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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인 포커스] 라시다 다티 프랑스 새 법무장관

    |파리 이종수특파원|‘화장품 판매원, 간호조무사에서 법무장관까지.’ 라시다 다티(42) 프랑스 신임 법무장관의 ‘인생역정’이 화제다. 그녀는 지난 18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단행한 ‘1기 내각’에서 프랑스 제5공화국에서 이민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장관, 그것도 내각 서열 7위의 법무 장관에 임명돼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녀가 가난한 집안 환경탓에 고학으로 열정적으로 학업을 이어가면서 남다른 성취 욕구로 자수성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녀는 1965년 11월27일 프랑스 동부 소도시 샬롱-시르-사온에서 모로코 노동자 출신의 아버지와 알제리인 문맹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수입으로 영세민용 임대아파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2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그녀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어 ‘주경야독’을 해야 했다.14세때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화장품 판매원을 하기도 했다.16세부터 18세까지는 밤에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공부했다. 당시 그녀가 일했던 생-마리 병원의 간부인 샹탈 로베르는 “1980년대 중반쯤 우리 병원에서 일을 했는데 여름방학 때는 거의 매일 일하다시피했다.”며 “자기에게 엄격하고 성공할만한 자질이 보였는데 법무장관이 돼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다. 다티 장관의 삶은 1986년 알뱅 샬랑동 당시 법무장관을 만나면서 큰 전환기를 맞았다. 주 프랑스 알제리 대사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샬랑동 장관을 만난 그녀는 “일자리를 좀 구해달라.”고 당차게 부탁했다.20여년 뒤 법무장관이 될 ‘재목’을 알아봤을까? 다티의 사연을 들은 샬랑동 장관은 다음날 식사를 대접하며 정유회사인 엘프 아키텐느사에 추천서를 써주고 직접 전화까지 했다. 샬랑동 장관의 도움으로 그럴듯한 회사에 처음 취업하게 된 그녀는 3년 동안 회계원으로 일하며 디종의 부르고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석사를 마친 뒤 마트라 통신사에 입사해 회계사로 전문성을 키워갔다. 이어 사주인 장 뤼 라가르데르의 눈에 띄어 영국의 유럽재건개발은행에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국제적 경험을 쌓았다. 내친 김에 1997년 2년 과정의 국립사법학교에 입학해 영역을 넓혔다. 이어 보비니 지방법원 연수생을 거쳐 아미앵 고등법원 재판소 판사, 에브리 법원 검사 등을 거쳤다.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그녀는 사르코지가 내무장관 시절에도 “함께 일을 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다. 두 차례나 답장이 없었지만 세번째 편지를 보내 사르코지의 허락을 받아냈을 정도로 집념이 강했다. 마침내 2002년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2007년 1월엔 사르코지 후보의 공동대변인으로 활약했다. 법무장관 임명 소식을 듣고 “굉장한 순간이고 내겐 큰 영예”라고 일성을 터뜨린 그녀는 “대통령이 보여준 기대에 부응, 프랑스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vielee@seoul.co.kr
  • [서울광장] ‘외교 대통령’ 멋지지 않은가/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외교 대통령’ 멋지지 않은가/이목희 논설위원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외교관을 ‘외유 도우미’로 생각한다. 외국여행 때 공항부터 모든 일정을 충실히 챙겨줘야 욕을 않는다. 대사관저에서 폼나는 식사를 한번쯤 해야 한다. 접대받은 뒤 인식이 나아지면 좋으련만, 실제는 반대다. 수영장이 딸린 호화관저 생활, 수시로 즐기는 나이스 샷, 교민 위에 군림. 국회의원들이 눈치 봐가며 1년에 며칠 누리는 호사를 매일 향유하는 이로 외교관을 치부하기 십상이다. 대선주자 주변을 보자. 대사 출신과 외교안보 학자들이 포진, 거창한 외교정책 아이디어를 내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주자진영에선 표를 가진 이익단체, 직능단체에 우선 눈이 간다. 당선 후에는 더욱 그렇다. 정권 인수위에서는 표를 몰아왔다는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커진다. 뺀질이(?) 외교관 집단은 손봐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취임 뒤 첫 외국순방을 다녀오면 대통령의 외교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다. 하지만 국가원수로서 호화로운 의전, 현지 외교관들의 극진한 모심에 감복하는 수준이다. 지구촌의 중견국가로서 한국 외교가 나아갈 바를 제대로 깨달으려면 몇년이 걸린다.“외교기반을 확실히 만들자.”고 뒤늦게 의지를 다져보지만 막바지로 치닫는 임기에 후회가 남을 뿐이다.5년 단임제에서 외교 분야의 악순환. 대통령을 힘들게 학습시켜 놓으면 바뀔 때가 되니…. 정권초부터 ‘외교 대통령’ 소리를 듣는 지도자를 탄생시킬 수 없을까. 외교부는 무력해 보인다. 잦은 해외근무에 국내 로비기반이 취약하다. 재외국민 보호 미흡을 비롯, 난타당하느라 밥그릇 찾아먹을 여력이 없다.20여년전 외교부를 출입했는데 동북아 2과의 6∼7명이 중국 업무를 담당했다. 그후 한·중 수교 등 관계발전이 엄청났다. 그런데 지금도 과 직원이 7명이라는 얘기를 듣고 경악했다. 일본은 본부의 중국 담당이 50명에 이른다. 이제는 ‘한국이 살 길은 외교’라는 사실을 미리 체득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정결한 관저, 괜찮은 식사, 반질반질한 외양이 외교의 일환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지도자. 그를 바탕으로 외교강국으로 웅비할 청사진을 내놓는 지도자.‘외교 대통령’의 기본은 과감한 외교관 확충이다. 일본의 아베 내각은 앞으로 10년 동안 외교관 2000명 증원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올해에 외교관을 50여명 늘리고, 대사관 6곳을 신설하는 것으로 외교대국 행보에 돌입했다. 인도 역시 5년안에 외교관수를 배가하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도 비슷하다. 주요국들은 다른 공무원은 모두 줄이면서 외교관은 깜짝 놀랄 정도로 늘려가고 있다. 현재 우리 외교관 수는 1700여명. 한국보다 인구가 적은 캐나다 4700여명, 네덜란드·스위스 3500여명에 비하면 턱없는 숫자다. 외교차관도 겨우 2명이 되었으나 더 늘려야 한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은 차관을 6∼9명 두고 국제회의 대표의 격을 높이는 데 활용한다. 북한마저 7명의 부상(차관)을 임명, 외교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회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공무원 5만명 증원 등 다음 정권에서 되지 않을 내용은 치우고 외교관을 능력껏 늘려보라. 외교 문외한이란 비판은 비켜갈 것이다. 차기 주자들은 호기를 맞았다.“외교관 1000명 증원, 외교차관 5명 확대, 외교관 양성 대학원 설립, 전문가 문호개방으로 출중한 외교단을 만들어 국제사회를 누비겠다.”고 공약해‘외교 대통령’의 탄생을 전세계에 예고하기 바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北 신임 외무상에 박의춘

    북한은 올 초 사망한 백남순 외무상의 후임으로 러시아 주재 대사를 지낸 박의춘(75)을 임명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8일 발표한 ‘정령’을 통해 내각 외무상으로 박의춘을 임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박 신임 외무상은 카메룬, 알제리, 레바논 주재 대사를 지낸 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러시아 주재 대사를 맡았다.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배석하는 등 북·러 관계에서 주된 역할을 해왔으며,2003년 북핵 위기시 “북한에 대한 어떤 (국제)제재도 전쟁 선포로 간주한다.”고 하는 등 북한당국의 강경한 입장을 대변해 왔다. 그러나 박 외무상은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했을 뿐 특별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인물로 보기는 어려워 전임 백 외무상 체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얼굴 마담’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내정자로 알려졌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건강상의 이유로 탈락했다는 후문이 전해졌다. 한편 이날 통일부는 최근 해임된 북한 박봉주 전 내각 총리가 북한 최대 화학공업단지인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행정책임자)으로 임명됐다고 전했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佛 사르코지 1기 내각 출범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신임 대통령의 1기 내각이 18일(현지시간) 출범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전날 프랑수아 피용 총리를 임명한 데 이어 이날 알랭 쥐페 전 총리를 수석장관격인 ‘국가 장관’ 타이틀과 함께 환경 및 지속적 개발·정비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15명의 장관 인사를 단행했다.7명은 사전 예고한 대로 미셸 알리오 마리 내무·해외영토 장관 등 여성 인사 몫으로 할당했다. 또 대통령 비서실장에 클로드 게앙, 신설한 미국식 외교보좌관직에 장다비드 르비트 주미 프랑스 대사를 임명했다. 이번 인사의 특징은 내각의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16개 부서의 업무를 재편해 15개 부서로 묶었고 장관 밑에 있던 부장관격인 13명의 ‘담당 장관’을 없앴다. 이에 따라 각료회의 참가 인원이 줄어 정책결정 과정이 단축되고 대통령이 직접 국정을 관장할 여지가 많아졌다. 또 부처간 업무를 조정하던 ‘국가 비서관’을 10여명선으로 유지해오다 4명으로 대폭 줄인 것도 정책 결정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편 대선 과정에 사르코지를 적극 지지한 쥐페 전 총리에게 국가장관 자격을 준 것이나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자신을 지지한 알리오 마리를 핵심 수저인 내무 장관에 임명한 것은 친정 체제를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측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당 인사를 임명함으로써 ‘통합 정치’ 이미지도 제고했다. 이를 위해 사르코지는 지난 주말 사회당 소속 전직 장관 3명을 비롯, 야당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 입각을 제안했다. 그 가운데 상징성이 큰 베르나르 쿠슈네르를 외무·유럽담당장관에 임명했다.‘국경없는 의사회’를 창설한 그는 인도주의 활동가로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인사다. 또 사회당 인사를 내각에 임명함으로써 대외적으로는 ‘통합 의지’를 과시하는 한편 사회당의 내분을 유도하는 간접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은 쿠슈네르 입각설이 돌면서부터 ‘배신자’ 등 극한 표현을 쓰면서 반발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는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입각할 경우 탈당할 것을 시사하는 발언도 했다. 또 “사르코지와 잘 해보시오.”라며 꼬집었다. 다음은 내각 명단.▲경제·재무·고용 장루이 보를루 ▲이민·국가정체성 브리스 오르트푀 ▲법무 라시다 다티 ▲노동·연대 크사비에 베르트랑 ▲교육 크사비에 다르코 ▲고등교육·연구 발레리 페크레스 ▲국방 에르베 모랭 ▲보건·스포츠 로젤린 바셸로 나르캥 ▲주택 크리스틴 부탱 ▲농수산 크리스틴 라가르드 ▲문화 및 정부 대변인 크리스틴 알바넬 ▲예산 에릭 뵈르트vielee@seoul.co.kr
  • 佛 새총리에 ‘개혁파’ 피용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신임 대통령은 17일 개혁 성향의 우파 정치인 프랑수아 피용(53)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소속 상원의원인 피용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대선 선거운동을 이끌었다. 연금제도와 주 35시간 근로제 개편 등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피용은 사르코지 측근 가운데 좌파로부터의 거부감이 가장 적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자신의 노동개혁과 복지법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유화적인 인물을 총리에 기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피용은 한때 기자가 되려고 AFP통신사에서 견습생활을 했다. 하지만 곧 정계로 진로를 바꿔 중서부 사르트에서 하원 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002년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 밑에서 사회문제 장관을 맡으며 경제 분야 개혁 정책을 폈고,2004년 교육장관 때는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개혁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혔다.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안이 부결된 뒤 총리의 퇴진과 함께 경질되자 사르코지 캠프에 합류했다. 영국 웨일스 출신의 부인 페넬로프 카트린 피용(51)과의 사이에 다섯 남매를 두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총리 임명에 이어 18일 새 내각 구성을 발표할 예정이다.15개 각료직 중 7∼8개 자리를 여성 인사로 채우고 주요 자리에 야당 인사를 과감하게 기용할 것으로 예상된다.vielee@seoul.co.kr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유혈충돌 격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유혈충돌 격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폭력 사태가 격화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인 하마스와 파타당 지지자들간의 내부 세력 다툼에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습이 이틀째 이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은 17일(이하 현지시간) 하마스 무장요원들의 사무실을 공격해 1명이 숨지고,30여명이 부상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쪽에 탱크도 배치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에도 헬기를 동원해 가자지구 남부의 라파에 있는 하마스시설을 공습해 4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다쳤다. 이어 가자지구 북부에도 공습을 가해 하마스 요원 1명이 숨지고 2명이 숨졌다고 팔레스타인 소식통이 전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하마스 무장세력이 최근 이틀간 수십발의 로켓을 이스라엘쪽으로 발사했다며 이날 공습이 로켓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13일 불거진 가자지구의 폭력사태는 갈수록 격해져 16일 하루에만 최소 20여명이 숨지는 등 모두 4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CNN,BBC 등 외신들은 이번 사태가 지난 3월 출범한 하마스와 파타당의 공동내각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파타당 당수인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과 칼리드 마샤알 하마스 최고 지도자는 이날 서둘러 싸움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지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하마스와 파타당 모두에게 즉각적인 폭력 사태 중지를 요청했으며, 이스라엘의 로켓 공격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하마스는 지난해 총선 승리로 40여년 동안 정권을 지배해온 파타당을 밀어내고 정권을 장악했으나 국제사회 반발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파타당과 공동 내각을 구성했다. 그러나 서방권과 이스라엘의 지지를 얻고 있는 파타당과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하마스는 서로 핵심 사안들에 대한 의견 차이를 전혀 좁히지 못한 채 외형상 연정만 구성하는 ‘불안한 동거’를 시작했다. 결국 공동내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판이 마련되지 않는 한 내분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함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구성한다. 면적은 약 365㎢로 이스라엘 점령지인 동예루살렘(345㎢)과 비슷하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영토였던 가자지구를 1967년 3차 중동전쟁때 점령한 뒤 2005년 9월12일 철수했다. 점령 당시 40만명이었던 팔레스타인 인구는 현재 140만명을 헤아린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고 요르단강 서안 전역과 가자를 영토로 하는 독립국가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남북열차 56년만에 달렸다] 北열차 본 80代 “추억속 기차 꿈만 같다”

    ●‘김일성수령 오르셨던 차’ 현판 이날 오전 동해선 시험운행을 앞두고 금강산역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북측 기관사 노근찬씨는 열차 시험운행 소감을 묻는 남측 취재진의 잇따른 질문에도 손사래까지 치며 질문을 피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열차 탑승 직전 우리측의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역사적인 순간인데 소감이 어떠냐.”는 물음을 받고서야 “조국 분단 역사에서 잊지 못할 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노씨가 운전하는 열차는 낮 12시21분 군사분계선을 통과,9분 뒤인 12시30분 남측 제진역에 도착했다. 북측 열차는 내연 기관차 1량과 발전차 1량, 객차 4량 등 모두 6량으로 ‘위대한 김일성 수령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라는 붉은 현판이 기관차 측면에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열차에서 내린 북측 탑승객들은 기자들을 향해 “반갑습니다.”“감사합니다.”라며 짧은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오찬장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객차 문을 열고 나선 열차원 김혜련(28)·이혜경(28)씨는 “한민족의 핏줄은 속일 수 없다.”면서 “6·15 북남선언이 잘 지켜져 통일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김용삼 북측 철도상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날씨가 참 좋다. 통일의 좋은 징조 아니겠나.”라고 답했다. 열차내부는 노란색과 회색 의자가 단정했고 테이블마다 과일과 북한산 생수, 사이다, 콜라병이 놓여 있어 짧은 시간 남북 탑승객들끼리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음을 짐작하게 했다.한편 열차에 탑승한 명계남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주로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원칙과 상식 대표 직함으로 이날 동해선 행사에 참석한 명씨는 기자들이 ‘탑승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논란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바다이야기 대표로 온 사람이다, 나는 바다이야기 이후 죽은 사람이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오후 3시 기적 울리며 북으로 아침부터 환영행사에 참석한 고성군 간성읍 상리마을 주민들은 반세기 만에 북한 열차를 둘러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평생 고성에서 살았다는 유순덕(80)할머니는 “6·25전쟁 이전에는 북한 열차를 타고 고성·제진역에서 원산을 통해 평양과 서울을 오갔다. 죽기 전에 옛날 타던 기차를 다시 보니 꿈만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북측 일행은 한식에 반주를 곁들여 점심식사를 마친 뒤 이날 오후 3시 타고 온 열차편으로 다시 돌아갔다. ‘고향의 봄’과 ‘반갑습니다’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북측 일행은 기차에 올랐고 고성 명파초등학생들이 한반도기를 흔들자 손을 흔들며 아쉬워했다. 북한 기차는 오후 3시쯤 기적소리를 여러 차례 울리며 미끄러지듯 북으로 움직였고 플랫폼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다음 만남을 기약하듯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북한 언론 짤막하게 보도북한은 17일 반세기 만에 이뤄진 남북 열차운행을 극히 짤막하게 보도하는 데 그쳤다. 북한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남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이 17일 동서해선에서 각각 있었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어 “시험운행이 금강산청년역에서 남측 제진역까지, 남측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진행되었다.”면서 “여기에는 우리 측에서 철도상 김용삼, 내각책임참사 권호웅을 비롯한 관계부문 일꾼(간부)들이, 남측에서 건설교통부 장관 이용섭, 통일부 장관 이재정 등 관계자들이 참가하였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그러나 열차 시험운행의 역사적 의미나 평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측이 축제 분위기를 띄울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경의선 동해선 공동취재단파주 한만교·고성 조한종·문산 한상우 정서린기자 mghann@seoul.co.kr
  • [남북열차 56년만에 달렸다] 한반도기 든 환영인파 “통일 철마 왔다”

    [남북열차 56년만에 달렸다] 한반도기 든 환영인파 “통일 철마 왔다”

    남북열차가 17일 평화와 세계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순간 철로에는 흥분과 기대감이 넘쳐흘렀다. ●한껏 달아오른 문산역 이날 경의선 열차의 출발지인 문산역은 화해와 교류,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열차 탑승객과 진행요원,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룬 역사는 오전 북측 대표단이 도착하기 전부터 고적대 연주로 축제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경의선 출입사무소를 통과해 오전 10시30분쯤 문산역에 도착한 권호웅 북측 내각 책임참사를 역사 안으로 안내한 뒤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위원회 남측 상임대표와 이철 철도공사 사장 등 남측 탑승자들을 소개하며 환담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이 다소 흥분된 어조로 “분단의 역사를 뒤로 하고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은 남북이 함께 이뤄낸 위대한 승리의 역사”라고 강조하자 권 참사는 “아직까지 위대하다는 말을 붙이지는 말라.”면서도 “포부는 원대하게 갖고 소박하게 시작해 좋은 일을 많이 만들자.”고 답했다. 전날까지 비가 내리다 화창하게 갠 날씨를 소재로 이 장관이 “56년간 묵은 때를 벗겨내기 위해 물청소를 세게 한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권 참사는 당시까지 비가 내리던 동해선 쪽을 의식,“금강산은 아직도 물청소를 하는 것 같다.”며 재치있게 화답하기도 했다. ●부러운 실향민과 감격한 10대들 이날 행사장을 찾은 70∼80대 실향민들은 부러움과 기대가 엇갈리는 표정이었다. 일제시대 개성까지 기차를 타고 소풍을 갔다는 이근찬(77·경기 파주시 법원리)씨는 “그때 기억이 나서 나와봤어. 언젠가 나한테도 기회가 오겠지.”라고 말했다. 김포 통진고 2학년에 재학중인 채여경(17)·김새봄(17)양은 ‘우리는 하나, 남북 함께 만납시다’‘북측 대표 환영해요’라고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를 준비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열차가 북한에 간다고 생각하니 떨린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 동영중에 다니는 이세영(14·부산 부산진구 부암동)군도 학교의 임시휴교를 맞아 역사적인 현장을 찾았다. 이군은 “직접 기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납북자가족 반대 목소리 이날 행사 시작 전 납북자가족모임, 피랍·탈북인권연대, 북한민주화운동본부 회원 등 40여명이 행사장 주변에서 납북자 송환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납북자 가족들은 애타게 생사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열차 운행을 하느냐.”며 항의했다. 행사장 출입이 제한된 납북자가족모임 소속 할머니들은 “어떻게 보지도 못하게 할 수 있느냐.”며 울음을 터뜨리다 바닥에 쓰러져 후송되기도 했다. ●도라산역 출입국 심사 오전 11시58분쯤 도라산역에서 기적이 울리자 역무원, 통일부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관계자, 헌병, 취재진 등 300여명이 남북열차를 맞았다. 탑승객들은 자리에 앉은 채 출입국 통관 절차를 밟았다. 출입국사무소 직원과 세관직원 2명이 1개조로 4대의 객차에 올랐다. 이들은 탑승객의 얼굴과 사진을 대조하며 인원을 파악하고, 반출물품 목록을 일괄 제출받는 등 남북협의에 따라 절차를 간략히 끝냈다. 북쪽 손님과 탑승객들은 객차에서 밖을 향해 한반도기를 흔들기도 했다. 심사절차를 마친 뒤인 낮 12시10분쯤 도라산역 윤길수 역무과장이 오른손을 직각으로 들어 둘째 손가락으로 북쪽을 가리키며 파란색 수기를 둥그렇게 흔들자 열차는 북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관차 앞 방향 철로변에서 수백개의 풍선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윤 과장은 “감개무량하다. 역사적인 순간에 조그만 역할이나마 한 것이 감격스럽고 행복하다. 앞으로 열차가 시베리아·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진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탑승객 소감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감동적이고 새로운 한반도의 시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정책의 가시적 성과다. ●장진구 학생(울산 제일중1) 개성역에 도착했을 때 북측 학생들을 보니 우리와는 너무 달랐다. 통일이 돼야 할 것 같다. ●고은 시인 가로막혔던 민족의 핏줄이 이어져 뜨거운 피가 순환하는 것이다. 이 길이 남북은 물론 대륙을 연결하는 커다란 꿈의 출발을 의미하길 바란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일제 때 민족의 수탈을 위한 철도가 이제 민족의 번영을 위한 철도가 돼간다. 통일은 이념적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적 상생효과를 내야 한다. ●송기인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혈관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 철길이 이어진다는 것은 마비됐던 지체가 새롭게 회복되는 그런 기회라 생각한다. 남북이 소통한다는 것은 해방 당시의 감격과 비슷한 감격이다. 경의선·동해선 공동취재단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우리의 소원’ 합창 통일열차 달렸다

    ‘우리의 소원’ 합창 통일열차 달렸다

    “음료수 드시겠어요?”(남측 여승무원) “일 없습니다.”(북측 남세관원1) “에∼ 좋으면서 왜 그러나.”(북측 남세관원2) 17일 오전 11시30분. 군사분계선을 가로질러 북측 판문역을 통과한 경의선의 연결통로에서 느닷없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측 여승무원이 주스를 권하자 북측 남자 세관원이 얼굴을 붉히며 손을 가로저은 것. 북측 남성 세관원은 “젊은 남녀가 만나도 한 번만 봐서는 (마음에 드는지) 알 수 없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반세기 만에 열린 철길로 달리는 통일 열차 안에서 남과 북은 없었다. 이날 시험운행한 경의선에 몸을 실은 기자는 흡사 어릴 적 수학 여행지를 향하던 ‘새마을호’ 열차에 오른 기분이었다. 남측 100명 북측 50명의 탑승객들은 여기저기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북으로 향하면서 달라지는 창밖 풍경이 ‘이질감’보다는 ‘얘깃거리’를 던져줬다. 출발 당시 서먹했던 객차 안 분위기는 시속 20∼30㎞로 천천히 비무장지대를 빠져나가는 열차 속도에 맞춰 서서히 부드러워졌고, 낮 12시18분 군사분계선을 넘어서자 화해 분위기가 고조됐다. 한 객차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울려 퍼졌고, 다른 객차에서도 비무장지대에 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딱딱한 공식 석상에서나 서로를 마주했던 남북의 인사들도 이곳에서는 달랐다.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규명위원회 위원장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다보니 말뿐만 아니라 감정도 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북측의 한 인사는 “이웃끼리 만난 것이나 다른 게 없다.”고 화답했다. 열차가 기적소리를 내자 창밖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북의 마을 주민들이 잠시 멈춰 섰다. 비록 손을 흔들지는 않았지만 자전거를 세우고 모여 서서 열차를 바라보는 등 관심을 보였다. 통일 열차가 북한 당국자의 경계심을 녹인 것일까. 개성역에서 내려 오찬을 마친 권호웅 남북장관급회담 북측단장은 기자에게 “실례가 되겠지만 나이가 얼마나 되냐.”면서 이례적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그는 “남쪽 사람들은 오늘 행사에 큰 관심을 보이는데 북쪽은 어떠냐.”는 질문에 “정식 개통이 아니고 시험운행이라 많이 알지는 못한다.”면서도 “(정기)개통은 언제쯤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우리야 언제라도 하고 싶은데…”라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북을 이은 철마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날 정오쯤 경의선과 동해선 철로를 타고 한반도의 허리를 갈라 놓은 군사분계선(MDL)을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넘었다. 남북 분단 이후 경의선은 56년 만에, 동해선은 57년 만에 민족의 혈맥을 다시 이은 것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권호웅 북측 내각책임참사 등 남북 탑승객 150명을 태운 경의선은 이날 오전 11시28분쯤 기적을 울리며 경기도 파주시 문산역을 출발해 낮 12시18분쯤 MDL을 통과했다.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과 김용삼 북측 철도상 등 남북 탑승객을 태우고 동해선 금강산역을 출발한 북측 기관차도 이날 낮 12시21분쯤 MDL을 넘어 12시33분쯤 남측 제진역에 도착했다. 이 열차들은 오후 3시30분쯤 다시 MDL을 넘어 각측으로 돌아갔다. 이재정 장관은 경의선 문산역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한반도를 하나로 연결하는 종합적 물류망을 형성, 남북경제공동체와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북측 금강산역에서 열린 공동기념식에서 이용섭 장관은 “시험운행이 남북철도의 완전한 연결을 앞당겨 계속해서 남으로, 북으로 열차가 오가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남북철도공동운영위원회’의 조속한 구성과 열차개통 준비를 서두르자고 제의했다. 한국철도공사 이철 사장은 “다음달 말 평양에서 남·북·러 철도운영자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경의선 동해선 공동취재단·김미경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서울 4色 탐험-역사의 숨결] (6) 이화장

    [서울 4色 탐험-역사의 숨결] (6) 이화장

    # 덧댈 수 없을 때까지 바느질하다 이승만 박사는 스웨터와 바지는 물론 속옷까지 기워 입었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밤새 옷을 손질해 놓으면 다음날 기꺼이 낡은 옷을 걸쳤다.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뒤 여사는 손자들의 옷을 기웠다. 바지길이가 넉넉한 것을 구입해 아랫단을 잘라 놓았다가 무릎이나 엉덩이가 해지면 그 조각천을 덧대었다. 여러 번 기워 덧댈 수 없을 때까지 바느질했다. # 몽당연필로 가계부 쓰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1971년부터 10년간 며느리와 함께 가계부를 썼다. 콩나물·멸치·사탕 하나까지 일일이 적었다. 며느리는 “보름마다 가계부를 검사받았는데 검사 전날에는 밤새우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지출 내역과 잔액이 맞지 않으면 구입물품을 지어내느라 애도 먹었다. 그럴 때 여사가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서 첫 월급을 받아오던 날이란다. 그 소중한 돈을 한푼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아내의 도리가 아니겠느냐.”며 며느리를 다독였다고 한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체취 가득 서울 종로구 이화동 ‘이화장’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와 프란체스카 여사가 머물던 사저이다. 이 대통령을 기념하는 ‘우남 리승만 박사 사적관’도 이곳에 있다. 그러나 16일 방문한 이화장에서는 이 박사보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손길이 훨씬 많이 느껴졌다. 이 박사는 대통령 취임 전 1년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여사는 20년간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76)씨와 며느리 조혜자(65)씨가 살고 있다. 이화장 자리는 원래 경관이 빼어나기로 유명했다. 조선 중종 때 학자 신광한(1484∼1555)과 인조대왕의 제3왕자 인평대군(1622∼1658)이 여기에 저택을 지었다. 정문을 통과하자 이 박사의 동상과 사적관이 보였다. 아름드리 나무 주변을 까치 한 마리가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었다. 돌길을 따라 들어갔다.1937년 지어진 한옥 기와집, 본채가 나왔다. 이 박사 부부가 여생을 보낸 곳이다. 본관 입구에는 본래 이 박사가 아내를 위해 심은 은방울 꽃이 있었지만 1992년 여사가 저세상으로 떠나자 시들시들 죽어버렸다고 한다. ●사적관엔 고부가 52년 입은 예복도 이 박사 부부의 유품과 사진자료로 가득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15년간 입은 속옷,22년간 요리한 냄비·프라이팬,30년간 사용한 양산이 놓여 있었다. 특히 이 박사가 선물했다는 검정 예복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40년, 며느리 조혜자씨가 12년 입었단다. 본채에서 조각당으로 오르는 정원은 조형을 살려 꾸민 덕분에 자연미가 넘쳐났다. 길가에는 하얀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자연연못에는 붉은 물고기가 여유롭게 헤엄쳤다. 굴곡 많은 우리 근현대를 속삭이듯 굽이굽이 휘어진 고송이 굳건히 자리했다. 도심 수목원처럼 공기도 맑고 상쾌했다. 조각당은 마루가 딸린 단칸방인데 서너명도 앉기 힘들 만큼 좁았다.1948년 7월24일 이 박사가 초대 내각의 명단을 발표했다. 벽에 걸린 한 장의 사진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전화 예약은 필수 이화장을 방문하려면 전화 예약(762-3171)이 필수. 최근까지 무료로 개방했지만 운영방식을 바꾸었다. 지원금이 없어 안내·관리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산책로도 폐쇄했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데 청소 비용이나 인력이 없단다. 조혜자씨는 “어머님은 동네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셨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56년만의 ‘기적’

    56년만의 ‘기적’

    ●낮 12시15분 군사분계선 통과 ‘멈췄던 철마야, 힘껏 내달려라.’ 남북 열차가 17일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달려 반세기 만에 휴전선을 넘으면서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는다. 남북은 이날 오전 10시45분 경의선 문산역(남측)과 동해선 금강산역(북측)에서 각각 ‘남북 철도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기념행사를 갖고, 오전 11시30분 각각 북측 개성역과 남측 제진역을 향해 열차를 동시에 운행한다. 열차가 MDL을 넘어 남북을 달리는 것은 경의선의 경우 1951년 6월12일 이후 56년 만이며, 동해선은 1950년 이후 57년 만이다. 경의선 열차는 남측 문산역을 떠나 도라산역에서 세관·통행검사를 거쳐 12시15분 MDL을 통과한 뒤 북측 판문역을 거쳐 개성역에 도착한다. 동해선 열차는 북측 금강산역을 떠나 감호역에서 세관·통행검사를 받은 뒤 역시 12시15분 MDL을 통과하며 남측 제진역에 온다. 운행구간은 경의선이 편도 27.3㎞, 동해선이 25.5㎞다. 시험운행용 열차는 디젤기관차 1량과 객차 4량, 발전차 1량으로 이뤄졌다. 각 열차에는 분야별 각계 인사로 구성된 남측 인원 100명과 북측 50명 등 모두 150명씩 타게 된다. ●오후 3시30분 다시 남북으로 북측에서는 경의선에 권호웅 책임참사와 김철 철도성 부상 등 50명이, 동해선에 김용삼 철도상과 주동찬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 박정성 철도성 국장 등 50명이 각각 탑승한다. 탑승에 앞서 오전 10시부터 경의선에는 북측 열차 탑승자들이 출입사무소를 거쳐 행사장인 문산역에 도착한다. 동해선을 타는 남측 탑승인원도 북측 금강산역으로 이동해 행사에 참석한다. 경의선 기념행사에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북측 장관급회담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 등이, 동해선 행사에는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과 북측 김용삼 철도상 등이 각각 참석할 예정이다. 남측 경의선 탑승자들은 오후 1시 개성시 인민위원장을 비롯한 인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개성역에 도착한 뒤 자남산여관 오찬, 선죽교 관람을 마치고 오후 2시40분 개성역을 떠난다. 동해선 탑승자들은 우리측 강원도 고성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오찬을 한 뒤 오후 3시 제진역에서 북측 인원을 환송한다. 양측 열차는 오후 3시30분 다시 MDL을 넘어 각측으로 돌아가면서 대장정의 남북열차 시험운행을 마친다. 통일부 관계자는 “비가 오더라도 행사계획에는 변경이 없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프랑스 ‘사르코지 시대’ 막 올랐다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가 16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관저인 엘리제 궁에 입성하면서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취임식은 전통에 따라 신·구 대통령의 만남에 이어 간단하게 진행됐다.●시라크와 40여분 비공개 환담퇴임하는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10시58분 엘리제궁 입구에 나와 신임 사르코지 대통령을 영접했다. 두 사람은 바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 비공개로 40분여 대화했다. 그 과정에 사르코지는 시라크로부터 핵무기고 비밀코드를 넘겨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사르코지는 시라크와 악수를 한 뒤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엘리제궁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엘리제궁으로 돌아온 사르코지는 장 루이 드브레 헌법위원장의 취임 선언에 이어 대통령 훈장을 받은 뒤 서명했다. 사르코지는 환영객 앞에서 국가 원수 자격으로 처음 연설했다. 그는 “국민이 나에게 통치권을 위임했기에 그 신뢰에 부응하고 면밀히 수행할 것”이라며 “국제 경쟁 시대에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순간 앵발리드에서는 21발의 축포가 발사됐다.●엘리제궁 앞 도로 환영 인파 이날 취임식에는 사르코지의 가족과 친구, 전날 사퇴서를 제출한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 의회 지도자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편 이날 취임식에는 외신 기자 200여명이 몰려 취재에 열을 올렸다. 또 엘리제궁 앞 도로에는 시민 500여명이 신·구 대통령이 지나갈 때 손을 흔들며 반겼다. 한편 대선 결선투표 불참으로 화제가 된 새 영부인 세실리아는 이날 소매가 없는 진주빛 원피스를 입고 5명의 자녀들과 함께 환영객을 맞았다. 사르코지는 취임식 뒤 개선문의 무명용사 묘를 참배한 뒤 샹 젤리제 거리의 샤를 드 골 장군 동상에 헌화했다. 가는 도중 사르코지는 환영 인파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며 화답했다. 이어 파리 서쪽 외곽 불로뉴 숲으로 가서 2차 세계대전 때 학생 저항군이 독일군에 처형당한 장소를 방문했다.●피용 총리 임명… 내각 인선은 미뤄 사르코지는 공식 취임 행사가 끝난 뒤 바로 독일로 날아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어 15명의 내각 인선 구상에 돌입했다. 애초 17일 내각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회당 소속 전직 장관 등의 임명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느라 프랑수아 피용 전 교육장관만 총리로 임명하고 나머지 장관 인선은 미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총리 시절 보건장관을 지낸 베르나르 쿠슈네를 외무장관에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일간 르 피가로는 14일 내각 인선과 관련 “경제·고용 전략장관에 장-루이 보를루 현 고용·연대 장관, 국방장관에 에르베 모랭, 문화장관에 크리스틴 알바넬 등이 임명될 예정”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퇴임한 시라크 부부는 모로코로 휴가를 다녀온 뒤 센 강 주변의 아파트에 임시로 머물다 거처가 마련되면 이사할 예정이다.vielee@seoul.co.kr
  • 사르코지 ‘야당 끌어안기’ 나서나

    사르코지 ‘야당 끌어안기’ 나서나

    |파리 이종수특파원|‘야당 끌어안기냐? 분열 유도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가 21일 매듭지을 ‘1기 내각’ 구성을 위해 사회당 소속 전직 장관 등 4명을 잇달아 만나 장관직을 제의하거나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사회당이 강력 반발하고 사르코지측 인사들도 불만을 표시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사르코지는 당선 이후 조각에 대해 ‘개방원칙’을 강조해 왔다. 사르코지는 14일(현지시간) 저녁 베르나르 쿠슈네르 전 보건장관을 직접 만나 외무장관직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론에서는 쿠슈네르가 최근 몇 차례 장관직을 제안받았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국경없는 의사회’를 창설한 쿠슈네르는 1988년 사회당 내각에 참여했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 밑에서 보건장관을 지낸 조스팽 내각의 상징적 인물이다. 르몽드는 이날 “사르코지 당선자가 조스팽 총리 시절 교육장관을 지낸 클로드 알레그르를 비롯,11일에는 외무장관을 지낸 위베르 제드린 ‘프랑수아 미테랑 연구소’ 소장, 미테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 로베르죵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밖에 조스팽 총리 시절 부국장을 역임한 피에르주에도 만났다. 이에 사르코지는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사르코지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입각 가능성이 알려지자 사회당은 발끈했다. 새달 10일,17일 총선을 앞두고 사회당의 전력 약화를 노린 전략으로 풀이하는 분위기다.12일 파리에서 열린 사회당 총회에서 세골렌 루아얄의 동거 파트너이자 제1서기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그동안 말하거나 행동한 것에 충실하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이들이)사르코지 정책에 반대해온 사회당의 일원으로서 앞으로 사회당에 계속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입각하려면 탈당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vielee@seoul.co.kr
  • 박남춘 인사수석 “인력 재배치 제때 못한것 반성”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이 감사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2시간짜리 강연을 했다.9일 감사원 혁신토론회에서 ‘참여정부 이렇게 걸어왔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했다. 그는 먼저 “공무원 5만여명 늘어났다고 큰 정부, 작은 정부 운운하는데 참여정부는 책임정부”라면서 “그러나 인원을 늘리면서 불필요한 인력들을 재빨리 (다른 쪽으로 )전환했어야 했는데 그런 것을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자성했다. 이어 “참여정부를 좌파라고 하는데 프랑스 우파만큼도 복지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프랑스의 대선 결과를 놓고 분배 아닌 성장을 택했다고 쓴 것을 보면서 어떻게 국민들이 중지를 모아나갈까 걱정”이라고 언론에 불만을 표시했다. 참여정부의 ‘회전문 인사’ 논란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문화일보가 악의적으로 처음 만들어낸 용어로 노무현 대통령은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을 쓰다 보니 청와대에서 일하던 사람을 (내각으로)내보내는 것”이라면서 “역시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본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하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보은 인사’와 관련해서는 “인재의 지역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서 “총·보선에서의 300여명 낙선자 중 10명밖에 등용 안 됐다.”고 주장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아베, 야스쿠니신사에 ‘공물’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1∼23일 치러진 야스쿠니신사 춘계대제 기간에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명의로 신사에 공물을 바친 사실이 8일 확인됨에 따라 신사참배를 둘러싼 외교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개인 비용으로 춘계대제 때 5만엔 상당의 높이 2m인 비쭈기나무 화분을 신사 측에 보냈다고 일본 언론들이 이날 보도했다. 일본에서 비쭈기나무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져 신전에 바쳐지고 있다. 화분은 신사 본당으로 올라가는 목제 계단의 옆에 다른 화분들과 함께 배치됐다. 신사에 대한 공물 제공은 지난 1985년 8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이래 22년 만이다. 신사참배 여부에 애매한 입장을 취해 왔던 아베 총리는 결국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의식, 직접 참배하지 않는 대신 신사측에 마음을 전한 셈이다. 때문에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사과를 비롯, 일련의 사죄성 발언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는 처지에 놓였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아베 총리가 공물을 보낸 것은 역내 평화와 안정의 근간이 되는 올바른 역사인식 정립에 역행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논평했다. 중국 외무성도 “중·일 관계에 있어 중대하고 민감한 문제”라며 일본 측에 신중한 자세를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저녁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에게 경의를 표시하며, 명복을 빈다. 이런 생각을 계속 갖고 싶다.”라며 봉납 사실을 인정했다.한편 민주당을 비롯, 야당들은 아베 총리의 애매한 대응에 “양다리를 걸친 태도”라며 일제히 비판, 정치적 이슈로 삼고 있다.hkpark@seoul.co.kr
  • 사르코지 내각 구상차 몰타섬에?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자가 프랑스를 떠나 휴식을 취하며 내각 인선을 구상하고 있다. 사르코지의 선거대책본부장인 클로드 게앙은 7일(현지시간) “당선자가 지중해 몰타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됐지만 행선지에 대해선 함구령을 내렸다.”고만 밝혔다. 현재 새 총리로 유력한 인물은 사르코지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사회·교육 장관을 지낸 프랑수아 피용(53)이다.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피용 총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사르코지 당선자와 통화 중 “누가 차기 총리가 될 것이냐.”고 묻자 사르코지가 피용에게 휴대전화를 넘겨줬다고 보도했다. 연금 제도와 주 35시간 근로제 개편을 추진한 경험을 가진 피용은 사르코지측 인사들 중 좌파의 거부감이 가장 적은 인물로 꼽힌다. 사르코지가 자신의 노동개혁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유화적인 측근을 총리에 임명할 것이란 전망이다. 법학을 전공한 피용은 한 때 AFP통신에서 수습 생활을 했고, 중서부 사르트에서 하원 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지난 2002년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 밑에서 사회·교육장관을 맡았다.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안이 부결된 후 시라크 대통령을 비난하며 사르코지 캠프에 합류했다. 이 밖에 장 루이-보를루(56) 고용장관, 여성 각료인 미셸 알리오-마리(60) 국방장관도 거론되고 있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16일에 대통령직을 인수하면서 후임 총리를 발표하고,6월 총선을 치를 임시 내각도 구성한다. vielee@seoul.co.kr
  • 이민2세 전후세대 엘리제궁 주인되다

    이민2세 전후세대 엘리제궁 주인되다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는 ‘변화’를 선택했다. 6일(현지시간) 치른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투표 개표 결과 ‘정치적 이단아’인 여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52) 후보가 53.06%의 지지율을 확보해 엘리제궁의 새 주인으로 탄생했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헝가리계 이민 2세이자 프랑스 엘리트의 산실인 그랑제콜을 졸업하지 않은 프랑스 정계의 ‘비주류’다. 사르코지는 2차대전 이후 공산정권을 피해 프랑스로 이민한 헝가리 귀족 폴 사르코지와 앙드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앙드레는 그리스계 유대인이다. 앙드레는 “3형제 가운데 둘째인 사르코지는 7세부터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고비마다 역경이 찾아왔다. 그러나 특유의 뚝심으로 헤쳐나왔다. 첫번째 역경은 네살때 맞은 부모의 이혼. 이혼한 아버지가 경제적 지원을 거부해 넉넉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친구들에게 “유년기를 좋아하지 않고 향수도 없다.”고 말할 정도다. 경제적 어려움과 170㎝가 채 안 되는 작은 키 등으로 인한 열등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열등감은 오히려 성공에 대한 사르코지의 열망과 강력한 추진력의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사르코지는 가족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쌓아왔다.“현재의 나를 형성한 것은 어린시절 겪은 수치심의 총체”라고 고백할 정도다. 결혼도 평탄치 않았다. 첫 부인과 이혼한 뒤 재혼한 세실리아(49)가 미국으로 ‘애정 도피’를 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05년에는 11개월간 별거했다. 자녀는 세실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를 포함해 3명이다. 정계 입문도 평당원으로 시작했다. 파리 10대학 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집권 우파 정당에 가입했다. 그러다 28세에 파리 교외 뇌이 쉬르 센 시장에 당선돼 기염을 토했다.1990년대 초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 내각에서 예산장관 등에 기용되며 정치적으로 급성장했다. 시장 재직 시절인 1993년 5월, 역내 유아원에 침입한 괴한이 아이들을 인질로 1억유로를 요구할 때 단신으로 다가가 인질범을 설득, 아이들을 구출한 일화도 있다. 1995년 대선에서 발라뒤르를 지지해 벌어진 시라크와의 ‘틈새’는 줄곧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2002년 총선 압승을 이끈 뒤 총리 기용이 유력시됐으나 시라크는 라파랭을 발탁하고 사르코지는 내무장관에 임명했다. 사르코지는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듯,‘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으며 강력 범죄 척결 정책으로 인기를 얻었다. vielee@seoul.co.kr
  • 친일파 재산 63억 첫 환수

    친일파 재산 63억 첫 환수

    이완용과 송병준 등 친일파 9명의 재산이 국가로 환수된다. 친일 행위를 한 대가로 모은 재산이 국가로 귀속되는 것은 처음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2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위원 9명 전원 찬성으로 9명의 토지 7만 7108평(25만 4906㎡), 공시지가 36억원(추정시가 약 63억원) 상당의 친일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기로 의결했다. 전원위는 귀속 결정된 재산을 재정경제부에 통보해 ‘국(國·나라)’ 명의로 등기한 뒤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의 예우 및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금, 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에 우선적으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불복하는 사람들은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환수 대상자는 한일합병조약 당시 내각 총리 대신이었던 이완용과 장손 이병길, 일진회 총재를 지냈던 송병준과 아들 송종헌을 비롯해 고희경, 권중현, 권태환, 이재극, 조중응 등이다. 조중응은 정미칠조약 당시 법부대신이었다. 이재극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남작 작위를 받았다. 환수 대상이 된 재산은 러일전쟁(1904년)부터 1945년 8월15일 사이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해 현재 본인 명의로 남아 있거나 후손이 상속 증여를 받아 소유하고 있는 토지다. 토지는 고희경이 19만 8844㎡(공시지가 17억 2400만원)로 가장 많고, 권태환이 2만 1713㎡(공시지가 13억원)로 뒤를 이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1차로 지난달 말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 93명의 토지 1317만㎡(공시지가 1185억원) 상당에 대해 위원회 의결로 조사개시결정을 하고 이를 임의로 처분할 수 없도록 법원에 보전처분을 마친 상태다. 김창국 위원장은 “친일재산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다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도 조사해 조사개시결정을 하고 조사 결과 친일재산으로 판단되면 순차적으로 국가 귀속결정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이스라엘 올메르트총리 사퇴 ‘초읽기’

    이스라엘 에후드 올메르트 정부가 지난해 자신들이 일으킨 레바논 침공, 결국은 실패한 전쟁의 후유증으로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어수선하다. 지난 달 30일 공개된 레바논 전쟁에 대한 정부조사위원회(일명 위노그라드 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오면서 올메르트 총리는 사퇴 위기에 직면했다.2일 이스라엘의 최고위 각료이자 대중적 인기가 높은 치피 리브니 외교 장관은 올메르트 총리를 만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총리에게 사퇴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스라엘 라디오는 레바논 전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아미르 페레츠 국방장관이 이르면 이날 중으로 사임을 고려중이라고 보도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랍계 전 의원인 아즈미 비샤라가 레바논 전쟁시 헤즈볼라 게릴라와 내통했다는 반역ㆍ간첩 혐의가 있다는 이스라엘 경찰의 발표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비샤라 전 의원은 현금 다발을 받고 전쟁 중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에 더 손해를 줄 수 있는지와 헤즈볼라의 장거리 로켓 공격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헤즈볼라에 조언했다. ‘비샤라 게이트’는 반역 행위에 그치지 않고 다수인 유대인 정파와 소수파인 아랍계 정파의 ‘구원’이 표면화 된 것이라는 확대해석까지 나오면서 이스라엘 정계에 파장이 증폭하고 있다. 올메르트 총리의 ‘우군’이자 이스라엘 의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원 중 하나인 아비그도르 이츠하키도 2일 올메르트 총리가 현 연립내각의 주축인 중도 카디마 당과 국가의 신임을 잃었다고 비난해 올메르트 총리의 입지가 좁아 들고 있다. 카디마 당내 올메르트의 최대 라이벌인 리브니 장관은 이날 “자신은 각료로 남아 상황개선에 힘쓰겠다.”면서 당지도부 도전의사까지 내비쳤다. 이스라엘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총리의 사임에 찬성하는 비율이 압도적이다. 올메르트 총리는 이날 오전 각료회의 뒤 “명확히 그 보고서는 정부 전체의 매우 심각한 실패를 지적했다.”며 “자연적으로 정부의 수장으로서 나의 실패며 현 정부의 책임”이라고 말했지만 사임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김수정기자 외신종합 crystal@seoul.co.kr
  • 부시, 아베 위안부 사과 ‘수용’ 파문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아베 총리의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경솔한 대응이었다는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 하원에서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 공식 사과 결의안을 추진 중인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 의원은 29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이 왜 일본 총리의 사과를 받아들이느냐.”고 비판하면서 “부시는 성 노예의 피해자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혼다 의원은 다음달 안에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결의안 표결을 시도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일본 정부는 내각의 승인을 받고 의회를 통과한 공식 사과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옥자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회장은 29일 “피해자는 젖혀 둔 채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간에 사과를 주고받을 사안이냐.”고 반문했다. 미 의회 소식통은 “아베 총리의 사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면서 “부시 대통령의 사과 수용 발언이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공화당 의원들도 다수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27일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유감’에 해당하는 일본어 표현을 사용했는데 “통역이 이를 사과를 의미하는 단어(apology)로 바꿨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아시히신문은 ‘사죄 대상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제목의 29일자 사설에서 “총리의 사과 방법은 기묘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총리가 사죄해야 마땅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죄한 것이) 아니지 않으냐.”며 “피해자를 배려하는 발언을 한 것이라고는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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