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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전원일기] 함께, 백만 송이 장미… 소망, 1억 달러 수출

    [新전원일기] 함께, 백만 송이 장미… 소망, 1억 달러 수출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한 존재로 만든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보낸 시간 때문이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장미에 관해서는 권위자라고 할 만하다. 어린왕자가 장미에 관해 한 말들은 전적으로 사랑에 관한 말들인데, 좀처럼 반박할 수가 없다. 장미를 키우고, 장미와 함께 성장해 본 적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의 말을 통해 우리는 장미가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것들,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대표한다는 것을 안다. 마침 장미의 계절에, 어린왕자만큼이나 장미를 사랑하는 사람을 전북 전주시에서 만났다. 그 역시 권위자라 할 만한데, 그것은 ‘로즈피아’를 키워 낸 대표로서의 얘기다. 장미 앞에서 그는 어린왕자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랑에 빠진 한 남자였다. 정화영(58) 로즈피아 대표가 장미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그 전에는 도시에서 직장인으로 살았다. 남들처럼 번듯하게 살았지만 남들처럼 사람과 일에 치이기도 했다. 귀농을 결행한 그가 처음 심은 것은 고랭지배추, 오이 등 채소류였다. 몇 해 지나 작물을 장미로 바꿨는데 그것은 장미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죠. 다소 낭만적인 이유였으니까요. 채소류는 사람의 몸을 살찌우는 거잖아요. 반면에 꽃은 정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행복할 것 같았거든요. 훨씬 멋있어 보였어요. 그런데 꽃농사라고 다른가요 어디. 힘들고 속 타는 건 마찬가지더라고요.” #첫 번째 시련, 함께 풀었다 꽃을 가꾸는 일은 꽃을 보는 일과는 전혀 달랐다. 땅을 고르고, 비료를 주고, 농약을 치느라 드는 수고는 먹거리 농사 저리 가라였다. 그래도 장미가 커가는 것을 보는 기쁨은 컸다. 농사가 안정될수록 스스로도 성숙해지는 것 같았다. 수익성도 높았다. 장미는 그에게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누가 꽃을 사겠어요. 파탄이 났죠. 화훼는 항공기의 뒷바퀴와 같다는 말이 있어요. 비행기가 이륙할 때 가장 나중까지 땅에 붙어 있고 착륙할 때는 제일 먼저 땅에 닿는 게 뒷바퀴잖아요. 화훼가 그래요. 경제가 안 좋을 땐 가장 먼저 피해를 보고 경제가 살아날 때도 그 영향을 제일 나중에 받거든요.” 정 대표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품목을 전환할 것인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 지금까지 장미에 기울인 노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만만하지도 않았다. 그는 국가 경제가 파탄 나고, 자신이 망할 판국에도 고운 자태 뽐내며 피어난 꽃잎들을 하나하나,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뭉쳐서, 살아남기로. “전북 전주, 김제, 장수 등의 화훼농가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어요. 뭉쳐야 살지 않겠느냐고요.”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나았다. 장미를 키우고 절화를 해서 저장고에 넣는 것까지 각 농가에서 담당하고 이후 꽃을 취합하고 선별하여 보관과 유통, 판매까지를 한 곳에서 담당하면 생산 단가와 물류비, 유통비를 대폭 절약할 수 있으리라는 말로 농가들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점차 정 대표의 말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몇몇 농가가 나섰다. 이들과 공동으로 2000년 7월 로즈피아를 설립했다. 뭉쳐서만 될 일이 아니었다. 그가 생각한 타개책은 수출이었다. 곧바로 8개 소속 농가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의 화훼 시장은 국내 시장의 8배에 달했다. 일본 시장을 뚫으면 살길도 뚫리는 셈이었다. 그러나 길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통이 발목을 잡았다. 국내 시장과 달리 일본으로 상품을 보내는 데 통상 4~5일이 걸렸다. 공산품하고는 다르게 생물을 유통하는 데는 신선도가 최우선인데, 일본에 도착한 로즈피아의 장미는 대부분이 상해서 거래가 되지 않았다. 정 대표는 농촌진흥청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문의하고 관련 서적을 통해 공부를 하면서 노하우를 쌓았다. 그 과정에서 보관뿐 아니라 생산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정 대표는 꽃이 보다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재배 방법을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품질 좋은 장미를 생산하기 위해 ‘저온 유통 시스템’을 적용했다. 로즈피아는 2002년 이 분야에서 화훼업계 최초로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ISO9001 품질경영 시스템’ 인증을 획득했다. 여기에 대부분의 농가에서 꽃을 건식으로 유통하는 것과 달리 로즈피아는 습식 유통 방식을 도입했다. 포장할 때를 제외하고는 유통의 전 과정에서 꽃대가 물에 잠겨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설립 초기 60만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액은 2004년 500만 달러, 2010년에는 1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참여 농가도 8곳에서 130여곳으로 크게 늘었다. 더불어 정부의 지원도 수출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2007년 당시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의 원예 전문생산단지로 지정된 로즈피아는 매년 실시하는 운영실태 조사 평가 결과에서 2007년부터 7년 연속 최우수 단지로 선정되며, aT로부터 수출 물류비의 10%를 지원받았다. 연구와 혁신 못지않게 정 대표가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브랜드’다. “지금 로즈피아를 이끄는 것은 브랜드입니다. 저는 세월이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그동안의 노력과 신뢰들이 브랜드로 평가받은 것이라고요. 일본이 매우 보수적인데 로즈피아를 보면서 일본인들도 놀라워해요. 매장에 로즈피아 코너를 따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곳이 생겼을 정도예요.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즈피아가 우수한 품질의 장미를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은 깐깐한 일본 시장에서도 통했다. 2004년 1월 도쿄 다카시마야 백화점이 고객 선물용으로 장미 30만 송이를 납품할 회사를 선정할 때 일본과 한국, 대만에서 몰려온 10여개 업체를 물리치고 로즈피아가 납품권을 따낸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정 대표가 성공 요인으로 꼽는 한 가지는 ‘신뢰’다. “로즈피아의 장미 수출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수출에 필요한 포장 선별비와 수출물류비 외의 모든 수익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농가에 전액 되돌려 주고 있죠.” #두 번째 시련, 협상으로 풀었다 사람이 모여 일을 하다 보니 박 깨지는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개체 단위로 보면 농가는 각자가 독립된 경영체다. 구성원 모두가 ‘사장님’인 것이다. 이들이 자기 농가의 경영 이윤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데, 농사의 특성상 언제나 같은 이윤을 얻을 수는 없다. “로즈피아는 품질을 구분할 때 기준이 엄격해요. 기준을 안정화하는 데만도 여러 해가 걸렸어요. 농가마다 늘 같은 품질의 꽃을 키워 낼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내가 기른 꽃이 상급에서 제외되면 불만이 생기죠. 끝내 갈등을 풀지 못하고 로즈피아에서 이탈한 농가도 있었어요. 그래도 대부분은 소주 한 잔 하면서, 서로 등을 두드려 주면서 풀죠. 속은 상해도 다들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서로에 대해 믿음이 있으니 밀고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지금도 로즈피아가 ‘꽃길’만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 시장 자체가 초토화된 가운데 2012년 엔화 가치가 폭락해 로즈피아는 큰 시련에 직면했다. 수출 단가를 협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화훼시장은 총 100여곳, 그중 로즈피아가 거래하는 시장은 60곳 정도. 정 대표는 1년에 20여 차례 일본 현지를 오가며 가격 협상을 한 끝에 장미 단가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현재 수출단가는 송이당 70~100엔(약 750~1080원)으로 일본산 장미 가격의 70%에 이른다. 처음 일본산 가격의 40%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할 때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아직 매출이 안정세를 되찾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 600만 달러로 떨어진 매출이 올 들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고 있다. 정 대표는 앞으로 일본산 장미 가격의 80% 정도까지 가격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국내시장 확보와 수출시장의 다변화도 꾀하고 있다. 초기에는 로즈피아 매출의 80% 이상을 수출이 차지했지만, 현재는 수출과 내수의 비율이 5대5 정도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출에 더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러시아에 판로를 개척한 상태이고 중국 역시 차세대 주력 시장으로 판로를 탐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15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어요. 이들에게 꽃을 한 송이씩만 팔아도 장미 1억 달러 수출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입니다.” #묵묵히 기다리며… 다시 시련은 없다 이를 위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품종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장미도 유행을 많이 타기 때문에 신품종 출하 후 3~4년이 지나면 매출이 눈에 띄게 감소한다. 그러나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무엇보다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농가 자체에서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국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농가에서 네덜란드와 독일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100억원 정도인데, 이를 감안할 때 자체 품종 개발은 생산 원가를 줄이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정 대표가 로즈피아에 기대하는 바는 크다. 농사와는 무관한 두 아들을 설득해 장미 농사를 짓게 만들었을 정도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을 그려 보여 준 것은 아니다. 마음을 준 만큼, 손길을 준 만큼 정직하게 돌려주는 것이 농사지만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묵묵히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농사란 게 쉽지가 않아요. 묵묵히, 오래 기다려야 하죠. 한 해 농사에 실패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실패의 원인을 금세 찾았다고 해도 동일한 조건 속에서 다시 시도를 하려면 1년이 걸려요. 기다림과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죠. 더구나 식물은 어디가 아파도 말을 하지 못하잖아요. 식물과 대화할 정도의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은 걸린다고 봐요.” 농사도, 로즈피아도,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런 시간을 버텨 내지 못했다면 거듭되는 위기를 넘겨 가며 한 우물을 파지는 못했으리라.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낱낱의 존재는 미약하지만 서로 연대했을 때에는 예상치 못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일 테다. 그것의 한 예가 ‘로즈피아’일 것이다. ■ 글쓴이 소설가 진연주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방(房)’으로 등단. 2015년 ㈜문학동네에서 장편소설 ‘코케인’ 출간.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재건축 앞둔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재건축 앞둔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

    # ‘강남 토박이’ 나고 자란 추억의 고향 -고등학교 시절 다녔던 상가 학원의 방이 아늑했던 기억. -초등학교 때 버스 갈아타던 동네로서 남다른 애착. -이곳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 -언제 돌아와도 같은, 고향 같은 느낌. -상가 3층을 주택형 사무실로 몇 달간 사용했던 기억. -00치킨은 인문학자들의 아지트. 강북 사대문 안 어느 오래된 동네 출신들의 추억담이 아니다. 강남하고도 신반포로 양쪽, 낡고 어수선하고 모양 없이 길쭉한 몇 개의 건물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박한 건물군과 그 길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이 이런 정도다. 소위 ‘강남 토박이’들의 정서다. 1974년에 완공됐으니 나이로 보면 이제 40년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한 사람의 추억을 오롯이 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꼭 수백년 나이를 먹어야 역사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꽃피는 산골’만 내 고향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 ‘강남 스타일’이 유쾌하게 희화화했던 그 강남도 알고 보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정든 고향이다. 그 무시할 수 없는 일부인 추억의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이 일대의 재건축 분위기 속에 이제 기억 너머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고향이 사라지려는 참이다. # 5층 이하 ‘워크업 유형’… 전형적인 근대건축 한국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대규모 단지를 이룬 것은 1970년대부터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 단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 이전의 아파트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나 홀로’ 유형이 많았다. 길에 바짝 붙어 있는 경우도 흔했다. 이후 아파트는 점점 더 폐쇄적인 성격을 띠게 돼 지금은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1970년대만 해도 길이나 주변 지역에 대해 비교적 열려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길과의 관계를 거의 차단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이러한 1970년대 아파트 단지의 느슨한 과도기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가 속해 있는 반포주공1단지다. 1972년에서 1974년 사이 건립된 이 단지는 무려 3786가구의 대단지다. 지금도 구반포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한다. 5층 이하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소위 워크업 유형이며 전형적인 근대건축의 미학을 보여준다. 좋게 말해서 간결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무미건조하다. 유럽의 초기 근대주의 건축을 보러 간 사람들이 농담조로 ‘여기까지 와서 반포주공1단지를 보다니’ 할 정도다. 지금은 워낙 수목이 울창하게 자라 어딘가 북유럽을 연상케 하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생겼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 담장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통행을 제한하지 않는다. 동마다 수위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누구의 제지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반포로를 따라 양쪽에 있는 몇 동의 노선상가 아파트다. 최대 424m에 달하는, 상당히 긴 건물군이다. 안타깝지만 시각적으로는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간판이 혼란스럽게 붙어 있고 말이 상가 아파트지, 당초 주거였던 2층과 3층은 이미 용도 변경돼 주로 학원들이 들어서 있다. 건립 후 10년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 생긴 변화라고 한다. 역시 사람들은 큰 길가에 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일까. 특이하게도 단지 내 다른 건물들이 5층인데 유독 거리에 면한 상가 아파트는 3층으로 오히려 더 낮다. 상가가 저 정도로 활성화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주거도 큰 길가라서 인기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결과일 것이다. 만약에 5층이어서 아래 2개 층이 상가이고 그 위 3개 층이 주거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이 연재를 통해 후에 소개할 동부 이촌동 한강맨션의 노선상가 아파트가 그런 경우다.) 이 건물군은 아파트 주민들만을 상대하지 않는다. 수많은 버스 노선이 지나가는 신반포로의 특성상 유동인구가 상당하며 이들 또한 상가를 찾는 고객들이다. 9호선 구반포역이 들어서면서 그 성격은 더욱 강화됐다. 그야말로 지역의 거점이다. 덕분에 몇몇 장소가 상당한 지명도를 얻었다. 위에서 언급한 치킨집은 인문학자들의 발길이 하도 잦아서 재건축을 해도 ‘한국 인문학의 성지’로 보존해야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수제비나 떡볶이로 유명세가 따르는 곳도 있다. 단지 주민들만 이용하는 상가라면 이런 현상이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건물군이 전면 도로와 후면의 단지를 대하는 태도다. 전면에만 상가가 있을 것 같으나 뒤로 돌아가 보면 단지 쪽으로도 열려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노선상가 아파트가 애초에 어떤 의도로 계획됐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엄연히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속해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려 있다. 바로 이 개방성이 이 건물에 대한 많은 사람의 애정과 추억을 가능하게 한다. # 설계자들의 고민 ‘가능한 한 많은 상가 넣기’ 주공이라는 거대 조직이 지은 건물이므로 설계자들의 존재가 따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나름대로 치밀하고 섬세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2, 3층의 주거는 36평이라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대형 평수다. 나름 고급 주거였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채광을 위해 비교적 가로 폭을 넓게 했다. 이에 반해 그 아래의 상가는 주거를 반으로 자른 형태다. 즉 폭이 좁고 깊은 평면을 갖는다. 이것은 상업 가로를 만드는 기본 원칙, 즉 주어진 거리에 가능한 한 많은 상가를 집어넣는다는 개념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그 결과 정면의 폭(‘프런티지’라 한다)은 좁지만 내부 공간에 깊이가 있고 게다가 양쪽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이렇게 좁고 긴 평면 형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업 가로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유형이다. 유럽의 상인 주거가 그렇고, 일본의 나가야(長屋)가 그렇고, 베트남의 보편적 도시 건축들도 그렇다. 한편으로 주거로 올라가는 계단을 후면, 즉 단지에 면한 쪽에 놓음으로써 주거는 엄연히 단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설계자들의 섬세함은 건물의 방위를 다루는 데서도 드러난다. 신반포로를 중심으로 남쪽에 H, J, L동이, 북쪽에 G, I, K, M동이 있다. 언뜻 생각하면 같은 평면을 데칼코마니처럼 마주 보도록 뒤집어 적용했을 것 같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향을 선호하는 문화를 고려해 모든 거실이 남쪽을 향하게 했다. 그 결과 남쪽 건물군은 거실과 계단실이 남향으로 붙어 있고, 북쪽 건물군은 계단실은 북쪽에, 거실은 남쪽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발코니, 주방의 위치 등 수많은 세부적 변화를 만들어 낸다. 즉 유사하지만 같은 평면은 아닌 것이다. 신반포로가 동서로 달리고 있어서 그렇지 만약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서 주거가 동향이나 서향이어야 하는 상황이 됐으면 과연 어땠을까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주방에 딸린 작은 침실이 있는데 요즘 용어로 하면 ‘재택 가사 도우미’를 위한 방이어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신반포로 양쪽의 건물 입면이 매우 다를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이 설계의 묘미다. 워낙 간판으로 뒤덮여 있기는 해도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실 창도 시원하게 열린 통창이 아니라 가로로 긴 창이다. 일반 방의 창과 높이는 같으나 길이만 다르다. 즉 거리에 직접 면하고 있음을 고려해 주거 부분 창의 크기와 형태를 조절한 것이다. 단지 내부의 일반 아파트 거실 창이 통창인 것을 보면 이것은 매우 의도적인 결과다. 동시에 이것은 거리의 통일적인 분위기를 위해서도 매우 적절하고 사려 깊은 조치다. 지금의 다소 초라한 모습에 가려 만만치 않은 생각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 압구정과는 다른 편안함… 미래에도 남겨질까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이 일대의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면 갓 불혹을 넘긴 이 노선상가 아파트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다. 물리적인 실체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100%다. 다만 그 유형적 개념이 유지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가로변에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인터넷에서 찾아본 조감도에 의하면 단지 내부는 상당히 고층화되지만 신반포로를 따라서는 여전히 길게 늘어선 저층 건물군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애초에 한꺼번에 개발됐던 주공1단지와는 달리 재건축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진행된다고 한다. 따라서 반포로 양쪽 가로변의 경관이나 도시 구조가 서로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므로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욕심을 내 보자면 이 노선상가 아파트의 개념이 좀 더 발전된 형태로 다시 구현되는 것, 그리고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통해 반포로의 양쪽이 어느 정도의 통일성을 갖는 것, 이렇게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건물은 변해도 그 장소의 성격은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마침 이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재미 건축가 지정우의 증언을 옮겨 본다. “(…) 양쪽에 상가가 길게 있었기 때문에 가운데의 신반포로는 도로임에도 어떤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형성했습니다. 몇 군데의 횡단보도들이 그런 커뮤니티 장의 역할을 했고 보도 양쪽에서 서로 지인들과 동네 주민, 친구들을 발견하고 부르며 ‘내가 건너갈게’ 등의 손짓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한편 안쪽에 한신종합상가와 그 더 안쪽에 반포 상가열이 하나 더 있어서 ‘없는 게 없는’,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동네가 됐지요. 아파트나 상가나 형태적으로는 중성적인 모더니즘이어서 더 이 지역 주민들의 정서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후의 압구정이나 청담의 트렌디한 변화들과는 다른, 언제 돌아와도 같은,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을 갖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車·항공우주 첨단 체험공간… 5개월 만에 50만명 ‘북적’

    [명인·명물을 찾아서] 車·항공우주 첨단 체험공간… 5개월 만에 50만명 ‘북적’

    “국립부산과학관에서 다양한 과학 체험하세요.” 부산과학관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과학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 기장군 동부산관광단지 안에 있는 부산과학관은 지난해 12월 11일 개관 5개월 만에 이미 50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100만명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5개 과학관 중 개관 초기에 100만명을 달성한 과학관은 2009년 문을 연 국립과천과학관이 108만명으로 유일했다. 이처럼 많은 관람객이 단기간에 부산과학관을 찾은 것은 전시물의 82%가 체험형인 데다 우수한 교육프로그램, 자체 보유한 석·박사급 강사와 과학해설사를 활용한 교육이 톡톡히 한몫했다. 이에 힘입어 15일 현재 부산·울산·경남은 물론 대구·경북과 호남, 수도권 학교의 단체 학생 관람객 3만여명이 예약돼 있다. 하태응 홍보실장은 “부산과학관의 관람객 기록은 상설전시장 외에도 가족과학캠프, 학교단체 과학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시관 특색 있는 체험형 전시물로 꾸며 부산과학관은 동남권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항공우주, 선박, 에너지 및 방사선 의학을 주제로 동남권 최고의 지역거점형 과학관으로 180개의 다양한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이 가운데 82%인 148개 이상이 기초과학의 원리와 첨단기술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체험형 전시물로 학생들의 과학 지식 습득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또 천체투영실, 어린이관, 야외전시장, 캠프관을 갖춰 전시와 관람, 교육을 위한 공간을 넘어서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의 휴식공간인 과학테마파크로 조성됐다. 과학관 중앙홀의 탑승형 슬라이더는 즐겁게 나아가는 과학으로 항해를 상징하는 전시물로 놀이기구 성격을 겸하고 있어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끈다. 전시관은 자동차·항공우주관, 선박관, 에너지·방사선의학관, 천체투영관, 천체관측소 어린이관, 야외전시관 등으로 구성됐다. 자동차·항공우주관은 고대인들이 발명한 바퀴를 시작으로 엔진과 자동차의 진화와 항공, 우주로 향하는 인류의 끊임없는 도전과 창조를 담은 다양한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다이내믹한 음향과 스크린 영상으로 자동차 발달과정과 다양한 기계 움직임을 보여주는 ‘트랜스토피아’ 영상관, 실제로 발사되는 모형 제트엔진, 달의 중력 현상을 체험하는 월면걷기 등의 전시물은 과학 원리부터 첨단 과학기술의 미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선박관에는 과학과 기술, 수학과 해양과학을 연계한 각종 체험전시물이 자리한다. 입구의 거대한 코끼리 모형(애칭 ‘코니’)은 부력과 선박의 관계를 알려주는 상징 전시물이다. 아르키메데스 실험을 통해 부력의 원리를 익히고 무게중심을 배우는 기초과학과 선박의 설계, 조립과 같은 조선공학, 선박의 운항과 항해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체험할 수 있다. 4D 영상관에서는 미래 해양기술의 발달로 이루어낼 꿈의 도시를 만날 수 있다. 에너지·방사선의학관은 햇빛과 물과 바람 등 자연에너지를 이용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든 인류의 지혜가 앞으로 미래 청정에너지의 발달과 활용기술로 발전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전시관이다. 또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방사선을 활용해서 난치병인 암을 치유하는 첨단 방사선 의학의 원리를 체험할 수 있다. 상설전시관에선 더욱 과학적 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게릴라 과학콘서트’를 진행한다. 고리비행기를 만들어 보는 ‘응답하라 베르누이’, 알루미늄캔 세우기 등 무게중심을 알아보는 ‘갸우뚱 기우뚱’, 밴더그래프를 활용한 인형 머리카락 세우기 등 정전기 체험이 진행되는 ‘찌릿찌릿 정전기’가 운영된다. 이 밖에 어린이관은 미취학아동들을 대상으로 쉽고 재밌게 과학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신체발달에 자극되도록 100% 놀이를 통한 체험전시물이 들어 서 있다. 야외 전시장은 여름엔 물놀이 시설로 이용되는 워터플레이그라운드, 대형 요요 등이 설치된 사이언스 파크, 무선조종(RC)카를 즐기고 동호인들이 교류하는 공간인 ‘GO!GO! 신나는 레이스장’으로 구성돼 있다. 과학관 나무숲 사이 600m를 시원하게 달리는 꼬마기차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을 위한 과학테마파크임을 알려준다. 천체투영관에서는 120도로 편안히 누워 눈앞에 펼쳐지는 지름 17m의 대형 스크린에서 쏟아져 나오는 밤하늘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 국내 과학관 중 최대 규모인 360㎜ 굴절망원경이 있는 원형 돔 형태의 주관측실과 천장이 열리는 슬라이딩 루프 모양의 보조 관측실, 천체교육장 등 국내 최고 수준의 관측시설을 갖춘 천체관측소도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올 들어서만 87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관측 장비는 주망원경 외에 직경 500㎜의 반사망원경, 태양 관측 전용망원경 등 4대의 보조망원경과 10여대에 이르는 이동식 천체망원경을 이용해 주간에는 태양 및 직녀별과 같은 밝은 별, 야간에는 달과 행성, 성단, 성운 그리고 안드로메다은하 등 다양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학교단체 및 가족 단위 과학캠프 인기 부산과학관은 자유학기제와 체험학습 등을 위해 학교단체 과학캠프를 마련해 이달부터 운영하고 있다. 일정은 과학관에서 개설한 천체캠프, 이공계 진로캠프, 3D프린터 등을 배우는 엔지니어링과 소프트웨어(EnS) 캠프, 과학동아리를 위한 과학탐구캠프 등으로 짜였다. 여기에다 학교에서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활용해 구성할 수 있도록 해 학생들의 흥미와 탐구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학교단체 과학캠프는 수학여행을 위해 부산을 찾는 다른 지역 초·중·고 학교도 이용 가능하다. 비용은 프로그램과 이용시간에 따라 1인당 2만 5000~3만 5000원을 받는다. 식비는 별도다. 자유학기제로 학교 단체 교육에 참여했던 고교 1학년 이지나(17)양은 “이렇게 즐거운 과학관은 처음이다. 평소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단순한 것들에도 과학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만족해했다. 차를 몰고 멀리 가지 않아도 아이들과 함께 별을 찾으며 밤하늘의 낭만과 어린 날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가족과학캠프도 인기를 끈다. 교육과 체험, 숙박을 포함해 1인당 2만 5000원이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온 가족이 숙박할 수 있는 캠프관을 활용해 편안하고 낭만적인 주말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다. 야간 천체관측을 포함한 주말 가족과학캠프를 월 2회 이상 운영한다. 가족과학캠프 정원은 30가족 120명을 기준으로 한다. 캠프관은 과학관 뒤쪽의 2층 건물로 개별 샤워실과 화장실을 갖춘 30개 객실을 이용한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되는 가족과학캠프 프로그램은 천체관측과 야간에 과학관 전시실을 엿보는 ‘과학관은 살아 있다’ 등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과학관 4층의 천체관측소에서 국내 최대의 굴절망원경으로 은하와 행성 등 다양한 천체를 직접 관측하고 과학관 2층의 야외 데크에서 이동형 천체망원경을 아이들과 함께 조작하면서 밤새도록 밤하늘의 낭만을 즐기며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다. 프로그램이 충실하다 보니 가족과학캠프는 11회 연속 매진 기록을 세우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가족과학캠프에 참여한 학부모 이영재(45)씨는 “주말에 과학관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재밌고 유익한 프로그램도 즐기고 편안하게 숙박도 해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동남권 최대 국립부산과학관 부산과학관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부산시가 1217억원(국비 852억원, 지방비 365억원)을 들여 동부산관광단지 11만㎡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건립했다. 정부가 직영하는 국립중앙과학관이나 국립과천과학관과 달리 정부와 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출연하는 특별법인으로 후원회 운영 및 기부금 모집이 가능한 시민참여형 과학관이다. 부산과학관은 충청권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과 수도권의 국립과천과학관, 대구·경북권의 국립대구과학관, 호남권의 국립광주과학관과 함께 5대 권역별 거점 과학관이다. 부산과학관은 매주 월요일과 매년 1월 1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과학관을 경유하는 시내버스(185번)가 있고, 주말에는 셔틀버스도 운영한다. 이영활 관장은 “국립부산과학관이 최고의 체험전시물을 갖춘 명품과학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과학교육의 장, 놀이와 체험으로 과학을 배우고 익히는 과학테마파크로 만들어 가겠다”며 “이를 위해 지역의 역량과 자원을 한데 모아서 주민 참여형 지역거점 과학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꽃을 읽다(스티븐 부크먼 지음, 박인용 옮김, 반니 펴냄)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꽃은 모든 문화에서 경탄의 대상이었다. 인간은 왜 이렇게 꽃에 매혹당한 것일까. 책은 이런 꽃의 역사를 살펴보며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간다. 생물학자인 저자는 꽃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꽃의 기원과 생식 방법,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어 야생의 꽃이 어떻게 우리의 정원으로 들어오고 화원에서 거래 대상으로 자리잡았는지 그 역사를 추적하며 문학, 미술, 신화 등 인류 문화사에 꽃이 어떤 영감을 줬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꽃이 향기만큼이나 은밀하게 인간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며 ‘꽃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428쪽. 1만 8000원. 미국인의 역사Ⅰ·Ⅱ(폴 존슨 지음, 명병훈 옮김, 살림 펴냄) 미국 역사학계 석학인 저자가 16세기 말 영국령 식민지부터 20세기 말 현재까지 400년간의 미국사를 통찰한 책이다. 독립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힘겨운 싸움, 노예제도와 서부 개척을 둘러싸고 빚어진 시행착오와 극복, 그리고 오늘날 경제·정치·군사적 초강대국으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방대하게 풀어냈다. 그는 ‘미국은 건국 당시 저지른 불가피한 죄를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 건설로 속죄했는가’, ‘사사로운 이익 추구의 욕구와 야망을 공동체적 이상과 이타주의로 통합해냈는가’, ‘인류의 본보기가 될 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달성했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간다. 1권 852쪽. 2권 812쪽. 각 권 3만 8000원. 격차고정 이제 계층 상승은 없다(미우라 아쓰시 지음, 노경아 옮김, 세종연구원 펴냄) 2005년 ‘하류사회’를 출간한 저자가 10년 후 인구의 43%가 빈곤층이 된 일본 사회의 현재를 조망한 책이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사람’과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사람’으로 양분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계층별 소비행동,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의 격차는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빈곤층의 계층 상승은 거의 없는 반면 상류층의 계층 하락은 두드러졌다. 흙수저·금수저로 대표되는 새로운 계급사회가 현실화되는 실태를 신랄하게 분석한 동시에 심도 있는 데이터를 토대로 현실을 직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218쪽. 1만 3500원. 유니콘(유효상 지음, 클라우드나인 펴냄) 전 세계적으로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약 1조 2000억원) 이상이 된 스타트업 기업들인 유니콘 기업 174개의 탄생부터 창업자, 투자자, 비즈니스 모델, 기업 가치를 분석한 책이다. 국내 인수·합병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은 저자는 혁신을 무기로 뛰어난 인재를 영입해 발전하는 유니콘들을 하나의 거대한 비즈니스 흐름으로 바라본다. 174개 중 106개가 미국 기업이며, 60개 기업이 실리콘밸리에 있다. 특히 중국은 가장 주목할 만한 유니콘의 탄생지다. 유니콘 순위 2위인 샤오미 등 36개 기업이 이름을 올려 미국을 빼고 가장 많다. 우리나라 기업은 쿠팡과 옐로모바일 2개가 리스트에 올랐다. 창조적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는 유니콘 기업을 파헤치고 있다. 600쪽. 2만 9900원.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코미디언 무어씨의 문화충돌 라이프(이언 무어 지음, 박상현 옮김, 남해의봄날 펴냄) 10년 전 잘나가던 코미디언인 저자는 매일 반복되는 교통 체증과 주차난, 획일화된 신도시에서의 삶에 지쳐 가족과 프랑스 시골마을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꿈꾸며 프랑스 루아르 계곡의 한 시골마을로 들어간 저자를 기다리는 것은 시골 농장의 엄청난 일거리와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프랑스 할머니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요상한 문화. 책은 도시와 시골,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좌충우돌하는 그의 일상을 영국 코미디언 특유의 냉소적 유머와 풍자를 버무려 펼쳐 놓는다. 저자가 원래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된 글을 엮어 낸 책으로, 속편까지 출간됐다. 484쪽. 1만 4000원.
  • [함혜리기자의 미술관 기행]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Pinacoteca di Brera)

    [함혜리기자의 미술관 기행]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Pinacoteca di Brera)

    이탈리아 밀라노를 찾는 여행자들은 밀라노 대성당과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다시 밀라노를 찾게 되거나 처음 밀라노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이 있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브레라 미술관이다. 로마의 바티칸,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높이 평가받는 곳으로 특히 회화 컬렉션이 워낙 유명하기에 회화관이라는 뜻을 강조해 ‘피나코테카’로 불린다.  브레라 거리(Via Brera)에는 참신한 디자인의 액세서리 전문점과 가구, 갤러리, 인테리어 점, 주방용품점이 늘어서 있다. 옛 골목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브레라 거리 28번지에 미술아카데미와 미술관이 있다. 거리에서 보면 입구는 평범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중정을 둔 매우 아름다운 벽돌 건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층에 브레라 미술아카데미가 있고 2층에 미술관이 있는 브레라 궁(Palazzo Brera) 건물은 처음 지어진 17세기 당시에는 예수회의 밀라노 본부였다. 14세기 부터 있던 수도원 자리에 바로크 건축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리치니 부자의 설계로 1627년 완성된 건물의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고 기능에 충실하다. 하느님에 대한 절대 순종을 강조하며 높은 도덕심과 인내, 소명에 따르는 생활을 통해 각자의 인격을 완성하고 교육하고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예수회의 건물다운 엄격하지만 아름다운 외관이다.  이곳이 미술관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1773년 예수회 해체를 명하자 이곳은 원래의 목적을 잃게 된다. 계몽군주를 자처하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이곳을 문화와 예술을 계몽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명했다. 그에 따라 미술 교육기관 브레라 아카데미가 들어섰고 학생들이 고상하고 세련된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조각과 회화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천문대와 도서관이 들어섰다. 건물은 1776년 아카데미의 교수 주세페 피에르 마리니의 설계로 추가 증축을 거쳤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기증한 소규모 컬렉션은 요제프 2세(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아들)가 이탈리아 북부 지방을 통치할 때 종교기관을 환속시키면서 많이 늘어났다. 수도원들이 문을 닫고 몰수한 교회의 제단화들을 옮겨 왔고, 아카데미 교수들이 이탈리아 명작 회화 컬렉션을 확보하면서 미술관의 규모를 갖추자 1786년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미술품은 나폴레옹 통치 시대(1799~1815)에 크게 증가했다. 나폴레옹은 밀라노를 이탈리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북이탈리아 전역의 궁전과 귀족들로부터 약탈한 미술품들을 브레라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나폴레옹 군대는 수천점에 달하는 회화 작품을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의 교회와 귀족들로부터 압수해 브레라로 보내왔다. 그동안 쌓인 방대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1809년 새로운 미술관을 개관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프랑스 군대가 철수한 이후에도 몰수된 예술품은 그 자리에 남아 오늘날 브레라 미술관의 주요 컬렉션을 이루고 있다. 미술관은 개관 이후 브레라 아카데미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1882년 공식 분리돼 북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국립미술관으로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대 학생들로 북적이는 브레라 미술아카데미를 지나서 오른 쪽 큰 계단을 올라가면 미술관이다. 왼쪽에 안내 데스크가 있고 오른 쪽부터 전시실이 이어진다. 방을 따라서 관람하다보면 처음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브레라 미술관의 컬렉션은 13세기에서 20세기까지를 아우른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바로크, 베네치아 화파와 롬바르디아 화파의 그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북이탈리아 르네상스 부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만테냐의 작품을 비롯한 북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컬렉션은 이 미술관의 백미로 꼽힌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북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의 ‘죽은 예수’(1475~1478년)다. 7번 방에 있는 이 그림은 엄격한 사실과 자유로운 상상력, 원근법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만테냐의 대표작으로 독특한 앵글로 잡은 구도와 사실적인 표현이 인상적이다. 만테냐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만테냐는 관람자(혹은 화가 자신)의 시선을 대리석 침대에 누인 예수의 발 아래에서 시작해 화면 상단에 머리를 그리고, 왼쪽 구석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며 슬퍼하는 마리아와 요한의 얼굴을 측면으로 그렸다. 2차원 화면이지만 정확한 원근법을 구사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것 같다. 파도바 근처의 이초라 디 칼투로 출신인 만테냐는 스카르초네 밑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지만 파도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조각가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았다. 만테냐의 작품이 견고한 조각적 성격을 띠는 것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베네치아 화파의 시조인 야코포 벨리니의 사위가 되면서 자연스레 베네치아 화파의 영향을 받아 강한 조각적 성격은 조금 누그러뜨리고 엄격한 북방적 사실주의를 견지하며 북이탈리아 화파의 르네상스 양식을 수립했다. 이 작품에서도 못에 박혀 심하게 상한 발바닥이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죽은 예수의 얼굴도 초라하고 비극적이며 이를 보고 눈물 흘리는 마리아의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만테냐가 만토바의 산탄드레아 성당에 있는 자기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미술관에는 만테냐가 1453년 완성한 성누가 제단화도 있다. 만테냐가 성 귀스티나 성당의 성누가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 22세에 완성한 초기의 작품으로 12개의 패널로 이뤄져 있다. 만테냐의 또 다른 작품 ‘아기 천사들과 성모자’(1485년)는 원래 베네치아의 성 마리아 마지오레 수도원에 있던 것이 나폴레옹 시대에 브레라로 옮겨졌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뒤로는 구름 사이로 수많은 아기 천사들이 있는 작품으로 아기 천사들의 다양한 표정이 사랑스럽다.  지오바니 벨리니(1430~1516)의 ‘피에타’(1460년)도 브레라 미술관에서 놓치면 안될 마스터피스로 꼽힌다.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스승인 조바니는 야코포 벨리니의 아들로 형 젠틸레와 함께 3부자가 베네치아 화파의 중심을 이뤘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벨리니의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와 그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 제자 요한의 슬퍼하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의 ‘성모의 결혼’(1504년)은 브레라 아카데미 초기에 유입된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이다. 중앙에 사제를 두고 요셉이 마리아에게 반지를 끼워주기 위해 나서는 장면을 그린 작품은 라파엘로 특유의 우아함과 섬세함과 고요함, 조화로운 채색과 구도, 각 인물과 사물의 정교하고 부드러운 묘사가 매우 아름답다.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명인 라파엘로는 우르비노 공작의 궁정화가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나 문화의 중심지였던 우르비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라파엘로는 1500년경 페루자 부근에 있던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으며 제단화와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성모의 결혼’은 그가 수련기간 동안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원래 시타 디 카스텔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있는 산 주세페 예배당의 패널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라파엘로는 전경에 인물들을 반원 형태로 배치하고 뒤로는 아치들이 반복되어 있는 웅장한 신전을 배치했다. 중심 인물들 뒤로 기하학적으로 연결된 길을 통해 시선을 자연스럽게 신전으로 이동시킨다. 전경의 인물과 공간, 건축물의 아치들을 조화롭게 연출하면서 화면에 통일감을 주고 있다. 스승인 페로지노가 페루지아의 두오모를 위해 그린 같은 제목의 제단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확실하지만 공간과 인물의 조화에서 이미 스승을 능가함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스스로 매우 만족했던지 당시 갓 스물을 넘긴 라파엘로는 화면 속 신전의 중앙 아치에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완성한 날짜를 적어 넣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6~1492)의 ‘몬테펠트로 제단화’(1474년)도 놓치면 안될 작품. 그는 이론가로서 ‘투시화법에 대하여’라는 책을 저술하고 건축물이 조화롭게 배치된 패널화 ‘이상도시’(1470년)를 통해 원근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엄밀한 원근법으로 재현된 건물의 내부에 성모가 아기예수를 무릎 위에 눕히고 있고 그 앞에 갑옷을 입은 우르비노 공작 몬테펠트로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주위는 성녀와 성인들이 에워싸고 있다. 원근법에 따라 그려진 공간에 인물의 크기도 위치에 따라 비례를 정확하게 계산해 그려 착시를 일으킬 정도다. 맑은 색채와 위엄 있고 당당해 보이는 인물 표현이 당시로서는 매우 전위적이다.  벨리니 형제가 그린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마르코’(1506년)와 베네치아 화파의 또 다른 거장 틴토레토의 ‘성마르코 유해의 발견’(1566년), 카라바조의 ‘엠마우스에서의 저녁식사’(1605년) 등 마스터피스들을 감상하다보면 다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다. 북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프란체스코 아이예즈의 달콤한 ‘입맞춤’(1859년) 앞에서 피곤을 달래보자. 아이에즈는 브레라 아카데미의 원장을 지냈고 30년간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화가로 부드럽고 세밀한 묘사, 인물의 정교한 감정표현에서 뛰어났다. 고성의 으슥한 계단 앞에서 두 남녀가 입을 맞추는 작품은 매우 낭만적이다. 남자는 아마도 떠돌이 음유시인이고, 여자는 양가집 규수일 수 있겠다. 달콤해 보이는 그림 뒤에는 정치적인 은유가 내포돼 있다고 한다. 남자의 옷 색깔이 붉은 색, 여자의 비단 드레스 색깔이 푸른색인데 이는 각각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상징한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두 남녀의 입맞춤을 통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불안한 동맹관계를 표현했다. 미술관이 있는 팔라초 브레라의 담을 끼고 오른편에 팔레트를 손에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프란체스코 아이예즈의 동상이 서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글로벌 시대] 다마스쿠스의 커피/이옥순 인도문화연구원장

    [글로벌 시대] 다마스쿠스의 커피/이옥순 인도문화연구원장

    2007년 여름에 시리아의 수도를 방문했을 때다. 새벽에 일행과 도시탐험에 나섰다가 작은 골목에 자리잡은 아담한 카페를 지나게 되었다. 어둑한 새벽에 환히 불을 밝힌 가게 안에는 여러 명의 중년남자들이 불빛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가게 문을 밀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그 남자들이 마시는 것을 달라고 말했다. 아랍어 메뉴판을 읽지 못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이 다였다. 물론 동네 아저씨들이 담소를 즐기며 검은색 음료를 홀짝거리는 모습이 근사해 보인 탓도 있었다. 근데 이윽고 우리 테이블에 놓인 찻잔의 음료를 한 모금 맛본 우리 일행은 모두 쓴웃음을 주고받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커피의 맛이 몹시 썼기 때문이었다. 독하다, 독약 같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진했다. 그건 아라비아산 커피 원두를 갈아 만든 나름의 에스프레소였다. 우리는 더이상 그 진한 커피를 마시진 못했으나 아주 오래된 도시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문화와 아침 분위기를 느끼며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아는 내전으로 피폐해지고 우리가 들렀던 성경에 나오는 도시 다마스쿠스는 부서지고 무너진 모습으로 외신을 타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새벽에 행복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던 그 사람들, 오밀조밀한 모습으로 이어진 천년고도의 그 좁은 골목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눈에 띄게 증가한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마실 때면 문득문득 그날의 새벽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커피 수입량이 최고기록을 경신했다는 소식이 지난 몇 년간 반복되었다. 수입량이 많다는 건 소비량이 많다는 뜻이다.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이 하루 2잔이고 커피를 파는 전문점이 1만여 곳을 돌파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서울 등 대도시엔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들이 도로를 두고 마주 보거나 약간의 거리를 두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경쟁을 펼치는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물론 수입문화인지라 새벽부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커피전문점이 생기고 커피를 마시는 인구가 늘어만 가는 현상을 낭만적으로만 해석할 순 없다. 커피 한 잔의 위무와 커피 성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고단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진한 커피가 선사하는 각성상태가 사람들에게 이성적으로 더 일하도록, 더 열심히 살도록 부추긴다. 우리가 기호품으로 분류하는 홍차와 커피는 산업혁명 이전엔 금기시된 음료였다. 영국에서 홍차를 마시는 풍습이 급속하게 퍼진 건 산업혁명과 연관이 있었다. 산업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술 대신에 홍차를 마시도록 은근히 장려했다. 그렇게 하여 노동자들은 다음날 생산 작업에 영향을 가져오는 음주보다 설탕이 들어간 고칼로리의 홍차를 마시면서 길고 힘든 노동을 견디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홍차와 커피는 술과 달리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서 마실 수가 있고, 카페인이 든 그 음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더 오래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우리나라에서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던 그날의 다마스쿠스가 종종 생각나는 건 그래서다.
  • 한·중 젊은 화가들 ‘인상항주展’, G20 개최 도시 항저우를 화폭에 담아내다

    한·중 젊은 화가들 ‘인상항주展’, G20 개최 도시 항저우를 화폭에 담아내다

    오는 9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도시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 저장성의 성도 항저우의 특색을 담아낸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서울 종로구 중국문화원에서는 ‘인상항주(印象杭州)-내 눈에 비친 G20 도시’전이 진행되고 있다. ‘인상항주-내 눈에 비친 G20 도시’전은 앞서 지난달 24일 항저우관광청의 주최로 항저우 방송국에서 열린 바 있다. 중국 전시를 마친 뒤 서울에서 전시회가 이어진 것이다. 과거 남송의 도읍이었던 항저우는 화려한 자연 경관과 함께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남아있는 예술 도시로 꼽힌다. 또한 당대 시인 백거이, 송대 문호 소동파, 근대 문학가 루쉰 등을 배출했을 만큼 풍류가 있는 낭만적인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상항주-내 눈에 비친 G20 도시’전에서는 이처럼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항저우의 예술적 면모를 그대로 화폭에 담았다. 젊은 화가들의 붓으로 예로부터 서호, 대운하, 천도호, 푸춘장, 서계 등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 항저우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 전시회는 특히 대구문화재단과 중국 미술학원국가대학과기창의원, 절강홍예문화유한공사가 지난 2014년부터 한국과 중국의 젊은 작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공동으로 진행했다. 한국의 20~30대 젊은 미술가 10여명이 항저우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며 지역의 특색을 수집했고 호수와 산으로 어우러진 자연의 조화와 역사와 문화적 식견을 직접 체험하고 느낀 정취를 작품에 담아냈다. 항저우 전시 개막식에서 대구문화재단 심재찬 대표는 “예술가에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국제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로, 역사와 문화 예술의 전통이 유구한 중국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받을 예술적 영감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이어 “이번 전시회를 통해 대구와 항저우가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를 열게 됐고, 대구 뿐만 아니라 한국 전역에 항저우를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에 이어 광주, 대구 등까지 순회하며 한달 간 국내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출품된 작품들은 엽서로도 제작돼 학교와 주요 지하철 역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잊고 산 결핵, 면역력 떨어지면 찾아와요

    잊고 산 결핵, 면역력 떨어지면 찾아와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속 소녀는 소나기를 흠뻑 맞고 그만 병이 악화돼 “내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는 잔망스러운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가을날 소나기가 소녀를 시름시름 앓게 했지만 죽음으로 이끈 건 결핵이었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여주인공 미미,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도 애절한 사랑을 하다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창백한 피부에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몸이어야 ‘비련’에 어울리다 보니 결핵 환자의 모습이 병적인 아름다움으로 미화돼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의 단골 소재가 됐다. 결핵은 문인의 병이기도 했다. 이상, 김유정, 나도향, 채만식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상당수 문인이 결핵 투병을 했다. 하지만 결핵은 비련의 여주인공과 문인이 앓는 ‘낭만적’ 질병만은 아니다. 문인 가운데 유독 결핵 환자가 많았던 건 가난과 흡연, 잦은 음주 때문이다. 손현진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연구관은 “결핵은 대체로 폐에 생기는데 흡연은 폐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리며 알코올 중독, 당뇨병, 스트레스, 영양 결핍 등 면역을 떨어뜨리는 모든 요인이 결핵 발병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결핵 환자 통계를 보면 지난해 신규 환자 수는 남성 1만 8695명, 여성 1만 3486명으로 남성 환자가 여성보다 1.4배가량 많다. 손 연구관은 “남성의 높은 흡연율, 군대에서의 집단생활 등이 결핵 발생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핵균에 감염됐지만 아직 증상은 나타나지 않은 잠복결핵자라도 면역력이 강하면 결핵으로 발병하지 않는다. 문인뿐만 아니라 못 먹고 못살았던 그 시절 가난한 이들은 결핵을 앓았다. 그래서 결핵을 다른 말로 ‘가난의 질병’이라고도 부른다. 1965년만 해도 결핵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5100명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야 인구 10만명당 10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핵에 걸리면 객혈, 호흡곤란, 무력감과 피곤함, 미열·오한 등의 발열 증상이 나타난다. 감기나 폐렴, 폐암, 기관지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호흡기 관련 질환과 증상이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식욕이 떨어지면서 체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결핵에 걸린 예술작품 속 여성들이 하나같이 여윈 몸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결핵은 대체로 폐에 생긴다. 기침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열이 나며 기침 증상이 밤에 더 심해지면 폐결핵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다만 결핵 발병 부위에 따라 신장결핵이면 혈뇨가 나타나고 배뇨 곤란·잦은 요의(尿意) 등 방광염과 비슷한 증상을 동반하기도 하며, 척추결핵은 허리 통증, 결핵성 뇌막염이면 두통·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증상만 가지고 결핵 종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결핵을 예방하기 위해 2017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생과 40세 성인을 대상으로 잠복결핵 검진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결핵 환자 돕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크리스마스실’이 기억 저편으로 밀려난 것처럼, 못 먹고 못살던 시대의 전유물로 여겼던 결핵도 잊힌 지 오래지만 없어진 질병은 아니다. 2015년 기준 국내 신규 결핵 환자 3만 2181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10만명당 86.0명)란 통계가 말해 준다. 그냥 1위도 아니라 결핵 발생률이 2위인 포르투갈(10만명당 25.0명)보다 무려 3배 이상 많은 압도적 1위다. 북한의 결핵 환자는 세계보건기구(WHO) 추산 10만명당 442명(2014년)이다. 우리나라에 유독 결핵 환자가 많은 것은 6·25전쟁 때문이다. 전쟁 전후 결핵이 많이 발병했고, 피란 생활을 하며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됐다.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공부하고 군대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결핵균이 더 많이 전파됐고, 이렇게 감염된 이들이 노년기 들어 발병하며 2차 감염을 일으키고 있다. 결핵은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다. 결핵 치료를 시작해 2주 정도 약을 복용하면 대개 전염력은 사라진다. 그러나 결핵균은 증식 속도가 무척 느려 최소 6개월 약을 복용해야 하며, 복용을 마음대로 중단하면 아직 죽지 않은 결핵균이 다시 증식해 재발하게 될 위험이 크다. 또 기존 약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결핵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1차 치료는 6개월이지만, 다제내성결핵의 치료 기간은 2년이며 부작용이 많아 매우 힘들고 치료 성공률도 50~60%에 불과하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바둑계 전반 ‘알파고 신드롬’ 긍정적… 세돌은 강했다”

    “바둑계 전반 ‘알파고 신드롬’ 긍정적… 세돌은 강했다”

    “바둑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과 최강 인공지능 ‘알파고’의 5번기를 주관한 한국기원의 양재호(53) 사무총장은 “결과는 다소 아쉽지만 이번 대결은 바둑계 전반에 잘된 일”이라고 총평했다. 양 총장은 1980~90년대 맹활약한 프로기사 출신으로 2011년 사무총장에 취임해 행정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선 양 총장은 이 9단의 정신력을 높이 샀다. 그는 “1, 2국은 이 9단이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알파고와의 대결에 앞서 대국도 많았고 알파고 대국과 관련한 이벤트도 많았다”면서 “컨디션이 나쁠 것으로 예상했고 결국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팬들은 이 9단이 연패로 충격에 휩싸이자 ‘경기를 중단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안타까워했지만 이 9단은 강했다. 프로기사는 모두 강하다”라고 강조했다. 양 총장은 알파고의 기력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는 정체불명이었다. 이 9단의 압승을 점쳤지만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알파고가 바둑을 연구하고 도전한 것 자체가 경이롭고 바둑계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도 알파고의 정확한 실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알파고가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분석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바둑의 정석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알파고의 수가 잘 두지 않는 ‘독특한 수’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양 총장은 이 9단이 알파고에 대한 정보가 전무해 사전 대국을 추진했다고 털어놨다. 한국기원은 알파고와의 대국 계약 당시 국내 정상급 프로기사와 대국을 치르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감에 찬 이 9단이 “괜찮다”고 만류해 사전 대국은 논의로 끝났다. 1, 2국에서 이 9단이 당황한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감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계약 당시 ‘리턴 매치’도 논의됐다고 했다. 이 9단이 압승한다는 전제에서다. 하지만 알파고의 승리로 구글이 받아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기원이 ‘리벤지 매치’(설욕전)를 요청한 상태다. 양 총장은 이번 대결로 바둑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9단이 연패에 빠졌을 때만해도 우려의 소리가 컸으나 이 9단의 4국 투혼으로 기대감이 훨씬 높아졌다고 안도했다. 양 총장은 “그동안 우리는 전문기사 10여명을 세계에 파견하며 바둑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힘썼으나 보급에 애를 먹었다”면서 “하지만 이번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로 전 세계인이 승패와 관계없이 동양의 낭만적인 바둑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어린이 등 바둑 문외한들이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대박’이라고 기뻐했다. 그는 “그동안 바둑은 배우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졌고 시작한 뒤에도 얼마 못 가 그만두기 일쑤였다”면서 “하지만 인공지능 바둑을 보면서 쉽게 바둑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종전 기사나 강사 교육 대신 인터넷, 스마트폰 등이 바둑을 쉽게 접하고 가르치는 첨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기원도 구체적인 대중화, 세계화 전략을 새로 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바둑 교육 사업도 서둘러 가동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바둑이 자칫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계심도 내비쳤다. 그는 “인간이 기계에 패한 탓에 바둑의 신비감이 떨어질 수 있다. 바둑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인간이 파헤칠 수 없는 경지”라면서 “깊은 맛이 있는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퇴색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양 총장은 “바둑의 의미, 가치 등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바둑은 인류와 영원히 공존하며 무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세트장 같은 ‘숲속의 헌책방’… 나도 영화 속 주인공 돼 볼까

    [명인·명물을 찾아서] 세트장 같은 ‘숲속의 헌책방’… 나도 영화 속 주인공 돼 볼까

    100년 넘는 책까지 13만권 빼곡… 서점 밖엔 ‘내부자들’ 안상구·우장훈이 삼겹살 구워 먹던 평상도 부정하고 싶은 현실 이야기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연출한 영화 ‘내부자들’은 지난해 말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이 영화는 대통령을 꿈꾸는 국회의원과 신문사 논설주간, 대기업 회장 등 우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갑질’ 인생들과 이들에게 맞서 싸우는 열혈검사와 정치깡패 이야기를 다뤘다. 안가로 보이는 비밀스러운 술집과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 나이트클럽, 대형 컨테이너박스가 즐비한 항만, 철거 직전의 허름한 도심의 아파트 등이 주요 장소로 등장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다. 하지만 차갑고 살벌한 범죄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이색적인 장소가 하나 등장한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 중반쯤 우리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거대 괴물들에게 배신당한 뒤 복수를 계획하다 오히려 쫓기게 된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가 우장훈(조승우) 검사와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서울을 빠져나간 뒤 비포장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우 검사의 아버지 집이다. 실내에 불이 켜지자 수많은 책장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헌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봐도 책이 수만권은 족히 넘어 보인다. 실내에는 먼지가 가득하다. 깊은 산속에 서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한 안상구는 눈길을 여기저기로 돌리며 책장과 책장 사이로 난 좁은 통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 촬영을 위해 산속에 꾸민 세트장 같지만 이곳은 실제로 존재한다. ‘숲속의 헌책방’으로 불리는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 있는 새한서점이다. ‘내부자들’에서 이곳은 유일하게 낭만적이고 푸근한 장소로 꼽힌다. 영화는 2014년 8월 24~26일 3일간 새한서점에서 찍었다. 지난 11일 중앙고속도로 단양IC를 빠져나와 S자에 가까운 급커브 경사길을 10여분간 달리자 현곡리 마을이 나타났다. 여기에서부터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도로를 타고 고개를 넘어 산속으로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하며 1.2㎞를 더 들어갔다. 그러자 산골짜기 경사진 땅에 비스듬히 서 있는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에 달린 흰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서점 같아 보이는 구석은 하나도 없지만 가까이 가 보니 새한서점 간판이 걸려 있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산뿐이다. 들리는 것은 시냇물과 산새 소리 등이 전부다. 이런 곳에 서점이 있다니. 안상구와 우장훈이 은신처로 택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자 책이 넘쳐났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수많은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 있고, 바닥 여기저기에도 책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총 13만권에 달한다고 한다. 실내 바닥은 그냥 맨땅이다. 그러다 보니 책장과 책장 사이 바닥에는 돌이 박혀 있다. 오래된 나뭇잎도 뒹굴어 다닌다. 서점 안 풍경이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국내소설, 외국소설 등 도서분류법에 따라 570가지로 꼼꼼하게 분리돼 있다. 발간된 지 100년이 넘는 책도 있다. 서점 밖에는 영화 속에서 안상구와 우장훈이 삼겹살을 구워 먹은 평상이 자리잡고 있다. 서점 규모는 총 350여㎡ 정도다. 새한서점 주인은 이금석(65)씨다. 이씨는 고향 제천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 학창 시절을 보낸 뒤 1979년 헌책방을 시작했다. 서울 답십리, 길음동, 제기동 등에서 30년 가까이 헌책방을 운영했다. 서점 이름은 항상 ‘새한서점’이었다. ‘새로 한다’, ‘New korea’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당시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씨의 서점은 꽤 유명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고향이 그리워졌다. 시골로 내려가도 온라인으로 판매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민 끝에 귀향을 결심하고 고향에서 헌책방 할 곳을 찾았다. 제천을 1순위로 후보지를 찾다가 마땅한 곳이 없자 인근 단양으로 눈을 돌렸다. 이씨는 폐교돼 방치된 단양 적성초등학교에 홀딱 반했다. 그는 2002년 자식과도 같은 헌책들을 데리고 혼자서 단양으로 내려와 적성초교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적성초교 운동장에 야영장 등 부대시설을 마련해 외지인들을 유치할 계획도 세웠지만 자금에 여유가 없어 서점만 운영했다. 위기는 시작과 함께 닥쳤다. 온라인 판매 수입으로는 한 달에 100만원인 폐교 임차료를 내는 게 버거웠다. 1년 동안 임차료와 운영비 등으로 1400여만원을 썼다. 이때는 권상우와 김하늘이 출연한 영화 ‘청춘만화’를 이씨 서점에서 찍었다. 이씨는 7년간 머물렀던 적성초교를 떠나기로 하고 현재의 서점이 있는 현곡리에 놀고 있는 계단식 논 400여㎡를 사들였다. 이어 적성초교에서 쓰던 책장을 옮겨와 책들을 정리한 뒤 천막으로 덮었다. 바닥공사는 따로 하지 않고 흙바닥을 그대로 썼다. 책이 워낙 많다 보니 책을 옮기는 데 무려 8개월이나 걸렸다. 공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나 눈이 오면 책이 젖을까 걱정이 되고, 여름에는 서점 안이 찜통으로 변했다. 결국 중고 패널을 구해 다시 지붕을 덮었고, 폐교에서 나오는 마룻바닥 등을 가져다 사무실을 만드는 등 서점 여기저기를 꾸며 지금의 새한서점이 완성됐다. 2012년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촬영으로 유명세를 탔다가 잊혀 갔던 새한서점은 ‘내부자들’의 큰 성공으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주말에는 전국 각지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외지인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 적성면사무소에는 새한서점 가는 길을 물어보는 전화가 이어진다. 새한서점에서 만난 박종만(26·경기 부천)씨는 “영화 ‘내부자들’을 보고 기억에 오래 남아 새한서점을 오게 됐다”며 “산속에 이런 서점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속에서 수많은 책을 접하니 갑자기 책이 보고 싶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새한서점은 홈페이지나 전화 등으로 책을 주문하면 이씨가 정성스럽게 포장해 택배로 보낸다. 지금도 책은 계속 보충되고 있다. 문을 닫는 서점들이 처분하고 남은 책을 이씨에게 보내고 있다. 매출은 시원치 않다. 한 달에 100권 정도 판매한다. 하지만 이씨는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공기도 좋고 가끔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게 너무 좋다”며 “오래된 책들로 책 전시관을 만드는 게 마지막 소망”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단양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②꼭 한 번은 파리‘부티크’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②꼭 한 번은 파리‘부티크’

    꼭 한 번은 파리‘부티크’파리에서는 꼭 한 번 부티크 호텔에 묵고 싶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좀체 들지 않았던 호기심이 고전미의 도시, 파리에서는 몽실몽실 피어올랐기 때문이다.산 레지스 호텔 곳곳에 걸린 그림의 수준만 보아도 산 레지스 호텔의 격이 드러난다파리 패션신의 한 장면으로 종종 등장했던 산 레지스 호텔의 현관●부티크 호텔의 기준 호텔 산 레지스Hotel San Regis 샹젤리제 거리의 국립미술관이자 갤러리인 그랑팔레Grand Palais 인근 호텔인 산 레지스의 게스트 중에는 유명인이 많다. 그중 한 사람은 페라리의 ‘루카 디 몬테제물로’ 회장이다. 23년 동안 페라리를 이끌었던 그는 어떤 인연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마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뉴욕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브 몽탕을 만났는데 그가 슬쩍 ‘산 레지스’를 알려 줬어요.”몬테제물로나 이브 몽탕처럼 산 레지스를 각별히 여긴 셀러브리티는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광고 아닌 친분을 통해 산 레지스를 알게 되었고, 비밀의 장소처럼 산 레지스를 간직했다.지난 시절 산 레지스에는 영화감독 루이 말,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배우 진 켈리 등 여러 배우와 유명인이 드나들었다.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카멜 스노는 산 레지스를 한동안 자기 집처럼 사용했다. 한 번은 그녀가 어느 신진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뉴 룩New Look’이란 신조어로 소개했는데 그 디자이너가 바로 크리스찬 디오르다. 카멜 스노와 크리스찬 디오르로 인해 산 레지스는 고전적인 파리지엥 스타일의 정수를 간직한 파리 패션 신의 주요한 스폿으로 등장했다. 지난 시절, 유명인들이 숨어 지내기를 좋아했던 산 레지스에 요즘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오느냐는 질문에 산 레지스의 매니저 사브리나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요즘도 셀러브리티들이 많이 오지만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어요. 그들이 먼저 미디어 앞에서 말하기 전까지는요.”사브리나는 15년째 산 레지스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 오기 전 다른 호텔에서 일한 기간까지 합치면 27년째 호텔리어로 일하고 있는데 산 레지스의 분위기와 꼭 닮았다.“사브리나가 사진 속으로 들어가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호텔 브로슈어를 살펴보다 그녀에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머리를 단정히 모으고, 하얀색 투피스를 입은 그녀는 산 레지스처럼 기품 있고 우아했다.딜럭스룸의 붉은색 커튼을 마주하고 있으면 시간은 순식간에 19세기로 돌아간다파리의 고전미가 강렬한 산 레지스의 스위트룸럭셔리 부티크 호텔이지만 카페의 음료와 디저트 메뉴는 그다지 비싸지 않다. ‘Paris-Breast’가 맛있다산 레지스에서 머무는 동안 부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19세기 파리의 타운하우스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산 레지스는 호텔이라기보다 저택에 가깝다. 19세기의 타운하우스를 1923년 호텔로 개조했다. 방의 컬러는 밝은 노란색에서 진한 붉은색까지 제각기 다르다. 특히 딜럭스룸, 프레스티지와 스위트룸에선 아름다운 옷장, 글을 쓸 수 있는 책상, 화장대, 윙체어 같은 유니크한 걸작품을 볼 수 있다. 산 레지스는 클래식한 아름다움에 모던한 편의성을 더했다. 신중한 서비스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디테일에 집중해 ‘Home away from home’, 말 그대로 ‘내 집처럼 편안한 호텔’이다. 나로선 1857년에 지은 타운하우스가 159년이 지난 2016년 현재까지 럭셔리 부티크 호텔로 온존해 왔다는 사실이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1980년대 중반 산 레지스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이는 엘리 조르주Elie Georges라는 남자다. 1984년 산 레지스 호텔을 인수한 그는 호텔리어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사업가였다. 엘리 조르주는 처음 산 레지스 호텔을 방문한 후 이렇게 말했다.“신고전주의 파사드와 실내 공간, 그리고 그때까지 여전히 남아있던 고가구가 서로 완벽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매혹됐어요.”1985년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피에르 이브 로숑Pierre-Yves Rochon에게 호텔의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을 의뢰했다. 타운하우스의 성격을 살리면서 동시에 각각의 방을 유니크하게 꾸미기 위해 모든 소품을 결정한 사람이 바로 피에르였다.산 레지스는 지난 해 다시 한 번 리노베이션을 시작했다. 샤워 부스를 별도로 만들었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발을 쭉 뻗어도 발끝이 닿지 않을 만큼 욕조가 커졌다. 클래식이란 명목으로 설비의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늦은 밤, 차를 마시고 싶어 룸서비스에 뜨거운 물을 부탁했다. 잠시 후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새하얀 린넨에 묵직한 금색 포트와 꿀, 찻잔을 들고 나타난 이는 깨끗하게 차려 입은 노년의 신사였다. 차 한 잔을 마시는 게 매우 행복했던 밤이었다. 오후에 카페에서 쇼콜라쇼를 서빙해 준 웨이터, 조제는 33년째 산 레지스서 일한다고 했다. 어쩌면 조금 전 포트를 가져다준 그도 조제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19세기 파리의 타운하우스에서 파리지엥처럼 하룻밤을 보낸다. 꿈같은 시간이다.다음 날, 아침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내려가니 손님의 수는 채 열 명이 안 됐다. 산 레지스의 객실은 전부 42개뿐이다. 내게 산 레지스는 파리의 멋, 파리의 색, 파리다운 완벽한 호텔로 기억된다.“Merci, San Regis, Au revoir고마워요, 산 레지스, 또 만나요.”여담 한 가지. 산 레지스 레스토랑의 지붕은 유리다. 체크인 후 유리를 통해 떨어지는 햇살을 맞으며 카페에서 쇼콜라쇼를 마셨다. 진하지만 달지 않아 좋았다. 맙소사, 그 자리에서 쇼콜라쇼 세 잔을 내리 마셨다. 며칠 후 다시 산 레지스를 찾았다. 며칠 동안 내내 첫날 마신 쇼콜라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호텔 산 레지스★★★★★ 12 rue Jean Goujon 75008 Paris, France +33 1 44 95 16 16 www.hotel-sanregis.fr러시아 남자와 프랑스 여자의 러브 스토리를 간직한 나폴레옹 호텔나폴레옹 로비 한 편에서 호텔 오너였던 프랑스 여자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나폴레옹 호텔의 주니어 스위트 애비뉴룸. 창밖으로 개선문을 볼 수 있다●러시아 남자, 파리 여자의 사랑 호텔 나폴레옹Hotel Napoleon 1920년대 후반, 파리의 프랑스문학클럽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남자는 러시아 출신의 부유한 사업가였고, 여자는 아름다운 파리지엔느였다. 남자는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해 파리로 온 것 같다.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져 들었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특별한 결혼 선물을 준비했다. 이 선물을 통해 여자가 파리 상류층의 사교계에 들어가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를 원했다. 남자가 준비한 선물은 파리 8구에 있는 ‘호텔’이었다. 개선문에서 가깝지만 샹젤리제 대로변에서 한 블록 뒤에 자리 잡아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7층짜리 건물이었다. 호텔의 7층, 스위트룸에선 한쪽 창문으로 개선문이, 다른 한쪽 창문으로 에펠탑이 보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파리의 호텔 중에서도 개선문과 에펠탑이 동시에 보이는 방은 거의 없다. 남자와 여자는 이 방에서 파리의 유명인들을 만나고 파티를 즐겼다. 이 호텔의 이름은 나폴레옹Napoleon이다.체크인을 하고 잠시 로비와 레스토랑을 둘러보는데 소파를 장식한 루비색과 황금색 스트라이프 패턴이 강렬하다. 러시아 남자와 파리지엔느 여자의 뜨거운 사랑 같다. 로비 한 편에 한 여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호텔을 선물받은 바로 그 여자다.긴 세월이 흘렀다. 남자와 여자는 세상을 떠났고, 남자의 아들이 호텔 오너가 되었다. 이제 아들의 나이도 여든에 이르렀다. 2층의 내 방으로 가는 복도에서 스트라이프 패턴과 다시 만난다. 복도 양편을 장식한 붉은 컬러의 패브릭은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마법의 패턴이다. 아직 방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복도의 패브릭과 레스토랑의 소파만으로 나는 거듭 감탄한다.내 방은 주니어 스위트 애비뉴. 창밖으로 개선문이 슬쩍 보인다. 방에서 한 가지 인상적인 건 세이프티 박스 전원 플러그다. 전원 플러그를 가진 세이프티 박스는 처음 봤다. 나폴레옹은 클래식한 부티크 호텔이지만 아이팟 스테이션 같은 모던한 서비스와 균형을 맞춘다.호텔의 어떤 방은 향기로 기억될 때 가장 강렬하다. 나폴레옹 호텔은 록시땅의 향기로 상기된다.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단순한 샴푸와 바디 젤이 아닌 호텔의 향기다.나폴레옹 호텔은 지난 해 6월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무리했다. 건물이 낡았다고 해서 재건축 운운하며 바로 헐어 버리고 새로 짓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설업자의 개발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국과 달리 100년, 200년 넘은 건물이 즐비한 파리에서 지은 지 30년 정도 되었으면 ‘새’ 건물이다.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친 지난 해 9월21일, 나폴레옹 호텔은 입구에 붉은 카페트를 깔고 손님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였다. 파티의 제목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손님들은 활기와 자신감에 넘쳤던 1920년대 사람들 모습으로 분장하고 파티를 즐겼다. 그날, 시간은 2015년에서 1920년으로 순식간에 돌아갔다.그런데, 왜 하필 이름을 나폴레옹이라 했을까? 나폴레옹은 남자의 조국 러시아를 침략한 장본인 아닌가? 호텔 매니저 오드리는, “러시아 남자가 ‘남자’로서 프랑스 남자, 나폴레옹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1806년 자신의 군대를 기리기 위해 개선문을 세운 나폴레옹은 인근에서 역사적인 전투를 치렀는데 호텔 이름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증표 같다.파리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무심코 서랍을 여니 록시땅 핸드크림이 있다. 선물로 받았지만 좀체 쓰지 않았었다. 록시땅을 손에 발라 본다. 은은하게 피어나는 향기에 문득 나폴레옹 호텔의 욕조에 몸을 담고 있던 순간이 떠오른다.호텔 나폴레옹★★★★★ 40 avenue de Friedland 75008 Paris, France +33 1 56 68 43 21 www.hotelnapoleon.com리도쇼를 보며 식사를 즐기는 ‘디너 앤 쇼’. 좀 비싸긴 해도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90분 동안 펼쳐지는 리도쇼는 관능적이고 몽환적이며, 우아하고 낭만적이다●리도쇼가 파리다 파리의 카바레에는 물랑루즈만 있는 게 아니다. 리도Lido de Paris도 있다. 물랑루즈의 쇼를 보지 못했으니 비교할 수 없지만 리도쇼는 심장이 쿵쾅거릴 만큼 대단했다고 말하고 싶다.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리도쇼를 오해했다. ‘여자가 가슴을…’ 운운하는 누군가의 말을 얼핏 듣고, 늘씬한 여자가 가슴을 드러내거나 엉덩이를 세련되게 내밀거나 흔드는 공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공연이 펼쳐진 한 시간 반 동안 나는 얼이 빠진 듯 기분 좋은 전율에 빠져 들었다. 내 상상이 일천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이제껏 ‘내 인생의 쇼’라는 걸 꼽는다면 2006년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델리리움DELIRIUM>이었다. 공연 타이틀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황홀경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한 탓인지 나는 내심 공연보다는 영화의 표현력이 우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음악과 춤, 비주얼 이미지가 하나로 합쳐져 절정으로 치달아 가는 델리리움을 보면서 무대가 영화를 압도할 수 있다는 걸 난생 처음 알았다.리도쇼는 태양의 서커스와 비교했을 때 규모는 작지만 무대 사이즈와 상관없이 ‘내 인생의 쇼’ 리스트에 오를 만큼 굉장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능한 모든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아주 짧은 시간에 경험한 것 같다.리도쇼는 영화적인 장면에서 불현듯 연극적인 장면으로, 뮤지컬 같은 장면에서 느닷없이 서커스 같은 장면으로 끊임없이 무대를 바꿔 간다. 발레리나의 우아한 몸짓 다음에 태연자약하게 등장하는 거위나 스케이트 링크는 또 어떤가? 춤, 노래,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온갖 이미지들의 실루엣으로 관객들은 소인국과 거인국을 오간다. 공연을 본다는 게 마치 그림책을 읽거나, 몽환 속을 헤매는 것 같다. 때로는 현실과 4차원 세계를 넘나들고, 때로는 관능적이었다가 순결하고, 때로는 잔인하며, 때로는 웅장하고, 때로는 낭만적이다. 나는 리도쇼에서 하나의 무대가 아닌 열 개, 아니 백 개의 무대를 보았다.무대가 춤추듯 변하는 덕분이다. 내가 이제껏 보았던 무대와 아예 차원이 다르다. 질투가 날 만큼 이들의 상상력이 부러웠고, 기분 좋은 전율감이 온몸을 감쌌다. 저마다 파리를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리도쇼가 파리다. 나는 리도쇼에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파리지엥 또는 프랑스와 유럽의 상상력을 보았다. 아, 잠깐 잊고 있었다. 여기는 파리, 파리라는 걸.리도쇼를 만든 이는 프랑코 드래곤Franco Dragone이다. 뜻밖에도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인데 세계적인 공연 연출자다. 그는 ‘태양의 서커스’ 초기 공연의 일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가 뉴욕이나 도쿄, 뮌헨이 아닌 파리이기 때문에 그가 리도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매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쇼를 보는 ‘디너 앤 쇼Dinner and Show’는 이른 저녁인 7시, 라이브 뮤직과 댄스 공연으로 시작한다. 가격은 1인 165유로부터 자그마치 300유로까지. 매우 비싸다. 하지만 샹젤리제의 전설적인 카바레 리도에서 ‘저염 버터에 살짝 구운 가리비와 시트러스 버터를 발라 조리한 바삭바삭한 엔다이브’ 하는 식의 메뉴 이름도 이해하기 어려운 프렌치 파인 다이닝을 풀코스로 이 세상 최고의 쇼와 함께 즐긴다 생각하면 한 번은 기꺼이 치를 가치가 있다. 식사를 하지 않고 음료와 함께 쇼를 보는 옵션도 있다.카바레 리도에 들어서면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당신을 맞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여기는 파리입니다. 자, 리도쇼를 볼 준비가 되었나요? 더없이 짜릿하고 행복한 순간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리도Lido de Paris 116 bis, avenue des Champs-Élysées 75008 Paris, France 9:00~20:30 +33 1 40 76 56 10 www.lido.fr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france.fr
  • 레드벨벳 다섯 소녀의 ‘심쿵’ 화보

    레드벨벳 다섯 소녀의 ‘심쿵’ 화보

    레드벨벳 다섯 멤버 본연의 소녀다운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화보가 <더블유 코리아> 3월호를 통해 공개됐다. 이번 화보에서 레드벨벳의 다섯 멤버 아이린, 슬기, 웬디, 조이, 예리는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그리고 자유로운 믹스매치 룩을 선택했다. 덕분에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Dumb Dumb’ 등의 무대에서 보여준 발랄한 경쾌함과는 또 다른, 서정적이고도 낭만적인 화보가 완성되었다. 특히 이번 촬영은 철거를 앞둔 수영장에서 진행되어 한겨울의 추위가 고스란히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웃고, 떠들고, ‘셀카’를 찍으며 촬영장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든 다섯 소녀 덕분에 함께 고생했던 스태프들마저도 ‘엄마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후문. 더불어 다섯 멤버들은 <더블유 코리아> 1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생일 케이크를 들고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는데, 그녀들의 반가운 모습을 담은 축하 영상은 <더블유 코리아>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WKOREA)에서 만나볼 수 있다. 레드벨벳 다섯 소녀의 ‘심쿵’한 한 때를 담은 이번 화보는 2월 20일 발간된 <더블유 코리아> 창간 11주년 기념호와 공식 홈페이지 더블유닷컴(WKOREA.COM)에서 동시에 확인할 수 있으며, 2월 29일에는 <더블유 코리아> 모바일 매거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스틸 사진으론 만나볼 수 없었던 촬영 현장 속 멤버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영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3월 2일에는 <더블유 코리아>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감각적으로 편집된 영상 화보도 공개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꽃구름의 남쪽 윈난雲南

    꽃구름의 남쪽 윈난雲南

    진작 왔어야 할 곳인데 많이 늦었구나. 리장麗江에서 샹그릴라香格裏拉로 가는 길 위에서 느낀 소회다. 겨우 3박 4일이란 짧은 시간이 아쉬웠다. 윈난雲南, 즉 구름 남쪽이란 이름은 ‘꽃구름의 남쪽彩云之南’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우리에게는 차마고도茶馬高道로 유명하지만 쿤밍昆明-다리大理-리장-샹그릴라로 이어지는 윈난 여행코스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낭만적인 여행지로 꼽힌다. 구름의 남쪽에서 잠시 머물다 여정은 쿤밍에서 시작됐다. 쿤밍은 얼핏 중국의 여느 대도시처럼 보이지만 사실 해발고도 1,890m, 고원지대에 불쑥 솟아난 도시다. 쿤밍은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다. 사계절이 봄과 같은 사계여춘四季如春의 도시다. 중국의 피서 관광지 중 일등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쿤밍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작년 한 해 쿤밍을 찾은 관광객은 무려 6,000만명에 달한다. 한편, 쿤밍에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베트남, 라오스, 태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중국인들에게 쿤밍은 동남아 여행의 허브 거점이다. 쿤밍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리해발 2,000m로 갔고, 다리에서 다시 리장해발 2,400m으로 달려 해발 5,596m의 ‘위룽설산玉龍雪山’과 차마고도의 주요 거점인 샤시沙溪 마을을 만났다. 위룽설산은 빙하가 서린 백옥 같은 산이다. 새파란 하늘 때문일까. 위룽설산의 만년설이 푸르게 빛났다. 리장을 떠나 다시 길을 나서 장족티베트족 자치주인 샹그릴라해발 3,500m로 갔다. 쿤밍에서 샹그릴라까지 총 650여 킬로미터. 여정은 거기까지였고 돌아서야 했지만 다시 오리라는 다짐은 계속 나아가는 중이다. ▶윈난성 윈난은 여행자의 천국이자 대자연의 보고다. 윈난의 고산지대는 전체 면적의 94%를 차지한다. 고원호수가 40여 개나 있고 호수면적은 1,100km2에 달한다. 아열대, 온대, 고원기후까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후를 보여 준다. 이를 반증하듯 3만여 종이 서식하는 ‘식물의 왕국’이자 ‘꽃의 왕국’이 바로 윈난이다. 윈난에 사는 소수민족 인구는 1,53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3%에 달한다. 중국의 25개 소수민족 중 15개 소수민족이 8개 자치주를 이루고 윈난성에서 살아간다. ‘땐’은 윈난성의 약칭이다. ●다리大理 바람, 꽃, 눈, 달 본격적인 여정은 윈난 서북부, 다리에서 시작된다. 다리는 리장과 더불어 윈난을 대표하는 고대도시다. 칭짱고원靑藏高原의 동남부 언저리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다리의 풍광을 ‘풍화설월風花雪月’이라 표현했다. 바람과 꽃, 눈과 달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이 다리라는 말이다. 다리는 해발 4,122m의 창산苍山을 뒤로하고, 앞으론 해발 1,972m의 고원호수인 얼하이洱海, 이해를 굽어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도시다. 창산과 얼하이라는 두 개의 보석이 다리를 만든 셈이다. 다리의 소수민족은 바이족白族, 백족이다. 이름대로 흰옷을 즐겨 입고, 흰벽으로 지은 집에서 산다. 다리는 바이족 자치주의 수도이고, 중국 정부가 지정한 24개 역사문화 도시 중 하나다. 다리의 주인이었던 바이족은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13세기 몽고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남조와 다리국으로 존재하며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한족의 당나라, 송나라의 맹렬한 기세에 굴하지 않고 독립국의 지위를 당당하게 지켜냈었다. 이름大理에서 짐작할 수 있듯 좋은 돌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대리석이 유래한 곳도 바로 다리다. 다리에서는 제일 먼저 숭성사崇聖寺 삼탑을 찾았다. 중원의 권력과 맞섰던 다리국의 위엄을 상징하는 유산이다. 삼탑 중 가운데 탑의 높이는 60m, 16층 건물의 높이다. 시간이 없어 오르지 못했지만 중앙탑 맨 위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지진 때문에 기울어졌다는 양편의 탑의 높이는 40m다. 삼탑 옆 취영지聚影池에서 연못에 비친 삼탑을 보는 것도 즐겁다. 당대에 지어진 삼탑은 다리고성에서 서북쪽으로 1km 떨어진 창산 잉러봉 기슭에 위치한다. 중국의 4대 명탑 중 하나이자 중국 남방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탑이라고 불린다. 삼탑 뒤 금빛 찬란한 숭성사는 중국에서 불교 사원 중 가장 큰 건축물로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나 1980년대를 전후해 새로 지은 건물이다. 숭성사에 내려와 케이블카를 타고 창산에 올랐다. 3,500m가 넘는 봉우리를 열아홉 개나 갖고 있으니 산의 위용을 짐작할 만하다. 최고봉은 해발 4,122m의 마룽馬龍봉인데 산꼭대기에는 항상 눈이 쌓여 있다. 아쉽게도 케이블카는 2,900m 지점에서 멈췄다. 바람이 너무 센 탓이다. 케이블이 흔들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 2,900m 지점에서 정상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는 이미 운행을 멈춘 채 케이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열아홉 개의 산봉우리 아래 창산 계곡물은 다리고성을 거쳐 얼하이 호수로 흘러간다. 창산 아래 다리고성은 1,000년 역사를 가진 고성이라지만 새로 지은 게 많다. 몽골에 함락된 안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탓이다. 고성의 높이는 8m 정도, 성 안의 집들은 작고 예쁘고, 지붕을 잇대고 있다. 다리의 역사에 대한 다리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다리고성의 성문 현판에 쓰여 있듯 다리는 예로부터 ‘문헌명방文獻名邦’으로 불렸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헌명방을 느끼기엔 관광객이 너무 많다. 한 블록만 거리를 벗어나면 또 다른 다리를 만나겠지만 시간이 없다. 결국 다리에 갔지만 다리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룹 투어로 다리를 보자니 아쉬움이 진하다. 상하이에서 게임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배낭여행을 하다 다리에 정착해 객잔(客棧, 중국의 여관)을 운영한다는 가이드 이설영씨 말대로 다리의 가장 상업적인 거리를 한두 시간 둘러보았을 뿐이다. 그곳에는 오랜 시간 그려 온 다리는 없었다. 다시 다리에 가야 할 이유다. 다음에 다리에 온다면 풍화설월의 다리를 떠올리며 얼하이 호수에서 보름달을 보고 싶다. ●샤시沙溪 차마고도 카라반이 쉬어 가던 곳 다리를 떠나 리장으로 가는 길,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좁은 산길로 접어든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윈난 산속의 마을, 샤시에 도착했다. 샤시는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을 쉬엄쉬엄 둘러보아도 한 시간이면 족할 듯싶다. 내게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윈난의 보석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 않고 샤시를 꼽겠다. 샤시는 고대 무역로인 차마고도茶馬高道를 오가던 상인들 행렬인 마방馬幇이 쉬어 가던 작은 마을이다. 높은 산을 쉴 새 없이 넘어가기에 차마고도를 ‘하늘에 난 길’이라 부른다면 마방은 ‘하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마방들은 푸얼차(普洱茶, 보이차)를 싣고 달그락달그락, 떨거덩떨거덩 말방울 소리를 울리며 다리와 리장을 지나 진샤강金沙江을 건너 라싸로 갔다.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싸에서 한숨을 돌린 마방들은 라싸를 떠나 시가체를 지나 시킴과 네팔, 인도로 향했다. 윈난에서 생산된 차와 티베트 초원에서 자란 말이 차마고도를 통해 교환되었다. 하지만 그 길을 오가기란 쉽지 않았다. 과거의 차마고도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길, 어쩌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차마고도의 카라반隊商들은 산을 넘고 넘어 중국과 인도, 네팔, 서남아시아를 오갔다. 그 험한 길을 어찌 조랑말 하나에 의지해 넘었을까? 이제와 생각해 봐도 경이롭기 그지없다. 과거에 샤시는 차마고도의 요충지로 때로 큰 장이 섰지만 지금은 산간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샤시 마을의 시간은 왠지 차마고도의 조랑말이 걷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간혹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의 꼬질꼬질한 모습마저 정겹다. 다리나 리장과 달리 다행히 이곳엔 관광객이 적다. 진입도로가 좁은 데다가 그마저 구불구불한 산길이기 때문이다. 중국 대륙 전역에 걸친 대대적인 개발 열풍에서 빗겨난 중국 서남부의 모래알 같은 샤시 마을은 개발이 더디기에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이곳을 잠시 스쳐 지나는 여행자의 감상일 뿐이지만 도로가 확장되지 않기를 빌 뿐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마방 대신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이 샤시를 찾고 차마고도 여관, 민트 카페 등 여행자를 위한 객잔, 게스트하우스, 호스텔, 카페가 문을 열었다. 카페에서는 피자도 팔고 스파게티도 판다. 깊은 산속 여행자의 천국이다. 샤시 마을은 2002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950년대 중국에서 티베트로 가는 고속도로가 뚫렸다. 차마고도와 마방의 존재의미가 사라졌다. 그런데 차마고도와 고속도로 구간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방은 진작부터 중국에서 티베트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리장에서 샤시를 가기 위해선 일단 젠촨剑川까지 가야 한다. 버스로 두 시간이 걸린다. 요금은 20위안. 새로 난 고속도로로 달리면 요금은 25위안이고, 한 시간이 걸린다. 젠촨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다시 45분 정도 달리면 샤시에 도착한다. 쿤밍에서는 버스로 대략 10시간 거리다. 샤시에도 게스트하우스는 있다. 오픈 예정인 어느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등풍, ‘바람을 기다리며’다. 샤시의 마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리장麗江 산과 눈의 도시 깊은 산속 마을 샤시를 떠나 리장으로 왔다. 종종 ‘산과 눈의 도시’라 불리는 리장은 샹그릴라香格裏拉의 입구이자 히말라야 산맥의 시작점인 위룽설산에 둘러싸였다. 리장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눈을 돌릴 때마다 종종 위룽설산을 보았다. 리장 사람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산이다. 언제나 만년설의 풍광과 함께하는 도시, 이렇게 높은 산이 늘 옆에 있다면 살아가는 데 좀 더 겸손해질 것 같다. 혹자는 리장을 보고 ‘동양의 베니스’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적절하지 않다. 리장은 리장 그 자체일 뿐 유럽의 한 도시와 비할 바가 아니다. 외형만 봐도 리장과 베니스는 전혀 닮지 않았다. 다리가 바이족의 나라였다면 리장은 나시족納西族의 홈타운이다. 나시족의 홈타운이라곤 했지만 그렇다고 리장의 한족 인구가 적은 건 아니다. 리장에서 한족과 소수민족의 비율은 6:4 정도이고, 나시족은 전체의 23% 정도에 불과하다. 과거에 나시족 거주지이자 고원의 옛마을이었던 리장은 쓰촨四川성의 야안雅安과 더불어 차마고도의 근거지이자 무역 중심지였다. 리장에서 생산된 가죽 제품은 차와 말과 함께 티베트 라싸, 인도 등지로 팔려 나갔다. 리장고성은 남송 말기에 지어져 8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고성 안에선 100여 채의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데 다리고성과 다르게 성벽은 없다. 리장고성은 좁은 골목과 수로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명청 시대의 거리 모습도 잘 간직하고 있다. 밀려드는 관광객만 아니라면 리장고성의 운치는 2015년이 아닌 몇 백 년 전의 거리 같다. 세계문화유산인 리장고성보다 더 강하게 나를 리장으로 이끈 건 한 친구의 사연이다. 그녀는 10년 전 이곳에 여행을 왔다가 호주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당시 남자는 적지 않은 나이였고, 내 짐작에 그는 아마 결혼 같은 건 별반 생각해 보지 않은 여행자였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다. 결국 두 사람은 운명처럼 리장에서 맺어졌고, 딸을 낳고,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이런 사연 때문에 내게 리장은 아주 로맨틱한 여행지로 여겨졌지만 실제 마주한 리장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리장에는 수로와 함께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이 많다. 사실 관광객만 바글대지 않는다면 리장은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를 선보인다. 가히 연인들의 여행지다. 한데 화장이 너무 진하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도 예쁜 얼굴에 과하게 화장을 한 것 같다. 좋건 싫건 밀려드는 관광객의 영향이다. 지난해 인구 100만의 도시, 리장에 2,0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왔다. 매달 리장 전체 인구보다 거의 두 배 많은 관광객이 리장을 휘젓고 다닌 셈이다. 윈난을 여행하며 관광객이 북적이는 다리고성이나 리장고성보다 고산지대의 설산을 바라보며 달렸던 길 위의 시간이 더 좋았던 이유다. 한편, 1996년 리장에 규모 7.0의 지진이 있었다.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304명이 숨지고, 1만6,000명이 다쳤다. 중국 역사상 최악의 지진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시족의 거주지인 구시가지는 무사했다. 그때부터 나시족의 목조주택은 사람들의 관심을 새롭게 받기 시작했다. 1996년 지진이 아니더라도 윈난에는 지진이 잦다. 작년에도 지진이 발생했다. 윈난은 쓰촨성과 함께 칭짱고원 지진대에 자리 잡고 있고, 활발하게 활동 중인 유라시아판 대륙과 인도판 대륙이 충돌하는 지반 사이에 위치한 탓이다. 윈난을 여행하고자 할 때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리장고성에서 나와 잠시 황룡담 공원에 들렀다. 황룡담에서 단풍진 가을을 맞는다. 연못 넘어 위룽설산이 아름답다. ●위룽설산玉龍雪山 당신은 옥색의 용을 볼 수 있을까 리장고성의 북쪽, 위룽설산은 리장시 위룽현에 위치한다. 해발고도는 5,596m로 한라산보다 대략 세 배 높다. 거대한 백옥 같은 용의 형상옥룡을 하고 있다고 해 옥룡산이라 부른다. 위룽설산은 나시족이 믿는 씨족신 ‘싼둬’의 화신이라고 전해진다. 이곳 사람들은 위룽설산에 나시족의 ‘사랑의 신’이 산다고 믿는다. 버스와 케이블카를 타고 위룽설산의 4,500m 지점까지 올랐다. 여기까지는 쉽다. 하지만 아직 목적지에 다다른 게 아니다. 여기서부터 계단을 따라 두 발로 걸어 180m 더 높은 4,680m 지점까지 올라가야 한다. 지대만 낮다면 이 정도쯤 오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사람들은 손에 제각각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헉헉거리며 산을 오르거나, 몇 걸음을 떼지 않고 종종 걸음을 멈춘다. 나도 채 몇 걸음을 오르지도 않았는데 바로 숨이 벅차다. 가이드가 준 산소통이 배낭에 있었지만 아직은 쓰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온전히 내 힘으로 올라 보고 싶다. 마음은 빨리 오르고 싶지만 몸은 느리다. 숨을 헉헉거리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하얀 빙하가 보인다. 위룽설산은 빙하가 서린 백옥 같은 산이다. 새파란 하늘 때문에 하얀 눈이 푸르게 빛난다. 30~40분쯤 올랐을까. 마침내 4,680m 지점에 올랐다. 어제 창산에서 강풍 때문에 2,900m 지점에서 멈춰 선 아쉬움을 여기 와서 말끔히 씻어 낸다. 위룽설산의 정상을 올려다본다. 이름 그대로 옥색의 용이 춤을 춘다. 위룽설산을 내려와 샹그릴라로 출발하기 전 장강長江의 상류지역인 호도협虎跳峽에 들렀다. 이름 그대로 호랑이가 건너뛴 협곡이란 말인데 위룽설산과 하바설산哈巴雪山 사이의 협곡이다. 중국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는 총길이 6,380km의 장강은 그 길이가 워낙 큰 탓에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윈난의 400km 구간에선 황금모래강이란 의미의 진샤강金沙江이라 불린다. 이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티베트의 만년설에 이를 것이다. 멀리서 호도협 물줄기를 보았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진샤강가로 점점 다가가자 물줄기가 포효하듯 거세다. 거대한 호랑이가 쩌렁쩌렁 산을 울리며 포효하는 것 같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호도협이란 이름은 허명무실하지 않다. 지구의 지각운동이 만든 호도협의 길이는 30km에 달한다. ●인상리장印象麗江 설산 아래서 꾼 한낮의 꿈 “우리는 농민입니다. 우리는 빛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작품에 마음을 바쳤습니다.” 위룽설산을 뒤로하고 출연자들이 관객을 향해 외쳤다. 드디어 <인상리장印象麗江> 공연이 시작되었다. <인상리장>은 리장의 소수민족이 만든 공연으로 공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문 배우가 아니다. 열 개의 소수민족, 500여 명의 농부들이 공연을 펼친다. 출연자 수가 워낙 많은 탓에 때로는 관객보다 출연자가 더 많은 것 같다. <인상리장>은 하늘과 땅, 아직 누구도 오르지 못한 해발 5,100m, 위룽설산의 영기를 느껴 보는 공연이자 설산의 영웅들 그리고 농부들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헌사다. 원형의 거대한 노천극장은 위룽설산의 12개 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 아래 만들어졌다. 해발 3,100m의 <인상리장> 공연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공연은 360도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출연자들은 때때로 말을 타고 공연장의 이곳저곳을 달린다. 윈난의 말은 조랑말이라 크진 않다.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가파른 산길은 잘 다닌다. 덩치는 작아도 좁고 험한 오솔길을 쉽게 오른다. 차마고도의 마방은 조랑말 없이 일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이곳 사람들이 말을 숭배하는 이유다. 둥근 객석을 휘몰아치는 말발굽 소리에 붉은 색의 대형무대는 더욱 뜨거워진다. <인상리장>은 총 6개의 무대로 나뉜다. 간단히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장은 ‘고도마방’. 차마고도는 하늘 위를 걸어 다니는 길이다. 100여 명의 마방이 길을 나서는 모습과 홀로 남은 나시족 여인들 모습을 통해 고생을 견디고 원망하지 않는 아내와 모성의 감정을 표현한다. 2장은 ‘술잔을 들고 설산을 향한다’. 윈난의 소수민족 사람들은, 친구가 오면 술을 마시고, 친구가 가면 또 술을 마신다고 할 만큼 친구를 아끼고, 가무를 즐긴다. 3장은 ‘천상인간’. 여기는 연인들의 극락세계인 위룽설산이다. 순정의 산, 위룽설산은 윈난의 연인들이 숭배하는 산이며 위룽설산에서 청춘은 영원히 지속되고 세상의 고통은 사라진다. 4장은 ‘북을 치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북을 치듯 두드리는 건 리장 사람들의 오락이다. 사람들은 둥글게 서서 손을 잡고 즐겁게 춤을 춘다. 나시족 사람들은 ‘아리리’, ‘다로리’라는 춤을 추기 좋아하고, 청춘남녀는 춤과 노래로 감정을 교류한다. 5장은 ‘북을 치며 춤추며 하늘에 제사를’. 하늘에 대한 나시인들의 경배를 보여 준다. 나시족은 하늘의 아들, 자연의 형제라고 선언한다. 6장은 ‘기도의식’. <인상리장>의 대미는 출연자와 관람객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위룽설산을 향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숙연해진다. “위대한 위룽설산 앞에 선 우리들은 하늘에서 보내 주는 염원을 경건하게 받아들여 우리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연자들의 의상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윈난 여유국의 슬로건인 ‘컬러풀 윈난’은 공연한 말이 아니다. <인상리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장예모 감독, 왕차오거, 판웨 세 사람이 만들었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주말 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EBS1 일요일 오후 2시 15분) 1928년 베를린의 한 극장.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는 무대 위의 중국인 마술사 웨이링수는 사실 중국인 분장을 한 영국인 스탠리다. 무대에서 환상을 선사하는 낭만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만 스탠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동료 마술사이자 어릴 적 친구가 찾아와 자신이 알아내지 못한 한 심령술사의 속임수를 직접 만나 밝혀 달라고 부탁한다. 스탠리는 이를 위해 남프랑스의 카트리지 가문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미모의 심령술사 소피를 만난다. 스탠리는 그녀의 사기극을 밝히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을 비롯한 이모의 개인사까지 읊어 내는 소피의 능력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혼란에 빠진 스탠리는 설상가상 그녀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유덕화의 블라인드 디텍티브(OBS 토요일 밤 10시 5분) 우연한 사고로 시력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 강력반 형사로서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시력을 잃은 총(유덕화)은 시력을 잃고 경찰을 은퇴한 후 현상금이 걸려 있는 미해결 사건들을 해결하는 사립 탐정으로 생활하고 있다. 한편 강력반 여형사 통(정수문)은 그의 능력에 반해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기억 속 친구 찾기를 부탁하게 되고 둘은 파트너가 되어 과거로부터 이어진 미해결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데….
  • [평창이 뛴다, 심장이 뛴다] 세계적인 멋, 한국적인 맛… 관광한류 새 길 연다

    [평창이 뛴다, 심장이 뛴다] 세계적인 멋, 한국적인 맛… 관광한류 새 길 연다

    환골탈태, 강원도 평창·강릉·정선 등 2018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들이 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에 대비해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통문화를 새롭게 다듬는 등 분주하다. 올림픽이라는 중요한 이벤트를 계기로 산골마을을 세계 속의 도시로 각인시키려는 의도다. 서울과 인천공항에서 1시간대의 복선 전철이 놓인다. 동해와 백두대간 등 청정 자연자원을 활용하면 올림픽 이후 세계 속의 휴양과 관광· 레저도시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릉시 통일신라 천년의 문화 품고 백두대간 청정의 자연 즐겨 통일신라 때 ‘명주군’에서 시작된 강릉은 천년의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청정 자연자원, 풍성한 먹거리가 어우러진 고장이다. 동쪽으로는 푸른 동해를 끼고 서쪽으로는 장엄한 백두대간을 병풍처럼 둘러 관동팔경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를 비롯해 김시습, 허균, 허난설헌 등 뛰어난 문인 등 인재 배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흔아홉 구비의 전설이 깃든 대관령과 대한민국 명승 1호인 소금강,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오죽헌, 관동팔경의 으뜸인 경포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을 가진 정동진역,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인 강릉단오제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경포호와 경포대 경포대 누각에 앉으면 낮에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물새들의 오가는 모습이 호수에 비쳐 신선들의 세계를 맛보게 하고 밤에는 달빛이 하늘과 바다, 호수, 술잔, 임의 눈동자를 비추며 시심(詩心)을 자극한다. 오죽헌과 선교장 율곡 이이 선생이 살았던 오죽헌(보물 제165호)은 바깥채, 안채, 어제각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조선 초기 한옥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주변에는 강릉예술창작인촌이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전통 기와집 집성촌이 만들어진다. 오죽헌과 지척에는 효녕대군 11세손이 지은 18세기 만석꾼의 한옥인 선교장이 잘 보존돼 있다. 강릉대도호부관아와 강릉향교 고려 때 창건한 강릉대도호부관아(임영관)는 중앙 관료들이 내려오면 머물던 객사(客舍)가 유명하다.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로는 가장 크고 배흘림 기둥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국보(51호)로 보존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강릉향교(보물 제214호)도 가 볼만하다. 정동진역과 모래시계 해돋이 명소,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유명하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모래시계 공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를 만날 수 있다. 해마다 새해 첫날 일출과 함께 열리는 모래시계 회전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감자가루를 밀가루와 섞어 새알 모양으로 빚어 끓여 낸 감자옹심이와 바닷물로 간수를 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초당두부, 쌀과 조청 등으로 만들어 내는 100년 전통의 사천과즐(유과) 등이 유명하다”며 발달된 강릉 음식문화를 자랑했다. #평창군 대관령 양떼목장의 낭만 한 컷…태고의 신비 석회암 동굴 탐험 ‘해피 700!’ 해발 700m인 백두대간 고원지대에 있는 평창군은 대한민국 최고의 청정 고장이다. 동으로는 급하게 동해를 지척에 두고 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두며 서울로 이어져 있다. 석회암 지대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동굴이 있고 대관령 초지에는 소와 양떼가 거니는 목장이 있다. 자연자원과 어울려 오대산을 중심으로 한 불교성지 순례와 평창의 맑고 푸른 전경을 하늘에서 굽어보며 즐길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계곡에서 즐기는 래프팅, 해마다 열리는 효석문화제와 해피 700 평창페스티벌, 평창 송어축제, 대관령 눈꽃잔치 등도 유명하다. 오대산 선재길 사계절 변화가 뚜렷해 인기 있는 명산으로 손꼽히는 오대산의 매력은 월정사 일주문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6.2㎞ 구간의 선재길이다. 완만한 경사길은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완주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 백룡동굴 5억년 전 태고의 신비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자연 그대로의 동굴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한 번에 20명까지 입장해 단체관람이 가능하며 하루 6~12차례 입장할 수 있다. 효석문화마을 장돌뱅이들의 고단하면서도 낭만적인 삶을 유려한 필체로 그려낸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배경이 된 마을이다. 해마다 9월이면 굵은 소금을 흩뿌린 듯 흰 메밀꽃이 지천으로 피어 효석문화제를 더욱 빛낸다. 대관령 목장 아름다운 대관령 구릉지대에 펼쳐진 목장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대관령 양떼목장, 에코 그린캠퍼스, 대관령 하늘목장 등 관광형 목장이 밀집되어 있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양들에게 먹이 주는 체험이 인기이다. 에코 그린캠퍼스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7.5배에 이르는 광활한 초원이다. 대관령 하늘목장은 트랙터 마차를 타고 덜컹거리는 흙길을 지나가며 주변을 관람하는 이색적인 추억을 선사한다. 주변의 풍력발전 풍차들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자아낸다. 심재국 평창군수는 “건강에 좋은 메밀 배추전를 비롯해 메밀 막국수, 메밀 전병, 메밀묵 등 다양한 메밀 음식들을 맛볼 수 있고 부드럽고 쫄깃해 씹히는 맛이 일품인 평창 송어회와 대관령에서 생산하는 황태가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운다”고 말했다. #정선군 행복 두 바퀴 레일바이크 따라 시골장터로 떠나는 추억여행 산골의 특색을 살려 ‘연중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활짝 열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하는 고장이다. 도시인들에게 향수를 불러 내는 정선 5일장과 산간계곡을 활용한 레일바이크, 폐광지역의 아픔을 극복한 강원랜드, 자연자원과 어우러진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 등 전국 최고의 명품 관광지에 이어 삼탄아트마인, 지역명을 붙여 운행하는 첫 관광열차인 정선아리랑열차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토속적인 자원들이 어우러져 지속적인 관광 인프라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선토속음식축제, 곤드레산나물축제, 함백산 야생화축제, 정선아리랑제, 민둥산억제꽃축제, 고드름축제 등 다양한 테마축제도 끊이지 않는다. 정선5일장 맛·멋·흥이 어우러진 옛 시골장터의 모습을 그래도 간직하고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산물 곤드레 등 산나물과 수수부꾸미, 메밀 전병, 콧등치기 등의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어 1960~70년대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정선아리랑열차 관광전용 열차로 개방형 창문과 넓은 전망 창이 설치돼 어느 좌석에서든 정선의 빼어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선평역과 나전역에서는 아름다운 간이역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아우라 지역에서는 정선의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정선 레일바이크 페달을 밟아 정선선 구절리역~ 아우라 지역까지 7.2㎞ 구간을 달리는 오픈 열차다. 송천 계곡의 맑은 물, 푸른 숲, 강을 따라 난 철길 양쪽의 기암절벽, 한가로운 농촌 풍경 등 정선의 사계절 천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삼탄아트마인 광부들이 석탄을 캐던 탄광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 석탄을 나르던 컨베이어 벨트, 갱도, 석탄차 등을 직접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다. 화암동굴 ‘금과 대자연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가지고 환상적으로 꾸며 놓은 국내 유일의 테마형 동굴이다. 2800㎡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회석 광장에는 동양 최대 규모인 황종유벽, 마리아상, 부처상, 장군석, 석화 등 크고 작은 종유석이 있다. 전정환 정선군수는 “정선 5일장, 레일바이크 등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관광지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세계 속의 고장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릉· 평창·정선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겨울 캠핑은 ORGB ‘텐트형 원적외선 캠핑용 난방기’와 함께

    겨울 캠핑은 ORGB ‘텐트형 원적외선 캠핑용 난방기’와 함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편리함과 여가생활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편안한 집과 첨단 IT기기들을 뒤로 한 채, 야외로 떠나는 ‘캠핑족’들이다. 국내 캠핑 인구는 최근 3년 동안 4배로 증가했으며 캠핑시장 규모는 지난 2008년 7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4500억원으로 543% 늘었다. 또한,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이번 해 캠핑 시장 매출 규모는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어난 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급속도로 캠핑인구가 늘어나면서 캠핑의 꽃이라고 불리는 겨울캠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캠핑 난방도 더불어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전기스토브, 전기장판, 일명석유(등유)난로 등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부피가 작고 편리하며 사용이 보다 용이한 제품들이 하나 둘씩 출시되고 있다. 종류는 많아졌지만 정작 필요한 취침 중에는 그 효력이 미비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장판과 등류난로다. 전기장판은 접을 수 있어 부피가 작아 이동이 용이하며 전기만 꽂으면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캠핑용품이다. 하지만 전기장판의 경우 인위적 조절로 인해 인체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없고 바닥은 뜨겁고 상위는 추운 현상이 일어나 자고 일어나도 몸이 가벼운 기분을 느낄 수가 없다. 등유난로의 경우 비교적 연료비가 적게 들고 열량이 많아서 실용가치가 많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시 매연이나 악취와 함께 일산화탄소 중독 등 화재의 위험이 크다. 이와 같은 난방문제 때문에 겨울캠핑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캠핑족에게 최근에 들려온 희소식이 있다. 기존 캠핑난방장비의 문제점을 모두 개선한 난방기기가 개발됐다는 소식이다 복사난방패널 전문기업 ORGB 조상연 대표는 “기존 캠핑난방제품의 단점을 개선한 ‘텐트형 원적외선 난방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기존 캠핑난방 기구는 지면이나 바닥에서 이뤄지는 주변난방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 텐트형 원적외선 난방기는 텐트의 천장에 위치하며 위에서 아래로 열을 내뿜기 때문에 텐트내부의 공기를 전체적으로 데워 보다 효율적인 난방이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타 제품과의 차별성으로 원적외선을 이용한 난방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물체의 표면이 아닌 전체적으로 훈훈하고 따뜻한 기운을 물체 깊숙이 침투하는 원리다. ORGB 조상연 대표는 “수 없이 많은 실험을 통한 결과 외부온도 영하1.2℃(체감온도영하6도)일 때 텐트 안에 난방기만을 설치해도 영상 15.8℃를 유지했으며 실내,외 온도 차가 15℃이상 유지된다. 이는 사람이 텐트 안에 없을 때의 경우이며 사람이 들어가서 활동을 한다면 더 많은 온도 차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적외선 난방기는 제품표면에 특수코팅 된 음이온, 은나노 성분으로 전기투입 없이도 365일 탈취 및 향균 작용을 하며 조명장치의 부착을 통한 난방과 조명의 일체화로 비용절감 및 공간활용도를 높였다. 또한 설치가 간편하고 이동의 편리성을 추구해 부피와 무게를 줄인 제품이다. ORGB 조상연 대표는 “겨울 캠핑을 하려면 난방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요즘 추세에 맞게 스마트하면서 낭만적인 캠핑을 원하는 캠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텐트에 설치할 수 있는 캠핑용 천정형 복사난방패널을 출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ORGB의 원적외선 캠핑난방기는 쇼핑몰(www.shopwinterzone.com)에서 구매할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해외여행 | [마리아나 원정대] Rota 로타-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섬

    해외여행 | [마리아나 원정대] Rota 로타-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섬

    intro 로타를 말하는 키워드들 -글 정연주 여행이 식상해질 때가 있다. 뻔하게 구경하고, 뻔하게 놀고, 뻔하게 먹고, 뻔하게 휴식하는, 관광객에게 최적화된 여행지들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여행의 신선함을 느끼기 어려웠다면, 여기 로타가 있다. 익숙한 휴양지인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로 불과 40여분 떨어져 있는 아주 작은 그 섬 말이다. 태평양의 섬이니 당연히 바다가 예쁘다. 이름 붙은 해변은 물론이고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은 해변들도 예쁘기는 마찬가지다. 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루었나 싶을 만큼 투명한 물빛은 분명 자연의 색인데도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면 로타는 해변 휴양지?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휴양지’라는 상업적인 말을 들이대자니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기존의 단어들로 로타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예상을 벗어난 뜻밖의 모습으로 여행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쁘게 내려놓게 만드는 묘한 힘을 지닌 곳. 셀카봉을 휘저으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존경쟁을 하듯 인증샷을 찍고 바쁘게 돌아서는 것이 진짜 여행인지를 되묻게 하는 곳.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고 싶을 만큼 너무나 특별한 곳. 그곳이 바로 ‘로타 아일랜드’다. 로타섬은 이 섬의 원래 주인인 차모로 사람들의 언어로는 루따RUTA, 영어로는 로타ROTA다. 북마리아나 제도의 섬들 중 하나로 현재는 미국의 자치령이다. 행정적으로는 사이판에 부속되며 괌과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다. 제주도의 20분의 1 정도의 면적에 인구 약 2,500명의 작고도 작은 섬이다. 섬 어디를 가든 차로 20~30분 내외면 도착한다. ●The Words for Rota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섬 글 정연주 #낯섦 그리고 여유로움 Strange & Slow ‘로타’라, 아무래도 낯선 이름이다. 사이판 옆의 작은 섬이라는 것 외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로 경비행기를 탔다. 푸른 바다 위를 날아서 40여 분 만에 도착한 로타 공항은 공항이라기보다 시외버스터미널 같은 느낌.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누군가 나무열매로 만든 레이를 걸어 준다. 피에스타Fiesta, 축제 기간이라 방문객들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란다. 목걸이를 걸어 주는 아주머니의 넉넉한 웃음이 하와이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뭔가 아마추어 같달까? 그런데 기분이 좋다. 로타에서는 잘 포장된 도로를 종일 달려도 차가 막히는 일이 없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찾아보기 힘들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셔틀 밴의 운전사는 이따금씩 마주치는 차들과 일일이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눈다. 모두가 아는 사람이고, 모두가 친구다. 볼거리가 있는 포인트에서조차 관광객끼리 마주치는 일이 드물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지만, 로타는 여행지가 아니다. 관광지는 더더욱 아니다. 로타는 거기에 있을 뿐이고 나도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 빈티지 Vintage 로타는 어디를 가더라도 깨끗하다. 낡고 오래됐고, 일부는 지난 여름 태풍의 영향으로 파손된 상태지만 더럽거나 어질러져 있지는 않다. 로타의 자연스러운 빈티지함이 워낙 강한 탓이다. 건물도 식당도, 마트와 성당과 묘지조차도 빈티지하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하루 종일 오래된 미국 컨트리송이 흘러나온다. 언뜻 보아도 꽤나 오래된 픽업트럭을 주차 시켜 놓고 낚시를 하고 있는 주민들의 차림새도 꼭 맞게 어울린다. 1970년대 미국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지만,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없는 미국 땅. 반짝반짝 빛나는 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로타의 빈티지한 매력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 색, 바다 Colorful Sea 제주도 면적의 2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북태평양의 섬. 섬 어디서든 보이는 바다의 색을 로타 블루ROTA BLUE라고 하겠다. 새파란 로타의 바다를 달리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 사람 people 로타 사람들은 경계심이 없다. 누구에게나 웃고 말을 걸면 좋아한다. 예상을 넘어서는 친절함과 순박함이다. 서로 다 안다는 인구 2,500명의 마을에 살다 보면 나도 그렇게 변할까? 축제장에서 우리가 브니엘로스마나코코넛떡을 튀긴 것를 맛있게 먹자 다음날 집에서 만든 코코넛떡을 가져온 운전사 아저씨나, 주문한 음식을 깜박하고 몇십분이나 늦게 내오면서도 멋쩍은 웃음 하나로 분위기를 풀어 버리는 식당 직원도 나를 자기 집에 놀러온 손님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로타에서는 여행자의 신분을 잊게 된다. # 야경, 불빛보다 별빛 Starlight 해가 지면 섬은 온전히 캄캄해진다. 바나 레스토랑 등은 오후 9시쯤이면 모두 문을 닫고 작은 가게들은 대부분 그보다 더 일찍 문을 닫는다. 마을을 벗어나면 가로등조차 드문, 말 그대로 캄캄한 밤이다. 그래서 로타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야경이 존재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빼곡하게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육안으로 또렷이 보이고, 투명해 보일 정도로 맑은 별빛은 끝없이 반짝거린다. 운이 좋은 나는 하룻밤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두 번이나 보았다. 어떤 도시의 화려한 야경보다도 감동적이다. ●Rota Island Tour 로타인들이 편애하는 테테토 비치Teteto Beach 로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 중 하나다. 완만한 해안선과 하얀 모래사장 너머로 투명하게 푸른 바다가 잔잔하게 출렁이고, 해변을 따라 늘어선 야자수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사람이 놀 수 있는 깊이에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으로 스노클링이 가능하다. 주말이면 현지인들이 종종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하고, 결혼식 피로연 장소로도 애용하는 곳. 파도의 드라마, 비나탕 비치Binatang Beach베타랑스 공원Beterangs Park과 테테토 비치 사이에 위치한다. 야자수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몇 걸음만 옮기면 따뜻한 바닷물이 발목을 적시고 모래사장과 수평을 유지하며 펼쳐진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해안에서 먼 쪽 바다에도 낮은 울타리처럼 암초들이 둘러져 있기에 멀리서 부풀려지며 다가오는 파도들이 포말로 부서져 버리고 육지로 가까워질수록 호수처럼 잔잔해지는 진기한 풍경이 연출된다. 암초 때문에 수영은 어렵지만 아쿠아 슈즈를 신었다면 발을 적셔가며 풍광을 즐겨 보기를 추천한다. 이 해변의 일몰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자연이 만들어 준 스위밍 홀Swimming Hole비나탕 비치와 마찬가지로 해안가에 암초가 펼쳐진 곳. 하지만 이곳은 수영이 가능하다. 암초에 둘러싸인 천연 수영장의 바닥은 부드러운 모래고, 수심도 적당하다. 다만 파도가 거친 날이나 밀물 시에는 암초에 다칠 위험이 있으니 수영을 자제해야 한다. 로타 리조트 & 컨트리 클럽에서 차로 5분 거리. 유일하고 독특한 송송 빌리지Song Song Village로타의 모든 행정기관과 주요 시설들이 이곳에 있다. 병원, 경찰서, 소방서, 은행, 학교, 성당, 묘지, 레스토랑, 마트까지. ‘송송’은 마을village를 뜻하는 차모로 언어다. 섬 안에 마을이 단 하나이니 딱히 이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들어와 ‘빌리지’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면서 ‘마을 마을’이라는 뜻의 조금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현재는 공항과 가까운 곳에 시나팔루 빌리지Sinapalu Village라는 주거용 마을이 하나 더 있다. 절경을 선사하는 송송 전망대Song Song Look Out완만한 경사로를 차로 약 10분 정도 오르면 로타섬 최고의 전망 포인트가 나온다. 꼭대기에 별이 얹힌 커다란 십자가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앞으로 다가가면 발아래 펼쳐지는 송송 빌리지뿐 아니라 로타섬의 서쪽과 남쪽 해안의 절경과 마주하게 된다. 풍부한 빛이 그대로 퍼져 오는 일몰 시간의 전망대 경치는 로타섬 전체를 통틀어 최고다. 난간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는 매년 사순절에 마을 사람들이 예수의 고난을 되새기며 송송 마을의 성당에서부터 지고 올라오는 것 종소리가 특별한 성 프란치스코 데 보르하 교회San Francisco de Borja Church로타 유일의 가톨릭교회로 송송 마을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건물 모서리와 창틀에 푸른색으로 테두리 장식을 한 하얀색 교회 건물. 제법 넓은 내부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소박한 조명이 있고, 커다란 선풍기 날개가 창으로 비치는 햇살을 반복적으로 자른다. 특별한 점은 종루에 종 대신 포탄이 매달려 있다는 것. 전쟁에 쓰였던 폭탄 껍데기다. 일요일 미사 시간에 맞추어 가면 아주 특별한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탕수수 제분소와 일본 기차Japanese Sugar Mill & Train송송 빌리지의 서쪽 끄트머리쯤에 있다. 빨간색 기차 기관실이 허물어져 가는 듯한 붉은 담벼락 앞에 세워져 있어 쉽게 눈에 띈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일본 자본으로 세워진 사탕수수 농장과 설탕 가공공장이 근처에 있었고 열차는 항구까지 이를 수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과 함께 공장은 모두 무너졌고, 현재는 기차 일부와 전쟁 중 포격을 당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제분소 일부가 남았다. 쉬어 가도 좋은 천 그루 야자수 산책로 송송 빌리지에서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코코넛 야자수가 일렬로 길게 심어진 산책로가 펼쳐진다. 야자나무를 인공조림한 곳인데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평양 전쟁에 승리한 미국 정부가 심었다는 설과, 패전한 일본이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으로 심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어느 쪽이든 야자수 길에 깊게 배인 고요함이 신선하고, 낮은 배경음처럼 찰팍거리는 파도소리와 간간히 지저귀는 새소리가 고요를 살며시 흔들어 깨우는 느낌이 오글거리게 좋을 뿐이다. 로타의 랜드마크 웨딩케이크 마운틴Wedding Cake Mountain로타섬 서남쪽 끝에 있는 산이다. 산의 꼭대기가 평평한 모양인 데다 전체적으로 결혼식에 사용하는 2단 케이크 같은 모양이라 이름 붙여졌다. 로타섬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곳이다. 무거운 전쟁의 흔적, 재패니스 캐논Japanese Cannon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사용한 대포가 남아 있다. 산 중턱에 굴을 파고 바다를 향해 대포를 놓았으며 미군이 포격을 하며 이 섬으로 진격해 올 때 이 굴 속에 피해 있었던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고 한다. 웨딩케이크 산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Tip 로타를 여행하는 방법 택시를 포함한 대중 교통수단이 없다. 차를 렌트하거나 호텔에서 운영하는 셔틀을 이용해야 한다. 공항에 렌터카 사무실이 있고, 로타 리조트 & 컨트리클럽에 묵는 그룹이라면 차량을 포함한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에디터 천소현·손고은 기자 취재 트래비 마리아나 원정대 취재협조 마리아나 관광청 www.mymarianas.c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별난영상] 고속도로 막고 프러포즈하는 ‘민폐 커플’

    [별난영상] 고속도로 막고 프러포즈하는 ‘민폐 커플’

    ‘낭만도 지나치면 민폐가 됩니다’ 최근 미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브레이크닷컴(break.com)은 지난 14일 유튜브에 게재된 미국 텍사스주 휴스톤의 TX I-45 고속도로서 차량 멈추고 프러포즈하는 커플의 영상을 소개했다. 영상에는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구애를 펼치는 남성과 이를 받아들이는 여성의 모습, 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포착돼 있다. 지나치게 낭만적인 철없는 커플의 행동으로 일대에는 교통체증이 발생했으며 화가 난 차량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커플을 비난했다. 한편 지난 14일 유튜브에 게재된 이 영상은 현재 95만 13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LazySunday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늘 푸른 보성의 밤…희망 반짝·낭만 반짝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늘 푸른 보성의 밤…희망 반짝·낭만 반짝

    국내 최대 녹차 생산지인 보성 녹차밭에서 겨울밤을 환하게 수놓는 빛축제가 열린다. ‘2016 보성차밭 빛축제’가 오는 11일 점등식을 시작으로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다향각 차밭 일원과 율포솔밭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린다. 빛축제는 새해 1월 24일까지 45일간 이어진다.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밝게 빛이 나는 축제다. 연인들, 가족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겨울 여행의 필수 코스로 평가받는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장관을 이룬다.  올해 13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녹차밭을 형형색색 물들인 불빛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축제다. 다향각 주변 13㏊ 차밭을 장식한 300만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전구가 울긋불긋한 빛을 내뿜는다. 축제 기간 11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남도의 대표 겨울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관광 비수기인 겨울철인데도 관광객들이 쓰고 간 돈이 429억여원에 이른다. 봄에 생산한 녹차 등을 판매하고, 매년 5월 개최하는 보성다향제 녹차대축제 사전 홍보 효과도 있는 등 지역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산 능선을 따라 층층이 자리잡은 녹차밭은 멀리서 보고 있으면 마치 거인이 산에 그림을 그려 놓은 듯 화려하고 웅장함을 보여준다. 산속에 있는 보성 녹차밭 하늘엔 볓들이 총총히 박혀 있고, 땅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빛들이 서로 비추는 모습을 연출한다. 마치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보던 세상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게끔 한다. 빨강, 파랑, 노랑, 녹색, 흰색 등 화려하고 멋진 빛들은 추위도 잊게 한다. 눈꽃이 내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새해 희망을 심어주기에도 충분하다. 연인들과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따뜻하고 낭만적인 겨울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군은 연말연시를 잇는 만큼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올해는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보성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해 조선수군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머문 인연이 있는 곳이다. 1597년 8월 선조가 수군을 폐지하려고 하자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습니다’(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라는 장계를 올린 곳이 보성이었다. 보성군수 방진의 외동딸이자 이순신 장군의 부인이 어린 시절 보성군 관아에서 자랄 정도로 이순신과 보성군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보성군은 임진왜란 당시 백의종군해 수군을 재건할 시기에 군사와 군량미 확보의 거점이었다’고 기록돼 있다.군은 이런 연관성을 빛축제로 연결시켰다. 축제 부제도 ‘차와 이순신과의 만남’으로 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스토리텔링을 살려 율포솔밭해수욕장에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해 조선 수군 재건의 역사적 기틀을 마련한 구국 혼을 연계한 빛거리도 조성했다. 530m 규모로 거북선 용머리 등을 설치했다. 다향각에서 바로 보이는 멋진 ‘봇재다원’ 녹차밭 풍경은 이미 수많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으로 많이 알려졌다. 다향각 근처에 마련된 소규모 무대는 축제 기간 매일 행사를 펼친다. 초청 가수들 공연도 이어진다. 주말 상설공연도 마련했다. 빛축제장 입구에서 진행하는 ‘소망 카드에 소원을 빌어보세요’ 코너도 발길을 사로잡는다. 정성스럽게 쓴 소망 엽서들과 지난해 적은 소망카드 찾아보기 시간도 지난 한 해 동안 소중함을 되돌아보게끔 한다. 길이 250m, 폭 2m, 높이 2.5m의 차밭 은하수 터널과 높이 10m의 벚나무와 떡갈나무, 길이 17m에 높이 4m의 용, 높이 5m 공룡, 높이가 4m인 이순신 투구 등 각종 조형물들이 발길을 잡는다. 비룡, 미래와 약속, 선물상자 큐브, 포토존 등 색다른 볼거리와 캠프파이어, 이순신 갑옷 입기 체험 등 다양한 즐길거리로 관광객들을 맞이한다.점등식은 11일 오후 5시 30분 다향각에서 열린다. 운영시간은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6~10시, 금·토·공휴일은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다. 오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밤 12시까지, 새해 1월 1일은 다음날 7시까지 불을 켠다. 입장료·주차비 모두 무료다. 제1축제장(봇재~다향각)에는 대형트리, 은하수터널, 포토존 등이 있다. 제2축제장(율포솥밭해변)에서는 연인의 빛의 거리, 주말 상세공연 등이 준비돼 있다. 이용부 보성군수는 “전국 제1의 차 고장에 걸맞게 매년 차밭 빛축제를 열고 이를 브랜드화하고 있다”며 “올해는 온누리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행사로 준비한 만큼 편안한 휴식을 즐기는 최고의 멋진 축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동계올림픽 특구 개발사업 특수 누리는 ‘스카이베이 경포’ 호텔

    동계올림픽 특구 개발사업 특수 누리는 ‘스카이베이 경포’ 호텔

    ▶대한민국에 없던 크루즈 스카이풀 호텔, ‘스카이베이 경포’ 12월 18일 분양▶강릉시 올림픽 특구 개발사업 시행자로 12월 10일 착공식 개최 강원지역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대규모 관광객을 겨냥한 위락시설과 도로 등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집값이 뛰고 부동산시장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동계올림픽 특구 개발사업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분양형 호텔이 주목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스카이베이 경포’ 호텔. ㈜빌더스개발은 강릉시 강문동 258-4번지 구 코리아나 호텔부지에 신축하는 ‘스카이베이 경포’를 12월 18일 분양한다. 이 호텔은 연면적 4만3903.62㎡, 지하 3층~지상 20층, 전용면적 20.84㎡~115.41㎡, 총 534실 규모로 조성된다. ‘스카이베이 경포’는 약 4만석에 이르는 강릉 코스탈 클러스터의 스포츠 콤플렉스와 가까운 입지를 자랑한다. 스포츠 콤플렉스는 피겨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 등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빙상종목이 치러질 예정이어서 이곳에서 파생되는 특수 효과가 기대된다. 올림픽 이후로도 빙상스포츠의 명소로서 많은 수요가 집중될 전망이다. 강릉시 김남인 도시재생과장은 “관광숙박시설이 계획대로 조성된다면 부족한 숙박시설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시는 투자협정을 통해 신속한 투자와 개발로 올림픽 이전에 숙박시설 조성을 마치기로 하고 호텔 신축을 위해 동계올림픽특별법에서 허용하는 모든 행정적 지원과 인허가 절차를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관광객의 숙박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강릉지역의 분양형 호텔 투자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조언한다. ▶강릉시 ‘2017년 관광도시’ 선정, KTX개통 등 잇단 호재 가득 ‘스카이베이 경포’가 들어서는 강릉시는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올해(2017년)의 관광도시’에 강원도 내 최초로 선정됐다. ‘올해의 관광도시’는 관광도시로서의 잠재가능성이 큰 도시를 지정해 지역 관광 활성화 및 내수시장 진작, 자생적 발전기반 등을 육성하도록 정부에서 3년간 지원하는 국책사업이다. 이에 힘입어 강릉시는 올림픽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한 실행계획을 통해 ‘4계절 체류형 명품 글로벌 관광도시’로서 강원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거듭날 전망이다. 이로써 현재 1500만명에 달하는 연간방문객수를 보다 크게 늘린다는 것이 강릉시의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제2영동고속도로 개통, 동해고속도로 연장, 영동고속도로 확장과 양양공항 중국인 단체관광객 120시간 무비자 및 개항공항 지정, 국제노선 확대로 강릉으로의 교통망이 확충 될 전망이다. 여기에 현재 공사중인 청량리-강릉 간 KTX선 역시 2017년 개통을 앞두고 있다. 특히 강원도를 운행하는 첫번째 고속열차로 기존 KTX선에 투입된 열차보다 성능이 뛰어난 신형 KTX-산천이 투입돼 관심을 모은다. 신형 KTX-산천 이용시 청량리에서 강릉까지 열차 운행 시간이 5시간 50여분에서 1시간 내외로(※출처: 한국철도시설공단) 4시간 이상 크게 단축돼 향후 더 많은 유동 인구의 유입이 기대된다. ▶고급 부대시설, 전 객실 조망권 보장… 호텔 스카이베이 경포각종 개발 호재로 벌써부터 실수요와 투자자들의 관심도가 높아진 강릉시에서 12월 18일 분양되는 ‘스카이베이 경포’에는 해외 유명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부대시설 스카이풀이 조성된다. 이용객들은 스카이풀에서 와인과 칵테일 등 음료를 마시며 수영을 즐기고 경포의 푸른 하늘과 동해 바다, 경포호의 경관을 동시에 조망하는 낭만적이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스카이베이 경포’는 어느 곳에서든 시원한 조망권이 확보된다. 이 호텔은 전 객실의 조망권을 보장하며, 경포의 아름다움을 더욱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큰 창호가 설치된다. 이에 호텔 전면부에서는 시원스레 펼쳐진 경포의 바다 조망이 가능하고 후면으로는 경포호수 조망이 가능하다. 이용객의 투숙목적에 맞는 다양한 객실 또한 마련된다. 오너를 위한 고급스런 분위기를 갖춘 VIP룸과 프라이빗 라운지 등 지하 3층 지상 20층 총 534개의 다양한 객실이 조성될 예정이다. 여기에 컨시어지 라운지를 비롯해 최대 900석 규모의 연회장, 마켓형 레스토랑 등 차별화 된 최고급 부대시설이 들어서며 이용객의 만족도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킬 전망이다. 또한 분양형 호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안전성’인데, 이 측면에서 ‘스카이베이 경포’는 호평을 받고 있다. 아파트,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등 수많은 개발사업을 성공시킨 빌더스개발이 위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동산신탁 전문기업 한국자산신탁이 시행하며, 여기에 2015년 시공능력평가 1위의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았다. 운영사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전 세계 50개국에 1200여개 호텔과 9만개가 넘는 객실을 보유한 유럽 최상위 호텔그룹 루브르호텔그룹이 전 세계에서 쌓아온 다년간의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접 운영을 맡을 예정으로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분양면적 또한 중소형 평형이 대부분을 차지해 투자자의 부담을 최소화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카이베이 경포’ 분양관계자는 “동해안과 경포호수 조망권의 해외 유명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옥상 야외수영장 등 호텔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며 “상품성이 워낙 우수하다 보니 투자문의를 위해 전화는 물론 직접 방문까지 하는 수요자도 많다”고 전했다. ‘스카이베이 경포’의 시설은 물론 입지, 루브르호텔그룹의 브랜드파워와 한국자산신탁의 신뢰도와 아울러 투자자들에게도 다른 호텔들과 차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릉을 넘어, 나아가 싱가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처럼 한국의 랜드마크 호텔로 거듭날 것을 기대한다. 12월 10일 착공식이 개최되는 ‘스카이베이 경포’는 2017년 완공예정이며,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71-18에 서울 분양홍보관이 강릉시 포남동 1272 2층에 강릉 분양홍보관이 동시 운영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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