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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악구 “얘들아 책이랑 놀자”

    관악구가 9일 ‘북스타트’를 선포, 지역의 7세 이하 3만 1957명을 대상으로 책을 보급하고, 책과 친숙해질 수 있는 운동을 시작했다. 북스타트는 1992년 영국에서부터 시작돼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자는 의미의 사회육아 지원운동이다. 관악도서관과 조원도서관, 책이랑놀이랑 도서관에서는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목요일에 부모와 아이가 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책놀이와 함께 책꾸러미를 제공하는 ‘북스타트 데이’(Book Start Day)를 운영한다. 14일부터는 15~24개월 이하 유아와 부모가 참여하는 ‘북스타트’, 25~36개월 유아와 부모 대상 ‘북스타트플러스’, 5~7세 어린이가 참여하는 ‘보물상자’ 등 북스타트 후속 프로그램이 5기에 걸쳐 진행된다. 북스타트 전문 강사의 지도와 자원 활동가의 지원 아래 연령에 맞게 촉감놀이, 우리 몸 알기, 색깔, 소리, 냠냠냠, 책읽기, 북아트, 발표하기 등 다양한 주제로 운영되며, 부모 교육으로 영·유아 발달의 이해와 책읽기 지도도 병행한다. 특히 구만의 이색사업으로 맞벌이 가정을 위해 296곳의 관내 전 보육시설에서 ‘어린이집·유치원과 함께하는 북스타트’를 운영한다. 어린이집 270곳은 노인 일자리 창출을 통해 선발된 할아버지·할머니 동화구연순회방문단이 매일 낮잠 시간 30분 전에 ‘머리맡 동화책’ 읽기를 하고, 유치원 26곳은 ‘1원 1독서교육’을 실시하며, 주2회 ‘도서관에 소풍 가요’라는 견학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구는 지난 1월 서울 자치구에서 두 번째로 ‘독서문화 진흥조례’를 제정해 독서문화진흥사업을 추진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송파구 공사현장 민원시스템 운영

    공사장 먼지에 문을 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주민들, 중장비 소음에 주말 꿀맛같은 낮잠을 잘 수 없었던 주민들에게 희소식이 생겼다. 공사현장 때문에 생겨난 불편함을 손쉽게 호소할 수 있는 민원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 송파구는 8일 구민들이 웹상에서 공사 현장과 관련된 민원을 할 수 있는 ‘U공사현장관리시스템’(u-work.songpa.go.kr/uconst/)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공사 현장 때문에 생겨난 주민들의 불편함을 신속히 해결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야간과 휴일에도 관계 없이 신고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신고된 민원은 문자서비스를 통해 해당 건축 관계자에게 통보돼 ‘즉시 해결’이 가능해졌다. 관리시스템에는 지역의 모든 공공 및 민간 건축 공사장이 웹 지도상으로 표시되며 공사 용도, 규모, 건축주, 설계자, 현장사진 등 공사장의 상세정보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오프라인 방문 점검도 한다. 9일부터 매주 수요일 현장 점검을 실시해 ▲공사장 환경 정비 및 안전관리 ▲보행 및 차량통행 방해 등 생활불편사항 계도 ▲소음·진동·먼지 등 민원발생 요인에 대한 사전예방 활동 등을 병행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깔깔깔]

    ●도토리의 지혜 라퐁텐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농부가 호박을 보면서 생각했다. “신은 왜 이런 연약한 줄기에 이렇게 큰 호박을 달아 줬을까? 그리고 왜 두꺼운 상수리나무에는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주셨을까?” 며칠 뒤 농부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는데 무언가 이마에 떨어져 잠이 깼다. 도토리였다. 순간 농부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휴~ 호박이면 어쩔 뻔했을까?” ●세상을 이겨낸 흔적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 이 시를 읽고 난 후 과일을 보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 충남 인삼브랜드 ‘GinsQ’ 인도네시아 등 3개국 수출

    충남도는 22일 인삼제품에 공동 브랜드 ‘GinsQ’를 달아 해외에 수출하기로 했다. 이는 인삼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동안 금산을 중심으로 충남에 맛과 성분이 다른 400여개의 인삼제품 브랜드가 난립하면서 해외시장 개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해 초 개발한 공동 브랜드 ‘GinsQ’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조례가 없어 브랜드가 낮잠을 자고 있는 것도 이유가 됐다. 도는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조례를 제정하고 이 브랜드를 고려인삼 붐이 일고 있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3개국에서 상표 등록할 예정. GinsQ는 인삼의 ‘Ginseng’과 고품질을 뜻하는 ‘Quality’를 결합한 말로 ‘세계 최상급의 고려인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곰 겨울잠 신비… 체온 30도 유지·심박수 14회로 ‘뚝’

    곰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 신진 대사율은 크게 떨어지면서도 비교적 높은 체온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 알래스카주립대 북극생물학연구소는 1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 연례 회의에서 동면 중 곰의 대사율은 평상시의 25% 수준으로 크게 떨어지지만, 체온은 동면 전 섭취한 먹이 양에 따라 차이가 있고 아무리 떨어져도 정상치보다 섭씨 5~6도 낮은 30도 이상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주택가에서 붙잡힌 흑곰 5마리에게 각종 감지기를 부착한 뒤 대학 내 ‘인공 굴’에서 동면 과정을 24시간 촬영하는 등의 전례 없는 밀착 연구를 3년 넘게 진행한 결과다. 또 곰은 상대적으로 높은 체온을 유지하면서도 근육과 뼈가 거의 약해지지 않았다. 이에 연구진은 이 같은 동면 비결을 밝혀내면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외상 환자나 오랫동안 우주에서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우주인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진을 한번 더 놀라게 한 것은 심장 박동수가 평상시 분당 55회에서 14회로 떨어진 것뿐만이 아니었다. 심장 박동이 10초, 15초, 20초씩 완전히 멈출 때도 있었다. 이에 대해 연구 책임자인 브라이언 반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1분 정도 숨을 참았다가 다시 공기를 들이마실 때만 심장이 뛰었다.”면서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이긴 하지만 사람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다람쥐 등이 동면 후 곧바로 활발히 활동하는 것과 달리 곰은 4월쯤 깨어난 뒤 2~3주가량은 빈둥거리고 낮잠을 잤다. 이는 체온은 곧바로 정상 수준인 38도로 회복되지만 대사율이 높아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정부법안 절반 국회서 ‘낮잠’

    정부법안 절반 국회서 ‘낮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회에 제출된 정부 법안 중 절반가량이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안 처리율은 54.9%로 참여정부 집권 3년 차 법안 처리율 71.2%보다 16.3% 포인트 낮았다. 15일 법제처가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된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정부입법 추진 현황 및 2월 임시국회 법률안 처리 대책’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14일까지 국회에 제출된 정부 법안은 모두 1367건으로 이 가운데 750건(54.9%)이 처리됐고 617건(45.1%)이 계류 중이다. ●장기계류 232건… 법제처 최다 기간별로는 1년 이상 계류 법안이 232건으로 가장 많았고 6개월 이상 1년 미만이 195건, 6개월 미만은 190건 등이다. 소관 부처별로는 법제처가 208건으로 가장 많았고, 국토해양부 74건, 보건복지부 45건, 행정안전부 36건, 지식경제부 35건, 환경부 31건, 교육과학기술부 28건 순이다. 법제처는 1년 이상 통과되지 않고 있는 232건의 법안은 국회에 장기간 계류돼 있어 정책 추진의 적시성 확보가 어렵고 정책 효과가 축소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 간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고 정부조달시장 개방 확대 등을 골자로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은 정부가 2008년 10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2년 넘게 본회의에 머물러 있다. 또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고등교육법, 게임산업진흥법 등도 2008년에 제출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이명박 정부의 법안 처리율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등 앞선 세 정부의 집권 3년 차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민정부는 제출 법안 516건의 96.9%(500건), 국민의 정부는 484건을 제출해 87.8%(425건)가 집권 3년 차 직전까지 처리됐다. 참여정부는 587건을 제출해 418건이 처리됐다. ●여·야 쟁점법안 대립 등이 원인 법제처 관계자는 현 정부의 법안 처리율이 낮은 이유로 주요 쟁점별 여야의 첨예한 대립과 정부 제출 법안 및 의원 입법 증가 등을 꼽았다. 이 관계자는 “현 정부는 과거 정부에 비해 각종 규제 개혁 및 제도 개선 등을 위해 제출한 법안은 많지만 한·미 FTA, 세종시 건설, 4대강 건설 사업 등 주요 쟁점별로 여야가 대립하면서 국회 자체가 열리지 않거나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법안 상당수가 처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참여정부 때부터 국회의원 의정 활동에 대한 시민단체의 감시 및 평가가 강화되면서 의원 입법안이 급증하고 있고, 국회에서도 의원 입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해 정부 입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씨줄날줄] 장비와 제갈량/박대출 논설위원

    중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여러 장수가 등장한다. 무용(武勇)으로는 여포(呂布)가 으뜸이다. 유비·관우·장비 삼형제를 단기필마로 맞선다. 호로관에서는 18개국의 동맹군을 혼자 막아낸다. 적토마는 전투력을 높여주는 동반 무기다. 그러나 꾀가 없고 시기(猜忌)가 많다. 절개가 없고, 물욕이 많다. 무예만 뛰어난, 즉 쌈박질만 잘하는 것이다. 무예에선 관우나 장비도 못지않다. 관우는 당대 최고의 용장으로 꼽힌다. 중국의 유교에선 무성(武聖), 불교에선 부처, 도교에선 천존(天尊), 민간에선 무신(武神)으로 추앙받는다. 관우는 장비가 한수 위라고 했다. 적장의 머리 베기를 주머니 속의 물건 꺼내듯 한다고 했다. 그래서 조조의 백만대군이 장판교에서 혼자 버티는 장비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관우·장비는 충성의 전형이자, 의리의 상징이다. 도원결의로 유비를 평생 모신다. 속된 말로 밉상인 여포와 다르다. 관우는 냉정하고 차분하다. 명의 화타에게서 독화살을 빼내는 수술을 받아도 태연하다. 반면 장비는 성격이 호방하나 과격하다. 잘 참지 못하고 싸움을 즐긴다. 제갈량이 낮잠 자는 것에 화가 나 집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 유비가 삼고초려로 제갈량(諸葛亮)을 찾아갔을 때의 얘기다. 결국은 불 같은 성격이 화를 자초한다. 관우가 죽자 복수를 하려고 부하 장수 범강과 장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 그로 인해 술에 취해 자는 사이 범강과 장달에게 살해된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한 말이 뒤늦게 화제다. “장비는 쓰러지고, 제갈량은 떠나고….”라고 했다나. 일선 검사들의 분석은 비슷하다. 장비는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 제갈량은 차동민 서울고검장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남 전 지검장은 한화·태광그룹 수사를 밀어붙였다. 과잉 수사 논란이 일자 사퇴했다. 의욕이 화를 자초했다. 반면 차 서울고검장은 미묘하다. 검찰 2인자로 1년 6개월간 김 총장을 보좌해 왔다. 김 총장의 뜻에 반해 대검 차장에서 밀려났다. 김 총장이 흔들린 형국이다. 김 총장은 서울 출신. 대구·경북, 호남 인맥과의 갈등설과 맞물린다. 그렇다면 ‘검찰 삼국지’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가 죽자 복수를 결심한다. 제갈량과 조자룡의 만류를 무시하고 북벌을 시도한다. 나라보다 의형제와의 의리를 따라간 것이다. 비록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김 총장 임기는 이제 6개월 남짓 남았다. 그가 유비의 길을 따를 것인지 궁금해진다. 관우, 장비를 위시한 오호장군(五虎將軍)과 제갈량을 다시 세울 건지도.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13가지”...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13가지”...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제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를 기록중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상식’에 거침없는 메스를 들이댔다.  장 교수는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며,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편다면 성장여력도 충분하다.”면서 “한·미 FTA가 오히려 성장동력을 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파헤친 ‘상식의 오류’를 주제별로 질문·답변 형식으로 구성했다.    ●고도성장은 옛날 얘기일 뿐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에서 보듯 현재 한국 경제는 지표와 체감이 괴리되는 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제는 과거 같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주장도 많다. 일각에서는 ‘통큰치킨’ 논란에서 보듯 과거 과감한 설비 투자로 경제 성장에 이바지했던 재벌기업이 이제는 중소 자영업 영역까지 진출하는 것도 한국경제가 성장여력을 없어지면서 나타나는 제 살 깎아먹기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부에선 끊임없이 ‘성장동력이 없어진다, 먹을 게 안보인다’ 하는 비관론을 펴면서 ‘제조업 시대는 끝났으니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근거가 아주 없진 않겠지만, 단순하게 말한다면 성장동력을 찾기 귀찮으니까 자꾸 그런 얘길 하는 것이다. 국가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률 자체는 낮아지는게 맞다. 만약 경제 수준이 높아져서 자연스럽게 성장이 둔화되는 것이라면 그 추세가 완만해야 하는데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까지 6% 정도였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떨어졌다. 이건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추진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개혁’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증거다.  ‘중국이 쫓아온다’는 샌드위치론도 말도 안되는 궤변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와 제일 못하는 나라를 빼고는 세상 모든 나라가 언제나 샌드위치 신세다. 중국이 어려운 경쟁 상대라는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가령 태국은 1990년대까지 노동집약을 무기로 한국을 추적했지만 크게 걱정할 게 없다. 임금이 낮은 대신 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상대적인 임금 수준도 낮고 기술력도 일정 수준 이상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고 게임 끝났다고 볼 게 아니다. 왜 쫒아오는 국가만 걱정하고 도망가는 국가는 무서워하지 않는지 반문하고 싶다.  중국 추적 때문에 이제는 금융업과 서비스업으로 가자는 얘기가 많지만 그 분야는 이미 선진국들이 단단히 똬리 틀고 앉아 있다. 금융업이 겉보기엔 좋아보여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금융혁신이란 사실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로비를 통해 규제를 완화한 덕분에 생겨난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정부가 정말 심각하게 금융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겠다면 과거 고도성장기처럼 수십년짜리 목표를 세우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금융허브라는게 지금처럼 적당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부나 재계가 ‘금융업 해서 쉽게 먹고 살 수 있는데 우리가 왜 이 고생하나’ 하는 생각하니까 자꾸 제조업 끝났다는 담론을 확산시킨다. 결국 설비투자하고 기술개발하고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게 힘들고 귀찮으니까 성장동력 없어진다는 얘기가 자꾸 나온다. 언제는 경제여건이 쉬워서 경제발전했나? 언제는 선진국들이 낮잠 자는 틈에 경제성장했나? 충분히 할 수 있다. 불과 수십년 전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게 잿더미가 된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960년대 포항제철 건설할 때를 생각해보자. 전세계가 다 미쳤다고 비웃었지만 결국 해냈다.        ●경제성장을 위해 한미 FTA를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EU FTA 등 적극적인 FTA 정책을 추진하면서 FTA가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경제규모가 비슷한 나라끼리 FTA를 체결하는 것까지 비판할 생각은 없다. 서로 시장도 커지고 경쟁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와 수준에서 차이가 큰 나라와 FTA를 하게 되면 문제가 다르다. 한국은 현재 국민소득도 그렇고 많은 분야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생산성이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한마디로 시기상조다. 한국이 미국이나 EU와 FTA를 한다면 자동차나 전자 등 일부 분야는 이득을 좀 볼지 모르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이나 농업 등에선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부품소재를 비롯해 한국이 GDP 4만불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산업들의 성장 잠재력을 꺾어 버릴 것으로 본다. 한국이 언제는 FTA 덕분에 고도성장했나. 남들이 미쳤다고 비웃어도 기를 쓰고 기술개발해서 성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미FTA가 갖는 장밋빛 미래를 홍보하는 글을 읽어봐도 한미FTA가 경제성장에 미미한 도움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국책연구기관에서 한미FTA 타결시 1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2% 증가라고 했다가 그것밖에 안되느냐는 비판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6%로 전망치를 바꾼 전례가 있다. 경제학 예측에서는 변수를 어떻게 가정하고 어떤 모델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조차도 한미FTA 명분으로 삼기엔 한참 부족하다.        ●기업자금조달 위해 주식시장 활성화해야 한다?    ▶돈줄이 막혔다고 하소연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주식시장에서 기업 자금조달이 이뤄지지 않고 과거 개발 독재 당시처럼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간접금융방식도 없어진 지금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  -외환위기 이전 방식은 은행중심 경제 시스템인 반면 지금은 주식시장 중심 시스템이다 (@@@) ‘기왕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되돌리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좋은 게 있으면 되살려야 한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할 필요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외환위기 이전 은행중심 경제시스템을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은행은 기업대출을 기피하고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구실을 전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을 떠올려보자. 우리나라 은행은 기업대출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제일은행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에는 총대출금 중 80% 정도가 기업대출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몇 년만에 가계대출이 85% 정도가 돼 버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뭘까. 지금 은행들은 엄청나게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 소비자한테 주택을 담보로 잡고 대출해준 뒤 문제가 발생하면 차압하는 방식으로 은행이 쉽게 돈벌게 해줘선 안된다.  주식시장도 개편해야 한다. 1972년부터 1991년 사이에 한국의 투자자본 조달에서 주식발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13.4%로 영국(7.0%)이나 미국(-4.9%)보다도 훨씬 높았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은 기업에서 돈을 빼가는 장치가 돼 버렸다. 거기다 인수합병(M&A)을 자유화하면서 세계에서 M&A가 가장 쉬운 나라가 돼 버렸다. 이제는 대기업조차 과거처럼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외국자본이 단기간에 몰려왔다 나가는 과정에서 거시경제까지 불안해진다. 이제는 M&A를 좀 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포이즌필이나 스웨덴·벨기에처럼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수도 있다. 독일식으로 노조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골고루 참고하면 된다. 구체적인 방법은 더 논의해야 겠지만 기존 선진국 장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산업정책은 관치경제다?    ▶과거처럼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방식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사회적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정부는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유치산업을 ‘선별’하고 집중 지원했다. 이에 대해 ‘관치경제’라는 비판이 많았다. 선별적 정책이 나쁘다는 얘길 많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업도 항상 선별을 한다. 모든 계열사에 똑같이 지원하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 정부가 선별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절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느냐이다. 경제발전 단계와 정책목표에 따라 지원방식이나 지원방향은 달라지게 돼 있다. 개입 방식도 은행을 통할수도 있고 연구개발 지원을 통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규모의 경제를 이용한 대규모 조립가공산업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대기업에게 은행대출을 집중해줬다. 지금 단계에선 부품소재산업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소기업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물론 초기자본이 많이 필요한 에너지 같은 분야는 대기업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이 ‘상생’해야 한다?    ▶현재 대기업이나 수출 기업은 엄청난 성장세를 이어가는 반면 중소기업이나 내수 기업은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보기도 어려워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제도적 대안이 절실해 보인다.  -1966년 상위 10대 재벌 중 세 곳만이 1974년 상위 10위 안에 남았다. 1974년 상위 10위 기업 중에서 1980년에도 상위 10위 안에 들었던 기업은 5곳에 불과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그런 구조변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는 몇 가지 차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첫째, 대기업들이 불공정 경쟁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쟁 상대가 될 만한 기업이 성장하는 걸 막는다거나, 하청기업이 기술 개발하면 납품단가를 깎아서 싹을 잘라 버리는 행태가 존재한다. 규제를 통해 그걸 막아야 한다. 단순히 ‘상생하자’고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이 잘 이뤄지는데 마음씨가 착해서 그런게 아니다. 정부가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규제를 강화해서 대기업 행태에 제동을 건 덕분이다.  그 다음에는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제일 취약한게 부품소재 산업이다. 우리나라 무역적자 가운데 일본과 무역하면서 발생하는 적자가 제일 많은데 그 대부분이 부품소재산업에서 경쟁력이 없어서 발생한다. 더구나 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품소재 수입의존도가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은 어림없다. 문제는 부품소재산업은 고도로 특화되고 전문화된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보거나 중소기업들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나서서 고급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필요한 부분에서 꼭 개발해야 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서 기술개발하도록 보조금을 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세번째, 정치적 차원을 봐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에 침투하는 현상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지만 한국은 양상이 더 심각하다. 거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과거 사회통합과 평등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복지제도에 제약이 많을 때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편 정책이 바로 특정 영역에서 대기업에게 진입 규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에 식당이나 치킨집이 그렇게 많은 것도 과거 그런 방식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계 유지를 도모해준 덕분이었다. 이게 나름대로 사회안전망 구실을 해왔는데 그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예전 방식으로 되돌아가서 재벌들이 특정 업종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고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다.  서비스업이 생산성이 낮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데 재벌이 진출하면 생산성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처럼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선 경쟁에서 탈락하면 끝장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죽기살기로 저항하고 결국 생산성도 못 높이고 갈등만 첨예해지는 것이다. 내 주장은 차라리 대기업에게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대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 그 재원으로 기본생활권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식으로 일괄타결하자는 것이다. 지금 대기업들은 세금도 내기 싫고 옛날처럼 사업규제를 받기도 싫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은 척결대상이다?    ▶민주화 이후 박정희 정부의 산업정책과 개발계획은 독재시대의 유산으로 취급받으면서 ‘개방과 자유화’가 대세가 됐다. 이를 꾸준히 비판해온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박정희 독재시대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 박정희가 잘했단 말이냐’ 하는 식으로 질문하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가 아직도 군부독재의 망령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런건 잘했지만 이런건 못했다는 걸 용납을 못하는 자세, 그런 이분법이야말로 박정희와 그 이후 군사독재가 남긴 가장 해로운 유산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그건 마치 북한에 대해 한 가지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친북 낙인을 찍는 식이다. 그것부터 벗어나야 한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의 ‘성공’을 말하는 건 독재를 찬양하는게 결코 아니다. 사실 민감한 문제라는 건 잘 안다. 당시 투옥되는 등 피해를 본 분드링 많다. 선뜻 용납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이분법을 극복할 때만이 군부독재 유산이 청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제민주화 위해 주주중심 경영해야한다?    ▶재벌을 비판하는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가 ‘극히 일부 주식만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꾸준히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참여연대 등이 벌인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최근 ‘회사 돈 빼돌리는 총수를 고발하는 시민단체 활동이 뭐가 잘못됐다는 말일까’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재벌 총수의 횡령을 막자는 걸 비판한 적이 한번도 없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강조하는 건 소액주주운동은 국제적 맥락에서 봤을 때 주식으로 돈을 버는 펀드매니저들이 ‘우리도 끼워달라’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에서 1980년대부터 주주자본주의와 소액주주운동이 강화됐는데 그 이후 기업이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비율이 계속 높아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처음에는 전문경영인들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 소액주주운동의 명분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문경영인들의 연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 미국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선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을 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키면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주주자본주의 시대에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써서 재벌을 비판하니까 특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주주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시키는 역효과를 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주자본주의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그걸 조심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비판을 한 건데, 박정희 문제 못지않게 재벌문제도 민감하니까 재벌옹호론자로 오해를 산다. 내 입장은 참여연대가 좋은 일을 했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뿐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해로운 논리를 정의로운 논리로 잘못 인식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걸 비판하는 것이다.        ●사회적대타협은 물넌거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을 통해 국가·자본·노동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달성하자는 주장을 펴왔다. 그 제안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는지.  -현실적 조건을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 얘길 처음 했던 때는 외국 투기자본이 한국 경제를 잠식하고 재벌조차도 경영권에 위협을 느끼던 때였다. 지금은 그 조건이 많이 달라졌다. 재벌들 자체도 금융자본화 경향이 가속화됐고 정부도 그런 흐름에 동조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6년 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복지국가를 목표로 제시했을 때 개혁·진보진영에서도 많은 이들이 현실성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어떤가. 복지국가는 기본 전제로 깔고 방법론을 갖고 논쟁하고 있다. 그걸 지렛대로 정치적 타협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당시 구상했던 사회적 대타협은 힘들겠지만 정신 자체는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본다. 물론 구체적인 방식은 계속 바뀌는 조건 속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재벌들 예뻐서 이러는게 아니다. 지금같은 식으로 그냥 놔두면 재벌들이 제조업은 버려둔 채 금융자본으로 변신하거나 외국 금융자본에게 다 먹히게 된다.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자본의 출처가 러시아 마피아인지 이탈리아 마피아인지도 불분명한 투자자본이 국내에 들어올 것이다. 그때는 누구와 싸워야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것보다는 정씨 재벌 이씨 재벌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과 싸우는게 낫다. 자본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재벌들과 타협하는게 낫다. 재벌들 미우니까 재벌 해체하고 외국자본 들여와 견제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은 다같이 죽자는 것밖에 안된다.        ●복지제도가 경제성장 가로막는다?    ▶‘더 나은 자본주의’로서 ‘복지국가’를 강조하기만 그 길로 가기 위한 ‘동력’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복지국가의 주체 혹은 동력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그 문제를 지적하시는 분들은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시나리오를 얘기해주길 바라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동력은 말 그대로 모든 국민이라고밖에 얘길 못하겠다. 현실적 조건을 봐야 한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복지국가 담론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건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정치세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이 스웨덴처럼 노조 조직률이 80%를 웃도는 나라도 아닌 상황에서 노동 중심으로 복지국가 하자고 해서는 얘기가 먹히질 않는다. 특정집단이 논의 끌어갈 상황이 아니고, 둘째로 논의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도 우리가 주체다 하는 식으로 얘길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입지가 좁아진다. 중요한 건 국민들이 마음만 바꾸면 안 될 일도 된다는 점이다. 그게 민주국가가 위대한 점 아니겠는가.        ●복지정책은 빈곤층만 대상으로 해야 한다?    ▶무상복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3+1 복지정책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포퓰리즘과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다.  -일단 ‘무상’이라는 용어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낸다. 반면 의무급식에 대해 ‘부자복지’라고 비난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부자들이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내니까 부자들도 엄연히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부자복지’를 문제삼으려면 왜 의무교육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지 묻고 싶다.  용어 문제를 빼고 민주당이 내세우는 3+1 복지정책은 좋은 방향이라고 본다. 나는 보편적 복지확대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은 빈곤층을 대상으로한 복지정책만 얘기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결국 부자한테 돈을 뺏어서 빈곤층에게 나눠주는 식이 되기 때문에 미국처럼 복지에 대한 거부감과 조세저항만 높아지게 된다.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복지를 잘해야 개인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가령 복지가 안 돼서 미래가 불안하니까 우수한 인재들이 안정성 높은 직업을 갖기 위해 의대와 법대로 몰리면서 이공대 기초학문 분야가 어려움에 빠졌다. 복지제도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국가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복지가 안되니까 저출산문제가 가중되고, 복지가 안되니까 자녀들에게 엄청난 사교육을 시키려는 과열 경쟁이 벌어진다. 복지가 안되니까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다.        ●대처 총리가 영국병 고쳤다?    ▶영국은 석유산업과 금융업, 프리미어리그를 빼고는 제조업 기반이 무너졌다. 특히 대처 총리의 감세와 복지지출 삭감 등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논거로 자주 거론된다. 제조업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영국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시장근본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분들이 ‘대처리즘’을 많이 얘기한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영국병’이란 것은 영국병이란 건 그들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영국병은 실체도 없고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당장 경제성장률을 보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영국 경제성장률이 1인당 2% 안팎이다. 대처 총리 등장 이후인 1990년대 평균 경제 성장률이 2.2%이다. 변화가 없다.  대처가 과감하게 복지 삭감했다거나 세금을 엄청나게 깎았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대처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봐도 복지지출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최고소득세율을 엄청나게 깎은 건 맞지만 그건 극히 일부 고소득자에게만 해당될 뿐이고 또 간접세 비중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세수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특별히 더 작은 정부가 된 것도 아니다.  대처가 노조를 꺾고 세금은 깎고 금융업 키운 것을 두고 영국을 살렸다고 하지만 따지고보면 대처야말로 영국병의 원인이다. 공기업 민영화의 폐해는 유럽에서 가장 뒤진 철도시설과 설비투자 기피로 나타나고 있다. 빈부격차도 대단히 악화됐다. 영국의 소득분포 최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 비율이 1975년에 5.37%였는데 1998년에는 9.57%가 됐다. 대처 총리 정책으로 제조업은 다 무너지고 금융 분야만 강해졌지만 그마저도 미국발 금융위기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영국은 지금 앞으로 뭐 먹고 사나 걱정하는 신세다. 물론 대처 이전에 영국 노조에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순 없다. 가령 산업별 노조가 아니라 직능별 노조가 많다보니 한 직장에 노조가 대여섯 개씩 있는 경우도 있었다. 경영진이 노조들과 협상을 마무리해도 노조 하나만 거부해도 파업이 터지는 식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에서 말했듯이 노조가 강했을 때와 노조가 약해진 이후 경제성장률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 대처가 노조를 희생양삼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제와서 어떻게 하느냐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책 속표지에 쓴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메모가 화제다. 이 메모에서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라고 썼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것 두세 가지를 꼽아달라.  -먼저 우리나라에 우선 한정시켜 보자면, 우리나라가 부끄러운 세계 1위 (최소한 OECD 1위)를 하고 있는 남녀 임금격차, 주당 노동 시간, 복지 지출(OECD 꼴찌에서 2위, 꼴찌는 국민소득이 우리의 반도 안 되는 멕시코) 등 분야에서도 앞으로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변화가 자동으로 오는 것은 아니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정말 깨질 것 같지 않던 한국의 남아선호 현상이 깨진 것을 보면 앞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꼭 있을 것으로 믿는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전에 <사다리 걷어차기>나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이야기했듯이 선진국이 후진국을 압박하는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지금 세계 경제 구조의 변화 속에서 선진국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그런 속에서 후진국 지위를 방금 벗어나 아직도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두 세계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우리나라가 이 문제에 있어 좀 더 적극적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떠맡는다면 이 문제에 있어서 좀 더 빠른 진전이 있을 것이다. 분발을 촉구하고 싶다.        ●경제학은 계량분석만 잘하면 된다?    ▶한국 사회과학계는 미국식 영향으로 계량분석에만 치중하면서 현실 현실 설명력을 잃고 대중들과 괴리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그런 고민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온다. 너무 수학이나 통계 쪽으로만 발전하니까 방향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배우긴 하는데 왜 배우는지 잊어버린 셈이다. 영미 경제학계에서도 교육방법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다. 왜 배우는지도 모르면서 계량분석만 배워서는 나중에 길을 잃어버린다. 뭘 배울지 목표를 정하고 큰 그림을 배우고 시작을 해야 하는데 테크닉만 배우니까 그것에 빠져 버리는거다.    ▶그동안 제도경제학에 입각해 한국과 세계 경제를 분석하는데 천착해 왔다. 한국에선 낯선 분야인 제도경제학을 소개해달라.  -쉽게 말해 ‘덜 추상화한다’는게 가장 큰 특징이다. 주류경제학은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추상적인 논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도경제학은 현실을 좀 더 복합적인 제도의 망과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본다. 기업을 놓고 보면 국가별 차이와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직형태나 사회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고 접근한다. 역사적 비교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현실을 봐야지 이론만 보면 상상력을 제약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많이 드는 예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자유무역을 중시하면서도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고 대부분 주택을 국가가 공급하고 GDP에서 공공부문 비중도 엄청나게 크다. 어떤 단일한 경제이론으로도 싱가포르를 설명하지 못한다. 현실을 보지 않으면 특정 이론에만 빠지게 되고 그런 눈으로 싱가포르 보면 제대로 설명을 못하게 된다.  사실 제도경제학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제도가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할 정도로 대단히 범위가 넓다. 일반적인 흐름은 제도가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치는지,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이다. 나는 거기에 더해 제도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 미치는가를 많이 보려고 한다. 개인은 물론 자유의지가 있고 개인 선택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선택에 영향 미치는 건 어떤 제도적 환경에서 살아가는지에 따라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스웨덴과 한국에서 똑같이 정부 역할 축소를 말하더라도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같은 환경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관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공직자 비리 인식도] 공직자윤리법 사법부엔 관대?

    서울신문의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공직자 재취업을 제한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 필요성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공직자 윤리법 제17조에 따르면 재산등록 대상 공직자는 퇴직 후 2년간 재직 중 업무와 관련 있던 회사에 재취업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법 33조에선 업무 관련 법인 범위를 자본금 50억원 이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일반 기업과 달리 ‘맨파워’로 일하는 법무법인 특성상 자본금 50억원을 초과하는 로펌은 국내엔 한 곳도 없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춘석 의원실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퇴직 후 재취업한 검사 중 로펌 입사(변호사 개업 포함) 비율은 2007년 73.3%(44명)에서 2008년 81.6%(40명), 2009년 89.2%(75명)로 매년 증가 추세다. 로펌으로 이동하는 행정부 공무원도 모양새는 비슷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이한구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공정위를 퇴직하고 민간 기업에 취업한 4급 이상 공무원 24명 중 14명(58.3%)이 김앤장 등 대형 로펌으로 이동했다. 공직자윤리법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는 몇년째 답답한 눈치다. 개정안에 손을 들어줄 국회가 정작 무관심해서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이 업무 관련 법인 자본금 기준을 10억원 이상으로 낮추는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지만 이를 비롯해 24건의 개정안이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3월 새앨범 내는 ‘찔레꽃’ 소리꾼 장사익

    [김문이 만난사람] 3월 새앨범 내는 ‘찔레꽃’ 소리꾼 장사익

    산 너머 저쪽이다. 어머니는 배추를 팔러 나갔다. 돌아오는 언덕 길이 꼬불꼬불 멀었다. 오늘도 늦으시려나….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그렇게 기다렸다. 어느 날엔가 막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거나, 어머니가 걱정된다. 그래서 읊었다. ‘열무 삼십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해는 시든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숙제를 천천히 해도 엄마 안 오시네/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옛날~’ 1989년 요절한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에 나오는 대목이다. ‘엄마 걱정’은 지난 해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해 연말 제주 무대에 이르기까지 노래로 불려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장사익 소리판 역(驛)’이란 제목으로 전국 투어에서 선보였던 것. 공연 도중 기형도씨의 어머니를 초청해 아들의 ‘엄마 걱정’을 눈물 나도록 불러 관객들과 함께 감루(感淚)의 바다로 빠지게 했다. 장씨 자신도 참외장사를 했던 어머니의 추억을 토해냈다. 그런 ‘엄마 생각’에서 장사익(62)씨는 오는 3월 새 앨범을 낸다. 원래 노래풍도 그렇고 소재를 선정하는 스타일도 ‘한 많은 우리 것’을 찾고 있지만 이번 새 앨범에는 특유의 ‘토장’(土醬)을 더욱 진득하게 담아낸다. ‘산너머 저쪽’ ‘엄마 걱정’ 등의 신곡에다 ‘삼식이’ ‘아버지’ ‘여행’ ‘섬’ 등 11곡을 맛깔스럽게 버무린다. 2008년 ‘꽃구경’ 이후 3년 만으로 7번째 앨범이다. 타이틀곡은 ‘역’이다. 장씨는 다른 가수와 달리 신곡이 나오면 먼저 무대공연을 통해 선보인 다음 녹음 과정을 거친다. 장씨의 노래는 요즘 들어 더욱 중장년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국내 양대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유료 관객 점유율을 집계한 결과 장씨의 ‘역’ 공연이 전체 좌석 중 유료 관객 점유율 97%로 1위에 올라 인기도를 입증했다. 그는 ‘찔레꽃’으로 많은 팬들의 애간장을 충분히 녹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래 제목처럼 여전히 ‘이게 아닌데’라고 하면서 차원을 높인다. 그럴 것이 북악산을 바라보는 집 창가에 찾아오는 새들과 그 산 기슭에 드러누운 부처와도 대화를 나눈다. 또한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묵향’과 함께 튼튼 60대 세월로 ‘독공’(獨功)의 길을 걷고 있다. ●풍경이 모여드는 마당 서울 종로구 홍지동에 위치한 장씨의 집. 10여개의 풍경이 앞마당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각자 불어오는 찬바람에 의지해 겨울소리를 내고 있었다. 녹차를 마시면서 한 시간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장씨의 오랜 친구들이 계속 찾아온다. 비둘기와 까마귀, 참새들이 나뭇가지에 와서 교대로 떠들고 재잘거리고 뭐라고 지껄인다. 뒷산 언덕 높이에서는 이를 시샘하듯 매 한 마리가 크게 날갯짓을 한다. 뿐만 아니다. 연못에서 동면하는 개구리 10여 마리도 아직 기척은 없지만 목청을 가다듬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장씨 집에는 계절별로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는, 그런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겨울에는 새들이 저마다 고운 목소리로 멋을 내고 4, 5월이 되면 개구리가 뒤질세라 울어댄다. 개구리들은 영특하게도 여름에 매미 소리가 나와야 비로소 입을 다문다. 또 그 매미들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풀벌레한테 인계를 한다. 다시 겨울이 오면 참새들이 울면서 자연의 크리마스 카드를 연출한다. 하여 장씨는 이들에게 노래할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클래식과 국악이 함께 나오는 FM 라디오 음악을 잔잔하게 하루 종일 틀어준다. 새들이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고 잘 듣는지 장씨 스스로 깨닫는다. 때문에 굳이 창문 열고 사람소리를 내지 않는다. 혹 사람의 소리가 나면 그들은 얼른 도망가버린다. 장씨는 새들에게 곰팡이 생긴 쌀을 먹이로 준다. 이런 평화로움에 지나가던 고양이도 잠시 낮잠을 즐기고 간다. 전원 교향악이 따로 없다. 올봄에는 닭 몇 마리를 새 식구로 불러들일 생각이다. “(그들이) 울다가 지치면 딴 놈이 와서 울어줍니다. 아주 자연스러워요. 일년 사계절이 그럴진데 요즘 세상에서는 한꺼번에 뛰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가용 타는 것이 왠지 슬퍼져서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여러 사람이 휴대전화에 의존하는 모습을 볼 때 소름이 끼친다는 생각도 듭니다. 올해에는 주변을 살피면서 느리게 가 보면 어떨까요.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은 이것저것 살피면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잖아요.” 문득 그의 노래가 대부분 느리면서 호소력 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곡 중 하나인 ‘봄날은 간다’가 떠올랐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가~안다.’ ●개발한 글씨체로 일필휘지 요즘 그는 서예에 푹 빠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여지없이 먹을 갈고 한 시간여 동안 붓을 잡아 화선지에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글씨체를 일필휘지로 써내려 간다. ‘동백아가씨’ ‘찔레꽃’ 등의 노래가사는 기본이고 마음에 드는 시구절 등 주로 한글로 쓴다. ‘느림의 미학’과 ‘위안과 희망’이 장사익류의 소리라면 또 다른 ‘장사익류의 서체’를 개발해낸 셈이다. 지인들에게 안부편지를 쓸 때도 꼭 붓글씨를 고집한다. 주위에서는 전시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작품수준의 경지라고 평가한다. 그는 조선후기 3대 명필 중 한 사람이었던 창암 이삼만(李三晩)의 글씨체를 무척 좋아한다. 장씨는 “창암의 서예전이 다음 달 27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면서 글씨의 근본을 오로지 자연에서 구했기에 물처럼 흐르는 멋이 물씬 풍긴다고 말했다. 또한 평론가들도 “먹이 농담하듯 곡선과 직선, 음양의 요소를 조화로움의 극치로 풀어낸다. 자연의 소리가 글씨에 스며들어 붓이 춤추듯 노래하는 것 같다.”고 평한다. “한글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00년 정도입니다. 한자인 경우에는 추사 김정희 서체니 중국의 아무개 서체니 하고 있지만, 한글은 쓰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계속 쓰다 보면 아름다운 글씨가 나오고 그게 곧 자신의 글씨체가 되겠지요. 노래가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서예는 노래를 집중하게 하는 정신력의 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2004년 작고한 음악인 김대환씨를 예로 든다. 평생 아리랑과 반야심경구절만 쓰다 보니(앞으로 썼다가 뒤로 썼다가 반복하면서) 왕희지 서법보다 더 자유분방해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1990년에 쌀 한톨에 283자의 반야심경을 모두 써 넣어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사익 소리판 역’ 완결무대 이어져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부인 고완선씨가 떡과 과일을 가져왔다. 고씨는 남편에게 “사진촬영도 하는데 기왕이면 옷을 갈아입고 하시지.”라고 했다. 그러자 장씨는 “어때 뭐, 원래 노숙자차림이 내 모양인데 뭐.”라고 웃어넘긴다. 알콩과 달콩으로 미소를 주고받는다. 마루바닥 한쪽에 오래전에 부부가 함께 만든 병풍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은 ‘백년가약서’이다. ‘하늘 고완선과 땅 장사익은 금후 100년 동안 항상 사랑하고 존경하고 늘 행복함을 유지시킨다는 약서(約書)를 씁니다. 단, 100년 후에는 영원으로 계약조건을 변경합니다.’ 올 한해는 얼마나 많은 공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높아가는 인기도만큼 여기저기에서 오라는 데가 더욱 많다. 이달 대구와 부산, 일본 후쿠오카 등에서 협연을 끝낸 데 이어 2월에는 경북 안동(11일), 서울 노원(17일), 경기 군포(19일) 등에서 협연이 예정돼 있다. 3월 1일에는 김대환 추모공연에 참가한다. 또 이달에는 단독공연이 있는데 울산(15일)과 창원(19일)에서 이어지며 4월에는 전주, 과천, 춘천 등에서 단독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지난해 10월에 시작된 ‘장사익 소리판 역’의 완결편을 마무리짓는 무대가 5월까지 10여 차례 이어진다. 전직 카센터 직원, 독서실 운영, 가구점 총무, 전자회사 직원, 보험회사 직원…. 장씨는 마치 죽장에 삿갓 쓰고 그러하듯, 일찍부터 방랑과 고난의 길을 걸었다. 인생살이의 산전수전을 겪은 다음 40대 중반에 소리꾼으로 데뷔했다. 다른 사람보다 늦었지만 삶의 내공이 쌓여서인지 무대 위에서 넘어지고 깨진 것을 얘기할 수 있어 오히려 음원이 시원했다. 일찍 ‘국민 소리꾼’이 된 것도 여기에 있겠다. “노래는 진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노래는 맑아야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희망도 있고 위안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객들과 같아지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노래를 참 잘 택했구나 하고 있습니다.” 장씨는 가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냥 소리꾼일 뿐이라고 한다. 애정을 얻어도 고통이요, 또 애정을 버려도 고통이라는 말이 있다. 소리를 얻었을 때도 많은 고통이 있었을 테고, 또 언제가 버려야 하니 더 많은 고통을 생각하고 있을 터. 그래서 요즘도 ‘이게 아닌데’로 스스로 채찍을 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장사익은… 1949년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 삼봉마을에서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은 소문난 장구잡이였다. 소리의 기질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장씨는 초등학교 때 웅변을 잘했다. 어릴 때는 장차 정치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이 시급해 1965년 서울 선린상고에 진학했다. 전 프로야구 선수 김우열씨와 동기동창. 고 3 때 종로에 있는 생명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이때 인근 낙원동 음악학원에 다니며 노래연습을 틈틈이 했다. 직장생활 3년 후 공병으로 군입대를 했지만 소리솜씨가 좋아 31사단 문선대에서 근무했다. 1972년 제대 후에는 무역회사, 전자회사 영업사원, 노점상, 카센터 등을 전전했다. 그러면서 정악피리와 태평소 등을 스스로 익혔다. 1993년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다. 때마침 그해 전주대사습놀이에서 ‘공주농악’으로 장원에 뽑혔다. 또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결성농요’로 대통령상을 탔다. 이듬해 전주대사습놀이에서도 ‘금산농악’으로 장원에 올랐다. 그러던 1994년 11월 주위의 권유로 서울 신촌에서 첫 공연을 했다.100석 규모의 극장에 300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내친김에 1집앨범 ‘하늘가는 길’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로 데뷔해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지금까지 ‘기침’(1999) ‘허허바다’(200) ‘사람이 그리워서’(2006)‘ ‘꽃구경’(2008) 등 6집 앨범을 냈다.
  • 가축전염병 연구소 건립사업 ‘낮잠’

    가축전염병 연구소 건립사업 ‘낮잠’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축산 기반이 붕괴될 위기를 맞았으나 지방의 가축전염병 연구소 건립 사업은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지기만 한다. 가축 전염병이나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걸리는 인수공통전염병은 조기 예방과 발빠른 대응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처가 느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최대 규모로 설립되는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는 당초 계획보다 2년가량 늦어지고 있다. 익산캠퍼스에 설립되는 이 연구소는 국책 사업으로 정부로부터 361억원을 지원받아 지난해 말에 준공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시공사 선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실제 착공은 지난해 3월에야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준공예정일도 내년 상반기로 지연되고 말았다. 이 사업은 170억원의 사업비를 미리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예산의 91%인 155억원을 지난해에 집행하지 못했고, 올 예산은 요구액의 25%인 53억원만 반영되는 데 그쳤다. 이미 확보된 예산도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추가 사업비를 요구할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전북대는 “국내 기업은 경험이 없는 건설 사업이라 착공이 늦어졌고 이 때문에 잔여 사업비 확보도 차질을 빚었다.”면서 “올 추경예산에 나머지 사업비가 확보되면 내년 상반기에 완공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또 전북도가 2009년 말까지 도내 3곳에 설립하려던 국가공인 가축전염병 정밀진단시설 구축사업 역시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전북도는 2008년 익산시와 김제시 등에서 AI가 발생해 1000억원대의 피해가 발생하자 국비와 지방비 57억원을 투자해 축산위생연구소 본소와 익산·정읍지소에 첨단설비를 구비한 가축전염병 정밀진단시설을 갖추기로 했다. 현재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만 확진 판정을 내리는 AI와 인수공통전염병을 신속하게 진단하겠다며 사업비도 전액 편성했다. 하지만 이 사업 역시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착공조차 못했다. 관련 예산의 82%인 47억원은 지난해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이월됐다. 이에 대해 전북도는 “전주에 있던 축산위생연구소 본소를 장수로 이전하는 계획과 맞물려 정밀 진단시설 구축사업이 늦어졌다.”면서 “2~3월쯤 착공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전북분원은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신약개발에 성공하는 등 빠르게 대응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전북분원은 내년 말까지 190억원을 들여 친환경바이오소재연구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나 2년 빠른 지난해 4월 국내 최초로 AI 예방약 상용화에 성공한 데 이어 또 다른 신제품을 출시했다. 첫 예방약 기술 이전료만도 300억원에 이른다. 원광대도 국·지방비 75억원을 지원받아 인수공통전염병 신약 개발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5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낼 계획이다. 이우송 생명공학연구원 전북분원 박사는 “가축전염병과 인수공통전염병은 조기 예방을 해야 하고 의약시장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빠르게 대응하는 속도전이 중요하다.”면서 “AI의 경우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사료에 예방약을 첨가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아비 되기’를 바라보는 이중의 시선-박민규 소설 다시 읽기/허진

    1 아들은 아버지가 된다 ‘오감도’ 시 제2호에서 이상은 “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라고 토로했다. 이상의 토로는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한번쯤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을 보여 준다. 그 고민은 ‘나도 언젠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닮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이 제시한 규범에 자신을 맞추고, 세상의 질서에 동화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을 포괄한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자아를 억압하고 순치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자아가 찢기고 쪼개지고 일그러지는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박민규의 소설은 그러한 ‘아비 되기’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아비 되기’의 관점에서 박민규 소설의 서사를 재배열하면, 세상에게 “닥쳐 개새끼야!”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던 ‘나’(‘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50쪽)가 학창 시절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맞벌이를 해서 “한국의 표준이라 봐도 무방한 34평 아파트”를 마련하고(‘코리언 스탠더즈’, 183쪽), 그 집을 팔아 자식들에게 돈을 마련해준 뒤(‘누런 강 배 한 척’) 요양원에 들어가 사랑했던 여인에게 “아버지… 일어나요, 예?”라는 말을 들으며 죽음을 맞이하는(‘낮잠’, 200쪽) 시간적 스펙트럼이 도출된다. 그 시간적 스펙트럼을 아비의 질서와 규율을 내면화하고, 그에 맞게 자아를 변형시키는 ‘아비 되기’의 과정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은 그러한 ‘아비 되기’의 과정에서 분열되고 일그러지는 주체의 모습을 보여 준다.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은 ‘아비 되기’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아비 되기’를 받아들이고 아비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비의 세계를 부정하며 그 세계의 전복을 꿈꾼다. 박민규가 종종 구사하는 모순적인 문장은 그러한 분열의 징후를 보여 주는 단서이다. ⑴ 서늘한 창에 이마를 맞대고서 나는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빨리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빨리 핼리가 와 주기를 바랐다. 다행할수록, 삶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그래서 짧게, 나는 가혹해지고 싶었다. (‘핑퐁’, 95쪽) ⑵ 죽어간 이들의 진실을 보았고, 살아 진실을 논하는 자들의 거짓을 참아야 했었다. 변질과 변절, 변이와 변태…, 적도 동지도 사라진 세상 속에서 그는 홀로이 외롭고 외로웠다.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 세계……, 다시 만난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龍龍龍龍’, 108~109쪽) 인용문 중 굵게 표시한 부분은 하나의 문장 안에 모순되는 두 가지 내용이 담긴 경우이다. 여러 작품에서 박민규는 이러한 문장을 빈번하게 구사하는데, 이를 우리는 ‘아비 되기’를 바라보는 화자의 복잡다단한 심경과 관련해서 읽을 수 있다.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이 아비가 되기를 바라거나 상징세계의 아비가 되었을 때, 그들 내면의 다른 쪽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에너지가 추동된다. 아비가 된다는 것은 박민규 식으로 말하면, “‘무슨 상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직장”에서 “갸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는 일”이며(‘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72쪽), “세상이 변하기보다는 직급이 변하길 바라는 사람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코리언 스탠다즈’, 184쪽). 그것은 한때 몸담았던 학생운동 판을 “운동권(運動圈)이란 단어가 있다.”고 낯설게 말하게 되는 것이며(‘코리언 스탠다즈’, 182쪽), 록 음악을 하던 청년이 남색(男色) 취향을 가진 부장의 추행을 “잠깐만 참으면 돼”라고 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62쪽). 요컨대 ‘아비 되기’는 아들의 자아가 찢기고 쪼개어져 아비의 문법에 맞게 재배치되는 손상 혹은 훼손의 과정이다. 박민규의 모순적 진술은 그러한 맥락 속에서 ‘아들의 세계’와 ‘아비의 세계’가 충돌한 끝에 생겨난 불가피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인용문 ⑴에서 ‘핑퐁’의 ‘나’는 중학생이다. 아직 성인의 세계에 진입하지 않은 이 중학생에게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는 일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또래집단이 행사하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점에서는 반갑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소년에게 “무난한 옷을 입고… 무난한 취미를 가지고… 절대 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바람직한 얼굴로 살아가”(87쪽)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년은 “다행”한 삶을 오히려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핑퐁’의 ‘나’가 아직 소년인 상태에서 ‘아비 되기’를 모순적인 진술로 표현했다면, ‘龍龍龍龍’의 이장록은 어른의 입장에서 ‘아비 되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해준다. 이장록은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징역 20년을 언도받고 복역을 마친 변호사이다. 이장록에게 세계는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109쪽) 곳이다. 아비가 되기 전 세계는 ‘싸워야 하는 곳’이었지만, 아비의 세계에 진입해 변형되고 일그러진 주체에게 세계는 ‘싸울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장록은 그가 ‘지향했던 세계’와 ‘지금 사는 세계’의 간극을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 세계”라는 모순적인 어법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박민규의 소설에서 ‘아비 되기’는 아들이 ‘아버지’라는 상징의 옷을 덧입어 변형되고 일그러지는 일이며, “뜨고 싶은”(‘龍龍龍龍’, 115쪽) 일인 동시에 “할 일이 더 많아”지는(‘龍龍龍龍’, 115쪽) 모순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아비 되기 : ‘잔존’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기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이 아비가 되는 과정에서 자아와 세계의 충돌을 경험한다고 할 때, 이 인물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세상에 순응하든가, 혹은 거부하든가. 놀랍게도 박민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순응을 선택한다. 그들은 일흔세 번이나 이력서를 낸 끝에 유원지의 직원이 되어 오리배를 관리하기도 하고(‘아, 하세요 펠리컨’),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 고시원을 떠나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도 한다(‘갑을고시원 체류기’). 또 운동권이던 선배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선배의 애인과 결혼을 하는가 하면(‘코리언 스탠다즈’), 253명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헤드록을 감행하다가 나중에는 순백의 얼굴을 가진 아이를 낳고 교회의 집사가 되기도 한다(‘헤드락’). 하지만 그 ‘순응’의 과정은 눈물겨운 것이어서, 그것은 ‘실존(實存)’이라는 말보다는 ‘생존(生存)’이나 ‘잔존(殘存)’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고단한 과정이다. 그러한 생존 혹은 잔존의 간난신고가 여실하게 드러난 작품이 있는데, 바로 ‘헤드락’이다. ‘헤드락’에서 ‘나’는 평화롭게 산책을 하다가 헐크 호건에게 린치를 당한다. 이 린치는 소설에서 ‘헤드락’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에서 ‘헤드락’의 정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헤드락’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호두’로 우회하도록 하자. ‘헤드락’은 <호두나무 아래에서>와 <호두까기 인형>, <마지막 호두과자를 먹은 것은 언제였나?>, <다시 호두가 열린다면>이라는 네 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개의 장을 이루는 소제목은 모두 ‘호두’를 키워드로 삼고 있는데, 이 ‘호두’의 의미에 주목하는 것이 ‘헤드락’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호두가 인간의 ‘뇌’를 닮은 과실임을 기억하면서 다시 ‘헤드락’의 소제목을 따라가 보자. <호두나무 아래에서> 산책하기를 좋아하던 ‘나’는 헤드록을 당한 뒤 <호두까기 인형>이 된다. ‘인간’에서 ‘인형’으로 전락한 ‘나’는 <마지막 호두과자를 먹은 것은 언제였나?>를 생각하며, 다른 인간들의 ‘호두’를 파먹기 위해 고심한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아이들의 이름으로 심은 나무를 보며, <다시 호두가 열린다면>이라는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갖는다. 이상의 서술로 미루어 보면, 인간의 뇌를 닮은 과실인 ‘호두’가 ‘헤드락’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에 대한 상징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다시 헤드락으로 돌아오자. 어 헤드락이네? 그리고 직장에서, 도처에서 나는 종종 습격의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헤드락 강좌, 헤드락 세미나, 헤드락 부흥회, 헤드락 워크샵, 헤드락 클리닉에 이르기까지 - 아무튼 헤드락도 이젠 한국의 보편적인 생활문화가 되었지만 나로선 쓴웃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헤드락’, 264쪽) 인용문을 보면 레슬링에서 상대의 ‘머리’를 붙잡아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인 헤드록이 아비의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민규는 소설의 다른 부분에서 “이 세계가 어느 정도 헤드락을 묵인하거나 권장한다”(262쪽)고 쓰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헤드록이 아비의 세계가 아들에게 가하는 폭력, 혹은 아비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 아들이 견뎌야 하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나’가 ‘헤드록의 세계’, 즉, 아비의 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258쪽)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하고, 충분한 수면과 영양제로 체력을 보충하는 과정을 통해 “폭력의 대상”에서 “폭력의 주체”(259쪽)로 다시 태어난다. 헤드록의 상처를 내장한 채, “건강”하고 “건장”한 “완전히 다른 생물”(259쪽)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후 ‘나’는 결혼을 하고, 직장을 갖고, “순백의 얼굴”(263쪽)을 한 아이를 낳고, 심지어 교회의 집사가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나’가 아비의 세계에 무사히 안착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입증하듯 ‘나’는 다른 상대들에게 253번의 ‘헤드록 습격’을 감행하고, 마침내는 “헤드록의 쾌감 같은 것을 깨쳐나가기”(263쪽)에 이른다. 이처럼 박민규 소설의 인물은 한편으로는 아비의 질서에 상처받고, 분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반복, 재생산하는 상징 세계의 ‘아비’가 된다. ‘아비’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을 우리는 박민규의 다른 소설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 인물들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 아버지의 회사에 다녀온 뒤 ‘나의 산수’를 생각하게 된 고등학생,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끝에 취업과 결혼을 해 고시원을 떠나는 ‘나’, ‘아, 하세요 펠리컨’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재수생, ‘누런 강 배 한 척’에서 이십구 년을 영업사원으로 근무한 끝에 자살여행을 떠나는 아버지 등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3 아비부정 : ‘배제’된 자들의 세계 교란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이 아비가 되기 위해 몸부림친다고 해서 박민규가 ‘아비 되기’를 긍정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박민규의 인물들은 아비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아비 되기’에 대해 뿌리 깊은 반발심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발심은 어른보다는 주로 소년에게서 잉태된다. ‘핑퐁’은 세상으로부터 ‘배제’당한 ‘못’과 ‘모아이’라는 두 중학생의 이야기이다. 소위 ‘왕따’인 이들은 치수 패거리에게 불려 다니며 매일 얻어맞는데, 맞으면서도 “그냥, 사는 게 이런 것 같다.”(12쪽)고 생각할 뿐, 저항을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폭력적인 세계에서 잔존하기 위해 탁구 치는 것을 선택한다. 이들에게 탁구는 “이상하리만치 경쾌한”(23쪽) 것이었고, “국경 따위 없는 거”(43쪽)였으며, “지루하지 않은”(186쪽) 유일한 것이다. 그러한 소설의 진술로 미루어 우리는 탁구가 폭력적이고 지루한 세계, 즉, 인종과 국경이라는 상징계적 질서(아비의 세계)에 대립되는 어떤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못’과 ‘모아이’는 탁구를 치면서 비로소 소심하나마 “이것이 나의 의견이다”(47쪽)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고 “맞은 자리의 통증 같은 것이 땀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가는”(23쪽) 해방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핑퐁’에서 박민규는 ‘탁구’와 ‘핑퐁’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탁구’가 대타자의 세계에서 배제당한 소년들이 즐기는 소심하지만 전복적인 오락이라면 ‘핑퐁’은 보다 중립적인 용어이다. 핑퐁은 “인류가 깜박해 버린 것과 절대 깜박하지 않을 것 간의 전쟁”(219쪽)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탁구를 즐기는 자(못과 모아이)와 조건반사 훈련을 통해 연습한 자(쥐와 새)가 벌이는 한판 ‘대결’을 의미한다. 이 ‘핑퐁(대결)’의 결과 ‘탁구(유희)’를 즐겼던 못과 모아이가 승리하고, 이들은 인류의 ‘언인스톨’(전복)을 선택한다. 이 소설의 전복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사한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핑퐁’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다른데, 우선 폭력적인 상황을 종식시키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담임선생’이라는 상징세계 내의 합목적적인 권위를 빌려 엄석대의 만행과 폭력에 안녕을 고한다면, ‘핑퐁’에서는 상징계로부터 ‘배제’당한 못과 모아이의 선택(언인스톨)에 의해 인류의 폭력적인 삶이 종결된다. ‘핑퐁’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결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교실이 결국 안정과 평온을 찾는 것과 달리, ‘핑퐁’에서는 인류가 생활을 지속해 왔던 모든 공간이 언인스톨되고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처럼 박민규의 ‘핑퐁’에는 이 세계의 문법이 아닌, ‘핑퐁’이라는 상상적 대결을 통해 아비의 세계를 뒤집어엎는 발칙함이 도사리고 있다. 허구적인 방법으로 상징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경향은 ‘대왕오징어의 기습’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나’는 어렸을 때 잡지에서 몸길이가 150미터에 이르는 대왕오징어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호기심을 갖는다. 결국 그 기사는 오보인 것으로 판명이 나지만, ‘나’와 ‘B’는 각각 ‘대왕오징어로부터 인류를 지키겠다.’는 꿈과 ‘외로운 괴수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다. 하지만 이들은 애초에 가졌던 꿈과는 달리 “해변의 모래알처럼 평범한 인류”(230쪽)가 되고, 대왕오징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이쯤에서 이 소설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대왕오징어’의 의미를 점검하도록 하자. 소설에 따르면 대왕오징어는 “심해에서만 활동하는”(219쪽) “신비의 대상”(219쪽)이고, 고등학생이 된 뒤(예비 성인)로 ‘나’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기도 하다. 또 대왕오징어는 “순식간에 뭍으로 올라”(232쪽)와, “일시에 모든 것을 마비시”(232쪽)키는 파괴적인 에너지라고도 묘사된다. 그러한 단서를 통해 ‘대왕오징어’의 의미를 유추하면, ‘대왕오징어’가 상징계 너머에 있으면서 상징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괴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대왕오징어는 사우나로 향하던 샐러리맨, 자녀의 도시락을 걱정하던 주부, 속도위반을 한 오토바이 운전자, 잡지 ‘사상계’를 버리기로 결심한 교육자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유년의 판타지 속에 존재했던 괴수가 장년의 현실 앞에 모습을 드러내 아비의 세계를 위협하고 교란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전복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현실에서는 ‘핑퐁’을 통해 세계를 ‘언인스톨’할 수도 없고, ‘대왕오징어’가 나타나 일상의 공간을 교란해주지도 않는다. 아비의 세계는 견고하고, 그 세계의 진입 문턱은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설혹 그 세계에 진입한다 하더라도,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고통스러운 ‘잔존’의 과정이라는 것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그러한 상황에서 박민규의 가련한 주체가 떠올리는 방법이 바로 ‘죽음’이다. 4 경계에 선 아버지들 최근 발표한 소설집 ‘더블’에서 박민규는 ‘죽음’이라는 다소 묵직한 키워드를 들고 나왔다.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 ‘핑퐁’ 등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들에서 박민규가 보여 주었던 중요한 코드가 ‘유머’ 혹은 ‘블랙코미디’라는 점을 상기할 때, ‘죽음’이라는 테마가 다소 이질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박민규 소설의 유머 이면에 생(生)에 대한 씁쓸함, 분노, 반박, 체념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박민규의 ‘죽음’이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말하자면 박민규의 소설은 지금까지 묶여 나온 작품집에서도 ‘죽음’의 징후를 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치’는 자살을 기도하는 사내와 그를 말리러 출동한 경찰관의 이야기이다. 사내의 신세한탄과 그에 대한 김 순경의 동조로 이루어진 소설의 서사는 역시나 ‘아비 되기’의 고단함을 생각하게 한다. ㈀ 노력해 봤냐고…… 그런 얘기 나한테 하지도 마. 나처럼 열심히 산 사람 있음 나와 보라 해! 손 다치기 전까지…… 나 백수 같은 놈 아니야. 그래, 별 볼일 없는 일거리지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알아? 월급 못 받은 적은 많아도 일 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응? (‘아치’, 262쪽) ㈁ 딸들 이제 시집보내야 돼. 곧 그럴 나이야. 이것들 공부시킨다고 돈도 별로 못 모았어. 줄줄이…… 이제 겁나. 요새 딸 시집보내려면 돈 얼마나 드는지 알아? 겁나 죽겠어. 그래, 또 대출받아야겠지. 그때 가서 옷을 벗든가, 퇴직금을 또 어떻게 하든가. (‘아치’, 263쪽) 인용문 ㈀과 ㈁은 각각 사내와 김 순경의 독백이다. 사내는 자신이 아비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음을 강변한다. 사내는 열심히 살았고, 별 볼일 없는 일거리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를 위무하고, 죽음의 의지를 철회하도록 종용하는 김 순경의 삶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아비’로 살기 위해 김 순경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김 순경에게 돌아온 현실은 양로원에 갈 돈도 안 남은 답답한 상황뿐이다. 김 순경은 사내를 설득해 아치에서 내려오게 하지만, 설득의 근거가 빈약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오십 년을 더 살아도 여전히 이 아치에 뒤엉켜 있겠지”(269쪽)라는 자조 섞인 독백은 김 순경이 그 스스로에게도 살아야 하는 당위를 설득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한 속사정으로 김 순경은 “나도 한 번쯤, 이곳에서 뛰어도 좋겠다는 생각”(269쪽)을 하고, 검은 강물을 내려다본다. ‘누런 강, 배 한 척’은 중년의 가장(家長)이 치매에 걸린 아내와 자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십구 년을 같은 직장에서 성실하게 근무한 ‘나’는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더디게 견뎌야 하는 것”(65쪽)에 지쳐 “더는 살고 싶지 않다”(65쪽)고 생각한다. ‘나’는 자살을 결심하고 “지나온 수십 년과는 다른, 한 달”(68쪽)을 보내기 위해 아내와 여행을 떠난다. 이를테면 자살 여행인 셈이다. 하지만 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나’와 아내에게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사지사가 중노인 두 명이 묵고 있는 호텔 방으로 찾아온 것이다. 다소 이상한 결정이었지만, ‘나’는 마사지를 받기로 결정하고, 아내에게 먼저 마사지를 받게 한다. 아 아내가 신음을 지른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담배를 나는 떨어트릴 뻔했다. 수십 년 만에 들어 보는, 그런 성격의 신음이었다. 아…… 낮은 신음이 또다시 아내의 입에서 새 나왔다. (‘누런 강 배 한 척’, 74쪽) 이 소설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나’에게 죽음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상징의 세계에서 가장 확실하게 벗어나려는 순간 출현한 아내의 신음 소리는 상징계의 기표로는 포획되지 않는 ‘어떤 것’을 암시한다. 아내의 신음 소리는 “수십 년 만에 들어 보는, 그런 성격”(74쪽)의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아비’, ‘남편’, ‘가장’, ‘영업사원’의 이름(상징)으로 살던 수십 년 동안 ‘나’가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이다. 상징계의 질서와 영원한 안녕을 고하려는 순간, 돌연히 출연한 이 신음 소리가 ‘나’를 착란에 빠지게 하고, 확고했던 ‘나’의 자살 의지를 유예시킨다. 이 소설은 끝내 ‘나’가 자살을 결행했는지 여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소설은 “냉장고에는 아직 한 캔의 맥주가 남아 있었다”(75쪽)라는 모호한 문장으로 종결된다. 박민규의 ‘죽음’이 가진 미덕이 여기에 있다. 박민규는 그의 소설에서 성급하게 ‘죽음’을 실현시키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다. ‘아치’의 마지막 문장(“이제 아치를 내려선다”)과 ‘누런 강 배 한 척’의 마지막 문장(“냉장고에는 아직 한 캔의 맥주가 남아 있었다.”)은 그 자체로 화자가 죽음을 실행에 옮겼는지 여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두 문장은 화자가 죽음의 세계를 넘겨다보고 있음을 암시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박민규의 인물들이 이보다 앞서 삶의 순간을 되돌아보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치’의 경찰관은 죽겠다고 아치에 올라간 사내에게 “당신 진짜 이러면 안 돼.”(258쪽)라고 말했고, ‘누런 강 배 한 척’의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삶을 즐긴 후 아내와 함께 죽고 싶었다.”(67쪽)고 생각하며 여행을 떠났다. 이처럼 박민규의 인물들은 삶의 순간에서 죽음을 동경하고,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삶을 넘겨다보는 딜레마 속에 위치한다.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에게서 나는 나와 내 아버지와 동료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신용불량을 면하기 위해 대리 운전을 하고(‘별’), 차를 팔기 위해 고객의 택배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으며(‘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하늘에 떠 있는 직경 10킬로미터짜리 아스피린을 보고도 “자, 일해야지”라는 부장의 말에 “예”라고 대답한다(‘아스피린’). 또 그들은 12년간 용역 사원으로 근무한 끝에 마침내 괴물이 되어 버린 사내이기도 하다(‘루디’). 그래서 나는 박민규의 인물들이 손쉽게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에 나는 그들이 삶의 긴장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외롭고 고단한 곡예를 계속해주기를 바란다. 삶을 이어 나가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의 소설을 읽으며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끝>
  • [깔깔깔]

    ●사랑스러운 아내의 메모 여보! 걱정하지 말고 담배 실컷 피워. 우리 암보험 들어 놨어. -처자식 일동 - ●낮잠 자다 들켰을 때 직장에서 낮잠자다 들켰을 때 하면 가장 좋은 말. (머리를 천천히 들면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퀴즈 ▲경북·대구 사람들이 혜택을 많이 보는 ‘KTX’는 어떤 준말? -K : 경북과 -T : 대구의 -X : 엑설런트한 교통수단. ▲기원전 사람들이 쓰던 화폐는? - BC카드.
  • [고전 톡톡 다시 읽기](48)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고전 톡톡 다시 읽기](48)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1. 라블레와 반(反)영웅의 계보학 ‘오디세우스’나 ‘일리아드’는 고대의 영웅들이 독점 출연하던 모험담이었다. 그들은 원대한 소명을 안고 태어났고, 근엄한 표정으로 놀랄 만한 위업을 추구했다. 건국과 구국(救國), 최고의 목적을 위한 희생 등은 아무나 할 수 없기에 영웅의 삶도 평범할 수 없다. 아서왕 전설과 롤랑의 노래, 이고리 원정기 등 중세 기사 무훈담도 비범한 영웅들을 찬양했다. 어릴 적부터 주변을 놀라게하는 총명함과 신앙심, 용맹함이 그들의 자질이었다. 모험담이 화려하고 감동적일수록 민중의 일상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음은 당연하다. 중세의 끝무렵, 그토록 존귀하던 영웅의 족보에 난데없는 돌연변이들이 등장한다.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우며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광대와 난봉꾼들이 나타났다. 신화와 서사시를 패러디하며 튀어나온 그들은 단숨에 민중의 상상 세계를 사로잡는다. 위대한 업적과 아름다운 덕행 대신, 그들은 끝모를 난장(場)과 황당한 우스개를 벌였다. 평범하고 무지한 민중에게 다가와 때론 치고받기도 하고 때론 농담도 주고받는 친구가 된 것이다. 16세기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의 소설에 나오는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 그 최초의 주인공들이었다. 2. ‘지금 여기’의 삶과 ‘위-대한’ 영웅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바보 같지만 온유하고 게으른 왕 가르강튀아의 나라에 탐욕스러운 이웃나라의 군주 피크로콜이 시비를 걸어 벌어진 전쟁 스토리가 전부다. 하지만 두 나라, 두 왕의 다툼은 엄숙하고 비장한 숙명의 대결이 아니다. 전쟁은 어리석음의 경주이자 황당함의 극치를 다투는 놀이로 바뀐다. 피크로콜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분노하며 파괴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데 반해, 가르강튀아는 좋은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사는 걸 원한다는 게 요점이다. 두 욕망이 빚어내는 두 가지 다른 삶의 양상. 우리는 새로운 영웅의 풍모와 삶의 방식, 그 세계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르강튀아는 키가 산만큼 크고 몸집은 대궐만 한 거인이지만 생각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가령, 그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낮잠을 즐긴다. 그러다 누군가 싸움을 벌이면 술과 고기가 가득한 잔치를 벌이고 놀이를 제안한다. 끝! 국부를 증진시키려고 고민하거나, 영토를 늘리려고 전쟁을 벌이는 일, 책략을 짜서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따위는 그가 가장 귀찮아하는 짓들이다. 그저 배불리 먹고 등따뜻하게 한세상 사는 게 삶의 목적이라면 목적. 하긴 이런 천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나 보다. 그는 엄마가 순대를 지나치게 먹던 날 ‘똥싸듯’ 태어났으며, 세상에 나오자마자 “응애, 응애, 술줘! 너희도 한잔 마셔!”하며 소리쳤다니까! 출생부터 기이한 가르강튀아의 행적이 범상할 리 없다. 오줌을 누면 강이 만들어져 마을이 떠내려가고, 똥을 누면 산이 몇 개 생겨날 지경이다. 먹고 마시는 스케일은 또 얼마나 큰지! 전투 후 벌어진 연회에서 그가 먹어치운 짐승들이 얼마인지 셀 수도 없다. “우선 소 16마리를 굽고, 암소 3마리, 송아지 32마리, 염소 63마리, 양 95마리, 양념을 친 돼지 300마리, 메추리 220마리, 도요새 700마리, 수탉 400마리와 다른 닭 1700마리, 암탉 600마리와 비둘기, 토끼 1400마리, 병아리 1700마리. 또 산돼지 11마리, 사슴 18마리, 꿩과 산비둘기 140마리, 오리, 물떼새, 왜가리, 황새, 칠면조….” 황당해 보이지만, 영웅이란 본래 위대(偉大)한 존재 아닌가? 그러니 좀 ‘위-대’(胃大)한들 어떠리! 피크로콜과의 전쟁도, 정처없는 모험도 모두 위-대함의 산물이며 이야기다. 위대한 영웅은 신화에나 있지만, 위-대한 영웅이라면 민중의 밥상머리나 술자리, 놀이판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단지 웃기는 코미디일까? 그 시대를 지배하던 교회는 라블레에게서 신이 주신 언어와 사물에 대한 허황된 요설, 신성모독적인 패설을 읽어냈다. 특히 가르강튀아와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이 수도사들과 어울려 취하도록 마시고 난폭하게 다투며 불경한 욕설을 퍼부을 때, 교회는 분노했고 유죄를 선고했다. 위엄과 경건함을 상실했다는 죄목이다. 하지만 삶에서 먹고 마시는 것, 육체를 살찌우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초인적인 업적이나 덕행보다 중요하다는 게 라블레의 생각이었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먼 신화 속의 영웅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삶이라는 사실! 3.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비전과 웃음 라블레 시대의 민중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읽으며 이 세상을 상상했다. 그것은 비장하고 엄숙한 소명의 세계도 아니고, 금욕을 통해 힘겹게 버텨야 할 불가피한 현실도 아니다. 라블레의 소설은 삶은 먹고 마시며 놀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삶에는 병마와 고통,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괴로움에 초점을 맞출 때 삶은 그 자체로 무거운 짐이 된다. 신화와 서사시는 그런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주지만, 그만큼 이 세계는 갑갑하고 살아갈 ‘맛’을 잃고 만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 보여주는 세계엔 어떤 비밀스럽고 신성한 목적이 없다. 대신 주린 배를 채우고 힘겨운 노역에서 벗어난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비전이 있다. 마음껏 먹고 실컷 잘 수 있는 세상, 삶의 간난신고를 잠시 잊은 채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란 민중이 역사 이래로 늘 염원하던 세상이 아닌가? 그 출발점은 현세의 삶, 온갖 어리석음과 우스꽝스러움이 넘치는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데 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라블레라는 천재가 혼자 쓴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년간 쌓여온 민중적 삶의 흔적과 소망, 비전이 집대성되어 표현된 산물이다. 어리석고 바보 같은, 하지만 너무나도 친근한 반(反)영웅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웃음이 평범한 민중의 웃음과 뒤섞여 들리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최진석 서울신문·수유+너머N 연구원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⑪ 전북 김제 종덕리 왕버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⑪ 전북 김제 종덕리 왕버들

    바람결에 든 겨울 냄새가 한껏 깊어졌다. 전라북도 김제 평야의 너른 들을 지나는 바람도 초겨울치고는 지나치게 차가웠다. 초겨울 바람은 가을 갈무리를 마친 너른 벌판에서 사람들을 모두 어디론가 내보냈다. 바람 찬 벌판 가장자리에는 나무만 홀로 남았다. 천연기념물 제296호인 김제 종덕리 왕버들이다. 유난히 싱그러운 녹음을 자랑하던 종덕리 왕버들은 무성했던 잎사귀를 한 잎 남기지 않고 모두 내려놓았다. 줄기 사이로 찬 바람 들기 전에 낙엽을 마친 건 현명한 판단이었다. 300번도 넘게 겨울을 보낸 나무이건만 올겨울의 초입은 수상쩍다. 가고 오는 계절의 흐름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흐름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들쭉날쭉한 게 그렇다. 300년 동안 쌓아온 나무살이의 노하우만으로 따라잡기는 참으로 변덕스러운 날씨다. ●풍요의 들녘에서 농사를 관장한 300년 나무에 300년의 세월을 그리 길다 할 수는 없다. 그보다 더 오래 살아온 나무들이 흔할 뿐 아니라, 심지어 1000년을 넘게 살아온 나무들까지 적잖은 탓이다. 그러나 이 나무가 왕버들임을 감안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왕버들은 버드나무의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다. 연못의 운치를 더해주는 수양버들, 가지가 배배 꼬이며 자라는 용버들, 버들피리를 만들 때 쓰는 갯버들과 사촌간인 나무다. 왕버들은 가지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올라 사방으로 넓게 퍼지며 넓은 그늘을 짓기 때문에 농촌에서 정자나무로 많이 심어 키우는 나무다. 줄기가 크고 굵게 자랄 뿐 아니라, 수명도 비교적 긴 편이어서, 버드나무 가운데에 왕이라 할 만하다. 줄기 가운데가 썩어 구멍이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생명을 잃는 건 아니다. 뿌리에서부터 나뭇잎까지 물과 양분을 실어 나르는 통로인 수관이 줄기 바깥쪽에 있기 때문이다. 줄기 안쪽은 나이테를 쌓아가면서 나무의 거대한 몸집을 지탱해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줄기가 썩은 나무가 다른 나무만큼 오래 살기 어려운 건 자명한 이치다. 300살밖에 안 되는 나이의 전북 김제 종덕리 왕버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왕버들이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종덕리 왕버들은 키가 12m쯤 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8.8m나 된다. 이 정도면 그리 큰 나무는 아니지만 바라보기에는 실제보다 훨씬 크고 웅장해 보인다.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줄기의 예술 나무가 서있는 곳은 전북의 영산(靈山) 모악산에서 발원하여, 종내에는 서해바다로 흘러들게 될 동진강의 지천인 원평천 강둑 바로 옆이다. 나무 바로 뒤에는 김제 평야의 들판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풍요로운 농가 40여채가 마을을 이루었다. 나무는 바로 그 성덕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지켜온 수호신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멀리서도 금세 알아볼 훌륭한 나무이지만, 가까이에서 나무의 생김새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감탄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특히 줄기와 가지의 뻗어나간 위용이 장관이다. 나무의 연륜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밑둥치가 빚어내는 기묘한 꿈틀거림은 여느 나무에서는 보기 힘든 진귀한 모습이다. 둘로 나뉘어 솟아오른 굵은 줄기 가운데 동쪽으로 뻗은 줄기는 특히 놀랍다. 땅바닥에 닿을 듯 가느다란 틈을 남기고 수평으로 뻗었던 줄기는 마치 방향을 잘못 잡았음을 갑자기 알아챈 것처럼 용틀임하듯 직각으로 굽이치며 하늘로 솟았다. 그리고 다시 몇 번의 용틀임을 되풀이하며 하늘로 두 팔을 뻗어냈다. 그런가하면 서편으로 난 줄기는 사선으로 곧게 뻗었지만, 그 껍질에는 조금씩 키를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줄기 껍질을 갈라낸 흔적이 알알이 드러나 있다. 어느 하나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되지 않고,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선을 빚어냈다. 굵은 줄기와 가느다란 껍질이 이룬 선의 예술이다. 세상의 어떤 예술품이 이보다 더 다양하고, 더 웅장할 수 있을까 싶다. 고작해야 100년을 채 살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나무의 예술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할 일이다. 이 신비로운 모습의 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신성하게 지켜왔다. 나뭇가지 하나만 잘라내도 집안에 동티가 난다고 했으며, 삼월삼짇날과 칠월칠석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 그러나 이제 마을 잔치는 지내지 않는다. 하기야 이곳뿐 아니라, 어디에서도 당산제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저 옛 추억의 한 페이지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고요 속에 분주한 나무의 겨울 채비 평소에는 나무 가장자리로 난 마을 길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려면, 알은 체를 하며 다가오는 마을 어른들도 적지 않았다. 때로는 나무 곁에 경운기를 세워놓고, 나무 그늘에 들어 낮잠을 자는 마을 농부들도 있었다. 그러나 바람 찬 탓일까. 추수까지 모두 끝낸 너른 벌판 가장자리의 나무 곁으로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 가을 갈무리를 마친 겨울 초입, 사람들은 겨울 채비로 분주한 모양이다. 한 나절 넘게 찬 바람을 맞으며, 마을 사람들을 기다렸으나, 전자제품 서비스센터의 푯말을 단 자동차가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쌩 하고 돌아나온 것 외에 내내 나무 주위로는 적막감이 돌 만큼 고요했다. 나무가 겨울 채비에 들어간 건 그래서인 모양이다. 새 봄에 다시 푸른 잎을 내고 들판의 농부들이 흘린 땀을 식혀준 그늘을 널찍하게 짓기 위해 나무는 지금 사람들처럼 고요 속의 휴식을 선택한 것이다. 나무가 사람과 더불어 겨울을 나기 위해 맞이한 한낮의 고요다. 글 사진 김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북 김제시 봉남면 종덕리 299-1 : 호남고속국도의 금산사나들목으로 나가 우회전하여 양옆으로 너른 들을 끼고 2.6㎞가면 봉남면사무소 조금 못미처 작은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나무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 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야 하는데, 좌회전 차로가 따로 마련되지 않아 조심해야 한다. 1㎞쯤 더 가면 왼쪽으로 성덕마을 입구가 나온다. 좌회전하여 600m쯤 가면 논 가장자리에 나무가 있다.
  • “백인 여배우와 키스신… 다음엔 베드신도”

    “백인 여배우와 키스신… 다음엔 베드신도”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동양 남자 배우 하면 무술만 하는 배우, 액션만 잘하는 배우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 편견을 깨고) 액션도 잘하는 배우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판타지 액션물 ‘워리어스 웨이’(The Warrior’s Way)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장동건(38)이 23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 영화는 장동건의 할리우드 신고작이라는 점과 할리우드 자본이 투입됐다는 점,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아들 이승무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제작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프로듀서 배리 오스본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하지만 2008년 3월 촬영을 끝내고도 개봉날짜를 계속 잡지 못했다. 장동건은 “문제가 있어서 늘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 배우들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후반 작업을 위해 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새달 2일, 미국에서는 한국 개봉 다음 날 개봉한다. →거의 세트 촬영이고 컴퓨터 그래픽(CG)이 많은데. -처음엔 날씨 영향을 받지 않아 좋아했는데 점점 답답하더라. 사물이나 물체가 있어야 연기하기 쉬운데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니 쉽지 않았다. 배리 오스본이 그러더라. 영화 ‘킹콩’을 찍을 때 여주인공 나오미 와츠가 그러한 스트레스로 울음을 터뜨리자 피터 잭슨 감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배우의 길이니 적응하라고 했다고. 대나무숲 액션 장면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찍었는데 화려하게 나와 놀랐다. →영화 속에 한국적인 요소가 부족해 아쉽지 않았나. -영화 기획이 알려지자 국내 첫 반응이 ‘또 닌자야?’였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동양 무사를 그냥 닌자라고 한다. 일본 무사는 사무라이로 받아들인다. 한국 관객 입장에서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좀 더 넓은 관객층을 위해서는 지금의 선택이 맞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서 동양 남자 배우와 백인 여자 배우의 키스신은 거의 처음이라는데. -촬영할 땐 그런 것 의식하지 못했다. 러브신 장면은 (아내인) 고소영씨도 봤다. 아내도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 재미있게 받아들여 줬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동양 남자 배우가 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스신 찍었으니, 다음 번엔 베드신도 찍지 않겠나. 하하하. →설정상 무표정한 연기가 많다. -눈에 힘만 주고 있으면 될 것 같아 처음에는 진짜 쉽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몸 동작과 표정을 억눌러야 하니 힘들더라.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자면. -마지막에 떠나는 장면이다. 석양도 예쁘고. 무사의 뒷모습이 너무 처연하다. 내가 좋아하는 서부 영화 ‘셰인’의 끝 장면과 비슷하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TV에서 해주는 주말의 명화를 밤에 함께 보려고 낮잠을 재울 정도였다. →액션 장면이 인상적인데. -영화 속에선 검이 정말 크게 나오는데, 실제로는 짧은 칼이었고 나중에 CG를 입힌 거다. →조각 미남이라는 평과 달리 ‘굿모닝 프레지던트’ 정도를 제외하고는 정장 입고 나오는 영화가 드물다. -한창 풋풋했을 때는 (외모를) 이용하는 게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도시에서 양복 입고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하하하. →국민가족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군산으로 내려가 (강제규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마이웨이’를 찍는 중이다. 아이 얼굴은 두번 정도 봤다. →얼마 전 큰돈(1억원)을 기부해 화제가 됐다. -사소한 행동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런 것을 본의 아니게 부여받았다면 좋은 쪽으로 해보자는 게 나나 고소영씨의 생각이다. 색안경을 낀 시선도 있고 칭찬도 있는데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박민규 신작 18편 담은 소설집 ‘더블’

    박민규 신작 18편 담은 소설집 ‘더블’

    2003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작가 박민규의 신작 ‘더블’(창비 펴냄)은 그의 매력이 집대성된 작품집이다. 일단 음악 CD처럼 디자인된 소설집의 외양이 눈길을 끈다. 18편의 단편소설이 각각 사이드 에이(A), 사이드 비(B)라 이름 붙인 두 권의 책에 더블 앨범처럼 담겨 있고, 음반에 있는 속지 대신 박민규의 짧은 글과 박윤정의 그림이 어우러진 아트북이 실려 있다. 작가는 “지난 시절 나를 이끌어준 모든 ‘더블 앨범’에 대한 헌정이자 크고 묵직한, 그리고 근사했던 LP 시절의 정서에 대한 작은 예찬”이라고 밝혔다. 작가가 직접 마스크를 쓰고 촬영한 표지 사진도 이색적이다. 멕시코의 전설적인 레슬러 ‘블루 데몬’과 ‘엘 산토’를 모티프로 삼은 것으로, 지난해 그가 황순원 문학상 시상식에 쓰고 등장해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블루 데몬 마스크다. 18편의 단편소설이 담은 세계는 먼 미래를 다룬 공상과학(SF)부터 무협소설 분위기에 현실 풍자까지 무척 다채로워 한 작가가 쓴 것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행 갈이와 여백 등 글자의 시각적 장치를 능란하게 활용하고 끊임없이 비유를 확장해가는 그의 문장은 첫 작품 ‘삼미슈퍼스타즈’ 때는 PC통신에 연재됐을 법하다는 인상을 풍겼지만 자가발전과 변종을 거듭하면서 상상력과 함께 성장했다.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 ‘근처’는 말기암 판정을 받은 40대 독신남이 고향에 돌아와 옛 친구들을 만나며 삶을 정리하는 이야기다. 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누런 강 배 한 척’ 역시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노인의 시선을 담고 있다. ‘낮잠’은 요양원을 배경으로 노년의 사랑과 회한을 묘사하고 있다. 박민규에게 촌철살인의 유머만을 기대하던 독자라면 인생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노인들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담아 낸 단편들에서 의외라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는 ‘근처’ 등을 통해 서정적 분위기와 사실적 묘사가 돋보이는, ‘단편소설의 교본’과 같은 작품으로 그가 변칙적이고 기발한 소설만이 아니라 기본기에도 뛰어남을 증명한다. 하늘로 날아가 버린 광고용 비행선을 하염없이 뒤쫓는 이벤트 회사 청년의 이야기 ‘굿바이, 제플린’이나 멀리 화성까지 가서 온몸을 던져 자동차를 파는 세일즈맨을 그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눈물겨우면서도 웃음이 넘치는 작품이다. 알래스카에서 차를 몰다 무자비한 살인마를 만난 미국 뉴욕의 금융회사 부사장 이야기를 소재로 한 ‘루디’ 등에서는 하드보일드한 잔혹극을 경험하게 된다. ‘전생(前生)엔 마릴린 먼로였다.’로 시작하는 ‘축구도 잘해요’에서는 외계인 납치와 은하계 여행 등 끝 간 데 없는 상상력이 발휘된다. 출판사 측은 “인터뷰 때나 수상소감을 밝히는 자리마다 앞으로 그저 별말 없이 열심히 쓰겠노라고 밝혀온 박민규임을 생각하면, ‘더블’이야말로 가장 그다운 개성이 담긴 책”이라고 설명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TV만화 못보게 하자 3세아이 ‘발악 급사’ 충격

    타이완의 3세 남자아이가 TV만화를 보지 못하게 하는 할머니에 반항하며 울다가 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타이완의 한 일간지에 따르면 타이베이현에 사는 3세 남자아이는 지난12일 오후 유명 애니메이션인 ‘보글보글 스폰지밥’을 보던 중 이를 저지하는 할머니에 반항을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는 “낮잠 잘 시간이니 그만봐라.”라며 TV를 끄자 아이는 10분간 ‘대성통곡’을 했다. 할머니는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강제로 목욕을 시키자 아이는 더욱 자지러지게 울었다. 이어 갑자기 호흡곤란 및 대소변을 쏟아내는 증상을 보여 이에 놀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지만, 병원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말았다. 할머니는 “원래 지병은 없는 건강한 아이였다. 계속 울더니 갑자기 이렇게 됐다.”며 당황함과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문가는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자 감정이 갑자기 북받쳐 오르며 흥분한 상태로 사망한 것 같다.”면서 “아이들이 크게 울 때에는 반드시 호흡곤란을 조심해야 하며, 만약 선천적인 심장병 등의 지병이 있다면 반드시 급한 흥분을 피하게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수능 D-9 마무리 학습전략] 오답노트 체크해 실수 줄이고 시험시간에 생체시계 맞춰라

    [수능 D-9 마무리 학습전략] 오답노트 체크해 실수 줄이고 시험시간에 생체시계 맞춰라

    이제 수능시험이 딱 9일 남았다. 시험이 임박하면 모든 수험생들은 불안해지기 마련이지만, 남은 시간을 얼마나 유용하게 쓰느냐에 따라 시험 당일의 명암이 바뀔 수도 있다. 실제 수능 때 긴장감은 평소보다 2배 이상 상승해 자기가 아는 문제도 틀리거나, 평소에는 하지 않던 실수를 범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1~2점 차이로 대입 당락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험생 처지에서는 한 문제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 남은 기간은 새로운 문제를 보는 것보다 실수 줄이기에 전력을 다하되 몸의 컨디션 조절에도 신경을 써야 수능 시험 날 최고의 상태로 최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어려운 문제보다 쉬운 문제에 주력 고교 3년간 배운 내용을 하루 안에 모두 발휘해야 하는 수능에서는 평소 실력만큼이나 시험 전략도 중요하다. 수험생이 가장 자주 실수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앞에서 낸 까다로운 문제나 지문에 매달리다 맨 뒤의 한두 지문 정도를 풀지도 못한 채 답지를 제출하는 경우다. 시간이 많이 들거나 어려운 문제는 과감히 뒤로 넘기는 지혜도 필요하다. 다만 무조건 어렵다고 뒤로 미루다 보면 다시 풀어야 할 문항이 많아지고, 결국 시간이 부족하게 되기 때문에 뒤로 미루는 문제는 두세 문제가 적당하다. 또 수능 출제자는 답지를 구성할 때 수험생들이 쉽게 판단할 수 없도록 함정을 파놓는다. 앞부분은 맞게 하고 뒷부분을 살짝 어긋나게 해 놓으면, 답지를 꼼꼼하게 읽지 않는 학생은 문제를 틀리게 마련이다. 기본에 충실하되 답지를 끝까지 꼼꼼하게 읽고 정답을 찾도록 하자. 실제 수능에서는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실수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에 풀어 봤던 문항 중에서 틀렸던 것은 다시 풀어 보자. 단순히 푸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내가 왜 틀렸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무슨 실수를 했는지를 꼼꼼히 점검하는 것도 요령이다. 시험 문제를 풀 때는 상식이나 배경지식을 동원할 경우 오답일 확률이 높다. 단순히 글에 등장한 단어로만 내용을 유추하지 않도록 하고, 내용 일부를 만족시키는 오답지나 지엽적인 정보로부터 답을 추론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고난도 문항을 맞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수로 쉬운 문제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고난도 문항을 맞히고도 쉬운 문제를 틀릴 때는 다른 학생들과의 격차를 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쉬운 문제는 오히려 쉽게 지나쳐 버려 실수하기 쉬우므로, 쉬운 문제는 꼭 맞히겠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풀도록 한다. ●커피·새벽공부 NO… 최상의 컨디션 유지를 많은 수험생은 언어, 수리, 외국어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탐구 영역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크다. 대학에 따라 탐구 영역 반영비율이 20%가 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대입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탐구 영역의 학습 요령은 무조건 문제집에 매달리기보다는 교과서를 3번 정도 정독하면서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더 좋다. 수능 성적이 평소보다 잘 나오거나 반대로 낮게 나오는 경우 대부분 그날의 컨디션에 영향 받는 경향이 크다. 최상의 몸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수능 당일에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도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중요한 비결이다. 수능시험을 코앞에 두고 불안하다고 커피를 자주 마시면서 새벽까지 공부하는 것은 피해야 할 점이다. 특히 몸이 무리한 상태에서 환절기 감기에 걸리는 것이 최악의 상황. 3년간 공부한 내용을 하루 만에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수험생의 컨디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부터 수능시험 시간에 맞춰 생활리듬을 유지하고, 충분한 수면과 영양 보충을 통해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기자.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컨트롤 두뇌 활동을 활발히 하려면 아침 기상 시간부터 조절해야 한다. 기상 후 2~3시간이 지나야 머리가 깨어나기 때문. 또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도 두뇌 활동에 도움이 된다. 밥이나 빵 등 탄수화물로 뇌에 포도당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소 아침 식사를 걸렀더라도 지금부터는 간단히 식사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자. 고3을 지내면서 과도한 긴장과 학습량으로 피로가 누적돼 평소 오후 시간에 낮잠을 자는 수험생들이 간혹 있다. 이는 야간의 숙면을 방해해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를 가져오고, 곧바로 학습효과를 떨어뜨리게 된다. 피곤할 때는 낮잠을 자는 것보다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운동으로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수험생에게 필요한 것은 마인드 컨트롤이다. 나만 힘들고 긴장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다른 수험생들 역시 힘들다. 따라서 ‘열심히 했으니 잘 볼 수 있다.’, ‘아는 것만 풀어도 좋은 성적이 나올 거야.’라는 긍정적인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학습의욕을 높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서울광장] ‘공룡 이웃’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법/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공룡 이웃’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법/구본영 수석논설위원

    마침내 용은 잠에서 깨어난 것인가. 중국의 부상이 사뭇 놀랍다. 올들어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 세계 2위로 솟아올랐다. 사상 최대인 관람객 7300만명의 상하이엑스포도 거뜬히 치러냈다. 어디 그뿐인가. 드넓은 품으로 전세계에 상품과 자본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480개가 진출했다니, 중국이야말로 현대판 엘도라도(黃鄕)가 아닌가 싶다. 개혁·개방 30여년 만에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중국의 용틀임은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환율전쟁을 불사할 결기를 보였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희토류 수출 금지란 비장의 카드로 일본의 얼도 반쯤 빼놓았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엊그제 영향력 세계 1위 인물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꼽았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나선 이래 중국의 외교기조는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하지만 “칼날의 빛을 감춘 채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라.”던 덩의 유지는 벌써 잊은 것인가. 후진타오-원자바오 4세대 지도부는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뜻)를 표방하더니 슬슬 ‘화평’이라는 접두어를 뺀 채 ‘중화굴기’(中華堀起)를 전면에 내거는 인상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중국의 외교기조는 이제 ‘돌돌핍인’( 逼人·기세등등하다는 뜻)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되살아난 중화의 위용에 화들짝 놀랐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국제적 대북 제재 분위기가 중국이 제동을 걸자 슬그머니 가라앉을 때부터 말이다. 지난 8월엔 ‘주체의 나라’라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은의 세자책봉을 받으려고 병든 몸을 이끌고 방중길에 올랐다. 얼마 전엔 5세대 최고지도자 자리를 예약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6·25 참전이 정의로웠다고 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새삼 제기된다. 우리는 중국과 반만년 역사를 통해 때로는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사대교린정책’이란 수사와 함께 굴신(屈身)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어쩌랴. ‘공룡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지정학적 숙명이라면. 이미 한·중은 모든 분야에서 서로 외면하려야 할 수 없는 처지다. 굳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외교 레토릭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우리와 중국과의 교역규모는 일본·미국과의 교역액을 합한 것보다 크다. 중국 내 외국인 학생 중 한국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고, 한국 내 중국 유학생도 마찬가지 비중이다. 까닭에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위협이자 기회이다. 위협적 요소를 줄이고 호혜적 요인을 늘리기는 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따지고 보면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더 풍요로웠던 때가 최근 수십년간 말고 얼마나 더 있었던가. 중국보다 산업화에 앞섰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했던 ‘좋은 시절’(벨에포크)이 나른한 한여름의 짤막한 낮잠처럼 끝나서야 될 말인가. 글로벌 슈퍼파워로 떠오른 중국과 동렬에서 공존하려면 그들의 ‘분리통치’에 휘둘릴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촉발한 ‘한반도의 평화 훼방꾼’ 논란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유다. 시진핑 부주석 측이 그런 비외교적 언사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분단상황에서 외세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이는 일은 애당초 삼가야 했다. 수·당과 어깨를 겨뤘던 고구려의 패망도 국력의 열세를 떠나 당시 실권자 연개소문 아들들의 분열이 결정타였다. 때마침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았다. 우리가 산업화와 정보화에 한발 앞섰다는 자만심에 빠질 게 아니라 경제력에다 기초과학과 문화를 결합한 스마트파워에서 중국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할 때다. 이제 ‘어둠 속에서 칼을 가는’ 일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한다.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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