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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 佛번역판 현지 호평

    한국 문학작품의 영·불역본이 현지 언론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에 따르면 프랑스 최고의 일간지 르 몽드는줄마(ZULMA)출판사가 지난달 발간한 이승우의 장편소설 ‘생의 이면(L'Envers de la vie)’을 지난 19일자 문학면 톱기사로 자세히 소개하면서 높이 평가했다.르 몽드는 ‘한국의 잔인한 이야기’라 제목의 기사에서 “때로는 너무 격렬하고 때로는 너무 능숙하나,조용하고 신실한 마음이 치솟는 이 소설은 다감하고도 엄숙하여 문학 애호가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평했다. ‘생의 이면’은 1993년도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우리 문단에서는드물게 종교적 사유,인간 존재의 실체 등을 다뤄온 작가가 심리적 상처의 극복을 위한 내면과의 만남을 밀도있게 그린 작품이다.이 프랑스어본은 대산문화재단의 번역·출판지원을 받았으며 고광단 홍익대교수와 장 노엘 주테 주일프랑스대사관 어학문화담당관이 공역했다.작가 이승우는 지난 4월 직접 프랑스를 방문하여 작품낭독회 등을 가졌었다. 이에 앞서 한대균(청주대 교수)·질 시르(캐나다 퀘벡 시인) 공역으로 프랑스 시르세 출판사가 발간한 조정권의 ‘산정묘지(Une tombe au sommet)’도르 몽드,리베라시옹,프랑스 엥테르 방송 등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황동규의 대표 작품 50편을 묶은 ‘사랑의 뿌리(Les racines d'amour)’ 역시 이달 시르세에서 나왔다.이에 앞서 극작가 오영진의 희곡과 사이코 드라마를 불어로 번역한 ‘맹진사댁 경사(Monsieur Maeng marie sa fille)’가지난달 프랑스 라신 출판사에서 나온 데 이어 박완서의 중단편 모음집인 ‘저문 날의 삽화(A Sketchof the Fading Sun)’가 미국 화이트파인 출판사에서 각각 간행되었다.모두 95년부터 한국작품의 해외 번역출간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대산문화재단의 노력에 힘입었다. 김재영기자
  • ‘한국문학작품 낭독회’ 獨서 잇따라 열린다

    ‘한국문학작품 낭독회’가 독일의 함부르크(22일)와 라이프치히(23,24일)에서 차례로 열릴 예정이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독일 함부르크주 문화국 및 독일 최대 출판기업인 베르텔스만 클럽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 작품낭독회에는 시인 김광규(한양대 독문과교수)김혜순(서울예대 문창과교수)소설가 한수산(세종대 국문과교수)신경숙씨와 사회를 맡을 정혜영 한양대 독문과교수 등이 참가한다. 지난 97년에 이어 두번째가 되는 함부르크 낭독회는 대형 문화시설 ‘문학의집’에서 열리며 연이틀 계속되는 라이프치히 낭독회는 권위있는 이 도시의도서박람회 공식 초청행사로 열린다. 참가하는 시인 소설가들은 작품이 독일어로 번역 출판되었거나 출판될 예정인 문인들이다. 한편 독일 펜드라곤 출판사는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직접 낭독하고 소개하는 이번 행사를 한국작품 보급마케팅 기회로 적극 활용할 계획.3년전 소설가 김원일씨의 장편소설 ‘바람과 강’을 펴낸 이래 독일 출판사로는 처음으로 한국문학 시리즈를 시작한 펜드라곤은 지금까지7권의 한국작품을 출간했다. 현재 김광규 시집 ‘조개의 깊이’,한수산 장편소설 ‘부초’가 펜드라곤에서 출간되었으며 김혜순 시집 ‘어느 별의 지옥’,신경숙 장편소설 ‘외딴방’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시인 미당 서정주(이세기의 인물탐구:61)

    ◎팔순에도 샘 솟는 시정… 문단의 거봉/새로운 언어­독특한 깊이로 감동의 운율빚어/어릴적 가난­방랑 벽이 창작욕이 밑거름으로/“내 숨결 그칠 때까지 시어 더듬고 또 더듬겠다” 1948년 선문사가 발행한 미당의 두번째 시집 「귀촉도」에서 김동리 발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나의 유일한 정신상의 재보로서 쌓아왔다. 그의 뇌락불기한 인격과 자유분방한 시혼은 그 처녀시집 「화사집」을 통하여 이미 세상에 그「비늘을 번득인」바 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적어도 이 땅에서 시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늘날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이 혹성의 찬연한 광망과 위치에 등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평자들이 미당을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용되는 명평이다. 「뇌락불기」란 「마음이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남에게 구속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미당의 문학적 족적은 광활하고 높고 깊다. 그리고 훨훨 나는 그의 두루마기 차림처럼 시에 관한한 무장무애하고 무소불위하다. 지금은 문단의 거봉으로 우뚝 서 있지만 미당의 지난 세월은 가난과 슬픔과 방황과 방랑벽으로 그 인생의 절반이 혹독하게 얼룩져 있었다. 어릴 때는 당시를 배울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만14세 되던해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해서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적이 있고 고향의 고창고보에 편입했다가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으로 또 한번 퇴학을 당했다.다시 서울로 올라와 극예술연구회 연극배우노릇, 마포 도화동 빈민촌에 입주하여 넝마주이 행색으로 쓰레기를 줍기도 했고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교장이며 존경하는 스승인 석전 박한영을 만나 안암동 개운사에서 능엄경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릴때는 당시배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만주로 건너가 만주곡량주식회사 연길지점에서 경리과직원이 되는가 하면 김좌진장군과 이승만대통령의 전기집필,「옥루몽」등 옛소설 번역으로 생계를 잇다가 인촌 김성수 집안과의 인연으로 동아일보 사회부장 학예부장을 지내는 등 그의 인생역정은 파란이 깊고 다양하기만 했다. 이토록이나곡절이 심한 방만한 생활덕분에 한때는 자살을 기도하다 미수에 그치고 생명의 존엄을 체험하고 나서야 미당은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과 생명의 활기가 몸속에 용솟음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광주 무등산 자연속에서 「난생 처음 보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이무렵 「무등을 보며」「학」「상리과원」같은 명품을 연달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의 시들은 끊일줄 모르는 시심과 계류와도 같은 운율의 감동을 자아내면서 마치 가을 한낮 거문고 소리처럼 청랑한 운기로 흥취와 운치를 자아내는 것이 일품이다. 그의 탁월한 시업은 과거로의 관념적 도피나 신비주의에 탐닉한 시절이 있었고 영원의 생명에 대한 명상으로 온자하고 정밀한 내면을 구축하면서 「육체적 인간의 본원적 충동을 순화시켜 어느 순간엔가 숭고한 정신적 표현의 극에 도달」한 것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최근 「시와 시학」지에서 시인들이 「교과서에 실리고 싶은 시」로 추천한 「무등을 보며」는 명편중의 명편으로 미당이 아직 38세이던 19 53년 「현대공론」에 발표한 것이다. 그때 이 시를 읽은 젊은 이들은 「구구절절 감명을 사로잡는 명구」라든지 「화살처럼 꽂히는 충격」으로 이를 극구 찬양해 마지 않았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여름 산같은/우리들이 타고난 살결/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아래 지란을 기르듯/우리는 우리의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에 없다…」 미당의 주옥같은 시들을 일일이 다 열거 할 수는 없다. 단지 그가 낳는 시마다 절륜의 절창으로 평가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평론가 유종호는 「창의성 있는 언어구사와 독특한 깊이와 지혜, 상당량의 시편이 그릇 큰 시인의 구비조건이라면 20세기 우리 시인 가운데서 이러한 조건을 가장 보기좋게 구비한 이로 미당」을 드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과연 언어를 부리는 장인적 기술에서나 직관과 상상의 능력에 있어서나 만인이 칭송하는 대가의 반열에 선 그는 한국적 릴리시즘의 탁월한 정형을 만들어냈고 안주를 모르는 시정신으로 한국의 운치와 위엄을 어느 시에서나 감동적으로 증명해 왔다. 해인사 체류시절 미당을 사로잡은 소쩍새 울음소리는 그에게 불치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음향으로 다가와 저 유명한 「귀촉도」와 「국화 옆에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국민학교 시절에 벌써 일본여선생을 흠모하는가 하면 불혹의 나이때도 때때로 여난을 겪게 되어 「나 바람나지 말라고/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는/삼천 사발의 냉숫물」은 미당을 엿보게 하는 낭만시인의 일면이기도 하다. ○속과 선을 아는 성품 만년의 그는 인생을 관조하는 허허로운 마음과 가족을 거느린 가부장적 자세를 빌리고 있으나 「속도 알고 선도 아는 복합적인 성격」과 대체로 괴팍과 까다로움이 승한 편이다. 그 한 예로 70년대 초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초청으로 영국시인 스티븐 스펜더가 한국에 왔을때 그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미당은 취중이었는지 한국의 정상다운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팡이를 휘둘러 「TS 엘리엇이 아니면 돌아가라」고 외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인 고은이 한때 주란과 폭소버릇으로 위아래없이 오만방자하게 굴자 처음에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어지로운 헛웃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가족회의끝에 그를 공덕동에서 추방하고 「고은출입금지령」을 내린 일도 있다. 그의 풍류는 나무와 돌과 침향(심향)과 글씨 그림외에도 난취미가 으뜸이다. 지난 70년 25년간 살아온 공덕동을 떠나 관악산밑 사당동으로 거처를 옮기고는 택호를 쑥 봉자 마늘 산자를 따서 봉산산방으로 붙여놓고 그는 한동안 나무심기와 난수집에 주력했다. 시암 배길기와의 광동보세며 삼중당 일력에 자필 시를 써주고 받은 제주한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류시인 김양식과의 중국춘란에 얽힌 대화는 난향같은 일화다. 당시만도 그가 지닌 서른분쯤의 난들은 「겨우 여중 2학년 정도의 잎만 여남은게 솟아올린채 꽃필날이 아득하기만 한데」 난화부재의 겨울날 김양식이 불쑥 전화를 걸어 「대만에서 구해온 중국춘란이 아주 썩좋게 한송이 피었다」고 자랑삼았던 모양이다.이때 미당의 대답이 걸작이다. 「이웃하나가 명주바지를 입으면 여러 가호가 두루 따뜻한거라는데 나도 그 푼수니 염려말고 잘 만끽하시라」고 했다. 그러자 김양식은 가족들과 휴가를 가게되니 「그 사이 며칠만 돌보아주시며 즐겨보시는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미당은 그제서야 눈이 번쩍 띄게 반가워했고 비록 빌렸을 망정 책상위에 난을 놓고 보고 또 보고 난향을 맡으며 「시의 감동이란 것도 내 생애에서 항용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내가 소유하는 것에서보다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간절해지는 감동으로 시를 쓴 것이 많았다」고 한 산문에 적고있다. ○커피보다는 맥주 즐겨 그의 정열과 의욕은 식을 줄을 몰라 한때는 영어단어를 하루에 수십개씩 외는가 하면 70년 초반부터는 세계를 두루 일주하며 끝없는 여행길에 오르더니 최근엔 세계의 산봉우리를 높이순으로 1천6백여개나 줄줄이 기억해내는 독특한 취미를 보이고 있다. 미당은 올해 팔순이지만 아직도 그 시작은 그의 방창앞에 심은 소나무처럼 청청한 천뢰의 소리를 잃지 않는 기상이다.요즘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커피보다는 맥주」를 권하고 제자들이 마련한 시낭독회나 남을 축하하는 자리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지난 9일에는 송파문화원에서 열린 국선문학회에 나와 「국선(국선)」이란 모임이름을 지어주고 후배들의 회장추대를 극구 사양하여 주변을 송구스럽게 했었다. 이제 자기자신을 홀연히 내쳐버리는 무집착의 상태에서 그의 최근의 시들은 글맛이 한층 무르익어「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다. 산다는 것이야말로 사변의 연속이었던 시대를 거치면서 일찍이 김동리가 지적했듯이 미당은 지금도 「내 숨결이 아주 내 육신을 떠날 때까지는 더듬어보고 또 더듬어」 새로운 시에 대한 분방한 광망을 접어두거나 조금도 늦추려들지 않는다. ▷연보◁ ▲1915년 5월18일 전북고창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출생.서광한씨와 김정현여사의 2남2녀중 장남 ▲1929년 부안 줄포보통학교 졸업.서울 중앙고보 입학 ▲1931년 전북 고창고보2학년 편입,권고자퇴,서울 상경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입학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벽」당선 ▲1936년 시전문지 「시인부릭」편집인겸 발행인 ▲1941년 처녀시집 「화사집」(남만서고)1백부 한정판 출간 ▲19 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및 학예부장,문교부산하 예술과 초대과장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 ▲1952년 광주 조선대학 부교수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원 ▲1955년 미국아세아재단 자유문학상 ▲1960년 동국대 부교수 ▲1961년 제1회 5.16문예상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5년 서울 신문회관서 회갑연 ▲1976년 미당시를 주제로한 시화전 서울서 제주까지 6개월간 전시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1979년 동국대 정년퇴임,대우교수로 대학원 강의 ▲1980년 동아일보 문화대상 개인상부문 본상 「귀촉도」「서정주시선」「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안 잊히는 일들」「늙은 떠돌이의 시」「산시」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전5권) 「서정주 시선집」(전2권)등 시 8백여수와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등 산문집과 여행기가 있음.
  • 한·독 문학교류의 새장 펼친다/분야별 양국문단 대표·저명문인 참석

    ◎다양한 행사 준비… 작품·문인교류 정례화 새전기 한국문학과 독일문학이 만난다.주한독일문화원과 우경문화재단 주관으로 오는 25일부터 7일동안 서울에서 열리는 「독일문학의 주간」행사에는 현대독일을 대표하는 저명한 문인 7명과 9명의 한국측 문인이 참가해 한·독양국의 본격적 문학교류의 장을 여는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한국과 독일은 전쟁과 분단 그리고 경제성장이라는 유사한 정치적 운명을 겪었으며 문학적으로도 리얼리즘으로부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진행되는 닮은 꼴을 보이고 있다.특히 분단을 해소한 통일독일의 체험은 한국문학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독일측 참가자는 현재 독일문단에서 중견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카를 리아교수(지겐대 독문학),문학평론가 노르베르트 밀러교수(베를린대 독문학),시인 하랄드 하르퉁교수(베를린대 독문학),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한 소설가 한스 요아힘 세들리히,소설가 클라우스 슐레징어,시인 두르스 그륀바인,시인이자 무용안무가인 유디트 쿠카르트를 비롯 베를린문학교류회 사무총장인 율리히 야네츠키씨등 8명이다.독일현역 최고의 원로시인인 발터 휠러러는 고령으로 참가하지 못하는 대신 작품을 보내왔다. 한국측 작가로는 지난해 7월 독일에서 열린 「한국문학의 주간」에 동행했던 문인들이 모두 참가한다.문학평론가 김병익·김주연·김치수씨,소설가 김주영·김원일·홍성원씨,시인 오규원·김광규·김혜순씨이다.각 분야별로 한국과 독일양국의 문단및 문학경향을 대표할만한 인물로 짜여졌다. 독일작가 일행은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동안 매일 저녁7시30분부터 독일문화원에서 독일문학의 현황및 자신의 작품을 낭독한다.한국측 작가들은 이를 한국어로 낭독한뒤 상호간의 의견을 교환,토론하는 방식으로 작가낭독회및 독자와의 대화를 진행한다. 또 28일 상오10시부터는 서울대(세틀리히),연세대(리아),홍익대(슐레징어),숙명여대(쿠카르트),서울여대(그륀바인),경원대(하르릉)등 6개대학별로 독일작가와 한국대학생들의 만남행사를 갖는다.독일측 작가일행은 29∼30일 안동 하회마을과 도산서원,경주를 둘러본뒤11월1일 한국을 떠난다.
  • 베를린문학교류회 창시 노시인 발터 휠러러(인터뷰)

    ◎“문학통해 동서이념장벽 해소 노력”/베를린을 독현대문학 중심지로 키운 문단의 대부 발터 횔러러.올해 70세의 노시인으로 독일 문단의 대부.저 유명한 4·7그룹의 창설멤버중 한 사람이자 최근 한국문학주간을 마련한 베를린문학 교류회(LCB)의 창시자로서 전후의 베를린을 독일 현대문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LCB의 활동터전인 반제하우스에서 그를 만나 통일후 독일문인의 내적갈등과 그의 문학관등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LCB의 활동이 인상적이다.설립배경을 말해달라. 『지난 59년 베를린공과대학(TU)의 문학교수로 부임하여 61년 베를린장벽이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공산국가의 한가운데 섬처럼 떨어져 있는 베를린에 내가 아는 동료작가들을 불러 학생들과 만나게 하고 방송을 통해 여러 사람과 만나게 하려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TU의 3010강의실에 한번에 2명씩의 작가를 초청했는데 성과가 좋아 「마의 3010호실」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잉게보르크 바하만,하인리히 뵐,페터 바이스등 4·7그룹의 멤버들은 물론 막스 프리쉬,뒤렌마트등 독일어권 작가들이 초청됐다.61년 계간지「과학기술시대의 문학」을 발간하고 이때부터 비독일어권 문학도 소개하기 시작했다.3010강의실이 좁아져 쿠담의 빌 헬름교회 근처에 숙소없는 행사장만을 마련하고 63년 LCB를 정식 설립했는데 미국의 포드재단과 베를린 주정부가 재정지원을 해주었다.64년 옛 귀족의 성인 반제하우스로 옮겨와 13개의 객실을 갖추고 작품낭독회 뿐만 아니라 워크숍·창작강좌등 여러형태의 모임을 갖게됐다』 ­LCB의 근본 철학은 무엇인가. 『문학을 통해 공산권과 서방진영의 장벽을 부수고 베를린을 현대문학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었다.그래서 보즈네센스키(소련)와 로렌스 펠링(미국) 귄터 쿠네르(동독)와 귄터 그라스(서독)를 함께 초청하기도 했다.또 적대감·우월감을 불식하고 인간화의 길을 찾는 문학의 본분을 실천하고자 했다』 ­베를린장벽은 무너졌으나 독일의 진정한 내적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들린다.무엇이 가장 큰 문제이며 문제해결을 위한 문학의 역할은 부었이라고 보는가. 『문학인들 가운데 통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는이들이 있지만 극단적 비판과 낙관을 나는 모두 경계한다.어려움은 문학이 아니라 정치·경제에 있다.그러나 동 서독 사이엔 서로 접촉이 있었기때문에 북한과 남한처럼 나쁘지는 않다.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면 둘 사이의 괴리는 해소될것이다.물론 국가의 관리와 지원을 받아 온 동독과 자유경쟁 체제의 서독의 문학적 유통구조가 너무 달라 통일이후 동독출신작가들이 적응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다.LCB가 해 왔듯이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주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통일이후 서독 좌파지식인들의 위상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우선 종전의 입장을 고집하는 고수파가 있는데 이들은 「싸움닭」으로 불린다(웃음).또한 「동독이 낙원이라고 말한바 없다」고 주장하는 전향자가 있고 통일된 새로운 현실을 바탕으로 통일의 잘못된 결과를 스스로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동독의 하이네 뮐러와 서독의 귄터 그라스가 바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범주에 속한다.이제 작가들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과연 실현되고 있는가를 소재로하여 작품을 쓰고 통일을 새로운 문학의 계기고 삼아야 할것이다.문학은 다양성을 본질로 하기때문에 이런 현상은 문학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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