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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법 제정으로 예년과 입장 달라(정가초점)

    ◎5·18 특별법/여 “적극” 야 “차분”/“「역사 바로세우기」 성공”… 후속조치 착수­여/특별한 의식 없이 조촐하게 치르기­야 여야는 지난해 「5·18특별법」제정 등 「역사 바로세우기」 이후 처음 맞는 5·18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신한국당◁ 17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도 5·18입법을 주도한 여당이 실질적인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회의에서는 일단 18일 광주 망월동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는 김용호 광주시지부위원장이 참석하고 이홍구 대표위원은 조화만 보내기로 했다.손학규 제1정책조정실장은 개인자격으로 참석한다.당초 고위 당직자가 참석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행사 주최측이 정치색을 배제하고 지역대표의 참석을 원했기 때문에 요란한 제스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은 지난해 특별법제정 전 여야합의대로 15대국회가 개원되면 가시적인 후속조치를 취해나갈 생각이다. 현재 광주 망월동묘역 주변의 도로가 확장되고 기념관공사가 계속중이지만 구체적인 망월동 묘역의 성역화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여야가 합의했던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 제정」문제도 당정협의와 여야대화를 통해 적극 추진키로 했다. 또 총선과정에서 공약과 5·18관련단체들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검토작업에 착수 했다.이를테면 총선공약에서는 명예회복 차원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5·18피해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는 방안등이 거론 됐다.5·18관련 시민단체들의 요구사항에는 망월동 묘역의 국립묘지 승격,광주 진압과 관련해 훈·포장을 받은 서훈자들의 서훈취소와 훈장박탈등이 있다.신한국당은 이같은 모든 문제들도 역사바로세우기 연장 선상에서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 낼 생각이다.〈김경홍 기자〉 ▷야권◁ 국민회의·자민련·민주당 등 야3당의 분위기는 일단 조촐하게 치른다는 분위기이다.당 차원의 기념식이나 성명 말고는 눈에 띄는 행사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야 3당 가운데 국민회의가 가장 적극적이다.김대중 총재를 비롯,김상현·이해찬·한화갑의원,김옥두당선자등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된 인사들이 모여 있어 직접적인이해당사자라는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18일 중앙당사에서 김총재와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갖고 망월동 묘역참배에는 유재건 부총재를 단장으로 한 방문단을 광주에 내려보내기로 했다.김총재는 총선 직후 이미 망월동을 방문,이번에는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국민회의는 그러나 성명등을 통해 여야 합의사항인 5·18 기념일 제정등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패배에 따른 후유증으로 예전과 달리 행사를 계획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다만 이부영 최고위원을 대표자격으로 광주로 보내 5·18기념행사에 참석토록 하고 5·18기념일 제정을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자민련은 지난해 5·18특별법 제정과정에서 유일하게 반대입장에 섰던 만큼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양승현 기자〉
  • 내란방조 유죄 재심 정승화씨 청구 수용/서울지법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전봉진 부장판사)는 1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김재규의 내란음모에 방조했다는 혐의로 군사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당시 신군부측이 주도한 12·12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로 군사반란임이 드러나,현재 재판에 계류돼 있는 등 정씨의 내란방조죄에 대한 유죄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가 확보됐으므로 재심청구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 노씨 구속 6개월 연장/서울지검,이현우씨도

    12·12 및 5·18 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지법 형사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9일 오는 15일 1차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군사반란 중요임무 종사죄 및 내란 등의 혐의로 새로이 구속영장을 발부,구속기간을 6개월 연장했다. 재판부는 또 노 전대통령과 함께 구속돼 오는 16일 1차 구속기한이 만료되는 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에 대해서도 뇌물 방조혐의로 새로운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따라 노 전대통령과 이씨의 구속기간은 오는 11월15일과 11월16일까지로 연장됐다. 이번 구속영장 발부는 1차 구속기한 6개월이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비자금 사건과 12·12 및 5·18 사건의 재판이 끝나지 않아 재판부의 직권으로 이뤄진 것이다.〈박상렬 기자〉
  • 계엄군 발포경위에 피고인 모두 발뺌/마지막 직접신문 이모저모

    ◎전씨 공판대비 구치소서 열심히 “공부” 12·12 및 5·18사건을 검찰이 마지막으로 직접 신문한 7차 공판은 6차 공판때와는 달리 순조롭게 진행됐다.검찰은 전두환·황영시·주영복·이희성·정호용피고인 등 5명을 상대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경위 등에 초점을 맞춰 신문했으나 피고인들은 발뺌으로 일관했다. ○…정호용피고인은 검찰 신문 내용 대부분을 부인하면서 『검찰에서 진술한 참고인들을 증인으로 불러 대질신문해 달라』고 검찰에 역공. 정피고인은 광주에 투입된 공수여단의 지휘관들이 정식 지휘계통에 있던 소준렬 전교사 사령관을 제치고 자신에게 중요사항을 보고했다는 일선 지휘관들의 진술과 관련,『그런 사실이 없다』며 대질 신문을 요구. ○…주영복피고인은 『광주시위 진압결과 사망자가 생길 경우 자살하려 했다』는 검찰에서의 진술을 바꿔 『그런 적이 없었다』고 부인. 주피고인은 이어 『전혀 진술하지 않은 내용이 검찰 조서에 들어있어 변호인단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공박. ○…전피고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당시 계엄군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경위 등 검찰의 신문내용 일체를 부인. 전피고인은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경고문은 당시 정도영 보안처장이 계엄군측에 건네준 게 아니냐』는 거듭된 검찰신문에 『아니라고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대답. ○…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이던 이희성피고인은 12·12 사건 이튿날 전피고인으로부터 「육참총장 이희성」이라고 적힌 쪽지를 건네받았으나 『누구 마음대로 총장을 임명하느냐』고 질책했다고 답변. 이피고인은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 조치와 관련,『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사변,적의 포위공격이라는 계엄확대의 요건이 발생한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물음에 『없었다』고 짤막하게 말해 부당하게 계엄을 확대한 사실을 시인.또 보안사에서 기안한 계엄포고령 10호로 모든 정치활동이 중단된데 대해서는 『잘못된 겁니다』라고 분명하게 인정. ○…전피고인은 최근 5·18 공판에 대비해 5·18 사건을 재구성하는 등 「공부」에 열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피고인은 이 과정에서 『계엄군이 반란군으로 규정되고 시위를 조속하게 진압하기 위해 강경하게 대처한 것이 왜 내란죄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전언. ○…검찰은 이날 『신속한 재판진행을 바라는 국민정서』 등을 거론하며 재판부에 주2회 야간신문을 요구한 반면 변호인단은 『신속성보다는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치밀성이 더 요구된다』고 각각 반대 주장을 피력. 재판부는 이와 관련,『검찰신문에서 피고인들이 변소를 많이 했다』며 『변호인의 신문사항이 많을 경우 「적절한」 시간을 마련하겠다』고 답변,야간에도 재판을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변호인 반대신문 첫 기일이 2주뒤인 오는 20일로 잡히자 변호인단은 『인민재판을 하려는 것이냐』며 강력 반발. 한 변호인은 『재판부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재판일정을 잡았다』며 『검찰 수사기록 1장을 읽는데 30초가 걸린다고 쳐도 4개월 반이 필요한데 해도 너무하는 처사』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박은호·강충식·이지운 기자〉
  • 「12·12」·「5·18」 7차 공판­쟁점과 전망

    ◎“내란목적”·“정상계엄업무” 공방/검찰 “공소사실유지 진술 확보” 자신감/공판일정 순조… 8월초 1심선고 가능 5·18사건의 7차 공판은 예상 밖으로 차분하게 진행됐다.전두환 피고인 등 5명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순조롭게 끝났다. 지난 달 29일 6차 공판에서 일어난 재판중단의 후유증을 지켜본 재판부·검찰·변호인단 등 법조 3륜이 자제한 덕분이었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전은 공소장 변경건과 핵심사항에 대한 신문내용 두 가지로 펼쳐졌다. 하지만 공소장 변경을 둘러싼 신경전은 미미했다.검찰이 서류를 첨부해 설명하자,변호인은 석명요청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검찰 신문의 강도와 예리함이 다소 떨어진 탓인지 피고인과의 감정 싸움은 거의 없었다. 반면 쟁점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검찰은 전피고인을 상대로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를 집중 추궁했다.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초기진압을 시작으로 계엄군 증파,윤흥정 전투교육사령관의 교체,발포 개시,자위권 발동,유혈사태,시위대 재진압 과정 등에 사실상 개입하고 지시하거나 압력을 넣었는지를 신문했다. 하지만 광주 희생의 구체적 사례를 뭉뚱거려 묻는가 하면,발포지시 여부에 대해서도 직접 화법으로 신문하지 않았다.이례적이었다. 전피고인은 『당시 정보책임자로서 계엄사가 행한 작전상황에 대해서는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당시의 진압은 최규하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국방부장관,계엄사령관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영시·주영복·이희성·정호용 피고인은 「유혈진압 과정은 정권장악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 방안의 일환」이라는 검찰의 추궁에 정상적인 계엄업무였다고 맞섰다. 검찰은 이 날까지 공판에서 공소사실의 유지에 충분한 진술을 얻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전·이피고인이 명목상 발포 책임자」라고 발표했던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할만한 새로운 내용을 밝혀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로써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은 끝났다. 앞으로는 변호인의 자료검토 시간 1∼2주와 1차 구속 만기자를별건으로 구속할지 여부,변호인의 반대신문 5∼7차례,증거조사 절차가 남아있다. 이 날의 공판 속도를 감안하면,남은 일정도 순항이 예상돼 늦어도 8월까지는 1심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박선화 기자〉
  • 발포관련「전씨역할」집중 추궁/오늘「5·18」7차공판…주요 쟁점은

    ◎검찰,사전각본 입증 주력/변호인단 “공소사실 불명확” 입장 정리 6일 열리는 5·18사건의 7차 공판은 12·12 및 5·18사건의 승패를 가르는 고비가 될 전망이다. 지난 3월11일 첫 공판이 열린 이래 검찰과 변호인단의 법정 공방은 6차 공판에 이어 이날 재판이 최대 승부가 이뤄진다.최대 쟁점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날엔 5·18사건,즉 광주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이뤄진다.검찰로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등 피고인들의 내란목적 살인을 추궁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다. 12·12와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등에 대해서는 지난 달 29일 6차 공판에서 신문을 모두 마쳤다. 검찰은 이날 5·18 광주 진압이 신군부측의 집권의도에서 비롯된 내란목적 살인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계획이다.특히 계엄군이 자위권 발동을 천명한 뒤 무장병력을 광주에 다시 들여보내 양민을 학살한 행위는 신군부의 치밀한 사전계획이라는 점을 입증하는데 주력키로 했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계엄사의 자위권 발동과 육본지휘권의 2원화 여부 및 발포명령이 내려지기까지 당시 실질적 1인자였던 전피고인의 역할이다. 변호인측은 이번 재판을 앞두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6공의 국회 청문회 이후 수년동안 5·18문제를 연구해 왔다고 밝힌다. 5·18사건은 비자금이나 12·12 및 5·17사건과는 판이하게 다르다.수많은 인명살상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는 결정적 사건이다. 변호인들이 지난 6차 공판시 자칫 「재판거부」로 비춰지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5·18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을 막은 것도 이때문이다. 전씨측 변호인단은 5일 하오에도 서울시내 모처에 모여 공판대책을 숙의했다.5·18에 대해서만큼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확고히 했다. 당초부터 범죄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양우 변호사는 『내란목적 살인임을 주장하려면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발포 명령자가 전두환이라고 적시해야 할 것』이라며 『발포 명령자를 밝히지 않은 것은 공소장 작성의 기초를 무시한 것』이라고 공소사실의 불명확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변호인단의 주장과 관련,검찰은 『범죄행위의 일시나 장소 등 외에 변경할 내용이 별로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지난 재판때 제출한 석명서 3쪽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이같은 양측의 주장 외에도 지난 1∼2일 검찰이 전씨 자택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박은호 기자〉
  • 오늘 12·12,5·18사건 7차공판/내란목적 살인혐의 집중추궁

    12·12 및 5·18사건의 7차 공판이 6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관련기사 4면〉 이 날 공판에서는 검찰이 전두환·황영시·주영복·이희성·정호용피고인 등 5명을 상대로 5·18사건의 폭동,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혐의에 대해 직접 신문한다. 검찰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계엄군의 출동경위 ▲자위권 발동 ▲양민학살 ▲발포경위 등이 신군부가 집권하기 위한 일련의 사전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박은호 기자〉
  • 「공소장 변경」 놓고 검찰­변호인 설전

    ◎변호인 “공소사실 모호하다” 답변거부/검찰선 “재판 고의지연 위한 전술” 반박 12·12 및 5·18사건의 6차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변호인단의 거센 공세로 무산됐다.앞으로의 재판이 순조롭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하오 5시 재판이 속행되자마자 이양우 변호사는 『검찰의 석명서에는 비상계엄확대와 계엄군의 출동을 폭동·반란행위로 규정했음에도 이를 결정,공포한 최규하 정부도 반란정부인지의 여부와 내란목적살인죄의 범죄구성요건이 되는 피해자의 신원·장소·시간이 여전히 모호하다』고 반발했다. 그는 『공소사실이 석명되고 공소장이 변경될 때까지 답변을 거부하겠다』고 주장했다. 김영일 재판장은 『공소장은 합법적인 절차를 위장해 정권을 찬탈하려는 과정을 밝히려는 취지』라며 『사실심리를 하는 과정인데,먼저 판단을 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득했다.검찰도 『판결의 범위에 속하는 부분에 대해 석명을 요청하는 것은 재판지연전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전상석 변호사는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으면 재판을 받지 않겠다』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20여분동안 논란이 계속되자 재판장은 『공소사실이 다소 부족한 것을 문제삼아 재판을 못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며,노기띤 목소리로 『이런 분위기에서는 더 이상 재판을 못하겠다』며 폐정을 선언했다. 이에 앞서 하오 2시30분 6차공판이 시작될 때부터 검찰과 변호인단은 1시간여동안 설전을 벌였다.전상석 변호사는 성명서를 통해 『지난 22일 퇴정한 것은 검찰의 신문이 피고인의 도덕성 흠집내기와 명예훼손으로 일관되고 일부 방청객이 변호인단에 인신공격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석진강 변호사는 미국의 O J 심슨재판 및 일본의 옴진리교재판을 예로 들며 『일방적인 재판을 피하기 위해 TV로 생중계하자』고 요구했다. 재판장은 『변호인단이 퇴정에 대한 사과를 위해 개인적으로 방문했을 때 법정에서의 일이니 법정에서 해명하라고 했다』며 『사과가 명쾌하지 않아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공개재판은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며,전직대통령 2명을 비롯해 국가고위직을지낸 피고인들의 재판을 공개하는 것은 우리의 정서와 법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검찰이 준비한 석명서를 제출하자 『공소사실이 명확하지 않다』고 또다시 트집을 잡았다. 이에 재판장은 공소장변경을 검찰에 요구했고 검찰은 『변경의 필요을 느끼지 않는다』면서도 『다음 재판기일 때까지 공소장을 일부라도 바꾸겠다』고 양보했다. 이같은 변호인단의 지연전술에 검찰은 『신속한 재판을 위해 1주일에 2차례의 재판을 하고 밤늦게까지도 재판을 계속하자』고 재판부에 건의했다. 이날 검찰과 변호인단·재판부 3자간의 논쟁은 그동안 계속되온 법리논쟁의 흐름과 같은 맥락이다.검찰의 직접신문과 변호인 반대신문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변호인단의 책략이기도 하다.〈박상렬 기자〉
  • 공판 이모저모/최후진술 피고인들 “송구…” 한목소리

    ◎변호인,다른 뇌물사건 형평성 들어 성토/안현태씨 유서작성사실 공개… 한때 술렁 29일 상오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 3차공판에서는 안현태피고인 등 4명에게 구형이 내려졌다.이어 속개된 12·12 및 5·18사건의 6차공판에서는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됐다. ○…검찰의 구형을 받은 안피고인 등 4명은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석에서 차례로 일어나 최후진술. 각각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재판부의 너그러운 판결을 기대한다』(안피고인),『누를 끼친 모든 분께 죄송하며 깊이 반성한다』(성용욱피고인),『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안무혁피고인),『경제전문가로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사공일피고인)고 피력.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뇌물죄의 법적용을 성토하거나 다른 뇌물사건과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검찰을 성토. 이보환변호사는 『수뢰자가 받은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으면 뇌물이 아니다』라며 『이는 형법교과서에 나와 있는 기초이론』이라고 지적. 정상학 변호사는 장학노전청와대 부속실장의 사법처리와 관련,『검찰이 당시 22억원을 떡값으로 처리했으니 안피고인이 받은 5천만원도 같이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검찰수사를 맹공. ○…정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안피고인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유서를 작성했다』고 말해 법정이 술렁.정변호사는 『평소 강직하고 성실한 생활을 해온 안피고인이 검찰에서 조사받던 중 유서를 작성했다』며 『현재 검찰이 이 유서를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공개했다. 검찰은 전피고인이 구속된 직후인 지난해 12월5일 「대통령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이런 사태가 빚어져 죽고 싶다」는 심경을 피력한 3장분량의 유서와 부인 앞으로 보낸 유서 등 2가지를 서울 중구 쁘렝땅백화점에 있는 안피고인의 개인사무실에서 압수해 참고자료로 첨부했다는 것. ○…하오 5시부터 5·18사건에 대한 검찰 직접신문이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변호인단이 「공소사실요건미비」를 주장하며 재판진행을 수용할 수 없다고 강력히 항의. 변호인단은 『검찰 공소장에는 「성명불상자」,「수많은 광주시민」 등 범죄행위를 특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이 상태로는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등 20여분동안 재판연기를 거듭 요구.이들은 『간통죄사건에서도 언제,누가,어떻게 간통했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며 이 가운데 한 가지만 빠져도 법정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빗대며 힐난. 재판장은 『그같은 이유는 재판연기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설득했으나 변호인단이 주장을 굽히지 않자 『이런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며 화가 난 표정으로 폐정을 선언. ○…성피고인측의 손진곤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정치자금을 뇌물로 보는 것은 우리 법률문화가 아직 미개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라며 자금성격을 정확히 규명해줄 것을 재판부에 당부했다.이어 『공소장을 그대로 베끼는 판결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곡히 주문. ○…하오에 속개된 5·18사건 등 6차공판에서는 검찰이 제출한 석명서에 대해 변호인단이 『성의가 없다』고 공격,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 설전이 전개됐다. 김상희 부장검사는 석명서를 제출하면서 『검찰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큰 폭동으로,그외의 진압과정은 작은 폭동으로 보고 있다』며 『검찰은 공소장변경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설명. 재판장인 김부장판사는 『변호인단의 주장은 어느 부분이 배경이고 어디까지가 내란·반란인지가 특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변호인 반대신문에 들어가기 전까지 정정해주어야 변호인단이 변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검찰의 성의를 촉구했다.〈박상렬·박은호 기자〉
  • 「민정당 창당」·「김대중 내란」/전씨,「예민한 사항」 또 묵비권

    ◎“통치행위”·“모른다” 일관/「12·12」 6차 공판 29일 하오 열린 12·12 및 5·18사건의 6차공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전두환 피고인이 지난 80년 9월1일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의 일에 대해 『대통령으로서의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며 진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게다가 변호인단은 『내란목적살인혐의 등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이 불분명하다』고 주장하며 『역사의 진실을 공개하기 위해 재판을 TV로 생중계하자』고 요구,검찰과 공방전을 펼쳤다.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의 김영일 부장판사는 1시간30분의 휴정 끝에 하오5시쯤 속개된 공판에서도 검찰과 변호인 사이의 신경전이 계속되자 『이 상태로는 재판을 못하겠다』며 퇴정했다.7차공판은 다음달 6일 열린다. 전피고인은 공판에서 민정당 창당 등 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의 사건에 대한 검찰 신문에 대해 『대통령으로서의 통치행위이므로 답변하지 않겠다』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전피고인은 12·12 이후 5·17 비상계엄의 확대 및 국회 봉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위 설치,김대중 내란음모사건,정치활동금지조치 등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내세우거나 답변을 거부했다. 81년1월24일 비상계엄을 해제한 것은 12·12이후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집권기반이 공고해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궁에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검찰은 이날 전두환·황영시피고인을 상대로 5·18사건에 대해 2백여문항을 추궁할 방침이었다. 전피고인은 다만 80년 11월 언론통폐합에 대한 신문에 『당시 이광표 문공부장관이 건의한 언론통폐합안을 전적으로 내 책임 아래 결재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TV 생중계요청은 『규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지금도 사실상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공소장의 내란목적 살인대목을 보완하지 않으면 피고인와 변호인단은 검찰의 어떤 신문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신속한 재판의 진행을 위해 주 2회 재판과 함께 하루종일 재판을 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황진선 기자〉
  • 유진 뎁스(상·하)/어빙 스톤 지음(화제의 책)

    ◎미 전설적 노동운동가 일대기 그려 미국의 전설적인 노동운동가이자 미국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당을 설립한 유진 뎁스(1855∼1926년)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소설.1세기 전,초기 산업사회에 나타나는 온갖 자본주의 병폐를 극복하고자 노동운동에 평생을 바친 삶을 생생하게 소개했다. 가난한 집 맏아들로 태어난 뎁스는 열네살에 철도회사 잡역부로 취직하면서 철도와 인연을 맺는다.스무살 때 기차 화부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는 세계 최초의 산업노조인 미국 철도노동조합과 뒤이은 산업노조연맹(CIO)출범을 주도한다. 그러나 1894년 첫 철도 총파업이 일어나자 연방군이 투입돼 노조원 34명이 사망하고 뎁스도 내란죄로 복역한다.출감후 뎁스는 사회민주당을 창당해 노동운동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많은 동지들이 이에 반발,그의 곁을 떠난다… 유진 뎁스는 강력한 투쟁정신으로 노동운동을 이끌면서도 항상 비폭력적인 방법을 택했으며 그 바탕에는 인도주의와 박애정신을 깔고 있었다.외형상 그는 실패한 노동운동가·정치인일지 모르지만,그의 투쟁은 현재의 미국 자본주의 체제를 건강하게 만든 주요한 요소로 평가받는다. 자작나무,김영태 옮김 각권 6천8백원.
  • 오늘 5·18 5차공판/전두환씨 등 2명 직접신문

    12·12 및 5·18사건의 5차공판이 22일 상오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재판에는 전두환 피고인과 황영시 피고인 2명이 출정한다. 검찰은 직접신문에서 신군부측의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의 작성경위와 내용,5·17비상계엄의 확대,국보위의 설치과정,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하야과정 등 12·12이후 81년 1월24일 비상계엄해제까지 일련의 시국조치가 내란과정이었음을 집중적으로 추궁한다. 민주당이 주장했던대로 전피고인이 최 전대통령에게 하야위로금으로 1백75억원을 주었는지도 신문한다. 검찰은 「시국수습방안」을 전피고인과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 작성해 최근까지 보관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황피고인에 대해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키로 결의한 과정과 「자위권」 발동 및 양민학살경위 등을 추궁할 예정이다.〈박선화 기자〉
  • 전씨 집중추궁…내란 입증에 초점/5·18 5차공판 쟁점·이모저모

    ◎「시국수습방안」 실체 등 쟁점 6가지/최 대통령 하야 위로금설도 신문 12·12 및 5·18사건의 5차 공판은 검찰의 일방적 페이스로 진행될 전망이다. 검찰은 12·12 군사반란 이후 81년 1월24일 계엄해제까지 신군부측이 취한 일련의 조치가 내란과정이었음을 집중 추궁한다. 확실한 논점 정리를 위해 재판부와 협의해 전두환·황영시 피고인만 직접 신문한다.황피고인의 신문사항이 70∼80개인데 비해 전피고인에게 5백∼6백개가 집중됐다. 검찰은 『내란임을 규명하는 데는 전피고인이 알파요,오메가』라고 말한다.모든 사안에 전피고인이 깊숙이 개입돼 있어,내란을 입증하는 열쇠가 그에 달렸다며 단단히 벼른다. 전피고인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특유의 달변으로 5공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검찰에 맞설 것이다. 전피고인은 검찰이 흘리는 비자금 문제와 수사비화를 두고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술수라고 언짢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양측의 입장을 감안하면 법정은 어느 때보다 뜨거워질 전망이다. 검찰이 꼽는 쟁점은 6가지다.전피고인이 보안사령관에 이어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한 경위와 보안사가 마련한 「시국수습 방안」의 실체,국기문란자 및 소요 배후조종자 체포과정,비상계엄의 확대경위,국보위 설치과정,최규하 대통령의 하야과정 등이다. 검찰은 내란의 사실관계가 전피고인의 입을 통해 입증될 것으로 자신한다.새 사실의 규명도 기대한다.이미 권정달 당시 정보사 보안처장의 진술을 토대로 A4용지 4∼5장 분량의 시국 수습방안 작성경위와 작성자,최근까지의 보관사실을 밝혀냈다. 최대통령이 80년 7월30일 전피고인에게 대통령직 인계의사를 공식 밝히고,31일 저녁 노태우 피고인 등 신군부 장성 10여명이 공군참모총장 공관에 모여 전피고인을 대통령으로 추대한 과정도 생생히 밝혀진다. 특히 전씨가 최대통령에게 위로 하야금으로 거액을 제공했다는 설을 추궁할 예정이다.그러나 검찰은 『새로운 사실이 많지 않다』며 김을 빼기도 했다. 이번 재판은 검찰이 재판부에 낸 증거물에 있어서도 신기록을 세웠다.수사기록은 5공 전사 9권과 12·12사건 38권과 5·18사건 1백17권을 포함해 모두 16만쪽·1백55권에 달한다. 증거 목록만도 92쪽이다.쌓으면 높이 15m,무게 9백㎏에 달한다.1t 트럭으로 옮겼을 정도다.변호인용 및 보관용 자료를 포함,10질을 복사하느라 40일이 걸렸고 종이값만도 1천5백만원이 넘었다.〈박선화 기자〉
  • 군출신 16명… 재야 6명…/당선자 출신별 분류

    ◎군출신­45명 출전해 35%가 “금배지”/자민련 6·신한국 5·무소속 3명 제15대 총선에는 45명의 영관장교 이상 군 출신 인사가 후보로 나서 35%인 16명이 지역구와 전국구를 통해 금배지를 달게 됐다.36명이었던 지난 14대때보다 군 출신 국회의원이 20명이나 줄었다. 정당별 군출신 당선자는 자민련이 6명으로 가장 많고 신한국당 5명,국민회의 2명,무소속 3명의 순이다. 신한국당에서는 4선을 기록한 경남 산청·함양의 권익현(육사11기·예비역육군대령),인천 중동·옹진의 서정화(육사 19기·예비역 육군중령)씨 등 4명이 지역국에서,박세환 예비역 육군대장(ROTC 1기)이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했다. 자민련에서는 충남 부여 김종필 총재(육사 8기·예비역 육군준장)가 7기 후배로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이진삼씨(육사15기)의 도전을 가볍게 물리쳐 8선을 기록했다.대국 동구갑에서 노태우 전대통령의 처남인 김부동씨(육사 11기·예비역 육군중장) 등 군출신 12명이 출전,절반이 넘게 당선됐다. 국민회의는 광주 남구 림복진씨(육사 7기·예비역 육군소장)는지역구로,천용댁씨(육사16기·예비역 육군중장)는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했다. 무소속으로는 신한국당에서 탈당한 허화평 의원(육사17기·예비역 육군준장·구속중)이 경북 포항갑에서,권정달씨(육사15기·예비역 육군준장)는 경북 안동을에서 당선됐다.그러나 12·12와 5·18의 주역으로 옥중출마한 정호용(육사 11기·예비역 육군대장),허삼수(육사17기·예비역 육군준장)씨는 낙선하는 등 신한국당과 등을 진 인사들도 희비가 엇갈렸다.〈황성기 기자〉 ◎가신­부산·호남출마자 전원 당선/서초을 김덕용 의원 3선 기록/한화갑씨 압승… 박지원씨 고배 이번 총선에서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김종필 자민련총재를 측근에서 보좌해 왔던 이른바 「가신」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신한국당◁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출신들 가운데 부산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은 전원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사하갑)과 박관용전청와대비서실장은 각각 5선의 고지를 점령했다.박종웅 의원(사하을)은 재선에 성공했고 홍인길 전 총무수석(서구),김무성 전 내무차관도 첫배지를 달았다. 서울에서는 김덕용 의원(서초을)이 3선을 기록했다 경기 가평·양평의 김길환 전 청와대비서관은 치열한 접전끝에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상도동 출신은 아니지만 한승수 전 청와대비서실장(춘천갑)이 재선에,윤원중 전 청와대비서관이 전국구로 배지를 달았다.〈김경홍 기자〉 ▷국민회의◁ 동교동캠프 역시 텃밭격인 호남에 출마한 가신들은 전원 당선됐다.정동채 총재비서실장이 광주서구에서 승전보를 올렸으며 공천과정에서 이영권·유인학 의원 등 현역의원을 따돌린 김옥두 의원은 영암 장흥에서,한화갑후보도 김대중 총재의 출신지인 신안에서 압승했다.전북에서 김총재 비서출신인 최재승 의원이 익산갑에서 재선고지에 올랐고,민주당 김원기 공동대표에 맞서 정읍에 표적공천했던 윤철상 사무부총장도 금배지를 달았다. 반면 수도권 동교동 가신들의 성적표는 반타작 수준이었다.서울의 도봉을의 설훈후보와 광명갑의 남궁진 의원이 어렵게 당선됐다.하지만 부천 원미을의 배기선후보와 부천 소사의 박지원 대변인은 분루를 삼켰다. ▷자민련◁ 광의의 가신그룹인 이긍규 총재비서실장이 충남서천에서 당선됐으나 광운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JP비서였던 장일후보는 도봉을에서 낙선했다.〈오일만 기자〉 ◎여성계­추미애·임진출씨 지역구 점령/추씨­남성후보 5명 따돌리고 “승전”/임씨­보수성 강한 고부서 “4전5기” 맹렬여성 2명이 지역구에서 금배지를 획득했다. 현직 판사로 정치에 입문,화제를 모았던 서울 광진을의 추미애 당선자(37·국민회의)와 경주을의 임진출 당선자(54·무소속). 85년 12대 총선때 서울 성북갑에 출마했던 김정례전의원이후 11년만에 여성지역구의 맥을 잇는 주인공들이다. 추씨는 경북출신으로 국민회의에 입당,지역성 타파의 계기를 제공했고 림씨는 보수성이 강한 고도에서 4전5기의 신화를 창조하는 우먼파워를 과시했다. 정치초년생인 추당선자는 중견 언론인출신,재선 현역의원등 5명의 남성후보을 여유있게 따돌렸다.전통적으로 야세인 지역특성과 당지도부의 각별한 배려등도 승리의 요인이 됐다.세탁소집 딸이라는 서민출신의배경을 대처전 영국수상과 같은 이미지로 연결시킨 홍보전략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막판까지 신한국당의 백상승후보와 접전을 벌였던 림당선자는 12대때부터 「한우물」을 팠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94년 민자당 서수종의원의 갑작스런 사망에 따른 보궐선거때는 여당 간판으로 출진했으나 민주당바람에 휩쓸려 또다시 좌절을 겪었다. 신한국당 공천탈락에도 굴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또다시 도전,마침내 「오뚝이」신화를 일궈냈다. 림씨는 『이번 승리는 모든 여성과 딸을 둔 부모의 승리』라며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번에 전국구로 원내에 진출하는 여성은 신한국당의 권영자·오양순·김영선씨와 국민회의 정희경·신낙균·한영애씨,민주당 이미경씨등 7명이다.〈전경하 기자〉 ◎언론·방송인­맹형규씨 등 앵커출신 돌풍/박성범·이윤성·정동영씨 등 승리/심재철씨등 기자출신들은 고배 「앵커 출신 돌풍,기자출신 참패」 이번 총선의 결과다. KBS 9시뉴스 앵커였던 박성범씨(서울 중구·신한국당),역시 KBS 9시뉴스 앵커 출신 이윤성씨(인천 남동갑·신한국당),SBS 8시 뉴스 메인 앵커 맹형규씨(서울 송파 을·신한국당),MBC 뉴스 앵커 정동영씨(전주 덕진·국민회의) 등 TV 3사 「4인방」이 모두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정씨는 9만7천8백58표를 얻으며 전국 최다득표의 영광도 안았다.박씨는 4선 관록의 국민회의 정대철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MBC 아나운서를 지낸 변웅전씨도 충남 서산·태안에서 자민련 후보로 출마,「금배지」를 달게 됐다. 반면 기자출신 「정치 초년생」들은 고배를 들었다.극명한 대조였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경기 군포에서 출마한 심량섭씨(자민련)는 3등으로 낙선했고 경기 하남·광주에서 나온 전 한겨레신문 기자 문학진씨(국민회의)는 신한국당의 정영훈후보에게 밀려 분루를 삼켰다. 전 동아일보 북경특파원으로 서울 광진 을에 출마한 신한국당의 김충근씨도 국민회의 「추미애 돌풍」에 휘말려 좌초했고 경북 고령·성주의 송인식 전 세계일보 편집부국장(자민련)도 낙선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전 MBC기자 심재철씨(신한국당·경기 안양동안 갑)는 가수 최희준씨(59·국민회의)에게 밀렸고 인천 연수에 출마한 정구운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51·국민회의)도 고교동창인 서한샘 후보(52·신한국당)에게 6천여표차로 쓴맛을 봤다. 이밖에 국민회의가 영입한 송파 갑 김희완 후보(40·전 중앙일보기자),인천 부평 을 신용석 후보(55·전 조선일보 논설위원),마포 갑 김용술후보(56·전 경향신문 편집국장)도 모두 낙선했다. 대구 달성의 전 연합통신 부국장 김정훈씨(자민련)와 강원 홍천·횡성의 전 동아일보 기자 원용강씨(무소속)도 고배를 마셨다.〈김성수 기자〉 ◎재야­이우재씨 등 대거 여의도 입성/「색깔론」 주장 유권자들에 안먹혀 이번 총선에서는 무엇보다 재야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특히 문민정부 출범 이후 여당에 영입된 민중·노동운동가 출신 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기성 정치인의 높은 벽을 허물어 주목됐다. 70년대 학생운동의 상징격인 국민회의 김근태씨는 서울 도봉갑에서 재선 경력의 신한국당 양경자후보를 물리쳤다.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투옥된 이래 20여년 동안 수배·투옥을 겪었던 학생운동 수난사의 주인공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연합」(전학련)의장 등을 맡아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2년8개월의 옥고를 치렀던 서울 영등포 을의 국민회의 김민석씨는 최연소 당선의 영예도 거머쥐었다. 경기 부천 소사에서 전 국민회의 대변인 박지원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김문수씨도 5공 때 인천 5·3사태를 주도하는 등 20여년을 노동투쟁에 몸바쳐왔다.94년 신한국당에 입당했을 때 「색깔논쟁」이 일기도 했지만 이번 당선으로 잡음을 완전히 잠재웠다.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금천과 서울 은평을 야당 중진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된 이우재씨와 이재오씨는 옛 민중당의 대표와 사무총장을 지낸 민중운동가 출신. 지난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던 학생운동권 출신 설훈씨(서울 도봉을)도 운동권 선배인 민주당 유인태후보를 물리쳤다. 김근태씨와 함께 재야운동의 양축을 이뤘던 서울 동작갑의 장기표씨(민주당)도 14대에 이어 낙선했다.〈김태균 기자〉
  • 강북 갑·동대문 을(4·11총선 표밭현장을 가다:47·끝)

    ◎강북 갑/뚜렷한 현안없이 4후보 경합 치열/정태윤씨·김원길 의원·전대열씨 등 안간힘 9일 아침 6시30분 서울지하철 4호선 수유역.출근하는 시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10여명의 청년들이 「기호1번」을 외치며 신한국당 정태윤후보(42)를 연호했다. 같은 시각 맞은편 전철역 입구에선 국민회의 김원길의원(53)이 강북의 「큰인물」을 키워야 한다며 유권자들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또 다른 입구에선 민주당 전대열후보(55)와 자민련 김규원후보(67)가 각각 「깨끗한 정치」,「지역 일꾼」 등을 외치며 시민들의 손을 잡느라 여념이 없었다. 선거를 이틀 앞둔 9일까지는 국민회의 김후보가 현역의원의 프리미엄에 소선구제에선 줄곧 야당의원만 배출시킨 지역특성에 힘입어 다소 앞선다는 평이다. 그러나 신한국당 정후보는 『야당의원을 당선시켜 강북구가 덕본 게 무엇이냐』며 『낙후된 강북구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힘있는 여당을 밀어줘야 한다』고 「지역발전론」을 주장한다.경실련 정책실장 등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박정희정권에서는 유신반대와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국민회의 김의원은 『호남표가 많은 미아동 지역이 도봉을로 포함됐지만 전통적으로 야세가 강한 번동이 강북구에 편입됐기 때문에 승리에 변수는 있을 수 없다』고 자신했다. 긴급조치9호 위반과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민주당 전후보는 「3김정치」와 「지역할거주의」를 타파하자는 뜻에서 『반찬을 바꿉시다』는 구호를 외치고 다닌다. 자민련 김후보는 32년간 강북구를 지킨 「토박이」임을 강조하며 북한산 일대의 관광지 개발로 재정자립도가 31.9%에 불과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백문일 기자〉 ◎동대문 을/5선도전 김영구 의원 막판 굳히기/57%의 20∼30대·33% 호남표심이 변수 「5선 입성」이냐,「24년만의 등원」이냐―.서울 동대문을에서는 내리 5선에 도전하는 신한국당 김영구의원(56)의 선전속에 8,9대의원을 지낸 국민회의 김창환후보(60)가 뒤를 쫓고 있다. 『정국안정을 위한 과반의석 확보』를 강조하는 김의원에 맞서 『이번에는바꿔보자』며 막판 뒤집기를 노리는 김전의원이 얼마나 거리를 좁힐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한창 진행중인 이곳은 재정자립도가 51%로 비교적 낙후된 지역에 속한다.57%남짓의 20∼30대 표심과 33%에 이르는 호남표의 향배가 주요변수다. 민주당은 「젊은 연대」 사무처장을 지낸 김성식 당부대변인(38)을 내세웠고 자민련은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의 권승욱후보(35)를 출전시켰다.무당파국민연합 박상일후보(39)와 무소속 김태웅후보(54)가 가세했다. 신한국당 김의원은 『지역 심부름꾼을 뽑는데 영·호남,충청이 어디 있냐』며 지역할거타파를 부르짖고 있다.오랜 지역생활로 낯익은 도로변 상가와 달동네를 누비며 하루 1천명이상과 악수한다.『지역사정에 가장 밝은 경륜』을 앞세우며 막판 굳히기에 한창이다. 국민회의 김후보는 『한해 1만4천여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하는 등 YS경제는 실패작』이라며 표심을 흔들고 있다.하루 15차례이상 개인유세를 다니며 건강을 과시한다.병원을 경영하는 부인의 내조도 한몫. 민주당 김후보는 『동대문의 낡은 외투를 벗자』며 새로운 선택을 호소하고 있다.중년층을 만나면 「최진사댁 세째딸」을,젊은 층에게는 「정신차려 이 친구야」를 개사한 로고송으로 전략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자민련 권후보는 『문민독재는 4월 춘풍이 부는 처마끝의 고드름』이라고 표밭을 갈고 있다.특히 유세차량과 선거운동원,후보자·수행원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지역을 훑고 있다. 『추잡한 정파싸움을 이제는 끝내야한다』는 무당파국민연합의 박후보와 『지역주의나 특정 당수에 예속되지 않은 순수 유일한 무소속 후보』를 외치는 김후보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전경하 기자〉
  • 80년 최 대통령 하야 보름전/“전씨 대통령 추대” 결의

    ◎신군부 장성 모임서 지난 80년 7월말이나 8월초쯤 전두환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비롯,신군부 장성들이 모임을 갖고 전씨를 대통령으로 추대키로 결의한 것으로 밝혀졌다.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8월16일 하야를 발표하기 보름남짓 전이다. 1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및 5·18사건의 4차공판에서 노태우피고인은 『최대통령은 7월말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대통령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진술했다. 노피고인은 이어 『공군참모총장공관에서 열린 저녁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전씨에게 「우리의 운명」이라며 대통령직을 받아들이라고 했고,전씨가 이후 승낙했다』고 말했다. 차규헌피고인은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전두환장군 대통령추대」라는 현수막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공판에서 검찰은 노피고인을 비롯,유학성·이학봉·차규헌·허삼수·허화평피고인 등 6명을 상대로 79년 12월12일부터 81년 1월24일 비상계엄해제까지의 과정이 권력을 장악하는 내란이었다고 지적,보안사가 작성했다는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의 실체를 집중추궁했다. 또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경위 ▲주요정치인·학생·재야인사의 체포 ▲국보위 설치 및 운영 ▲언론통폐합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국회해산 ▲최대통령 하야와 전씨의 대통령취임과정 등도 추궁했다.〈박상렬 기자〉
  • 「12·12」 「5·18」 4차공판­법정주변 스케치

    ◎노씨 “답변방식 지시말라” 항변/“80년 정국은 「물계엄」 상태” 답변에 폭소/전씨에 「좋아하는 친구」·「이분」으로 호칭 4차공판이 열린 1일 검찰은 노태우 피고인을 대상으로 1백60여개 항목에 걸쳐 5·17 비상계엄확대조치 등에 관한 직접신문을 했다.이로써 비자금사건과 12·12 및 5·18사건과 관련,노피고인에 대한 직접신문은 마무리됐다. ○…노피고인은 불리한 대목에서 『내가 답변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가 김영일 재판장과 설전.김재판장이 『피고인이 검찰신문을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말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하라』고 주의를 주자,노피고인은 『꼭 그렇게 말해야 하는 규정이 있느냐 』며 『내 소신대로 말하면 되지,재판장이 답변방식을 지시할 수 있느냐』며 대들기도. ○…노피고인의 답변으로 두 차례 폭소가 터졌다.검찰이 5·17 당시 중앙청 봉쇄 때 국무회의장에 무장헌병을 1∼2m 간격으로 배치하지 않았느냐며 당시 사진을 제시하자,이를 뜯어본 노피고인이 『내가 볼 때는(집총병력의 간격이) 3m가 넘는 것 같다』고 답변해 웃음. 또 집권 당시 「물태우」라고 불리던 노피고인이 80년 봄의 상황을 설명하며 『당시 지역계엄이 선포돼 있었으나 시위가 계속 격렬해지고 정부의 대처능력은 떨어지는 등 「물계엄」상태였다』고 답변해 역시 폭소. ○…그동안 전피고인을 꼬박꼬박 「전두환 피고인」이라고 부르던 노피고인은 이날 「좋아하는 친구」,「이분」으로도 불러 화해한 느낌을 주기도. ○…서초동 서울지법 앞에는 단골손님인 재야단체회원들이 4·11총선과 시위중 숨진 노수석군 빈소에 몰린 탓인지 모처럼 평화로운 분위기.서초경찰서의 관계자는 『전직대통령의 재판 이후 처음으로 시위가 없었다』고 말했다. ○…허화평 피고인은 최대쟁점인 「시국수습방안」의 실체에 대해 『아마도 당시의 각종 시국대책회의에서 일반적으로 논의된 내용을 보안사 요원이 취합한 것을 일컫는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한 뒤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5월4일은 일요일이어서 모임이 없었다』고 진술. ○…검찰이 내란과정을 집요하게 추궁하자 한 변호인은 『도대체대법원 판사에게 사표를 강요한 것과 내란혐의가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며 『검찰은 범죄혐의와 관련성이 있는 부분만 신문해야 한다』고 불평.이양우 변호사는 『시국수습방안이란 아예 없었으며,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한 권정달 당시 보안사 보안처장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피력. ○…이학봉 피고인은 80년 8월 김영삼 신민당총재에게 은퇴를 종용한 배경을 「3김씨중 경상도 사람만 봐주려는 의도」라는 여론이 형성돼 문정수 비서를 통해 종용했다고 설명.국민연합 공동의장인 김대중씨는 학생시위의 배후조종혐의로,공화당총재인 김종필씨는 부정축재혐의로 구속,정계에서 퇴진시켰었다.〈박홍기·박은호·정종오 기자〉
  • 「12·12」이후 정권찬탈행위 규명/4차 공판 쟁점

    ◎국보위 설치 “내란의 과정”­“합법” 공방/최 대통령 하야 신군부 강압여부 초점 5·17 및 5·18 사건이 내란인지 여부를 가리는 4차 공판도 검찰과 피고인간의 뜨거운 공방 속에서 진행됐다. 검찰은 12·12사건 이후 「시국수습방안」 작성에서부터 81년 1월24일의 비상계엄 해제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신군부측의 정권찬탈을 위한 내란 행위라는 점을 추궁했다. 피고인들은 『불안한 정국과 안보 상황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행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일관되게 부인했다.변호인들도 『당시 조치는 최규하대통령이 행한 국정행위로,내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추궁에는 『모른다』 『아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검찰의 추궁 내용을 간추린다. ▷K공작계획◁ 80년 2월 보안사 정보처에 설치된 언론대책반에서 언론계를 통제,집권기반을 다지기 위해 마련한 안.이를 통해 기성 정치인들의 경쟁을 왜곡하고 최대통령 정부의 허약성을 강조했다. ▷시국수습◁ 방안 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 신군부측의 내란 혐의를 입증하는데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80년 5월 전피고인의 지시로 이른바 「보안사 3인방」인 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인 등 3명이 ▲계엄확대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 설치 ▲국회해산 등을 골자로 작성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 정국을 장악하기 위해 신군부가 취한 첫 조치.검찰은 이를 내란의 시발점으로 본다.비상계엄 전국확대는 80년 5월17일 상오 11시 국방부에서 주영복 당시 국방부장관이 주재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일부 참석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의됐다. ▷국무회의장에 병력배치◁ 비상계엄 전국 확대안의 의결을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장 주변에 수경사령관인 노피고인이 30경비단 병력 3백42명과 장갑차 4대를 배치,출입자를 통제했다.회의장 계단과 복도에도 무장한 병력을 1∼2m 간격으로 세워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주요인사연행◁ 새로운 정치판을 짜기 위한 조치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수경사의 헌병단 병력을 동원해 당시 국민연합 공동의장 김대중씨와 공화당 총재 김종필씨 등 정계인사를 체포,정치활동을중지시켰다. ▷국보위 설치◁ 80년 5월19일 전피고인이 최대통령에게 비상기구 설치를 건의해 5월27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설치한 기구이다.행정부를 통제하며 국정을 수행하는 혁명평의회 성격의 비상 권력기구로,대통령을 무력화시킨 내란의 주요 과정이라는 것이 검찰의 해석이다.피고인측은 대통령의 재가 등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기구라고 반박한다. ▷최대통령 하야◁ 80년 8월16일 최대통령의 하야과정에서 신군부측의 강압이 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그해 7월 전피고인이 『최대통령이 나에게 대통령직을 맡아달라고 했다』고 노피고인에게 말한 것을 계기로 최대통령의 하야가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전피고인은 8월27일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당선,9월1일 취임했다. ▷언론 통폐합◁ 80년 10월 초 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씨 등에 의해 작성된 통폐합안에 따라 언론사 사주들을 보안사로 불러 강제로 포기각서를 받았다. 이밖에 국회해산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신당창당 추진 등도 내란 혐의를 따지는 쟁점이다.〈박홍기 기자〉
  • 「12·12」 「5·18」 4차공판­노씨 증언 주요내용

    ◎노씨 “김대중씨 사형 내가 말렸다”/당시 현안처리 비사 등 공개/전씨 대통령 추대받자 눈물/언론통폐합 전씨 거듭 지시 노태우 피고인의 법정태도가 달라졌다. 5·17사건을 다루기 위해 1일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4차공판에서 노피고인은 필요에 따라 공세적·적극적 태도를 보였다.비사도 「소신껏」 공개했다. 검찰은 노피고인에 대한 직접신문에서 80년 7월말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권력이양의사를 밝힌 사실을 전사령관으로부터 들었느냐고 물었다.노피고인은 『7월말이 아니라 8월초로 기억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최대통령은 전사령관에게 『능력에 한계를 느껴 나라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으니 대신 맡아달라』고 말했다.전사령관은 깜짝 놀라 사양했다.최대통령이 거듭 부탁했다.『시간을 주십시오』라며 전사령관이 자리를 물러났다. 전사령관이 이를 노태우 수경사령관에게 얘기하자 『잘 하셨다』며 군 원로들의 의견을 묻는 게 좋겠다고 제의했다.며칠 후 유학성·황영시씨 등 신군부장성의 모임에서 뜻이 모아졌다.전사령관은 대통령으로 추대받자 「벅찬 운명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 대통령추대가 일부 군장성에 의해 최대통령의 하야(8월16일) 이전에 결정됐다는 사실을 시인한 셈이다. 노피고인의 답변은 이어졌다. 〈80년 11월.내란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김대중씨의 감형문제로 신군부내에서 논란이 일었다.노보안사령관은 전대통령을 찾아가 『사형집행은 곤란하다』고 진언했다.정적도 아닌데,이유가 어떻든 사형은 옳지 않다고 설득했다〉 노피고인은 『솔직히 「친구」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다』고 했다.순간 전씨 미간에 가벼운 경련이 스쳤다. 노피고인은 80년의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에 대한 보안사의 평가와 관련,『특정정치인을 거론해 평가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등 민감한 사안에는 일체 언급을 피하거나 모른다고 진술했다. 노피고인은 자신은 언론의 통·폐합을 반대한 장본인이라고도 주장했다. 〈80년 10월,권정달 보안처장이 작성한 통폐합안을 들고 전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자신은 『취지가 좋아도옳지 않다』고 반대했다.한달 뒤 이광표 문공부장관이 『대통령의 결재가 났으니 집행하는데 협조해달라』고 전했다.『왜 우리에게 시키냐』고 항의했다.그러나 대통령의 지시를 거역하지 못하고 「악역」을 맡게 됐다〉〈박선화 기자〉
  • 「5·17」직접신문 새달 매듭/검찰/1·22·29일 3차례 공판

    ◎4차때 「집권 시나리오」 입증 초점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29일 5·17과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직접 신문을 가능한 다음 달 1·22·29일에 열리는 세 차례의 재판에서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1일 열리는 4차 공판에서는 노태우·유학성·이학봉·차규헌·허삼수·허화평피고인 등 6명을,5차 공판에서는 전두환·황영시피고인 등 2명을,6차 공판에서는 이희성·주영복·정호용피고인 등 3명을 각각 신문한다. 검찰은 신문항목을 전두환피고인에 대해서는 5백여개,노태우피고인은 2백여개,이학봉피고인은 1백개,나머지 피고인에 대해서는 50∼60개 정도로 만들었다. 김상희 부장검사는 『4차 공판에서는 신군부측의 내란 혐의를 밝히기 위해 집권 시나리오인 「시국수습 방안」을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고 밝혔다.『5차 공판에서는 5·17과 5·18 두 사건을 병합심리토록 재판부에 요구키로 했다』고 덧붙였다.〈박홍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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