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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계동 민주당의원/고대 22년만에 졸업(조약돌)

    ○…민주당 박계동의원(41·사진·서울 강서갑)이 25일 93학년도 고려대 후기졸업식에서 지난 72년 정외과에 입학한지 22년만에 졸업했다. 박의원은 75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1차 제적됐으며 그후 80년 복학했으나 그해 이른바 김대중내란 음모사건으로 2차 제적된 후 올 4월 교육부의 제적생 복학조치에 따라 재복학했었다.
  • PKO여성요원(외언내언)

    지난해 소말리아를 방문하여 굶주림에 허덕이는 어린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세계는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외치던 오드리 헵번의 모습은 참으로 애절했다. 그녀는 세계적 톱스타로 화려와 사치,그동안 쌓은 명성만으로 편안한 만년을 누릴수 있었으나 88년이후 베트남과 수단 에티오피아등 분쟁지역을 찾아 질병과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어린이들을 돌보는데 앞장서왔다.소말리아에 간것은 죽기 3개월전인 지난해 11월,대장암수술을 받은 직후여서 병색이 완연한 그녀가 안고있는 소말리아어린이는 그래서 더욱이나 처절하고 참담해보였다. 오드리 헵번외에도 소피아 로렌을 비롯,수많은 연예인들이 헐벗고 굶주린 소말리아 살리기 운동에 동참했고 소말리아 출신 패션모델인 압둘마지드는 영국 BBC방송이며 유선방송 CNN 등을 통해 시체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조국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유엔관리들과 미국의회의원들에게 알려 좀더 풍성한 구호의 손길이 뻗치기를 바라서다. 지구상에는 지금도 내란·내전 분쟁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다.어디선가 총탄이 퍼붓고 굶주린 생명이 덧없이 죽어간다. 제2차세계대전후 전쟁의 공포를 절감한 세계는 「단결」을 통한 평화를 위해 너도나도 의견을 함께 하면서 그 일환으로 PKO(평화유지활동)를 탄생시켰다. 우리도 지난 여름 오랜 내란으로 황폐화된 분쟁지역에 시설복구작업을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질수 있었다.또 그로인해 먼나라 얘기처럼 들리던 분쟁의 소용돌이가 눈앞의 현실임을 깨닫게 됐다. 이번엔 우리나라 여성인 송혜란씨가 유엔평화유지활동 전문요원으로 선발됐다는 뉴스다.전쟁의 초연이 가득한 현장에 뛰어들어 분쟁지역에서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을 맡게 된다고 한다. 세계평화유지를 위한 분쟁이나 사태악화를 방지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우리 여성이 맡게 된다는데 의미가 있다.그녀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 5·18최후수배자 윤한봉씨/12년 미 망명 청산 영주귀국(조약돌)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였던 윤한봉씨(46)가 17일 하오5시 대한항공 017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12년동안의 미국 망명생활을 끝내고 영구귀국했다. 윤씨는 지난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내란음모죄 등의 혐의로 수배를 받던중 81년4월 경남 마산에서 화물선을 타고 미국으로 망명,LA에서 민주화운동을 계속해오다 올해초 김영삼대통령의 5·18관련 특별담화발표이후 수배가 해제됐다.
  • 국방장관 2명­총장 5명 구속/6공 군수뇌부 수난

    ◎「12·12」관련 최세창·김진영씨도 “위태”/이양호 전공군총장은 합참 의장 “영전” 6공때 노태우전대통령이 임명한 국방부장관과 육·해·공군참모총장등 전직 군최고수뇌들이 무더기로 수난을 겪고 있다. 율곡사업 및 군인사비리로 이미 구속된 이상훈·이종구전국방장관,김종호·김철우전해군총장,정용후·한주석전공군총장등 6명 이외에 31일 이진삼전육군총장이 구속됨으로써 모두 7명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무려 28개의 별이 법정에 서게된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이종구전장관의 경우 육군총장까지 역임해 공교롭게도 국방장관 2명,육군총장 2명,해군총장 2명,공군총장 2명씩이 똑같은 운명을 맞이한 셈이다. 이날 구속된 이전총장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은 수뢰액이 모두 1억원을 넘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죄로 처벌받게 되는데 그들의 군경력 등을 감안해 작량감경(작양감경)을 하더라도 최저 5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노전대통령이 임명한 군최고 수뇌부는 11명으로 이 가운데 최세창전국방부장관등 3명만 화를 모면 했을 뿐이다.최전장관은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한뒤 개각때 권령해현장관에게 자리를 넘겨주었고 김진영전육군총장은 임기가 올 연말까지 남아 있어 유임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전격 경질됐었다. 최전장관과 김전총장은 당시 경질되지 않았더라도 「12·12」사태에 대한 책임과 관련,불명예퇴진 했을 것임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이들 2명도 이젠 안심 할 수만은 없게 됐다. 「12·12」사태 당시 신군부측에 지휘권을 박탈당했던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등 22명이 주동자 34명을 내란등의 혐의로 고소하면서 이들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최전장관은 사건당시 3공수여단장(준장),김전총장은 수경사33단장(대령)으로 거사에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됐던 이양호전총장만이 유일하게 현직에 남아 합참의장으로 영전,부러움을 사고 있다.
  • 소말리아에 평화심는 한국군(사설)

    소말리아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할 육군상록수부대 본대 1백90여명이 어제 장도에 올랐다.본대는 지난달 29일 출발한 선발대 60여명과 오늘 하오 소말리아 현지에서 합류하게 된다. 이번 소말리아파병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래 지난 64년 월남전과 91년 걸프전에 이어 세번째의 한국군 해외파병이다.그러나 유엔의 깃발아래 우리 군이 파병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그래서 이번 파병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더욱 각별한 것이다.국민들은 상록수부대가 현지에서 유엔회원국이 갖는 국제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며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우리는 40여년전 북한 김일성 집단의 남침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때 유엔군의 참전으로 나라와 자유를 지킬 수 있었다.또한 6·25의 폐허 속에서 오늘과 같은 경제발전을 가져온 것도 유엔의 원조가 밑바탕이 됐었다.이제 우리가 유엔의 일원으로 내란에 휩싸여 절망과 기아속에서 시달리는 소말리아에 파병,그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게된 것이다. 상록수부대는 앞으로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40㎞ 지점의 발라드에 주둔하면서 이 곳에서 북부 에티오피아 국경지대 근처의 벨레드웬까지 3백50㎞의 국도건설에 참여한다.이와함께 난민급수지원,우물파기,전기공사등 대민지원 활동도 벌이게 된다.한낮의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속에서 국가의 명예를 위해 분투할 장병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소말리아는 현재 유엔평화유지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12개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다.잠정정부가 있다고는 하지만 15개 무장세력간에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어 무정부상태나 다름없다.지난 12일엔 무장세력중 최대파벌인 아이디드파가 미군의 공습에 반발,무차별 보복행위로 맞서 외신기자가 피살되는등 한때 정세가 불안하기도 했다.지금은 모가디슈 시내 남부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평온을 되찾고 있으며 대부분의 시민들도 유엔의 활동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낙관이나 속단은 금물이다.유엔의 활동이라 해도 내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부대 숙영지를 요색화하는등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항상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해야할 것이다. 열대성기후로 장병들의 생활 역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그러나 소말리아의 조속한 평화정착과 국위선양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긍지를 갖고 극복해 나가야할 것이다.최선을 다해줄 것을 기대하고 당부한다.
  • 「12·12」관련자 수사착수/검찰/정승화씨 등 고소인 새달 환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지난 79년 12·12사건 당시 신군부세력에게 지휘권을 박탈당했던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장태완전수도경비사령관등 22명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등 34명을 내란 및 반란등 혐의로 고소해옴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관계자는 20일 『우선 대검으로부터 고소장등 관련자료를 넘겨받아 기록을 검토한 뒤 8월초 정전총장등 고소인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함께 12·12사건에 관한 국회 청문회 속기록을 입수해 당시상황에 관한 예비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12·12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접수된 고소·고발사건은 모두 7건에 이르고 있다.
  • “북 최후의 도박 핵전쟁”/홍콩 시사잡지 「아주주간」 보도

    ◎김일성 사망뒤 내란… 남침 전망 【홍콩 연합】 북한의 핵무기개발계획의 궁극의 목표는 한국이며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위협으로 미국과의 대화와 남북한대화에서의 유리한 지위확보등의 외교적 수확을 거두었다고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 「아주주간」 최신호가 14일 보도했다. 이 시사주간지는 김일성주석이 사망하면 북한은 필연적으로 권력투쟁에 휘말릴 것이라고 분석하고 이로인해 내란상황이 전개되거나 경제가 더욱 악화될 경우 북한은 마지막 도박으로 한국에 대해 핵전쟁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 무소신 판결 사례집/민변,주내 일반 공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대표간사 홍성우변호사)은 3일 일부소장판사의 사법부 개혁요구와 관련,지난 30여년간에 걸친 권위주의체제 아래서 내려진 이른바 「무소신판결」을 모은 사례집을 만들어 다음주중 공개할 계획이다. 민변은 이를 위해 오는 5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이같은 사례집 발간을 위한 실무자 5∼6명을 선정,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이 이미 지적한 「무소신판결」들을 모으기로 했다. 민변은 그러나 당시 이들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을 내린 이른바 「정치판사」들의 명단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집에는 ▲관련자들에게 무더기로 사형선고가 내려졌던 74년의 민청학련사건 ▲79년 당시 김영삼신민당총재의 직무정지가처분신청사건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90년 5공비리사건으로 구속된 전두환전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의 보석결정등 논란을 일으켰던 문제의 판결 30여건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이세중)도 민변과 사법부개혁을 위한 행동에 공동대처키로 하고 5일 소집되는 상임이사회에서대법원의 반박발언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한편 대법원은 5일 전체 대법관회의를 열고 서울민사지법 소장판사들의 사법부개혁에 대한 의견을 현재 마련중인 사법부개혁안에 대폭 수용키로 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변협에서 제기한 법원수뇌부들의 퇴진요구는 「사법권침해」로 규정,거론치 않키로 했다고 밝혔다.
  • 전직두대통령 고발 50대/취소 협박전화에 시달려

    ○…지난달 19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을 살인 및 내란혐의등으로 고발한 김광해씨(51·월간교통관광저널사장)는 29일 고발 이후 지금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음성의 같은 남자로부터 협박전화와 고발취소요구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 12·12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보좌관이었던 예비역 중령 김씨는 『까불지 마라.죽여버리겠다』 『고발을 취소하고 신문에 취소기사를 내라』는 등의 전화내용을 공개하면서 대신 국내외 동포로부터 1천5백건의 격려편지와 전화·축전을 받았다고 부연. 김씨는 『두 전직대통령이 12·12사태를 일으킨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면 언제든지 용서하고 고발을 취소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
  • 세계 난민 1,750만명/미 93년 보고서

    ◎작년 백만명 증가… 아프리카 1위/내란속 강제이주도 2천4백만 수십년동안의 냉전시대가 막을 내렸으나 각종 전쟁과 내란으로 인한 세계 전체의 난민수는 지난해 1백만명이 증가,모두 1천7백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난민위원회(USCR)는 19일 발간한 93년도 세계난민조사 보고서에서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캄보디아 난민 약 2백만명이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고국에 돌아갔으나 구유고연방의 내전 등으로 새롭게 발생한 난민들이 3백만명 이상에 달해 전제 난민수는 1백만명의 순수 증가를 보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파키스탄과 이란 등에 흩어져 있다가 국제기구의 주선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돌아간 아프간 난민수는 약 1백80만명으로 추산됐다.또 태국과의 국경지역 수용소에서 몇년간 생활하다가 아직도 불안한 정세가 계속되는 캄보디아로 돌아간 난민들도 약 25만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구유고연방에서는 1백7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고 이 중 1백만명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인종청소」를 피하기 위해 생겨난난민으로 나타났다. 또 구소련의 종족분쟁으로 발생한 난민 1백만명,모잠비크 내전에 의한 25만명,미얀마 군사독재정부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탈출한 20만명,소말리아 내 피란민 10만명 등 지난해 모두 3백만명 이상이 고국을 떠나 유랑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는 별도로 비록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피신하지는 않았지만 내란 등으로 인해 같은 나라안에서 다른 곳으로 강제이주돼 살고 있는 난민들의 수도 자그마치 2천4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이 보고서는 밝혔다. 같은 나라 안에서 강제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던 난민들 가운데 지난해 새롭게 발생한 난민에는 모잠비크 1백50만명,페루 50만명,소말리아 1백만명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국제기구의 보호를 받고있는 난민들은 지역별로 볼 때 아프리카가 5백70만명으로 가장 많고 중동이 5백60만,유럽과 북미가 3백40만,중앙·남부 아시아가 2백30만,동아시아·태평양이 40만,중남미 10만명의 순이다.
  • 전­노 전대통령 12·12관련 고발/예비역 중령

    12·12사태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보좌관이었던 예비역육군중령 김광해씨(51·월간교통저널 발행인)는 19일 『12·12사태는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과 노태우9사단장이 정권찬탈을 공모한 사건으로 내란죄와 명령불복종죄에 해당된다』며 전·노 두 전대통령을 상대로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냈다.
  • 정호용·박희도씨 등 19명/12·12사태관련 추가 고발(조약돌)

    ○…지난 12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12·12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내란죄혐의로 대구지검에 고발했던 민주당 성주·칠곡지구당위원장 도호기씨(33)가 15일 당시 50사단장이었던 정호용의원등 19명을 반란죄(내란·살인)로 대구지검에 추가 고발했다. 대구지검은 사건을 공안부 김원윤검사에게 배당했으나 법무부의 사건일괄처리방침에 따라 서울지검으로 이송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된 사람들의 이름과 당시 직책은 다음과 같다. ▲정호용 ▲박희도(1공수여단장) ▲최세창(3공수여단장) ▲이필섭(9사단 29연대장) ▲안병호(9사단작전참모) ▲유학성(군수차관보)▲차규헌(수도군단장) ▲황영시(1군단장) ▲박준병(20사단장) ▲백운택(71방위사단장) ▲장기오(5공수여단장) ▲장세동(30경비단장) ▲김진영(33경비단장) ▲이학봉(보안사 대공처장) ▲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 ▲우경윤(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함환옥(육군본부헌병감실 기획과장) ▲최석립(33헌병대장) ▲이종민(육군본부 헌병대장)
  • 두 전 대통령 고발사건/서울지검 공안부 배당

    검찰은 15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등 12·12사태 주역들에 대한 내란혐의 고발이 잇따라 접수됨에 따라 이 사건을 서울지검공안1부 조준웅부장검사에 배당,처리키로 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12·12사태 주역들에 대해 대검 및 대구지검·광주지검에 모두 4건의 고발장이 접수돼 있다』면서 『동일 사안에 대한 고발인 만큼 사건처리의 일관성을 위해 모두 서울지검에서 조사키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지검은 이에따라 대검및 대구·광주지검에 접수된 고발장을 넘겨받아 고발내용을 검토한뒤 고발인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검찰에 접수된 고발건은 ▲김수영씨(47)가 전·노전대통령을 내란혐의로 대검에 고발한 건 ▲민주당 경북 성주·칠곡지구당 위원장 도호기씨(33)가 두차례 걸쳐 두 전대통령및 정호용의원(당시 50사단장)등 21명을 대구지검에 고발한 건 ▲전「광주민주노회장」주천식씨(49)가 두 전대통령을 내란혐의로 광주지검에 고발한 건등이다.
  • 광주진압 군지휘관 16명이 하나회장교/민주,진상조사 촉구

    민주당의 광주특위(위원장 김원기최고위원)는 15일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자체 진상규명을 위해 특위내 진상조사소위를 재가동하고 「광주진압 핵심지휘자중 16명이 하나회 장교」라는등 6개항의 주장에 대한 정부측의 해명을 요구했다. 특위는 또 자체조사 결과,▲광주진압 핵심지휘자중 16명이 하나회 장교출신이며 ▲현 김동진 육참총장도 광주진압 당시 투입된 부대의 연대장이었고 정부의 각종 문서에 아직도 「내란」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주장하고 정부측에 이에 대한 해명과 시정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공개한 하나회출신 장교16명의 명단은 ▲전두환 보안사령관(11기) ▲노태우 수경사령관(11기) ▲정호용 특전사령관(11기) ▲박준병 20사단장(12기)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16기) ▲이학봉 보안사대공처장(18기) ▲신우식 7공수여단장(15기)▲최웅 11공수여단장(12기) ▲최세창 3공수여단장(13기) ▲함덕선 20사단작전참모(20기) ▲김완배 3공수12대대장(22기) ▲박종규 3공수15대대장(23기) ▲길영철 20사단60연대3대대장(23기) ▲강영욱 20사단61연대4대대장(24기) ▲유효일 20사단62연대3대대장(22기) ▲이종구 계엄사령부 작전처장(14기)
  • 「12·12」 「5·18」관련 정치권인사 반응

    ◎「가해자」 침묵속 피해측선 “미흡”/입장 역전… 5·6공 실세들 “눈치 살피기”/「광주」관련 야 의원들,책임자처벌 등 주장 12·12사태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역사적인 재조명을 받음에따라 여기에 관련된 정치권인사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당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극명한 이분법구도하에 놓였으나 일부는 지금 의사당에서 함께 국정을 논의하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신군부를 축으로 가해자측에 섰던 인사들은 「좋지않은 과거사」가 잊혀지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고 피해자측은 문민정부출범을 맞아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등을 강도 높게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사건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고있는 정치인은 대략 15명선. 현재 12·12사태의 주역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도 전전긍긍하고 있다.이미 재산공개파문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소속정당을 탈당한 인사도 있다. 이들은 5·6공실세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지만 지금은 전세가 역전,「변방인」의 위치에서 여권핵심부의 눈치살피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중 일부인사는 문민정부와 주파수를 맞추기위해 환골탈태의 눈물겨운 모습까지 보인다. 우선 핵심인사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내심 당혹해하면서도 앞으로의 사태추이에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결말이 날지 모르지만 전·노,특히 전씨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격히 하락할 것이라고 정가소식통은 전한다. 5·6공세력 배제를 통한 정치권 물갈이의 단초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생사를 같이했던 현역정치인은 정호용·박준병·허화평·허삼수의원(이상 민자당)과 정동호의원(무소속)등이다. 정호용의원은 김영삼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의 뜻을 따라갈 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짤막하게 말했으나 향후대책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을 회피했다.오히려 그는 12·12보다는 광주쪽에 많은 관련이 있다.6공초 광주청문회당시에도 그의 증언은 국민들의 최대관심을 끌었다.그리고 그는 5공청산과정에서 5·18의 책임을 지고 의원직까지 사퇴한뒤 외유길에 올랐었다.하지만 그는 14대총선에 무소속으로 당선,민자당에 입당했다. 허화평의원측은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매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이미 청문회때 관련된 얘기를 다한 만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앞으로의 대처방안에 대해서도 『닥치면 생각해봐야지…』라며 막연한 입장이다.그러면서도 허의원측은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상식선으로 생각해달라』고 주문했다. 허삼수의원은 『대통령의 말을 직접 안들어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그는 14일 열린 상위(상공위)에서도 상오에만 잠시 참석한뒤 어디론가 떠나버렸다.그만큼 착잡하다는 이야기다. 박의원도 『대통령 뜻에 따르겠으며 정부가 하는 일에 협조하겠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으나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박의원은 자신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 자체를 꺼려한다.하지만 그도 이미 청문회에서 소상히 그때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다는 태도를 견지하고있다.하지만 박의원은 민자당초대사무총장을 그만둔뒤 2년넘게 아무런 당직도 맡지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정동호의원은 재산공개파문으로 민자당을 탈당한뒤 홍콩으로 도피성 외유를 떠나버렸다. 이건영의원은 앞서 의원들이 가해자군인데 반해 유일한 피해자측 인사이다.그는 전날 김대통령의 발언과 관련,신문·방송을 일일이 체크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이의원은 특히 그동안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나서겠다는 심중을 피력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중 원내에 진입한 피해자측인사는 당시 도청항쟁외무위원장이었던 정상용의원을 비롯,군부진압때 연행된뒤 강제해직 당했던 박석무·김영진의원등이다.이들은 모두 민주당소속으로 재선의원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김대통령의 특별성명에 불만을 표시한다.정의원은 문민정부의 한계등의 표현을 써가며 국회차원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광주특위구성은 물론이다. 이들과 함께 내란음모자로 곤욕을 치렀던 김상현·이부영·이해찬의원과 권로갑·한화갑·김옥두의원등도 이사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사로 요즘 한층 강화된 대여공세에 앞장서고 있다.
  • 「5·18」 미 망명 윤한봉씨 7월 귀국/광주 형에 전화

    ◎“17일 LA영사관에 여권신청”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지명수배된 16명 가운데 유일한 실제인물인 윤한봉씨(46)가 정부의 광주 관련자들의 수배해제방침에 따라 귀국한다. 윤씨는 13,14일 이틀동안 형 광장씨(광주시 동구 서석동)와 2차례 국제전화를 통해 『합법적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면서 『LA 현지서 펼쳐온 민족민주운동을 마무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귀국은 2개월뒤나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는 13일 총리실에 자신이 결성한 「재미한국청년연합」(한청련),「한겨레운동민족연합」등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정부측이 안전귀국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서를 냈으며 『오는 17일 귀국의 첫 단계로 LA총영사관에 여권발급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윤씨는 내란주요임무종사등의 혐의로 계엄당국에 의해 지명수배되자 1년동안 도피생활을 하다 81년 4월30일 외항선원으로 위장,마산항에 정박중이던 화물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윤씨는 미국에서 LA 「민족학교」 「한청련」등을 결성,활동을 해오다 87년 미정부의 망명허가를 받았다. 74년 전남대 농대 재학중 민청학련사건의 전남북 책임자로 구속됐던 윤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년남짓 복역하고 풀려난뒤 77년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다시 구속되는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 12·12사태「내란죄」적용 가능/고발장접수 계기로 본 법조계 시각

    ◎형법 87∼91조 규정 「국헌문란」 개연성/검찰,선례없이 법적처리 싸고 고심 12·12사태에 관련하여 최근 노태우·전두환 두 전대통령을 상대로한 2건의 고발장이 접수됨에 따라 검찰은 이의 처리를 위한 법률적 검토에 착수 했다.그러나 검찰은 워낙 중대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 법적 처리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사건을 종결하자면 어떤식으로든 12·12사태의 법률적 규정을 내려야하는데다 조사대상인 피고발인이 전직 대통령들이기 때문이다.더욱이 쿠데타에 대한 법적처리의 선례는 한 건도 없는 상태다. 12·12사태에 적용될 수 있는 조항은 형법 제87조부터 91조까지에 규정된「내란의 죄」부분이다.특히 형법 제87조에서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경우 그 수괴는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모의에 참여,지휘하거나 살상·파괴·약탈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돼있다. 제91조는 국헌문란의 정의를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한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두 가지로 들고있다. 12·12사태는 두번째의 경우에 해당 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사형에 해당되는 범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므로 12·12사태에 내란죄 적용이 가능하다면 내년 12월 11일까지는 최고책임자나 지휘자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다. 그러나 단순히 폭동에 관여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을 받도록 돼있으므로 공소시효 3년이 끝나 처벌할 길이 없다.
  • YS,연금속 「광주비극」 전세계에 폭로/김 대통령과 광주민주화운동

    ◎“계엄령 해제하라”… 외신통해 전파/단식 23일… 민주화대장정 이끌어 김영삼대통령도 광주민주화운동의 계기가 됐던 5·17사태의 피해자이다. 당시 직책은 야당인 신민당총재.공화당의 김종필총재,야권의 경쟁자였던 김대중씨와 함께 「3김경쟁시대」를 열면서 대선고지를 향해 각축을 벌이던 상황이었다.이른바 「서울의 봄」.정국의 앞날이 불투명한 가운데서도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그러나 5월17일의 비상계엄확대 조치로 정치활동이 금지됐고 정국은 혹독한 한파로 일시에 얼어붙었다. ○3김경쟁 날로 치열 김대중씨는 내란음모죄로,김종필씨는 부정축재자로 몰려 전격 구속됐다.김대통령은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리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모든 언론보도는 철저히 통제됐다. 김대통령은 5월20일 상도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17조치를 규탄하고 계엄령의 즉각 해제와 조속한 민주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광주의 비극적 실상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혔다.기자회견 내용은 즉각 전세계에타전됐다. 김대통령은 기자회견과 함께 신민당 정무회의를 열고 계엄군이 배치된 국회의사당에서 의원총회를 갖도록 지시했다.그러나 신민당 의원들은 계엄군에 막혀 의사당에 들어가지 못했고 의원회관 식당에서 마지막 의총을 가졌다.80년의 봄은 이렇게 종말을 맞았다. ○언론보도 철저통제 김대통령을 비롯한 당시의 정치권은 이같은 상황을 어느정도 예감했던 것도 사실이다.정체를 알 수 없는 위기감이 팽배했었다.당시 최규하대통령정부가 2원집정부제를 구상하고 있다는 설이 나돌면서 시작된 학원소요는 대규모 가두시위로 이어졌다.노사분규도 곳곳에서 계속됐다. 김대통령은 4월 하순 기자회견에서 혼란의 책임이 정치일정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는 과도정부의 태도에 있다고 비난하고 정치일정과 개헌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고 촉구했다.학생들과 노조에 대해서는 『폭력적 항거가 또다른 폭력을 불러오는 빌미가 된다』고 지적,자제를 당부했다.김대중씨도 사태를 위기라고 규정하고 기득권세력에 반격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가두시위로 이어져 김대통령은 5월16일 아침 김대중씨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1시간동안 회담을 갖고 공동발표를 통해 비상계엄 해제,정부가 주도하는 개헌의 포기등을 요구했다.그러나 두사람이 논의한 중요내용은 학생들에게 자제를 당부하자는 것이었다.정국의 급변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우려할 사태가 일어날 징조에 공감했던 것이다. 김대통령에 대한 연금은 1년만인 81년5월1일 해제됐다.그러나 김대통령이 정치규제에 묶인 인사들과 민주산악회를 결성하는등 정치적 움직임을 보이자 82년5월31일 또다시 가택연금조치가 가해졌다. ○자책과 참회의 뜻 2차연금을 당한지 1년여가 된 5월2일 김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에 즈음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하고 무기한의 단식투쟁에 돌입했다.김대통령은 성명서에서 「나의 단식은 5·17에 의하여 민주주의가 부정당함은 물론,민주화를 요구하던 민주시민이 광주에서 희생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데 대한 자책과 참회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며 비극적인 광주사태로 목숨을 잃은 영혼과 거기서희생된 민주시민들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 동참하는 기회이며 동시에 반민주적인 권력의 강화와 인권유린및 정치적인 탄압에 대한 항의와 규탄의 표시이자 민주정치의 확립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나마 시급히 강구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요구의 표시」라고 배경을 밝혔다.김대통령의 단식은 8일째인 5월25일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겨진 이후에도 계속돼 23일만인 6월9일 끝났다.
  • 전­노 두 전직대통령/내란혐의로 또 피소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사는 김수영씨(47·무직)가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2명을 79년12월12일 발생한 「12·12사태」의 책임자로 지목해 이들을 내란죄 혐의로 13일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김씨는 고발장에서 『두 전 대통령은 지난 79년 하극상의 군사정변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를 파탄시킨 장본인으로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면서 『추상같은 법집행으로 실추된 국위와 국가정기를 되살려야 할것』이라고 주장했다.
  • 전·노 두 전 대통령 내란혐의로 고소/성주 민주당위원장

    【대구=한찬규기자】 민주당 성주·칠곡지구당 위원장인 도호기씨(33)는 12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12·12사태와 관련,내란혐의로 대구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도씨는 고발장에서 『전,노씨가 79년 10·26 사태로 국가가 혼란할 때 보안사령관과 일선 사단장의 신분을 이용,군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채 정권 탈취를 모의한 뒤 같은해 12월 12일 병력을 동원해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체포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등 내란의 죄를 범했다』고 주장하며 『이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관련자들을 모두 엄벌할 것』을 요구했다. 도씨는 당시 상황에 대한 신문사설과 잡지기사 사본 1부씩을 첨부자료로 제출하고 최규하 전대통령,정승화 당시 육참총장,김영삼대통령,김종필 민자당 대표 등 4명을 이 사건의 증인으로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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