,병력출동 상황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변호인측은 검찰의 허를 찌를 증인을 천천히 신청한다는 생각이다. 최 전대통령은 12·12 쿠데타 뿐만 아니라 5·17 내란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마스터키」이다. 당연히 최 전대통령의 증인채택은 불가피한 실정이다.검찰과 변호인측 모두 증인으로 원하기 때문이다.재판부도 증인신청을 받아들인다는 자세다. 증인채택시 최전대통령의 법정출두 역시 관심거리다.재판부의 출두요구에 순순히 응할지,아니면 구인 형식으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출두하더라도 묵비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최전대통령이 예의 소신을 견지할지 주목된다.검찰이 조사하러 방문했을때는 『전직대통령은 항룡(천상의 최고까지 올라간 용)으로 말을 하지 않는게 원칙』이라며 진술을 거부했었다. 최 전대통령의 증언이 대세를 가름하는 고비가 될 것은 분명하다.〈박선화 기자〉
  • 이순자씨,전씨 공판 첫 방청/12차공판 이모저모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12차 공판이 열린 10일 서울지법 주변은 마침 「6·10 항쟁」 기념일과 겹쳐서 그런지 평소보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으나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공판에는 처음으로 전두환피고인의 부인 이순자씨가 방청석에 나와 안팎의 시선이 집중.베이지색 바지 정장 차림에 금테 안경을 쓴 이씨는 공판 시작 15분전인 상오 9시45분쯤 장남 재국씨와 함께 417호 대법정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뒤 법정 안으로 직행.이씨는 방청석에 앉아 아들과 귀엣말을 나누기도 했으나 주위의 시선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은 채 재판정을 정면으로 응시. ○…이씨는 상오 10시 개정에 맞춰 김영일 재판장이 전피고인의 입정을 호명했으나 20여초가 지나도 피고인이 입정하지 않자 자리에서 목을 길게 빼고 피고인들이 입정하는 문에 시선을 고정. 잠시 뒤 전피고인이 입정하자 이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전피고인에게 눈길을 주었으며 전씨도 잠시 방청석 쪽을 바라보다 피고인석에 착석. 이씨는 상오 공판이 끝난 뒤 경호원들의 경호 속에 법정을 떠나며 기자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 ○…법정 주변은 궂은 날씨에 아랑곳없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방청권을 얻으러 나와 눈길. 공판이 장기화되면서 이 날도 일반인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으나 5·18 관련단체 및 재야 운동권 관계자들은 평소보다 10여명 많은 30여명이나 눈에 띄었다. ○…전피고인에 대한 이양우 변호사의 변호인 반대신문이 50여분간 진행된 상오 10시50분쯤 김재판장이 이변호사의 목소리 크기를 문제삼아 신문이 잠시 중단되는 해프닝을 연출. 김재판장은 이변호사가 웅변조로 계속 강변하자 『목소리를 좀 낮춰달라』며 2차례 요청했고 이변호사는 이에 대해 『목소리가 본래 크다』고 대답한 뒤 목소리를 낮춰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이변호사는 80년 당시 국보위의 활동을 현 대통령 자문보좌기구인 세계화추진위원회(세추위)와 비교하는 등 궤변을 구사. 그는 『검찰의 주장대로 전피고인이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서 공무원 숙정 등 월권행위를 했다면 현 정권내의 세추위가 법조개혁을 추진한 것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느냐』며 당시 전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다 재판부의 제지를 받기도. ○…전피고인은 『언론인 해직 등 언론계 정화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서도 당시 해직된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언급,「사후약방문」격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그는 애써 착잡한 목소리로 『당시에는 몰랐으나 88년 청문회때 피해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며 『뒤늦게나마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후회. ○…이변호사는 하오 속개된 공판에서 『보안사 권정달 정보처장이 시국 수습방안의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왜 검찰이 그를 내란혐의로 기소하지 않았느냐』고 항변. 권씨는 「정상참작」 등의 이유로 12·12사건은 기소유예,5·17사건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리됐었다. 한편 검찰은 변호인이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이 사건의 수사 및 공소제기의 책임자」가 「국보위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자 『점잖치 못한 처사』라며 몹시 못마땅해 했다.〈박상렬·조현석·박현진 기자〉
  • 뉘우침 없이 “정치 보복” 들먹/전씨,현정부 강도 높게 비판

    ◎“신한국당의 모체는 5공때 민정당” 강변/국보위 참여 많은 인사들 지금도 활동중 전두환피고인이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단순히 법정에 섰다는 불만의 표출 수준을 넘어,현정권에 대한 도전 의사로까지 비쳐진다. 10일 변호인의 반대신문 과정에서 전피고인이 터뜨린 「감정」은 예닐곱 가지로 나타났다. 먼저 현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 개혁작업을 자신이 집권한 80년 9월초에 시도한 국정의 쇄신 및 개혁작업에 빗댔다.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면 국정방향에 따라 당연히 하는 게 개혁작업이며 그것이 정치현실이라고 주장했다.『그때처럼 현 정부도 출범초기 재산축적에 의혹이 있는 국회의원을 사퇴시키고,숙정작업을 통해 수많은 공무원을 사퇴케 하는 등의 개혁작업을 했다』고 지적했다.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은 자신이 창당한 민정당이 모체라고 주장했다.지난 90년 1월 당시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구국의 영단으로 합당해 민자당이 됐기 때문에 이를 이어받은 신한국당의 산실이 민정당이란 논리다. 민정당은지난 80년 10월16일 대통령이던 전피고인이 보안사의 권정달 정보처장을 전역시킨 뒤 처음 창당을 지시,이듬해 1월15일 창당됐었다. 전피고인은 국보위의 합법성과 관련,당시 참여한 인사들이 현 정부에서도 활동 중인 사실을 들어 이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라고 비난했다.대표적으로 정경식 헌재재판관,최환 서울지검장,신한국당의 한승수·한리헌의원 등을 거론했다. 특히 12·12 및 5·18사건의 수사와 공소제기의 책임자(최환 검사장을 지칭)는 국보위 내무분과위원으로 참여,많은 업무를 추진했으나 이를 현재 국헌문란행위라고 기소한 만큼 자신이 참여한 행위가 어떠한 이유로 정당한지 마땅히 해명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쏘았다. 국민투표를 통해 탄생한 5공의 정통성과 연계,자신을 처벌하려면 국민투표로 처벌의 가부를 물어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5공을 용인한 국민의 의사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처벌하는 것은 국민이 그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는 것이라며 현 정권을 간접 비판했다. 전씨는현정부의 「과거 역사의 청산」 「역사 바로 세우기」작업에 대해 『전 시대에 대한 정치보복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씨의 이러한 주장은 5·17 내란사건의 혐의에 대한 「물타기」 작전으로 풀이된다.〈박선화 기자〉
  • 「12·12­5·18」12차 공판

    ◎전씨­“「노 대통령 당선」으로 5·18 용인 나를 처벌하려면 국민투표해야” 전두환 피고인은 최규하 전 대통령의 하야의사를 지난 80년8월1일 최대통령으로부터 처음 들은뒤 대통령직 승계제의를 받았으며 같은 달 4∼5일쯤 두번째 회동에서 제의를 수락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18·19면〉 지난 80년5월31일 국보위설치는 자신이 건의하자 최규하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려 이뤄진 것이라고 강변했다. 집권시나리오로 불리는 「시국수습방안」은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 독자적으로 구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피고인은 10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2·12 및 5·18사건의 12차공판에서 이같이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또 『현정부는 국보위의 설치와 운영을 내란행위로 기소하면서도 당시 업무를 추진한 인사를 청와대와 검찰,헌법재판소 등 요직에 임명하는 인사를 했다』며 『이는 현정부와 검찰이 내란행위로 기소한데 대한 스스로의 모순이며 과거청산이라는 이 사건 기소의 명분에 대해 가치관의 혼란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5공이 국민투표에 의해 승인되고 노피고인이 직선제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12·12 및 5·18사건에 대해 국민이 이를 용인하는 주권적 의사표시로 봐야한다』며 『따라서 자신을 처벌하려면 국민투표로 가부를 물어 국민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씨 지나친 안보논리에 눈살/「5·17」 첫 반대신문 이모저모

    ◎“당시 북한남침 막았기에 이런 재판도 열린것”/허화평씨,국회선서 할수있게 구속정지 간청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관한 첫 반대신문이 열린 3일의 11차 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은 시종일관 「안보논리」로 5·17조치의 정당성을 역설했다.12·12사건 반대신문은 이 날 상오 공판에서 모두 끝났다. ○…전피고인은 5·17사건 첫 반대신문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이건영 3군사령관 등 정승화계열의 장성들이 합수부의 조사과정에서 『정총장의 연행배경을 오해하고 12·12때 병력을 동원했다』고 진술해 관용을 베풀었다고 주장. 전피고인은 또 검찰측이 사용하는 「신군부」라는 용어는 지난 88년 5공 청산문제가 대두되면서 정치권이 만들어 낸 신조어라며 『신군부 세력이 12·12사건 이후에 군주도권을 장악한 뒤 내란을 주도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 ○…이양우 변호사는 극심한 학원소요 등으로 80년 5월의 시국상황은 「무정부 상태」로 치달았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정국과 사회가 안정돼 있었다』는 검찰측의 주장을반박. ○…전피고인은 80년 5월의 시국수습 방안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안보논리를 지나치게 강조,오버 페이스 했다는 지적이 일기도. 전피고인은 『당시 북괴의 남침을 막았기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고 말해,자신이 법정에 선 것과 자신의 과거 업적을 연결시키는 논리적인 비약도 전개. ○…피고인 중 유일하게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허화평피고인은 『오는 5일 국회개원식에서 선서를 할 수 있도록 2∼3일만이라도 풀어달라』고 재판부에 구속집행 정지를 간청. 허피고인의 변호인인 김재철 변호사도 『수십만의 지역주민들에 의해 선량으로 뽑혔는데 실제로 의정활동을 못하더라도 선서만큼은 하게 해 달라』고 거듭 요청. ○…장세동피고인은 반대신문에서 당시 직속상관이던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총장을 원색적인 용어로 싸잡아 비난. 장수경사령관의 경복궁 포격지시와 관련,『반란행위 이상의 정신이상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다』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정총장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기회주의자」,『총장의 직분에 걸맞지 않은 추한 모습을 보였다』고 극언. 장피고인은 특히 정총장을 겨냥해 『12·12사건의 원인제공자이며 검찰의 이중잣대와 헌재의 이중판결,5·18특별법의 소급입법 등 나라의 어리석은 꼴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맹공. 그러나 자신이 5공 청산과정과 신민당 창당방해 사건 등으로 세번 구속된 사실과 관련해서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느냐.결과적으로 역사의 발전과정으로 생각한다』고 변명. ○…이양우 변호사는 『5·17사건과 관련해 전피고인에 대한 신문항목은 8백∼9백여개』라며 4백여 항목이었던 12·12사건보다 곱절이 넘는다고 소개. ○…12·12 및 5·18사건 재판에 대한 관심이 공판횟수가 늘어날 수록 현격히 줄어드는 추세. 이날 상오 방청권을 배포한 서울지법 정문에는 5·18관련 재야단체 관계자 20여명만이 눈에 띄는 등 썰렁한 분위기.〈박은호·김성수·김상연 기자〉
  • “「5·17」최대통령 독자적 결단 국헌문란 내란행위아니다”/전씨

    ◎「12·12­5·18」 사건 11차공판 전두환 피고인은 지난 80년 5월17일 상오 10시 최규하대통령에게 보안사의 「시국수습 6개 방안」을 건의,최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승인했으나 국회해산은 보류토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5·17은 당시 시국상황을 인식한 최대통령이 독자적 결단에 따라 행한 정당한 국가행위라며 검찰이 주장한 국헌문란의 내란행위가 아니라고 반박했다.〈관련기사 20·21면〉 전피고인은 3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2·12 및 5·18사건 11차 공판에서 이같이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권정달피고인에게 시국수습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사실은 시인했으나,5·17 계엄확대는 당일 상오 최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얻었으며 국무회의에서 통과될 때까지 혼자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당일 낮 지휘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저녁 신현확 총리와 주영복 국방부장관,이희성 참모총장이 최대통령에게 건의,승인을 얻은뒤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시행됐다고 덧붙였다. 국보위 설치와 관련,79년 5월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시 행정과 사법업무를 함께 처리할 수 있는 비상기구의 설치를 이미 내락받았으며,5·17 이후 이에 따라 국보위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전피고인은 『79년 12월13일 육참총장에 이희성 대장이 임명된 것은 평소 깐깐한 성품을 아는 최대통령이 13일 새벽 정승화 총장의 연행을 재가하며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지시해 이뤄졌다』며 자신의 인사개입설을 부인했다. 이 날 재판에서는 12·12 사건과 관련,최세창·허화평·장세동·허삼수·신윤희·박종규피고인 등 6명에 대한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있었으나,이들 모두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오는 10일 상오 10시 5·17사건에 대한 12차 공판을 열기로 했다. 이어 13일에는 12·12사건에 관련된 13명의 피고인에 대한 증거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박선화 기자〉
  • 전씨 구속기간 연장/서울지법 별건 영장 발부… 최장 6개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12·12 및 5·18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29일 1심 구속시한이 다음 달 2일로 다가온 전두환피고인에 대해 직권으로 별건구속영장을 발부,구속기간을 최장 6개월 연장했다. 전피고인은 지난 해 12월3일 군형법의 반란수괴 혐의로 구속됐으나 이 날 뇌물수수 및 내란혐의 등이 추가로 적용돼 구속기간이 연장됐다. 재판부는 『전피고인이 풀려나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므로 재판부 직권으로 구속기간을 연장한다』고 밝혔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검찰이 구속된 피의자에 대해 다른 혐의를 추가해 기소하면 재판부가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지난 9일 노태우·이현우피고인에 대해서도 별건 영장을 발부했었다. 한편 재판부는 허화평피고인이 지난 18일 냈던 보석신청에 대해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박은호 기자〉
  • 허화평 피고인 보석신청 기각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29일 12·12 및 5·18 사건과 관련,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허화평피고인이 낸 보석신청을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박상렬 기자〉
  • 변호인 “진행 협조”… 재판부에 유화 제스처/공판 이모저모

    ◎전씨 “12·12상황 다시 벌어져도 정 총장 연행”/노씨 “87년 대선때 「12·12」 국민심판 받았다” 12·12 및 5·18사건의 공판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주중에 열린 제9차 공판은 예상과 달리 순조롭게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진행됐다. ○…지난 20일 8차 공판에서 야간재판을 거부,퇴장하는 등 재판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던 변호인단은 이 날 『원만한 진행에 협조하겠다』며 재판부에 유화 제스처. 이양우 변호사는 신문에 앞서 『변론권의 적절한 행사와 피고인의 인권옹호 측면을 감안해 가급적 주 1회 공판을 지켜주시고 야간신문을 자제해 달라』고 공손하게 말한 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등 한결 부드러워졌다. ○…변호인측의 한 관계자는 『어제 재판부와 만나 재판진행 방식에 대한 서로의 오해를 충분히 풀었다』며 『재판이 물 흐르듯 잘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 특히 이 변호사는 상오 재판에서 1백23문항을 신문,8차공판 상오에 진행된 53문항보다 두배 이상의 속도를 냈다. ○…평소 「칼같은」 재판진행을 자랑하는 김영일 재판장은 피고인들의 입정 때 순서를 바꾸어 호명하는 등 두어차례 실수.박종규 피고인의 입정을 명하면서 박준병 피고인이라고 잘못 부른데 이어 입정순서가 4번째인 황영시피고인의 이름을 맨 나중에 호명. 김부장판사는 피고인 대기실에 황피고인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법정경위가 이를 알려주자 멋적은 웃음을 띠며 황피고인의 입정을 지시. ○…변호인단은 김재규의 내란사건에 정승화 육참총장이 연루됐음을 주장하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고대 로마의 「시저 암살사건」에 비유.시해 직후 군부에서는 김재규를,시저를 암살한 부르터스에 비유하며 천하의 패륜아·반역자로 지칭했다고. ○…변호인측은 공판에 앞서 8차 공판당시 배포했던 전두환 피고인의 반대신문 내용의 문구를 일부 고친 수정본을 배포.그러나 기존의 문항수(4백28문항)보다 15문항이나 늘어나자 일각에서는 『또 다른 재판지연책』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수정본은 내용의 추가나 변경은 전혀 없이 기존의 신문을 2∼3문항으로 쪼개거나 여러 신문사항을 묶어 다시 되묻는형식으로 고쳐진 정도다. ○…신군부측이 기술한 「5공전사」가 검찰의 수사 참고자료로 이용돼 피고인들의 발목을 잡은 것처럼 변호인단은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의 「12·12쿠데타와 나」라는 자서전을 인용해 장 수경사령관 등이 반란군이었음을 주장. 이변호사는 당시 윤성민 육참차장이 30경비단에 대한 공격명령을 제지하자 『나보고 가만히 앉아있으란 말이냐.이제 당신들(윤차장 등 육본측 장성)마음대로 하라』는 등의 문구를 들며 이러한 행위는 명백한 하극상이며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전피고인도 『자서전을 읽어보았다』고 진술. ○…전피고인은 변호인의 신문에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거나 군사적인 지식을 활용해 상황을 설명하는 등 적극적인 변론.특히 장 수경사령관의 『총장공관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살하라』는 공격명령과 관련,이 지역에는 국방·외무장관과 합참의장·육참총장·해병대 사령관의 공관이 있어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은 위법한 조치라고 주장. ○…노태우피고인은 하오 5시를 넘어 시작된 반대신문에서 12·12 당시9사단 29연대가 전방을 이탈했지만 1개 예비연대가 후방으로 빠지더라도 방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그는 『결과적으로도 휴전선 경비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1개 연대병력이 이탈했다고 해서 북한이 남침할 정도로 국방태세가 취약하지는 않다』며 12·12당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전피고인은 『12·12와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을 받고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하겠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대답.그러나 『다만 12·12사건 과정에서 불행을 당한 분들에 대해서는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부연. ○…노피고인은 반대신문 말미에 『지난 87년 대선때 12·12사건이 선거이슈로 다뤄져 국민의 심판을 받고 대통령에 당선됐었다』며 『그런데도 다시 이 자리에서 같은 문제가 거론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 노피고인은 12·12사건 당시 30경비단을 떠나 부대로 복귀하는 최세창 여단장 등과 헤어질때 『(육본측에)잡혀죽을 지도 모르니 사별하는 심정이었다』고 했던 검찰 직접신문때의 진술은 착각으로 잘못 답변한 것이라고 정정. ○…김부장판사는 지난 8차공판때 야간재판을 열어 변호인단이 퇴정하는 등 파행을 빚은 것과 관련,『앞으로 저녁식사후의 야간재판은 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주2회 공판이 적절하다고 판단할때는 열 수 있다』고 설명. 이는 변호인 반대신문 분량이 많거나 신문을 느리게 진행돼 재판의 효율성이 침해될때는 언제든지 2회공판을 강행하겠다는 경고성발언이라는 평.
  • 전씨 “김재규 「혁명계획」 자백”/「12·12」 「5·18」공판

    ◎시해현장 정 총장 부른것도 계획적/변호인단 「야간재판 거부」 퇴정… 재판 중단 12·12 및 5·18 사건의 8차 공판이 20일 하오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변호인단의 첫 반대 신문이 진행됐다. 공판은 3차례의 휴정을 거쳐 하오 8시40분 속개됐으나 전상석·석진강 변호사 등 변호인단이 밤 늦게까지 강행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신문을 거부하고 퇴정,하오 9시10분쯤 중단됐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이 공판을 거부하자 앞으로 1주일에 2차례 공판을 열기로 결정했다.이에 따라 9차 공판은 오는 23일 상오 10시에 열린다. 전피고인은 『당시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가 있어 취해진 합법적인 조치였다』며 군사반란과 관련한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또 정총장은 계엄확대 회의에서도 김재규를 구명하기 위해 『박대통령의 서거는 불행이 아니며,체제가 잘못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김재규가 정총장을 시해현장에 참여시켰던 것은 3단계 혁명계획 가운데 첫 단계라고 자백했다고 진술했다. 신군부의 병력 출동에 대해서도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정총장 계열의 육본 장성들이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고 무장병력을 동원해 청와대를 포위하는 등 먼저 반란행위를 주도했기 때문』이라며 『장수경 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은 12·12 직후 수경사 병력을 동원해 최대통령을 총리공관에서 수경사로 납치하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정총장은 박대통령 시해사건 수사 과정에서 최대통령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군 검찰에 지시,당시 검찰관이 본인을 찾아와 정사령관의 지시를 전하고 협조를 요청했다』며 최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합수부와는 무관하게 육본에 의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반대신문에 앞서 「공소장변경요구와 재석명 요구서」를 통해 『내란죄 구성요건으로서 폭동은 비상계엄확대 선포로 종료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검찰이 내란의 종료시점을 비상계엄이 해제될 때까지로연장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황진선 기자〉
  • 「12·12」 「5·18」 8차공판­변호인·검찰 재판기일 다툼

    ◎재판 “지연”­“속결” 싸고 신경전/전씨 신문항목 검찰의 1.5배 준비­변호인측/“변호인측 장기전땐 미공개사실 발표”­검찰측 20일 열린 12·12 및 5·18 사건의 8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재판을 장기화하려는 뜻을 분명히 했다.첫 야간 공판을 거부하고 일부 변호인이 퇴정했다. 자연 검찰과 변호인단의 대결 양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재판부도 변호인단의 야간재판 거부에 처음으로 주 2회 재판을 하겠다고 나섰다. 변호인단은 이 날 전두환 피고인에 대해 4백28개의 반대신문 문항을 준비했다.검찰의 직접신문 2백80 문항보다 1.5배나 된다.노태우 피고인을 제외한 다른 피고인에 대한 신문서는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17쪽에 이르는 공소사실 재석명 요구서를 25분동안 낭독했다.재판부에 대해서는 반대신문을 최대한 보장하라고 강경하게 요구했다. 변호인단의 1차 목표는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없는 8명의 피고인의 구속만기일까지 재판을 끌겠다는 것 같다.반대신문을 최대한 늘림으로써 하고 싶은 말을 다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 사건을 빼고 12·12 및 5·18 사건으로 구속된 피고인은 모두 12명이다.이들 가운데 단일사건으로 기소돼,별건 영장으로 구속기간 연장이 불가능한 피고인은 유학성·황영시·이학봉·박준병·최세창·장세동피고인 등 6명이다. 유·황·이피고인은 7월19일,박·최·장 피고인은 8월21일이 구속만기일이다. 변호인들은 이 날도 12·12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의 당위성,군 지휘체계의 붕괴와 정총장측 장성들의 「불법적」인 군대 동원을 부각시키려 애썼다.5·17 내란에 대해서는 「불안정한 시국을 수습하기 위한 합법적 조치」,5·18은 「폭동 진압과정에서의 우발적 충돌」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폈다. 반면 검찰은 구속기간 연장이 불가능한 피고인 6명이 풀려나기 전에 1차 공판을 마치려고 애쓴다. 이미 재판부에 주 2회 재판과 심야 재판의 상례화를 요청해 놓았다.쓸데없는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석명요구 및 증거보강 등 변호인단의 웬만한 요구는 거의 다 들어주고 있다. 변호인단이 지구전으로 나가면 미공개 사실을 추가로밝히는 등 파상공세를 펴,재판을 오래 끌면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재판부는 감정표현을 자제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변호인단의 신문지연 움직임을 별로 제지하지 않았다.그러나 공정한 재판의 보장이라는 원칙 때문이지,신속한 재판이라는 당초 방침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이 길어지면 공판시간을 늦추고,그래도 미흡하면 수시로 주 2회 재판도 강행할 방침이다. 이 날도 하오 9시10분쯤 야간공판을 변호인단이 거부하자 주 2회 재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공판기일 중간중간에 증거조사를 진행하고 증인신문도 가급적 빨리 끝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재판부나 검찰 모두 법리논쟁은 가급적 피한다는 입장이다.그럴 경우 재판만 늦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변호인 반대신문이 아무리 길어지더라도 4∼5차례 공판이면 끝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박상렬 기자〉
  • 내란방조 유죄 재심 정승화씨 청구 수용/서울지법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전봉진 부장판사)는 1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김재규의 내란음모에 방조했다는 혐의로 군사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당시 신군부측이 주도한 12·12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로 군사반란임이 드러나,현재 재판에 계류돼 있는 등 정씨의 내란방조죄에 대한 유죄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가 확보됐으므로 재심청구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 노씨 구속 6개월 연장/서울지검,이현우씨도

    12·12 및 5·18 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지법 형사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9일 오는 15일 1차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군사반란 중요임무 종사죄 및 내란 등의 혐의로 새로이 구속영장을 발부,구속기간을 6개월 연장했다. 재판부는 또 노 전대통령과 함께 구속돼 오는 16일 1차 구속기한이 만료되는 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에 대해서도 뇌물 방조혐의로 새로운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따라 노 전대통령과 이씨의 구속기간은 오는 11월15일과 11월16일까지로 연장됐다. 이번 구속영장 발부는 1차 구속기한 6개월이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비자금 사건과 12·12 및 5·18 사건의 재판이 끝나지 않아 재판부의 직권으로 이뤄진 것이다.〈박상렬 기자〉
  • 계엄군 발포경위에 피고인 모두 발뺌/마지막 직접신문 이모저모

    ◎전씨 공판대비 구치소서 열심히 “공부” 12·12 및 5·18사건을 검찰이 마지막으로 직접 신문한 7차 공판은 6차 공판때와는 달리 순조롭게 진행됐다.검찰은 전두환·황영시·주영복·이희성·정호용피고인 등 5명을 상대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경위 등에 초점을 맞춰 신문했으나 피고인들은 발뺌으로 일관했다. ○…정호용피고인은 검찰 신문 내용 대부분을 부인하면서 『검찰에서 진술한 참고인들을 증인으로 불러 대질신문해 달라』고 검찰에 역공. 정피고인은 광주에 투입된 공수여단의 지휘관들이 정식 지휘계통에 있던 소준렬 전교사 사령관을 제치고 자신에게 중요사항을 보고했다는 일선 지휘관들의 진술과 관련,『그런 사실이 없다』며 대질 신문을 요구. ○…주영복피고인은 『광주시위 진압결과 사망자가 생길 경우 자살하려 했다』는 검찰에서의 진술을 바꿔 『그런 적이 없었다』고 부인. 주피고인은 이어 『전혀 진술하지 않은 내용이 검찰 조서에 들어있어 변호인단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공박. ○…전피고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당시 계엄군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경위 등 검찰의 신문내용 일체를 부인. 전피고인은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경고문은 당시 정도영 보안처장이 계엄군측에 건네준 게 아니냐』는 거듭된 검찰신문에 『아니라고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대답. ○…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이던 이희성피고인은 12·12 사건 이튿날 전피고인으로부터 「육참총장 이희성」이라고 적힌 쪽지를 건네받았으나 『누구 마음대로 총장을 임명하느냐』고 질책했다고 답변. 이피고인은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 조치와 관련,『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사변,적의 포위공격이라는 계엄확대의 요건이 발생한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물음에 『없었다』고 짤막하게 말해 부당하게 계엄을 확대한 사실을 시인.또 보안사에서 기안한 계엄포고령 10호로 모든 정치활동이 중단된데 대해서는 『잘못된 겁니다』라고 분명하게 인정. ○…전피고인은 최근 5·18 공판에 대비해 5·18 사건을 재구성하는 등 「공부」에 열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피고인은 이 과정에서 『계엄군이 반란군으로 규정되고 시위를 조속하게 진압하기 위해 강경하게 대처한 것이 왜 내란죄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전언. ○…검찰은 이날 『신속한 재판진행을 바라는 국민정서』 등을 거론하며 재판부에 주2회 야간신문을 요구한 반면 변호인단은 『신속성보다는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치밀성이 더 요구된다』고 각각 반대 주장을 피력. 재판부는 이와 관련,『검찰신문에서 피고인들이 변소를 많이 했다』며 『변호인의 신문사항이 많을 경우 「적절한」 시간을 마련하겠다』고 답변,야간에도 재판을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변호인 반대신문 첫 기일이 2주뒤인 오는 20일로 잡히자 변호인단은 『인민재판을 하려는 것이냐』며 강력 반발. 한 변호인은 『재판부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재판일정을 잡았다』며 『검찰 수사기록 1장을 읽는데 30초가 걸린다고 쳐도 4개월 반이 필요한데 해도 너무하는 처사』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박은호·강충식·이지운 기자〉
  • 「12·12」·「5·18」 7차 공판­쟁점과 전망

    ◎“내란목적”·“정상계엄업무” 공방/검찰 “공소사실유지 진술 확보” 자신감/공판일정 순조… 8월초 1심선고 가능 5·18사건의 7차 공판은 예상 밖으로 차분하게 진행됐다.전두환 피고인 등 5명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순조롭게 끝났다. 지난 달 29일 6차 공판에서 일어난 재판중단의 후유증을 지켜본 재판부·검찰·변호인단 등 법조 3륜이 자제한 덕분이었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전은 공소장 변경건과 핵심사항에 대한 신문내용 두 가지로 펼쳐졌다. 하지만 공소장 변경을 둘러싼 신경전은 미미했다.검찰이 서류를 첨부해 설명하자,변호인은 석명요청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검찰 신문의 강도와 예리함이 다소 떨어진 탓인지 피고인과의 감정 싸움은 거의 없었다. 반면 쟁점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검찰은 전피고인을 상대로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를 집중 추궁했다.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초기진압을 시작으로 계엄군 증파,윤흥정 전투교육사령관의 교체,발포 개시,자위권 발동,유혈사태,시위대 재진압 과정 등에 사실상 개입하고 지시하거나 압력을 넣었는지를 신문했다. 하지만 광주 희생의 구체적 사례를 뭉뚱거려 묻는가 하면,발포지시 여부에 대해서도 직접 화법으로 신문하지 않았다.이례적이었다. 전피고인은 『당시 정보책임자로서 계엄사가 행한 작전상황에 대해서는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당시의 진압은 최규하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국방부장관,계엄사령관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영시·주영복·이희성·정호용 피고인은 「유혈진압 과정은 정권장악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 방안의 일환」이라는 검찰의 추궁에 정상적인 계엄업무였다고 맞섰다. 검찰은 이 날까지 공판에서 공소사실의 유지에 충분한 진술을 얻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전·이피고인이 명목상 발포 책임자」라고 발표했던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할만한 새로운 내용을 밝혀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로써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은 끝났다. 앞으로는 변호인의 자료검토 시간 1∼2주와 1차 구속 만기자를별건으로 구속할지 여부,변호인의 반대신문 5∼7차례,증거조사 절차가 남아있다. 이 날의 공판 속도를 감안하면,남은 일정도 순항이 예상돼 늦어도 8월까지는 1심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박선화 기자〉
  • 발포관련「전씨역할」집중 추궁/오늘「5·18」7차공판…주요 쟁점은

    ◎검찰,사전각본 입증 주력/변호인단 “공소사실 불명확” 입장 정리 6일 열리는 5·18사건의 7차 공판은 12·12 및 5·18사건의 승패를 가르는 고비가 될 전망이다. 지난 3월11일 첫 공판이 열린 이래 검찰과 변호인단의 법정 공방은 6차 공판에 이어 이날 재판이 최대 승부가 이뤄진다.최대 쟁점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날엔 5·18사건,즉 광주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이뤄진다.검찰로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등 피고인들의 내란목적 살인을 추궁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다. 12·12와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등에 대해서는 지난 달 29일 6차 공판에서 신문을 모두 마쳤다. 검찰은 이날 5·18 광주 진압이 신군부측의 집권의도에서 비롯된 내란목적 살인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계획이다.특히 계엄군이 자위권 발동을 천명한 뒤 무장병력을 광주에 다시 들여보내 양민을 학살한 행위는 신군부의 치밀한 사전계획이라는 점을 입증하는데 주력키로 했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계엄사의 자위권 발동과 육본지휘권의 2원화 여부 및 발포명령이 내려지기까지 당시 실질적 1인자였던 전피고인의 역할이다. 변호인측은 이번 재판을 앞두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6공의 국회 청문회 이후 수년동안 5·18문제를 연구해 왔다고 밝힌다. 5·18사건은 비자금이나 12·12 및 5·17사건과는 판이하게 다르다.수많은 인명살상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는 결정적 사건이다. 변호인들이 지난 6차 공판시 자칫 「재판거부」로 비춰지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5·18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을 막은 것도 이때문이다. 전씨측 변호인단은 5일 하오에도 서울시내 모처에 모여 공판대책을 숙의했다.5·18에 대해서만큼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확고히 했다. 당초부터 범죄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양우 변호사는 『내란목적 살인임을 주장하려면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발포 명령자가 전두환이라고 적시해야 할 것』이라며 『발포 명령자를 밝히지 않은 것은 공소장 작성의 기초를 무시한 것』이라고 공소사실의 불명확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변호인단의 주장과 관련,검찰은 『범죄행위의 일시나 장소 등 외에 변경할 내용이 별로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지난 재판때 제출한 석명서 3쪽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이같은 양측의 주장 외에도 지난 1∼2일 검찰이 전씨 자택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박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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