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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 “이라크 미군 증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이라크 문제와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미군을 증원한다고.”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전날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처음 시인한 데 이어 로버트 게이츠 신임 국방장관이 예고없이 이라크를 방문한 직후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2006년을 (미국에게) 실패한 1년으로 요약하면서 “이라크 내란 세력이 미국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 이라크를 방문중인 게이츠 국방장관이 돌아오는 대로 미군과 해병대를 얼마나 증파할 지를 보고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라크 미군의 대규모 증파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존 애비제이드 중부군 사령관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혀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애비제이드 중부군 사령관이 이라크 추가 파병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단견이라는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애비제이드 사령관은 “추가파병은 이라크군에게 치안확보 임무를 넘기는 시기만 늦추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면서 “군사력 외에 외교·지정학적 요소를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초당적 기구인 이라크연구그룹(ISG)도 이라크 미군 철군을 권고해왔다.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19일 인터뷰에서는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을 거명하며 “페이스 장군이 쓰는 재미있는 문구가 있는데,‘우리는 이기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지 않고 있다.’가 그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긍정적인 상황 진전이 있었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진짜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정파간 폭력행위”라고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중간선거 직전까지도 이라크에서 “분명히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호언장담했었다.소식통에 따르면 백악관이 검토하는 병력 증강 방안에는 6∼8개월간 1만 5000명∼3만명의 미군을 더 파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dawn@seoul.co.kr
  • 儒林(752)-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9)

    儒林(752)-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9)

    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9) 논어의 선진(先進)편에는 안연이 죽었을 때 공자가 취했던 장면을 보다 극적으로 전하고 있다.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통곡을 지나치게 하셨다. 모시고 있던 사람들이 말하였다. ‘선생님, 통곡이 지나치십니다.’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통곡이 지나치다고, 그런 사람을 위해 통곡이 지나치지 않으면 또 누구를 위하여 통곡하겠느냐.’” 그뿐이 아니었다. 안연이 죽은 2년 뒤 이번에는 또 다른 제자인 자로마저 죽는다. 안연이 공자의 사상을 계승할 수제자라면 자로는 제자 중에 성격이 가장 곧고 용감하여 13년 동안의 주유천하 중에서도 줄곧 공자를 호위하였던 애제자였다. 일찍이 공자 자신이 ‘도가 행하여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바다 속을 들어간다 해도 나를 따를 자는 자로뿐일 것이다.’라고 신임하였던 애제자였던 것이다. 공자가 초라하게 노나라로 돌아왔을 때도 자로는 끝까지 스승을 호위하였는데, 임무를 완수하자마자 곧 위나라로 가서 공회(孔 )의 읍재가 되었다. 그러나 위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이 소문을 듣자마자 공자는 ‘자로가 곧 죽겠구나.’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가 ‘중유(仲由:자로)같은 사람은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던 말이 그대로 들어맞은 셈이었는데, 실제로 자로는 공회를 구하려고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었다. 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공자는 ‘아아, 하늘이 나를 끊어버리는구나.(噫 天祝予)’라고 통곡하였다. 이는 안연이 죽었을 때의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天喪予)’의 표현보다 더욱 절망적인 탄식이었다. 이러한 아들의 죽음과 사랑하는 두 제자의 연이은 죽음은 공자의 운명관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평소에는 하늘(天)이나 하느님(上帝)과 같은 천도(天道)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펴지 않아 제자 자공(子貢)은 ‘선생님의 학문과 의표(儀表)에 대해서는 들어서 배울 수가 있었지만 선생님의 본성(本性)과 천도에 관한 말은 듣고 배울 수가 없었다.’라고 증언하고 있는데, 실제로 공자는 자로가 죽음에 관하여 물었을 때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能死)’라고 일축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공자가 안연과 자로가 죽었을 때 두번이나 ‘하늘이 나를 망친다.’하고 탄식하고,‘하늘이 나를 끊어버린다.’하고 한탄하는 것을 보면 말년에 공자는 하늘에 의해서 결정되는 인간의 명운을 인정하는 운명론자가 되어 버린 듯 보인다. 이는 공자 자신이 쓴 역사책 ‘춘추’의 마지막 부분이 ‘서수획린(西狩獲麟)’이라는 사건으로 끝을 맺는 사실을 통해서도 그러한 공자의 운명관을 미뤄 짐작케 하고 있는 것이다. 서수획린. 문자 그대로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 기린을 잡았다.’는 고사성어로 노나라의 애공 14년 봄(기원전 481년, 공자71세) 사람들이 노나라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을 잡은 일이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 [씨줄날줄] 전직 대통령/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대한민국 건국 이래 대통령 직에 오른 분은 모두 9명, 이 가운데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을 뺀 전직 대통령은 모두 여덟 분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민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전직’은 아직 없는 듯하다. 한때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개헌을 거듭하며 장기집권하다 4·19혁명으로 쫓겨났다. 그는 이국땅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타계한 뒤에야 국민의 용서를 받아 환국했다. 내각책임제 하의 유일한 대통령인 윤보선은 재직시 장면 총리와 끝없는 권력투쟁을 벌였다. 그러다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올 것이 왔다.”고 추인했다. 그는 뒷날 박정희를 상대로 반독재투쟁을 벌이지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협력하는 등 불투명한 정치 행각으로 빈축을 샀다. 윤보선을 뒤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업적에 관한 평가가 가장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이다. 경제성장은 공(功)으로 꼽히는 반면 장기집권과 독재적 통치는 어쩔 수 없는 과(過)의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종말과 그에 따른 시국 혼란을 틈타 총칼로 집권한 전두환, 그리고 전두환 세력의 2인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훗날 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 등을 선고받았다. 잇단 감형과 사면으로 자택에서 칩거한 지 오래됐지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노태우의 후임인 YS(김영삼 대통령)는 ‘IMF 사태’를 불러들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직전 대통령인 DJ(김대중)는 필생의 과업인 ‘햇볕정책’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새삼 시련을 맞고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사이의 혼란기에 잠시 대권을 계승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어제 아침 별세했다. 그는 박정희의 종말을 부른 ‘10·26사태’, 전두환의 권력장악 계기가 된 ‘12·12사태’, 그리고 국민의 숭고한 피로 얼룩진 ‘5·18 광주’를 권력의 최상부에서 겪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하야한 뒤로는 증언을 일체 거부한 채 세상을 떴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 없는 현실은 국민의 비극이다. 재직 시에 존경받고, 퇴직 후에도 길이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언제쯤이나 우리 역사에 등장할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홍남순과 DJ의 화해(?)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홍남순과 DJ의 화해(?)

    얼마 전 타계한 고(故) 홍남순 변호사는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자 큰 별이었다. 이명박·박근혜·고건·손학규·정동영 등 대권주자들과 여야 정당 대표들까지 줄줄이 빈소를 찾았으니 그의 비중을 능히 알 만했다. 홍 변호사는 60∼70년대 반독재 투쟁과 시국사범의 변론을 도맡았고,80년 5·18 민주화운동 때에는 내란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칠순 가까운 나이에 1년 7개월간이나 옥고까지 치렀다. 감옥에서도 온갖 고초와 고문, 협박을 당했지만 의연하고 남다른 기개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의 민주화 운동 궤적에서 잘 나타나듯이 홍 변호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같은 호남 출신인 DJ와 홍 변호사가 민주화 동지로서 수십년간 형제와도 같은 끈끈한 정을 나눠 온 것은 주지의 사실. 홍 변호사는 DJ가 군사정권 시절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등 숱한 고초를 겪을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런 홍 변호사에 대한 DJ의 고마움은 88년 13대 총선 때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홍 변호사의 둘째 아들인 기훈을 전남 화순에 공천한 것이다. 당시 전남 지역에서 DJ의 공천은 100% 당선을 뜻하기에 기훈은 3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정계입문에 성공했다. 홍기훈 의원은 14대 총선에서도 재공천 받으면서 홍 변호사와 DJ의 관계는 바위 같은 신뢰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도저히 깨질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의 신뢰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것 역시 결정적 계기는 국회의원 총선거다.96년 15대 총선 때 당연히 전남 화순에서 세번째 공천을 받으리라 생각했던 홍기훈 의원이 그만 공천에서 탈락한 것. 이와 관련해선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야사(野史)가 있다. 깃발만 꽂으면 되는 곳인 만큼 DJ측에서 공천 대가를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고, 네번째 대권 도전의 목표를 확실히 한 DJ가 전열정비 차원에서 물갈이를 하다 보니 시원찮은 의원 평가 성적을 받은 홍기훈 의원이 대상자가 되었다는 설까지 나돈다. 공천 대가와 관련, 구체적 액수까지 전해지나 확인할 길은 없다. 또 당시 야당의 경우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나 당선 확실지역의 공천을 받으면 당연히 일정액의 거금을 내는 게 상례였다. 어찌됐건 이 일로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된다. 홍 변호사는 지인들에게 “DJ가 공천 장사를 한다.”,“DJ가 호남을 망치고 있다.”며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DJ측도 홍 변호사의 이같은 비난에 무척 섭섭해했다고 한다.DJ의 한 측근은 “아들에게 두 번이나 금배지를 달게 해줬으면 보답은 된 것 아니냐.”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가 원하는 만남을 갖지 않았다.2년 후인 98년 DJ는 대통령에 당선됐고,2001년에는 홍 변호사가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5년간의 기나긴 투병생활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물리적 화해는 불가능해졌다. DJ가 홍 변호사 빈소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많은 이들은 민주화운동의 거목인 두 사람이 화해하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한다. 허주(虛舟·고 김윤환 의원의 아호)도 생을 마감하기 전 철천지원수처럼 여겼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용서하지 않았던가.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현실적 가치에 집착하다간 정말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jthan@seoul.co.kr
  • 해외 여행자보험 분쟁 잇달아

    “도난당한 물건 액수와 상관없이 50만원만 보상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경남 김해에 사는 사모(35)씨는 최근 뉴질랜드 여행 중 선물과 귀중품이 든 가방을 도난당했다. 여행 첫 날, 공항에서 나와 곧바로 여행버스에 실어둔 가방 5개 중 선물 등 값나가는 물건이 든 가방만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보험처리를 위해 가이드와 현지 경찰서에 도난신고를 마친 후 “보험사에서 책임질 것”이란 언질까지 받았지만 사정은 달랐다. 해당 여행사에서는 “보험약관상 보상금액이 50만원으로 정해져 있어 여행사나 보험사가 그 이상의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긴 추석연휴 기간 중 30만 명 이상의 여행객들이 해외로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여행자보험으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비현실적인 약관이나 불공정 조항 때문에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는 여행자보험과 관련해 제기되는 민원이 부쩍 늘고 있다. 추석 이후 이 숫자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남아 등지에서는 스쿠버다이빙, 스노클링 등 해상 스포츠가 필수 코스이지만 사고가 나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9월 태국 파타야에서 휴가를 즐기던 이모(34)씨는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산호에 쓸려 팔이 3㎝ 정도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보상은 전혀 받지 못했다.일부 여행자보험 약관에 패러세일링, 바나나코트, 스쿠버다이빙, 스카이다이빙, 행글라이딩 등의 사고는 보상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가이드가 사고 책임은 모두 개인의 몫이라고 적힌 종이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면서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의 모든 여행자가 즐기는 코스를 두고 책임을 전가하는 셈인데, 비현실적이고 불공정한 조항”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쿠데타 이후 여전히 비상정국 상태인 태국의 경우 불안한 치안상황 때문에 사고를 당해도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보험약관에는 혁명, 내란, 전쟁, 폭동, 소요 등에 따른 사고에 대해 보험사는 보상책임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장금액이 지나치게 낮은 것도 문제다. 패키지 여행의 경우 일부 여행보험의 보상금액은 사망시 최대 5000만원, 상해시 100만원 정도. 여행 도중 인적·물적인 피해가 날 경우 여행자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손해보험협회 박준식 팀장은 “출반 전 반드시 여행사에 어떤 여행자보험에 가입돼 있는지 확인해 보고 보장금액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따로 보험을 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여행사의 보증보험 가입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한국일반여행업협회 서대순 대리는 “신문 광고 등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는 5억원의 보증보험에 들어야 한다.”면서 “보증보험을 든 여행사는 폐업하거나 부도가 나도 소비자들은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입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유영규 나길회기자 whoami@seoul.co.kr
  • [유림 속 한자이야기] 葉書(엽서)

    儒林(684)에 나오는 ‘葉書’(잎사귀 엽/글 서)는 ‘간편한 通信(통신)을 위해 만들어진 통신방식으로 봉투에 넣지 않고 그대로 부칠 수 있는 카드 형식의 郵便(우편)’을 말한다. ‘葉’자는 본래 ‘ ’(초)가 없는 형태로 쓰였다. 아랫부분은 ‘나무’의 상형이며, 윗부분은 가지에 매달린 ‘잎새’를 본뜬 것이다.用例(용례)에는 金枝玉葉(금지옥엽:임금의 가족을 높여 이르거나 귀한 자손을 이르는 말),一葉片舟(일엽편주:한 척의 조그마한 배),枝葉(지엽:식물의 가지와 잎처럼 본질적이거나 중요하지 아니하고 부차적인 부분),秋風落葉(추풍낙엽:어떤 형세나 세력이 갑자기 기울어지거나 헤어져 흩어지는 모양)’ 등이 있다. ‘書’자는 ‘글을 쓰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오른 손으로 붓을 잡고 있는 모양’인 ‘聿(붓 율)’과 먹물이 담긴 벼루 모양에서 변화된 ‘曰’을 합한 會意字(회의자).‘書寫(서사:글씨를 베낌),書案(서안:예전에, 책을 얹던 책상),雁書(안서:먼 곳에서 소식을 전하는 편지),精書(정서:정신을 가다듬고 주의를 집중하여 글씨를 씀)’ 등에 쓰인다. 세계 최초의 郵便葉書(우편엽서)는 1869년 10월경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發行(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엽서의 시초는 1843년 골이 考案(고안)한 것이라 하며,1846년 빅토리아 여왕 夫妻(부처)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우편으로 보냈다는 記錄(기록)이 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독일의 출판업자 슈바르츠의 양부모가 마그데부르크에서 발이 묶이자, 슈바르츠가 시국 사정을 알리기 위해 印刷所(인쇄소)에 있던 ‘포대도(砲隊圖)’를 엽서에 인쇄하여 여기에 짧은 글을 적어 보낸 것이 그림엽서의 시작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림엽서는 인쇄술이 발달한 독일에서부터 各國(각국)으로 전파되었다. 풍경사진이 담긴 그림엽서는 1875년 독일에서 나왔고,1888년에는 베를린의 匠人(장인) 헨델이 자기 공장의 사진을 넣은 선전용 그림엽서를 만들어 주목을 끌었다.官製(관제) 그림엽서는 1880년 헝가리 우정청이 歷史(역사),風俗(풍속),風景(풍경)을 주제로 하여 3색판으로 만든 것이 嚆矢(효시)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葉書는 光武(광무) 4년(1900) 5월10일, 우체엽서(郵遞葉書)라는 이름으로 발행한 국내용인데 액면가가 壹錢(일전)이었다.國內用(국내용) 普通葉書(보통엽서) 1전,往復葉書(왕복엽서) 2전,國際用(국제용) 普通葉書 4전,往復葉書 8전의 4종이 있었다.1차는 1900∼1901년 국내에서,2차는 1903년 6월 독수리우표와 함께 프랑스에서 인쇄하였다. 보통엽서 1전은 大韓帝國(대한제국) 農商工部(농상공부) 인쇄국에서 製造(제조)한 것과 전환국에서 제조한 것 2가지가 있었다. 金大中(김대중) 前大統領(전대통령)이 이른바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으로 육군교도소와 청주교도소에서 收監生活(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에게 보낸 獄中(옥중) 書信은 많은 사람들의 心琴(심금)을 울렸다.死刑囚(사형수)와 無期囚(무기수)로서 수감 생활 동안 가족에게만 월 1회의 봉함편지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단 한 장의 葉書에 빼곡하게 쓴 29통의 서신이 矯導官(교도관)들의 면밀한 검열을 거쳐 집으로 우송되었음은 물론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휴가철 여행보험도 따져보고 들자

    휴가철 여행보험도 따져보고 들자

    여름휴가철이 시작됐다. 휴가철에 해외로 떠날 사람은 정부 추산으로만 120만명이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보험에 드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한다. 여행보험은 보험금 지급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여행을 다녀오면 보험료가 자동 소멸된다. 일부 기업들이 여행보험에 무료로 가입해주긴 하나 사망보험금 1억원을 빼면 상해사고나 질병에 대한 보상한도액이 낮은 편이다. 단체여행의 경우 여행사가 일괄가입할 수 있어 가입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비교해보고 여행 전 가입을 비행기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갈 때는 탑승 전 공항에서 여행자보험에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여러 상품을 미리 비교해보고 해외여행은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전, 국내여행은 2∼3일전에 드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보험사의 책임은 일반적으로는 보험증권에 기재된 보험기간의 첫날 오후 4시부터 시작된다. 당일 오전에도 움직임이 많다면 보험기간을 하루 일찍 시작해두거나 보장기간을 출발시간부터 적용받도록 조정해둘 필요가 있다. 해외여행보험은 24시간 한국어 서비스가 가능한 상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가족여행의 경우 가족형 상품을 고르면 자녀는 물론 만 70세 전후 부모님도 가입이 가능하다. 연령에 따라 보장내역이 조금씩 다르므로 내역을 확인해야 한다. 예컨대 가족형은 가입자 본인만 식중독 등 질병치료가 보상되는 경우가 있어 사전에 보장내역을 확인, 필요에 맞게 조정해 해둘 필요가 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여행보험은 보험료가 1인당 3일 기준으로 5000원 안팎, 해외 여행보험은 일주일 기준으로 1만 5000원 안팎이다. ●해외여행보험, 현지에서 필요한 서류를 챙겨와야 해외여행은 여행목적·기간에 따라 신경써야 할 대목이 다르다. 단기 해외여행의 경우 휴대품 도난으로 인한 손해가 빈번하다 해외여행보험은 여행중 상해로 숨졌거나 다쳤을 때 보험금을 준다. 상해로 장해가 생기면 장해 정도에 따라 보험금이 지급되며 가입금액 한도내에서 피보험자가 쓴 실제 의료비가 지급된다. 질병도 마찬가지다. 질병 사망은 여행 중 발생한 질병으로 보험기간이 끝난 뒤 30일 이내에 사망했을 경우 해당된다. 의사 치료를 받은 시기부터 180일간 피보험자가 실제 지급한 비용을 보험금으로 받을 수 있다. 해외에서 병원을 이용했을 때에는 의사진단서, 치료비 영수증 등을 꼭 챙겨와야 한다.AIG손해보험에 따르면 상해와 질병 의료비에 대한 보상한도액이 각각 최소 300만원(미주 지역 최소 1000만원)은 돼야 본인의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 휴대품을 도난당했을 때는 현지 경찰의 확인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본인 부주의로 분실했을 때는 보상받을 수 없다. 가입자 과실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경우에도 보상된다. 여행도중 탑승한 항공기가 납치돼 예정된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경우에도 보험금이 지급된다. 반면 고의사고, 자살, 범죄·폭력행위 등으로 인한 상해는 보상되지 않는다. 임신부가 여행중에 출산 또는 유산하더라도 보상받을 수 없다. 여행지 국가의 전쟁·내란·소요 등으로 인한 피해는 전쟁위험 담보특약에 들지 않는 한 보상되지 않는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선조들이 어떻게 나라 지켰는지 알아야”

    “선조들이 어떻게 나라 지켰는지 알아야”

    “다음 세대에게 우리나라가 이제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고 선조들이 나라와 겨레를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는지를 잘 전해주어야 합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꾸준한 요가로 건강 또한 40대 못지 않다. 백석주(84·전 재향군인회장) 예비역 대장이다. 그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특별한 의미’를 하나 생산해냈다. 역사 학자도 큰 맘먹고 해야 하는 ‘우리나라 전란사’를 집대성, 펴낸 것(원민 간행). 상·중·하 3권으로 20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기존의 단순 전쟁사가 아닌 전란의 원인과 배경, 전란 중의 충신과 간신 등을 재미있게 분석해 눈길을 끈다. 특히 기존에 접하기 힘들었던 고대 단군조선 이전의 비리국·양운국·구다천국 등 12국가의 흥망성쇠를 자세히 다뤘다. 또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조선시대의 각종 내란과 외란, 그리고 헤이그 밀사파견과 일진회 이면사 등 한일 강제병합 당시의 여러 비화가 흥미진진하다. 특히 신라시대의 무오병법, 고려의 김해병서, 조선시대의 진설역대병요·동국병감·오위진법·무경십서주해·병장도설·위장필람·훈영차록·제승방략 등 다양한 병법을 소개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료수집 8년, 컴퓨터 입력시키는데 2년 등 생생한 ‘전사 기록물’을 완성하는 데는 모두 10년 걸렸다.80중반의 나이에 왕성한 집필의욕을 보여줘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받고 있다. 백 장군은 “처음에는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다가 우리나라 전란사로 번졌고 나중에는 상고시대까지 연구하게 됐다.”고 저술계기를 설명했다. 아울러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그 지구 안에 한국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런데 수많은 고통과 변천을 거듭해왔다.”면서 우리는 여기에서 배우고 느껴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더욱 힘써야 한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이를 위한 출판기념회는 6.25에 맞춰 25일 오후 6시30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홀에서 갖는다. 백 장군은 육사8기4반 출신으로 6.25때 3사단(대위)에서 백두산 바로 아래까지 진격하면서 여러 차례 사선을 넘나들었다. 이후 8사단장과 육군대학총장, 육사교장 등을 지낸 뒤 81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예편했다. 육사교장때에는 10.26사건을 접했는데 육사생도였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에게 부친의 서거소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백 장군은 이번 출판을 시작으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료수집 중인 ‘역사속의 야담기’와 ‘흥미있는 한국시조’ 등 3,4권을 더 집필할 예정이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길섶에서] 비문증/우득정 논설위원

    아침 출근길 아파트 현관 문을 나서는 순간 오른쪽 눈 앞에 날파리 한마리가 어른거린다. 손을 몇번 내저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안경을 벗어 닦고 눈을 수없이 끔뻑여도 그대로다. 태양을 향해 눈을 감자 주황빛 허공에 날파리가 부산하게 움직인다. 점심시간 안과에서 지루한 검사과정을 거친 후에 ‘비문증’이라는 진단이 떨어진다. 노화현상의 일종이라며 치료법이 없으니 그냥 없는 듯 잊고 지내란다. 문득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눈 앞을 휘저으며 저저분한 것들이 어른거린다고 하소연하셨다. 그때는 오랜 투병생활 끝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렇거니 지레 짐작했다. 진작 병명을 알았더라도 별 도리는 없었겠지만 어머니의 답답했던 마음은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며칠 후 친구들과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만취된 친구가 혀가 꼬부라진 말투로 중얼거린다.“그제 자네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술을 그만 먹이라고 그래. 벌써 두번째야.”어머니는 아직도 자식이 걱정스러워 친구의 꿈에, 또 날파리가 되어 내 눈에 어른거리는 것일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남정예 만화작품전 4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이트센터 5층.10여년간 조선시대 민화에 매달려온 남정예의 첫번째 개인전. 까치와 호랑이, 봉황, 용, 사슴, 해, 달 등을 통해 삶의 원초적 소망인 장수와 다복,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02)736-1020. ■ 코리아 판타지(氣) 전통적 조형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신범상의 조각전.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테마로 고구려 역사의 정체성을 현재와의 연결고리로 해석해낸 작품들을 보여준다.(02)730-1144. ■ 김춘수·전혁림 시·판화전 8일까지 대구 대봉1동 맥향화랑. 맥향화랑이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전시.‘꽃’ 등 김춘수 시인의 대표적 시들, 그리고 중견작가 전혁림이 각 시의 정신을 살려 제작한 판화 20점을 붙여 전시한다.(053)421-2005. ●뮤지컬■ 빨래 4월23일까지 상명아틓로1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 고단한 서울살이. 하지만 빨래로 묵은 때를 털어내듯 어제의 고통을 툭툭 털어내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달동네 서민들의 이야기. 추민주 작·연출, 김영옥 박은영 등 출연. 화∼금 8시, 토·일 3시·7시,1만 8000∼3만원.(02)762-9190. ■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 4월2일까지 화∼금 8시, 수 3시·8시, 토·일 3시·7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줄거리에 대중가요, 팝을 입힌 편집뮤지컬. 이원종 연출, 이휘재 춘자 안정훈 등 출연.3만∼12만원.1588-7890. ■ 벽을 뚫는 남자 4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8시, 일 3시·7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자유자재로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소심한 남자의 인생 역전기. 임도완 연출, 박상원 엄기준 등 출연.4만∼7만원.1588-7890. ■ 미스터 마우스 4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3시·6시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뇌수술로 천재가 된 바보 인후의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는다. 이현규 연출, 서범석 김태한 출연.3만원.(02)747-2070. ●어린이■ 달도 달도 밝다 4월6일∼5월8일 월 4·8시, 화∼금 4시, 토 1시 예술극장 나무와물. 봉산탈춤, 민요 등 전통 놀이로 만나는 장산곶매 설화.1만 5000원.(02)745-2124. ■ 하마가 난다 4월26일까지 화목금 2시·4시30분, 수 11시·3시, 토일 1시·3시30분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룬 라이트형제와 조선시대 정평구의 이야기.2만원.(02)382-5477. ●클래식■ 서울시립교향악단 ‘비르투오조 콘서트’ 4월7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피아니스트 이경숙,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첼리스트 정명화, 지휘자 정명훈의 협연 무대. ■ 코리아 팝스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 4월4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영화 ‘웰컴 투 동막골’‘왕의 남자’‘말아톤’ 주제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주제가, 팝으로 편곡한 베토벤과 바흐의 음악 등 다양한 곡들을 연주. ■ 아침에 듣는 클래식-브런치 콘서트 4월 11일 오전 11시 군포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로시니의 오페라 ‘윌리엄텔’서곡,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등 연주. ●연극■ 격정만리 4월1∼1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혼란의 시대를 살아낸 연극인들의 격정적인 삶을 조명한다. 극단 아리랑의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광대들의 혼을 기린다. 김명곤 작·연출, 지현준 이승비 등 출연. 월∼금 7시30분, 토 4시·7시30분, 일 3시,1만 4000∼5만원.(02)762-9190. ■ 어느 계단 이야기 4월1∼12일 화∼금 7시30분, 토·일 4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3대의 이야기.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작·이송 연출, 백성희 이승옥 등 출연.2만∼3만원.(02)2280-4115. ■ 날 보러와요 4월9일까지 화∼금 8시, 토 3시·7시, 일 3시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 초연 10주년을 맞아 최용민, 권해효, 김내하, 류태호 등 원년 멤버들이 출연한다.2만∼5만원.1544-5955.
  • 야호! 일요일 역사여행 아하! 그렇구나

    야호! 일요일 역사여행 아하! 그렇구나

    ‘손병희 선생, 유관순 열사, 김대중 전 대통령, 조봉암 진보당수,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익환 목사. 이들이 수감됐던 곳은?’이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한다면 당신의 역사지식은 반쪽 짜리다. 각기 다른 시대, 전혀 다른 사건의 주체인 이들은 모두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흔히 일제 때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으로만 알려져 있는 이곳이 해방 이후 수십년간 이어진 철권통치의 상흔까지 함께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들 알지 못한다. 서대문형무소의 이면에 자리한 비밀과 사연을 시민단체 KYC(한국청년연합회)가 26일부터 ‘평화길라잡이’라는 안내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에 알린다. ●해방뒤 87년까지 민주열사등도 옥고 치러 현재 서대문형무소에는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이 겪은 고초를 보여주는 전시실은 마련돼 있지만 해방 이후 1987년까지 교도소로 쓰였던 사실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이 기간에 국가권력에 의해 탄압받은 많은 민주인사가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 고 문익환 목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지난해 8·15 민족 대축전 때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는 이곳의 고문실을 둘러보며 “우리 남편도 76년 3·1 민족구국선언을 발표한 다음날 여기에 투옥됐었지.”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죄에 휘말려 사형선고를 받은 뒤 수감됐던 곳도 여기다. 최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들, 이승만 정권 시절 간첩으로 몰려 최후를 맞은 진보당 조봉암 당수가 사형 집행 직전 투옥된 곳이기도 하다. 박정희 정권시절 민족일보를 통해 평화통일과 남북교류의 논조를 펼쳤다가 61년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한도 서려 있다. 국제저널리스트협회는 사형 집행 이듬해에 조 사장에게 국제기자상을 추서하기도 했다. 고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과 10·26사태를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도 여기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밥에 이물질많아 여운형선생은 이빨 부러지기도 ‘평화길라잡이’에서는 투옥된 독립투사들의 고초도 소개된다. 일제 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투사들의 식기 안에는 1부터 10까지 숫자가 표시돼 있었다. 수감자의 독립운동 정도 등에 따라 1∼10등급을 나눠 식사량을 달리 했기 때문이었다. 밥에 이물질도 많이 들어 있어 이곳에서 옥살이를 한 여운형 선생은 돌을 씹어 이가 부러지고 턱을 다쳐 출옥 뒤에도 많은 후유증을 겪었다고 한다. 수감자들에게는 쌀 10%, 보리나 조 50%, 콩 40%로 된 밥이 나왔다. 해방될 무렵에는 콩 대신 콩깻묵만 줘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기도 했다. ‘평화길라잡이’에서는 3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은 15명이 안내자로 나선다. 현주 간사는 “학생들의 체험 및 참여학습 기회가 많아지면서 서대문형무소 등 역사적인 현장을 찾는 시민들이 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역사를 설명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동안 서대문형무소를 보면서 일본에 대한 증오심만을 키우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민주 열사 등 묻혀졌던 부분도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마다 진행된다. 참가신청 및 문의 인터넷 www.peace2u.or.kr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카바레안에 온돌방 있읍니다

    카바레안에 온돌방 있읍니다

    춤을 추는 「카바레」에 난데없이 보료와 사방침이 등장했다. 그것도 보통「카바레」가 아닌 세칭 「아르바이트·홀」이란 곳에. 춤추는 「플로어」와 술마실 「테이블」이야 으레 있어야 하는 것. 그러나 「카바레」한 구석에 온돌방을 꾸며 미닫이 하나만 닫으면 바로 그들만의 세계가 전개되는 안방이 등장하는 시대다. 「아르바이트·홀」의 근대화랄까 다음은 「아르바이트·홀」목하(目下) 성업기(盛業記). 「커트」된 영화 「필름」까지 그 외설 여부가 말썽이되는 한국에서 유독 「커트」되지 않은 「신」의 자유가 있는 곳이 바로 「아르바이트·홀」-. 그처럼 숱한 유부녀들을 울려 놓고도 오히려 독버섯처럼 번식해 가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에 만도 로 알려진 곳은 30여개소. 모두 「카바레」허가를 얻어 합법적인 영업행위를 하고 있으나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카바레」와는 그 업태(業態)가 다르다. 정상적인 「카바레」라면 남자 손님을 접대하는 「호스테스」(댄서)가 있거나 아니면 동반남녀만을 받게 되어있다. 「카바레」에 여자들만이 들어간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 그러나 「아르바이트·홀」의 경우, 어떤 여성이든 1백50원~2백원의 입장료(법망(法網)을 벗어나기 위해 차권(茶券) 식권(食券) 등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지만) 만 내면 「프리·패스」. 일단 입장한뒤 춤을 청해오는 신사들의 손길만 기다리면 된다. 「파트너」바꾸는 것은 여자들의 의사에 달린 것. 이래서 「아르바이트·홀」은 여성천국. 그 여성천국을 관광하기 위해 서울시내에서 최신 「카바레」를 들어가 보자. 우선 입구에서 男 2백50원. 女 1백50원의 입장료를 물고 종이쪽지 하나를 받고 「패스」. 이 종이쪽지로는 싸구려 「콜라」한잔을 마실 수 있다. 1천평이 넘는 「매머드·홀」은 한가운데 약 50%정도가 「플로어」를 둘러싸고 주위엔 두줄로 약3백여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다.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이 「테이블」에 앉아 현찰로 술을 사 마실 수도 있다. 더욱 이채로운 것은 「테이블」옆 벽쪽에 마련되어 있는 한식(韓式)방들. 한방에 7·8명이 들어앉아 마실 수 있는 이 「카바레」속의 이색지대 온돌방에는 큰 상과 보료. 사방침까지 마련되어 있다. 서로 눈이 맞아 「플로어」서 한바탕 「댄스」를 즐기던 선남선녀들이 이 방안에서 술을 마시며 즐길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나 과연 술뿐일까? 미닫이를 닫으면 「홀」과는 절연- 그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르바이트·홀」에서 눈을 맞추어 여관이나 「호텔」로 장소이동을 하던 번거로움을 없애자는 것일까? 「인스턴트」시대에 발맞추는 「아르바이트·홀」의 근대화일까? 춤을 추어보자. 「테이블」에 앉거나 「플로어」주변에 서있는 여성들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손을 내밀면 OK. 거절하면 딴 여성에게 손길을 옮기는 수 밖에 없다. 이래서 여성이 응하면 「플로어」에 나서서 춤을 출 수 있다. 재수좋게 만나면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계속 출수 있고…. 「카바레」에서 호흡이 맞아 간단히 유부녀를 농락한 제비족 공갈단의 존재는 얼마전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단 일. 「라스트·블루스」까지 함께 추었다면 40% 성공. 끝난뒤 『차나 한잔』 권유에 못이기는 체하고 따라나서면 90% 성공이라는 말도 있다. 나머지 10%는 남자의 실력여하에 달린 것. 여자측의 의사 표시는 이미 끝난 것이라고 한다. 이 「프리·섹스」왕국(王國)의 여성고객중 약 60%가량이 30代 이상의 여인들이란데 문제가 있다. 춤바람난 유부녀나 과부를 노린 세칭 「제비족」이 꽃에 나비가 모여들 듯 「아르바이트·홀」을 찾아들기 때문이다. 이들 30代여인들과 제비족의 관계는 하룻밤 정사로 끝나지 않는다. 제비족들이 노리는 것은 여체(女體)자체가 아니라 그녀들로부터 나오는 금품(金品)이기 때문. 이래서 아차 하룻밤 정사는 끝없는 불륜(不倫)과 파멸을 초래한다. 「프리·섹스」가 「프리·섹스」로만 끝나지 않는 곳. 그래서 「아르바이트·홀」이 도심보다 변두리 지역에 많은 것은 바로 이런 때문. 천호동. 청량리, 마포, 한강로, 용산, 왕십리, 정릉, 신촌들이 「아르바이트·홀」의 현주소다. 「아르바이트·홀」은 춤바람난 유부녀나 제비족의 전용 「데이트」장은 아니다. 고객을 끌기위해 출장나온 「콜·걸」도, 춤을 갓배운 념녀 대학생도, 주부도, 하룻밤을 즐기기 위해 찾아드는 「샐러리맨」·「오피스·걸」도, 철없는 연인들도 마음대로 찾아들 수 있는 곳이다. 이래서 「피크」를 이루는 토요일밤의 「아르바이트·홀」은 축소판 서울의 밤을 이룬다. 억제되어 있던 성적 충동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는 때문일까? 서울의 「아르바이트·홀」은 날로 그 수가 늘어나고 대형화해간다. 「아르바이트·홀」에서의 춤은 「레크리에이션」이나 사교의 한계를 넘게 마련. 「라스트·블루스」의 유장한 「리듬」속에 오늘 밤도 한국의 「프리·섹스」지대, 「아르바이트·홀」은 목하(目下) 성업중이다. ■ 제비족 감별법 10章 ①「지리박」잘 추는 사내를 조심하라 = 춤 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지리박」. 그래서 제비족들은 「트로트」도 「지리박·스텝」으로 밟는다. ② 예의바른 청년신사를 경계하라 = 제비족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자기 정체가 드러나는 일. 그래서 유부녀들이 제비족임을 눈치못채게 영국신사 뺨칠 정도로 예의가 바르다. ③ 가장자리로 「리드」해 가는 사내는 제비족 = 그래야 많은 사람 앞에서 춤실력을 과시할 수 있으니까. 「아마추어」들은 정반대로 「플로어」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마련. ④ 제비는 젊은 여자를 싫어한다. = 대체로 젊은 여자들에겐 돈이 없다. 제비가 노리는건 나이많고 얼굴이 예쁘지 않은 중년 부인들. 안팔리는 여자만을 고른다. ⑤ 저고리 윗 「포키트」의「포케치프」는 적신호(赤信號) =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도 제비족은 정장(正裝). 기름에 튀긴 것처럼 매끈하고 항상 저고리 윗 「포키트」엔 「포케치프」가 꽂혀있게 마련. ⑥ 선제(先制)공격이 없는 사내는 위험 = 사내란 거의가 능동적. 그러나 제비족은 상대편서 어떤 반응을 보이기 전엔 절대로 허리를 잡은 「리드」를 죄거나 뺨을 갖다대지 않는다. ⑦「카바레」아닌 딴곳에서의 「데이트」약속을 요구하는 사내 = 「아마추어」는 대부분 (즉결)卽決주의. 그러나 제비족은 지구전이다. 「아마추어」들은 밖에서의 「데이트」를 꺼리기 때문에 다음 만날 약속을 잘하지 않는다. ⑧ 춤을 추며 인사를 자주하는 사내 = 그때그때 적당한 핑계를 대지만 「아마추어」의 경우, 아는 사람을 만나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정석(定石). ⑨「리드」가 부드럽고 능란한 사내 = 춤은 제비족의 필수조건. 황홀한 「리드」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⑩ 춤추는 곳을 잘 옮기는 사내 = 「아마추어」들은 A「카바레」에서 한 여자를 사귀게 되면 춤은 꼭 A「카바레」만을 이용. 매일 후조처럼 장소를 바꾸는 사내는 99% 제비족이다. [선데이서울 69년 7/27 제2권 30호 통권 제44호]
  • 해외여행 위험지역 미리 체크 하세요

    해외여행 위험지역 미리 체크 하세요

    외교통상부는 연간 1300만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들의 해외여행 안전을 위해 130여개국에서 수집된 정보 즉, 정정불안, 치안상태, 테러위험 등을 토대로 4단계의 여행경보를 내놓고 있다.48개국 60개 지역이 해당된다. 용태영기자 피랍사건을 계기로 눈여겨볼 대목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조치는 4단계인 ‘여행금지’구역. 전쟁 상태나 마찬가지인 이라크가 유일하다. 지난 2004년 6월 김선일씨 납치·살해사건 이후 금지지역으로 됐다. 입국이 금지되고 입국했다고 하더라도 즉시 대피하고 철수해야 한다. 다음은 3단계인 ‘여행제한’구역. 반군과 동맹연합군의 포격전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다. 그러나 법적으로 국민들의 여행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1월 아프간의 최대 위험지역의 하나인 칸다하르에서 국내 종교단체의 예술·문화행사가 열렸다.10대 청소년들까지 참가한 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 대사관 관계자들은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물론 극구 만류했다. 여행의 필요성을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취지의 2단계 ‘여행주의’지역의 경우도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강력사건이나 내란이 일어날 수 있는 전 단계에 있는 곳이다. 현재 19개국 40지역에 이르고,‘신변 안전에 조심하라.’는 1단계 ‘여행유의’국가는 35개국 19지역이다. 여행을 하려는 국가나 지역의 안전 여부와 주의 사항은 외교부홈페이지(www.0404.go.kr)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DJ “나도 사형집행 직전까지 갔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26일 “우리 나라와 전 세계에서 사형제도가 없어져 민주주의가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사형제 폐지를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제앰네스티(AI) 기고문를 통해 “한국의 인혁당 사건이 그러했고 나 자신도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 직전까지 갔던 일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98년 대통령 취임 이후 5년 동안 단 한 사람도 사형집행을 한 일이 없으며 몇 사람은 무기징역으로 감형시켰다.”고 소개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올해 한국을 ‘사형제 폐지를 위한 집중 캠페인 국가’로 선정, 김 전 대통령의 기고문을 세계 160개국의 국제앰네스티 회원 소식지에 실을 예정이다. 이 기구의 한국지부 김희진 사무국장은 “국제앰네스티는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양심수로 지정해 구명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며 “김 전 대통령 기고문을 통해 사형제 폐지운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실전논술] 바람직한 법을 만드려면…

    ● 다음은 ‘한비자´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에 나타난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과 시행에서의 문제점을 밝히고, 이와 관련하여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법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했다. 화씨는 두 발이 잘려 왕궁으로 갈 수 없었으므로 돌모양으로 된 옥덩어리(璞玉)를 가슴에 품고 매일같이 초산의 기슭에서 엎드려 울었다. 사흘 낮 사흘 밤을 계속 울고 나자, 눈물은 마르고 눈에서 피가 흘렀다. 이 때 문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까닭을 묻게 했다. “이 세상에는 죄를 범하여 발을 잘리는 형을 받은 자가 많은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슬프게 울고 있는가?” 화씨는 대답했다. “나는 다리가 잘린 것이 원통해서 우는 것은 아닙니다. 이 보석이 그저 돌덩이 취급을 당하고,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므로 그것이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문왕은 즉시 옥인에게 그 박옥을 갈아서 감정을 하게 하니 과연 그것은 희귀한 보옥(寶玉)이었다. 이로부터 그 보석은 그의 이름을 따서 화씨의 옥, 즉 ‘화씨(和氏)의 벽(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옥은 당시의 진나라 왕이,“바라건대 열다섯 성으로 그것과 바꾸고 싶다.”고 제안했을 정도로 유명한 옥이 되었다. 원래 보옥이란 것은 목구멍에서 손이 내밀어질 정도로 임금이 탐내는 것이다. 또한 화씨가 헌상한 박옥(璞玉)이 설사 보석이 아니었더라도, 임금으로서는 아무런 손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씨가 두 발을 잘리운 다음에야 그 구슬돌이 보석이란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임금이 탐내는 보석조차도 그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임금에게 있어 법술(法術)의 경우를 살펴보면 화씨의 벽처럼 시급히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임금은 법술을 펴는 것을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릇되어도 금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술을 주창하는 신하나 사람이 아직 임금에게 주지 않은 것은 다만 그가 법술이라는 구슬들(보옥)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임금이 법술을 쓰게 되면 대신은 국정을 제 마음대로 못하고, 측근은 임금의 위엄을 빌릴 수 없게 된다. 법이 나라에 행해지면 떠돌이 백성 따위는 모습을 감추어 마침내는 모든 백성들이 농사일로 돌아가게 되며, 전쟁이 있을 때면 싸움터에 나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법술은 신하에게는 세력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둘 다에게 재난이 되기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임금이 대신들의 반대와 백성들의 비난을 물리치면서까지 법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법을 주창하는 어떤 신하가 설사 목숨을 걸고 의견을 말해 보았자 그 법술이 임금에게 채택될 희망은 없다. 다음과 같은 사례가 그와 같은 경우를 잘 말해 준다. 옛날 오기(吳起)는 초의 도왕(悼王)에게 초나라의 풍속을 혁신할 것을 건의했다. “대신은 지나치게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영지를 가진 신하는 너무 많습니다. 이대로 가면 그들이 위로는 국왕의 권력을 침범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나라는 가난해지고 군사는 약해질 뿐입니다. 영지를 가진 신하에게는 손자 삼대만으로 그 작록을 반환시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모든 관리들의 봉급을 깎고, 불필요한 벼슬을 폐지시키고 그 녹을 선발되어 훈련받은 사병들에게 돌려야 되옵니다.” 도왕은 이 말을 실천하였으나 불과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도왕이 죽자 평소에 오기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지만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꼼짝 않고 있던 구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오기를 손과 발을 잘라 피살하였다. 오기의 법을 시행하였을 때는 국력이 튼튼하고 나라도 안정되었으나, 오기가 죽자 초나라의 토지는 줄어 버리고 나라는 어지럽게 되었다. 상앙은 진의 효공(孝公)에게 정치의 요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섯 집과 열 집을 한 조로 만들어,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여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문학이니 역사니 하는 책들을 불살라 버리고 법령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대신들의 청원을 듣지 말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백성이 집을 떠나 벼슬을 찾아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변이 있을 때 병역(兵役)에 종사하는 농민을 표창해야 합니다.” 효공이 상앙의 말을 듣고 이를 실행하자, 얼마 안 가서 임금의 지위는 매우 높아져 안정되었고, 나라는 풍족하여 군사가 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효공이 팔 년 뒤에 죽자 너무나 가혹한 법령에 숨이 막히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상앙은 곧바로 거열형(車裂刑)을 받고 죽었다. 다시 말하면 초나라 오기가 말한 정책을 폐지한 것만으로도 외환에 위협당하고 내란에 시달렸다. 진나라는 상앙이 말한 법을 실행하였으므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한 말은 모두 정당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나라에서는 오기를 죽여 손발을 끊고, 진나라에서는 상앙을 수레로 찢어 죽이고 만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오늘날 세상은 당시의 진나라, 초나라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신은 세력을 뻗고 있고, 백성들은 전쟁과 난에 익숙해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임금은 초의 도왕이나 진의 효공과는 달리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는 오기나 상앙의 재판(再版)이 되고 말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 법을 말할 사람이 나올 리 없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할 패왕(覇王)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문의 분석 한비는 중국 전국 시대 말기의 사상가이자 한의 왕족으로 젊어서 순자에게서 배워서 뒷날 법가(法家)의 사상을 대성하였다.‘한비자´에서 발췌한 주어진 제시문은 지배층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의 제정과 지나치게 강한 법과 불필요한 법의 제정은 실패하게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한비자´는 공자의 덕치주의를 비판하고 법치주의를 내세운다. 그는 도덕보다 법률을 중시했기 때문에 법 제정 역시 엄격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 제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 글은 법 제정이 실패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를 보여 주고 있다. 첫째, 오기의 경우는 어느 한 쪽(지배층)에게 불리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실패를 하였으며 둘째, 상앙의 경우는 일반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법을 적용하였고, 또 왕권 강화만을 위해 백성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필요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실패하였다. 법을 시행하게 되면 비록 나라가 부강하게 되고 국민이 잘 살게 될 수는 있지만 저항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이 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실패한 원인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주어진 제시문은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을 밝히고 있다. 먼저 오기가 법을 제정한 것이 실패한 원인은 신하들의 권력가로서의 위치를 약화시켰고, 모든 관리들의 봉급을 깎았고, 벼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였고, 영지를 가진 신하의 기득권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기득권 계층인 특권 계층에 불리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그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상앙이 법을 제정한 것이 실패한 원인은 백성들에게 생명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여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여 백성들을 지나치게 감시하였고, 백성들의 지적 욕구를 막았고, 신하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백성들의 참정권을 제한하여 일반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거나 빈틈이 없어 그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또 특정 법규가 정의에 반하는 법을 제정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저항을 받게 됨으로써 실패하게 되었다. 단순히 두 사례에 나타난 특수한 경우를 밝히는 것은 자칫 다른 길로 논술을 이끌 수 있다. 분석을 한 뒤에 분석한 것을 문제점으로 삼아 자기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법 제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여야 한다. 바람직한 법 제정에 대해서는 앞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의 구체적인 해결책이 되어도 되고, 더 크게 일반화시켜 논의를 전개해도 된다. 어쨌든 앞에서 분석한 내용과 자기의 견해를 펴는 것이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문제는 먼저 주어진 제시문에 나타나 있는 사례를 분석하여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찾아내야만 다음 단계의 논의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석을 할 때에는 발문에서 전제하고 있는 법과 관련지어 언급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평소 사회, 정치, 경제 등에 대해서 배울 때 나름대로 정리해 두어야 하는 문제이다. 또 이와 관련된 문제로는 자유와 정의, 평등 등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어떻게 쓸까 주어진 논제인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법의 제정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제시문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논술문의 주제를 국민들의 저항을 받지 않는 법 제정을 위한 노력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법을 제정할 때는 그것이 다수의 행복이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논지를 펼치되 지나치게 피상적인 내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먼저 서론은 법의 제정과 그에 관한 국민의 저항에 관해서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면 자연스럽다. 올바른 사회 질서와 정의를 위해 법은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법을 준수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음을 밝히는 내용 정도가 적당하다. 본론의 첫 번째 단락에서는 주어진 제시문에 나타난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을 들면 좋다. 그 둘이 제정했던 법은 모두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옳았다고 할 수 있으나, 지나치게 특정한 계층에 불리한 법을 제정하거나, 일반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제정했기에 백성들의 저항을 받았다는 내용을 제시문의 요약과 분석으로 얻어낼 수 있다. 이어서 본론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앞서 제시한 실패의 원인을 근거로 법을 제정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주면 된다. 국민 전체의 이익에 반하거나 필요 없는 법은 제정해선 안 되며, 법이 비록 몇몇 특권층에 불리하게 제정되어 저항을 받더라도 이의 시행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를 펼치면 좋다. 법을 제정할 때에는 법의 본래 취지를 살려 어느 단체의 이익이나 저항에 급급해하지 말고 국민 전체의 이익에 합당하는가를 염두에 두고 제정해야 함을 제시해주면 좋다. 본론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다수의 행복과 질서 유지를 위한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본론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법을 제정할 때 따져 보아야 할 것들, 즉 그것이 다수의 행복이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이지, 운용할 때에는 현실에 맞는지 등에 대한 사항을 언급하면 더 좋은 논술문이 될 수 있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법 제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국민적 감시 기능을 강조하면 나름대로 훌륭한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은 피상적인 내용에 그치기 쉬우므로 공청회나 시민 법률 감시단과 같은 제도적 장치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더욱 훌륭한 논술문이 될 것이다. 이석록 서울 메가스터디 원장
  • [사회플러스] 5·18 아람회사건 인권위 진정

    `5·18 아람동지회’ 대표 박해전(52)씨는 1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아람회 사건이 5·18민주화운동특별법이 정한 특별재심 사유에 해당돼 2000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아직 재심 개시 통보조차 받지 못한 것은 차별”이라며 진정을 냈다. 박씨는 “전두환 신군부가 조작한 유사 사건인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나 ‘부림회 사건’도 비슷한 시기에 재심을 청구했고 2003년 초 전원 무죄가 선고된 것과 비교하면 차별적인 법 적용”이라고 주장했다.
  • 정부수립후 사형 998명 집행

    1948년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모두 998명에 달했다. 또 군사정권시절인 62∼89년 사이에 사형이 집행된 400명 중 국가보안법·내란죄 등 공안사범이 116명에 달해 151명인 강도살인범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최근 국가인권위가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인권 NAP)에서 사형제 폐지를 권고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남부지검 이헌규 부장검사는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공법연구회 발표모임에서 ‘헌법과 사형제 존폐론’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사형관련 통계를 공개했다. 이 부장검사는 “엽기적 살인사건이 뇌리에 남아 여론조사 등에서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것”이라면서 “사형제도는 궁극적으로는 폐지해야 하지만 많은 국민이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현 시점에서는 사형대상 범죄축소, 감형·사면없는 종신형, 가석방이 가능한 종신형 등의 제도를 차례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법부 “과거사반성 자료가 부족해…”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부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추진되는 대법원의 시국·공안사건 판결문 분석작업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판결문을 모두 넘겨받는 새해초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관계자는 27일 “최근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판결문 약 1만부를 받았고 나머지는 새해 1월 말까지 전달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올해 9월부터 지난 1972∼1989년의 긴급조치법, 국가보안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화염병처벌법 등과 관련한 판결문 6000여부를 전국 법원에서 수집,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에서 판결문을 넘겨받아도 자료가 부족하다는 사법부의 고민은 여전하다.91년 이전에는 판결문 보존기한이 5년이어서 일부 판결문이 소실된 것으로 전해졌다. 판결문이 모두 보존돼 있어도 판결문만으로는 사법부가 수사과정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등 위법한 사실이 있었는지 밝혀낼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검찰은 형사소송법과 검찰보존사무규칙에 따라 내란·외환죄,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기록은 영구 보존하도록 돼있다.검찰은 대법원이 시국·공안사건과 관련한 재판·사건기록을 요청할 경우 검토 과정을 거쳐 협조할 뜻을 비쳤다.하지만 대법원이 요청하는 재판·사건기록이 검찰에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면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이 판결 경향과 흐름만 쫓는 데 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전모] 인혁당 재심 불투명

    7일 국정원 진실위가 발표한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은 3년째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진실위 조사에서도 재심을 할 만한 명백한 증거는 확보되지 않았다는 평가이다.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이기택)는 “아직 국정원 조사자료를 검토하지 못했다.”고 전제한 뒤 “재심개시 여부를 결정지을 단서가 의문사진상조사규명위원회 조사 이상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사건 조작이 중정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의문사위 발표와 달리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새롭게 확인됐지만, 법원의 재심여부 결정 과정에서는 간접증거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형사사건에서 재심은 원판결의 증거서류 등이 위·변조됐을 때, 원판결보다 중하지 않은 죄를 범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발견됐을 때, 수사과정에서 고문 등 불법행위가 있었을 때 가능하다.진실위는 인혁당 이름 자체가 조작되었으며, 사건에 연루된 자들에게 내란죄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의 발표에 대해 법적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남는다. 수사·공판기록이 위조됐고 고문이 행해졌다는 점도 진실위 조사에서 확인됐지만, 의문사위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가해 당사자의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재심개시 결정 여부는 확보한 자료를 기초로 한 사법부의 결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기택 부장판사는 “국정원 진실위 자료에서 재심개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거자료가 있는지 검토하겠다.”면서 “큰 변수가 생기지 않으면 올해 안에 재심개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신군부, DJ구명 美와 물밑거래”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형집행 여부를 놓고 신군부와 미국 백악관 사이에서 ‘거래’가 오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처음 공개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6일 백악관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뒤 인도적·정치적 차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구명에 나섰다는 내용의 기밀문서와 이희호 여사가 백악관에 보낸 탄원 서신 등 미공개 사료를 공개했다. 미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책임자 도널드 그레그(전 주한미대사)는 1980년 10월 이 여사의 탄원 편지를 받고 백악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게 서신의 내용과 자신의 의견을 더해 문서로 보고했다. 이 여사는 1980년 10월1일 그레그에게 재판의 부당성을 알리고 DJ의 구명을 바라는 영문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사형을 면하면 정치를 포기하고 기독교 신앙을 보급하는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적었다. ‘DJ를 구명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은 브레진스키는 같은 달 20일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에게 “김(DJ)의 구명을 위해 사적인 방법을 동원해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편지를 전달했다. 이 편지에는 1980년 8월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씨가 10월 미국 수뇌부의 정황을 살피려고 ‘믿을 만한’ 장교를 미국에 밀사로 보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정권 창출의 정당성과 미국의 ‘승인’이 필요했던 신군부는 대외적으로 DJ를 사형하겠다고 위협을 하면서도 밀사를 미국에 파견,‘DJ카드’를 손에 쥐고 미국과 협상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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