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三雄 칼럼] 민주와 개혁은 양립되는가
우리는 실패한 개혁의 역사를 안고 있다.대표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묘청과신돈,조선 건국기의 정도전,중기의 조광조·율곡·정조,후기의 전봉준·대원군·고종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한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개혁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이들 중에는 국왕을 비롯한 권력자도 있고 학자와 개혁사상가도 포함된다.
개혁의 추진에 있어서 가장 무난한 방법은 권력자가 스스로 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이 경우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가능하다.두번째는 개혁사상가들의 뜻을 받아 권력자가 추진하는 옆으로부터의 개혁이다.상당한 불안과 정쟁의 요인이 따르는 방법이다.마지막은 개혁운동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혁명적 방법이다.자칫하면 내란 또는 정변으로 이어지고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①은 정조와 대원군,고종의 개혁정치를 들 수 있고 ②는 신돈,정도전,조광조,율곡 ③은 묘청과 전봉준의 경우를 든다.
묘청은 서경천도·칭제건원 등 획기적인 자주국가 건설을 주창하다가,신돈은 무신란과 원(元) 간섭기를거치면서 득세한 권문세족에 맞서 개혁작업을시도하다가,정도전은 신권론(臣權論)으로 집약되는 국정쇄신을,조광조는 훈구세력의 특권과 비리를 혁파하고 합리적이고 기능 위주의 관료체제 확립과지치주의(至治主義)의 실현을,율곡은 10만 양병설 등 국방강화와 왕도정치를,‘탕평 군주’ 정조는 정치개혁을 총론으로 사회개혁과 경제개혁을 각론으로 하는 국정개혁을,전봉준은 척왜척양과 12개 폐정개혁,대원군은 서원철폐와 부패척결 등 갑오경장,고종은 황제권과 자위군대의 강화에 역점을 둔 광무개혁을 각각 추진했으나 대부분이 실패하거나 좌절되었다.
토인비는 문명이 발생-성장-쇠퇴-해체의 과정을 밟는다고 주장했다.왕조나국가의 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쇠퇴기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개혁이나 경장을 서둘러야 해체의 비극을 겪지 않게 된다.
고려가 신돈의 개혁정치를,조선조가 조광조와 율곡의,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봉준의 개혁요구만이라도 수용했다면 ‘해체’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0여년의 군사통치유산과 김영삼 정부가 남긴 국가부도위기 그리고 남북대결과 지역갈등구조 등 그야말로 쇠퇴 또는 해체기의 국정을 맡아 ‘제2의 건국’의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사 대부분의 개혁작업이 기득권 보수세력의 도전에 의해 좌절되었듯이DJ개혁도 이들에 의해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현재의 기득세력은 친일세력으로부터 시작하여 역대 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했거나 정경,정언유착을 통해 수혜를 받은 계층이다.이들은 국가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더 연연한다.때문에 개혁에 도전적이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보수 기득세력은 또 그렇다 치자.입만 열면 개혁과 통일,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언론인·지식인,노동계는 어떤가.국난극복과 개혁의 당위보다는 지역,파벌,계층,집단이기주의를 우선한다.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고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비판은 도덕성과 정당성에서 비롯된다.독재·부패정권에 협력하거나 기생해온 지식인·언론인들의 오늘의 비판자세는 어떠한가.최근 칼럼 미게재에 항의하면서 신문사를 떠난 한 언론인은 “포악한 정권에겐 비굴하고 온건한 정권 아래선 교활하다”고 토로하면서 “과거 정권 아래선 능동적으로 나쁜 짓 하던 언론이 이제는 매사를 트집잡고 비판해.집권세력을 보는잣대는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해.하고 있는 것의 ‘동기’,집권자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해야지”라고 말했다.이런 언론인이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설 땅이 없는 것이 우리 언론풍토이고 지성계이며 개혁의 딜레마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이 공존하기는 쉽지 않다.4·19후 장면 정권과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이를 말해준다.DJ정부의 개혁작업이 주춤거리는 것도 반개혁 세력의 도전과 자율에 대한 악용에서 비롯된다.
‘자율’을 존중하되 악용·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개혁이 요구된다.남한 180만 실업자,북한 300만 아사자를 둔 민족적 재앙과 문명사적 쇠퇴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의 네트워크가 시급하다.우리에겐 실패한개혁의 역사를 되풀이할 여지가 없다.
김삼웅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